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항 2 버지니아 울프 전집 18
버지니아 울프 지음, 진명희 옮김 / 솔출판사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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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나온 20세기초는 시민혁명과 산업혁명이 어느 정도 정착단계에 이른 시점이지만

여전히 여성에 대한 차별과 편견이 존재하는 시대로 여성에 대한 전통적인 성역할의 요구에서 탈피해

자신의 주관을 가지고 독립적인 삶을 꾸려나가려는 여성들이 막 등장하기 시작한 시점이라 할 수 있다.

저자인 버지니아 울프가 그런 여성을 대표하는 인물이라 할 것인데

이 책에서 자신의 분신과 같은 레이첼이 온실 속의 화초와 같았던 전통적인 여성상에서 벗어나

주체적인 여자로 거듭나기까지의 과정을 그려내고 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순진한(?) 처녀였던 레이첼은 남미로 떠나는 기나긴 여정에서 정글(?)에 내던져진다.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특히 남자와의 관계에 숙맥이던 그녀가

난데없는 기습키스를 당해 트라우마에 시달리기도 하지만

테렌스 휴잇을 만나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차츰 배워나가면서 성숙한 여인으로 거듭나게 된다.

수줍게 사랑을 만들어나가면서 레이첼은 소극적이고 의존적인 여성에서 자기 주관이 생기고

독립적인 여성이 되어 가지만 그녀에게 죽음의 그림자가 찾아오는데...

 

결국 레이첼의 사랑과 성숙한 인간으로서의 성장은 안타까운 죽음으로 끝을 맺고 만다.

제대로 피어보지도 못하고 지는 레이첼의 모습은 당시의 여성들의 모습을 대변하는 게 아닌가 싶다.

기존의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에서의 해방이 시도되기는 하지만

대부분 여전히 높은 세상의 벽에 부딪혀 좌절하게 되는 여자들의 운명을

페미니즘의 기수라 할 수 있는 버지니아 울프가 자신의 처녀작을 통해 어느 정도 표현한 것 같다.

이 책이 나온 지 백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남녀에 대한 고정관념이 존재하는데

어쩌면 편견이나 차별의 관점을 넘어서 서로 다른 점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그런 성숙한 단계로 점차 나아가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물론 너무 낙관적인 생각이라 할 수도 있지만 버지니아 울프가 꿈꾸던 그런 세상에

어느 정도 접근한 것은 분명한 사실인 것 같다. 그녀의 작품을 처음 만났는데 솔직히 녹록하진 않았다.

마치 도저히 알 수 없는 여자의 마음을 엿보는 것 같은 그런 심정이라 할 수 있었는데

그래도 인내심을 가지고 읽어 나가도 보니 어렴풋하게나마 이 책을 통해

버지니아 울프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알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녀의 작품세계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선 다른 작품들을 좀 더 읽어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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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항 1 버지니아 울프 전집 17
버지니아 울프 지음, 진명희 옮김 / 솔출판사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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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를 처음 알게 된 것은 교과서에 실렸던

박인환의 시 '목마와 숙녀'에 그녀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얘기하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는

정신질환을 비관해 강물에 스스로 빠져 자살함으로써 막을 내리게 된다.

그녀의 이름은 그녀의 극적인 인생처럼 유명세를 타게 되지만

정작 그녀의 작품을 제대로 읽어 본 사람은 드물 것 같다.

모더니즘과 페미니즘으로 상징되는 그녀의 작품들을 만날 기회가 없었는데

솔 출판사에서 그녀의 전집을 출간하게 되면서 처녀작인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책 제목처럼 런던에서 남미로 떠나는 배에서부터 얘기가 시작되는데

스물네 살임에도 세상물정도 모르고 순진한(?) 아가씨인 레이첼이

점차 세상에 눈을 뜨기 시작하면서 사랑을 배워가는 과정을 그려가고 있다.

여성 작가 특유의 섬세한 감정표현과 묘사가 돋보이는 반면

사건 중심이 아닌 등장인물들의 내면 심리에 너무 치우치는 감이 있어 사실 집중하기가 쉽지 않았다.

어릴 적에 어머니를 여의고 온실의 화초처럼 자란 레이첼에게 아버지 윌로우비는 사업에만 몰두하고

외숙모인 헬렌이 나름 레이첼을 챙겨주려 하지만 한계가 있었다.

리처드 댈러웨이는 그런 레이첼에게 갑작스런 키스를 하고

난데없이 첫키스를 하게 된 레이첼은 악몽에 시달리는데...

 

버지니아 울프와의 첫 만남은 솔직히 난해한 느낌이 없지 않았다.

데뷔작이라 '의식의 흐름' 기법 등이 등장하지는 않은 것 같았지만

왠만한 집중력을 가지고 책을 보지 않으면 금방 탈선하여

도대체 무슨 내용을 읽고 있었는지 의식을 놓는 상태에 빠지기가 쉬웠는데

그만큼 가독성은 떨어지는 작품이라 할 수 있었다.

마치 전혀 모르는 이성과의 어색한 만남의 시간을 보내는 그런 느낌이라고 할 수 있는데

어색함이 지나치면 정신이 아예 엉뚱한 곳으로 빠지기 십상이어서

계속 딴 생각에 빠지는 정신을 되돌려놓기를 반복해야 했다.

그렇지만 그 당시 여성에 대한 차별이나 여성을 남성과 동등한 하나의 인격으로 대우하지 않는

점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의식은 충분히 잘 표현된 것 같다.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좀 답답한 스타일인(백치미?ㅎ) 레이첼이

테렌스 휴잇과 사랑에 빠지기 시작하는 단계에서 1권이 끝나는데

2권에선 좀 더 흥미로운 전개로 몰입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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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7
조지 오웰 지음, 정회성 옮김 / 민음사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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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농장'과 더불어 조지 오웰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이 작품은

빅 브라더가 지배하는 전체주의 세상에서 살아가는 한 남자를 통해

당시 스탈린이 지배하던 소련을 비롯해 전체주의 국가들을 풍자했다고 하는데

대강의 스토리를 알고 있어 원작을 읽을 생각은 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고전이 그러하듯 이 책도 읽지 않았음에도 읽은 것 같은 느낌과 함께

그다지 찾아 읽고 싶은 생각이 들지는 않아 책장에서 조용히 발효(?) 중이었는데

마침 읽을 신간이 떨어지는 바람에 고히 모셔 두었던 책을 꺼내 읽게 되었다.ㅎ

 

'빅 브라더가 당신을 주시하고 있다'는 포스터로 대변되는 빅 브라더가 지배하는 세상은

텔레스크린으로 모든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과거를 자신들의 입맛대로 조작하는

그야말로 전체주의 독재 국가였다. 구소련이 붕괴된 지금 우리의 북쪽에 있는 나라가

바로 여기에 해당할 것이다. 주인공인 윈스턴은 진리부 기록국에서 일하는 직원인데

해서는 안 되는 일기를 쓰기 시작하면서 빅 브라더의 체제에 의문을 품기 시작한다.

'전쟁은 평화, 자유는 예속, 무지는 힘'이라는 황당한 슬로건을 내건 오세아니아가(세상은

오세아니아, 유라시아, 동아시아로 천하삼분지계가 된 상태임) 항상 전쟁 중이고

철저한 계급사회에 모든 언론을 통제하면서 국민들을 철저히 세뇌시키고 있는 와중에

일탈을 꿈꾸는 윈스턴은 자신처럼 일탈을 꿈꾸던 줄리아의 사랑 고백을 받고

두 사람은 그들만의 아지트에서 밀회를 즐기기 시작한다.

섹스도 오로지 임신을 목적으로 한 경우 이외에는 죄악으로 규정한 체제 아래서

그동안 맛보지 못했던 쾌락을 누리던 윈스턴은 레지스탕스인 형제단의 활동에 참여하며

금서인 '그 책'도 읽게 되지만 결국 사상경찰에 체포되고 만다.

 

제3부에서는 윈스턴이 사상경찰에 체포되어 고문당하면서 빅 브라더를 받아들이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데 인간의 정신을 어떻게 황폐화시키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자신들이 주입하는 애기들을 의심 없이 받아들이고 절대복종하는, 생각을 할 수 없는 인간기계를

만드는 과정을 보면서 절대권력을 누리는 빅 브라더의 진정한 무서움을 실감할 수 있었는데

이런 세상에서 사는 건 전혀 인간다운 삶이 아닌 그야말로 그냥 살아만 있는 거라 할 수 있었다.

빅 브라더를 증오하던 윈스턴을 고문을 통해 빅 브라더를 사랑하게 만드는

어처구니없는 모습을 보면서 소름이 돋고 전율이 이는 충격을 맛볼 수 있었다.

 

1948년에 이 책을 썼던 조지 오웰은 그 당시 미래였던 1984년에 이 책에 묘사된

빅 브라더의 세상이 오지 않을까 경고하는 의미에서 이 작품을 쓰지 않았나 싶다.

이미 과거가 되어 버린 1984년에 다행히 이 책에서 그려진 것 같은 끔찍한 세상이 되진 않았지만

언제든지 빅 브라더의 세상은 올 수 있다. 1차 대전 후 독일 국민들이 스스로 히틀러를 선택한 것처럼

우리 스스로 자유를 포기하고 빅 브라더의 독재를 받아들일지도 모르는데

언론의 통제나 온 세상이 CCTV로 도배되고 모든 개인들의 정보가 노출되는 현실을 보면

결코 우리와 무관한 책 속의 현실은 아닌 것 같다.

전쟁의 일상화를 통해 권력의 안정을 추구하고 단어를 최대한 없애면서 정신마저 황폐화시키려는

빅 브라더의 교묘한 전략은 오늘날에도 결코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되는 권력자들이 추구하는 전략으로

조지 오웰은 이 책 속의 빅 브라더의 세상이 언제든지 올 수 있음을 후세들에게 경고한 것 같다.

윈스턴처럼 둘 더하기 둘을 다섯이라고 천연덕스럽게 얘기하지 않으려면

정말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게 해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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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영화포스터 커버 특별판)
줄리언 반스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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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학생인 에이드리언 핀은 빛나는 총명함으로 토니, 콜린, 앨릭스 삼총사와 가까워진다.

자 다른 대학을 진학하고서도 편지를 주고 받으며 친분을 이어가던 그들.

토니는 자신의 여자친구였던 베로니카와 사귀게 되었다는 에이드리언의 편지를 받고

그들을 축복하는(?) 편지를 보낸 걸로 기억하고 그들을 잊고 지냈는데

느닷없이 에이드리언의 자살 소식을 접하게 된다.

그리고 세월이 40여 년 지나 토니는 베로니카 어머니가 남긴 유산과 함께

에이드리언의 일기장이 자신에게 유품으로 남겨진 사실을 알게 되는데...

 

인간의 기억이 얼마나 믿을 수 없느냐는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에 소개되었던

엘리자베스 로프터스의 실험을 통해 잘 알 수 있다.

그동안 믿을 수 없는 뇌와 기억에 대한 책들인 '뇌의 거짓말', '뇌, 생각의 한계' 등을 통해

남의 기억은 물론 자신의 기억도 무조건 신뢰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는데

이 책의 주인공 토니의 기억도 믿을 수 없는 기억의 전형이었다.

보통 사람들이 자기중심적이어서 무슨 일이든 자기 합리화를 시키는 경우가 많은데 기억마저 자신에게

유리한 것은 과장되게 기억하고 불리한 것은 저장하지 않던가 왜곡시켜 저장하는 경우가 많다.

'각자의 기억은 그의 사적인 문학'이라는 올더스 헉슬리의 말이 기억의 본질을 잘 대변해주는데

화려한 무용담을 늘어놓거나 모르쇠로 일관하는 사람들을 통해서도 잘 알 수 있지만

이 책에선 토니가 에이드리언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이 모든 사건의 원인이었다.

예전 일을 가지고 서로의 기억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도 종종 있고, 완전히 다른, 양립할 수 없는

얘기를 하는 경우도 있는데 기억을 뒷받침하는 다른 증거가 없는 상태에서 순전히 기억에 의존하는

진술만 있다면 과거의 일을 어떻게 판단하는 게 맞는지 정말 고민이 될 것 같다.

그리고 순간의 감정을 참지 못하고 후회할 일들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여자친구인 베로니카가

자신과 헤어지고 얼마 되지 않아 자신의 친구인 에이드리언과 사귀자 질투와 분노를 참지 못하고 악담을 쏟아낸 토니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결국 비극을 초래하게 된 책임에선 자유로울 수 없을 것 같다.

딱 그 순간만 참으면 될 것을 우리는 늘 어리석게도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게 실수를 하는데

책 속의 토니가 그런 안타까운 경우의 전형이었다.

 

기억에 관한 얘기 외에도 이 책에선 역사에 관한 흥미로운 정의가 많이 등장한다.

역사를 승자의 거짓말이라고도 하고 패배자들의 자기기만이라고도 하는데 역사는 살아남은 자,

대부분 승자도 패자도 아닌 이들의 회고에 더 가깝다는 평가가 가장 진실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흔히 승자들의 기록을 역사로 생각하기 쉽지만 결국 역사를 움직이는 힘은

승자나 패자가 아닌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이란 점에서 마지막의 정의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한편 에이드리언의 '역사는 부정확한 기억이 불충분한 문서와 만나는 지점에서 빚어지는 확신'이란

정의도 나름 설득력이 있었는데 대표적인 역사가인 카가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정의한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부단한 상호작용의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와도

어느 정도 통하는 부분이 있는 정의가 아닌가 싶었다. 현존하는 자료와 기억을 바탕으로

최대한 재구성한 게 바로 우리가 역사라고 부르는 것임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2011년 영연방 최고의 문학상인 맨부커상을 수상한 작품답게

많은 의미와 생각할 거리를 담고 있는 작품이었다. 우리가 문학작품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이

단순히 개연성 있는 흥미로운 얘기를 읽는 즐거움은 아닐 것이다.

인간의 기억과 인류의 역사를 심판대 위에 올려 놓은 작가 줄리언 반스와는 이 책을 통해

처음 만났는데 소설의 매력이 뭔지를 제대로 아는 작가라는 느낌이 든다.

이 책을 통해 받은 줄리언 반스에 대한 나의 예감이 틀리지 않았음을 다른 작품을 통해 확인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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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
주노 디아스 지음, 권상미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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뚱보에다 왕따인 오스카는 또래의 도미니카 남자 아이들이 무수한 연애 경험을 쌓아가고 있는 시기에  

늘 짝사랑만 하는 불우한 시절을 보낸다. SF물에 심취한 오스카는 과연 그가 좋아하는 판타지 같은

황홀한(?) 경험을 하게 될 수 있을 것인가...

 

퓰리처상, 전미비평가협회상 수상 등 화려한 수상 경력과 좋은 평으로 일찌감치 내 리스트에는  

올라있던 작품이었으나 내 삶을 살아가기도 벅차 남의 삶까지 돌아볼 맘의 여유가 없었던 탓에  

계속 후순위로 밀리다가 이제야 오스카 와오와 만날 수가 있었는데 오스카 와오라는 인물은  

왠지 낯설지 않은 캐릭터였다. 뚱뚱하단 사실 외에는 누군가와 상당히 흡사한 점이 많아서  

결코 남의 얘기가 아니었다.ㅋ

 

억척스런 엄마 벨리와 반항적인 누나 롤라 사이에서 자란 오스카는 집에서는 사랑받는(?) 아들이자  

동생이었지만 자신이 진정으로 원한 누군가와 사랑하는 사이가 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엄청난 몸무게를 자랑하는 외모도 그렇지만 오타쿠스런 그의 성격과 취향도 여자 사귀는 걸 어렵게  

만들었다. 도미니카 남자라면 누구나 손쉽게 경험하는 일들을 경험할 기회조차 얻지 못하던  

오스카 와오는 원치 않게 수도생활(?)을 하던 중 우연히 만난 푸타 이본에게 푹 빠져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짧고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되는데...

 

순진한 오스카 와오의 첫경험은 그를 완전히 이본에게 올인하게 만든다.  

사실 이본에겐 다른 남자가 있었지만 오스카 와오에겐 그런 건 아무 상관이 없었다.  

처음으로 여자와 제대로 된 관계를 가지게 된 오스카 와오의 어쩌면 무모하고 저돌적인 사랑을  

막을 자는 아무도 없었다. 사랑에 눈이 멀면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를 지키기 위해 그 어떤 것도  

희생할 수 있다고 하는데 사랑을 그토록 갈구해왔던 오스카에게 이본과의 관계는 자신의 목숨보다도  

소중했는지 모른다. 이를 지켜보는 사람의 입장에선 저런 여자가 뭐 그렇게 소중하다고 목숨 걸고  

저러는가 싶은 생각이 들면서 무모한 짓을 저지르는 오스카 와오가 안타까운 맘이 들었지만  

한편으론 누군가를 위해 모든 걸 다 걸 수 있을 정도로 열렬히 사랑하는 오스카 와오가 부럽기도 했다.

 

오스카 와오의 길고 처절하게 외로웠던 시간과 짧고 놀랄 정도로 뜨겁게 불타올랐던 시간을 담은  

이 책은 단순한 사랑 타령이 아니라 오스카 와오 가족들의 파란만장한 삶을 통해 도미니카의 굴곡진

현대사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카리브해의 섬나라 도미니카는 사실 콜럼버스가 처음 발견한 이래  

식민지와 독재 시대로 첨철된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 왠지 우리와도 너무 닮은 꼴의 나라라 할 수  

있었는데 특히 이 책에 등장하는 트루히요라는 독재자는 정말 독재가 뭔지를 제대로 보여줬다.  

예쁜 여자들의 씨를 말리는 트루히요 앞에 예쁜 딸을 둔 아버지들은 트루히요가 딸의 존재를 알게  

될까봐 노심초사하게 되는데 오스카 와오 집안의 비극은 거기서부터 시작되었다. 

어찌 보면 끔찍하고 애처로운 얘기들이 종종 등장함에도 작가의 감칠맛 나는 글솜씨는  

오스카 와오 가족들의 파란만장한 삶에 완전히 몰입하게 만들었다.  

오타쿠인 오스카 와오가 좋아하는 각종 SF, 판타지물이 책의 곳곳에 인용되고 있고 마치 친한 친구와  

스스럼없이 얘기를 나누는 것 같은 문체는 책을 읽는 내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게 만들었다.  

책 제목 그대로 짧고 놀라운 경험이라 할 수 있었는데 오스카 와오 가족들의 삶을 통해 도미니카의  

일그러진 역사를 통렬하게 비판하면서도 결코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작가의 태도는 우리의 삶이

아무리 엄청난 푸쿠(저주)에 걸렸어도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사파가 있음을, 그 사파는 바로 사랑임을  

잘 보여준 작품이었다. 오스카 와오의 삶을 보면서 언젠가 나도 짧고 놀라운 경험(?)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기대도 가져본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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