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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탄과 황제 - 1453년 비잔틴 제국 최후의 날, 세계를 바꾼 리더십의 격돌
김형오 지음 / 21세기북스 / 201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1453년 비잔틴 제국이 오스만 제국에 의해 멸망한 사건은 세계사적으로 중요한 전환점을 마련해주었다.
이슬람세력이 서양으로 진출하는 것을 막아주는 방파제 역할을 했고 고대 로마제국을 승계하여
천년 왕국의 위용을 자랑하던 비잔틴 제국의 멸망은 서구 세계의 커다란 충격을 안겨주었고
동양과의 교역로가 차단됨으로 인해 새로운 항로를 찾아나서는 대항해시대를 낳게 만들었다.
이런 세계사적 이정표라 할 수 있는 사건이 있던 바로 그 순간을 마치 직접 그곳에 있었던 것처럼
생생하게 재현해낸 이 책은 저자부터 국회의장을 지낸 인물이라 언제 이런 책을 썼나 하는 놀라움을
안겨 주었다. 서술 형식면에서도 기존의 책들에서 보기 어려운 파격적인 면이 없지 않았는데,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되던 1453년 5월 29일부터 6월 1일까지의 숨 가빴던 순간들과
황제가 남긴 일기를 발견하자 이에 대한 응답으로 비망록을 남긴 술탄의 1453년 4월 2일부터
1453년 5월 29일까지의 치열한 공방전, 그리고 저자가 2012년 5월 29일부터 6월 1일까지
이 책을 쓰기 위한 조사를 이스탄불에서 마무리하던 과정까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비잔틴 제국이 멸망하던 당시의 긴박한 순간들은 사실 저자가 나름 여러 자료들을 바탕으로 고증한
내용에 근거한 일종의 팩션이라 할 수 있었는데, 특히 황제의 일기와 술탄의 비망록은 비잔틴 제국과
오스만 제국의 양측을 대변하는 지도자들의 가상 진술로 마치 현장에 직접 있었던 듯한 느낌을 주었다.
지형적으로도 천연의 요새이고 내성벽과 외성벽, 해자의 삼중으로 된 테오도시우스의 성벽은 왠만해선
무너뜨리기 쉽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오스만 제국의 술탄 메흐메드 2세는 최신식 대포로 무장하여
엄청난 병력으로 콘스탄티노플을 에워싼다. 마치 최근에 영화로 개봉한 김훈의 '남한산성'에서
청나라 대군에게 포위된 조선의 신세를 보는 듯 했는데 절체절명의 상황에 처한 비잔틴 제국의
황제 콘스탄티누스 11세는 교황을 비롯한 서방세계에 구원을 요청하지만 다들 자기 일이 아니어서
무관심하고 중계무역으로 재미를 보던 베네치아나 제노바마저 오스만제국의 눈치를 보며 적극
개입을 꺼린다. 사면초가에 빠진 콘스탄티누스 11세가 가능한 최선의 버티기 전략을 선보이면서
양측의 공방전이 지루하게 이어지자 메흐메드 2세는 함대를 육지를 통해 이동시키는 기상천외한
전략으로 전세를 단숨에 오스만제국쪽으로 기울게 만든다. 책의 서두를 장식했던 1453년 5월 29일부터
6월 1일까지의 총공세와 천년 왕국의 허무한 최후는 씁쓸한 여운을 남겨 주었는데 비록 팩션이지만
저자의 말처럼 마치 종군기자가 된 것처럼 당사의 상황을 여러 자료를 바탕으로 최대한 사실성
있게 재현해낸 저자의 노고에 저절로 경의가 표해졌다. 황제의 일기와 술탄의 비망록이라는 양쪽의
대립된 시각에서 사건을 바라보는 형식도 세련된 면이 있었고 정복 이후에도 상당 부분 종교의 자유
등을 인정해주었던 술탄의 아량이 황제의 일기를 없애지 않고 그에 대응하는 자신의 비망록을 남긴다는
발상으로 이어지지 않았나 싶다. 2012년 5월 29일에서 6월 1일까지 역사의 현장을 둘러보는 얘기로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있는데 좀 아쉬운 점은 비잔틴 제국의 멸앙이 낳은 여러 가지 파장에 대한
분석까지 담아냈다면 세계사적인 사건의 입체적인 재현은 물론 그 원인과 결과까지 좀 더 완성도가
높은 책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럼에도 정치인으로만 알고 있던 저자가 이런 인문학적인 대작을
완성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귀울였다는 사실은 정말 놀라웠는데 정치보다는 차라리 일찌감치
저술가로 활동했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암튼 막연하게만 알고 있었더
1453년 비잔틴 제국의 멸망의 현장으로 시간여행을 하게 해준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