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국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1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 유숙자 옮김 / 민음사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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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의 열대야가 무척 지독하다. 차가운 맥주의 거품만으로도 뜨뜻미지근한 밤 공기를 식혀주지 못하고 있다. 억지로 잠을 청해해보지만 수면 시간은 그리 길지 못하다. 창문을 열어놔도 시원한 바람 한 점 불어오는 대신에 습한 공기의 손길이 자꾸만 내 얼굴을 어루만질 뿐이다. 자다가 깨고나면 TV로 올림픽 중계를 시청하는 대신에 책을 읽는다. 책을 읽는다고해서 열대야가 싹 달아나는 건 아니지만 한밤중의 고요 속에서 책을 읽는 기분은 정말 유쾌하고 좋다. 특히 딱딱하고 두꺼운 분량의 인문서나 사회과학 서적 대신에 감성을 말랑하게 해주는 소설이나 시집 한 권 읽으면 어느 정도 무더위와 피곤함은 잊혀지게 된다.

 

고요한 열대야가 찾아 온 어제 새벽 3시 경에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을 읽었다.  '설국'. 이름만 봐도 시원스럽게 느껴진다. 누군가는 『설국』을 눈이 엄청나게 내리는 겨울에 읽어야 제 맛이라고 하던데 나는 순전히 소설 제목만으로 열대야의 무더위에 지쳐버린 감성을 식혀주지 않을까 싶어서 책장 속에 꽂혀 있던 얇고 하얀 『설국』을 집어 들었다. 일본 소설은 많이 읽는 건 아니라서 이 유명한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대표작을 읽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래서『설국』의 니가타 현으로 향하는 국경의 긴 터널에 들어가기 전부터 조금은 망설였다. 평생 고독과 허무에 지배당한 삶을 살다가 결국 자살을 택하고 마는 작가의 이력에서도 알 수 있듯이 『설국』곳곳에서도 삶의 유한성 앞에서 비롯되는 감상적인 허무의 매력은 회화적인 은유법으로 이루어진 문장들 속에 숨겨져 있다. 이 소설로 인해서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노벨 문학상을 수상함으로써 자신의 이름뿐만 아니라 일본 특유의 미의식을 전 세계에 널리 알릴 수 있었다. 『설국』의 섬세하면서도 세밀한 문장과 스토리를 서양의 독자들은 어떻게 읽혔는지 문득 궁금하기도 하다. 스웨덴의 한림원은 이 작품을 노벨 문학상으로 선정하는 이유를 '자연과 인간 운명에 내재하는 존재의 유한한 아름다움을 우수 어린 회화적 언어로 묘사'했다고 그 이유를 밝혔다. 어쩌면 작가의 섬세한 미의식과 감각적인 문체가 만들어 낸 자연의 정경 묘사가 서구인들에게는 비서구인 일본의 세계를 '신비'의 영역에 가둬두고자 하는 오리엔탈리즘적 시각으로 보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그리고 작품 속에 배어나오는 아름다움으로 포장된 '허무'의 감정마저도 서구인들의 시각에서는 동양의 미학으로 인식했을 것이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 시마무라는 허무주의자다. 그나마 정형적인 성격의 시마무라와는 정반대인 게이샤 고마코는 뜨거운 열정을 갖고 자신을 가두고 있는 삶이라는 감옥 안에서 발버둥을 쳐보지만 한낱 시마무라 앞에서 울분만 토해내는 불만 표출에 그칠 뿐이다. 그런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고 있는 시마무라는 여인에게서 고미코에서도 허무를 읽는다. 하지만 시마무라와 고미코, 이들은 서로에게 '허무'만 읽는 게 아니라 그것을 안고 살아가고 있는 자신들의 삶에 대한 연민 또한 느끼게 된다. 그리고 어느새 시마무라는 고마코분만 아니라 설국 지방으로 가는 열차 안에서도 만나게 된 요코라는 여자에게도 은근한 감정을 품는다.

 

 

 

요코가 집에 있다고 생각하니 시마무라는 고마코를 부르기가 왠지 꺼려졌다. 고마코의 애정은 그를 향한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아름다운 헛수고인 양 생각하는 그 자신이 지닌 허무가 있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럴수록 고마코의 살아가려는 생명력이 벌거벗은 맨살로 직접 와 닿았다. 그가 고마코가 가여웠고 동시에 자신도 애처로워졌다.이러한 모습을 꿰뚫어 보는, 빛을 닮은 눈이 요코에게 있을 것 같아, 시마무라는 이 여자에게도 마음이 끌렸다.  (p 110)

 

 

 

소설은 시마무라와 고마코 그리고 요코, 이 세 인물 간의 삼각관계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지만 아무래도 제일 눈에 많이 띄는 여주인공은 고마코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고마코는 처음에 시마무라를 만났을 때만 해도 과거뿐만 아니라 자신에 대한 모든 것을 밝히려고 하지 않는 수수께끼 같은 인물이었다. 그러다가 시마무라를 접대하는 일이 잦아들게 되면서 고마코는 자신을 바라보는 시마무라의 시선이 궁금해할 정도로 자신의 감정을 은근히 드러내고 싶어한다. 여성들이 남성 앞에서 자신의 속마음을 직설적으로 말하기보다는 빙빙 둘러서 말하듯이 고마코도 은근슬쩍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있다.

 

소설에서도 잘 드러나 있지 않지만 고마코는 가난한 집안 사정 때문에 고생만 하다가 결국 게이샤로서의 삶을 살아가게 된 박복한 여자임에 틀림없다. 어쩌면 눈만 쌓이는 폐쇄적인 설국 지방에서 자란 고마코는 타 지방에서 오는 수많은 낯선 손님들을 접대하고 눈 녹듯이 떠나보내야하는 게이샤로서의 삶은 지루함의 연속일지도 모른다. 그녀는 단기적인 만남보다는 정말 제대로 된 인간애가 묻어나오는 사람다운 사람의 만남을 원했을 것이다. 그리고 보통 여자들처럼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 화목한 가정을 이루는 삶을 원했을 수도 있다. 그래서 그가 원하고 원했던 만남의 최적 대상이 바로 시마무라인 셈이다.

 

 

고마코는 깔끔하게 앉아 있다가 탕에서 나온 시마무라에게,

 '이렇게 조용한 데서 바느질을 했으면' 

방금 청소를 끝낸 방의 낡은 다다미 위에 가을 아침 햇살이 깊숙이 쏟아지고 있었다.

 '바느질 할 줄 아나?'

 '그런 말은 실례예요, 형제 가운데 가장 고생했죠. 생각해 보면 바로 제가 자랄 무렵이 집안이 힘든 시기였떤 것 같아요'

 

 (p 99)

 

 

고마코 말대로 시마무라는 정말 그녀에게 실례되는 말을 하고 말았다. 이것은 남성이 여성 앞에서 해서는 안 될 말이다. 고마코는 천상 여자다. 순탄치 않은 삶을 살아왔던 고마코에게 조용한 방에서 바느질을 한다는 것은 곧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애정을 듬뿍 받으면서 안정적인 삶을 사는 여자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게이샤로 살아가는 그녀에게는 한낱 희망사항일뿐이다. 더욱이 이 무뚝뚝한 허무주의자 시마무라는 그런 고마코의 속마음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소설 속 이 장면을 보게 된다면 자신의 여성적이면서도 순수한 사랑의 감정을 이성에게 단 한 번도 제대로 드러내지 못했으며 그 누구로부터 확인마저 받지 못한 그녀에게 연민이 느껴지게 된다. 고마코는 정말 사마무라로부터 '좋은 여자'가 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얼마 후, 시마무라가 불쑥 말했다.

 '당신은 좋은 애야'

 '어째서요? 어디가 좋아요?'

 '좋은 애라고'

 '그래요? 이상한 분이셔.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정신 차려요' 하고 고마코는 시선을 돌리고 시마무라를 흔들며 뚝뚝 끊어 혼내듯 말하더니 잠자코 있었다.

 

 (중략)

 

 '그런데 어디가 좋은 애라는 거죠?'  하며 고마코는 약간 울먹이는 소리로, '처음 만났을 땐 당신이 정말 싫더군요. 그런 실례되는 말을 하는 이는 또 없을 거예요. 정말 싫었어요'

 시마무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 지금까지 제가 그걸 말 않고 있었던 걸 아세요? 여자가 이런 말까지 할 정도면 이미 다 끝난 거 아닌가요?'

 '괜찮아'

 '그래요?' 하고 고마코는 자신을 되돌아보는 듯 오래도록 가만히 있었다. 한 여자의 삶의 느낌이 따스하게 시마무라에게 전해져 왔다.

 '당신은 좋은 여자야'

 '어떻게 좋은데요?'

 '좋은 여자'

 '이상한 사람' 하고 어깨가 가려운 듯 얼굴을 가렸다가 무슨 생각에서인지 갑자기 한쪽 팔꿈치를 세우고 고개를 들고는,

 '그게 무슨 뜻이죠? 네, 무슨 말이에요?'

 시마무라는 깜짝 놀라 고마코를 보았다.

 '말해 줘요. 그래서 절 만나러 온 거예요? 당신은 절 비웃고 있었군요. 역시 비웃고 계셨던 거군요'

 

 (p 126~127)

 

 

   

하지만 시마무라의 감정은 고마코에게만 향해 있다고는 볼 수 없다. 시마무라는 전형적인 게이샤인 고마코를 사랑하지만 마음 한구석이 늘 허전하다. 그리고 그때마다 요코를 떠올리지만 소설이 끝날 때까지 시마무라가 요코에게 직접적으로 다가가는 일은 없다. 마치 우리가 아무리 애를 써도 자연을 정복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시마무라는 사랑의 감정조차 자연의 변화에 따라 흘러가는 것이라고 믿고 있을 뿐이다.

 

인간의 감정은 시시때때로 변한다. 마치 나무가 계절을 입듯, 아무 것도 없었다가, 초록의 잎을 갖고, 그리고는 빨갛게 물들기도 한다. 우리 인간의 감정은 영원하지 못하다. 우리 인생처럼 말이다. 그래도 연정을 품고는 있지만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남녀 주인공들의 허무한 행위 그리고 이루어지지 못한 고마코의 사랑이 부질없는 '투명한 허무'가 되어 하얀 눈 속으로 파묻혀지는 것이 너무나도 아쉽게 느껴진다. 고요한 열대야 속에 읽은 『설국』은 한 여름밤에 마시는 따뜻하게 데운 사케였다. 따뜻한 사케는 추운 겨울에 마셔야 제 맛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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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12-08-08 15: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북극 허풍담]을 읽을 동안 시루스님께서는 [설국]을 읽으셨군요.
언젠가 읽어야지 생각만 하고 있었어요.

여름엔 아무리 사케라도 시원하게 마셔야하지 않을까요?
아니 여름에 사케는 아무래도 어울리지 않는군요.
역시 겨울에 호호 불어가며 마시는 뜨거운 사케가 제 맛이죠. ^^

cyrus 2012-08-12 21:42   좋아요 0 | URL
소설 문장은 참 좋습니다. 설경이나 자연물을 등장인물의 심리와 정서에 비유하는 표현이
저는 좋더라고요. ^^
 

 

 

 

 

 

 

 

오늘 우연히 도서출판 '푸른역사' 공식 페이스북을 통해서 비보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중남미 정치 및 역사의 권위자로 알려진 이성형 서울대 라틴아메리카연구소 HK 교수님께서 어제 지병으로 별세했습니다. 향년 53세. 생전에 학술 연구뿐만 아니라 대중 독자들을 위한 라틴 아메리카의 정치 및 역사 관련 책들을 많이 집필하셨고 외서 번역도 많이 하셨습니다.

 

 

 

 

 

 

 

 

 

 

 

 

 

 

 

 

그 중에 2003년에 출간했던 <콜럼버스가 서쪽으로 간 까닭은?>은 제가 중학교 3학년 때 읽은, 이 분이 쓴 저서 중에 유일한 읽은 책입니다. 중학생 시절이었던 제가 읽기에는 다소 어려운 내용이었지만 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흥미로운 세계사 에피소드를 접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도 이 책을 읽고 난 이후로 제가 알고 있었던 세계사가 유럽 중심 사관이었다는 사실 그리고 오랫동안 제 머릿속에 자리잡았던 유럽 사관의 정형적인 틀에서 벗어나게 만듦으로써 역사를 바라보는 눈을 한층 더 새롭게 만들어주었습니다. 그래서 저에게는 이 책이 저의 지적 성장에 많은 도움을 주었던 역사책으로 기억이 남습니다.

 

 

 

 

 

 

 

 

 

 

 

 

 

 

 

 

 

故 이성형 교수는 1990년에 <라틴 아메리카 자본주의 논쟁사>를 시작하여 여러 권의 책을 집필 또는 번역을 함으로써 그 당시 생소했던 라틴 아메리카의 정치, 문화, 역사를 우리나라에 소개하는 데 크게 이바지했습니다. 하지만 급격한 시대의 변화 속에 라틴 아메리카의 정치 및 문화에도 변환의 과정을 거치게 되면서 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에 출간했던 고인의 책은 현재 절판 상태입니다. 그래서 현재 변모하고 있는 라틴 아메리카에 대한 연구 활동을 왕성하게 할 수 있는 시기에 갑작스레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어서 무척 안타깝습니다. 많이 뒤늦은 감이 있지만 고인의 학문적 업적이 다시 한 번 재평가되어 우리나라 라틴 아메리카 연구의 맥이 끊기지 않기를 바랍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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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12-08-03 15: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성형 씨 신문칼럼 몇 개를 오려놨는데...이제 나이가 50대 초반이군요.한참 일할 나인데...

cyrus 2012-08-06 19:51   좋아요 0 | URL
그동안 제가 몰랐던 사실이었는데 생전에 이대 재임용 때문에 여러 모로 고생을 많이 했다는군요.
그 일 때문인지 많은 이들이 이성형 씨의 부고를 무척 안타깝게 여겼어요..

아띠 2012-08-07 1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학계의 병폐를 고스란히 당하고만 살았던 것 같아요. 저 세상에서나마 공평한 대우받고 잘 지내시길 바래요

감은빛 2012-08-08 15: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안타까운 소식이군요.
 
뇌과학자는 영화에서 인간을 본다 정재승의 시네마 사이언스
정재승 지음 / 어크로스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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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영화 <레인맨>에서 동생 찰리가 자폐증 증세를 보이는 형 레이먼드의 옆을 지켜주지 못한 채 그가 가지고 있는 아버지의 유산을 모두 가로챘더라면?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의 주인공이자 강박증 환자인 소설가 멜빈이 인내심이 강한 캐럴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우리가 알고 있는 영화의 결말과는 완전히 달라지게 될뿐만 아니라 주인공들의 운명도 한 순간에 180도로 뒤바뀌었을 것이다.

 

영화 <레인맨>에서 더스틴 호프만은 일상생활이나 상식적인 태도를 유지하는 데 어려움을 겪지만, 암기에는 천부적 재능을 가진 자폐증 환자의 삶을 실감나게 연기하고 있다. 이 영화 한 편 덕분에 자폐증 환자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높아지게 되었다. 특히 영화에서 더스틴 호프만이 분한 자폐증 환자 레이먼드는 숫자와 언어에서 일반인보다 훨씬 뛰어난 재능을 보이는 '서번트 증후군(savant syndrome)'이라는 개념을 보통 사람들의 뇌리에 깊이 심어놓았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자폐증 환자에 대한 편견이 여전히 강하다. <레인맨>의 레이먼드처럼 일반 사람들과는 다른 완벽한 기억력을 지녔다거나 2005년 세계수영선수권에서 세계 신기록을 세움으로써 화제를 모은 바 있는 자폐증 수영선수 김진호 씨의 사례를 제외한다면 우리나라 자폐증 환자들은 사회적 관심에서 소외를 받고 있으며 환자의 가족들 역시 자폐증 환자를 돌보면서 생활하는 데 있어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무엇보다도 심각한 것은 자폐증 환자의 특징을 확실하게 알지 못하는 채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작년 '미국 정신과 저널(American Journal of Psychiatry)' 온라인판에 미국 예일대의대 어린이연구센터의 김영신 교수팀은 한국 어린이 38명 가운데 1명이 자폐증이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미국이나 유럽엣의 자폐증 발생률의 3배 가까운 수치다. 그리고 이번 연구를 통해서 자폐증으로 진단받은 어린이 중 3분의 2가 일반학교에 다니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학교에서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지만 원인을 모르고 치료도 받지 않고 있었다. 이런 학생들은 대부분 병의 중간단계인 야스퍼거스 증후군으로 분류되어 특수학교에 다니는 학생들과 조금 달랐다.

 

자폐증은 지적 수준은 보통이지만 사회적 능력이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 다른 사람과 상호관계가 형성되지 않고 정서적인 유대감도 일어나지 않는 증후군으로 '자신의 세계에 갇혀 지내는' 상태를 보인다. 사회적 교류가 잘 되지 않으며 의사소통이 어렵고 언어 발달이 늦으며 행동상의 문제, 특정분야에만 치우친 관심 등을 특징으로 한다. 이러한 자폐증 특유의 성격상 특징은 '서번트 신드롬'이라고 해서 특별한 재능 수준으로 인식하기 쉽다. 하지만 꼭 모든 자폐증 환자들이 '서번트 신드롬'의 전형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다. 전체 자폐증 환자 중 약 10% 정도만 평범한 인간을 뛰어넘는 특별한 재능을 지니고 있을 뿐이다. '신드롬'이란 어떤 것을 좋아하는 현상이 전염병과 같이 전체를 휩쓸게 되는 현상을 뜻한다. 그러나 지구상에 살고 있는 모든 자폐증 환자 전체가 뛰어난 암기력을 지니고 있는 건 아니다. 그래서 자폐증 환자의 특별한 재능 자체를 '신드롬'이라고 규정, 명명하기에는 사실은 민망한 부분이 있다. 그래서 심리학계에서는 비상한 재능을 가진 자폐증 환자들을 지칭하는 용어를 '서번트 신드롬'이라는 대중적으로 익숙한 단어를 사용하기보다는 '자폐적 천재'(Autistic savant)라는 말을 주로 사용하는 편이다.

 

그렇다면 자폐증 환자들의 근본적인 발병 원인이 무엇이며 정신적으로 완전하지 못한 이들에게 유독 왜 일반 사람의 지능을 뛰어넘는 '자폐적 천재'를 보이는 걸까?  지금까지도 그 원인에 대해서 수많은 연구를 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한 가지 원인이라기보다는 여러 가지 복합적인 요인들에 의해서 자폐 증세의 발병에 작용할 것이라고 추측만 할 뿐이다. 자폐증의 원인을 정확하게 규명되지 못한 지금, 자폐증을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과학자들 그리고 자폐증 환자와 함께 생활하는 가족들이 유독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이 자폐증이 과연 가족의 유전적 요인으로부터 비롯되었는지에 대한 여부다. 자폐증으로 진단받은 아이를 자녀로 둔 부모라면 꼭 가지게 되는 편견 중 하나가 바로 양육을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에 자신의 자녀를 자폐증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최근에 자폐증이 가족의 유전적 요인에 의해 작용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기도 했지만 아직까지는 나쁜 양육 환경과 방식 때문에 자폐증이 발병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자폐증은 가족의 유전자에서 이상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뇌 구조 자체에서 이상을 일으킨다고 보면 된다. 자폐증 환자의 뇌를 들여다보면 측두엽 안에 존재하는 감정이나 공격성을 담당하는 아미그달라와 단기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 부분이 정상인의 뇌에 비해 덜 발달되었다고 한다.

 

우리 주변에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강박증 또한 단순히 마음의 병이라기보다는 엄밀히 과학적으로 규명해본다면 뇌의 생물학적 요인이 강박장애 발생과 연관성이 깊다고 할 수 있다. 수많은 뇌 영상 연구 결과를 통해서 강박장애에서 특정 신경회로 영역에 문제가 있음을 보여주고 있고, 약물치료 내지는 행동요법치료 후 이러한 영역의 문제가 정상화 됨을 보여주는 연구 결과도 있다. 그래서 초기에 병원을 방문하면 약을 먹지 않고 상담이나 행동치료를 통해 병을 치료할 수 있다.

 

그러나 정신적 장애를 가진 환자들은 자신의 증상에 대해서 스스로 잘 알지 못할 뿐더러 정신과 진료를 받으면 사회생활에서 불리할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병원을 찾지 않는 환자가 많다. 일부 민간생명보험사에서 정신과 진료 기록을 들어 보험가입을 거부하는 사례가 있는 등 사회적인 편견이 줄어들지 않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편견이 정신적 장애 환자들을 더욱 사회로부터 소외시키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요즘 우리 사회에 '힐링'(Healing, 치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힐링' 가운데서도 자연 치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화학적 치료가 부작용이 많다는 점에서 몸이 병을 이기도록 하는 자연 치유가 늘어가고 있는 것이다. 예컨대 환자들의 가족들을 중심으로 환자의 정신을 좀 더 안정시켜줄 수 있는 쾌적한 환경을 조성하여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정신 장애 환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치료법은 그들을 따뜻하게 감싸줄 수 있는 가족들 또는 인간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지인들이다.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의 캐럴처럼 말이다. 모든 사람들이 꺼려하던 멜빈의 신경질적인 성격을 먼저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사람이 캐럴이다. 그리고 따뜻하게 먼저 마음을 열어줌으로써 그가 타인으로부터 사랑받고 있음을 인식하도록 항상 그의 곁을 지켜줬다.

 

이번에 새로 발간한 정재승 교수의 신작은 단순히 영화를 통해서 뇌과학의 세계를 흥미롭게 들여다보고 설명하는 식으로 끝나지 않는다. 이 책을 통해 사회로부터 소외받고 고통받고 있는 정신 장애 환자들에 대한 대중의 왜곡된 인식이 각성되기를 강조하고 있다. 정신 장애의 원인을 과학적으로 규명하는 것이 뇌과학의 역할이지만 정신 장애 환자들이 좀 더 인간적인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뇌과학이라는 학문이 정신적 약자들을 위한 치유의 과학으로써 역할을 동시에 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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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상전 - 거장들의 자화상으로 미술사를 산책하다
천빈 지음, 정유희 옮김 / 어바웃어북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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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 윤동주 「자화상」-

 

 

 

거울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서 절대로 없어서는 안 될 생활필수품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은 거울에 비추어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본다. 만약 거울이 없으면 맑은 물에라도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 보고야 말 것이다. 그마저 여의치 않다면 그때는 거울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다. 다른 사람의 관찰과 평가가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다. 사람은 이 같은 거울을 통해 자신의 겉모습뿐 아니라 마음도 비추어 본다. 정확한 자기 확인과 자기 점검, 자기 준비와 자기 개선을 위해서다.

 

시인 윤동주는 달이 비치고 구름이 흐르는 물에 자신의 얼굴을 비추어 보았다. 그의 얼굴을 비추어준 거울은 어느 외딴 우물이었다. 우물 속에 비추어 들여다본 자신의 모습은 피상적인 이미지가 아니라 내면의 실체였다. 그것은 육체의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육체의 눈은 시력을 투사하는 '수단'에 불과하다. 그것을 '수단'으로 빌리되 심안(心眼)을 동원해야 내면의 실체에 대한 투시가 가능할 것이다. 윤동주는 바로 그 같은 마음의 눈으로 두 번씩이나 돌아섰다 생각을 바꾸어 되풀이 자신을 성찰하고 점검했으며 그 과정을 통해 본래 그대로의 자신의 정확한 실존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윤동주처럼 그렇게까지 진지하고도 심각하게 '거울'을 보지 않는다. 우리에게 '거울'은 그저 우리의 모습 원형을 그대로 비춰주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굳이 거울을 보지 않아도 언제 어디서든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그것이 스마트폰이나 디지털 카메라를 통해서 자신의 모습을 사진으로 촬영하는 일명 '셀카'라고 알려진 '셀프 카메라'(Self-camera)가 그것이다. 셀카는 단지 자신의 있는 모습을 그대로 사진에 담는다. 연예인들은 자신의 아름다운 외모를 부각시켜주기 위해서는 셀카를 많이 찍곤 하는데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완벽하고도 아름다운 자신의 외모를 사진으로 남기기 위해서 좋은 셀카를 찍을 수 있는 촬영 각도 등 셀카 찍는 방법이 유행하기도 했다. 

 

자신의 모습을 본인 스스로 사진기술을 통해서 그대로 본떠서 재현한다는 것. 어찌 보면 화가들이 직접 자화상을 그리는 것과 비슷해보인다. 셀카야말로 디지털 시대에 누구라도 손쉽게 할 수 있는 자화상인 셈이다. 이름만 들어도 잘 아는 유명한 화가들 중에서는 자화상 단 한 점을 남기지 않은 이가 드물다.  적어도 두 점 정도를 그린 화가에서부터 평생 죽을 때까지 수십 점이 넘을 정도로 자신의 다양한 모습을 캔버스에 담긴 다작 화가도 있다. 화가들이 자신의 얼굴을 그리는 이유에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대부분 자신의 존재를 대중들에게 널리 알리기 위한 '자기 PR'의 용도인 동시에 은연중에 자신이 '화가'라는 예술적 기질이 내포되어 있는 자의식을 과시하기 위해서 표현하기도 한다.

 

 

 

 

 

 

 

알브레히트 뒤러  『모피 코트를 입은 자화상』 1500년  (도판 p 16) 

 

 

 

'자화상'을 예술에서 하나의 장르로 정착시킬 수 있었던 중요한 근원은 알브레히트 뒤러(1471~1528)의 자화상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오늘날에는 뒤러를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 정도로 독일 르네상스의 거장으로 평가하고 있지만 무엇보다도 그를 더욱 위대하게 만들 수 있었던 업적이 바로 자화상이다. 뒤러는 자화상을 단순히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그려진 복제품으로만 인식하지 않았다. 어느 누구도 볼 수 없는 자신의 예술가적 자의식을 떳떳하게 그림으로 표현하고자 했던 것이다.

 

뒤러가 활동하던 당시의 유럽 르네상스 시절에는 이탈리아 지역을 중심으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등의 거장들이 활동을 하면서 자신의 이름을 널리 알리는 데 반해 독일에서는 '화가'는 그저 그림을 그리는 기능인 '화공'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르네상스의 꽃이 활짝 피우기 전, 중세 시절에 활동한 화가들의 사회적 지위는 석공이나 구두 수선공과 비슷했다. 그만큼 사회적 신분이 낮은 직업이었다. 그리고 이들에게 그림이란 예술적 표현의 작품이라기보다는 그냥 그림 그리는 것을 업으로 삼는 정도에 불과했다. 중세의 화공들이 제작한 그림들 중에는 제작자의 서명이 없는 것이 많은데 아무리 뛰어난 실력을 보유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화공'이라는 직업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그러한 사회적 제약을 먼저 뛰어넘고자 했던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뒤러였다. 뒤러는 젋은 시절 화가들이 주로 모여서 활동했던 공방 생활을 통해서 본격적으로 화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는데 이 때만해도 여전히 화공은 사회적으로 그리 높은 대접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그러한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뒤러는 뛰어난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여 사회적으로 크게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특히 이제 막 명예를 얻기 시작할 무렵인 29세 때 그려진『모피 코트를 입은 자화상』에는 화가로서의 정체성이 드러나도록 묘사되어 있다. 뒤러는 자신의 모습을 예수의 이미지로 형상화하고 있다. 그림 오른쪽에는 "뉘른베르크 출신의 나 알브레히트 뒤러는 스물아홉 살의 나를 네가 지닌 색깔 그대로 그렸다"라고 적힌 글귀가 있다. 일부 학자들은 뒤러가 예수의 이미지를 차용한 의도는 자신을 예술적 창조자로서 타고난 자신의 재능의 원천을 신의 능력과 대등하다는 것을 시각화한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뒤러는 자신의 실력이 신에 의해 부여되었다는 소극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하나의 세계를 창조해 낼 수 있는 신과 대등한 존재로서 자신의 자화상을 통해서 스스로 격상시키고 있는 것이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자화상』 연대 미상

 

 

 

하지만 모든 화가들이 뒤러처럼 예술가로서의 자부심의 상징으로 자화상을 제작한 것은 아니다. 수많은 작품들을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그 수에 비해 자화상만큼은 많이 남기지 않은 화가들도 있다. 그러한 유형의 대표적인 화가가 바로 르네상스가 낳은 위대한 천재 레오나르도 다 빈치다. 지금까지 현존하는 자화상은 딱 두 점뿐이다. 두 점 다 소묘로 그려졌으며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노년 시절의 모습을 담고 있다. 유명 화가들 사이에서는 종종 자신의 작품에 자신의 서명을 남기듯이 조그맣게 본인의 얼굴을 그려넣는 방식이 유행하기도 했는데 다 빈치 역시 몇 몇 작품에 자신의 젋은 시절의 모습을 그려넣었을 뿐 실질적으로 자화상을 제작하지 않았다. 예술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 능통했던 르네상스의 천재라면 자신의 업적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마음에 멋지게 채색된 자화상 한 두 점 정도 남겼을 법하다. 그런데 왜 다 빈치는 습작을 연상케 할 정도로 달랑 소묘 자화상 두 점만 남겼을까?

 

후대의 미술사가들은 다 빈치가 자화상을 남기지 않은 이유를 완벽함을 추구하는 천재의 전형적인 특성에서 찾고 있다. 모든 면에서 완벽을 추구했던 다 빈치는 자신의 내면에 감춰져 있는 불완전함을 외부로 드러내는 것을 꺼려했기 때문에 자화상을 제작하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한다. 다 빈치는 자화상의 특성을 너무나도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자화상은 단순히 자신의 얼굴을 똑같이 그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지니고 있는 내면의 모든 것을 외부에 완전히 관객들 앞에서 드러내야하는 일종의 '자기고백'으로 인식했다.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  『스물 네 살의 자화상』 1804년  (도판 p 164)

 

 

 

인간은 언젠나 자신이 가지고 있는 어떤 불완전함 또는 단점을 알게 된다면 그것을 외부로 드러내는 것을 꺼려하게 되고 그것을 숨기려고 한다. 각각 개인의 특성마다 다르겠지만 그것이 타의에 의해서 외부적으로 드러나게 된다면 때로는 심적으로 깊은 상처를 받을 수도 있다. 특히 일반 사람들에 비해 자의식이 강한 예술가들에게는 내면의 약점이 타인에게 알려지는 것을 무척 자존심 상하는 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빈센트 반 고흐가 동료 화가인 폴 고갱과 심하게 다투고 난 뒤에 왼쪽 귀를 잘랐던 것도 단지 고흐의 특이한 성격 탓만으로 볼 수 없는 것도 그러한 이유로 설명할 수 있다.

 

위의 그림은 신고전주의의 대표적인 화가인 앵그르가 24살 때 그린 자화상이다. 그냥 봐도 한창 왕성하게 화가로 활동하던 젋은 시절의 모습을 그린 보통 자화상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자화상 속에는 재미있는 비화가 숨겨져 있다. 사실 우리가 보고 있는 이 24살의 자화상은 앵그르가 일흔이 된 나이에 다시 개작한 것이다. 24살 때 제작하여 이미 완성된 그림에 일흔 살의 앵그르는 다시 손을 본 것이다. 자신의 완성된 그림이 화가 본인이 마음에 안 드면 다시 손질하여 개작할 수 있다. 하지만 과거의 모습을 그린 자화상을 개작한다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특히나 수많은 제자들을 양성하고 있고 생전에 이미 대가의 반열에 들어선 일흔 살의 앵그르가 그 많고 많은 자신의 작품들 중에 하필 젊은 시절의 자화상을 개작한 것일까?

 

사실 이 자화상 한 점으로 인해 앵그르는 마음 속에 지울 수 없는 정신적 상처를 입었기 때문이다. 24살의 자화상이 그려지기 전에 앵그르는 이미 비평가들로부터 예술적 재능을 인정받을 정도로 전도유망한 엘리트 예술가였다. 이미 젊은 나이에 벌써 자신의 이름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기 시작하자 청년 앵그르는 전작보다 더 뛰어난 작품들을 그리고 싶어했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예술적 능력에 대해 자신만만했다. 그러한 자부심 속에서 만들어 진 그림이 바로 이 문제의 자화상이다. 신예 화가 앵그르는 자화상을 살롱전에 당당하게 출품했다. 그 당시 살롱전이라면 비평가와 대중들로부터 널리 인정받은 화가들의 그림만이 출품이 가능했던 그림 전시회다. 앵그르는 초상화 제작에 대한 재능을 굳게 믿고 있었기에 자화상도 크게 인정받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앵그르는 그전에 자신을 칭찬했던 수많은 비평가들로부터 혹평만 얻게 되었다. 그리고 살롱전에서도 입상하지 못하게 되는 불명예스러운 결과를 받아들여야했다. 그 후로 앵그르는 생전에 자화상을 제작하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78살에 되어서야 그는 무려 54년 전에 제작했던 자화상을 다시 그렸다. 어느 누구도 흠 잡을 데 없을 정도로 위대한 화가로 자리잡게 된 앵그르는 애써 과거의 상처를 잊기 위해서였을까?  그가 왜 자화상을 개작했는지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인생에 있어서 가장 높은 성공의 꼭대기에 서 있는 앵그르가 실패한 자화상을 다시 손을 보게 됨으로써 젊은 시절에 겪었던 예술가로서의 흠을 한층 성숙되고 완벽한 예술적 명성이 묻어 나 있는 붓으로 직접 손질함으로써 부족함을 채우고 싶어했을 것이다. 앵그르는 자화상을 개작하는 것만으로 자기 위안으로 삼고자 했던 것이다.

 

 

 

 

 

외젠 들라크루아  『스물 세 살의 자화상』 1821년   (도판 p 174)

 

 

 

자화상은 자신의 겉모습만을 똑같이 찍어내는 사진과 다르다. 렘브렌트, 반 고흐, 고갱 등 위대한 화가들은 자신의 진면목을 확인하고 점검하며 성찰하기 위해 다른 화가들과는 달리 유독 수 십여 점의 자화상을 그렸다. 이를 통해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 되돌아보면서 보다 나은 내면의 성숙을 이루어내기 위해 그리는 것이다. 렘브렌트는 매년 자화상을 그렸다. 그 역시 젊은 앵그르와 마찬가지로 명망 있는 화가로 출세하여 젋은 시절부터 부와 명예를 누리기 시작할 때 화려한 복장을 입은 자화상을 남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절제 없는 탐욕으로 인해 그동안 화가로 활동하면서 얻은 수많은 재산을 탕진했고 부인의 죽음 그리고 설상가상으로 한순간에 명성이 추락하게 되어 별 볼일 없는 가난한 늙다리 화가가 되었을 때도 초라하기 짝이 없는 노년의 모습을 자화상으로 남겼다.  일그러진 자기 내면이 드러난 자화상, 늙어 쭈글쭈글한 모습을 보는 것이 큰 고통일 수 있지만 렘브란트에게는 수많은 자화상을 그려 놓고 들여다보는 것은 그 고통을 감내할 충분한 가치가 있었을 것이다.

 

아무리 뛰어난 천재라도 그 역시 인간에 불과하다. 인간에게는 누구나 다 약점이 있고 지구상에서 가장 완벽한 동물이라고 할 수 없다. 인생의 부귀영화는 죽을 때까지 오랫동안 누린다는 것은 쉽지 않으며 젋음의 상징인 검은 피부와 탱탱한 피부는 나세월의 변화 앞에서는 주름 가득한 피부와 흰 머리로 변하게 된다. 거기에다가 기나긴 인생을 종지부를 찍는 죽음 앞에서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절대적인 숙명이다. 화가들은 보통 사람들과 달리 인간의 불완전한 존재에 대해서 자화상을 그림으로써 이미 알고 있었고 그로 인해 남들에 비해 그러한 약점 앞에서 무척 괴로워했다. 스물 세 살의 들라크루아는 이미 인간의 숙명을 알고 있었기에 그의 자화상 속의 모습은 인생의 근본적인 문제 앞에서 크게 갈등을 했던 덴마크의 왕자 햄릿으로 형상화시켰다.

 

거울은 자칫 보기에 따라 자신의 모습에 반해 터무니없는 자아도취나 혹여 반대로 자기 환멸이나 절망에 사람을 빠뜨리게도 한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아름다운 미모를 지닌 나르시스의 경우를 들 수 있다. 하지만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뿐만 아니라 내면 속에 숨겨진 모든 것까지 캔버스에 담고자했던 자화상 제작, 즉 이러한 화가들의 내면적 체험은 고대 그리스의 델포이 신전 문 앞에 새겨진 '너 자신을 알라'라는 문구에 걸맞게 실행하는 값진 노력이다. 그러하기에 고된 인생의 과정 속에서 내적 성찰의 노력이 만들어 낸 위대한 산물인 예술가들의 자화상들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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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도둑 2012-07-30 14: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화상 이야기 흥미롭네요. 유일하게 자신의 모습을 남길 수 있는 자화상을 그리면서 그들은 어떤 생각들을 하였을까요?...내가 생각하는 나와 타자가 생각하는 나 사이에는 분명 어긋나는 지점들이 있었을 법한데...그 부분을, 그 틈을 그림으로 설명하려고 했을까요?,,,특히 자의식이 강한 화가들은 더 그랬을 것 같은데요....
아무튼 사이러스님 글 읽으면서 글로 자화상을 묘사해본다면? 엉뚱한 생각도 함께 하게 되네요..
온통 미화와 왜곡으로 얼룩진 자화상이 되지 않을까 싶은데요....쪽팔려서 솔직하게 그려낼 수 있을지..ㅋㅋ

cyrus 2012-08-01 20:57   좋아요 1 | URL
ㅎㅎㅎ 맞아요, 저 같은 경우에는 알라딘 블로그에 제 사적인 생활에 대한 글을 잘 안 쓰는 편이에요.
뭔가 재미있는 일이라면 몰라도요 ^^:; 이 책 정말 재미있어요, 유명 화가의 자화상을 꽤 많이 소개하고 있어요, 개인적으로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프리다 칼로의 자화상 이야기가 빠진거요. 칼로의 자화상 역시 자신의 정체성을 솔직하게 표현하기로 유명한데 말이죠.
 
호모 심비우스 - 이기적 인간은 살아남을 수 있는가? 다윈의 대답 시리즈 1
최재천 지음 / 이음 / 2011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약육강식, 적자생존', 왜곡된 다윈의 진화론

 

 

 

 

 

자연의 세계는 약육강식, 적자생존으로 작동된다? 

일부 맞는 부분은 있지만 자연의 세계가 꼭 그렇게 강한 자들에게만 유리한 '그들'만의 무대는 아니다.

 

 

 

 

다윈의 진화론이라고 하면 약육강식, 적자생존을 떠올린다. 그동안 진화론은 19세기에 머물러 있었다. 다윈가 살던 19세기는 약육강식의 논리가 판을 치던 시대였다. 유럽의 힘센 나라들은 세상의 곳곳을 집어삼켰다. 자연 상태에서도 강하고 흉포하며 교활한 자들이 살아남게끔 되어 있다. 강대국의 입장에서는 힘없는 나라를 억누르고 차지하는 것에 대해서 특별한 문제로 삼지 않았다. 만약에 자신들의 제국주의적 정당성을 반박하는 이가 있었다면 당하는 게 억울하다면 국력을 키우면 될 것이라고 맞섰을 것이다. 이렇듯 다윈의 진화론은 억압과 침략을 당연하게 여기는 이유로 쓰이곤 했다.

 

진화론은 또 20세기 들어 군비경쟁이나 자유경쟁 논리, 우생학, 사회진화론 분야에서 오도된다. 인종 차별과 여성 차별 같은 사회문화적 현상은 진화론적으로 적응된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기괴한 논리'를 주장하는 이들은 지금도 존재한다. 특히나 '경쟁'을 강조하는 시장자유주의의 현대사회에도 적자생존이나 약육강식 같은 용어는 그대로 유효하고, 생명 탄생이나 인종 차별, 성차별을 둘러싼 논쟁은 여전히 치열하다. 진화론 등장 자체가 단순히 과학사를 떠나서 인류사에 있어서 너무나 큰 획기적인 사건임은 분명하고 그 영향력도 인류 전반에 미쳤기 때문이다.

 

사실 이 등식은 다윈의 이론을 전파하기 위해 그의 '성전'을 끼고 세상으로 뛰쳐나간 '전도사'들이 만들어낸 것이다. 실제로 다윈은 그런 용어를 즐겨 쓰지 않았다. 오히려 진화론에 처음으로 '적자생존'을 도입한 사람이 영국의 사회학자 허버트 스펜서(1820~1903)다. 스펜서는 생물학자가 아니기에 실제로 생물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명확히 이해했다기보다는, 그저 생물학 이론들을 차용해 현실사회의 모순과 부조리를 그럴듯하게 설명했을 뿐이었다.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생태학자들, 특히 남성 생태학자들은 95%가 자연계의 치열한 경쟁을 연구 주제로 삼았다. 하지만 오늘날의 추세는 달라졌다. 자연계에서 경쟁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지만 무조건 남을 제거하는 것만이 경쟁에서 이기는 방법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호모 사피엔스'를 넘어서 이제는 '호모 심비우스'다


흔히 '협동'은 인간만이 가진 고도의 기술이고 동물은 단지 약육강식의 자연법칙에 맞춰 살아간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요즘 우리 사회를 비추어본다면 오히려 생각했던 것과는 거꾸로 작용하고 있는 듯하다. 시장자유주의의 원리에 길들여진 현대인들은 경쟁의 사회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아등바등하게 살아가고 있는 반면에 자연 속에 살아가는 일부 생물들 중에는 자신과 전혀 다른 종(種)들과 경쟁을 하기보다는 서로 협동하면서 인간 사회보다 더 생존 경쟁이 치열하다는 자연의 세계에서 잘 살아남고 있다.

 

현생인류와 같은 종으로 분류되는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라는 학명의 어원 속에는 '슬기로운 사람'이라는 의미를 뜻하고 있다. 하지만  최재천 교수는 결코 그 어원처럼 영리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자연을 잘 이용해 만물의 영장 자리에 오르기는 했지만 무차별적인 세계화, 국가간 빈부격차, 환경 오염 등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뿐만 아니라 인류의 생존 문제에 있어서 위기를 자초했다는 것이다. 그는 인류는 이제 '호모 심비우스'(Homo Symbious) 즉 '더불어 사는 인간'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말한다. 자연한테서 공생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주장이다. 호모 심비우스는 공생을 뜻하는 'Symbiosis'에서 착안한 말로 그가 만들어 쓰는 말이다. '함께'라는 뜻의 고대 그리스어 'syn'과 '삶'이라는 뜻의 'biosis'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동안 최재천 교수의 글을 관심있게 읽어 본 독자라면 용어가 낯설어도 그 의미만큼은 무척 친숙하게 느껴질 것이다. 사실 자연으로부터 배우는 '공생', '협조'의 방식은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알이 닭을 낳는다』와 같은 대중들을 위한 과학 에세이집에서 누누이 강조했던 '알면 사랑한다'라는 메시지로부터 시작한다. 그러다가 올해 초에 다윈의 진화론를 새롭게 조명한 『다윈 지능』을 통해 '호모 심비우스'라는 새 용어로 정립하여 '공생'의 필요성을 다시 한 번 대중들에게 강조하게 되었다. ('다윈의 대답' 시리즈의 첫 번째를 장식하는『호모 심비우스』는 작년 12월에 처음 초판본이 출간되었고『다윈 지능』은 그 다음 올해 1월 초에 출간되었다) 

 

그는 자연계가 수차례 멸절 위기를 겪었음에도 다양성을 회복한 것은 '니치'(Niche), 곧 자기만의 독특한 공간을 갖고 공존해왔기 때문이라 말한다. 지구의 생물 중량 중 으뜸인 것은 식물, 개체수에서 가장 성공한 것은 곤충인데, 이는 움직일 수 없는 식물을 대신해 곤충이 꽃가루를 날라주고 그 대가로 꿀을 얻으며 공생해왔기 때문이라고 한다.

 

 

 

 

 

트럼핏나무는 대나무처럼 속이 비어 있는데, 그 속에 아즈텍개미들이 입주하여 산다. 나무는 개미에게 집은 물론 개미들이 선호하는 단백질이 함유된 뮬러체라는 먹이도 제공한다. 개미들은 그 대가로 나무를 모든 위협으로부터 보호해준다. 이파리를 갉아먹는 모든 초식동물들은 물론 물과 햇빛을 두고 경쟁할 다른 주변 식물들까지 제거해준다. 아즈텍개미와 트럼펫나무는 진화의 역사를 통해 공생의 지혜를 터득하여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p 34~36)

 

 

'니치'를 통한 공생의 생존방식의 대표적인 예가 트럼핏나무와 아즈텍개미의 관계이다. 트럼핏나무는 대나무처럼 속이 비어 있고 마디로 이루어져 있다. 식물로는 드물게 동물성 단백질이 풍부하게 들어 있는 뮬러체라는 물질을 분비해 줄기 내부에 사는 아즈텍개미에게 숙식을 제공한다. 뮬러체는 아즈텍개미가 좋아하는 먹이 중 하나다. 이러한 은혜를 입은 아즈텍개미는 트럼핏나무를 위한 보답으로 나무 전체를 순찰하면서 온갖 포식동물로부터 보호한다.

 

 

 

 

 

 '공생'이 없는 생태계 = 동반멸종

 

 

 

 

 

생태 피라미드

(그림출처: http://cafe.naver.com/iyh0606/3)

 

 

 

 

생물학 용어 중에 '생태 피라미드'(Ecological pyramid)라는 것이 있다. 생물군에 있어 먹고 먹히는 관계에서 각 단계의 개체군의 양적관계를 표현한 것이다. 동물의 세계에서 먹히는 동물의 수는 그것을 먹는 동물의 수보다 항상 많다. 따라서, 먹히는 동물을 저변으로 하고, 먹는 동물을 정점으로 하는 피라미드 형태의 '생태계'가 만들어지는데, 이것을 생태계 피라미드(또는 먹이 피라미드)라고 부른다. 저변 동물은 초식성이고 소형이며 다수이다. 정점 동물은 육식이고 대형이며 소수이다. 이 피라미드를 구성하는 동물의 한 종류가 멸종하면 '생태계' 피라미드는 무너진다. 이는 곧 자연 파괴를 뜻한다.

 

 

 

 

 

 

개미가 멸종하면 그와 공생관계를 맺고 있던 많은 동식물들이 줄줄이 멸종의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바로 이 같은 공생-동반멸종(Mutualism coextinction)이 최근 보전생물학에서 중요한 문제로 떠올랐다. 진화의 역사를 거치면서 서로 치밀한 공생관계를 맺으며 엄청난 생물다양성을 이룩한 것은 매우 다행한 일이지만, 이제 전례 없는 환경 파괴로 인해 그들이 멸종의 길을 걷게 되면서 공생이 동반멸종의 빌미를 제공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는 우리가 공생관계를 잘 이용하면 멸종 위기에 놓인 생물을 복원하는 방안을 찾을 수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p 94) 

 

 

하지만 단순히 먹고 먹히는 관계로 인해 특정 종이 사라진다고해서 생태계 전체가 무너지는 것은 아니다. 오랫동안 공생을 통해 살아남은 동식물의 관계가 '환경 파괴'로 인해 어긋나도 그로부터 영향을 받고 있던 다른 동식물도 멸종하게 되어 생태계 전체가 교란될 수 있다. 이러한 관계를 '공생-동반 멸종'(Mutualism coextinction)이라고 한다.

 

부전나비의 애벌레는 다른 나비의 종과는 다르게 개미굴에서 자란다. 개미가 직접 부전나비의 애벌레를 개미굴로 데리고 들어와 일종의 보모 역할을 하는 셈이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살아있는 애벌레가 개미들이 마음껏 포식할 수 있는 먹잇감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그것은 생태계를 먹고 먹히는 과정만이 작용하는 세상으로 인식하는 '경쟁'에 익숙한 인간의 머리 속에서 나올 수 있는 생각이다)  부전나비는 개미굴 속에서 개미들의 도움으로 자란다. 부전나비와 공생 관계의 개미가 살기 위해서는 실내온도가 높은 토양에서 군락을 형성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풀이 많이 자라지 않으면서 햇볕이 많이 드는 토양이라면 개미뿐만 아니라 부전나비의 번식에 유리한 조건을 만들어준다.

 

그런데 이러한 공생 관계를 모른 채 점차 개체수가 줄어드는 부전나비를 보호하기 위해서 서식지에 인간과 동물들이 넘나들지 못하게 말뚝을 쳐서 아예 보호관리구역으로 만들게 된다면 부전나비의 수가 늘어날 수 있을까?

 

전혀 그렇지가 않다. 자연 상태 그대로 보존하게 되면 서식지에 수많은 식물들이 자란다. 식물들이 자라나게 되면서 햇빛을 받지 못하는 토양의 온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으며 개미가 서식하기에 적합하지 않는 환경 상태가 되어버린다. 보호관리구역에 개미가 살 수 없다면 이들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부전나비 애벌레 또한 생명유지를 보장할 수 없다. 당연히 부전나비의 수가 더 줄어드는 역효과가 발생하게 된다. 그러나 보호관리구역을 해체하고 그 곳에 소나 말을 풀어놓는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소와 말이 풀을 뜯어 먹음으로써 토양에 햇볕이 들게 되어 온도가 상승한다. 그러면 그 곳에 다시 개미가 살게 되고 한동안 보이지 않았던 부전나비의 수도 늘어나게 된다.

 

 

 

 

 공생하는 인간이 사회 경쟁력이다

 

'인간'이라는 동물에 대해 확실하게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대체적으로 이기적인 동물로 규정하고 있다.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는 남을 해치는 것을 망설이지 않는다. 세상에는 피부색이 다르다고 사람을 죽이는 인종차별주의자도 있고, 종교가 다르다고 원수처럼 서로 전쟁을 하고 있다.  이기적 인간이 얻는 이익은 이타적 인간이 얻는 이익보다 늘 크다. 그러나 이는 결국 소멸, 파괴, 파멸이라는 결과를 남긴다. 그래서 인간도 하나의 생명체이기 때문에 자신만의 생존을 위해 발버둥치는 것은 당연하게 보인다.

 

그러나 진화적 관점에서 보면 인간은 결코 고립된 상태로 주위 생명체를 무시하고 살 수 없게 되어 있다. 그뿐만 아니라 생태계에서도 공생의 생존 방식을 볼 수 있다. 개미는 진드기를 돌봐주고, 진드기 분비물을 영양분으로 섭취하고 살아간다. 악어새는 악어의 이빨을 청소해 주는 대신 먹이를 얻어먹고 있다. 살벌할 것 같은 동물의 세계도 이렇게 공생의 관계가 많다.

 

지금 우리 사회는 다른 사람들과 자신의 견해가 다르다고 상대를 증오하는 일이 많다. 진보 세력은 보수 세력이 전부 없어지면 세상에 낙원이 올 것이라 상상하고, 보수는 진보가 사라져야 세상이 평화로울 거라 생각한다. 어떤 종교는 다른 종교를 인정하지 않는다. 인종차별주의자들은 자신의 인종만이 단언 우수하기 때문에 지구상에 살아남아야 된다는 망상을 갖고 있다.  이렇게 자신만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공생할 줄 아는 동식물보다도 생각이 짧다. 이들은 자신을 둘러싼 인간 세계에만 보지 말고 자연 세계에 한번 들여다봐야 한다. 또, 동물들의 지혜로운 공생관계를 알아 인간 사회에 접목하여 한다. 경쟁에서 살아남는 것만이 인류가 오랫동안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비결이라고 볼 수 없다.

 

'호모 심비우스'는 단순히 공생하는 인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만 아니다. '공생'의 사회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우선 '공감'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온갖 전자기기를 통해 사이버 세상과는 그렇게 잘 공감하는 듯하지만 바로 자기 옆에 있는 친구와는 교감하지 못하는 이러한 '불통'(不通) 사회에 무조건 '공생'을 강조한다는 것은 '우이독경'(牛耳讀經)으로 그칠 뿐이다.  '알면 사랑한다'라는 말처럼 동식물의 삶의 방식으로부터 '공생'을 알게 되는 '공감'이 형성된다면 우리 주위에 있는 타인들이 더욱 사랑스럽게 느껴지지 않을까하는 희망적인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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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거핀 2012-07-22 2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재천 교수의 이야기에 딱히 태클을 거는 것은 아니고, 위의 이야기들에 상당히 공감합니다만, 자연을 어떻게 보는가는 상당수 인간의 문제인 것 같아요. 자연의 동식물들은 예전부터 지금까지 각자 자신의 방식대로 살아왔을 것이고, 그 방식을 인간이 그때그때 필요에 의해서 해석하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구요..글의 논의대로 동식물의 진화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어느 부분을 인간이 강조해서 보는가의 문제도 또 있지 않나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cyrus 2012-07-23 18:55   좋아요 0 | URL
맥거핀님 말씀에 일리가 있습니다. 공생은 두 가지 유형으로 볼 수 있는데요. 상리공생은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공생의 의미입니다. 두 가지 서로 다른 종이 서로 이익을 얻으면서 돕는 것이죠. 이와는 조금 다른게 편리공생인데 한 쪽에만 이익을 얻고 다른 쪽은 이익 또는 불이익을 얻지 않으면서 돕는 관계를 말합니다. 사실 최재천 씨의 책을 읽게 되면 공생을 강조하면서 설명하는 것 같은데 편리공생에 대해서는 언급이 잘 없더군요. (정확한 기억이 아닙니다. 공생의 정의를 설명하는 부분에서 잠깐 편리공생에 대해서 설명할 수도 있고요) 어찌 보면 이러한 관점도 동식물의 관계 특정 부분만을 인간의 생활방식과 견주어 강조할 수도 있겠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