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달 <일글책> 평일 독서 모임 선정 도서는 정지돈의 소설집 인생 연구. 대구 책방 중에서 (나온 지 얼마 안 된 아주 따끈따끈한) 정지돈 작가의 신작 소설을 읽고 독서 모임을 진행하는 유일한 책방이 <일글책>이다. 나는 금요일 반을 신청했고, 9일과 23일 금요일 두 번 참석한다. 인생 연구총 여덟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모임이 두 번 진행되므로 소설을 네 편씩 나누어 읽는다.
















[대구 서점 <일글책> 6월 독서 모임 선정 도서]

* 정지돈 인생 연구(창비, 2023)




어제 토요일 오전에 진행된 <일글책> 고전 읽기 모임이 끝난 후에 인생 연구를 읽기 시작했다. 인생 연구의 첫 번째 소설은 우리의 스크린은 서로를 바라본다. 첫 소설 중반을 읽으면서부터 당혹감이 엄습했다. 도대체 작가가 평범하지 않은 인물의 특이한 삶을 묘사하면서 독자인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거지



너도 쉽지 않네.” 안젤라가 말했다.


(정지돈, 우리의 스크린은 서로를 바라본다』 중에서, 17쪽)



정 작가의 글도 쉽지 않네.’ 정 작가의 소설을 즐겨 읽지 않은 나는 말했다세 번째 소설 B! D! F! W!는 처음부터 끝까지 난해의 극치를 보여준다정 작가의 글을 처음 읽는 독자라면 B! D! F! W!를 읽는 순간 분명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씨발, 이게 뭐야.

 

(정지돈, , 슈프림중에서, 144)



나뿐만 아니라 인생 연구독서 모임에 참석하기로 한 다른 분들도 B! D! F! W!를 읽는 내내 충격과 공포를 느꼈다<일글책> 책방지기는 인생 연구독서 모임 발제를 어떻게 내면 좋을지 엄청 고민했다.


처음에는 이상했다. 그런데 다음 소설을 계속 읽어나갈수록 이상한 이야기에 흥미를 느꼈다해석하고 생각하기를 멈춘 채 그냥 쭉 읽었다어쩌면 정 작가의 소설에 익숙해지려면 이런 식으로 읽어야 할지도 모른다.


우리의 스크린은...의 주인공은 안젤라. 소설 속 화자는 안젤라의 전 연인이다. 그는 안젤라의 괴팍한 행동과 자유분방한 연애 편력(양성애)을 관찰하듯이 서술한다. 그리고 안젤라의 전 남자친구마저 이해하지 못하는 성적 도착증(신체 절단 애호증)도 언급한다안젤라는 평범한 여성이 아니다. 안젤라는 퀴어(queer)’하다현재 성소수자를 지칭하는 용어가 된 퀴어는 원래 기이한’, ‘이상한을 뜻하는 단어다정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독자는 인생 연구를 읽으면서 익숙하지 않고, 이해할 수 없고, 비인간적으로 생각되는존재를 만난다.

















* B. 프레시아도 대항성 선언(포이에시스, 2022)




안젤라는 자신이 좋아하는 철학자가 B. 프레시아도(Paul B. Preciado)라고 말한다(우리의 스크린은..., 30). B. 프레시아도는 스페인 출신의 철학자로 퀴어 FTM 트랜스젠더(여성남성으로 성전환)원래 이름은 베아트리즈 프레시아도였다. 남성 호르몬 요법을 통한 성전환 이후로 폴 베아트리즈 프레시아도로 개명했다작년에 프레시아도의 초기작이자 대표작인 대항성 선언(Manifiesto contrasexual)이 번역 출간되었다원서가 2002년에 출간되었으니 20년이나 지나고 나서야 ‘여전히 성적으로 보수적이고 성소수자들이 살기에 척박한’ 국내에 첫선을 보였다.



















* [절판] 주디스 핼버스탬 여성의 남성성(이매진, 2015)

* 주디스 버틀러, 조현준 옮김 젠더 트러블(문학동네, 2008)




잭 핼버스탬(Jack Halberstam, 그도 FTM 트랜스젠더다)이나 주디스 버틀러(Judith Butler)처럼 성소수자 인권을 지지하며 퀴어 정체성으로 살아가는 철학자들처럼 폴 B. 프레시아도는 이분법적 생물학적 성별(남성/여성)과 이성애 중심주의를 비판한다. 그생물학적 남성중심주의의 상징이자 남성의 성적 기관인 음경과 여기에 대조되거나(또는 대항하거나) 음경에 비해 평가절하된 여성의 성적 기관 질이 중심이 되는 섹슈얼리티 모두 거부한다. 그는 성별 이분법을 거부하고, N개의 젠더 모두가 선호하는 섹슈얼리티를 강조하기 위해 항문을 주목한다남자도, 여자도, 이성애자도, 동성애자도 아닌, 그야말로 생물학적 성별인 섹스(sex)와 사회적으로 정의된 젠더조차도 의미 없는 대항성의 성 기관은 항문이다. 섹스(생식 행위)의 대안은 항문에 삽입하는 자위 기구 딜도대항성은 늘 변하며 유동적이다. 그래서 자유롭다.


B. 프레시아도를 좋아하는 안젤라는 대항성으로 살아가고 싶은 존재. 화자는 안젤라를 그녀라고 지칭하지만, 안젤라는 생물학적 여성이 아니다. 화자는 안젤라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다(우리의 스크린은..., 14).’ 



























* 김멜라 제 꿈 꾸세요(문학동네, 2022)


* 전하영, 김멜라, 김지영, 김혜진, 박서련, 서이제, 한정현 2021 12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문학동네, 2021)


* 사드, 성귀수 옮김 사드 전집 2: 소돔 120일 혹은 방탕주의 학교(워크룸프레스, 2018)

 

* [절판] 사드 소돔 120(고도, 2000)




B. 프레시아도는 대항성 선언딜도 그 자체라고 표현한다. 이러한 표현에 영감을 준 작가가 대다수 페미니스트들이 적대하는 사드(Sade)실제로 사드는 감옥에 갇혀 있을 때 딜도로 성욕을 충족했고, 감옥에서 쓴 소설 소돔 120 원고를 지키기 위해 딜도 안에 숨겼다고 한다여담으로, 김멜라의 소설집 제 꿈 꾸세요에 수록된 나뭇잎에 마르고(12회 젊은 작가상 수상작)대니라는 이름의 여성이 등장한다. 그녀는 학교 수업에 가기 전에 소돔 120을 세 페이지씩 읽는다(제 꿈 꾸세요, 71).


이 글이 거의 완성되고 있을 때, 갑자기 인생 연구독서 모임을 위한 발제가 될만한 질문이 생각났다. 당신 곁에 있는 가족, 친구, 친한 이웃이 익숙하지 않고, 이해할 수 없고, 비인간적존재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이며 그다음에는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노화학 - 10억 분의 1미터에서 찾은 현대 과학의 신세계
장홍제 지음 / 휴머니스트 / 2023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평점


4점  ★★★★  A-





어린 시절에 반복하다시피 읽은 책이 교양 과학 만화책 시리즈. 그 시리즈 첫 번째 책의 주제가 인체였다. 그런데 책 제목이 기억나지 않는다. ‘인체의 신비였던가? 출판사 이름은 기억난다. 삼성당이다. 무자비하게 흘러간 시간이 책 제목을 지웠다. 그 책에 임시로 제목을 붙인다면 인체 탐험이다. 그렇게 제목을 정한 이유는 SF에 나올 법한 줄거리 때문이다. <인체 탐험>의 등장인물은 흰 수염의 의학 박사와 그를 따르는 남자아이와 여자아이다. 의학 박사는 발명에도 남다른 재주가 있다. 비행기와 흡사한 잠수함을 만들었는데, 놀랍게도 버튼 하나 누르면 잠수함 크기를 줄일 수 있다. 박사와 아이들은 확 줄어든 잠수함을 타고 어떤 남자의 몸속으로 들어간다! 


세 사람이 탄 잠수함은 남자 몸속 구석구석 누빈다. 남자는 자신의 몸속에 아주 작은 잠수함이 들어갔는지 모른 채 살아있는 교본이 된다. 박사는 몸속에 거주하는 세포와 세균이 하는 일과 몸속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생리 현상의 원인을 아이들에게 설명해준다. 잠수함이 남자의 몸 밖으로 빠져나오는 장면이 가관인데, 남자가 재채기하는 순간 콧구멍을 통해 탈출한다. 만화가는 이 황당한 장면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싶었는지 콧구멍으로 빠져나온 잠수함을 콧물과 코딱지가 잔뜩 묻혀 있는 상태로 묘사했다. 가까스로 탈출에 성공했지만, 박사와 아이들은 모험심과 앎에 대한 욕구가 강했다. 그들은 다시 잠수함을 타고 그 남자의 몸속으로 들어가 과학 수업을 재개한다. 

 

지금까지 내가 요약한 <인체 탐험> 줄거리는 100% 정확하지 않다. <인체 탐험> 줄거리는 나의 뇌가 조그마한 기억 조각들을 열심히 주워 모아 제멋대로 편집하고 각색한 것이다. 사람이 잠수함을 타고 몸 내부 곳곳을 여행하는 설정은 현실에서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이상한 일이다. 그러나 이 이상한 일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아주 작아져 버린 잠수함을 나노 기술로 만들 수 있다나노(nano)’는 소인(小人)을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단어다. 만화에 묘사된 소인들이 탄 잠수함은 인간의 몸에 들어가 병균을 퇴치하는 초미세 의료용 나노로봇으로 실현되었다


나노는 말 그대로 아주 작다는 뜻이다. 따라서 나노 세계는 아주 작은 세계를 의미하게 된다. 아주 작은 세계를 이해하려면 제일 먼저 원자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나노 기술은 최소 1mm부터 최대 1,000nm(나노미터) 크기의 원자를 인위적으로 조작해서 일어난 화학 반응을 응용하는 기술이다화학 관련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저자가 쓴 나노 화학나노 기술의 현주소와 미래를 과학 지식과 곁들어서 풀어 쓴 책이다책 제목에 화학이 들어가 있지만, 나노 기술의 학문적 배경에 물리학도 포함된다원자나 분자 같은 미시 물질을 다루는 나노 기술에 양자역학이 적용된다원자는 모든 물질의 기본단위다. 물리학과 화학 모두 눈에 보이지 않는 원자의 실체를 밝혀내고, 이해하는 데 필요한 학문이다.


우리는 나노 세계를 눈으로 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실생활에서 체감할 수 없다. 그래서 아주 작은 세계를 이해하는 일이 우리 삶에 얼마나 이로운지 알지 못한다나노 세계의 물질, 즉 나노입자는 작을수록 좋다. 왜냐하면 나노입자 크기가 작아지면 물질의 특성 자체가 달라지고, 같은 나노입자들끼리 충돌하면서 발생하는 화학 반응 속도가 빨라진다나노 물질들끼리 조합하면서 일어나는 화학 반응을 응용한 나노 기술은 실생활에 유용한 생성물을 효율적으로 만들어낸다. 


하지만 나노 기술의 실현 전망이 그렇게 밝은 것만은 아니다. 현실적인 과제들이 산적하다. 나노 물질의 잠재적인 독성을 검증해야 한다. 그래핀(graphene)은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나노 물질이다. ‘꿈의 신소재라는 수식어가 붙여질 정도로 디스플레이 · 반도체 · 태양전지 · 자동차 등 여러 분야에서 사용된다. 그러나 언론의 장밋빛 전망과 달리 그래핀이 완전한 상용화가 이루어지려면 다소 시간이 걸린다.


과학 커뮤니케이터는 생소하고 어려운 과학 용어나 이론을 과학 비전공자들을 위해 좀 더 쉽게 설명하는 전문가다. 나노 화학의 저자는 화학 전문 커뮤니케이터다. 저자는 자신의 본업을 살려 자신만의 방식으로 과학 상식을 쉽게 설명하려고 한다. 특히 화학 반응의 경로와 촉매를 등산으로 비유해서 설명한 대목(280~282)은 압권이다.


과학 커뮤니케이터가 갖추어야 할 기본 자질은 과학을 쉽게 설명하는 능력이지만, (내가 생각하는) 반드시 있어야 할 자질은 정확한 사실을 전달하는 것이다. 책에 부연 설명이 필요해 보이는 내용들이 있다. 책 내용에 주석으로 단 내 의견 역시 사실과 다르거나 틀릴 수 있다.



* 24~25

 

 오늘날 모든 전자기기를 움직이는 데 필요한 전기(electricity)는 전자의 흐름으로 설명된다. 지금은 화석연료나 태양광, 지열, 조력 등 온갖 원천에서 전기를 얻으려고 발전이 이루어지지만, 전기의 확인과 관찰은 폭풍우 속에서 하늘에 연을 띄워 벼락에서 전기를 포집했다는 벤저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에 의해 처음 이뤄진다. [1]

 


[1] 프랭클린보다 훨씬 먼저 전기의 성질을 체계적으로 연구한 과학자는 윌리엄 길버트(William Gilbert, 1544~1603). 그는 자석을 이용한 실험을 진행하면서 지구가 하나의 거대한 자석이라는 사실을 밝혔다. 1600년에 발표된 길버트의 저서 자석에 관하여에서 호박(琥珀)으로 마찰을 일으켜서 생기는 정전기에 관한 내용이 나온다. 길버트는 정전기가 호박에서 나온 힘이라 생각했고, 호박을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유래된 ‘electricity’로 명명했다. 자석에 관하여자석 이야기(서해문집, 1995년)’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되었으나 절판되었다.




* 163


 현재 통용되는 원자의 모형을 만들어내고 양자역학의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던 에르빈 슈뢰딩거[2][생략]

 


[2] 양자역학을 언급할 때 반드시 언급되는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사실 닐스 보어(Niels Bohr)코펜하겐 해석에서 드러난 양자역학의 허점을 비판하기 위해 슈뢰딩거가 고안한 사고실험이다. 하지만 그의 의도와 다르게 죽어 있고 동시에 살아 있는 슈뢰딩거의 고양이양자역학에서만 가능한 중첩 상태를 설명하기 위한 사고실험으로 알려지게 된다고양이 한 마리가 유명해지는 바람에 생전에 양자역학을 받아들이지 않은 슈뢰딩거는 오늘날 양자역학 발전에 기여한 과학자로도 평가받는다. 슈뢰딩거 본인은 달갑지 않은 반응을 보이겠지만.




* 181

 

 1962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에 대해 약간의 논란이 남아 있으나[3] 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밝혀냈던 프랜시스 크릭은 사실 이보다 더 거대한 발견을 이룩했다.

 


[3] 노벨상 수상과 관련한 약간의 논란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궁금하다. 아마도 논란이 로잘린드 프랭클린(Rosalind Franklin)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로잘린드 프랭클린은 X선을 이용해 DNA 이중나선 구조를 밝히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녀의 연구 자료를 참고한 왓슨과 크릭이 이중나선 구조 연구 결과를 정리한 논문을 먼저 발표하는 바람에 그녀의 업적이 묻혀버렸다. 브렌다 매독스의 로잘린드 프랭클린과 DNA(양문, 2004, 절판) 하워드 마르켈의 생명의 비밀: 차별과 욕망에 파묻힌 진실(늘봄, 2023)은 로잘린드 프랭클린의 생애와 잘 알려지지 않은 과학자로서의 업적을 소개한 책이다.




* 190

 

 영화 속 장면처럼 뜨거운 열을 폭발시켜 모든 것을 태우는 광열 치료나 피라냐 떼 같은 라디칼을 풀어 주위의 모든 걸 먹어버리도록 만드는[4] 광역학 치료가 탄생했다.



[4] 공포영화에 묘사된 피라냐는 자신 주변에 있는 모든 살아있는 것들을 공격하고, 날카로운 이빨로 뜯어먹는 난폭한 물고기다. 하지만 피라냐의 공격성과 먹성이 사실과 다르게 과장되어 있다. 피라냐는 죽은 물고기의 살도 먹는다. 피라냐 떼에 갑자기 가까이 다가오지 않는다면 그들이 먼저 공격하는 일은 없다. (참고문헌: 매트 브라운, 개가 보는 세상이 흑백이라고?: 동물 상식 바로잡기, 동녘, 2023, 피라냐가 사람을 물어뜯는다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제 책방 <직립보행>이 있는 삼덕동으로 가는 버스를 타다가 우연히 보도에 있는 공익광고를 발견했다. 광고는 경북 사대 부설초등학교 쪽으로 가는 보도 위에 있다. 가까이 보지 않아서 무슨 광고인지는 잘 모르겠다. 내 눈길이 간 곳은 광고 속의 그림이었다







림을 그린 화가는 렘브란트 반 레인이며 이름 바로 밑에 ‘coffee(커피)’라는 단어가 있다. 아마도 그림 제목일 것이다. ‘coffee’ 옆에 있는 문구는 크기가 작아서 사진상 확인이 어렵다.






























* 크리스토퍼 화이트 렘브란트: 영혼을 비추는 빛의 화가(시공아트, 2011)

* 스테파노 추피 렘브란트: 네덜란드 미술의 거장(마로니에북스, 2008)

* 미하엘 보케뮐 렘브란트 반 레인(마로니에북스, 2006)

* 마리에트 베스테르만 렘브란트(한길아트, 2003)

* [절판] 파스칼 보나푸렘브란트: 빛과 혼의 화가(시공사, 1996)

   



그런데 저 광고를 보자마자 의문이 들었다. 저 그림을 렘브란트가 그렸다고? 렘브란트가 그린 그림치고는 색상이 너무 밝은데‥….” 렘브란트는 빛과 어둠이 대비되는 효과를 활용해서 그림을 그렸다. 그래서 렘브란트의 그림은 전체적으로 어두운 편이다. 그런데 광고에 나온 커피라는 그림에는 렘브란트 그림 특유의 어두운 빛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구글에 ‘Rembrandt coffee(렘브란트 커피)’로 입력해서 검색해봤다. 렘브란트가 그린 그림은 나오지 않고, 미국에 있는 <Rembrandt’s Coffee House>라는 카페 사진만 수두룩이 나온다. 일단 나는 ‘<Coffee>라는 제목의 그림은 렘브란트의 작품이 아니다라는 가설을 세웠다.

















* 아르놀트 하우저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3: 로꼬꼬, 고전주의, 낭만주의(창비, 2016)


* 이일 엮음 와토(서문당, 1989)



 

밝고 화려한 분위기에다가 정원에서 사치스러운 연회를 즐기는 귀족들을 묘사한 그림은 18세기 프랑스에 유행한 로코코(Rococo) 양식에 가깝다. 서양미술사에 자주 언급될 정도로 로코코 미술을 대표하는 가장 유명한 화가는 장 앙투안 와토(Jean-Antoine Watteau)장 오노레 프라고나르(Jean-Honoré Fragonard). 나는 두 번째 가설을 세웠다. <Coffee>를 그린 화가는 로코코 미술의 대가다. 유력한 후보는 와토와 프라고나르다.








이번에 구글 검색창에 ‘Watteau coffee(와토 커피)’를 입력했다. 와토의 작품뿐만 아니라 커피잔 사진도 꽤 많이 나왔다. 사진들을 쭉 훑어보다가 드디어 내가 찾으려고 했던 <Coffee>를 발견했다! <Coffee>를 소개한 글의 제목은 ‘The Age of Watteau, Chardin, and Fragonard: Masterpieces of French Genre Painting previous slide’. 우리말로 번역하면 와토, 샤르댕, 프라고나르의 시대: 프랑스 장르 회화의 걸작이다. 글은 워싱턴 국립 미술관(National Gallery of Art)’ 공식 홈페이지에 있다.

 

<Coffee>의 원제는 ‘A Lady in a Garden Taking Coffee with Some Children’, 1742년에 제작되었다. 그림을 그린 화가는 니콜라 랑크레(Nicolas Lancret). 와토와 동시대에 살았던 랑크레는 와토처럼 화려하게 그리는 솜씨가 있어서 명성을 얻었다고 한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새파랑 2023-05-09 06: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ㅋ cyrus님 대박이네요~! 저런 짧은 순간에 저걸 발견하고 의문을 가지시다니~!!
일단 저 광고를 만드신 분은 잘 확인안하고 만드신게 맞군.

램브란트는 빛과 어둠 잘 기억해 놓겠습니다~!!

cyrus 2023-05-10 22:19   좋아요 1 | URL
이때는 책이 아닌 구글에 의존했어요.. ㅎㅎㅎ

yamoo 2023-05-10 1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서양미술가들 보단 한국미술가들이 더 관심이 갑니다. 몰라서 그렇지 이름 모르는 나름 유명 작가들이 너무 많더라구요. 서양미술가는 대체로 명작을 남긴 화가들이고 대부분 유명화가들이죠. 이젠 서양미술사 책 보단 한국미술가들 책에 더 많은 관심이 가요. 김환기, 장욱진, 하인두..등등..ㅎ

cyrus 2023-05-10 22:22   좋아요 0 | URL
제가 서양미술을 편애해서 우리나라를 물론 동양미술에 대해 모르는 것이 정말 많아요. 알라딘 서점이나 헌책방에서 읽어볼 만한 동양미술 관련 책을 발견하면 일단 구매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책을 사놓고 읽진 않아요... ^^;;
 
양자 역학이란 무엇인가 - 원자부터 우주까지 밝히는 완전한 이론, 개정판
마이클 워커 지음, 조진혁 옮김, 이강영 감수 / 처음북스 / 2023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을 협찬받고 쓴 서평이 아닙니다.





평점

 

1점   ★   F






미국의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먼(Richard Feynman)은 양자역학의 악명 높은 난해함을 냉소적으로 표현했다. 이 세상에 양자역학을 이해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파인먼이 누구인가? 양자전기역학(quantum electro dynamics, QED)을 만든 공로로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과학자다. 그는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다음으로 물리학을 가지고 논[주1] 위대한 과학자로 손꼽힌다. 누군가는 생전에 괴짜다운 면모를 뽐냈던 파인먼 씨가 농담을 잘한다[주2]라고 생각할 것이다.

 

파인먼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이 세상 모든 과학자가 양자역학을 모른다는 뜻이 된다. 하지만 파인먼은 과학자들의 무능함을 비아냥거리려고 그런 말을 한 것이 아니다. 양자역학은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아주 작고 작은 세계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이론이다. 미시적인 양자 세계는 우리의 직관을 완전히 뛰어넘는 공간이다. 그곳에는 우리가 평소에 상식이라고 알고 있는 물리법칙이 전혀 통하지 않는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양자역학을 배워서 익히기는 했지만, 양자 세계를 모르는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게 설명하지 못한다.

 

양자역학이 난해하다고 해서 그냥 모른 채 지나칠 수 없다. 우리는 양자로 이루어진 존재이며 양자 세계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양자역학은 세상을 가장 명확하게 이해하는 데 필요한 이론이다. 양자역학의 실체가 알려지면서 원자로 이루어진 모든 물질의 본질을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양자역학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전에 우선 이 세상이 양자 세계가 아니라고 상상해보자. 양자역학이란 무엇인가》(원제: Quantum Fuzz: The Strange True Makeup of Everything Around Us) 서문은 우리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들다고 여기는 양자 세계의 중요성을 일깨워준다. 원자는 모든 물질을 구성하는 가장 작은 단위다. () 양자 세계 속에 있는 원자는 지금의 원자와 다른 특성과 구조로 되어 있을 것이다. 아니, 원자 자체가 없을 수도 있다. 그러면 비 양자 세계에 우주가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고, 생명체가 탄생하지도 못했다. 우리로선 그저 상상하고 추측할 수밖에 없는 비 양자 세계야말로 양자 세계보다 더 이상하고 기묘하다. 우리는 양자 세계를 살아가고 있음에 감사해야 한다.







양자역학이란 무엇인가2018년에 나온 책의 개정판이다. 입자물리학 관련 도서를 집필했고, 번역했던 이강영 교수가 이 책의 감수를 맡았다. 그러나 이 책은 개정판인 척하는 구판이다. 구판에 있는 오자는 전혀 고쳐지지 않았다. 역자와 감수자는 과학계의 최근 동향과 연구 성과를 반영하지 않았다.



* 21


 이 세상은 양자 세계이지만 수십 년간의 실험과 이론을 통해 비로소 알려졌다. 1900년부터 원소의 화학적 성질, 주기율표, 원자의 크기, 우리의 크기가 현재와 같은 이유, 그리고 당시까지 존재한 인습적이고 고전적인 시각(예를 들면 사과의 낙하와 행성의 궤도를 설명하는 뉴턴 운동의 법칙)에 어긋나는 여러 현상을 설명하는 급진적이고도 새로운 이론이 전개되었다.

 새로운 견해를 대개 양자론이라고 지칭하며, 이러한 견해를 설명하고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계산법으로 통합한 수학적 접근을 양자역학이라 한다.



뉴턴 고전역학(이 책에서는 고전 뉴턴 물리학이라고 표기되어 있다)의 핵심은 운동법칙(1 법칙: 관성의 법칙, 2 법칙: 가속도의 법칙, 3 법칙: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이다. 그런데 이 책에 고전역학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 없다


과학을 이해하는 데도 순서가 있다. 고전역학에 대한 기초 지식 없이 양자역학을 선뜻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양자역학은 뉴턴의 운동법칙 등 고전역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탄생한 이론이다. 고전역학은 원인과 결과가 있는 현상을 설명하는 데 유용하다. 하지만 양자역학은 고전역학과 다르게 확률론에 기반을 두고 있다. 하이젠베르크(Werner Karl Heisenberg)의 불확정성 원리에 따르면 양자의 위치와 운동량은 동시에 측정할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움직이는 양자를 확률적으로만 알 수 있다.




* 46





 러더퍼드는 뉴질랜드의 노동자층 가정에서 열두 명의 아이 중 한 명으로 자라났다. 장학금을 받으며 학업을 이어 나가던 러더퍼드는 1895년 케임브리지에 들어가 톰슨 밑에서 공부를 하게 된다. [중략]

1898년에는 톰슨의 강력한 추천으로 몬트리올의 맥길대학교 교수로 임용된다. 그곳에서 러더퍼드는 방사성 원소를 연구했다. 1901년 동료 교수인 프레더릭 소디와 함께, 하나의 방사능 원소는 (나중에 헬륨 핵으로 확인된) 알파 입자를 방사하며 다른 원소로 변형될 수 있음을 발견했다(한 원소가 그 방사성의 절반을 잃는 시간을 말하는 반감기라는 용어를 만든 사람이 바로 러더퍼드다). 이 연구로 그는 1908년에 노벨화학상을 수상했고 맨체스터대학교 교수직으로 승격 제안을 받았다. 소디는 2년 뒤 수상했다.


[원문, 41]


 Rutherford was one of twelve children raised in a working-class family in New Zealand. Through a series of scholarships Rutherford had come to Cambridge in 1895 to study under Thomson. [중략]

With Thomson’s high recommendation, he was appointed in 1898 to professor at McGill University in Montreal. There he worked with radioactive elements. In 1901 with fellow professor Frederick Soddy he discovered that one radioactive element could transform into another through the radiation of alpha particles, later recognized as helium nuclei. (It was Rutherford who coined the term half-life to describe the time over which an element would lose half of its radioactive.) For this work he would in 1908 be recognized with a Novel Prize in Chemistry and the offer of a promotion to professorship at the University of Manchester. Soddy would get the Prize two years later.

 


프레더릭 소디(Frederick Soddy) ‘2년 뒤 수상했다(Soddy would get the Prize two years later)라는 내용은 오류다. 소디가 노벨화학상을 받은 연도는 1921이다. 1910년 노벨화학상 수상자는 독일의 오토 발라흐(Otto Wallach)저자는 소디의 노벨상 수상 연도를 착각했고, 역자와 감수자는 저자의 오류를 확인하지 못했다.




* 233





 블랙홀은 이론에서 먼저 발견되었다. 별과 같이 질량이 어마어마한 물체가 자신의 중력 때문에 어떻게 되는지 알아보려고 러시아의 천문학자 카를 슈바르츠실트(Karl Schwarzschild)1916년에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을 적용해 질량이 충분히 크다면 크기가 무한정 쪼그라들고 밀도는 점점 더 높아지다가 결국 시공간의 특이점에 다다르게 된다고 계산했다.

 


슈바르츠실트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태어났다.




* 235~236


 블랙홀이라 생각되는 것은 발견했으나 사실 블랙홀이 주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발견한 것뿐이다. ‘블랙(, 어떤 빛이나 물질도 발산, 반사하지 않음)’이 되려면 물체가 보여서는 안 된다. 이들이 함유하는 에너지와 물질의 질량과 주변 환경에 미치는 영향으로 이들을 찾아낸다. [중략]

 블랙홀이 있다는 가장 강렬한 시각적인 증거는 아마도 근처의 별에서 빼앗아 삼키거나 블랙홀 궤도에 흡수되는 물질에서 발산되는 빛일 것이다.



2019410일에 세계 최초로 촬영한 M87* 블랙홀(처녀자리 A 은하 중심에 있는 블랙홀) 사진이 공개되었다. 사진에 나온 검은 부분은 사건의 지평선이다. 블랙홀에 빨려 들어간 빛은 빠져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블랙홀의 별칭은 포웨이(Pōwehi)’






M87* 블랙홀 사진 (2019년)







궁수자리 A* 블랙홀 사진 (2022년)




2022년에 우리은하 중심에 있는 초대질량 블랙홀(Sgr A*, 궁수자리 A*)을 촬영하는 데 성공했다. 이 책이 출간된 지 2년 후에 블랙홀의 실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각적인 증거들이 나왔다(참고 도서: 하이노 팔케 & 외르크 뢰머 공저, 김용기 & 정경숙 공역, 이것이 최초의 블랙홀 사진입니다: 천문학의 역사와 블랙홀 관측 여정, 에코리브르, 2023년)




* 340





 이러한 굽은 구조는 70년 전 노벨상 수상자인 화학자 라이너스 폴링(Linus Pauling)이 화학적 결합의 본성에 대한 그의 연구에서 처음으로 설명했다.

 


양자역학이란 무엇인가원서가 출간된 해는 2017이다. 이 책이 나온 연도를 기준으로 70년 전은 1947이다. 라이너스 폴링이 노벨화학상을 받은 해는 1954이다. 따라서 사실에 맞게 고쳐 쓰면 ‘63년 전이다. 1947년 노벨화학상 수상자는 로버트 로빈슨(Robert Robinson)이다.




* 361





 초전도성을 흥미롭게 상업적으로 이용한 부문은 자기부상열차다. 영구자석과 전자기 기술을 사용한 열차를 개발해 왔고, 일부는 이미 가동 중이다.

 일본은 유명한 신칸센(탄환 열차)의 후임으로 세계에서 가장 진보된 초전도 자기부상열차를 개발 중이다. 야마나시 시험 철로에 있는 자기부상열차 한 대가 그림 19.1에 보인다. 또 다른 자기부상열차는 시속 361마일(581km/h)로 달리는 고속열차로서 (2003년에) 세계기록을 세웠다.



2015 421일에 일본의 야마나시 시험 철로를 주행한 L0 시리즈(L0 Series)의 속도가 시속 375마일(603km/h)에 도달함으로써 2003년의 기록을 경신했다. 그림 19.1의 설명문에 있는 ‘2103‘2013의 오자.




* 28





아이작 뉴튼 아이작 뉴턴



83, 154에도 뉴튼이 나온다.





* 142





매리 메리(Mary)





* 157





베자민 슈마허 베냐민(벤저민, Benjamin) 슈마허





* 185





보스톤 보스턴(Boston)





* 199





카톨릭 가톨릭






* 230





 중심에서 갑자기 추가로 융합되aus 열이 나 둘러싸고 있는 수소 껍질까지 융합한다.



융합되면의 오자. 컴퓨터 자판의 한글 자모 은 알파벳 A, U, S에 해당한다. 영문으로 바꾸지 않은 상태에서 을 입력하면 ‘aus’가 나온다.





* 281





이와 관련해선 그린의 멀티 유니버스 읽어보길 다시금 제안한다.





* 346





챨스 찰스(Charles)






[1] 존 그리빈 & 메리 그리빈 공저, 김희봉 옮김, 나는 물리학을 가지고 놀았다: 노벨상 수상자 리처드 파인만의 삶과 과학, 사이언스북스, 2004, 절판

 

[2] 리처드 파인먼, 김희봉 옮김 파인만 씨, 농담도 잘하시네!, 사이언스북스, 2000년, 전 2권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23-05-07 18: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23-05-08 21:23   좋아요 0 | URL
캐런 바라드 때문에 최근에 읽은 게 아니고요.. ㅋㅋㅋㅋ 이 책이 1월에 나왔는데, 그때 이미 다 읽었어요. 서평 쓰기를 미루다가 이제야 쓴 거예요... ^^;;

테오리아 2023-11-28 0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칼 슈바르츠실트는 러시아 사람이 맞습니다. ‘슈바르츠실트 반지름‘으로 유명한데 1차 세계대전에 러시아군으로 징집되어 전선에서 연구한 결과였죠. 그러나, 전선에서 살아남지 못하고 젊은 나이에 전투현장에서 사망했습니다.

cyrus 2023-11-28 09:35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테오리아님.

저는 서평을 쓸 때 외국 인명 이름 옆에 원어명도 함께 씁니다. 카를 슈바르츠실트를 독일어로 표기하면 ‘Karl Schwarzschild’입니다. 슈바르츠실트의 러시아어 이름을 본 적이 없어요. 혹시 러시아어로 어떻게 쓰는지 알려주실 수 있어요?

위키피디아 영문판
‘칼 슈바르츠실트’ 항목(https://en.wikipedia.org/wiki/Karl_Schwarzschild) 내용 일부를 인용해 보겠습니다. 위키피디아 항목 내용에도 오류가 있을 수 있어요. 이런 내용이 있다는 것만 참고하세요. 영어 공부를 안 한 지 오래돼서 인용문 번역이 어색하거나 오역이 있을 거예요.

Karl Schwarzschild was born on 9 October 1873 in Frankfurt on Main, the eldest of six boys and one girl, to Jewish parents.

칼 슈바르츠실트는 1873년 10월 9일 프랑크푸르트 마인에서 유대인 부모의 9남 10녀 중 맏이로 태어났다.

At the outbreak of World War I in 1914 Schwarzschild volunteered for service in the German army, despite being over 40 years old. He served on both the western and eastern fronts, specifically helping with ballistic calculations and rising to the rank of second lieutenant in the artillery.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슈바르츠실트는 마흔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독일군에 자원입대했다. 그는 서부 전선과 동부 전선에서 복무했으며, 특히 탄도 계산하는 임무를 인정받아 포병 중위로 진급했다.

While serving on the front in Russia in 1915, he began to suffer from pemphigus, a rare and painful autoimmune skin-disease.

러시아 전선에서 복무 중이던 1915년에 그는 희소병(희귀병)인 자가면역성 피부병인 천포창에 걸려 통증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In March 1916 Schwarzschild left military service because of his illness and returned to Göttingen.

1916년 11월, 슈바르츠실트는 병으로 인해 군 복무를 그만두고 괴팅겐으로 돌아왔다.

슈바르츠실트는 물리학이나 상대성이론을 주제로 한 책에 꼭 한 번은 언급되는 과학자입니다. 하지만 그를 비중 있게 다룬 책은 전무합니다. 국내 출간된 책 중에 유일하게도 《슈바르츠실트가 들려주는 블랙홀 이야기》(송은영, 자음과모음, 2010년)가 있습니다. 이 책에 슈바르츠실트의 생애에 관한 내용이 있어요. 인용해보겠습니다.

나, 슈바르츠실트는 독일의 천체 물리학자입니다. 나는 얼마든지 병역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내가 쌓은 학문적인 업적이 화려했거든요. 그러나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조국을 사랑하는 사람이었으니까요.
하지만 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 러시아에 머무는 동안 나는 고치기 어려운 피부병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피부에 물집이 생겼다가 터지면서 출혈과 통증을 유발하는 질병이었지요. 병은 점점 악화되었고, 나는 병가 처리되어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다 결국 두 달 만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지요. 나는 요절한 천재 학자인 셈입니다. (《슈바르츠실트가 들려주는 블랙홀 이야기》 <첫 번째 수업-블랙홀의 탄생> 중에서)

답글이 길어졌군요. 슈바르츠실트가 독일인이라는 제 견해의 근거들을 제시했습니다. 테오리아님이 제 답글을 확인하셨으면 슈바르츠실트가 러시아 사람인 근거를 알려주세요. 그 근거가 타당하면 인정하겠습니다. 그러면 ‘슈바르츠실트는 독일인’이라는 제 견해가 틀렸음을 공개 글을 쓰겠습니다. 블로그 글에 적힌 오류가 고쳐지지 않은 채 남아 있으면 다른 사람들이 보면 안 되잖습니까? 답변 기다리겠습니다. 독감 조심하시고, 좋은 하루 보내세요. ^^
 
갈대 속의 영원 - 저항하고 꿈꾸고 연결하는 발명품, 책의 모험
이레네 바예호 지음, 이경민 옮김 / 반비 / 2023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평점


5점  ★★★★★  A+









이 생명 이제 저물어요. 언제까지 그대를 생각해요.

노을 진 구름과 언덕으로 나를 데려가 줘요.

나의 별들도 가을로 사라져. 그대 날 위해 울지 말아요.

내가 눈감고 바람이 되면 그대의 별들도 띄울게.

 

- 이문세 5집 수록곡 <시를 위한 >(1988) 중에서 -





책은 물건이 아니다. 책은 생명 그 자체다. 최초의 책은 미생물들의 보금자리인 흙으로 빚어져서 만들어졌다. 흙을 비옥하게 만들어주는 미생물들은 책의 일부가 되었다. 책은 이 세상의 모든 지식과 이야기를 활짝 피우게 하는 토양이다인류는 기름진 책을 펜으로 경작(culture)했고, 책 위에서 자란 교양(culture)을 먹으면서 자라왔다고대 이집트인들은 갈대로 책을 만들었다. 우리는 그 갈대를 파피루스(papyrus)’라고 부른다.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이집트 파라오의 딸은 파피루스 밭에 버려진 갓난아기를 건져낸다. 공주는 그 아기를 아들로 삼아 모세(Moses)’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그녀는 모세의 목숨만 건지지 않았다. 갓난아기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끄는 위대한 지도자가 되기까지 만들어지게 될 한 편의 이야기까지도 건져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인간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하지만 이름이 영원히 기억되려면 우선 그 이름을 빛나게 해주는 이야기가 남아 있어야 한다. 북간도에 있는 어머니를 그리워하던 청년 윤동주는 가을 밤하늘을 가득 채운 별을 헤면서 여러 사람의 이름을 부른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 벌써 아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 그리고 그가 사랑한 시인들의 이름까지. 동주가 언급한 소중한 사람들은 너무나도 멀리 있다. 그렇지만 이네들의 이야기는 동주의 가슴 가까이에 있다. 불행하게도 동주는 조국의 광복을 보지 못한 채 일찍 눈 감았고 바람이 되었다. 그가 원고지에 띄운 평범한 사람들의 이름과 이야기는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되었다.


갈대 속의 영원책을 애지중지해 온 사람들의 열정과 노력을 기리는 책이다. 과거에 만들어진 책들은 아주 연약했고 수명이 짧은 편이었다. 자유로운 독서를 허용하지 않는 권력자에 의해 파손되거나 망각의 시간에 흠뻑 젖어버린 책들은 지구상에 남아 있지 않다. 완전히 사라져버린 책들은 제목만 전해질 뿐이다. 책은 죽어서 제목만 남긴다. 다행히 운이 좋으면 내용 일부만 살아남는다. 책을 사랑한 사람들은 단순히 책만 읽으면서 시간을 보내는 독자로 살지 않았다. 책을 보존하는 보호자를 자처했다. 그들은 책이 사라지면 그 속에 있는 지식과 이야기도 같이 사라진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이집트의 파라오 프톨레마이오스 3(Ptolemaeos III)는 책을 매우 좋아했다. 그는 세상에 있는 모든 책을 가지고 싶어 했다. 왕은 자신이 모은 책들을 보관할 수 있는 거대한 건물을 세웠다. 시간이 지나면서 왕의 개인 서재는 도서관이 되었다. 하지만 튼튼하게 도서관을 지었어도 연약한 책들을 완벽하게 보호하지 못한다. 도서관은 전쟁의 소용돌이 앞에 속절없이 무너졌다. 책을 사랑하지 않은 권력자는 도서관을 파괴하거나 폐허가 된 도서관을 재건할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의 허점을 적나라하게 공개한 책을 두려워한다. 용감한 독자는 책을 학살하는 권력자의 횡포에 맞서 싸운다. 책을 경작할 때 사용된 펜은 권력에 저항하는 무기가 된다.


알렉산드로스(Alexandros)는 트로이전쟁의 영웅 아킬레우스(Achilles)가 나오는 호메로스(Homer)일리아스를 가장 좋아했다. 이 한 권의 책에 푹 빠져버린 왕은 아킬레우스처럼 영웅담의 주인공이 되길 원했다. 그의 야망은 한 권의 위대한 책이 되는 것이었다책은 유한하고 불완전한 인류를 영원히 기억되고 완벽한 존재로 다시 태어나게 해준다. 책 덕분에 세상을 살다가 떠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무덤으로 들어가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다.


하지만 살아있는 모든 이야기가 다 좋을 순 없다. 책은 우리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해로운 이야기를 걸러내지 못한다. 부당한 권위를 두 눈 똑바로 보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지키는 책은 영원히 덮을 수 없다. 오히려 최악의 세상 한가운데에 펼쳐져 힘차게 펄럭거린다. 반면에 진실을 짓밟고 자유를 억압하는 자들의 이야기는 책이라고 할 수 없다. 그것은 종이책이 아니다. 못된 권력자와 불한당 앞에서 딸랑거리는 요란한 종(bell/servant)이다.


우리의 몸과 인생은 한 권의 책이다. 이제 우리는 자신만의 이야기를 책으로 만들 수 있으며 한 편의 글로 기록한다. 내 삶을 기록해야 기억할 수 있다. 그러려면 나 자신을 소중히 여기고, 사랑해야 한다. 갈대 속의 영원은 책을 사랑한 사람들을 잊지 않은 책들, 만인의 사랑을 받는 책이 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 cyrus의 주석



* 25

 

 세상을 지배하려는 순간이 도래할 즈음, 마르쿠스 안토니우스는 커다란 선물로 클레오파트라를 현혹하고자 했다. 그는 금이나 보석이나 향연에는 클레오파트라가 눈 깜짝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런 것들이야 매일 헤프게 썼으니 말이다. 한번은 술 취한 새벽, 도발적인 표정을 지으며 엄청난 크기의 진주를 식초에 녹여 마셔버린 적도 있었다.[주1] 그래서 그는 클레오파트라가 지루한 표정으로 무시하지 않을 만한 선물을 선택했다. 도서관에 비치할 20만 권의 책을 그녀의 발아래 가져다 놓은 것이다.

 


[주1] 클레오파트라가 자신의 진주 귀걸이를 식초에 녹여 마셨다는 일화는 과장된 전설이다. 식초에 든 진주는 녹긴 하지만, 순식간에 녹지 않는다. 진주가 녹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전설이 사실이라면 클레오파트라는 완전히 녹지 않은 진주를 삼켜야 한다. (참고: KISTI의 과학향기 칼럼, 클레오파트라, 진주 숨은 비밀?, 200578일 작성)






* 415



 

 고대의 두루마리가 교체되면서 우리는 시, 연대기, 모험, 허구, 사상의 보물을 영원히 잃어버렸다. 수 세기 동안 부주의와 망각은 검열이나 광기로 인한 파괴보다 훨씬 많은 책을 파괴해갔다. 그러나 우리는 말의 유산을 구하기 위한 큰 노력을 알고 있다. (얼마나 많았는지 알 수 없는) 도서관은 소장한 자료를 꼼꼼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획 하나하나, 문장 하나하나, 하나하[2] 모두 복사하는 참을성 있는 작업에 착수했다.


[2] 하나하나의 오자. 책 한 권을 꼼꼼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문장 하나하나 읽는 참을성이 있어야 오자 한 개 정도 찾을 수 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레삭매냐 2023-04-16 17: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영원한 서사의 꿈이야말로
모든 닝겡들이 희망사항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아 그리고 보니 이스칸다르
는 자신의 위대한 페르시아
원정을 시로 표현해줄 호메
로스가 같은 이가 없음을
레알 한탄했다는 믿거나 말
거나 이야기가 있다고 합니다.

stella.K 2023-04-16 19: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멋진 책 같다.
그런데 나 자신을 사랑하려면
일기도 써야한다고 생각해. ㅎㅎ
암튼 너의 리뷰도 멋지고
책도 멋질 것 같다. 책 좋아하는 사람이면 꼭 읽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