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숨에 읽는 여성 아티스트 - 16세기부터 오늘날까지 가장 뛰어난 여성 예술가 57인의 삶과 작품
플라비아 프리제리 지음, 김영정 옮김 / 시그마북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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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없었는가?(Why Have There Been No Great Women Artists?) 1971년 미국의 미술사학자 린다 노클린(Linda Nochlin)은 이 도발적인 제목의 논문으로 남성 중심의 세계 미술계에 문제를 제기했다. 그녀는 예술이란 오로지 천부적인 재능을 지닌 한 개인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사회구조 속에서 발생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위대한 여성 미술가가 나올 수 없었던 원인은 여성에게 불리한 사회 환경과 교육제도 때문이라는 것이다. 미술뿐 아니라 모든 영역의 예술이 이 질문에서 벗어나지 않아 보인다. “왜 위대한 여성 아티스트는 없었는가?” 단숨에 읽는 여성 아티스트에 부제를 붙인다면 이런 이름이 적합하지 않을까.

 

단숨에 읽는 여성 아티스트16세기부터 현재까지 위대한 여성 예술가 57인의 삶을 조망한 책이다. 연대순으로 여성 예술가들의 생애와 작품 관련 정보를 요약하여 서술했다. 이 책은 여성 화가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은 여성 사진작가, 조각가, 행위예술가들도 소개하고 있어서 동시대 예술을 선도하는 여성 아티스트들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지금까지 미술사는 남성 중심, 서구 중심으로 기록되었다. 단숨에 읽는 여성 아티스트아시아, 남미 출신의 여성 예술가들이 나오는데, 이런 구시대적 경향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책에 소개된 유럽과 영미 출신 여성 예술가와 비교하면 아시아, 남미 출신의 여성 예술가의 수는 적은 편이며 아프리카 출신의 여성 예술가는 단 한 명도 없다. 또 아쉬운 점은 여성 건축가도 없다는 것이다.

 

단숨에 읽는 여성 아티스트는 책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50여 명이 넘은 여성 예술가를 하루 만에 알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이 책은 미술 지식이 없는 독자들이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입문서이다. 독자들이 짧은 시간에 여성 예술가들에 대한 내용을 이해할 수 있도록 전문적인 작품 분석은 과감히 생략했고, 여성 예술가들의 주요 업적과 대표작을 간략하게 언급했다. 미술에 대한 관심도가 중급 이상인 독자들은 이 책 한 권을 읽는 것만으로도 아주 중요한 예술가 몇 명이 빠진 듯한느낌을 받을 것이다. 특히 자기가 좋아하는 여성 예술가가 이 책에 언급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아쉬움이 크게 느껴질 것이다. 나는 이 책의 저자가 무슨 기준으로 위대한 3을 제외한 채 57인의 여성 예술가를 소개했는지 궁금하다. 내가 생각하는 위대한 3은 너무나도 유명한 여성 예술가이기 때문이다(이번 주 안으로 이들이 누군지 설명하는 글을 공개하겠다) . 단숨에 읽는 여성 아티스트는 분명 좋은 책인데, 여러모로 부족한 점이 많다.

 

 

 

 

Trivia

 

 

* 책 뒤에 여성 중심의 세계사 연표용어 해설이 있다.

 

 

* <용어 해설> 170쪽에 입체파를 설명한 내용이 있다. 그 내용의 첫 문장은 이렇다.

 

 

조지 바로크와 파블로 피카소로부터 시작된

현실 표현에 대한 접근법 중 하나.

    

 

조지 바로크가 아니라 조르주 브라크(Georges Braq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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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11 09: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20-03-01 19:00   좋아요 0 | URL
여성이 그린 작품을 대놓고 무시하는 시절이 있었어요. ‘예술’로 취급 안 한 것이죠. ^^;;

페크pek0501 2020-02-11 1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입문서, 환영합니다.

cyrus 2020-03-01 19:00   좋아요 0 | URL
정말로 누구든지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입문서입니다. ^^

카스피 2020-02-12 14: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에는 안나오지만 저는 로댕의 연인으로 유명했던 카미유 클로델 역시 안타까운 여성 예술가란 생각이 듭니다.카미유는 비롯 소아바미역시만 딸의 재능을 알아본 아버지의 전폭적인 지지아래 유명 예술가로서의 재능을 꽃피우려고 했지요.그런데 이때 로댕을 만나게 되과 그와 20살의 나이차임에도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로댕은 그녀 덕에 예술적 영감을 받으면서 조각가로서 승승장구를 하게 되지만 까미유는 로댕의 연인이란 타이틀 덕분에 그녀의 작품은 실제 예술적 평가를 못 받았다고 하지요.

cyrus 2020-03-01 19:01   좋아요 0 | URL
제가 리뷰한 책에 카미유 클로델이 빠져 있습니다... 제가 소개하고 싶은 여성 예술가 중 한 명을 맞추셨네요. ^^

Angela 2020-02-18 0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흥미로운 책이네요. 읽어봐야 겠어요~단숨에 읽는다니 더 좋아요 ㅎ

cyrus 2020-03-01 19:02   좋아요 0 | URL
금방 읽을 수 있는 책이라서 다 읽고 나면 아쉬울 거예요.. ^^;;
 

 

 

 

* 2020년 2월 8일 세 번째 글쓰기 모임. 스몰토크에서 이 글을 쓰다

 

 

 

내 대학교 전공은 행정학이다. 대학교 2학년 2학기와 3학년 1학기에 타과 전공과목 수업을 들었다. 2학년 때 들은 과목은 서양미술사이고, 3학년 때 들은 과목은 현대미술론이다. 두 과목 모두 회화과에 입학한 학생이라면 반드시 수강 신청을 해야 한다. ‘서양미술사1학년 학생들의 전공필수과목이며 현대미술론3학년 학생들의 전공필수과목이다. 나는 독학으로 미술사를 공부한 적이 있어서 회화과 수업을 듣는 것에 부담감은 느끼지 않았다. 수업에 충실히 참여하면 학점을 잘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과목의 담당 교수는 김○○ 교수님이다. 그분은 웃음이 많았다. 시원시원하게 웃는 교수님의 모습은 수업을 듣는 학생들의 기분을 좋게 했다. 만약 다시 대학교에 입학한다면 김 교수님의 미술사 수업을 다시 듣고 싶다. 8년 전에 교수님의 수업을 들었을 때는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분의 수업이 내 인생에 큰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서양미술사현대미술론수업 교재는 김 교수님이 직접 쓰고 편집한 것이다. 수업 도중에 교재에 나오지 않는 예술가들을 언급할 때가 있었다. 교수님은 구글의 검색 기능을 이용하면서 예술가들의 작품을 소개했다. 그중에 가장 인상 깊은 예술가는 신디 셔먼(Cindy Sherman)이다.

 

셔먼은 현대미술을 이끄는 최고의 사진작가이다. 대부분 사람은 회화와 사진이 서로 연관이 없는 별개의 예술 분야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대미술에서 회화와 사진의 경계가 무너진 지 오래되었다. 셔먼은 원래 회화과를 전공했다. 그러나 그녀의 관심사는 사진과 퍼포먼스 미술이었다. 그녀는 1970년대 중반 이후 30여 년간 사진을 발표했다. 이 작가의 모델은 늘 작가 자신이다. 그녀는 자신을 옛 명화 속 모델이나 영화배우 또는 주부처럼 정교하게 분장하고 치장해 촬영, 배우 겸 연출자처럼 여성을 재현한 500여 점의 사진을 발표해왔다. 셔먼은 여성의 신체에 주목한 사진작가이다. 특히 여성의 정체성을 욕망과 쾌락, 사랑과 고통, 소외와 고립 등의 다양한 측면에서 집중 조명해 왔다. 그녀는 사진 한 장으로 여성이 살아가면서 직면하는 억압적인 상황들을 함축해서 보여주었다.    

 

 

 

 

 

 

 

 

 

 

 

 

 

 

 

 

 

 

* 에른스트 곰브리치 서양미술사(예경, 2003)

 

 

 

김 교수님은 수업 시간에 여성 예술가들을 많이 소개해주었다. 그분의 수업을 들으니까 내가 미술사를 잘못 공부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고, 지금까지 알려진 미술사는 남성 중심으로 서술되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두꺼운 검은 베개처럼 생긴 그 유명한 <서양미술사>라는 책에 단 한 명의 여성 예술가가 언급되지 않았다. 언급된 여성 예술가는 열 여섯 명에 불과했다. 나는 김 교수님의 수업을 들으면서 여성주의 미술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페미니즘을 알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김 교수님은 내가 페미니즘에 눈을 뜨게 해준 은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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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20-02-09 20: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서양 미술사>에는 16명의 여성 예술가가 나온다고 일주일 전 네이버 기사에 있었습니다. 물론 인류 예술사 비해 책에 절대 많은 여성 예술가 아닙니다. ^^

cyrus 2020-02-09 20:40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맞는 정보를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수정하겠습니다. ^^

Angela 2020-02-09 2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학때부터 페미니즘에 관심가지셨네요. 역사는 강자와 남성중심으로 쓰여졌으니까요.

cyrus 2020-02-11 07:32   좋아요 0 | URL
네. 저는 과거 중에 제일 좋았던 시절로 되돌아갈 수 있다면 대학생 시절을 선택했을 거예요. 아, 물론 군에 입대하기 전의 대학교 1학년이 아니라 전역하고 나서 학교에 복학한 시기를 말합니다... ㅎㅎㅎㅎ

2020-02-25 17: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20-03-01 19:03   좋아요 0 | URL
학생들에게 유익한 지식을 알려주고 싶어서 수업 자료를 열심히 준비하는 교수들이 있어요. 저는 그런 분이라면 졸업하고 나서도 친하게 지내고 싶어요. ^^
 
오버레이 - 먼 과거에서 대지가 들려주는 메시지와 현대미술에 대한 단상
루시 R. 리파드 지음, 윤형민 옮김 / 현실문화A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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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남서부에 있는 다트무어(Dartmoor)코난 도일(Conan Doyle)의 소설 바스커빌 가의 개에 나오는 지역이다. 예로부터 다트무어에 전혀 내려오는 유령 개의 전설을 셜록 홈스(Sherlock Holmes)가 명쾌한 추리로 해결해버린다. 바스커빌 가의 개는 홈스의 동료 왓슨 박사(Dr. Watson)의 활약상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왓슨은 혼자 다트무어에 가서 사건의 단서들을 수집한다. 홈스가 아주 복잡한 사건을 맡은 상태라 런던을 떠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다트무어에서 지내는 동안 자신이 직접 전설의 유령 개가 나타났다는 곳을 관찰하고, 지역 주민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사건의 실마리를 찾으려고 한다. 그런 다음에 자신이 보고 들은 것들은 편지로 써서 런던에 있는 홈스에게 보고한다. 홈스에게 보내는 왓슨의 편지를 보면 다트무어의 자연경관을 묘사하는 내용이 나온다. 왓슨은 다트무어에 거주했던 고대인들이 남긴 고인돌과 거석들을 언급한다. 실제로 영국의 남서부 지역에 가면 고대 거석들을 만나볼 수 있다. 영국 남서부 지역에 있는 고대 거석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솔즈베리 평원에 있는 스톤헨지(Stonehenge).

 

1977년 영국의 미술비평가 루시 리파드(Lucy Lippard)는 다트무어에서 산책하다가 땅바닥에 있는 무언가에 발이 걸려 넘어졌다. 리파드는 자신을 넘어지게 만든 물체가 열석(列石)의 한 일부라는 것을 확인한다. 그녀는 돌을 만졌다. 그 순간 현현(顯現: 평범하고 일상적인 대상 속에서 갑자기 경험하는 새로운 감각 혹은 통찰)와도 비슷한 체험을 한다. 그리고 그녀는 이 특별한 체험을 매개로 고대 미술을 현재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그 현현의 소산이 바로 오버레이(overlay)라는 제목이 붙여진 한 권의 책이다.

 

오버레이는 덮어씌우다라는 의미를 지닌 단어이다. 시간에 따라 관습과 문화는 조금씩 변한다. 그러나 리파드는 매일 변화하는 것들을 오버레이로 규정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고대의 문화와 관념 위에 이전과 다른 새로운 문화와 관념들이 하나하나씩 덮어씌워지고, 그런 일련의 과정을 거쳐서 지금의 현대미술이 만들어진 것이다. 미술의 역사를 거대한 지층의 형태와 같다고 보면 된다. 리파드는 이 오버레이라는 개념을 통해 오랜 시간 켜켜이 쌓인 지층처럼 역사를 이어온 미술이 어떻게 발전했는지를 보여준다.

 

이 책은 현대인들이 소홀하게 여기는 선사시대의 미술과 그 문화에 주목한다. 선사시대 미술은 미술사의 첫 장을 장식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를 사는 우리는 머나먼 과거의 미술과 문화를 낯설어하며 그것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어떤 이는 이렇게 반문할 것이다. 선사시대의 돌덩어리를 이해하는 일은 고고학자들의 몫인데 왜 미술 연구가들이 그것을 주목하는지 알 수 없다고. 또 고대 거석문화가 현대미술과 무슨 연관이 있느냐고 말이다.

 

알게 모르게 현대 미술가들은 고대 유적지와 유물에 매료되었고, 여기에 영감을 얻어 작품을 만들었다. 그래서 리파드는 고대 문화에 영감을 얻은 예술가와 그들의 작품들을 언급하면서 세월의 간극을 뛰어넘어 고대미술과 현대미술을 이어주는 연결고리를 주목한다. 그 연결고리는 일상과 예술이 한 겹으로 포개져 있던 과거에 대한 그리움(nostalgia)이다. 과거의 예술은 화려하지 않다. 고대인들은 주변에 구할 수 있는 친숙한 소재들을 재료로 삼아 공예품을 만들거나 그림을 그렸다. 예를 들면 고대인들은 돌을 강렬한 기운을 지닌 것으로 여겼고,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기 위해 거석을 세우거나 인형을 만들었다. 고대인의 일상 속에는 예술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래서 미술사가들은 미술의 기원이 선사시대에서 찾는다.

 

오버레이1983년에 출간된 책이다. 책 속에는 과거가 되어버린 그때 당시의 예술 경향이 소개되어 있다. 이때는 대지 미술과 퍼포먼스 미술이 유행하고 있었다. 저자는 자연을 소재로 거대한 작품을 만드는 대지 미술 예술가들의 창작 의도는 태초의 자연 상태나 선사시대의 상태로 회귀하는 것이라고 분석한다. 대지미술은 갑자기 등장한 새로운 미술이라기보다는 지나간 시간과 문화가 오버레이 되면서 만들어진 원시적 지층에 남아있는 고대미술의 흔적이다.

 

이전 세대의 예술을 거부한다고 해서 새로운 예술이 나오는 건 아니다. 모든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예술작품을 만들려면 과거를 알아야 한다. 세계 미술사를 바꾼 창의적인 작품들은 단순히 과거를 뛰어넘은 예술가 한 사람의 천재성에서 나왔다기보다는 과거에 접속하려는 예술가들이 고대미술의 장점에 영감을 얻어서 만들어진 것이다. 오버레이 된 미술은 역사’로 남은 인류의 문화적 유산이 아니다. 과거와 현재가 넘나드는 곳이며 지금도 과거의 예술적 아이디어가 살아 숨쉬고 있는 역동적 현장이다.

 

 

 

 

Trivia

    

 

 

  

* 34쪽에 있는 도판(데니스 오펜하임(Dennis Oppenheim)의 대지 미술 작품 <별의 활주(Star skid)>, 위의 사진이 오펜하임의 작품)18쪽에 있는 도판(영국 다트무어에 있는 청동기 시대의 열석)으로 잘못 실려 있다.

    

 

 

* 천문고고학의 기원은 1740윌리엄 스튜켈리가 스톤헨지가 북서 방향, “낮이 가장 긴 날 태양이 떠오르는 곳 부근을 향한다고 지적한 데서 시작된다. 그 시절에 스톤헨지는 로마인들이 세운 것으로 여겨졌지만, 스튜클리는 멀리 떨어져 있는 고대의 고분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다. (154)

 

스튜클리스튜켈리의 오식이다.

 

    

 

* 우리가 민주주의의 올가미에 걸리면어떻게 되는지에 대해 쾌할하면서도 절망 섞인 견해를 밝히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226)

 

쾌할하면서도쾌활하면서도로 고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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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호프(Chekhov)의 단편소설에 신 스틸러(scene stealer)가 한 명쯤은 꼭 있다. 비록 그들은 소설에서 잠깐 나오는 인물에 불과하지만, 주인공 못지않게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 체호프 체호프 단편선(민음사, 2002)

공포-한 친구의 이야기, 우수수록

    

 

 

공포-한 친구의 이야기는 체호프가 사할린 섬을 여행하고 돌아온 후 발표한 단편소설이다. 이 소설의 화자인 드미트리 페트로비치의 친구다. 드미트리 페트로비치는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아내와 함께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공포라고 생각한다. 그는 현실을 비관적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자신의 심리 상태를 삶에 대한 공포라고 말한다. 체호프는 이 소설을 통해 삶 그 자체가 무서운 이유를 보여준다. 인간은 현실에서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알아낼 능력이 없다. 그렇지만 인간은 불안감과 혼란이 가중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는 친구를 가까이서 지켜보는 관찰자의 입장에 서 있지만, 그도 예외가 아니다. ‘는 친구의 심정을 뒤늦게 깨닫게 되면서 삶에 대한 공포를 피부로 느낀다.

    

 

 

 

 

 

 

 

 

 

 

 

 

 

 

 

 

* 체호프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열린책들, 2009)

애수수록, 민음사의 체호프 단편선에 있는 우수와 같은 작품임.

 

* [품절] 체호프 개와 인간의 대화(범우사, 2005)

개와 인간의 대화수록

 

    

 

이 소설의 신 스틸러는 가브릴라 세베로프라는 인물이다. 그는 지독한 술꾼이다. ‘의 하인으로 일했으나 고약한 술버릇 때문에 쫓겨났다. 그는 드미트리 페트로비치의 하인이 되어 재취업에 성공했지만 똑같은 사유로 해고되었다. 가브릴라 세베로프는 원래 풍족한 집안 출신이다. 그러나 술과 방탕에 빠지는 바람에 밑바닥 인생으로 전락했다. 술에 취한 가브릴라 세베로프는 자신을 번듯한 가문 출신이며 자유로운 사람이라고 외친다. 그러나 그의 말을 들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의 술주정을 받아주는 유일한 상대는 말()이다. (체호프의 단편소설에는 동물에게 말을 거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개와 인간의 대화에 나오는 술 취한 관리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면서 개에게 다가가 술주정을 부린다. 우수(憂愁)의 마부는 아들의 죽음으로 실의에 빠져 있는데, 일하면서 꾹 참아왔던 슬픈 감정을 마구간에 있는 말에게 토로한다)

 

    

 

 

 

 

 

 

 

 

 

 

 

 

 

 

 

* 아폴리네르 알코올(열린책들, 2010)

* [품절] 아폴리네르 알코올(문학과지성사, 2001)

* 아폴리네르 사랑받지 못한 사내의 노래(민음사, 2016)

    

 

 

가브릴라 세베로프의 별명은 ‘40명의 순교자. 특이한 별명이다. 민음사의 체호프 단편선에는 이 별명의 의미를 설명한 역주가 없다. 내가 추측하건데 ‘40명의 순교자는 실제로 순교한 40명의 기독교 성인을 가리킨다. 이러한 주장에 대한 근거는 기욤 아폴리네르(Guillaume Apollinaire)의 시 사랑받지 못한 사내의 노래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시는 제사(題詞)를 합쳐 총 3백행에 이른다. 시의 구성도 독특한데 제목이 각각 다른 세 편의 독립된 시(‘어느 해 사순절에 부른 새벽찬가’, ‘콘스탄티노플의 술탄에게 보내는 코사크 자포로그들의 답장’, ‘일곱 자루의 칼’)가 삽입되어 있다. 시의 48행에 세바스트의 40이라는 표현이 있다.

 

 

나는 지난 세월 속에서 겨우살이를 했다

부활절의 태양이여 돌아오라

세바스트의 40인보다

더 얼어붙은 내 가슴을 덥혀다오

그 순교의 고통도 내 삶보다는 나았으리

     

(아폴리네르의 사랑받지 못한 사내의 노래46~50, 황현산 옮김)

 

 

세바스트(Sébaste)는 고대 그리스어로 성스러운이라는 뜻을 가진 세바스토스(Sebastos)에서 파생된 말이다. ‘세바스트의 40에 대한 황현산의 역주에 따르면 320년 아르메니아의 세바스토스에 주둔했던 로마 병사 40인은 로마의 신을 부정하고 기독교로 개종한다. 이들이 순교하기 전인 313년에 서로마의 황제 콘스탄티누스(Constantinus)와 동로마의 황제 리키니우스(Licinius)는 기독교를 공인하는 밀라노 칙령을 발표했다. 그러나 밀라노 칙령이 선포한 이후에도 동서로 분열된 로마 제국의 분쟁은 멈추지 않았다. 리키니우스는 밀라노 칙령을 어기고 기독교인들을 탄압했다. 그러나 세바스토스에 있는 40인의 로마 병사들은 리키니우스의 명령을 거부했고 얼어붙은 호수에 몸을 담그는 고문을 받다가 순교했다.

 

시 선집 형태로 출간된 사랑받지 못한 사내의 노래(민음사)도 아폴리네르의 시집 알코올(열린책들)을 번역한 적이 있는 황현산 교수가 맡았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표제작에 대한 해설과 주석이 나오지 않는다. 분명 시는 있는데 이 시가 무슨 뜻인지 알려주는 역자 해설이 없다는 것이다. 해설과 주석을 설명하는 내용이 너무 길어서 생략된 것일까사랑받지 못한 사내의 노래에 나오는 생소한 단어의 의미를 이해하려면 선집보다는 시집을 완역한 번역본을 참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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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0-02-07 1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슬럼프 아웃, 웰컴 백 ~

cyrus 2020-02-07 23:41   좋아요 0 | URL
한 번 푹 쉬는 것도 나쁘지 않았어요.. ^^;;

stella.K 2020-02-07 15: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체호프에 꽂혔구나.^^

cyrus 2020-02-07 23:42   좋아요 0 | URL
체호프의 단편, 정말 매력적이에요. 체호프는 진정한 이야기꾼이에요. ^^

페넬로페 2020-02-07 16: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도서관에서 아폴리네르 시집으로 토론한 적이 있는데 어렵더라구요~~
체홉도 읽어야하는데 ㅠㅠ

cyrus 2020-02-07 23:44   좋아요 1 | URL
시집을 읽으면서 독서 토론을 하는 경우가 많지 않은데, 정말 어려운 시집을 읽었군요. 체호프의 소설은 독서 토론을 위한 책으로 읽기에 좋아요. ^^

Angela 2020-02-07 2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미트리는 정말 꺄~악! 이죠 ㅎㅎ 근데 드미트리를 제치고 신 스틸러를 찾으셨군요~^^

cyrus 2020-02-08 00:06   좋아요 0 | URL
별명과 행동이 독특해서 기억에 남았어요... ^^
 
화학이란 무엇인가 - 세상에서 가장 쓸모 있는 과학의 핵심
피터 앳킨스 지음, 전병옥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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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을 크게 분류하면 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으로 나눈다. 화학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학창 시절에 외웠던 주기율표의 수많은 원소 기호와 화학식 등이다. 대부분 사람은 실생활과 관련 없는 가장 어려운 분야로 화학을 지목한다. 그러나 생각보다 화학은 훨씬 많은 부분이 우리 곁에 존재하고 함께 생활하고 있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쓰는 제품 중에 화학과 무관한 제품은 거의 없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화학에 대한 또 다른 편견은 질병과 공해를 일으키는 주범이라는 인식이다. 우리 주변의 화학물질은 벌써 수만 종에 이르고 이 숫자는 계속 늘어나는 중이다. 이제 화학물질은 누구도 피할 수 없을 만큼 일상에 스며들어 있다. 화학물질들의 광범위한 사용과 인체 노출은 케모포비아(chemophobia)라는 화학물질 공포증을 탄생시켰다. 케모포비아는 인공 화학물질들에 대한 선입견 혹은 과학적인 근거가 없는 막연한 불안감으로부터 오는 공포증을 말한다.

 

화학의 세계는 어렵고 위험하기만 할까? 절대로 그렇지 않다. 화학이란 무엇인가일반인들이 화학에 접근할 수 있도록 무게를 뺀 책이다. 이 책을 쓴 피터 앳킨스(Peter Atkins)는 지금도 전 세계에 판매되고 있는 화학 교과서를 쓴 화학자이다. 앳킨스의 화학 교과서는 우리나라에도 출간되었다. 과학이 어려운 이유는 교과서를 통해 이론으로만 접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그 이론을 온전히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화학이란 무엇인가는 낯선 용어와 복잡한 화학식 대신 기본적으로 알아두어야 할 화학의 핵심 개념을 알려준다. 저자가 언급한 화학의 핵심 개념은 원자와 분자, 에너지와 엔트로피(entropy), 네 가지 화학 반응 등이다. 이 책 속에 담긴 중고등학교 화학에서 기본적으로 다루는 내용이다. 교과서에 나오는 화학 개념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얻고자 하는 학생, 평소 과학에 관심이 많은 청소년과 어른들의 교양서로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

 

이 책은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화학의 핵심 개념을 친숙한 소재들로 쉽게 풀어 설명해준다. 저자는 화학자가 하는 일을 커플 매니저로 비유한다.

 

 

 화학의 핵심 주제는 하나의 물질이 (형태와 속성이) 다른 물질로 변화하는 과정인데, 원자는 그 자체로는 변화하지 않는다. 따라서 물질이 변한다는 것은 기초 재료인 원자들이 변화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결합되어 있던 원자들이 그 짝을 바꾼다는 것이다. 화학자는 이런 원자들의 만남과 이별을 연구하는 일종의 커플 매니저이다. (21)

 

 

원자는 모든 물질의 원료이다. 원자와 원자들이 결합하면 분자라는 물질 형태가 생긴다.

 

저자가 이 책을 쓴 진짜 목적은 따로 있다. 화학이란 무엇인가는 화학 교과서를 축약한 책이 아니다. 저자는 부정적으로 인식되는 화학의 세계가 일상 속에 숨겨진 마술처럼 흥미로운 것임을 알리기 위해 두 팔을 걷고 책을 쓴 것이다. 그는 화학이 없었다면, 인류는 석기 시대를 벗어나지 못했다고 말한다. 과장된 말이 아니다. 우리는 어떤 물건하나라도 없이 살게 되면 불편함을 느낀다. ‘어떤 물건에 여러분이 생각한 것들을 넣어 보라. 스마트폰, , 플라스틱. 이 세 가지가 없다고 상상해보라.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화학의 발전이 없었다면 이 물건들은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저자가 화학의 장점을 무조건 옹호하기만 하는 건 아니다. 화학이 인류를 살상하는 무기가 되고, 화학물질이 환경에 심각한 영향을 준 사례를 언급하면서 화학자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관심을 환기한다. 원론적인 입장이지만, 저자는 화학 기술 발전을 위해 생산성을 유지하면서 환경오염을 줄이기 위한 규제도 시행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 친환경 기술 개발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화학은 우리 곁에 늘 함께하고 있다. 앞으로도 화학은 일상생활과 산업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물론 화학자들도 변해야 한다. 화학자들은 화학물질의 부작용에 더욱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지면서 이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쉬운 말로 대중에게 전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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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0-02-05 0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술과 화학까지 넘나 드는 다채로운
독서라니 역시나 대단하시네요.

cyrus 2020-02-07 13:02   좋아요 1 | URL
이번 달에 들어서면서 다시 독서와 글쓰기에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