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 역학을 믿으려면 분자를 믿어야 한다.

 

(윌리엄 크로퍼, 위대한 물리학자 3에서, 105)





내게 천사를 보여 달라. 그러면 천사를 그릴 것이다.” 이 말을 남긴 프랑스의 화가 쿠르베(Courbet)는 대상을 사실 그대로 표현하는 것을 회화의 중요 덕목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신 또는 성서에 묘사된 성인과 천사들의 모습을 그리는 것에 관심이 없었다. 오로지 자신의 눈에 비친 현실을 그렸다.


오스트리아의 물리학자이자 철학자인 에른스트 마흐(Ernst Mach)는 원자의 존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 이유는 간명했다. 원자가 우리 눈에 보이지 않아서다. 마흐는 어떤 현상의 원인을 설명하게 해주는 관찰과 실험을 중요하게 여겼다. 원자론자들은 마흐의 견해에 반박할 수 없었다. 그 당시에 원자의 존재를 입증할만한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세등등한 마흐는 원자론자들을 향해 이렇게 일갈했으리라. “내게 원자를 보여 달라. 그러면 원자론을 믿을 것이다.”





















* 데이비드 린들리, 이덕환 옮김 볼츠만의 원자: 물리학에 혁명을 일으킨 위대한 논쟁(승산, 2003)


* [절판] 윌리엄 크로퍼 위대한 물리학자 3: 패러데이의 전자기학과 볼츠만의 통계 역학》 (사이언스북스, 2007)



 


마흐를 필두로 한 실증주의자들의 공세에 원자론자들은 수세에 몰렸다. 하지만 마흐와 같은 출신의 물리학자 루트비히 볼츠만(Ludwig Boltzmann)은 원자론을 부정하는 학자들을 설득하기 위해 그들과의 토론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는 수학자들의 전유물이었던 통계와 확률을 이용해서 운동하는 원자의 이동 방향과 상태를 알아내려고 했다. 볼츠만의 견해에 따르면 기체는 다수의 분자로 이루어졌다. 그는 통계적인 방식을 이용해 기체 속 분자의 성질을 설명하는 기체운동론을 주장했다스코틀랜드의 물리학자 맥스웰(Maxwell)을 포함한 선대의 과학자들이 기체운동론을 논의한 적이 있었지만, 이를 체계적으로 정립한 사람은 볼츠만이었다기체운동론은 통계역학이라는 새로운 물리학의 등장을 알리는 중요한 이론이 되었다물론 통계의 중요성을 주목한 볼츠만의 획기적인 발상 역시 원자와 분자의 세계를 믿지 못한 동료 과학자들을 납득시키지 못했다. 마흐도 그렇고, 당시 과학자들은 관찰과 실험을 거쳐 원자론이 명백한 이론인지 아닌지 검증하고 싶어 했다.


볼츠만은 실증주의자들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 원자론과 기체운동론과 관련된 연구에 매진했다. 하지만 진전이 없었다. 젊은 시절부터 그를 괴롭히던 우울증이 더 심해졌다. 우울증을 견디지 못한 볼츠만은 1906년에 가족과 함께 휴가를 보내다가 호텔 방에서 목을 매고 자살했다


볼츠만이 자살하기 일 년 전인 1905년에 스위스 특허청 직원이 총 다섯 편의 논문을 연이어 발표했다. 그 논문 중에 물 위에 떠 있는 꽃가루가 불규칙하게 움직이는 현상에서 나나타는 브라운 운동(Brownian Motion)’을 다룬 것이 있었다. 브라운 운동을 현미경으로 관찰한 스위스 특허청 직원은 분자의 움직임을 실험으로 검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의 논문은 볼츠만의 원자론에 힘을 실어주는 중요한 문헌이었다. 안타깝게도 볼츠만은 이 논문을 알지 못했다. 


재미있는 점은 스위스 특허청 직원이 좋아한 철학자가 마흐였다. 그 직원의 이름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이다. 아인슈타인은 191512월에 논리실증주의의 발전을 주도한 독일의 철학자 모리츠 슐릭(Moritz Schlick)에게 보낸 편지에 자신이 공부한 데이비드 흄(David Hume)과 마흐의 인식론이 특수상대성이론의 탄생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밝혔다

















* 김현철 강력의 탄생: 하늘에서 찾은 입자로 원자핵의 비밀을 풀다(계단, 2021)




원자핵 속에 있는 입자들을 결합시키는 힘인 강력이 발견되기까지 나온 과학자들의 업적을 보여준 강력의 탄생에 볼츠만이 잠깐 나온다.



 볼츠만은 시대를 한참이나 앞선 과학자였다. 그는 당시 사람들이 상상도 하지 않던 원자론을 주장했다. 그 이듬해에 눈으로 볼 수 있는 것만이 실재한다고 주장하던 에른스트 마흐가 빈 대학에 왔다. 볼츠만의 원자론을 따르는 사람들과 마흐를 추종하는 실증주의자들 사이에 전쟁이 시작되었다. (23)



나는 강력의 탄생서평에서 볼츠만을 시대를 앞선 과학자로 평가한 저자의 견해를 비판했다. 하지만 지금은 저자의 견해가 옳다고 생각한다. 볼츠만은 시대를 앞선 과학자였다. 물론 볼츠만이 원자론을 주장했다고 해서 시대를 앞선 과학자로 평가하는 건 아니다. 볼츠만이 위대한 과학자인 이유는 통계와 확률을 동원해 미시적인 원자의 세계를 설명하려고 했다는 사실이다. 미시 세계에 접근하기 위해 수학을 이용한 볼츠만의 발상은 당대 물리학자들이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희한한 것이었다(《볼츠만의 원자》 80쪽).


볼츠만의 원자위대한 물리학자 3: 패러데이의 전자기학과 볼츠만의 통계 역학은 볼츠만의 삶과 업적, 그리고 통계 역학을 소개한 책이다. 그런데 볼츠만의 원자에 오자가 있다. 정오표를 남긴다.



* 27쪽: 19세기 영국의 철학자 케인스


[] 케임브리지 대학생 시절에 케인스(Keynes)는 철학 수업을 청강한 적이 있다. 케인스 전기(두 권으로 된 번역본이 있는데, 이 책의 부제는 경제학자 · 철학자 · 정치가)를 집필한 경제사학자 로버트 스키델스키(Robert Skidelsky)철학자로서의 케인스의 면모를 주목했다. 케인스는 마르크스(Marx)가 세상을 떠난 해이기도 한 1883년에 태어났고, 1902년에 케임브리지대학에 입학했기 때문에 그는 20세기에 활동한 인물이다.


* 53쪽: 부루크너 브루크너(Anton Bruckner)


* 100쪽: 호이겐스 하위헌스(Huygens)


* 114헨리 캐빈디쉬 헨리 캐번디쉬(Henry Cavendish)


* 134내장암 대장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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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그만 메모수첩 2021-08-03 0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침 빅뱅 이후 38만 년, 자유전자와 원자핵이 만나 원자들이 형성되는 장면을 읽고 있는데 볼츠만의 이야기를 읽으니 마음이 편치가 않네요. 영면하셨기를. 언제나처럼 리뷰 잘 읽었습니다. 🙏🏼

cyrus 2021-08-03 21:36   좋아요 1 | URL
볼츠만이 우울증으로 고생하지 않았으면 오래 살아서 더 많은 업적을 남겼을 거고, 지금쯤 누구나 기억하는 과학자로 알려졌을 겁니다.

새파랑 2021-09-10 16: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Cyrus님 9월 당선 축하드립니다~!!

mini74 2021-09-10 16: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

그레이스 2021-09-10 1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합니다 👏

서니데이 2021-09-10 18: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조그만 메모수첩 2021-09-10 1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이하라 2021-09-10 1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초딩 2021-09-11 1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페이퍼 당선 축하드립니다~
 
토성의 고리
W. G. 제발트 지음, 이재영 옮김 / 창비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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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점  ★★★  B






18세기 프랑스의 풍경화가 위베르 로베르(Hubert Robert)의 별명은 폐허의 로베르. 폐허가 된 고대 건축이 있는 풍경을 자주 그려서 이런 별명이 생겼다여행기 형식으로 된 장편소설 토성의 고리를 쓴 독일의 작가 W. G. 제발트(Winfried Georg Sebald)에게 붙여주고 싶은 별명은 폐허의 제발트


토성의 고리에서 화자는 사람들이 스쳐 지나가기 쉬운 폐허의 현장들을 응시한다. 그가 주목한 폐허의 현장들은 마음을 즐겁게 해주는 최적의 여행 장소와 거리가 멀다. 그곳엔 쓸쓸함이 감돌고 있다. 화자는 자신을 덮쳐오기 시작한 공허감을 벗어내기 위해 영국의 서퍽(Suffolk) 주로 도보 순례를 한다. 소설의 부제는 영국 순례. 하지만 소설 속 화자의 여행은 영국에 한정되어 있지 않다그의 내면은 가지처럼 뻗어서 영국 너머의 세계로 향하고,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과거의 장소를 답사하기도 한다예를 들면 화자는 사우스월드(Southwold)와 월버스윅(Walberswick) 마을 사이를 오가는 철교를 바라보다가 19세기 중반 중국의 시대상을 되돌아본다이것은 눈으로 보는 여행이 아닌 마음이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여행이다화자가 폐허의 현장들을 둘러보면서 사색에 빠질수록 허무와 우울은 더욱 선명해진다. 우울한 순례자는 망각과 무관심의 풍화 작용으로 부식되고 퇴색된 장소들을 보며 장밋빛 미래를 기대하면서 발전해왔던 세상의 허망함을 깨닫는다.


점점 세상은 더 좋아질 거라는 낙관적인 믿음은 인류를 눈멀게 한다. 세상을 좋아지게 만드는 데 기여한 인간은 역사의 승자가 된다. 승자에게만 주목한 역사는 대대손손 보존되는 우상(偶像)을 견고하게 해주는 재료다. 우상이 우뚝 서 있을수록 우상의 그림자는 더욱더 짙어진다. 우상의 그림자는 패자 또는 무명으로 기록된 역사를 가린다토성의 고리에서 보여준 작가의 글쓰기는 폐허의 장소에 드리운 우상의 그림자를 걷어내고, 부식되어 뿔뿔이 흩어져버린 역사의 파편들을 모으는 작업이다토성의 고리는 토성에 접근하다가(토성의 중력에 의해서) 부서진 위성들의 잔해로 이루어져 있다. 소설 제목은 주류 역사가 만든 거대한 우상을 못 이겨 산산조각이 난 또 다른 역사의 파편들을 의미한다. 작가가 글로 기록하면서 복원한 역사는 미래 낙관론과 우상 중심의 역사관에 도취한 인류가 보지 못한 세상의 진실이다.


토성의 고리는 인내심이 필요한 소설이다. 화자의 순례는 옆길로 새거나 때로는 미로 같은 장소에서 헤매기도 한다. 여기에 폐허의 현장들을 둘러보면서 느낀 상념까지 버무려진 글은 작가의 문장을 따라가는 독자를 지치게 한다. 여행은 폐허를 응시하는 화자를 심란(心亂)하게 하고, 그것을 지켜보는 독자의 마음이 심난(甚難)하다.






미주(尾註)알 고주(考註)

 


* [주1] 역자는 바실리스크(Basilisk)보는 것만으로 사람을 죽인다는 전설의 뱀(32)’이라고 설명했다. 맞긴 한데 이는 중세 시대에 만들어진 전설이다. 고대 로마 제국의 박물학자 플리니우스(Plinius)의 저서 박물지(최근에 번역본이 나왔다!)에 따르면 바실리스크가 내뱉은 숨결에 독성이 있어서 그 숨결만 닿아도 죽는다. 이것이 고대 사람들이 상상한 바실리스크의 위력이다. 중세에 접어들면서 바실리스크 전설은 과장스럽게 변형되었는데, 메두사(Medusa)처럼 눈만 마주쳐도 죽는다든가 그 울음소리를 듣는 것만으로 죽을 수 있다는 설정도 나왔다.



* [2] 33에 언급된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환상의 존재들에 대한 책(El libro de los seres imaginarios)보르헤스의 상상 동물 이야기(민음사, 2016)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다.



* 46


 아편을 맞고 몽롱한 상태에 빠진 콜리지(1772~1834, 영국의 시인 · 평론가)라고 해도 그의 몽골 군주 쿠빌라이 칸을 위해 이보다 더 몽환적인 장면을 그려낼 수는 없었을 것이다. [3]

 

[3] 아편에 취한 콜리지가 몽롱한 상태에 쓴 시가 바로 쿠블라 칸(Kubla Khan)이다. 콜리지는 꿈에서 본 쿠빌라이 칸의 여름 별궁 제나두(Xanadu, 제너두)를 소재로 이 시를 썼다.

 

 


* 294~295

 

 오후에 그들은 오랫동안 함께 앉아 따소(16세기 이딸리아의 시인)해방된 예루살렘(Gerussalemme liberata)신생(Vita nuova)을 읽었고, 어린 소녀의 목이 진홍색으로 붉어지거나 자작의 심장이 목깃까지 두근거리는 일이 드물지 않았다.

 

[주4] 신생단테(Dante)의 작품이다번역본은 새로운 인생(민음사, 2005)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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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8-01 21:4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토성의 고리, 제목부터 난해해 보이는데, 리뷰보니 더 난해해 보이네요 ㅜㅜ

cyrus 2021-08-02 17:12   좋아요 1 | URL
제목의 의미는 책 맨 앞장을 보면 알 수 있어요.. ㅎㅎㅎㅎ

Angela 2021-08-01 23:4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의식의 흐름대로 진행되나요?

cyrus 2021-08-02 17:12   좋아요 0 | URL
네, 그렇습니다. ^^

붕붕툐툐 2021-08-02 00: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cyrus님 날 더운데 잘 지내시나요?
인내심이 필요한 소설에서 전 벌써 아웃 당했습니다. cyrus님이 어려우시면 저는 읽어낼 재간이 없네요~ 하핫!

cyrus 2021-08-02 17:15   좋아요 1 | URL
국내 독자들이 생소한 인물(에드워드 피츠제럴드, 앨저넌 스윈번, 홍수전)에 대한 일화와 역사가 이 책의 주요 내용이라서 서양 문화와 서양사에 관심 있는 독자가 아니라면 지루할 수 있어요. ^^;;

바람돌이 2021-08-02 00:5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독자를 심란하게 한다는데서 빵!!! 작가님들 이러시면 안되어요. ^^

cyrus 2021-08-02 17:17   좋아요 1 | URL
지난 주 일요일에 <토성의 고리> 온라인 독서 모임이 진행되었는데, 이 책을 어려워한 분들이 많았어요. 솔직히 말해서 저는 이 소설이 재미없었어요.. ^^;;

blanca 2021-08-02 17: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제나두에 그런 뜻이. 올리비아 뉴튼 존 노래 제목이잖아요!

cyrus 2021-08-02 17:32   좋아요 2 | URL
제나두라는 노래가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어요. 어떤 노래인지 들어봐야겠어요. ^^
 
강력의 탄생 - 하늘에서 찾은 입자로 원자핵의 비밀을 풀다
김현철 지음 / 계단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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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점  ★★★☆  B+






이 세상의 모든 물질을 구성하는 데 반드시 존재해야 하는 네 가지 힘이 있다. 그 네 가지 힘이 바로 중력, 전자기력, 강한 핵력, 약한 핵력이다. 중력은 중량(무게)이 있는 모든 물질을 서로 끌어당기는 힘이다. 중력은 네 가지 힘 중에 가장 약하다. 하지만 중력이 약한 힘이라고 해서 절대로 가볍게 봐선 안 된다. 이 세상 모든 물질의 중량이 0이 되는 것을 무중량 상태(Weightlessness state)’라고 한다. 무중량 상태가 된 물질은 공중에 뜨게 되는데, 우주선에 탑승한 우주비행사의 모습을 생각하면 된다. 용어가 생소하게 보일지 모르겠으나 그동안 우리는 무중량 상태를 무중력 상태로 잘못 알고 있었다. 중력의 상태가 0에 근접할 수 있어도 완전한 0이 되는 세계, 즉 중력이 없는 세계는 없다.


전자기력은 간단하게 말하면 전기력과 자기력의 성질을 모두 가진 힘이다. 전자기력은 강한 핵력 다음으로 힘의 세기가 강하다(강한 핵력>전자기력>약한 핵력>중력). 강한 핵력과 약한 핵력은 강력과 약력또는 강한 상호작용과 약한 상호작용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원자 속에 있는 이 두 가지 힘은 20세기에 이르러서야 증명되었다. 원자는 물질의 기본 입자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데모크리토스(Democritos)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원자(atomos)로 이루어져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은 원자의 실체가 완전히 밝혀지기까지 몇 세기를 지나야 했다.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은 한동안 잊혔고, 관찰이나 실험으로 검증 가능한 지식을 옹호한 실증주의자들은 원자론을 주장한 과학자들을 공격했다. 원자의 존재가 증명되자 과학자들은 원자 속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고 싶어 했다. 원자 속을 들여다본 과학자들은 원자의 중심 부분인 핵(원자핵) 주변에 공전하는 전자를 발견했고, 핵 속에 있는 양성자와 중성자까지 확인했다. 강력은 양성자와 중성자를 결합하는 힘이다. 약력은 양성자를 중성자로 변환시키는 힘이다. 양성자가 중성자로 변하는 현상을 베타 붕괴라고 한다. 유물이나 화석의 연대를 측정할 때 사용하는 방사성 탄소연대측정법은 베타 붕괴 현상을 응용한 기술이다.

 

강력과 약력은 이들보다 먼저 발견된 중력과 전자기력 못지않게 아주 중요한 힘이다. 하지만 강력과 약력의 인지도는 중력과 전자기력보다 낮은 편이다. 강력과 약력을 이해하려면 핵물리학을 공부해야 하는데, 이 학문은 과학 비전공자들이 선뜻 다가서지 못하게 할 정도로 상당히 어렵다강력은 네 가지 힘 중에 가장 크면서도 제일 약한 중력의 인지도에 밀려 주목을 크게 받지 못했다. 강력의 탄생 이 세상에서 가장 큰 힘을 향해 스포트라이트를 비춘 책이다


이 책은 뢴트겐(Röntgen)X선을 발견한 해인 1895년부터 시작한다. 과학자들이 X선에 주목하고 있을 때 베크렐(Becquerel)은 처음으로 방사선을 발견했다. 그는 방사선에 우라늄의 앞 글자를 딴 ‘U-(uranic ray)’이라는 이름을 붙였지만, 당대 과학자들의 주목을 크게 받지 못했다. 하지만 방사선 연구는 미시 세계를 규명하려는 물리학자들이 활동하기 좋은 블루 오션이었다. 특히 마리 퀴리(Marie Curie)는 남편 피에르 퀴리(Pierre Curie)와 함께 방사선이 폴로늄(polonium)과 라듐(radium)에서도 나온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찰스 윌슨(Charles Wilson)이 만든 안개상자는 과학 역사상 획기적인 실험 장치로 평가받지만, 과학 비전공자들에게는 생소하다. 안개상자가 왜 중요한가? 이 실험 장치가 나오면서 과학자들은 눈에 보이지 않던 방사선을 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모든 과학자는 논리실증주의자가 아니다. 하지만 과학은 새로운 이론이 나오면 여러 번의 실험을 통해 반드시 검증해야 하는 학문이다. 그러므로 원자, 방사선, 강력의 존재가 밝혀지는 데 오랜 시간이 지나야 했다. 이 길고 긴 과학적 여정에 수많은 과학자가 나섰다. 그중에 라듐과 폴로늄을 발견한 마리 퀴리, 방사선이 두 가지 형태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확인한 러더퍼드(Rutherford), 강력의 존재를 예측한 유카와 히데키(湯川秀樹) 등은 노벨상을 받았고, 과학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학자로 기억되고 있다. 반면에 이들보다 한발 늦게 실험 결과를 보고한 과학자들은 잊혀졌다. 위대한 성과를 남겼지만, 모종의 이유로 주목받지 못한 과학자들도 있다. 이탈리아의 물리학자 도메니코 파치니(Domenico Pacini) 우주에서 지구로 들어오는 방사선인 우주선(宇宙線)의 실체를 밝히는 데 성공했다. 그는 우주선 연구의 선구자로 알려진 빅터 헤스(Victor Hess)보다 먼저 우주선을 측정했지만, 영미와 독불(독일과 프랑스) 중심의 과학사는 파치니의 업적을 외면했다. 명성을 얻고 싶은 과학자는 자신의 연구 성과를 정리한 논문을 쓸 때 자기보다 앞선 연구 결과를 언급하지 않는 실례를 범한다. 강력의 탄생은 철저한 검증을 거친 뒤에야 인정받은 과학자들의 노력과 성과뿐만 아니라 잘 알려지지 않은 과학자들의 비윤리적인 모습도 보여준다.


이 책을 쓴 저자는 물리학과 교수다. 학술논문을 제외하면 강력의 탄생은 저자의 첫 번째 과학 교양서다. 저자는 핵물리학 발전에 기여한 과학 실험을 도판과 함께 설명했는데, 실험에 참여한 과학자들이 대화하는 장면도 넣었다. 저자가 상상해서 쓴 것이지만, 과학자들의 대화 장면을 보고 있으면 실험실 내부를 코앞에서 보는 듯한 기분이 든다


저자의 첫 책이라서 아쉬운 점도 있다과학 비전공자에게 생소한 과학 용어의 뜻을 설명한 저자의 주석이 많지 않다. 본 책 244쪽의 보스-아인슈타인 통계(Bose-Einstein statistatics)’, 266쪽의 코펜하겐 해석(Copenhagen interpretation)’, 355쪽의 쿨롱 힘(Coulomb’s power)’에 대한 주석이 없다. 책에 나온 과학 용어의 의미를 간단하게 정리한 부록이 필요해 보인다. 과학 비전공자를 위한 과학 교양서라면 이런 부록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저자는 원자론을 주장한 오스트리아의 물리학자 루트비히 볼츠만(Ludwig Boltzmann)시대를 한참이나 앞선 과학자로 소개했다.

 

 

 

* 23쪽


 볼츠만은 시대를 한참이나 앞선 과학자였다. 그는 당시 사람들이 상상도 하지 않던 원자론을 주장했다. 그 이듬해에 눈으로 볼 수 있는 것만이 실재한다고 주장하던 에른스트 마흐가 빈 대학에 왔다. 볼츠만의 원자론을 따르는 사람들과 마흐를 추종하는 실증주의자들 사이에 전쟁이 시작되었다



 

이는 사실과 다르다. 데모크리토스 이후부터 잊힌 원자론을 주장한 최초의 과학자는 존 돌턴(John Dalton)이다. 돌턴이 살았던 당시에 원자의 실체를 확인할 방법이 없었고, 원자의 존재를 받아들이지 않는 과학자들이 많았다. 돌턴의 근대적 원자론이 알려지게 되면서 원자의 존재 여부를 둘러싼 과학자들의 논쟁이 시작되었고, 원자론자 볼츠만과 이에 맞선 실증주의자 마흐(Ernst Mach)가 활동한 20세기 초에도 이어졌다. 따라서 볼츠만이 원자론을 주장했다고 해서 시대를 한참이나 앞선 과학자로 보기 어렵다.



* 53

 

 영국에서 18000천 킬로미터나 떨어진 뉴질랜드, 그곳에서도 한참 더 들어가면 남쪽 섬의 북부 한 귀퉁이에 넬슨이라는 자그마한 항구도시가 있다. 트라팔가르 해전에서 스페인 함대를 무찌른 넬슨 제독의 이름을 따왔다.

 

 


트라팔가르 해전(Battle of Trafalgar)은 영국 함대와 프랑스-스페인 연합 함대가 맞붙은 전투다.


강력을 발견하기 위한 과학자들의 여정은 쿼크(quark)와 강력이 작용하는 강입자인 파이온(Pion)이 처음 발견된 해인 1947년에 마무리된다. 물론 이 여정이 여기서 끝난 건 아니다. 1895년부터 1947년까지의 과학적 여정은 강력의 탄생을 알리는 서막이다. ‘강력의 실체를 이해하기 위한 여정이 남았다. 강력의 탄생의 저자는 1947년 이후의 이야기를 담은 후속편을 예고했다. 후속편에서는 쿼크를 비중 있게 다룰 것으로 보인다아직 나오지 않은 책에 감히 제목을 정한다면, ‘쿼크의 탄생이다.






정오표

 





* 244: 핵물학 핵물리학

 







 

* 288: 194 194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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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7-20 00:1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 어려운 물리 책이라니~!! 정말 첫 책이어서 그런지 아쉬운 부분이 있는거 같네요. 이렇게 어려운 책을 읽는 Cyrus님 완전 👍 언제나 봐도 놀라운 정오표 까지~!!

cyrus 2021-07-20 20:41   좋아요 3 | URL
과학책을 읽을 때 정말 무슨 뜻인지 모르는 내용은 대충 훑어보고 그냥 넘어갑니다. 그래서 책 한 권 다 읽고 나면 머릿속에 남는 게 없습니다. 잘 모르니까 또 비슷한 주제의 과학책을 읽고, 모르는 내용은 넘어가고.. ㅎㅎㅎ

태양의그림자 2021-07-20 19:2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서평을 훌륭하게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책 제목은 아마도 <세 개의 쿼크>가 되지 않으려나요? ^~^

cyrus 2021-07-20 20:45   좋아요 3 | URL
안녕하세요. 책을 쓰신 분이시군요. 서평을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저는 과학 비전공자인데 서평을 쓰면서 번데기 앞에 주름 잡은 건 아닌지 모르겠어요. 후속편이 나오면 사서 읽어보겠습니다. ^^

태양의그림자 2021-07-20 21: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원래는 한 권으로 내려고 했는데 내용이 많아서 우선은 1947년까지 냈습니다. 다음 책에서는 좀 더 친절하게 설명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초딩 2021-08-06 17: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그레이스 2021-08-06 1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합니다 ~♡

이하라 2021-08-06 18: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cyrus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thkang1001 2021-08-06 18: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cyrus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서니데이 2021-08-06 18: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새파랑 2021-08-06 19:3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려운 독서와 오타 발견 달인 Cyrus님 축하드려요. 항상 건강하세요 ^^

mini74 2021-08-06 19: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미주알고주알 팬입니다 ㅎㅎㅎ 당선 축하드려요 *^^*

강나루 2021-08-06 2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yrus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하나의책장 2021-08-14 02: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thkang1001 2021-08-14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yrus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붉은까마귀 2022-10-19 1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볼츠만이 시대를 앞선게 맞아요 당시엔 화학계랑 물리학계랑 입장이 달랐어요 당시 물리학계에선 원자가 있다는게 주류가 아니었죠 그러한 맥락을 모르고 전체 과학계로 확대시키니 오해하시는 겁니다
 
이 사람을 보라 - 어떤 변화를 겪어서 어떤 사람이 되었는지 세창클래식 5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이동용 옮김 / 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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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점   ★★★☆   B+






니체(Nietzsche) 하면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그의 대표작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약칭 차라투스트라’, Also sprach Zarathustra, 1885). 그다음은 니체가 남긴 말로 알려진 신은 죽었다가 있다. 이 말이 처음 나온 니체의 책은 즐거운 학문(Die fröhliche Wissenschaft, 1882)이다. 니체의 철학을 알고 싶은(공부해보고 싶은) 독자들은 차라투스트라부터 읽기 시작한다. 왜냐하면 차라투스트라는 가장 인지도가 높은 니체의 책인데다 니체가 독보적이라고 표현했을 정도로 본인 스스로 그 책을 극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니체의 철학을 전문적으로 연구한 학자들은 차라투스트라를 가장 먼저 읽는 것은 오히려 니체를 이해하는 데 독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들은 니체에 입문하는 독자들에게 차라투스트라를 먼저 읽으라고 절대로 권하지 않는다.

 

니체는 아포리즘(aphorism), 잠언 형식의 문장으로 글을 썼다. 그는 자신만 알아볼 수 있는 메모를 남겼는데 어떻게 보면 니체의 글은 불친절하다. 아포리즘을 선호한 니체의 글쓰기 방식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은 무턱대고 그의 글을 읽다가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해서 중도에 포기한다. 이 중에 어떻게든 끝까지 다 읽은 독자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짧은 글 속에 압축된 니체의 철학적 사유를 머리로 파악하지 못했다면 문장을 눈으로 완독한 것에 만족해선 안 된다.

 

그렇다면 니체를 본격적으로 알기 위해서 가장 먼저 읽어야 하는 니체의 저서는 무엇일까. 니체 연구자들마다 니체를 막 이해하려는 독자에게 추천한 책이 다른데, 그중에 포함된 한 권이 이 사람을 보라(Ecce Homo). 이 책이 집필된 시기는 1888년이다. 이듬해 니체는 정신병원에 입원했고, 1900년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글을 쓰지 못했다. 니체는 이 사람을 보라의 대미를 장식할 두 개의 장에 각각 전쟁 선언망치가 말하다라는 제목을 붙였다. 하지만 그는 끝내 두 개의 장을 쓰지 못한 채 정신병원에 입원했고, 완성하지 못한 이 사람을 보라는 그의 마지막 책이 되고 말았다.

 

이 사람을 보라신약성서의 요한복음서에 나오는 라틴어 구절 에케 호모(Ecce Homo)’를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요한복음서에 따르면 로마의 총독 빌라도(Pilatus)는 유대인들에게 고소당한 예수의 머리에 가시 면류관을 씌우고, 왕을 상징하는 자줏빛 옷을 입히도록 했다. 이때 빌라도는 초라한 몰골을 한 예수를 군중에게 보여주면서 에케 호모라고 말했다. 법정에 모인 유대인들은 예수를 유대인의 왕이라고 부르면서 조롱했고, 그를 십자가에 처형하라고 외쳤다.

 

책 제목의 이 사람은 과연 누구를 말하는 걸까. 예수, ? 아니다. ‘이 사람은 니체 본인이다. 이 사람을 보라의 부제는 어떤 변화를 겪어서 어떤 사람이 되었는지(Wie man wird, was man ist)’. 니체는 이 책 한 권에 자신이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썼으며 자신이 쓴 책들의 주요 내용과 집필 의도를 밝혔다. 이 사람을 보라는 한마디로 말하면 문헌학자에서 철학자로 다시 태어난 니체의 이력서이다. 니체의 말년에 나온 마지막 책이지만, 니체의 진짜 모습을 이해하려면 이 책을 먼저 읽어야 한다.

 

물론 이 사람을 보라도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니다. 의미를 단번에 알 수 없는 애매모호한 문장은 니체의 생각에 쉬이 접근하기 어렵게 만든다. 그래서 잘못 읽으면 니체를 오해하거나 왜곡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 니체는 이 사람을 보라에서 음악가 리하르트 바그너(Richard Wagner)를 비중 있게 다룬다. 니체와 바그너의 관계, 즉 바그너를 열렬히 찬양했던 니체가 바그너를 맹렬하게 비난하는 쪽으로 돌아서게 된 배경을 모르면 바그너가 니체의 철학에 끼친 영향을 지나칠 수 있다. 혹자는 니체가 정신 발작을 일으키기 전에 이 사람을 보라를 썼기 때문에 니체를 제대로 이해하는 데 유용하지 않는 책이라고 말한다. 책 곳곳에 있는 난해한 문장과 과대망상에 가까운 잠언은 니체의 정신 분열 증상의 징후로 볼 수 있다. 하지만 혼돈 속의 질서라는 말이 있다. 혼란스러워 보이는 글을 꼼꼼하게 읽으면 니체가 살아오면서 축적해온 사유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니체는 이성과 도덕, 그리고 기독교 교리를 진정한 삶을 사는 데 걸림돌이 되는 우상 또는 허상으로 본다. 이성은 위험하고도 삶을 매장하는 폭력적인 힘(이 사람을 보라, 143)’이다. 이성은 자유를 억압한다. 도덕은 우리의 삶을 구속한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원죄는 우리 인생을 부정적으로 보게 만든다. 기독교에 따르면 인간은 모두 죄인이다. 인간의 죄를 대신해 십자가형을 받은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받아 천국에 갈 수 있다. 그러므로 인간은 스스로 원죄에서 벗어날 수 없다. 니체는 죄를 씻어내기 위해 거듭 반성하고, 신에게 매일 기도하는 기독교적 인간으로서의 삶을 거부한다. 그런 삶은 현실을 부정적으로 보게 만들며 고통을 주는 운명에 대처하지 못한다. 이러면 우리가 살면서 만나게 될 거대한 허무의 벽을 넘지 못한다. 니체는 허무에 맞서는 허무를 내세운다. 그는 낯설고 가혹한 운명에 직면할 때 극단적인 용기로 충만한 긍정(이 사람을 보라, 145)’의 힘을 가지면서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이 바로 삶에의 의지이며 그가 지향한 디오니소스적 삶


디오니소스(Dionysos)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술의 신이다. 우리는 그가 매일 입에 술을 달고 사는 신이며 질서정연한(올바른) ‘이성과 대조되는 무질서한(올바르지 않은) ‘광기를 상징하는 존재로 생각한다. 하지만 디오니소스를 바라보는 니체의 생각은 다르다. 그는 이 사람을 보라의 서문에 자신을 철학자 디오니소스의 제자라고 밝힌다(13). 디오니소스는 여러 개의 별칭을 가지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폴리고노스(Polygonos)’. ‘폴리고노스거듭 태어난 자라는 뜻이다. 니체는 우리 삶에 여러 번 오게 될 고비들을 넘어서려면 망치를 들어 깨부수고(우상의 황혼), ‘쟁기로 갈아엎어야 한다고 말한다(반시대적 고찰). 한계를 깨부술 수 있는 자는 거듭 태어난다. 다시 태어나면 진정한 자기 자신을 만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니체가 강조하는 긍정의 철학이다.

 

세창출판사에서 나온 이 사람을 보라는 니체에 입문하는 독자에게 적합한 책이다. 역자의 상세한 주석은 니체 철학에 도전하다가 어려워서 중도에 포기할 수 있는 독자들에게 필요한 아리아드네의 실타래.[] 하지만 독자가 모를 수 있는 인명(니체의 지인이나 니체가 언급한 프랑스 작가들)을 소개한 주석이 없어서 아쉽다.

 

오자도 보인다. 36쪽에 에케 호로에케 호모의 오자. 119쪽 본문의 케사레 보르자체사레 보르자(Cesare Borgia)’로 써야 한다. 119쪽의 94번 주석은 토머스 칼라일(Thomas Carlyle)영웅 숭배론을 설명한 내용이다. 영웅 숭배론에 언급된 인물 중에 존스가 있는데, 이는 오자다. 존슨이 맞다. ‘존슨은 영국의 문필가 겸 학자인 새뮤얼 존슨(Samuel Johnson)이다. 230쪽의 카글리오스트로칼리오스트로(Cagliostro)’라고 써야 한다. 칼리오스트로는 18세기에 칼리오스트로 백작이라는 별명으로 알려진 이탈리아의 연금술사다.

 





[] 아리아드네(Ariadne)는 크레타(Crete)의 공주다. 그녀는 크레타의 미궁으로 들어가는 테세우스(Theseus)를 위해 실타래를 건네준다. 테세우스는 그녀가 준 실타래 덕분에 미궁에 사는 괴물 미노타우로스(Minotauros)를 죽이고, 미궁을 탈출하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테세우스는 낙소스(Naxos) 섬에 잠든 아리아드네를 놔둔 채 떠나고, 그녀는 디오니소스의 아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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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7-14 22:2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유명해서 유명한 니체~! 저 한번 도전해보겠다고 <짜라투스트라> 구매했는데 Cyrus님 글을 보니 약간 무섭네요 ㄷㄷ 이 리뷰만 봐도 완전 어려울거 같아요ㅜㅜ 주말에 시간내서 한번 도전해 봐야겠어요🤔

cyrus 2021-07-15 22:26   좋아요 0 | URL
니체의 철학을 제대로 이해한 연구자의 번역본이나 입문서를 읽으면 니체를 이해하는 데 수월합니다. 역자의 상세한 설명이 없는 니체의 저서는 피하는 게 좋습니다. ^^

페넬로페 2021-07-14 23: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차라투스트라는 갖고 있는데 아무래도 그 책을 먼저 보는건 무리인듯 해요. 저는 cyrus님께서 적어주신 <디오니소스~~긍정의 철학이다>의 구절들이 좋아서 니체를 읽고 싶어요.
‘이 사람을 보라‘ 책부터 먼저 읽는게 좋겠네요^^cyrus님, 더운데 건강하게 잘 자내시나요? 오랜만에 뵈어 반갑습니다.
cyrus님의 리뷰는 언제나 감탄입니다**

cyrus 2021-07-15 22:32   좋아요 1 | URL
지난달부터 니체의 책을 읽기 시작했어요. 공장에 일하면서 독서량이 줄어들었고, 글 한 편 제대로 쓰지 못하는 일상이 계속되니까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들었어요. 독서와 글쓰기 없이 한 주 훌쩍 지나가버리니까 허무한 마음이 들었어요. 그러다보니 삶의 의욕까지 떨어지게 되더라고요. 그러는 와중에 니체의 책을 읽었는데 처음으로 철학 책을 읽으면서 위로를 받았어요. 허무에 맞서는 니체의 철학을 항상 생각하면서 살아가고 있어요. ^^

붕붕툐툐 2021-07-15 09: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cyrus님 또 반가워요!!ㅎㅎ 니체 입문서로 괜찮은 거 같은데 3.5점이라 망설여지네요~ㅋㅋㅋㅋ 저 짜라투스트라 무려 1/3 읽음요!ㅋㅋㅋㅋㅋㅋ

cyrus 2021-07-15 22:33   좋아요 0 | URL
제가 부여한 책의 평점은 무시하도 됩니다... ㅎㅎㅎ 그리고 3.5점은 무난한 편입니다. ^^

2021-07-15 20: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7-19 22: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7-16 06: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고통에 이름을 붙이는 사람들 - 일터에서의 사고와 죽음, 그에 맞선 싸움의 기록
노동환경건강연구소 기획 / 포도밭출판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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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점   ★★★★☆   A







왜 나는 조그만 일에만 분개하는가. /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 오십 원짜리 갈비가 기름 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 년한테 욕을 하고 / 옹졸하게 욕을 하고 [중략]

 


왜 나는 조그만 일에만 분개하는가라는 구절로 시작되는 이 시의 제목은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이다. 이 시를 쓴 김수영은 조그만 일에만 분개할 뿐 정작 부당한 권위 앞에서 분개하지 못한 자신의 소극적 태도를 반성했다. 시인은 옹졸하게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을 아무래도 나는 비켜서 있다. / 절정 위에는 서 있지 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서 있다라고 표현했다. ‘절정(絶頂)’은 불의에 정면으로 맞서고 분개하는 삶을 뜻한다. 하지만 불의에 소극적으로 대응하면서 살아온 시인은 절정 옆에 비켜서 있는 상태다

 

시인이 반성한 옹졸한 전통은 결국 이 시를 읽는 우리의 옹졸한 모습이기도 하다. 우리는 일하는 타인에게 사소한 불만과 짜증을 내면서 살아왔다. 왜 우리는 택배 물품이 제시간에 도착하지 않으면 택배 노동자를 원망하는가. 택배 물품을 제대로 보관하지 않은 아파트 경비 노동자에게 분개하고, 전화 연결 대기 시간이 길다는 이유로 콜센터 상담원에게 옹졸하게 욕을 하고. 일하는 모든 사람은 노동자다. 그런데 노동자인 우리는 또 다른 노동자가 제공한 서비스가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거나 노동자가 만든 제품에 조그만 하자가 있으면 분개한다. 타인의 노동에 분개한 우리는 내 주변의 노동자들이 어떻게 일하고 있는지 잘 몰랐고,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옹졸한 노동자의 전통은 타인의 노동을 업신여기게 한다.

 

고통에 이름을 붙이는 사람들은 노동자들의 몸과 마음을 병들게 하는 열악한 노동 현실에 비켜선 채 그들에게 분개하는 우리의 옹졸한 모습을 반성하게 만든다. 노동자들에게 고통을 주는 노동의 과정은 최상의 상품과 서비스라는 노동의 결과에 가려진다. 이 책을 기획한 노동환경건강연구소는 잘 보이지 않고, 잘 알려지지 않은 노동자들의 고통에 이름을 붙이는 일을 했다. 이름이 생긴 노동자들의 고통은 산업재해또는 직업병이라는 실체로 세상에 알려진다. 그동안 노동자들은 자신의 아픔을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자신을 아프게 만드는 노동 현장의 문제점을 알고 있었다고 해도 생계를 꾸려나가기 위해서 참고 일해야만 했다. 고통에 이름을 붙이는 사람들은 노동자인 우리가 외면했던 또 다른 노동자들의 고통, 그리고 고용주 앞에서 침묵해야 했던 우리의 고통이 기록된 책이다.

 

헌신과 인내. 노동을 신성하게 여기는 사람들은 이 두 단어를 주로 쓴다. 그들은 일하다가 병들거나 다쳐도 가족을 위해 아픔을 참아가면서 일터로 향한다. 우리는 그 모습을 성실한 노동자의 본보기라고 배우면서 자라왔고, 고통을 초월한 노동자들에게 경의를 표했다. 이와 반대로 아프다면서 출근하지 못하는 노동자에게 냉담한 반응을 드러낸다. 심지어 그의 아픔을 의심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고용주는 가족 같은 분위기의 회사라고 홍보하면서 구직자를 유혹한다. 하지만 노동자가 일하는 도중에 다치거나 죽으면 고용주는 사고 책임을 노동자에게 전가한다. 고용주가 정말로 가족 같은 분위기의 회사를 세웠다면 노동자가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지 작업 현장 점검을 철저히 했을 것이고, 보호복과 안전 장비를 요구하는 노동자의 목소리에 적극적으로 귀 기울였을 것이다. 내가 하는 노동도 힘든데 남의 노동과 고통까지 관심을 둘 여유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헌신과 인내를 강조하는, 아니 강요하는 노동은 노동자 모두에게 이롭지 않다. 노동자들이 서로 노동의 고통과 아픔을 알지 못한다면 건강한 노동을 할 권리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기 어려워진다.

 

모든 사람이 노동 문제에 비켜서 있지 않으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일단 노동의 정의를 다시 물어야 한다. 근면과 헌신을 강조하는 노동만이 노동의 유일한 정의요, 참된 정의도 아니다. 그것은 노동의 긍정적인 면을 지나치게 부각한다. 현실에 동떨어진 착한 노동’이 아닌 위험한 노동’을 주목해야 한다. 그러면 위험한 노동에서 비롯된 노동자의 아픔과 고통을 이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할 수 있다.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집필진은 한목소리로 타인의 노동을 존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역지사지의 자세로 다른 노동자의 고통을 바라보면 우리가 진짜로 분개해야 할 문제가 무엇인지 알게 된다.






미주(尾註)알 고주(考註)



* 144




굴똑 굴뚝






* 147




이타이타이병 이타이이타이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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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1-07-13 23:03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최근 벌어진 S대 청소노동자 사건
에서 문제의 발언을 한 교수를
보면서...

아 저런 인간도 교수를 하는구나
싶었습니다.

이 무더운 날씨에 열악한 환경에서
비지땀을 흘리는 힘겨운 타인의 노동
에 1도 공감하지 못하는 인간의 모습
이 너무나 서글펐습니다.

cyrus 2021-07-14 21:54   좋아요 2 | URL
몸을 많이 움직여하는 노동을 해보면 정말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됩니다. 이런 일을 한 번도 안 해본 사람은 육체노동의 힘겨움을 잘 모릅니다. 오늘 아침에 노동자가 음식물 폐기물을 버리다가 지하 저장소에 빠져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했어요. 일하다가 다치거나 사망한 노동자들의 뉴스를 보면 남 일 같지 않습니다.

붕붕툐툐 2021-07-14 00: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너무나 좋아하는 시입니다. 저도 딱 저렇게 사는 거 같아 읽을 때마다 반성 한바가지 하게 되는 시이죠.. 노동의 가치를 잃어버린 이 세태가 너무나 안타깝습니다..ㅠㅠㅠ

cyrus 2021-07-14 22:03   좋아요 2 | URL
사실 우리가 지금 편하게 살 수 있는 건 누군가의 노동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고, 우리의 노동이 또 다른 누군가가 편안하게 살아가는 데 영향을 주고 있어요. 그래서 서로 고마워해야 하고, 서로의 아픔과 고충을 이해하면서 살면 좋을 텐데 현실적으로는 어려워요. 각자 먹고 사느라 바쁘니까요.. ^^;;

새파랑 2021-07-14 00: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Cyrus님 글 오랜만에 읽으니까 너무 반갑네요~!! 타인의 노력을 존중하지 않는 태도는 정말 잘못된게 맞는것 같아요. 이 글을 보니 저도 반성하게 됩니다 ㅜㅜ 관심을 더 가져야 할 거 같아요~!!

cyrus 2021-07-14 22:07   좋아요 2 | URL
공장 일을 해서 그런지 손가락이 뻐근하네요. 이것도 직업병인가 봅니다... ㅎㅎㅎ 제 삶의 핵심이 노트북으로 글을 쓰는 건데, 손가락 상태가 좋지 않아서 글쓰기가 버거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