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인권으로 한 걸음 - 가해자를 만들지 않는 성교육을 향하여
엄주하 지음 / 을유문화사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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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다수의 부모는 자녀와 ()을 터놓고 대화하지 못한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성을 가르치는 일을 내키지 않아 하는 부모들이 있다. 아이가 성교육을 받으면 벌써 성에 눈을 뜨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 때문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다. 콘돔의 용도를 알려주는 나름 진취적인 부모도 있겠지만, 과연 이들이 사용법이나 주의사항에 대해서 제대로 설명했는지 의문이다.

 

우리나라 청소년은 일반 콘돔을 살 수 있다(여성가족부는 돌출형 콘돔과 사정지연 콘돔을 남성용 여성 성기 자극 기구로 분류하여 청소년 유해 물품으로 지정했다). 청소년도 성적 존재이므로 성관계를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어른들은 청소년들에게 콘돔을 왜 써야 하는지,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어떤 것을 골라야 몸에 해롭지 않은지 등에 대해서 가르쳐주지 않는다. 콘돔이 성인용품이라는 인식은 여전히 만연하다. 어른들은 콘돔이 술이나 담배처럼 19세 미만의 청소년에게 팔면 안 되는 물품이라고 생각한다. ‘너희들은 콘돔을 쓰기에는 아직 어려’, ‘사리분별 못하는 나이라서 안 돼이렇게 생각한 이유는 청소년의 성관계에 대한 반감일 테고, 설사 그게 아니었더라도 콘돔이 청소년 유해 물품이라고 생각하는 편견일 것이다.

 

우리 사회에 아직도 청소년의 성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남아 있다. 이렇다 보니 청소년을 무성(無性)적인 존재로 보는 경향이 있다. 성 자체를 부끄러워하고 위험하게 생각하는 인식은 청소년을 성적 존재로 보지 못하게 만든다. 청소년을 성적 존재로 인정하지 않는 교사나 학부모는 성교육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성교육은 청소년들에게 순결을 강조하는 명목상의 성교육이었다. 성교육 교사들은 여학생들에게 성폭력을 예방하는 차원으로 해서는 안 될 행동들을 가르쳐주었다. 구시대적인 성교육을 받은 여학생들은 성적 의사 결정을 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며 자신이 성적 존재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반면 남학생들은 성교육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다. 포르노에 익숙한 남학생들은 성교육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성교육을 받지 못한 남학생은 자신의 성적 행동이 타인을 위한 존중인지 아니면 타인을 파괴하는 폭력인지 스스로 판단하지 못한다. 성교육에 대한 남학생들의 저조한 반응을 심각하게 느끼지 못한 성교육 교사들은 가해자 되지 않기교육, 즉 성폭력을 하면 안 되는 이유를 자세히 가르쳐주지 않는다.

 

성 인권으로 한 걸음은 부실한 성교육의 실태와 성교육을 외면하는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보여주는 책이다. 이 책의 저자는 학생과 교직원을 대상으로 성 인권 교육을 하고 있는 초등학교 보건 교사다. 성 인권에는 성적으로 보장받을 권리성적으로 침해받지 않을 권리가 모두 포함되어 있다. ‘성적으로 보장받을 권리는 자신의 몸에 대해 긍정하고, 자신의 성적 느낌과 반응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권리이다. ‘성적으로 침해받지 않을 권리는 성별이나 성적 지향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 성적으로 괴롭힘을 받지 않을 권리, 성폭력과 성매매로부터 안전하게 보호받을 권리 등을 아우른다. 성 인권 교육은 남녀가 서로 좋은 인간관계를 맺기 위해 배워야 할 윤리 교육이자 사회성 교육이다. 성 인권 교육은 자신과 다른 사람의 성을 존중하는 법을 알려준다.

 

저자는 청소년을 성적 자기결정권이 있는 주체로 인정하는 성 인권 교육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로써 저자는 청소년의 성이 당당하고 주체적이며 아름답고 유쾌한 것이라는 패러다임의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이러한 인식의 변화가 일어날 때 아이들은 부끄럽고 은밀한 성이 아닌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느낄 수 있는 성을 배울 수 있다.

 

성 인권 교육은 문란한 성 문화를 조장하는 교육이 아니다. 실제로 누군가가 겪고 있고, 누구나 겪을 수 있는 현실에 대한 교육이다. 이제 아이들은 아기는 어떻게 생겨요?’, ‘성관계는 어떻게 해요?’라는 그런 뻔한 질문을 하지 않는다. 만약 당신이 부모라면 자녀가 콘돔을 어떻게 써요?’, ‘남자친구가 자꾸 내 몸을 만지려고 해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라고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성교육 전문 교사가 되지 않더라도 어른이라면 아이들을 위해 올바른 성에 대해 가르칠 줄 알아야 한다. 성에 대한 편견과 잘못된 지식을 가지고 있으면 그 자체로 비뚤어진 성 개념만 아이들에게 전달될 것이다. 먼저 자신의 성에 대한 가치관과 태도를 점검해본 뒤에 부족한 지식을 채우고, 잘못된 관념을 바로잡는 노력부터 선행해야 한다. ‘남자는 본능적으로 포르노를 보기 때문에 괜찮아’, ‘혼전 성관계는 무조건 안 된다’, ‘이성 친구는 나중에 사귀어도 된다는 식의 어설픈 교육은 성에 대한 편협한 생각을 아이들에게 심어줄 뿐이다. 사실 성 인권 교육을 배워야 할 사람은 어설프게 성교육을 받고 자란 어른들이다. 성 인권 교육을 배워야 하는 적당한 시기는 따로 있지 않다. 성 인권 교육은 기본적으로 자신과 타인의 성을 소중히 여기도록 해주는 교육이기 때문에 누구나 배워야 한다. 성 인권으로 한 걸음은 나와 타인의 성을 올바르게 사랑하고 싶은 모든 세대의 사람들이 함께 읽어야 하는 책이다.

 

 

 

 

 

Trivia

 

 

*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성적 존재에게 태어나는 순간부터 요구되는 성도덕적 규범들을 제대로 알려 주어야 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욕구를 조절하며 좌절하는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 (31)

 

성적 존재로라고 고쳐 쓰면 문장이 어색하지 않다.

 

    

 

* 기독교, 불교, 힌두교 등 종교에서도 여자가 신이 된 경우는 없었고 오히려 여성은 불경의 존재에 가까워 배척받고 천대받았다. (130)

 

힌두교에 여신이 있다. 이들을 데비(Devi)라고 부른다. 힌두교 남신은 데바(Deva)라고 한다.

    

 

 

* 어떤 여성은 미러링 방법으로 만약 남성이 생리를 했다면 어땠을지 상상해 보자고 했다. 그리고 남성이 월경을 했다면 지금과는 반대로 월경이 신성시되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154)

 

어떤 여성의 정체는 글로리아 스타이넘(Gloria Steinem)이다. 그녀가 주장한 내용은 저서 남자가 월경을 한다면(현실문화연구, 2002)에서 확인할 수 있다.

 

    

 

* 서정윤사랑한다는 것으로에는 사랑한다는 것으로 새의 날개를 꺾여 너의 곁에 두려 하지 말고 가슴에 작은 보금자리를 만들어 종일 지친 날개를 쉬고 다시 날아갈 힘을 줄 수 있어야 하리라라는 문장이 나온다. 존재 그 자체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사랑이다. 또 사랑 못지않게 이별하는 방법도 중요하다. 이별 또한 자신에게 맞는 상태를 찾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다. (225)

 

서정윤은 베스트셀러가 된 시집 홀로서기를 쓴 시인이다. 2008년에 대구 영신고등학교에서 국어 교사로 재직 중에 남학생을 골프채로 체벌했다가 징계받았다. 이듬해에 그는 영신중학교로 전근했는데 2013년에 해당 학교 여학생을 성추행한 혐의로 해임 처분을 받았다. 그 후 서 씨는 교단을 떠났다. 저자가 성 인지 감수성이 없는 서 씨의 시구를 인용하는 것은 책의 주제에 맞지 않다. 중쇄를 찍을 때 서 씨의 시구를 뺐으면 한다.

    

 

 

*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면서 일본은 전쟁의 죽음 앞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 군인들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1916년 공창제를 선포하였으며, 이것이 점차 확대되어 부작용의 하나로 생긴 것이 일본군 위안부. (286)

 

위안부를 적을 때 작은따옴표(예시: 일본군 위안부’)를 붙여 써야 한다. ‘위안이라는 단어는 일본군을 위한 자발적인 참여의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일본군 위안부의 실체를 거부하는 국내 및 일본 극우 세력의 입장과 유사하다). 그래서 이를 인정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여주기 위해 작은따옴표를 쓴다.

    

 

 

* 291쪽 오자: 네델란드 네덜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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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0-07-01 17: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현재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cyrus님이 말하는 성인권부분까지 성교육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성교육은 상당히 많은 시간을 할애해서 교육이 이루어지고 교육내용도 많이 좋아졌죠. 딱 하나 아직까지 안되는 부분은 실제로 콘돔을 어떻게 쓰는가하는 실용적인 부분인데 학교 성교육이 여기까지 하기에는 아직 용기도 학부모의 인식도 넘어야 할 산이 많아요.

cyrus 2020-07-02 10:03   좋아요 0 | URL
성에 대한 아이들의 관심과 인식의 범위는 점점 더 다양해지고 넓어지고 있는데, 어른들은 아이들의 반응에 못 따라오고 있어요. 그래서 어른들은 요즘 아이들이 배우고 있는 성교육을 예전에 자신들이 배운 그 내용과 같다고 생각해요. 성교육은 매번 업데이트되어야 합니다. 문제는 어른들이 교육 방식의 변화를 못 따라가고 있는 실정이에요.

2020-07-19 10: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난해한 현대시를 읽으면 고통스럽다. 읽으면 읽을수록 머리가 아프다. 안 읽으면 그만이지 시간을 낭비하면서까지 어려운 시를 읽느냐고 할지 모르겠다. 시를 읽고 싶은 호기심, 현대시를 알고 싶은 욕구 때문에 자꾸 시를 읽으려고 한다. 물론 의미가 불분명한 문장으로 꾸며놓은 시는 보고 싶지 않다.

    

 

 

 

 

 

 

 

 

 

 

 

 

 

 

 

 

 

* 로트레아몽, 윤인선 옮김 말도로르의 노래(달섬, 2020)

* 로트레아몽, 황현산 옮김 말도로르의 노래(문학동네, 2018)

 

    

 

로트레아몽(Lautreamont)의 산문시 말도로르의 노래(Les Chants de Maldoror)는 난해한 현대시로 유명하다. 주인공 말도로르가 저지르는 온갖 악행과 신성모독에 대한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말도로르의 노래는 초현실주의에 영향을 준 현대시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현대의 독자들은 이 작품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단번에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지나치게 과장된 문장들은 독자의 인내심을 시험한다. 로트레아몽은 종종 불어사전에 없는 단어를 썼는데,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글쓰기 방식은 로트레아몽을 전공한 불문학자들의 진땀을 빼게 한다. 우리말로 번역하기 힘든 단어나 문법이 맞지 않는 문장(로트레아몽이 의도적으로 썼을 가능성이 높다)은 번역자들을 괴롭힌다.

 

말도로르의 노래완역본 2종을 비교하면서 읽으면 로트레아몽의 문장이 얼마나 어려운지 느낄 수 있다.

 

    

 

* 원문

Fatigué de la vie, et honteux de marcher parmi des êtres qui ne lui ressemblent pas, le désespoir a gagné son âme, et il s’en va seul, comme le mendiant de la vallée.

 

* 생활에 지치고, 그와는 닮지 않은 존재들 사이에서 걷는 게 부끄러워, 그는 절망에 빠졌다. 그래서 그는 계곡의 걸인처럼 홀로 죽어 가고 있다. (윤인선 옮김, 83)

 

* 삶에 지치고, 자기와 닮지 않은 존재들 사이로 걷는 것이 부끄러운 나머지, 절망이 그의 영혼을 짓눌러, 그는 계곡의 걸인처럼 홀로 간다. (황현산 옮김, 77)

 

 

인용문의 말도로르의 노래 두 번째 노래’ 7절에 나오는 양성(兩性) 인간이다. 두 개의 문장은 속세에 거리를 두는 양성 인간의 모습을 묘사한 내용이다. 그런데 첫 번째 문장을 번역한 윤인선은 양성 인간이 쓸쓸하게 죽어 간다는 식으로 번역했다. 그녀는 동사 ‘va’를 잘못 번역했다. ‘va’떠나다’, ‘가다를 뜻하는 ‘aller’3인칭 단수형이다. ‘양성 인간이 홀로 간다라고 번역한 황현산의 문장이 맞다. 두 번째 노래’ 7절 전체 내용을 보면 알겠지만, 양성 인간은 죽지 않는다.

 

 

    

 

* 원문

Écoutez les pensées de mon enfance, quand je me réveillais, humains, à la verge rouge.

 

* 나의 어린 시절, 내가 빨간 채찍에 맞아 잠을 깨곤 했을 때, 인간들이여, 그때 내가 한 생각을 들어 보라. (윤인선 옮김, 112~113)

 

* 내가 어린 시절에 잠에서 깨어나면서 어떤 생각을 했는지 들어보라, 음경이 빨간 인간들아. (황현산 옮김, 102)

 

 

두 번째 노래’ 12절에 나오는 첫 문장의 일부이다. ‘verge’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는 단어인데, 막대 또는 채찍을 뜻한다. ‘verge’음경을 뜻하기도 한다. 이 문장을 우리말로 번역하기가 까다로워 보인다.

 

 

 

 

* 원문

Quel ne fut pas son étonnement, quand il vit Maldoror, changé en poulpe, avancer contre son corps ses huit pattes monstrueuses, dont chacune, lanière solide, aurait pu embrasser facilement la circonférence d’une planète!

 

* 낙지로 변한, 말도로르가, 창조주의 몸에다 자신의 흉측한 여덟 개의 발을 뻗치는 것을 창조주가 보았을 때, 그의 놀라움은 얼마나 컸을 것인가! 견고한 가죽끈 같은, 그 각각의 낙지발은 쉽게 하나의 유성 둘레를 감쌀 수 있었을 것이다. (윤인선 옮김, 134)

 

* 녀석의 놀라움이 얼마나 컸을까, 말도로르가 낙지로 둔갑해, 하나하나가 질긴 가죽 끈이어서 행성 하나쯤은 어렵잖게 둘러 감을 수도 있을 그 흉물스러운 여덟 개의 다리를 제 몸뚱이 쪽으로 뻗는 것을 제 눈으로 보았으니. (황현산 옮김, 112)

 

 

말도로르는 각종 동물로 변신하면서 자신의 폭력성을 드러낸다. ‘planète’도 앞서 언급한 verge’처럼 뜻이 많은 단어다. 행성과 유성뿐만 아니라 지구, ‘세계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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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다이어트 - 뉴스 중독의 시대, 올바른 뉴스 소비법
롤프 도벨리 지음, 장윤경 옮김 / 갤리온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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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뉴스로 세상을 보면 마음이 심란하다. 그래서 정신 건강을 위해 뉴스를 자주 들여다보는 습관을 줄이도록 노력하고 있다. 뉴스를 아예 안 보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대화 소재로 나올만한 뉴스는 챙겨보고 있다. 사람들이 뉴스를 보는 이유는 다양하다. 그런데 요즘에도 세상의 이면을 제대로 알고 싶어서 뉴스를 본다는 사람이 있을까? 정말로 그런 사람이 있다면, 나는 뉴스를 너무 믿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다. 진실을 은폐하는 뉴스가 생각보다 많기 때문이다.

 

뉴스를 많이 보지 말라고 말하면 누군가는 내게 이런 말을 할 것이다. “당신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관심이 없군요.” 뉴스에 나오는 내용을 상식으로 여기는 사람도 있다. 이런 사람은 시사 상식이 부족한 사람, 즉 뉴스를 보지 않은 사람과 대화를 하지 않는다. 그러면 나는 미국의 작가 업튼 싱클레어(Upton Sinclair)의 말을 살짝 변형해서 뉴스를 너무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말할 것이다. 매일 뉴스를 열심히 보는 당신은 세상의 모든 진실을 제대로 본다고 생각하세요? 당신은 프로파간다를 보고 있는 건 아닌지요?”[]

 

프로파간다에 쉽게 휘둘리는 똑똑한 바보로 살고 싶지 않으면 뉴스 다이어트를 하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스위스의 작가 롤프 도벨리(Rolf Dobelli)뉴스 다이어트를 제안한다. 뉴스는 우리 일상에 아주 가까이에 있다. TV와 유튜브에 실시간으로 뉴스 방송이 흘러나오고 있다. 스마트폰을 통해 각종 언론이 제공하는 뉴스를 한눈에 볼 수 있다. 뉴스를 습관적으로 보게 되면 현실을 인식하는 감각이 무뎌진다. 이러면 현실과 동떨어진 판단을 내릴 수 있다. 뉴스가 대중에게 보여주는 진실은 부차적이고 표면적인 현상에 불과하다. ‘진실이라고 우기던 뉴스가 나중에 오보로 정정될 때가 있다. 이 정도는 약과다. 자신이 쓴 잘못된 보도 내용을 수정하지 않는 기자들이 있다. 뉴스를 소비하는 대중은 뉴스에 나온 내용을 그대로 믿으며 세상을 단순하게 해석한다. 이러면 뉴스 속에 있는 가짜 논증이나 오류까지 믿어버린다.

 

스트레스의 원인은 다양한데, 그중 하나가 뉴스다. 뉴스를 보면 화가 나고 짜증 날 때가 있다.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는 사람은 뉴스에 나오는 범죄자를 보면 쌍욕을 내뱉는다. 그리고 정부에 대한 불만과 불신을 드러낸다. 온라인 아고라(agora)로 시작된 댓글 창은 뉴스를 보다가 스트레스 받는 사람들이 부정적 감정을 배출하는 온라인 아수라장으로 변질했다. 인간은 좋은 소식보다 나쁜 소식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한다. 뉴스 소비자의 심리를 자극하는 뉴스는 스트레스 호르몬의 분비를 촉진한다.

 

롤프 도벨리는 한 권의 좋은 책을 읽는 것이 뉴스에 파묻혀 사는 것보다 가치가 있다고 말한다. 그는 독자들의 지식 저장소가 텅텅 비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책을 읽으라고 권하는 것 같다. 하지만 지식 습득 방식으로 독서를 강조하는 그의 입장은 진부하다. 책에 너무 의존하는 것도 좋지 않다. 뉴스든 책이든 그 속에 있는 정보를 깊이 있게 분석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그래도 프로파간다와 거짓으로 채워진 뉴스에 조종당하지 않으려면 방어 체제를 갖춰야 한다. 가장 기본적인 방어 체제는 정보에 대해서 늘 끊임없이 생각하고, 검증하는 것이다.

 

 

 

 

 

[] 원문: 매일 신문을 읽는 당신은 진실을 읽는 것인가 아니면 프로파간다를 읽는 것인가?”, 뉴스 다이어트84쪽에 있다. 

 

 

Trivia

 

어떤 전쟁이 왜 발발했는지, 어떤 기술의 약진이 왜 일어났는지, 또는 축구 경기에서 바르셀로나가 왜 마드리드를 이겼는지 등의 이유는 분명하게 말할 수 없다. (63)

 

FC 바르셀로나가 이긴 팀이 레알 마드리드인지 아니면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인지 분명하게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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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라투스트라 2020-06-03 1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뉴스 다이어트 반드시 필요한 듯^^ 저도 그걸 시작한 게 한 10년은 넘은 것 같네요...

cyrus 2020-07-01 12:51   좋아요 0 | URL
네, 습관적으로 뉴스를 보는 것보다는 내가 어떤 이슈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을 때 뉴스를 보면 좋을 것 같아요. 사실 우리 사회의 모든 이슈에 관심을 가지는 일은 불가능해요. ^^

페크pek0501 2020-06-03 22: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은 책은 인식의 지평을 넓혀 주고, 균형 잡힌 사고를 하게 해 주죠. 문제는 어떤 책이 좋은 책인가 하는 거죠. 책을 사다 보면 잘못 샀구나, 할 때가 종종 있어요. 또 제가 좋은 책으로 알고 있는 책이 사실은 그렇지 않을 수 있죠.
뉴스는 더 하죠. ㅋ

cyrus 2020-07-01 12:53   좋아요 0 | URL
좋지 않은 책을 고르는 것도 좋은 책을 고르기 위한 과정의 일부에요. 저는 그게 부끄러워해야 할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

감은빛 2020-06-11 16: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요즘처럼 뉴스가 넘쳐나는 시대에는 뉴스 다이어트가 필요한 것 같아요.
그런데 또 자극적인 제목을 보면 나도 모르게 클릭을 하게 되죠.
이런 걸 자꾸 클릭하니까, 이런 저질 뉴스가 자꾸 나오고, 기레기들이 판치는거야
라고 생각은 하지만, 궁금한 건 또 못 참는 성격이라 결국 찾아보게 되더라구요.

cyrus 2020-07-01 12:54   좋아요 0 | URL
맞아요. 뉴스 내용이 부실하고 영양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제목 때문에 호기심이 생겨서 결국 보고 말아요.. ㅎㅎㅎ

Angela 2020-06-13 1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디어의 배신은 항상 맞는것 같아요. 그것 역시 사람이 만드는 것이니까요~^^

cyrus 2020-07-01 12:57   좋아요 0 | URL
믿는 언론에 뒤통수 찍힐 수 있어요.. ㅎㅎㅎㅎ
 

 

 

코로나19의 여파로 미국 메이저리그(MLB) 정규시즌 개막이 기약 없이 연기된 상태다. MLB 사무국과 선수협회는 시즌을 단축해 7월에 개막하는 방안에 대해 논의 중이다. 메이저리그 정규시즌 경기 수는 총 162경기인데 많게는 100경기까지 축소될 수 있다. 경기 수가 얼마나 줄어드느냐에 따라 0점대 평균자책점(ERA: Earned Run Average), 4할 타율 등 꿈의 기록들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

 

1941테드 윌리엄스(Ted Williams, 0.406)를 끝으로 메이저리그 78시즌 동안 4할 타자가 나오지 않았다. 1876년에 시작된 메이저리그에서 4할을 기록한 타자는 총 20명이다. 국내 프로야구(KBO) 유일의 4할 타자는 백인천(0.412)이다. 이 기록은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 시즌에 나왔다. 백인천은 72경기에 나와 250타수(298타석) 103안타(홈런 19)를 기록했다. 프로야구 첫 시즌이 팀당 80경기라서 정식 기록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 스티븐 제이 굴드 풀 하우스(사이언스북스, 2002)

 

 

 

4할 타자가 잘 나오지 않고 있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타자들의 타격 기술이 퇴보한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미국의 진화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Stephen Jay Gould)는 자신의 저서 풀 하우스4할 타자가 사라진 이유를 진화론적 관점으로 설명한다. 그는 4할 타자가 사라진 것이 오히려 프로야구 선수들의 전반적인 수준 향상을 증명해주는 현상이라고 주장한다. 4할 타자가 사라진 원인은 외부 요인 이론내부 요인 이론으로 나누어서 설명할 수 있다. 외부 요인은 타자들의 컨디션에 영향을 주는 것들을 의미한다. 빡빡한 경기 일정과 경기장 이동 경로는 선수들의 체력 회복을 더디게 한다. 언론의 열띤 관심과 취재 열기는 타자의 집중력을 방해한다. 4할을 눈앞에 두고 있는 선수는 기자들과 대중의 관심이 오로지 자신에게 향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타석에 들어설 때마다 심리적 압박감을 느낀다.

 

굴드가 풀 하우스에 언급하지 않은 외부 요인이 있다. 나는 심판의 일관성 없는 스트라이크 판정과 오심도 선수들의 기록에 영향을 주는 외부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2010년에 메이저리그 투수의 퍼펙트게임(선발 투수가 한 명의 타자도 진루시키지 않고 끝낸 게임. 홈런을 포함한 안타, 볼넷, 사구, 수비 실책 등 어떤 경우에도 타자를 진루시키지 않아야 한다) 기록이 심판의 오심에 의해 무산된 적이 있다. 그것도 경기 종료를 눈앞에 둔 9회 초에. 경기 중에 (ball) 판정을 받을 수 있는 공이 스트라이크가 되는 경우가 있다. 관중들도 납득하지 못하는 공 하나의 판정은 타자들의 기록 달성을 방해하는 요인이.

 

내부 요인은 투수의 투구 실력과 야수들의 수비 실력이다. 투수들은 타자들이 치기 어려운 다양한 구질을 구사하게 되었으며 구속도 증가했다. 야수들의 수비력도 많이 향상되었다. 날렵한 야수들은 안타가 될 수 있는 타구를 몸을 날려서 글러브로 잡아낸다.

 

 

 

 

 

 

 

 

 

 

 

 

 

 

 

 

 

 

* 정재승, 백인천 프로젝트 팀 외 백인천 프로젝트(사이언스북스, 2013)

 

 

 

정재승 교수는 굴드의 주장에 영감을 받아 역대 국내 프로야구의 데이터를 수집하여 백인천 이후 4할 타자가 나오지 않는 이유를 분석했다. 2012년에 시작한 일명 백인천 프로젝트는 자발적으로 지원한 100여 명과 함께 시작된 집단 연구 활동이다.

 

 

 

 

 

 

 

 

 

 

 

 

 

 

 

 

 

 

 

* 벤 올린 이상한 수학책(북라이프, 2020)

 

    

 

타율은 수학 공부를 포기한 사람들도 좋아할 수 있는 통계 지표다. 야구를 잘 모르는 사람도 타율이 높을수록 좋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이와 반대로 투수의 평균자책점은 낮을수록 좋다). 대중은 통계 수치가 객관적인 정보라고 믿는다. 그래서 타율이 높은 타자일수록 실력이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대부분 야구팬들은 3할을 기록하지 못한 타자를 비난한다. 그러나 타율 하나만으로 타자의 실력을 설명할 수 없다. 요즘 야구 전문가들은 타자를 평가할 때 타율보다는 장타율과 출루율(OPS: On base Plus Slugging, 장타율과 출루율을 합한 수치)을 중요하게 본다.

 

이상한 수학책17(‘마지막 4할 타자’)은 타율이 공식 야구 통계 지표로 만들어지는 과정과 타율을 대체하는 통계 지표에 대한 내용이다. 야구 규정의 역사까지 포함되어 있어서 숫자에 공포를 떠는 독자들도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다.

 

통계학자들은 타율을 오래된 유물 정도로 취급하지만, 타자들은 여전히 타율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들의 개인적인 목표는 타율 3할로 기록하면서 정규 시즌을 마치는 것이다. 타율은 구단의 연봉 고과 산정 기준이다. 타율 29푼의 선수와 타율 31푼의 선수가 받는 연봉 액수는 다르다. 물론 연봉을 많이 받으려면 타율뿐만 아니라 앞서 말한 출루율을 높여야 하고, 도루 성공 횟수도 많아야 한다. 타자는 여러 가지 개인 기록 관리에 신경을 쓰면서 경기에 임한다. 이러한 선수들의 마음가짐 또한 4할 타자가 나오지 않는 이유로 볼 수 있다.

    

 

 

 

 

 

 

 

 

 

 

 

 

 

 

* 테드 윌리엄스 타격의 과학(이상미디어, 2011)

 

 

 

홈런을 치지 못해도 출루율이 뛰어난 타자가 있다. 테드 윌리엄스는 타격의 과학이라는 책에서 자신만의 타격기술을 설명했다. 그는 눈으로 스트라이크 존을 77개의 구간으로 나눈 다음에, 투수가 던지는 볼이 자신이 좋아하는 구간으로 들어올 때까지 기다렸다고 한다. 테드 윌리엄스는 공을 오래 볼 줄 아는 선수였다. , 그는 선구안(batting eye)이 좋았다. 공을 장타로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이 있는데도 선구안이 나쁜 타자가 있다. 이런 선수들은 출루율과 장타율이 생각보다 그리 높지 않다. 박종윤(롯데 자이언츠, 은퇴)155타석 연속 무() 볼넷을 기록했다. 김동엽(삼성 라이온즈)은 장타력이 뛰어나지만, 선구안이 좋지 못해 삼진을 많이 당하는 편이다.

 

방망이를 투구에 잘 맞추는 능력도 좋지만, 그에 못지않게 제일 중요한 것은 선구안이다. 대중은 ‘4이라는 수치를 단순히 공을 잘 치는 능력을 보여주는 지표로 생각한다. 그러나 아무리 안타와 홈런을 많이 쳐도 4할을 기록할 수 없을 것이다. ‘공을 잘 보는 능력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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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0-06-03 13: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테드 윌리엄스의 기록이 더 대단한 건,
시즌 마지막 더블 헤더를 앞두고 타율
이 딱 4할이었었는데, 경기에 빠지지
않고 나와서 6안타를 때려내면서 오히
려 타율을 더 올렸다는 점입니다.

기록의 관리보다는 정정당한 승부에
나선 22살 청년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더라구요.

언급해 주신 디트로이트 갈라라가의
퍼펙트 게임을 망친 건, 바로 1루심의
오심이었죠.
그 시절엔 아마 비디오 챌린지가 없었
던 것 같은데...

어제 문득 빅 유닛의 최고령 퍼펙트
게임 마지막 이닝 동영상을 보았는데
마지막 타자 상대하면서 하이 패스트
볼로 99마일을 찍는 걸 보고는...

cyrus 2020-06-03 18:00   좋아요 1 | URL
이 글을 쓰기 전부터 메이저리그를 좋아하는 레삭매냐님이 댓글을 다실 거라 생각했습니다. 야구 마니아가 아닌 이상 테드 윌리엄스를 아는 사람이 있을까요? 테드보다 베이브 루스를 기억하는 사람이 많을 거예요. 베이브 루스가 위인전 단골 인물이거든요.

테드 윌리엄스에 대해서 조사를 해봤는데 정말 인품이 훌륭한 사람인 것 같아요. 소아암 아어린이 환자들을 위해 선행 활동을 했대요. 그리고 흑인 선수들을 ‘명예의 전당’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이 테드에요.

레삭매냐 2020-06-03 22:05   좋아요 0 | URL
싸이러스 브로가 놓은 덫에 보기
좋게 걸려 들었군요 파닥 파닥 ~~

테디는 2차세계대전 그리고 한국전
에도 참전한 베테랑이라고 하는군요.

어느 프로야구 선수가 전쟁터에
두 번이나 뛰어들었는지 그것 참.

감은빛 2020-06-11 16: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구를 한창 좋아했다가 고향을 떠나 살면서 야구를 안 본 세월이 또 한참이네요.
잘은 모르지만, 요즘은 대체 수준 대비 승리 기여도(WAR Wins Above Replacement)나
승리확률기여도(wpa) 등의 다양한 수치들을 중요하게 보는 것 같더라구요.
이런 걸 어떻게 계산하는 건지 잘 와닿지 않아서 다시 야구를 보는 것이 어렵게 느껴지네요.

cyrus 2020-07-01 13:00   좋아요 0 | URL
저도 수치 계산하는 방식은 몰라요. 타자들의 득점권 타율을 중요하게 보는 사람들이 있는데, 저도 이 수치에 관심이 많아요. 득점권에 들어선 타석에서 잘 쳐서 점수를 잘 내는 것도 좋은 타자의 조건이거든요.

Angela 2020-06-13 1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심판의 오심으로 승패만이 아니라 선수 승률에도 영향을 미치는것 같아요. 4할을 거의 불가능인것 같아요. 프로야구 보는 것도 소확쟁 중 하나예요^^

cyrus 2020-07-01 13:03   좋아요 0 | URL
리그 경기 수를 줄인다면 4할 타자 나올 가능성이 있어요. 그런데 야구 전문가들과 야구 마니아들은 경기 수가 축소된 리그에서 나온 4할 타자를 인정하지 않을 겁니다. 저는 이게 신기록을 세운 선수를 평생 부담스럽게 하는 꼬리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안젤라님은 어느 팀을 응원하는지 궁금하네요. ^^
 
충돌하는 세계 - 과학과 예술의 충돌이 빚어낸 전혀 새로운 현대예술사
아서 밀러 지음, 구계원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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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다른 두 가지 분야가 만나서 새로운 것을 만드는 시대지만, 과학과 예술은 가깝고도 먼관계이다. 대부분 사람은 과학과 예술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또 어떤 이에게 과학과 예술 모두 어려운 분야가 되기도 한다. 예술은 미학을 중시한다면, 과학은 객관적인 정보를 선호한다. 이 두 가지 분야의 뚜렷한 특성을 생각하면 협업이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새로운 소재와 기법을 찾으려는 예술가들(나중에 언급하지만, 이들은 자신을 예술가와 과학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은 도전에 힘입어 과학과 예술의 적극적인 협업이 이뤄지고 있다.

 

충돌하는 세계이미 오래전부터 형성된 과학과 예술의 협업 관계를 되짚어보는 책이다. 이 관계는 20세기부터 시작되었다. 아인슈타인(Einstein)은 특수상대성이론을 발표하면서 4차원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4차원은 3차원 공간과 시간(1차원)이 결합한 시공간이다. 아인슈타인과 동시대에 살고 있던 피카소(Picasso)는 재현을 추구하는 회화에 거스르는 그림을 공개했다. 그는 회화의 기본인 원근법을 무시하고, 다양한 시점을 한 폭의 그림에 담았다. 피카소의 등장은 입체주의(cubism)의 탄생을 예고하는 것이다. 당시 예술가들은 세상에 나온 지 얼마 안 된 상대성이론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4차원 시공간에 흥미를 느꼈다. 히 피카소는 4차원 기하학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석하여 그림을 그렸다. 피카소가 과학 지식을 활용해서 만든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아비뇽의 여인들>이다.

 

그동안 미술사는 선사시대부터 현대까지 시대 순으로 기술하는 통사(通史) 방식으로 다뤄왔다. 이렇다 보니 난해한 현대미술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저조할 수밖에 없다. 현대미술의 동향을 모르는 사람들은 과학과 예술의 협업 관계에 대해서도 모른다. 그러므로 충돌하는 세계는 미술사에 관심 있는 대중의 빈틈을 채워주는 책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대중은 과학과 예술이 함께 작업하면서 현대미술 발전에 기여하고 있는 사실을 모르면서 살아왔을까?

 

대중과 현대미술 간의 괴리감을 무관심한 대중 탓으로 돌릴 수 없다. 과학과 미술의 협업 자체를 아예 모르거나 새로운 시도를 애써 외면하는 미술 전문가들도 책임이 있다. 충돌하는 세계는 과학과 예술의 협업 관계를 통해 나온 성과들만 조명하지 않는다. 이 책의 저자는 과학과 예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예술가들을 인터뷰했다. 그리고 예술가들의 작업 방식과 예술관만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창작 활동을 하면서 느끼는 고충까지 보여준다. 저자가 만난 예술가들은 대체로 과학과 예술을 구분하지 않으며 자신을 과학자도, 예술가도 아닌 연구원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과학, 기술, 예술을 하나로 통합하려고 한다. 저자는 과학의 영향을 받은 예술, 또는 예술에 영향을 받은 과학을 아트사이(artsci)라고 부른다. 아트사이는 기존의 과학과 예술이 만나면서 탄생한 3의 문화이다. 그러나 순수미술을 지향하는 미술 전문가들은 아트사이의 등장을 의심한다. 이들도 사람인지라 새로운 예술의 등장에 거부감을 느끼기 마련이다. 주류 미술의 영향력이 사그라지지 이상 아트사이의 창작품이 대중과 소통하는 전시장은 부족하다. 그래서 아트사이 종사자들은 직접 갤러리를 만들어 작품 홍보에 주력하면서 자신들의 영향력을 넓히고 있다.

 

과학과 예술은 우리가 학습하면서, 당연하게 인식하는 사물과 현상에 새로운 눈길을 던지는 동시에 독특한 창작 활동을 통해서 이전에 없는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낸다. 과학과 예술이 서로 만나 부딪히는 경험들이 계속 늘어난다면 이 세상은 다양한 생각과 경험들이 들끓는 거대한 용광로가 될 것이다. 어렵게만 느껴지는 과학, 남의 것으로 여겼던 예술을 나만의 것으로 느끼고 싶지 않은가. 그러려면 지금 과학과 예술이 충돌하는 세계를 만나 보시라.

 

 

 

 

Trivia

 

  The critic Lucy Pippard noticed that one of the five sculptures was the “most crowed and most business element; it lacks the absurdity of the other four and is the least individually beguiling.

 

  비평가 루시 피파드는 다섯 개의 조각 중 하나에 대해 가장 번잡하고 실용적인 작품이며 다른 네 개의 조각처럼 부조리한 부분이 없는데, 개별적인 매력은 가장 떨어진다고 평했다. (68)

 

 

책에 루시 피파드라는 미술비평가 이름이 두 차례 나온다(68, 314). 원서 본문에 ‘Lucy Pippard’라는 이름이 나오며 참고문헌에 ‘Lucy Pippard’가 쓴 글의 출처가 있다.

 

그러나 구글에 ‘Lucy Pippard’를 입력하여 검색하면 ‘Lucy Lippard’와 관련된 정보만 나온다. ‘Lucy Pippard’와 관련된 정보가 없다는 셈이다. 루시 리파드(Lucy Lippard)는 미술비평가로 활동하고 있는 실존 인물이다. ‘Lucy Pippard’는 저자가 잘못 쓴 이름, 아니면 원서의 오자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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