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는 세상의 적이다.  (샤를 보들레르)






보들레르(Baudelaire)와 함께하는 여름보다 터무니없는 일이 또 있을까? 악의 꽃을 아는 많은 이들이 그런 생각을 할 게 분명하다.” 2014년에 <보들레르와 함께하는 여름>이라는 제목의 라디오 방송을 진행한 프랑스의 문학평론가 앙투안 콩파뇽(Antoine Compagnon)은 보들레르가 방송에서 다루기 위험한 주제라고 밝혔다.

















* 앙투안 콩파뇽 보들레르와 함께하는 여름(뮤진트리, 2020)

 

* 미셸 우엘벡 러브크래프트: 세상에 맞서, 삶에 맞서(필로소픽, 2021)




콩파뇽은 보들레르를 세상을 신랄하게 바라본 잔인한 검객이며 불면의 선동가라고 평가한다. 민주주의와 진보, 여성을 증오한 보들레르는 그의 시집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독자들마저도 불쾌하게 만든다보들레르는 자신의 시대를 좋아하지 않은 비관론자였다. 그가 생각하기에 인간은 원죄를 가진 채 태어나며 도덕과 진보주의(progressivism)는 인간의 악을 감춘다


보들레르의 비관주의는 미국의 작가 러브크래프트(Lovecraft)의 염세주의와 흡사하다. 러브크래프트 역시 인간을 악한 존재라고 생각했고, 세상을 증오했다공포 소설을 쓴 러브크래프트야말로 여름과 함께하기에 좋은 작가다하지만 러브크래프트도 보들레르 못지않게 독자들의 불쾌감을 유발하는 문제의 인물이다. 보들레르가 반유대주의자라면 러브크래프트는 히틀러(Hitler)를 지지한 인종차별주의자다.

















*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 러브크래트프 전집 1(황금가지, 2009)


* [리커버] 샤를 보들레르 악의 꽃(문학과지성사, 2021)

 

* 샤를 보들레르 악의 꽃(문학과지성사, 2003)

 



다독가로 알려진 러브크래프트는 과연 보들레르의 시집 악의 꽃을 읽었을까? 만약 그가 보들레르의 글을 읽었다면 어떤 생각을 했을지 궁금하다. 추측하건데 러브크래프트는 보들레르를 읽었다. 러브크래프트의 단편 허버트 웨스트-리애니메이터에 나온 화자는 시체를 되살리는 실험에 집착한 의사 허버트 웨스트(Herbert West)를 이렇게 묘사한다.



 나는 점점 웨스트의 실험보다 그라는 인간 자체에 공포를 느끼기 시작했다. 수명을 연장시키고자 하는 젊은 과학자의 열망이 병적이고 끔찍한 호기심과 납골당의 비밀로 변질되면서 나의 공포는 시작되었다. 웨스트의 관심은 더욱 혐오스럽고 극악한 형태로 바뀌었고, 성격 또한 점점 괴팍해졌다. 점자 그는 보통 사람이라면 공포와 역겨움 속에서 정신을 잃을 만한 상황을 흡족하게 바라보곤 했다. 그는 냉혹한 지성으로 육체를 실험하는 괴팍한 보들레르이자 묘지를 헤매는 나른한 엘라가발루스였다


(허버트 웨스트-리애니메이터중에서, 89)



악의 꽃에 수록된 시체는 육신이 부패하는 과정이 사실적으로 묘사된 시다보들레르가 묘사한, 파리와 구더기 떼가 모여 있는 시체는 피어나는 꽃이 된다. 시인은 시체가 부패되면서 부풀어 오르는 모습을 죽음 이후의 새로운 삶이 분출하는 과정으로 본다. 살아 있는 시체는 불멸의 존재다보들레르의 유고집 벌거벗은 내 마음(원제는 내면 일기’)에 불멸에 대한 문장이 있다.
















* [품절] 샤를 보들레르 벌거벗은 내 마음(문학과지성사, 2001)



 마치 인격체와도 같이 모든 관념은 그 자체로서 불멸의 삶을 부여받는다.

 모든 창조된 형태는, 비록 그것이 인간에 의한 것일지라도, 불멸이다. 왜냐하면 형태는 물질로부터 독립적이고, 또한 형태를 구성하는 것은 분자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벌거벗은 내 마음중에서, 161)



시체에 불멸의 삶을 부여한 보들레르의 발상은 불멸에 병적으로 열망한 허버트 웨스트의 모습과 연결 지을 수 있다냉혹한 지성’, ‘괴팍한이라는 표현은 보들레르에 어울리는 수식어다보들레르는 냉혹한 시선으로 19세기 파리뿐만 아니라 동시대 인간, 종교, 도덕 등을 해부한 작가다. 자신이 한 말대로 보들레르는 세상의 적이었다


보들레르와 러브크래프트. 이 두 사람은 좀처럼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괴팍하고, 매우 복잡한 성격의 문인이다. 콩파뇽은 마음 가는 대로보들레르에 접근했다. 러브크래프트도 그렇게 접근할 수 있다. 나는 이 두 사람과 함께 여름을 보내려고 한다. 올해는 보들레르가 태어난 지 200주년이 되는 해다보들레르와 같은 해에 태어난 도스토옙스키(Dostoevskii)와 플로베르(Flaubert)도 내 여름 독서를 위한 주제로 삼고 싶다. 하지만 과연 이 두 문호만큼이나 누가 보들레르를 기억해줄까. 까다로운 시인을 잘 아는 위선적인 독자[주1]인 내가 하는 수밖에.

 




[주1] 악의 꽃독자에게 마지막 구절 참조.






미주(尾註)알 고주(考註)

 

 

* 보들레르와 함께하는 여름157


 파스칼(Pascal)은 이 생각을 자신의 책 수상록[주2]에 이렇게 고쳐 적었다.

 

 

[주2] 수상록은 몽테뉴(Montaigne)가 쓴 책의 제목이다. 원서 본문을 확인하지 않았지만, 파스칼이 쓴 수상록의 정체는 유고집 팡세(Pensées)일 것이. ‘팡세생각들이라는 뜻의 프랑스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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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 관하여 - 장애를 가지고 산다는 것
피터 카타파노.로즈마리 갈런드-톰슨 지음, 공마리아.김준수.이미란 옮김 / 해리북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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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점  ★★★★  A-





도쿄올림픽 폐막식 중계를 맡은 모 방송국 아나운서의 마무리 발언이 잔잔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아나운서가 도쿄 비장애인 올림픽이라는 표현을 썼기 때문이다. 비장애인은 장애인과 대비되는 단어로, 장애 경험이 없는 사람을 가리킨다장애 경험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다기치 못한 질병이나 사고로 인해 태어나자마자 장애인이 된 사람이 있고, 비장애인으로 살아가다가 장애인이 될 수 있다그러므로 장애는 장애인들에게만 해당하는 특정 단어가 아니다. 하지만 비장애인은 장애인의 삶을 잘 모른다. 장애인을 불운한 사람일거수일투족 누군가로부터의 도움을 받으면서 살아가야하는 사람또는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정상과 거리가 먼 사람들로 치부한다이러한 편견들은 장애인을 살만한 가치가 없는 존재로 바라보게 만든다비장애인은 정상인의 동의어가 아니다.


아나운서의 발언이 대중이 생소하게 여겼던 비장애인을 널리 알리는 데 기여를 했다고 보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여전히 비장애인은 장애인을 모른다. 패럴림픽 경기를 중계하는 아나운서가 메달을 딴 선수들을 장애인들에게 꿈과 용기를 주는 영웅’으로 칭송한다면 이런 부분을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장애인 영웅 만들기는 장애인에 대한 부정적 편견을 생산한다능력과 성공을 중시하는 사회는 열심히 노력한 끝에 자신의 한계(장애)를 극복한 장애인들에게 환호를 보내지만, 그러지 못한 장애인은 노력이 부족해서 실패한 존재가 된다. 비장애인은 신체적 · 정신적 손상이 있는 장애인을 부정적으로 보면서 오히려 장애를 극복하라고 주문하는데 이것은 장애인에게 이중 억압이 된다.


우리 없이 우리에 관하여 말하지 말라(Nothing about us without us).” 이 말은 장애인 인권 운동을 상징하는 구호다. 비장애인은 장애를 겪으면서 살아가는 방식이 어떤 것인지 모르면서 마치 그들을 잘 안다는 식으로 말해왔다비장애인이 패럴림픽 개최 기간에만 자주 거론된 특별한 단어가 되지 않으려면 비장애인은 장애와 장애인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우리에 관하여는 다양한 빛깔의 스펙트럼처럼 이루어진 장애인들의 삶과 감정들을 보여주는 프리즘과 같은 책이다


책 제목의 우리는 앞서 언급한 구호에서 따온 것이다이 책은 뉴욕 타임스오피니언 시리즈 장애(disability)”에 실린 60편의 글로 구성되어 있으며 학자, 시인, 예술가 등이 집필진으로 참여했다이 책의 서문은 한낮의 우울》(민음사, 2021)의 저자 앤드루 솔로몬(Andrew Solomon)이 썼다. ‘들어가며를 쓴 로즈메리 갈런드 톰슨(Rosemarie Garland Thomson)은 장애학을 연구하는 학자다. 두 사람 모두 오피니언 집필진에 포함되었다. 이 책에 신경과 전문의 올리버 색스(Oliver Sacks)의 글도 있다. 제목은 오청(Mishearing)”이다. 이 글은 그의 책 의식의 강(알마, 2018)에도 실려 있다.[주]


글쓴이들은 장애와 관련된 경험담과 장애에 대한 느낀 점을 진솔하게 들려준다그들은 비장애인 중심 사회 속에서 살아가면서 겪는 고충을 털어놓지만, 장애를 치료해야하거나 극복해야 할 대상이 아닌 필연적인 삶의 일부로 받아들인다비장애인은 장애인이 될 수 있다. 그렇지만 과도하게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장애에 대한 지나친 두려움은 일상 가까이에 있는 장애와 장애인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만드는 안대이자 색안경이다. 로즈메리 갈런드 톰슨은 장애를 누구나 마주하게 될 과업이라고 말한다. 이 과업은 내가 겪을 수 있고, 내 주변의 가족이나 친구가 겪을 수 있다. 우리 모두가 잘살려면 장애 경험을 풍요로운 삶의 원천으로 삼을 수 있어야 한다. 우리에 관하여는 낯설고 두려워해서 잘 보이지 않던 장애와 장애인을 또렷하게 보이도록 해준다.





[] 책 말미에 글쓴이들을 간략하게 소개한 부록이 있다. 부록색스의 글이 더 타임스에 처음 발표되었다고 적혀 있다(435쪽). 글의 출처는 ‘더 타임스가 아니라 뉴욕 타임스. 더 타임스는 영국의 일간지 런던 타임스(The Times of London)’의 약칭이다. 색스의 글은 뉴욕 타임스 201565일 자에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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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8-16 14:0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우리 없이 우리에 관하여 말하지 마라˝ 이말 정말 인상적이네요. 장애에 대한 지나친 두려움 없이 대하려는 노력은 중요한거 같아요~!!

cyrus 2021-08-17 21:37   좋아요 2 | URL
장애인을 대하는 것을 어렵게 느껴지면 대화의 물꼬를 트기 어려워요. 어렸을 때 장애인 옆에만 있으면 두려워서 일부러 눈을 못 마주치고, 대화를 피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철없는 행동이었어요.

얄라알라 2021-08-18 17:41   좋아요 0 | URL
저도요^^ cyrus님 글 읽으면서 그 구호를 복사했는데, 새파랑님께서 말씀 해주셨네요.

인식의 전환 수준으로 놀랐어요. 그 구호를 cyrus님 페이퍼에서 읽으며.

˝Nothing about us without us!˝

aisms 2021-08-17 09:3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 책의 편집자예요. 먼저 감사의 말씀부터 드리고 싶습니다. 보도자료를 이렇게 썼어야 했는데,라는 생각이 들 만큼 책의 핵심을 잘 짚어 주셔서 놀랍습니다. 물론 저는 아무리 궁리했어도 이렇게 쓰지 못했을 겁니다. 궁리한다고 해서 글이 써지는 건 아닐 테니까요.
올리버 색스 관련하여 변명하자면 원서에 이렇게 써 있었어요. ˝first published by the Times in 2015.˝ 지금 생각해 보니, 앞에 올리버 색스가 뉴욕 타임스에 자주 글을 기고하는 기고가라는 말이 나오는데, 중복을 피하기 위해 the Times라고 썼나 보군요.... 배우고 갑니다.

cyrus 2021-08-17 21:41   좋아요 3 | URL
안녕하세요. 좋은 책 잘 읽었습니다. 방금 확인해봤는데 미국인들도 뉴욕 타임스를 줄여서 ‘더 타임스’라고 부르는군요. 저 역시 새로운 사실을 알았습니다. ^^;;

2021-08-18 17: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8-18 21: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8-19 00: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끝내주는 괴물들 - 드라큘라, 앨리스, 슈퍼맨과 그 밖의 문학 친구들
알베르토 망겔 지음, 김지현 옮김 / 현대문학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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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점  ★★★☆  B+





국어사전에 표기된 괴물의 뜻은 두 가지다. 하나는 괴상하게 생긴 물체, 또 하나는 괴상한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괴물과 비슷한 뜻을 가진 단어는 괴짜. 우리는 별난 행동을 하는 사람에게 괴짜라 부른다. 반면 비범한 재능을 가진 사람에게 괴물이라 부른다. 특히 압도적인 실력을 갖춘 야구 선수들에게 자주 붙는 별명이 괴물이다. 겉모습은 평범한데 내면에 추악한 괴물이 숨어 있는 인간이 있다. 이런 괴물 같은 인간은 사이코패스에 가깝다이렇듯 괴물은 다의어.


알베르토 망겔(Alberto Manguel)끝내주는 괴물들괴물이 다의어임을 일깨워주는 책이다. 저자는 애서가답게 문학작품에 나온 괴물들을 문학 친구라고 소개한다. , 분명히 말해두는데 이 책에 나오는 괴물들은 네시(Nessie)나 설인(Yeti) 같은 미지의 생명체(Cryptid)라든가 전설이나 민담에 나오는 요괴와 전혀 관련이 없다그러므로 미스터리나 요괴에 관심 있는 독자는 다른 책을 알아보시길끝내주는 괴물들을 한 마디로 소개하자면 ‘저자의 문학 친구들인 괴물, 괴짜, 기인, 별종들에 대한 감상문 모음집이다


저자의 문학 친구 중에 빨간 모자가 있다. 빨간 모자가 끝내주는 괴물이라니. 책의 목차를 본 독자들은 눈이 휘둥그레질 것이다. 필자가 앞에서 언급한 것, 즉 괴물이 다의어라는 사실을 기억해두시라. 저자가 보는 빨간 모자는 괴짜에 가깝다. 그녀는 고분고분 어머니의 말을 잘 듣는 착한 성격이지만, 그래도 자기만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다. 빨간 모자는 어머니가 시킨 심부름을 하기 위해 할머니 집으로 가는 도중에 도토리를 줍는다든지 훨훨 나는 나비를 따라가는 등 딴 짓을 한다. 저자는 빨간 모자의 신조가 시민 불복종이라고 주장한다. 여기에 색다른 견해를 덧붙인다. 자유와 불복종을 상징하는 인물로 알려진 호밀밭의 파수꾼의 주인공 홀든 콜필드(Holden Caulfield)가 빨간 모자를 지지했을 것이라고. 그러고 보니 홀든 역시 괴짜에 가까운 인물 아닌가.


저자는 왜 괴물을 문학 친구라고 생각할까. 저자가 생각하기에 그들이 문학작품 속에 보여준 다중, 다변의 정체성은 매력이다. 이 문학 친구들은 틀에 박힌 독자들의 해석을 거부한다. 틀에 박힌 독자들은 괴짜와 별종을 만나면 부정적으로 생각한다. ‘저 사람 왜 저래? 미친 거 아냐?’ 괴짜와 별종을 기피하는 그들은 허구의 괴물에게도 부정적인 시선을 보낼 것이다하지만 괴물을 친구처럼 여긴다면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진다괴물은 타인을 증오하지만 한편으로는 타인으로부터 사랑받기를 갈망한다. 그리고 타인을 사랑할 줄 안다. 이러한 괴물의 복합적인 감정은 인간이 살면서 느끼는 감정과 비슷하다. 우리가 타인을 만나면 행복하다가 때론 질투하는 것처럼 괴물도 다양한 감정을 느끼고 표현한다. 이런 괴물들의 매력을 이해한다면 인간의 다양한 감정을 가진 괴물에게 동질감과 친밀감을 느낄 수 있다


끝내주는 괴물들은 그동안 편협하게 사용되어 온 괴물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게 만든다. 이뿐만 아니라 인간 대 괴물이라는 오래된 이분법을 해체한다. 인간처럼 감정이 있는 괴물이라면 그들을 괴물이라고 딱 잘라 말할 수 있을까인간과 괴물을 구분하려는 이분법에 벗어나지 못한 인류가 부끄러워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자신만의 기준과 잣대로 타자를 마음대로 괴물로 분류하고 차별하려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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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1-08-04 22:2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별이 3개라 조금 아쉽지만 그래도 B 이네요~♡ㅎㅎㅎ(재미있게 읽은 1인)

cyrus 2021-08-04 22:30   좋아요 3 | URL
개인적으로 망겔의 책을 좋아하는데, 이번에 나온 책은 기대한 만큼 별로였어요. 저자가 다독가라서 글 한 편에 작가와 문학 작품들을 많이 언급해요. 그런데 제가 처음 보는 작가와 문학 작품들이 많아서 글에 몰입하는 데 힘들었어요. 솔직히 말해서 재미가 없었어요. 역자가 작가와 문학 작품에 대한 주석을 더 많이 써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문학 작품을 더 많이 읽어야겠습니다. ^^

페넬로페 2021-08-04 22:3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을 조금씩 읽고 있는데, 작가가 책에 쓴 내용에 집중해서 그가 언급한 인물들을 중점적으로 생각하며 일는데 cyrus님은 괴물이라는 단어에도 깊이 생각하셨네요. 저는 책을 많이 읽어 온 작가가 술술 풀어내는 이야기들에 감탄하며 읽고 있어요^^

바람돌이 2021-08-05 00: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cyrus님 역시 다른 분들이 읽은 글을 보면 작품들의 또 다른 면을 볼 수 있네요. 인간 대 괴물의 이분법을 해체한다는 데서 맞아 그런면도 있었어라고 무릎을 탁 칩니다. ^^

레삭매냐 2021-08-05 07:4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독서강호의 책쟁이다우신
글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의 책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넘실거리니 어찌
좋다고 말하지 않을 것인가.

stella.K 2021-08-05 19: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생각 보다 평점은 그리 높지 않네.
나는 저자의 책을 아직 읽은 것이 없어서 명성만 생각하면
꽤 괜찮은 책일 것 같은데...ㅋ

새파랑 2021-09-10 16: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Cyrus님 2관왕~!! 축하드려요~!!

그레이스 2021-09-10 16: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축하합니다
이 책 대기중입니다~^^

mini74 2021-09-10 17: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

서니데이 2021-09-10 18: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초딩 2021-09-11 1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리뷰 당선 축하드립니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 친화력으로 세상을 바꾸는 인류의 진화에 관하여
브라이언 헤어.버네사 우즈 지음, 이민아 옮김, 박한선 감수 / 디플롯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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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점   ★★★★   A-






오랫동안 알려져온 진화에 관한 세 가지 오해가 있다. 우리는 세 가지 오해를 진지하게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첫째, 진화는 인류를 지구상에서 가장 뛰어난 종으로 만드는 진보를 동반한다. 인류가 지구의 지배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최적의 진화를 거듭해왔기 때문이다. 둘째, 인류의 조상은 원숭이다. 아주 먼 옛날 우리의 조상은 원숭이였고, 진화를 거듭하면서 지금의 인류가 되었다. 셋째, 진화는 적자생존의 원칙 그 자체다. 자연에 적응한 강한 종의 유전자는 다음 세대에 전해지고, 그렇지 못한 종의 유전자는 도태되면서 끝내 절멸된다그래서 자연은 적자생존과 승자독식의 규칙이 지배하는 전쟁터 같은 곳이다.


적자생존의 원리에 따르면 오래 살아남는 종이 강하다. 생육과 번식, 창조를 거듭하며 참으로 많은 것을 발명하고 문명을 세운 인류는 살벌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은 강자다. 이러한 인식의 배경 속에 적자생존과 약육강식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세상의 이치이며 인류는 동물보다 우월한 존재라는 신념이 자리 잡고 있다. 침팬지는 인간과 유전적으로 가장 가까운 생명체다. 하지만 인류의 삼림 수탈과 지구 온난화로 침팬지의 터전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인류에게 포획된 침팬지는 실험용 동물이 되어 희생된다적자생존을 세상 불변의 진리로 보는 세계관은 자연을 마음껏 착취할 수 있다는 인간 중심적 탐욕으로 확장된다. 이로 인해 침팬지는 멸종의 벼랑 끝으로 내몰린다이 모든 문제는 진화에 관한 세 가지 오해에서 비롯된다문제는 진화론을 좀 안다는 사람들도 이런 오해를 한다. 따라서 진화와 관련된 막연한 오해를 바로잡아야 한다오해를 너무 오랫동안 외면하거나 방치하면 쉽게 지워지지 않는 심각한 오류로 남는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는 진화의 의미를 잘 모르는 사람뿐만 아니라 오로지 적자생존밖에 모르는 얼뜨기 진화론자도 하기 쉬운 오해를 바로잡는 책이다이 책을 쓴 두 명의 저자는 제한된 자원을 독점하기 위해 경쟁을 지향하는 진화 전략보다는 타인과 협력하는 진화 전략에 주목한다이 인류의 생존 전략의 중심에 연대와 공존을 강화하는 다정함과 친밀감이라는 정서가 있다인류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경쟁에서 이길 정도로 똑똑하고 강해서가 아니라 타인과 소통하고 협력했기 때문이다강한 자만 살아남았는 게 아니라 다정한 자도 살아남았다.


인류는 어떻게 혈연이 아닌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방식을 터득하면서 진화했을까? 저자들은 다정함과 친밀감이 진화의 근원임을 설명하기 위해 자기 가축화(self-domestication) 가설을 제시한다자기 가축화란 말 그대로 야생의 개체가 스스로 인간과 함께 사는 가축이 되는 현상을 뜻한다가장 대표적인 자기 가축화 동물이 바로 개다. 개의 조상인 야생 늑대는 인간을 경계하고, 공격성이 강하다. 그러나 이들 중 일부는 인간이 버린 음식 쓰레기를 먹으면서 살아갔고, 인간에게 조금씩 다가갔다. 인간의 터전 주변을 맴도는 늑대들은 인간에 대한 경계심보다 친밀감이 강했다늑대가 점점 가축으로 진화하자 공격성이 줄어들었고, 날카로운 이빨의 크기는 작아졌다. 이렇게 성격과 외형까지 완전히 달라진 늑대는 인류의 반려동물인 개가 되었다.


자기 가축화 현상은 인간에게도 나타난다. 우리는 자신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타인을 만나면 친밀감을 느낀다. 또 자신과 비슷한 환경에서 자라거나 가치관을 공유하는 타인을 가족 같은 친구로 여긴다. 이러한 관계에서 싹트기 시작한 다정함과 친밀감은 타인을 향한 적대감을 줄어들게 만들었고, 타인과 협력할 수 있는 능력을 향상했다어쩌면 평화주의자는 인간의 자기 가축화 현상을 내세워 전쟁을 반대하는 목소리를 높이고, 평화의 필요성을 적극적으로 강조할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자기 가축화 현상은 타인에 대한 적대감과 폭력성을 완전히 줄이지 못한다. 역설적이게도 같은 무리끼리 어울리고 싶은 친밀감과 결속력이 더 높아질수록 타인과 외집단과의 협력을 꺼린다. 심지어 타인을 차별하고, 공격해야 할 적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인종주의와 우생학은 인류의 진화에 적용된 자기 가축화 현상의 어두운 이면이 낳은 이데올로기다인종주의에 사로잡힌 서구인들은 자신보다 열등한 민족을 분류하여 이들을 원숭이와 같은 미개한 존재로 바라봤다. 우생학은 적자생존의 원칙을 사회에 적용하려는 진화론자들이 열광한 학문이었다. 우생학자와 사회진화론자들은 뛰어난 유전자와 몸, 정신을 가지고 있는 인류를 선호했다. 그들이 바라본 장애인은 뛰어난 인류에 적합하지 않는 배제의 대상이었다.


특정 민족을 인간이 아닌 원숭이 같은 동물로 취급하던 사람 중 일부는 진화론에 강한 거부감을 느꼈다. 그들은 지구상에서 가장 우수하고 특별한 존재가 인간이라고 확신(착각)했기 때문에 동물을 인간의 조상으로 보는 견해에 분개했다. 하지만 그들은 진화론을 잘못 알았다. 진화론을 제대로 이해하고 싶지 않았던 사람들은 원숭이, 즉 영장류는 인류의 조상이 아니라 친척임을 알지 못했다인간과 영장류는 유인원에 가까운 오래된 조상에서 갈라져 나와 진화했다. 진화는 원숭이가 점점 인간으로 변하는 단선적인 현상이 아니다


네발로 기어가는 원숭이가 두 발로 걷는 인간으로 진화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인류 진화도는 진화의 두 번째 오해를 낳게 만든 주범이다. 저자들은 여전히 생물학 교과서에 실린 인류 진화도의 문제점을 지적한다(188~189쪽)그리고 침팬지와 보노보가 영장류 가운데 인간과 가장 가까운 친척이라는 사실을 언급했다(87).

 

두 저자는 협력하고 의사소통하는 능력을 발현시킨 인류의 진화 전략을 찬양하지 않는다. 만약 그들이 다정함과 친밀감을 지나치게 긍정하는 진화론을 주장했다면, 인류가 영원히 발전할 거라고 믿는 진보사관에 가까운 견해가 되었을 것이다. 다행히 저자들은 진화의 첫 번째 오해가 파놓은 함정을 피했다. 진화와 진보를 동일시하는 사람들은 그 함정에 빠지기 쉽다. 저자들은 인간을 지구상에서 가장 관용적인 동시에 가장 무자비한 종이라고 말한다(32쪽). 저자들이 생각한 인간의 정의는 낙관적인 진보의 달콤한 환상이 섞인 진화론에 부합한 인간상과 거리가 멀다. 세상을 더 나은 쪽으로 발전하게 만드는 인류의 능력을 지나치게 믿으면 진화를 진보로 착각할 수 있다. 결국 진보사관으로 둔갑한 진화론은 인간중심주의의 한계에 벗어나지 못하게 만든다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는 가장 다정하면서도 무자비할 정도로 잔인해질 수 있는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게 한다인간이란 무엇인가는 철학만이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이 아니다진화론을 제대로 안다면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대답할 수 있다.






미주(尾註)알 고주(考註)






* 31쪽, 옮긴이 주

 

 야생종이 사람에게 길드는 과정에서 외모나 행동에 변화가 일어나는 현상으로, 인간에게도 사회화 과정에서 공격성 같은 동물적 본성이 억제되고 친화력이 높아지는 방향으로 진화하는 자기가축화 과정이 나타난다(랭엄 피터슨[주1], 악마 같은 남성, 이명희 옮김, 사이언스북스, 1998 참조).



[1] 악마 같은 남성(Demonic Males)리처드 랭엄(Richard Wrangham)데일 피터슨(Dale Peterson)이 함께 쓴 책이다. 공저자의 이름을 알아보기 쉽게 랭엄, 피터슨이라고 표기해야 한다.







* 135, 옮긴이 주

 

 괴테의 동명 시 <발라드(Der Zauberlehrling)>[2]를 뮤지컬 애니메이션으로 각색한 디즈니 장편 3부작 <판타지아>의 마지막 편으로 1940년에 개봉, 2000년에 개봉했다.

 


[2] 135쪽 두 번째 역주는 <마법사의 제자>(The Sorcerer’s Apprentice)에 관한 것이다. 그런데 시 제목이 잘못 적혀 있다. 괴테의 시 제목은 발라드(ballade)가 아니라 <마법사의 제자>(Der Zauberlehrling). 발라드는 시 형식을 지칭하는 단어다.





* 267~268


러시아 대통령 니키타 흐루쇼프(Nikita Khrushchyov) 소련 공산당 서기장 니키타 흐루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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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붕툐툐 2021-08-03 23:37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미주알 고주알 볼 때마다 어떻게 이렇게 꼼꼼하게 읽으실 수 있는지 입이 쩍 벌어집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알기 위해 철학 진화론이 필요하다는 말씀에 공감합니다!!

새파랑 2021-08-04 11:44   좋아요 5 | URL
저도 사이러스 님 글 보면 깜놀깜놀 합니다 ^^

cyrus 2021-08-04 22:03   좋아요 1 | URL
인간의 정의는 다양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학문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려면 책을 많이 읽어야겠죠? ^^

2021-08-04 12: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8-04 22: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카넷_디플롯 2021-08-04 13:3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섬세한 탐독에 경의를 표하고 싶을 정도 입니다.
‘미주알 고주알‘ 부분은 담당편집자에게 바로 전달했습니다.
저희 책 꼼꼼하게 읽어주셔서 다시 한 번 감사합니다 :)

- 아카넷(디플롯) 드림 -

붕붕툐툐 2021-08-04 20:56   좋아요 3 | URL
엄훠~ 출판사님(?) 등장!ㅎㅎ

cyrus 2021-08-04 22:09   좋아요 2 | URL
구입한 책인데 책값이 아깝지 않았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

stella.K 2021-08-04 20: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일단 진화론에 대한 좀 반가운 책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적자생존에 너무 많이 쩔어 있었는데 이런 새로운 이론도 나오니 말야.

요즘엔 짬이 나는가 보다. 간간히 너의 글을 볼 수도 있으니.
휴가는 썼나 모르겠다. 요즘엔 어딜 통 못 다니겠으니 다녀왔냐는 물음이 어색하지?ㅋ

cyrus 2021-08-04 22:12   좋아요 3 | URL
야근을 안 하니까 저녁에 책 읽고 글 쓸 시간이 생겼어요. 물론 예전에 비하면 많다고 볼 수 없지만, 그래도 독서와 글쓰기에 집중하도록 노력하고 있어요. 휴가는 백신 접종 날짜에 맞춰서 하려고요. ^^
 
러브크래프트 : 세상에 맞서, 삶에 맞서
미셸 우엘벡 지음, 이채영 옮김 / 필로소픽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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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점  ★★★★  A-






프랑스의 시인 보들레르(Baudelaire)의 시집 악의 꽃의 첫머리에 있는 독자에게는 시집의 서문에 해당한다. 이 시에서 시인은 제일 흉하고 악랄하고 추잡한 놈이 있다면서 독자에게 경고한다. 그놈은 소리 없이 돌아다닌다. 하지만 그놈은 무시무시한 힘을 가졌는데 지구를 박살내고, 한 번의 하품으로 지구의 모든 인류를 집어삼킬 수 있다. 시인은 시의 마지막 연에 그놈의 정체를 밝힌다. 그것은 권태라는 괴물이다. 시인은 권태가 다루기 힘든 괴물이라면서 이것이 인류에게 주는 고통을 아는 소수의 독자를 위선자라고 부른다. 하지만 그들은 시인의 동지와 같은 존재. 악의 꽃을 이해하는 유일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보들레르는 악의 꽃을 포함한 자신의 모든 글에서 권태를 자주 언급했는데, 그가 내린 권태의 정의는 다양하다. 그는 현대인의 악과 천박함을 말하기 위해 권태라는 소재를 즐겨 썼다. 보들레르에게 권태란 덧없고 부조리한 세상을 살아야 하는 인간이 품고 있는 불만감이다.


보들레르는 자신의 유일한 시집을 공개하면서 부조리한 세상에 맞섰고, 천박한 대중을 향해 도발했다. 그러나 시인은 위선적인 독자에게 이해받고 싶었다. 이러한 시인의 진심은 미국의 소설가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Howard Phillips Lovecraft)의 삶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염세주의자인 그는 자신의 글쓰기 재능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는 글쓰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러브크래프트는 철저하게 대중과의 거리를 둔 채 글을 썼지만, 역설적으로 그의 소설은 작가의 존재감을 확실히 보여준다. 러브크래프트의 글쓰기는 단순히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세상에 알려서 인정받기 위한 행위가 아니다. 자신이 비관적으로 바라보는 세상에 맞서는 개인적인 분풀이다러브크래프트는 생전에 인정받지 못했으나 사후에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와 함께 미국 공포문학의 대가로 평가받았다.[주1] 


러브크래프트의 삶과 작품 세계를 독자적인 관점으로 분석한 프랑스의 소설가 미셸 우엘벡(Michel Houellebecq)은 러브크래프트를 극단주의자라고 평가한다러브크래프트는 이 세상과 모든 존재는 악하다고 결론을 내렸으며 죽을 때까지 이 관점을 고수했다그는 세상에 불만이 많았고, 인류를 경멸했다. 어쩌면 러브크래프트가 생각한 괴물은 이 세상 자체일 것이다. 그는 자신을 둘러싼 거대한 괴물에 분풀이하기 위해 또 하나의 괴물을 창조한다. 그것이 바로 크툴루(Cthulhu)’를 비롯한 외계의 존재들이다. 러브크래프트의 괴물들은 인간을 절망에 빠뜨리게 하고, 그들을 눈앞에서 본 인간은 속절없이 무너진다. 괴물과의 조우는 연약하기 짝이 없는 인간의 정신을 습격하는 악몽이 된다. 악몽에 점령당한 인간에게 희망은 없다. ‘nevermore(이젠 끝이야).’[주2]


러브크래프트는 자신이 앵글로색슨 혈통이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꼈다. 혈통에 대한 지나친 자부심과 세상을 향한 증오는 결합되어 극단적인 인종차별적인 사고를 잉태한다. 혼혈인과 이민자들에 대한 그의 경멸은 소설 속에 반영되어 있다. 러브크래프트의 소설을 처음 읽는 독자는 이 사실을 놓치기 쉽다. 우엘벡은 러브크래프트의 소설에 나타난 문제점을 언급하고 비판한다.


러브크래프트는 특이한 사람이다인류를 경멸하고, 사람 만나기를 꺼려하던 그가 유독 좋아했던 일이 편지 쓰기다. 젊은 작가들은 편지를 통해 러브크래프트에게 조언을 구하거나 초고 교정을 부탁했다. 편지를 받은 러브크래프트는 초고를 진지하게 봐주었으며 답장을 꼭 써서 보내줬다. 그와 편지를 주고받은 작가들은보들레르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들은 작가의 역량을 주목한 몇 안 되는 러브크래프트의 동지들이다. 러브크래프트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한 작가들을 가리켜 러브크래프트 서클(Lovecraft circle)’이라 한다러브크래프트를 단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친절하고 상냥한 신사로 기억했다.


러브크래프트: 세상에 맞서, 삶에 맞서러브크래프트 평전이라기보다는 작품 분석에 초점을 맞춘 문학 비평서에 가깝다.[주3] 그러므로 이 책은 러브크래프트의 소설을 아직 안 읽은 독자에게 권할 수 없다. 러브크래프트 입문자를 위한 책이 절대로 아니다우엘벡이 러브크래프트의 대표작러브크래프트의 골수팬(Lovecraftian)들은 작가의 뛰어난 작품 일곱 편을 그랑 텍스트(grands textes, 뛰어난 걸작)’라고 부른다의 결말을 간접적으로 언급하기 때문이다. 러브크래프트의 소설을 한 번이라도 읽은 독자라면 이 책을 읽을 수 있다러브크래프트: 세상에 맞서, 삶에 맞서는 러브크래프트라는 불가사의한 작가와 그랑 텍스트에 대한 주석서다러브크래프트의 추종자라 자부하는 독자는 우엘벡의 견해에 반박하는 주석을 쓸 수 있다. 이 책의 서문을 쓴 미국의 소설가 스티븐 킹(Stephen King)은 우엘벡의 핵심적인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도전적인 독서를 지향하는 러브크래프트 추종자라면 이 책을 단순히 작가를 향한 팬심을 유발하는 책정도로 봐서는 안 된다그들에게 제안한다소설과 신화로 남은 러브크래프트에 맞서라.






※ 미주(尾註)알 고주(考註)



[1] 포는 러브크래프트와 보들레르, 이 두 사람과의 인연이 깊은 작가다. 러브크래프트가 좋아하는 작가는 포였고, 그의 영향을 받아 소설을 썼다. 포의 문학적 재능을 눈여겨 본 보들레르는 포의 단편소설을 불어로 번역했다. 



[2] 포의 시 까마귀(The Raven)에 반복되어 나오는 말이다.



[주3] 히가시 마사오(東雅雄)크툴루 신화 대사전(AK커뮤니케이션, 2019)에 수록된 다른 차원의 인간-러브크래프트의 생애와 문학은 러브크래프트의 삶을 좀 더 상세하게 소개된 글이다이 글 속에 러브크래프트가 직접 쓴 개인 프로필이 있다.



* 37

 

 출간 기념 사인회를 열면 젊은 친구들이 책에 사인을 받으러 찾아오는 일이 종종 있었다. 롤플레잉 게임[3]이나 시디롬을 통해 러브크래프트의 존재를 알게 된 사람들이었다.


[주3] 롤플레잉 게임(RPG: Role-Playing Game)이라 하면 일반적으로 비디오, 컴퓨터, 모바일 게임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롤플레잉 게임은 원래 TRPG(Tabletop Role Playing Game, Table-talk Role Playing Game)를 뜻하는 용어다TRPG는 여러 사람이 탁상에 모여 앉아 각자가 맡은 캐릭터 역할을 연기하는 게임이다우엘벡이 언급한 롤플레잉 게임TRPG일 것이다크툴루 신화를 소재로 만든 호러 TRPG1981년에 출시된 <크툴루의 부름>(Call of Cthulhu)이다. 이 게임은 현재까지 7판이 출시되었고, 국내 TRPG 전문 출판사 초여명이 번역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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