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ene #1  먹고 마시고 섹스하는 거인들 이야기

 

 

 

 

 

 

 

 

 

 

 

 

 

 

 

 

프랑수아 라블레의 소설 『가르강튀아, 팡타그뤼엘』은 먹고 마시고 섹스하고 화장실 가는 것 외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는 거인의 이야기다. 주인공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은 자신이 얼마나 많이 먹을 수 있는지 자랑하고, 배변 후 뒤를 닦는 수십 가지 과정을 설명하기도 한다. 팡타그뤼엘에게 젖을 먹이기 위해 암소 1만7913마리가 징발됐다. 거인 가르강튀아와 그의 아들 팡타그뤼엘의 모험 이야기는 원래 프랑스의 민담에서 유래한다. 두 거인은 낯선 나라들을 여행하면서 가는 곳 마다 비축된 식량들을 모조리 먹어치우면서 환상적인 모험을 펼친다.

 

라블레의 작품은 지금도 고전도서 목록에 포함될 정도로 서양문학사에 절대로 빠지지 않는다. 라블레에 생소한 독자는  『가르강튀아, 팡타그뤼엘』을 한 권의 책을 일컫는 제목이라고 오해하기 쉽다. 사실은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 두 작품을 한 권으로 묶은 것이다. 통상적으로 라블레를 언급할 때 이 두 작품을 한 권의 제목처럼 부른다. 『팡타그뤼엘』 이 1532년에 발표되었고, 1534년(혹은 1535년이라는 설도 있음)에 속편격으로 『가르강튀아』가 나왔다. 라블레가 『가르강튀아』『팡타그뤼엘』을 집필했을 당시에 작가 미상의 대중소설 『가르강튀아 연대기』가 큰 인기를 끌었다. 프랑스 각지에 떠돌면서 유행하던 일종의 구전소설을 라블레는 『가르강튀아, 팡타그뤼엘』로 새롭게 재구성했다. 거인족 이야기 덕분에 라블레는 무명 의사에서 일약 인기 작가로 급부상했다. 

 

국내에 유일한 완역본은 대산세계문학총서 35번으로 나온 ‘문학과 지성사’ 판이다. 사실 이 책이 번역되기 전까지만 해도 『가르강튀아, 팡타그뤼엘』은 서양문학사 한 페이지에 적힌 작품명에 불과했다. 유럽에서는 이미 고전의 반열에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 번역되어 소개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1970년대 을유문화사에서 세계문학전집에 출간된 적이 있었으나 절판되었고, 2004년에 문학과 지성사 세계문학전집 작품으로 나오기 전까지 재번역이 되지 않았다.

 

 

 

 Scene #2  신에서 인간으로    

 

사실 라블레의 작품을 편안한 마음(?)으로 읽기가 쉽지 않다. 역사적 배경 없이 읽으면 작품의 매력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서울대학교가 선정한 필독고전이라고 해서 무턱대고 읽었다간 낭패를 볼 수 있다. 라블레를 읽기 위해서는 먼저 프랑스 르네상스 문학과 작가의 생애를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여기서 ‘르네상스’라 하면 우리는 가장 먼저 이탈리아 르네상스가 떠오른다. 일반적으로 르네상스는 인간이 가진 능력을 잘 발휘할 수 있는 시기였다. 그래서 신이 아닌 인간이 문화의 중심이 될 수 있었다. 가톨릭 세력이 지배하던 중세에는 감히 표현할 수 없었던 인간의 아름다움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다시 살아난 인간 중심의 르네상스 문화는 진원지인 이탈리아에서 시작해서 독일, 프랑스, 북유럽 등지에서도 전파되었다.

 

그러나 르네상스라고 해서 다 똑같은 건 아니다. 지역마다 유행하는 르네상스에도 추구하는 정신이나 표현 양식에서도 약간의 차이가 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는 현실에 대한 자각이 고대의 재인식에서 시작하였다면, 북유럽 르네상스는 이탈리아처럼 고대 문화에 관심을 가지기보다는 자기 주변의 생활에 대한 관찰로 출발한다. 르네상스가 가톨릭 중심의 중세를 한 단계 뛰어넘은 시기였고, 경제 성장에 힘입어 성장한 메디치 가 덕분에 예술가들이 든든한 후원을 받을 수 있었지만 여전히 교황의 힘은 막강했다. 이때까지도 종교화는 르네상스 화가들이 즐겨 그렸으며 화가들이 먹고 살기 위해서는 교회의 후원도 무시할 수 없었다. 반면 북유럽은 구교로 대표되는 가톨릭과 신교인 칼뱅파 사이에서 종교적 갈등으로 심화되고 있었고, 거기에 독일의 마르틴 루터도 가톨릭을 정면으로 비난하고 나서기 시작했다. 칼뱅과 루터로 대표되는 신교는 인간에 대한 새로운 확신 속에 교황의 권위와 성직의 위계를 무너뜨리는 새로운 신앙을 추구했다.

 

이러한 종교 갈등은 종교 개혁으로 이어지게 된다. 종교 개혁은 유럽에 피바람이 불 정도로 격렬했고 유럽 지도를 달라지게 만들 정도로 르네상스 다음으로 이어진 큰 역사적 사건이었다. 그리고 예술가들의 마음 또한 달라지게 할 정도로 문화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제는 신을 바라보고 추앙했던 종교화가 아닌 새롭게 자신의 세력을 넓혀나가는 신흥 상인 또는 민중의 취향을 반영한 예술로 변화를 맞는다.

 

라블레가 활동했던 프랑스도 새로운 문화의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그 당시 프랑스는 프랑수아 1세가 신교도를 탄압하고 있었다. 이런 혼란한 시기 속에 엄격하고 보수적인 교도의 수도사였던 라블레는 위마니슴(humanisme, 인간중심주의)에 심취하고 있었다.

 

중세적 금욕과 규율에 맞추는 삶에 진저리를 치고 있던 민중들은 신이 나오는 성스러운 이야기보다 인간의 정신을 지향하는 이야기를 선호했다. 그래서 『가르강튀아 연대기』와 같은 대중소설이 유행했고, 현란한 탐닉과 방종, 그리고 이단에 가까운 그로테스크한 문화에 열광했다. 라블레의 『가르강튀아, 팡타그뤼엘』은 그런 민중의 취향을 정확히 반영한 소설이다.

 

 

 

 Scene #3  팡타그뤼엘리슴으로 충만한 책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 거인들은 먹고, 마시고, 섹스하는 데 열중하는 쾌락주의자에 가깝다. 금욕을 강조하는 가톨릭 사상에 위배되는 행동이다. 그뿐만 아니다. 도덕적이면서도 종교적 교화가 있어야 할 내용에 음담패설이 가득하다. 거인들은 일상적 현실이 전혀 불가능해 보이는 환상 속에 놓여 있고 거칠고 천한 우스개 농담을 인문정신에 입각한 교양을 드러내는 행동처럼 생각한다. 이런 소설을 민중들이 킥킥 웃으면서 읽고 있으니 가톨릭 입장에서는 당황스럽고 분노가 치밀 수밖에 없다. 일단 소설 내용이 가톨릭 사상에 맞지 않고, 외설스럽다. 게다가 가톨릭을 해학적으로 비판하고 풍자한다. 그것도 수도원 출신이라는 사람이 상당히 이단적인 내용의 글을 썼다. 신교와의 갈등이 커져만 가는 상황 속에 민중들이 이런 소설을 즐겨 읽는다면 구교 가톨릭 입장에서는 절대로 가만히 있을 수 없는 형국이었다. 결국, 라블레의 작품은 금서로 지정되었다.

 

훗날 라블레는 교황으로부터 사면을 받았지만 위대한 작품은 여전히 금서의 감옥에 갇혀야 했다. 그래도 그는 운이 좋은 편이다. 이단죄에 몰려 종교 재판을 받은 적이 없다. 출판업자이자 위마니스트였던 라블레의 친구가 이단죄로 화형당할 정도였으니 교회로부터 미움을 받았을 법한데 용케 살아남았다. 그리고 재취업도 성공했다. 사면 이후에 수도원에 복귀해 의사로 다시 일하게 되었다.

 

라블레는 먹고 즐기고, 음란한 거인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중세적 질서와 사고에 정면으로 도전하고자 하였다. 라블레의 ‘그로테스크한 리얼리즘’은 중세적 지배에 대한 휴머니즘적 반역을 주도하는 것이었다. 『가르강튀아』의 시작을 알리는 첫 페이지에 보면 이 작품을 ‘팡타그뤼엘리슴으로 충만한 책’이라고 가리키고 있다. ‘팡타그뤼엘리슴’이란 작중 인물 팡타그뤼엘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말 그대로 팡타그뤼엘의 성격과 가치관을 반영한 사상으로 라블레가 직접 만든 조어다. 좀 더 쉽게 말하면 ‘팡타그뤼엘리슴’은 좋은 음식을 잘 먹고, 육체적 만족을 추구하는 건강한 삶이다. 일반 사람보다 아주 더 많은 양의 음식과 술을 먹어야 직성이 풀리는 거인들의 모습을 보면 지나친 폭식과 탐식에 가깝지만, 그래도 이들의 행동은 종교적 규율에 구애받지 않을 정도로 자유롭다. 그동안 너무 틀에만 박힌 엄격한 종교에 갇혀있던 민중들은 이런 거인들의 삶을 갈망했을 것이다. 그러한 욕망을 해소하기 위한 정신적 탈출구로 라블레의 소설을 읽기 시작한 것이다. 

 

 

 

 Scene #4  라블레와 브뢰헬  

 

 

 

 

 

 

 

 

 

 

종교를 풍자하고, 해학이 넘치는 라블레의 작품은 피터르 브뢰헬의 그림과 비교하면 상당한 유사점이 발견된다. 라블레와 브뢰헐. 이 두 사람은 공통적으로 종교 갈등이 극심했던 시기에 태어났고, 각자 작가와 화가로 활동했다. 브뢰헬도 신교를 옹호했는데 엄격한 분위기의 기독교 종교화 대신 민중의 삶을 담은 해학적인 그림을 그렸다. 라블레는 소설에서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 전해 내려오는 속담이나 그리스 비극 작가의 작품 속에 나오는 문장들을 인용한다. 그리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비틀어 표현함으로써 기독교를 우스꽝스럽게 비판한다. 작품 속 인물들은 말 한 마디를 속담으로 인용해서 표현하는데 당시 유행하던 인문주의적 분위기를 반영하는 동시에 현실과 동떨어진 채 학문에 집착하는 현학적인 당대 지식인들을 풍자하고 있다.

 

 

 

 

 

피터르 브뢰헬  「플랑드르 속담」  1559년

 

 

라블레가 속담을 세상을 풍자하는 언어적 도구였다면, 브뢰헬은 회화적 도구였다. 브뢰헬도 속담을 인용한 그림을 그렸는데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플랑드르 속담」이다. 인간의 어리석음과 기만을 꼬집는 총 85가지 이상의 속담들이 하나의 시골마을에서 벌어지는 일상 풍경처럼 표현했다. 이 그림을 자세히 보면, 속담을 표현하는 군상의 모습이 정상적인 행동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우스꽝스럽다.

 

라블레의 소설과 브뢰헬의 그림에 관한 또 다른 공통점은 바로 ‘놀이’다. 『가르강튀아』 제22장은 가르강튀아가 즐겨하는 놀이가 목록 형태로 열거되는 내용이다. 가르강튀아에게 ‘놀이’는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유희적 행위이다. 책에서 언급되는 놀이 종류만 해도 무려 217개나 된다. 페이지만 해도 10장에 이른다. 지금도 일부 놀이는 어떤 형식으로 진행되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오랜 옛날부터 전해 내려온 민속놀이로 알려져 있다. 놀이 종류 목록의 일부를 소개해본다.

 

 

 

 

 

피터르 브뢰헬  「아이들의 놀이」  1560년

 

 

네 장 플러시, 다른 무늬 카드 모으기, 패 따오기, 뺏어먹기, 패 버리기, 1백 점 내기, 피아노, 불쌍한 년 만들기, 불평분자, 용병 도박, 오쟁이를 진 서방, 몰아주기, 타로, 고문하기, 팽이 돌리기, 주사위 놀이, 체스, 목말 타기, 제비뽑기, 패가망신, 구슬치기, 공놀이, 올빼미 소리 내기, 술래잡기, 바보에게 똥가루 던지기, 불에서 쇠 꺼내기, 귀 꼬집기, 잔디 볼링, 똥 던지기, 수도사 놀이, 다시 벌리고 거꾸로 서기, 아홉 개의 손 놀이, 여왕 놀이. (110~119쪽)

 

 

 

브뢰헬은 「아이들의 놀이」라는 그림에서 80여 가지의 놀이 종류를 그렸다. 「아이들의 놀이」에 나오는 아이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영혼이 없는 듯한 모습이다. 놀이를 즐기는 기쁜 표정이라기보다는 놀이 행위에 익숙해져 전혀 기쁘지 않는, 한편으로 지루하게 여기는 것 같다. 브뢰헬의 그림은 지금도 다양한 해석이 나오는데 놀이 행위로도 만족하지 못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묘사한 것으로 보고 있다. 라블레가 가르강튀아의 놀이 목록을 작성한 이유가 지나치게 놀이에 열중하는 자세를 경계하는 교훈적 의미를 드러내기 위한 하나의 문학적 장치일 수도 있다. 즐겁게 노는 것도 좋지만, 학문 수양을 외면한 채 노는데 정신에 빠지는 태도는 ‘건강한 쾌락’을 위한 삶이라고 볼 수 없다. 그것은 ‘중독’에 가깝다.

 

라블레의 작품은 과도한 속담 인용, 과장된 묘사 그리고 프랑스어를 모르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말장난이 주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국내 독자들이 읽어나가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작품 중간에 나오는 암호 같은 시와 난해한 문장 등과 같이 여전히 의미가 불분명한 내용이 수두룩하다. 그리고 국내 독자들을 더욱 불편하게 만드는 단어도 등장하는데 그것이 바로 ‘똥’이다. 거인들은 잘 먹고 잘 마시는 인물이라 배변도 좋은 편이다. 그래서 대화 도중에 똥과 관련된 표현도 능청스럽게 해댄다. 다음 인용한 문장은 똥 누는 사람을 주제로 가르강튀아가 만든 시에 나오는 구절이다.

 

 

똥 누는 자,
설사하는 자,
방귀 뀌는 자,
똥 묻은 자,
빠져나온
똥덩어리를
우리에게
뒤덮는다.
더럽고,
냄새나고,
뚝뚝 떨어지는,
만일 너의
벌어진
모든 구멍을
떠나기 전에 닦지 않으면
성 앙투안의 불길이 너를 태워버리리라!

 

 

(79~80쪽)

 

 

라블레는 작품 속에 비판하고 싶은 대상을 ‘똥’과 연관시키는 문장으로 비꼬아 표현한다. 『팡타그뤼엘』 서문에 ‘똥싸개 비서관’(270쪽)이라는 재미있는 표현이 나오는데 교황 밑에 일하는 비서관을 가리킨다. 그들은 무척 방탕한 생활로 악명 놓았다고 한다. ‘똥싸개 비서관’은 불어로 ‘crotenotair’인데 ‘똥’(crotte)과 ‘와작와작 씹어먹다’(croquer)를 결합시킨 말장난이다. 이처럼 라블레는 똥을 누는 행위를 인물의 무능한 성격을 희화화하는데 사용했다. 이런 상스러운 표현은 허세 넘치고 지위 높으신 가톨릭 교인들의 혈압 올리는데 성공했고, 그들로부터 억압받던 신교도나 민중들은 무척 통쾌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우리 식으로 표현하면 우리가 사회지배층에게 “엿 먹어라!”하고 욕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래도 엿은 달콤해서 먹을 수 있지, 똥은...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겠다. 

 

 

 

 

 

 

 

 

 

 

 

 

 

 

 

 

거인들이 ‘똥’을 부끄럼 없이 언급하는 장면에 대해서 분변증에 속하는 증세로 해석될 수도 있겠다. 분변증은 똥과 배설에 집착하는 정신병이다. 그러나 라블레가 분변증에 속하는 증세가 있을 것이라고 추측, 해석하는 것은 금물이다. 진중권의 표현을 빌리자면 라블레 작품 속에 언급되는 ‘똥’에 관한 표현은 ‘병리적 현상’이 아니라 ‘문학적 현상’에 가깝다고 본다. 엄격하고 부정부패가 심한 가톨릭이 지배했던 사회에 대한 분노와 피로감을 배설하는 카타르시스를 상징할 수도 있다.

 

 

 

 

 

피터르 브뢰헬  「교수대 위의 까치」  1568년

 

 

브뢰헬의 마지막 작품으로 알려진 「교수대 위의 까치」 는 흉흉한 세상 속에서도 저항 정신을 잃지 않는 민중의 건강한 의지가 드러나고 있다. 교수대는 신교도나 지배 세력에 저항하는 민중을 처형하는데 사용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교수대 앞에 있는 마을 사람들은 서로 손 잡고 춤추는데 정신이 없다. 죽음 따위야 두렵지 않다는 의연한 자세를 의미한다. 그들에게 춤은 자신들을 억압하는 세력에 대한 두려움마저도 잊게 만든다.

 

 

 

 

 

춤추는 군중을 기준으로 왼쪽 구석에 살펴보면 음습한 그늘에 한 남자가 웅크린 채 앉아 있다. 남자의 자세만 보더라도 우리는 그가 똥을 누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똥을 누는 남자도 교수대가 두렵지 않다. 오히려 지배세력의 강압적인 태도(교수대)를 우습게 여기고, 우스꽝스러운 방식으로 저항한다. 그것은 바로 교수대 앞에 당당하게 똥을 눈다. “에라이, 똥이나 먹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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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 (단편전집) 카프카 전집 1
프란츠 카프카 지음, 이주동 옮김 / 솔출판사 / 1997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어찌 할 수 없으면 침묵을 지켜야 해요. 누구도 절망 때문에 환자의 상태를 악화시켜서는 안 돼요. 그 때문에 내 서투른 글은 모두 없어져야 해요. 나는 빛이 아니에요. 나는 그저 내 자신의 고통의 근원으로 빠져들 뿐이에요. 나는 막다른 골목이에요." (구스타프 야누흐 『카프카와의 대화』 중에서, 문학과지성사, 341~342쪽)

 

 

 


 Scene #1  멍하니 글을 읽다  

 

작가들마다 그의 이름 뒤에 붙는 꼬리표가 있다. 그러한 꼬리표는 자못 진부할 수도 있으나 그 작가의 세계를 파악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단서가 된다. 프란츠 카프카를 따라다니는 꼬리표를 들춰보면 거기에 적혀있는 단어는 '불안'이다.

 

카프카는 자신이 쓴 글을 분신처럼 여겼다. 누구와도 쉽게 어울리지 못한 서투른 인생처럼 글도 서투르기 짝이 없는 내용으로 생각했다. 좀처럼 남들에게 보여주기를 거부했다. 막스 브로트 다음으로 막역한 벗이었던 구스타프 야누흐가 카프카의 소설을 옹호하면 작가 본인은 떨떠름한 반응을 보였다. 단편을 모은 작품이 막스 브로트가 몰래 출판된 사실을 카프카가 뒤늦게 알았을 때 불쾌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솔직히 카프카의 글은 막다른 골목과 같다. 단편소설은 대체적으로 짧은 분량이나 내용을 한 번 읽고 이해하기 어렵다. 사람들마다 카프카의 글을 이해하는 반응에 차이가 있겠지만, 그의 대표작인 '변신'만 읽고 카프카를 온전히 이해했다고 볼 수 없다. 소설이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특별한 사건 전개가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는 짤막한 글은 낯설다. 어떤 글은 우화 형식을 취한 것도 있지만, 주변 일상을 목격하거나 가끔씩 떠오른 생각과 감정을 그대로 옮겨 놓은 단상에 가까운 것도 있다. 짧다고 쉽게 보면 안 된다. 카프카적인(Kafkaesk) 문장에서 배어나오는 분위기에 독자는 카프카의 의도를 명확히 알 수 없게 만든다. '변신'을 읽었던 느낌과 상당히 차이가 있을 것이다. '멍하니 밖을 내다보다'라는 단상이 있다. 나는 이 글을 그저 멍하니 읽었다. 그것도 여러 번이나.

 

 

 

 

조르조 데 키리코 「거리와 우울의 신비」  1913년

 

지금 급히 다가오는 이 봄날에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오늘 아침 하늘을 잿빛이었다. 그런데 이제 창가에 가보면, 깜짝 놀라서 창문 손잡이에 볼을 기댄다. 아래엔 분명 벌써 지고 있는 태양빛이 주위를 둘러보며 걷고 있는 순진한 소녀의 얼굴을 비추고 있고, 그리고 바로 연이어 그 소녀의 뒤를 따라가고 있는 한 남자의 그림자가 보인다. 그리고 나서 그 남자는 벌써 지나가버렸고, 그 어린아이의 얼굴은 아주 밝다. ('멍하니 밖을 내다보다' 전문, 31쪽)

 

잿빛 하늘이 덮친 봄날에 순진한 소녀를 따라가고 있는 남자의 그림자. 카프카는 창 밖 너머 일상적인 풍경을 그대로 묘사한 걸까? 참으로 기이한 풍경이다. 아주 밝은 표정을 띤 소녀의 뒤를 밟는 남자의 모습은 위협적이다. 일상에 숨겨진 채 언제 우리를 습격할지 모르는 일상의 위험성을 경고한 것일까? 아니면 '남자의 그림자'는 카프카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던 '불안'을 상징한 것일 수도 있다. 공교롭게도 카프카의 묘사는 이듬해 세상에 공개되는 조르조 데 키리코의 그림 「거리와 우울의 신비」를 예언한 것처럼 느껴진다. 열주로 이어진 건물 샛길로 한 소녀가 굴렁쇠를 굴리며 접어든다. 불안함을 고조시키는 노란색 길 끝에는 지팡이를 든 정체불명의 그림자가 비친다. 카프카가 묘사했던 소녀를 뒤쫓는 남자의 그림자와 상당히 유사하다. 이렇듯 카프카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초조함을, 꿈같은 비현실성을 환기시키는 글을 남겼다.

 

그나마 이런 작품은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고 이해하기 쉬운 글이다. 그렇다면 '인디언이 되고 싶은 마음'은 어떤가.

 

진짜 인디언이라면, 달리는 말에 서슴없이 올라타고, 비스듬히 공기를 가르며, 진동하는 땅 위에서 이따금씩 짧게 전율을 느낄 수 있다면, 마침내는 박차도 없는 박차를 내던질 때까지, 마침내는 고삐 없는 말고삐를 내던질 때까지, 그리하여 앞에 보이는 땅이라곤 매끈하게 다듬어진 광야뿐일 때까지, 벌써 말 목덜미도 말머리도 없이. ('인디언이 되고 싶은 마음' 전문, 41쪽)

 

'멍하니 밖을 내다보다'와 '인디언이 되고 싶은 마음'은 1913년에 출판된 <관찰>에 수록되었다. 그 당시 유럽의 독자들은 이런 글을 어떻게 이해했을까? 뜬금없이 카프카는 인디언이 되고 싶어 한다. 폐결핵으로 몸과 마음이 지친 카프카는 호전적 성격에 건강한 체력을 지닌 인디언을 향한 무한한 동경이 있었던 것일까? 그러나 이것은 추측에 가까운 해석이다. 카프카가 인디언을 동경했다는 기록이 없기 때문이다. 구스타프 야누흐가 카프카의 목소리를 기록한 『카프카와의 대화』에 인디언에 관한 카프카의 증언을 찾아볼 수 없다.

 

 


 Scene #2  고독하고 예민한 영혼의 독백    

 

단편과 단상 그리고 우화는 장편소설 집필을 염두하고 쓴 다분히 카프카 개인을 위한 소묘처럼 느껴진다. '법 앞에서'는 『소송』후반부에 인용했고, '화부'는 『실종자(아메리카)』의 1장에 재등장한다. 미완성이나 다름없는 은밀한 소묘를 카프카가 발표를 불편하게 여긴 이유가 글에 대한 자신감이 부족해서만은 아닐 것이다. 자신이 만들어 놓은 막다른 골목의 벽을 조금씩 뚫어서 하나의 거대한 세계를 만들기를 원했을 것이다. 그 세계는 바로 카프카 월드, Kafkaeask, 카프카이스크. 비록 본인은 자신이 쓴 글을 서투른 문장으로 여겼고, 미완성으로 남게 되지만 글쓰기는 고독하고 불행한 삶을 지탱하게 만든 원동력이다. 카프카에게 글쓰기는 병마의 고통과 고독, 불안감을 잊을 수 있는 유일한 안식의 시간이었다. '굴'이라는 단편소설에 나오는 미지의 짐승이 굴을 파고 안락하게 살고 싶은 것처럼 Kafkaeask는 카프카의 문학적 안식처다. 

 

카프카의 글은 해석의 다의성으로 유명하다. 기괴하고 수수께끼 같은 작품으로 난해하다는 평가를 받곤 하는 카프카의 문학 세계는 세기를 달리한 지금도 여전히 끊임없는 분석과 연구의 대상이다. 하지만 함축적 비유로 헝클어진 카프카 언어의 신비한 밀림을 일관되게 관통하는 주제가 있다. 그것이 바로 다름 아닌 '불안'이라는 핵심적 요소이다.

 

카프카는 자신의 글을 기피하는 또 다른 이유로 개인적인 약점이 기록된 글이기에 발표할 생각이 없다고 야누흐에게 고백했다. 그의 소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카프카적', 'Kafkaeask'라는 수식어의 의미를 알고 있어야 한다. Kafkaeask는 한 마디로 정리하면, '고독', '불안', '공포', '좌절'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이런 단어는 카프카의 삶과 무척 연관성이 깊다. 카프카는 모태 고독이다.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고독감을 느껴야 했다. 한 마리의 불행한 유대인 까마귀(그의 이름은 '까마귀'를 의미하기도 함)라고 스스로 생각했다. 그는 평생 실패를 반복했다. 직장생활을 너무나 싫어했지만 평범한 월급쟁이로 생을 마쳤다. 결혼을 원했지만 독신을 벗어나지 못했다. 허약했고 불면증까지 있었다. 가족과도 사이가 나빴고, 특히 ’이기적이고 거만한 사업가’ 아버지를 평생 원망하며 살았다. 아버지가 던진 사과가 등에 박혀 버리는 ’변신’ 속 그레고르는 자신의 모습을 투영시킨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의 글은 섬뜩할 만큼 부정적인, 고독하고 예민한 영혼의 독백처럼 느껴진다.

 

나는 전차 승강장 위에 서 있다. 이 세계에서, 이 도시에서, 나의 가족에게서 나의 처지를 되돌아볼 때 나는 정말 불확실하다. 더군다나 내가 어떤 방향에서든 정당하게 주장할 수 있는 요구에 어떤 것들이 있을지, 나는 임시로라도 말할 수가 없을 것이다. (‘승객’ 중에서, 34쪽)

 

글을 써도 불행한 삶과 지병이 완전히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고독의 그림자가 카프카의 마음을 지배할수록 글은 앞으로 쭉 나갈 수 있는 길이 되지 못한 채 꽉 막힌 벽이 되고 말았다. 미래가 불투명하고 희망의 단서마저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카프카의 절규는 문장으로 이루어진 벽에 부딪혀 공허한 메아리가 될 뿐이다.

 

"모르겠다”하고 나는 소리 없이 부르짖었다. “정말 모르겠다. 만약 아무도 오지 않는다면, 그러면 물론 아무도 안 오는 것이지. 나는 어느 누구에게도 나쁜 짓을 하지 않았고, 아무도 나에게 나쁜 짓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무도 나를 도와주려 하지 않는다. 이 세상의 어느 누구도. (‘산으로의 소풍’ 중에서, 26쪽)

 

또 다른 짧은 글 속에 고독, 불안 앞에서 패배한 카프카의 무기력한 한숨이 들려온다. 

 

“너는 왜 그렇게 한숨을 쉬니?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니? 다신 회복할 수 없는, 어떤 특별한 불행이니? 우리는 정말 그것에서 회복될 수 없겠니? 정말 모든 것이 다 망쳐진 거니?” (‘국도의 아이들’ 중에서, 16쪽)

 

 


 Scene #3  고독과 함께 살다     

 

카프카는 외로운 삶을 스스로 선택했고, 고독과 불행의 쓴맛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그도 때로는 타인과의 관계를 그리워했다. 벽을 뚫을 수 있는 힘만 있었더라면. 하지만 카프카에게는 그런 여력이 남아 있지 않았다. 군중이 지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골목길로 난 창문을 하염없이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독신자로 남는다는 것은 정말 괴로운 일로 생각된다. 저녁때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고 싶을 때에는 나이든 사람으로서 위신을 지켜가며 한데 끼어줄 것을 어렵게 청해야 하고, 몸이 아프게 되면 자신의 침대 한 구석에서 몇 주일씩이라도 텅 빈 방을 바라보아야 하고, 언제나 대부분 앞에 작별을 해야 할 뿐 한 번도 자신의 부인과 나란히 층계를 올라갈 수 없고... ('독신자의 불행' 중에서, 27쪽)

 

고독하게 혼자 살면서도 때로는 어디엔가 관계를 갖고 싶은 자, 하루 시간의 변화나 날씨의 변화, 직업 관계의 변화 또는 그와 같은 것들을 참작해서 그저 매달릴 수 있는 어떤 팔이라도 보고 싶어하는 자는 골목길로 난 창문 없이는 도저히 오래 견디어내지 못할 것이다. ('골목길로 난 창문' 중에서, 40쪽)

 

카프카는 젊은 나이에 '고독'이 만들어 낸 마음의 병 말기 환자였다. 자신이 '고독'이 만들어 낸 극심한 환자라는 것을 잘 알기에 자신의 글을 읽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자신처럼 절망에 패배한 환자의 상태를 더욱 악화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짧은 글을 읽어나가면 카프카를 따라다니던 불안의 그림자가 어느새 우리 곁에 다가오고 있다. 그리고 수수께끼 같은 파편 같은 문장들은 우리는 더욱 당황스럽게 만든다. 카프카 월드에 들어오기 전에 독자는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 정신이 건강하지 못한 사람은 막다른 골목에 헤어 나오지 못한다. 카프카 월드에 갇혀버린 순간, 불안의 그림자가 당신을 급습한다. 계속 쫓아오는 불안의 그림자를 따돌렸다면 이제 자신의 세계에 숨어버린 카프카를 만난다. 카프카를 만난다는 것은 쉽지 않다. 우리가 카프카를 찾을수록, 그는 더 깊숙한 곳으로 숨기 때문이다.  그래도 카프카 월드에 가고 싶다면 구스타프 야누흐의 조언을 귀 담아 들을 것을 권한다. 카프카를 너무나도 잘 아는 그가 기록한 『카프카와의 대화』는 미로 같은 카프카 월드를 탈출하는데 요긴한 실타래가 되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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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P 2014-07-11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카프카는 저도 무척이나 좋아하는 작가에요. ㅎ
카프카에 대해서는 박홍규 교수님이 쓰신 전기가 있어요. 한번 보시면 좋을 듯 싶어요. 우리가 여태 알았던 카프카와는 매우 다른 모습을 제시하거든요.
전 카프카가 낮에는 산재보험처리 공단 같은 곳에서 노동자를 위해서 일을 하고 밤에는 글을 썼다는 사실이 참 마음에 들더라구요. 물론 그의 작품은 저 역시 여러 번 읽어도 이해 안가는 구절도 많고, 특히나 '성' 같은 경우는 '우라질 k'라고 외치며 책을 집어 던진 적도 있었죠. 푸하
뭔 소리인지 모르겠어서 말이죠.
카프타의 소설은 특히나 읽는 이의 자유를 무한하게 확장해 주는 것 같아요.
내가 쓰려고 하는 것은 이것이다.라고 말을 하지 않고 그는 다만 쓰고 우리는 읽고 우리의 입장에서 해석하게 해 주니 말이에요. 그래서 그가 아직도 사람들에게 읽혀지는 것 같아요.
전 카프카가 불안이나 고독의 상징이라고 보지는 않아요. ^^
그의 책은 난해하고 그런 모습들을 보여 주기는 하지만 카프카 그에게는 어떤 현실을 파괴시키고 나가려고 하는 경건함이 보인다고 할까요?
암튼 카프카는 참으로 좋아하는 작가입니다.
이달의 리뷰 되신 거 와방 축하드려요. ㅎ
학교 생활은 재밌으세요. ㅋ 저도 직장 휴직 후 도서관에서 매일 생활 중이에요. 후후후

cyrus 2014-07-12 18:38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루쉰님. 구스타프 야누흐라는 사람이 쓴 <카프카와의 대화>를 읽어보면 카프카라는 사람이 그렇게 병적으로 우울한 사람이 아님을 알 수 있어요. 내면적인 성격이 강하다고 해야 될까요? 그의 대화를 보면 본인이 스스로 고독한 삶을 살고, 글이 발표되기를 원하지 않은 특이한 성격을 인정하더군요. 카프카가 발표한 단편이나 공식적으로 발표하지 않은 글을 읽어보면 카프카의 성격을 단적으로 규정하기가 어려워요. 어떤 글은 정말 우울하고, 난해하고 또 어떤 글은 그것을 극복하려는 의지가 엿보이는 것도 있어요. 그것이 루쉰님이 말씀하시는 현실을 파괴하고 싶은 경건함으로 보일 수도 있어요. 카프카의 글이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게 만드는 특징이 있어서 그만큼 카프카의 삶뿐만 아니라 글이 매력적인 것 같습니다. 저는 요즘 취업 준비하고 있습니다. 올해 졸업했고요, 저도 거의 도서관에서 생활하는데 예전처럼 책 읽을 시간은 많지 않네요. 공부하다가 머리 식힐 때 책을 읽고 있습니다. 날씨가 무척 덥습니다. 여름 건강 조심하세요. 에어컨 바람 너무 맞는 것도 건강에 좋지 않답니다. ^^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 프리모 레비가 인생 최후에 남긴 유서
프리모 레비 지음, 이소영 옮김 / 돌베개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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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1-796] 물에 빠져 죽은 자와 구조 받은 자

 

 

 

 

 

무심한 강물은 하염없이 돌지만 결국은 바다로 흘러가고
거대한 빙하는 표류하면서도 끊임없이 정착을 하려다가
한순간에 미끄러져 어린 생명의 숲들을 지우기도 한다.
바다는 풍요로울수록 더욱 탐욕을 내며 싸우고
태양과 별과 행성들은 언제나처럼 자기궤도를 유지하며
지구별 역시 정교한 우주의 이치대로 돌고 돈다.
하지만,
우리 인간은 아니다.
반란의 씨앗에다 지능까지 높다는 그 멍청한 인간들은
항상 불안하고 탐욕스런 나머지 마구 짓밟고 파괴해왔다.
조만간 울창한 아마존 숲과 삶이 꿈틀거리는 이 세상
그리고 마지막엔 따뜻한 인간들의 가슴까지
모조리 황폐한 사막으로 만들어버릴 것이다.

 

 

(프리모 레비, ‘인생연감’, 『살아남은 자의 아픔』중에서, 123쪽)

 

 

프리모 레비는 제2차 세계대전 말기 아우슈비츠에서 살아 돌아올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인간임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아우슈비츠로 가기 전 레비는 소설을 단 한 줄도 써 본 적 없는 화학자였다. 증언을 하기 위해 문학을 택했다. 수용소에서 살아 돌아와 보통 사람이라면 흔적 없이 몽땅 지워버리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레비는 수용소에서으l 고통을 하나하나 되살려낸다. 그토록 힘겨운 증언을 자진한 이유는 오직 하나다. 인간의 역사에서 그런 끔찍한 일은 자신의 경험으로 끝나야 한다는, 다시는 되풀이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모두에게 알리려는 치열한 사명감에서였다.

 

레비는 수용소를 휘감던 검은 연기처럼, 떨치기 힘든 공포와 절망 속에서 악과 인간의 본질에 대해 쉼 없이 성찰한다. 지옥에서 돌아온 생존자가 기억을 더듬으며 읊조리는 사유의 결이 큰 공감을 불러온다. 그의 글은 의외로 담담하다. 야만적인 학살의 현장을 폭로하고 고발하려는 나치 증언문학과 달리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간명하다. 그래서 울림이 더 크다.

 

극한의 시기에도 인간에 대한 희망의 단서를 찾으려 노력했던 그는 결국 68세에 투신자살로 삶을 마감했다. 자신의 처절한 경험과 사유를 시와 소설 등 다양한 형식의 기록으로 남겼던 그가 따로 남긴 유서는 없었다. 시 ‘인생연감’은 결국 그의 유서가 되고 말았다. 레비의 삶과 사상을 조명한 서경식은 ‘한없이 거듭되어 증식하는 어리석은 행위’ 때문에 그토록 집요하게 탐구하고 알리고자 했던 ‘인간’에 대한 희망을 잃었다고 봤다.

 

전쟁을 경험한 국가들은 ‘종전’을 기념한다. 그러나 레비는 예외였다. 유대 민족의 역사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단어가 디아스포라와 홀로코스트다. 한 곳에 편히 정착하지 못한 채 늘 이방인으로, 떠돌이로 살다가 극우 인종주의에 의해 민족이 말살될 뻔했던 그들의 고달픈 역사를 살펴보면 이 두 단어가 왜 유대 민족의 아픔을 집약하는지 알 수 있다.

 

살인적인 인플레와 경제위기에 직면한 독일은 나치가 정권을 잡자마자 유대인을 희생양으로 삼았다. 나치는 인종우월주의를 조장하며 유대인 소유 기업을 망하게 하고 유대인을 공공기관과 대학 등에서 쫓아내더니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자 그들을 모두 없애기로 한다. 유대인은 수용소로 보내져 집단적으로 학살된다. 그 때 죽은 유대인이 600만 명 정도 가까이 된다고 하니 세상에 다시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유대 민족이 겪은 이런 가슴 아픈 일을 지금 유대 국가 이스라엘이 자행하고 있다. 하마스를 궤멸하겠다며 전투기와 탱크로 가자 지구를 생지옥으로 만들었다. 전쟁에 나섰을 때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겠지만, 어린이를 포함한 민간인이 희생된 것을 보면 그 어떤 이유도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무지막지한 공격을 퍼붓는 이스라엘을 보면, 이들이 가슴 아픈 과거에서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1982년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침공했을 때 레비는 이를 비판하는 성명을 내고 이스라엘의 ‘공격적 내셔널리즘’을 비판한 적이 있었다. 레비는 40년에 걸친 자신의 증언에 대해 절망적으로 회의하게 되었다. 그렇게 역사적 증인의 의무를 갖고 지옥에서 탈출했지만 인간 존재의 위기는 여전했다. 전 세계에서 지탄을 하고 고발을 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뻔뻔스럽게 민간인들을 대낮에 학살하는 이스라엘의 야만적 전쟁 범죄를 가만히 앉아서 지켜보기란 너무 괴로웠을 것이다. 그가 없는 이 세상은 멍청한 인간들이 세상을 마구 짓밟고 파괴하고 있다.

 

“대부분의 경우 해방의 순간은 기쁘지도 홀가분하지도 않았다. 보통은 파괴와 대량학살의 비극적 배경 위로 고통의 종이 울렸다. 다시 인간이 되었음을 느낀 순간, 다시 말해 책임감을 느낀 그 순간에 인간적 고통이 되살아났다.”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중에서, 81~82쪽)

 

‘살아남은 자의 아픔’을 겪었던 무렵, 레비는 다시 한 번 나치 학살의 현장과 희생자들의 기록을 처연하게 되짚어간다. 자살하기 1년 전에 집필된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이다. 레비는 아우슈비츠 해방 이후 세상은 아우슈비츠를 망각해왔다고 말한다. 과거의 죄를 망각해가는 세상의 어두운 미래를 고발한다. 원래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라는 제목은 처녀작 『이것이 인간인가』에 붙이려고 했다. 그러나 편집자의 제안에 의해서 우리가 알고 있는 제목으로 바뀌었다. 대신 책에 포함된 장의 제목이 되었고 다시 한 번 레비의 공식적인 유작의 이름이 되었다.

 

강제수용소 안에서 벌어졌던 현상들을 가해자와 피해자, 가라앉은 자(죽은 자)와 구조된 자(살아남은 자)로 명명했다. 레비는 나치의 폭력성과 죽음의 수용소를 체험한 피해자이지만, 철저한 자기성찰과 비판정신을 통해 자신을 포함한 생존자에게도 비판의 칼날을 들이댄다.

 

수용소는 사라졌지만, 그 안에 있던 세계는 지금도 작동된다. 끔찍한 제도적 폭력에 노출될 때 피해 집단 속 사람들은 한 술 더 떠 동료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폭력에 노출된 수용소 포로는 자신보다 더 취약한 사람을 자신의 권력 아래에 둔다. 룸코프스키의 사례는 인간을 서열화시키는 폭력의 위험성을 보여준다. 룸코프스키는 비열한 방법으로 유대인 포로를 관리하는 게토 위원장에 오른다. 그곳에서 게토의 히틀러가 된다. 룸코프스키는 권력과 위신에 쉽게 현혹되는 인간이다. 레비는 그들을 ‘회색인간’이라고 부른다.

 

“룸코프스키처럼, 우리 역시 권력과 위신에 현혹되어 우리의 본질적인 나약함을 잊어버린다. 우리 모두 게토 안에 있다는 것을, 게토 주위엔 담벼락이 둘려 있고 그 밖에는 죽음의 주인들이 있으며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기차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잊어버린다. 그렇게 우리는 자발적이든 아니든 간에 권력과 타협하게 되는 것이다.” (80쪽)

 

레비가 인용한 셰익스피어의 희극에 나오는 대사처럼 우리는 ‘일시적인 권력의 옷’을 걸치는 순간, ‘바보 같은 광대짓’을 일삼는 ‘회색인간’이 될 수 있다. 권력을 얻거나 유지하기 위해서라면 어리석은 짓을 하는 것이 바로 인간이니까. 독일의 패망이 다가오는 시점에서도 전쟁을 일으킨 권력자들은 죽어가는 사악한 한 줌의 권력을 나눠가지려고 서로 총을 겨누웠다. 그들은 이미 권력에 눈이 멀어 유대인을 말살시키는 최악의 범죄를 일으켰다.

 

여기서 불편한 진실은 아우슈비츠의 생존자들 중에 다수가 ‘바보 같은 광대짓’을 한 비열한 권력자가 있었다는 점이다. 힘없는 약자는 수용소 안에서 비극적인 죽음을 맞았고, 대신 비겁한 이기주의자들은 살아남은 것이다. 수용소로부터의 해방은 자유의 기쁨뿐 아니라 치욕과 죄책감까지 안겼다. 이것이 ‘구조된 자’가 겪는 아픔이자 그들의 마음을 무겁게 짓눌리는 고통으로 형성된다.

 

가해자들의 변명과 합리화. ‘나는 몰랐다’, ‘명령에 따랐을 뿐이다’ 세월이 흐를수록 기억의 표류 속에 잔인한 역사는 점점 희미해진다. 역사에 눈이 먼 세상에 대한 열패감이 레비가  자살을 선택하게 만들도록 한 것이다. 마지막이 될 유작 그리고 인간의 어리석음을 경고한 ‘인생연감’을 쓰는 내내 레비는 자신을 포함한 생존자의 목소리를 외면하는 생각에 괴로웠을 것이다. "우리가 이야기한다 하더라도 우리를 믿어주지 않을 거야."(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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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 아니면 언제? - 투신자살한 아우슈비츠 생존작가 프리모 레비의 자전적 장편소설
프리모 레비 지음, 김종돈 옮김 / 노마드북스 / 201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1001-751] 지금이 아니면 언제?

 

 

 

“좋든 싫든 오늘 이 세계는 히틀러의 작품이다.” 독일의 언론인 제바스티안 하프너의 『히틀러에 붙이는 주석』에서 나오는 구절이다. 나치스, 하켄 크로이츠, 제2차 세계대전, 아우슈비츠 수용소, 반유대주의. 화가가 되고 싶었던 히틀러는 그림이 아니라 독일의 총통이 되어 ‘제3제국’이라는 거대한 작품을 만들었다. 히틀러는 죽고 없지만, 그가 만들었던 작품은 폐기처분이 되지 않았다. 우리는 여전히 히틀러의 작품 속에서 살고 있고, 그것을 두 눈으로 보고 있다.

 

히틀러의 작품에 나오는 주인공은 스킨헤드다. 그들은 머리를 짧게 깎은 극우 인종주의자 집단이다. 그들은 독일뿐만 아니라 유럽 거의 모든 나라에 조직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통일된 강령은 없지만 연대를 유지하고 있다. 외국인의 자국 이민 반대와 인종 차별, 나치 찬양 및 반유대주의, 홀로코스트 부정 등을 주장하고 있다. 독일에서는 나치와 관련된 활동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나치 추종에 따른 법적 문제를 피하기 위해 민족주의와 같은 구호를 내세우고 있다. 스킨헤드는 합법과 불법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활동하는 가운데 극우범죄는 급증하고 있다. 나치즘을 신봉하는 스킨헤드는 러시아에서도 볼 수 있다. 소비에트 연방 붕괴와 경제상황 악화 이후로 유색인종들을 대상으로 테러를 감행하고 있다.

 

히틀러를 모방하는 집단적 반유대주의, 인종차별주의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게토(Ghetto)를 형성한다. 그 곳에서 유대인과 유색인종은 격리당하고, 차별을 받는다. 아우슈비츠에서 극적으로 생존한 프리모 레비가 살아 있었다면 전쟁의 향수와 인간의 존엄성을 말살시키는 폭력이 사라지지 않은 세상과 맞서 싸웠을 것이다. 그리고 미국의 문학비평가 어빙 하우의 말처럼 ‘인간이 된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위해 치열하게 자신과 싸움’도 멈추지 않았다. 그의 마지막 소설 『지금이 아니면 언제?』의 주인공 러시아계 유대인 멘델처럼 그도 ‘유대인’이 아닌 ‘인간’이 되기 위한 과정을 탐색했고, ‘인간’의 의미가 총알과 포탄에 의해 학살되는 시대를 증언했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는 그 전에 발표된 레비의 작품들, 『이것이 인간인가』 『휴전』『주기율표』『멍키스패너』와 다르게 꽤 많은 입체적 인물들이 등장하고, 빨치산 부대의 여정을 재구성했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는 생존을 위해 하루하루 전쟁과 같은 삶을 살아가는 빨치산 부대의 이야기다. ‘빨치산’은 유격대원을 뜻하는 프랑스어 파르티잔(Partisan)에서 유래했다. 레비는 반파시즘 빨치산 부대에 활동하다가 파시스트 민병대에 잡혀 다른 이탈리아 유대인과 함께 악명 높은 폴란드의 모노비츠 수용소로 넘겨졌다.

 

유대인 빨치산은 싸우는 디아스포라(Diaspora)다. 그들은 나치스와 파시스트로부터 강제로 내쫓겼으며 학살과 가스실을 피하기 위해서 저항을 선택한다. 살기 위해서 총을 들기로 한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탈무드에 살인을 금지하는 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피의 복수에 동참하기로 한다.

 

“살상은 나쁘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독일군을 죽이는 게 피할 수 없는 운명이 되어버렸지. 둘 중 하나는 반드시 죽어야하는 운명이니까 말이야. 난 반드시 유태인 빨치산이 존재해야 하고, 또 러시아 군대에 가담해야 한다고 생각하네. 내가 나치 하나를 죽임으로써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을 다른 독일인들에게 납득시킬 수 있으니까 말야. 이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일인가? 인간이 인간을 죽여야만 비로소 인간의 가치와 존재가 증명되는 현실! (146쪽)

 

『지금이 아니면 언제?』는 ‘추방’과 ‘고통’을 삶의 동반자로 감내해 온 유대인 디아스포라들에 대한 애정과 안타까움이 한줄 한줄 배어나온다. 유대인의 적은 나치만 있는 것이 아니다. 빨치산 부대 안에서도 유대인을 향한 깊은 앙금과 오해가 존재한다. 유대인을 부대원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빨치산도 있을 정도로 유대인은 어디에 소속되지 못하는 전쟁의 약자였다. 원래 디아스포라는 고대 그리스인들에게서 비롯되어 뭔가 진취적이고 능동적인 의미를 가졌지만 유대인들의 한없는 유랑과 겹치게 되면서 부정적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유대인의 애환을 가장 잘 표현한 장면이 바로 유대인 출신 가수 마틴 폰타쉬가 쓴 노랫말이다. 그는 빨치산에 가담했다가 포로가 되어 유대인 게토에서 사망한다. 게달레 대장이 들려주는 마틴의 최후는 ‘유대인’이라는 낙인 때문에 치욕적인 죽음을 맞이하는 비극적인 장면이다.

 

나치 친위대 장교는 유대인은 총살형, 빨치산은 교수형이라는 게토의 규정대로 마틴을 총살형과 교수형을 내린다. 그러자 마틴은 죽기 직전에 장교에게 한 가지 부탁을 한다. 마지막으로 노래가사를 하나 만들고 싶다는 것이다. 음악을 좋아하고 그의 실력을 알고 있었던 장교는 마틴이 노랫말을 쓸 수 있도록 30분의 시간을 준다. 정확하게 30분 내에 노랫말은 완성되고 교수형을 받고 사망한 그를 향해 권총이 발사되었다. 이 사실을 전해들은 게달레 대장은 마틴의 복수를 다짐했다. 게달레도 음악을 좋아하는 유대인 빨치산이다. 그의 양쪽 어깨에는 총과 바이올린이 함께했다. 틈만 나면 바이올린을 즉석으로 연주했고, 실력도 좋다. 비참하게 최후를 맞이한 동지를 위해서 게달레는 나치친위대 장교를 처단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그가 가지고 있던 마틴의 노랫말이 적힌 종이도 찾게 된다. 게달레는 마틴의 노랫말에 자신의 구슬픈 바이올린 선율을 입혀 위대한 가수이자 용감했던 빨치산 유대인을 추모했다.

 

내가 나를 위해 살지 않는다면
과연 누가 나를 위해 대신 살아줄 것인가?
내가 또한 나 자신만을 위해 산다면
과연 나의 존재의미는 무엇이란 말인가?
이 길이 아니면 어쩌란 말인가?
지금이 아니면 언제란 말인가?

 

 

(229쪽)

 

안식처가 보이지 않는 추방과 학살의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서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 멘델처럼 저항으로 맞설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유대인을 향해 사람들은 그들의 이중성을 비난한다. 하지만 유대인의 생존의지는 안식 없는 삶, 뭐라 말할 수 없는 불안감을 극복하는 동시에 ‘인간’이라는 고유한 의미를 지키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다. 총구가 그들의 목숨을 노리고, 인간이 아닌 짐승으로 살아야하는 수용소 생활은 자유를 박탈하는 인류의 범죄이다. 유대인을 짓밟은 나치의 만행을 널리 알리기 위해서는 살아남아야 한다. 그래서 그들은 스스로 총을 쥘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거주국과 조국 사이의 불안한 ‘균형’의 선 위에 있는 유대인 디아스포라는 대개 세 가지 대응방식을 보인다. 조국으로 귀환해 그 재건을 지향하거나, 귀환을 포기하고 거주국으로의 동화를 추진하거나, 아니면 거주국에서 독자적 정체성을 유지하며 기본적 인권과 민족적 권리를 추구하는 것이다. 오늘날 디아스포라가 주목받는 것은 마지막 지향성과 연관된다. 이제는 불가능하기에 귀환도 동화도 모두 거부하며 국민국가의 자명성과 폭력성에 대해 의문과 이의를 제기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유대인의 실향과 생존 투쟁은 단순한 폭력적 저항이 아니라 삶의 미래를 지키려는 선택으로써 적극적 저항이다.

 

나치스의 유대인 학살뿐만 아니라 스탈린의 소비에트 부대가 무고한 폴란드 인을 학살하고 매장한 카틴 숲 사건도 언급하고 있다. 스탈린은 서유럽 침략을 끝내면 독일군이 자신들을 향해 진격해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점령 중이던 동부 폴란드 지역에서 공무원, 지식인, 의사, 예술가 등 2만여 명 이상의 폴란드인을 카틴 숲으로 끌고 와 학살했다. 희생자들은 소비에트 부대에 의해 사회 지도층 인사로 분류된 사람들로 훗날 러시아에 대적할 빨치산 세력을 규합할 수 있다는 이유로 처형된 것이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는 단순히 유대인 빨치산 부대의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라 레비 자신을 포함시킨 유대인 디아스포라의 집단 자화상이다. 그리고 전쟁의 광기가 인간을 학살을 감행하는 잔인한 짐승과 그들에게 핍박받는 비참한 짐승으로 만드는 과정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내용을 통해 보편적 인간의 가치, 폭력과 평화, 역사에 대한 망각과 책임 등의 문제로 우리를 인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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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6-07-19 0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까지 프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 <휴전> 그리고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세 권을 읽었네요. <지금 아니면 언제?>를 레비의 다음 책으로 읽어야할 것 같습니다. 빨치산 게릴라를 다룬 책을 좋아하거든요.
 

 

 

 

 

 

 

 

 

 

 

 

 

 

 

 

 

프리모 레비는 유대계 이탈리아인이다. 그는 토리노 대학 화학과를 졸업했을 때, 졸업증서에는 ‘유대인’이라는 글자가 또렷이 찍혀 있었다. 이것은 마치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유대인들이 가슴에 노란색으로 된 ‘다윗의 별’ 표시를 하고 다니는 것과 유사한 인상이다.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레비는 자신도 독일 유대인들처럼 ‘다윗의 별’을 표시된 옷을 입은 채 수용소에서 폭력과 차별의 세월을 보낸 줄이야 생각이나 했을까.

 

사실 레비는 대학 졸업을 못할 뻔 했다. 이탈리아 파시스트 정권이 유대인을 억압하는 정책을 실시했기 때문이다. 1938년 파시스트 정권은 독일의 뉘른베르크 법(유대인에게 독일 시민권을 박탈하고 경제적 활동을 제한함)을 모방해 ‘인종법’을 제정한다. 유대인은 공립학교 입학을 할 수 없게 되는데 재학생은 학업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이탈리아에 거주하는 유대인들도 풍전등화의 상황에 처하게 된다. 인종법 공포 이후로 잠잠했던 반유대주의가 살아나기 시작했다. 대학 졸업 후 생계가 막혔던 레비는 파시즘에 반대하는 서클에 가입하여 저항 활동을 한다. 1943년 파시스트 정권은 붕괴되었지만, 독일군이 이탈리아 북부와 중부를 점령했을 때 레비가 소속된 유격대가 체포되고 만다. 이때부터 레비의 수용소 생활이 시작된다.

 

레비의 작품은 반유대주의자로부터 받은 차별과 그들의 왜곡된 시선을 묘사하고 있다. 레비는 광기의 전쟁 앞에서 파멸되고 불안에 떠는 인간의 의미에 대해 고민할 뿐만 아니라 왜곡된 이성에서 비롯된 반유대주의의 허상을 고발한다. 처녀작 『이것이 인간인가』에서 레비는 전쟁의 살상과 죽음의 수용소를 탄생시킨 인종차별 도그마의 위험성을 강조한다.

 

개별적으로든 집단적으로든, 많은 사람들이 다소 의식적으로 ‘이방인은 모두 적이다’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러한 확신은 대개 잠복성 전염병처럼 영혼의 밑바닥에 자리 잡고 있다. 그것은 우연적이고 단편적인 행동으로만 나타날 뿐이며 사고체계의 밑바탕에 깔려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러한 일이 발생하면, 그 암묵적인 도그마가 삼단논법의 대전제가 되면, 그 논리적 결말로 수용소가 도출된다. 수용소는 엄밀한 사유를 거쳐 논리적 결론에 도달하게 된, 이 세상에 대한 인식의 산물이다. 이 인식이 존재하는 한 그 결과들은 우리를 위협한다. 죽음의 수용소에 관한 이야기는 모든 이들에게 불길한 경종으로 이해되어야만 할 것이다. (『이것이 인간인가』 중에서, ‘작가의 말’ 중에서)

 

레비의 말은 언뜻 반유대주의의 끔찍한 산물이라고 할 수 있는 히틀러의 광기를 염두에 둔 듯한 느낌이 난다. 우리는 히틀러라고 하면 유대인 대학살, 홀로코스트가 생각난다. 그는 유대인을 지독하게도 혐오했다. 어린 시절 유대인으로부터 좋지 않은 경험 때문에 반유태주의 감정을 가졌는지 확인되지 않는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히틀러에 관한 기본적인 오해 중의 하나가 출신에 관한 내용이다. 그리고 반유대주의가 히틀러 개인적 인간에서 비롯된 감정으로 이해된다. 『나의 투쟁』에서 동유럽의 유대인들을 추방하고, 그곳에 지배민족인 게르만족의 대제국을 건설한다는 구상을 제시했다. 히틀러는 유대인을 게르만족의 순수성을 더럽히는 ‘세균’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게르만족의 우월성을 강조했고 ‘세균’을 제거하는데 힘을 길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히틀러를 독일에서 태어난 독일인으로 착각하기 쉽다. 그는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났다. 그가 성장했던 빈은 오래전부터 반유대주의가 남아있던 지역이었다. 비록 『나의 투쟁』에서 보여준 히틀러의 주장은 망상에 가까울 정도로 논리적으로 허술하지만, ‘유대인은 모두 적이다’라는 생각이 그를 지배했고, 병적인 증상으로 인한 집착은 학살과 수용소라는 반인륜적 범죄를 일으키게 만들었다.

 

잘못된 사고의 인식이라도 확신이 강할수록 전염병처럼 더욱 퍼지게 된다. ‘유대인=적, 세균’이라는 전제는 ‘적과 세균은 제거해야 한다’로 이어져 ‘유대인은 제거’라는 끔찍한 결론이 나온다. 그리고 세균 같은 유대인을 제거한 자는 청결하고 건강한 민족으로 우뚝 설 수 있었다. 반유대주의의 삼단논법은 수용소에서도 곳곳이 퍼져나갔다.

 

벽에는 교육적인 목적으로 그린 이상한 벽화들이 있다. 예컨대 웃통을 벗은 착한 포로가 짧게 이발을 한 혈색 좋은 머리통을 비누로 열심히 씻는 모습과 전형적인 유대인의 코와 푸르스름한 피부를 지닌 나쁜 포로가 눈에 띄게 더러운 옷을 껴입고 머리에 빵모자를 쓴 채 마지못해 손가락 하나만 세면대의 물에 담그는 모습이다. 첫째 그림 밑에는 ‘So bist du rein’(이렇게 해서 너는 깨끗해진다), 둘째 그림 밑에는 ‘So gehst duein'(이렇게 해서 너는 뒈진다)이라고 적혀 있다. 그리고 좀 더 밑에는 고딕체의 흐릿한 프랑스어로 ’La proprete, c'est la sante'(청결은 건강이다)라고 적혀 있다. (『이것이 인간인가』 중에서, 55쪽)

 

유대인은 불결하고 씻지 않는 민족으로 묘사하고 있다. 유대인을 ‘세균’처럼 멸시하던 히틀러의 발상과 유사하다. 유대인이 아닌 자는 비누칠을 할 수 있고, 깨끗한 물로 세척할 수 있다. 그러나 옷, 신발, 이름마저도 빼앗겨버리고 깨끗한 물을 마시지 못한 유대인은 씻을 수가 없다. 그들이 향하는 곳은 세면실이 아닌 가스실이다.

 

 

 

 

 

 

 

 

 

 

 

 

 

 

 

 

 

잠복성 반유대주의는 독일군에 저항하는 레지스탕스나 빨치산 활동에도 제약을 준다. 반파시즘 레지스탕스 빨치산 부대의 경험을 토대로 그들의 치열한 삶을 그린 『지금이 아니면 언제?』에 유대인을 싫어하는 빨치산 부대가 등장하기도 한다. 유대인 멘델은 사랑하는 부인이 독일군에 처형당한 사실에 유대인으로서 독일에 저항하기로 결심한다. 유대인 율법에서는 살인을 금지하는데 멘델은 아내의 복수를, 그리고 유대인의 평화를 파괴하는 독일과 싸우기 위해 총을 들기로 한 것이다. 오랜 여정 끝에 게달레 부대를 만나 무장활동을 하게 되지만, 그곳에서도 유대인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과 감정에 괴로워한다.

 

 

멘델이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잠시 생각에 잠겨있는데 피오트르가 심각한 얼굴로 물었다.
“헌데... 그러니까 궁금한 게 하나 있어서...”
“대체 뭔데 그렇게 뜸 들여?”
“정말 예수를 고자질한 게 유태인들이 맞나요?”

 

(프리모 레비  『지금이 아니면 언제?』 중에서, 149쪽)

 

기독교인과 유대인은 마치 ‘한 지붕 두 가족’처럼 가깝고도 먼 사이다. 오랜 세월 서로를 인정하지 않았고, 이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이런 가운데서도 ‘다름’보다 ‘같음’을 강조하며 양자 사이의 화해를 꾀하는 움직임들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서로 화해하고 상생하기 위한 길은 순탄치 않다. 여전히 반유대주의는 사라지지 않았으니까. 레비가 경고한 것처럼 잠복성 반유대주의는 불쑥 나타나 유대인에게 깊은 상처를 준다. 미국에서는 백인우월주의 집단 KKK가 유대인 마을에 총기를 난사하고, 그리스 국적 의사는 자신의 병원에 유대인 진료를 거부하기도 했다. 의사의 집에 수색하는 과정에 나치의 문양이 새겨진 칼도 발견되었다.

 

아우슈비츠가 무너지고 사라졌어도 결코 끝난 것이 아니다. 레비는 화학자이면서도 글쓰기를 통해 잘못된 사고의 인식이 만들어 낸 비극을 증언하고 끊임없이 기억하고자 했다. 다시는 그런 비극이 다시 일어나지 않기 위해서. 그가 경고했던 ‘불길한 경종’을 다시 한 번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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