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욕구는 모두 '외투'에서 나왔다 

 

날씨가 무척 쌀쌀해졌다.  문득 겨울이 왔다는 것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날씨가 추워지기 시작하면 겨울동안 입을 옷을 장만하게 된다.  필자는 이번 2011년의 겨울을 패딩으로 버틸 예정이다.  패딩 두 세벌 정도면 내년 봄까지는 따뜻하게 입을 수 있다. 

하지만 패딩 한 벌 가격이 만만치가 않다.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명품 의류 회사의 정품이라면 가격이 10만원 훌쩍 넘기기도 한다.  명품 의류 브랜드의 패딩은 착용감만 좋을뿐만 아니라 멋진 디자인에 착용할 때 드러나게 되는 옷 맵시가 살려져 있어서 가격이 높더라도 한 벌 정도는 구입하고 싶은 게 소비자의 마음이다. 

사실 옷이라는 물건은 입을 때 착용감만 좋으면 되지만 옷에 박혀 있는 조그만 제품 브랜드 로고까지도 고려하는 것이 우리나라 특유 소비 의식이다.  자신이 걸치고 있는 옷뿐만 아니라 손목시계, 가방 심지어 신발까지 명품 브랜드 회사의 로고가 박혀 있다면 상대방에게 과시하고 싶은 성향이 있다.  즉, 나라는 사람은 비싸면서도 품질 좋은 '명품'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타자에게 은연중에 알린다는 것이다.  그리고 명품을 구입하지 않는다거나 애용하지 않는 타자에게는 무시를 하거나 사회적 무리에서 은근히 소외되는 경우도 있다.  

 

욕구는 타고난 것이며 욕구를 강도와 중요성에 따라 5단계로 분류한 매슬로우욕구단계설의 내용을 살펴보면,,,   

 

 

 

1단계 욕구는 생리적 욕구로 먹고, 자고, 종족보존 등 최하위 단계의 욕구이다.  2단계 욕구는 안전의 욕구로 추위, 질병, 위험 등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욕구이다. 장래를 위해 저축하는 것도 안전 욕구의 표출이라 할 수 있다.  3단계 욕구는 애정과 사회 소속에 대한 욕구로 가정을 이루거나 친구를 사귀는 등 어떤 단체에 소속되어 애정을 주고받는 욕구이다.  4단계 욕구는 자기존중의 욕구로 소속단체의 구성원으로 명예나 권력을 누리려는 욕구이다.  5단계 욕구는 자아실현의 욕구로 자신의 재능과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해서 자기가 이룰 수 있는 모든 것을 성취하려는 최고수준의 욕구이다. 자신의 잠재력을 발휘해서 최선을 다하는 것은 바로 자아실현의 욕구가 표출된 것이다.  

그러나 매슬로는 인간의 욕구를 강도나 중요성에 따라 계층적으로 배열한 것이지 결코 행복 그 자체를 계층적으로 배열한 것은 아니라고 봤다.   결국 인간이 원한다는 것은 위의 5단계 중에서 애정과 사회 소속에 대한 욕구일 수도 있고, 또는 안전의 욕구를 최우선으로 추구할 때도 있다.  각기 다른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자신의 잠재력 개발을 통해서 나름대로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런 인간의 욕구 특성을 집약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인물이라면 바로 니콜라이 고골의 <외투>에 등장하는 주인공 아까끼 아까끼예비치일 것이다.  

아까끼는 관청에 근무하는 하급 관리이다.  성실한 인품에도 불구하고 처세 능력이 부족하여 동료 관료들로부터 무시를 받는, 그야말로 존재감이 낮은 인물이다.   한 번은 자신이 입고 있던 외투가 너무 낡아 새로 맞추지 않으면 안 될 상황에 처하자 아까끼는 몇 년 동안 근검 절약하여 간신히 고급 외투를 마련하게 된다.   고급 외투를 입은 뒤로부터 아까끼의 존재감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의기양양, 맵시를 뽐내며 출근하여 관료 동료들과 상관에게 축하를 받은 그는 날아갈 듯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그러나 즐거운 기분도 잠시,  관료들이 한자리에 모인 화려한 연회를 참석하고 난 후 흥건히 취한 상태에 집으로 귀가하는 도중에 강도에게 고급 외투를 빼앗기고 만다.  그토록 애지중지하던 외투를 도둑맞은 아까끼는 경찰과 관료 유력 인사들에게 찾아가 자신이 처한 상황을 알리게 되지만 돌아오는 것은 냉대와 무시, 호통뿐이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아까끼는 고급 외투를 입지 않은, 그저 존재감 없는 하급 관리일뿐이었다.  러시아 특유 차디찬 겨울 날씨만큼이나 주위 사람들의 냉담한 반응에다가 외투를 찾을 수 앖는 절망감에 실의에 빠진 아까끼는 결국 독감을 얻게 되고 한을 품은 채 쓸쓸히 죽어간다.  그리고 그는 유령이 되어서도 자신의 외투를 찾아 달라고 거리에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호소를 하면서 다니게 된다.  

아까끼에게 외투는 혹한의 추위를 견디기 위해서건 최소한의 품위유지를 위해서건 아카키의 삶에서는 절대로 없어선 안 될 필수품이면시도 사회적 인정의 상징물이다.  매슬로우의 욕구단계설의 입장에서 본다면 외투는 아까끼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하나의 매개체이다.  

고급 외투를 구입하기 위해서 식사를 줄일 정도로 생리적 욕구를 자기 스스로 절제한 것을 제외한다면 아까끼는 외투를 통해서 러시아의 혹한을 보호할 수 있는 안전의 욕구에서 동료 관료들로부터 관심을 받고 싶어하는 사랑과 사회 소속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키고자 했다.  만약에 아까끼가 외투를 도둑맞지 않았더라면 더 나아가 관료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존경을 받고 싶어하는 욕구, 더 나아가 자신이 이루고 싶은 것을 성취하려는 자아실현의 욕구까지 도달했을지도 모른다.  

 

   

 

  은전 한 닢을 모은 거지의 사연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매슬로우의 욕구단계설은 중요성에 따라 계층적으로 배열한 것이지 결코 행복 그 자체를 계층적으로 배열한 것은 아니다.  욕구의 정도가 지나치게 되면 '집착'으로 변질되어 욕구를 통한 행복 추구는 커녕 오히려 고통과 번뇌만 따르게 된다.  외투에 집착하는 아까끼의 경우처럼 맹목적인 욕구는 때론 자신의 삶을 스스로 파괴하는 지름길이 되기도 하며 정작 자신의 삶에 중요한 또 다른 가치들을 무시하게 되는 처사를 행할 수 있다. 

피천득의 '은전 한 닢' 이라는 짤막한 수필에 등장하는 늙은 거지의 사연은 과연 인간의 소유하려는 욕구가 무조건 옳다고 볼 수 있는지 독자들에게 판단을 부여하고 있다.

 '나'는 자신이 지닌 은전 한 닢이 진짜인지 거듭 확인하는 중국 상해의 늙은 거지를 만나게 되는데 그는 자신이 은전 한 닢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에 눈물을 흘릴 정도로 기쁘게 여기고 있다.    

 

" 이것은 훔친 것이 아닙니다.  길에서 얻은 것도 아닙니다.  누가 저 같은 놈에게 일 원짜릴 줍니까?  각전(角錢) 한 닢을 받아 본 적이 없었습니다.  동전 한 닢 주시는 분도 백에 한 분이 쉽지 않습니다.  나는 한 푼 한 푼 얻은 돈에서 몇 닢씩을 모았습니다.  이렇게 모은 돈 마흔 여덟 닢을 각전 닢과 바꾸었습니다.  이러기를 여섯 번을 하여 겨우 이 귀한 대양(大洋) 한 푼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 돈을 얻느라고 여섯 달이 더 걸렸습니다. " 

그의 빰에는 눈물이 흘렸다.  나는, 

" 왜 그렇게까지 애를 써서 그 돈을 만들었단 말이오?  그 돈으로 무엇을 하려오? " 하고 물었다. 그는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 이 돈, 한 개가 갖고 싶었습니다. " 

(샘터, pp 221~222) 

 

수필은 은전 한 닢을 가져 보는 것이라는 대답으로 결말을 맺게 되는데 '나'는 어떠한 논평도 하지 않고 있다.  거지의 행동에 대해서 독자들에게 상상력을 자극하는 동시에 독자의 판단에 맡기고 있는 것이다. 

거지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수중에 들어오는 은전 한 닢도 먹고 살아가기에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대상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은전 한 닢만 가지고 하루 식사 세 끼를 할 수가 없다.  간난신고(艱難辛苦) 끝에 은전 한 닢을 얻기 위한 거지의 소박하고도 눈물겨운 노력은 가상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본다면 거지의 소망은 맹목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렵게 모은 돈 마흔 여덟 닢만 가지고도 식사 한 끼라도 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실질적 가치였음에도 불구하고 거지는 그저 은전 한 닢이라는 교환적 가치를 얻을 수 있는 수단적인 대상으로만 인식했다.  은전 한 닢을 갖기 위해 여섯 달에 걸쳐 눈물겨운 노력을 한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손을 펴라  

 

 

 

 

 

 

 

  

 

법정 스님은 <무소유(無所有)>를 통해서 '무소유의 자세'를 갖춤으로써 인간은 욕구가 만들어 낸 소유욕과 집착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으며 진정한 자유와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역설하였다.   법정 스님의 결론은 스님이 입적하신 지금까지도 인생의 중요한 진리로써 여전히 빛을 발하고 있지만 아무 것도 가지지 않음으로써 탐욕과 집착에 벗어나는 것은 이미 욕구의 소유욕에 갇혀 버린 우리 현대인들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외투>의 아까끼와 <은전 한 닢>의 늙은 거지의 사례처럼 소유욕과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인생을 스스로 파멸을 초래할 수 있으며 정작 중요한 삶의 가치를 얻지 못하게 되는 어리석음을 범할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글의 결말을 박노해 시인의 짧은 우화로 마무리지으려고 한다.  아무리 이성과 지혜를 가진 똑똑한 인간이라도 욕구의 감옥에 갇히게 된다면 우화 속에 등장하는 어리석은 원숭이가 될 수도 있다.

 

 

  손을 펴라  

 

원숭이는 영리한 동물입니다.
토착민들은 이 영리한 원숭이를 생포할 때
가죽으로 만든 자루에 원숭이가 제일 좋아하는
쌀을 넣어 나뭇가지에 단단히 매달아 놓습니다.
가죽 자루의 입구는 좁아서 원숭이의 손이
겨우 들어갈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얼마 동안을 기다리면 원숭이가 찾아와
맛있는 쌀이 담긴 자루 속에 손을 집어넣습니다.
그리곤 쌀을 가득 움켜쥐고는 흐뭇해합니다.
그런데 쌀을 가득 움켜쥔 원숭이는 아무리 기를 써봐도
그 자루 속에는 손을 빼낼 수가 없었습니다.

놀란 원숭이는 몸부림치며 울부짖기 시작합니다.
손을 펴고 쌀을 놓아버리기만 하면 쉽게 손을 빼내
저 푸른 숲 속을 다시 자유롭게 누비며 살 수 있으련만
원숭이는 한 줌의 쌀을 움켜쥔 손을 펴지 못한 채
울부짖다가 결국 토착민에게 생포당하고 마는 것입니다.

손을 펴라
움켜쥔 손을 펴라
놓아라 놓아버려라
한 번 크게 놓아버려라 

(pp 5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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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17 14:1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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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18 17: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1-17 20:5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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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18 17: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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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 2011-11-17 2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우 메슬로우의 욕구단계설 도덕시간에 배웠습니다.. 외운다고 얼마나 힘들었던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요 ㅋㅋ

저는... 이번겨울에 날만한 외투가 없는걸요... 하나 장만해야하는데 돈이업습니다 ㅋㅋ

cyrus 2011-11-18 17:26   좋아요 0 | URL
고등학교 윤리 과목에서도 매슬로우 이론이 나오는 걸로 알고 있어요.
배운 기억도 나고요. 그런데 심리학에 나올법한 이론이라서
외우기가 쉽지 않을 수도 있겠어요 ^^

이번 학기도 얼마 안 남았는데,, 저도 그냥 작년에 구입한 패딩 몇 벌만
으로 올해 연말을 버틸려고요 ㅎㅎ 방학 때 알바를 해서 새로 장만해야겠어요 ^^

마녀고양이 2011-11-17 2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은전을 갖기 위해 6달이나 노력한 거지가 멋지다고 생각해요.
남이 보기에는 무의미한 행위였을 수 있으나, 그것은 그만의 의미를 가진 행위였던거지요.
고급 외투의 경우도, 물론 맹목적인 부분이 있긴 하지만, 인간에게 자신만의 의미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게 아닐까 싶어요.

다 놓아버려야지요, 크게 한번 놓아버려야하지요,
하지만 진정 움켜쥐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한번 생각해 봅니다.

cyrus 2011-11-18 17:28   좋아요 0 | URL
맞아요, 자신이 추구하고 있는 목표나 욕구가 과연 자신의 삶에 의미 있는지
꼼꼼이 생각해보는 것도 좋은거 같아요. ^^

꽃도둑 2011-11-18 1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다수의 사람들이 생리적 욕구나 안전의 욕구에서 허덕이고 있을 거 같은데요?
...그나저나 박노해의 시 '손을 펴라' 가 새롭게 읽힙니다.
그게 지금 가장 절실한 문제일 수도 있을 테니까 다른 건 보이지 않을 수도,,,
지금 저 손마자 풀어 버린다면 어쩌면 굶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을수도,,
어쩌면 누군가는 그럴지도 모를거라는 아주 짧은 생각을 해보게 되네요.

cyrus 2011-11-18 20:52   좋아요 0 | URL
맞아요, 사람들마다 추구하는 욕구가 다르죠. ^^
저는 요즘 먹기 위한 생리적 욕구를 이기지 못해서 어려워하고 있습니다. ㅎㅎ
 
황무지 민음사 세계시인선 25
T.S.엘리어트 지음, 황동규 옮김 / 민음사 / 197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한번은 쿠마에서 나도 그 무녀가 조롱 속에 매달려 있는 것을 보았지요.  애들이 <무녀야 넌 뭘 원하니?>  물었을 때  그녀는 대답했지요.   <죽고 싶어.>

 

무녀는 아폴로 신으로부터 자신의 손 안에 든 먼지만큼 헤아릴 수 없는 영생을 얻지만 영원한 청춘을 달라고 하는 것을 잊었다.  죽음 상태라고 할 수 없는 늙어 꼬부라진 무녀는 조롱(鳥籠)에 담겨 만인들로부터 영원한 조롱(嘲弄)의 대상이 되었다.   "죽고 싶어" ,  염세적인 느낌을 주는 이 문구는 T.S. 엘리엇의 유명한 <황무지>의 프롤로그다. 

엘리엇의 시 <황무지>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바로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이라는 시구일 것이다.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 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 <황무지> 제1부 '죽은 자의 매장' 중에서 (pp 46) - 

 

생명의 부활을 약속받은 이 찬란한 봄의 계절에, 현대인들은 죽은 목숨만을 이어 가고 있으니 그것은 잔인한 운명일 수 밖에 없다는 역설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시인은 사월이 되어 봄비로 잠든 생명의 뿌리가 뒤흔들리는 것을 보면서 좀 더 행복하고, 열정적인 삶을 살았던 과거의 기억을 되살리고 있다.   

하지만 시인의 행복한 꿈은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이 움켜잡은 뿌리는 무엇이며, /  이 자갈더미에서 무슨 가지가 자라 나오는가?    

- <황무지> 제1부 '죽은 자의 매장' 중에서 (pp 48) -

   

행복했던 시간도 잠시 시인의 의식은 다시 황무지로 이어지고 황무지의 구체적 이미지가 제시된다.  바그너의 가곡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3막 24절을 인용한 시구는 황무지의 황량한 모습을 통해 잠시나마 느꼈던 행복과 사랑의 기억들이 허무하게 만들게 되는 절망적인 느낌을 준다.

  

 

 막스 에른스트  <비온 뒤의 유럽>  1940~1942 

 

황무지는 생명이 서식할 수 없는 불모의 땅이지만, 이 시에서 황무지는 생명이 깃들 수 없는 문명을 뜻한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의 유럽은  현대 문명에 갇혀 생명의 기운을 잃은 상태였다.  20세기를 넘어서면서 맞닥뜨린 문명의 막다른 골목에서 엘리엇은 서구인의 삶에 서린 ‘무한한 늙음’과 ‘죽음만이 유일한 소망’이 되어 버린 깊은 절망을 보았다. 그러나 그를 더욱 절망하게 한 것은 그 절망조차도 의식하지 못하는 현대인의 정신적 황폐함이었다.
 

 

 

 

티에폴로  <히아킨토스의 죽음>

 

일 년전 당신이 저에게 처음으로 히아신스를 줬지요.  

다들 저를 히아신스 아가씨라 불렀어요. 

- 하지만 히아신스 정원에서 밤늦게 

한아름 꽃을 안고 머리칼 젖은 너와 함께 돌아왔을 때  

나는 말도 못하고 눈도 안 보여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니었다.   

 

- <황무지> 제1부 '죽은 자의 매장' 중에서 (pp 50) -

 

무녀의 절망에는 아직 희망은 있다. 그녀는 죽고 싶어 한다. 왜냐하면 그 뒤에는 재생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아무리 신적 능력을 지닌 초월적 존재라도 죽음의 영역을 거스를 수가 없다.    

무녀에게 영생을 부여한 아폴론마저도 자신이 사랑했던 히아킨토스(Hyakintos)를 다시 살려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히아킨토스의 선혈로 물든 땅에 히아신스 꽃이 피어지게 되었는데 그 이후로 히아신스는 부활한 신의 상징으로 남게 되었다.  하지만 아폴론의 입장에서는 히아신스의 존재만으로도 죽은 히아킨토스의 부재를 만족스럽지 못했던 것일까?  아폴론은 히아신스의 꽃잎에 탄식의 소리 ‘아, 슬프다!’를 나타내는 ‘AIAI’ 라는 글자를 새겨 넣었다.  결국 아폴론에게 히아신스는 히아킨토스가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존재에 불과했다.  

이렇듯, 현대인들의 절망에는 희망이 없다. 그 황폐한 정신을 가지고 죽음을 피해 다닐 뿐, 재생의 길을 걷지 않기 때문이다.

황무지에 등장하는 겨울에 따스함을 쫓아 남쪽으로 가는 유한계급의 사람, 종교적 신념을 잃고 방황하는 사람, 문명의 값진 유산을 허식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상류계층 속물, 생명력의 원천으로서 성(性)의 의미를 생각하지 못하는 방탕한 여인, 상업적 이익에만 몰두하는 장사꾼, 구원의 기사를 유혹해 위험에 빠뜨리는 거리의 여인 등 수많은 인물은 모두 황폐한 정신을 지녔으면서도 그것으로 절망하지 않는, 정신적으로 죽은 자들.   즉 어떤 소생의 믿음도 인간의 생활에 중요함과 가치를 제공해 주지 못하며 죽음을 통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없는 비극적 상태이다.  

전쟁이 남기고 간 황폐함과 유혈의 황무지보다 더한 현대인의 정신적 불모 상태는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그렇다면 앞뒤 좌우를 아무리 살펴봐도 넓디 넓은 황무지 속에서 우리 현대인들은 행복의 도피처를 통해서 저주스러운 문명 속에서 과연 구원받을 수 있을까?   이 시는 총 5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마지막은 "샨티 샨티 샨티(Shantih shantih shantih)"로 끝난다.  샨티는 산스크리트어로 평화를 기원하는 단어를 의미하는 말이다.    하지만 신은 사라지고 종교라는 허울만 남은 세상, 종교가 권력이 되고 기득권이 된 오늘날 종교의 얼굴은 황무지에 사는 불쌍한 현대인들의 구원이 되어주기는 커녕 인간의 정신을 더욱 황폐화된 현실로 만들고 있다.   그래서 희망의 시대를 간절히 바라는 엘리엇의 종교적, 소망적 메시지가 더욱 절망적으로 들려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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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16 15:5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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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17 09:1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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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군 전투비행단의 불온서적 리스트  

 

 

출처: 오마이뉴스 

      

군의 불온서적 리스트와 관련한 신문기사의 제목을 바로 보는 순간, 국방부가 이번에도 '또 한 번 한 건(?) 해주셨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기사 내용을 읽어보니 국방부 내에서 새로운 불온도서를 추가해서 만든 리스트가 아니었다.  알고보니 문제의 리스트는 공군 전투비행단에서 만든 것이었다.  리스트에 올라있는 서적은 모두 42권으로 2008년에 물의를 일으켰던 군대 내 불온서적 23권에 19권이 새로 추가되었다. 항목별로는 북한찬양 11권, 반정부·반미 10권, 반자본주의 21권 등이다.  2008년과 2011년 불온서적 리스트를 비교하면 이번에 추가된 19권은 모두 ‘반자본주의’ 항목에 속한다.  

불온서적 리스트가 언론에 공개되고 난 뒤, 국방부는 불온서적 리스트에 대해 국방부 차원에서 관련 공문을 내려보낸 일은 없으며 2008년의 목록을 새로 추가한 적이 없다고 해명했다. 

시사IN이 입수한 공문에 의하면 9월 1일부터 13일까지 불온서적에 대한 점검을 실시한다는 지시가 있었다는 사실을 포착했는데 아마도 불온서적 점검에 맞춰 문제의 공군 전투비행단 자체에서 불온서적 리스트를 만들었을 것으로 보인다.  

     

 

  잘 알려지지 않은 군의 불온서적   

군대에서 말하는 '불온서적'이란 장병 정신전력 강화에 부적절한 서적을 뜻한다.  여기서 말하고 있는 '장병의 정신전력'은 단순히 전투에서 적을 물리칠 수 있는 전투력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장병으로서 국가의 방위에 충성을 다하고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정신 역시 포함하고 있다.  대한민국 장병으로서 갖춰야 할 마음가짐을 잘 표현하고 있는 내용의 예가 바로 장병이라면 암기하고 있어야 하는 '복무 신조'이다.   복무 신조의 첫 번째 내용은 이렇다.  

   " 우리는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며 조국통일의 역군이 된다. "  

 

그런데 국방부에서 선정한 불온서적들이 무조건 장병의 정신력에 반하는 내용, (국방부에서 불온서적의 기준을 제시하고 있는) 반정부, 반자본주의, 북한 찬양 등과 관련된 책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꼭 이런 책들만 불온서적이 되는 것은 아니다. 

2008년에 국방부에 의해서 불온서적 리스트로 공식화되었지만 리스트에 소개된 책 이외에도 군대에서는 암묵적으로(?) 장병들이 절대로 읽어서는 안 될 불온서적들이 많이 있다.   

비록 내 군 복무 시절의 경험에서 유추한 것이라 각기 부대의 특성마다 다를 수가 있다는 것을 미리 알려둔다.

 

 *** 

필자는 2008년에 입대를 하게 되었는데 불온서적 리스트가 처음 공개된 시점이 이제 내가 훈련병이었을 때거나 혹은 이제 막 부대에 배치되어 이등병 생활 했을 무렵이라고 짐작된다. 

각 부대 안의 생활관(군 장병들이 생활하는 장소인 내무반을 말하는데 부대마다 다르지만 아무래도 '좋은 생활환경이 구축된' 군대의 이미지를 표방하기 위해서 요즘에는 '생활관'이라고 불리우는 군 부대도 있다) 안에는 작은 책꽂이가 하나씩 배치되어 있다.   

그 책꽂이에는 국방부에서 장병들의 문화 생활을 장려하기 위한 차원에서 만들어진 진중문고와 장병들이 휴가 및 출타를 하면서 각자가 구입한 책들이 꽂혀 있다.     

 

진중문고는 쉽게 비유하자면, 정말로 지식 함양을 위해 도움이 되면서도 정신적으로 좋은 내용이 있는 '착한 도서'들이다.  이 책들은 하얀 속표지에 국방부 마크에 '진중문고'라는 도장 마크가 찍여 있는 특징이다.   

내가 군 복무 시절, 생활관에 비치되었던 진중문고들은 다음과 같다. 

 

 

 

 

 

 

 

 

  

진중문고들은 대체로 소설, 에세이 장르가 많은 편이라 장병들이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책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책장에 과연 이런 책들만 꽂혀 있는 것이 아니다. 

 

 

 

 

 

  

 

  

 

장병들은 군 생활이 가져다주는 피로와 무료함을 달래주기 위해서 남성 잡지를 많이 보는 편인데 주로 출타할 때 잡지를 구입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어느 생활관의 책장에는 1년 치 분량의 남성 잡지들이 즐비하게 꽂혀 있는 곳도 있을 정도다.   남성 잡지는 진중문고에 비해 헤지고 너덜너덜한 상태이다.    

2년 가까이 여성을 제대로 만나볼 수 없는 답답한(?) 생활을 해야하는 그야말로 남성들만 있는 군대에서는 어여쁘고 섹시한 여성들의 사진이 있는 남성 잡지를 안 쳐다볼 수가 없다!  

내가 복무한 부대에는 <에스콰이어><GQ코리아><MAXIM>을 많이 보는 편이었다.  하지만 <MAXIM> 같은 경우에는 다른 남성 잡지에 비해 수위가 살짝(?) 높아서 불온서적이라고 딱히 규정된 것은 아니었지만 부대 내에서는 반입이 불가한 남성 잡지로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장병들은 출타를 하고 나면 꼭 <MAXIM>을 구입했다.  으레 출타를 하고 난 뒤에 부대에 복귀하면 부대에 반입된 물품들을 검사하기 마련인데 안 걸리기만 하면 되었다.  얼마든지 불온서적을 읽어볼 수 있으며 또는 휴대폰, MP3까지 부대 반입 금지 물품까지도 몰래 사용할 수 있다.   

즉, 군의 불온서적은 장병들의 성적 욕구를 강하게 유발할 수 있는 서적 역시 될 수 있는 것이다.  군대 내에는 정말 다양한 사건, 사고가 일어나는데 장병들 간의 성추행 사건 역시 빈번히 일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이런 사건이 일어나고 있는 원인들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남성들과 오랫동안 생활해야 하는 군 부대의 특성을 감안한다면 성추행 사건이 일어날 수 밖에 없으며  남성들의 자연스러운 성적 본능 역시 무시할 수 없다.  장병들은 주말을 통해 체력 단련 등으로 건전한 부대 생활을 하고 있지만 이것만으로도 장병들의 성적 욕구를 완전히 해소할 수는 없다.  

  

  

  장병들에게 널리 알려진 하루키의 명성(?) 

 

 

 

 

 

  

 

 

 

지금도 불온서적이라고 하면 항상 먼저 떠오르면서도 지금도 절대로 잊혀지지 않은 책이 바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다.   너무나도 유명한 이 소설이 국방부 불온서적이 되어야한다고 주장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 부대 내에서 이 책 역시 장병들 사이에서는 불온서적으로 낙인 찍혔다는 점이다.   

<상실의 시대>를 읽어보면 알겠지만 이 소설에서는 남녀 등장인물의 정사 장면과 여성 인물의 동성애적 장면 등 19세라면 읽기에는 아직 이른(?) 내용이 있다.   단지, 그 장면 탓이었을까?  <상실의 시대>를 완독해보지 않은 장병들까지도 이 책을 불온서적으로 생각하며 되도록이면 안 읽으려고 외면하였다.   

하지만 주위 사람들이 외면받고 있는 금서라고 해서 기피하는 사람들도 있는 반면에 금서의 내용이 궁금해서 호기심이 발동한 사람도 존재하는 법.    

부대 내에서 <상실의 시대>를 읽었던 선임병의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하나의 소문처럼 퍼지게 되자 평소에 독서와 친하지 않았던 장병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이 책을 읽기 시작하였다.  하루키라는 작가의 명성을 알고 싶어서 읽었다기보다는 소설 속 정사 장면이 얼마나 야한지 무척 궁금해서 읽은 것이었다.    참... 장병들의 성적 호기심이란...  ^^;; 

그런데 더욱 재미있는 점은 부대 내에서 하루키의 명성(?)이 알려지고 난 후부터 부대에 비치된 <상실의 시대> 속에 등장인물의 정사 장면이 있는 내용의 장들이 찢겨져 있다는 사실이다!   내가 복무한 부대 내에서 <상실의 시대>는 단 두 권만 있었는데 두 권 다 똑같이 야한 장면이 있는 장만 훼손되었다는 것이다.   

뒤늦게서야 하루키의 명성을 알게 되어서야 <상실의 시대>를 읽은 필자와 그 밖의 장병들은 유명한 그 부분이 자체적으로(?) 삭제되어서 무척 아쉬워했다는 후문이 있다.  그리고 장병들은 왜 하필 그 내용만 훼손되었는지, 그리고 누가 훼손했는지 궁금해했다.   

사실, 유독 그 책만 읽고 있었던 선임병이 있었는데,,,   장병들 사이에서는 혹시 그 선임병이 하루키의 소설 훼손 사건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했다.   야릇한 상상(?)까지 덧붙여 지나친 추측을 할 정도였다.

어쨌든 사건의 진실은 지나간 시간의 기억 속으로 묻혀진 지금, 웃지 못할 불온서적에 대한 추억으로만 남아 있다. 

'  

 

  '붉은 색 표지'라서 불온서적? 

 

 

 

 

 

 

 

  

 

필자는 군 복무를 하면서 당시 국방부에서 내려진 불온서적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젇저 단순하게 내가 읽고 싶은 책이 있으면 부대에 반입해서 읽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한 번은 휴가 복귀를 하면서 <체 게바라 평전>을 구입해서 부대에 반입했었는데 마침 평소에 친한 선임병이 내가 구입한 <체 게바라 평전>을 보면서 부대에 반입하기에는 부적절한 도서라고 살짝 귀띔을 해주었다.   생각해보니 선임병이 했던 말이 수긍이 갈 수 밖에 없었다.  

체 게바라는 친미 성향의 바티스타 정부를 쓰러뜨린 쿠바의 사회주의 혁명가이다.  내가 책을 구입하면서 그 점을 미처 고려하지 못했던 것이다.  나에게 귀띔을 해주었던 선임병이 나처럼 독서를 즐기는 편이라 다행이었지 선임병 그 누구도 나의 서적 반입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면 이 책 한 권의 반입 때문에 직속 분대장부터 소속 간부까지 면책을 받을 수 있을 정도로 부대가 시끄러웠을 것이다.  아마도 나는 '사회주의 성향'을 지닌 불순분자 장병으로 오해의 낙인이 찍혀 군 생활 제대로 꼬였을지도...

 

 

 

 

 

 

 

   

 

  

독서 습관을 형성하지 못한 장병들이 애매모호한 불온서적의 기준을 인식하고 있다면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처럼 과장으로 점칠된 서적으로 이해하거나 또는 정확하지 않은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불온서적으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삶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 유용한 심리학 고전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필자는 군 복무 중에 부대 내 설치된 도서실을 통해서 이 책을 처음 읽게 되었는데 개인적으로는 억압되고 강제적인 생활을 해야하는 군인들이 읽어도 좋은 책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있을 때,  군대 동기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그 책에 북한을 찬양하는 내용이 있다는데,, 알고 있었니?"  

나는 이 친구가 일부러 농담하는 줄 알았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의 수용소에서 있었던 일들을 다루고 있는 책인데 갑자기 왠 '북한 찬양' 드립?    그리고 이 책은 속표지에 '진중문고' 마크가 찍혀 있는 책이었다. 

동기의 말을 듣고는 실소를 머금을 수 밖에 없었다. 그 동기는 이 책을 제대로 읽어보지 않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책표지가 강렬한 인상을 주는 '빨간색' 이라서 설마 '북한' 과 연관시켰던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중립' 이 존재하지 않는 불온서적의 기준 

 

 

 

 

 

 

 

 

  

지난 해 헌법재판소는 병영 내에 ‘불온서적’ 반입 소지를 금지한 군인복무규율 조항이 기본권과 자유를 침해한 것으로 볼 수 없다며 재판관 6대 3의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내린 전례가 있었다.  군의 불온서적 지정을 둘러싼 논란의 여지는 지금도 이어져오고 있지만  불온서적 반입 소지를 규정한 복무 규율이 합헌이라고 결정 난 이상 헌재의 판단을 존중하고 따라야 한다.  

하지만 복무 규율이라는 방패만으로는 장병들의 의식, 정신 세계까지 모두 통제할 수는 없다.  역사의 선례에서도 알 수 있었듯이 한 때 금서 명령을 받던 도서들이 은밀하게 대중들의 손에 통해서 보급되었던 것처럼 불온서적의 기준이 리스트라는 공식적인 목록으로 형식화되었다고 해서 장병의 정신전력 강화에 완전히 도움이 된다고 보장할 수 없다. 

무엇보다 불온서적 선정에 장병들 그리고 군대 외부의 시민들에게 오해와 논란의 소지가 없도록 객관적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필자의 군 복무 경험상으로 봐서는 현재의 불온서적 리스트들은 완전히 중립적이며 객관적이라고 볼 수 없다.  

복무했던 부대의 중대장실 또는 장병들을 위해 설치된 작은 도서실에서는 뉴라이트계 역사학자들이 만든 <대안교과서>가 비치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지나치게 보수적인 입장의 내용으로 편향된 <대안교과서>의 역사적 중립성 결여에 대해서 학계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남아 있는 지금,  국방부의 불온서적 리스트의 선정 기준에 대해서 의문점을 표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게다가 일부 군 부대에서는 1970~1980년대 민주화 운동을 종북세력의 활동으로 규정된 왜곡된 내용을 장병들에게 정신교육으로 가르치고 있다는 사실까지 더해지면 불온서적 선정 그리고 장병들의 안보교육을 담당하는 국방부 및 군 부대의 신뢰는 추락할 수 밖에 없다.  굳건한 안보는 국민의 신뢰와 군인들의 균형잡힌 시각이 밑받침될 때 비로소 가능하다. 사실을 왜곡하는 우격다짐식 안보교육은 오히려 안보에 해가 될 뿐이다.  

지금까지도 종결되지 않은 채 논란이 이어져 오고 있는 불온서적 선정의 기준의 문제점은 이승만 정부 때 시작된 권위적인, 몰가치적 반공 사상의 영향이 지금도 유일한 분단국가인 우리나라 사회에 여전히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 관련 인용기사  

[군 '불온서적 리스트'... 19권 더 늘었다]  오마이뉴스,  2011년 11월 14일 

[민주화운동가가 종북세력이라는 ‘군’]  경향신문,  2011년 9월 22일   

[軍 '불온서적' 반입 금지 '합헌']  한국일보,  2010년 10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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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잘라 2011-11-15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이런 이런, 올 가을엔 '불온'한 것들이 대유행하는군요.
'불온'에 구미가 당기는 건 때가 따로 없다는 걸 알겠습니다.
청년 때나 중년 때나, 오히려 중년 때 더 그런것 같기도!!

cyrus 2011-11-16 00:10   좋아요 0 | URL
그런가요? ^^ 국방부 불온서적 리스트를 보니 어떤 내용인지
정말로 궁금한네요, 역시 사람이란 무엇을 하지 말라고 하면
반대로 더 하려고 하는 성격이 있는거 같습니다. ^^

카스피 2011-11-15 1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북한찬양과 반정부까진 이해하겠는데(뭐 반정부와 반국가는 다르다고 모 진보인사가 주장하긴 했지만 나라를 지키는 군인이 반정부를 하면 그렇겠죠^^),반미나 반 자본주의까지 불온서적으로 모는 것은 좀 거시기 하네요^^

cyrus 2011-11-16 00:12   좋아요 0 | URL
맞죠, 지금도 왜 그런지 잘 모르겠지만.. 군대 안보교육 같은 경우에는 반미, 반자본주의를 북한 사회주의식으로 동등한 의미로 생각하는거 같아요.

맥거핀 2011-11-15 15: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군 모 부대에서 심지어 정신교육까지 꽤나 했던, 장교로 복무했던 사람으로서 상당히 일말의 책임감(?)을 느끼며, 까르르 웃으면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제 군대내 비오큐 숙소에도 알고보면 이상한 책(?) 많았는데, 보안검열에 한 번도 안걸린 것 보면, 그 양반들이 잘 몰라서 그랬는지, 제가 읽어도 이해를 못할것이므로 괜찮다고 생각했는지..(하..그리고 알고보면 공군장교중에 불그스레한 분들 은근히 많은데..;; 끙)

MAXIM이라면 긴긴밤 당직과 함께했던 좋은 책이지요. 절대 내 돈주고 사지 말고, 애들꺼 뺏아봐야 진리라는..끙.

cyrus 2011-11-16 00:14   좋아요 0 | URL
맥거핀님, 오랜만이네요, 잘 지내고 계시죠? ^^

그런데 댓글 내용이 놀라운데요. 맥거핀님이 장교로 복무하셨다니,,
정신교육을 담당하셨다면 혹시 정훈장교..? ^^

ㅎㅎㅎ 간부님들도 간혹 당직서면 잡지를 보시더군요 ^^

saint236 2011-11-15 15: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불온서적 맥심 ㅎㅎㅎ 추억의 잡지입니다.

cyrus 2011-11-16 00:16   좋아요 0 | URL
역시 맥심은 군 장병들을 위한 최고의 잡지였군요, ^^
저는 제 나이 또래 장병들 사이에서 유행한 줄 알았는데,,
역사가 오래되었군요 ㅎㅎ

stella.K 2011-11-15 16: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지 않아도 <오래된 새책>에도 이걸 다뤄놓더군.
하지만 너의 글은 좀 더 포괄적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책을 보게 하려면 딱 두 방법이 있는데,
하나는 곧 절판될 거라는 것과 불온서적이라면 될 거야.
불친절 마케팅처럼 확실한 건 없거든.ㅋ

cyrus 2011-11-16 00:17   좋아요 0 | URL
맞아요, 몇년 전에 불온서적 리스트 처음 나왔을 때 책이
불티나게 잘 팔렸다는 뉴스 본 적이 있어요, 특히 장하준 씨의 책 같은
경우에요 ^^ 그런데 너무 야한 내용의 책도 불온서적이
될 수있는데 리스트에서는 단 한 권도 없다는 점이 궁금하기도 해요.

노이에자이트 2011-11-15 1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슈토름의 소설이 불온서적이라는 건 이해가 안 갑니다.그거 60~70년대에도 번역된 19세기 소설인데...

cyrus 2011-11-16 00:19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그래서 그 책을 읽어보려고 해요. 아직 슈토름의 소설을
읽어보지는 못했는데,, 도대체 어떤 내용이길래 19세기 소설이
불온서적에 포함되어 있는지 궁금하네요 ^^;;

이진 2011-11-15 2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그래도 엊그제 책에서 불온서적에 대해서 읽었는데 말입니다 ㅎㅎ
하루키 소설은.. 중3인 제가 읽기 너무 과합니다 ㅋㅋ 1Q84도 샀는데 진도가 안나가죠...
맥심 ㅋㅋㅋㅋ 어떤 군 이야기에서 읽었답니다 ㅋㅋㅋ

cyrus 2011-11-16 00:22   좋아요 0 | URL
아니, 이진님, 중3이셨습니까? ^^
저보다 나이 어린 동생이었군요. 중3이라..
간혹 알라딘 서재 말고도 독서 관련 온라인 카페를 자주 드나들고 있는데
그 카페에도 이진님 또래의 중2, 중3 회원분들을 온라인으로나마
친분을 맺은 적이 있었어요.

이진님이 남성분이시라면,, 음,, 맥심은,, 몰래 보시되 안 걸리면
됩니다. ^^;;

야무 2011-11-15 2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공군 모 부대에서 불온서적을 선정하는 작자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심히 궁금합니다. 뇌구조가 어떻길래 저런 책을 불온서적이라 분류해 놓는지, 어의가 없습니다..

요즘 군에는 남성잡지도 비치해 놓는군요~ 맥심과 비교해서 지큐나 에스콰이어는 교양잡지 수준이지요..ㅋㅋ 사실 제가 지큐팬이거든요~ 지큐 보면 훌렁 벗은 여자 화보 별로 없습니다. 그런 사진은 주로 맥심이 많지요..ㅋㅋ

cyrus 2011-11-16 00:23   좋아요 0 | URL
비치해 놓는다기보다는 장병들이 직접 구입해서 진중문고마냥 읽고 있는
거랍니다. ㅎㅎ 사실 저도 지큐를 좋아하는 편이에요, 간혹 살면서 도움
되는 교양 정보도 있으니까요. 그리고 맥심은 섹시한 여자 화보가 있어서
좋고요.. ^^;; 어쨌든 남성 잡지는 다 좋습니다. ㅎㅎ

마녀고양이 2011-11-17 15: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금꽃나무나 나쁜 사마리아인도 들어있군요.
역시나... 군은 우리나라 지킴이 역할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세뇌 작업도 하는 듯한. ㅠㅠ

시루스님, 오랜만이예요, 바쁘죠?

cyrus 2011-11-16 00:25   좋아요 0 | URL
세뇌 작업,, 맞아요. 군 정신교육하면 먼저 떠오르는게 세뇌입니다. ^^;;

사실 시간적 여유는 있는데 과제 걱정, 학업 관리 걱정 때문인지
쉬어도 쉰거 같지가 않네요. 주말에는 대부분 과제 준비해야 되고요.

비로그인 2011-11-16 0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어 볼만하다는 책을 여기서 다시 소개를 받는군요. 감사합니다...주문넣고 잠시 비치라고 해야겠어요.ㅎ

cyrus 2011-11-17 09:17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탁님 ^^
저도 불온도서가 불온한지 몇 권은 읽어보려고 합니다.

감은빛 2011-11-16 1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군생활과는 많이 다르다는 생각이 드네요.
'진중문고'라는 개념이 있었는지 모르겠어요.
원칙적으로 국방부에서 배포한 책 외에는 갖고 있을 수 없었다고 기억해요.
국방부에서 배포한 책은 책이 아닌 홍보물 수준이죠.(어떤건지 아시겠죠?)
각 개인이 가져온 책들은 반드시 정훈장교의 도장을 받아야 했습니다만,
원칙적으로 이것도 복무규정에 어긋나기 때문에
1년에 한번씩 대대적으로 검열이 나오면 책을 모두 모아서 산속에 숨겨두곤 했습니다.

위에 언급한 잡지들이 그 당시에도 존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잡지를 가져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더군다나 개인적으로 몰래 갖고 있는 사람이 혹 있었을지는 몰라도,
그걸 공개적으로 책장에 비치하다니! 이건 정말 상상하기 어렵네요.
군대가 정말 많이 변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시루스님의 부대가 상대적으로 열린 마인드로 운영되었을지도......)

어쨌거나 좋은 글 읽어서 반갑고 또 고맙습니다!^^

cyrus 2011-11-17 09:21   좋아요 0 | URL
감은빛님, 잘 지내고 계시죠? ^^

아마도 진중문고라는 개념이 들어선지 얼마 안 될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감은빛님 말씀대로 검열 나오면 생활관 내에 있는 책장 역시
정리를 하곤 했습니다. 특히 남성 잡지나 불온서적 혹은 장병 개인이
반입한 도서들도 안 보이는 곳에 숨겨놓곤 했지요 ^^
그러다가 검열이 끝나면 다시 제자리로 원상복귀하곤 했어요 ㅎㅎ

제가 다닌 부대가 열린 마운드에다가 말 그대로 군 생활이 좋아져서
감은빛님 시절의 군 생활의 모습과는 많이 달라져 보이게 느껴질 수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

노이에자이트 2011-11-16 16: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중문고는 70년대 부터 있었죠.큰 도장으로 진중문고라고 찍혀 있고...우리 부대에 있던 대단히 낡은 삼성미술문고,박영문고 등을 보면 70년대에 배포된 것이더라고요.90년대 중반 이후 헌책방에 가보니 진중문고라고 찍혀진 삼성미술문고 박영문고가 팔리기 시작하더라고요.아마 그 무렵부터 70년대 책들을 군대에서 정리하기 시작한 것 같아요.이거 좋은 책들이 많았어요.세계적인 명저도 꽤 있고...지금도 헌책방에 나온 것들 중 괜찮은 것은 사고 있습니다.

cyrus 2011-11-17 09:22   좋아요 0 | URL
저도 간혹 헌책방에 가면 옛날 진중문고 도장이 찍혀 있는 서적을
발견하곤 합니다. ^^

노이에자이트 2011-11-17 17:15   좋아요 0 | URL
발견하면 구입해 놓으세요.진중문고에는 인문사회 명저 중 지금은 안 나오는 책들도 꽤 있으니까요.값도 싸고...

누리로 2011-11-26 18: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검색으로 우연히 들어와서 글 남깁니다. 군대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은 2008년의 국방부에서 선정한 불온도서 말고는 반입이 가능할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현실은 부대에서 간부가 불온도서라고 해버리면 그걸로 끝이죠.

저는 05년부터 07년까지 대대급 부대에서 복무했는데 거기서 있었던 일입니다. 어떤녀석이 그의 친구가 소포로 보내준 책을 보안성 검토 도장 안받고 읽다가 좀 싸이코스러운 간부한테 걸렸는데 그 책의 제목은 체게바라 평전... 만일 그 책이 흔한 소설이나 에세이였다면 별 문제 안 생겼겠죠. 결과는? 징계위원회를 열어서 영창10일 나왔으나 대대장이 휴가삭감 5일로 감경해 주었습니다. 그나마 영창 안 간게 다행이었달까. 체게바라 평전은 오래전에 베스트셀러였고 북한 체제를 옹호하는 내용은 그 책에 전혀 없는데 이런책도 읽어서는 안된다니 참...

누리로 2011-11-26 18: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그리고 매주 수요일마다 이루어지는 정신교육(정훈교육) 내용도 가관입니다. 조중동은 완전 저리가라 수준이죠. 가령 fta같은것에 대해서는 'fta는 좋은거다'는 식의 주입식 교육이 이루어집니다. 아래와 같은 식이죠. 국방일보 사이트에서 찾은 한미fta 협상당시의 기사입니다.

http://kookbang.dema.mil.kr/kdd/GisaView.jsp?writeDate=20061124&writeDateChk=20061124&menuCd=3001&menuSeq=3&kindSeq=2&menuCnt=
 
프레카리아트, 21세기 불안정한 청춘의 노동
아마미야 가린 지음, 김미정 옮김 / 미지북스 / 2011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일자리의 ‘질’은 매년 떨어져 가고 있는데,. ‘고용 대박’ 이라고요..?   

2011년은 유독 국민들 입장에서는 도통 이해할 수 없는 정치인들의 망언이 많은 해로 기억될 거 같다. 이런 걸요즘에는 ‘개드립’이라고 부르고 있다. 쉽게 말하자면 '헛소리',  좀 심하게 말하자면 ‘개소리’라는 것이다.  2011년도 이제 한 달 남짓도 안 남은 시점에서 이번에는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님께서 참으로 ‘대박’스러운 ‘개드립’을 남기셨다.

통계청이 발표한 ‘10월 고용 동향’을 놓고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를 두고 “신세대 용어를 빌려 실감나게 표현하자면 ‘고용 대박’”이며 “경제활동참가율과 고용률이 증가하고 실업률도 줄어들었다”고 평가했다.  그런데 이 발언 이후로 여. 야당의 반응은 냉담할 뿐이다.  

유승민 한나라당 최고위원은 "박 장관의 발언을 보고 이 정부 각료들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고, 이런 인식 밖에 없다면 당의 앞길이 정말 힘들다고 생각한다"며 맹렬히 비판하고 나섰다.

박 장관의 발언만 본다면 분명 긍정적인 의미를 가진 평가이다. 고용률이 높아지는 동시에 실업률이 줄었다는 점은 일자리가 증가했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 장관이 본 통계청의 10월 고용 동향을 살펴보면 지난달 취업자 수는 모두 2467만 3000명이며 지난해 같은 달보다 50만 1000명 늘었다. 분명 수치상으로는 좋다.    

 

 

출처: 조선일보

 

 

하지만 통계 내용을 면밀히 살펴보게 된다면 일자리의 ‘양’은 늘었을 뿐, ‘질’은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핵심 활동 계층인 20, 30대의 일자리는 같거나 줄어들고 50, 60대의 일자리만 늘어나는 현상만 봐서 이것이 과연 ‘고용 대박’이라고 할 수 있을까?  

원희룡 한나라당 최고위원은 "우리나라와 다른 OECD 국가들은 통계수집 방법이 다르기 때문에 취업애로계층을 조사하면 20% 가까운 실업률이 나오기도 한다“ 면서 ”이 내용만 가지고 국민들을 호도해서는 안 된다‘고 질타했다. 그리고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8월 경제활동인구조사’에서 비정규직 근로자가 599만 5000명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하며 “일자리 수가 느는 게 다가 아니다”라는 여론이 강해지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 이찬영 연구원은 "고용 지표가 좋아지고 있다고 말하지만, 젊은이들이 취업 의사를 계속 잃어가는 현상은 심각하게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LG경제연구원 윤상하 책임연구원은 “좋은 일자리에 안착하고 싶어하는 청년층에는 이번 고용동향 통계가 크게 와 닿지 않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결국에는 현재 고용 통계는 우리나라 고용의 질이 점차적으로 나빠지고 있다는 것을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고용 대박’ 이 아니라 ‘실업 대박’이라는 심각한 문제이다.

 



  21세기 신자유주의 시대가 만들어 낸 프레카리아트  


'프레카리아트'는 '불안정성'이란 뜻의 'precarious'와 '프롤레타리아트(proletariat)'의 합성어로서 '신자유주의화 세계 아래서 불안한 사람들' 을 뜻한다. 편의점이나 레스토랑의 시간제 노동자나 고등교육을 받았지만 직업을 찾지 못한 채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하는 사람들이 전형적인 예다.

그러나 단순히 그들의 삶이 불안정하다는 이유만으로 불특정 사회계층으로의 의미로서 프레카리아트라 부르지는 않는다. 이 말에는 새로운 변혁의 주체로서 구상되고 있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생소한 용어이지만 이탈리아에서 처음 쓰여 유럽에 번진 말이 일본으로 들어온 것으로서, 최근 몇 년 간 유럽과 라틴의 신좌파 시민운동가들 사이에서 새로이 부상하고 있는 개념이다. 의미 맥락상 우리나라의 ‘88만원 세대’와 비슷하다. 일본에는 '자유(free)'와 '아르바이트(arbeiter)'의 합성어로서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면서 남는 시간에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사는 사람들을 일컫는 ‘프리터 족(族)’ 이 등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20대 프리터 족의 증가는 일본 사회의 문제점으로 인식되고 있다. 1990년대 초반까지 번영을 누려왔던 부동산 버블이 한순간에 사라지게 되면서 일본 경제는 급속도로 나빠지기 시작하게 되었고 안정적인 고용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던 프리터 족들 역시 경제적 여건이 나빠지게 되었다. 경제 침체의 길을 걷고 있는 일본 경제 속에 살아가고 있는 현재 20대 프리터 족들은 저임금, 비정규직 노동으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 처음을 관심을 가진 사람이 바로 작가이자 반(反)빈곤 운동가로 활동하고 있는 아마미야 가린이다. 그녀는 프리터들의 생존권을 위한 노조활동 참여를 조성하여 비정규직 노동자와 무직, 실업자와 함께 노동절 행사를 치르는 등 ‘프레카리아트’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신자유주의 사회가 만들어 낸 일본 프레카리아트이 처한 현실과 문제점을 담아 낸 것이 바로 국내에 번역된 <프레카리아트, 21세기 불안정한 청춘의 노동>이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 책이 생각보다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것 같다. 사실 ‘프레카리아트’라는 단어 자체만 생소할 뿐이지 그 의미를 따져 본다면 우리 사회에서 자주 언급되고 있는 ‘88만원 세대’ , ‘비정규직 노동자’ , ‘워킹푸어’ 의 의미를 모두 담고 있는, 포괄적인 개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르포 작가답게 젋은 비정규직 노동자들과의 다양한 인터뷰를 통해서 프레카리아트의 실상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충분히 높이 살 만하지만, 일본 사회의 구조에 생경한 한국 독자 입장에서는 그저 ‘먼 나라’ 이야기로 비춰질 수도 있다.  


   


  일본에는 '오오마에'가 없다

하지만 이 책을 일본에서만 국한되는 하나의 사회적 문제로 치부한다면 곤란하다. 프레카리아트, 즉 일본의 프리터 족들이 처한 현실이 우리나라의 ‘88만원 세대’와 비정규직 노동자와 관련된 사회적 현상과 흡사하기 때문이다.

프리터들이 일을 하면서 벌 수 있는 평균적 최저 임금은 시급 673엔 수준이다. 임금 가격을 원화로 환산을 해보면(2011년 7월 기준, 1엔은 약 13원) 대략 8740원 정도이다. 이런 수준의 시급을 받으면서 프리터들은 그 수입을 통해서 월세, 식비 등 전체적으로 생활비에 쓰고 있다. 일본에서 가장 낮은 임급은 시급 610엔, 원화로는 7930원이다.   

올해 우리나라의 최저임금위원회가 책정한 내년 최저임금 4580원과 비교하면 높은 가격이지만 단순히 금액만 조금 높다고 해서 생활하는 데 보장할 수 있다고 단정 짓기에는 성급하다.  일본 역시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오랫동안 이어져 오고 있는 경제 불황으로 인해서 집세는 연일 고공행진이며 낮은 고용률을 보이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나라 비정규직 시급보다 조금 더 많은 8000원 정도 번다고 해서 일본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잘 먹고 잘 살아가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리고 일본에서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당일 해고, 임금 체불 등의 불평등한 대우가 버젓이 횡행하고 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일을 하지만 건강만 더 악화될 뿐 시중에 들어오는 임금은 쥐꼬리만 하다.

일본 내에 분포되어 있는 노동자들이 실태를 파악해보면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파견 노동자 역시 많은 편이다. 이는 1990년대 중반, 유연한 조직의 기업 경영 바람이 불고 온 노동 법제의 규제 완화로 인해 증가하게 되었다.    

 

 

 

2007년에 일본에 방영되었던 드라마 <파견의 품격>의 주인공 오오마에  

 

   
  우리나라에서는 '만능사원 오오마에' 라는 제목으로 모 케이블 채널에서 방영된 적이 있다.  여주인공 오오마에는 어떠한 일에도 자신이 맡은 임무를 똑부러지게 수행할 줄 아는, 다재다능한 능력과 자신감이 충만한 파견 근로자이다.  드마라 속 오오마에는 정규직 근로자 앞에서도 기죽지 않는 당당한 파견 근조자로서 자신의 생존권을 스스로 지켜나가고 있지만 드라마 밖에서의 파견 근로자의 현실은 언제 해고될지도 모르는 불안정한 고용환경 속에서 적은 임금으로 근근이 살아가야만 하는 열악한 수준이었다.  
   

 

일명 노동자 파견법은 1986년에 처음 시행되었을 때만 해도 비서, 번역, 통역, 등 전문성 높은 직종에 한해 노동자 파견을 인정했지만 2001년에 고이즈미 정권 이후부터는 모든 전 직종으로 노동자 파견이 합법화되었으며 하나의 직종에만 안정적으로 일을 할 수 있는 정규직 노동자보다 다양한 직종을 전전해야만 하는 파견 노동자가 증가하게 되었다.  해마다 늘어나고 있는 일본의 파견 노동자들은 ‘비정규직 노동자’나 다름없다. 회사나 공장 내에서 필요한 업무가 있을 때만 헐값으로 고용되어 언제든지 해고당할 수 있는 불안정한 처지에 놓여 있다. 이렇듯, 아무리 일해도 저임금 수준에 머무를 수밖에 없고 정규직 노동자로 전환하기에는 상황은 여의치가 않다.  그만큼 일본 역시 우리나라처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며 정규직 노동자의 임금 차이와도 커져만 가는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다. 

  

 

  일자리 부족 문제보다 더 심각한 것 

일본이나 한국이나 비정규직 문제를 그대로 방치하게 된다면 해결하기가 어려운 고질적인 문제가 되고 만다.  많은 사람들이 청년 비정규직에 대해 "노력을 안 하고 의욕이 없다" 고 치부하는 인식이 있는데 그런 사회 분위기 속에 젊은이들은 '자기 책임론' 에 빠지게 된다.  

제대로 된 일자리를 얻지 못해 임금을 받지 못한 상황을 자신의 부족한 능력 탓으로 돌리게 된다.  결국에는 자신의 삶을 지나치게 비관하게 되면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리게 되고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행동까지 이르게 된다.   불안정한 고용 환경의 현실을 단순하게 바라 볼 문제가 아닌 것이다.  비정규직 문제는 단순히 청년층들이 이전 세대와 다르게 부족한 점은 없다.  다만 기성 세대들처럼 어디라도 마음 먹고 쉽게 들어갈 수 있는 안정적인 일자리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게다가 경기는 악화되면 될수록 일한만큼 받게 되는 노동의 대가도 점점 줄어드는 문제도 생겨나고 있다.  고용의 이중고 속에서 젊은 세대들은 안정된 미래에 대한 희망이 점점 사라진 채 하루하루를 불안한 나날로 살아가고 있다.   

 ***

아마미야 카린은 이런 현실에 대해 “분노하라”고 한다. ‘프리터전반노동조합’ 등 불안정노동자들이 스스로 조직을 만드는 운동은 그런 분노와 반격의 시작이라 한다.  지금 일본에서는 아마미야 카린뿐만 아니라 열악한 고용 현실에 분노를 느끼는 젊은이들이 등장하고 있다.  이들은 노동 운동가들과 함께 노조를 조직하여 노동생존운동을 펼치면서 자신들의 생존권을 찾기 위해서 고군분투하고 있다.   

지은이가 펼쳐 보이는 일본 사회의 현실은 우리 사회와 너무도 닮아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청년 비정규직자들을 위한 노동조합을 결성하여 사회 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그런데 책들에 소개된 일본 비정규직자들의 적극적 분노를 표출하는 사회적 운동의 모습들이 너무나 강렬한 탓일까?    

젊은 그들의 분노가 부러워지면서도 한편으로는 우리나라는 아직 미미한 분노에만 그치고 있다다는 점에서 괜시리 염려스럽게 느껴진다.   극소수의 비정규직자들의 분노만으로는 우리나라의 고용 문제를 해결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비정규직 문제를 외면만 하게 된다면 우리 세대 역시 불안정한 생활을 살아야하는 '잃어버린 세대'가 될지도 모른다.   이제는 자본주의 앞에서 '만국의 프롤레타리아'가 단결하는 시대를 지나서 신자유주의 앞에서 '프레카리아트' 가 단결해야 할 시대가 도래된거 같다. 

  

 

 

* 인용 관련 기사

[1년간 일자리 '양'만 늘고 '질'은 나빠졌다]  조선일보  2011년 11월 10일  

[박재완은 “고용 대박”이라는데 … 주변엔 왜 한숨소리만]  중앙일보  2011년 11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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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본다면 내가 오늘 수능시험을 보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겠다.   

물론 내가 수능을 보는 것이 아니라 친한 친구가 지금 수능시험을 치고 있다.  

 

오늘 아침에 수능시험을 치는 친구를 격려하기 위해서 수능 고사장인 학교까지 가는 데 동행해주고 왔다가 블로그에 포스팅하고 있는 중이다.   요즘 날씨가 예전에 비해 덜 춥다보니 많이 쌀쌀한 정도는 아니었다. 수능시험을 쳐야하는 당사자인 친구도 날씨가 별로 춥지 않다고 너스레떨었다.   

하긴...  이번에 치는 시험이 그 친구에게는 '세 번째' 응시라서 이제는 시험에 대한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는거 같았다.   작년에 군 제대하자마자 다니고 있었던 2년제 전문대를 중퇴하고 재수에 도전하게 되었다.  부모님 그리고 친구의 할머니까지도 많은 지원을 할 정도로 정말로 열심히 했는데, 아쉽게도 작년 수능에서는 만족할만한 성적을 내지 못했다.    그래서 올해에도 다시 수능에 재도전하게 되었는데, 이번에도 성적이 좋지 않으면 그냥 일을 하면서 돈을 벌 것이라고 하였다.  

 

 

중학생 때부터 처음 만나서 지금까지도 돈독한 우정을 이어져왔던 벗이라 이번 시험만큼은 좋은 결과가 있기를 간절히 바라왔다.   매달 한 두번씩 만나 같이 밥도 먹으면서 자주 격려를 해주었다.  그리고 합격을 기원하는 마음에서 시험치기 이틀 전에 찹쌀떡이 들어간 과자를 사주기도 했다.  비록 팥앙금이 꽉차게 들어있는 찹살떡은 아니었지만 괜히 내가 사온 음식을 잘못 먹다가 탈이 날까봐 그냥 '찹살파이' 를 사왔다.    다행히도 친구는 자신이 좋아하는 과자라면서 내가 준 선물에 무척 고마워했다.  

  

내가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시간에는 외국어 영역 시간일 것이다.  자신보다  다섯 살 아래인 고등학생 수험생들로 가득한 넓은 학교 안에서 혼자서 시험을 치고 집에서 싸온 도시락을 먹고 있었을 친구의 모습이 떠올려진다.    

 

 

***  

 

방금 올해 수능시험에 출제된 언어영역 지문을 확인했다.  나는 지금까지도 수능시험이 치는 날이 되면 항상 언어영역 지문을 꼭 확인하는 편이다.   

고등학생 때만 해도 국어 선생님이 되는 꿈을 가졌고 지금도 문학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수능시험을 치게 되면 제일 먼저 시험이 쉽게 나오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들기 마련이다. 하지만 나 같은 경우에는 고등학생 때 모의고사나 본 시험인 대학수능 시험을 쳤을 때 문제의 난이도 여부보다는 과언 언어영역 시험문제에는 어떤 문학작품이 지문으로 나올까 기대하였다.  

EBS 문제집을 공부하면서 배웠던 작품이 모의고사 시험지에서 만나게 되면 오랜만에 만난 친구마냥 반가웠고, 생전 처음 보는 작품이 지문으로 나오게 되면 더 반가웠다.  일반적으로 수험생이라면 친숙한 작가가 쓴 낯선 작품이 나오면 더 긴장하고 당황하는 게 정상이다.   

항상 언어영역 모의고사를 치게 되면 평균적으로 70~85점 정도의 점수가 나왔다.  90점을 넘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언어영역을 남들보다 조금만 더 열심히 했더라면 90점 이상을 바라볼 수 있었을텐데 이상하게도 90점의 벽을 넘는게 쉽지 못했다.   언어영역에서 좋은 성적을 나오기 위해서는 시험지 속에 제시된 수많은 지문들을 적절하게 시간 배분을 하여 읽음으로써 문제를 풀어야 한다.   평소에 책을 읽는대로 지문 한 글자 한 글자 천천히 읽다가는 시간 부족으로 문제를 못 풀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도 정독하는 독서 습관 탓인지 시험 지문을 그렇게 빨리 읽을 수 있는 속독을 가지고 있는 편이 아니었다.  게다가 그 지문을 읽자마자 바로 이해할 수 있는 능력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어쩌면 언어영역에서 좋은 성적을 얻지 못했던 원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리고 모의고사를 풀고 나면 자신이 틀린 문제들을 오답노트식으로 정리하여 수능형 문제를 완벽히 대비해야 한다.   오답노트를 만드는 방식은 학생들마다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자신이 틀린 문제를 노트에 기록하거나 시험지를 오려 붙이기도 한다.  그리고 그 노트를 공부하는 데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언어영역 같은 경우에는 오답노트를 만들기보다는 시험 지문으로 출제된 시(詩)만 노트를 적곤 하였다.  시험문제를 풀다가 정말 마음에 드는 시가 있으면 항상 노트에 따로 적는 습관이 있었다.  어떻게 본다면 필사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시인이 될려고 하는 마음은 없었는데 왜 그렇게 시를 필사하려고 했는지 지금도 그 때의 내 모습이 이해가 가지 않을 때도 있다.  아마도 감수성이 충만하여 그저 시를 좋아했었나 보다.  지금도 내 책상 서랍 안에는 학창 시절 공부하던 언어영역 문제집, 모의고사 시험지에서 지문으로 나온 시들을 기록한 노트가 보관되어 있다.  

 

 

이번 올해 수능 언어영역에서는 곽재구의 시가 출제되었다. <구두 한 켤레의 시>라는 시인데 EBS 언어영역 문제집에서도 나온 적이 있다고 한다.  

 

차례를 지내고 돌아온
구두 밑바닥에
고향의 저문 강물소리가 묻어 있다.
겨울보리 파랗게 꽂힌 강둑에서
살얼음만 몇 발자국 밟고 왔는데
쑬골 상엿집 흰 눈 속을 넘을 때도
골목 앞 보세점 흐린 불빛 아래서도
찰랑찰랑 강물소리가 들린다.
내 귀는 얼어
한 소절도 듣지 못한 강물소리를
구두 혼자 어떻게 듣고 왔을까.
구두는 지금 황혼
뒤축의 꿈이 몇번 수습되고
지난 가을 터진 가슴의 어둠 새로
누군가의 살아있는 오늘의 부끄러운 촉수가
싸리 유채 꽃잎처럼 꿈틀댄다.
고향 텃밭의 허름한 꽃과 어둠과
구두는 초면 나는 구면
건성으로 겨울을 보내고 돌아온 내게
고향은 꽃잎 하나 바람 한점 꾸려주지 않고
영하 속을 흔들리며 떠나는 내 낡은 구두가
저문 고향의 강물소리를 들려준다.
출렁출렁 아니 덜그럭덜그럭.  

- 곽재구  <구두 한 켤레의 시> - 

   

 

 

 

 

 

 

 

 

 

곽재구는 너무나도 잘 알려진 중견 시인인만큼 언어영역 모의고사에도 그가 쓴 시가 지문으로 심심찮게 나오는 편이다.    특히 시인의 대표작인 <사평역에서>는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에도 실려 있을 정도로 모의고사 지문으로 잘 나오는 편이다.   

곽재구 시인이 쓴 시는 딱 한 번 수능시험 지문으로 출제된 적이 있다.  '2005 수능'(2004년에 시행됨) 때 <은행나무>라는 시가 출제되었다.   

수능시험을 치기 전에 한번씩 예전에 출제된 수능시험을 예비로 풀어보기도 하는데 그 때 처음으로 이 시를 접했다.   이 시 역시 필사 노트에 기록되어 있는데 당시 이 시를 처음 보는 순간, 시를 좋아했던 기억이 지금도 남아 있다.   시에 드러나 있는 절망적인 현실 속에서도 꿋꿋하게 아름다움을 유지하는 은행나무의 의연한 모습은 벅찬 감동을 주기에 충분하다.  

 

  

너의 노오란 우산깃 아래 서 있으면  
아름다움이 세상을 덮으리라라던
늙은 러시아 문호의 눈망울이 생각난다
맑은 바람결에 너는 짐짓
네 빛나는 눈썹 두어 개를 떨구기도 하고
누군가 깊게 사랑해온 사람들을 위해
보도 위에 아름다운 연서를 쓰기도 한다
신비로와라 잎사귀마다 적힌
누군가의 옛 추억들 읽어 가고 있노라면
사랑은 우리들의 가슴마저 금빛 추억의 물이 들게 한다
아무도 이 거리에서 다시 절망을 노래할 수 없다
벗은 가지 위 위태하게 곡예를 하는 도롱이집 몇 개
때로는 세상을 잘못 읽은 누군가가
자기 몫의 도롱이집을 가지 끝에 걸고
다시 이 땅 위에 불법으로 들어선다 해도
수천만 황인족의 얼굴 같은 너의
노오란 우산깃 아래 서 있으면
희망 또한 불타는 형상으로 우리 가슴에 적힐 것이다  



 

- 곽재구  <은행나무> -  

(출전: <받들어 꽃> 미래사, 1992)

 

 

 

  

곽재구 시인의 시 이외에도 다른 시 작품의 지문으로는 김동환의 <산 너머 남촌에는>이 출제되었다.  이 시를 노랫말에 붙인 가곡이 있을 정도로 지금까지도 애송되고 있다.  


 

산 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해마다 봄바람이 남으로 오네.

 꽃피는 사월이면 진달래 향기
밀 익는 오월이면 보리 내음새.

 어느 것 한 가진들 실어 안 오리
남촌서 남풍 불 제 나는 좋데나.

 

산 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저 하늘 저 빛깔이 저리 고울까?

금잔디 넓은 벌엔 호랑나비 떼
버들밭 실개천엔 종달새 노래

어느 것 한 가진들 들려 안 오리
남촌서 남풍 불 제 나는 좋데나 

 

산 너머 남촌에는 배나무 있고
배나무 꽃 아래엔 누가 섰다기

그리운 생각에 영에 오르니
구름에 가리어 아니 보이네

끊였다 이어 오는 가느단 노래
바람을 타고서 고이 들리네 
  

- 김동환  <산 너머 남촌에는> -

 

 

 

 

 

  

 

 

 

 

 

 

 

 

 

   

 

 

 

 

 

 

 

 

  

언어영역은 시뿐만 아니라 현대소설, 고전소설, 고전운문(시조, 가사 등), 수필, 희곡 그리고 가끔은 연극 대본도 출제되기도 한다. 

이번 수능에 출제된 현대소설과 고전소설은 이태준의 <돌다리>박지원의 <호질>이다.  두 작품은 문학 교과서에도 수록되어 있고 EBS를 포함한 언어영역 관련 문제집, 모의고사에도 많이 출제되는 작품이라 수험생들 입장에서는 현대소설과 고전소설 관련 문제가 쉬웠을 것이다.  

희곡에서는 함세덕의 <산허구리>가 출제되었다.  처음 보는 작품인데 이 희곡 역시 역시 EBS 문제집에 수록된 것이라고 한다.    함세덕의 희곡과 그의 작품세계에 대해서 많이 알지는 않지만 그가 쓴 <동승>(童僧)이라는 작품을 문제집을 통해서 공부한 적이 있었다.   줄거리는 확실히 기억은 안 나지만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동승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으며 불교적 성향이 있었던 작품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작가가 일제 강점기 시절에는 친일 성향의 희곡을 썼으며 광복 이후에는 사회주의 이데올로기 성향의 희곡을 쓰기 시작했는데 국내에서는 월북 작가로 알려져 있다.  

오늘날에는 월북작가들에 대한 해금조치가 이루어져 있어서 대학수능에서도 월북작가들의 작품이 많이 출제되고 있다.   앞에서 언급한 김동환이태준을 포함해서 지금까지 정지용, 백석, 이용악 (이상 시인) 등의 작품이 대학수능시험에서 지문으로 출제된 적이 있다. 

 

 

   

 

 

 

 

  

  

 

내가 수능시험을 쳤을 때도 그렇고 지금까지도 수험생들이 언어영역을 풀게 되면 문학 작품과 관련된 문제는 아무리 생소한 작품이 출제된다 하더라도 시험을 제대로 준비한 학생이라면 언어영역 문제 체감도가 쉽게 느껴졌을 것이다. 

하지만 비문학 작품만큼은 누구나 다 어렵게 느껴지는 부분일 것이다. 문학 작품에 비해서 내용이 조금 긴 편이라 빨리 읽기에는 버거운 편인데다 인문, 과학, 사회, 예술, 역사 등 광범위한 주제를 다룬 내용들이라 문과, 이과에서 지정한 공부만 해온 수험생들에게 이해하는 데 힘들어하며 어렵게 느껴진다.  

올해 수능 언어영역에 출제된 비문학 지문 역시 수험생들에게는 문제를 푸는 데 까다롭게 느꼈을 것이다. 

비트겐슈타인의 <논리 철학 논고>의 주요 내용을 설명한 글과 양자 역학의 불확정성 원리 를 설명한 과학적 내용으로 구성된 지문이 나왔다고 한다.   

만약에 이런 내용의 지문이 내가 수능시험을 쳤던 당시에 그대로 출제되었다면...   

음...   상상하기도 싫다. ^^;; 

   

 

*** 

 

블로그에 포스팅하면서 고등학생 시절과 5년 전의 수능시험이 많이 생각이 났다.   

그 때 수능시험 성적이 수십번 쳤던 모의고사 평균 성적보다 못했던 걸로 기억하고 있다.  언어영역은 80점도 넘지 못했으며 수리영역은 25점...?  (수리영역 점수 중 최악)    심지어 자신 있었던 사회탐구 영역마저도 평소 모의고사 때 나온 성적에 미치지 못할 정도로  지금도 기억하기 싫은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시험을 다 치고 난 뒤에 집으로 돌아갈 때 고등학교 3년동안 짊어지고 있던 수능이라는 짐이 이제야 내려졌다는 점에서 기분이 좋았지만 한편으로는 3년동안 준비한 것이 단 한 번의 시험으로 너무나 쉽게 노력의 결과가 결정되어진다는 점 그리고 그 결과가 좋지 않다는 점에서 마음 한 구석에 찜찜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런 기분은 수능시험을 쳐야하는 수험생 시절을 겪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그런 감정의 표정이 이제 몇 시간 뒤에 시험을 다 치고 나온 친구의 얼굴에 나타나 있을 것이다.  내 친구가 재수한다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는 내 인생에서 수능은 이제 나와 관련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었는데 5년이 지난 지금 친구의 수능시험을 보고 있는 모습이 아이러니하다.    

 

이제 이 글을 친구에게 하고 싶은 말로 마무리 지으려고 한다.  오후에 있을 수업을 위해서 학교에 가야 하기 때문이다.

 

" 친구, 2년 동안 제대로 놀지도 못한 채 공부하느라 정말 수고했다.    

홀로 외롭게 공부하는 네 모습을 보면서 친구로써 제대로 도움을 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네가 시험을 잘 쳤든 못 쳤든간에 너는 정말 최선을 다했다.   

그동안 홀로 짊어지고 있었던 수능이라는 짐을 던져 버리고  

고사장을 나오면서 걱정과 근심이라고 찾아볼 수 없는 활짝 웃는 너의 모습을 보고 싶다. 

시험 끝나고, 오랜만에 코 삐뚤어질 정도로 술 마시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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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 2011-11-10 16: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번째 수능이라... 친구분에 대한 우정이 느껴져서 저도 모르게 코가 시큰하네요.

언어영역에 저런 감성적인 시가 나온다니... 저는 어려운것만 나오는 줄 알았답니다!

cyrus 2011-11-13 11:52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소이진님 ^^

평소에 시집을 통해서 읽어보면 참으로 좋은 내용인데 시험지로 본다면
어렵게 느껴집니다. ^^;;

blanca 2011-11-10 2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친구분 수능 잘 치셨기를요. <산너머 남촌에는> 드라마를 꼭 챙겨 보는데 곽재구 시인의 시 제목이기도 하군요. 이 페이퍼 보니 국어 선생님 하셨으면 참 잘 하셨을 것 같아요. 저도 국어를 참 좋아라 했고 언어 영역은 비교적 좋은 점수를 받았습니다. 저는 수리 영역이 제일 무서웠어요. 대학교 갈 때도 제일 좋았던 게 수학을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된다는 거였고요^^;;

cyrus 2011-11-13 11:53   좋아요 0 | URL
본인 말로는 시험을 그렇게 못 친거 아니라고 하던데,, 올해만 해도
두번째로 듣는 대답이에요 ^^;; 그래도 이제 시험이 끝나 기분 좋은
친구 목소리 듣으니 저도 기분이 좋았습니다. ㅎㅎ

저는 국어 과목을 좋아했는데 수능에서는 좋은 점수를 받지 못했어요.^^;;

책을사랑하는현맘 2011-11-11 1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yrus님 국어 선생님 잘 어울릴 것 같아요.
제 기억속 저의 국어 선생님은 매일 시를 읊으며 창문을 내다보시던 남자 선생님..ㅎㅎㅎ

올해 수능이 이렇게 출제 되었군요.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주시니 너무 좋은걸요!
잘 읽었어요^^ 친구분과 즐거운 시간 가지셨길 바래요^^

cyrus 2011-11-13 11:56   좋아요 0 | URL
현맘님, 잘 지내고 계시죠?
학기중이라 현맘님도 많이 바쁘실거 같아요. ^^
학창시절 때 국어 교사가 되는게 꿈이었어요. ㅎㅎ

2011-11-12 00: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1-13 12:0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