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학기 시간표는 특이하다. 전공인 행정학과 수업만 듣는게 아니라 타과 전공 수업도 듣게 되었다. 그런데 복수전공인 경영학과 수업을 듣는 것이 아니다. 일반적인 행정학과 학생이 잘 신청하지 않는 수업을 듣고 있다. 그것이 바로 회화과 전공 수업인 '서양미술사'다. 교양 수업이 아니다. 실제 3학점 회화과 2학년 전공필수 과목이다. 대학 졸업하기 전까지 인문학에 가까운 수업 한 번이라도 받아보는 것이 소원이었는데 그 꿈(?)이 서양미술 과목을 공부하는 것으로 실현된 것이다. 사실 회화과 수업을 신청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따로 있다. 이번 기회에 제대로 서양미술을 확실하게 배우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제대로 된 공부 없이 이것저것 책을 읽어가면서 독학 아닌 독학을 하다보니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미술사조의 범위가 좁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애초에 흥미가 없었던 경영학과 수업을 과감히 포기하고 별천지나 다름없는 회화과 전공수업을 듣게 된 것이다. 하지만 기본적인 지식을 갖추었기에 강의 듣는데 별 불편함은 없다. 게다가 회화과 특성상 강의실에 여학생이 많다보니 오히려 이런 강의 분위기가 개인적으로 마음에 든다.. 여학생들에게 둘러싸여 있어서 공부 의욕이 더 넘친다고 해야 되나...?

 

그리고 서양미술사 과제도 마음에 든다. 특정 서양 미술 사조의 특징에 대해서 논하면 되는 건데, 그냥 단순히 서술하는 게 아니라 특정 주제를 정해서 독창적으로 작성해야 한다. 첫 번째 과제가 중세미술의 특징에 대해서 조사, 작성하는 것이다. 그래서 고심 끝에 종교미술에 가장 많이 다루는 '수태고지'를 중심으로 중세미술 양식의 각 특징을 정리해봤다.    

 

 

 

 

 수태고지(受胎告知) 도상의 의미

 

 

 

 

 

 

레오나르도 다 빈치 「수태고지」1472~1475년경

 

 

“여섯째 달에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들어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정혼한 처녀에게 이르니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라. 그에게 들어가 가로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하시도다 하니. 처녀가 그 말을 듣고 놀라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고 생각하매 천사가 일러 가로되 마리아여 무서워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얻었느니라.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까.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 마리아가 가로되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리라” (「누가복음」 1장 26~38절)

 

수태고지(受胎告知, Annunciation)는 『신약성서』「누가복음」 1장 26~38절을 바탕으로 한다. 하느님의 사자(使者)인 대천사 가브리엘이 처녀 마리아에게 그리스도의 임신을 알리는 이야기를 주제로 하고 있다. 그리스도교도들은 이것을 '처녀수태'라고 말한다. 기독교 미술의 오랜 주제 중 하나로써 수많은 화가들이 즐겨 그렸다.

 

초기 그리스도교 미술과 비잔틴 미술에서는 우물가의 마리아에 대한 수태고지와 외경(外經)으로 전해지는 실 잣는 마리아에 대한 수태고지의 두 가지 형식이 별도로 다루어졌으나, 그 후 고딕 미술에서는 독창적인 형식이 나타났다. 명상 중인 마리아에게 가브리엘이 나타나는 장면이다. 이때 마리아는 대개 서 있거나 앉았거나 무릎을 꿇고 있다. 천사는 보통 가브리엘 한 사람만을 그리고 있으나 2∼3명의 천사를 함께 그리는 경우도 있고, 때로는 하느님의 사자로서 성령의 비둘기를 그리는 경우도 있다. 또 천사는 백합꽃을 들고 있는 때가 많은데, 이 꽃은 하얗고 암수의 구별이 없기 때문에 마리아의 처녀성을 상징한다.

 

 

 

 수태고지 도상으로 살펴보는 중세미술의 특징

 

 

 (1) 비잔틴 미술 (Byzantine art)

 

 

 

 

 

 

 

 

 

 

 

 

 

 

 

 

 

 

 

 

 

작자 미상, 이콘화「수태고지」14세기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동로마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을 건설한 330년부터 시작되어 터키의 오스만 제국에 의해 함락된 1453년까지 동방 기독교 사회에서 전개된 미술 양식이다. 비잔틴 회화의 가장 뚜렷한 특징은 아름다움을 배제한 종교적 색채이다. 봉건 영주들을 위한 세속적인 그림 등 비종교적인 미술도 있었지만, 이는 기독교 미술에 비해 미미한 수준이다. 성경에 대한 개인적인 해석과 자유보다는 정통 교리와 교회의 강령을 표현하는 데 충실하였다. 비잔틴 미술의 화가들은 자연을 똑같이 그리거나 아름답게 표현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성서의 내용과 종교적 가르침을 미술의 언어로써 가르치고 전달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2) 로마네스크 미술 (Rpmanesque art)

 

 

 

 

 

 

 

 

 

 

 

 

 

 

 

    

 

 

(左) 『수녀원장 메셰데의 히타의 성복음집』중 수태고지, 1020년경

(右) 프레스코화 「수태고지」 (물렛가락을 든 마리아), 12세기 중엽

 

4세기에 로마가 동로마와 서로마로 분리되면서, 동로마에서는 비잔틴 미술이 독자적으로 발달하였으나 서유럽은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으로 인하여 멸망하고 세력권은 분할되었다. 이에 따라 서유럽에서는 예술이 한동안 암흑기를 겪었으나, 11세기부터 본격적으로 안정을 찾으면서 로마네스크 양식이 발달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도 비잔틴 미술의 전형적인 특징인 그림을 통한 교의 해설, 즉 '그림으로 보는 성서'로서의 성격이 확립하게 된다. 비잔틴 회화의 영향을 받았지만 양식은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고 전반적으로는 사실에 구애받지 않고 강한 색채와 힘 있는 묘선을 구사하여 형태에 있어서 강렬한 표현력을 주고 있다.『수녀원장 메셰데의 히타의 성복음집』에 실린 수태고지 삽화는 유려한 선 묘사와 활기 있는 채색에 특색이 있다. 12세기 중엽, 카탈루냐 지방에서 그려진 수태고지 프레스코화 속 인물들은 전체와의 조화를 꾀하여 신장, 왜곡 등의 변형이 가해져 있다. 

 

 

 

 (3) 고딕 미술 (Gorhic art)

 

 

 

 

 

 

 

 

 

 

 

 

 

 

 

 

 

 

 

 

 

 

시모네 마르티니「수태고지」1333년

 

 

 

 

 

 

 

프랑스 샤르트르 대성당 스테인드글라스 「수태고지」 12세기 중엽

 

 

 

고딕 미술은 12세기 후반부터 15세기 말까지, 서유럽 전반에 걸쳐 나타났다. 로마네스크 미술의 발달의 결과로 형성되었으면서도 많은 점에서 로마네스크 미술과는 대조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12세기 후반까지만 해도 회화, 건축에 로마네스크 성격이 남아 있었을 정도로 과도기적 성향을 나타냈다. 시모네 마르티니의 「수태고지」에는 흘러내리는 의상의 부드러운 곡선과 가느다란 몸매의 미묘한 우아함이 표현되었다. 이전의 비잔틴, 로마네스크 회화 양식과 새로운 표현방법이 어떻게 절충되어 효과적으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 본격적인 고딕 미술은 12세기 말부터 약 1세기 동안 지속되었다. 이전의 비잔틴, 로마네스크 회화와 마찬가지로 고딕 미술도 신학적 상징의 해석을 중요시했지만 거기에 화려한 색채를 통한 성스러운 아름다움을 추가하기 시작했다. 특히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한 성상화가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특히 고딕 건축을 대표하는 프랑스 샤르트르 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가 가장 유명하다. 색채 대비의 아름다움에, 투과의 영롱함을 결부시켜 어두운 성당 안에 비치는 스테인드글라스의 색과 빛을 통해 화려하면서도 성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중세미술의 재발견

 

중세미술은 성경 속 이야기와 같은 상징을 담은 작품만 제작된 기독교 미술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내용면에서 성화만 기독교 미술로 선을 그으면 표현에 제한을 두는 것이다. 이는 성도들끼리 교감하자는 것이다. 성화는 비잔틴 양식부터 고딕 양식에 이르러 전성기를 맞았다. 화가들이 성서 속 장면을 재현해 신의 섭리를 시각적인 언어로 보여줘 감동을 줬다. 당시 성화는 신을 찬양하는 도구로 사용됐다. 그래서 다른 회화사조에 비해 중세미술의 가치는 저평가 받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중세미술도 다른 회화 양식에 절대 뒤지지 않는다. 시대를 거듭할수록 기독교적 원칙에 바탕을 둔 상징성을 중시하면서도 외래양식을 혼합하여 형식에 제한을 두지 않는 독창적인 표현으로 발전하였다. 현대에 사는 우리는 이제 중세미술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야 한다. 구상, 입체, 미적 가치 등 형식과 내용에 제한을 두지 말고 폭넓은 이해로 중세 미술을 받아들여야 한다. 중세 미술의 특징은 기독교적 윤리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아름다움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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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이재익, 크리에이터 - 소설.영화.방송 삼단합체 크리에이터 이재익의 거의 모든 크리에이티브 이야기
이재익 지음 / 시공사 / 2012년 8월
평점 :
품절


 

 

1%의 직감과 99%의 땀이다. 창의성은 직관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노력'에 의해 만들어진다. 여기서 말하는 '노력'이란 소위 잘 나가는 크리에이터가 쓴 책들을 읽고 따라하는 게 능사가 아니다. 다양한 분야에 호기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경험을 해보려는 '크리에이티브 중심적 습관'이 자연스럽게 몸과 마음에 익숙해진다면 굳이 긴 시간을 투자할 필요가 없다. 습관이 곧 노력이다. 크리에이터가 된다는 건 자신의 노력량에 따라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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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 쿠바 미사일 위기 회고록
로버트 F. 케네디 지음, 박수민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9월
평점 :
절판


 

 

 

(JFK) 대통령이 말했다. <최악의 상황은 오판, 즉 어리석은 판단을 하는 거야>

 

- 로버트 F. 케네디 『13일』(13 days) p 51 -

 

 

 

 

 

 

 1962년 10월 16일 화요일 아침, 위기의 시작

 

 

 

 

 

 

소련 공산당 서기장 니키타 흐루쇼프와 미국의 대통령 JKF

 

 

 

 

올해 10월은 쿠바 미사일 위기 50주년이다. 요즘 사람들 중에 쿠바 미사일 위기에 대해서 자세히 아는 이가 드물 것이다. 하지만 50년 전 이 때의 시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면 쿠바 미사일 위기 사태는 그리 가볍게 볼 사건은 아니다. 1960년대는 미국과 구 소련을 정점으로 동서 양 진영의 대립이 첨예화되던 시기였다. 그 와중에 터진 게 그 유명한 쿠바 미사일 위기 사건이다. 피델 카스트로(1926~    )가 이끄는 혁명정부가 쿠바에 들어서면서 소련의 흐루쇼프(1894~1971) 공산당 서기장과의 밀월관계에 들어가고 미국은 초긴장 상태에 빠진다. 1962년 10월 16일. 미국과 소련은 13일 간 전 세계를 파멸시킬 수 있는 힘으로 무장한 채 으르렁거렸다. 평범한 일상이 될 법한 그 날 화요일은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인류의 평화가 달려 있는 위기의 시작이었다. 미국과 소련의 전쟁이 발발한다면 핵전쟁이 될 것이다. 핵전쟁은 수백만명의 목숨을 앗아갈 것임을 잘 알면서도 전쟁의 문턱까지 갔었다.

 

당시 소련은 미국의 위협으로부터 자생적 사회주의 국강인 쿠바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대량의 무기를 쿠바에 반입했다. 이에 미국은 방어용 무기의 반입은 묵인하겠지만 공격용 무기만큼은 절대로 허용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쿠바에 미국을 공격할 수 있는 미사일 기지가 세워진다면 소련으로서는 전략적으로 확고한 우위를 확보할 수 있었다. 쿠바는 미국 아래 카리브 해역에 있다. 미국은 소련이 최악의 행동은 하지 않을 것으로 봤다. 당시 흐루쇼프 서기장은 존 F. 케네디(JFK, 1917~1963) 미국 대통령에게 호감을 갖고 있었기에 미국 수뇌부는 소련이 미국의 뒷통수를 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나톨리 도브리닌(1919~2010) 주미 소련 대사 역시 백악관을 방문하면서 그런 최악의 상황은 절대로 없을 것이라고 못을 박았다. 오히려 핵전쟁의 전초전을 우려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미국은 소련이 쿠바에서 미사일 기지를 건설 중인 것을 발견했다. 소련에게 뒷통수 맞은 미국 수뇌부는 황급히 국가안전보장회의 집행위원회(ExComm, 엑스콤)를 소집했고 모든 대안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최적의 해결 방안을 도출하기 위한 의사 결정 과정

 

 

 

 

 

 

백악관 정원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JFK와 바비(로버트 F. 케네디)

JKF는 정책을 결정할 때 항상 바비의 의견을 귀 기울였다고 한다.

(『13일』수록)

 

 

JFK의 동생이자 케네디 행정부 시절 법무장관으로 활동했던 로버트 F. 케네디(애칭 '바비', 1925~1968)는 당시 엑스콤 회의에 참석했는데 그 때 당시 회의의 순간들을 생생하게 회고하고 있다. 미사일 반입을 묵인한다는 안에서부터 공중공격을 통한 기지 파괴 심지어 카스트로를 암살해야 한다는 극비 침공까지 다양한 안이 탁자에 올랐다. JFK 입장에서는 수뇌부들의 의견이 일치하지 못해 확실한 방안 하나 제대로 결정하기가 힘들었을 정도였다. 그러나 JFK와 바비는 쿠바 침공을 통한 소련과의 전면전보다는 포성 없이 평화적으로 해결되기를 원했다.

 

그래서 JFK는 좀 더 활발한 토론을 통한 최적의 방안을 강구하기 위해 기존의 의사결정 방식에 변화를 줬다.  각각 부처의 의견을 종합적으로 수렴하기 위해서 대책 회의에 직접 참석하지 않았다. 되도록이면 자신이 듣고 싶어 하는 의견을 듣지 않도록 하기 위한 대통령의 결정이었다. 의사 결정 참여에 있어서 내부의 정보만 참고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의 정보도 적극적으로 반영했다. 외교 활동에 잔뼈가 굵은 전직 소련 주재 대사의 의견을 참고할 정도로 다양한 의견들을 듣고자 노력했다.

 

 

 

 쿠바 미사일 위기의 최종 교훈,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기

 

미국은 제3차 세계대전의 발발을 원하지는 않았지만 소련이 쿠바의 미사일을 철수하기 위해서는 단호한 입장을 과시해야 했다. 그러나 대응 강도를 높여서 소련에 압박을 줘서도 안 되었다. 소련에게 생각할 시간과 체면을 잃지 않은 채 후퇴할 수 있는 여지도 주어야 했다. 그래서 채택된 것이 해상봉쇄였다. 10월 22일. JFK는 중대 연설을 통해 쿠바로 향하는 모든 선박에 실린 공격용 군사무기를 철저히 봉쇄할 것이며 흐루쇼프 서기장에게 도발을 중단하고 미사일을 제거할 것을 촉구했다.

 

일부 미국 여론과 보수 진영의 공화당 진영은 JFK의 해상봉쇄령이 소련과의 갈등을 더욱 장기화시킬 수 있다고 비판했다. 심지어 비판적인 지식인이었던 버트런드 러셀마저도 미국의 강경책에 비난할 정도였다. 그러나 JFK는 소련이 세계적인 망신을 당하지 않고 소련이 국익 때문에 대응 강도를 높이지 않도록 심사숙고하게 검토했다. 상대방 소련의 입장을 최대한 생각하고 존중한 대응책인 것이다. 쿠바 미사일 기지를 정찰하고 있었던 미국 U-2기가 격추당하는 돌발의 사태가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JFK는 차분하게 대응했다. 전면전의 위기 속에서도 흐루쇼프 서기장과의 서신을 주고받으며 군사적 충돌을 피하고자 했다. 쿠바 미사일 위기는 단순히 미국과 소련 간의 전면전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전초전이 아니다. 세계 인류의 멸망을 초래할 수 있는 핵무기로 무장한 제3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될 수 있었다. JFK는 전쟁으로 인한 인류 멸망의 가능성을 항상 염두에 두었다. 흐루쇼프가 자국의 이익이 아닌 인류 전체의 이익을 우선시되는 결정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었다. 제안과 역제안이 오가는 비밀협상을 통해 미국은 쿠가 불가침과 터기 및 이탈리아 배치 미사일 철수를 약속했고 소련은 선박을 회항시켜 쿠바 미사일 계획을 철회함으로써 위기는 풀렸다.   

 

  

 

  

 국가의 지도자라면 꼭 읽어봐야 할 논픽션

 

쿠바 미사일 위기는 지도자의 특성과 위기관리능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볼 수 있다. 로버트 케네디는 13일 간 이루어진 위기 극복의 과정을 『13일』이라는 한 권의 논픽션을 통해 그 당시의 상황들을 묘사할 뿐만 아니라 원활한 의사결정 과정이 이루어지기 위한 알아야 할 교훈들을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첫 번째, 의사결정자는 항상 자신이 듣고 싶어하는 것만 들으려 하는 맹신에 빠진다. 그리고 익숙한 정보와 경험만 가지고 상황을 판단하고 추측하려는 성향이 있다. 미국은 사태 이전동안 쿠바 미사일 기지를 정찰하면서도 소련이 쿠바 땅에 기지를 설치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다. 당시 흐루쇼프 서기장은 JFK에게 공식 비공식 채널을 통해 절대로 그런 일이 없다고 단언했다.

 

두 번째, 절체절명의 위기의 순간 속에서도 이성적으로 판단할 것. 만약에 JFK가 해상봉쇄령 대신에 전면전을 예고하는듯한 강경한 군사적 대응을 준비했더라면 지금쯤이면 이 세계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그리고 침공을 주장하는 군 수뇌부의 입장만 곧이곧대로 들었다면? 우리가 공부하고 있는 역사 교과서에 '쿠바 미사일 위기'와 함께 '제3차 세계대전'이 소개되어 있을 것이다. 아니,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 의 마지막 장면처럼 전 세계 인류가 핵으로 멸망했을지도.

 

세 번째,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기. 상대방을 설득하기 위해서 필요한 자세가 아니다.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상대방의 입장 또한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제아무리 논리적인 사람이라도 자신의 의견과 대립되는 입장에 선 의견이나 정보를 무시하게 된다. '친구는 가까이, 적은 더 가까이'라는 스티븐 잡스의 말처럼 자신의 입장을 논리적으로 반박할 수 있는 '악마의 대변인'(Devil's advocate)이 필요하다.   

 

비록 냉전시대의 사건이라서 지금의 구도와는 맞지 않을 수도 있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하지만 기본적인 국가의 전략을 논하고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국익을 지켜내는 강력한 리더십을 생각한다면 지금 미국이나 한국 정부가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을 수 있는 매우 유익한 역사적 사례이다. 냉전의 찌꺼기기 유일하게 남아있는 한반도의 분단구조를 등에 업고 북한의 김정은 정권은 국제사회에서 신뢰를 무너뜨리면서 버거운 생존게임(survival game)을 벌이고 있다. 북한의 군사적 도발은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일이다. 교전 상황에서도 상대 의중을 정확히 파악해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는 채널과 통제력을 확보해야 한다. 평화는 우세한 군사력에 엄격한 통제 시스템, 대외 협상력과 외교 그리고 국민의 의지가 뒷받침돼야 유지될 수 있다. 로버트 F. 케네디의 논픽션은 당시 사태의 긴장감을 살리지 못해 밋밋한데다 가벼운 분량이다. 하지만 여전히 군사적 충돌의 긴장감이 흐르고 있는 지금 한반도의 상황을 생각해본다면 그리 가볍게 볼 책은 아니다. 특히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대선을 앞둔 채 차기 한국의 지도자를 준비하고 있는 대권주자들에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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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03 11: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0-03 21: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추석 전날 달밤에 마루에 앉아
온 식구가 모여서 송편 빚을 때
그 속에 푸른 풋콩 말아 넣으면
휘엉청 달빛은 더 밝아오고
뒷산에서 노루들이 종일 울었네

저 달빛엔 꽃가지도 휘이겠구나"
달 보시고 어머니가 한마디 하면
대수풀에 올빼미도 덩달아 웃고
달님도 소리 내어 깔깔거렸네
달님도 소리 내어 깔깔거렸네

- 서정주  <추석 전날 달밤에 송편 빚을 때> -

 

 

 

환한 달빛 미소에 수줍어 구름 사이에 숨은 보름달을 반갑게 맞이하여 웃음이 가득한 행복한 추석 보내시기 바랍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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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2-09-29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정주 시인은 푸른 풋콩 넣은 송편의 기억이 있나 봐요.^^
마지막 문장 보며 싱긋~ 넉넉하게 입꼬리가 올라가요.
사이러스 님도 행복한 추석 보내시기 바랍니다.^^
저는 이제 음식하러 가봐야겠어요.~~~

saint236 2012-09-29 1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이러스님도 행복한 추석 보내시길...
지갑은 어쩐지 몰라도 마음만은 풍요로운 명절이 되세요..
 
뒷모습
미셸 투르니에 지음, 에두아르 부바 사진, 김화영 옮김 / 현대문학 / 2002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Scene #1 고독한 석전경우(石田耕牛)

석전경우(石田耕牛)는 거친 돌밭을 묵묵히 갈아매는 소처럼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딘다는 뜻을 지닌 사자성어다. 양손에 물뿌리개를 든 채 정원으로 향하는 노인의 뒷모습은 속도전의 사회 속에서도 우직한 걸음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고집과 여유로움이 느껴진다. 누구나 젊은 시절에는 앞뒤 물불 가리지 않는 혈기왕성한 ‘황소’였지만 세월의 장사 앞에서는 평온함과 여유를 찾는 ‘우공’(牛公)이 된다. 한편으로는 정원의 노인의 뒷모습은 플랑드르의 화가 피터르 브뤼헐의 그림에 등장하는 농부를 연상케 한다.

젊은 이카루스가 광활한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다. 그림 속 농부는 물에 빠져 살려 달라는 이카루스의 절규를 분명 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일에만 몰두 하고 있다. 그저 묵묵히 소를 몰아 밭을 갈고 있다. 세상은 개인의 운명엔 조금도 관심이 없어 보인다. 바깥 세상에 대한 무관심이 만들어 낸 쓸쓸한 뒷모습이기도 하다.




Scene #2 포옹으로 사랑 확인하기






진정한 사랑을 확인하는 방법은 무척 다양하다. ‘사랑한다’는 말 자주 하기, 너무 식상하다. 그리고 말 한 마디만으로도 사랑의 진정성을 확인할 수 없다. 서로 눈 마주치기, 너무 모호한 감이 있다. 비언어적 소통은 자칫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뽀뽀와 키스, 시작 단계의 애정을 확인하는 행위로써의 의미가 강하다. 그래서 남녀 모두 공통적으로 ‘첫’ 키스와 뽀뽀에 대한 기억이 제일 강하다. 섹스는 사랑의 종착역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너무 타락했다. 그렇다면 남은 게 포옹하기(Hug). 포옹할 경우, 뇌에서 분비되는 '사랑의 호르몬'인 옥시토신이 분비된다. 옥시토신이 많이 나올수록 스트레스를 크게 낮춰주는 효과가 있다. 몇 년 전에 전 세계적으로 유행을 했던 ‘프리 허그’(Free Hug) 운동이 우리 몸과 마음에 유익한 생리학적 효과가 있었던 것이다.

스킨십은 의사소통을 하는 여러 가지 방식 중에서 가장 날것이며 직접적 방식이다. 그러나 삐뚤어진 ‘성’(性) 가치관에서 비롯된 흉흉한 범죄사고가 늘어나고 있는 요즘, 자유로운 포옹 행위가 어색해져만 가고 있다. 심지어 사랑하는 사람들도 오래 살다보면 연인 시절 때 자주 하던 키스나 스킨십이 줄어들듯이 간단한 포옹하는 것마저도 잊어버린다. '촉감 궁핍의 시대’인 셈이다. 인간은 말랑말랑한 살갗이 바깥에 있는 인체 구조를 지녔기 때문에 외부 촉감을 잘 느낄 수 있다. 엉큼한 흑심을 품은 채 인간 몸 구조를 잘 활용하는 포옹도 좋겠지만, 마음과 마음의 포옹이라도 서로 간에 우선 건네는 것이 더 좋다. 사진 속 연인처럼 포옹을 자주 한다는 것은 진정한 사랑을 확인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랑을 하고 있다는 신체적 반응 행위이기도 하다. 그래서 시간이 정지된 듯이 사랑하는 사람을 안고 있는 연인의 뒷모습은 아름답다.





Scene #3 따뜻한 모정의 체온을 느낄 수 있는 곳



아마도 아기를 어머니의 등에 업는 풍속이 있는 지역이 아시아권 국가뿐일 것이다. 유럽 풍속 중에 우리나라나 인도의 어머니처럼 아기를 등에 업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유럽의 경우, 아기를 요람 위에 재우는 모습이 대부분이다. 아기를 돌보는 풍속이 차이가 있다고 해서 그것이 모정(母情)의 정도 차이로 설명할 수 없다. 다만, 유럽보다는 아시아권 국가의 어머니들이 더 아기를 최대한 자신의 곁에 가까이 돌본다. 시장을 가더라도 어머니는 아기를 등에 업고 다닌다. 부엌에서 요리를 준비할 때도 그렇다. 박수근의 그림 속 어머니처럼 약간의 힘이 요구되는 노동을 할 때에도 마찬가지다. 아기가 낮이나 밤에 잠드는 것을 제외하면 24시간의 반은 어머니의 등에 지낼 때가 많다. 어머니 당신 입장에서는 체력적으로 소모가 크지만 자신의 등 뒤에서 편안하게 잠이 든 아기의 모습이 무척 사랑스러워 보일 것이다. 아기가 어머니의 등에 업히는 행위는 단순히 아기를 좀 더 안전하게, 그리고 간편해서 돌보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다. 아기가 어머니의 등에서 나온 따뜻한 모정의 체온을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편안한 휴식처이며 아기만의 집이다.



Scene #4 바다(Mer)와 어머니(Mère) 그리고 자궁(Matrice)





어머니 그리고 어머니의 품 안에 있는 아기는 자신들 앞에 펼쳐진 거대한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어머니와 아기가 함께 하고 있을 때의 뒷모습은 어른이 되면서 잊혀져가는 모정을 다시 한 번 느끼게 해준다. 가끔 우리는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리고 그 때 함께한 존재들을 먼 기억의 저 편으로부터 끄집어내기도 한다. 어머니가 된 아이는 자신을 낳아 준 어머니의 존재를 그리워한다. 이제 막 세상 밖으로 나온 아기는 자궁 속에서 생활했을 때의 버릇이 남아 있다. 아기를 따뜻한 물에 목욕을 시키면 물에 대한 두려운 반응 없이 물장구를 친다. 자궁 속 양수를 받아들이는 신체적 반응에 의한 행동이다.

“넓고 넓은 바다라고 말들 하지만 / 나는 나는 넓은게 또 하나 있지 / 사람 되라 이르시는 어머님 은혜 / 푸른 바다 그보다도 넓은 것 같애”

‘어머니 은혜’의 노랫말처럼 정말 어머니의 존재는 넓고 넓은 바다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위대하다. 어머니의 자궁이 없었다면 과연 우리는 세상 밖으로 태어날 수 있었을까?




Scene #5 화려한 열정 뒤에 숨겨진 노력의 흔적




프랑스의 화가 에드가 드가가 남긴 수많은 그림들 중에는 유독 무희(무용수, 발레리나)들을 모델로 한 작품들이 꽤 많이 있다. 무희의 행동 하나하나 관찰을 했을 정도로 적지 않은 데생들도 남아 있으니 ‘무희의 화가’ 답다. 드가는 사람들의 무심한 한순간의 동작 따위를 포착하는 데 명수였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드가는 여성혐오주의자다. 무희들의 순간 동작과 예기치 않은 손과 발의 움직임에 눈먼 그가 삶에서 가장 싫어했던 사람이 또한 무희였다. 어떻게 보면 드가가 그린 무희들은 여성 혐오적 시선과 예술적 이상의 간극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드가의 사연은 그림을 보는 데 있어서 그리 중요하지 않다. 드가의 섬세하고도 치밀한 관찰과 묘사는 마치 현장을 보는듯한 생생한 감동을 전해 준다. 드가의 무희 그림을 연상하게 만드는 사진 역시 그렇다. 우리는 역동적인 자세로 춤을 추는 우아한 모습의 무희만 생각한다. 그러나 토슈즈를 매만지는 동작에도 우아함과 섬세함이 느껴진다. 춤의 열정을 잠시 뒤로 한 채 복장을 점검하며 숨을 가다듬는 무희의 뒷모습에는 화려함 뒤에 숨겨진 피나는 노력의 흔적이 환하게 빛나고 있다.



뒷모습은 역설적으로 말하자면 ‘또 다른 제2의 정면’이다. 다만 보이지 않아서 뒷모습의 진면목을 그동안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뒷모습을 통해 절실한 생의 존재감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삶을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서 결정되는 세월의 흔적 역시 정면에만 남는 건 아니다. 정면은 그저 드러난 앞면일 뿐이다. 그리고 우리는 진실을 숨기고 가리기 위해서 가면을 쓰기에 급급하다. 꾸미고 장식되고 포장된 앞모습보다 꾸밀 수 없고 속일 수 없는 뒷모습이 더 정직하다. 이제 정면만 관리하지 말고 소홀히 했던 뒷모습도 돌아볼 줄 아는 삶의 내공이 필요하다. 뒷모습 또한 우리의 얼굴이다. 앞뒤가 서로 다른 이중적인 존재가 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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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236 2012-09-29 1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앞모습은 꾸밀 수 있지만 뒷모습은 꾸미려고 하지도 않고, 꾸미기도 어렵기 때문에 앞모습보다 더 솔직한 것이 아닐까요? 예전에 새벽에 예쁘장한 여자가 지나가더라고요. 옷도 잘 입었고...스타일이 괜찮다 싶었는데, 거기다 찾아보기힘든 롱스커트까지...그런데 뒤에 뒷모습을 보니 롱스커트가 팬티 안으로 말려 들어가 있더라고요. 아마도 잔뜩 취해서 옷매무새를 정리 못했나 봅니다. 사이러스님의 글을 읽다보니 그 여인의 상태를 정확하게 보여주는 뒷모습이 문득 생각이 나네요.

cyrus 2012-10-02 20:17   좋아요 0 | URL
ㅎㅎㅎ 맞아요, 저도 가끔 운이 좋으면(?) 재미있는 뒷모습을 목격할 때가 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