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위대한 여성 예술가 3명은 없는가?” 나는 단숨에 읽는 여성 아티스트(시그마북스)의 한 줄 평을 이렇게 쓰고 싶다. 이 책에 나온 여성 예술가는 총 57명이다. 3명만 더 소개했으면 좋았을 텐데‥…. 저자가 57명을 선정한 기준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책에 없는 3명의 여성 예술가를 찾는 일은 독자의 몫이다.

    

 

 

 

 

 

 

 

 

 

 

 

 

 

 

 

 

* 플라비아 프리제리 단숨에 읽는 여성 아티스트(시그마북스, 2020)

 

 

 

사실 나는 단숨에 읽는 여성 아티스트를 읽으면서 책에 포함되어야 할 여성 예술가를 네 명 정도 생각했다. 이 네 명 중의 한 명을 제외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3 플러스 1(3+1)형식으로 여성 예술가를 소개하겠다. 소개 순서는 예술가들이 태어난 연도순이다.

 

 

 

 

1. 카미유 클로델(Camille Claudel, 프랑스, 1864~1943)

    

 

 

 

 

 

 

 

 

 

 

 

 

 

 

 

* 카미유 클로델 카미유 클로델(마음산책, 2010)

* 도미니크 보나 위대한 열정(아트북스, 2008)

* [절판] 안느 델베 카미유 클로델(투영, 2000)

 

 

 

카미유 클로델은 오랫동안 스승이자 연인이었던 오귀스트 로댕(Auguste Rodin)의 그늘에 가려져 있었다. 그녀는 로댕과 함께 조각 작품을 제작하며 실력을 발휘했다. 그러나 그녀는 예술가로 인정받지 못한 채 30년 동안 정신병원에 갇혀 지내다가 눈을 감았다. 로댕은 위대한 조각가로 알려져 세상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지만, 카미유는 실력이 뛰어난 비운의 여인으로 기억되고 있다. 시대는 카미유의 뛰어난 재능과 넘치는 열정을 이해하지 못했다. 카미유를 지치게 만드는 시대의 벽, 이 거대한 벽을 그녀 혼자서 넘어서기에 힘겨웠다.

 

카미유 클로델(마음산책)은 로댕을 포함해 가족과 지인과 주고받은 편지들을 모은 책이다. 위대한 열정(아트북스)은 카미유와 그녀의 남동생 폴 클로델(Paul Claudel)의 관계에 주목하고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카미유를 불행하게 만든 사람으로 폴을 지목한다. 카미유와 폴의 어머니는 남편의 유산이 장녀 카미유에게 상속되는 것을 막기 위해 딸을 정신병원에 감금하려고 한다. 폴은 어머니의 계획에 동의한다. 그는 로댕이 누이의 삶을 망가뜨렸다면서 비난한다. 하지만 폴도 로댕 못지 않게 누이를 힘들게 한 적이 많다. 갑갑한 정신병원에 생활한 카미유는 폴에게 조각하고 싶다면서 말했지만, 폴은 그녀의 요청을 무시했다.

 

 

 

 

 

 

 

 

 

 

 

 

안느 델베(Anne Delbée)카미유 클로델1989년에 어떤 여자(출판사는 예하’, 역자는 성옥련)라는 제목으로 국내에 처음 번역된 카미유 전기(傳記). 1989년은 이자벨 아자니(Isabelle Adjani)가 카미유로 열연한 영화 <카미유 클로델>이 국내에 개봉된 해이다. 영화의 인기에 힘입어 그 해 말에 카미유 클로델(정음사, 역자는 강명호)도 나왔는데, 제목만 다를 뿐 저자명과 내용은 동일하다. 이 책의 앞표지와 뒤표지 모두 영화 <카미유 클로델>에 나오는 장면이다. 어떤 여자(Une femme)는 원래 카미유의 삶을 극화한 연극 제목이다. 안느 델베가 이 연극의 공연을 연출했다. 영화 원작은 안느 델베가 쓴 전기가 아니라 폴의 손녀가 1984년에 발표한 전기다.

 

 

 

 

 

 

 

2. 케테 콜비츠(Kathe Kollwitz, 독일, 1867~1945)

    

 

 

 

 

 

 

 

 

 

 

 

 

    

 

* 민혜숙 케테 콜비츠(재원, 2009)

* 조명식 케테 콜비츠(재원, 2005)

 

    

 

독일의 판화가 겸 조각가 케테 콜비츠는 가난과 질병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의 삶에 관심이 많았다. 그녀는 사회 문제의 실상을 판화로 기록하여 세상에 알리려고 했다. 케테는 1980년대 우리나라의 민중미술에 큰 영향을 주었다. 사회주의자인 케테는 초기에 농민 항쟁이나 파업을 주제로 한 동판화를 제작한다. 1차 세계 대전 중에 그녀의 아들이 전사한다. 그 후로 케테는 전쟁의 참상과 전시 속에 고통 받는 민중의 모습을 주로 표현한다. 불행하게도 두 번째 세계 대전이 일어나 손자까지 전사한다. 아들과 손자의 죽음은 지켜본 케테는 말년에 죽음을 주제로 한 판화를 제작한다.

 

실천문학사 출판사에서 나온 케테 콜비츠 평전은 절판되었다. 그녀의 생애와 예술론을 함께 기술한 책으로는 케테 콜비츠(재원)이 유일하다.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동명의 책이 있다. 책을 참고하거나 구매하기 전에 저자명과 목차를 잘 확인해야 한다. 일단 2005년에 나온 케테 콜비츠(재원)는 도록 형식으로 된 책이다. 작가 소개와 작품 설명에 대한 내용이 많지 않다. 2009년에 나온 케테 콜비츠는 분량이 얇지만, 그래도 작가의 생애와 예술론이 간략하게 잘 정리되어 있다.

 

 

 

 

3. 메레 오펜하임(Méret Oppenheim, 독일, 1913~1985)

    

 

 

 

 

 

 

 

 

 

 

 

 

 

 

 

  

* 로라 톰슨 초현실주의(시공아트, 2014)

* 카트린 클링죄어 르루아 초현실주의(마로니에북스, 2008)

    

 

 

메레 오펜하임은 초현실주의 그룹에 활동한 초현실주의자다. 그녀의 대표작은 털로 덮인 아침식사. 이 작품은 찻잔과 받침, 찻숟가락 세트를 모피로 감싼 오브제(objet). 그녀는 카페에서 우연히 만난 피카소(Picasso)와 대화를 나누다가 모피로 덮인 찻잔 세트를 생각해낸다.

 

 

 

 

 

 

 

 

    

오펜하임은 그저 관객을 놀라게 해주려고 이런 기괴한 오브제를 선보인 것은 아니다. 그녀는 사물을 바라보는 우리의 인식(‘저것은 찻잔 세트다’)과 사물의 용도마저 모피로 덮어버린다. 그러면서 우리가 사물을 인식하는 상황을 의심한다. 이 오브제 작품은 모피 찻잔이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졌다. 르네 마그리트(René Magritte)가 파이프 한 개를 그려놓고선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Ceci n’est pas une pipe)라고 뻔뻔하게 말했듯이(그림 제목은 이미지의 배반이다) 오펜하임은 모피 찻잔을 관객들 앞에 들이대면서 이렇게 말한다. 이것은 찻잔이 아니다.” 찻잔이 아니라면 무엇인가 말인가. 오펜하임이 설정한 사물의 배반을 바라본 관객은 혼란스럽다. 

 

 

 

 

 

 

+1 바바라 크루거(Barbara Kruger, 미국, 1945~ )

 

    

 

 

 

 

 

 

 

바바라 크루거는 지금도 활동하고 있는 예술가다. 크루거는 사진이나 그림 위에 문장을 넣은 포토몽타주를 만들었다. 가장 많이 알려진 그녀의 대표작은 나는 쇼핑한다, 고로 존재한다(I Shop, therefore I Am), 당신의 몸은 전쟁터다(Your Body is a Battleground)이다. 후자의 작품은 여성의 임신 선택권 보장을 촉구한 미국 페미니스트들의 시위가 벌어졌던 시기에 나왔다. ‘당신의 몸은 전쟁터’는 지금도 페미니스트들의 시위 구호로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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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놀로지의 덫 - 자동화 시대의 자본, 노동, 권력
칼 베네딕트 프레이 지음, 조미현 옮김 / 에코리브르 / 2019년 9월
평점 :
품절


 

 

인류 발전의 역사는 기술 발전의 역사라 할 수 있다. 인류는 기술을 습득할 줄 알며 기술과 관련된 정보를 사회 속에서 전달하여 축적한다. 그러나 인류의 역사가 항상 기술이 발전하는 방향으로 이뤄진 것만은 아니다. 기술이 발전하는 추세는 분명하지만, 기술 발전을 막으려는 시도도 있었다. 1811년에서 1817년 사이에 걸쳐 영국에서 일어난 러다이트(Luddite Movement)는 방적 기계의 도입을 막기 위해 일어난 운동이었다. 요즘은 인공지능(AI) 기술과 로봇이 사람의 일자리를 위협하고, 인간 존재 자체에 도전할지 모른다고 주장하는 새로운 러다이트 운동이 나타나고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모든 기술은 사회에 정착되는 데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 기술을 막으려는 세력들의 저항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새로운 기술의 도입은 기존의 정치 세력과 노동자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이들의 저항은 이제 막 발전하려는 기술의 발목을 잡는 으로 작용한다. 테크놀로지의 덫은 수천 년간 기술이 무궁무진하게 발전했음에도 경제 성장이 더딘 이유를 주목한다. 그 이유는 새로운 기술의 힘이 두려운 세력들의 지속적인 활동이다. 정치적 힘을 가진 러다이트는 민중주의자(populist)가 되어 혁신을 거부하는 시민들의 지지를 얻는다. 민중주의자로 변신한 러다이트는 새로운 기술 확산으로 인해 사회에 혼란을 일어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사실 시민들을 불안하게 만드는 건 정략적 의도로 새로운 기술에 대한 공포를 조장하는 민중주의자들이다.

 

우리는 러다이트를 지배계급에 저항하는 세력으로 생각한다. 테크놀로지의 덫은 우리의 편견을 깨뜨린 책이다. 지배계급이 노동을 대체하는 기술의 발전 속도를 늦춰왔다. 그들이 노동 대체 기술을 도입하면 이득보다는 손실이 더 크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노동 대체 기술 도입으로 급부상한 신흥 산업 계급을 반기지 않는다. 이 사실을 증명해주는 사례가 18세기 산업화 시대이다.

 

산업혁명이 시작된 영국에서는 신흥 산업 계급이 강력한 정치 세력으로 등장했다. 그러면서 기계화가 경제 성장과 정치적인 헤게모니(hegemony)의 중대한 변수가 된다. 신흥 산업 계급은 자신들의 정치적 · 경제적 기반을 확실히 다지기 위해 기술을 보급하는 일에 노력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구세대의 지배계층도 영국 사회의 대세가 된 신흥 산업 계급의 편이 된다. 기계가 있는 공장이 우후죽순 들어서면서 가내 공업 노동자들은 위기의식을 느끼게 되고, 기계화에 반대하는 입장을 드러낸다. 기계화의 경제적 효과가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고, 생산성이 향상하면서 공장 노동자들의 임금이 인상되었다. 정치적 힘이 없던 러다이트는 오래 가지 못했다. 공장에 일하기 위해 도시로 몰려온 노동자들이 많아지면서 대중의 기계 기피증은 사라졌다.

 

기계화가 이루어진다고 해서 대중의 기계 기피증이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건 아니다. 저자는 기계화 같은 기술 발전의 혜택을 받는 노동자가 많아져서 혁신에 대한 거부 반응이 사라졌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을 뒷받침해주는 근거가 된 시기가 2차 산업혁명이 일어난 20세기다. 미국에서 시작된 2차 산업혁명의 특징은 가정의 기계화다. 이 시기에 가정에 전기가 들어오기 시작했고 가전제품이 등장했다. 제조업이 발전하면서 미국인들은 급료가 나쁘지 않고, 덜 힘든 작업장이 있는 공장 일을 선호했다. 미국인들에게 기계화는 공포가 아니라 축복이었다. 그래서 20세기에 러다이트는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우리는 지금 인공지능과 로봇 보급에 주목하는 자동화 시대에 살고 있다. 이 시대를 사는 당신은 새로운 기술의 등장을 환영하는가, 아니면 기술의 등장을 두려워하는가. 언젠가 우리 사회가 인공지능과 로봇 산업에 다시 주목한다면 분명 러다이트가 나타날 것이다. 21세기의 러다이트는 18세기의 러다이트처럼 금방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민중주의자로 변신한 러다이트의 존재를 가볍게 볼 수 없다. 정부가 러다이트의 편에 서는 경우도 있다. 저자는 자동화의 흐름에 역행하는 정치인으로 우리나라 대통령을 언급한다. 우리 정부는 고용 우려 때문에 로봇공학 및 자동화 투자에 대한 세금 우대 정책을 축소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미국, 영국에서도 자동화 기술 도입을 지연하거나 아예 막기 위해서 정치적 의제로 내세운 정치인들이 등장하고 있다.

 

저자는 자동화 기술에 열광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너무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그는 자동화 기술에 대한 두려움을 과장되게 선전하는 민중주의자들의 등장을 경계한다. 그들의 행보로 인해 잘못된 경제 정책이 나올 수 있고, 너무 방관하면 경제 발전을 더디게 하는 치명적인 덫이 될 수도 있다. 인공지능 기술과 로봇이 노동자보다 많아지는 시대가 온다면 분명 고용에 불이익을 받는 사람들이 나타난다. 하지만 저자는 자동화 기술의 경제적 효과와 그에 따른 혜택을 간과해선 안 된다고 말한다. 자동화 기술의 경제성에 주목하는 저자의 입장은 기업가들의 편에 선 정치인들이 엄청 좋아하는 낙수 효과(Trickle Down)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이 책을 정말 끝까지 읽지 않으면 저자의 주장을 오해할 수 있다. 테크놀로지의 덫은 두꺼운 책이다. 읽는 내내 지루하다고 해서 책을 덮으면 안 된다. 완독을 못 하더라도 이 책 474쪽의 마지막 문장에 반드시 주목해야 한다(사실 이 책의 서론과 결론만 잘 읽어도 책의 핵심을 충분히 파악할 수 있다). 이 책의 마지막 장에 저자는 일자리를 창출하지 않고, 부만 늘리는 기술이 등장하는 세상에서 사는 우리가 해결해야 할 과제로 분배 문제를 언급한다. 소득 분배가 나빠지면 불평등도 심해진다. 과연 현재 인류는 기술 혁신을 촉진하면서 동시에 분배 불평등 문제를 개선할 수 있을까.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는 과제가 너무 어려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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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테판 츠바이크(Stefan Zweig)의 장편소설 초조한 마음에 나오는 호프밀러는 군인이다. 그는 걷지 못하는 에디트를 만나면서 그녀에게 연민의 감정을 느낀다. 호프밀러는 자신이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주는 힘이 있다는 사실에 스스로 놀란다. 기분 좋아진 호프밀러는 에디트를 잘 배려해주고 그녀의 말동무가 되어주었다. 두 사람의 관계가 깊어질수록 에디트는 호프밀러를 사랑하게 된다. 그러나 호프밀러는 에디트의 감정을 예상하지 못했다.

    

 

 

 

 

 

 

 

 

 

 

 

 

 

 

 

* 슈테판 츠바이크 초조한 마음(문학과지성사, 2013)

 

    

 

 몸이 아픈 그녀가, 만신창이인 그녀가 사랑을 할 수 있고 사랑받고 싶어 한다는 것, 이것만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이 어린 아이가, 아직 성숙하지 못한 힘없는 소녀가(이렇게 밖에 표현하지 못하겠다) 감히 진정한 여인의 감각적이고 의식적인 사랑을 갈망한다는 사실은 나로서는 상상조차 하지 못한 것이었다. 다른 모든 것은 예상했어도 운명의 저주를 받아 자신의 몸조차 가눌 힘이 없는 소녀가 다른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어 한다는 사실, 단순히 연민 때문에 이곳에 오는 나를 그토록 끔찍하게 오해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중략] 이 단순무식하고 멍청한 나라는 놈은 에디트를 그저 고통 받는 환자로, 어린아이로 여겼을 뿐 결코 여자로는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단 한 순간도 나는 저 이불 속에 벌거벗은 여인의 육체가, 다른 여인들처럼 숨 쉬고 느끼고 기다리며 사랑을 갈망하는 육체가 숨겨져 있다고는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스물다섯 살의 나는 몸이 아프거나 불구인 여자, 미성년자나 나이가 많은 여자, 버려지거나 낙인찍힌 여자들도 감히 사랑을 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272~273)

 

 

호프밀러는 그동안 에디트를 여성이 아닌 보호받아야 할 환자(장애인)로 대한 자신의 연민에 수치심을 느끼고 자성한다. 그는 에디트를 위해 그녀와 약혼한다. 하지만 약혼한 지 세 시간 만에 동료 군인들 앞에서 약혼 사실을 부정한다. 군인들은 에디트와 그녀의 가문을 조롱한다. 그들의 역겨운 대화는 호프밀러를 힘들게 한다. 호프밀러는 에디트와의 약속을 깨버린 발언에 죄책감을 느낀다. 하지만 그는 약혼 사실을 끝까지 숨긴다. 호프밀러는 에디트를 한순간에 거짓말쟁이로 만들어버린 자신의 부끄러운 행동이 부대 전체에 알려질까 봐 불안해한다. 그는 자신의 명예를 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자살을 생각한다.

    

 

 

 

 

 

 

 

 

 

 

 

 

    

 

 

* [절판] 조지 L. 모스 내셔널리즘과 섹슈얼리티(소명출판, 2004)

    

 

 

작년 말에 초조한 마음을 읽다가 호프밀러와 군인들의 행동을 분석하고 싶어서 내셔널리즘과 섹슈얼리티》(소명출판)를 같이 읽었다. 내셔널리즘과 섹슈얼리티는 서구 사회의 예절 문화와 엄숙한 도덕주의와 관련된 개념인 고결함(respectability)이 민족주의와 함께 어떻게 발전하게 되는지 보여준다. 18세기에 민족주의가 출현하면서 점잖은 고결함이라는 가치가 확립하게 되었고, 이 개념은 섹슈얼리티에 대한 인식에도 영향을 준다. 이 책의 주요 연구 대상은 독일 남성()이다. 왜냐하면 독일에서 민족사회주의(National Socialism)의 이름으로 독일인의 섹슈얼리티를 관리하고 통제하려는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민족사회주의는 여러 개의 이름으로 알려졌는데, ‘국민사회주의’, ‘국가사회주의가 있으며 가장 잘 알려진 이명은 나치즘(Nazism)이다.

 

초조한 마음이 발표된 1939년은 나치즘이 득세하던 시기다. 나치즘은 남성의 우정과 유대 관계를 중요하게 여겼고, ‘고결한 명예와 여성을 지배하는 남성의 권위를 정당화했다. 따라서 민족주의의 출현과 함께 형성된 독일 남성성은 단지 독일 남성을 정의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고결하지 않은여성과 장애인을 사회의 주변 구성원으로 규정되게 했다.

 

나치즘 시대에 가장 칭송받은 존재는 군인이다. 독일 군인은 국가에 충성하고, 열정을 통제하는 이성을 갖춘 남성성의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초조한 마음의 시대적 배경은 제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기 전이다. 그러나 소설에 묘사된 독일 군인들은 나치즘 시대에 활동한 독일 군인들의 모습과 비슷하다. 군인들은 자기들끼리 모여서 여성 장애인 에디트와 그녀의 가족을 조롱하면서 유대감과 결속력을 다진다. 유럽 전역에 민족주의가 크게 유행한 적이 있어서 나치즘이 나타나기 전부터 이미 고결한 남성성은 만들어졌다. 민족주의는 남성성을 강화하고, 섹슈얼리티를 통제하는 수단이 된다. 두 번의 세계 대전은 민족주의의 전성기다. 민족주의는 전쟁을 통해 더욱 강화되면서 피를 부르는 파시즘과 인종주의로 변질한다.

 

호프밀러는 군인이지만, ‘고결한 남성성을 강조하던 사회적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한다. 하지만 에디트의 약혼 사실을 부정한 호프밀러의 행동은 비판받아야 마땅하다. 그는 자신의 명예를 지키려고 자살을 생각했다. 허울뿐인 자신의 고결한 명예말이다. 자신의 행동 때문에 여러 번 손상된 에디트의 명예를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Trivia

 

내셔널리즘과 섹슈얼리티는 정말 좋은 책이지만, 고쳐야 할 오식과 오류가 몇 개 보인다.

 

 

* 20쪽 역주에 영국의 역사가 해롤드 니콜슨(Harold Nicolson)의 생몰 연도가 ‘1886~?’으로 표기되어 있다. 니콜슨은 1968년에 세상을 떠났다.

    

 

* 21쪽 역주    

포드 마도스 포드 포드 매덕스 포드(Ford Madox Ford)

 

 

* 68

  윌리엄 2의 궁정에서 작곡과 피아노 연주를 했던 독일의 오일렌부르크(Philipp Count zu Eulenburg) [생략]

 

독일의 황제 빌헬름 2(Wilhelm II)로 써야 한다. 윌리엄 2(William )는 영국 노르만 왕조의 왕이다.

 

 

* 161

델라크루아 들라크루아(Delacroix)

 

 

* 183

디데로 디드로(Diderot)

 

 

* 191

이반 블로취 이반 블로흐(Iwan Blo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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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0-03-12 2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예전엔 직업 정신(?)을 발휘해서
눈에 불을 켜고 오탈자를 찾곤 했으나
수년 전부터 관두었습니다. 귀찮아서요...

뭐 보상이 따르는 것도 아니고 응당
출판사가 해야할 일을 굳이 내가...

개인적으로 보면 특히 연도에 참 신
경을 쓰지 않는 것 같더라구요.

cyrus 2020-03-12 20:22   좋아요 0 | URL
맞아요. 리뷰에서 오탈자 지적하는 내용 쓸 때가 정말 귀찮아요. 오탈자를 열심히 찾아봤자 출판사의 반응은 없고, 피드백도 느린 편이에요.
 
외로움의 철학
라르스 스벤젠 지음, 이세진 옮김 / 청미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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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심해 죽겠어요.”

 

아는 동생이 매일 나한테 전화한다. 수염과 남자에 관하여서평의 서두에 언급된 그 동생이다. 대구에 코로나19 환자가 늘어나면서 나와 동생은 3주째 집에서 지내고 있다. 나는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지만, 동생은 혼자 산다. 동생이 사는 곳은 번화가 근처다. 그러나 지난 달 말에 코로나19가 크게 확산된 이후부터 동생은 외출을 못 하고 집안에만 있다. 이 녀석은 커피를 좋아하고 애연가다. 커피와 담배를 사러 편의점에 가는 것 빼고는 바깥 공기를 오래 마신 적이 없다. 그는 햇볕을 쬐러 밖에 몇 시간 동안 돌아다닐 수 있다. 하지만 밖에 있어도 허전할 것이다. 요즘 사회적 거리 두기’가 강조되는 분위기라서 사람을 만날 수 없기 때문이다.

 

동생은 항상 나랑 전화 통화할 때마다 한숨 푹푹 쉬거나 심심해요라는 말을 여러 번 한다. 이제는 그 말을 계속 듣다 보니 스마트폰 화면에 녀석의 이름이 뜨면 일부러 전화를 안 받고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전화를 자주 하는 그 녀석의 심정이 어느 정도 이해된다. 혼자서 살고 있는 데다가 3주 동안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며칠 전에 통화했을 때 동생이 , 나올래요? 같이 밥 먹어요라고 말한 적이 있다. 당장 만나서 녀석에게 밥 한 끼 사주고 싶었지만, 내가 외출을 마음대로 할 수 없어서 나갈 수 없다고 말했다. 지금 이 녀석에게는 대화 상대가 필요하다. 그는 분명 친구가 많다. 그러나 코로나19가 대구 전체를 지배하기 시작하면서 동생은 평범한 일상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그는 사람을 만나지 못해서 매일 외로움에 시달린다.

 

외로움의 철학이라는 책에 보면 혼자 있음(aloneness)외로움의 정의가 나온다. 이 책의 저자는 혼자 있음외로움을 별개의 현상으로 본다. ‘혼자 있음은 말 그대로 사람이 혼자 있는 상황이다. 우리는 타인과의 만남을 선호하면서도 때론 혼자 있고 싶을 때가 있다. ‘혼자 있는 즐거움을 아는 사람은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다. 타인과의 연결 욕구, 즉 타인을 만나서 대화를 나누고 싶은 욕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외로움을 느낀다. 이런 감정은 우리를 불편하게 하고 때론 괴롭게 한다. 주변에 친구가 많은데도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 아니면 내 동생처럼 부득이하게 외출하지 못해 타인과의 연결 욕구를 충족할 수 없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저자는 외로움을 사회적 위축(social withdrawal)또는 사회적 고통(social pain)이라고 말한다. 코로나19가 전파되면서 사람을 만나지 못하고 집에서 생활하는 혼족들이 있다. 혼자 살아온 그 사람들의 생존력이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외로움 참는 일을 힘들어할 것이다. 혼족도 사람을 만나고 싶어 한다. 혼족들이 외로움을 참으면서 생활하는 것은 사회적 고통에 가깝다. 코로나19 전파력이 장기적으로 높아질수록 혼족들이 느끼는 사회적 고통도 더욱 커진다.

 

외로움을 사회적 고통이라고 해서 이 감정 상태를 마음의 병으로 치부해선 안 된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외로움을 느낀다. 따라서 외로움 자체는 병이 아니다. 다만 사람을 피하려는 마음이 너무 지나쳐서 외로움을 느낀다면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몸과 마음 건강에 악영향을 준다. 이런 사람은 타인에 대한 불신이 강하다. 사실 외로운 사람들은 타인과의 만남을 피하면서도 타인과의 애착을 갈망한다. 저자는 외로움을 안고 살아가는 고통을 줄이려면, 타인을 신뢰하는 법과 타인에게 의존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인간은 자신의 감정을 조절할 수 있다. 또 자신의 생활 습관이나 행동도 변화시킬 수 있다. 따라서 저자는 비록 제한적이지만, 인간에게 외로운 감정을 억누를 수 있는 실질적 역량이 있다고 말한다.

 

우리가 외로움을 느끼게 하는 원인에는 외부 원인과 내부 원인이 있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에 의존하는 우리는 수많은 사람과 관계를 맺으면서 살지만 친밀도가 높지 않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가 맺어준 인간관계는 언제 끊어질지 모르는 한 가닥의 실과 같다. 우리는 이런 실들이 무수히 엉켜 있는 것을 인맥이라고 부르며 실이 끊어지지 않도록 애쓴다. 이럴수록 친밀한 관계에 대한 우리의 갈증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고, 외로움과 소외감을 느낀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중심의 세상은 우리를 외롭게 만드는 외부 원인이다. 하지만 저자는 외로움의 원인을 무조건 외부에서만 찾는 관점을 옹호하지 않는다. 내부 원인도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자기를 제일로 아는 나르시시스트(narcissist)와 타인에 대한 불신이 너무 강한 사람은 외로움을 잘 느낀다. 그런 사람은 외로움을 일으킨 내부 원인을 파악하여 스스로 고쳐 나가야 한다. 또 자신이 만나는 타인에 대한 기대감이 너무 높아서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 이런 사람은 주변에 친구가 많아도 매번 외롭다면서 투덜거린다. 외로움이라는 이 부정적 감정도 불편해도 결국 내 것이다. 저자는 우리 모두 자신의 감정에 책임이 있다고 말한다. 각자의 감정에 책임 있는 우리는 외로움을 덜 느끼며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또 외로움을 어느 정도 안고 살아가는 방법도 알아야 한다.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이 나만을 위해 무언가 할 수 있는 토지라면, 적당한 외로움은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비료다. 외로움의 철학은 건강한 고독을 지향하고 있지만, 그런 고독을 누리면서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예찬하지 않는다. 타인과 만나는 외향적 활동의 중요성도 강조한다.

 

 

    

 

 

Trivia

 

 

* 10

사회적 동물이라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우리는 누군가와 유대가 없는 사회적 공간에 서식하기를 심히 외로워한다. 알렉시 드 토크빌도 일찍이 1930년대에 미국의 민주주의를 연구하면서 같은 지적을 했다.

 

‘1830년대로 고쳐야 한다. 프랑스의 정치학자 토크빌(Tocqueville)19세기에 태어난 사람이다. 그는 18315월에서 18322월까지 아홉 달 동안 미국을 여행했고, 프랑스로 돌아와서 미국 사회의 모든 면을 분석한 미국의 민주주의를 발표했다.

 

 

 

* 14

이런 유의 외로움을 영화에서 찾아보자면, 마틴 스코세이스 감독의 택시 드라이버의 주인공 트래비스 비클이 떠오른다.

 

오식인가, 아니면 번역자가 나름 생각이 있어서 저렇게 표기한 것인가? 예전에는 마틴 스콜세지로 표기했는데, 요즘은 마틴 스코세이지로 표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 164

  크리스티안 가르베는 두 권짜리 저작 사회와 고독에 대하여(1979~1800)에서 균형 잡힌 시선을 제시하려 했지만 실상은 사회의 중요성에 좀 더 치우치는 감이 있다.

 

연도가 잘못 적혀 있다. 크리스티안 가르베(Christian Garve, 1742~1798)는 독일의 철학자이다. 사회와 고독에 대하여(Über Gesellschaft und Einsamkeit)1797에 처음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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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20-03-12 0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우, 안타깝네요. 지금은 다들 사회적 거리 두기 시점이라 저도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사람들이랑 만나고 얘기하고 함께 밥먹고 이게 사회적 동물인 사람들이 사는 데에는 필수적이라는 생각이 드는 요즘입니다.


cyrus 2020-03-12 11:37   좋아요 0 | URL
나 한 사람 때문에 다른 사람이 코로나19에 전염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면 괴로워도 밖에 나가지 말아야 해요. 코로나19 확산 이후로 사람을 만나고 대화하는 일이 정말 소중하다는 걸 깨닫게 되네요.

2020-03-12 09: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20-03-12 11:40   좋아요 0 | URL
집에 책이 많아서 심심하지 않아요. 책 읽다가 집중력이 떨어지면 다른 책 보면 되잖아요. 요즘 저는 책상에만 앉아 있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집에서 운동을 해요. 제 입으로 운동이라고 말하긴 그렇지만, 어쨌든 살찌지 않으려고 자주 움직여요.

프레이야 2020-03-12 1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집에서 할 일이 많아 심심하다는 느낌은 없지만 많이 먹고 살은 확 찌고 있어요. 사람이 사회적 동물이구나라기보다 사회적 동물이어야 하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가끔 들어요. 요즘 기저질환자, 사회적 거리두기 등 신조어도 있어 처음 듣는 용어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분도 봐요. 왜 꼭 어려운 말로 쓰나고 흥분하더군요 ㅎㅎ 이와중에도 유머 잃지 않는 사람들로 한번씩 웃고 넘어갑니다. 힘든 분들 많은 이 재난상황에 그런 외로움 정도는 좀 견뎌야하지 않을까 싶어요.

cyrus 2020-03-12 19:53   좋아요 0 | URL
솔직히 ‘기저질환자’라는 말을 최근에 알았어요.. ㅎㅎㅎㅎ
사람 만나는 일도 좋지만, 제일 중요한 건 외롭지 않게 혼자서 지내는 법을 알아둬야 할 것 같아요. 나 혼자 즐길 수 있는 일이나 취미가 많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

stella.K 2020-03-12 18: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동안 알라딘에서 너를 볼 수가 없어 너야말로 알라딘과 거리두기를 한건가
했는데 봇물이 터졌나? 그동안 글 안 쓰고 어떻게 살았니?ㅋ
남자도 외롭다고 하는구나. 나 같이 혼자서도 잘 지내는 사람도
요즘엔 좀 답답한데 활동적이고 외향적인 사람은 오죽할까 싶어.
근데 웃긴 건 답답한데 하루는 너무 빨리 가고 있다는 거야.
나는 이러다 코로나19가 소멸됐다는 소식은 언제 어떻게 전해질지
그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좀 궁금해진다.ㅋ

cyrus 2020-03-12 20:00   좋아요 0 | URL
그냥 책만 읽으면서 지냈어요. 저는 가족과 함께 살고 있고, 혼자서 시간을 보내는 일상에 익숙해서 크게 외롭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요. 삼일 지나면 한 달의 반이에요. 정말 시간이 참 빨리 지나가네요.. ㅎㅎㅎ

저는 코로나19가 사라지고 난 후가 걱정 되요. 대구 사람들을 바라보는 다른 지역 사람들의 시선이 벌써부터 두려워요. 대구에 젊은 사람들의 일자리가 많이 없어요. 그래서 대구를 떠나 타 지역에 가서 일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어요. 아마도 타 지역에서 직장을 구하고 생활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요. 대구에서 왔다고 하면 먼저 ‘신천지’인지 아닌지 확인할 걸요. 좀 과장된 우스갯소리지만, 대구 사람과 결혼하지 않으려는 타 지역 사람들이 많아질 거예요.

stella.K 2020-03-13 13:51   좋아요 0 | URL
ㅎㅎㅎ 그런 불행한 일이 있으면 안 되지.
그런 일 있을까봐 코로나19가 다른 지역까지
퍼뜨리고 돌아다녀 주시잖니. 특히 서울.
전염병은 정말 연대하지 않으면 물리치기 어려울 거야.
요즘처럼 지구촌이란 말이 실감 나는 때도 없지.ㅠ
 

 

 

초조한 마음슈테판 츠바이크(Stefan Zweig)가 생전에 발표한 장편소설이다. 소설 속 주인공 호프밀러 소위에디트에게 다가가 춤을 추자면서 말을 건다. 그런데 그 말이 문제가 될 줄 그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다. 에디트는 불의의 사고로 걸을 수 없게 된 장애인이다. 호프밀러는 에디트에게 연민을 느껴 계속해서 그녀를 만난다. 에디트는 자신을 만나러 오는 호프밀러에게 호감을 느낀다.

    

 

 

 

 

 

 

 

 

 

 

 

 

 

 

 

* 슈테판 츠바이크 초조한 마음(문학과지성사, 2013)

201912나를 관통하는 책 읽기선정 도서

 

    

 

그러나 두 사람의 관계는 평행선을 그리면서 지속된다. 호프밀러는 에디트에게 연민의 감정을 느끼고 있는데, 에디트는 그의 감정을 자신에 대한 애정으로 생각한다. 에디트로부터 사랑 고백을 들은 호프밀러는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한다. 츠바이크는 작품 속 화자의 입을 빌려 나약하고 감상적인 연민의 정의를 말한다. 이 연민은 남의 불행에서 느끼는 부끄러움을 피하고 싶어 하는 초조한 마음에 불과하다. 자신의 연민을 오해한 에디트 때문에 초조해진 호프밀러는 그녀와의 관계를 끊지 못한다. 그는 에디트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아서 감상적인 연민을 사랑으로 포장한다. 결국 두 사람은 약혼한 사이가 된다. 그렇지만 호프밀러는 약혼한 지 몇 시간 후에 군인 동료들 앞에서 약혼 사실을 부인한다. 그는 재산 때문에 장애인과 결혼한다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웠다.

 

호프밀러와 에디트가 연인 관계로 발전하지 못한 이유는 그녀를 오해하게 만든 호프밀러의 감상적인 연민이다. 그는 에디트를 도움이 필요한 사회적 약자로 대했다. 하지만 두 사람의 관계가 파국으로 치닫게 한 또 하나의 원인은 장애인에 대한 차별적인 시선이다. 비장애인은 장애인을 무성(無性)의 존재로 여긴다. 성 정체성을 가진 인간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심지어 장애인이 이성의 장애인을 사랑하고 결혼하는 일, 또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부부가 되는 일을 특별한 만남으로 인식한다. 비장애인 호프밀러는 에디트를 시혜와 연민의 대상으로 봤을 뿐, 누군가를 사랑하는 인간으로 보지 못했다. 에디트는 호프밀러의 당혹감을 충분히 이해한다. 에디트는 호프밀러에게 보낸 장문의 편지에 누군가로부터 사랑받는 존재가 되지 못한 자신의 처지를 언급한다.

 

 

 나는 당신이 나병 환자나 흑사병으로부터 도망치듯이 나에게서 도망쳤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이여, 나는 당신을 비난할 생각이 없습니다. 게다가 초조한 마음 때문에 내가 얼마나 버릇없어지고 감정기복이 심해지고 남들을 괴롭히게 되었는지 나만큼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또 어디 있겠어요? 그러니 나를 보고 사람들이 놀라는 것도 충분히 이해합니다. 나 같은 괴물이 덮치려 하면 다들 움찔거리며 도망치는 것이 당연합니다. (295)

 

 

여성 장애인은 결혼할 수 있겠어?”, “장애인이 무슨 애를 키워이와 같은 비장애인의 생각은 여성 장애인을 사랑의 주체로 보지 않는 무지에서 나온 편견이다. 1930년대 말의 독일과 현재 우리 사회는 장애인의 사랑과 욕망을 인정하지 않는다. 에디트가 했던 말처럼 비장애인 중심의 세상은 여성 장애인을 누군가 사랑할 수도 없고, 누군가로부터 사랑받지 못하는 무성(無性)의 괴물로 바라본다.

    

 

 

 

 

 

 

 

 

 

 

 

 

 

    

 

* 천자오루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꺼내지 않았던 이야기들(사계절, 2020)

 

* 김지혜 선량한 차별주의자(창비, 2019)

20202나를 관통하는 책 읽기선정 도서, 그러나 대구에 코로나19 확진자가 늘어나면서 모임이 취소되었다. 이 책, 내가 추천한 건데‥…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꺼내지 않았던 이야기들(사계절)은 비장애인들이 잘 알지 못하거나 외면한 장애인의 성과 사랑을 다룬 책이다. 이 책의 저자는 장애인에 대한 무지와 멸시가 장애인들이 소름 끼쳐 하는 이라고 말한다. 에디트 주변에 적이 너무 많았다. 그녀를 약자로 대하면서 연민의 감정을 드러낸 호프밀러도 에 포함된다. 호프밀러는 에디트를 연민하는 것이 그녀를 위한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녀를 도움의 손길을 받으면서 생활해야 하는 장애인으로 본 것이다. 호프밀러는 무심코 차별을 저지르고 있었다. 선량한 차별주의자라는 표현을 빌려서 쓰자면 호프밀러는 선량한 적이다. 한때 자신을 도와주려고 했던 호프밀러의 배려를 거부했던 에디트가 자신을 피하려는 호프밀러의 반응과 태도를 이해한다고 했을 정도면 그녀는 그를 너무 사랑했다.

    

 

 

 

 

 

 

 

 

 

 

 

 

 

 

 

* 김기흥 죽음의 가스실(집문당, 2019)

* 김기흥 히틀러와 장애인(집문당, 2018)

 

 

 

츠바이크가 초조한 마음을 쓰고 있었던 기간에 독일의 총통 히틀러(Hitler)유럽 정복을 위해 슬슬 발톱을 드러내고 있었다. 히틀러와 나치(Nazi)는 아리아인은 모든 인종 중 가장 위대하다라는 위험한 명제를 내세워 수많은 장애인과 정신병 이력이 있는 사람을 학살했다. 독일 나치가 첫 번째로 저지른 최악의 반인륜적 범죄 행위는 계획적인 장애인 학살이다. 나치는 1939년부터 1941년까지 ‘Aktion T4(T4 작전)를 실시했다. 이 기간에 나치는 치사량의 모르핀을 투여해 장애인들을 안락사시켰으며 장애인 불임시술까지 강행했다. 교회의 반발로 작전은 중단했지만, 우생학이 맹위를 떨치던 시기라서 장애인 학살이 은밀하게 진행되었다. 초조한 마음이 나온 그해에 독일에 거주하는 장애인과 태어나지 못한 장애 태아들은 죽어가고 있었다.

 

유대인들을 가스실로 향하게 만든 홀로코스트가 너무나 악명 높아서 나치가 저지른 장애인 학살과 T4 작전은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히틀러와 장애인(집문당)죽음의 가스실(집문당)은 나치의 장애인 학살에 초점을 맞춘 책이다. 히틀러와 장애인T4 작전과 같은 나치의 장애인 정책이 나오게 된 사회적 배경과 그들의 정책에 거부한 저항 운동을 보여준다. 죽음의 가스실은 나치가 장애인과 환자들을 학살하면서 사용했던 안락사 시설들을 소개한 책이다.

 

 

     

 

Trivia

      

남의 감정을 가지고 장난치면 안 돼죠! (초조한 마음236)

 

안 돼죠’라고 쓰면 안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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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20-03-11 1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자 찾아내기 천재!!!

cyrus 2020-03-11 23:32   좋아요 0 | URL
저는 지금 책 속에 있는 오자를 며칠 연속으로 찾을 수 있는지 도전하고 있는 중이에요. 3월 1일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으니 오늘까지 포함해서 11일 연속 오자를 찾았어요. ^^

진주 2020-03-11 2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래는
‘남의 감정을 가지고 장난치면 안 돼!‘
라고 쓰고 싶었나 봐요 ㅎ

cyrus 2020-03-11 23:33   좋아요 0 | URL
소설의 교훈을 아주 정확하게 파악했어요. ^^

레삭매냐 2020-03-11 2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왜 이 책을 하비에르 마리아스
의 <새하얀 마음>으로 착각하고
반가운 마음이 들었던 걸까요 ㅋㅋ

표지가 비슷해서였을까요 과연.

cyrus 2020-03-11 23:34   좋아요 0 | URL
방금 <새하얀 마음> 표지를 확인했는데, 정말 비슷하네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