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단 하루만 더
미치 앨봄 지음, 이창희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6년 12월
평점 :
절판
전직 야구선수였던 찰리는 사업에 실패한 후 술에 빠져 살다
아내와 이혼하고 딸과의 관계도 악화되었다.
심지어 딸의 결혼식에도 초대받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자
이런 자신의 삶을 비관한 찰리는 자살을 결심하고 사고를 일으키지만
신기하게도 어린 시절 살던 집에서 돌아가신 어머니를 다시 만나
하루를 보내면서 그동안 몰랐던 진실을 알게 되는데...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의 미치 앨봄과의 두번째 만남
루 게릭 병으로 죽음을 앞 둔 모리 교수와 그의 제자인 저자와의 실화를 담은 전작에서
죽음을 앞 둔 모리 교수의 주옥같은 삶의 지혜를 접할 수 있었다면
이 책에서도 죽음을 결심한 찰리가 경험하는 특별한 하루를 통해 가족의 소중함을 깨달을 수 있다.
찰리는 어린 시절 부모의 이혼을 겪으며 이혼녀의 아들로 자라게 된다.
요즘은 이혼이 별거 아닌(?) 세상이 되어 버렸지만
그 당시(1950년대)만 해도 이혼한 가정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찰리가 살던 동네에 이혼한 집은 자신 밖에 없었다.
이혼녀의 아들이라는 멍에(?)를 쓴 찰리는 늘 엄마에게 불만이었다.
이혼의 책임도 모두 엄마에게 있다고 생각하고 엄마를 원망하며
자신들을 떠나 버린 아버지를 그리워 하고 산다.
하지만 늘 원망만 하던 어머니와의 극적인 재회(?)로
찰리는 그동안 자신의 생각과 행동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깨닫게 되는데...
찰리는 엄마가 돌아가시고 자신이 죽음의 문턱에 들어선 후에야
엄마의 사랑을 깨닫게 된다. 정말 너무 늦었다.
엄마가 내 편을 들어 준 날과 내가 엄마 편을 들어주지 않은 날이
하룻동안의 이야기 중간중간에 배치되어 있는데
여기서 보는 것처럼 엄마는 늘 찰리편이었지만 아들 찰리는 늘 엄마 편이 아니었다.
늘 우리는 사랑을 받기만 하는 존재이고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때론 그런 사랑을 귀찮아 하고 심지어는 무시한다.
그러고 나서 자신이 부모가 되고 나서야 그들의 사랑을 깨닫는다.
때론 이 책의 찰리처럼 너무 늦게 말이다.
이 책은 2007년의 마지막 날에 읽어서 더욱 '단 하루만 더'라는 책의 제목이 와 닿았다.
우리에겐 남은 날들이 늘 무한히 있을 것처럼 여기며 살지만
언젠가 '단 하루만 더'라고 간절히 바랄 날이 올 것이다.
특히 우리 자신에게 '단 하루만 더'라고 바랄 날보다
우리 부모님과 함께 할 수 있는 날이 '단 하루만 더'라고 바랄 것이다.
부모님은 우리가 그들에게 받은 사랑을 돌려 줄 시간을 기다려 주지 않는다.
그런 사실을 알면서도 우리는 그들이 항상 우리 곁에 있을 것처럼 그들의 어린(?) 자식으로만 행세한다.
이 책은 그런 우리들에게 부모의 사랑과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일깨워 주었다.
미치 앨봄은 죽음이라는 인간에게 있어서 극적인 순간을 배경으로
삶의 소중한 가치를 전달하는 독특한 재주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의 다음 책은 과연 어떤 내용으로 찾아올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