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해 웃다
정한아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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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달의 바다'로 문학동네작가상을 수상한 장한아의 단편들을 모은 책으로  

개인적으론 사실 우리 작가들의 소설은 많이 읽지는 않는 편이다.  

당연히 한국 사람들이 쓴 소설이 더 와닿고 정서적으로 더 공감이 가고  

재미도 있을 것 같은데 나는 왠지 좀 낯선 느낌이 든다.

내가 공감할 수 있는 얘기거나 내 주변에서 있을 만한 얘기라는 느낌보다는 좀 피상적인 느낌이  

드는 까닭에 아마도 우리 작가들의 소설들은 좀 어렵거나 추상적이라는 편견(?)을 갖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신경숙, 황석영, 공지영, 김훈 등 여러 유명 작가들의 작품들은 내용도 알차면서  

잘 읽히는 책들이라 즐겨 읽고 있다.

 

'달의 바다'를 읽지 않은 상태에서 접하는 정한아의 첫 번째 단편집은

젊은 여성 작가 특유의 감수성이 묻어 나왔다. 총 8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데  

먼저 '나를 위해 웃다'는 키가 엄청나게 자란 여자의 얘기였다.  

환영받지 못한 출생에다 평범한 사람들의 성장 속도를 훨씬 초과하여 산전수전 다 겪음에도 불구하고  

긍정적인 자세를 잃지 않는 여자의 태도가 어리석게 느껴질 정도였지면  

그런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모습이 더욱 돋보였다.

'아프리카'는 집창촌의 철거로 인해 오갈 데가 없어져도 아프리카를 꿈꾸며 희망을 잃지 않는  

소녀의 모습을, 할머니의 사랑의 사연을 담고 있는 '의자', 돈 버는 아내 대신 집안 살림을 하는  

아버지가 아내의 부정도 감싸주며 자전거로 태워주는 '댄스댄스', 중국에 있는 본사에서 겪는 비정한  

현실을 담은 '천막에서' 유부남과의 불륜 중에서 찾게 된 할머니와의 얘기를 담은 '휴일의 음악' 

등 8편의 단편은 우리 주변의 일상을 그리면서도 그 속에 숨겨진 삶의 의미를 찾아내고 있었다.

단편들 뒤에 문학평론가 차미령의 해설이 곁들어져 있어서 조금은 어렵고 난해한 느낌이 들지만  

정한아의 단편들을 다시 꼽씹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도 있었다.

 

장한아의 단편들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의 얘기는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자화상과  

같다고 할 수 있었다. 특히 여성 작가라 그런지 주로 여자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해 여자들이 겪는  

여러 가지 애환과 섬세한 감정 묘사가 돋보인다고 할 수 있었다.

이 책에 나오는 인물들 대부분이 나름의 어려운 환경에 처해 있지만  

절망에 빠지거나 삶의 무게에 짓눌려 허우적거리지는 않는다.

삶에 대한 희망과 긍정이 더욱 절실하게 필요한 요즘과 같은 시절에 

더욱 소금과 같이 빛나는 역할을 하는 게 바로 소설의 가치일 듯 하다. 

요즘 유행하는 막장드라마와 같은 강렬함 같은 것은 없지만 차분하게 들려주는 얘기가  

일상에 찌든 우리에게 잃어버린 여유와 잔잔한 미소를 가져다 주는 소설집이라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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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호두과자
크리스티나 진 지음, 명수정 옮김 / 예담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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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함께 호두과자 가게를 운영하는 마로는 동네 아이들이 장난친 가게 팻말을 고치러 갔다가

빅풋을 발견하고 도망치지만 빅풋의 정체는 바로 삼촌이었는데...

 
이 책은 호두과자 가게를 하는 소년 마로가 겪는 성장통을 담은 5편의 단편으로 엮어져 있다. 

빅풋을 닮은 삼촌을 협박해서 아이스크림 등을 요구하는 발칙한(?) 계획을 세우던 마로가  

너만의 빅풋이 되어주겠다는 삼촌의 따뜻한 마음에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는 얘기,  

마기 아주머니에게서 더 받은 거스름돈으로 자신의 크리스마스 선물인 산악자전거를 사려다가

엄마가 사주는 바람에 자신을 속이지 않게 된 얘기,  

처음 본 소녀에게 반한 마로의 안타까운 첫사랑 얘기,  

'호두 크러쉬가 별처럼 총총하게 씹히는 맛'을 주문한 문어대가리 먹물빛 머리의 딸의  

지독하고 심술 궂은 주문을 충족시키는 호두과자를 아버지와의 추억을 통해 만들어 내는 얘기,  

마지막으로 병에 걸린 죽어가는 엄마에게 마지막 연극을 공연하는 얘기까지 
 

아기자기하면서도 마음을 뭉클하게 만드는 예쁜 동화들로 채워져 있었다.

 

크리스티나 진이라는 작가의 이름과 내용을 보면 마치 외국동화를 번역해 놓은 책이라고 생각했는데  

우리나라 작가의 책이었다.

이국적인 필명 뿐만 아니라 설정도 이국적이어서 당연히 외국작가라 생각했었는데  

신선한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우리 작가도 이런 달콤한 동화를 쓸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할 정도였다.

그리고 마치 호두과자 향기가 나는 듯한 예쁘장한 일러스트가 곁들어져 있어서  

어린이들이 보기에도 좋을 책이었다. 



호두과자를 먹어본 지는 꽤 되었다. 어릴 적엔 그야말로 별미여서 정말 어쩌다 한 번씩 맛보곤 했는데  

그 달콤한 맛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특히 열차를 타면 호두과자를 파는 경우가 많은데 사서 먹고 싶은 유혹을 억지로 뿌리칠 때가 많았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달콤한 호두과자가 생각나 군침이 돌 정도였다.  

특히 문어대가리 먹물빛 머리의 딸이 주문한 '호두 크러쉬가 별처럼 총총하게 씹히는 맛'이  

과연 어떤 맛인지 정말 궁금했다. ㅋ 

  


어려운 시기일수록 가족들간의 사랑이 더욱 소중한 법이다.

이 책에서 마로와 어머니, 그리고 곁에는 없지만 늘 함께 하는 아버지,

가끔씩 나타나지만 늘 든든한 빅풋 삼촌까지 어느 집 부럽지 않은 가족애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철 없는 아이에서 사랑에 눈 뜨고, 호두과자 만드는 일을 열심히 하고, 엄마를 챙길 줄 아는  

어른스런 모습으로 성장해가는 마로의 모습을 보는 것도 흐뭇했다.

호두과자와 같은 달콤한 가족간의 사랑이 그리워질 때 꺼내 읽을 만한 동화라 할 수 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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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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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잃어버린 지 일주일째.

아버지와 함께 생일상을 받으러 서울로 올라온 엄마는 서울역 지하철에서  

아버지 손을 놓치는 바람에 행방불명이 되고만다.

자식들과 남편이 엄마를 찾아나서지만 엄마에 대해 그동안 너무 몰랐음을 깨닫는다.  

늘 곁에 있는 게 당연한 줄 알았던 엄마의 부재.

엄마의 실종을 통해 그동안 잊고 지냈던 엄마의 존재를 깨닫는데...

 

신경숙의 신작 '엄마를 부탁해'는 이렇게 엄마를 잃어버린 자식들과 남편,  

그리고 엄마 본인의 얘기를 다루고 있다.

엄마라는 존재에 대해선 워낙 많은 글과 드라마, 영화 등에서 다뤄져 

솔직히 뻔한 신파성 스토리가 펼쳐지지 않을까 싶었다.

IMF가 불어닥친 1997년에 김정현의 소설 '아버지'가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것처럼  

제2의 환란이니 IMF보다 더 어렵다는 요즘 이번에는 '엄마'가 다시 부각되는 게  

그냥 시절이 힘들다 보니 마치 유행처럼 한 때 지나가는 바람이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신경숙의 이 책은 단순히 우리가 알고 있던 '엄마'의 존재를

자식을 비롯한 여러 사람의 시선에서 재발견하는 의미가 있었다.

 

우리에게 그동안 엄마라는 존재는 사랑과 희생의 신화적 존재였다.

마치 처음부터 엄마로 태어난 사람인 것처럼 자식들과 가족들을 위해

오로지 헌신과 봉사를 하는 존재로 너무나 당연히 인식되곤 했다.

물론 요즘은 점차 그런 이미지의 엄마는 사라져가고 있지만  

아직까지 우리 세대에겐 엄마는 그런 존재였다.  

늘 아낌없이 주는 나무와도 같은 그런 존재였다.  

책 속에서도 엄마를 잃어버리고 나서야 딸이나 아들, 남편이 그녀의 존재가 얼마나 컸음을,  

그리고 자신들이 얼마나 그녀에게 무심했음을 깨닫게 된다.  

엄마가 치매 증세를 보임에도 누구 하나 제대로 병원에 데리고 갈 생각을 안 한다.

자식들은 자기 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남편이란 사람은 늘 그랬왔듯이

특유의 무심함으로 그렇게 그녀의 정신과 육체가 모두 병들어가고 있음을 모르고 있었다.  

아니 모른 척 한 것이다. 엄마와 아내는 늘 자식들과 남편을 위해 준비되어 있는 사람으로 여긴 것이다.

그렇게 엄마를 잃어버리고 나서 엄마로 추정되는 사람의 행적을 따라다니게 되자  

그동안 엄마라고 불렸던 사람에 대해 자신들이 너무 모르게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너무 무관심으로 방치했음을 자책하게 된다.  

엄마도 한 사람의 인간이고, 여자였음을 깨닫게 된다.

 

이 책은 딸과 아들, 그리고 남편, 마지막으로 엄마 본인의 시선으로 바라 본 엄마의 인생을 통해  

우리에게 엄마라는 존재가 과연 어떤 의미였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들어준다.  

나도 그렇지만 우리는 대부분 엄마에겐 원죄를 가지고 살아간다.  

늘 받기 것만을 당연히 여기고, 늘 투정부리고, 화풀이하는 만만한(?) 상대로 여기는  

엄마의 존재는 그 커다란 자리가 비워져야 깨닫게 되는 그런 자리인 것 같다.

'있을 때 잘 하라'는 말이 있는데 우리는 늘 엄마가 없어야 아쉬움을 느끼고,  

그동안의 엄마가 베풀어준 사랑을 깨닫게 된다.

엄마의 피를 그렇게 빨아먹다가 엄마가 힘이 없어지고 우리를 필요로 할 때는 매몰차게 외면하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엄마를 부탁해'라는 말이 결코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닌 것 같다.  

그만큼 엄마란 존재가 이용만 당하고 폐기처분(?)되는 비정한 현실에 대한 고발이며  

엄중한 경고가 아닐까 싶었다.

 

에필로그는 '엄마를 잃어버린 지 구개월째다'로 시작한다.

점점 엄마의 부재가 일상이 되어가고 있는 시점에 큰 딸은 바티칸으로 간다.  

그리고 베드로 성당의 피에타상을 바라보며 이 세상 어딘가, 아니 다른 세상에서 헤매고 있을지 모르는  

엄마를 부탁한다는 말로 소설을 끝맺는다. 성모 마리아와 예수에 엄마와 자식을 비유하면서

좀 더 성스러운 경지로 승화시키려는 의도가 보이지만 엄마의 존재를

굳이 먼 이국땅에 가서 찾아야 할 필요가 있었는 지는 잘 모르겠다.

엄마라는 존재가 만국 공통이지만 아무래도 우리만의 특유한 의미가  

조금 희석되는 감이 들어 아쉬움이 남는 결말이었다.

아무튼 엄마의 부재를 통해 엄마의 존재감을 느끼게 되는 가족들의 얘기는  

작가의 독특한 설정으로 인해 뻔한 신파로 흘러가지 않으면서

잊고 지냈던 엄마의 의미를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엄마에게 받은, 아니 지금도 받고 있는 무수한 사랑과 헌신을 잊고지냈던  

수많은 자식들의 죄책감을 콕콕 후벼파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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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 깊은 나무 2
이정명 지음 / 밀리언하우스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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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네 명의 학사를 죽음으로 내몬 금서의 정체와 이를 집요하게 추적하는 살인자와 그 배후,  

그리고 이들을 쫓는 겸사복 강채윤의 숨 막히는 대결은 이제 최후의 결전으로 치닫는데...

 

1편에서 이미 네 명의 희생자를 내었지만 고군통서와 새로운 글자 창제를 둘러 싼  

경학파와 실용학파의 목숨을 건 한판승부가 펼쳐진다.

1편이 살인사건의 해결에 중점을 둔 추리소설적 요소가 컸던 반면

2편에선 고군통서와 한글창제를 둘러싼 양 세력간의 대결이 흥미진진하게 그려진다. 

고려를 멸망시키고 새롭게 시작한 조선왕조는 왕자의 난을 비롯한

수 차례 권력투쟁을 겪은 후 태종 때부터 왕권이 강화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태종은 왕위를 셋째아들 충녕대군에게 양위하면서 상왕이 되어  

세종의 장인어른인 영의정 심온에게 억울한 누명을 씌워 외척세력을 제거해버린다.  

이 때 세종의 참담한 심경을 담은 책이 바로 고군통서였다.  

이 책이 그토록 위험한 금서가 된 까닭은 세종의 아버지 태종에 대한 비판 뿐만 아니라 명나라에  

대한 비판도 담고 있었기에 이를 명나라가 안다면 무슨 평지풍파가 일어날 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과학과 기술을 장려하고 우리 고유의 문화를 일으키려 했던 세종과 장영실, 박연, 정초 등의  

실용학파는 사대주의에 매몰된 경학파들의 극렬한 저항에 부딪친다.

새롭게 지배층이 된 양반과 그들의 이데올로기인 유교에 반하는  

신분에 상관없이 실력에 따른 인물등용과 각종 기술 장려,  

그리고 심지어 한자가 아닌 새로운 글자 창제는 경학파들에겐 목숨을 걸고 막아야 하는 일들이었다.  

그것은 그들의 기득권에 치명적이기 때문이었다.  

이런 극우세력의 반대를 물리치고 개혁을 이뤄 소수의 양반이 아닌  

전 백성이 잘 살게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설사 군왕이라해도 모든 걸 맘대로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물론 태종식의 피의 정치를 했다면 그리 어렵지 않게 자신의 뜻을 관철할 수 있었겠지만  

세종은 그런 태종의 철권통치에 진저리가 난 인물이었다.  

그렇기에 이 모든 사건의 수괴는 감히 궁궐 내에서 집현전 학사들을 죽이고,  

더 나아가 침전에 침입하여 세종까지 죽이려 하는 엄청난 도발을 감행하기에 이른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으로 손 꼽히는 세종의 대표적인 업적인 한글창제는  

이렇게 엄청난 반대를 무릎 쓰고 비밀작전을 하듯이 은밀하게 진행되었다.  

우리만의 새로운 글자를 만든다는 사실이 명나라에 알려지면 외교분쟁을 일으킬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명나라의 눈치를 보고, 경학파들의 반대에 맞서 이뤄낸 한글창제는  

우리 문화 발전의 획기적인 전환점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리고 오행에 기초하여 사람의 음성기관에서 나오는 소리를 과학적인 원리에 기초해 만들어 낸  

한글의 생성과정은 한글의 우수성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국어 교과서에서 겨우 훈민정음의 앞부분만 배웠는데 이 책에 부록으로 실린 훈민정음 해례에 대해선

최소한 배우는 게 필수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한글날을 쉬는 내가 학교 다닐 때처럼 쉬운 국경일로  

부활시켜야 하지 않을까 싶다.

 

10년 넘게 한글창제에 얽힌 여러 관련 서적과 자료를 수집하여 30번 넘게 고쳐 썼다는 이 책은  

한글창제의 얽힌 미스터리를 추리소설 형식으로 흥미진진하게 잘 그려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개혁에 저항하는 수구세력은 늘 있었다.

자기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이들의 저항을 뿌리치고 국민을 위한 개혁을 하는 할 수 있는 용기와  

추진력이야말로 지금과 같은 어려운 시절에 꼭 필요한 것이 아닐까 싶다.

이 책에서 나오듯이 목숨을 걸고 자신들의 소신을 지킨 세종과 집현전 학사들의 모습을 통해  

뿌리 깊은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지 않듯이 그 어떤 시련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배울 수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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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 깊은 나무 1
이정명 지음 / 밀리언하우스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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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후원의 열상진원 우물 안에서 집현전 학사의 시신이 발견되고

겸사복의 말단 관리인 강채윤이 사건 수사를 맡게 된다.

궁 내에서 발생한 의문의 살인사건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연속 살인사건으로 발전되고  

그 배후에는 엄청난 음모가 도사리고 있는데...

 

한국형 팩션 열풍을 일으킨 책을 드디어 읽게 되었다.

제목에서 연상할 수 있듯이 훈민정음 창제과정의 비밀을 추리소설 형식으로 취하고 있는데  

1권에선 4명의 연쇄살인사건이 발생하고 정체불명의 범인을 잡기 위한 겸사복 소속 관리 강채윤의  

치열한 수사과정이 잘 그려지고 있다.

 

먼저 예상 외의 사실은 조선시대의 수사가 상당히 과학적이었다는 점이다.  

겸사복은 지금의 경호실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는데 겸사복의 관리인 강채윤은 오늘날로 하면  

사법경찰리 정도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 강채윤은 용의자를 잡고 싶어도 혼자서는 잡아들이지 못한다.

그리고 죽은 사람들의 시체인 변사체를 의사에 준하는 능력을 지닌 가리온이 검안을 맡아  

사인을 규명하는 것은 오늘날의 법의학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마치 조선시대 CSI라고나 할까...ㅋ 

물론 수사절차상 오늘날과 같은 엄격한 통제가 있거나 인권보호가 지켜지지 않고  

자백을 받아내기 위한 고문이 행해지는 것은 전형적인 중세시대의 모습이라 할 수 있지만  

그래도 자백뿐만 아니라 증거를 중시하는 경향은 요즘과 별반 큰 차이가 없다고 할 것이다.

 

이 책이 흥미를 돋구는 점은 역시 미스터리 형식으로 의문의 연속 살인사건을 풀어나간다는 점이다.  

열상진원에서 장성수가 우물에 빠져 죽고, 주자소에서 윤필이 불에 타 죽고, 집현전에서 허담이  

쇠몽둥이로 맞아 죽고, 경회루에서 정초가 목매달려 죽는네 명의 죽음은 나름대로의 법칙이 있었다.  

그리고 베일에 쌓인 책의 정체, 죽은 사람들의 몸에 새겨진 문신과 마방진의 비밀,  

수상쩍은 호위무사 무휼, 의문에 쌓인 말 못하는 항아 소이까지 미스터리로서의 매력이 무궁무진했다.

천원지방, 오행(수, 화, 금, 목, 토)의 생과 극 등 동양 철학이 연쇄 살인사건의 수수께끼를 푸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는 사실도 역시 한국형 팩션만의 매력적인 부분이 아닌가 싶다.

 

1권에선 주로 집현적 학사들의 연쇄적인 죽음과 이에 얽힌 여러 미스터리가 등장하고 있는  

추리소설로서의 재미가 돋보였다. 

제목이 상징하듯 분명 한글 창제와 관련된 내용이 2권에선 본격적으로 다루어질 것 같은데  

우리 역사상의 가장 중요한 사건 중의 하나인 한글창제에 얽힌 미스터리를 이렇게 정교하게  

팩션으로 엮어낸 작가의 능력에 감탄했다.  

팩션 열풍을 몰고 온 '다빈치 코드',  학문적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는 '장미의 이름'에도  

결코 뒤지지 않을 작품인 것 같다.  

2권에서 밝혀질 엄청난 음모의 정체가 궁금해서 빨리 2권을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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