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가지 출판사에서 나온 러브크래프트 전집(총 4권)은 출판사 혹은 역자가 정한 작품성의 기준으로 만들어졌다. 1권은 러브크래트프를 처음 읽는 독자들을 위해서 가장 핵심적인 작품들로 구성되었다. (「데이곤」 「니알라토텝」 「크툴루의 부름」 「네크로노미콘의 역사」 「인스머스의 그림자」 등) 2권은 러브크래프트의 후기 대표작들, 3권은 환상소설  그리고 4권은 주제를 분류하기 어려운 다양한 작품들로 수록되었다. 4권에 수록된 작품 수가 다른 책에 비해 많다.

 

2, 3권도 훌륭한 러브크래프트의 대표작들이 한 권당 두 편 이상 들어 있다. 각 권에 수록된 대표작들을 꼽아보면 2권의 「우주에서 온 색채」 「광기의 산맥」 , 3권의 「랜돌프 카터의 진술」 「미지의 카다스를 향한 몽환의 추적」 「찰스 덱스터 워드의 사례」가 있다. 이런 구성 때문에 4권은 앞에 나온 책들에 비해 국내 독자들의 반응이 미미하다. 짧은 분량 위주의 소설들이 많은 데다가 늦게 출간되는 바람에 이미 1, 2권을 읽은 독자들의 기대를 충족시켜주지 못했다.

 

그렇다면 외면받은 4권을 재미있게 읽는 방법은 없을까? 전집을 읽기 시작하기 전에 나름 고민을 해본 결과, 집필 연도순으로 읽어보기로 했다. 위키피디아를 참고하면서 전집에 있는 모든 작품들을 집필 연도순으로 정리했다. 러브크래프트는 초기 때 쓴 작품을 몇 년 지나서 《위어드 테일즈》과 같은 잡지에 발표했다. 발표 연도순으로 정리하면 작품 목록 계보가 무척 복잡해진다. 분류 작업을 수월하게 진행하기 위해서 분류 기준을 집필 연도로 정했다. 의외로 4권에 수록된 작품 대다수가 러브크래트프의 초기작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1권에 수록된 「누가 블레이크를 죽였는가」는 러브크래프트가 죽기 한 달 전에 발표한 최후의 작품이다.

 

 

 

 

 

 

 

나처럼 이렇게 읽었다고 해서 누구나 다 만족스러운 러브크래프트 독서를 할 수 있다고 확신하지 않는다. 총 4권의 책을 이 작품 저 작품 번갈아가면서 읽는 것은 번거로운 일이다. 특히 전집 세트를 사지 않은 독자들은 이런 시도를 할 수가 없다. 이런 독서법을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지 않다. 그냥 별종 책덕후의 등신 같지만 멋있는 독서로 생각했으면 한다. 이 방법보다는 4권을 먼저 읽고 나머지는 차례대로 읽는 것이 낫다. 4권을 먼저 읽어도 1, 2, 3권에 있는 작품들의 줄거리를 이해하는 데 큰 문제는 없다. 다만, 4권은 작품이 시작하기 전에 역자가 정리한 ‘작가 노트’가 없으므로 러브크래프트 독서를 처음 시작하는 독자가 4권을 먼저 읽으면 크툴루나 네크로노미콘의 실체 등을 자세하게 이해하는 데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다.

 

 

 

 

 

고음 비올와 알토 비올

(사진출처: 네이버 백과사전)

 

 

 

 

 

 

비올라 연주 자세

(사진출처: 네이버 백과사전)

 

마지막으로 러브크래프트 전집에 있는 오역과 교정이 필요한 문장을 지적하면서 글을 마무리하겠다. 1권에 있는 「에리히 잔의 선율」에서 악마의 힘에 사로잡힌 에리히 잔을 바이올린 연주자로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원문에서 에리히 잔은 비올(viol)이라는 현악기의 연주자다. 「에리히 잔의 선율」은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일곱 번째 책인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현대문학, 2014년)에도 수록되어 있는데(제목은 ‘에리히 잔의 연주’) 여기서는 원문 그대로 비올 연주자로 올바르게 번역했다.

 

 

 

 

 

 

 

 

 

 

 

 

 

 

 

비올은 바이올린보다 앞선 시기에 나온 오래된 현악기인데 비올라(viola)와 다르다. 비올은 바이올린과 비슷하게 생겼으나 콘트라베이스나 첼로처럼 옆으로 세워서 연주한다. 반면에 비올라 연주 방법은 바이올린과 비슷하다. 역자는 원문에 있는 ‘viol’을 바이올린과 비슷한 ‘viola’로 착각했을 것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악기의 역사 하나, 비올은 바이올린의 등장으로 악기로서의 역할이 잊혀진 악기다. 둘, 비올라는 바이올린과 함께 등장했다.

 

4권의 「사냥개」에 있는 문장이다. 계속 읽을수록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내가 읽은 책은 올해 찍은 1판 5쇄이다. 

 

겉으로 보기에 우리의 고독한 집은 우리가 짐작할 수 없는 특질을 지닌 악의 품은 존재의 더불어 살았다. (286~287쪽)

 

 

 

 

- 작품 목록 (참고도서: 황금가지 판본. 집필 연도순으로 정리했고, ‘Writ’는 ‘Date Written'의 줄임말이다. 작품명 앞에 있는 숫자는 전집 권수)

 

4 동굴 속의 짐승 ※ The Beast in the Cave (Writ 1904~1905년)
4 연금술사 ※ The Alchemist (Writ 1908년)
4 무덤 ※ The Tomb (Writ 1917년)
1 데이곤 ※ Dagon (Writ 1917년)
4 새뮤얼 존슨 박사를 회상하며
※ A Reminiscence of Dr. Samuel Johnson (Writ 1917년)
3 북극성 ※ Polaris (Writ 1918년)
3 잠의 장벽 너머 ※ Beyond the Wall of Sleep (Writ 1919년)
4 기억 ※ Memory (Writ 1919년)
4 올드 벅스 ※ (Writ 1919년)
4 후안 로메로의 전이 ※ The Transition of Juan Romero (Writ 1919년)
4 화이트 호 ※ The White Ship (Writ 1919년)
4 사나스에 찾아온 운명 ※ The Doom that Came to Sarnath (Writ 1919년)
3 랜돌프 카터의 진술 ※ The Statement of Randolph Carter (Writ 1919년)
4 거리 ※ The Street (Writ 1919년)
4 무서운 노인 ※ The Terrible Old Man (Writ 1920년)
3 울타르의 고양이 ※ The Cats of Ulthar (Writ 1920년)
4 올리브 나무 ※ The Tree (Writ 1920년)
4 셀레파이스 ※ Celephaïs (Writ 1920년)
2 저 너머에서 ※ From Beyond (Writ 1920년)
4 신전 ※ The Temple (Writ 1920년)
1 니알라토텝 ※ Nyarlathotep (Writ 1920년)
1 그 집에 있는 그림 ※ The Picture in the House (Writ 1920년)
4 고(故) 아서 저민과 그 가족에 관한 사실
※ Facts Concerning the Late Arthur Jermyn and His Family (Writ 1920년)
4 이름 없는 도시 ※ The Nameless City (Writ 1921년)
4 이라논의 열망 ※ The Quest of Iranon (Writ 1921년)
4 달의 습지 ※ The Moon-Bog (Writ 1921년)
4 망각으로부터 ※ Ex Oblivione (Writ 1920~1921년)
4 또 다른 신들 ※ The Other Gods (Writ 1921년)
4 아웃사이더 ※ The Outsider (Writ 1921년)
1 에리히 잔의 선율 ※ The Music of Erich Zann (Writ 1921년)
3 히프노스 ※ Hypnos (Writ 1922년)
4 달이 가져온 것 ※ What the Moon Brings (Writ 1922년)
4 아자토스 ※ Azathoth (Writ 1922년)
1 허버트 웨스트-리애니메이터 ※ Herbert West–Reanimator (Writ 1921~1922년)
4 사냥개 ※ The Hound (Writ 1922년)
4 잠재된 공포 ※ The Lurking Fear (Writ 1922년)
1 벽속의 쥐 ※ The Rats in the Walls (Writ 1923년)
4 형언 할 수 없는 것 ※ The Unnamable (Writ 1923년)
4 축제 ※ The Festival (Writ 1923년)
2 금단의 저택 ※ The Shunned House (Writ 1924년)
4 레드 훅의 공포 ※ The Horror at Red Hook (Writ 1925년)
4 그 ※ He (Writ 1925년)
4 시체 안치소에서 ※ In the Vault (Writ 1925년)
2 냉기 ※ Cool Air (Writ 1926년)
1 크툴루의 부름 ※ The Call of Cthulhu (Writ 1926년)
1 픽맨의 모델 ※ Pickman's Model (Writ 1926년)
4 안개 속 절벽의 기묘한 집 ※ The Strange High House in the Mist (Writ 1926년)
3 실버 키 ※ The Silver Key (Writ 1926년)
3 미지의 카다스를 향한 몽환의 추적
※ The Dream-Quest of Unknown Kadath (Writ 1926~1927년)
3 찰스 덱스터 워드의 사례 ※ The Case of Charles Dexter Ward (Writ 1927년)
2 우주에서 온 색채 ※ The Colour Out of Space (Writ 1927년)
4 후손 ※ The Descendant (Writ 1927년)
4 토박이들 ※ The Very Old Folk (Writ 1927년)
1 네크로노미콘의 역사 ※ History of the Necronomicon (Writ 1927년)
1 더니치 호러 ※ The Dunwich Horror (Writ 1928년)
4 이비드 ※ Ibid (Writ 1928년)
3 어둠 속에서 속삭이는 자 ※ The Whisperer in Darkness (Writ 1930년)
2 광기의 산맥 ※ At the Mountains of Madness (Writ 1931년)
1 인스머스의 그림자 ※ The Shadow Over Innsmouth (Writ 1931년)
4 위치 하우스에서의 꿈 ※ The Dreams in the Witch House (Writ 1932년)
3 실버 키의 관문을 지나서
※ Through the Gates of the Silver Key (Writ 1932~1933년)
1 현관 앞에 있는 것 ※ The Thing on the Doorstep (Writ 1933년)
4 어떤 책 ※ The Book (Writ 1933년)
4 사악한 성직자 ※ The Evil Clergyman (Writ 1933년)
2 시간의 그림자 ※ The Shadow Out of Time (Writ 1934~1935년)
1 누가 블레이크를 죽였는가 ※ The Haunter of the Dark (Writ 193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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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디바 2014-12-02 0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아..저도 전집이 다 있는데 단편마다 호불호가 좀 갈리더군요~ 이런 친절한 안내 감사합니다. 처음 에리히 잔의 선율을 읽었을 때의 공포가 떠오르네요. 우주적 공포. 아무 것도 아닌 심연에 대한 두려움에 소름이.

cyrus 2014-12-02 13:48   좋아요 0 | URL
제가 처음에 1권만 구입해서 읽었을 땐 정말 흥미진진했어요. ‘에리히 잔의 선율’도 인상 깊었고요. 도서정가제 도입 전날에 반값할인으로 전집 세트를 장만했어요. 전집 세트로 구입해야 4권까지 독서의 흐름이 안 끊으면서 쭉 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

cyrus 2014-12-02 14:05   좋아요 0 | URL
아! 그리고 러브크래프트 외전편 5, 6권도 곧 나온답니다. 러브크래프트의 습작이랑 러브크래프트에 영향을 준 작가들의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다더군요. 이번 주에 출간될 거라고 출판사 페이스북에서 확인했는데, 조금 늦네요.

보슬비 2014-12-02 18: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러브크래프트를 읽는다면 cyrus님께서 알려주시는 방법대로 따라하고 싶어요. ^^

cyrus 2014-12-02 21:27   좋아요 0 | URL
꼭 전집 세트로 읽으셔야 합니다. 한 번 읽으면 계속 읽고 싶어져서 재미있습니다. ^^

그라디바 2014-12-02 1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5,6권이라니. 기대됩니다! 그나저나 반값에 풀렸었다니 초큼 슬프네요 ㅋㅋ

cyrus 2014-12-02 21:29   좋아요 0 | URL
저는 도서정가제 반값할인 때 책을 많이 사지 않았어요. 정말 꼭 사야할 책이 있으면 살 생각이었는데 마침 러브크래프트 전집이 있었어요. 지금 생각해도 탁월한 구입인 것 같습니다. ^^

보슬비 2016-07-11 2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지금 읽고 있는데, 2년이 지나서 최근 20쇄판을 구입해서인지 `바이올린`이 `비올`로 번역되었어요. cyrus님 글을 보고 수정한게 아닐까요? ㅎㅎ

그런데 cyrus님 말씀하신 순서가 아닌 그냥 정주행중입니다. ^-^

cyrus 2016-07-12 16:35   좋아요 0 | URL
제가 이 글을 블로그에 올린 후에 황금가지 페이스북 페이지에도 비슷한 내용의 글을 올렸습니다. 그때 관리자가 오류를 고치겠다고 댓글로 답변했습니다. 고쳐져서 다행입니다. ^^

정주행으로 읽는 게 편합니다. 저처럼 읽으면 피곤해져요. ㅎㅎㅎ
 

 

 

 

 

 

 

 

 

 

 

 

 

 

 

 

 

 

 

겨울비가 내린다. 뚝뚝 떨어지는 빗방울이 창문을 리드미컬하게 두드리면 은은한 빛이 흐르는 조명 아래에서 책을 읽으면 좋다. 비 오는 날이면 가끔 집 밖으로 나가고 싶지 않다. 이럴 때 조용한 방 안에서 아무 책이나 집어 들어 읽으면 편안하다. 책에 몰입하기에 딱 좋은 분위기다. 어제 비가 오는 날에 토머스 핀천의 단편소설집 『느리게 배우는 사람』(창비. 2014년) T.S. 엘리엇의 시집 『황무지』(민음사, 2004년)를 다시 읽었다.

 

 

 

 

 

 

 

 

 

 

 

 

 

 

 

 

핀천과 엘리엇. 두 사람이 쓰는 글의 유형은 서로 다르지만, 한 번 읽어도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운 작가라는 불편한(?) 공통점이 있다. 핀천의 소설은 역사, 과학, 철학, 대중문화 등 폭넓은 분야의 소재를 마구 뒤섞어 놓고, 아주 길고 복잡한 문장으로 꼬아놓았다. 엘리엇의 『황무지』는 시인 본인이 스스로 표현한 것처럼 말 그대로 "인생에 대한 개인적인, 리듬감 있게 늘어놓는 불평(Rhythmical grumbling)"이다. 단테, 셰익스피어, 그리스 신화, 성서, 우파니샤드 등 동서양을 대표하는 문학과 사상을 인용하여 총 5부로 이루어진 이 어마어마한 장시는 엘리엇의 시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을 투덜거리게 한다. 엘리엇은 이 시를 통해 무기력한 삶에 대한 리드미컬한 불평을 늘어놓는 것이다.

 

 

 

 

 

 

 

 

 

 

 

 

 

 

 

 

 

 

 

 

핀천의 첫 번째 작품인 단편 「이슬비」는 엘리엇의 『황무지』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1984년에 「이슬비」를 포함한 1950, 60년대에 발표한 초기작들을 수록한 소설집 『느리게 배우는 사람』 서문에 핀천은 「이슬비」를 집필하면서 『황무지』와 헤밍웨이의 『무기여 잘 있거라』를 참조했다고 밝혔다. 그래서 「이슬비」는 『황무지』와 같이 읽어야 처음에 느끼지 못했던 핀천과 엘리엇의 문학적 매력을 동시에 맛 볼 수 있다. 아, 그 대신 『황무지』를 먼저 읽어야하고, 이 시에 대한 여러 가지 해석까지도 찾아보는 꼼꼼한 독서를 해야 한다. 그리고 핀천이 쓴 서문을 먼저 읽은 다음에 「이슬비」로 본론으로 들어간다. 마지막으로 해설을 읽으면 된다. 작품의 스포일러를 원하지 않는다면 ‘「이슬비」→ 서문 → 작가 해설’ 순서로 읽어도 된다.

 

「이슬비」의 이야기는 단조롭다. 일반적으로 재미있는 소설에 나오는 흥미진진한 위기와 절정으로 이루어지는 특별한 장면이 없기 때문이다. 군 특수병과 소속의 상병 러바인의 평범한 일상을 그려냈을 뿐이다. 이 작품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라면 허리케인이 휩쓸고 지나간 뉴올리언스에 파견되어 시체들을 인양하는 작업에 나서는 러바인의 모습이다. 이 끔찍한 장면을 제외하면, 러바인의 일상을 무덤덤하게 전개되고, 소설 제목을 의식한 듯 하늘이 흐려지고 간간이 비가 내리는 날씨를 묘사한 문장이 많다.

 

핀천은 첫 소설인 「이슬비」를 “되도록 문학적으로 써라”라는 신조를 믿고 글을 썼다고 한다. 그러나 1984년에 쓴 서문에서 그 문학적 신조가 「이슬비」를 미흡한 데뷔작으로 만들어버린 나쁜 충고였다고 후회했다. 핀천은 「이슬비」를 최대한 문학적인 느낌을 살려서 쓰려고 엘리엇과 헤밍웨이의 작품에서 인용한 것을 집어넣었다. 핀천 본인은 이 데뷔작이 결함이 눈에 보일 정도로 서투른 초보 작가의 티가 난다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이러한 집필 방식 덕분에 소설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 만약에 핀천이 기성작가 반열에 오르면서 생긴 명예를 좇았다면, 1984년에 쓴 서문에서 자신의 데뷔작이 엘리엇과 헤밍웨이를 어설프게 참고했다고 고백하지 않았을 것이다. (1984년은 『중력의 무지개』의 성공으로 핀천의 문학성이 인정받고 있었던 시기다) 핀천의 서문 덕분에 「이슬비」가 문학적으로 쓰인 좋은 작품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슬비」의 러바인은 폐쇄적인 군대 생활에 익숙해져 살아가는 즐거움을 찾지 못하는 무기력한 인물이면서도, 더 나아가 ‘죽음’이라는 운명을 두려워하는 평범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핀천은 「이슬비」의 등장인물들이 완곡어법이나 상스러운 농담으로 죽음을 회피한다고 평가했다. 그가 알려준 대로 소설을 다시 읽어보면, 핀천이 의도한 장면을 발견할 수 있다.

 

 "나는 말이야." 러바인이 읽던 책을 배 위에 엎어놓고 말했다. "가끔 도시로 돌아갔으면 할 때가 있어. 그런데 막상 가면 별로야."
 "왜 별로일까?" 피크닉이 물었다. "난 이런 쓰레기 같은 일을 하느니 차라리 지금이라도 학교로 돌아가는 게 낫겠어."
 "아니야." 러바인이 찡그리며 말했다. "돌아가지 않는 게 나아. 그저 한번 돌아가본 일이 기억나. 어떤 계집애한테였지. 그런데 역시 별로였어."
 "그래." 피크닉이 말했다. "넌 나한테 말한 적이 있어. 돌아가야 했다고. 나도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 막사에 돌아가 잠이나 자게."
 "잠은 어디서든 잘 수 있어." 러바인이 말했다. "난 그래." (51~52쪽)

 

러바인은 지루한 군대를 벗어나 자유로운 도시 생활을 꿈꾼다. 군인이 되기 전에 도시에 생활했던 시절로 되돌아가고 싶지만, 이를 스스로 부정한다. 현재가 싫어서 과거를 그리워하고 되돌아가고 싶은 인간의 심리 속에 죽음으로 종착하는 인생의 순리를 거부하려는 마음이 내포되어 있다. 하지만, 러바인은 그립고 행복했던 시절로 되돌아갈 수 없음을 깨달으며 인간의 운명을 묵묵히 받아들인다. 동료 피크닉은 다시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차라리 막사로 돌아가서 잠이나 편안하게 잤으면 한다고 농담을 한다. 그러자 러바인은 잠은 어디서든 잘 수 있다고 말한다.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잠과 죽음의 형제」  1874년

 

 

여기서 말하는 잠은 피크닉이 원하는 편안한 수면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러바인이 생각하는 잠은 어디서든 우리 곁으로 다가오는 ‘죽음’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죽음을 영원한 잠이라고 생각했다. 고대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히프노스(Hypnos)는 잠의 신으로, 죽음의 신 타나토스(Thanatos)의 쌍둥이 형제다. 잠은 ‘작은 죽음’이다.

 

러바인은 시체 인양 작업을 하면서 끔찍하게 부패된 시체를 본다. 죽음은 평범한 삶을 언제 어디서 급습하게 될지 알 수 없는 무시무시한 종말이다. 러바인도 언젠가는 죽게 되는 인간이다. 우울함과 불안감을 떨쳐내기 위해 러바인은 인적이 드문 늪에 버려진 집에 리틀 버터컵이라는 금발 여인과 섹스를 한다. 쾌락이 주는 흥분에 외치는 두 사람의 성(性)스러운 장면은 개구리들이 야만스럽게 울어대는 소리와 중첩되어 묘사한다. 

 

사방의 개구리들은 갈수록 야만적인 합창을 주문 외우듯 읊조렸다. (중략) 개구리의 울음은 작은 숨소리와 외침으로 이루어진 거장의 이중주를 위한 건반 베이스로 바뀌었다. (73쪽)

 

 

그러나 섹스가 주는 쾌락은 죽음의 공포를 회피하는 방법이 될 수 없다. 즐거운 흥분을 감돌게 하여 죽음의 공포를 잠시 잊게 만드는 마취에 불과하다. 엘리엇의 『황무지』에서도 절망적인 상황을 벗어나고자 육체적 쾌락에 탐닉하는 현대인을 묘사하고 있다.

 

 

 

나이팅게일의 맑은 목청으로
온 황야를 채우지만,
세상 사람들은 여전히 그 짓을 계속한다.
그 울음은 더러운 귀에 '젹 젹'(Jug Jug) 소리로 들릴 뿐.

 

(엘리엇 『황무지』 2부 체스 놀이, 64쪽)

 

 

쾌감 절정으로 향하는 사람들의 귀에는 시끄럽게 울어대는 개구리 울음소리, 맑은 소리를 내는 나이팅게일의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오직 그들이 내는 야릇한 신음소리와 거친 숨소리만 들릴 뿐이다. 황홀한 쾌락은 남녀 두 사람 모두를 기분 최고조에 이르게 한다. 하지만, 고작 몇 분도 안 되는 절정이 지나면 원래 상태로 되돌아간다. 흥분 상태가 급격히 가라앉는 ‘현자 상태’에 이른다. 섹스를 끝마친 러바인은 숙명적인 절망을 극복할 수 없음을 느끼게 되고, 두려움과 허무함을 애써 잊기 위해 말장난을 한다. 잡지의 제목 '라이프'를 가지고 죽음의 신이 내뻗는 손길을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의 운명을 반어적으로 표현한다.

 

 

"커다란 죽음의 한가운데에." 러바인이 말했다. "작은 죽음이 있다." 그러고는 조금 있다가 말했다. "하, <라이프>지의 사진 설명 같네. '삶'의 한가운데. 우리는 죽음 속에 있다. 오, 맙소사." (73쪽)

 

 

인간은 ‘작은 죽음’인 잠을 평생 수만 번 이상 자고 나면, 영원히 잠드는 ‘죽음’이 다가온다. 또는 ‘작은 죽음’을 취하다가, 저승사자가 부르는 대로 한순간에 지옥으로 갈 수도 있다. 이렇듯, 러바인의 표현처럼 우리는 죽음 속에 있다. 그것도 너무 가까이에. 오, 맙소사! 우리의 삶은 점점 죽어가는 과정에 있다.

 

 

먼 산을 넘어오는 봄 천둥의 울림
살아 있던 그는 지금 죽었고
살아 있던 우리는 지금 죽어 간다
약간씩 견디어 내면서

 

(엘리엇 『황무지』 5부 천둥이 한 말, 102쪽)

 

 

소설 마지막에 러바인의 동료 리조는 헤밍웨이와 엘리엇을 언급한다. 자신의 데뷔작에 영향을 준 선배 작가들에 대해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은 신인 작가의 재치 있는 묘사이다. 러바인의 동료들은 지긋지긋하게 내리는 비가 싫다고 말하지만, 리조는 뜬금없이 엘리엇은 비를 좋아한다고 말한다.

 

리조가 말했다. "T.S. 엘리엇은 비를 좋아해." 러바인은 한쪽 어깨에 가방을 둘러멨다. "이런 식이면 비는 아주 섬뜩해." 그가 말했다. "이런 비라면 둔한 뿌리를 흔들다 못해 갈기갈기 찢어놓을 수도 있고, 쓸어버릴 수도 있어." (74쪽)

 

그러나 러바인은 비를 섬뜩한 존재로 인식한다. 핀천은 이러한 러바인의 냉정적인 어조를 통해 인류를 구원하는 일말의 희망도 찾을 수 없음을 암시한다. 즉, 황폐되고 절망적인 삶을 투덜거리는 엘리엇의 불평에 동조하는 것이다.

 

 

번쩍하는 번개 속에서. 그러자 비를 몰아오는
일진(一陳)의 습풍(濕風)

 

(엘리엇 『황무지』 5부 천둥이 한 말, 112쪽)

 

 

천둥은 비를 부른다.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 내고 /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엘리엇 『황무지』 1부 죽은 자의 매장, 46쪽) 풍요를 약속하는 구원의 상징이다. 하지만, 천둥은 모든 것을 파괴시키고, 불태워버리는 신의 분노와 같다. 비는 메마른 지대를 촉촉이 적셔주고, 목을 축일 수 있는 강물을 만들어주지만, 너무 많으면 모든 것을 휩쓸어버리는 태풍과 홍수가 되기도 한다. 천둥과 비를 바라보는 인류의 이중적인 인식. 리조는 삶에 구원이 찾아올 것이라고 믿는 낙관적인 인간이라면, 러바인은 엘리엇처럼 구원에 대한 희망을 찾지 않으려는 비관적인 인간이다.

 

「이슬비」는 결말에 세차게 비가 내리는 장면으로 끝난다. 그리고 러바인은 잠을 잔다. 반복되는 ‘작은 죽음’을 통해 잠시나마 혼란스러운 마음을 잊으려고 한다. 「이슬비」를 텍스트 자체를 그대로 읽는다면, 별 것 아닌 문장과 대화로 이루어진 어색한 소설처럼 보이게 된다. 그러나 핀천은 처음으로 쓰기 시작한 이 소설에 문학적으로 쓰려고 노력했다. 신인 작가로서의 열정이 느껴진다. 핀천 본인은 이 데뷔작에 대해서 어설프게 느껴지는 자신의 서투른 솜씨에 대해 불평하고 있지만, 이 작품 속에 젊은 핀천의 “인생에 대한 개인적인, 리듬감 있게 늘어놓는 불평”이 잘 드러나고 있다. 그는 분명히 문학적으로 좋은 작품을 쓰는데 성공했다. 

 

 

 

 

P.s 핀천과 엘리엇을 같이 읽으면서 느낀 시시콜콜한 사실. 두 사람의 First name이 같다. 토머스 핀천, 토머스 스턴스 엘리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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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7년 전에 나온 인류의 미래에 대한 전망론 중 하나를 소개하겠다. 영국 런던경제학교의 진화학자 올리버 커리는 앞으로 10만년 뒤 인간은 지능이 뛰어나고 잘생긴 엘리트 집단과 키가 작고 괴물처럼 생긴 저능한 집단 2종류로 발전해 나갈 것이라고 예견했다. 커리는 배우자들이 짝을 찾는 습성과 운동량, 사회적 습관 등을 근거로 이와 같은 결론을 내렸다. 똑똑한 사람은 자신처럼 지능이 높거나 혹은 더 높은 배우자를 찾으며, 본성을 추가하면 신체적으로도 건장한 사람을 배우자로 찾게 돼 결국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극명하게 발전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리고 인간은 3000년쯤 되면 키가 190cm로 훌쩍 커지게 되고, 수명도 120살까지 살 수 있을 것으로 봤다. 오늘날 기준으로 치면 분명 거인 족이고 초장수족이다. 쥘 베른의 『지구 속 여행』(열림원, 2007년)에 나오는 인류의 조상 거인 족의 모습으로 회귀하는 것이다.

 

무척 흥미로우면서도 공허한 느낌을 주는 전망이다. 1000년 후, 나아가 10만년 후의 인류는 어떤 모습일까에 관한 예측. 말이 1000년이요 10만년이지, 오래 살아봐야 70∼80살인 보통 사람들에게는 가히 측량불가의 세월이다. 다만 호기심이 발동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결국 그것은 후손들의 모습이자 인간이라는 종(種)의 자화상이기 때문이다.

 

인체 이해 수준이 높아지고, 의학 등 과학기술이 크게 발달한다면 커리의 예견처럼 인류는 점점 더 신체와 지능이 뛰어난 동물이 될 것이다. 하지만 장밋빛 전망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과학기술과 의학에 대한 과잉 의존으로 면역체계가 약화되고 육체는 쇠약해질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도 있다. 이만 해도 찜찜한데 인류가 2종류로 양분되는 인간 세상이 무섭게 느껴진다. 내 후손이 장신에 건강하고 창조적인 인간이 될 것인지 아니면 그와 정반대가 될 것인지 자못 궁금하기도 하다. 웰스의 『타임머신』에 나오는 시간여행자라면 커리의 예견이 무척 궁금해서 당장 자신의 타임머신을 타고 10만년 후의 세계로 떠났을 것이다. 시간여행자는 802701년의 인류를 만났다. 그는 타임머신을 타기 전에는 8만년 후의 인류는 자신이 살던 시대보다 모든 면에서 진보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실제로 가 본 8만년 후의 세계는 무척 암울했다. 인류는 엘로이와 몰록, 두 종족만 살고 있을 뿐이었다. 엘로이는 지상, 몰록은 지하에 사는 종족인데 전자를 부르주아, 후자를 프롤레타리아로 비유하기도 한다. 지능은 전 시대보다 떨어졌지만 순한 성격의 엘로이는 똑똑한 수준의 인간 집단이라면, 엘로이를 잡아먹는 난폭한 몰록은 저능한 인간 집단이다. 웰스는 이미 2종류로 나누어 발전된 인류의 모습과 그 시대를 묘사했다.

 

시간여행자는 몰록이 감춰 놓은 타임머신을 타고 그곳을 탈출하는데 성공한다. 이번에는 더 먼 미래로 갔다. 그곳은 인간이 존재하지 않는다. 파도도 없고 달의 흔적도 없는데 일식이 일어나고, 세상은 침묵뿐이다. 이야기를 마치고 다시 시간 여행자는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 여행을 떠난다.

 

웰스의 『타임머신』과 함께 언급되고 비교하는 작품이 윌리엄 모리스의 『에코토피아 뉴스』(필맥, 2008년)이다. 원제는 News from Nowhere, 우리말로 풀이하면 '유토피아에서 온 소식'이다. 국내에선 생소한 작품이지만, 유토피아 문학을 소개할 때 자주 언급된다. 이 소설은 1891년에 발표되었다. 4년 뒤에 웰스가 『타임머신』을 발표했다. 『에코토피아 뉴스』의 부제는 '유토피아 로망스 중 평안의 시대'이다. 소설의 주인공 윌리엄(소설을 쓴 저자의 분신)은 사회주의자동맹 모임에서 미래사회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인 뒤 귀가한다. 윌리엄은 잠을 자다가 꿈속에서 2050년대의 런던 템스 강 근처에서 일어난다. 이때부터 새로운 유토피아 세계를 경험한다.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이 존재하지 않으며, 그곳 사람들은 땀 흘리는 노동을 즐거움으로 여긴다. 그뿐만 아니라 학교와 교육 제도도 없다.

 

"아이들은 여름에 종종 무리를 지어 숲에 와서, 보시다시피 텐트에서 함께 몇주일씩 놀며 보냅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그렇게 하도록 장려하지요. 그들은 스스로 사는 법을 배우고, 야생의 생물들을 관찰합니다. 아시다시피 아이들은 집안에 틀어박혀 있는 시간이 적으면 적을수록 좋습니다." (62쪽)

 

 

"보통 아이들은 15세 정도가 되기 전까지는 두세 가지 이야기책을 읽는 것 외에는 많은 책을 읽지 않습니다. 우리는 아이들이 일찍 책을 좋아하도록 권장하지 않습니다. (중략) 아시다시피 아이들은 대부분 그들의 어른을 닮는 경향이 있고, 대부분의 주위 어른들이 건축, 도로 포장, 정원 가꾸기와 같은 일을 마음으로부터 즐겁게 하는 것을 보게 되면 그것이야말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책을 통한 공부를 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고 해서 우리가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67~68쪽)

 

미래의 런던은 기계가 가득한 차가운 금속의 세상이 아닌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잘 사는 목가적 세상이다. 모리스는 이 소설을 통해 자본과 기계에 종속되어가는 자본주의 사회를 비판하고 있지만, 마르크스의 공산주의와 관련이 없다. 모리스가 『에코토피아 뉴스』를 통해 보여주고 싶은 사회주의 세상은 민주적 사회주의에 가깝다. 미래의 런던은 자유와 자치가 인정되며 모트하우스라는 곳에서 공적인 문제를 토의하는 집회가 열린다. 이것은 고대 그리스의 직접민주주의를 상징하는 아고라(agora)를 연상시킨다.

 

모리스의 진보적 사회주의는 페이비언 협회(Fabian Society)에 가입한 웰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웰스는 이미 20살에 모리스의 집에 열린 사회주의자 모임에 참석했다. 모리스처럼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변할 수 있는 진보의 힘을 믿었고, 바꾸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웰스는 모리스처럼 미래를 낙관적으로 보지 않았다. 『타임머신』의 8만년 후의 세계는 『에코토피아 뉴스』에 나오는 미래의 런던이 너무 평화롭게 느낄 정도로 암울하다. 오히려 인류의 계급 갈등이 심화된 문명이 퇴보된 세계이다.

 

 

 

 

 

 

 

 

 

 

 

 

 

 

 

 

이러한 웰스의 미래 세계관은 1897년에 발표한 『다가올 그날의 이야기』(초록달, 2014년)에서도 보여준다. 22세기 런던을 묘사하는데 마천루가 늘어나고, 전기가 발달한 편리한 세상이다. 그 곳 사람들은 굶거나 일자리가 없어서 고민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단점이라면 계속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한며 빈부 격차가 심하다. 『다가올 그날의 이야기』는  미래 도시에 사는 엘로이와 몰록을 재현하고 있다.

 

그렇다면 웰스는 모리스의 사회주의가 절대로 실현될 수 없는 이념이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절대로 그렇지 않다. 그는 사회주의가 완전히 틀렸다고 보지 않았다. 그가 가입한 협회의 이름인 페이비언은 'Fabian'은 '점진적인', '신중한'이라는 형용사에서 유래되었다. 웰스는 점진적인 개혁을 믿었고, 페이비언 사회주의의 원칙대로 평화적인 방법으로 사회를 개혁하고 싶었다. 비록 초창기 페이비언 협회의 규모가 크지 않은데다가 사회주의를 비판하는 여론이 점차적으로 늘어났지만, 웰스는 글쓰기를 통한 사회주의 전파를 포기하지 않았다.

 

 

 

 

 

 

 

 

 

 

 

 

 

 

 

 

점진적 사회개혁에 대한 애착은 『타임머신』이 나오고 다음 해에 발표한 단편 『현미경 아래의 슬라이드』에서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이 소설의 주인공 힐은 사회주의자이자 대학 생물학과 소속 학생이다. 그는 생물학 실험실에서 자신의 동료 학생들에게 책을 무료로 대여해준다. 그 책이 바로 모리스가 쓴 것이다. 단편에서는 책 제목이 언급되지 않았지만, 그 책이 『에코토피아 뉴스』라는 점을 짐작할 수 있다. 『에코토피아 뉴스』의 주인공 모리스가 작가 윌리엄 모리스의 분신이라면, 『현미경 아래의 슬라이드』의 주인공 힐은 한창 사회주의에 관심이 많은 젊은 웰스의 분신이다.

 

웰스는 사회주의자로 살았지만, 인류 문명에 대한 비관론도 견지하고 있었다. 특히 두 차례 세계 대전을 목격한 이후부터 그의 비관론적 시각은 뚜렷해졌다. 젊은 시절에 웰스의 머리에 조그만 뿌리로 시작한 미래 비관론은 과학기술의 힘이 총동원된 두 번의 전쟁 기간을 지나면서 거대한 생각의 나무가 되었다. 미래 비관론의 뿌리가 이제 막 웰스의 두뇌 속로 뻗기 시작한 시기에 『타임머신』이 나왔다. 웰스가 습득한 과학 지식은 미래 비관론의 뿌리를 자라게 만드는 영영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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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왜 알면서도(?) 얼척없는 오역에 빠질까?
    from 마음―몸―시공간 Mind―Body―Spacetime 2014-12-19 12:00 
    윗글에서 cyrus 님이 인용한 『에코토피아 뉴스』(윌리엄 모리스 지음, 박홍규 옮김, 필맥, 2008)의 구절들을 그대로 재인용해 봅니다. 번역문 가운데 이해가 안 되는 의아한 부분이 있어서요. 그걸 cyrus 님한테 물어도 보고싶고요. [밑줄은 인용자] ===================================== "아이들은 여름에 종종 무리를 지어 숲에 와서, 보시다시피 텐트에서 함께 몇주일씩 놀며 보냅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그렇게
 
 
 

 

 

도서정가제가 적용되는 날까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디데이가 다가올수록 책을 팔려는 출판사와 책을 사려는 독자의 마음은 심란하다. 출판사는 창고에 남은 재고를 팔기 위해서 할인 행사를 진행하고, 독자는 반값 할인의 마지막 혜택을 누리려고 지갑은 연다. 그러기 위해서 책을 싸게 살 수 있는 온라인 서점 혹은 출판사 이벤트 정보를 놓치지 않는다. SNS 독서 관련 커뮤니티에 간혹 책을 싸게 사는 곳을 알려달라는 글이 보인다. 지금 독자들은 책 살 돈은 없어도 이런 마지막 기회를 그냥 팔짱 낀 채 보고 있을 수 없을 것이다. 도서정가제가 도입되면 낮은 할인율이 적용된 가격으로 책을 사야 하므로 지금이야말로 싸게 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마치 지구가 종말을 앞두는 모습 같다. 1910년에 핼리 혜성의 꼬리가 지구를 스친다는 관측이 알려졌을 때, 전 세계는 공포와 충격에 휩싸였다. 당시 혜성의 꼬리에 치명적인 독가스가 있다는 잘못된 소문까지 떠돌게 되었다. 종말론이 확산하자 사람들은 죽기 전까지 돈을 마음껏 쓰고 다녔다. 지구가 사라진다면 돈 쓸 일이 없어지기 때문에 남은 돈으로 하고 싶은 일에 다 썼다. 그러나 혜성의 꼬리가 지구를 스쳐 지나간 날, 지구는 어제처럼 평온했다.

 

지금 ‘도서정가제’라는 혜성이 다가온다. 벌써 도서정가제 도입 이후의 상황에 대해서 독자와 출판사는 걱정과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도서정가제를 도입하면 책을 구매하지 않으려는 독자들의 불만이 많아졌다. 도서정가제 도입을 앞두고 출판사들의 할인 행사에 책을 사들이는 우리 독자들의 모습이 지구 종말이 두려워서 어떻게든 돈을 쓰고 보는 사람들과 같다. 그렇다고 나 또한 출판사의 할인 행사 경쟁에 관심 없는 것은 아니다. 예전부터 살려고 찜을 해둔 책을 미리 사뒀다. 다만, 지름신의 유혹을 달래고 있을 뿐이다. 책을 많이 사 놓고, 안 읽은 채 서가에 그냥 방치한다면 자칫 돈 낭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내일 지구가 멸망하다 해도 오늘은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스피노자의 마음으로 지름신의 유혹에 굴복하지 않으려고 절제한다. 내일 도서정가제가 도입해도 오늘은 책을 읽겠다는 마음으로 예전에 사 놓은 책을 읽거나 책을 살 것이다. 아니면 좋은 책을 싸게 살 수 있는 헌책방에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생각이다.

 

지난주부터 반값 할인이 적용되는 책 중에 무얼 살까 고민을 많이 했다. 내가 아직 월급을 받는 경제적 활동을 시작하지 않은데다가 모은 적립금 액수도 많지 않기 때문에 신중하게 골라야 했다. 가끔 출판사 대형 창고에 진행되는 할인 판매 행사에 무려 책을 열권씩이나 사서 인증 사진을 올리는 애서가들을 보면 부럽기도 하다. 그렇지만, 경제적 수준을 고려해서 분에 넘치지 않을 정도로 구매하는 것이 더 낫다. 영화 ‘아저씨’의 원빈의 명대사를 약간 변형해서 빌리자면 나는 오늘만 책 사는 놈이 아니다. 난 내일도 책 사는 놈이다. 그리고 내일을 위해서 책을 읽는다. 오래 두고 읽을 수 있는, 나중에 헌책방에 팔게 되는 후회를 하지 않으려고 신중하게 책을 골랐다.

 

 

 

 

 

 

출판사들의 반값 할인 판매 대열에 내가 처음으로 산 책은 토머스 핀천의 『중력의 무지개』 세트(새물결, 2012년)다. 책이 나올 당시에 세트 가격이 무려 99000원으로 책정되어 독자들의 원성이 빗발쳤던 문제작이다. 새물결 출판사 반값 할인 이벤트 덕분에 현재 49500원으로 살 수 있다. 그런데 아무리 반값 할인이 적용되었다 해도 나처럼 이 책을 사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다. 사실 49500원 정도면 반값 할인이 적용된 2만 원 가격의 책을 두 권이나 살 수 있는 가격이다. 이보다 더 싸게 살 수 있는 책의 소식이 많아지고 있는 지금의 상황을 생각한다면 두 권으로 된 책을 5만 원에 가까운 가격으로 사는 것은 ‘호갱’에 가까운 구매일 것이다. 게다가 핀천이라면 쉽게 읽을 수 있는 작가가 아니다. 그렇지만, 예전에 핀천의 명성을 독서 고수들에게서 익히 들어본 터라 사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특히 『중력의 무지개』는 『V.』와 『제49호 품목의 경매』(민음사, 2007년)와 함께 피터 박스올 추천도서 목록에 포함되어 있어서 이번 기회에 핀천의 작품 세계에 겁 없이 도전(?)하고 싶었다.

 

내가 아는 독서 고수 중에 핀천의 소설을 읽은 분이 있다. 그분은 민음사에 출판되어 현재까지 고가로 거래되는 초 레어템 『V.』를 가지고 있을 정도로, 핀천의 작품 세계에 익숙한 경지에 이르렀다. 핀천을 이해하려면 그의 작품을 연구한 학술논문도 읽어야 한다고 말한 적도 있었다. 핀천은 돈 드릴로, 코맥 매카시, 필립 로스와 함께 미국 현대문학을 이끌고 있는 4대 작가로 거론되고, 노벨 문학상 후보에도 언급될 정도로 평가를 받고 있지만, 유독 우리나라에서는 독자가 쉽게 친해지기 어려운 작가다. J.D. 샐린저처럼 핀천도 자신에 관한 모든 것이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기를 꺼린다. 뉴욕에 사는 것으로 추정될 뿐 어디에 사는지 확인되지 않고 있고, 일절 인터뷰를 하지 않고 사진 촬영도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문학성은 이미 동료, 후배 작가들로부터 인정받고 있으며 (작품의 난해성으로 인해 호불호의 평가가 있지만) 대중적으로 성공했다. 『중력의 무지개』를 독일어로 번역했고, 2004년에 노벨 문학상을 받은 엘프리데 옐리네크가 핀천도 못 받은 노벨상을 본인이 받게 된 것이 우습다고 말할 정도다. 읽기 어려운 작품으로 알려진 『중력의 무지개』가 전미도서상을 받았고, 퓰리처 상 수상자로 선정될 뻔했으니 어마어마한 이력을 가진 작품이다.

 

핀천이 비밀로 가득한 은둔 작가라서 대중의 이목이 쏠리는 노벨상을 받을 확률은 희박하다. 그렇지만, 아무리 적중률 높은 세계의 도박사들도 100% 맞추기 어려워하는 것이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이다. 수상 유력 확률이 너무 낮은 핀천이 절대로 노벨상을 받지 못할 거라고 장담할 수 없다. 파트릭 모다이노처럼 깜짝 수상이 나올지도 모른다. 그래서 『중력의 무지개』를 구입했으니 핀천의 문학 세계를 믿고 독서를 할 생각이다.

 

핀천의 작품을 발표 연도순으로 읽고 있다. 핀천의 초기작을 모은 단편집 『느리게 배우는 사람』(창비, 2014년)으로 시작해서 『제49호 품목의 경매』『중력의 무지개』 순으로 읽을 예정이다.  『V.』는 핀천의 첫 번째 장편인데 몇 년 전부터 민음사에서 다시 번역 출간한다는 소식이 있었으나 현재 깜깜무소식이다. 『V.』는 학원사와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는데 두 책 다 비싼 가격으로 온라인 중고샵에 나오고 있다. 『V.』 재출간 소식을 믿고 레어템을 사지 않았는데 좀 더 기다려야 봐야 할 것 같다.

 

 

 

 

 

 

 

 

 

 

 

 

 

 

 

 

 

 

 

 

 

 

 

 

 

(장편)
V. (1963년)
제49호 품목의 경매 ※ The Crying of Lot 49 (1966년)
중력의 무지개 ※ Gravity's Rainbow (1973년)

 

 

 

 

 

 

 

 

 

 

 

 

 

 

(단편)
이슬비 ※ The Small Rain (1959년)
로우 랜드 ※ Low-lands (1960년)
엔트로피 ※ Entropy (1960년)
언더 더 로즈 ※ Under the Rose (1961년)
은밀한 통합 ※ The Secret Integration (1964년)

 

 

출판사는 『중력의 무지개』 번역 기간과 비용에 상당액이 투자되었고, 작가 지명도에 비해 대중성이 적다고 판단해 700부만 인쇄했다고 밝혔다. 700부 한정판으로 나왔는데 아마도 구매자가 많지 않을 것이다. 무시무시한 가격이 아니었다면 한정 인쇄본이 동났을지도 모른다. 핀천이 국내에 인지도가 낮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의 명성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는 마니아 독자는 꽤 있다. 많은 노력을 들어간 책을 대중성이 낮다고 자인하는 출판사의 변은 ‘이 책은 많이 팔지 못할 것이다’라고 책을 팔기 전부터 백기를 드는 꼴이다. 책을 많이 팔아서 생기는 수익도 중요하지만, 책의 가치를 독자에게 널리 알리려는 도전 정신이 없다면 출판사의 진정한 역할을 잊은 것과 같다. 출판사는 책을 수익이 되는 돈을 발굴하듯이 만들면 안 된다. 출판 여건이 어렵더라도 독자에게 떳떳하게 인정받을 가치가 있는 작가와 작품을 골라야 한다. 그것이 바로 ‘독자에게 사랑받는 좋은 책’이 될 수 있다. 나 같은 내일도 책을 사는 놈을 위해서 출판사들은 도서정가제에 크게 위축되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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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16 18: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6-10-01 16:23   좋아요 0 | URL
잘 안 읽혀도 천천히 읽어보세요. 서평 작성 기간이 짧은 게 흠이지만, 철학을 이해하려면 천천히 읽을 수밖에 없어요. ^^
 
펭귄클래식 6
프란츠 카프카 지음, 홍성광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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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1-302] 성

 

 

 

 

‘내가 아무런 목적도 없이 그냥 어쩌다 이곳에 서 있는 거라면 약간 절망적인 경우가 되겠지.’ 문득 이런 생각이 K에게 떠올랐다. (프란츠 카프카 『성』, 26쪽)

 

 

 

카프카가 구축한 ‘성’의 세계는 그다지 아름답지 않다. 근거를 알 수 없는 어떤 힘이 무력한 인간들을 지배하고 고립과 단절, 절망이 퍼져 있다. 주인공인 K는 정부의 측량기사로 일하게 되어 성 아랫마을에 도착했다. 그러나 성에 들어가는 것도, 마을에 머무는 것도 허락되지 않는 곤경에 빠진다. 이 수수께끼 같은 상황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던 K는 결국 어떤 단서도 찾지 못한다. 환상적인 성의 풍경 이면에는 이 같은 악몽이 숨어 있었던 것일까?

 

이처럼 상징으로 가득한 작품을 한 가지 주제로 이해하는 것은 위험스럽지만, K의 상황이 당시 사회의 심각한 관료주의와 그 폐해를 풍자하고 있다는 해석도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다. 요행히 성에 들어간 K가 우연히 민원서류들이 무너질 정도로 높이 쌓인 채 방치되고 있는 장면을 목격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그야말로 한 인간의 생사가 달린 절실한 문제들조차 서류철 속에 사장되고 있는 끔찍한 광경은 우리를 놀라게 하고 좌절시킨다.

 

작품에서 주인공이 단지 K라고만 불린다. 그것은 K가 맞서는 관료조직 속에서 그가 어떤 의미 있는 존재가 아닌 하나의 의미 없는 단순한 기호 K로서 존재할 뿐이다. K는 자신의 생존을 위해 절박한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성에서는 절박한 개인의 사정은 행정 처리에 있어 고려의 요소가 되지 않았다.

 

이것이 비단 작가가 경험한 현실만은 아니라는 것이 '성'의 핵심 주제일 것이다. 근대국가에서 공무를 수행하는 관료는 존재할 수밖에 없고, 법과 절차의 이름으로 진행되는 모든 일에 서류가 필요한 것도 어쩔 수 없다. 관료제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K의 운명은 모든 시민의 운명이 될 수 있다는 데 그 끔찍함이 있다.

 

관료제는 대단히 합리적이고 체계적이지만, 그 조직 속의 각 개인은 거대조직 내에서 급격히 무의미해지고, 단순히 비인격적인 기계의 톱니바퀴로 전락하게 된다. 막스 베버는 개인의 삶이 규제와 관리적 억압이라는 철창 속에서 이루어지게 된다고 분석했다. 그리고 그러한 관료조직 속에서 인간 삶의 무의미함을 잘 보여주는 가장 위대한 작가가 바로 카프카다. 베버가 당시 관료제의 모습을 이론적으로 고찰했다면 카프카는 관료제의 모습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했다.

 

카프카의 작품은 그 시대 점증하는 관료화에 대한 불안을 극적으로 표현했다고 평가받고 있지만, 이것으로 다 해석되는 것은 아니다. 그의 작품은 압축적이고 따라서 폭넓게 해석될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하나의 거대한 미로와 같다. 카프카 작품의 주인공들은 미로와 같은 세계를 헤맨다. 『소송』의 주인공 요제프 K는 자신의 서른 살 생일 아침 돌연 죄명도 모른 채 낯모르는 사나이들에게 체포되어 무언지도 모르는 소송 때문에 1년 동안 동분서주 고민하다가 서른한 번째 생일 전날 밤에 의문의 죽음을 맞는다. 느닷없는 사건 속에 던져져 당황하고, 자신의 힘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상황 속을 맴돌다가 영문도 모르고 사라져 간다. 그들에게는 탈출구가 없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카프카의 소설 자체도 뭐가 뭔지 제대로 모르겠고, 이해를 돕기 위해 읽어본 해설서도 알듯 모를 듯하다. 카프카의 장편소설, 특히 ‘고독 3부작’(『소송』, 『성』, 『소송』)을 도전하려면 따분함을 참고 끝까지 읽어야 한다. 그러나 한 가지 얻은 것은 있다.카프카는 ‘절망과 불안의 기운이 감도는 미로를 만든 고독의 작가’ 라는 점이다.

 

독자도 K처럼 카프카가 만든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무의미한 미로의 세계에 길을 잃어버리기 쉽다. 심지어 ‘고독의 미로’를 만든 카프카는 테세우스가 크레타의 미궁을 탈출할 수 있도록 몸에다 실을 매준 아리아드네가 되지 못한다. 오히려 미로의 설계자 다이달로스와 같은 상황이 되고 만다. 카프카는 자신이 설치한 'Kafkaeask'(카프카적인) 미로에 갇혀 버린 채 세기말의 문명으로부터 고립된 현대인의 표상이기 때문이다. 절망적인 세계를 벗어나기 위해서 탈출을 시도해보지만, 구원의 날개가 상실된 이카루스의 비극적 운명처럼 카프카는 쓸쓸히 최후를 맞이한다. 날개가 위축된 한 마리의 까마귀(Kafka)에 불과했다. (카프카는 자신과의 대화를 책으로 펴낸 구스타브 야누흐에게 날개가 잘린 까마귀라고 말했다)

 

K가 머무는 마을은 미로로 이루어진 거대한 감옥이다. 마을에서 성으로 통하는 길은 없다. 성으로 통하는 것 같은 마을을 이리저리 돌아서 언제나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올 뿐이다. 성 안에서 헤매는 K를 도와주는 자도 없다. 그가 가까이 오면 마을 사람들은 두려워하거나 철저하게 외면하거나 회피한다. 그의 측량 작업을 도와주기 위해서 찾아온 조수 또한 K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 게다가 조수 예레미아스는 K의 유일한 믿음이자 한때 성의 권력자 클람의 애인이었던 프리다를 호시탐탐 노린다. 그는 K와 프리다 사이를 이간질시키는 행동도 한다. 그렇지만, 프리다 역시 아리아드네 같은 존재가 되지 못했다. K와 프리다를 연결해준 사랑이라는 이름의 실은 마을을 탈출하고 성으로 향할 수 있는 희망의 실이 될 수 없었다. 프리다는 점점 성으로 가기 위한 욕망이 강해지는 K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고, 정작 이곳을 떠나고 싶어 한다. 성의 실체를 알고 싶은 K의 외로운 투쟁이 처량하다. K는 자신이 거대한 감옥에 갇힌 사실을 알면서도 자신을 묶고 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사슬을 끊지 못한다.

 

“예컨대 나는 지금 집에 가죠. 그렇지만 단지 그렇게 보일 뿐이에요. 실제로는 특별히 나를 위해 설치된 감옥으로 올라가는 거예요. 이 감옥은 정말 보통 시민의 집과 유사하고 나를 제외하고는 누구도 감옥으로 인식하지 않기 때문에 더욱 견고하죠. 그 때문에 탈출 시도는 차츰 줄어들죠. 눈에 보이는 사슬이 없다면, 사슬이 끊어질 수 없는 법이에요. 따라서 감금은 아주 평범한 일상의 존재, 지나치게 안락하지는 않은 일상의 존재로 체계화되어 있어요. 모든 것이 튼튼한 재료로 만들어지고 견고한 것처럼 보이죠. 그런데 그것은 지옥으로 추락하는 승강기예요. 사람들은 승강기를 보지 못하죠. 그러나 눈을 감으면, 사람들은 승강기가 자신들 앞에 굉음을 내고 솨솨 소리를 내는 것을 듣게 되죠.” (구스타브 야누흐 『카프카와의 대화』, 문학과지성사 / 129~130쪽)

 

마을 사람들은 성을 알고 싶은 K의 욕망을 알지 못한다. 그들에게는 성은 함부로 범접하거나 거부할 수 없는 무시무시한 권력의 세계다. 마을과 전혀 다른 미지의 세계다. 성의 관리가 내린 명령을 거부하는 것은 권력자를 모독하는 것과 같다. 권력자를 복종하지 않는 자는 살아 있어도 공동체에서 완전히 배제되고 단절된 망자가 된다. 마을 사람들에게는 이런 생활이 평범하게 보일지 몰라도, 보이지 않는 권력자가 만든 사슬로 영원히 자유를 속박한다. 그러나 견고하게 만들어진 사슬이 끊어지더라도, 마을 사람들 그리고 K도 이곳에서 절대로 자유를 쟁취할 수 없다. 그곳은 ‘지옥으로 향하는 승강기’와 같다. 권력의 사슬을 풀고 자유를 갈망하는 자를 기다리는 것은 죽음이나 다름없는 무서운 고독과 절망이다. 지금쯤 성으로 향하는 마을 입구에 가면 이런 글귀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여기 들어오는 너희들은 모든 희망을 버릴지어다.”

(단테 『신곡: 지옥 편』제3곡, 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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