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론테 자매(Brontë sisters)는 소설가로 잘 알려졌지만, 세 사람 모두 시를 썼다. 세 자매는 자신들이 쓴 시 61편을 모아 1846년에 시집을 가명으로 출판한다. 하지만 세 자매는 시집을 출간해줄 출판사를 찾지 못했고,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자비로 출판한다. 이때 그녀들이 사용한 가명은 커러 벨(Currer Bell=샬럿), 엘리스 벨(Ellis Bell=에밀리), 액튼 벨(Acton Bell=)이다. 그녀들의 시가 당시 독자들이 선호하는 문학 유행과 맞지 않은 탓인지 시집은 두세 권만 팔렸다고 한다.

    

 

 

 

 

 

 

 

 

 

 

 

 

 

 

 

* 에밀리 브론테 상상력에게(민음사, 2020)

* 박영희 엮음 제인 오스틴과 19세기 여성 시집: 찬란한 숲을 그대와(봄날에, 2019)

    

 

 

세 자매 중 가장 시를 좋아하는 사람은 에밀리 브론테(Emily Brontë)였다. 최근에 신간으로 그녀의 시 선집이 나왔다. 제목은 상상력에게(민음사)이다. 이 시 선집에는 표제가 된 상상력에게를 포함한 총 51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작년에 개정판으로 제인 오스틴과 19세기 여성 시집: 찬란한 숲을 그대와(봄날에)가 출간되었는데, 19세기와 20세기 영미 문학을 대표하는 여성 작가들의 시를 엮은 책이다. 이 책은 2017년에 출간된 적이 있으나 개정판이 나오기 전까지는 절판된 상태였다. 이 시집에 샬럿의 시 5, 에밀리의 시 8, 앤의 시 4편이 실려 있다.

    

 

 

 

 

 

 

 

 

 

 

 

 

 

 

 

* 앤 브론테 아그네스 그레이(현대문화센터, 2007)

    

 

 

앤 브론테(Anne Brontë)는 생전에 두 권의 소설을 발표했다. 아그네스 그레이(Agnes Grey, 1847)와일드펠 홀의 소작인(The Tenant of Wildfell Hall, 1848)이다. 현재 우리나라에 번역된 앤의 소설은 아그네스 그레이(현대문화센터)가 유일하다. 와일드펠 홀의 소작인은 앤이 세상을 떠나기 일 년 전에 발표된 소설이다.

 

 

 

 

 

 

 

 

 

 

 

 

 

 

 

 

 

      

* [DVD] 와일드펠 홀의 소작인 : 앤 브론테 원작 BBC TV시리즈 마스터피스 컬렉션

 

    

 

와일드펠 홀의 소작인은 아직 국내에 번역되지 않았다. 영문학 전공자가 아닌 독자들은 이 소설이 생소하게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와일드펠 홀의 소작인아그네스 그레이만큼이나 국외 영문학 연구자들이 주목한 소설이며 영국 BBC에서 원작을 기반으로 한 드라마가 두 차례(1968, 1996)방영되었다.

    

 

 

 

 

 

 

 

 

 

 

 

 

 

 

* 피터 박스올 외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책 1001(마로니에북스, 2017)

 

 

100명의 국제적인 필자 집단이 선정한 책들을 소개한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책 1001(마로니에북스)에 앤의 대표작으로 알려진 아그네스 그레이가 아닌 와일드펠 홀의 소작인이 포함되어 있다. 와일드펠 홀의 소작인을 소개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알코올 중독과 가정 폭력이라는 센세이셔널한 주제를 다룬 와일드펠 홀의 소작인은 출간되자마자 엄청난 스캔들을 불러일으켰다. 아메리칸 리뷰의 표현을 빌리면 이 작품은 벌거벗은 악에 가장 가까이 접근하였으며, 영원히 영어로 활자화되기를 원하지 않은 대화를 포함하고 있다.” 어쨌든 이 소설은 매우 잘 팔렸으며, 재판의 서문에 앤 브론테는(액튼 벨이라는 남성 필명을 사용해서) 이러한 비판에 대한 변론을 실었다. 악과 악인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것은 작가의 도덕적 의무라는 것이었다.

 페미니즘을 바탕으로 쓰여진 와일드펠 홀의 소작인은 방탕한 남자와 결혼한 젊은 여인이 그를 개심시키기 위해 노력하다가 결국은 아버지의 타락에서 아들을 구하기 위해 도망치는 내용으로, 서간과 일기를 통해 대부분 여주인공 헬렌 헌팅던의 시점에서 기혼 여성이 법적 권리를 거의 가질 수 없었던 시대를 이야기하고 있다. 메이 싱클레어(1862~1946, 영국의 작가)1913년에 이렇게 말했다. 남편의 면전에서 헬렌이 침실 문을 쾅 닫은 소리는 빅토리아 영국 전역에 울려 퍼졌다.” 그 소리는 지금까지도 현대의 독자들에게 울려 퍼지고 있다.

    

 

      

와일드펠 홀의 소작인의 대담한 주제와 묘사는 샬럿 브론테(Charlotte Brontë)도 지적할 정도로 그 당시로서는 파격적이었다. 샬럿은 와일드펠 홀의 소작인의 주제는 앤의 본성에서 벗어난 소름 끼치는 것이라고 평했다.

 

 

 

 

 

 

 

 

 

 

 

 

 

 

 

 

 

 

* 찰스 킹슬리 물의 아이들(시공주니어, 2006)

 

 

 

 

그러나 물의 아이들의 작가이자 목사인 찰스 킹슬리(Charles Kingsley)와일드펠 홀의 소작인을 호평했으며 오히려 이 소설에 대한 독자들의 부정적인 반응을 꼬집었다. 그는 추악하고 위선적인 사람들의 모습, 즉 이런 끔찍한 진실을 그대로 보여준 소설이 많지 않았다면서 영국 사회는 앤을 비웃으면서 비난할 것이 아니라 그녀에게 감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앤이 악과 악인을 표현하는 작가의 도덕적 의무를 강조하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녀는 본인이 굳게 믿어온 작가의 의무를 아그네스 그레이에서도 보여줬기 때문이다. 아그네스 그레이는 여성 가정교사의 척박한 삶뿐만 아니라 그녀들을 박대하는 상류 사회의 일면을 그대로 보여준다. 앤은 아그네스라는 화자의 입을 통해서 부유한 고용인들의 눈칫밥을 먹으면서 살아야 하는 여성 가정교사의 상황을 전달한다. 그래서 아그네스 그레이를 읽으면 마치 고용인과 그 가족들을 관찰하는 여성 가정교사가 기록한 보고서를 읽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런 앤의 글쓰기를 문제 삼는 사람들은 아그네스 그레이작품성이 떨어진다고 평가한다. 그것은 앤이 글을 쓰면서 인식하고 있는 작가의 의무를 알지 못해서 나오는 부당한 평가다.

 

아그네스 그레이가 독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지 못한 이유 중 하나는 어린이에 대한 어른들의 편견이다. 아그네스 그레이가 나온 19세기 영국 사회에서는 여성과 어린이를 순수한 본성을 지닌 존재로 여기는 인식이 있었다. 아그네스는 자신이 가르치고 있는 고용인 자녀들의 못된 행동들을 상세히 언급한다. 실제로 앤은 가정교사로 일한 적이 있다. 그러므로 아그네스 그레이는 작가의 경험이 어느 정도 반영되어 있다. 가정교사의 지도를 따르지 않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고용인 자녀들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나오는 아그네스 그레이악을 표현하는 작가의 의무를 그대로 보여준 소설이다. 앤은 이 소설을 통해 동화에 나올 법한 순수한 어린이의 모습을 믿는 기성 사회의 인식이 허상임을 보여준다. 또 자녀들이 무조건 착하다고 믿는 고용인 부모의 어설픈 교육관도 간접적으로 비판한다.

 

아그네스 그레이와일드펠 홀의 소작인계급, 교육, 여성 차별 등에 대한 사회 비판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 소설이다. 이런 두 편의 소설을 재미없고, 작품성이 떨어진다면서 무시하고 외면한 사람들은 앤 브론테에게 사과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소설을 출간할 생각을 하지 않는 국내 출판업계는 반성해야 한다. 도대체 언제까지 제인 에어폭풍의 언덕만 펴낼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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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0-03-03 1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고.
저는 무식하게도 에밀리와 샬럿 브론테만 알고 있었어요~~
브론테자매에 앤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몰랐어요^^
항상 독서의 지평을 넓게 만들어주고 새로운 지식을 입력시켜주시는
cyrus 님께 감사드려요^^

cyrus 2020-03-03 19:08   좋아요 1 | URL
저도 한때 무식했어요. 샬럿과 에밀리가 너무 유명해서 앤의 존재를 잊어버렸거든요. <아그네스 그레이>를 몇 년 전에 사놓고 안 읽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집에 쉬게 되면서 읽었습니다... ㅎㅎㅎㅎ

페크pek0501 2020-03-04 1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 자매가 다 글을 잘 쓰다니, 역시 유전자의 힘은 세군요.

민음사의 상상력에게, 가 탐나는군요. 장바구니에 담겠습니다.

cyrus 2020-03-04 14:54   좋아요 1 | URL
브론테 자매의 능력에는 문학에 대한 관심과 글을 쓰려는 노력이 많은 비중을 차지했을 것입니다. ^^
 
아그네스 그레이 현대문화센터 세계명작시리즈 12
앤 브론테 지음, 문희경 옮김 / 현대문화센터 / 2007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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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권장 도서 목록에 많이 언급되는 제인 에어(Jane Eyre)폭풍의 언덕(Wuthering Heights)은 여러 번 영화와 드라마로 제작됐을 만큼 유명하다. 고아 소녀의 파란만장한 성장 과정을 그린 제인 에어와 황량한 들판 위에 자리 잡은 외딴 저택을 무대로 한 격정적인 사랑 이야기인 폭풍의 언덕을 읽으면서, 문학과 독서를 좋아하는 소녀들은 이 두 편의 소설을 쓴 샬럿 브론테(Charlotte Bronte)에밀리 브론테(Emily Bronte)를 흠모하기도 했다.

 

제인 에어폭풍의 언덕1847년에 발표된 소설이다. 샬럿과 브론테는 가명으로 소설을 발표한다. 여기서 대부분 사람이 의외로 잘 잊어버리는 중요한 사실 하나가 있다. 문학사에서 가장 유명한 자매로 알려진 브론테 자매는 세 명이다. 세 자매 중 막내인 앤 브론테(Anne Bronte)1847년에 두 언니와 함께 가명으로 소설 아그네스 그레이(Agnes Grey)를 발표한다. 그러나 앤 브론테가 쓴 이 소설 제목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제인 에어폭풍의 언덕은 어린 독자를 위한 축약판으로 만들어질 정도로 국내에서 가장 인기 많은 소설이다. 반면 막내가 쓴 소설의 번역본은 지금 내가 소개하려는 책, 이 한 권이 전부다. 두 언니의 국제적 · 국내 위상과 오십 종이 넘는 국내 번역본 수를 비교하면 막내의 소설은 초라하게 보인다. 누군가는 앤의 아그네스 그레이가 두 언니의 대표작에 비해 작품성이 떨어진다고 평가한다. 이 의견에 동의하는 사람이 많은 것일까. 나는 세 자매의 소설이 모두 선정된 청소년 권장 도서 목록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올해는 앤이 태어난 지 200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녀가 두 언니의 명성의 반 정도 있었더라면 지금쯤 새로운 아그네스 그레이번역본이 나왔을 것이다. 앤은 117일에 태어났는데 그녀의 탄생일에 맞추어 아그네스 그레이새 번역본이 나온다는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올해 안으로 아그네스 그레이새 번역본이 나올지, 아니면 앤의 또 다른 작품(그녀가 죽기 전에 쓴 두 번째 소설 와일드펠 홀의 소작인, 이 소설도 뒤늦게 주목받고 있는 명작이다)이 번역되어 나오는지 내가 두고 본다.

 

아그네스 그레이가 작품성이 떨어진다고 해도 나는 이 소설이 청소년 권장 도서 목록에 포함할 자격이 충분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이런 입장을 밝히는 이유는 여러 가지이다. 일단 첫 번째 이유로 아그네스 그레이쉽게 읽히는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소설의 주인공 아그네스 그레이는 가정교사(governess). 앤 은 이 소설에서 19세기 영국 빅토리아 시대에서 가장 흔한 직업 중 하나로 알려진 가정교사의 생활상과 사회적 지위를 아주 정직하게 보여준다. 제인 에어에도 가정교사가 활동하는 제인 에어의 모습이 나오는데, 앤의 정직한 글쓰기는 제인 에어와 비교하면 평범하면서도 심심하다. 제인 에어는 독자를 흡입하게 만드는 이야기로 이루어진 반면에 아그네스 그레이는 독자를 흥분하게 만들거나 긴장하게 만드는 크고 작은 사건이 많이 나오지 않는다. 앤은 두 언니와 비교하면 소설의 재미와 흥미를 유발하는 필력이 조금 모자란 건 사실이다. 하지만 오히려 그게 아그네스 그레이의 장점이자 매력으로 작용한다. 아그네스 그레이에서는 주인공을 둘러싼 시시콜콜한 사건들이 언급되지 않아서 독자는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다. 앤은 가정교사로 일했던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가정교사의 삶과 애환을 최대한 정제해서 표현한다. 그래서 아그네스 그레이를 읽는 독자는 줄거리를 요약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아그네스 그레이의 줄거리는 단순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줄거리가 단순해서 평범하다는 이유만으로 아그네스 그레이가 작품성이 떨어지는 작품이라고 평가할 수 없다.

 

아그네스 그레이가 청소년 권장 도서 목록에 포함되어야 하는 두 번째 이유는 이 소설에 동물권(animal rights)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 있기 때문이다. 아그네스가 가르치는 톰 블룸필드(Tom Bloomfield)는 부유한 집안에 자란 아이지만, 성질이 고약하며 아그네스를 무례하게 대한다. 그는 정원에서 사냥한 새를 아주 잔인하게 죽인다. 아그네스는 동물을 괴롭히면서 죽이는 톰의 버릇이 잘못된 행동임을 알리기 위해 새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고통을) 느낀다고 말한다. 하지만 톰의 어머니와 그의 삼촌은 오히려 아이의 행동을 옹호한다. 톰의 어머니는 모든 생명체는 인간의 편의를 위해 창조되었다고 말하면서 아들을 꾸짖는 아그네스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자 아그네스는 인간의 쾌락을 위해 동물을 고문할 권리가 없다(We have no right to torment them for our amusement)라고 응수한다. 그녀가 동물의 생명도 인간의 생명처럼 소중하다는 점을 강조하는 모습은 아그네스 그레이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 중 하나이다. 아그네스 그레이를 결혼에 성공하는 가정교사의 사랑 이야기로만 봐서는 안 된다. 너무 일관된 평가는 아그네스 그레이의 또 다른 진가를 보지 못하게 만든다.

 

아그네스 그레이제인 에어폭풍의 언덕처럼 페미니즘 비평으로 독해할 수 있는(혹은 자주 독해해야 하는) 소설이다. 그러므로 아그네스 그레이는 독자, 특히 페미니스트가 반드시 알아야 할 소설이다. 인간에게 동물을 고문할 권리가 없다고 말한 아그네스의 대사는 인간 중심의 페미니즘을 넘어 동물권으로 확장되어야 하는 오늘날의 페미니즘 의제와 맞닿아 있다. 아그네스는 가정교사로 고용되기 위해서 만든 자신의 광고에 휴가를 보장하는 계약 조건을 내세운다. 당시 영국의 가정교사는 중류 계층과 상류 계층 여성이 선호하는 인기 직업이었지만, 현실은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아이들을 가르쳐야 하는 불안정한 직업이기도 했다. 가정교사는 고용인이 사는 집에 지내면서 아이들을 가르친다. 고용인의 집안 분위기마다 다른데, 종종 소설에 나오는 톰의 어머니처럼 고용인은 가정교사를 하대할 뿐만 아니라 여성 가정교사의 지도력을 의심한다. 그렇다 보니 가정부와 유모, 하녀가 여성 가정교사를 무시하는 경우도 있다. 이렇듯 사회적 지위가 그리 높지 않은 여성 가정교사가 고용인에게 자신의 휴가를 보장해주는 계약 조건을 내세운다는 것은 그 당시로서는 대담한 일이다. 아그네스가 ()의 위치에 있는 고용인들에게 공개한 계약 조건은 여성 근로자 및 노동자의 유급 휴가 보장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페미니스트의 목소리를 떠올리게 한다.

 

, 지금까지 일독할만한 고전으로 알려져야 할 아그네스 그레이의 매력을 모조리 알려 줬다. 책을 좋아하는 동지들이여, 그래도 이 소설을 그냥 지나칠 것인가. 아그네스 그레이의 진가를 이미 알고 있는 독자로서 언니들의 유명세에 오랫동안 가려진 앤 브론테의 위상이 너무 안타깝게 느껴진다. 형만 한 아우는 없다라고 해서 언니만 한 여동생은 없다라는 말도 성립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여기 브론테 자매를 보라, 언니만 한 여동생이 있다.

 

 

 

 

Trivia

 

 

  부인은 아들의 정직함을 철썩같이 믿고 있는 터라 톰의 거짓말을 곧이곧대로 믿어버릴 터였다. (43)

 

철썩같이는 맞춤법에 맞지 않는 표현이다. 철석같이라고 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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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gela 2020-03-03 0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한테 있는 <아그네스 그레이>도 2007년판이예요. 이것만 있나봐요.

cyrus 2020-03-03 12:29   좋아요 0 | URL
네, 안젤라님 가지고 있는 책이 제가 읽은 것과 같은 거예요. ^^;;
 

 

 

 

이 글에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0월의 마지막 날이 다가오면 10~20대는 핼러윈(Halloween)을 생각할 것이고 중년층은 이용의 잊혀진 계절을 듣고 싶어 할 것이다. 켈트인(Celts)의 축제에서 유래한 핼러윈은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사람이 즐기는 축제가 되었다. 그러나 핼러윈이 111 만성절(All Saints’ Day) 전날에 하는 축제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만성절은 기독교의 모든 성인을 기념하는 축일이다. 그래서 가톨릭에서는 만성절을 모든 성인의 축일이라고 부른다.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들도 크리스마스(Christmas)가 무슨 날인지 잘 안다. 크리스마스는 예수의 탄생을 기념하는 날이다. 크리스마스 전날 밤은 크리스마스이브(Christmas Eve)라고 한다. ‘Halloween’은 성인(聖人)을 뜻하는 앵글로색슨어 ‘Hallow’와 전야(前夜)를 뜻하는 ‘Eve’와 합쳐져서 만들어진 단어다. 그래서 만성절을 ‘All Hallows’ Day’ 또는 ‘Hallowmas’라고도 한다. 만성절의 원래 날짜는 513일이었다. 8세기에 활동한 그레고리우스 3(Gregorius )교황이 만성절의 날짜를 111일로 변경했다.

 

고대의 핼러윈은 농민들의 축제였다. 농업과 목축업을 하던 켈트인은 1031일을 한 해의 마지막 날로 봤고, 그날에 죽은 자의 영혼이 생전에 살던 집으로 돌아온다고 믿었다. 그래서 켈트인은 집으로 돌아오는 조상의 영혼을 맞이하기 위해 제사를 지내고, 불청객인 악마를 쫓아내기 위해 가면을 쓰거나 불을 피웠다. 교회는 켈트인의 토속신앙과 축제를 이교의 풍속으로 규정했고, 이를 제지하기 위해 만성절을 지정했다. 그리고 그다음 날인 112일을 만령절(All Souls’ Day)로 지정했다. 이날에는 죽은 자의 영혼을 위해 미사를 거행한다.

    

 

 

 

 

 

 

 

 

 

 

 

 

 

 

 

* [e-Book] 이디스 네스빗 등신대의 대리석상(올푸리, 2019)

* [e-Book] 이디스 네스빗 살아있는 조각상(이북코리아, 2017)

    

 

 

영국의 작가 이디스 네스빗(Edith Nesbit)의 단편소설 등신대의 대리석상(Man-Size in Marble, 1893)은 만성절에 일어난 기이하고도 무서운 현상을 경험한 남자의 이야기다. 남자와 그의 부인의 보금자리가 있는 한적한 마을에 무서운 소문이 떠돈다. 그 소문에 따르면 만성절 전날이면 교회에 있는 대리석상이 움직인다. 살아있는 대리석상을 마주치면 끔찍한 일이 일어난다고 한다. 대리석상은 과거 마을에 살았던 악한들의 모습을 따서 만들어진 것이다. 대리석상에 악마나 다름없는 그들의 영혼이 들어있고, 핼러윈에 그들은 깨어나 자신들이 살던 집으로 간다. 하필 재수 없게도 악한들이 살았던 집은 남자와 부인이 사는 곳이다. 그런데 대리석상은 핼러윈이 아닌 만성절에 움직이기 시작한다. 성인에 대항하는 악마답게 대리석상은 모든 성인의 축일이라는 사실을 무시하고 악행을 저지른다.

    

 

 

 

 

 

 

 

 

 

 

 

 

 

 

 

* [절판] 이디스 워튼 거울(생각의나무, 2010)

* [절판] 이디스 워튼 거울(생각의나무, 2008)

* [절판] 해럴드 블룸 엮음 겨울 사자(생각의나무, 2007)

 

    

 

등신대의 대리석상이 만성절에 일어난 초자연적인 사건을 묘사한 이야기라면, 미국의 작가 이디스 워튼(Edith Wharton)의 단편소설 모든 영혼의 날(All Souls’, 1937)만령절에 일어난 초자연적인 사건에 관한 이야기. 워튼의 공포소설 여덟 편을 선별한 거울(생각의나무)에 포함된 작품이다. 이 소설은 만령제라는 제목으로 번역되기도 했다. 만령제는 미국의 문학평론가 해럴드 블룸(Harold Bloom)이 직접 선별하면서 엮은 시와 단편 모음집 중 하나인 겨울 사자(생각의나무)에 수록되어 있다.

 

모든 영혼의 날의 주인공은 여성이다. 새러 클레이번화이트게이트라는 저택에 거주하는 귀부인이다. 만령절에 새러는 산책하다가 낯선 여인을 만난다. 새러는 처음 보는 그 여인에게 화이트게이트에 가시는 거예요?’라고 물어보면서 말을 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여인은 그렇다라고 짧게 대답하면서 지나간다. 그 여인을 만난 지 몇 분 후에 새러는 길을 걷다가 미끄러져 넘어지는 바람에 발목을 삔다. 이로 인해 새러는 며칠 동안 움직이지 못한 채 침대에 누워 지내야 하는 신세가 된다. 화이트게이트에 여러 명의 하인과 하녀들이 살고 있어서 새러는 큰 불편함 없이 지낸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평온한 화이트게이트는 조용한 공포의 무대가 된다. 화이트게이트에 모든 하인과 하녀는 감쪽같이 사라지고, 집에 있는 난방장치와 전기제품의 작동이 멈춘다. 사람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음산한 저택이 된 화이트게이트. 새러는 그곳에 고립되고 만다. 어둠과 침묵에 지배당한 저택 안에 홀로 남은 새러는 공포를 느낀다. 그 사건을 겪은 지 일 년이 지난 후에 새러는 미지의 여인의 정체가 만령절에 깨어난 마녀이며 그녀를 만난 뒤에 화이트게이트에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고 확신한다.

    

 

 

 

 

 

 

 

 

 

 

 

 

 

 

 

* 아서 코난 도일 J. 하버쿡 젭슨의 진술(북스피어, 2014)

 

    

 

모든 영혼의 날은 안락한 집이 한순간에 공포의 장소로 변해버리는 불가사의한 현상을 생생하게 묘사할 뿐만 아니라 그 현상에 압도당해 두려워하는 인간의 감정까지 잘 묘사한 이디스 워튼의 수작이다. 모든 영혼의 날배니싱(Vanishing)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배니싱이란 특정 인물이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지는 현상을 뜻한다. 가장 유명한 배니싱은 19세기 중후반에 일어난 메리 셀러스트 호(Mary Celeste) 사건이다.

 

187211월에 화물선 메리 셀러스트는 알코올 원액을 싣고 미국 뉴욕에서 출항하여 이탈리아 제노바로 향한다. 그러나 도착 예정 시간이 지났는데도 배는 제노바에 도착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화물선이 폭풍을 만나 침몰했거나 해적을 만나 나포되었을 거로 추측했다. 메리 셀러스트 호가 출항한 지 한 달이 지난 뒤에 영국 상선은 북대서양 바다 한가운데를 지나는 배를 발견한다. 알고 보니 그 배가 메리 셀러스트 호였다. 그런데 배에 탔던 선장과 그의 가족, 그리고 모든 선원들은 실종되었다.  

 

호사가들은 메리 셀러스트 호에 탑승한 사람들이 사라진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여러 가지 가설들을 내놓았다. 1884년에 어느 익명의 작가가 메리 셀러스트 호 사건을 소재로 한 소설을 썼다. 소설 제목은 J. 허버쿡 젭슨의 진술(J. Habakuk Jephson’s Statement)이다. 이 소설은 진술서 형식으로 사건이 일어난 원인을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는데, 독자들은 이 이야기를 진짜라고 믿을 정도였다. 이 소설을 쓴 익명의 작가는 명탐정 셜록 홈스(Sherlock Holmes)를 만들어 낸 추리 작가 아서 코난 도일(Arthur Conan Doyle)이다.

 

모든 영혼의 날J. 허버쿡 젭슨의 진술은 배니싱을 소재로 한 공포소설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또 하나의 공통점은 현대 독자들이 비판할 수 있는 명확한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두 작품에서 배니싱을 일으킨 존재는 외국인또는 흑인과 혼혈인의 모습이다. 모든 영혼의 날에서 새러는 낯선 여인이 외국인 같은 이상한 억양을 한다고 증언한다. J. 허버쿡 젭슨의 진술에는 흑인과 혼혈인을 부정적으로 보는 백인의 인종주의 정서가 반영되어 있다. 작품 속에 언급되는 가상의 진술서에 따르면 백인에게 오랫동안 학대받은 혼혈인이 사라진 배에 탑승한 백인들을 살해했으며 그 배에 탔던 흑인 선원은 공범이다. 당시 독자들이 소설에 나오는 허구적인 내용을 진짜라고 믿는 이유가 있다. 영국 백인들은 흑인’, ‘백인이 아닌 이방인을 배척하면서도 그들에 대한 불안감과 공포심을 가지고 있었다. 백인들의 내면 속에 자리잡고 있는 이방인에 대한 공포는 소설에서 악마 또는 괴물로 변형되어 나타난다. 이러한 작품의 한계는 모든 영혼의 날J. 허버쿡 젭슨의 진술만의 문제가 아니다. 20세기 이전에 나온 고전 공포소설뿐만 아니라 인종주의가 더욱 심했던 20세기 초중반에 나온 공포소설(가장 대표적인 문제의 작가가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Howard Phillips Lovecraft). 그의 소설에는 인종차별적인 문장이 종종 나온다)에서도 심심찮게 나오는 부정적인 클리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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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0-03-02 2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할로윈을 전에는 만성절전야라고도 썼던 것 같은데 요즘은 만성절보다 할로윈이 더 유명해진듯 합니다. 만령절은 생소했는데 설명을 읽으니 매년 돌아오는 11월 첫 주 미사가 생각났어요.
cyrus님 잘 지내고 계신가요.
건강 조심하시고 편안하고 좋은 저녁시간 보내세요.

cyrus 2020-03-03 12:30   좋아요 1 | URL
안부 인사를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서니데이님. 저는 지금 외출을 하지 못할 뿐 잘 살고 있어요. 서니데이님도 건강하시고, 좋은 하루 보내세요. ^^

카스피 2020-03-03 2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성절과 만녕절이라 cyrus님 덕분에 새로운것을 일게되었네요😙

cyrus 2020-03-04 14:57   좋아요 0 | URL
가끔 서양 문학 고전을 읽다가 기독교와 관련된 용어를 보게 돼요. 저는 무교라서 기독교 관련 용어의 의미를 몰라요. 그래서 용어의 의미를 알아보려고 인터넷에 검색을 합니다. ^^
 
[eBook] 등신대의 대리석상 빅토리안 호러 컬렉션 9
이디스 네즈빗 / 올푸리 / 2020년 1월
평점 :
판매중지


 

 

이디스 네스빗(Edith Nesbit)의 단편소설 등신대의 대리석상은 한 남자가 자신의 경험과 관련된 절망스러운 진실을 들려주면서 시작된다. 그러나 그는 사람들이 진실을 믿을 거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남자가 들려줄 진실은 그가 겪은 이성적으로 설명하기 힘든 초자연적인 사건이다.

 

그와 그의 아내 로라는 아주 싼 집을 운 좋게 구한다. 남자는 그림을 그리는 일을 하고, 로라는 글을 쓰는 일을 한다. 집안일은 부부가 고용한 가정부 도먼 부인이 한다. 그녀는 옛날이야기를 하는 것을 좋아한다. 부부는 도먼 부인이 들려준 옛날이야기를 잡지에 기고해 짭짤한 수입을 챙긴다.

 

그러던 어느 날 도먼 부인은 아픈 조카를 보살펴야 한다는 이유로 가정부 일을 그만두겠다고 밝힌다. 그녀는 1031일 핼러윈(Halloween) 전날에 이 집을 떠나겠다고 말한다. 사실 그녀가 이 집을 떠나는 진짜 이유는 부부의 집을 둘러싼 괴이한 소문 때문이다. 부부의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오래된 교회가 있다. 그 교회 안에 갑옷 입은 기사들의 모습을 한 대리석상이 있다. 도먼 부인이 들은 소문에 따르면 만성절(All Saints Day: 기독교의 모든 성인을 기념하는 축일) 전날, 즉 핼러윈에 기이한 현상이 일어난다. 밤이 되면 교회 안에 있는 대리석상이 살아 움직여 부부의 집으로 걸어간다고 한다. 대리석상의 인물은 옛날 마을에 악행을 저지른 재앙 같은 존재. 부부의 집은 그들이 살았던 집이었다. 부인은 밤에 움직이는 대리석상을 만나면 불길한 일이 생길 거라고 경고한다. 남자는 예민한 성격을 가진 로라를 위해서 대리석상 이야기를 로라에게 알려주지 않는다. 다행히 핼러윈에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다음 날에 남자는 도먼 부인이 알려준 소문을 두 눈으로 확인한다.

 

등신대의 대리석상의 이야기 구조를 보면 유령 들린 집이야기. 다만 이 단편소설에서 유령 들린 집이야기의 형식과 다른 점이 있다면 특정한 날이면 집에 유령이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마을의 약탈자들은 죽어서 교회에 안장되었는데(그들의 후손이 재물을 쓴 덕분에 조상들은 교회에 안장할 수 있었다) 대리석상에 그들의 악령이 깃들어 있다.

 

이 소설에서도 공포영화의 클리셰가 나온다. 공포영화의 주인공은 저렴한 가격의 집을 구한다는 점. 영화 속 주인공은 유령이 나오는 집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집값이 싸다는 이유만으로 그 집을 구매한다. 등신대의 대리석상의 부부도 그 집의 말도 안 되는 염가에 혹해서 구매한다. 그러나 남자는 도먼 부인이 알려주기 전까지는 그 집과 관련된 무서운 소문을 모르고 있었다.

 

등신대의 대리석상20세기 이전에 나온 고전 공포소설들과 마찬가지로 초자연적인 현상을 무시하다가 큰코다치는 오만한 이성(=남성)을 보여준다. 남자는 도먼 부인이 들려준 소문을 터무니없는 이야기로 여긴다. 그리고 그는 지나치게 신경이 예민한 로라를 비이성적이라고 언급하기도 한다. 그가 무서운 경험을 겪게 된 것은 인과응보로 볼 수 있다. 소설의 결말과 조금 관련된 거라서 이 리뷰에 만성절에 일어난 일을 자세히 언급하지 않았지만, 그날 그는 아주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른다. 그 실수만 아니었으면 끔찍하면서도 불가사의하고, 절망스러운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다. 알고 보면 그는 그림을 잘 그릴 뿐 그렇게 이성적으로 뛰어난 인물이 아니다.

 

 

 

      

 

Trivia

 

이 전자책에 정말 재미있는 주석 하나가 있다. 주석 내용은 이렇다.

 

 

 8. 루빈스타인: 유럽에서 활약한 러시아의 피아니스트 · 작곡가 · 지휘자 안톤 루빈스타인(1824~1894). 많은 피아노 협주곡 · 솔로 피아노 · 교향곡 등을 작곡했는데 가장 유명한 작품은 오페라 마왕(The Demon)이다. 독자께서는 이 마왕의 줄거리를 알고 계시는가?

 

 

정말로 이게 주석에 있는 내용이다. 독자에게 갑자기 툭 질문하는(갑툭질) 주석 내용은 처음 본다. 오페라 마왕의 줄거리가 뭔지 궁금해서 알아봤는데 러시아의 시인 레르몬토프(Lermontov)가 쓴 장시 악마가 원작이라고 한다. 사실 루빈스타인의 오페라는 마왕보다는 악마라는 제목으로 더 알려져 있다. 사족(TMI)을 붙이자면, 클래식 음악 중에서 가장 유명한 마왕이라는 곡이 있다. 그 곡은 슈베르트(Schubert)가 괴테(Goethe)의 시를 바탕으로 만든 가곡이다.

 

, 나는 역으로 이 주석을 쓴 번역자에게 질문하고 싶다. ‘솔로 피아노는 무슨 장르인가()? ‘피아노 솔로 곡이라고 써야 맞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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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gela 2020-03-01 2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스토리로 영화만들면 재미있을것 같아요~

cyrus 2020-03-01 23:50   좋아요 0 | URL
네. 단편영화나 공포를 주제로 한 단막극로 각색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이야기에요. ^^
 

 

 

국내에 번역된 체호프(Chekhov)의 단편소설 중에 제목은 다르지만, 내용이 같은 것이 있다. 그중 한 편이 우수(憂愁) 또는 애수(哀愁)라는 제목으로 알려진 작품이다. 1886년에 발표된 이 작품의 러시아어 원제는 Тоска. 우울과 애수를 뜻한다.

    

 

 

 

 

 

 

 

 

 

 

 

 

 

 

 

 

    

* 안톤 체호프 체호프 단편선(문예출판사, 2006)

* 안톤 체호프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열린책들, 2009)

    

 

 

     

Тоска를 수록한 체호프 단편 선집으로는 체호프 단편선(문예출판사)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열린책들) 등이 있다. 이 두 권에 수록된 Тоска의 작품명은 다르다. 체호프 단편선에 표기된 작품명은 우수이며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에 표기된 작품명은 애수. 이 글에서는 Тоска의 국내 작품명을 애수로 쓰겠다.

    

 

 

 

 

 

 

 

 

 

 

 

 

 

 

 

* 스티븐 킹 미저리(황금가지, 2004)

    

 

 

애수의 영문판 제목은 ‘Misery’. 이 단어는 1990년에 나온 스티븐 킹(Stephen King) 원작의 동명 영화 제목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misery’정신과 육체에 부담을 주는 극심한 고통을 의미한다. 애수의 영문판 제목은 슬픔, 근심, 우울을 뜻하는 러시아어 원제와 완전히 다른 느낌을 준다. 하지만 소설의 줄거리를 보게 되면 고통이라는 제목이 어울리는 이유를 알 수 있다.

 

마부 요나 뽀따뽀프(‘열린책들판에는 이오나 뽀따뽀프로 되어 있다)는 아들의 죽음에 깊은 실의에 빠진다. 그는 죽은 아들이 계속 생각나서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그래도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 요나는 여러 명의 손님을 태워 그들이 원하는 목적지에 데려다준다. 그는 마차에 타는 손님들에게 자신의 슬픔을 하소연한다. 그러나 손님들은 요나의 말을 진지하게 듣지 않는다.

 

일을 마친 요나는 동료 마부들이 묵고 있는 숙소로 향한다. 그는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난 젊은 마부에게 아들이 죽은 사실을 말하려고 한다. 하지만 젊은 마부는 이내 잠들고 만다. 온종일 마음이 괴로운 요나는 아무나 붙잡고 아들의 죽음에 대해 말하고 싶어 한다. 결국 그는 마구간에 있는 자신의 말()에 다가간다. 그리고 말에게 귀리를 주면서 사람들에게 전하지 못한 말()들을 꺼내기 시작한다.

    

 

 

 

 

 , 네게 새끼 말이 있고, 넌 그 새끼 말의 엄마라고 하자…‥. 그런데 갑자기 새끼 말이 어딘지 먼 곳으로 가버렸단 말이야…‥. 그런데도 슬프지 않니?”

 

(문예출판사, 247)

 

 

애수는 요나가 말에게 대화를 시도하는 장면을 묘사하면서 끝난다. 소설의 마지막 문장은 담담하다.

 

 

 요나는 흥분한 어조로 자초지종을 말에게 이야기한다.

 

(문예출판사, 247)

 

 

애수는 단순한 줄거리로 이루어져 있지만, 반전을 이용한 소설의 결말은 주인공의 슬픈 감정을 극대화하고 있다. 요나는 아들의 죽음에 슬퍼할 뿐만 아니라 슬픔에 빠진 자신의 상태를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못해서 고통스러워한다. 슬픔을 마음속에 묻으면서 살아가는 것은 정말 괴롭고 힘든 일이다.

 

슬픈 내용의 단편소설을 소개하는 글에 어울리지 않은 내용이겠지만, 그래도 문제 있는 번역에 대해서 언급하겠다. 내가 이 글에서 맨 처음 인용한 우수의 번역문(문예출판사, 274)은 고칠 필요가 있다. 우수』의 번역가새끼 말이 어딘지 먼 곳으로 가버렸다면이라고  썼으며 애수(열린책들)의 번역가는 새끼 말이 죽었다면이라고 썼다.

 

 

만일 말이다, 너에게 새끼가, 네가 낳은 새끼가 있다면 말이다‥…. 그런데 갑자기 말이다, 그 새끼가 죽었다면 말이다‥… 얼마나 괴롭겠니?

 

(열린책들, 31)

 

 

어딘지 먼 곳으로 간다는 표현은 생이별을 의미한다. 인간을 위한 가축또는 상품이 되어야 하는 망아지에게는 어미 말과 함께하는 시간이 길지 않다. 인간에 의해서 강제로 생이별을 해야 한다.

 

한편 망자가 사는 세계를 먼 곳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누군가의 죽음을 말할 때 먼 곳으로 갔다라고 말한다. 그런데 문예출판사 번역문은 어미 말과 망아지의 생이별을 뜻하는 것인지 아니면 망아지와 사별한 어미 말의 상황을 뜻하는 것인지 그 의미를 파악하기 힘들다. 그렇다고 해서 이 번역문을 중의적 표현으로 볼 수 없다. 영어로 번역된 애수에서는 망아지의 죽음을 뜻하는 문장(다음에 나올 인용문에 밑줄이 있는 문장)이 나와 있다.

 

 

 “Now, suppose you had a little colt, and you were own mother to that little colt‥…. And all at once that same little colt went and died‥…. You’d be sorry, wouldn’t you?‥….”

 

 

독자들에게 혼동을 주지 않으려면 망아지의 죽음을 가정하는 문장을 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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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01 22: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3-01 23:0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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