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밤은 되살아난다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9
하라 료 지음, 권일영 옮김 / 비채 / 200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사립 탐정 사와자키의 사무소에 오른손을 보여주지 않는 수상한 남자가 나타나  

르포라이터인 사에키라는 남자가 찾아왔는지 물어본 후 20만엔이 든 봉투를 남기고 사라지고  

사에키의 가족으로부터 실종된 사에키를 찾는 일을 맡게 된 사와자키

하지만 사에키 실종은 엄청난 음모와 연루되어 있는데...

 

일본의 레이먼드 챈들러라 불리는 하라 료의 첫 작품인 이 책은  

사실 나오키상을 수상한 다음 작품 '내가 죽인 소녀'를 읽기 위해 전작을 찾다가 읽게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레이먼드 챈들러의 작품들도 읽어보지 못했고

하드보일드라는 장르 자체를 그다지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지만

사와자키라는 탐정은 나름의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좀 까칠한 것 같으면서도 따뜻한 마음을 가진 흔히 말하는 마초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특히 여대생과의 하룻밤을 보낼 수 있는 기회(?)를 잘 타일러 보내는 모습은  

진정한 남자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실종된 르포라이터 사에키는 사실 엄청난 사건의 비밀을 조사하던 중이었다.  

도쿄 도지사 후보의 저격 사건과 당시 후보였던 도지사를 비방하는 괴문건 사건에  

모종의 음모가 있다는 사실을 사에키가 눈치채자 음모를 꾸몄던 세력에 의해 납치된 것이다.  

거기에 오른손을 숨기는 수상한 남자와 엄청난 부를 소유한 사에키의 처가까지

여러 가지 사건이 촘촘하게 얽혀 있으면서 이를 하나씩 밝혀나가는 사와자키와  

사실상 사와자키를 보조하는 경찰들을 따라가는 재미가 솔솔했다.  

처음 들어갈 때 등장인물이 27명이나 소개되어 있어 과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어떤 역할들을 할까,  

누가 누군지 헷갈리지 않을까 걱정도 되었지만 각 인물마다 그만의 숨결을 불어넣어  

개성 있는 인물들을 창조해서 예상만큼 사람들 이름 때문에 혼란을 겪지는 않았다. 

(물론 기억력이 안 좋아서 등장인물 소개를 종종 확인하긴 했어야 했다. ㅋ)

특히 사와자키의 동료였던 와타나베는 마치 우렁각시처럼 어쩌다 몰래 나타나서  

사와자키를 도와주고 사라지는 정말 독특한 인물이라 할 수 있었다.

 

하드보일드 탐정 사와자키가 동분서주하면서 복잡한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을 그린 이 책은  

범인 맞추기의 본격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내 취향과 맞진 않은 편이었지만  

이야기 자체의 정교함으로 인해 충분히 흥미진진한 얘기를 그려냈다.  

하라 료의 첫 작품이란 점을 생각할 때 나오키 상을 수상한 다음 작품인  

'내가 죽인 소녀'에 대한 기대감을 더욱 크게 만든다.  

뒷부분에 '말로라는 사나이'라는 짤막한 단편이 실려 있는데  

하라 료가 레이먼도 챈들러에게 바치는 오마주라 할 수 있었다.  

그 동안 레이먼드 챈들러에 대한 명성을 익히 알고 있었지만  

하드보일드라는 스타일이 별로 나에게 맞지 않는 것 같아 미뤄두고 있었는데  

이제는 필립 말로와도 만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귀를 막고 밤을 달리다
이시모치 아사미 지음, 김주영 옮김 / 씨네21북스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원죄 피해자들을 지원하는 일을 하던 나미키 나오토시는

같은 모임의 세 명의 매력적인 여자 히토미, 마리에, 유키를 죽일 계획을 세운다.

그녀들이 알라우네가 되기 전에 그녀들을 제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일념으로  

막연히 살인을 계획하던 그에게 애인처럼 지내던 아카네가 찾아와  

느닷없이 그를 죽이려 공격하자 얼떨결에 아카네를 죽이고 만 나미키는

세 명의 미소녀들을 죽일 계획을 바로 실행에 옮기기로 하는데...

 

범인이 주인공이 되어 진행하는 추리소설들이 종종 있다.

바로 얼마 전에 읽은 '내 안의 살인마'도 마찬가지였는데 이런 소설들은 범인을  

바로 드러냄으로써 범인이 누군지를 맞추는 본격 추리소설의 재미는 줄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방면의 재미를 독자에게 선사해야 하는데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사건 그 자체나 사건을 저지르고 이를 숨기거나 도망치는  

범인의 심리상태에 몰입하게 만들어 독자를 범인의 입장에 서게 만들어  

재미를 주는 방식이 대부분이다.

 

이 책은 처음부터 연쇄살인을 계획하던 나미키가 갑작스런 아카네의 공격을 받고 난 후

계획했던 세 명의 여자들에 대한 살인을 저지르는 과정을 정말 리얼하게 그려내고 있다. 

마치 내가 나미키가 되어 살인을 해야 하는 긴박한 상황에 처한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나미키가 느끼는 감정이나 순간순간의 갈등, 임기응변적인 살인 계획의 실행까지  

정말 손에 땀을 쥐게 만든다.

그러면서도 단순히 연쇄살인마의 살인과정을 그려내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범죄자와 그 가족들에 대한 사회의 냉혹한 태도에 대한 문제제기도 하고 있다.

나미키가 도와주던 세 명의 여자들은 모두 원죄 피해자,  

즉 무고하게 죄를 뒤집어쓴 사람들의 딸들이다.

인간이 운영하는 사법제도 하에서 무고한 사람이 나올 가능성이 없진 않겠지만

그런 누명을 쓰는 사람과 그 가족들이 당하는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특히 요즘과 같이 인터넷상 미니홈피니 블로그 등이 발달해서 마음 먹으면 얼마든지  

개인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상태에서 한 번 범죄자로 낙인 찍히면  

엄청난 사이버 테러와 실생활에서의 따가운 시선을 견뎌내야 한다.

헌법상의 무죄추정의 원칙은 현실에서는 유죄확신의 원칙이 적용되기 때문에

나중에 설사 무죄임이 밝혀진다 해도 그동안 잃은 것들을 회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할 수 있다.

이런 점은 얼마 전에 본 영화 '아무도 지켜주지 않아'에서도 잘 보여 줬는데

범인으로 매스컴에 지목당하는 순간부터 범인의 가족들도  

범인과 똑같은 대우를 받으며 고통을 당하게 된다.

 

이 책에서 나오는 원죄 피해자 지원모임은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음에도  

누명을 쓴 사람들과 그 가족들을 지원하는 단체로

그들은 히토미, 마리에, 유키가 험한 세상에서 홀로 설 수 있게 만들기 위해서

내 편과 내 편이 아닌 사람들을 철저하게 구분하게 만드는데 이것이 오히려 그녀들을

'알라우네'(무고하게 죄를 뒤집어 쓰고 교수형에 처해진 남자가 흘린 정액에서 피어난  

전설의 식물)로 만들어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이 되게 했다.

그런 사실을 눈치 채고 그녀들이 큰 일을 저지르기 전에 처치하려는

나미키는 어찌보면 정말 숭고한(?) 사명을 실행하는 인물이라고도 볼 수 있는데

아무리 악마적인 본성을 가진 존재라 해도 그들이 범행을 저지르기 전에 응징한다는 것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닌 것 같다.

범죄예방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인간을 교육시키고  

환경을 개선하는 것까지가 한계이지 그럴 가능성이 있는 인간 자체를 없애는 것은  

범죄예방이 아닌 또 다른 범죄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나미키가 아무리 그녀들이 끔찍한 범죄를 저지를 살인마가 될 거라 확신을 하더라도

그가 저지른 범행을 용서받을 수는 없다.

오히려 그 자신이 알라우네가 되어 무자비한 살육을 저지른다고 할 수 있었다.

테러리스트 등의 확신범의 문제가 바로 자신들의 목적이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시켜 준다고 착각하는데 있다.

 

'알라우네'의 전설을 모티브로 연쇄살인을 저지르는 범인의 생생한 범행과정을 체험하게  

만드는 이 작품은 시종일관 긴장과 스릴을 맛보게 해주지만 씁쓸한 여운을 남기는 작품이었다.

범행과정의 잔인함과 마치 악을 제거한다는 맹목적인 신념도 그렇지만

내 편과 적의 이분법으로 구분하게 만드는 세상의 냉혹함이 기분을 씁쓸하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이 만큼 흡입력 있는 범죄소설을 쓴 이시모치 아사미라는 걸출한 작가를  

만나게 되었다는 점은 큰 성과라 할 수 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제물의 야회 미스터리 박스 3
가노 료이치 지음, 한희선 옮김 / 이미지박스 / 2008년 7월
평점 :
품절


범죄피해자 가족의 모임 회원이던 기시마 기쿠코와 메도리마 미나미가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것도 기시마 기쿠코는 두 손목이 잘렸고 메도리마 미나미는 머리가 뭉개친 채로 발견된  

엽기적인 사건이었다. 이에 경시청 강력반의 오코우치 형사를 비롯한 경찰은 유력한 용의자로

19년전 동급생을 죽이고 목을 교문 위에 올려놓는 엽기적인 살인을 한 후 출소하여 범죄피해자 
가족  

모임의 간사 역할을 했던 변호사 나카조 겐이치를 지목하지만 그에게는 완벽한 알리바이가 있는데...

 

네이버의 일본 미스터리 즐기기 카페에서 2008년 최고의 작품으로 선정된 이 책을 드디어 읽게 되었다.  

2위였던 '인사이트밀'이나 3위였던 '도착의 론도'는 순위 발표 후 바로 읽게 되었는데  

이상하게 이 책은 655페이지나 되는 방대한 분량에 주눅이 들었는지 쉽게 손이 가지 않았다가  

이제야 읽게 되었는데 역시 최고의 작품으로 선택될 만한 작품이었다.

 

시작부터 엽기적인 살인사건으로 집중하게 만들었다.  

그냥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닌 손목을 잘라가는 변태적인 살인마가 등장하자 경찰에는 비상이 걸린다.  

경찰은 일단 피해자의 신원 확인을 하는데 메도리마 미나미의 남편인 메도리마 와타루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일단 경찰은 이 사건과 유사한 경력이 있는 나카조 겐이치를 조사하기

시작하지만 그는 마치 예전의 끔찍했던 일은 전혀 없었던 일인양 태연하게 대처한다.  

이런 나카조의 태도를 보면 분노를 금할 수 없었다.

소년범이라는 이유로 형사처벌을 면하고 잠시 의료소년원에 갔다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전과도 남지 않고 오히려 범죄자의 정보를 철저히 보호해준다는 게 뭐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것 같았다. 우리도 만 14세가 형사미성년자이고 소년법이 별도로 있어 보호처분을 할 수  

있게 되어 있지만 살인, 강도, 강간 같은 강력범을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가볍게 처벌하는 것은  

요즘처럼 점점 소년범의 강력범죄가 늘고 있는 추세에 맞지 않다고 할 것이다.  

게다가 요즘 소년범들은 범죄를 저지르고도 잘못을 인정하거나 후회하는 모습을 보이기는 커녕  

재수가 없어서 걸렸다는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인간들이 겨우 보호처분으로 개과천선해서  

갱생될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 아닐까 싶다.  

재판을 받는 범죄자들을 많이 보지만 늘 드는 생각은  

과연 저들이 진심으로 자신의 범죄를 반성하고 다시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을 것인가이다.  

자신이 재판을 받는 상황이 아니었으면 쉽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보통일 것이다.  

그야말로 유리한 판결을 받고 순간적인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입으로만 잘못했다, 반성한다고 하지만  

그 순간이 지나서도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을 것 같다.

 

이렇게 나카조 겐이치의 조사가 난관이 부딪히자 오쿠우치를 비롯한 경찰들은 다시 사라진  

메도리마 와타루라는 인물에게 초점을 맞추고 메도리마 와타루라 불렸던 남자는  

아내를 죽인 범인에게 복수를 다짐하는데...

 

전체적으로 이 책에서 사건을 끌어가는 축은 오쿠우치를 중심으로 한 경찰들과 
아내의 복수에 불타는  

스나이퍼, 그리고 끔찍한 범죄의 경력을 가진 나카조 겐이치와 그의 '투명한 친구'라 할 수 있다.

특히 경찰의 사건 조사 과정이나 내부의 알력, 비리 등 경찰의 적나라한 모습을 잘 그려내고 있다.  

딸을 잃은 아픔을 가진 성실한 형사 오쿠우치를 비롯해서 그의 부하 경찰들과 보신주의의 고바 영감,

오쿠우치의 사촌 형이자 캐리어 경찰인 나카조노 등은 일본 경찰 뿐만 아니라 우리의 경찰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었다. 오쿠우치와 같이 다른 것들을 희생해 가며 자신의 일을 헌신적으로 하는  

경찰이 있는가 하면 야쿠자와 연결되어 비리를 저지르고 정치인들의 개 노릇을 하는 경찰들도 있었다.  

지금까지 내가 읽어 본 소설 중에 가장 경찰의 모습을 리얼하게 그려낸 작품이었다.

 

뒤로 가면서 인질극과 총격전, 추격전 등 마치 영화를 보는 듯한 박진감 넘치는 전개를 보여주지만  

마지막으로 갈수록 조금 느슨해지면서 힘이 빠져버리는 느낌이 들어 조금 아쉬웠다.

어쨌든 영화로 만들어도 손색이 없을 작품이었다.

세상이 점점 험악해지면서 사이코패스와 묻지마 범죄가 늘어나고 있는데  

이 소설 속 범인도 요즘에 등장하는 전형적인 살인마였다.

그들이 왜 그런 짓을 하는지는 정말 이해할 수가 없지만 소설 속 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범죄의 양상이 점점 흉악해지는 점은 분명 우려할 점이고 이에 대해선 특단의 대책이 필요할 것 같다.

 

엽기 살인사건을 소재로 소년법의 비현실성 등의 문제를 지적하면서 경찰의 리얼한 모습을 보여준  

이 작품은 방대한 분량만큼 여러 인물들과 사건을 잘 엮으며 하드보일드 소설의 진수를 만끽할 수  

있게 해주었다. 2008년 최고의 일본 미스터리 소설이라 해도 손색이 없는 작품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티스타 수술 팀의 영광 가이도 다케루의 메디컬 엔터테인먼트 1
가이도 다케루 지음, 권일영 옮김 / 예담 / 2007년 1월
평점 :
품절


100% 성공률을 자랑하는 도조대학 의학부의 바티스타 수술팀이  

연이은 수술 실패로 환자를 죽게 만들자 다카시나 병원장은

상대하기 골치 아픈 환자를 담당하는 부정수소외래의 괴짜 다구치에게  

수술 실패 원인을 조사하는 특명을 맡기지만

외과에는 문외한인 다구치에겐 바티스타 수술팀의 비밀을 밝혀내기엔 역부족이어서  

후생노동성의 괴짜 공무원 시라토리까지 불러 오는데...

 

한때 메디컬 드라마와 영화가 유행한 적이 있었다.  

그 당시 이 책이 번역되어 화제가 되었는데 제4회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의 대상을 수상한 작품에다  

서평도 괜찮아서 오래전부터 꼭 읽겠다고 보관함에 담아둔 책을 이제야 읽게 되었다.

기본적인 스토리는 좌심실 축소 성형술인 바티스타 수술팀이 연속 수술에 실패하는 일이 벌어지자  

수술팀장인 기류 박사가 스스로 병원측에 조사를 요청하고 이를 객관적인 인물이라 할 수 있는

다구치와 시라토리에게 맡기면서 바티스타 수술팀원들에 대한 철저한 조사가 행해지게 된다.

여기서 의료계의 괴짜 다구치와 공직의 괴짜 시라토리의 아슬아슬 하면서도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는  

팀워크가 사건을 해결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병원내 정치나 출세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다구치는 골치 아픈 환자들을 전담하며  

자신만의 왕국에서 유유자적하는 캐릭터로 수술이나 피 보는 게 싫어서 내과를 선택한 인물인데

그에게 외과 수술이 잘못된 점을 알아내라는 특명을 주는 것 자체가 좀 사리에 맞지 않게 보이지만  

오히려 문외한의 입장에서 보는 게 문제를 파악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다구치는 바티스타 수술팀원들을 차례로 면담하고 수술을 직접 참관하면서 묘한 이질감을 느낀다.

하지만 다구치의 능력으로 사건을 해결하긴 역시 쉽지 않아 탐정 역할을 하는 시라토리가 등장하는데  

이 캐릭터는 다구치를 능가하는 아우라를 뿜어 낸다. 실제로 액티브 페이즈라는 기법을 사용해  

면담을 하면서 사카이를 자극해 얻어맞기까지 하지만 이것도 그의 계산된 행동이라니 혀를 내두를  

지경이었다. 비록 까칠하기 짝이 없지만 그의 능력만큼은 인정해줘야 할 것 같았다.  

역시 탐정들의 공통점은 까칠함이 아닐까 싶다. ㅋ

 

이 책의 저자인 가이도 다케루는 현직 의사라 그런지 데뷔작 답지 않은 실감 나는 메디컬 미스터리를  

만들어냈다. 바티스타 수술팀의 사고는 사실 살인으로 결론이 나지만 의료사고라 해도 현실적으로

이를 입증하기도 어렵고 보상 방안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

의료 분쟁의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의사들의 과실을 입증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의사의 과실을 입증하려면 어느 정도의 의학 지식이 밑받침되어야 하는데  

일반인의 입장에선 거의 불가능하고 결국 다른 의사의 도움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동종 업계 동료인 의사가 다른 의사의 과실을 입증하는 일을 해주는 것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단순한 동종 업계 종사자로서의 유대감 뿐만 아니라 자신도 언제 그런 실수를 할지 모른다는 생각과  

다른 의사의 잘못을 고발하는 내부고발자가 될 경우 의료계에서 왕따 내지 매장당할 위험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 문제는 공적인 제도로서 해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책에 나오는 리스크 매니지먼트 위원회는 병원 내부 통제장치로서 상당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자체 조직이라 팔이 안으로 굽기 쉬운 문제가 있겠지만 의사들 스스로 동료들의 과실을

지적하고 통제한다는 점에선 나름 도움이 되는 제도일 것 같다.

 

이 책에서도 범인은 전형적인 사이코패스의 모습을 보여준다.

의사 중에 이런 인물이 있다면 무서워서 누가 병원에 갈 수 있을까 싶다.  

환자의 생명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해야 할 의사가 환자 목숨을 짐승만도 못하게 생각하고 있으니  

정말 경악할 노릇이었다.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 중에 이런 사이코패스들이 있으면

그 폐해는 유영철, 강호순을 훨씬 능가할 것이다.  

멀쩡한 사람을 죽여도 그냥 덮여질 가능성이 높고, 생명이 아닌 다른 가치면에서는

무슨 짓을 저질러도 속수무책으로 당해야 하는 일이 생길 것 같다.

이런 사회적인 병폐가 소설이나 영화에서만 있는 일이면 좋으련만

점점 현실에서도 등장하고 있어 세상이 두려울 따름이다.

 

괜찮은 데뷔작을 선보인 가이도 다케루는 역시 자신의 전공을 살려  

계속 메디컬 미스터리를 써나가고 있다. 후속작들의 평이 이 책만은 못한 것 같지만  

일반인들이 잘 모르는 의료계의 현실을 잘 보여준다는 점에서 분명 읽을 가치는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가이도 다케루가 언젠가 메디컬 미스터리의 진정한 달인이 된다면

이 책은 분명 그의 기념비적인 데뷔작이 되기에 충분할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도착의 론도 오리하라 이치 도착 시리즈 1
오리하라 이치 지음, 권일영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작가 지망생인 야마모토 야스오는 월간추리 신인상을 목표로 글을 쓰지만 계획대로 잘 되지 않고 

시간만 간다. 원고 마감을 한 달 반 정도를 남기고 서점에서 우연히 본 책에 영감을 얻어 미친듯이

'환상의 여자'라는 소설을 완성한 야마모토 야스오는 원고를 워드프로세서로 작성해 주겠다는  

친구 기도의 제의를 수락하여 원고를 넘겨주지만 기도가 지하철에서 원고를 놓고 내리는 대형사고를  

치고, 하필이면 원고를 습득한 나가시마 이치로가 작품의 가치를 알고는

원작자를 죽이고 자신이 월간추리 신인상에 응모할 계략을 세우는데...

 

네이버의 일본 미스터리 문학 즐기기 카페에서 2008년에 출판된 일본 미스터리 책 중  

3위로 선정해 읽게 된 책이다.

추리소설 신인상에 응모하려는 신인 작가와 우연히 주은 원고로 상을 훔치려는 또 다른 인물간의  

대결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지는 내용인데 작품소개에서 서술트릭이 사용되었다는 것을 알고는

처음부터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서술트릭이 사용되었던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살육에 이르는 병' 등에서 완전히 당했던 아픈(?) 기억이 남아 있어 이번에는 쉽사리 당하지  

않으리라 다짐을 했는데 역시 맘대로 되지는 않았다. ㅋ

 

서술트릭도 돋보이지만 이 책의 기본설정 자체가 상당히 흥미롭다.

마치 우리의 드라마에서 흔히 보는 남의 걸 빼앗아 부와 행복을 누리는 인물과 원 

래 자신이 누려야 할 것을 빼앗기고 복수의 칼을 가는 인물간의 대결이라는 설정은  

그 자체만으로도 손에 땀을 쥐게 만들기 충분하다.  

복수극만큼 자극적이면서도 흥미로운 스토리가 없으니까 말이다.  

이 책에서도 간신히 쓴 걸작을 응모도 해보지 못하고 빼앗기고, 친구마저 자신의 쓴 소설 때문에  

죽임을 당하고, 자신도 죽음의 위기에서 간신히 빠져나왔는데,  

자신의 소설을 훔쳐 간 인간이 상을 받고 유명 인사가 되어 예쁜 여자와 행복한 생활을

누리고 있는 모습을 본다면 누구나 눈이 뒤집힐 것 것이다.

당장 그 인간은 살인자에 도둑놈이라고 세상에 까발리고 싶지만

증거가 없으니 야마모토 야스오는 속이 터질 지경이었다.  

그래서 전화로 협박을 하기 시작하면서 도작자인 시라토리 쇼를 괴롭히기 시작하지만  

시라토리 쇼의 반격도 만만치 않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벨린저의 '이와 손톱'이 연상되었다.  

복수극이란 설정도 유사하고, 두 개의 시선이 교차되는 점도 유사하다고 할 수 있었다.  

물론 이 책은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결론이 나고 말지만...ㅋ

 

처음에 책 제목만 보고는 무슨 배달사고라도 난 얘기인가 싶었는데 제목의 '도착'이 그 '도착' 아니었다.  

책 표지에 친절하게 소개된 것처럼 '뒤바뀌어 거꾸로 됨'이라는 뜻인데 

이 책의 기본 설정을 잘 대변해주는 단어가 아닐까 싶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책의 저자인 오리하라 이치가 실제로 에도가와 란포상과  

일본 추리작가협회상에 응모했다가 아쉽게 탈락했다는 사실이다.  

야마모토 야스오는 어찌 보면 바로 작가의 분신이라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오리하라 이치는 이 책 외에도 '도착의 사각', '도착의 귀결'이라는 도착 시리즈를 완성하였다.  

남은 두 책도 분명 이 책 만큼의 재미를 보장할 것 같다.  

어지러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 도착은 어찌 보면 피할 수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오해와 그릇된 욕망이 불러일으키는 사건들은 역시 추리소설의 좋은 소재임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준 책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