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로 가는 물리학 - 미시세계에서 암흑물질까지, 우주의 실체를 향한 여정
마이클 다인 지음, 이한음 옮김 / 은행나무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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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점   ★★★   B





과연 이 세상에 존재하는 네 가지 힘(중력, 전자기력, 약력, 강력)과 모든 만물의 근원을 단 하나의 이론으로 간단명료하게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이 나올까? 아인슈타인(Einstein)은 말년에 중력과 전자기력을 통합한 통일장 이론(unified field theory)’을 완성하는 일에 전념했다. 그 당시에 약력과 강력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아인슈타인의 꿈은 이루지 못했다. 아인슈타인 사후에 등장하거나 활동하기 시작한 물리학자들은 통일장 이론을 밝혀내기 위해 연구에 연구를 거듭해 왔다. 현재 통일장 이론에 근접하는 후보 이론으로 많이 거론된 것이 초끈이론(super-string theory)’‘M 이론(M-Theory)’이다. 초끈이론은 만물을 구성하는 최소 단위가 입자가 아니라 진동하는 끈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가정한다. M 이론은 기존의 다섯 가지 초끈이론을 통합한 이론이다. M 이론에 따르면 우주는 10차원 공간과 시간인 1차원이 합친 11차원 시공간으로 되어 있다. 11차원 시공간에 존재하는 만물은 4차원으로 이루어진 얇은 막에 붙어 있다. 물리학자들은 M 이론의 ‘M’을 저마다 다르게 해석한다.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진 M의 의미는 ‘membrane()’의 머리글자다.

 

초끈이론과 M 이론을 연구하는 물리학자들은 언젠가는 네 가지 힘과 모든 물질을 하나의 이론으로 통합하는 데 성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렇지만 이들의 낙관적 전망을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물리학자들이 있다. 초끈이론과 M 이론을 비판하는 물리학자들은 실험하여 정확한 결괏값을 도출하는 일에 익숙한 실험자. 이와 반대로 초끈이론과 M 이론을 옹호하는 물리학자들은 수학적 추론을 중시하는 이론가에 속한다. 이렇듯 물리학자는 실험자와 이론가, 크게 두 집단으로 나뉜다. 물리학계의 현황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실험자와 이론가들이 서로 등을 돌린 상태로 통일장 이론을 연구하고 있을 거로 생각하기 쉽다. 모든 물리학자를 두 가지 유형으로 단순하게 분류하는 것은 현실성이 떨어진다. 뉴턴(Newton)은 가장 위대한 실험자이자 이론가다. 물체의 운동 상태를 설명하기 위해 탄생한 고전역학과 뉴턴이 독자적으로 만든 미적분은 각각 물리학과 수학의 발전에 이바지했다. 물리학과 수학이 상호보완하며 발전하는 과정에서 일반상대성이론이 정립되었다.


우주로 가는 물리학을 쓴 저자 마이클 다인(Michael Dine)은 실험자와 이론가 양쪽 진영에 발을 걸치고 있는 물리학자다. 그는 물리학과 수학이 서로에게 자극을 주면서 발전해왔다고 말한다. 우주로 가는 물리학은 실험자와 이론가들이 어떻게 물질과 우주의 기원을 탐구해왔는지 보여준다에드윈 허블(Edwin Hubble)이 천문대의 망원경으로 은하를 관측하면서 우주가 팽창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하지만 그전에 이미 이론가들은 우주가 정적이지 않다고 예측했다. 러시아 물리학자 알렉산드르 프리드만(Alexander Friedmann)은 방정식을 이용해 팽창하는 우주 모형을 제시했다. 그의 이름이 붙여진 방정식은 일반상대성이론을 응용해서 유도한 것인데, 정작 아인슈타인은 팽창하는 우주 모형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정적인 우주 모형에 대한 믿음이 확고했던 그는 우주상수를 도입했다. 허블을 비롯한 실험자들이 관측을 통해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내자, 아인슈타인은 우주상수를 ‘자신의 최대 실수라면서 인정했고 정적인 우주 모형을 철회했다.


물리학자들은 실험을 진행하다가 어려움에 부딪히면 수학을 연결했다. 수학은 실험자들이 쩔쩔매게 했던 물리학의 복잡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만약 수학이 발전하지 않았다면 물리학자들은 우주에서 우리가 어떤 위치에 있는지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우주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 서로 자신의 견해를 검증하면서 협력하고 있는 실험자와 이론가의 관계를 생각하면 마이클 다인의 책 제목은 우주로 가는 물리학이 아니라 우주로 가는 물리학과 수학이어야 한다수식을 보면 머리가 어질어질해지는 독자들은 안심해도 된다. 우주로 가는 물리학에 유일하게 나온 수식은 ‘E=mc2’뿐이니까.


저자는 이 책에서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실험자와 이론가들도 소개했다. 그렇지만 한 권의 책에 담을 수 없을 정도로 엄청 많은 물리학자와 수학자들의 뛰어난 성과 중에 핵심만 추려서 설명했기 때문에 독자들이 기억해야 할 몇몇 학자들을 언급하지 않았다. 독일에서 활동한 리투아니아 출신의 수학자 헤르만 민코프스키(Hermann Minkowski)는 기하학으로 4차원 시공간 모델을 제시했다. 아인슈타인은 민코프스키에게 비유클리드 기하학을 배운 덕분에 특수상대성이론을 다듬을 수 있었다. 벨기에의 가톨릭 성직자인 조르주 르메트르(Georges Lemaître)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우주의 기원을 연구해서 허블보다 먼저 우주 팽창론을 발표했다. 상대성이론과 우주론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이 두 사람을 꼭 기억해야 한다.


그런데 우주로 가는 물리학을 쓴 저자와 번역자가 실수를 범했다. 그들의 실수로 인해 본의 아니게 책에 오류와 오역이 생겼. 이 책의 번역자는 과학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인 이한음 씨.



* 38




 

 신을 논외로 친다면, 시간의 경과가 어디에서나 언제나 동일하다는 것을 무엇으로 증명할까? 사실 이 질문은 19세기 후반에 오스트리아에서 활동한 물리학자이자 철학자인 에른스트 마흐(Ernst Mach)가 제기했다. 아인슈타인을 자신의 지적 영웅으로 여겼던 마흐는 뉴턴이 주장한 절대시간을 이렇게 평했다.


[원문]

 

 Leaving God aside, what proves that the passage of time is the same everywhere and always? Indeed, this question was raised by Ernst Mach, a physicist and philosopher who was active in Austria in the latter part of the nineteenth century. One of Einstein’s intellectual heroes, Mach wrote of Newton’s insistence on absolute time.



‘One of Einstein’s intellectual heroes, Mach’아인슈타인이 자신의 지적 영웅으로 여겼던 마흐또는 아인슈타인의 지적 영웅 중 한 명인 마흐로 번역해야 맞다. 마흐는 뉴턴이 가정한 절대시간과 절대공간을 형이상학적 개념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관측할 수 있는 지구상 모든 물체는 뉴턴이 가정한 절대 운동이 아닌 상대운동을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를 마흐의 원리라고 한다. 마흐의 원리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일부 영향을 미쳤다. 마흐가 아인슈타인을 자신의 지적 영웅으로 여겼다는 표현은 오역이다.




* 51




 

 갈릴레오의 가장 유명한 실험 중 하나는 낙하하는 물체를 연구한 것이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르키메데스는 무거운 물체가 가벼운 물체보다 더 빨리 떨어진다고 주장했다. 설득력 있는 추측이었지만, 꼼꼼한 관찰을 토대로 한 진술은 아니었다. 갈릴레오는 이 주장에 회의적이었고 그 문제를 실험을 통해 조사했다. 그가 정말로 피사의 사탑에 올라가 질량이 다른 물체들을 떨어뜨렸는지는 학술적 논쟁거리다.


[원문]

 

 Galileo’s most famous experiments were his studies of falling objects. Archimedes, the ancient Greek philosopher, had asserted that heavy objects fall faster than lighter ones. This was a plausible guess, but not a statement based on careful observations. Galileo was skeptical and studied the question experimentally. Whether he actually dropped objects of different mass from the Leaning Tower of Pisa is a subject of scholarly debate.



떨어지는 물체의 운동을 처음으로 언급한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는 아르키메데스가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 아르키메데스는 지렛대의 원리와 부력의 실체를 발견한 물리학자이자 수학자이며 무기와 각종 기계를 만든 공학자이기도 하다저자가 학자 이름을 착각했다. 이한음 씨는 저자의 오류를 확인하지 않은 채 그대로 번역했다.




* 178




 

 안드레이 사하로프(Andrei Sakharov)는 예전 소련에서 중요한 과학자이자 반체제 목소리를 낸 주요 인사였다. 1921년에 태어난 그는 1950년대에 소련의 수소폭탄 개발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60년대에 그는 공산주의 체제를 비판하는 주요 인물로 떠올랐다. 그는 소련을 이렇게 평했다. “우리 국가는 암세포와 비슷하다. 절대 신념과 팽창주의, 반대자의 전체주의적 억압, 권위주의 권력 구조를 갖추고 국내 및 외교 정책의 가장 중요한 결정에 대한 대중 통제력의 철저한 부재, 그 어떤 중요한 사항도 시민에게 알리지 않고, 외부 세계에 문을 닫고, 여행도 정보 교류의 자유도 없는 폐쇄 사회다.” 인권과 군축을 옹호한 공로로 그는 1975년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하지만 1980년 그는 수용소로 보내졌고, 1988에 생을 마감했다.


[원문]

 

 Andrei Sakharov was an important scientist and leading dissident voice in the former Soviet Union. (중략) For his work as an advocate for human rights and arms control, he won the Nobel Peace Prize in 1975. In 1980, he was sent into internal exile, passing away in 1988.



1980년에 안드레이 사하로프가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공개적으로 규탄하자 소련 정부는 그와 가족을 고리키 시(현재 명칭은 니즈니 노브고로드)의 한 아파트에 가택 연금시켰다


‘Internal exile’은 국내의 외딴 지역으로 격리(유배)되는 형태인 내부 망명을 뜻한다. 사하로프가 수용소로 보내졌다는 표현은 오역이다. 그리고 저자는 사하로프의 사망 연도를 착각했다. 사하로프는 1989년 12월 14일에 사망했다. 이한음 씨는 ‘철학자 아르키메데스에 이어서 저자의 오류를 확인하지 못했다.





※ 미주(尾註)알 고주(考註)



* 223

 

 규소, 게르마늄, 제논[주] 같은 물질을 이용해서 다양한 검출 실험이 이루어졌다.



[주] 대한화학회는 라틴어 및 독일어로 된 화학 용어를 영어로 표기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게르마늄(Germanium)을 영문식으로 표기하면 저마늄이다. 제논은 대한화학회가 권장한 이름인데, 과거에 이 원소는 크세논(Xenon)이라고 불렸다


변경된 화학 용어를 반드시 써라는 법은 없다. 사실 대한화학회의 화학 용어 개정안에 문제점이 있고, 대부분 국내 과학자들은 화학 용어 개정안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과거 명칭을 쓴다는 것은 잘못된 일이 아니다다만 과거 명칭에 익숙한 독자는 새롭게 변경된 명칭을 잘 모를 수 있다. 저자와 번역자는 화학 용어를 쓸 때 과거 명칭과 대한화학회가 지정한 새로운 명칭을 함께 표기해야 한다. 예를 들면 저마늄(게르마늄), 제논(크세논)’으로 쓰면 된다. 실제로 이런 방식으로 쓰는 저자와 번역자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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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0월에 제가 쓴 모더니스트 마네》(환대의식탁, 2022) 서평에 대한 저자 홍일립 님의 글을 읽었습니다



* <인상주의자로 박제가 된 모더니스트를 아시오?> 2022104일 작성

https://blog.aladin.co.kr/haesung/13985837

 

* 홍일립 <cyrus님께 답변해드립니다> 20221011

https://blog.aladin.co.kr/713543113/14002326




답문을 뒤늦게 써서 이제야 공개해서 죄송합니다. 서평 한 편 쓸 수 없을 정도로 연말에 개인적으로 몹시 바빴습니다. 그렇지만 저자님이 쓴 글을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어떤 오류를 범했는지 파악하고 검토하기 위해서 저자님이 지적한 부분을 꼼꼼하게 읽었습니다. 저자님의 견해를 인정합니다.


모더니스트 마네서평은 명백히 오류가 가득한 글입니다. 보통 잘못 쓴 글은 삭제해야 합니다. 그런데 저는 그냥 삭제하지 않습니다. 글을 지우기만 하면 잘못 쓴 행위에 비롯한 과실은 자연스럽게 묻히기 쉽습니다. 저는 그런 상황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실수를 제대로 인정하고, 저자에게 진정성 있게 사과하려면 글 속에 있는 오류를 삭제하기보다는 그 내용에 취소 선을 표시해서 제가 어떤 오류를 범했는지 남겨야(공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잘못 쓴 글을 지우기만 한다면 제대로 반성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저의 이러한 태도가 낯설게 느껴진다면 예전에 제가 쓴 글을 참고하시면 됩니다. 이 글에 글쓰기를 하면서 생긴 실수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응할지 구체적으로 밝혔으며 반성문을 써야 하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글쓰기에 대한 저의 신조와 철칙이 담긴 글입니다.

 


* <다시 글을 쓰는 용기> 2019419일 작성

https://blog.aladin.co.kr/haesung/10807968

 

 

그리고 모더니스트 마네서평에 있는 별점을 삭제했습니다.

 

사실 서평의 오류보다 제가 더 크게 잘못한 점은 글 속에 비속어를 연상케 하는 단어를 썼다는 점입니다. 제가 너무 오만했고 경솔했습니다. 정말로 죄송합니다. 앞으로 타인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는 표현을 쓰지 않도록 주의하겠습니다.

 

저의 부족한 서평을 꼼꼼하게 읽어주시고, 상세하게 저의 오류를 짚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자님의 글 덕분에 서평 쓰는 방식에 대해 반성할 수 있었습니다. 참고문헌을 좀 더 철저하게 검토하고 확인해 볼 것. 공인이 쓴 글이라도 그 내용이 사실인지 아닌지 회의할 것. 책의 질이 낮다고 해서 그 책을 쓴 저자를 업신여기거나 조롱하거나 깔보지 말 것. 내 의견은 틀릴 수 있으며 오류로 판명되면 실수를 인정해야 하고, 바로 고칠 것. 저자님의 글은 나태해진 저의 정신을 번쩍 들게 해주었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올해도 건강하시고 건필하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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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3-01-07 17: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cyrus님, 반가워요
잘 지내시죠!
책을 읽으며 저 역시 항상 오독을 하는 것 같아서 리뷰를 쓰면서도 걱정이 됩니다^^

cyrus 2023-01-08 12:57   좋아요 1 | URL
반갑습니다. 페넬로페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잘못 읽으면 실수를 인정하고 고치면 되니까요. 틀렸는데도 맞다면서 고집을 부리거나 다른 사람의 견해를 무조건 틀렸다고 비난하는 게 오독하는 행위보다 제일 큰 문제죠. ^^

차트랑 2023-01-07 17: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매우 유익한 리뷰였고 좋은 사과문입니다.

cyrus 2023-01-09 12:49   좋아요 0 | URL
오랜만입니다. 차트랑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제가 쓴 <모더니스트 마네> 서평은 지금까지 제가 쓴 글 중에 최악의 글이라고 생각해요. 글을 쓰기 위한 과정과 결과 모두 좋지 못했으니까요. 그래도 제가 몰랐거나 잘못 알고 있었던 사실을 알게 돼서 저자님의 글이 저에게 유익한 글이었어요. ^^

solitman 2023-01-09 17: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cyrus님! 홍일립입니다. 새해에도 건강함과 즐거움이 가득한 날들이 이어지기를 기원합니다. 님과 같은 훌륭한 독자를 만날 수 있음을 큰 기쁨으로 받아들입니다. 님의 지적을 통해 저자인 저 역시 여러 미흡함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깊이 감사드립니다.

2023-01-09 23: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전망 좋은 []

 

EP. 17



2022년 10월 15일 토요일

직립보행






 토요일 오후 모두 다 기다리던 시간 그냥 보낼 수 없잖아요. 오늘 하루는 하던 일 잠시라도 잊고 춤을 춰보아요


(김완선 노래, <기분 좋은 날> 중에서)




금요일에 책을 주문(알라딘)하면 불안하다. 그다음 날인 토요일에 책을 받을 수 있다고 되어 있지만, 간혹 배송이 늦어지면 다음 주 월요일에 책을 받을 때도 있다. 오후 3시가 지났는데도 주문한 책이 알라딘 서점에 도착했다는 카톡 메시지가 오지 않았다. 포기하면 편하다고 했다. 오매불망 기다리기만 하면 해야 할 일(책 읽기와 서평 쓰기)을 못 한다.

 

오랜만에 동부도서관에 갔다. 니체(Nietzsche)횔덜린(Holderlin)과 관련된 책 다섯 권을 빌렸다. 니체를 읽고 난 이후부터 너무 오랫동안 잠잠했던 고전문학에 관한 관심이 솟아났다. 특히 내가 주목하고 있는 작가가 독일 낭만주의 시인으로 분류되는 횔덜린과 하인리히 하이네(Heinrich Heine).








                              평점

       4점  ★★★★  A-







* 베르너 슈텍마이어, 홍사현 옮김 니체 입문》 (책세상, 2020)









                               평점

       4점  ★★★★  A-







* 레지날드 J. 홀링데일 니체: 그의 삶과 철학(북캠퍼스, 2018)


















* 프리드리히 니체, 이진우 옮김 비극의 탄생, 반시대적 고찰(책세상, 2005)





니체는 대학 시절인 횔덜린에 대한 평론을 썼다. 그 당시에 횔덜린의 진가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이 글에서 니체는 독일인의 속물근성과 편협한 애국심을 비판한 횔덜린을 옹호한다. 니체의 글을 검토한 지도 교수는 그것이 잘 쓴 작품이라고 인정하면서도 다음과 같은 충고를 남겼다고 한다.



 “나는 학생이 좀 더 건강하고, 명확하고, 좀 더 독일적인 시인을 가까이하는 것이 좋을 거로 생각하네.”

 

(니체: 그의 삶과 철학, 47)



지도 교수도 그렇고, 당시 독일인들은 횔덜린이 조국을 부당하게비판한 독일적이지 않은시인으로만 기억했다니체는 반시대적 고찰 1에서 횔덜린을 불운하지만 훌륭한 시인으로 평가한다.

















* 프리드리히 니체, 박찬국 옮김 이 사람을 보라(아카넷, 2022)

 

* 프리드리히 니체, 이동영 옮김 이 사람을 보라: 어떤 변화를 겪어서 어떤 사람이 되었는지(세창출판사, 2019)

 

* 프리드리히 니체, 백승영 옮김 바그너의 경우, 우상의 황혼, 안티크리스트, 이 사람을 보라, 디오니스소 송가, 니체 대 바그너(책세상, 2002)




니체가 좋아한 또 한 명의 독일 시인은 하이네. 니체는 하이네가 자신에게 서정 시인에 대한 최고의 개념을 선사해주었다고 말한다. 니체는 언젠가 사람들이 독일어를 사용하는 최초의 예술가가 자신과 하이네라면서 말하게 될 거라고 주장한다(이 사람을 보라, 이동영 옮김, 나는 왜 이토록 영리한지).









                              평점

      4점  ★★★★  A-






* 하인리히 하이네 독일, 어느 겨울 동화(시공사, 2011)




하이네도 횔덜린처럼 당대의 독일을 비판한 시인이다. 1847년에 발표된 운문 서사시 아타 트롤, 한여름 밤의 꿈》(독일어느 겨울 동화》에 수록)은 이념에 맹목적으로 사로잡힌 독일의 지식인들(구체제를 지키려는 보수주의자와 현실성이 결여된 사회 변혁을 추진하는 급진주의자들)을 비판한 작품이다.

 

내가 주문한 책이 책방 직립보행에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어서 책을 빌린 다음에 바로 그쪽으로 향했다그 한 권의 책을 확인만 해보려고 책방에 간 거였는데‥…
















* 한강 작별하지 않는다(문학동네, 2021)




보행 쌤이 읽고 있던 책은 한강의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였다. 보행 쌤의 남편인 책방지기가 무슨 책을 읽고 있는지 제대로 보지 못했다.







                             평점

      4점  ★★★★  A-






* 움베르토 에코 추의 역사(열린책들, 2008)




사실 내가 금요일에 주문한 책이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추의 역사. 예전에 몇 번 읽은 적이 있고 서평도 썼는데, 결국 사게 됐다. 그냥 사고 싶어서 산 게 아니고, 서평을 쓰기 위해 필요한 정보를 확인하고 싶어서 샀다. 내가 이 책을 샀다고 하니까 책방지기는 책 속에 있는 도판 대부분이 무서워서 웬만하면 잘 펼쳐보지 않는다고 했다. 오히려 추의 역사》를 즐겨 읽은 내가 신기하다고 했다. 그럴 만도 하다. 이 책에 흉측하게 생긴 괴물이나 악마가 그려진 삽화뿐만 아니라 실제로 잘려 나간 사람의 목이 나오는 사진도 있다.


책방지기와 니체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책방지기는 아포리즘(aphorism) 위주로 된 니체의 글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 이유는 짧은 문장을 보면 볼수록 니체가 뭘 말하려고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 에밀 시오랑 태어났음의 불편함(현암사, 2020)


* [구판 절판] 에밀 시오랑 지금 이 순간, 나는 아프다: 태어남의 불행에 대해(챕터하우스, 2013)

 


그러면서 에밀 시오랑(Emil Cioran)지금 이 순간, 나는 아프다(개정판: 태어났음의 불편함)가 아포리즘 형식으로 되어 있어서 읽는 데 애먹었다고 했다.

 

부부 책방지기는 좋은 책을 알아볼 줄 아는 나의 안목과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는 나의 독서 편력을 대단하게 여기는데, 두 분의 독서 이력과 비교하면 한참 멀었다. 직립보행에 있는 책들 대부분은 부부 책방지기가 최소 한 번은 읽었다. 그런데 나는 그런 책들을 사놓고도 조금이라도 읽을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부 책방지기는 내가 구매했지만 안 읽은 책들에 대한 자신의 감상을 밝히는데, 나는 그게 스포일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내게 자극을 준다. 책을 적극적으로, 그리고 제대로 읽게 만들도록 해준다.


책방에서 망중한을 즐기는 중에 주문한 책이 알라딘 서점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메일이 왔다. 원래 카톡 메시지도 같이 오는데, 어제 일어난 카톡 오류 사고 때문인지 카톡 메시지는 오지 않았다. 책방에 세 시간 정도 있다가 오후 6시경에 알라딘 서점에 갔다. 책방에 책 한 권이라도 사지 않으면 내 머릿속에 가시가 돋는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 다섯 권, 주문한 책이 다섯 권, 총 열 권의 책을 가방에 넣고 다니면 어깨가 편하지 않다. 마침 책방에 하이네 시 선집이 있어서 그거 딱 한 권만 샀다.


진짜로 일어난 일로 이 글을 마무리한다. 사실 이게 어제 하루 중에 나를 가장 즐겁게 한 일이다. 알라딘 서점에 가기 위해 경북대학교 의과대학 주변의 길을 걷다가 천 원짜리 지폐를 주었다. 지금도 그걸 어떻게 주웠는지 신기하다. 이미 해가 져서 하늘은 어두웠고, 땅에 떨어진 지폐는 길에 세워둔 차의 앞바퀴 밑에 있었다. 그리고 지폐는 네 번 정도 접힌 상태였다. 만약에 주문한 책이 어제 알라딘 서점에 도착하지 않았으면 경북대학교 의과대학 주변을 지나갈 일이 없었다. 아니, 지나갔다고 해도 지폐를 못 봤을 것이다. 운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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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22-10-16 15: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추의 역사 있습니다. 보기 힘든 사진이 많아서 저도 ㅠ 서평 기대할게요. 에밀 시오랑의 저 책은 구판 표지가 훨씬 예쁜데 새로 나왔네요.
직립보행 찾아보니 인문학 헌책방이네요.
책방지기 부부와의 대화 분위기가 느껴져요.
하이네 시집도 사고 거금까지 행운 가득합니다 ^^
 




영국 문예지 <런던 리뷰 오브 북스>(London Review of Books, LRB)의 편집장 메리케이 윌머스(Mary-Kay Wilmers)의 에세이 선집 서평의 언어7월 초에 샀다. 8월 초부터 읽기 시작했고, 시간 나는 대로 틈틈이 읽고 있다. 서평의 언어에 수록된 모든 글의 분량이 너무 짧지도, 그렇다고 길지도 않아서 일주일 내로 다 읽을 수 있을 거라 예상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독서 진도가 더디다.







                              평점


         3점  ★★★  B







* 메리케이 윌머스 서평의 언어: <런던 리뷰 오브 북스> 편집장 메리케이 윌머스의 읽고 쓰는 삶(돌베개, 2022)




여유로운 시간을 쪼개가면서 여러 책을 동시에 읽다 보니 책 읽는 속도가 느린 것도 있다. 사실 서평의 언어를 느리게 읽게 만드는 원인이 책 속에 있다. 윌머스의 글에 미국 및 유럽의 역사나 명사(名士)와 관련된 일화 등이 언급된다. 이 내용들을 모르면 금방 읽을 수 없다.


윌머스의 글을 처음 접한 국내 독자들의 눈과 머리는 영국적인 색채가 낯설다. 글의 색채를 독자들이 좀 더 편하게 느낄 수 있게 역자는 역주를 많이 써야 한다. 혹자는 역주가 너무 많으면 독자는 본문과 역주를 같이 읽게 되고, 독서에 몰입할 수 없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역주가 너무 적어도 문제다. 역주가 없으면 독자는 글 속에 있는 생소한 단어나 문장을 이해하지 못한다. 대부분 독자는 모르는 단어나 이해하기 어려운 문장을 만나면 그냥 넘기는데, 나처럼 문장 속 생소한 단어에 호기심을 가지거나 그 의미를 알아야 직성이 풀리는 독자는 그냥 못 지나친다. 이런 유형의 독자는 윌머스의 글을 느리게 읽는다.


서평의 언어에 표시된 역주가 총 몇 개인지 세어보지 않았다. 역주 개수를 일일이 세보고 싶지 않다. 한 편의 글에 들어있는 역주 개수가 많은 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역주를 더 써넣어야 할 글이 몇 편 있다. 그중 한 편이 나는 영국 시민이었소라는 제목의 글이다윌머스는 나는 영국 시민이었소에서 유명 인사들의 부고를 소개하고, 그 부고를 작성한 사람과 부고가 쓰인 시대적 배경을 나름 분석하면서 비평한다. 나는 영국 시민이었소역주 없이 언급된 용어나 인물명은 다음과 같다.



오나시스(29~30), 마우마우 무장투쟁(38), 베런슨(41), 프리드리히 블룸(41), IRA(42), 위트릴로(46)

 


솔직히 말해서 나는 오나시스위트릴로만 누구인지 정확하게 안다. 오나시스(Aristotle Onassis)선박왕이라는 별명으로 알려진 그리스의 사업가다. 위트릴로(Maurice Utrillo)는 프랑스의 화가다. 나머지는 몰라서 인터넷에 검색해서 확인해봤다.


경건함에 버금가는은 백과사전 편찬자의 글 쓰는 방식을 분석한 글이다. 윌머스는 이 글에서 <피어스 실링 백과사전>에 실린 여러 개 항목을 인용한다. <피어스 실링 백과사전>위키피디아(Wikipedia)와 같다고 보면 된다. 백과사전 항목에 편찬자의 주관적인 생각과 잘못된 정보가 여과 없이 반영되어 있다윌머스가 인용한 백과사전 항목 중에 그런 내용이 있다.



* 81


 유대인에 대해서는 오늘날 () 예술과 문학 분야에서 가장 위대한 이들 몇몇을 배출했다는 말과 함께 스피노자, 멘델스존, 하이네, 베토벤, 슈베르트를 언급한다.

 


백과사전 편찬자는 베토벤(Beethoven)과 슈베르트((Schubert)를 유대인 출신 음악가라고 했는데, 두 사람은 유대인이 아니다.




약속들 중에서, 257


 하드윅의 에세이는 클래리사와 태스를 비롯한 문학작품 속 여성 주인공들의 운명, 그리고 이들이 남성과 일탈적 관계를 맺은 대가로 치른 형벌을 이야기한다.

 


클래리사는 영국의 작가 새뮤얼 리처드슨(Samuel Richardson)의 서간체 소설 클러리사 할로(Clarissa; or, The History of a Young Lady)의 주인공이다. 작품 분량이 대하소설만큼 방대한데, 8권으로 된 번역본(김성균 옮김, 지만지, 2012)이 있다.

 


 

약속들 중에서, 261~262


 몰 플랜더스내 지나친 자만심이 나의 몰락을 불러왔으며, 어쩌면 나의 허영심이 그 원인이었으리라라는 대사가 몰락한 모든 자매를 대변한 셈이다.



몰 플랜더스(Moll Flanders)다니엘 디포(Daniel Defoe)가 쓴 소설 제목이자 매춘부인 주인공의 이름이다.
















* 윌리엄 셰익스피어 자에는 자로(동인, 2014)



약속들 중에서, 266

 

 진심만을 말하는 여성들도 있으나(준 대로 받은 대로에 등장하는 수다쟁이 이저벨라가 좋은 예다), 대다수 여성은 그렇지 않다.



준 대로 받은 대로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의 희극 작품이다. 원제는 ‘Measure for Measure’. 번역된 제목이 여러 개가 있는데, 가장 많이 알려진 제목은 자에는 자로.
















* 로버트 브라우닝 로버트 브라우닝 시선(지만지, 2012)


* 엘리자베스 배럿 브라우닝 엘리자베스 브라우닝의 사랑 시(지만지, 2011)



* 무슨 이런 어머니가중에서, 373

 

 그를 가르친 선생들은 대개 케케묵은 취향을 지니고 있었으며 이들이 우러러보던 작가들은 그가 좋아하는 작가들브라우닝, 예이츠, 제임스과는 달랐다.



브라우닝은 과연 누굴까? 엘리자베스 B. 브라우닝(Elizabeth B. Browning, 1806~1861) 아니면 로버트 브라우닝(Robert Browning, 1812~1889)? 두 사람은 부부다.


<런던 리뷰 오브 북스>에 실린 글의 날짜가 맞지 않는다. 저자나 편집자의 착오인가? 책에는 나르시시즘과 그 불만(Narcissism and Its Discontents)의 게재 날짜가 ‘198186로 되어 있다(118). 죽음과 소녀(Death and the Maiden)‘19811217에 실렸다고 나와 있다(141). <런던 리뷰 오브 북스> 공식 홈페이지(https://www.lrb.co.uk/)에 들어가면 두 편의 글이 발표된 날짜를 확인할 수 있다나르시시즘과 그 불만<런던 리뷰 오브 북스>에 실린 날짜1980221이며 죽음과 소녀198186이다.


오자도 있다. 총제적 난국이다. 아니, 진짜 무슨 이런 책이 다 있지?



『서평의 언어』 중에서, 103




 

핸리 헨리




나르시시즘과 그 불만』 중에서, 112





 메이미 핀저의 경우는 더 복잡하다.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유대인 여성 핀저는 1995 필라델피아에서 태어나 열세 살에 학교를 그만두고 백화점에서 일하게 된다.


[원문]


 She was a good-looking Jewish girl, born in Philadelphia in 1885. When she was 13 she had to leave school to work in a department store.

 

199518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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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2-10-15 15: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읽다가 짜증 나서 안 읽고 있는데 다른 사람도 이 책 별로라니까 왜 반갑죠!! ^^;;

cyrus 2022-10-15 20:04   좋아요 0 | URL
저만 안 좋게 본 건 아니었군요. 안심이 드네요. ㅎㅎㅎ

바람돌이 2022-10-15 1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평집은 내가 모르는 책이 너무 많으면 재미가 없더라구요. 어느정도 섞여 있어야지.... 다른 나라 사람이 쓴 서평집은 아무래도 우리 나라 독서경향과 또 다를테니까 읽기가 힘들거 같아요. 그래서 전 이 책 소개가 나왔을 때도 굳이 왜? 햇거든요.

cyrus 2022-10-15 20:07   좋아요 0 | URL
맞아요. <서평의 언어>와 몇 편의 글을 제외한 나머지는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았어요. 읽어야 할 문학 작품들이 엄청 많다는 걸 뼈저리게 깨달았어요. ㅎㅎㅎ

2022-10-15 18: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22-10-15 20:09   좋아요 1 | URL
이 글을 9월 초에 쓰기 시작했는데, 게을러져서 다 못 쓰고, 한동안 방치되었어요. 글을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첫 문장을 고쳐 쓰지 못했어요. 오타 알려줘서 고마워요. ^^

그레이스 2022-10-15 2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다 만 책!이예요.

건수하 2022-10-16 1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어봐야지 하고 있던 책이었는데 사이러스님 글 보니 지나쳐도 되겠다 싶네요.. 찾아보며 읽으신 것 공유해주셔서 감사해요 :)

꼬마요정 2022-10-16 16: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cyrus님 글 읽고 이 책 다 읽었습니다. 그냥 모르는 건 모르는대로 넘겼어요 ㅎㅎ 말씀처럼 너무 정보가 없어서 다 찾다가는 이 책 못 읽을 것 같아서요. 확실히 성향이 우리나라랑 다른 것 같아요. 인상깊은 글도 있구요. 덕분입니다. 고맙습니다^^

sonn71 2022-11-03 1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가지 궁금한데요. 평점을 무슨 기준으로 매기나요? 본인 취향인가요? 아니면 다른 기준이 있나요? 몇몇 오탈자 찾아내는 건 잘 하시네요. 그런데 본인이 이해하지 못한다고 ˝무슨 이런 책이 있지?˝하고 내던지는 비뚤어진 독서습관이 있나요?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면서 서평을 하는 건 넌센스아닌가요? 그러면 교정보는 수준의 저급한 감상문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잘 모르면 아는 척 좀 하지 마세요. 위키백과 수준의 상식을 누가 모릅니까? 다시 물을께요. 평점을 무슨 잣대로 매기나요?
 
다클리 - 미국 고딕의 검은 영혼
릴라 테일러 지음, 정세윤 옮김 / 구픽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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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점


4점   ★★★★   A-






미국의 작가 러브크래프트(H. P. Lovecraft) 에세이 공포문학의 매혹》(홍인수 옮김, 북스피어, 2012)은 이런 문장으로 시작된다.



 The oldest and strongest emotion of mankind is fear, and the oldest and strongest kind of fear is fear of the unknown.


 가장 오래되고 강력한 인간의 감정은 공포이며, 그중에서도 가장 오래되고 강력한 것이 미지에 대한 공포이다.

 

(홍인수 옮김, 9)



러브크래프트는 자신이 내린 공포의 정의에 부정할 심리학자는 거의 없을 거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문장은 심리학자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인정한다우리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것을 마주치면 긴장한다. 긴장감이 팽팽해지면 공포감은 더 커진다러브크래프트가 생각한 미지의 존재는 예측하기 어려운 존재. 그들은 우리가 알지도 못하고, 어디에 속하지도 않은 영역 속에 있다미지의 존재가 의인화된 것이 괴물이다괴물로 알려진 존재는 공공의 적이 된다.


그런데 러브크래프트가 생각하지 못한 것이 있다. 그는 공포감을 불러일으키는 대상을 미지의 영역으로 한정시켰다. 우리가 괴물을 무서워하는 이유는 괴물의 정체를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지(旣知)의 존재,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존재 역시 괴물로 치환된다그 괴물은 우리의 일상에 가까이 있거나 때론 숨어 있기도 하다. 


고딕 소설(Gothic novel)은 공포문학의 초기 양식이다. 고딕은 하늘로 향해 뾰족하게 치솟은 첨탑이 있는 중세 시대의 건축물을 뜻하는 단어였다. 고딕 소설은 음산한 분위기를 풍기는 고딕 스타일의 건축물을 배경으로 한다. 고딕 소설의 주인공은 이곳에서 초자연적 현상을 경험한다. 러브크래프트는 공포문학의 매혹에서 고딕 문학의 계보를 설명하면서 앤 래드클리프(Ann Radcliffe)를 거론한다러브크래프트는 잔혹함과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소설 속 장면을 효과적으로 묘사한 래드클리프의 필력을 극찬한다. 래드클리프는 결말에 가서야 등장인물들을 벌벌 떨게 만든 망령의 실체를 장황하게 설명하면서 밝힌다. 러브크래프트는 기괴한 환상을 와장창 깨뜨려버리는 작가의 글쓰기를 짜증 나는 습관이라고 표현하면서 비판한다. 러브크래프트는 래드클리프를 비판하면서 다시 한번 책의 첫 문장에 있는 공포의 정의를 상기시킨다.


그렇지만 러브크래프트가 생각하는 공포의 정의와 이를 반영한 비판적인 견해가 무조건 옳다고 볼 수 없다. 러브크래프트보다 먼저 태어난 래드클리프도 공포의 정의를 내렸다. 그녀는 공포의 본질적인 의미를 명백하게 보이는 잔혹성이라고 규정한다. 러브크래프트가 낯설고 불확실한 미지의 존재를 마주하면서 생기는 공포를 선호했다면, 반대로 래드클리프는 예측 가능한 기지의 존재의 행동을 볼 때 느껴지는 공포를 주목했다. 래드클리프가 창조한 망령은 처음에 보이지 않는 불확실한 존재였다가 실체가 드러나는 순간 ‘명백하게 보이는 존재가 된다. 따라서 우리와 가까운 명확한 존재도 괴물이 될 수 있다.


릴라 테일러(Leila Taylor)다클리: 미국 고딕의 검은 영혼》(Darkly: Black History and America’s Gothic Soul, 2019)1927년에 나온 공포문학의 매혹을 더 낡아빠진 책으로 만들어버린다. 재미있게도 테일러는 미국 고딕을 분석한 자신의 책에 단 한 번도 러브크래프트를 언급하지 않는다. 러브크래프트는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와 함께 미국 공포문학의 양대 산맥으로 꼽힌다. 하지만 생전에 러브크래프트는 흑인을 무척 싫어한 인종차별주의자였다. 그는 흑인과 혼혈인이 미국을 세운 백인인 앵글로 색슨족(Anglo-Saxon)을 위협하는 존재로 인식했다. 그의 소설에 등장한 공포스러운 존재는 백인 중심 공동체의 평화를 파괴하는 사악한 인종으로 묘사되어 있다. 테일러가 러브크래프트의 인종 혐오를 까기 위해 의도적으로 배제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흑인을 ‘미국의 괴물로 보이게 만드는 미국 고딕을 비판한다.


흑인성(Blackness)은 흑인을 괴물로 만드는 데 적합한 여러 가지 설정을 담고 있다가난, 범죄, 마약 중독, 난잡한 성생활. 이 모든 것은 백인의 인종적 편견이 반영된 흑인성이다. 백인은 흑인성을 두려워했다. 일상적인 공포를 억누르기 위해 흑인을 멸시했고, 그들을 철저히 배제하는 정책을 만들었다. 과격한 백인 우월주의자들은 미국의 괴물을 집단 폭행했고 처형했다.


테일러는 흑인에 대한 백인의 두려움이 수백 년에 걸쳐 전략적 공포로 길러져 왔다고 말한다. 노예로 살아온 흑인은 자신을 가혹하게 대한 백인을 증오한다. 백인은 흑인에게 보복당할 수 있다는 막연한 두려움을 느낀다. 흑인의 피 한 방울이 섞이면 더러워진 백인의 피는 흑인의 피라고 믿는다. 흑인은 백인 사회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보이는 괴물이 된다.


흑인을 차별하는 사회제도가 사라졌어도 흑인에 대한 암묵적인 차별과 공포는 여전히 백인들의 마음속에 남아 있다. 흑인과 백인이 아닌 다른 인종을 테러리스트나 야만적인 악마 숭배자로 묘사되는 영화는 계속 나오고 있다. 미국의 백인은 무서운 흑인’ 또는 ‘문란한 흑인 여성이라는 편견을 버리지 못한 것일까. 그들은 흑인 인어 공주의 등장을 달갑지 않게 여긴다. 심지어 백인에게 차별당한 아시아인들마저도 흑인 인어 공주를 비난하는 ‘반 흑인 여론에 동참하고 있다. 흑인 인어 공주를 원하지 않는 사람들은 인어 공주가 하얀 피부와 금발의 아름다운 백인으로 영원히 남길 바란다. 상상의 존재의 외모에서 느껴지는 아름다운 매력을 보호하기 위해서 백인성(whiteness)과 순혈주의를 내세우고 있다. 따지고 보면 인어는 인간과 물고기의 몸이 합친 괴물이다다른 인종의 피 한 방울도 섞이는 것을 싫어하는 순혈주의자들이 백인 여성의 피와 인간이 아닌 물고기의 피가 섞인 ‘잡종 괴물 인어 공주를 선호하고 있다니. 코미디에 가까운 모순이다.


다클리공포를 협소하게 정의한 러브크래프트의 한계를 반박하는 동시에 그가 공포문학의 매혹에서 다루지 못한 것을 보여준다. 미지의 존재에만 집착한 러브크래프트는 인종 차별주의가 반영된 흑인에 대한 전략적 공포를 외면했다. 미국의 소설가 랠프 엘리슨(Ralph Ellison)이 표현한 것처럼 백인은 자신들의 눈에 보이는 흑인을 투명 인간(Invisible Man)으로 취급했다. 여기에 테일러의 견해를 덧붙이면 흑인은 미국의 투명한 괴물’이. 백인은 흑인에 대한 공포감을 해소할 수 있다면 그들을 때려죽여도 되며 수상한 행동을 하면 총으로 쏴도 된다고 생각한다. 이렇듯 흑인을 억압하는 전략적 공포는 명백하게 보이는 잔혹성’에 해당한.


공포와 괴물의 정의는 시대가 변하면서 끊임없이 변주된다. 미국 백인 국민을, 미국 백인 국민에 의한, 미국 백인 국민을 위한, 말 그대로 순수한 미국 고딕과 공포 장르는 없다. 괴물을 분류하는 기준은 개인 또는 한 집단의 주관적인 판단과 편견이 뭉쳐진 이분법적 사고다. 이 비합리적인 기준을 해체하면 누구나 괴물이 될 수 있다. 순혈주의가 만든 고딕과 공포 장르는 불편하다. 자신을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로, 타자를 괴물로 몰아세우면서 공포를 즐긴다는 것 자체가 기이하면서도 더 무섭다.





※ 미주(尾註)알 고주(考註)



* 원서에 도판이 있지만, 번역본에는 모든 도판이 빠져 있다.

 

 


* 53




 

 9학년 때 영어 선생님이 오래된 포(E. A. Poe) 작품집을 주셨다. 오래전에 잃어버리기는 했지만, 붉은색 표지는 해지고 종이는 누렇게 변한 그 책을 약간 경외감을 가지고 받았던 건 기억난다. 비싼 건 아니었지만 그 낡은 책은 대형 서점에서 바로 산 것과는 달리, 대물림되거나 우연히 발견된 것처럼 특별하게 느꼈다. 갈까마귀’[주1]는 내가 처음으로 (그리고 유일하게) 암송한 시였다.



[1] 포의 시 ‘The Raven’까마귀(큰까마귀)’로 번역해야 한다. 갈까마귀의 영문명은 ‘Daurian jackdaw’. 큰까마귀와 갈까마귀는 학명도 다른 종이다.





* 58

 

 내가 어렸을 때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보지 않았다. 부모님은 내가 백마 탄 왕자/잠자는 숲속의 공주 같은 쓰레기에 세뇌되는 걸 원치 않았고 당시에 흑인 공주가 없었다. 월트 디즈니(Walt Disney)에 대해 처음 배운 사실은 그는 파시스트였다로 기억한다.[2] 어쨌든 나는 그런 종류의 판타지에 흥미가 없었다.

 


[2] 월트 디즈니와 관련된 음모론이 상당히 많다. 디즈니가 독일의 나치(Nazi)를 지원하는 반유대주의자라거나 백인 우월주의 단체인 KKK의 회원이라는 소문이 있다. 모두 억측일 뿐 사실이 아니다. 디즈니가 파시스트였다라는 주장 역시 근거 없는 소문이다.





* 203~204

 

 현대 폐허의 숭고함은 그것이 가진 상대적인 새로움에 있다. 옛 건물의 용도와 이력은 친숙하고 인지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가 사는 세상이 먼지로 돌아갈 것이라는 데서 오는 매혹과 혐오 사이의 이분법을 만들어 낸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무너져 가는 모습을 본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죽음을 바라보고 있으며, 사진, 폐허 포르노 웹사이트, 다큐멘터리, 공포 영화를 통해 우리 자신의 장례식을 애도하는 사람이 된다. 이렇게 문명의 종말을 흘낏 보는 것에는 묵시록 이후의 세상을 맛본다는 음침한 즐거움이 있다. 유진 태커(Eugene Thacker)는 이같이 모호한 구역을 우리 없는 세상(world-without-us)”이라 불렀다.[주3] 이는 인간 없는 세상, 인간이 하찮은 존재가 된 장소는 어떻게 될 것인지 살짝 엿보는 것이다.

 


[3] 우리 없는 세상”이라는 용어는 유진 새커의 저서 이 행성의 먼지 속에서: 철학의 공포(김태한 옮김, 필로소픽, 2022)에 나온다.






* 220




 

 외계인에서 복제된[주4] 인간들이 지구를 지배하게 될 게 명백해지고 진짜 인간 생존자들은 몇 안 남은 상황에서 복제인간에 대항하는 유일한 방법은 깨어 있는 것뿐이었다.



[4] 오자. 외계인에게 복제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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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10-10 14: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지배자의 입장에서 타자를 가혹하게 억압한 경험은 그 지배자에게는 타자의 저항에 대한 공포가 내재되어 있을거 같아요. 그런 공포를 지배자 - 백인들은 흑인을 괴물로 나타내는 것으로 또 해소하는거겟죠. 미국 문화에 대한 또 다른 측면을 볼 수 있는 책일듯하여 흥미가 갑니다.

cyrus 2022-10-15 11:41   좋아요 1 | URL
네, 이 책의 주요 내용을 잘 말씀하셨어요. ^^

미미 2022-10-10 16: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신과 비슷한 것에 대한 질투도
마찬가지일까 생각해봅니다.
어쩌면 나와 비교 할 수 있는
대상을 질투하고 혐오하는 것일지 모른다고요.^^

cyrus 2022-10-15 11:44   좋아요 1 | URL
맞아요. 상대방의 약점이 내 약점과 비슷하다면 애써 그 상대방과 비교해서 그를 깔보려고 하죠. 그러면 내 약점이 사람들의 눈에 덜 띄게 되죠. ^^;;

2022-10-10 16: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10-15 11: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10-15 14:09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