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 에어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10
샬럿 브론테 지음, 유종호 옮김 / 민음사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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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늘날 제인 에어는 자기 결정권과 욕망을 발현하는 여성을 내세운 근대 소설로 평가받는다. 소설에서 에드워드 로체스터(Edward Rochester)신 존(St. John)은 제인의 결혼 상대자로 나온다. 이 둘 중에 누굴 선택할지 고민하는 제인의 모습은 당시 19세기 영국 사회의 여성들과 다르다. 하지만 당돌한 제인도 시대적 한계를 넘어서지 못한다. 제인 로체스터가 된 제인은 자신을 남편의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 된 여자라고 말한다(2424).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는 표현은 성경의 창세기에 나오는 구절이다. 기독교는 이 구절을 근거로 여성을 남성의 파생적 존재로, 그리고 남성에게 종속된 존재로 해석한다. 결국 제인 로체스터의 이 발언은 로체스터의 온갖 구애를 뿌리치려고 난 새가 아니에요(I’m no bird, 233)라고 당당하게 외친 제인 에어의 말을 무색하게 한다. 그렇지만 모순된 주인공의 모습을 설정한 것에 대해 작가인 샬럿 브론테에게 책임을 전가할 수 없다. 샬럿은 남녀 주인공이 결혼하는 결말을 원하는 독자들의 요구에 못 이겨 지금의 결말을 쓰게 됐다.

 

제인 에어2권에 주목해야 할 인물은 당연히 버사 앙투아네트 메이슨(Bertha Antoinetta Mason)이다. 후대에 이 인물이 다시 평가받으면서 제인 에어제국주의적 관점이 반영된 텍스트라는 비판에 직면한다. 제인 에어에 대한 비판적 분석은 제인 에어번역본의 역자 해설이나 제인 에어의 전문가 서평 또는 독자 서평에 자주 언급된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그 내용을 길게 언급하지 않겠다. 이미 누군가가 언급한 작품 평과 해석을 그대로 옮겨 쓰는 것은 시간 낭비다.

 

이번 서평도 어제 쓴 서평의 형식과 마찬가지로 소설의 주변 인물을 소개하면서 내 나름대로 그 인물을 분석하는 방향으로 작성했다. 내가 제인 에어2권을 읽으면서 주목한 인물은 손필드(Shonfield) 저택에서 일하는 하녀 그레이스 풀(Grace Poole)이다.

 

손필드의 주인은 로체스터다. 제인은 로체스터가 보살피고 있는 프랑스 출신 소녀 아델러 바랭스(Adèle Varens)의 가정교사가 된다. 로체스터는 과거에 프랑스의 오페라 무희와 사귄 적이 있다. 이 무희의 딸이 바로 아델러다. 그러나 로체스터는 아델러를 자신의 친딸로 인정하지 않는다. 몇 년 후 오페라 무희는 이탈리아인 음악가에게 사랑에 빠져 딸을 버리고 이탈리아로 떠난다. 로체스터는 아델러를 부양해야 할 의무는 없지만, 졸지에 고아가 된 그녀를 영국으로 데려와 키운다.

 

제인은 손필드에 도착한 첫날에 저택 내부를 둘러본다. 혼자서 저택 복도를 걷다가 기묘한 웃음소리를 듣는다. 제인은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웃음소리에 기겁한다. 그녀는 저택 관리인으로 일하는 페어팩스 부인(Mrs. Alice Fairfax)에게 이 웃음소리를 낸 사람이 누군지 묻는다. 부인은 술에 취한 그레이스 풀의 웃음소리라고 말하면서 그레이스에게 시끄럽다고 지적한다. 제인은 그레이스의 외모를 험상궂은 못생긴 얼굴이라고 평가한다.

 

제인은 나사 하나 빠진 것 같은 저 못생긴 그레이스가 어째서 손필드에 지내는지 의심한다. 그런 와중에 로체스터의 침실에 화재가 일어난다. 제인이 도와준 덕분에 로체스터는 목숨을 구한다. 제인은 화재를 일으킨 범인으로 그레이스를 지목한다. 왜냐하면 화재가 일어났던 밤에 그녀는 또 한 번 그레이스의 웃음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로체스터는 제인의 생각에 동의하지만, 그레이스를 쫓아내지 않는다. 제인은 로체스터의 반응을 이상하게 생각하지만, 로체스터의 결혼 상대자로 알려진 블랑슈 잉그램(Blanche Ingram)이 등장하면서 제인의 합리적 의심은 잊힌다.

 

손필드에 로체스터의 친구라고 밝힌 리처드 메이슨(Richard Mason)이 나타난다. 그는 누군가에게 습격을 받아 크게 다친다. 끔찍한 일이 일어난 메이슨의 방에 들어간 제인은 그곳에서 그레이스의 웃음소리를 듣는다. 제인은 그녀가 메이슨을 죽일려고 한 살인자라고 생각한다. 여기까지 언급된 줄거리는 제인 에어1권에 나온다.

 

레이스의 등장 빈도는 높지 않다. 제인과 그레이스가 대화하는 장면이 나오긴 하지만, 그 장면을 제외하면 그레이스는 대사가 거의 없는 공기같은 인물이다. 그레이스는 주로 제인의 서술을 통해서 언급되는데, 제인은 그레이스에 대한 부정적인 인상을 일관되게 묘사한다. 그래서 제인의 흥미진진한 서술에 제대로 몰입한 독자는 그레이스를 기괴하고 위험한 인물로 바라보게 된다.

 

하지만 2권에 버사 메이슨의 정체가 알려지게 되면서 제인과 독자들이 함께 씌운 그레이스의 오명은 벗겨진다. 버사는 서인도 제도 출신의 혼혈인으로 로체스터와 결혼하여 영국으로 건너온다. 그러나 그녀는 고향과 너무나 다른 날씨와 언어, 문화에 적응하지 못한다. 버사에 대한 사랑이 식어버린 로체스터는 그녀의 심정을 알지 못한다. 결국, 몸과 정신이 완전히 피폐해진 버사는 미쳐 버린다. 로체스터는 자신이 미친 여자와 결혼했다면서 후회한다. 그는 새로운 여성과 결혼하고 싶어서 버사를 손필드에 감금한다. 그 후로 버사는 십년 동안 손필드에 갇혀 지낸다.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난폭해진 버사를 보살피는 유일한 사람이 그레이스다. 기괴한 웃음소리의 주인공, 로체스터의 침실에 화재를 일으킨 사람, 그리고 자신의 친오빠를 공격한 사람 모두 버사이다. 그녀는 술에 취해 잠든 그레이스의 감시를 피해 방을 탈출하고, 저택 내부 이곳저곳 돌아다닌다. 한 번은 버사가 제인의 침실에 들어온 적이 있다. 제인은 로체스터와의 결혼식에 착용하려고 한 베일을 갈기갈기 찢는 버사를 목격한다. 로체스터가 숨겨온 비밀을 안 제인은 결혼을 포기하면서 손필드를 떠난다.

 

로체스터는 버사를 교활하고 근성이 나쁜 미친 여자(2144)라고 비난한다. 제인 에어를 로맨스 소설로 인식한 독자는 남자 주인공이 처한 상황에 동정하는 반응을 보인다. 그래서 버사는 제인과 로체스터의 사랑을 방해하는 부정적 인물로 평가받아 왔다. 하지만 이제는 버사에 대한 독자들의 시각이 달라졌다. 로체스터의 무책임한 행동과 발언, 그리고 버사를 정신이 이상한 혼혈인 여성으로 묘사한 작가의 인종차별적 글쓰기를 비판하는 평이 많아졌다. 실제로 샬럿 브론테는 버사를 편파적으로 묘사한 점에 대해 반성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버사 다음으로 소설에서 줄곧 부정적인 인물로 그려진 그레이스를 잊어선 안 된다. 제인의 서술에 너무 따라가지 않고, 그레이스의 행보에 주목하면서 소설을 읽는다면 제인의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다. 제인은 그레이스를 위험인물로 오해한 것에 대해 일말의 반성을 하지 않는다. 또 그레이스가 로체스터의 명령을 거부하지 못한 채 십 년 동안 버사를 보살핀 노고를 언급하지 않는다. 버사는 몸집이 크고, 로체스터와 리처드 메이슨을 넘어뜨릴 정도로 힘이 세다. 그레이스는 그런 버사를 무려 십 년 동안 혼자 보살폈다! 소설에서는 버사의 과거에 대한 내용이 나오지만, 그레이스의 과거는 언급되지 않는다. 로체스터는 그레이스를 그림스비 정신 병원에서 구했다고 말하는데(2권 144쪽), 이것이 그레이스의 이력을 파악할 수 있는 유일한 설명이다. 그레이스를 언급한 로체스터의 말이 애매모호하다. 그레이스는 정신 병원에 있던 환자였을까, 아니면 그곳에서 정신병원에 입원한 환자들을 돌본 경험이 있는 간호 직원이었을까. 아무래도 후자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정신병원에 일한 경력이 있는 그레이스도 혼자서 버사를 십 년 동안 보살피는 게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레이스가 매일 술을 마신 이유를 생각하면 그녀의 노동이 고된 일임을 짐작할 수 있다. 그녀도 이 지긋지긋한 일을 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보다 신분이 높은 고용인 로체스터의 명령을 거부하기 힘들 것이다. 하녀 일을 그만 두면 당장 일자리를 구하기 힘들 테니까. 따라서 그레이스를 주인의 명령에 순순히 따르는 수동적인 인물로 볼 수 없다. 경제적으로 불안정한 신분에 속한 그레이스에게는 자신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고, 어쩔 수 없이 힘든 일을 맡은 것이다.

 

손필드가 화재로 인해 잿더미가 되면서 로체스터가 고용한 하녀와 하인들은 모두 뿔뿔이 흩어진다. 아마도 손필드에서 일하던 사용인들은 다른 직업을 알아보거나 또 다른 귀족의 집에서 일하고 있을 것이다. 손필드를 떠난 사용인 중에 그레이스도 포함되어 있을 텐데 매정하게도 제인은 손필드를 떠난 그녀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언급하지 않는다. 그레이스는 제인의 관심 밖에서 완전히 멀어진 인물이다. 끝내 그레이스를 외면한 제인의 반응은 빈민층의 삶에 무관심한 채 여권 신장을 주장한 부르주아지 여성(여성의 경제활동 참여 기회가 보장돼야 한다고 주장한 19세기 자유주의 페미니스트)의 한계로 해석할 수 있다. 제인 에어를 감명 깊게 읽은 대부분의 독자는 그레이스 풀이 누구였더라?’하면서 생각하거나 소설에서 비중이 적은 못생긴 알코올 중독자로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 이제 독자들은 그녀가 입에 술을 달면서 살아가게 만든 원인을 생각해봐야 한다. 소설에 드러나지 않은 그녀의 극심한 스트레스를 이해해야 한다그레이스 풀은 소설에서 잠깐 스쳐 나가는 엑스트라’가 아니다. 그녀는 19세기 영국 사회에서 가장 소외된 계층, 즉 계급 사회의 맨 밑바닥에 있는 인물이다.

 

 

 

 

 

Trivia

 

 

* 229

 

당신은 어딘가 나하고 닮았다고 생각하지 않소, 제인?”

이제는 아무런 대답도 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가슴속이 벅찼다.

왜냐하면.” 그가 말했다. “나는 가끔 당신에게 대해 이상한 느낌이 들 때가 있소. 특히 지금처럼 당신이 나와 가까이 있을 때 말이오. 마치 내 왼편 갈비뼈 밑 어딘가에 끈이 하나 달려 있어서, 그것이 당신의 그 조그만 몸뚱이의 오른편 갈비뼈 밑에 달려 있는 똑같은 과 풀리지 않은 풀리지 않게 꼭 매어져 있는 것 같은 느낌이요.”

 

똑같은 끝똑같은 끈(similar string)의 오식이다.

 

 

 

* 259

 

선생님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아침저녁으로 마나를 주워올 테다. 달나라의 들판이나 산기슭에는 마나가 하얗게 깔려 있단다, 아델러.”

 

만나(manna)라고 써야 한다. 만나는 모세(Moses)와 함께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사람들이 광야에 굶주려 있을 때 신이 내려준 양식이다.

 

 

 

* 2141

 

  “서인도식 얄팍한 칸막이벽은 그녀의 늑대와 같은 아우성 소리를 막아낼 장애물 구실을 별로 하지 못했던 것이었소.”

 

아우성의 ()소리를 뜻하는 한자이다. 아우성 소리는 겹말이므로 아우성이라고 쓰는 게 맞다.

 

 

 

* 2148

 

셀린 바랭 셀린 바랭스

 

 

 

* 2208

 

세이트 세인트 존

 

사실 세인트 존은 오역이다. 성인이 아닌 인물 이름 앞에 있는 ‘St.’세인트라고 발음하지 않는다. ‘신’으로 발음한다.

 

 

 

* 2238

 

아아멘 아멘

 

 

    

* 2권 381쪽

 “그분은 인젠 폐인이나 마찬가집니다. 장님인데다 불구자죠.”

 

인젠인제의 오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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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아가 된 제인 에어(Jane Eyre)리드 부인(Mrs. Sarah Reed)의 가족과 함께 게이츠헤드(Gateshead)에서 지낸다. 리드 부인은 제인의 외숙모다. 그러나 리드 부인과 그녀의 자식들은 제인을 못살게 구고 친절하게 대하지 않는다. 특히 리드 부인의 장남 존 리드(John Reed)는 부인 다음으로 제인을 많이 괴롭히는 인물이다.

    

 

 

    

 

 

 

 

 

 

 

 

 

 

 

 

 

 

* 샬럿 브론테 제인 에어(민음사, 2004)

    

 

 

존은 제인에게 시비를 걸다가 그녀를 향해 책을 던진다. 존이 던진 책에 맞은 제인은 넘어지고, 그녀의 머리에 약간의 상처가 생긴다. 인내심이 폭발한 제인은 존에게 욕설을 퍼붓는다. 존은 야비하게도 다친 제인에게 달려들고, 제인은 존의 공격을 막아보려고 한다. 둘이 몸싸움하는 소리를 듣고 달려온 리드 부인은 제인이 먼저 존을 공격했다고 생각한다. 난투극을 일으킨 죄를 뒤집어씌운 제인은 붉은 방에 갇히는 벌을 받는다.

 

붉은 방은 게이츠헤드에 찾아온 손님이 묵는 곳으로 사용하고 있지만, 예전에 이 방은 세상을 떠난 제인의 외삼촌이 쓰던 방이었다. 이 방에서 제인의 외삼촌은 숨을 거두었다. 붉은 방의 음산한 분위기에 익숙하지 않은 제인은 방에 외삼촌의 영혼이 있다고 생각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방 내부는 점점 어두워진다. 제인은 방에 무시무시한 망령이 나올까 봐 두려워한다. 그녀의 불안감은 점점 커지게 되고, 벽 위에 생긴 빛을 무서워한다. 사실 제인이 망령이라고 생각한 그 빛의 정체는 방에 들어온 유모가 쥐고 있던 손전등에서 나온 것이다.

 

붉은 방 이야기는 샬럿 브론테(Charlotte Bronte)의 소설 《제인 에어》 2장에 나온다. 제인은 이곳에서 한동안 잊고 있었던 죽은 외삼촌을 떠올린다. 그리고 죽음과 영혼의 의미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만약 제인이 붉은 방에 갇히지 않았으면 외삼촌이 자신의 삶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지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게이츠헤드 사람들의 구박과 학대에 지칠 대로 지친 제인은 자신을 가족과 어울리지 못하는외톨박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난 후에 그녀는 외삼촌이 죽지 않고 살아 있다면 자신을 무척 친절하게 대해줬을 거로 생각한다.

    

 

 

 

 

 

 

 

 

 

 

 

 

    

 

* 허버트 조지 웰스 허버트 조지 웰스: 눈먼 자들의 나라 외 32(현대문학, 2014)

* 정진영 엮음 세계 호러 단편 100(책세상, 2005)

 

 

 

 

 

 

 

 

 

 

 

 

 

 

 

 

 

 

* [e-Book] 허버트 조지 웰스 붉은 방(올푸리, 2019)

* [e-Book] 허버트 조지 웰스 붉은 방(위즈덤커넥트, 2015)

 

    

 

붉은 방은 공포소설이나 공포영화 속 배경으로 어울리는 공간이다. 영국의 소설가 허버트 조지 웰스(Herbert George Wells)는 유령이 나오는 붉은 방이라는 설정으로 단편소설을 썼다. 소설 제목은 붉은 방이다. 소설의 화자는 28년을 살면서 단 한 번도 유령을 본 적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는 유령을 두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붉은 방에서 하룻밤만 지내기로 한다. 고전 공포소설의 클리셰에 익숙한 독자는 벌써 눈치챘을 것이다. 유령의 실체를 무시한 인물은 반드시 화를 입는다. 그런데 붉은 방은 공포소설로 보기 어렵다고 느껴질 정도로 결말이 허무하다.

    

 

 

 

 

 

 

 

 

 

 

 

 

 

 

* 아마기 세이마루 원작, 사토 후미야 그림 소년탐정 김전일 애장판 7(서울문화사, 2006)

 

    

 

탐정 킨다이치 코스케(金田一 耕助)의 손자 김전일의 활약상을 그린 장편 만화 소년탐정 김전일의 일곱 번째 사건 이진칸 호텔 살인 사건에서도 붉은 방과 비슷한 공간이 나온다. 크리스마스이브빨간 수염의 산타클로스라는 별명으로 알려진 투숙객이 이진칸 호텔에 지내기 시작한다. 그의 용모는 특이하다. 붉은색 긴 수염이 자라난 얼굴고, 복장과 신발도 (색깔 맞춤) 붉은색이다. 호텔 종업원들은 그 사람을 빨간 수염의 산타클로스라고 부른다. 빨간 수염의 산타클로스는 자신의 방을 온통 빨간색 페인트로 칠한다. 나는 이 이야기를 만화 전문 케이블 채널에 하는 애니메이션으로 본 적이 있다. 다만 애니메이션에 묘사된 여러 가지 설정과 이야기의 전개 방식은 만화 원작과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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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05 13: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20-03-05 22:05   좋아요 0 | URL
도서관을 이용할 수 없어서 불편해요... ㅎㅎㅎ 제 방에 반납하지 못한 도서관 책 몇 권 있어요. 집에 있을 때 그동안 쓰지 못한 글을 쓸려고 해요. ^^
 
제인 에어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9
샬럿 브론테 지음, 유종호 옮김 / 민음사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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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 만에 제인 에어(Jane Eyre)를 다시 읽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제인 에어는 정말 재미있다. 제인 에어는 영화와 드라마로 여러 차례 만들어질 정도로 유명한 소설이다. 그러나 원작의 재미를 적절하게 살리려면 영화보다는 드라마로 각색하는 것이 낫다. 왜냐하면 별 뜻 없어 보이는 문장들 하나하나에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한 복선과 상징들이 듬뿍 들어있기 때문이다. 이런 문학적 장치를 과연 영화 한 편으로 보여줄 수 있을까. 나는 불가능하다고 본다. 영화 제인 에어가 최장 러닝 타임으로 제작되지 않는 이상 원작의 복선들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할 것이다.

 

대부분 독자는 소설의 주인공 제인 에어와 그녀의 로맨스 상대 에드워드 로체스터(Edward Rochester), 그리고 후대에 다시 평가받고 있는 버사 앙투아네트 메이슨(Bertha Antoinetta Mason)에 주목한다. 세 사람의 관계에 대한 분석과 비평은 이미 전문가 서평과 독자 서평에서 많이 다룬 주제이므로 이 서평에서는 언급하지 않겠다. 나는 소설의 주요 인물보다는 주변 인물에 주목하려고 한다.

 

제인 에어1권의 신 스틸러(scene stealer) 헬렌 번스(Helen Burns). 제인은 자신을 미워하는 리드 부인(Mrs. Sarah Reed)의 집을 떠나 로우드 자선 학교(Lowood School)에 입학한다. 그곳에서 제인은 새뮤얼 존슨(Samuel Johnson)의 소설 라셀라스를 읽고 있는 헬렌을 만난다. 제인은 헬렌을 처음 만나자마자 자선 학교의 의미가 뭔지 묻는다. 세상 물정을 잘 모르는 제인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헬렌은 제인에게 자선 학교의 의미와 로우드 학교에 대해서 설명해준다.

 

헬렌은 수업 시간에 스캐처드 선생(Miss Scatcherd)에게 매일 혼난다. 제인은 유독 헬렌에게만 심한 체벌을 가하는 스캐처드 선생을 못마땅해 한다. 아마도 제인은 스캐처드 선생에게 제대로 미운 털 박힌 헬렌의 모습을 볼 때마다 리드 부인의 집에서 살았을 때 자신의 옛 모습이 생각났을 것이다. 리드 부인과 스캐처드 선생은 권위를 내세워 힘없는 어린이를 정신적으로, 또 육체적으로 학대하는 몰인정한 어른이다. 그러나 헬렌은 제인의 성격과 정반대인 인물이다. 그녀는 선생이 자신의 결점을 싫어하기 때문에 체벌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또 성서에 있는 구절을 인용하면서(‘악을 보답하기를 선으로 하라’) 고통을 꾹 참고 견디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제인은 헬렌이 강조하는 인종(忍從: 묵묵히 참고 따름)의 교리를 이해하지 못한다. 제인은 헬렌을 결점이 없는 훌륭한 아이라고 칭찬하지만, 오히려 헬렌은 결점이 너무 많은 자신은 형편없는 아이라고 말한다.

 

헬렌에 관련하여 재미있는 점이 있는데, 대부분 독자는 이 부분을 그냥 지나치기 쉽다. 9년 전에 소설을 읽은 나도 최근에 다시 읽으면서 새로 알게 되었다. 헬렌의 재미있는 점이 무엇이냐면 혁명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이다. 헬렌은 수업 시간에 딴생각하다가 또 스캐처드 선생에게 걸려서 혼난다. 헬렌은 자신이 수업 시간에 했던 생각을 제인에게 알려준다. 헬렌은 처형당한 영국의 왕 찰스 1(Charles I)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는 찰스 1세의 한계를 언급하면서도 성실하고 양심적인 찰스 1세가 처형당한 사실에 분노한다. 그러면서 그녀는 찰스 1세를 존경한다고 말한다. 헬렌은 훌륭한 왕을 처형대에 오르게 한 세력을 비난한다. 혁명 세력을 비판한 헬렌의 정치관은 프랑스 혁명을 부정적으로 봤던 보수주의에 가깝다. 그녀의 보수주의적 입장은 자신보다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 나쁘고 한계가 있더라도 그 사람에게 저항하기보다는 참고 견뎌야 한다는 인종의 교리와 맞닿아 있다. 이러한 입장의 단점은 자신이 겪고 있는 부당한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며 어떤 문제의 원인을 자신의 결점에서 찾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헬렌의 입장은 당시 영국 기득권층의 생각을 반영된 것일까, 아니면 헬렌의 말을 통해 은연중에 드러난 작가 샬럿 브론테(Charlotte Brontë)의 생각일까. 112장에 여성의 주체성을 강조하는 제인의 독백에 나오는데, 여기에 혁명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 같은 묘한 대목이 있다.

 

 

 사람이란 안온한 생활에 만족해야 하는 법이라고 말해보았자 그것은 부질없는 일일 것이다. 사람이란 활동을 해야 하는 것이고 그것을 찾아내지 못하는 경우엔 필경 만들어내고야 만다.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나보다도 평온한 생활에 얽매여 있고 또 수백만의 사람들이 그 운명에 말없이 항거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적 반란을 제외하고서도 얼마나 많은 반란이 지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격동하고 있는지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여성은 대체로 평온한 존재라고 흔히들 생각한다. 그러나 여성도 남성과 똑같은 감정을 가지고 있고 그들의 오빠나 동생들과 똑같이 자기의 능력과 노력을 발휘할 터전을 필요로 하고 있다. (197~198)

 

 

제인이 말한 정치적 반란의 의미는 뭘까. 많은 반란중에서 정치적 반란을 제외한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정치적 반란도 운명에 항거하는 사람들의 일이다. 그런데 제인은 왜 정치적 반란을 제외해야 한다고 생각할까. ‘정치적 반란혁명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제인의 입장에서는 그 상황은 운명에 대항하는 역사적인 항거가 아니라 평온한 생활에 균열을 내는 반란이 된다.

 

작가가 살았던 시기 이전에 영국에서는 청교도 혁명명예혁명이 일어났다. 이 청교도 혁명이 일어나면서 헬렌이 존경한 찰스 1세가 처형당했다. 아니면 전 유럽에 영향을 미친 프랑스 혁명을 의미할 수도 있다. 영국의 계몽주의자들은 프랑스 혁명에 열광했지만, 귀족들은 프랑스에서 시작되어 국경을 넘어 온 혁명의 기운이 영국 전역에 퍼지는 것을 두려워했다. 독백을 하고 있던 제인의 신분은 가정교사다. 19세기 영국의 가정교사는 상류층 및 중산층 출신의 영국 여성들이 선호하는 직업이다. 그러나 실제로 가정교사는 상류층에 속하지 못한 신분이었고, 고용인의 보호를 받으면서 생활하고 교용인의 자녀를 가르쳤다귀족이라 할 수 없는 제인이 정치적 반란에 대해 부정적 생각을 하는 점이 특이하다. 혹시 제인은 혁명에 대한 헬렌의 생각을 받아들인 것일까. 그럴 가능성이 충분하다. 제인은 라틴어를 구사하는 헬렌의 모습을 존경 어린 눈빛으로 바라본다(1권 129쪽). 소설에서는 자세히 언급되지 않았지만, 제인과 헬렌은 친하게 지내면서 지적 교감을 나누었을 것이다.

 

제인은 작가의 삶이 어느 정도 반영된 인물이다. 그 점을 생각한다면 제인의 보수적인 입장은 혁명에 대한 작가의 생각으로 해석할 수 있다. 물론, 작가나 소설 속 인물의 생각에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제인 에어1권에서 제일 친밀하게 느꼈고, 한편으로는 가장 안타깝게 느낀 인물은 헬렌이다. 제인과 헬렌이 마지막으로 대화하는 장면은 제인 에어에서 가장 슬픈 장면이다. 만약 원작에 대한 2차 창작물이 만들어진다면 과연 헬렌은 어떤 인물로 묘사되어 있을까. 헬렌이 소설에서 비중이 작은 인물로 보일 수 있겠으나 헬렌이라는 든든한 존재가 있었기에 제인은 정신적으로 한 단계 성장할 수 있었다.헬렌도 많은 독자들이 주목해야 할 인물로 알려져서 부활했으면 좋겠다.

 

 

 

 

 

Trivia

 

 

* 로우드 학교의 총책임자는 브로클허스트(Brocklehurst). 그런데 1121브르클허스트라는 오식이 있다.

    

 

 

* 다음 인용문은 1363쪽에 있는 제인과 집시 노인(사실 그 노인의 정체는‥…)의 대화 내용이다. () 보는 집시 노인은 제인의 속마음을 읽는다.

     

 

 “그럼 미래의 일을 속삭여주고 당신의 마음을 북돋워주고 기쁘게 해줄 만한 남모르는 희망이라도 갖고 있는지?”

 “아뇨. 고작 제 희망이란, 언젠가 조그마한 집을 빌려서 학교를 세울 만한 돈을 내 봉급에서 저축하는 거예요.”

  “영혼이 살아나기엔 빈약한 영양분이군그래. 그리고 저 창턱에 앉아서‥… 난 당신의 습관을 잘도 알고 있죠?

  “하인들에게 들은 거겠죠.”

  “! 꽤 똑똑한 체하는군. 그렇지! 들었을지도 모르지. 사실은, 하인 중에 한 사람 아는 사람이 있어서‥… 풀 부인 말이오.”

 

 

 

내가 밑줄을 친 문장은 노인이 한 말이다. 그런데 갑자기 제인에게 높임말을 쓴다. 생뚱맞은 번역문이다. 사실 밑줄을 친 문장은 오역이다. 높임말로 된 번역문에 해당하는 원문(‘You see I know your habits’)은 의문문으로 되어 있지 않다. 원문을 올바르게 번역하면 난 당신의 습관을 잘 알고 있다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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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수집은 현재진행형이다. 책 수집을 중단하게 만든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책 모으는 버릇은 죽을 때까지 지속된다. 집에서 생활하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여태까지 사놓고 한 번도 펼쳐보지 않은 책들에 눈길이 간다.

    

 

 

 

 

 

 

 

 

 

 

 

 

 

 

 

* [절판] 반 고흐 명작 400(마로니에북스, 2008)

* [절판] 마그리트 명작 400(마로니에북스, 2008)

* 달리 명작 400(마로니에북스, 2008)

    

 

 

온종일 글자로 채워진 책을 보면 지루하다. 그럴 땐 도판이 많은 책을 읽는다. 특히 명작 400시리즈는 가끔 생각날 때마다 보는 도판집이다. 이 시리즈는 유명 예술가가 그린 작품 400선을 어떠한 한 줄의 설명 없이 도판으로 보여주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물론 이 책에 아예 도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서문, 예술가 연보, 색인은 있다. ‘명작 400시리즈로 나온 모든 책의 서문을 쓴 사람은 호주의 미술비평가 로버트 휴즈(Robert Hughes). 국내에 출간된 명작 400선 시리즈는 총 다섯 권이다. 반 고흐(Vincent van Gogh), 마티스(Henri Matisse), 마그리트(René Magritte), 달리(Salvador Dali), 피카소(Pablo Picasso).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책은 반 고흐, 마그리트, 달리. 나머지 두 권을 구매하면 시리즈 전체를 소장하게 되는데, 책 한 권 모으는 일이 쉽지 않다. 현재 달리를 제외한 나머지 네 권은 품절 또는 절판 상태다. 이 책들이 알라딘 온라인 중고 샵이나 알라딘 오프라인 서점에 나올 확률은 낮다. 그러나 정가의 50% 정도 할인된 가격으로 판매되므로 오매불망 기다릴 수밖에 없다. 품절 또는 절판된 책들이 판매자 중고 샵에 등록되어 있지만, 중고가 금액이 책의 정가보다 높다.

 

반 고흐와 달리는 국적, 성장 과정, 활동 시기가 완전히 다른 예술가이다. 예나 지금이나 고흐를 평가하면 광기에 사로잡힌 미치광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달리도 생전에 눈에 띄는 기이한 행동과 발언을 일삼은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달리의 특이한 행동은 병적인 증세라기보다는 세상 사람들의 존경과 관심을 받고 싶어서 하는 과장된 퍼포먼스(performance)에 가깝다. 반 고흐와 달리의 공통점은 광기가 아니다. 이 두 사람의 진짜 공통점은 농민 화가에 관심을 가졌다는 사실이다.

    

 

 

 

        

 

 

 

농민 화가의 정체는 바로 장 프랑수아 밀레(Jean-Fracois Millet). 그는 농촌의 풍경을 그리는 화가가 아니라 농민들의 생활상을 있는 그대로 묘사함으로써 미술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기에 이른다. 반 고흐는 밀레를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그러나 그는 밀레의 작품 몇 점을 모사했을 정도로 밀레를 존경했다. 반 고흐는 동생 테오(Theo van Gogh)에게 보낸 편지에서 밀레를 젊은 화가들의 아버지라고 언급했다(18854). 반 고흐가 가장 좋아한 밀레의 그림은 너무나도 유명한 밀레의 대표작 만종이다. 반 고흐는 밀레의 그림에서 어떤 매력을 발견한 것일까. 반 고흐는 밀레의 그림에서 평범한 미학의 매력을 발견한다. 밀레는 농촌에 생활하면서 농민들에게서 화려하고 소란스러운 도시에 볼 수 없는 생명력을 발견한다. 도시인들은 농민의 삶을 그저 평범한 일로 치부한다. 당연히 도시 생활에 익숙한 예술가와 비평가들은 농촌 생활에 대해 잘 모르거나 낯설어한다. 그들은 밀레의 그림을 이해하지 못한다. 오히려 불평등 문제에 관심 없거나 혁명을 두려워하는 보수적인 비평가들은 밀레가 정치적인 의도를 보여주기 위해 가난한 농민들을 그린다고 비난한다. 하지만 밀레는 자신의 정치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농민의 모습을 그리려고 하지 않았다. 밀레는 농민들의 엄숙한 모습에 매료되었고, 잔잔하게 흘러나오는 고귀한 아름다움을 재현했다. 그래서 밀레의 그림은 종교화 같은 느낌이 든다. 반 고흐는 밀레처럼 평범한 농민을 소재로 삼아 종교화 같은 숭고한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밀레와 반 고흐의 관계는 그림으로 이어진 스승과 제자에 가깝다.

 

 

 

 

 

 

    

 

달리는 고흐 못지않게 밀레의 그림에 상당히 애착을 느낀 예술가이지만, 그는 밀레의 그림에 과도한 상상을 덧붙여서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만종을 자세히 들여다본 달리는 감자를 담은 바구니가 있는 자리에 원래 농민 부부의 죽은 아기를 안치한 관이 그려져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의 발언은 만종의 무서운 진실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지게 만든 원인이 된다. 실제로 만종에 자외선을 투사하여 분석해 본 결과, 그림 속 바구니의 위치에 작은 관과 비슷한 형체를 발견했다. 그러나 그 형체가 정말로 죽은 아기의 관인지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만종에 대한 달리의 해석을 믿는 호사가들(항간에 떠도는 무서운 이야기를 주로 소개하는 블로거들도 포함된다)은 처음에 밀레가 죽은 아기의 관이 그려진 만종을 그렸다가 친구의 충고(‘그림이 너무 무섭다’)를 듣고 난 후 바구니로 고쳤다고 주장한다. 말도 안 되는 주장이다. 그런 주장은 밀레의 친구 알프레드 상시에(Alfred Sensier)가 쓴 밀레 전기 자연을 사랑한 화가 밀레()에 나오지 않는다.

 

 

 

 

 

 

    

 

아무튼 달리는 만종을 보면서 불길한 기운을 느꼈고, 만종에 자신의 심리 상태를 반영한 그림들을 그렸다. 달리는 만종에 나오는 인물들과 대상(괭이, 바구니, 외바퀴 수레)을 다양한 방식으로 그렸.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만종의 저녁놀 풍경은 달리의 그림에서는 황량한 사막이 된다. 달리는 적막한 기운이 감도는 환상적인 풍경을 표현하여 초자연적인 숭고함을 전달하려고 했다. 거대한 사막으로 표현된 상상의 공간 한가운데에 서 있는 인간의 이성은 나약하고 초라하다. 만종을 패러디한 달리의 그림은 카스파 다비트 프리드리히(Caspar David Friedrich)가 그린 풍경화의 초현실주의적 버전이라 할 수 있다.

 

 

 

 

 

 

 

 

 

 

 

 

 

 

 

 

 

 

 

 

 

 

 

 

 

 

 

 

 

 

 

 

 

 

 

* [절판] 즈느비에브 라캉브르 외 밀레(창해, 2000)

* 박서보 엮음 밀레(재원, 2003)

* [절판] 노성두 외 자연을 사랑한 화가들(아트북스, 2005)

* [절판] 박홍규 빈센트가 사랑한 밀레(아트북스, 2005)

 

 

 

 

반 고흐와 달리의 생애와 예술을 소개한 책들은 많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밀레에 관한 책은 생각보다 적다. 게다가 그 책들 대부분은 절판되었다. 창해 ABC’ 시리즈로 나온 밀레백과사전 형식으로 편집된 문고본이다. 재원 출판사의 밀레는 도판집이다. 아무래도 도판집의 특성상 작품에 대한 해설이 많지 않다. 미술사학자 노성두 외에 여러 명의 필자가 참여한 자연을 사랑한 화가들(아트북스)은 밀레와 그의 절친한 동료 화가들이 속한 바르비종파(École de Barbizon)에 관한 책이다. 다작으로 유명한 박홍규 교수의 빈센트가 사랑한 밀레(아트북스)는 밀레와 반 고흐의 연관성에 초점을 맞춘 책이다. 밀레의 그림이 반 고흐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알고 싶으면 이 책을 참고하면 된다. 앞서 언급한 상시에의 밀레 전기는 가난한 무명 화가 밀레를 일약 스타 화가로 올려놓게 한 책이다. 그러나 상시에는 밀레의 그림을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일을 했다. 그림이 잘 팔리려면 고객에게 화가와 그의 작품을 대대적으로 홍보해야 한다. 결국 상시에의 밀레 전기는 밀레의 그림을 상품으로 알리려고 만들어진 전기로 위장한 광고인 셈이다. 따라서 후대의 연구자들은 상시에를 밀레에 부와 명예를 가져다준 은인으로 평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밀레의 그림을 팔기 위해 화가의 독창성을 막은 상업주의자라고 비판한다. 자연을 사랑한 화가들도 상시에를 부정적으로 평가하는데, 이 책에 따르면 상시에는 밀레의 작품을 팔기 위해 밀레 신화를 꾸며 낸 장본인이다. 상시에는 밀레를 착하고 신앙심 깊은 인물로 묘사했는데 실제 밀레의 성격은 전기에서 묘사된 모습과 다르다고 한다. 그러므로 상시에의 밀레 전기는 100% 신뢰하면서 읽지 않는 것이 좋다.

 

 

 

 

 

Trivia

      

* 달리 명작 400134쪽에 황혼의 자폐증이라는 제목의 그림 도판이 있다. 밀레의 만종을 패러디한 그림인데, 황혼의 자폐증은 오역이다. 원제는 ‘Atavism at Twilight’이다. ‘Atavism’격세유전을 뜻하는 단어다. 따라서 올바른 작품명은 황혼의 격세유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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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0-03-04 16: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저게 다 절판됐구나. 다시 나오지도 않네.ㅠ
대단하고 부럽다.

cyrus 2020-03-04 22:57   좋아요 0 | URL
세 권 모두 알라딘 서점, 알라딘 온라인 중고샵에서 구매했어요. ^^

2020-03-04 17: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20-03-04 23:01   좋아요 0 | URL
‘해설 없는 그림 감상’에 장단점이 있어요. 장점은 그림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게 해줘요. 하지만 해설에 익숙한 사람들은 그림을 감상하는 데 불편함을 느낄 거예요.

저도 신경숙의 소설을 읽지 않았어요. 그래서 저 소설 표지에 있는 그림이 달리의 작품이라는 사실을 최근에 알았어요. ^^
 
수염과 남자에 관하여 (2019년 세종도서 교양부분 선정) - 남자 얼굴 위에서 펼쳐진 투쟁의 역사 (서양 편)
크리스토퍼 올드스톤-모어 지음, 마도경 옮김 / 사일런스북 / 2019년 6월
평점 :
절판


 

 

밖에 나가지 않고 집에서 지낸 지 어느덧 11일이 되었다. 밖에 나갈 일이 없어서 면도를 안 한 지 사흘이 지났다. 원래 이틀에 한 번씩은 면도한다. 면도하지 않으면 얼굴에 수염이 거뭇거뭇하게 자라난다. 내 피부가 하얘서 수염이 유난히 도드라져 보인다. 그래서 자주 면도를 한다. 어제 친한 동생한테 연락이 왔는데 이 녀석도 거의 집에서 지내고 있다. 그 녀석도 면도를 안 하고 있다면서 셀카 사진을 찍어 내게 보여줬다. 이 친구는 나보다 수염이 빨리 자라는지 구레나룻도 꽤 많이 자라나 있었다. 그는 체격이 크다. 이대로 수염이 쭉쭉 자란다면 두 달 뒤에 그는 임꺽정과 같은 모습으로 변해 있을 것 같다.

 

인류 역사상 가장 먼저 면도를 한 사람은 누구일까? 사실 누구도 궁금하지 않은 질문이다. 면도가 과연 역사적인 행위’로 볼 수 있는지 의심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이런 사람이 수염과 남자에 관하여라는 책을 보게 되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수염과 남자에 관하여남성의 외모에 큰 영향을 미치는 수염과 그것을 제거하는 면도의 역사를 보여주는 책이다. 이 책의 부제는 남자 얼굴 위에서 펼쳐진 투쟁의 역사. ‘투쟁의 역사라고 하니 거창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 그동안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수염과 면도를 다시 보게 된다.

 

저자는 수염 기르는 행위와 면도를 단순히 남성성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사회가 인정하는 남성이 되기 위한 수단이라고 말한다. 수염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서 얼굴은 사회가 요구하는 남성의 조건 또는 남성성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읽을 수 있는 지표. 수염과 면도의 역사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수염 기르는 행위를 개인 취향의 문제로 볼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그러한 입장을 반박할 수 있는 수많은 사례를 보여준다. 수염은 정치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때론 지도자의 권위나 정치적인 메시지를 대중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상징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면도의 역사는 생각보다 엄청 오래됐다. 면도를 시작한 최초의 인류는 고대 수메르와 이집트의 남성들이다. 고대인들이 면도하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신분을 철저하게 구분하기 위해서다. 왕족과 귀족은 수염을 길렀으며 성직자들은 면도했다. 왕족은 땅을 정복하고 지배하는 자신들의 능력을 과시하기 위해 수염을 길렀다면, 성직자는 신성한 신의 세계에 도달하기 위해 불손한 수염과 털을 말끔히 제거했다. 고대 이집트의 최고 통치자인 파라오(Pharaoh)는 유일하게 턱수염을 기를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귀족은 함부로 턱수염을 기를 수 없었다. 이집트 여왕도 수염이 통치자의 권위를 상징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왕비에서 파라오가 된 하트셉수트(Hatshepsut)는 가짜 턱수염을 달았다. 이렇듯 수염에 대한 고대 이집트인들의 인식은 수염의 정치적 의미를 보여주는 첫 번째 역사적 사례로 볼 수 있다.

 

시대가 변하면 수염 스타일과 수염에 대한 인식도 변한다. 고대 이집트인뿐만 아니라 고대 그리스인들도 수염의 상징을 중요하게 생각했고, ‘남성으로서의 권위를 인정받기 위해서 수염을 길렀다. 그러나 세계를 정복하려는 알렉산드로스(Alexandros)가 등장하면서 수염에 대한 고대 남성들의 인식이 달라진다. 알렉산드로스는 면도를 선호했다. 그러면서 그를 따르는 병사들도 면도하게 되고, 알렉산드로스가 정복한 영토에 사는 남성들도 수염을 밀었다. 그 후 400년 동안 면도는 남성 얼굴의 정석으로 자리 잡는다 흉상이나 동상으로 만들어진 알렉산드로스의 외모는 수염이라고 찾아보기 힘든 청년의 말끔한 얼굴이다. 과거에 수염이 있는 남성이 존경을 받았다면 알렉산드로스의 시대에 이르면서 면도한 남성이 존경의 대상이 되었다.

 

턱수염을 선호하는 시대가 찾아오긴 했으나 유행은 오래 가지 않았다. 그래도 어느 사회든 유행을 따르지 않는 부류가 있기 마련이다. 남성 철학자들은 턱수염이야말로 남성성과 남성미를 드러내는 진정한 표상이라고 주장한다. 좀 더 시간이 지나면서 종교인들도 수염을 옹호한다. 고대 및 중세의 종교인들은 왕족만 수염을 기를 수 있었던 과거를 소환한다. 교회의 지도자들은 예수가 남자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의 남성적인 권위를 높이기 위해 수염을 옹호한다. 그러면서 턱수염이 있는 예수의 얼굴이 그려진 성화(聖畫)가 유행한다. 종교인들이 턱수염을 찬양하는 분위기가 지속되면서 예수의 권위는 한층 더 높아지고, 교회의 남성 지도자들의 지배력은 강화된다.

 

유럽 남자들이 다시 수염을 밀기 시작한 시기는 17세기 이후다. 저자는 턱수염이 퇴조하는 시기가 계몽주의가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시기와 일치한다고 주장한다. 그래도 여전히 수염을 고집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수염과 권위적인 남성성을 동일하게 생각했다. 특히 황제의 얼굴이 어떻게 생기느냐에 따라서 남성들의 수염 스타일은 달라졌다. 루이 나폴레옹(Louis Napoléon)17세기 이후 유럽에서 턱수염을 기르기 시작한 군주다(그의 큰아버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Napoléon Bonaparte)유럽의 알렉산드로스가 되고 싶었던지 항상 수염이 없는 얼굴을 유지했다). 프랑스 남성들은 루이 나폴레옹처럼 턱수염을 길렀다. 턱수염이 남성의 영웅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상징이 된 것이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면도한 남성이 멋진 남성미의 상징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대중은 깔끔하게 면도한 남자를 선호하게 되고, 수염은 예술가 또는 사회질서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상징이 된다.

 

수염의 역사는 투쟁의 역사라기 보다는 인정 투쟁의 역사에 더 가깝다. ‘투쟁의 역사로 본다면 수염을 선호하는 세력과 면도를 선호하는 세력이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서로서로 비방하면서 공격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수염의 역사를 인정 투쟁의 역사로 보면 서로 다른 두 세력의 관계 양상을 다르게 볼 수 있다. 그들은 자신과 다른 입장을 가진 세력을 제압하기보다는 그들의 남성성과 대조하면서 자신이 생각하는 남성성을 인정받으려고 했다. 그러니까 수염을 선호하는 세력은 수염과 남성성의 연관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면도를 선호하는 세력의 입장과 비교하게 되고, 수염의 중요성이 사회로부터 인정받아야 하는 이유를 설득력 있게 전달하려고 했다. 면도를 선호하는 세력들도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자신들의 입장을 고수했다. 이 두 세력은 서로서로 남성성을 인정해주기를 원했던 것이다. 수염과 면도를 둘러싼 오랜 인정 투쟁의 역사는 남성성의 정의와 남성 얼굴의 스타일이 끊임없이 변하고 다양해졌다는 사실을 증명해준다.

 

 

 

 

Trivia

 

 

* 그래서 그리스도라는 인물에 약간의 인간미 부여하는 것이 불가피했으며, 성녀 가타리나 수도원의 화가는 그리스도에게 중간 길이의 평범한 턱수염을 부여하여 이 작업을 용케 해낸 셈이다. (115)

 

약간의 인간미를 부여하는 것이라고 써야 한다.

 

 

* 히틀러의 절친한 여인 알베르트 슈페어는 훗날 한 장의 종이에 히틀러와 스탈린의 이름이 우호적 관계로 함께 묶여 있는 모습을 본 것은 나의 상상을 초월한 충격적이고 흥미로운 돌발사태였다라고 고백했다. (342)

 

히틀러(Hitler)의 최측근 중 한 사람인 알베르트 슈페어(Albert Speer)남자.

 

 

* 닐 암스트롱과 부즈 올드린은 짧게 깎은 머리로 달에 도착했으나 [생략] (356)

 

버즈 올드린(Buzz Aldrin)으로 표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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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03 20: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3-04 14: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3-03 20: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3-04 14: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20-03-03 2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재미있겠는데요.. ㅎㅎ

cyrus 2020-03-04 14:50   좋아요 0 | URL
이 책에 관심 가지실 줄 알았습니다. ^^

페크pek0501 2020-03-04 14: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시대가 변하면서 무엇에 대한 인식이 바뀌는 것 - 변화가 흥미롭습니다.
요즘 코로나19도 우리의 생활 패턴을 변화시키고 있지요.

cyrus 2020-03-04 14:52   좋아요 0 | URL
모든 사람이 다 그렇진 않겠지만, 코로나 사태 이후로 사람들은 손 씻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인식했을 것입니다. ^^;;

2020-03-05 03: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3-05 13:1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