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로르의 노래 달섬 세계고전 13
로트레아몽 지음, 윤인선 옮김 / 달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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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에 받친 천재를 아시오? 그 천재의 이름은 이지도르 뒤카스(Isidore Ducasse). 사실 이 본명보다는 가명인 로트레아몽(Lautréamont)이 잘 알려져 있다. 우루과이의 몬테비데오에서 태어난 로트레아몽은 학업을 위해 프랑스로 건너갔다. 로트레아몽의 아버지는 프랑스인이며 몬테비데오에 있는 프랑스 영사관에서 근무했다. 1868년에 로트레아몽은 익명으로 <말도로르의 첫 번째 노래>를 발표한다. 특이하게도 그 책의 저자 이름은 없고 ★★★만 표시되었다. 이듬해에 로트레아몽은 말도로르의 두 번째 노래를 출간하기 위해 준비하지만, 출판업자는 출간을 거부한다. 그는 포기하지 않고, ‘세 번째 노래부터 시작해서 여섯 번째 노래까지 완성한다. 1870년에 로트레아몽은 언젠가는 나오게 될 책(그가 요절하는 바람에 완성하지 못한다)을 위해 그 책의 서문에 해당하는 <시집(Poesies)>을 발표한다. 그해 11월 말 아침에 로트레아몽은 사망한다. 사망 당시 그의 나이는 스물네 살이었으며 사망 원인은 알려지지 않았다. 6부로 구성된 산문시 말도로르의 노래는 그가 죽은 후에 출간되었다. 그러나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로트레아몽은 세계문학사에서 가장 불가사의한 인물이다. 그의 유년시절과 사망 원인에 대해서 아무것도 밝혀진 것이 없다. 짧은 인생의 시작과 끝이 영원한 비밀로 남게 되는 바람에 그에 대한 추측만 무성할 뿐이다. 대중은 요절 시인에 대해서 모르는 게 너무 많다. 혹자는 로트레아몽을 정신 이상자로 보고, 그가 광기를 견디지 못해 자살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대중은 요절 시인에 대해서 모르는 게 너무 많다. 그를 둘러싼 추측성 말들이 나오게 된 또 다른 원인은 말도로르의 노래의 난해성에 있다. 이 작품은 주인공 말도로르(Maldoror)가 저지르는 나쁜 행동들과 해석하기 어려운 잡다한 생각들이 장황하게 나온다. 말도로르의 노래를 통해서만 알 수 있는 로트레아몽의 글 쓰는 방식은 독자에게 불친절하기로 악명 높다. 인칭이 자주 바뀌기 때문에 글을 읽다가 헤매기 쉽다. 사실 말도로르의 노래는 수수께끼 같은 단어와 단번에 봐도 이해하기 힘든 구절로 가득하다. 그래서 우리말로 번역하기 힘든 작품이기도 하다. 말도로르의 노래번역본을 읽을 때는 번역의 질에 대해서 따지지 말자. 읽다가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문장을 만나면 그냥 넘어가면 된다.

 

로트레아몽은 독자의 분노를 유발하는 글을 쓰려고 작정한 듯이 상당히 공격적으로 글을 썼다. ‘말도로르의 첫 번째 노래의 첫 문장은 독자를 향한 경고로 시작한다.

 

 

 

 자신이 읽는 글처럼 순간적으로 잔인해지고 대담해진 독자가, 이 어둡고 독으로 가득 찬 페이지들의 황폐한 늪지대를 지나면서, 방향을 잃지 않고, 험하고 거친 자신의 길을 찾길 바란다. 왜냐하면, 그가 엄격한 논리와 적어도 자신의 의심과 동등한 정신적 긴장을 유지하지 않는다면, 이 책의 치명적인 발산물들이 마치 물이 설탕을 적시듯 그의 영혼을 적실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다음에 이어지는 페이지들을 읽는 것은 좋지 않다. 단지 몇 사람들만이 위험 없이 쓰디쓴 이 열매를 맛볼 것이므로. 따라서 수줍은 영혼이여, 그 길은 미탐험의 황야 속으로 더 멀리 잠입하기 전에, 그대의 발걸음을 앞으로 내딛지 말고 뒤로 돌리라. 내가 그대에게 말하는 것을 잘 들으라. 그대의 발걸음은 앞이 아니라 뒤로 돌리라. (7)

    

 

 

이 글의 실체를 잘 모르는 독자는 이 문장을 보면서 로트레아몽이 치명적으로 위험한 글이라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 과장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저자의 경고를 무시할 정도로 자신감 있는 독자라면 여섯 번째 노래까지 읽어보길 바란다. 아마도 그 사람은 이 글을 쓴 로트레아몽의 정신 상태를 의심할 것이다. 그리고 신을 모독하고, 끔찍한 살인을 저지르는 등 온갖 악행을 일삼는 말도로르의 모습에 경악을 금치 못하리라.

 

로트레아몽은 생전에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지만,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초현실주의자들의 스타가 된다. 초현실주의자들은 문법과 서술 구조를 무시한 로트레아몽의 파격적인 글쓰기에서 자유와 반항의 힘을 확인했다. 말도로르의 노래고전이 될 만한 작품으로 볼 수 있는지 의심하는 독자들이 있겠지만, 그들의 생각이 틀린 건 아니다. 책에 정말 잔인하다 싶을 정도로 느껴지는 내용이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나온 말도로르의 노래1997년에 나왔으나 한동안 절판된 번역본(출판사는 청하’)의 개정판이다. 국내에 출간된 말도로르의 노래완역본은 두 종이다. 그중 한 권은 2년 전에 황현산 교수가 번역한 것(출판사는 문학동네’)이다. ‘달섬출판사에서 나온 말도로르의 노래의 역자는 로트레아몽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부록으로 로트레아몽이 쓴 편지들이 실려 있다. 이 편지들은 말도로르의 노래의 집필 의도를 조금이나마 알 수 있는 소중한 문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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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호프(Chehov)가 만들어낸 인간의 모습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다양하다. 그는 인간의 약점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의사였다. 프랑스의 소설가 앙드레 모로아(Andre Maurois)현대의 의사는 환자를 확실히 이해하려면 예술가가 돼야 하며 철학가의 지능과 소설가의 재주를 겸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체호프가 현대의 의사에 가장 적합한 작가라는 사실에 이견이 없을 것이다. 실제로 체호프는 의사였다. 모스크바 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한 그는 아내를 의학, 애인을 문학으로 비유하면서 자신의 삶을 규정했다. 그러나 병원 근무와 집필 생활을 병행한 삶은 체호프의 건강을 나쁘게 만든 원인이 된다. 작가로서 명성이 차츰 높아졌지만 젊은 시절부터 걸린 폐결핵은 평생 체호프의 건강을 위협했다. 결국 그는 1904년에 요양 생활을 하다가 사망한다.

    

 

 

 

 

 

 

 

 

 

 

 

 

 

 

 

 

* 안톤 체호프 지루한 이야기(창비, 2016)

* [품절] 안톤 체호프 귀여운 여인(시공사, 2013)

* 안톤 체호프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열린책들, 2009)

 

 

 

문학과 의학의 만남은 체호프의 죽음을 재촉했지만, 그에게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와 통찰력을 제공해주었다. 체호프가 남긴 수백 편의 소설 중에 생명과 죽음, 질병의 고통, 광기, 의사의 삶을 주제로 한 작품들이 있다. <6호실> 또는 <6호 병동>이라는 제목으로 알려진 중편소설은 체호프가 작가로서의 원숙기로 접어든 시기에 나온 작품이다. 시골 마을에 사는 정신병원 원장이 환자들과의 대화를 시도하다가 도리어 자신이 환자로 몰리는 과정을 그렸다. ‘어느 노인의 수기라는 부제가 있는 <지루한 이야기>는 죽음을 앞둔 학자가 자신의 비참한 처지를 인식하는 과정을 그린 중편소설이다.

 

<지루한 이야기>는 잘 알려지지 않은 체호프의 수작이라 할 수 있는데, 창비에서 나온 지루한 이야기는 우리말로 번역한 이 작품을 실은 유일한 책이다. 표제작인 <지루한 이야기> 이외에 <검은 옷의 수도사>,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이 수록되어 있다. 그런데 출판사의 책 소개 내용 중에 오류가 있다. <지루한 이야기>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중편이라고 소개했는데, 사실이 아니다. <지루한 이야기>따분한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1965에 처음 번역되었다. 최초의 번역 작품이 수록된 책은 문우출판사에서 나온 러시아 문학 전집 2이다. 그리고 1983년에 주우사의 세계문학전집 중 한 권인 사랑스러운 여인, 지루한 이야기가 나왔다. 이 책은 체호프의 중 · 단편을 선별해서 모은 책이며 사랑스러운 여인<귀여운 여인>의 이명이다. 이듬해에 주우세계문학전집학원세계문학전집(출판사는 학원사’)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출간되었는데 역자나 수록 작품은 주우사의 책과 같다.

 

문우출판사의 러시아 문학 전집동완, 사랑스러운 여인, 지루한 이야기박형규가 역자로 참여했다(두 책 모두 단독 번역이 아닌 공동 번역이다), 두 사람 모두 1세대 러시아 문학 번역가. 이미 두 차례 번역된 체호프의 작품을 국내 초역이라고 잘못 소개한 것은 책 소개 글을 만든 창비 출판사 측 또는 역자(도스토옙스키의 작품 번역으로 유명한 석영중 교수)의 착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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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gela 2020-05-06 0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yrus님은 한달동안 책 몇 권을 끝나고서평을 한꺼번에 확~쓰시는군요? ㅎ

cyrus 2020-05-06 23:32   좋아요 0 | URL
가끔 책만 읽고 싶어지는 날이 오긴 해요. 사실 2월 말부터 대구에 있는 모든 공공도서관이 휴관하면서 글쓰기 욕구가 한풀 꺾었어요. ^^;;
 
이상한 수학책 - 그림으로 이해하는 일상 속 수학 개념들
벤 올린 지음, 김성훈 옮김 / 북라이프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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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에 나오는 수학 문제를 푸는 일은 재미없다. 하루 18시간씩 문제를 풀었다는 수학자 폴 에어디시(Paul Erdos) 같은 비범한 인물이 아닌 이상 수학 문제를 푸는 일이 재미없다는 것을 누구나 공감한다. 이런 사람들은 수학 수업 시간에 문제 하나를 제대로 풀지 못해서 창피를 당했거나 한 번 놓친 진도를 따라잡지 못해 좌절한 경험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 사람들은 수학에 소질이 없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람들이 학창 시절에 배웠던 수학 교육방식이 잘못되었다.

 

당신은 수학 문제를 푸는 것은 싫어해도 수학을 좋아할 수 있다. 아니면 수학에 가까이하기가 힘들어도 재미없다는 수학에 대한 인식이 사라질 수 있다. 내 말이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으나 이상한 수학책을 읽고 나면 수긍이 간다. 이상한 수학책을 읽는 것과 수학 문제를 푸는 일을 좋아하는 것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 오히려 이 책은 수학을 싫어하는 사람에게 수학이 얼마나 재미있을 수 있으며 심지어 인간적인 학문인지를 너무도 잘 보여준다.

 

이상한 수학책의 저자는 수학 교사다. 그는 학생들에게 수학을 가르치다가 수학이 인기 없는 이유를 깨달았다. 수학을 가르치는 방식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그에게 수학은 단번에 이해하기 힘든 공식과 기호로 가득한 학문이 아니라 아름답고 논리적인 예술이다. 그런데 대부분 수학 교사는 문제를 만들려고 이 예술을 가져와 잘게 썬다. 그런 다음 학생들은 조각난 수학을 원래 모습으로 맞추기 위해 머리를 싸맨다. 수학 문제의 해답을 찾으려고 머리를 싸매다 보면 골머리를 앓는다. 이때부터 학생들은 수학 공부를 포기하기 시작한다. 학생들이 치르는 수학 시험은 말 그대로 수학능력시험이다(여기서 말하는 수학數學이지 修學이 아니다). 문제의 정답을 정해진 시간 안에 찾는 수학 능력은 명문대에 들어가기 위한 이력서의 일부가 된다. 저자는 학생들과 함께 수학을 공부하는 이유에 관해서 토론했다. 토론에 참여한 어떤 학생은 대학과 고용주에게 우리가 똑똑하고 일도 열심히 한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수학을 공부한다고 말했다. 영국의 문필가 토머스 칼라일(Thomas Carlyle)은 경제학을 우울한 학문(dismal science)이라고 불렀다. 수학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수학도 우울한 학문에 포함해야 한다고 말할 것이다.

 

이상한 수학책은 수학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우울해지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저자는 이상한 그림으로 보는 수학(Math with Bad Drawing)이라는 블로그를 운영한다. 그는 직접 그림을 그려가면서 수학의 기본적인 개념들을 알기 쉽게 설명한다. 이 책의 주인공은 수업 시간에 수학 선생님들이 칠판에 써가면서 가르쳐주던 공식이 아니다. 이 책을 읽으려는 독자, 특히 수학 문제를 풀기 싫어하고 수학 공식을 보면 어지러워하는 당신이 책의 주인공이다. 이미 언급했듯이 수학은 우울한 학문이 아니라 인간적인 학문이다. 학생들에게 수학 문제를 빨리 풀라고 압박하거나 수학 공식을 암기하도록 만드는 교육 방식은 수학을 배우는 학생들을 우울하게 만든다. 인간적인 학문인 수학은 문제를 잘 푸는 똑똑한 학생을 치켜세우고, 학생들에게 경쟁을 유도하는 시험을 좋아하지 않는다. 수학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학생은 문제의 정답을 찾는 것보다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그래서 인간적인 수학은 문제를 천천히 풀어보려는 학생들에게 배려심이 깊다. 이 학생들은 수학 공식을 전혀 몰라서 문제를 천천히 푸는 게 아니다. 그렇다고 한 문제에서 막히면 다른 문제로 넘어가지 못하는, 대학수학능력시험에 불리한 학생도 아니다. 이들은 단순한 문제도 문제 풀이의 지름길이나 다름없는 공식에 의존하지 않은 채 자신만의 방식으로 풀어보려고 한다. 대부분 사람은 문제를 느리게 푸는 학생들을 보면 답답하게 느껴지고 이상하다는 식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문제를 빨리 풀어야 한다는 믿음이 이상한 것이다. 그러한 믿음이 수학과 친하게 지내지 못하게 만든 장벽이다.

 

똑똑하고 논리적인 사람은 어떤 현상에 대한 제 생각을 확률과 통계를 동원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한다. 그러나 저자는 확률론을 온갖 역설이 부비트랩처럼 깔려 있는 현대 수학의 미묘한 가지라고 말한다. 제아무리 머리가 좋은 사람도 확률론의 역설을 피하지 못하면 헛똑똑이가 된다. 통계는 복잡한 세상을 단순하게 설명하는 데 유용한 학문이다. 그러나 저자는 통계를 지나치게 믿는 것을 경계한다. 통계가 보여주는 단순화의 장점은 오히려 대중을 속이는 거짓말이 될 수 있다. 통계학은 불완전한 목격자다. 진실을 말하지만, 결코 진실을 전부 말하지는 않는다.”(294) 알고 보면 통계학도 인간처럼 허점이 있는 학문이다. 이런 젬병이 있는 수학이라면 한 번쯤은 배워볼 만하다. 수학이라는 학문도 가끔은 바보가 된다. 고작 수학 문제를 못 푼다는 이유로 자책하면서 바보 취급해야 할 필요가 없다.

 

당신이 수학과 절대로 친해지기 힘들어도 야구를 정말 좋아한다면 이 책의 17장만이라도 꼭 읽어보시라. 17장에 야구선수의 능력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타율과 세이버매트릭스(Sabermetrics)의 탄생 과정과 전설의 4할 타자테드 윌리엄스(Ted Williams)와 관련된 재미있는 일화가 나온다. 이 세상에 수학이 없었다면 야구라는 스포츠 종목도 없었을 것이다. 수학을 미워하지 말자. 우리가 미워해야 할 것은 수학이 아니라 수학 교사와 학생들 모두 우울하게 만드는 이상한 교육방식이다.

 

 

 

 

Trivia

 

저자는 빌 제임스(Bill James)가 타율을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야구 통계에 세이버매트릭스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주장한다(307). 그가 세이버매트릭스를 대중에게 널리 알리는 데 기여한 인물인 건 맞다. 그러나 빌 제임스가 세이버매트릭스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표현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빌 제임스는 세이버매트릭스를 처음으로 고안한 사람이 아니다.

 

최초로 세이버매트릭스를 만든 사람은 월간 야구 전문 잡지 <베이스볼 매거진(Baseball Magazine)>의 편집장이었던 F. C. 레인(Ferdinand Cole Lane)이다. 레인은 1915<베이스볼 매거진>타율 시스템을 왜 바꾸어야 하는가(Why the System of Batting Averages Should Be Changed?)라는 제목의 기사를 써서 세이버매트릭스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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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호프(Chekhov)의 단편소설 <귀여운 여인>은 관심과 애정을 갈구하는 여성을 그린 이야기다. 톨스토이(Tolstoy)는 이 소설을 극찬했고, 작품이 너무 좋아서 네 번이나 계속 읽었다고 한다.

    

 

 

 

 

 

 

 

 

 

 

 

 

 

 

 

 

* 안톤 체호프 체홉 명작 단편선(작가와비평, 2020)

* [품절] 안톤 체호프 귀여운 여인(시공사, 2013)

* 안톤 체호프 체호프 단편선(문예출판사, 2006)

 

 

 

올렌카는 항상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고 살아갈 수 없는 여인이다. 그녀는 비 때문에 공연을 할 수 없어서 넋두리를 늘어놓는 야외극장 지배인을 동정하다가 사랑에 빠진다. 극장 지배인의 일을 거드는 올렌카는 자연스럽게 남편처럼 말하고 행동한다. 그녀는 예술에 대한 대중의 무지를 비판하는 남편의 생각에 공감했고, 배우들의 공연 연습을 지켜보는 감독 역할까지 하게 된다. 올렌카를 좋아하는 배우들은 그녀를 귀여운 여인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올렌카의 행복한 생활은 오래가지 못한다. 남편이 죽으면서 그녀는 혼자가 되고, 그 후로 집에서 울기만 하면서 지낸다. 석 달이 지난 후에 올렌카는 이웃에 사는 목재상에게 호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두 사람은 부부가 되지만 불행하게도 두 번째 남편도 세상을 떠나고 만다. 그녀는 또다시 실의에 빠지지만 이미 한 차례 결혼한 적이 있는 수의사를 만나면서 잠시 잃어버린 행복을 되찾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수의사가 다른 지역으로 전근하는 바람에 올렌카는 외로운 생활을 한다.

 

시간이 점점 지날수록 올렌카는 귀여운 구석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늙어간다. 그녀는 어떤 상황에 대해서 자기 의견을 내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를 견디지 못한다. 몇 년이 지난 후에 수의사는 자신의 전처와 외아들까지 대동하여 올렌카가 사는 곳으로 돌아온다. 오랜만에 사랑하는 존재를 만나서 기쁜 올렌카는 수의사와 전처와 외아들을 자신의 집에 데려와 함께 산다. 올렌카는 수의사의 외아들을 친자식처럼 대한다.

 

올렌카는 누군가를 사랑하면 눈빛과 마음은 온통 그 사람에게 향한다. 그녀가 귀여운 여인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생각할 힘과 삶의 방식을 제시해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있어야만 했다. 그녀에게 가장 큰 불행은 어떤 일에도 자신의 의견을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모든 것을 그저 따라 하는 올렌카는 자의식이 부재한 인물이다. 소설 초반부에 올렌카의 성격을 짐작할 수 있는 문장이 나오는데 그녀는 어릴 적에 아버지를 잘 따랐다고 한다. 올렌카는 어린 시절부터 가부장이 된 남성에 의존해야만 자신의 정체성을 확보할 수 있는 종속적인 생활을 하면서 성장했던 것으로 보인다.

    

 

 

 

 

 

 

 

 

 

 

 

 

 

 

 

* 요모타 이누히코 가와이이 제국 일본(펜타그램, 2013)

 

 

 

귀엽다는 일반적으로 예쁘거나 사랑스러운 사람이나 대상(동물, 인형 등)에 호감을 나타날 때 쓰이는 말이다. 그런데 듣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이 말에 타인을 차별하는 위험성이 있다. 일본의 문화비평가 요모타 이누히코(四方田 犬彦)가와이이 제국 일본이라는 책에서 일본을 대표하는 단어가 돼버린 가와이이(かわいい, 귀엽다)의 밑바탕에 깔린 이데올로기를 분석한다.

 

가와이이는 일본의 미의식을 함축하는 단어다. 요모타 이누히코는 가와이이의 기원을 추적하면서 이 단어가 보호받기 쉬운 순진한 존재의 미성숙한 모습을 아름다움으로 긍정하기 위해서 쓰인다고 주장한다. 그는 미성숙의 미학을 지나치게 긍정하는 일본의 가와이이문화를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요모타 이누히코 이전에 가와이이의 위험성을 경계한 사람이 여성학자 우에노 지즈코(上野 千鶴子). 요모타 이누히코의 말에 따르면 그녀는 가와이이에 대해 누구보다 깊은 증오를 드러낸다. 우에노 지즈코는 가와이이여성이 남성 중심 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해 사용해온 교태라고 지적한다. 일본 사회에서는 귀엽지 않으면 여자가 아니다라는 성차별적인 인식이 있다. 고령 인구가 많은 일본 사회 특성상 노인들은 자식과 손주의 보살핌과 인정을 받고 싶어서 귀여운 할아버지, 귀여운 할머니가 되려고 한다. 우에노 지즈코는 가와이이에 휘둘리는 현실이 사회적 차별을 받기 쉬운 여성/노인을 남성/젊은이에게 보호받기만 하는 수동적인 존재로 만든다고 비판한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을 귀엽지 않은 여자라고 부르며 귀여운 할머니가 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체호프의 소설과 가와이이 제국 일본우리가 무심결에 쓰는 귀여운이라는 표현이 한 사람의 정체성뿐만 아니라 삶 자체마저 축소하는 위험한 단어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타인에게 인정받을 때만 자신의 가치와 존재감이 돋보인다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자신의 약점을 숨기려고 한다. 타인의 인정이나 사랑에 지나치게 의존하면 눈치를 많이 보게 되고 불안해진다. 또 혼자 있는 것을 두려워한다. 체호프의 소설에 나오는 저 귀여운 여인처럼 말이다. 이 세상에 귀여운 여인만 있는 게 아니다. 연상의 여성에게 사랑받기 쉬운 귀여운 남자의 매력에 열광하는 우리나라 역시 자유롭지 못하다.

 

 

 

 

 

 

 

Trivia

    

 

 

 

 

2006년에 나온 가와이이 제국 일본(원제: かわいい)의 원서 앞표지는 어떤 그림도 없는 단색 디자인이다. 그런데 국내 번역본 표지에는 원서에도 없는 분홍색 전범기가 그려져 있다. 꼭 이렇게 그러야만 했을까? 정신 나간 디자인을 생각 없이 결정한 출판사도 책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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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20-05-05 12: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좋아! 나도 읽어볼래! 사랑을 갈구하며 사는 인생은 괴로운 거야, 파편 지옥이랄까. 귀여운 건 잠깐씩만. 귀여운 거 좋아하지만 성인을 유아로 만드니까 온전한 삶이라고는 볼 수 없을듯.

cyrus 2020-05-05 19:50   좋아요 0 | URL
맞아요. ‘귀엽다’가 상대방을 칭찬하는 표현이 될 수 있지만, 누님이 말씀한 것처럼 상대방, 특히 여성을 유아로 취급해버리는 한계가 있어요.
 
책 읽기의 끝과 시작 - 책읽기가 지식이 되기까지
강유원 지음 / 라티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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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책을 읽고 난 후에 서평을 쓰지 않으면 허전하다. 그때 그 느낌은 밥을 맛있게 먹었는데 배가 부르지 않은 것과 같다. 독서 후 글쓰기 활동은 아주 중요하다. 글을 쓰는 과정에서 자신이 책을 보면서 얻은 지식과 그것에 대한 생각을 정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 사람은 서평 쓰는 일을 어렵게 생각하거나 부담스러워한다. 서평은 독후감보다 좀 더 체계적인 사고를 필요로 한다. 독후감은 말 그대로 독서 활동 이후에 나온 개인의 생각과 느낌을 정리해 쓰는 글이라면 서평은 책을 평가해 다른 사람들이 그 책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글이다. 서평을 쓰려면 책과 약간의 거리를 둔 채 책의 내용을 의심하면서 읽어야 한다. 독후감 쓰기에 익숙한 독자들은 자신들이 책을 평가할만한 자격이나 능력이 없다고 스스로 판단하여 서평 쓰기를 주저한다. 어떤 사람은 서평의 형식과 비슷한 글을 쓰고 있으면서 자신의 글을 독후감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책에 대한 내용을 비판하면서 서평을 쓰는 일에 자격이 필요하나? 서평은 지식인이나 전문 서평가만 쓸 수 있는 글이 아니다. 또 책을 평가하는 글쓴이의 입장이 논리적으로 정리된 서평이 독후감보다 훨씬 수준이 높은 글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독후감도 서평처럼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는(또는 책을 주문하도록 유도하는) 글이 될 수 있다.

 

서평 쓰기의 목적을 잘 이해한다면 서평 쓰는 일이 어렵지 않다. 철학, 역사, 사회과학 분야의 책의 서평을 써온 강유원의 서평 모음집 책 읽기의 끝과 시작은 서평의 기본적인 기능과 쓰는 방식을 알려주는 책이다. 책 읽는 목적은 다양하지만 기본적으로 책 속 내용을 공부하고 이해하기 위해서 책을 읽는다. 강유원은 독서를 지식을 얻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책을 읽으면서 획득한 지식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면 자신만의 방식으로 책 내용을 정리하는 일이 필요하다. 그 일이 바로 서평 쓰기다.

 

서평은 책을 대하는 사람들 또는 그 책을 읽은 나에게 보내는 편지. 서평 쓰는 일은 사적인 독서에 해당한다. 글쓴이는 자신이 쓴 서평을 읽으면서 책 내용을 복습할 수 있다. 서평을 쓴 과거의 는 몇 년 후의 본인이 책 내용을 잘 이해하고 있는지 확인한다. “그때 넌 이 책을 이렇게 읽었는데, 알고 있지?” 다른 사람이 내가 쓴 서평을 읽고 책을 구매하는 데 도움을 준다면 사적인 독서는 공적인 독서로 확대된다. “당신도 이 책을 읽으면 좋을 거예요.” “이 책은 별로예요. 책을 사기 전에 잘 생각해보세요.” 서평 쓰기와 서평 읽기는 독서만큼이나 중요한 행위다. 강유원은 책 읽기-서평 쓰기-서평 읽기-책 읽기가 반복되는 과정이 이루어지면 지식도 쌓이고, 책을 고르는 안목이 생긴다고 말한다.

 

서평 작성의 8할은 책을 요약한 내용이다. 쉬워 보이는 일이지만, 서평 쓰기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는 책을 요약할 때 실수를 저지른다. 그들은 책을 읽은 동기나 책에 대한 내용을 장황하게 설명한다. 나도 서평을 쓰다 보면 종종 이런 실수를 저지른다. 모든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을 수 없다. 이와 마찬가지로 서평은 책 전체 내용을 다 담아낼 수 없다. 고작 몇 줄의 문장만으로 책 전체 내용을 요약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서평을 잘 쓰려면 책의 핵심 내용이 무엇인지 잘 파악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 서평 모음집이 책 읽는 방법까지 세세하게 알려주는 이유가 있다. 아무리 글을 잘 쓴다고 해도 책 읽는 방법이 잘못되면(저자가 이 책에서 무엇을 강조하고 있는지 모른다면) 좋은 서평이 나오기 힘들다. 책 읽기의 끝과 시작은 크게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는 책 읽는 방법이, 2부는 서평 쓰는 방법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3부는 강유원이 쓴 서평으로 채워져 있다. 서평을 잘 쓰고 싶은 독자들은 당연히 2부를 먼저 볼 것이다. 책을 읽는 순서는 독자들의 마음이지만, 그렇다고 1부를 지나쳐서는 안 된다. 기본이 제일 중요하다. 서평 쓰기의 시작은 책 읽기다.

 

이 책의 부록은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의 소설 장미의 이름번역본에 대한 비평적 서평인 장미의 이름 읽기(미토, 2004) 전문이다. 장미의 이름 읽기는 이미 절판된 책이다. 책 읽기의 끝과 시작은 강유원의 서평을 좋아하는 독자들을 위한 원 플러스 원(one plus one)과 같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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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gela 2020-05-05 0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평쓰기는 항상 어려워요~

cyrus 2020-05-05 11:38   좋아요 0 | URL
철학책은 좀 어려운 주제의 책이라서 저도 철학책 서평 쓰기는 어려워요. ^^;;

페넬로페 2020-05-05 12: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cyrus님의 서평은 항상 훌륭해요^^
책을 선택하고 비교하는데 많은 도움을 받습니다~~
감사합니다^^

cyrus 2020-05-05 19:59   좋아요 1 | URL
글을 잘 쓴다는 칭찬보다는 다른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글을 썼다는 말을 듣는 게 더 좋아요. 감사합니다. 페넬로페님. ^^

stella.K 2020-05-05 1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이 책은 읽고 싶긴한데 너의 평점이 높진않군.

cyrus 2020-05-05 20:03   좋아요 0 | URL
제 기준으로 볼 땐 ‘보통’이었습니다. 저자의 직업상 책에 실린 서평이 인문학, 역사 분야에 치우쳐 있고, 저자가 소개한 서평 쓰는 방식은 예전에 전문 서평가들이 한 번쯤 언급했던 내용이라서 전체적으로 책에 특별히 눈여겨 볼만한 내용은 없었어요. 철학을 깊이 공부하지 않은 독자라면 저자의 서평이 눈에 들어오지 않을 거예요. 저도 서평을 다 읽지 않았어요. syo님처럼 철학을 공부한 사람이라면 무난히 읽을 수 있는 수준의 글이에요. ^^

syo 2020-05-05 21: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이러스님이 서평 책 한 권 내도 된다고 봐요, 나는.

cyrus 2020-05-06 08:05   좋아요 0 | URL
제 글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소수의 독자’가 다섯 명 이상이라면 독립 출판물 형식으로 서평 모음집을 내보겠습니다. ㅎㅎㅎㅎ

syo 2020-05-06 19:18   좋아요 0 | URL
11111

cyrus 2020-05-06 23:40   좋아요 0 | URL
syo님이 책 다섯 권을 주문하는 건 무효입니다. ㅎㅎㅎ

조그만 메모수첩 2020-05-07 2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올해는 안 사기로(사놓고 안 읽은 책들이 많아서) 마음 먹었지만 cyrus님 서평 읽고 나면 어느새 책들을 장바구니에 주섬주섬 넣고 결재하려는 저를 발견하지요. 잘 읽었습니다~

cyrus 2020-05-08 17:02   좋아요 1 | URL
그래도 책을 주문하기 전에 꼭 실물을 확인하고, 살 것인지 말 것인지 찬찬히 생각해보세요. ^^

transient-guest 2020-05-11 0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주로 독후감과 서평 사이에 있네요 아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