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놀 - 도덕적 선입견에 대한 생각들 세창클래식 15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이동용 옮김 / 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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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점  ★★★★  A-










얼굴은 얼(정신)이 뭉쳐진 신체 부위다. 시간이 지날수록 얼은 굴러가는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매일매일 성장한 얼굴에 한 사람이 생각하고 느낀 것들이 그대로 드러난다책의 얼굴도 그렇다서문독자가 맨 처음 마주하게 되는 책의 얼굴이다. 책은 자기 얼굴을 절대로 숨기지 않는다. 책이 독자에게 알리고 싶은 본문의 핵심이 얼굴에 다 나타난다. 서문이 책의 얼굴이라면 본문은 책의 몸통이다대부분 글쓴이는 책을 쓸 때 서문부터 쓴다. 그런데 니체(Nietzsche)는 정반대의 순서로 책을 쓴 철학자다. 그는 본문을 먼저 썼으며 서문은 몇 년 지난 후에 썼다. 니체에게 서문은 한 권의 책이 완성되었음을 알리는 마침표다.


아침놀: 도덕적 선입견에 대한 생각들은 니체가 1880년부터 쓰기 시작한 책이다. 이듬해에 나온 초판은 서문이 없다아침놀》은 얼굴이 없는 책으로 태어난다. 니체는 1886년에 아침놀서문을 쓴다. 초판이 나온 지 6년이 지난 뒤에 얼굴 있는 아침놀》 재판이 나온다니체는 책을 쓸 때 서두르지 않았다. 그는 항상 글을 천천히 썼다. 곡을 직접 만들 정도로 음악을 좋아한 니체는 자신과 본인의 책을 느리게 연주하는 방식인 렌토(lento)’로 비유한다아침놀》은 잠언으로 이루어진 책이다아침놀》이 음악이라면 잠언은 음표다. 니체의 짧은 글을 단번에 읽으려고 하면 글 속에 담긴 의미를 파악하기 힘들다. 성급하게 읽으면 엉뚱한 해석이 나올 수 있다. 


니체는 도덕을 숭배하면서 살아가는 삶을 거부한다. 그에게 도덕은 뜨겁게 빛나야 할 인간의 삶을 더욱 어둡게 만드는 해로운 밤안개다. 도덕으로 흐릿해진 사회 속에서 인간은 도덕의 노예’가 된다. 도덕은 자신을 따르는 노예에게 명령한다. 생각해서는 안 되고 말도 적게 하라. 여기서는 오로지 복종만 해야 한다!”[주1] 도덕의 노예는 솔직한 감정과 욕망을 드러내지 못하도록 억누른다도덕에 짓눌린 인간의 얼굴에 나다운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니체는 아침놀를 쓰기 시작하는 순간 도덕과의 한판 전쟁을 선포한다.


니체의 대표작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보기 전에 먼저 읽어야 할 니체의 책으로 자주 언급되는 것이 이 사람을 보라, 도덕의 계보, 우상의 황혼이다. 이 세 권의 책 또한 니체의 주저라서 아침놀니체 철학 필독서 목록에 끼지 못하고 겉도는 책으로 취급받는다. 하지만 아침놀은 니체 철학을 이해하는 데 읽어야 할 책이다. 이 책에 권력에의 의지(힘에의 의지)’초인(위버멘쉬)’의 의미를 설명한 잠언이 나온다니체가 아침놀》 서문을 쓰기 직전인 1885년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이미 완성된 연도다1885년과 1886년은 천천히 만들어진 니체 철학이 충분히 무르익은 시기다.


아침놀느리게 읽어야 할 책이다. 니체는 천천히 읽으라고 당부한다. 아침놀 아무 데나 펼쳐서 읽어도 되는 책이기도 하다. 니체는 독자에게 아침놀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으라고 강요하지 않는다아침놀가끔 펼쳐서 읽기 위한 책이다. [2] 니체는 서문에서 완벽한 독자와 문헌학자가 이 책을 원한다고 했다. 그의 말에 부담을 갖지 말자. 이 책을 읽는 모든 독자는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 니체는 논리성을 포기한 채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위해 잠언을 썼다. 니체에 맞서는 독자는 아침놀을 오로지 자기 자신을 위해서 읽을 수 있다. 잘못 읽는 최악의 독서를 한다고 해도 결국 스스로 읽어야 한다. 인간은 방황을 거듭하는 불완전한 존재이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끔찍한 방황과 연습을 경험하면서 지식을 얻는다.[3] 자기 주도적인 삶을 살아가면서도 언제나 내가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줄 아는 존재. 자신이 직면하는 오류와 한계를 스스로 넘어서는 인간이야말로 니체가 아침놀에서 강조하는 초인이다.





[1] 아침놀서문, 16.

 

[2] 아침놀잠언 454, 479.

 

[3] 아침놀잠언 452, 478.






<cyrus의 주석과 정오표>




* 39, 옮긴이 주 43

 

 『아침놀에서 권력에의 의지라는 개념이 처음으로 등장한다. 이것은 1906년에 출간되는 유고집[4]의 제목이 되기도 한다. 특히 권력으로 번역된 ‘Macht(마흐트)’에 대한 논쟁이 격렬하다. 권력이라는 단어는 언제부턴가 근대적인 어감이 더 강하다는 이유로 흔히 으로 번역됐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나, 그것만이 진리라고 틀을 정해 버리면 문제가 된다. 니체는 후기에 들어서 주인 도덕을 노예 도덕과 비교하면서 전면에 내세우기도 했다. 주인의식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초인은 이런 주인 도덕과 주인의식으로 충만한 존재다. 니체는 그러니까 자기 삶에 주인이 되는 그런 도덕을 요구했다.



[4] 니체의 유고집 권력에의 의지(Der Wille zur Macht) 초판은 1901년에 초판이 출간되었고, 1906년에 증보판이 출간되었다. 니체의 누이 엘리자베트(Elisabeth Förster-Nietzsche)와 니체의 친구 페터 가스트(Peter Gast)니체의 유고를 임의로 엮은 책으로, 니체의 저작물로 분류되지 않는다.





* 279, 잠언 192 

 




 그리고 또 예를 들어 프라피스트[주5] 수도회의 창시자가 된 사람도 있다. 이 수도회의 창시자는 기독교의 금욕적 이상을 예외적인 프랑스인으로서가 아니라 바로 진정한 프랑스인으로서 정말 마지막으로 진지하게 구현하고자 했던 사람이다.

 

[원문]

 

 Da steht der Gründer der Trappistenklöster, er, der mit dem asketischen Ideale des Christenthums den letzten Ernst gemacht hat, nicht als eine Ausnahme unter Franzosen, sondern recht als Franzose.



[5] 트라피스트의 오자박찬국 교수가 번역한 아침놀(책세상, 2004) 206 참조.





* 340, 잠언 237 





 거의 모든 정당에는 우습기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결코 가벼이 넘길 것은 것은[6] 아닌 그런 곤경이 생겨날 수 있다.


[6] 넘길 것은 것은 것은





* 344, 잠언 240 

 




 죄 그 자체와 그 죄로 인해 발생한 나쁜 결말 따위는 셰익스피어나 아이아스, 필록테테스, 오이디푸스의 소포클레스[주7] 같은 시인들에게 그리 중요하지 않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죄 자체를 연극의 지렛대로 삼는 것은 상당히 쉽겠지만, 이런 시인들은 그런 일에 관심조차 보이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비극 시인도 삶에 대한 자신의 비극적 형상을 통해 삶에 등을 돌리려 한 것은 아니다!



[주7] 아이아스(Aias), 필록테테스(Philoctetes), 오이디푸스(Oedipus)는 고대 그리스의 비극 작가 소포클레스(Sophocles)의 작품 제목이자 작품의 주인공이다. 홑낫표(「 」)는 작품 제목을 나타날 때 사용하는 문장 부호다. 따라서 아이아스와 필록테테스에도 홑낫표를 표시해야 한다.






* 360, 옮긴이 주 335

 




 루터는 당시 황이었던 루이 10[주8]에게 반항적이면서 교훈적 의미로 헌정했던 그리스도인의 자유(Von der Freiheit eines Christenmenschen, 1520)에서 구속의 자유라는 이념을 펼쳤다.



[주8] 루이 10(Louis X, 1289~1316)프랑스 왕이다. 1520년에 활동한 교황은 레오 10(Leo X, 1475~1521, 재위: 1513~1521).





* 558, 옮긴이 주 529

 

 콜럼버스는 1492년 아메리카를 발견한 이탈리아의 항해사다. 그는 항해를 떠나기 전에 부호들로부터 후원받을 요량으로 자신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려 주고 또 설명하기 위해 탁자 위에 달걀을 세우는 퍼포먼스를 보여 줬다고 한다. [주9]



[주9]콜럼버스의 달걀로 알려진 이 일화는 이탈리아의 역사가이자 탐험가인 지롤라모 벤조니(Girolamo Benzoni)1565년에 발표한 <History of the New World>에 언급되었다. 하지만 벤조니의 책이 나오기 15년 전에 조르조 바사리(Giorgio Vasari)르네상스 미술가 평전(한길사 번역본 기준으로 2)에 콜럼버스의 달걀과 비슷한 일화를 언급했다. 달걀을 세운 주인공은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을 세운 건축가 필리포 브루넬레스키(Filippo Brunelleschi). 대성당 돔의 설계 방식을 설명하기 위해 달걀을 세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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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탕아 2024-09-02 07: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침놀을 아직 안 읽어봤습니다. 이 번역본은 읽을 만 한가요?

cyrus 2024-09-04 22:01   좋아요 1 | URL
네, 가독성이 좋았고 옮긴이의 주석이 책세상 번역본보다 많았어요. 주석에 니체 철학을 설명한 내용이 많았어요. ^^

오후즈음 2024-09-02 1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천천히 읽어야 한다니까 뭔가 마음이 놓이네요. 구입해서 천천히 읽어 보겠습니다!

cyrus 2024-09-04 22:04   좋아요 0 | URL
<아침놀>을 천천히 읽으면 인용하기 좋은 문장들을 만날 수 있어요. ^^
 



철학사는 지혜를 사랑한(philosophy) 수많은 철학자를 찬양하라고 만들어진 기념비가 아니다. 철학사는 철학자라는 산봉우리들을 한눈에 볼 수 있게 만든 지도. 대부분 철학사 지도는 고대 그리스에 있는 산봉우리에 시작한다. 하지만 실제로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은 그리스가 아닌 지역에서 활동했다. 철학사에서 언급되는 고대 그리스아테네와 스파르타로 대표되는 그리스 본토의 도시 국가들과 이들에게 지배받은 식민 도시 국가들을 가리킨다. 서양 최초의 철학자로 알려진 탈레스(Thales)는 가장 먼저 생긴 철학 산봉우리다. 탈레스는 현재 튀르키예 영토가 된 이오니아의 밀레토스에서 태어나고 활동했다. 이오니아는 그리스의 식민 도시였다. 


철학사 지도의 종류가 많다. 종류가 다양한 만큼 지도에 표기된 철학자 산의 개수도 차이가 난다. 생긴 지 오래되지 않은, 비교적 젊은 철학자 산들을 비중 있게 다루는 철학자 지도가 나오고 있지만, 이미 만들어져서 유통된 대부분 철학사 지도는 최신 정보가 반영되어 있지 않다. 이런 철학사 지도들은 현대 철학자로 분류되는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자산들까지 소개한다. 철학자 산을 오르려면 철학자 산의 특성이라 할 수 있는 철학 사상을 반드시 습득해야 한다. 그런데 철학자 지도마다 철학 사상에 관한 주요 내용이 조금씩 다르다.


아주 잘 만든 철학자 지도를 딱 하나만 고르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철학사 지도에 적힌 내용은 변한다. 시간이 지나면 내용이 수정될 수 있으며 새로운 정보가 추가될 수도 있다. 맨 처음 언급했듯이 철학사는 불완전한 지식이 담긴 지도이지 완벽한 기념비가 아니다. 철학을 공부하다 보면 철학이 아닌 철학사를 사랑하는 경우가 있다. 철학을 사랑하는 사람철학사를 사랑하는 사람은 다르다. 철학을 사랑하는 사람은 철학 지식을 습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지식을 검토하면서 숙고한다. 플라톤(Plato)의 대화 편 소크라테스의 변명에 묘사된 소크라테스(Socrates)철학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 플라톤, 강철웅 옮김 소크라테스의 변명(아카넷, 2020)



 최대로 좋은 일은 여기 사람들에게 그러듯 그곳 사람들을 검토하고 탐문하면서 지내는 일입니다. 그들 가운데 누가 지혜로운지, 그리고 누가 지혜롭다고 생각은 하지만 실은 아닌지 하는 것들을 말입니다.


(소크라테스의 변명41d, 112)



철학을 사랑하는 사람은 철학자들을 많이 아는 일에 매달리지 않는다철학을 사랑하는 사람은 철학 사상을 지적인 면모를 돋보이게 하는 장식품으로 여기지 않는다철학을 사랑하는 사람은 철학자들의 견해에 동의하지만, 한계나 결점으로 보일 만한 내용이 있으면 검토한다. 소크라테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철학자의 견해를 검토하는 철학 공부는 모든 논변을 동원해서 저항하는 행위.

















플라톤, 전헌상 옮김 《파이돈》 (아카넷, 2020)



 자네들은, 내 말을 따를 거라면, 소크라테스는 조금 생각하고 진리를 훨씬 많이 생각해서, 내가 뭔가 맞는 말을 하고 있다고 자네들에게 믿어지면 동의하되, 그렇지 않다면 모든 논변을 동원해서 저항하게나


(《파이돈》 91c, 98)



철학사를 사랑하는 사람은 철학을 숙고하고 검토하는 일에 익숙하지 않다. 그들의 일차적 목표는 철학 사상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다철학사를 사랑하는 사람은 철학 원전을 쉽게 가공한 철학사를 편애한다. 철학 원전에 본격적으로 다가가지 못한다이해하기 힘든 철학 용어는 외운다. 철학 용어의 의미를 정확히 알지 못해도 철학 사상의 정수가 담긴 용어만 알고 있으면 철학을 이해했다고 생각한다. 철학사를 사랑하는 사람철학자의 어깨 위에 얌전히 앉아 있는 앵무새. 앵무새가 인간의 목소리를 흉내 내듯이 철학 앵무새는 철학사 내용을 똑같이 흉내 낸다. 철학 앵무새는 철학자들에 저항하는 힘이 없다. 앵무새는 똑똑하지만, 철학 앵무새는 똑똑한 척한다.


철학 앵무새가 되지 않으려면 철학 원전을 직접 읽고, 철학사를 검토하면서 공부해야 한다. 사실 이런 독서 방식의 과정은 번거롭고, 그만큼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한다. 오독의 위험성도 있다. 그래도 철학사 지도가 알려주는 쉬운 길보다는 철학 원전이 알려주지 않는 어려운 길에 도전하고 싶다.


항상 책을 읽으면 철학 전문 서점 <소요서가>가 만든 책갈피를 사용한다. 그 책갈피 속에 적힌 칸트(Immanuel Kant)의 말이 내게 책을 적극적으로, 좀 더 거칠게 읽으라고 부추긴다.






너 자신의 지성을 사용할 용기를 가져라!”

 



나는 이 책갈피에 또 하나의 용기를 눈빛으로 적는다. “나의 무지와 오류를 인정할 용기를 가져라!” 이런 용기까지 충만하면 철학을 열렬하게 사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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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 - 예술 과학 철학, 그리고 인간
케네스 클라크 지음, 이연식 옮김 / 소요서가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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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협찬받고 쓴 서평이 아닙니다.

철학 전문 서점 <소요서가>에서 구매한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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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점  ★★☆  B-





문명은 어떻게 현재 모습이 되었을까. 지금까지 문명의 시작점과 발전 과정을 요약한 견해들이 숱하게 나왔지만, 이 질문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지역과 시대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인류는 고대, 중세, 근대를 거치면서 앞서 창출된 학문과 예술의 정수를 ’에 담아서 보존하고 후대에 전수했다. 이 기록들이 차곡차곡 모여지면서 문명이 계속 발전됐다지성의 역사를 되짚어 보는 일은 문명이 성장한 흔적을 되돌아보는 긴 여정이다


영국의 비평가 존 러스킨(John Ruskin)역사를 세 권의 책으로 비유했다. “위대한 민족은 자신의 역사를 세 권의 책으로 보여준다. 행동의 책, 언어의 책, 예술의 책이다. 각각의 책은 다른 두 권의 책을 읽지 않고는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세 권의 책 중에 가장 믿을 수 있는 것은 예술의 책이다.” 러스킨은 미술 비평문을 써서 젊은 화가들의 재능을 널리 알렸다. 전업 화가는 아니었지만, 직접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그래서 그는 예술의 가치를 믿었다


인류의 학문과 예술을 모아 놓은 책이 발명되지 못했으면 인류는 기억을 잃어버린 사람과 똑같이 곤경에 처했을 것이다. 따라서 역사는 어마어마한 분량의 책과 같다.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앨범이다. 우리는 이 앨범을 보면서 비로소 우리가 누구인지를 알 수 있다영국의 미술사학자 케네스 클라크(Kenneth Clark)러스킨이 중요하게 여긴 예술의 책을 펼쳐서 문명의 역사를 읽었다그리고 본인만의 관점이 반영된 예술의 책을 다시 만들었다. 그 책이 바로 1969년에 BBC TV 시리즈로 방영된 문명: 예술 과학 철학, 그리고 인간이다.


기존 서양 역사서들은 문명을 논할 때 고대 그리스와 로마부터 시작한다. 대부분 역사가는 학문이라는 꽃이 만발한 지역을 문명의 발상지로 여긴다. 바로 이어서 고대 중동, 동아시아에 활짝 핀 학문의 꽃들을 소개한다. 문명은 서구에만 있는 정원이 아니다. 케네스 클라크는 동양에도 문명이 있다는 점을 알고 있지만, 동양 언어를 모른다는 이유로 동양 문명을 자세히 다루지 않는다. 그는 서문에 문명여백이 많은 예술의 책이라는 사실을 언급한다그는 동양 예술뿐만 아니라 독일 낭만주의 등 다루지 못한 예술사조가 너무 많다고 시인했다.







저자는 예술을 문명 성장의 기준점으로 잡은 다음에 종교와 음악, 문학, 과학, 철학까지 관심사를 쭉쭉 뻗어나간다. TV 시리즈 <문명>의 주연은 예술이다. 그동안 예술은 대하드라마 같은 역사에 조연 또는 단역으로 출연했다케네스 클라크는 위대한 문명이 생기려면 반드시 뛰어난 역량을 가진 천재 예술가한두 명이 등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문명이 천재들의 업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관점을 취한다. 천재를 믿는(문명270)’ 저자는 사회적인 상황이나 정치제도와 같은 외적 환경이 예술에 영향을 준다는 관점을 거부한다.


개인의 뛰어난 역량이 문명을 만든다라는 저자의 관점은 너무 밋밋하고 고리타분하다. 사회적 환경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고 성장하는 인간은 현실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케네스 클라크는 러스킨이 말한 예술의 책에 영감을 얻어 문명을 썼다고 했다. 하지만 문명을 바라보는 클라크의 관점은 토머스 칼라일(Thomas Carlyle)영웅 숭배론》(박상익 옮김, 한길사, 2023년)에 가깝다칼라일은 영웅의 조건으로 성실성과 통찰력을 꼽았다. 그는 인류가 누리는 모든 것은 영웅의 산물이라고 주장했다








영국의 역사가 에드워드 H. (Edward H. Carr)역사란 위인들의 전기라고 주장한 칼라일의 관점이 영웅사관이라고 비판했다(김택현 옮김, 역사란 무엇인가》, 개역판, 2015, 까치, 72쪽). 이로 인해 칼라일은 영웅사관을 확립한 학자로 오랫동안 지목받았다그렇지만 칼라일이 선호한 영웅은 비범한 천재가 아니라 성실한 노력형 천재


케네스 클라크의 천재 예찬론은 영웅사관과 맞닿아 있지 않다. 그는 천재를 미화하지 않았으며 문명에 드리운 그림자도 살핀다. 그는 문명의 정점인 르네상스를 칭찬하면서도 한계를 지적한다. 그의 지적에 따르면 르네상스는 궁정에서 활동하는 소수의 사람에게만 의존하던 시대다. 이 책 마지막에 클라크는 문명의 위대한 성취에 눈이 멀면 생기는 ‘자만심(Hubris)’을 경계한다. 그는 문명이 무질서하게 파괴되지 않으려면 역사에서 배우려는 노력을 계속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문명45년 전에 만들어진 책이다이 책 속에 담긴 모든 지식은 영원하지 않다우리가 옳다고 믿는 지식에도 수명이 있다.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은 고정되어 있지 않다. 항상 변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문명여백이 많은 책이다. 그리고 고쳐야 할 내용도 많은 책이기도 하다



* 127





 아케이드는 리듬과 균형을 지녔고, 사람을 기분 좋게 맞아들이는 개방성이 있습니다. 이는 앞선 시대에 생겨나 여전히 그것들을 둘러싸고 있는 저 어두운 고딕 양식과 완전히 모순됩니다. 그사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이 물음에 대한 답은 그리스 철학자 피타고라스가 쓴 문장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인간은 만물의 척도다.”

 


인간은 만물의 척도라고 말한 철학자는 프로타고라스(Protagoras).




* 228

 




 셰익스피어 이래 오늘날까지 레오파르디(Giacomo Leopard, 1789~1839)나 보들레르 같은 위대한 염세가들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인생의 어쩔 수 없는 무의미함을 셰익스피어만큼 강렬하게 느꼈던 사람이 있을까요?

 


레오파르디의 정확한 알파벳 표기는 ‘Leopardi’. 책에 ‘i’가 빠져 있다. 사망 연도가 잘못 적혀 있다. 1837년이다.




* 270~271


 흔히 베살리우스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근대 최초의 위대한 해부학자 판 베셀은 네덜란드인이었습니다.



베살리우스(Vesalius)의 출신지에 대한 부연 설명이 있어야 한다. 베살리우스는 브뤼셀에서 태어났다. 당시 브뤼셀은 신성 로마 제국의 일부인 합스부르크 네덜란드(Habsburg Netherlands)에 속했다. 그래서 케네스 클라크는 베살리우스를 네덜란드인으로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베살리우스를 벨기에 출신 해부학자로 많이 소개되는데, 브뤼셀의 역사를 생각하면 클라크의 설명이 무조건 틀렸다고 볼 수 없다.



* 286~287


 데카르트가 빛의 굴절을 연구했다면, 하위헌스는 파동설을 내놓았습니다. 두 사람 모두 네덜란드에서 이를 이루어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뉴턴이 입자설을 제창했습니다. 이는 잘못된 것이었거나 어쨌든 하위헌스의 파동설보다 나을 게 없었지만, 뉴턴의 가설은 19세기에 이르기까지 권위를 잃지 않았습니다.



빛의 성질이 파동과 입자 중 어느 것인지에 대한 논란은 17세기 과학자들의 주요 관심사였다. 당시 뉴턴(Isaac Newton)의 권위가 막강해서 입자설이 우세했다. 그러나 맥스웰(James Clerk Maxwell)빛은 전자기파라고 주장하면서 파동설이 우위를 점했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양자역학이 주목받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견해가 등장했다. 양자역학에 따르면 빛은 파동과 입자 형태를 모두 갖춰진 이중적인 성질이다.



* 363

 




 피터르 브뤼헐(Pieter Bruegel, 1525~1569)1522에 안트베르펜에서 로마로 가는 길에 알프스를 스케치했습니다. 이 그림에는 지형에 대한 단순한 흥미를 넘어서는 요소가 보이며, 훗날 그의 그림 속에 이용되어 감동적인 효과를 자아냅니다.



피터르 브뤼헐의 출생 연도는 불분명하지만, 1525년부터 1530년 사이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브뤼헐이 1522에 여행했다는 내용은 사실과 맞지 않는다. 브뤼헐은 1551년에 로마로 향하는 여행을 시작했다. 아마도 원서에 고쳐지지 않은 오류이거나 역자의 실수일 것이다. 클라크는 브뤼헐이 알프스를 스케치했다고 설명했는데, 여행 기간에 산의 풍경을 그린 스케치들이 브뤼헐의 작품이 아닌 것으로 판명되었다. (출처: Wikipedia, Pieter Bruegel the Elder)




* 426





발자크(Honore de Balzac, 1597~1654)



오노레 드 발자크의 출생 연도와 사망 연도가 틀렸다. 1799년에 태어나서 1850년에 사망했다. 1597년에 태어나서 1654년에 사망한 인물의 정체는 장 루이 게즈 드 발자크(Jean-Louis Guez de Balzac). 프랑스 출신의 작가이며 아카데미 프랑세즈 창립 회원 중 한 사람이다.


옮긴이가 쓴 주석에도 오류가 있다



* 69쪽 역주 62 [안티고네]

 




 기원전 441년경 상연된 소포클레스의 비극 안티고네의 주인공. 왕의 금령에도 불구하고 오빠 폴리네이케스의 시신을 매장하고 그 때문에 자신도 처형당한다.



소포클레스(Sophocles)의 비극에 묘사된 안티고네(Antigone)는 감옥에서 목을 매달아 자살한다.




* 245~246, 246쪽 역주 170 [롱기누스]

 




 에라스뮈스 이래 북유럽의 지식인들이 성인의 유골에 대한 신앙을 모욕했는데, 그렇다면 성유골의 중요성을 강조해서는 산 피에트로 대성당 안에 네 개의 대지주를 거대한 성유골함으로 만들겠다는 하는 식이었습니다. 이들 대지주 중 하나에는 그리스도의 옆구리를 찌른 창의 일부가 들어 있고, 그 앞에는 새로운 광명에 눈이 부신 것 같은 표정으로 하늘을 우러러보는 베르니니가 만든 롱기누스 상이 서 있습니다.

 

[역주] 3세기 그리스의 신플라톤주의 철학자.



전설에 따르면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있을 때 롱기누스(Longinus)라는 로마 병사가 예수의 옆구리를 창으로 찔렸다. <요한복음서>에는 예수의 옆구리를 찌른 병사 이름이 나오지 않지만, 외경 복음서로 알려진 <니코데모 복음서>에 이름이 나온다. 롱기누스와 관련된 역주에 ‘3세기 그리스의 신플라톤주의 철학자로 잘못 적혀 있다. 기독교 전설에 나오는 로마 군인과 고대 그리스 철학자는 이름만 같은 다른 인물이다. 역자가 언급한 철학자는 카시우스 롱기누스(Cassius Longinos, 213?~273)로 추정되는데, 사실 카시우스 롱기누스는 플라톤 철학을 계승했으나 플로티노스의 신플라톤주의 철학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 314, 역주 197 [데모크리토스]





고대 그리스 아테네의 애국적 웅변가.



데모크리토스(Democritus)는 세계가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는 원자설을 주장한 압데라(아브데라) 출신의 철학자. 아테네에 활동한 웅변가는 데모스테네스(Demosthenes, 기원전 384~기원전 322).


보조사가 틀린 문장도 있다.



* 98






기사도 → 기사도




* 310





 현재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 미술관에는 루비야크 만든 헨델 상이 있는데, (생략)



루비야크 루비야크





* 457






쇠라의 <아니에르의 물놀이> 쇠라의 <아니에르의 물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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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콜리니코프 2024-06-27 02: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286쪽에도 편집 오류가 있습니다. 한번 보시고 내용에 추가하셔도 될 것 같네요ㅎㅎ

cyrus 2024-06-30 20:55   좋아요 1 | URL
안녕하세요. 라스콜리니코프님이 알려주신 286쪽에 ‘몬드리안’이 어색하게 인쇄되어 있어요. 사진 찍고 정리하다가 286쪽 인쇄 오류를 포함하지 못했어요. 그것도 추가할게요. ^^
 
소크라테스의 변명 정암고전총서 플라톤 전집
플라톤 지음, 강철웅 옮김 / 아카넷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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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점  ★★★★  A-





여러분, 저는 모르는 것이 많습니다. 지금 제 머릿속에 텅텅 비어 있는 상자들로 가득하답니다. 그 상자의 정체는 ‘무지()’이에요. 이 무지함에 무얼 채워 넣어야 할까요? 저는 책을 삽니다. 제가 책을 읽으면 눈동자는 바삐 움직여요. 무지함에 담을 만한 지식을 찾는 거죠. 그 순간 뇌도 분주해요. 눈동자를 통과한 지식을 무지함에 담을 수 있게 깎고, 자르고, 다듬어요.


책 한 권을 다 읽으면 비어 있는 무지함이 한 개도 남아 있지 않아요. 아무것도 없어서 새까맸던 무지함은 잘 정돈된 지식을 품은 똑똑함()’으로 변하거든요.똑똑함은 빛이 나요. 똑똑함이 많은 사람의 생각은 눈이 부실 정도로 밝아요. 그들이 주로 하는 일은 무지함이 많은 사람을 만나는 거예요.


똑똑한 사람이 타인을 만나면 제일 먼저 말을 걸어와요. 타인과 대화할 때 똑똑함의 빛으로 상대방의 말을 두드려 봅니다. 똑똑, 가벼운 말 속에 아무것도 없어요. 똑똑, 계속 두드리면 이상한 소리가 나요. 개가 짖는 소리가 아닌데도 사람들은 그 소리를 개소리라고 불러요. 개소리는 무지한 사람의 귀에 잘 들리지 않아요똑똑한 사람은 무지한 사람이 보이면 자신의 빛을 쏘아 대요. 국어사전은 이런 행위를 계몽(enlightenment)’이라고 알려주네요. 우리는 책을 많이 읽으면 똑똑해질 수 있다고 믿어요. 누구나 선망하는 똑똑한 빛은 책을 많이 읽은 기업가의 빛일 거예요. 그들의 빛은 재물(財物)이 되니까요.


, 여러분. 여러분에게 질문할게요. 똑똑한 빛의 강도가 세면 좋은 걸까요? 책을 많이 읽으면 우리의 똑똑한 빛은 영원히 화려할까요? 책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찬찬히 검토해 봅시다.


똑똑한 사람은 무지를 경멸해요. 계몽주의자는 무지로 어두운 세상을 원하지 않아요. 본인은 똑똑하다는 자신감은 계몽을 위해 쓰이는 빛의 강도를 높여줘요. 그런데 똑똑하다고 자부했던 사람들이 왜 어리석은 짓을 하는 것일까요? 앞서 제가 개소리하는 사람들은 본인의 말에서 이상한 소리를 듣지 못한다고 했어요. 본인의 무지함을 잘 모르는 거죠. 여러분, 똑똑함을 100개든 1,000개든 엄청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도 무지해요. 똑똑하다고 자신만만한 사람은 정작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 알지 못하거든요. 이를 심리학 용어로 더닝 크루거 효과(Dunning-Kruger effect)’라고 해요. 모른다는 사실을 모르면 자신이 알고 있는 것만 크게 부풀려서 상대방에게 보여 주려고 해요. 똑똑함의 빛이 과장되면 그 빛나던 상자는 오만함()’으로 변해요오만함을 가진 사람은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지 않아요. 오히려 오만한 빛으로 자신의 생각과 다른 타인을 공격하며 제압하려고 해요. 오만한 사람들이 많아지면 세상은 밝아지기는커녕 빛 좋은 개소리가 더 많아집니다. 겉은 화려해도 속은 칙칙한 빛이죠.


여러분, 저는 똑똑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책을 읽을 때도 항상 무지함 한두 개는 따로 챙겨요.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Socrates)의 머릿속에는 똑똑한 상자뿐만 아니라 무지한 상자도 여러 개 있었을 거예요. 소크라테스는 본인은 무지하다고 생각하면서 살아왔거든요. 그는 자신이 똑똑한지, 아니면 상대방이 똑똑한지 검토하기 위해 상대방에게 말을 걸었어요. 질문이 계속 쏟아져 나오는 소크라테스가 익숙하지 않은 아테네인들은 불만이 많았어요. 결국 멜레토스(Meletus)라는 사람이 소크라테스를 고발했습니다. 아테네 법정에 선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행동이 정당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면서 검토 없이 사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소크라테스의 변명38a, 101)’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저는 항상 책을 검토하듯이 읽어요. 한 개의 단어가 눈동자를 지나가다가 걸리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거든요. 이때 저는 생각해요. 책에 적힌 단어의 정의가 과연 사실일까? 아니면 내가 지금까지 단어의 정의를 잘못 알고 있었나? 제일 먼저 의심합니다. 책 읽기를 멈추고 단어를 검토해 봅니다. 단어의 정의를 뒷받침해 주는 타당한 근거나 단어의 정의를 다르게 보는 견해를 찾기 위해 책을 또 사고, 또 읽습니다. 여러 권의 책을 요리조리 보면서 검토하면 내가 무지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만약 검토 없이 책을 읽는 삶을 살았더라면 나의 무지함을 제대로 보지 못했을 거예요.

 

똑똑함에 보관된 싱싱한 지식은 시간이 지나면 시들어요. 삭은 지식은 버려야 해요. 똑똑함 속에 담긴 지식을 검토해야 해요. 그러려면 제일 먼저 내가 똑똑하다는 자신감을 덜어내야 해요. 똑똑함의 빛이 과하면 나의 무지함이 보이지 않아요. 그러면 더닝 크루거 효과와 같은 편견에 빠지게 돼요. 똑똑한 사람이 무조건 지혜로운 건 아니에요. 소크라테스는 무지한 자신이야말로 지혜롭다고 믿었어요. 만약에 자신이 방면되면 숨 쉬고 있고 할 수 있는 한 지혜를 사랑하는 일(29d, 74)’을 절대로 멈추지 않을 거라고 포부를 밝혔어요. 자신의 존재를 의심하지 않은 데카르트(Descartes)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Cōgitō ergo sum, 코기토 에르고 숨)’라고 말했어요. 소크라테스가 법정에서 발언할 수 있는 시간이 더 많았더라면 이렇게 말했을 겁니다. 나는 모릅니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여러분. 내 삶을 검토하기 위해서 책을 많이 사고, 글 쓰는 일이 좋은 일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나를 잘 이해하지 못할 겁니다. 그래도 저는 제 일이 즐거워요. 그래요, 저는 내년에도 지혜를 사랑할 예정입니다.[주] 저는 모르는 것이 많거든요.





* 函(지닐 함): 옷이나 물건 따위를 넣을 수 있도록 네모지게 만든 통



[] 어제 12월 31일에 서평을 썼다서평 제목은 변윤제의 시 내일의 신년, 오늘의 베스트 마지막 문장 ‘그래요, 저는 내년에도 사랑스러울 예정입니다 패러디했다. 이 시가 실린 시집 제목은 저는 내년에도 사랑스러울 예정입니다(문학동네,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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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4-01-01 15: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지혜를 사랑하고.
즐겁기때문에 책을 읽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매번 저의 무지함 상자는 1000개가 넘습니다.
더 읽어야겠어요^^

cyrus 2024-01-05 07:41   좋아요 1 | URL
올해는 읽고 쓰는 일에 좀 더 시간을 투자해야겠어요. 작년에 책도 많이 읽고, 공연도 보고, 재미난 경험을 많이 했는데 글로 쓰지 못한 게 아쉬웠어요. 저는 무지함도 많고, ‘나태함’도 많아요 ㅎㅎㅎ

서니데이 2024-01-01 18: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cyrus님 오늘부터 2024년입니다.
새해에도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새해복많이받으세요.^^

cyrus 2024-01-05 07:41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페크pek0501 2024-01-01 18: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예전에 읽었던 책이라 반갑네요.
새해에도 건강과 건필, 기원합니다.

cyrus 2024-01-05 07:42   좋아요 1 | URL
페크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필하세요. ^^

은오 2024-01-01 2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이러스님의 읽기 너무 멋지고 존경스럽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단어의 정의를 의심하고 검토하고 또 읽고.... 이렇게 해야 사이러스님처럼 서평을 쓸 수 있는 거군요?! 🥹

cyrus 2024-01-05 07:46   좋아요 0 | URL
틀리더라도 책을 비판적으로 읽어보려고 해요.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일이지만, 해보면 재미있어요. 내가 몰랐거나 잘못 알고 있었던 사실을 알고, 책의 저자 또한 실수하고 착각할 수 있다는 것도 알 수 있거든요. ^^

새파랑 2024-01-02 0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올해는 좀 지혜로워 졌으면 ㅡㅡ 사이러스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지혜 사랑이 계속되길 바라겠습니다~!!

cyrus 2024-01-05 07:47   좋아요 1 | URL
새파랑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꼬마요정 2024-01-02 12: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멋있어요!! 저는 cyrus 님 글을 보며 제 무지를 깨닫습니다. 게을러서 무지함을 알지만 개선 못하는 저를 또 반성합니다. 존경해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cyrus 2024-01-05 07:48   좋아요 1 | URL
저도 게으른 편이라 무지함 다음으로 많은 게 ‘나태함’이에요 ㅎㅎㅎㅎ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얄라알라 2024-01-02 2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새로운 형식의 리뷰 멋져요! 완전 독창적이고 지성미 뿜뿜! 2024 리뷰 문화를 선도하실 듯한 이 예감!

cyrus 2024-01-05 07:49   좋아요 0 | URL
다양한 형식으로 글을 써보려고 해요. 철학과 과학 같은 독자들이 어려워하는 주제의 책을 좀 더 쉽고 재미있게 소개하기 위해서 고민하고 있답니다.. ^^;;

transient-guest 2024-01-03 02: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뭔가를 남기는 독서가 너무 어려워서 그냥 읽는 행위에서 즐거움을 찾는 것에서 만족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cyrus 2024-01-05 07:50   좋아요 1 | URL
t-guest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stella.K 2024-01-05 11: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귀엽고 야무지게 썼구만. ㅋ 정말 글을 자꾸 쓰다보면 단어에 집착이 생겨. 내가 지금 이 단어를 잘 쓰고 있는지 단어가 뜻하는 바를 정확히 알고 쓰는지. 하지만 난 너처럼 꼬리에 꼬리를 물고 책을 사지는 않지. 그럼 머리가 아파질 거 같아서. 그냥 무지함에 넣기로하는 거지 뭐. ㅋㅋ

cyrus 2024-01-08 06:39   좋아요 0 | URL
올해는 도서관에 책을 빌려 보기로 했어요. 해를 거듭할수록 도서 지출비가 늘어나고 있어서 이제는 줄일 필요가 있어요. ^^;;
 
소크라테스
루이-앙드레 도리옹 지음, 김유석 옮김 / 소요서가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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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점  ★★★★  A-





만약 세상의 모든 철학이 장난감 블록이라면? 모든 철학자가 즐겨 쓴 철학 장난감은 무엇일까? 이 철학 장난감의 원산지는 그리스 아테네. 제조 일자는 기원전 5세기(B.C. 500~401). 제조사는 아리스토클레스(Aristocles)제조사 대표는 체격이 상당히 좋다. 특히 이마와 어깨가 넓다. 그래서 사람들은 제조사 대표를 플라톤(Plato)’이라고 부른다.[주] 플라톤은 철학 장난감을 널리 보급하기 위해 아카데미아(academia)’라는 학교를 세웠다빠르게 변하는 유행의 흐름 속에서도 아테네산 철학 장난감은 지금까지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철학 장난감의 이름은 소크라테스(Socrates).


소크라테스 장난감의 주 소비층은 아테네 청년들이다아고라(agora)에 가면 소크라테스 장난감을 만지작거리는 청년들을 볼 수 있다철학 장난감이 큰 인기를 얻게 되자, 유사품들이 족족 나오기 시작했다군인이었던 크세노폰(Xenophon)소크라테스 X’를 만들었다. 그리고 소크라테스 회상이라는 철학 장난감 설명서를 썼다







* 루이-앙드레 도리옹, 김유석 옮김 소크라테스(소요서가, 2023)

 

* 플라톤, 강철웅 옮김 소크라테스의 변명(아카넷, 2020)

 

[대구 책방 <일글책> 고전 읽기 모임 선정 도서, 파이데이아 독서 목록 2년 차(2024)]

* 플라톤, 천병희 옮김 소크라테스의 변론 / 크리톤 / 파이돈 / 향연(도서출판 숲, 2012년 구판)

 

[대구 책방 <일글책> 고전 읽기 모임 선정 도서, 파이데이아 독서 목록 1년 차(2023)]

* 아리스토파네스, 천병희 옮김 아리스토파네스 희극 전집 1(도서출판 숲, 2010)




희극작가 아리스토파네스(Aristophanes)는 소크라테스 장난감 열풍을 비꼰 구름이라는 작품을 썼다. 그는 소크라테스 장난감을 당시에 유행하던 또 다른 철학 장난감 소피스트(Sophist)처럼 묘사했다소크라테스 장난감 열풍은 오래 가지 못한다. 소크라테스 장난감을 고발하는 고소인들이 등장한다. 결국 소크라테스 장난감은 청년들을 타락시켰다는 죄목으로 재판에 처했고, 판매 정지 처분을 받는다. 사형이나 다름없는 결과였다. 플라톤은 소크라테스 장난감 재판의 경과를 기록으로 남겼는데, 그 책이 바로 소크라테스의 변명이다.


아카데미아를 졸업한 플라톤의 후계자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소크라테스 장난감 제조 방식과 용도를 기억하기 위해 기록했다. 그들은 크세노폰의 소크라테스 장난감과 같은 유사품들과 철저히 구분하기 위해 아리스토클레스에서 만든 장난감을 소크라테스 P’라고 붙였다. P는 제조사 대표 이름의 머리글자다. 플라톤의 후계자 중 가장 유명한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는 소크라테스 장난감의 단점을 보완해서 자신의 이름을 붙인 철학 장난감을 만들었다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노력 덕분에 소크라테스 P’는 믿고 쓰는 정품 철학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지금도 사람들은 플라톤의 소크라테스 장난감을 가지고 논다. 반면 정품이 아닌 소크라테스 장난감은 쓸모없는 짝퉁으로 취급받는다소크라테스 장난감 연구자들은 정품과 짝퉁을 한데 모아 진짜 소크라테스의 모습을 복원하고 싶어 한다. 그들은 실제 소크라테스 장난감을 다시 만들기 위해 고증의 필요성을 느꼈고, 이른바 소크라테스의 문제에 뛰어들었다어떤 연구자는 플라톤의 생각이 반영된 소크라테스 장난감 또한 정품이 아닐 수 있다고 의심한다. 그들은 짝퉁을 선호한다


고대 철학 장난감을 연구한 루이 앙드레 도리옹(Louis-Andre Dorion)순수한 진품에 가까운 소크라테스 장난감을 복원하는 작업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소크라테스의 문제는 절대로 해결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그의 저서 소크라테스는 지금까지 전해져 오는 소크라테스 장난감들의 용도와 특징을 꼼꼼하게 정리한 책이다. 저자는 플라톤의 소크라테스 P’, 크세노폰의 ‘소크라테스 X’, 아리스토텔레스가 생각하는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 구름에 묘사된 소크라테스를 주목한다.


소크라테스한 사람만의 소크라테스’를 보여주는 책이 아니다. 얼룩덜룩한 소크라테스를 상세하게 보여준다. 소크라테스 장난감은 한 사람만 소유할 수 없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수많은 철학자가 소크라테스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다. 소크라테스 장난감은 철학자들의 생각 흔적들이 묻어 있어서 지저분하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소크라테스가 못생겼다고 생각한다철학자들은 소크라테스 장난감 블록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조립했다그들이 많이 사용할수록 완전한 소크라테스는 점점 희미해진다니체(Nietzsche)플라톤의 소크라테스 장난감을 망치로 두드려서 잘게 부순 철학자. 그는 소크라테스 장난감에서 나는 도덕 냄새를 매우 싫어했다.


소크라테스의 지저분함에 매력을 느낀 독자라면 다양한 종류의 소크라테스 장난감으로 재미있게 놀아 보자.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겠지만, 여러 명의 소크라테스를 만날 수 있다. 젊은이의 혼을 사랑할 줄 아는 유혹의 대가 소크라테스(플라톤), 성찰의 중요성을 알기 전에 자연 탐구에 관심을 보인 소크라테스(아리스토파네스), 덕의 획득보다 신체를 돌보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한 소크라테스(크세노폰) 등을 만날 수 있다. 이제 골치 아픈 소크라테스의 문제’는 잊자. 소크라테스가 좋든 싫든 가장 오래되고 유명한 철학 장난감을 만져본 모두가 소크라테스의 사람들이다.





[] 아리스토클레스는 플라톤의 본명이다. 플라톤은 이마 혹은 어깨가 넓다라는 뜻이다.



<cyrus의 주석>

 

책 제일 뒤에 참고문헌 목록국내 자료_고대 문헌국내 자료_2차 문헌이 나온다. 여기에 고쳐야 할 부분이 있다.

 


* 국내 자료_고대 문헌, 189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 김진성 옮김, 이제이북스, 2007.

2007년 번역본은 절판되었고, 2022 서광사에서 재출간되었다.

 

* 국내 자료_2차 문헌, 191

박규철, 소크라테스의 도덕 · 정치철학, 동과서, 2003.

정확한 제목은 플라톤이 본 소크라테스의 도덕 · 정치철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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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3-12-26 1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이 책 재밌겠다. 근데 철학책답찮게 좀 얉네. 🤔

cyrus 2024-01-01 10:55   좋아요 0 | URL
분량이 얇다고 가볍게 보지 마세요... ㅎㅎㅎ 이 책에 ‘플라톤의 소크라테스’를 따로 설명한 장이 있는데 꽤 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