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록 홈즈 다시 읽기 - 홈즈의 비밀을 푸는 12가지 키워드
안병억 지음 / 열대림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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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협찬받고 쓴 서평이 아닙니다.




평점


2.5점   ★★☆   B-






1837년부터 시작된 영국 빅토리아 시대(Victorian Age)는 소설의 황금기다. 이 시대에 훌륭한 작가들이 무수히 활동했다. 당대 최고의 인기 작가는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였다. 그는 빅토리아 시대의 번영에 가려진 각종 사회적 문제와 빈민층의 애환을 묘사했다. 윌리엄 새커리(William Thackeray)조지 엘리엇(George Eliot)의 소설은 베스트셀러였다남성 필명으로 소설을 발표한 브론테 자매(Brontë sisters)는 앞의 세 사람에 비하면 생전에 명성을 얻지 못했지만, 사후에 그녀들의 작품은 걸작으로 칭송받는다조지 메러디스(George Meredith)앤서니 트롤럽(Anthony Trollope)국내에 번역된 작품이 없지만, 이 두 사람의 이름은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빅토리아 시대에 여성이 소설의 생산 주체이자 소비 주체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독자의 흥미를 유발하는 통속소설이 유행했다. 이혼, 삼각관계, 불륜, 사기 등 자극적인 소재를 다룬 통속소설의 홍수에 휩쓸리지 않고, 지금도 널리 읽히고 있는 소설이 있다. 그 소설이 바로 아서 코난 도일(Arthur Conan Doyle)셜록 홈스(Sherlock Holmes)’ 시리즈홈스 팬들은 셜록 홈스 시리즈 전 작품을 경전이라고 부른다.


셜록 홈스 시리즈는 추리소설 또는 범죄소설로 분류된다. 이렇다 보니 이 작품을 빅토리아 시대를 이해하기 위한 소설로 언급되는 경우가 드물다홈스는 종종 방 안에서 리볼버 권총으로 사격 연습을 한다. 머즈그레이브 전례문(The Adventure of the Musgrave Ritual)[주1]에 그가 맞은편 벽에 총을 쏘면서 ‘V.R.’이라는 글자를 새기는 장면이 나온‘V.R.’은 빅토리아 여왕(Victoria Regina)의 머리글자다. 


셜록 홈스 시리즈는 빅토리아 시대의 정치 · 사회 · 문화적인 분위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소설이다셜록 홈즈 다시 읽기: 홈즈의 비밀을 푸는 12가지 키워드는 홈스와 그를 창조한 코난 도일이 살았던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을 자세히 보여주는 돋보기. 소설 속에 사는 인간과 소설 밖에서 산 인간의 삶에는 급속한 산업화와 제국주의의 부상 등이 겹친 영국의 시대상이 스며 있다책으로 된 돋보기는 <경전>을 깊이 읽기 위한 열두 가지 주제를 확대해 독자들에게 보여준다.


첫 번째 주제는 컨설팅 탐정(consulting detective)’이다. 홈스는 명석한 두뇌를 가진 탐정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다. 또 한편으로는 시대가 만든 컨설팅 탐정이기도 하다. 산업화의 물결이 출렁이는 런던은 자본주의의 중심지였다. 그러나 물결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빈곤과 무질서가 얼룩져 있었다. 도시가 번성할수록 빈민들은 더 가난해졌다. 경찰이 손 쓸 수 없을 정도로 범죄가 판을 쳤다. 자본주의가 뿜어낸 수증기는 스모그(smog)가 되어 런던 전역을 덮쳤다. 누런빛을 띤 스모그는 무지와 범죄의 온상이 되었다. 유능한 컨설팅 탐정 홈스는 독한 스모그에 갇힌 런던을 구원하는 존재이다. 그합리적인 이성을 지향하는 계몽주의와 고삐 풀린 자본주의가 혼재된 빅토리아 시대가 낳은 인물이다.


책 돋보기 렌즈는 홈스의 명성에 가려져 잘 알려지지 않은 코난 도일의 삶에 초점을 맞춘다. 제국주의의 영화를 누린 런던의 지식인과 작가들은 대영제국의 패권주의를 옹호했다. 코난 도일은 대영제국이 일으킨 전쟁을 지지하는 글을 썼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전쟁에 참전해서 대영제국의 첨병이 되고자 했다. 몇몇 단편에는 식민지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도일의 편견이 드러나 있다. 창백한 병사(The Adventure of the Blanched Soldier)[주2]는 식민지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둘러싼 영국과 보어인(Boer, 남아공에 정착한 네덜란드인) 간의 전쟁을 배경으로 한 단편이다. 보어전쟁을 지지한 도일은 이 소설에서 전쟁에 참전한 영국군을 영웅처럼 묘사했다.


계몽주의적 탐정 홈스는 이성의 범위에서 한참 벗어난 초자연 현상과 유령의 존재를 부정한다. 이와 정반대로 홈스를 창조한 도일은 심령주의에 심취했다. 그는 과학과 이성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신비한 현상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도일을 흥분하게 만든 유명한 초자연 현상이 코팅리의 요정(Cottingley fairies)’ 사건이다이 사건의 발단은 코팅리라는 마을에 사는 소녀와 요정들이 함께 찍힌 사진이었다. 가짜로 판명된 사진이었지만, 도일은 사진 속 요정이 진짜라고 주장했다. 의사가 되기 위해 의학을 공부했던 도일은 어쩌다가 심령주의에 빠졌는가. 그는 이 세상에 이성의 힘이 미치지 못한 불가사의한 스모그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희뿌연 스모그를 걷어낼 수 있는 유일한 학문이 심령주의라고 믿었다.


셜록 홈스 시리즈는 단순히 흥미진진한 추리소설이 아니다. 빅토리아 시대라는 이름으로 남은 역사를 품은 지층과 같은 소설이다. 독자는 역사의 지층 속에 있는 영국인들의 삶과 가치관을 발굴하면서 읽을 수 있다지금도 수많은 홈스의 열혈 팬 셜로키언(Sherlockian)과 홈지언(Holmesian)은 <경전>을 수없이 반복해서 읽는다. 그들은 사소한 문장 하나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문장 속에 감춰진 색다른 의미를 찾아내거나 거기에 새로운 해석을 부여한다셜록 홈즈 다시 읽기는 <경전>을 다시 읽게 만들며, 홈스와 코난 도일을 다시 보게 만든다. , 홈스 시리즈를 아직 읽지 않은 독자에게는 이 책을 권할 수 없다. 작품 결말이 나오기 때문이다. 반드시 홈스 시리즈의 모든 작품을 다 읽고 난 후에 책 돋보기를 사용하시라.


그런데 셜록 홈즈 다시 읽기 홈스 마니아라면 분명히 지적할 수 있는 대목이 몇 개 보인다책 돋보기가 생각보다 정확하지 않다후속 개정판 셜록 홈스 또다시 읽기가 나와야 할 듯하다.


 얼룩무늬 밴드(The Adventure Of The Speckled Band)[주3]는 도일 본인이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한 단편 중 하나다. 이 작품에서 홈스는 추론과 소거법을 사용해서 한 여인의 목숨을 앗아간 존재를 밝힌다. 홈스는 그 존재의 정체가 인도에서 제일 위험한 연못 독사(swamp adder, 늪 살모사’로 번역한 책도 있다)’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홈스 연구자들은 홈스의 결론에 치명적인 결함이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인도에 늪 독사라는 종이 존재하지 않는다. 홈스가 목격한 독사의 정체는 무엇일까? 


윌리엄 스튜어트 베어링굴드(W. S. Baring-Gould)는 가장 유명한 셜로키언이며 경전연구가다. 그는 경전을 토대로 홈스의 (가상) 일대기를 정리한 베이커 가의 셜록 홈즈(Sherlock Holmes of Baker Street: A Life of the World's First Consulting Detective, 1962)를 썼다이 책에 홈스의 가족사가 나온다.



* 72

 



 부모님은 형 마이크로프트와 누나 쉐린포드 그리고 홈스를 데리고 

유럽 대륙을 자주 여행했다.



마이크로프트(Mycroft Holmes)는 <경전>에 유일하게 등장하는 홈스의 혈육이다. 셜록 홈즈 다시 읽기의 저자는 쉐린포드(Shellingford)누나라고 잘못 소개했. 베어링 굴드의 책에 언급된 쉐린포드는 홈스의 ‘맏이다. 마이크로프트는 둘째 형이다. 쉐린포드는 1845년에, 마이크로프트는 1847년에, 그리고 막내 셜록은 1854년에 태어났다. 셜록 홈스의 아버지는 장남 쉐린포드가 자신의 땅을 물려받아 대지주가 되길 원했다[주4].


셜록 홈즈 다시 읽기의 여섯 번째 주제는 신여성이다. 너도밤나무 집(The Adventure Of The Copper Beeches)[주5]에 등장하는 의뢰인인 바이올렛 헌터(Violet Hunter)의 직업은 가정교사. 가정교사는 당시 영국의 젊은 신여성이 선호한 직업이다. 저자는 빅토리아 시대의 가정교사는 돈을 벌고 어느 정도 대접을 받으며 독립적인 인격체로 살아갈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117). 하지만 저자의 견해는 사실과 다르다. 실제 가정교사의 급여는 매우 낮은 수준이었다. 교양이 있는 직업인데도 하녀로 취급받았다. 그리고 남성 고용주에게 괴롭힘을 당하거나 성범죄의 표적이 되기 쉬웠다[주6].



* 231




 영국 소설가 브램 스토커1897년에 드라큘라를 출간했다.



브램 스토커(Bram Stoker)는 영국에서 작가로 활동한 아일랜드 출신이다.




* 참고 문헌 240




시공사 시간과공간사



전두환 전 대통령의 아들이 설립한 출판사와 시간과 공간사는 서로 다른 회사다.






*


[1] 셜록 홈스의 회상록(The Memoirs of Sherlock Holmes)에 수록.

 

[2] 셜록 홈스의 사건집(The Case-Book of Sherlock Holmes)에 수록.

 

[3] 셜록 홈스의 모험(The Adventures of Sherlock Holmes)에 수록.

 

[4] 정태원 옮김, 베이커 가의 셜록 홈즈, 태동출판사, 2011, 10쪽과 16쪽 참조.

 

[5] 셜록 홈스의 모험에 수록.

 

[6] 레슬리 S. 클링거 주석 및 편집, 승영조 옮김, 주석 달린 셜록 홈즈 1: 셜록 홈즈의 모험, 현대문학, 2013, 509~510쪽 주석 12번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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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2-08-06 14: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이쿠 좀더 정교한 조사가 필요했는데 부족했나 봅니다. 이런 걸 탁 캐치해내시는 cyrus님 완전 신기~!!

cyrus 2022-08-07 14:14   좋아요 0 | URL
저 역시 잘못 알고 있는 지식을 사실이라고 착각할 때가 있어요. 그래서 스스로 개선하기 위해 책을 더 찾게 되고, 읽으려고 해요. 책을 읽으면서 내가 옳다고 믿었던 지식이 틀렸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다시 태어나는 기분이 들어요. ^^

얄라알라 2022-08-06 15: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스모그를 걷어낼 유일한 학문이 심령주의라고, 도일이 믿었다는 점은 cyrus님의 글을 읽지 않고서는 반대로 생각했을 점이네요. 이런 깊이로 공부하고 책 읽어야 하나봅니다. 셜록 홈즈 시리즈 좋아했다면서도 수박 겉만 핥다가 뜨끔하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cyrus 2022-08-07 14:25   좋아요 0 | URL
셜록 홈스 이야기를 깊이 읽으려면 영국사와 빅토리아 시대의 문화를 알아야 해요. 이런 방식으로 읽으면 단편 한 편 다 읽는 데 시간이 걸려요. 공부하듯이 소설을 읽는 것을 추천하고 싶지 않습니다. ^^

새파랑 2022-08-07 08: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협찬받아 쓰셨다면 별 두개를 안주셨겠죠? ^^ 역시 사이러스님의 날카로움을 피해갈 수 없군요~!!

cyrus 2022-08-07 14:33   좋아요 1 | URL
협찬받은 책이 생각보다 완성도가 떨어지고, 개선해야 할 내용이 있으면 그게 왜 문제가 되는지 솔직하게 씁니다. 그리고 낮은 평점을 매깁니다. ^^

안병억 2022-08-07 11: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이러스님, 세심한 리뷰와 문제 지적 감사합니다. ‘셜록 홈즈 다시 읽기’의 머리말은 국내외 셜록키언의 다른 해석이나 비평을 언제든지 환영한다고 쓰고 있습니다(p.7). 아래의 답변을 드립니다. 저자가 수용한 사실상의 오류는 2판 인쇄에 반영하겠습니다.
1) 셜록의 누나를 쉐린포드로 오해했습니다. 유명한 홈지언 정태원 선생님의 번역본 출판사도 착각했습니다.
2) 아일랜드는 1921년 독립하기 전까지 통합왕국 영국(UK)에 속했습니다. 브램 스토커는 아일랜드 출신이지만 국적은 영국입니다.
3) 신여성의 표본으로서 가정교사의 처우 문제
-지적하신대로 가정교사의 봉급은 낮았고 종종 집주인의 범죄 표적이 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영석 교수의 저서 <<제국의 초상>>(푸른역사, 2009) 5장 딸들의 반란에서 분석하듯이 당시 교육받은 여성이 일할 수 있는 일자리는 매우 제한되었고 남녀 간 임금차별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또 ‘경전’에 의뢰인으로 나오는 가정교사 가운데 <너도 밤나무집>의 바이올렛 헌터를 제외한 나머지 여성들은 비교적 집주인으로부터 인정을 받고 보수도 괜찮은 편이었습니다. 그래서 저자는 “이들은 돈을 벌고 어느 정도 대접을 받으며 독립적인 인격체로 살아갈수 있었다.”라고 해석했습니다. 어느 정도를 강조합니다.

cyrus 2022-08-07 14:59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안병억 교수님. 제 서평을 보시고 이에 대한 답변을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브램 스토커가 살았던 시기에 아일랜드는 영국의 속국이었죠. 그 당시 역사적 배경을 생각하면 스토커의 국적은 영국이 맞아요. 하지만 이제는 영국 식민지였던 아일랜드에 태어난 인물의 국적을 아일랜드로 표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위키피디아 영문판의 ‘브램 스토커’ 항목에는 ‘Irish author’로 되어 있어요. 안 교수님의 말씀대로라면 윌리엄 예이츠와 제임스 조이스의 국적도 영국이어야 합니다.

예전에 어떤 책에서 본 건데요, 그 책을 쓴 저자는 영국 출신 노벨상 수상자에 아일랜드인까지 포함했어요. 다른 사람은 이 부분을 어떻게 볼지 모르겠으나 저는 영국 출신 노벨상 수상자와 아일랜드 출신 노벨상 수상자를 구분해서 보는 편입니다.

안 교수님이 언급한 <영국 제국의 초상>을 읽어 보겠습니다. 빅토리아 시대 가정교사의 실상을 여러 각도로 바라보고 이해하는 데 참고가 될만한 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영국 제국의 초상>을 읽은 후에 빅토리아 시대 신여성과 가정교사를 주제로 한 글을 새로 써보려고 합니다. 새로 쓰는 글에서는 일방적으로 안 교수님의 견해를 지적한 저의 견해가 틀렸음을 인정하고, <영국 제국의 초상> 속 내용을 반영하겠습니다. 제가 찾아보지 못한 책을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난주에 쿠바드 증후군(Couvade syndrome)을 알고 싶어서 도서관 몇 군데 들락날락했다. 출산과 육아 관련 책을 살펴보기 위해서였다그중 한 권이 출산, 그 놀라운 역사이 책은 절판되었다. 진작 이 책을 알았으면 미리 샀을 텐데.
















* [절판] 티나 캐시디 출산, 그 놀라운 역사(후마니타스, 2015)




이 책의 저자는 기자다. 그녀는 처음 임신했을 때 자연 출산을 원했다고 한다. 그런데 제왕절개를 하게 되었고, 이때 경험을 토대로 출산에 관한 책을 쓰기 시작했다. 책의 번역에 참여한 역자가 총 다섯 명이다. 이들은 2002년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보건정책 관리 전공 입학 동기다. 책이 출간된 당시(2015)에 다섯 명의 역자 모두 보건정책 관련 일을 하고 있었다.


출산, 그 놀라운 역사는 주제와 내용 면에서는 좋은 책이다. 하지만 책 곳곳에 잘못 알려진 상식과 오해의 여지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대목이 있다저자는 같이 사는 여성들의 월경 주기가 비슷해지는 현상인 생리 동기화를 언급했다



 자매, 수녀, 친한 동료처럼 매일매일을 함께하는 여성들이 매달 거의 비슷한 시기에 월경하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379)



하지만 오래전부터 생리 동기화 연구 방법의 문제점을 지적하거나 생리 동기화를 우연의 일치로 결론 내린 연구 결과들이 나왔다.


저자는 정자 속에 있는 호르몬인 프로스타글란딘(prostaglandin)이 자궁경관을 열어주게 만드는(자궁 이완) 물질이라고 말한다.



 사실, 성관계가 출산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되기도 한다. 현대 과학이 밝혀낸 바에 따르면 정자는 자궁경관이 열리도록 도와주는 프로스타글란딘이라는 호르몬을 함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362)



프로스타글란딘의 종류가 많다. A~H까지의 8으로 분류되며 작용도 다양하다. 특히 E, F족은 자궁을 수축시키는 작용을 한다. 그러므로 프로스타글란딘은 자궁 이완뿐만 아니라 자궁 수축도 유발한다생리 날이 가까워지면 프로스타글란딘 분비가 많아진다자궁이 수축하면 불필요한 점막과 혈액이 체외로 배출되는데 이 현상이 바로 생리다. 그렇지만 자궁 내막에 프로스타글란딘이 과도하게 분비되면 자궁 수축이 강해져서 생리통을 유발한다


출산, 그 놀라운 역사의 저자는 성관계가 출산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된다고 주장한다임신한 아내를 위해 성관계를 금해야 하는 남편으로선 임신 중 성관계의 순기능이 듣기 좋은 말일 수 있겠다하지만 전문가 한 사람의 말만 믿고 너무 뜰떠선 안 된다. 임신 중 성관계가 좋은지 나쁜지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분분하다미국의 아빠 육아 전문가 아민 A. 브롯(Armin A. Brott)임신 중 성관계를 하기 전에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고 주장한다.

















아민 A. 브롯제니퍼 애쉬 공저 진짜 아빠 백과사전초보 아빠를 위한 세상의 모든 지식》 (보물창고, 2018)



 파트너가 조산, 전치태반, 자궁경부무력증(자궁경부가 태아를 안에 품고 있을 만큼 강하지 못한 것) 등의 위험이나 병력이 있다면, 함께 잠자리에 들기 전에 먼저 의사와 상의하자. 유두 자극과 오르가슴은 자궁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약간의 수축을 유발할 수도 있다. 파트너에게 이런 증상이 있거나 조산의 위험이 있다면, 섹스할 때 콘돔을 사용하도록 하자. 물론 피임을 위해 사용하라는 것은 아니다. 정액에 있는 프로스타글란딘이라는 호르몬이 자궁 수축을 유발할 약간의 가능성이 있다


(진짜 아빠 백과사전》 중에서, 147쪽)



나는 운이 좋은 편이다. 출산, 그 놀라운 역사진짜 아빠 백과사전을 동시에 만나지 않았다면 한쪽으로 쏠린 정보만 봤을 테니까비록 지금은 미혼이고 내 인생 계획에 결혼은 없지만, 임신과 출산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으면 관련 서적을 찾아보면서 공부하려고 한다. 내 주변에 결혼한 친구들에게 잘난 척하기 위해서 공부하고 싶지 않다. 내가 완벽히 이해하지 못한 정보를 상대방에게 말했다간 그 과정에서 정보가 와전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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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이 기숙사에서 합숙하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생리(월경) 주기는 같아질까? 이 말이 사실이라면 A라는 여성이 생리를 하면 그녀와 같이 사는 A의 친구 B도 생리를 한다. 1971년 미국의 생물학자 마사 매클린톡(Martha McClintock)과 캐서린 스턴(Catherine Stern)은 학술지 <네이처>(Nature)여자들이 함께 살면 생리 주기가 비슷해진다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두 학자는 대학교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135명의 여학생의 생리 주기를 조사한 결과 이들이 거의 같은 시기에 생리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마사 매클린톡은 여성들의 생리 주기를 일치하게 만든 원인이 페로몬(pheromone)이라고 주장했다. 땀 속에 페로몬이 있는데, 이 화학 물질이 공기 중으로 퍼지면 같이 사는 여자의 코로 향한다. 코는 페로몬을 화학적 신호로 받아들인 다음, 그 신호를 해독해서 생리를 일으키는 정보를 확인한. 페로몬 속에 있는 정보를 인식한 여자의 몸은 페로몬을 발산한 여성의 생리 주기에 맞추려고 한다. 이 현상을 생리 동기화(Menstrual synchrony, 또는 월경 동기화)’라고 한다동기화(同期化)란 두 개의 개체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같은 주기로 운동하는 현상이다. 생리 동기화는 발견자의 이름이 붙여진 매클린톡 효과라고 부르기도 한다.

















* 정재승 정재승의 과학 콘서트: 복잡한 세상 명쾌한 과학(개정 증보 2, 2020, 어크로스)




정재승의 과학 콘서트4악장’ 편에 <박수의 물리학>이라는 제목의 글이 있다. 이 글의 주제는 동기화(synchronization). 책의 저자 정재승 교수는 이 글의 초반부에 매클린톡의 연구 결과를 소개하면서 동기화 현상에 관해 설명한다저자의 말에 따르면 여성의 생리 주기는 일정한 주기를 가진 운동이다. 여성들의 겨드랑이에 나온 땀에 호르몬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것이 생리 동기화를 일으키는 매개체다.
















* [절판] 스티븐 스트로가츠 동시성의 과학, 싱크 Sync: 혼돈스런 자연과 일상에서 어떻게 질서가 발생하는가?(김영사, 2005)




이 글에 동기화 현상을 컴퓨터로 확인한 스티븐 스트로가츠(Steven Strogatz)가 언급된다. 동시성의 과학, 싱크 Sync(Sync: the emerging science of spontaneous order, 2003)는 국내에 처음 선보인 그의 책이다. 스트로가츠는 이 책에서 우리 주변에 있는 다양한 동기화 현상을 제시하는데, 여기에 매클린톡 효과도 포함되어 있다.
















* [절판] 티나 캐시디 출산, 그 놀라운 역사(후마니타스, 2015)

 



출산 문화의 역사라는 주제를 다룬 책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출산, 그 놀라운 역사는 좋든 나쁘든 인류 탄생과 아주 밀접한 출산 문화의 과거와 현재를 보여준다. 이 책의 저자는 쿠바드 증후군(Couvade syndrome)의 여러 가지 원인 중 하나로 친밀한 부부의 호르몬 수치 변화가 같아지는 현상을 제시한다. 그는 이 현상이 매클린톡 효과가 유사하다고 생각하는데, 자매, 수녀, 친한 동료처럼 매일매일 함께하는 여성들이 매달 거의 비슷한 시기에 월경을 한다고 주장한다(379).


대다수 여성은 매클린톡 효과라든가 생리 동기화를 들어본 적이 없어도, 함께 생활하는 친구와 생리 주기가 비슷해지는 경험을 한 적이 있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이 신기한 경험을 잊지 못한 여성들은 매클린톡 효과를 여성의 우정과 연대감을 보여주는 생리적 징표로 여기고 싶을 것이다. 또 누군가는 성차별적 관용어 여자의 적은 여자에 반박하기 위해 매클린톡 효과를 주장할 것이다.


하지만 매클린톡 효과는 과학적 회의주의라는 필터를 거쳐야 하는 가설로 남아 있어야 한다. 중요한 결론을 먼저 말하자면, 매클린톡 효과의 인과관계를 증명할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 1980년대부터 여러 과학자가 매클린톡 효과를 재현하는 실험을 수행했고, 페로몬과 생리 동기화의 연관성에 반박하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매클린톡 효과를 비판하는 과학자들은 생리 동기화가 우연의 일치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 마르탱 뱅클레르 나는 여자고, 이건 내 몸입니다: 여성의 몸과 건강에 관한 사소하지만 절실한 질문과 답변(교양인, 2022)

 

* 프랑스 카르프, 카트린 조르주와이오 완경기, 그게 뭐가 어때서?: 초경에서 완경까지 내 몸으로 쓰는 일기(도서출판 , 2019)

 

* 엘리즈 티에보 이것은 나의 피: 익숙하고 낯선 생리에 관한 거의 모든 이야기(, 2018)




페미니스트와 여성의학 전문가들은 월경을 부정적인 편견(생리혈은 더럽다)으로 바라보게 만들고, 이를 금기하는 사회적 분위기(생리하는 날을 그날이라고 부르는 것)에 꾸준히 문제 제기해왔다. 그들도 과학적 증거가 빈약한 매클린톡 효과를 부정한다


페미니스트 기자 엘리즈 티에보(Élise Thiébaut)는 생리에 관한 부정적 편견과 잘못된 인식을 깨뜨리기 위해 이것은 나의 피를 썼다. 이 책에 그녀는 매클린톡 효과를 소개하면서도 그것에 대해 과학이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194~195)’라고 말한다. 그뿐만 아니라 매클린톡 효과와 상반되는 연구 결과들도 언급한다. 1992년 미국의 인류학자 H. 클라이드 윌슨 주니어(H. Clyde Wilson Jr.)매클린톡의 연구 방법이 잘못되었으며 생리 주기가 예측 불가능하게 나타난다고 밝혔다.


완경기, 그게 뭐가 어때서?는 두 명의 프랑스 출신 기자가 함께 쓴 책이다. 두 저자는 여성 언론지에 여성의 몸과 건강을 주제로 한 글을 써왔다. 이 둘 중 한 명이 매클린톡 효과에 관한 내용을 썼을 텐데, (누군지 알 수 없는) 저자에 따르면 여성을 포함한 인간에게는 생리 동기화와 관련된 화학 물질이 존재하지 않는다. 또 그것을 해독할 능력도 없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책인 나는 여자고, 이건 내 몸입니다는 올해에 나온 책이다. 책의 저자 마르탱 뱅클레르(Martin Winckler)는 의사다. 그는 25년 동안 병원에 일하면서 수많은 여성 환자를 만났는데, 이를 계기로 여성의 건강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저자는 매클린톡 효과가 낭설이라고 말한다(54).


매클린톡 효과는 과학적 회의주의 필터를 여전히 통과하지 못한 상태다. 그렇다고 해서 50여 년 전에 나온 연구 결과를 폐기해야 할까? 생리 동기화를 냉정하게 바라보는 과학계의 시선이 상식이 된 이상, 낡은 지식에 이별을 고하고 싶은 사람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매클린톡 효과는 버려야 할 지식이 아니라 더 많은 후속 연구가 필요한 가설이다.


정재승 교수의 <박수의 물리학>과학 콘서트에 연주된 4악장에서 생긴 음 이탈(삑사리)’이. 지금으로선 이 음 이탈(글 이탈?)이 거슬리긴 하지만, 개정 증보 3판이 나올 때까지 10년을 참아야 한다.[주] 10년 후에 나올 개정 증보 3판에 음 이탈이 나지 않은 글이 수록되길 고대한다.






[] 10년 후에 다시 쓰게 될 과학 콘서트‘20년 늦은 커튼콜에는 다시 10년의 성과가 덧붙여질 것이다.

 

(《정재승의 과학 콘서트‘10년 늦은 커튼콜’ 중에서, 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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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학자 임소연신비롭지 않은 여자들: 여성과 과학 탐구를 출간하기 전에 이 책에 포함된 내용을 소개하는 발표회에 발표자로 나섰다. 그녀는 이 자리에서 자신의 책 4장에 나올 입덧과 태반 형성의 연관성을 설명했다. 그러자 청중 한 명이 질문했다.





















[레드스타킹 7월에 읽은 책]

* 임소연 신비롭지 않은 여자들: 여성과 과학 탐구(민음사, 2022)

 


남편도 입덧한다고 하는데, 이 경우에 입덧의 원인은 사랑인가요?”

대답은 “그것은 입덧이 아닙니다.”


(신비롭지 않은 여자들72)




이 일화는 저자의 책 4장 후반부에 나온다저자에 따르면 입덧은 임신한 여성의 태반에서 비롯되는 물질적 현상이다. 음식물을 섭취하면 호르몬인 인슐린이 혈중 포도당 농도를 낮춰 몸의 항상성을 유지하는 일을 한다. 인슐린은 태반에서 융모성 생식샘자극 호르몬(hCG)이 생성되는 것을 억제하기도 한다. 인슐린 수치가 줄어들고 hCG 분비가 늘어나면 입덧이 일어난다. 입덧이 잦은 임신 3~4개월에 태반이 형성된다.


청중은 쿠바드 증후군(Couvade syndrome)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쿠바드 증후군이란 아내가 임신했을 때 남편도 아내와 똑같이 신체적 증상과 정서적 반응을 겪는 현상을 말한다주로 메스꺼움, 두통, 감정 기복, 근육통 등 여러 증상이 나타난다. 이러한 증상은 대개 임신 3개월에 나타나 몇 달 만에 사라졌다가, 아기가 태어나기 한두 달 전에 다시 나타나기도 한다

















* 아민 A. 브롯, 제니퍼 애쉬 진짜 아빠 백과사전: 초보 아빠를 위한 세상의 모든 지식(보물창고, 2018)




쿠바드는 프랑스어로 부화를 뜻하는 쿠베르(couver)에서 유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쿠바드 증후군의 원인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여러 가지 가설이 있다아빠들의 아빠라는 별명을 가진 미국 최고의 아빠 육아 전문가 아민 A. 브롯(Armin A. Brott)은 칼럼니스트 제니퍼 애쉬(Jennifer Ash)와 함께 쓴 진짜 아빠 백과사전에 여러 연구 결과를 인용하면서 쿠바드 증상이 나타나는 다섯 가지 원인을 제시했다.



1. 임신한 아내에 대한 동정 혹은 죄책감


임신한 아내가 입덧으로 고생하면 그 옆에서 지켜보는 남편은 자기 때문에 아내가 고생한다고 생각한다. 남편의 무의식적 죄책감이 메스꺼움과 진통 등을 유발한다.



2. 질투


임산부는 남편보다 훨씬 더 많이 다른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다. 쿠바드 증후군을 겪는 남편은 부성을 과시해서 자신의 존재감을 알릴 수 있다.



3. 호르몬 생성


임산부의 몸속에 옥시토신이라는 호르몬이 분비된다. 옥시토신은 엄마와 자녀의 친밀감 형성을 높여준다. 임산부와 같이 사는 남편의 몸속에서도 옥시토신이 생긴다. 그뿐 아니라 스트레스를 조절해주는 코르티솔과 모유 분비를 유도하는 프로락틴도 형성된다.



4. 가장으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


결혼한 남자는 가정의 생계를 전적으로 책임지는 가장 역할을 해야 한다고 배운다. 경제적 걱정이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되는 노동 계급의 남성이 중산층 남성보다 쿠바드 증후군이 나타나는 경우가 더 많았다고 한다.



5. 아내와 태어날 아이에게 보내는 남편의 메시지


남편 자신이 가족 관계를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를 임신한 아내에게 보여주기 위한 화학 반응이다. 쿠바드 증후군은 아내와 아이에 대한 진실한 사랑을 보여주는 동시에 남편이자 아버지가 된 남성이 훌륭한 부양자라는 것을 증명하는 방법일 수 있다.
















* [절판] 티나 캐시디 출산, 그 놀라운 역사(후마니타스, 2015)




아주 오래전부터 임신과 출산은 여성의 경험으로만 인식되어왔다. 출산 경험이 있는 여성은 산파가 되었다. 그렇다면 과거의 남편들은 아내가 힘겹게 출산하고 있을 때 뭐 하고 있었을까? 그들은 분만실 밖에서 아기가 무사히 태어나길 바라면서 기다려야 했다. 당시에 남성이 출산을 지켜보는 행동은 부도덕한 일로 여겨졌다. 놀랍게도 이 금기를 깬 남자들이 있었다1522년 독일의 의사 베르트(Wertt)와 몇몇 의사들은 출산 과정을 알고 싶어서 여장을 한 채 분만실에 들어갔다. 하지만 베르트의 무모한 속임수는 발각되었고, 분만실 잠입에 가담한 의사들과 함께 화형당했다임신과 출산을 여성의 영역으로만 규정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남성은 출산과 무관하다는 성 역할 고정관념(gender role stereotype)을 단단하게 만들어놓았다.


미국의 기자 티나 캐시디(Tina Cassidy)가 쓴 출산, 그 놀라운 역사에 남편을 출산에 배제하는 문화 속에서 묻힌 분만실 안의 남편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소수의 비서구권 원주민 사회에 남편이 아내 출산에 관여하는 문화가 있다분만실에 남편이 들어와서 안 된다고 믿은 서구인은 아내의 출산을 지켜보는 남편을 용인하는 원주민 사회가 야만적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원주민의 생활상을 연구한 인류학자 마거릿 미드(Margaret Mead)브라니슬라프 말리노프스키(Bronislaw Malinowski)는 남편이 아내의 산고를 직간접적으로 체험하는 의식의 순기능에 주목했다.
















* 브로니슬라프 말리노프스키 야만 사회의 섹스와 억압 (비천당, 2017)




말리노프스키는 1927년에 발표한 야만 사회의 섹스와 억압에서 남자에게 출산의 고통을 체험하게 하는 전통 의식이 사회 유지에 필수적 기능을 작용한다고 썼다. 그는 쿠바드 증후군을 유발하는 전통 의식이 서구인들의 눈에는 터무니없어 보이겠지만, 아버지와 자식 사이의 도덕적 유대를 강조하는 부족 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했다.

















[우주지감 나를 관통하는 책 읽기’ 2019년 7월에 읽은 책]

* 웬다 트레바탄 여성의 진화: , 생애사 그리고 건강(에이도스, 2017)




쿠바드 증후군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는 학자들은 분만실 안의 남편의 긍정적인 면을 강조한다. 국내에 여성의 진화라는 이름으로 출간된 책의 저자인 진화인류학자 웬다 트레바탄(Wenda Trevathan)[주]분만실 안의 남편옹호론자다. 그녀는 자신의 책 <Human Birth: An Evolutionary Perspective>(1987)에서 남편에게 출산 과정에 참여하도록 권장하는 몇몇 문화권을 소개한다. 그러면서 남편이 분만실에 들어가서 아내의 출산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부부 모두가 정서적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에 분만실 안의 남편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비판하는 학자들이 있다. 이들은 분만실 안의 남편문화가 임신에 대한 남성의 관음증적 호기심을 부추기며 임산부의 몸을 성적 대상화로 보는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여성의 출산 과정을 가까이서 본 남편은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을 겪을 수 있다. 이러면 아내와의 성생활이 불가능해지며 아기와 유대감을 형성하거나 아내를 곁에서 지원하는 데 어려워한다.


쿠바드 증후군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다가 평소에 눈길을 주지 않은 육아 및 출산과 관련된 책을 몇 권 집어 들게 되었다. 책을 보다가 확실한 생각이 들었다. 임신과 출산을 막연하게 알아선 안 된다는 점. 쿠바드 증후군의 실체를 인정하지만, 과학적으로 접근할 땐 회의주의적 시선을 유지하면서 바라볼 것.






[] 출산, 그 놀라운 역사에서는 웬다 트레버선으로 표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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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08-01 09: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입덧이 아니라 쿠바드 증후군이군요. 저 원인을 설명해놓은거 보니싸 진따 인간이란 얼마나 복잡하고도 오묘한 존재인지 싶네요.

cyrus 2022-08-02 18:57   좋아요 1 | URL
네, 임산부가 하는 입덧과 쿠바드 증후군의 증상인 메스꺼움은 달라요. ^^

mini74 2022-08-01 2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있어요. 쿠바드 증후군, 남자입덧은 없는거군요.

cyrus 2022-08-02 18:59   좋아요 1 | URL
사실 쿠바드 증후군에 대해서 알아보기 전에는 저도 임산부의 남편은 입덧을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입덧이 생기는 원인을 자세히 알고 나니 ‘남편 입덧’이라는 표현을 쓰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았어요. ^^

파이버 2022-08-02 20: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임산부의 남편이 하는건 입덧이 아니었군요;; 쿠바드 증후군이라니 인간의 몸과 마음은 정말 연결되어있는 것 같아요 신기하네요

cyrus 2022-08-03 07:01   좋아요 1 | URL
입덧의 원인을 잘 모르면 이게 메스꺼움과 비슷하다고 생각하기 쉬워요. 예전에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
 





일하는 노동자를 그린 최초의 그림은 누가 그렸을까? 바로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그렇지만 미술을 좋아하거나 미술에 조예가 깊은 사람이라면 내가 던진 질문을 흥미롭게 여길 것이다. 아니면 나만 흥미로운 것일 수도.


















* 아당 비로, 카린 두플리츠키 미술관에 가기 전에: 미리 보는 미술사, 르네상스에서 아르누보까지(미술문화, 2022)





미술관에 가기 전에라는 책은 귀스타브 카유보트(Gustave Caillebotte)마룻바닥에 대패질하는 사람들작업 중인 노동자들을 그린 최초의 그림 중 하나(218쪽)라고 주장한다.







세 명의 남자는 상의를 벗은 채 대패로 바닥 마루를 깎고 있다. 그들은 바닥에 깐 송판을 매끄럽게 다듬기 위해 엎드려서 대패질하는 중이다. 카유보트는 이 그림을 1875년 살롱전에 출품했다. 살롱전 심사위원들은 이 그림에서 느껴지는 날것의 사실주의에 충격받았다손에 먼지를 묻어가면서 일해본 적이 없는 부르주아 계층의 관람객들은 가난한 노동자를 묘사한 그림에 거부감을 느꼈다결국 카유보트의 작품은 낙선되었다카유보트는 이듬해에 열린 제2회 인상주의 전에 마룻바닥에 대패질하는 사람들을 출품했다.


사실 카유보트보다 먼저 일하는 노동자를 그린 화가가 있다. 그 화가는 바로 귀스타브 쿠르베(Gustave Courbet)쿠르베는 인상주의 화가들과 교류했지만, 사실주의 화풍을 고수했다. 다만 쿠르베가 친하게 지내지 않은 인상주의 화가가 있었다. 그 사람은 에드가 드가(Edgar De Gas). 드가는 사실주의를 엄청나게 싫어했다. 쿠르베에게 사실주의란 눈에 보이는 것이다. 쿠르베는 천사를 본 적이 없다. 천사를 보여 주면 당장 그리겠다라고 말했다. 과거의 화가들이 선호한 주제를 답습하는 기성 화가들이 신과 천사를 그리고 있을 때, 쿠르베는 고단한 삶을 사는 사람들에 주목했다.







지금 쿠르베의 대표작 돌 깨는 사람들 보면, 딱히 신선한 느낌이 들지 않는다. 그러나 이 그림이 세상에 나왔던 1849년에는 사정이 달랐다. 돌 깨는 사람들』은 고상하고 관념적인 미적 취향에 오랫동안 익숙해져서 굳어버린 대중의 눈과 정신을 깨뜨렸다


















* 재원 편집부 엮음 쿠르베(재원, 2004)


* 오광수 엮음 쿠르베(서문당, 1994) 


* 린다 노클린 리얼리즘(미진사, 1997)





살롱전 심사위원과 관람객들은 늘 행복하고 감미로운 느낌이 나는 그림을 선호했다. 좋은 것만 보여주는 그림이야말로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화가들은 이런 대중의 취향에 맞추기 위해 귀족들의 일상이나 신과 천사가 나오는 그리스 신화의 한 장면을 주제로 그림을 그렸다. 가난한 노동자들을 그린 돌 깨는 사람들』은 아름답지 않아서 화가의 미숙한 솜씨가 드러낸 그림이라고 비난받았다. 쿠르베는 직접 개인전을 열어 돌 깨는 사람들을 포함한 작품들을 공개했다. 그는 전시회 카탈로그도 작성했는데 여기에 사실주의(réalisme)’라는 단어를 썼다그리하여 돌 깨는 사람들은 사실주의 미술의 포문을 연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 [품절] 알프레드 상시에 자연을 사랑한 화가 밀레(, 2014)

 

* [절판] 노성두 외 자연을 사랑한 화가들: 밀레와 바르비종파 거장들(아트북스, 2005)

 

* 재원 편집부 엮음 장 프랑수아 밀레(재원, 2003)

 

* [절판] 즈느비에브 라캉브르 외 밀레(창해, 2000)

 

* 오광수 엮음 밀레(서문당, 1990)





쿠르베와 함께 프랑스 사실주의 미술을 대표하는 또 한 명의 화가가 장 프랑수아 밀레(Jean François Millet). 우리나라에서 밀레의 그림들은 이발소 그림으로 취급받는다. 이렇다 보니 밀레의 작품들은 시골의 낭만적인 정취를 불러일으키는 그림으로 알려져 있다그렇지만 밀레는 농민들의 생활상을 진실하게 표현한 사실주의 화가다밀레의 작품 속에 묘사된 농민들의 일상은 낭만과 거리가 멀다.









누군가는 열심히 일하는 농촌 여성의 모습에서 숭고함이 느껴진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밀레는 그런 반응을 의도적으로 유도하기 위해 일하는 농민들을 그리지 않았다이삭줍기에서 목가적인 아름다움을 찾아선 안 된다. 그림으로 남은 농촌 여성의 노동을 발견해야 한다가난한 농민들은 농장주의 밭에서 일했다수확량이 많아도 농민들은 궁핍한 삶을 벗어나지 못했다그림 속 여성은 농장주의 밭에서 추수하고 남은 밀 이삭을 줍고 있다. 하지만 밀 이삭을 원하는 대로 주울 수 없다. 그림의 후경에 조그맣게 그려진 말을 탄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은 밭을 관리하는 감독관이다. 그의 철저한 감시 속에서 여인들은 허리를 숙이면서 이삭을 줍고 있다.


지난달에 쓴 미술관에 가기 전에서평에 언급했듯이 일하는 노동자의 범주를 확장해서 생각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마룻바닥에 대패질하는 사람들돌 깨는 사람들이 일하는 노동자를 그린 최초의 그림이 아니다. 두 작품에 도구를 사용하면서 일하는 남성 등장한다. 이삭줍기이전에 일하는 여자를 그린 그림이 없었을까? 집안일도 노동이다나는 미술관에 가기 전에서평에 부엌에 일하는 하녀를 그린 프랑스의 화가 샤르댕(Jean-Baptiste-Siméon Chardin)을 거론했다그런데 최근에 내 견해를 뒤집은 그림들을 만났다.
















* [품절] 베아트리스 퐁타넬 살림하는 여자들의 그림책: 중세부터 20세기까지 인테리어의 역사(이봄, 2015)





내가 잘 몰랐던 일하는 여자의 그림을 만나게 해준 책이 살림하는 여자들의 그림책이다. 이 책의 부제는 중세부터 20세기까지 인테리어의 역사책의 목차는 침실, 난방, 부엌, 창문 등 집 안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이다. 그렇지나는 인테리어를 지우고 살림하는 여자들’로 고치고 싶다살림하는 여자들의 그림책을 쓴 저자 베아트리스 퐁타넬(Beatrice Fontanel)은 주부이자 시인이다. 저자는 이 책을 살림하는 여성의 이야기라고 했다. 이 여성들이 인테리어의 역사를 바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책의 부엌에 제일 먼저 나오는 그림이 성모 탄생이다세폭 제단화인 성모 탄생은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오세르반자의 대가(Master of the Osservanza)’가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화가는 15세기 중반 이탈리아에서 활동했다. 이 제단화의 오른쪽 부분에 부엌에서 일하는 두 여자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한 사람은 쭈그려 앉아서 아궁이에 올려놓은 냄비 뚜껑을 덮고 있다중세 시대에 음식을 불로 익히는 일은 여성에게 극도로 힘든 일이었다. 동굴과 같은 아궁이에서 나오는 불의 열기는 말할 것도 없다. 여성들은 아궁이 근처에서 음식을 익히거나 데우다가 화상을 입었다. 요리하다가 화상을 입는 사고는 출산 다음으로 두 번째로 높은 여성의 사망 원인이었다.


과거의 부엌은 하녀만 드나드는 공간이었다. 하녀는 고용주를 위한 음식을 만들었고, 그들이 먹다 남은 음식을 처리했고, 접시와 그릇을 설거지했다. 평생 부엌에 살다시피 하면서 가사 노동을 도맡은 하녀들은 더러운 처녀로 여겨졌다. 부유한 여주인은 더러운부엌에 들어오지 않았다실제로 과거의 부엌에 악취가 진동했으며 위생 상태도 썩 좋지 않았다.


17세기 네덜란드에 유행한 회화의 주제 중 하나가 빗질하는 여성이다. 이 당시 네덜란드는 청소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왜냐하면 청결은 미덕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부엌에서 하는 일과 마찬가지로 청소 역시 하찮고 힘든 일로 여기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다가 시대가 변하면서 청소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다. 청소를 잘하는 여성은 성품이 훌륭한 살림꾼으로 인정받았다. 집안일을 청소하는 일은 여성의 자질과 도덕성을 평가하는 기준이었다어쩌면 이때부터 여성은 무조건 청결해야 한다라는 편견이 사회에 더 깊숙이 박히기 시작했을 것이다여성에게 청결을 요구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여성의 몸 깊은 곳까지 확장된다몸에 불결한 냄새가 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여성이라면 해야 하는 일이 되어버렸다. 청결은 여성을 옥죄게 만든다.


일하는 여성 노동자를 그린 그림을 찾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여성 노동자가 나온 그림을 주제로 한 전시회가 열렸던 적이 있었을까? 이런 전시회가 정말로 있었는지 알아보고 싶다. 하지만 시간적 여유가 없고, 읽어야 할 책들이 산더미 같이 쌓여 있어서 관련 자료를 찾아보는 일이 버겁다. 제대로 하려면 동양 미술 쪽에도 눈길을 줘야 한다. 서양 미술 편력이 심한 나로서는 무척 힘든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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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22-07-18 16: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이퍼 읽다 보니 저도 궁금해져서 좀 찾아봤네요.
https://live.staticflickr.com/7868/47419992661_128141b286_z.jpg
구글링한 거고 송나라 시절을 그린 건지, 송나라 그림인지는 확실치 않네요.

cyrus 2022-07-20 21:51   좋아요 0 | URL
조선인님이 알려주신 그림을 보면서 제가 동양미술에 너무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어요. 저 그림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어집니다. 좋은 그림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