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6번째 시리즈 『허버트 조지 웰스』(현대문학, 2014년)는 총 33편의 단편소설이 수록되어 있다. 비록 선집이지만, 웰스 본인이 단편 작품의 ‘결정판’이라고 말할 정도로 웰스 단편 문학의 정수를 느낄 수 있다. 단편 선집이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웰스의 단편소설은 장편소설에 비해 덜 알려졌다. 유명 작가들의 대표 단편만 선별해서 수록한 선집에 한 두 작품만 소개되는 정도에 불과했다.

 

 

 

 

 

 

 

 

 

 

 

 

 

 

 

 


* 『허버트 조지 웰스』(현대문학, 2014년)

 

- 아이피오르니스 섬 ※ Æpyornis Island (1894년)
- 기묘한 난초의 개화 ※ The Flowering of the Strange Orchid (1894년)
- 발전기의 왕 ※ The Lord of the Dynamos (1894년)
- 아부 천문대에서 ※ In the Avu Observatory (1894년)
- 퇴짜 맞은 제인 ※ The Jilting of Jane (1894년)
- 도둑맞은 세균 ※ The Stolen Bacillus (1894년)
- 숲 속의 보물 ※ The Treasure in the Forest (1894년)
- 원뿔 ※ The Cone (1895년)
- 나방 ※ The Moth (1895년)
- 데이비드슨의 눈과 관련된 놀라운 사건
※ The Remarkable Case of Davidson's Eyes (1895년)
- 지워진 남자
※ The Sad Story of a Dramatic Critic" (aka "The Obliterated Man", 1895년)
- 플래트너 이야기 ※ The Plattner Story (1896년)
- 보라색 버섯 ※ The Purple Pileus (1896년)
- 붉은 방 ※ The Red Room (1896년)
- 바다의 침입자 ※ The Sea Raiders (1896년)
- 현미경 아래의 슬라이드 ※ A Slip Under the Microscope (1896년)
- 고 앨브스햄 씨 이야기 ※ The Story of the Late Mr. Elvesham (1896년)
- 수술대에서 ※ Under the Knife (1896년)
- 수정알 ※ The Crystal Egg (1897년)
- 별 ※ The Star (1897년)
- 지미 고글 신 ※ Jimmy Goggles the God (1898년)
- 기적을 행하는 사나이 ※ The Man Who Could Work Miracles (1898년)
- 윈첼시 양의 사랑 ※ Miss Winchelsea's Heart (1898년)
- 최후의 심판의 광경 ※ A Vision of Judgment (1899년)
- 아마겟돈의 꿈 ※ A Dream of Armageddon (1901년)
- 새로운 촉진제 ※ The New Accelerator (1901년)
- 마술 가게 ※ The Magic Shop (1903년)
- 파이크래프트의 진실 ※ The Truth About Pyecraft (1903년)
- 거미 계곡 ※ The Valley of Spiders (1903년)
- 눈먼 자들의 나라 ※ The Country of the Blind (1904년)
- 개미 제국 ※ The Empire of the Ants (1905년)
- 담장에 난 문 ※ The Door in the Wall (1906년)
- 아름다운 양복 ※ The Beautiful Suit (1909년)

 

 

 

 

 

 

 

 

 

 

 

 

 

 

 

 

 


* 다가올 그날의 이야기 (초록달, 2014년)


- 기적을 일으켰던 한사람
- 마술 가게
- 별

 

 

 

 

 

 

 

 

 

 

 

 

 

 

 

 

* 타임머신 (열린책들 세계문학 164) / 열린책들 (2011년)

 

- 크로닉 아르고호 ※ The Chronic Argonauts (1888년)
- 수정알
- 맹인들의 나라

 

 

 

 

 

 

 

 

 

 

 

 

 

 

 

 

* 세계의 환상 소설 (이탈로 칼비노 엮음, 민음사, 2010년)

- 눈먼 자들의 나라

 

 

 

 

 

 

 

 

 

 

 

 

 

 

 

 

 

 

* 마술 가게 (바벨의 도서관 2, 바다출판사, 2010년)


- 벽 안의 문
- 플래트너 이야기
- 고 엘비스햄 씨 이야기
- 수정 계란
- 마술 가게

 

 

 

 

 

 

 

 

 

 

 

 

 

 

 

 

 

* 겨울 사자 : Winter (해럴드 블룸 클래식, 생각의나무, 2007년-품절)


- 데이비드슨의 눈과 관련된 놀라운 사건

 

 

 

 

 

 

 

 

 

 

 

 

 

 

 

 

 

* 세계 호러 단편 100선 (책세상, 2005년)


- 붉은 방

 

 

 

 

 

 

 

 

 

 

 

 

 

 

 

 

 

 

* 세계 공포 문학 걸작선 : 고전편 (환상문학전집 12, 황금가지, 2003년-품절)


- 바다의 침입자

 

 

 

 

 

 

 

 

 

 

 

 

 

 

 

 

 

* 이문열 세계명작산책 4 : 환상과 기상 (살림, 2003년)


- 벽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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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특정 작가의 전작을 읽기 시작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있다. 그것은 작품이 나온 연도를 무조건 확인한다. 그리고 작품 출판 연도순으로 독서를 한다. 좀 특이한 방식이다. 책 많이 있는 분들 중에서도 이런 식으로 독서법을 한 번이라도 해본 적이 있는지 궁금하다. 아마도 많이 없을 것 같다. 사실 작품 하나하나 출판 연도순을 확인하는 것이 무척 까다롭고, 번거로운 작업이다. 책 뒤에 있는 작품 연보와 간단하면서도 의외로 가내수공업에 가까운 구글링으로 정리한다. 그런데 책에 나온 작품 연보만 믿어서는 안 된다. 가끔 인터넷에서 나오는 작품 연보와 살짝 다르기 때문이다. 귀찮지만, 둘 다 꼼꼼하게 확인한다. 굳이 이런 작업을 하는 이유는 작가의 작품들을 발표 연도별로 정리하면 작품세계의 변천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기별로 작품세계를 구분할 수 있고, 전작을 다 읽게 되면 한 번 전체 작품에 대해 간략하게 조망할 수 있을 것이다.

 

몇 달 전부터 에드거 앨런 포의 단편소설들을 읽고 있는데 시간 날 때마다 조금씩 발표 연도순으로 정리해봤다. 참고한 도서는 국내에서 유일한 포의 단편 전집으로 알려진 『우울과 몽상』(하늘연못, 2002년)이다. 영문 인터넷 웹사이트에서 확인한 내용이라서 연도가 잘못 표기될 수도 있다. 앞으로도 수정하거나 추가해야 될 내용이 있으면 댓글을 통해 알려도 좋다. 포의 작품을 이해하는데 나름 도움이 되는 참고자료가 되었으면 좋겠다.

 

 

(※ 글 쓰는 공간이 초과되어 나머지 작품 목록은 '에드거 앨런 포 (단편 #2)'라는 제목의 페이퍼로 따로 작성했다)

 

 

 

 

 

작품명

 

원어명 (발표 연도)

메첸거슈타인

Metzengerstein (1832년)

봉봉

Bon-Bon

(1832년, Originally "The Bargain Lost")

병 속에서 발견된 수기

MS. Found in a Bottle (1833년)

밀회의 약속

The Assignation (1834년)

베레니스

Berenice (1835년)

모렐라

Morella (1835년)

남 추어올리기

Lionizing (1835년)

한스 팔의 환상 여행

The Unparalleled Adventure of One Hans Pfaall (1835년)

페스트 대왕

King Pest (1835년)

그림자 : 한 편의 동화

Shadow - A Parable (1835년)

침묵 : 한 편의 우화

Silence - A Fable (1838년)

리지아

Ligeia (1838년)

블랙우드식 기사 작성법

How to Write a Blackwood Article (1838년)

곤경

A Predicament (1838년)

종루 속의 악마

The Devil in the Belfry (1839년)

어셔 가의 몰락

The Fall of the House of Usher

(1839년)

윌리엄 윌슨

William Wilson (1839년)

에이러스와 차미언의 대화

The Conversation of Eiros and Charmion (1839년)

비즈니스맨

The Business Man (1840년)

군중 속의 남자

The Man of the Crowd (1840년)

모르그 가의 살인

The Murders in the Rue Morgue (1841년)

소용돌이 속으로 떨어지다

A Descent into the Maelström (1841년)

요정의 섬

The Island of the Fay (1841년)

모노스와 우나의 대화

The Colloquy of Monos and Una

(1841년)

악마에게 머리를 걸지 마라

Never Bet the Devil Your Head

(1841년)

엘레오노라

Eleonora (1841년)

일주일에 세 번 있는 일요일

Three Sundays in a Week (1841년)

타원형 초상화

The Oval Portrait (1842년)

적사병 가면

The Masque of the Red Death (1842년)

마리 로제 미스터리

The Mystery of Marie Rogêt (1842년)

저승과 진자

The Pit and the Pendulum

(1842~1843년)

고자질하는 심장

The Tell-Tale Heart (1843년)

황금 곤충

The Gold-Bug (184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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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링크:  '에드거 앨런 포 작품목록 (단편 #1)'

 

 

 

 

검은 고양이

The Black Cat (1843년)

사기술

Diddling (1843년)

안경

The Spectacles (1844년)

누더기 산 이야기

A Tale of the Ragged Mountains

(1844년)

열기구 보고서

The ballon Hoax (1844년)

때 이른 매장

The Premature Burial (1844년)

최면의 계시

Mesmeric Revelation (1844년)

직사각형 상자

The Oblong Box (1844년)

범인은 너다

Thou Art the Man (1844년)

싱검 밥 귀하의 문학 인생

The Literary Life of Thingum Bob, Esq. (1844년)

도둑맞은 편지

The Purloined Letter (1844~1845년)

천일야화의 천두 번째 이야기

The Thousand-and-Second Tale of Scheherazade (1845년)

미라와의 대담

Some Words with a Mummy (1845년)

말의 힘

The Power of Words (1845년)

심술궂은 어린 악마

The Imp of the Perverse (1845년)

타르 박사와 페더 교수의 광인 치료법

The System of Doctor Tarr and Professor Fether (1845년)

M. 발드마르 사건의 진실

The Facts in the Case of M. Valdemar (1845년)

죽음의 머리 : 스핑크스

The Sphinx (1846년)

아몬틸라도 술통

The Cask of Amontillado (1846년)

아른하임의 영토

The Domain of Arnheim (1847년)

열기구 종달새 호에 탑승하여

2848년 4월 1일

Mellonta Tauta (1849년)

절름발이 개구리

Hop-Frog (1849년)

폰 켐펠렌과 그의 발견

Von Kempelen and His Discovery (1849년)

X투성이의 글

X-ing a Paragrab (1849년)

랜더의 별장

The Landor's Cottage (1849년,

‘아른하임의 영토’ 후속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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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설작가 아폴리네르

 

 

다치바나 다카시는 책방에 한번 나가면 3만 엔(당시 우리나라 월급쟁이 몇 달 치 월급) 정도의 거금을 들고사냥하듯 책을 사들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책을 산다기보다는 포획 하다는 말이 적절하다. 그래서 사들여서 잔뜩 쌓인 책을 보관할 수 있는 고양이 빌딩을 짓고, 수만 권의 책 속에 파묻혀 학문의 모든 영역을 넘나들며 지난 시절보다 더 왕성하게 글을 썼다.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청어람미디어, 2001년)를 읽으면 언감생심 그에게는 까마득히 못 미치지만, 그의 독서법에 강한 동질감을 느꼈다. 다치바나는 책은 꼭 돈을 들여서 사고 산 책은 버리지 않는 원칙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나 또한 그런 습관을 지니고 있는데 먼 훗날에 책으로 가득한 서재 같은 창고 하나쯤은 있어야 할 것 같다.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피가 되고 살이 되는 500, 피도 살도 안 되는 100』(청어람미디어, 2008년)에 고양이 빌딩의 구조와 거기에 보관된 책들이 소개된다. 여기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이라면 다치바나가 야한 내용의 책 위주로 따로 모아놓은 서재를 소개할 때이다. 성 관련 책을 빌딩 1층에 보관했다. 성 풍속, 선정적인 내용, 성행위를 과감하게 묘사한 책들까지 제목만 봐도 얼굴을 화근거리게 만든다. 사드의 소돔 120도 빠질 수 없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500, 피도 살도 안 되는 100에는 성 관련 책에 대한 다치바나의 소개가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에 비해 좀 더 상세하게 소개한다.

 

<러브호텔 문화지>, <게이 시장이라 불린 남자>, <성의 구조>, <일본에로사진사> 거기에 사드 후작 선집도 사들였다. 그뿐만 아니다. 허름한 서점 한 구석에 꽂혀 있을 법한 일반인들의 성생활 수기에서 가격이 꽤 비싼 호화본 우키요에 춘화(春畵)도 다치바나 서재의 도서목록에 포함되어 있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500, 피도 살도 안 되는 100에 일본 우키요에 춘화를 설명하는 내용이 열 페이지 정도 남짓 할애될 정도로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다치바나는 춘화를 야한 그림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예술적 가치가 있는 풍속화에 의미를 두고 있다. 춘화의 그림 스타일을 분류하고 예술로 볼 수 있는지 논할 정도로 말이다. 다치바나는 1979년에 <미국 성 혁명 보고>라는 책을 썼는데 이 책을 읽은 잡지의 편집장이 내용에 감동받아 다치바나에게 스와핑 잡지를 매호 보내주었다고 한다.

 

성에 대한 호기심이 넘쳐나던 고등학생 때 엉뚱하게 야한 책을 소개하는 내용을 보면서 책을 모으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그 꿈(?)이 조금씩 이루어지게 되었다. 제목과 표지만 봐도 ‘19세 미만 독자 구독 금지뉘앙스가 느껴지는 책은 가장 눈에 띄는 책장에 꽂지 않는다. 아직 책의 권수가 많지 않아서 여닫이가 있는 책장에 따로 보관하고 있다. 거기에 책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가족도 모른다. 거의 비밀에 가까운 보관이다. 일명 ‘19금 비밀 컬렉션이다.

 

 

 

 

 

 

 

 

 

 

 

 

 

 

 

 

 

‘19금 비밀 컬렉션에 보관된 책 중에서 일부 몇 권은 이미 소개한 적이 있다. 바로 기욤 아폴리네르의 일만 일천 번의 채찍질(문학수첩, 1999-품절)완역 돈쥬앙(2/ 보람, 1995-절판)이다. 성애문학에서 사드의 뒤를 이은 작가가 아폴리네르다. 그가 한동안 잊힌 사드의 작품들을 발굴하여 전집으로 소개했고, 일만 일천 번의 채찍질완역 돈쥬앙에서도 사드를 뛰어넘으려는 상상 그 이상의 성 행위의 향연이 펼쳐진다

 

 

 

 

 

 

 

 

 

 

 

 

‘19금 비밀 컬렉션의 시작은 사드에서 비롯되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국내에 소개된 사드의 작품은 악명 높은 묘사로 인해 출간 수명이 짧았다. 1990년에 새터라는 출판사에서 처음으로소돔 120이 두 권짜리로 출간되었다. 여기서부터 희귀본의 전설이 시작되었다. 2000년에 고도출판사에서 다시 출간되었지만, 이 책 또한 빠른 시기에 절판의 운명을 맞았다. 이 때 사드라는 이름을 알고, 소돔 120을 구입한 독자는 과연 몇 명이나 될까? 그 때는 사드가 지금처럼 널리 알려져 있지 않아서 판매 부수가 적었을지도 모른다. 2000년에 나는 초등학생 6학년이었고, 당연히 사드그리고 그의 이름에서 유래된 사디즘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야동의 세계에 입문하는 시기가 바로 이때였다)

 

 

 

 

 

 

 

 

 

 

 

 

    

 

사드의 소돔 120이 악명 높은 작품에다가 고가에 거래되는 희귀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도 얼마 되지 않았다. 그것도 원작을 토대로 만든 영화 덕분에 알게 되었는데, 그 영화가 바로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의 살로 소돔의 120이었다. 지금으로부터 7년 전에 대학교 동기가 흥미진진한 외국 영화를 다운로드 받았다고 해서 같이 보자고 나에게 권했다. 그런데 하필 그 영화가 살로 소돔의 120이었다. 친구는 자기 혼자 영화를 보다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문제의 장면들이 너무 역겨워서 볼 수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 자신이 혼자 당한 걸 아쉬웠던지 나에게도 그 영화를 권한 것이다. 나는 생각보다 비위가 강한 편이라서 영화를 끝까지 봤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파졸리니가 관객에게 무엇을 얘기하고 싶은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영화를 다 보고 나서도 기분이 찝찝했다. 영화 속 최악의 장면이 머릿속에 자꾸 남는 것이 아니라 영화의 의미를 알고 싶었다. 이 때가 바로 사드의 세계에 들어서게 된 결정적인 경험이었다

 

 

 

 

그래서 직접 원작을 읽고 싶었으나 헌책방과 인터넷 서점에서 너무 비싼 가격에 팔고 있던 터라 그저 침만 삼키고 있어야 했다. 대신 사드의 단편을 모은 사랑의 죄악(장원, 1993-절판), 미덕의 불운(열린책들, 2011), 사드의 규방철학(도서출판 비, 2005-품절)을 구입하면서 드디어 어두컴컴한 사드의 세계 속으로 조심스럽게 들어오게 되었다.

 

 

 

 

 

 

 

 

 

 

 

 

 

 

 

 

그러다가 오랫동안 어둠에 가려졌던 문제작 소돔 1202012년에 출간되었다. 그런데 이 책이 출간되는 과정이 순탄치가 않았다. 이 때 한창 성 범죄 사건으로 세상이 시끄러웠던 때라서, 성 관련 서적이 때 아닌 핍박을 받아야 했다. 결국 소돔 120이 청소년 유해 판정물보다 한 단계 높은 처분을 받게 되어 출간 정지를 당하게 된다. 이 책이 음란물로 규정된 것이다. 출판사가 모든 책을 수거해서 폐기시키는 바람에 한동안 동서출판사 소돔 120이 판매가 금지되었고, 이미 책을 산 사람은 가격을 뻥튀기해서 인터넷 중고서점에서 파는 풍경이 연출되었다. 판금조치에 대한 논란이 불거지자, 간행물윤리위원회 재심을 통해 청소년유해간행물로 변경되었다. ‘19세미만 구독불가표시를 하고 비닐로 포장해 판매하게 되었다. 이 결정을 계기로 고도출판사의 소돔 120이 알라딘 중고서점에, 거기에 고가가 아닌 부담 없는 가격으로 한정판으로 판매될 수 있었다. 이 때가 정말 고도출판사의 소돔 120이 살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알라딘 중고서점에 이 책이 다섯 권씩 있는 꽂혀 있던 것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사드 동시대 또는 그 이전과 그 이후에도 음란 서적 출판이 성행했다. 이름 없는 무명의 작가들이 쓴 포르노 작품은 독자들 사이에서 은밀하게 읽혀졌고, 심지어 궁정의 왕족들까지도 포르노의 대상이 되었다. 소문으로 전해 내려오는 궁정의 섹스 스캔들은 왕족의 무능함에 지친 대중들과 그들 세력을 비판하려는 반정부주의자들에게는 흥미로운 먹잇감이었다. 특히 18세기 중엽 프랑스에서 왕족들을 섹스의 화신 혹은 성불능자로 만들어 희화화시킨 시와 노래 그리고 소설이 유행했다. 그래서 왕족이나 정부는 이를 판매 금지시키고, 제작하거나 배포하는 사람 또 읽는 사람들마저도 처벌을 내렸다. 정부는 은밀하게 유통되는 음란물이 국정을 혼란시킬 수 있는 방해물로 인식했다. 눈에 보이는 대로 음란물을 수거시켰고, 제작·배포한 사람들은 바스티유 감옥에 수감되었다.

 

 

 

 

 

 

성애문학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존 클레랜드의 내 사랑 패니 힐(예림미디어, 1999-절판)을 알고 있어야 한다. 원제는 ‘Fanny Hill: Memoirs of a Woman of Pleasure’로 영국에서 1749년에 출간되었다. 출판 연도 시기는 사드의 소돔 120보다 무려 40여 년 전이다. 소돔 120은 프랑스 혁명의 포탄이 터지기 시작할 즈음에 사드가 집필한 것이다.

 

 

 

 

 

 

 

 

 

 

 

 

 

 

 

피터 박스올의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1001』(마로니에북스, 2007년)에 나오는 설명에 따르면 내 사랑 패니 힐이 영문학 사상 가장 에로틱한 소설로 꼽고 있다. 참고로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1001도서목록에 사드의 소돔 120미덕의 불운(원제는 ‘Justine, or les malheurs de la vertu’, 우리말로 풀이하면 쥐스틴, 혹은 미덕의 불운이다)도 포함되어 있다.

 

그렇지만, 사드와 클래렌드의 작품 간에 분명한 차이가 있다. 두 사람이 쓴 작품의 주인공은 음탕하다. 허나 결말에서 차이점이 드러난다. 사드 작품 속 주인공은 악덕에 대한 대가를 받게 되어 불행하면서도 비참한 운명을 맞이하지만, 클래렌드의 내 사랑 패니 힐의 주인공이자 창녀인 패니 힐은 자신의 성적 편력을 마음껏 즐기면서 결혼 생활을 하게 된다. 패니 힐은 자신의 성적 매력을 신분 상승을 위한 전략적 무기로 사용한다. 반면 사드의 작품 주인공들은 섹스를 오직 성적 쾌락을 얻기 위한 자신만의 도구로 인식하고 있다.

 

 

 

 

 

성애문학의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책을 찾기가 쉽지 않은데 알렉상드리앙의 에로틱 문학의 역사(한술출판사, 2005-품절)은 고대부터 현대의 초현실주의까지 에로틱 문학의 모든 것을 담고 있다. 토머스 월터 라커의 섹스의 역사(황금가지, 2000-절판)은 섹스가 고대부터 현대까지 움직여 온 인간의 역사와 사회적 이데올로기를 보여준다. 저자가 수집한 다양한 텍스트와 그림을 통해 독자는 섹스에 대한 인식 변화를 파악할 수 있다

 

 

 

 

 

 

세계성풍속사(세명문화사, 1988-품절)은 일본인 저자(한자어로 복전화언’)가 쓴 성 풍속사를 다룬 책인데 제목은 거창하게 보이지만, 실상 내용은 짤막한 에피소드를 나열한 것이다. 꽤 낡은 책이지만, 역사책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은밀한 성 풍속과 동서양을 아우른 독특한 성 문화를 볼 수 있다. 알라딘에 성 픙속으로 검색하면 관련 서적들이 나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비록 몇 권은 절판되고 말았지만. 그 중에 임명수라는 저자의 역사로 보는 세계의 성풍속(어문학사, 2004-절판)은 내가 가지고 있는 세계성풍속사과 같은 내용으로 추정된다. 왜냐하면 역사로 보는 세계의 성풍속에 소개된 목차를 보면 알 수 있다. 시대별로 고대 편’, ‘중세 편’, ‘근세 편’, ‘근대 편’, ‘현대 편으로 구분한 목차의 특징이 두 책 다 비슷하다. 그리고 역사로 보는 세계의 성풍속고대 편아리스토텔레스의 피임법이라는 항목명이 있는데 이 내용은 세계성풍속사에도 나온다. 굳이 두 책을 직접 비교해보지 않고 일부 소개된 목차만 봐도 얼추 두 책이 이름만 다른 서로 같은 내용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역사로 보는 세계의 성풍속의 저자가 한국 사람인 것으로 보아서는 일본 저자가 쓴 책을 그대로 자신이 쓴 것처럼 교묘하게 이름만 바꾼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언젠가 도서관이나 헌책방에서 역사로 보는 세계의 성풍속을 발견하게 되면 좀더 자세하게 내용을 비교하고 싶다.

 

 

 

 

 

    

 

우리나라는 옛날에 비해 성 문화와 인식이 개방적으로 변화되고 있다지만, 아직도 서적만큼은 무조건 야하다고 생각하면 음란하고 불온하게 보는 인식은 여전한 것 같다. 이런 책을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읽으려면 용기를 가져야 한다. 성 관련 서적은 성에 대한 깊은 관심이 있는 소수의 독자만 읽을 뿐이지, 대체적으로 잘 팔리지 않는다. 또 재출간될 가능성도 장르문학만큼 희박하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생각의나무 출판사에서 나온 이병주의 에로스 문화 탐사(2, 2002)은 워낙에 좋은 내용에도 불구하고, 재출간되지 않은 점에 아쉽기만 하다. 서양과 동양의 에로스문화가 시대별로 정리되어 있으며 도판 목록도 화려하다. 보티첼리, 루벤스, 김홍도, 신윤복 등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다 아는 예술가들이 그린 춘화들을 볼 수 있다.

 

 

 

 

 

 

 

 

 

이런 책을 사 모으고 읽는 독자를 이상하게 볼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이런 책을 많이 읽어서 이성을 잃어버린 괴물이 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오히려 섹스를 제대로 알아야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능을 악덕으로 이용하는 괴물에 당하지도 않으며, 그러한 괴물로 되지도 않을 것이라 믿는다. 그래서 성 교육이 중요한 거다. 뜬금없이 웬 성 교육 드립이...?

 

제대로 된 성 교육의 중요성은 누구나 다 잘 아는 내용이기에 그냥 넘어가고, 일단 이러한 책을 사고 읽는 것은 결국 인간에게 섹스는 절대로 때려야 땔 수 없는 자연스러운 행위이며 좀 더 거창하게 말하자면 문화와 역사를 창조하는 힘의 근원이기도 하다. 그래서 역사는 밤에 이루어진다라는 말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성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 어떻게 섹스가 인간의 역사를 만들었는지를. 단순하게 말하면 섹스를 착하게 또는 나쁘게 이해하고 그 본능에 따르느냐에 따라서 행동이 나누어진다. 그래서 섹스는 인간에게 있어서 양날의 검이기도 하다. 우리에게 쾌락을 선사하면서도 그것이 악용되면 반인륜적 행위로 이어지니까.

 

 

 

 

 

 

 

 

 

섹드립 같은 야한 농담에 부끄러워도 상관은 없지만, 섹스를 심도 있게 설명하고 분석하는 책을 읽는 것에 대해서는 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 책을 읽는 사람을 변태로 취급해서도 안 된다. 오히려 그것을 수줍어하고, 더 이상 알려고 하지 않는 당신이야말로 음란한 마음을 품고 있을 수 있다. 건강한 성을 이해하기 위한 공부는 정신 건강에 해롭지 않다. 그래서 ‘19금 비밀 컬렉션을 위한 수집은 계속 할 것이다. 나도 다치바나 못지 않을 정도로 성에 대한 관심이 많다. ( ͡° ͜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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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야설작가 아폴리네르
    from factory 2014-10-29 18:50 
    만약에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작가가 ‘야설’을 썼다고 상상해보자. 기존에 썼던 작품들과 다르게 작가의 ‘야설’은 포르노에 가까울 정도로 노골적인 성 묘사로 가득하다. 책 표지 앞에 ‘19세 미만 구독불가’라는 글씨가 박혀 있다. 작가의 작품을 즐겨 읽었던 열혈 독자라면 상당히 난감하다. 작가의 문학성을 믿고 야설을 읽을 것인가, 말 것인가? 일부 독자는 삼류 작가의 펜에 나오는 졸작이라고 비난하면서 크게 실망할 수도 있다.
 
 
칼리아예프 2023-06-14 0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미덕의 불운을 지금 장바구니에 넣고 살까 말까 고민중이었는데, 이렇게 좋은 가이드 글이 있을 줄은 몰랐네요. 😊👍
 
소송 펭귄클래식 15
프란츠 카프카 지음, 홍성광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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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1-291] 심판

 

 

 

 

카프카의 『소송』은 줄거리가 비교적 간단하지만 그의 다른 소설과 마찬가지로 난해하다. 주인공 요제프 K가 자신의 서른 살 생일 아침 돌연 죄명도 모른 채 낯모르는 사나이들에게 체포된다. 무언지도 모르는 소송 때문에 1년 동안 동분서주 고민하다가 서른한 번째 생일 전날 밤 처형된다는 이야기다. 그 역시 카프카 작품의 주인공답게 느닷없는 사건 속에 던져져 당황해하고, 자신의 힘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상황 속을 맴돌다가 영문도 모르고 사라져간다.

 

K는 누군가의 무고라 짐작할 뿐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모른다. 신부, 감독관, 변호사, 판사 모두 무죄를 주장하는 그의 말에 귀 기울이는 사람은 없다. 화가 티토렐리만이 그가 아무 죄도 없음을 확인해 주지만 도움이 되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그가 피고를 도와주는 방법은 재판에서 무죄판결을 받을 수 없음을 명백히 알려주어 피고가 헛된 희망을 버리고 절망을 확인하도록 해주는 것이다.

 

카프카 소설이 ‘우리 존재의 원상을 현실의 언어로 형상화한 것’이라는 본질적인 해석은 논외로 하고 소설의 피상적인 얼개를 이루는 법의 세계만을 보자. 어떤 계기로든 복잡한 법의 구조에 얽혀 들어가 본 사람은 그 권위적인 미로의 세계에서 K와 같은 심정을 느낀 경험이 있을 것이다. 더구나 다른 사람의 무고로 자신의 무죄를 증명해야 할 경우라면 그 괴로움과 답답함을 말로 다할 수 없다.

 

카뮈는 이 난해한 소설이 위대한 이유를 “모든 것을 제시하고 아무 것도 확증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K는 자신의 무죄를 우리 독자들 앞에 제시하지만, 우리는 그걸 지켜볼 수밖에 없다. 우리도 어느새 K가 되어 무죄를 확증할 수 있는 단서를 찾아보게 된다. 그러나 결말에 이르러도 끝내 찾을 수가 없게 되고, 요제프 K처럼 좌절하고 만다. 알 수 없는 괴한들에게 처형당하는, K의 황당한 최후는 카프카 본인 스스로 비유했던 ‘막다른 골목’에 마주치는 운명과 닮아 있다.

 

그렇다면 『소송』은 독자에게 영원히 ‘멘붕’을 선사해주는, 난해한 소설로 남게 되는 것일까? 과연 카프카를 읽은 독자는 그가 만들어 놓은 ‘막다른 골목’을 뚫을 수 있을 것인가?

 

지금까지도 『소송』에 관한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K를 거대한 관료주의에 희생된 현대인으로 보기도 하면, 카프카의 친구 막스 브로트는 감시인과 사형 집행인들을 나치스 친위대원의 등장을 예고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러면 K는 나치스 친위대원들에 의해 강제로 체포되는 유대인으로 볼 수 있다. 이처럼 K를 둘러싼 부조리한 현실에 대해 독자와 카프카 관련 연구가들은 수수께끼 같은 텍스트를 해석했다. 그러나 K가 무슨 죄목으로 소송에 휘말렸는지에 대해 초점을 맞춘 해석을 찾기가 보기 드문 편이다. 『소송』 읽기의 핵심은 바로 K는 죄가 있느냐 없느냐는 것이다. 만약에 K가 진짜 죄가 없다면 그에게 억울한 누명을 씌운 미지의 범인을 찾아내야 한다. 혹자는 K를 죽인 괴한을 범인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이런 해석을 염두하고 글을 쓴 것이 아니다.

 

 

 

 

댄 애리얼리  『거짓말하는 착한 사람들』 (청림출판)

 

일단, K가 정말 무죄인지 증명해야 한다. 과연 그는 억울한 누명에 희생된 불행한 인물일까? K는 정말 억울한 최후를 맞는 인물인 것은 틀림없다. 복잡한 소송에 인생이 꼬이게 된 이유를 알지 못한 채 ‘개 같은’ 죽음을 맞는다. 그뿐만 아니다. K의 죽음이 더욱 비극적이고 불행한 이유는 K 본인은 분명 죄를 저지르고 있음에도 죽을 때까지 ‘무죄’라고 믿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거짓말하는 착한 사람’이 빠져 들기 쉬운 ‘인지부하’(cognitive load)의 덫에 걸리고 말았다. 그것이 갈 길 바쁜 K의 발목을 잡았다.

 

하루 종일 바쁘게 일하느라 지칠 대로 지친 K, 그는 대형은행 부장이다. 상당한 양의 은행 업무를 처리해야 하는데, 이 와중에 소송 문제가 방해된다. 잠시 은행 업무를 내려놓고 소송 진행에 집중하고 싶지만 휴가 신청할 여유가 없다. K는 고민한다. 은행 업무를 계속 진행할 것인가 아니면 이 말도 안 되는 소송 준비에 몰입할 것인가? 죄가 없는데 소송을 준비한다는 건 시간 낭비다. 그리고 자신의 업무 이미지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다. 소송 때문에 휴가를 낸 사실이 은행 내부에 알려지게 되면 결국 죄가 있음을 만천하에 공개하는 것과 같다. 은행 동료들뿐만 아니라 그가 담당하는 고객들의 귀에까지 황당한 소송 사건이 알려지면 K는 더욱 난처하다.

 

오랜 고민 끝에 K는 휴가를 내지 않고도 소송에 대비하는 방법을 찾게 된다. 그가 담당하는 고객 중 한 사람인 제조업자가 소송 준비에 도움 줄 수 있는 화가 티토렐리를 소개시켜줬기 때문이다. 제조업자의 은밀한 제안은 K에게 이득이다. 자신을 둘러싼 소송에 관한 소문이 은행 전체에 퍼지지 않을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인 것이다. K는 당장 화가를 만나기 위해서 ‘급히 처리해야 할 업무’가 있다는 변명을 둘러댄다. 자신과의 상담을 기다리고 있던 세 명의 손님을 돌려보냈다.

 

K의 머리로는 몸이 고단할수록 업무가 중요하다는 걸 안다. 그러나 자신의 무죄를 확실하게 증명하고 싶은 ‘감정의 유혹’ 때문에 합법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소송을 준비한다. 깊고 정교한 생각을 담당하는 뇌가 바쁘게 일하고 있을수록 인간은 감정의 이끌림에 저항하기가 어려진다는 게 '인지부하'의 핵심이다. 착하게 살아온 평범한 사람들이 소소하게 부정행위를 저지르는 이유도 비슷한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스스로 높은 도덕성을 지녔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지치고 고갈된 상황에 놓이면 덜 도덕적인 결정을 내리게 된다.

 

이뿐만 아니라 K는 변호사 훌트의 간병인 레니의 유혹을 이기지 못해 에로틱한 관계를 맺게 되는데 레니가 소송을 해결하기 위한 조력자로 나섰기 때문이었다. K는 이들을 진정한 조력자라기보다는 자신이 처한 복잡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할 뿐이다. 그리고 소송이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만들기 위해 뇌물과 매수도 마다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행동들은 분명 자신은 죄가 없다고 떳떳하게 밝혔던 사람이 모두 저지른 것이다.

 

사람들이 합리적으로 이득과 손실을 따져 부정행위를 할지 말지 결정할 것 같지만, 알고 보면 '난 착하게 살아왔으니까 이 정도 거짓말은 괜찮아'라며 자기 합리화에 빠져 속임수를 쓰게 된다. K도 마찬가지다. 무죄라고 주장했던 K가 부정행위를 저지르는 것은 ‘자기 합리화’ 때문이었다. “나는 죄가 없어!” 소송과 관여된 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K의 무죄 주장은 도덕적 판단 능력을 상실하게 만드는 올가미가 되고 말았다. 그런 올가미가 얼굴에 씌운 K는  스스로 높은 도덕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착각에 빠졌다. 자신의 부정행위에 어떠한 죄의식도 느끼지 못한다.

 

 

“의심할 여지 없이 이 법정의 모든 발언 뒤에는, 그러니까 제 경우로 보면 체포와 오늘의 심리 배후에는 어떤 커다란 조직이 있습니다. 이 거대한 조직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무고한 사람을 체포하고, 그들에게 무의미하고 또 제 경우처럼 대개는 아무 성과도 없는 소송을 벌이는 데에 있습니다. 모든 게 이처럼 무의미한데 어떻게 관리들의 극심한 부패를 피할 수 있겠습니까? 감시인들은 체포된 사람들의 소유물을 맡아두는 창고 이야기를 했는데, 전 그곳을 한번 보고 싶습니다. 체포된 사람들이 애써 모은 재산이 도둑 같은 창고 직원들한테 도둑질당하거나 아니면 그곳에서 썩어가고 있을 것입니다.” (67~68쪽, 발췌 요약)

 

 

소설 초반부에 첫 재판을 받을 때만 해도, K는 법조인의 부패와 무능함을 정면으로 비판하고, 자신의 무죄임을 정당하게 밝히려는 정의로운 인물이었다. 그러나 소송 사건이 간단하게 마무리되지 못하고, 장기화될수록 K의 몸과 마음은 점점 지쳐만 갔다. 게다가 자신의 무죄를 절대적으로 믿어주는 든든한 사람들도 많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 속에 진짜 죄가 없는 K는 아이러니하게도 무고죄를 벗어나는 과정에 예상하지 못한 또 다른 죄를 범하고 만다. 한순간에 K는 합법적 절차를 거부하는 죄를 저질렀다.

 

K는 소송 진행이 길어질수록 자신에 대한 판결이 더욱 불리해질 것임을 알고 있었다. 자신이 무슨 죄를 저질렀는지 모르기에 K는 자신이 결백하다는 확신을 가졌다. 그것이 K의 정신을 혼란스럽게 만들었고, 그를 미치게 만들었다. 누군가가 자신의 무죄를 인정하기를 바랐다. 법원의 판사가 아닌 엉뚱한 사람에게. 화가 티토렐리만이 유일하게 K의 무죄를 확신하지만 그것은 법적 효력이 없다. 그저 죄가 있는지 없는지 물어본 화가의 질문에 무기력한 K는 잠시 동안 자신을 죄어온 ‘소송’에서 벗어난 것처럼 기쁨을 느낀다.

 

 

“당신은 죄가 없나요?”
“네.”
K는 이러한 질문에 대답하는 게 정말 기뻤다. 특히 그것이 사적인 개인을 상대로 하는, 그러니까 어떠한 책임도 뒤따르지 않는 것이라서 더욱 기뻤다. 그에게 그렇게 노골적으로 물어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 기쁨을 만끽하려고 그는 덧붙여 말했다. “나는 완전히 결백해요.” (191~192쪽)

 

 

죄를 저지른 K가 처형당하는 것은 결국 인과응보에 가까운 예정된 결말일지도 모른다. K가 부당한 소송에 맞서기 위해, 그리고 진짜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저지른 사소한 부정행위들. 지금까지 K의 행동이 무고한 사람을 억압하고 무의미한 재판을 연 거대 관료 조직에 저항하는 처절한 몸부림으로 볼 수 있을 것인가. K는 거대 관료 조직에 희생된 무력한 존재라기보다는 자신이 비판했던 관료 조직의 습성에 지배되어 스스로 파멸하는 존재이다. 성과 없고, 무의미한 소송에 집착할수록 K는 이미 범죄자가 되었다. 그는 자신이 만든 ‘완전 결백’이라는 막다른 골목에 막히고 말았다. 그곳을 탈출하지 못한 채 끔찍한 최후를 맞는다.

 

도스또예프스끼“우리 모두는 고골의 『외투』에서 나왔다”고 말했지만, 사실 우리 모두는 카프카의 『소송』에서 나왔다. 부정행위를 하면서 스스로 선량하다고 착각하는 요제프 K. 그는 자신이 그런대로 착한 사람이라 믿으며 이 정도 속임수는 괜찮다고 스스로 합리화하는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강도에게 빼앗긴 새 외투를 찾기 위해 밤마다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는 아까끼 아까끼예비치의 영혼처럼 법원 주위에 떠돌며 자신의 결백함을 주장하는 요제프 K의 영혼을 만나 볼 수 있다. 오늘도 K는 그곳에 지나가는 사람 아무나 붙잡고 고통스러운 목소리로 말한다.

 

“나는 완전히 결백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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