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회화의 혁명 - 도미에에서 샤갈까지
게오르크 슈미트 지음, 김윤수 옮김 / 창비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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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화과 학생들이 그리고 싶어 하는 그림

 

작년 2학기 때 수강했던 수업 중에 ‘서양미술사’라는 과목이 있다. 원래 전공은 행정학과인데 미술에 관심이 많아서 회화과 수업을 듣게 되었다. 본 전공과 전혀 다른 수업 분위기는 색다른 느낌을 받았고, 몇몇 회화과 학생들과 친분을 맺으면서 회화과 학생 특유의 생각을 알 수 있었다. ‘서양미술사’ 수업은 회화과 2학년 전공필수 과목이라서 수강생 중에는 11학번 2학년 학생들이 가장 많았다. 

 

교수가 수업 도중에 학생들을 훈계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매번 하는 질문이 딱 하나 있었다.

“너희는 어떤 그림을 그리길 원하는가?” 회화과 학생들이 처음 대학교에 입학했을 때 먼저 하는 것이 전공교수와 일대일 상담이다. 상담을 통해 학생들의 진로를 알아볼 수 있는데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 전업화가나 미술 관련 분야의 직업을 선호하는 편이다. 그래서 교수는 상담에 응하는 학생들에게 무조건 이 질문을 한단다.

 

그런데 이 질문에 대한 회화과 학생들의 답변은 비슷하다. ‘대상을 정확하고 똑같이 그리는 것’. 교수는 학생들의 천편일률적인 답변에 일침을 가한다. “그런 그림을 그리고 싶으면 여기 서양미술사 수업을 들을 필요가 없다. 그리고 지금 현대미술이 빠르게 발전되는 시점에서 대상을 무조건 정확하게 그리려고 한다는 것은 구시대적인 생각이다.”

 

 

 

 익숙한 것과의 결별에서 시작된 근대미술

 

교수가 회화과 학생에게 던지는 이 간결한 질문은 정말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학생이 그리고 싶어 하는 그림이 어떤 건지 묻는다는 것은 결국 자신이 그림으로 표현하고 싶은 예술적 정체성이 무엇인지 묻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예술적 정체성 없이는 자신이 원하는 그림을 표현할 수 없다. 만약에 이 회화과 학생들이 유행에 따르듯이 다른 화가 지망생들과 비슷한 표현 방식으로 그림을 그린다거나 과거 화가들의 작품을 정확하게 모사하는데 그친다면 발전이 더디어질 것이고 전도유망한 화가가 될 수 없을 것이다.

 

예술 창작이나 발상 면에서 독창성을 잃고 평범한 경향으로 흘러간다면 회화과 학생들은 방대한 분량의 서양미술사를 공부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표현수단의 고정성이 강하면 예술의 신선미와 생기를 잃게 된다. 이것은 곧 ‘발전’이 아니라 ‘퇴행’이다.

 

서양미술사를 살펴보면 여러 단계의 전환점을 기준으로 발전되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학자마다 발전의 기준을 보는 관점이 차이가 있지만 근대서양미술사의 권위자로 알려진 게오르크 슈미트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첫 번째 회화 역사의 시작은 원근법, 명암, 신체적 비례 등의 정확성에 의한 묘사를 요구하지 않았던 중세 초기부터 보고 있다. 이때는 눈에 보이는 현실을 구체적으로 그리기보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추상적 표현으로 발전했다. 두 번째, 중세미술은 바야흐로 조토 디 본도네의 등장과 함께 현실의 묘사를 추구하기 시작했고 드디어 공간적, 해부학적 정확성이 강조되었다. 세 번째의 발전 단계는 이전 시기처럼 눈에 보이는 현실을 정확하게 묘사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지만, 대상을 보는 인식이 상대적이며 주관적이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지막 네 번째 단계는 바로 정확성을 강조한 고전적 화풍을 완전히 탈피하여 화가의 개성적 표현을 강조하는 근대미술로 도달하게 된다.

 

'근대미술'(Morden Art)의 정의 및 시기는 사람에 따라 그 견해가 다르게 구분되고 있지만 ‘예전’과 다른 ‘새로움’의 가치개념으로 보면 된다. 다시 말하자면 전통적 회화방식에서 강조하는 표현의 정확성을 과감하게 버리는 진취적인 발전을 이룩하는 시기이다. 화가가 대상을 정확하고 똑같이 표현한다는 것은 근대미술 등장 이전 화가들에게는 필연적인 과제였다. 고전적 회화에 익숙한 것과의 결별을 통보함으로써 근대미술의 서막이 본격적으로 열리게 된 것이다.

 

 

 

 근대회화의 시작은 도미에로부터

 

 

 

오노레 도미에  『돈 키호테와 산초 판사』 1850년경

 

 

근대미술의 시작은 인상주의(impressionism)의 등장과 함게 소개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게오르크 슈미트의 소개는 다르다. 사실주의의 대표적인 화가인 오노레 도미에의 등장을 시작의 출발점으로 보고 있다.  

 

미술사조로서의 사실주의는 과거의 고전주의가 추구한 정형화된 이상이나 규범을 거부하고 오로지 눈으로 보고 경험한 세계를 객관적으로 묘사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객관적인 현실의 충실한 재현이란 과제를 수행하고자 한 사실주의는 그리스 고대 문화 모방을 강조한 신고전주의 미술과 비교해볼 때 전위적인 성격을 드러낸다. 그들은 그 시대에 적합한 것은 그 시대의 현실 속에서 취해져야 한다고 믿었다.

 

그렇다고 도미에가 사실주의 화파라고 해서 대상의 정확성을 추구한 건 아니다. 명암을 기조로 한 유동감과 높은 정신성을 지닌 표현을 통해 대상을 솔직 예리하게 관찰했다. 특히 대상을 시각적 영상으로 충실히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의미에서 그 대상을 고의로 왜곡시켜 그리는 데포르마시옹(déformation) 기법을 이용해 화가의 진실된 감정을 캔버스에 표출하고 있다. 사물의 자연형태에 보다 주관적인 왜곡을 가하는 도미에의 그림은 충실한 재현에서 벗어나 형체와 비례가 파괴당하고 있다.  여기에는 어떤 부자연스러움과 불쾌감을 느끼게 하는 부분이 있지만 동시에 그만큼 새로운 조형적 시도를 통한 창조성으로의 기대치를 높여주고 있다.

 

 

 

빈센트 반 고흐  『자장가 (룰랭 부인의 초상)』 1889년

 

 

도미에의 선구자적 회화 기법은 프랑스 파리로 홀로 건너가 독학으로 그림을 공부하는 젊은 반 고흐에게 영향을 미쳤다. 고흐가 습작 시절에 정확한 그림을 그리는 것을 목표로 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드물다. 하지만 그도 오랜 모사와 독학 끝에 정확한 형태의 회화 묘사에 대해서 회의적인 입장을 하게 된다. 대샹을 정확하게 그린다고해서 진실적 가치를 제대로 담아낸다고 볼 수 없다고 고흐는 확신했다.

 

"모든 아카데믹한 형태는 오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도미에가 그런 형태를 그린다면, 그 비례는 아카데믹한 작가의 눈에는 제멋대로인 것처럼 보일테지. 하지만 그 형태야말로 살아있는 형태일 것이다. 나는 아카데믹한 의미에서 정확한 형태를 그리고 싶지 않다. 오히려 그러한 부정확함을, 그러한 뒤틀림을. 그러한 현실의 변형과 수정을 습득하는 것이 나의 최대의 열망이다. 그 결과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거짓이라고 말하겠지.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글자 그대로의 진실보다 더 진실하지 않은가."  (p 58~59)

 

 

 

 

폴 고갱  『시장』 1892년

 

 

해부학상의 정확성을 포기한다는 건 결국 실제처럼 공간감각을 구현하기 위한 원근법을 무시하는 것이다. 고갱의 『시장』이라는 그림에서도 보면 알 수 있듯이 캔버스 중앙에 있는 5명의 여인과 배경은 원근법에 의해 정확하게 그려진 것이 아니다. 장식 그림처럼 인물과 배경이 평면적이다.

 

 

 

 대상의 '표면'이 아니라 대상의 '이면'을 그려라

 

어느 문명, 어느 사회를 막론하고 과거에는 미술가에게 최고의 찬사를 보낼 때 ‘실물처럼 생생한’이라는 표현을 써 왔다. 신라시대의 화가 솔거에 대한 기록을 보면 황룡사 벽에 늙은 소나무를 그렸는데 각종 새들이 진짜로 알고 날아들다가 부딪쳐 떨어지는 일이 잦았다고 한다. 일견 상투적으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동물이든 사람이든 간에 관객의 눈을 속일 만큼 사실적으로 재현해 내는 화가나 조각가의 놀라운 기술을 강조하는 이러한 일화들은 동, 서양 미술의 역사에서 자주 발견된다.

 

고대 그리스 화가 제욱시스와 파라시오스의 경쟁 이야기는 서양 미술사에서 특히 유명하다. 제욱시스는 포도를 너무도 잘 그려서 새들이 쪼아 먹으려고 달려들 정도였다고 하는데, 이를 두고 너무나 자랑을 하자 파라시오스는 제욱시스를 불러다 자신의 그림을 보여주었다. 그림 위에 천이 드리워져 있어서 이를 걷으려던 제욱시스는 천 자체가 파라시오스의 그림인 것을 뒤늦게 알고 감탄하면서 새를 속인 자신보다 화가를 속인 파라시오스가 한 수 위라고 하였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그림들 모두가 현재 우리들의 눈에도 실물로 착각될 정도로 세밀하고 정확하게 묘사되었던 것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미술 작품에는 이러한 기법 상의 관례나 사회 통념을 초월해서 관객을 끌어들이는 교감 작용이 있게 마련이다. 단지 사실적으로 정확하게 묘사되었기 때문에 생생하게 느껴지는 작품들이 아니라 보는 사람의 감정을 이입시킬 수 있는 힘, 그것이 바로 미술 작품을 살아있는 존재로 만드는 것이다.

만약에 회회과 학생 중에 서양미술사 공부의 중요성을 못 느낀 이가 있다면 게오르크 슈미트가 쓴 책을 권하고 싶다. 대상을 정확하게 그리고 싶어하는 생각을 쫓는다면 자신만의 개성적인 표현을 찾을 수 없게 된다. 대상의 '표면'만 똑같이 묘사하는 빈 껍데기 그림보다는 대상의 '이면'에 숨겨진 실제적 특성을 정확하게 포착한 진실된 그림이야말로 미술의 진정한 본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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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facebook.com/B2writer

 

 

P.s) 2013년에 같은 학교 다니는 지인과 같이 야침차게 개설한 페이스북 페이지입니다. 개설된지 얼마 안 되어서 많이 미흡하지만 대학생들의 무한한 창작 욕구를 마음껏 발산할 수 있는 문화적 공간으로 만드는 것이 저의 목표입니다.

 

'20대 청춘' 알라디너 또는 이제 곧 대학 새내기가 될 예비 청춘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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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비트겐슈타인 평전 / 레이 몽크 (필로소픽)

 

나는 철학을 심도 있게 공부하거나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철학을 만든 철학자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철학자의 삶을 들여다보면 사상의 원류를 발견한다면 철학이 어렵게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관심 있는 철학자의 평전이 출간되면 무척 반갑다. 그리고 철학을 공부하기 전에 가질법한 철학자에 대한 편견도 말끔히 씻어낼 수 있다.  

 

 

 

 

 

 

 

 

 

 

 

 

 

 

 

 

 

2. 사이언스 이즈 컬처 / 노암 촘스키, 스티븐 핑커, 에드워드 윌슨 외 (동아시아)

 

8기와 이번 12기 신간평가단 페이퍼를 작성하면서 겪는 애로사항은 눈에 띄는 과학도서 한 권을 고르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문과 계열이라서 좋은 과학 분야 도서를 고르는 안목이 부족한 것도 있지만 점점 어려워지는 국내 도서시장 속에서 과학 분야 도서가 대중의 많은 관심을 받는 경우는 하늘에 별 따기다. 학문 간의 경계는 서서히 허물어져 가고 융합의 시대로 가고 있는 지금, 과학이 우리의 문화와 일상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자리걸음 수준의 과학의 대중화는 아이러니하다. 단지 과학만이 주도적으로 나서서 과학의 대중화를 부흥하기에는 이제는 시대착오적 발상이다. 인문학, 소셜 네트워크, 사회문화 등 다양한 분야와 함께 시대적 유행에 맞는 과학의 대중화 노력이 필요하다. 나는 이 책이야말로 시대적 흐름에 적합한 최적의 도서라고 생각한다.    

 

 

 

 

 

 

 

 

 

 

 

 

 

 

 

3. 멈춰라, 생각하라 / 슬라보예 지젝 (와이즈베리)

 

나는 국내에 번역된 지젝이 쓴 책이랑 그의 사상을 소개하거나 분석한 각종 책들을 단 한 권도 읽어보지 못했다. 지젝이 쓴 <삐딱하게 보기>가 집에 소장되어 있지만 읽어볼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지젝을 알려면 헤겔, 마르크스, 라캉 등에 대해서 기본적인 선학습이 되어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감하게(?) 최근에 나온 지젝의 신작을 골랐다. 지젝의 신작은 금융위기로 자본주의 시스템에 대한 불만이 폭발하는 한편 정치적 압제에서 벗어나려는 투쟁이 세계 곳곳에서 전개됐던 2011년의 희망과 절망, 기회와 위협을 다각도로 조명하고 있다. 그의 분석을 통해 지금의 현실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다면 내용이 어렵더라도 꼭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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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모노로그 2013-01-05 22:35   좋아요 0 | URL
우와 ~ 저랑 같은 책을 추천하셨네요 ㅎㅎ
추천 드가기 전에 ㅎㅎㅎ
다른 분들의 추천서를 보기로 하여 들렸는데 ㅎㅎㅎ
멈춰라는 제가 읽은 책이라 ~ 패쑤 하구요 ㅎㅎ비트겐슈타인 평전하고 사이언스 이즈 컬처는 추천하려고 합니다요 ~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cyrus 2013-01-05 23:00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드림모노로그님, 반갑습니다. 이번 신간평가단 활동하시는 분이시군요. 사실 저도 평전이랑 사이언스, 딱 두 권만 선정되는게 소원입니다.ㅎㅎ 드림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요, 서재 자주 들릴께요 ^_^
 

 

 

 

 

 

 

 

 

 

 

설야(雪夜)

                                               김광균


어느 먼-곳의 그리운 소식이기에
이 한밤 소리 없이 흩날리느뇨.

하이얀 입김 절로 가슴이 메어
마음 허공에 등불을 켜고
내 홀로 밤 깊어 뜰에 나리면

먼-곳에 여인의 옷 벗는 소리.

희미한 눈발
이는 어느 잃어진 추억의 조각이기에
싸늘한 추회(追悔) 이리 가쁘게 설레이느뇨.

한줄기 빛도 향기도 없이
호올로 차단한 의상(衣裳)을 하고
흰 눈은 나려 나려서 쌓여
내 슬픔 그 우에 고이 서리다.




... 겨울날의 하얀 추억, 그 결정(結晶) 위에 수정(水晶)처럼 고이 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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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오르크 슈미트의 『근대회화의 혁명』를 읽다가 의외의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저자는 근대미술의 선구자로 프랑스의 사실주의 화가이자 판화가인 오노레 도미에(1808~1879)를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도미에는 대상의 특정 부분을 강조하기 위해 왜곡하거나 변형시키는 데포르마시옹(déformation) 기법을 통해 프랑스 사회의 어둡고도 진실된 면을 신랄하게 묘사했다. 슈미트는 도미에의 회화적 기법을 기존의 관습을 탈피하는 획기적인 시도로 평가하고 있다.

 

 

 

 

 

 

 

 

 

 

 

 

 

 

 

 

 

 

 

 

 

 

 

 

 

 

 

 

 

사실 지금까지도 근대회화의 선구자 또는 시조가 누구인지에 대해서 미술사가들마다 의견이 다르다. 근대회화 또는 근대미술의 시점 역시 의견이 분분한데 일반적으로 프랑스 혁명 이후 시민사회가 성립된 19세기 중반을 기점으로 하고 있다. 이 때 등장한 미술사조가 바로 인상주의다. 인상주의 미술을 지향하는 일명 인상파 화가들은 자연을 하나의 색채현상으로 보고, 빛과 함께 시시각각으로 움직이는 색채의 미묘한 변화 속에서 자연을 묘사하고자 했다.

 

 

 

 

클로드 모네  「인상 : 해돋이」 1872년

 

 

전통적인 회화기법과 사물의 고유색을 부정하고 색채ㆍ색조ㆍ질감 자체에 관심을 두는데, 특히 시간의 변화에 따른 색채의 변화와 자연에서 순식간적으로 일어나는 인상을 포착하려고 했다. 그래서 인상주의의 본질은 서양미술의 뿌리인 ‘대상 재현적 사실주의’의 전통에서 벗어나는 것이었다. 구체적으로는 모방론의 원리인 원근법과 명암법을 파괴하는 것이다. 클로드 모네가  「인상 : 해돋이」를 1874년 제1회 인상파전에서 출품된 시점, 다시 말하자면 인상주의의 서막을 알리는 이 시기를 근대회화의 출발점과 동등하게 평가하기도 한다.

 

 

 

 

에두아르 마네  「팔레트를 든 자화상」 1879년

 

 

하지만 나는 근대회화의 진정한 선구자를 도미에, 모네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들보다 먼저 세상을 떠들석하게 만든 위대한 작품을 먼저 남긴 에두아르 마네(1832~1883)이다. 마네가 1863년에 살롱에 출품한 「풀밭 위의 점심 식사」는 프랑스 미술계를 떠들석하게 할 정도로 논란의 중심이 되었는데 이 때야말로 근대회화의 탄생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마네는 도미에와 모네에 비해 제작 활동을 빨리 한 편이며 이들보다 먼저 유명세를 탔다. 모네가 1874년 인상파전에서 자신의 이름을 널리 알린 것에 비하면 마네는 이미 9년 전에 화가의 등용문이라 할 수 있는 살롱에서 보수적인 프랑스 미술계를 뒤흔들었다. 도미에는 1830년에 시사 주간지 『라 카리카튀르』(La Caricature)의 삽화가 활동으로 미술 활동을 시작했지만 판화, 유화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때는 1879년이다.

 

 

 

 

에두아르 마네  「풀밭 위의 점심 식사」 1863년

 

 

재미있게도 마네는 인상파전에는 단 한 번도 자신의 그림을 출품한 적이 없다. 모네와 일부 화가들과의 약간의 교류만 있을 뿐 마네는 자신의 능력을 인정해주지 않는 살롱전 출품을 고집했다. 그러나  전형적인 기성회화를 압축하고 있는 살롱에서 그 당시 새로운 근대적 회화를 시도했다는 점에서 주목해야 한다.

 

 

 

 

 

 

 

 

 

 

 

 

 

 

 

 

 

 

 

 

 

 

 

 

 

 

 

 

 

 

1863년 살롱전에 출품된 「풀밭 위의 점심 식사」는  당시 미술계에 큰 파문을 일으키며 엄청난 비난에 휩싸였다. 정장 차림의 두 남자들 사이에 한 여인이 벌거벗고 앉아 정면을 응시하는 그 도발적인 모습은 비평가들은 물론 관람객들까지 몹시 불편하게 하는 것이었다. 이후 이 그림에 말할 수 없는 혹평이 쏟아졌다.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별 것 아닌지만, 아카데미 풍의 작품들을 선호하던 19세기 중반의 보수적인 시각으로 볼 때, 이 그림은 전통 양식에 대한 불손한 도전이자 보는 이들의 눈을 어지럽히는 외설에 지나지 않았다. 살롱에서 낙선한 이후 마네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림은 '목욕'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전시회에 선보여졌지만, 이번에는 대중들의 비웃음을 샀다.

 

이 그림에서 핵심은 나체 여인이다. 하지만 아카데미풍의 우아하고 아름다운 여인의 몸매가 아니라, 균형감 없는 몸매로 투박하고 천한 느낌을 주는 누드라서 우선 불쾌감을 주었다. 고전적인 누드화처럼 서 있거나 누워있지도 않고 제멋대로 앉아 있는 자세도 왠지 선정적이어서 호감을 주지 못했다. 한마디로 이상적인 여체의 모습이 아닌 사실적인 여인의 나체가 불쾌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정장 차림의 신사들을 등장시킨, 당시만 해도 파격적인 구도로 말미암아 많은 이들의 분노를 사기에 충분했다.

 

「풀밭 위의 점심 식사」는 음란하고 퇴폐적이라는 이유로 파문을 몰고 왔지만, 실은 부르주아의 도덕성에 대한 비판으로 읽히면서 비난은 더욱 증폭되었다. 일견 신사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매춘을 즐기는 부르주아의 가식과 이중성에 대한 마네의 고발이라는 해석이 바로 그것이다. 이 그림에서 중요한 것은 구도 보다 화가의 의도라는 비평이 주를 이루면서 마네는 부르주아를 자극해서 유명세를 타고 싶어한다는 의심을 사기도 했다. 따라서 당대에 이 그림은 매우 '부적절하고 위험한 욕구'를 지닌 그림으로 평가되었다.

 

 

 

 

에두아르 마네  「올랭피아」 1863년

 

 

마네가 근대회화의 선구자일 수밖에 없는 또 하나의 역사적인 이유가 있다. 바로「풀밭 위의 점심 식사」논란이 종식된 지 얼마 안 되어 마네는 자신이 그린 누드화 한 점으로 '이슈메이커'가 되었다. 이슈의 중심이 된 그 작품이 바로 「올랭피아」다.

 

마네의 「올랭피아」는 전통적으로 인식되어 왔던 여성 누드의 스타일을 새롭게 탈바꿈시켰다. 「풀밭 위의 점심 식사」를 출품한 지 2년 후, 「올랭피아」를 살롱에 출품했는데 2년 전 논란에 맞먹을 정도로 대형 스캔들이 일어났다. 마네는 「올랭피아」를 제작하기 위해 과거 고전주의 화가들의 누드화를 참고했는데 대표적인 그림으로는 티치아노(1488?~1576)의 「우르비노의 비너스」와 앵그르(1780~1867)의 「그랑 오달리스크」등이 있다. 그러나 마네는 선배 화가들의 도상학적 주제를 참고했지만, 이전과는 다른 누드화를 선보였다.

 

 

 

 

베첼리오 티치아노  「우르비노의 비너스」 1538년

 

 

마네 이전의 나체는 신화와 역사 속 인물인 비너스가 대부분을 차지했다. 이는 현실의 나체이기보다는 인간이 이상으로 삼아야 할 추상적 존재의 나체상인 것이다. 마네는 이런 고정관념이 지배하는 경직된 사회에서 남성적 욕망의 대상으로서 동시대 여성의 누드화를 그린 것이다. 이상과 추상적 존재의 전통 누드화인 비너스와는 확연히 다른 세속적인 나체라는 점을 강조했다. 마네는 현실 속 여성, 즉 매춘부를 통하여 차갑고 세속적인 프랑스 사회의 리얼리티를 선사했다.

 

이 두 작품 때문에 미적 양식을 고양하고 아름다움에 심취하려던 사람들의 심리를 거스르고 되레 그들에게 모욕감을 안겨주었다는 이유로 당대에 마네는 퇴폐적이고 불경스런 화가로 낙인찍혔다. 하지만 전통의 굴레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회화 양식으로 인해 오늘날 그는 '최초의 근대 화가' 내지는 '현대 회화의 시조'로 평가받을 만한 자격이 충분하다. 고전적 구조를 벗어나 회화의 새로운 길을 모색했다는 점에서 「올랭피아」는 근대성을 상징하고 있으며, 야외 회화에 대한 마네의 선구자적 안목으로 인해「풀밭 위의 점심 식사」는 모네보다 먼저 인상주의 출현을 예고한 작품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 무엇보다 마네는 신화나 관념의 세계에서 해방되어 일상의 가치를 환기시키며 회화 전통과도 결별을 고했다. 그의 업적은 '근대회화의 혁명을 알린 선구자'라는 영예로운 칭호를 부여해도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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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31 20:3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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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01 00:2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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