진실사회
줄리언 바지니 지음, 오수원 옮김 / 예문아카이브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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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2016년 옥스퍼드 사전이 선정한 ‘올해의 단어’는 ‘post-truth’이었다. 원어의 의미를 그대로 살린 채 우리말로 번역하면 ‘탈(脫)진실’이 될 수 있겠다. 탈진실은 객관적 사실보다는 개인의 감정이나 주관적 확신에 호소하는 정치 캠페인을 묘사할 때 많이 사용됐던 말이다. 특히 선동가들이 때론 진실과 다른 내용으로 유권자들의 마음을 움직일 때도 널리 사용됐다.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 등 연이은 충격적인 사건 여파로 이 단어가 큰 관심을 모았다. 진실에 대한 불신이 높아지고 있는 탈진실의 시대 속에서 사회적 관심이 집중되는 의사결정은 머뭇거려질 수밖에 없다. 특히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중대한 의사결정에 관련해서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다원화된 사회에는 다양한 목소리가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온다. 민주사회이기에 가능한 상황이다. 권위주의적 권력이 지배하던 시절 공동묘지의 고요함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가치다. 자유 민주 질서는 다원화를 촉진하고 생산적으로 살리는 데서 건실하게 뿌리내릴 수 있다. 하지만 탈진실의 시대에 접어든 우리 사회가 생산적인 시끄러움이 아니라 분열과 갈등을 일으키는 시끄러움에 휩싸이고 있다. 이 시끄러움은 출처가 불분명한 ‘가짜 뉴스’에서 나오는 시각적 소음이다. 검증되지 않은 거짓 정보들이 넘쳐흐르고, 그것이 진실인 양 둔갑하여 또다시 거짓 정보를 재생산해내는 악순환이 일어난다. 가짜 뉴스는 우리의 판단을 흐리게 한다.

 

탈진실보다 더 무서운 건 아예 진실 자체를 외면하고 무시하는 상황이다. “오늘날 진실은 이렇게 훨씬 더 복잡하고 안개 자욱한 모호한 것이 되어버렸다(《진실 사회》 12쪽).” 영국의 철학자 줄리언 바지니(Julian Baggini)의 말처럼 ‘안개’가 된 진실은 좀처럼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로 남는다. 손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진실은 점점 외면받는다. 반면 거짓은 진실의 가면을 쓰고 활개 치며 우리를 유혹한다. 하지만 바지니는 진실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 그는 여전히 진실은 살아있다고 믿는다. 과거에는 ‘보이는 것’이 진실이었다. 이때 진실은 아주 단순했다. 그렇지만 세상이 변하면서 다양한 목소리가 등장하기 시작했고, 진실의 다양성과 상대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보이는 것만 전부(진실)가 아니다. 오늘날의 진실은 복잡성을 띠고 있으며 우리 눈앞에 잘 드러내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는 이 진실을 누가 말하고, 누구를 위한 것인지 분간할 능력이 없다.

 

《진실 사회》진실이라는 개념 자체가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바지니는 진실의 존재를 위협하는 거짓의 유해성을 밝힐 뿐만 아니라, 진실의 복잡성이 어떻게 거짓을 양산하는지 살핀다. 바지니는 진실의 복잡성을 설명하기 위해, 진실을 열 가지 유형으로 분류한다.

 

 

1. 종교적 진실

2. 권위적 진실

3. 은폐적 진실

4. 이성적 진실

5. 경험적 진실

6. 창조적 진실

7. 상대적 진실

8. 권력적 진실

9. 도덕적 진실

10. 총체적 진실

 

 

종교적 진실은 사유의 결과물이라기보다는 거의 몸으로 느끼면서 발견하는 진리에 가깝다. 그러므로 종교적 진실은 개인의 자아의식과 정체성과 아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우리는 전문가의 인식론이 반영된 권위적 진실을 어렵지 않게 받아들인다. 그렇다고 해서 권위나 권위자 자체를 무조건 거부해선 안 된다. 비록 정확하지 않더라도 그 권위가 강조하는 ‘주제’가 무엇이며, 그것이 어떤 근거를 가지고 작용하는지 우리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 진실은 은폐될수록 음모론이 계속 나오며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저자는 순수 이성을 통해 확실한 진리에 도달한다고 보는 이성적 진실을 경계한다. 왜냐하면, 이성을 가진 인간은 잘못된 판단을 내리기 때문이다. 권력자는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진실을 만들고 싶어 한다. 권력적 진실은 권력자의 ‘통제’에 의해 만들어진다. 우리가 살면서 쭉 믿어왔던 단 하나의 진실을 쉽게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 진실과 관련된 가치관과 세계관을 포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나의 진실은 개인의 가치와 세계관이 반영되어 있을 정도로 ‘총체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타인의 진실에 의문을 제기하거나 부정하는 반응은 그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부정하는 것과 같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 가장 합리적인 수단은 명백한 근거와 진실이다. 바지니는 탈진실 시대일수록 진실을 바로 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진실을 받아들이기 위해 가장 필요한 기본적인 덕목으로 ‘진정성’과 ‘정확성’을 언급한다. 탈진실 시대의 도래는 그동안 믿어왔던 많은 것들을 바꿀 것이다. 이는 진실을 믿으려는 이들의 가치관을 흔들 만큼 엄청난 혼란으로 다가올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다가올 미래의 혼란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그에 앞서 왜 우리가 눈앞에 있는 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피하게 됐는지 자성이 필요한 때이다. 진실과 거짓을 분간하기가 어렵다고 해서 무관심과 냉소주의 뒤에서 숨고 있을 수만은 없다. 진실과 정의를 확보할 의지가 없다고 생각하면 살아갈 의미 없는 인생이 되고 만다. 그러한 인생을 사는 사람은 이리저리 끌려 다니는 ‘가짜 뉴스의 노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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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8-10-02 17: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확증편향을 원하는 이들에게 진짜 진실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저 자신들이 원하는 것만 필요할 따름이죠.

존재의 상실감을 자신이 원하는 가짜 진실로 채
우려는 욕망이 문제라고 하네요.

cyrus 2018-10-03 13:48   좋아요 0 | URL
자신의 모습을 거짓 진실로 꾸며서 과대 포장하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는 곳이 SNS이에요. 북플도 인스타, 페북처럼 유사해져서 지적 허영심을 드러내기 딱 좋은 곳이에요. 요즘 독서모임을 통해 책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보니까 제가 그동안 글을 쓰면서 지적 허영심을 충족시켰다는 걸 깨달았어요.

2018-10-03 08: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10-03 13:48   좋아요 0 | URL
가짜 뉴스를 믿는 젊은 사람들도 많습니다.. ^^;;
 
계몽주의 시대의 급진철학자들 반철학사 4
미셀 옹프레 지음, 남수인 옮김 / 인간사랑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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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몽주의 시대의 급진철학자들》‘반(反)철학사’ 시리즈 네 번째 책이다. 이 책에서 미셸 옹프레(Michel Onfray)는 18세기 계몽주의 시대 철학의 계보를 정면으로 비판하면서 제도권 지식인층에 밀려난 급진적 사상가 여섯 명의 생애와 철학을 재조명한다.

 

계몽주의 시대는 무엇인가? 계몽주의는 18세기 유럽에서 광범하게 일어난 지적 사상운동이다. 프로이센(Prussia)의 황제 프리드리히 2세(Frederick II)[주]를 비롯해 당대의 많은 사람은 “새로운 시대가 문을 두드린다”는 볼테르(Voltaire)의 외침에 심취했다. 당시 유럽의 지성인들에게 볼테르를 만나는 것은 철학자 혹은 계몽주의자로 인정받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었다. 계몽주의 시대는 ‘이성의 시대’였고, ‘빛의 시대’였다. 종교가 지배하는 계몽주의 이전은 자연과 신에 대한 질서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세계 속에 존재하는 개인은 자연과 우주 만물을 다스리는 신의 뜻에 의해 움직인다고 보았다. 그러나 계몽주의가 등장하면서 전 세대보다 밝아진 이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계몽주의는 인간의 존엄과 평등, 자유권을 강조함으로써 중세를 지배한 전제군주와 종교의 독단적 권력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그런데 옹프레는 18세기를 새롭게 규정한다. 그는 18세기가 봉건적 시대, 군주 왕정 시대, 가톨릭 시대였다고 주장한다. 볼테르, 루소(Rousseau), 디드로(Diderot) 등 프랑스 계몽주의 시대를 대표하는 이 철학자들은 자유와 관용을 호소했다. 그렇지만 그들은 교육을 받고 재산을 소유한 사람, 따라서 이성을 자유롭게 활용할 줄 아는 부르주아였다. 옹프레는 계몽주의자들을 ‘겁쟁이’라고 비판한다. 언행 불일치. 계몽주의자들은 말(생각)만 앞세우고 행동이 뒤따르지 않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들은 사유재산제, 군주 및 가톨릭 권위에 순순히 따르는 보수주의자였다.

 

1789년 프랑스 혁명은 유럽 계몽주의의 정점이었을까? 옹프레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그는 18세기가 프랑스 혁명을 준비하는 시기로 보고 있다. 그리고 프랑스 혁명이 뿌리 깊은 기독교의 권위를 단호하게 공격하지 못했다고 평가한다. 종교를 신뢰하는 계몽주의 사상가들은 무신론자들을 공격하기 시작한다. 급진적 계몽주의 사상가들은 ‘무신론자’라는 오명을 씌우게 된다.

 

장 멜리에(Jean Meslier)는 ‘무신론자’ 사제이다. 옹프레의 표현에 따르면 그는 18세기를 폭파시킬만한 다이너마이트를 가진 사상가였다. 멜리에는 무신론자였을 뿐만 아니라 재산과 토지 공동 소유를 주장한 공산주의자이기도 했다. 라 메트리(La Mettrie)는 데카르트(Descartes)의 심신 이원론을 비판하며 인간에 대해 철저하게 유물론적인 정의를 내세운다. 그는 인간 역시 기계이며 인간의 정신은 뇌의 물질적인 작용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멜리에와 라 메트리는 급진적 유물론자이다. 모페르튀이(Maupertuis), 엘베시우스(Helvètius), 돌바크(d’Holbach)도 유물론자이지만, 이 세 사람은 공리주의적 입장을 드러낸다. 엘베시우스는 화폐의 폐지, 공산주의 유토피아에 반대했지만,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위한 점진적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무신론자가 확실한 돌바크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인간이 신과 종교를 발명했다고 주장한다. 그는 계몽주의 지식인들이 모여 만든 《백과전서》의 편찬자였고, 이 책에 400개의 주석을 달았다고 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백과전서》 집필에 참여한 루소와 볼테르는 무신론자들을 공격했고, 무신론자를 비난한 내용이 있는 《백과전서》 항목이 기재되기도 했다. 옹프레는 이 책에서 ‘계몽주의 시대의 희생자’ 또는 ‘해방자’로 재평가받는 사드(Sade)를 비판한다. 그는 사드가 성범죄자이며 파시즘의 전체주의적 · 우생학적 속성을 이해한 ‘봉건주의의 화신’이라고 주장한다. 사드의 작품 속에 나타난 파시즘의 속성을 제대로 보지 못한 사드 옹호론자들에게도 가차 없이 비판을 가한다. 사드의 소설을 읽기 전에 사드의 봉건주의적 사상을 분석한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반드시 읽어볼 것!

 

계몽주의 사상가들은 인간이 이룩한 문화와 문명에 고취되어 인간의 이성을 바탕으로 문화와 문명을 진보시킬 수 있다고 확신했다. 하지만 실제로 그들은 세상을 확 바꿀만한 영향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들이 서 있던 자리는 자유와 평등을 외친 민중이 모인 광장이 아니라 귀족을 알현하는 안락한 실내였다. 볼테르가 자신에게 연금을 주는 귀족의 방에 찾아가서 문을 두드리는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지는가. 인간의 이성이 굳어지면 또 다른 권위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이성은 속박에 갇힌 모든 사람을 위한 만능의 열쇠가 아니다.

 

 

 

[주] 《계몽주의 시대의 급진철학자들》에서는 프랑스식 표기에 따라 ‘프레데릭 II세’라고 되어 있다.

 

 

 

 

 

※ Trivia

 

‘인간사랑’ 출판사에 나온 책에서 유독 오자 한두 개가 발견된다.

 

 

 옹프레는 18세기의 철학을 기술하기에 앞서 18세기는 이 세기의 말엽인 1879년에 일어난 프랑스의 대혁명을 준비한 시대라고 설정한다. (10쪽)

 

‘1789년’에 프랑스 혁명이 일어났다.

 

256쪽에 있는 ‘타르수수의 바오로’를 ‘타르수스(Tarsus)의 바오로’로 고쳐야 한다. 287쪽의 ‘에피큐로스’는 에피쿠로스(Epikuros)로 고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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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8-09-13 17: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루소가 아이들을 고아원에 보낸 걸 이해하게 되었어요. 잘못 생각했다고 시인한 대목이 뭉클합니다. 팟캐스트에서 들었어요. 나쁜 마음으로 그런 건 아니라 오판했다는 거죠. 저는 믿습니다.

요즘 스피노자에 빠졌어요. 아니 더 빠져 살 예정입니당~~

cyrus 2018-09-14 12:28   좋아요 0 | URL
철학을 공부하기 전에 철학자의 생애를 먼저 알아야 할 것 같아요. 그러면 그 사람이 왜 철학을 했는지 이해할 수 있고, 인간다운 결점도 알 수 있어요. 저도 스피노자에 대해서 알고 싶은데, 일단 먼저 데카르트의 철학부터 공부하려고 해요. ^^
 

 

 

 

미셸 푸코(Michel Foucault)의 지적 편력은 다양하다. 그래서 그를 특정한 범주에 잠시나마라도 붙들어 매는 것이 불가능하다. 푸코를 영유하는 방식은 사람들에 따라 너무나 편차가 심하다. 푸코의 대머리에 무작정 오르다가는 미끄러져서 떨어질 수 있다. 다행히 요즘은 푸코의 대머리에 오르는 데 유용한 사다리 같은 책들이 많다. 다만 오래돼서 낡아빠진 사다리는 피해야 한다. 튼튼한 사다리가 여러 개 있다면 오래된 사다리까지 챙겨야 할 필요는 없다.

 

 

 

 

 

 

 

 

 

 

 

 

 

 

 

 

 

 

 

* 자네트 콜롱벨 《미셸 푸코, 죽음의 빛》 (인간사랑, 1998)

 

 

 

《미셸 푸코, 죽음의 빛》(인간사랑, 1998)유통기한이 훨씬 지난 ‘오래된 사다리’다. 푸코의 철학을 소개한 책이지만, 내가 보기엔 필독해야 할 이유가 없는 책이다. 이 책은 20년(!) 전에 나왔다. 절판되지 않은 게 용하다. 이 책의 프롤로그인 『여정과 추억』은 저자가 자신의 푸코 읽기 여정을 말년 푸코의 삶과 겹쳐 술회한 내용인데, 쓸데없이 길다. 그래도 번역자의 꼼꼼한 역주는 읽을 만하다. 번역자는 참고 문헌들에 대한 세심한 검토를 곁들여 이 힘든 작업을 성실히 수행했다.

 

그러나 번역자도 사람인지라 종종 무지(無知)로 인해 잘못된 정보를 전하기까지 하는 오류를 범한다. 교정은 원고에 있는 오류를 바로잡고, 인쇄 상태를 바로잡는 행위이다. 아무리 내용이 좋아도 교정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책은 ‘잘못된 책’이다.

 

 

 

 

 

 

 

 

 

 

 

 

 

 

 

 

 

 

* [아직 안 읽은 책] 미셸 푸코 《말과 사물》 (민음사, 2012)

 

 

 

 

 

 

 

 

 

 

 

 

 

 

 

 

* 노르베르트 볼프 《디에고 벨라스케스》 (마로니에북스, 2007)

* 자닌 바티클 《벨라스케스》 (시공사, 1999)

 

 

 

78쪽에 푸코의 《말과 사물》(민음사, 2012)에 관한 내용이 나온다.

 

 

 『말과 사물』은 우연을 전제로 한다. 왜냐하면 거기엔 가장 걱정스런 것이 아직은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의 발상은 보르헤스(Borges)의 한 텍스트로부터 연유한다”는 말로 『말과 사물』은 시작한다. 오히려 이 짧막한 문장은 『귀족의 딸들(Ménines)』의 화려한 묘사가 감추는 방법론적 서문에 의해 가려져 있다.

 

 

 

‘짧막한’은 ‘짤막한’의 오자(誤字)이다. 『귀족의 딸들』은 무엇인가? 스페인의 화가 벨라스케스(Velázquez)의 그림 『라스 메니나스(Las Meninas)를 말한다. 이 그림은 ‘시녀들’이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져 있다. 벨라스케스가 어린 공주와 시녀들, 그리고 공주의 놀이 상대였던 난쟁이와 개를 그린 그림이다. 이 그림에는 ‘귀족의 딸들’은 나오지 않는다. 번역자는 벨라스케스의 그림 제목을 엉뚱하게 적었다.

 

 

 

 

 

『라스 메니나스』는 이야깃거리가 많은 그림이다. 그림 속의 벨라스케스(그림 왼쪽에 붓을 들고 있는 남자) 자신은 어린 마르가리타(Margarita) 공주를 그리고 있다. 이 그림의 흥미로운 점은 거울 속의 펠리페 4세(Felipe Ⅳ) 부부의 모습이다. 실제로 스페인 국왕 부부는 그림 모델로 서고 있는 공주의 지루함을 달래주기 위해 화가의 작업실을 찾았지만, 벨라스케스는 국왕 부부를 자세히 묘사하지 않았다. 벽에 걸린 거울 속에 비친 국왕 부부 모습(그림 중앙)을 그렸다. 푸코는 《말과 사물》에서 자신만의 방법으로 이 그림을 해석한다. 그는 이 그림이 “모든 것을 재현하려는 고전 시대의 욕망을 압축하여 표현한 작품”이라고 평가하면서, 이 그림에서 나타내고자 하는 주체가 생략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니까 푸코의 해석에 따르면 『라스 메니나스』는 어린 공주의 모습을 재현한 그림이라 볼 수 없고, 공주의 초상화를 그리고 있는 화가 자신의 행위를 재현한 그림으로도 볼 수 없다.

 

 

 

 

 

 

 

 

 

 

 

 

 

 

 

 

 

 

 

* 미셸 푸코 《광기의 역사》 (나남출판, 2003)

* 제바스티안 브란트 《바보배》 (읻다, 2016)

 

 

 

 

 

 

 

 

 

 

 

 

 

 

 

 

* 월터 보싱 《히에로니무스 보스》 (마로니에북스, 2007)

* 월터 S. 기브슨 《히에로니무스 보스》 (시공사, 2001)

 

 

 

 

126쪽에 있는 ‘제롬 보스(Jerome Bosch)『광인들의 배(바보 배)』를 그린 네덜란드 화가 히에로니무스 보스(Hieronymus Bosch)를 프랑스어로 표기한 이름이다. 푸코는 보스가 그린 『광인들의 배』에 영감을 받아 《광기의 역사》(나남출판, 2013)를 쓰게 된다. 푸코는 이 책에서 『광인들의 배』가 그려진 르네상스 시대만 해도 광인은 조롱과 풍자의 대상이었을 뿐 사회에서 완전히 배제된 존재가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독일의 인문주의자 작가 제바스티안 브란트(Sebastian Brant)이 쓴 《바보배》(읻다, 2016)는 르네상스 시대 광인의 지위를 알 수 있는 문헌이다.

 

 

 

 

 

 

 

 

 

 

 

 

 

 

 

 

* 로제 마리 하겐 《피테르 브뢰헬》 (마로니에북스, 2007)

* [절판] 닐스 요켈 《브뢰겔》 (RHK, 2006)

* 월터 S. 기브슨 《브뢰겔》 (시공사, 2001)

 

 

 

보스와 마찬가지로 네덜란드 출신인 피터르 브뤼헐(Pieter Bruegel)도 광인을 묘사한 그림 작품을 남겼다. 그런데 《미셸 푸코, 죽음의 빛》의 번역자는 동명이인의 브뤼헐을 언급했다. 126쪽 역주에 피터르 브뤼헐이 아니라 그의 차남 얀 브뤼헐(Jan Bruegel)을 설명한 내용이 있다. 얀 브뤼헐은 아버지와 다르게 주로 정물화를 그렸으며, ‘꽃의 브뤼헐’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브뤼헐’이라는 성을 가진 화가가 세 명(지옥, 광인 등을 주제로 기괴한 분위기의 그림을 그린 ‘대’ 피터르 브뤼헐, 그의 장남 ‘소’ 피터르 브뤼헐, 차남 얀 브뤼헐)이나 있다 보니 번역자가 이름을 착각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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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P 2018-09-10 2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번 파고 들고 싶은 사람이에요 ㅎ 푸코

cyrus 2018-09-12 06:55   좋아요 0 | URL
푸코가 독자에게 좌절감을 주는 사람이지만, 그래도 끝까지 참고 책을 읽어보면 그의 분석에 놀라게 될 것입니다. ^^

2018-10-15 12: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10-15 17:17   좋아요 0 | URL
어떤 음악인지 궁금하네요. 혹시 라벨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인가요?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듯한 그림을 보는 건 즐거워요. ^^
 
바로크의 자유사상가들 반철학사 3
미셀 옹프레 지음, 곽동준 옮김 / 인간사랑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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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고금의 모든 철학자는 행복의 의미가 무엇인지 끊임없이 성찰해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이란 인간 개개인이 가진 덕()을 찾아내기 위해 끊임없이 수행하는 정신적 활동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법과 정치 속에서 행복을 찾으려고 했다. 에피쿠로스도 인간의 목적을 행복이라고 주장했지만, 그가 말하는 행복은 쾌락이었다. 그는 방종한 생활 같은 육체적 쾌락보다는 금욕을 통한 정신적 쾌락에 주안점을 두었다. 그러나 에피쿠로스는 절제된 쾌락을 강조했지 육체적 쾌락 자체를 부정하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쾌락을 많이 추구하면 더 큰 쾌락을 양산하기 때문에 결국 정신적 고통을 얻게 된다고 보았다.

 

대부분 사람은 쾌락주의(hedonism)를 향락과 개인적 안위의 삶을 살라고 선동하는 철학으로 오해한다. 쾌락이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 때문에 음란하고 불순한 사상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에피쿠로스는 자연현상에 대한 이성적 이해를 통해 미신의 현혹에서 벗어날 때 진정한 쾌락을 얻을 수 있다고 보았다. 이는 자연 현상을 신들의 행위로 인식하던 당대의 관념에 비추어 보면 매우 도발적인 주장이다. 이런 관점은 바로크 시대(Baroque period)의 자유사상가(libertins)로 이어진다.

 

바로크의 자유사상가들은 서양 철학사에 잘 언급되지 않은 17세기 자유사상가 5명과 당대 자유사상가의 정신을 이어받은 유명한 철학자 1명을 소개한 책이다. 유명한 철학자 1은 세계가 곧 신이며 정신이라는 범신론을 주장했던 스피노자(Spinoza). 스피노자를 제외한 나머지 다섯 명, 피에르 샤롱(Pierre Charron), 프랑수아 라 모트 르 베예(François de La Mothe Le Voyer), 샤를 드 생 테브르몽(Charles de Saint-Évremond), 피에르 가상디(Pierre Gassendi),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Cyrano de Bergerac)은 일반인에게 생소한 철학자이다. 사실 시라노는 에드몽 로스탕(Edmond Rostand)의 희곡 덕분에 코가 큰 추남으로 널리 알려졌지만, 그가 시대를 앞서간 책을 쓴 철학자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드물다.

 

에피쿠로스의 쾌락주의 철학에 영향을 받은 무신론자, 유물론자인 프랑스의 철학자 미셸 옹프레(Michel Onfray)()철학사라는 작업을 통해 주류 중심 철학에 밀려나 잊힌 과거 사상가들을 호명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씌워진 케케묵은 편견까지 털어내어 그들이 살아온 삶과 사상을 보여준다. 바로크의 자유사상가들반철학사시리즈 세 번째 책이다.

 

자유사상가는 인간의 개인 의지를 강조하여 기독교의 교조적인 교리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이렇다 보니 자유사상가를 무신론자로 보는 입장이 생겼고, 그들의 도발적인 생각은 위험한 사상으로 간주하여 배척받았다. 그런데 무신론자 옹프레는 자유사상가들이 신의 존재를 부인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피에르 샤롱과 라 모트 르 베예, 생 테브르몽은 신앙절대주의자 또는 이신론자(신의 존재를 인정하나 기독교에서 말하는 신의 영적인 힘, 천국과 지옥 같은 개념을 비판한 사상)였다. 가상디는 대학에서 신학을 가르친 유신론자였다. 시라노와 스피노자는 범신론자였다. 17세기는 전쟁과 종교 분쟁으로 혼란이 거듭했던 시대였는데, 자유사상가들은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한 군주제가 유지되면 사회적 혼란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비록 바로크의 자유사상가 각자가 지향하는 관점마다 차이가 있지만, 그들은 당대 시대적 흐름을 타고 등장한 학자들이었다.

 

바로크는 불완전한 진주(완벽하게 둥글지 않은 진주)라는 의미의 포르투갈어이다. 바로크 문화는 파격, 불규칙, 변화를 추구한다. 그런 점에서 바로크 시대의 자유사상가는 보편적인 진리에 대해 회의적이었으며 정형적인 기독교 정신을 의심한다. 성경 중심의 신앙을 실천하는 신학자나 기독교인 입장에선 자유사상가의 등장이 달갑지 않다. 그래서 그들을 과장되고, 기존 체제에 순응하지 못한 인간으로 바라보면서 공격했다. 주류 학자들은 무신론과 거의 흡사한 자유사상가들의 생각을 거부했다. 자유사상가를 무신론자로 취급하면서 그들의 존재감은 서서히 잊히고, 서양 철학사에 그들의 이름조차 볼 수 없었다. 후세 사람들은 피에르 샤롱을 몽테뉴(Montaigne)수상록을 표절한 얼치기로 평가했고, 가상디가 과학적 관찰을 중요하게 생각한 천문학자였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했다.

 

바로크의 자유사상가들은 인간을 위한 철학을 강조한다. 그들이 보는 신은 인간의 이성이나 육체에 개입하지 않는다. 신은 인간에 무관심하다. 그러므로 그들은 기독교적 원죄의식에서 벗어나 지금 자신이 선 자리에서 행복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자유사상가들은 기독교적 신이 중심이 되는 사회 한가운데서 인간이라면 직접 스스로 해야 할 질문들을 화두로 던졌다. 어떻게 하면 인간은 좀 더 인간답게살 수 있을까? 현재는 지나가면 다시 오지 않는다. 오늘 하고자 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을 하라. 후세 사람들은 이것을 쾌락이라고 말하지만, 자유사상가들이 지향하는 자유는 자발적 행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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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부터 시작해서 3주 동안 미셸 푸코(Michel Foucault)성의 역사 1 : 지식의 의지(나남, 2010)를 읽는다. 내가 가지고 있는 책은 2004년에 나온 2판이다. 2판의 부제목은 '앎의 의지'이다. 푸코는 성의 역사6권으로 펴낼 계획을 세웠다. 1976년에 1앎의 의지가 나왔고, 2쾌락의 활용(나남, 2018)3자기 배려(나남, 2004)[1]는 푸코 사후(1984)에 출간됐다. 푸코는 자신이 쓴 원고가 사후에 출판되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고 한다. 푸코의 친필 원고는 그의 연인이었던 사회학자 다니엘 데페르(Daniel Defert)가 가지고 있었다. 그는 2012년에 푸코의 친필 원고를 프랑스국립도서관에 기증했다. 학자들은 유족들의 동의를 얻어 친필 원고를 정리할 수 있었고, 올해 초에 4육체의 고백이 공개됐다.

    

 

 

 

 

 

 

 

 

 

 

 

 

 

* 미셸 푸코 성의 역사 1 : 지식의 의지(나남출판, 2010)

     

 

성의 역사푸코의 말년을 대표하는 역작이다. ‘이성권력의 관계에 천착해 온 푸코의 작업을 이해하지 않은 채 성의 역사독서에 도전하면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앎의 의지성의 역사시리즈의 서문에 해당한다. 2백 쪽이 되지 않은 서문(2판 번역본은 177쪽이다)이라고 해서 얕보다간 큰코다친다.

    

 

 

 

 

 

 

 

 

 

 

 

 

 

 

 

 

 

 

 

 

 

 

 

 

 

 

 

* 하상복 푸코 & 하버마스 : 광기의 시대, 소통의 이성(김영사, 2009)

* [절판] 요하나 옥살라 HOW TO READ 푸코(웅진지식하우스, 2008)

* 양운덕 미셸 푸코(살림, 2003)

* 피에르 빌루에 푸코 읽기(동문선, 2002)

    

  

푸코는 1981년 프랑스 일간지 <리베라시옹(Libération)>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연구 작업을 자서전의 한 일부라고 말했다. 그는 동성애자였다. 푸코는 동성애가 정신병으로 분류되어, 병리학적 증상으로 제조되는 과정과 그 원인을 알려고 했다. 그에게 연구 작업은 자신의 온전한 삶을 찾아내 자기 역사로 새롭게 기록하는 일이었다. 푸코는 정신병을 바라보는 학계의 다양한 시각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광기라는 개념을 규정하는 권력의 실체를 추적한다.

    

 

 

 

 

 

 

 

 

 

 

 

 

    

* 미셸 푸코 광기의 역사(나남출판, 2003)

    

 

 

1961년에 발표된 푸코의 박사 학위 논문 광기의 역사(나남출판, 2003)광기가 정신병으로 분류되는 역사를 다룬 책이다. 근대는 미치광이를 이성이 상실된 자로 규정했다. 근대 이전에 살던 미치광이는 정신병자가 아니었다. 그런데 합리적 이성과 과학이 버무려진 계몽의 시대’, 즉 근대 사회에 접어들기 시작하면서 광기를 본격적으로 차별하고 탄압하는 분위기가 형성된다. 푸코에 따르면 광기가 결정적으로 정신병으로 판정되기 시작한 것은 1656년에 세워진 대감호였다. 한센병(나병, 문둥병)이 사라진 후 환자 수용소는 정신병자들을 가둬놓는 대감호로 탈바꿈한다. ‘이성이 상실된 자는 인간이라 할 수 없다. 광기는 동물성을 상징하게 되고, 미치광이는 동물 또는 괴물로 취급받는다. 그리하여 미치광이는 정신병자라는 이름으로 추방되고, 축출되며, 격리되어, 감시되며 처벌을 받는다. 푸코는 광기를 탄압하는 주동자로 서구 사회의 이성을 지목한다. 인간의 이성을 중시해 온 인류는 관찰과 실험에 기초한 과학적 사고를 발전시키며 사회를 종교로부터 독립시켜나갔다. 그러나 자유사상, 평등 이념과 맥을 같이한 근대의 이성은 이성과 반대되는 존재를 배척했다. 푸코는 자유‘해방의 편에 섰던 이성 중심주의의 폭력성을 비판한다.

    

 

 

 

 

 

 

 

 

 

 

 

 

  

* 미셸 푸코 감시와 처벌(나남출판, 2016)

    

 

 

권력에 맛을 들인 근대인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힘을 휘두른다. 푸코가 감시와 처벌(나남출판, 2016)에서 상세하게 보여준 것처럼 근대의 권력은 효율적으로 죄수를 통제해왔다. 개인은 공간적으로 구획돼 감시되고, 시간상으로 일과표에 의해 통제되면서 권력에 예속된다. 감옥, 군대, 병원, 학교는 만인을 감시하는 근대적 공간이다.

 

푸코가 성 담론을 통해 권력의 속성을 파헤치고자 펴낸 책이 바로 성의 역사. 섹스(sex)에 대해 말하도록(고백하도록) 부추기는 권력은 성 담론을 확산시킨다. 종교의 영향력이 막강했던 근대 이전에 가톨릭 신자들은 자기 성찰의 목적으로 성욕에 대해서 고백했다. 17세기 이후에 부르주아 사회가 되면서 섹스에 대해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성의 장치가 작동되었다. 이 과정에서 생식을 위해서 필요한 섹스와 그렇지 않은 섹스(동성애, 사도마조히즘)를 분류하는 성 지식이 등장한다. 생식과 무관한 일탈적 성욕 또는 성행위는 교정 대상이 된다. 푸코는 성 담론이 형성된 근대를 증가의 시대로 보았으며 이때부터 성적 도착이 확립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그는 근대사회가 섹스를 억압한 시대였다고 주장하는 입장을 가설로 설정하여 비판한다. 푸코가 생각하는 근대사회의 섹슈얼리티는 성을 검열하고 억압하는 분위기에 대항하기 위해 생겨난 것이 아니다. 권력이 만든 성의 장치는 성을 알고 싶고, 말하고 싶은 근대인의 욕망을 촉진했다. 감옥, 병원, 그리고 국가는 거대한 성의 장치이다. 성 담론 형성에 관여하는 의사, 정신의학자는 이성애혼인등의 기준에 어긋난 섹슈얼리티를 분류하는 지식-권력(pouvoir-savoir)을 가지고 있다. ‘지식-권력은 관찰과 감시가 은연중에 작동되는 사회를 만들어 개인의 생활과 섹슈얼리티를 극도로 제한한다. ‘지식-권력은 세상을 움직이는 은밀하고도 거대한 힘이다.

    

 

 

 

[] 알라딘에 성의 역사’ 3권을 검색하면 부제목이 자기에의 배려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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