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은경의 톡톡 칼럼 - 블로거 페크의 생활칼럼집
피은경 지음 / 해드림출판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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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점    ★★★    B





수필이나 에세이를 쓸려면 어떻게 써야 할까? 필자는 글쓰기를 업으로 삼은 사람이 아니라서 이런 질문에 대답할 깜냥이 되지 않는다. 그래도 딱 한 마디만 한다면 이렇게 대답하겠다. 조금도 과장하지 않고 자신이 경험한 걸 그대로 쓰세요.” 이 말은 어느 수필가의 글에 따온 문장을 살짝 바꾼 것이다. 피은경(블로거 닉네임: pek0501, 이 글에서는 간단하게 페크라고 부르겠다)의 글 배려에 관하여 2는 이런 문장으로 시작된다. “조금도 과장하지 않고 내가 경험한 걸 그대로 말하려 한다.” 


페크는 자신이 쓴 글을 생활칼럼이라고 명명한다. 생활칼럼은 우리 일상과 동떨어지지 않은 소재를 다룬 칼럼을 말한다. 생활칼럼에 나온 소재는 평범하면서도 친숙하다. 연애, 결혼, 인간관계, 인간 심리, 일상, 문화 등이다. 그래도 생활칼럼에서 가장 비중을 많이 차지하는 소재는 글쓴이 본인의 경험이다. 따라서 필자가 앞서 언급한배려에 관하여 2의 첫 문장은 생활칼럼을 쓰기 위해 반드시 기억해야 할 마음가짐이다.


누가 한 말인지 모르겠지만, 꾸며진 말에는 진실이 없고, 진실한 말은 꾸밈이 없다라는 말이 있다. 생활칼럼 모음집 피은경의 톡톡 칼럼은 글쓴이의 진실한 일상, 진실한 언어로 엮은 진실한 책이다. 그래서인지 글쓴이의 글을 읽으면 억지로 꾸민 느낌이 들지 않는다. 글쓰기 초보자는 글을 잘 쓰고 싶은 마음에 독자들이 감탄할만한 멋진 표현과 문장을 쓰려고 애쓴다. 이럴 때 필자는 글에 너무 힘을 준다라고 표현한다. 글을 잘 쓰고 싶어서 너무 힘을 주면(두뇌에 힘을 줘서 생각이 많아지면) 첫 문장을 제대로 쓰지 못하고 벌써 지쳐버린다. 글을 쓸 때 힘을 적당히 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꾸며진 글에 진실이 없어 보인다. 그럴싸하게 잘 꾸며진 글이어도 독자들의 긍정적인 눈길을 받지 못하면 무용지물이다. 페크의 글은 화려하지 않다. 그렇다고 그녀가 글을 쓸 때 안 꾸민다는 것은 아니다. 페크는 자신이 수집한 책의 구절과 명언들을 인용하면서 글의 내용을 전개한다. 문장 인용은 글쓴이가 글을 꾸미기 위해 쓴 유일한 방식이다.


밥을 한 숟갈 먹고는 배가 부르지 않는다. 무슨 일이든 처음부터 만족할 수 없다. 첫 번째 책을 펴낸 글쓴이도 그렇게 생각하리라. 필자가 글쓴이의 불만족을 잘 이해했는지 모르겠다. 필자는 글쓴이의 입장이 되어 이 책의 아쉬운 점을 꼽아봤다.


글쓴이가 언급한 책 제목을 한 가지로 통일해서 써야 한다. 같은 내용의 책을 두 개의 제목으로 소개하면 독자에게 혼란을 준다.

 

 

* 101[독서가 삶에 도움이 될까, 안 될까]

서머싯 몸의 <인간의 굴레에서 1>에 있는 글이다.

 

 

* 137[결핍의 힘]

 <달과 6펜스><인간의 굴레>로 유명한 작가 서머싯 몸은 열 살 때 부모를 잃고 백부 집에서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 141[거짓말이 허용되는 조건]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 미제라블>에 장발장이라는 인물이 나온다. 그는 배고파하는 어린 조카들을 위해 빵 한 조각을 훔친 죄로 감옥에서 19년의 세월을 보내다가 석방한다.

 

 

* 174[그냥 지나친 적은 없는가]

빅토르 위고의 <가난한 사람들>이란 소설의 내용이다.

 

 

<인간의 굴레에서 1>은 민음사 판의 제목이다. <가난한 사람들><레 미제라블>(Les Miserables)의 이명(異名)이다.


필자의 착오로 인해 나온 견해라서 취소 선을 그었습니다




* 123[부자의 불행과 빈자의 불행]

 연암 박지원의 소설 <예덕선생전>에 매력적인 인물 둘이 나온다. [중략]저 넓디넓은 소매돋이를 입는다면 몸에 만만치 않고, 새 옷으로 갈아입는다면 다시금 길가에 똥을 지고 다니지는 못할 것이 아니오.

 

 

소매돋이는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없는 단어다. ‘소매라고 쓰면 되는데(<예덕선생전>을 우리말로 풀이한 글에도 그렇게 쓰여 있다) 글쓴이가 무슨 이유로 소매돋이라는 표현을 쓴 건지 무척 궁금하다.

 

 

 

* 160[모르는 소리 하지 마]

 백조의 우아한 모습만 보느라고 물밑에선 열심히 발을 움직이고 있음을 놓치는 일이 없도록 하자. 겉으로 보이는 것만 보지 않도록 하자.

 

 

백조의 다리는 길기 때문에 물갈퀴를 빨리 움직이면서 헤엄치지 않는다. 반면에 오리의 다리는 짧아서 헤엄칠 때 물갈퀴를 빨리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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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08 13: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20-12-08 15:30   좋아요 1 | URL
솔직히 말해서 저는 책의 오자나 오류를 알리려고 출판사에 전화를 하거나 출판사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린 적이 단 한 번도 없어요. 출판사 관계자들이 알라딘 독자 리뷰를 볼 거라고 순진하게 생각했어요. 가끔 출판사 관계자가 제 글을 확인하고 댓글을 달긴 해요. 오히려 OOO님이야말로 대단한 거죠. OOO님은 저보다 실행력이 많아요. ^^
 

 

 

 

미주(尾註)알 고주(考註)

 

EP. 2

 

 

 

 

미주알고주알: 아주 사소한 일까지 속속들이

 

미주알: 항문에 닿아 있는 창자의 끝부분

 

고주알: 미주알과 운을 맞추기 위해 만들어진 의미 없는 단어

 

미주(尾註): 논문 따위의 글을 쓸 때, 본문의 어떤 부분의 뜻을 보충하거나 풀이한 글을 본문이나 책이 끝나는 뒷부분에 따로 달아놓은 것

 

고주(考註): 깊이 연구하여 해석하거나 풀이함 또는 풀이한 주석

 

 

 

 

 

 

 

 

 

 

 

 

 

 

 

 

 

 

 

 

 

 

 

* 호프 자런 랩 걸: 나무, 과학 그리고 사랑(알마, 2017)

 

* Hope Jahren Lab Girl(Vintage, 2017)

 

 

 

 

 

 

 

1

 

 

* 158

  어떤 과학자들은 나처럼 현대 미술을 하듯 거대하고 전체적인 결과를 선호하고 눈을 방해하는 규칙은 적을수록 좋다는 생각을 가지고 일한다. 우리는 덩어리파라고 불린다. 세부 사항들을 덩어리로 뭉쳐서 작업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빌과 같은 과학자들은 인상파 화가들처럼 붓질 하나하나가 모두 개별적인 의미를 가져야 일관성 있는 전체를 형성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들은 쪼개기파로 불린다. 미묘한 차이를 가진 세부 사항들을 모두 각각 다른 범주로 쪼개서 작업하기 때문이다.

 

 

[] 원문, <Lab Girl> 110

  Others, including Bill, are more like the Impressionists, convinced that each brushstroke must be executed with individuality in order to achieve a coherent whole.

 

 

[] 붓으로 점을 찍어 그림을 그리고 난 후에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완성된 그림을 바라보라. 그러면 여러 개의 점으로 이루어진 색들이 시각적으로 결합되어 보인다. 이러한 표현 방식과 관련된 이론을 점묘주의(Pointillisme) 또는 분할주의(Divisionnisme)라고 한다. 조르주 쇠라(Georges Pierre Seurat)는 색채 혼합의 과학적 원리와 광학 이론을 적용한 점묘법으로 그림을 그렸다. 쇠라와 친한 폴 시냐크(Paul Signac)는 점묘주의보다 분할주의라는 용어를 선호했다. 두 사람은 신인상주의(neo-impressionism)를 대표하는 화가로 평가받는다. 따라서 쪼개기 파(splitters)에 해당한 과학자들의 연구 방식은 신인상파 화가의 작업 방식과 비슷하다.

 

 

 

 

 

 

2

 

 

* 187~188

  차를 타고 목적지도 없이 한 블록도 가기 전에 우리는 고양이 울음소리와 함께 차에 뭔가 딱딱한 것이 부딪치는 걸 느꼈다. 펠리스피어[]라는 고양이 왕국을 지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애리조나에 만든 바이오스피어 프로젝트를 흉내 내서 빌과 내가 펠리스피어라고 이름 붙인 그곳은 제대로 기능을 하는 고양이들의 생태계가 형성되어 있는 장소였다.

 

 

[] 책에 펠리스피어(Felisphere)’라는 단어의 유래가 언급되지 않았다. 아마도 세계 최초의 애니메이션 캐릭터인 펠릭스 더 캣(Felix the Cat)’바이오스피어(Biosphere: 생명권)’를 합쳐서 만든 단어일 것이다.

 

 

 

     

 

펠릭스는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고양이 캐릭터이다. 미키 마우스(Mickey Mouse), <톰과 제리>(Tom and Jerry)의 톰보다 국내 인지도가 낮아서 그렇지 올해로 101(1919년 생)가 된 캐릭터. 미키 마우스(92, 1928년 생)보다 먼저 나왔다.

 

혹자는 펠리스가 궁전을 뜻하는 단어라고 생각할 것이다. 펠리스피어를 고양이들이 사는 궁전으로도 해석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럴 듯한 가설이다. 하지만 궁전을 뜻하는 영단어는 ‘Palace’이며 우리말 표기는 팰리스.

    

 

 

 

 

 

3

 

 

* 194

  책은 가슴 아픈 희생의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 우리 칼데콧 상(미국에서 우수 아동서적[]에 수여하는 상옮긴이)도 받겠다.” 특히 생산적인 편집을 했다는 생각이 든 어느 날 밤 내가 선언했다.

 

 

[] 원문, <Lab Girl> 136

“That’s pure Caldecott, right there.”

 

 

[] 저자의 동료 (Bill)은 자신이 자른 머리카락을 나무 둥치에 보관했고, 저자와 빌은 늦은 밤에 나무를 방문한다. 두 사람은 빌의 삶에 바탕을 둔 어린이 책(children’s book, 원서: 135)을 쓰기 시작한다. 두 사람이 생각한 이야기의 제목은 (욕심이 많아서 무엇이든) 아낌없이 뺏는 나무(The Getting Tree, 원서: 135)’. 저자는 기가 막히게 잘 만든 이야기 책에 스스로 감탄하면서 , 우리 칼데콧 상도 받겠다라고 말한다.

 

이 문장의 원문은 “That’s pure Caldecott, right there.”(원서 136)이다. ‘right there’바로 그곳에’, ‘으스대며’, ‘기꺼이라는 뜻을 가진 표현이다. 문장 전체를 직역하면 이게 바로 순수한(완전한) 칼데콧이야가 되는데 이렇게 쓰면 독자는 문장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역자는 저자의 말을 칼데콧 상도 받겠다라고 의역했다

 

 

 

 

 

 

 

 

 

 

 

 

* 랜돌프 칼데콧 칼데콧 컬렉션 1(아일랜드, 2014)

* 랜돌프 칼데콧 칼데콧 컬렉션 2(아일랜드, 2015)

 

 

 

칼데콧 상(Caldecott Award, Caldecott Medal)어린이 그림책(picture book for children)을 잘 만든 사람에게 주는 상이다. 이 상은 영국의 그림책 작가 겸 일러스트레이터 랜돌프 칼데콧(Randolph Caldecott)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제정되었다. 아낌없이 뺏는 나무이야기를 만든 저자와 빌은 칼데콧 상을 받을 수 없다. 저자와 빌이 함께 만든 어린이 책에 삽화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랩 걸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저자와 빌은 이야기를 구상했지 삽화를 그리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저자는 칼데콧을 작가로 착각했고, 역자는 칼데콧 상에 대한 설명을 잘못 썼다. 미국에서 우수 아동서적에 수여하는 상은 뉴베리 상(Newbery Awards, Newbery Medal)이다. 저자는 아낌없이 뺏는 나무이야기가 훌륭하다는 생각을 위트 있게 표현하려고 작가 이름을 언급했다. 저자가 착각하지 않았으면 삽화가 칼데콧이 아닌 작가의 이름이 언급되었을 것이다. 뉴베리 역시 실존 인물이다. 그는 어린이 책을 쓴 작가가 아니라 아동 도서 전문 출판인이다. 다시 정리하자면, 저자는 칼데콧을 어린이 책을 쓴 작가로 잘못 알았으며 문장을 의역한 역자는 칼데콧 상 잘못 설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역문은 아낌없이 먹는 나무이야기에 대단히 흡족한 저자의 감정 상태를 잘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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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20-12-08 1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주알 고주알 완전 신기하네요. 그리고! 헉 이런 세세한 잘못을 잡아내시다니! 그저 놀라울 따름입니다.

cyrus 2020-12-08 21:39   좋아요 0 | URL
제가 잘못 알고 있거나 틀린 내용이 있을 수 있습니다. 누군가가 제 의견을 반박하는 주석(댓글)을 남길 겁니다. ^^
 
랩 걸 - 나무, 과학 그리고 사랑 사이언스 걸스
호프 자렌 지음, 김희정 옮김 / 알마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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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점    ★★★    B

 

 

 

 

 

‘lab’‘laboratory(실험실)’의 준말이다. 과학자 호프 자런(Hope Jahren)은 어린 시절에 과학 교수인 아버지의 실험실에서 혼자 노는 것을 좋아했다. 아버지의 실험실은 그녀가 자유롭게 기계의 세계를 탐험할 수 있는(31) 장소였다.

 

영국의 작가 버지니아 울프(Virginia Woolf)의 대표작인 자기만의 방(A Room of One’s Own)여성과 소설을 다룬 주제를 다룬 강연문을 에세이 형식으로 정리한 책이다. 그녀는 이 책에서 여성이 소설을 쓰려면 돈과 방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돈과 방은 자유롭게 사색할 수 있고, 편안하게 글을 쓰기 위해 있어야 할 최소한의 기본 조건이다. 호프 자런의 첫 번째 책 lab girl(랩 걸)과학자가 되고 싶은 여성을 위한 자기만의 방과학 버전이다. 혼자 실험할 수 있는 나만의 실험실이 없으면 창의적인 생활은 불가능하다. 실험실은 휴식을 겸할 수 있는 과학자의 집이다. 자런은 대학교 건물 안에 있는 T309호실을 개인 실험실(the Jahren Laboratory)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그녀는 실험실에 있으면 아버지의 실험실에서 놀던 어린 시절의 모습이 된다. 자런은 친한 동료 빌(Bill)과 함께 매일 밤마다 실험실을 꾸몄다. 그녀는 당시 상황을 어린 소녀들이 인형의 옷을 여러 번 갈아입히는 일(141)’처럼 느꼈다고 회상했다.

 

나만의 실험실을 마련하고, 이 공간을 계속 유지하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 자런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대학원생이 과학자로서 제대로 인정받으려면 오랜 시간이 걸리는데, 이 과정에서 경제적으로 압박을 많이 받는다. 연구 기반을 갖추지 못한 과학도들은 제대로 연구를 할 수 없다. 획기적인 연구 결과는 단기간에 나오지 않는다. 만족할만한 결과가 나올 때까지 수백 번 이상의 연구를 시도해야 하며(실패를 겪어야 하며) 절대로 중도에 포기해선 안 된다. 자런은 진정한 과학자가 되려면 자신만의 실험을 개발하고, 그렇게 해서 완전히 새로운 지식을 생산해야 한다고 말한다(99). 그러기 위해서 국가는 과학도들이 마음껏 연구할 수 있도록 경제적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무엇보다도 과학자들이 실패해도 계속 이어서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

 

랩 걸은 여성 독자, 특히 과학기술 분야에 종사하고 싶은 여성에게 중요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이 중요한 까닭은 자런이 과학자로서 살아온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전문직 여성이 처한 일상적인 문제들을 거론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런은 과학자라는 명함을 가진 것만으로 여성이 자신만의 연구를 시도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녀가 이 책에서 강조하는 것은 과학자로서 진짜 자신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고,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편안한 실험실의 필요성이다.

 

랩 걸은 크게 나무과학(식물학)을 주제로 한 이야기들로 이루어져 있다. 저자는 식물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의인화하여 표현한다. 특히 저자가 어린 시절에 만난 은청가문비에 대한 글(2)은 문학 교과서에 실릴 만한 글이다. 저자는 평범하고 초라해 보이고,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은청가문비에 생명과 성격을 부여함으로써 일반인이 보지 못한 나무의 삶을 들려준다.

 

어떤 독자는 저자의 글쓰기 방식이 산만하다고 불평하면서 랩 걸과학책같지 않다고 했다. 앞서 필자가 말한 두 가지 주제의 글이 이리저리 번갈아 가면서 전개되기 때문에 독자들은 그렇게 느낄 수 있다. 저자가 개인적인 일상을 주저리주저리 서술한 것에 대해서도 불만이 있는 독자도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의 제목이 랩 걸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저자의 산만한 글쓰기를 이해해줘야 한다. 직히 말해서 《랩 걸은 잘 만든 책은 아니다(이유는 후술할 ‘Mini 미주알고주알’을 참조할 것). 하지만 저자는 마치 정해진 틀에 벗어나 쓰고 싶은 대로 쓰는 자유로운 사고방식을 가진 랩 걸이 되어 글을 썼다. 과학책이라고 해서 무조건 과학적인 내용만 잔뜩 있어야 하나. 랩 걸이전에도 국내외 과학자들은 에세이 형식으로 된 과학책을 썼다. 랩 걸은 과학 책이다.

 

 

 

 

 

 

 

 

Mini 미주알고주알

 

 

    

 

* 187

    

 

 

 

 

 

원문(<Lab Girl>, 131): goose-shit yellow

 

‘goose’거위를 뜻한다. 갈매기를 뜻하는 영단어는 ‘gull’이다. 그리고 노랑색은 비표준어. 노랑 또는 노란색이라고 써야 한다.

 

 

 

 

* 187~188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애리조나에 만든 바이오스피어 프로젝트라는 표현이 어색하다. 바이오스피어 프로젝트가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진행되었다는 것일까, 아니면 애리조나에서 진행되었다는 것일까. 원서(132쪽 참조)에는 ‘Biosphere project’라고 적혀 있는데, 정확한 명칭은 ‘Biosphere 2 project’. 저자는 프로젝트 명칭을 착각하여 잘못 썼다. 실제로 캐나다 퀘백 주 몬트리올에 ‘Biosphere’라는 생태 박물관이 있다. ‘생물권으로 번역되기도 하는 바이오스피어는 지구 전체 생태계를 의미한다.

 

바이오스피어 2는 햇빛을 제외하고는 외부와 완전히 격리된 거대한 돔이며 투명 유리로 만들어졌다. 이 구조물 안에 인간 거주지와 동식물을 위한 생태 구역이 조성되었다. 따라서 ‘Biosphere 2’ 인공 지구 생태계. 바이오스피어 2 프로젝트는 1991년에 애리조나에 완공되었다. 1995년부터 2003년까지 컬럼비아 대학교가 바이오스피어 2를 관리했고, 지구 온난화가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를 수행했다. 현재 구조물은 애리조나 대학교가 소유하고 있으며 연구시설 및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번역본에 있는 문장을 컬럼비아 대학교가 주관하고, 애리조나에서 진행된 바이오스피어 2 프로젝트로 고쳐 쓸 수 있다.

    

 

 

 

 

* 193

 

  “너구리들이 또 아기 너구리들을 갖게 될 거야. 털이 더 필요해.”

 

  “팔을 둥치에 난 구멍으로 집어넣어봐. 너구리들이 씹을 수 있게. 노인의 팔은 씹는 데 아주 좋거든.”

 

 

[원문, <Lab Girl> 135]

“The raccoons are having baby raccoons again; I need more hair.”

 

“Stick your arm in the hollow, then, and the raccoons will chew it. An old man’s arm is good for chewing anyway.”

 

 

라쿤(raccoon, 학명: Procyon lotor)’너구리와 같은 종으로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라쿤을 너구리로 번역하는 것은 오역이다. 라쿤은 너구리와 비슷하게 생긴 동물이다. 그래서 라쿤을 미국 너구리라고 부르기도 한다. 다른 이름 때문에 라쿤을 너구리와 같은 종으로 오해하기 쉽다. 너구리를 뜻하는 영단어는 ‘Raccoon dog’이다. 미국인들은 너구리를 라쿤을 닮은 개로 여긴다. 너구리의 학명은 ‘Nyctereutes procyonoides’.

 

 

 

 

 

* 272

 

    

 

 

원문, <Lab Girl> 190: “Shit, this thing will need gas witnin a couple of hours. I should have filled up while you were back there playing Goldilocks.”

 

<곰 세 마리>는 영국의 전래동화 골디락스와 곰 세 마리(Goldilocks and the Three Bears)’를 말한다. 골디락스는 금발을 뜻하며 동화의 주인공인 금발 소녀의 이름이다. 골디락스는 숲속을 헤매다 세 마리의 곰이 살고 있는 오두막을 발견한다. 오두막 주인인 곰들은 외출한 상태였다. 골디락스는 빈 오두막에 들어갔고(무단 주거 침입), 부엌의 식탁에 있는 오트밀 죽 세 그릇을 발견한다. 첫 번째 죽은 너무 뜨거웠고, 두 번째 죽은 너무 차가웠고, 세 번째 죽은 먹기 좋게 온기가 적당했다. 골디락스는 세 번째 죽을 먹는다. 식사를 마친 골디락스는 세 개의 의자 중에 자신에게 딱 맞는 의자에 앉지만, 그 의자는 부서져버렸다. 소녀의 철없는 행동은 계속되는데, 이번에는 침실에 들어간다. 소녀는 침실에 있는 세 개의 침대 중에 너무 푹신하지도 않고, 너무 딱딱하지 않은 침대 하나를 고른다. 그리고 그 침대에 누워 잠든다.

 

금발이 놀이는 동화에 묘사된 소녀의 민폐 행동을 의미한 것으로 보인다. 역자는 골디락스를 금발이로 번역했는데, 동화를 잘 모르는 독자들은 금발이 놀이가 무슨 뜻인지 알지 못한다. 역자는 금발이가 누군지 설명한 내용이 있는 주석을 달았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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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0-12-07 2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과학자도 자기만의 실험실이 필요하리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는데..... 역시 어떤 일이든 어려움이 없는 일은 없는 것 같네요. 자기만의 실험식이라 저건 진짜 돈이 많이 필요할 거 같은데... 어떤 연구든 제대로 연구를 하기 위해서는 제도적이고 국가적인 지원이 많이 필요하군요.

cyrus 2020-12-08 09:10   좋아요 0 | URL
호프 자런이 연구실을 마련하는 모습은 우리나라 현실을 생각하면 어려운 일인 건 사실이에요. 건물주가 아닌 이상 개인이 연구실을 가진다는 건 불가능해요. ^^;;

Angela 2020-12-08 0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제 랩걸읽었는데~새로운 해석이네요. cyrus님 오랜만에 반가워요

cyrus 2020-12-08 09:11   좋아요 0 | URL
오랜만입니다. 안젤라님. ^^

han22598 2020-12-08 02:5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글 잘 읽었습니다 ^^ 울프의 방과 자런의 방을 연결시킨 점이 새롭네요. 하지만 두개 방의 속성은 조금 다른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글쓰기에서 필요한 방보다는 실험실에서 필요한 방의 특성을 더 잘 알 고 있기 때문에 제 생각이 편협할 수 있다는 것은 감안해주시기 바랍니다.)

두방의 큰 차이점 중의 하나는, 그 방의 퀄러티와 그 방에서 나온 결과물의 질에 대한 상관 관계입니다. 글쓰기의 방의 퀄러티가 그 방 주인의 글의 수준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고 이야기할 정도로 방을 내어주는 것만으로도 실상 여자들의 글쓰기는 가능해지고, 그 이후의 개인의 능력과 창조적인 일을 하라 수 있는 최소한의 여건은 마련된 것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실험실이라는 이야기 하는 랩방은 그 방의 퀄러티가 매우 중요한 것 같습니다. 물론 방을 만들었다는 것만으로도 어느정도 실험은 가능할 수 있겠지만, 아무리 뛰어난 능력과 아이디어가 있어도, 그러한 것들을 실현할 수 있는 실험자재, 도구들이 없거나 오래된 것들이라며, 실험이 거의 불가능하거나 실험속도가 매우 느려지게 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랩 퀄러티에 따라 창조적(?)인 실험들을 가능해지고 불가능해지는 것이 결정되어지는 경우가 많은 것 같더라고요. 더 많은 여성과학자들에게 실험할 수 있는 공간이 허락되는 것도 필요하지만 (어느 영역이 안그러겠냐만은) 주류의 남성 과학자들처럼 퀄러티 있는 랩을 꾸려갈 수 있는 기회도 동등하게 주어져야하는 것 같아요.

cyrus 2020-12-08 09:24   좋아요 1 | URL
울프의 방과 호프 자런의 실험실을 연결한 이유는 단순해요(어떻게 보면 이 생각 또한 편협해보일 수 있어요). 첫 번째는 둘 다 방입니다. 두 번째는 둘 다 글을 쓸 수 있는 공간입니다. <랩 걸>에서 자런은 실험실을 ‘글을 쓰는 곳(36쪽)’이라고 했거든요. ‘실험실’ 하면 일반적으로 떠오르는 게 과학자들이 모여서 실험할 때 쓰이는 장소라는 것입니다. 지금은 과거보다 과학계에 진출한 여성이 늘었지만 여전히 여성 과학자에 대한 편견이 남아 있다면 여성 과학자가 실험실을 주도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분위기는 무르익지 않았을 것입니다. 제가 잘 몰라서 그런데 여성 과학자들이 많이 드나드는 실험실이 우리나라 어딘가에 있겠죠? ^^;;

국내 과학계 현실을 책과 언론으로만 접했기 때문에 과학계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자세히 모릅니다. 막연하게 과학기술 분야에 종사한 사람들 모두 잘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듭니다. han님이 말씀하신 ‘실험실을 꾸려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한다는 의견에 공감합니다. ^^

2020-12-11 03: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주석(註釋)은 낱말이나 문장의 뜻을 쉽게 풀이한 글을 말한다. 동서양을 불문하고 옛사람들은 종교 경전에 적힌 모든 내용을 그대로 읽지 않았다. 경전을 공부한 사람들은 책이 귀했던 시대에 살았다. 그들은 특별한 장소(오래된 책들이 보관된 수도원의 도서관)에 가야만 볼 수 있는 책을 어름어름 읽지 않았다. 수준 높은 학자는 책 속에 있는 구절이나 단어의 의미를 보충 설명해줄 수 있는 자신의 견해(저작권이 없는 시대에 살았던 학자들은 다른 책에서 본 내용을 베껴서 쓰기도 했다)를 여백에 적었다. 주석 쓰는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을 주석가(exegetist)라고 한다. 경전의 여백에 익명의 주석가들이 남긴 주석들이 빼곡히 채워져 있으면 경전을 공부하는 사람이나 또 다른 익명의 주석가는 주석들을 하나라도 빠지지 않고 읽었다. 대담한 성격의 주석가는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관점으로 경전 구절을 해석한 내용을 주석으로 쓰기도 했다. 다른 사람이 쓴 주석을 비판하기 위해 꼬리에 꼬리를 물듯이 주석을 새로 단 주석가도 있었다.

 

경전 한 권에 적힌 수많은 주석을 모아놓으면 또 한 권의 새로운 책이 된다. 주석만 모아놓은 책은 경전을 치밀하게 읽은 주석가들의 다양한 생각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주석 전집은 경전 공부를 시작하려는 사람들에게 큰 도움을 준다. 그러나 주석가들도 사람인지라 경전의 원문을 오독할 수 있다. 주석가가 경전을 공부하면서 실수로 내용을 잘못 이해했다면 너그러이 봐줄 수 있다. 그러나 지적 우월감에 빠진 채 허술한 설명의 주석을 달아놓거나 특정 종파 및 학자들의 집단을 옹호하기 위해 정직한 비판을 피한 주석가들은 경전의 소중한 여백을 줄어들게 만든 주범이다.

 

주석을 다는 일은 아주 오래전부터 학자들이 선호한 공부법이자 독서법이다. 그렇지만 오늘날에 주석가라는 직업으로 알려진 유명한 사람을 손꼽기 힘들다. 명망 있는 주석가가 있어도 후대 사람들은 그를 학자로 보지 않는다. 어떤 책을 쓴 저자는 유명한 고대 및 중세 사상가를 학자 겸 주석가로 소개했다. 그러나 학자주석가를 서로 무관한 별개의 직업으로 볼 수 없다. 유명한 학자들은 주석을 달면서 공부했다. 후대의 학자들은 책의 여백에 남아 있는 선대의 흔적들을 쫓아 꼼꼼히 공부하고 분석했다.

    

 

 

 

 

 

 

 

 

 

 

 

 

 

 

 

 

* 표정훈 탐서주의자의 책: 책을 탐하는 한 교양인의 문..철 기록(마음산책, 2004)

 

평점: 3점   ★★★   B

    

 

 

도서평론가 겸 번역가 표정훈은 익명의 주석가(탐서주의자의 책에 수록)라는 글에서 책 읽는 사람(독서인)이란 기본적으로 주석가라고 말했다. 그가 새롭게 정의한 주석가는 책 속에 있는 지식과 정보를 모아서 재편집하는 지식 네트워커(knowledge networker). 지식 네트워커는 지금 들어도 생소한 단어다. 하지만 표 씨의 글이 나온 지 십여 년이 지난 지금 누구든지 글을 쓸 수 있는 시대가 되었고, 지식 네트워커라고 불릴 만한 독자들이 생겨났다.

    

 

 

 

 

 

 

 

 

 

 

 

 

 


 

 

 

* 이반 일리치 텍스트의 포도밭: 읽기에 관한 대담하고 근원적인 통찰(현암사, 2016)

    

평점: 4점   ★★★★   A-

 

 

* 에라스무스 외 공부의 고전: 스스로 배우는 방법을 익히기 위하여(유유, 2020)

 

평점: 3점   ★★★   B

    

 

 

12세기에 활동한 수도사이자 신학자인 성 빅토르의 후고(Hugh of Saint Victor)는 성서에 대한 주석을 많이 남겼다. 그는 성서와 철학 등의 학문을 공부하는 수도원 학생들을 위해 디다스칼리콘(Didascalicon, 교육론)이라는 책을 썼다. 사상가 이반 일리치(Ivan Illich)디다스칼리콘을 분석하여 옛사람들이 생각한 독서와 공부의 의미를 추적했다. 그가 쓴 텍스트의 포도밭디다스칼리콘을 재해석한 주석이라 할 수 있다. 암기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후고의 훈계(?)를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독서와 공부의 기본적인 의미를 확인하여 나태해진 마음에 새기고 싶을 때 공부의 고전에 수록된 디다스칼리콘을 읽으면 된다. 공부의 고전공부를 주제로 한 옛사람들의 글 모음집이다. 이 책에 번역된 디다스칼리콘은 서문과 1, 3부의 내용 일부이다. 그래서 글의 분량이 많지 않다.

 

중세 이탈리아의 신학자 보나벤투라(Bonaventura)는 책을 만드는 사람을 4가지로 정의했다. 그 중에 하나가 주석가다.

 

 

 책을 만드는 데에는 네 가지 길이 있다. 한 가지도 보태거나 바꾸지 않고 다른 사람의 말을 적는 사람이 있는데, 그렇게 하는 사람은 서기(scriptor). 다른 사람의 말을 적으면서 자신의 말이 아니라 하더라도 뭔가 보태는 사람도 있다. 이렇게 하는 사람은 편찬자(compilator)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과 말과 자신의 말을 모두 적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 경우에는 다른 사람의 자료가 지배적이며 그 자신의 말은 설명하기 위한 부록처럼 덧붙인다. 이렇게 하는 사람은 저자라기보다는 주석가(commentator)라고 부른다. 그러나 자신에게서 나오는 것과 남에게서 나온 것을 모두 쓰되, 자신의 말을 확인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남의 자료를 붙이는 사람은 저자(auctor)라고 부른다.

 

(텍스트의 포도밭163~164)

 

 

네 가지 유형 중에서 내가 선호하는 것은 주석가다. 나는 익명의 독자들에게 쓸모 있는 익명의 주석가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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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0-12-07 15: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알라딘에 오지 않는 동안 독서에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른 사람들이나
읽을 법한 책들을 읽으셨구만.
난 본문 읽기도 벅차서 주석 달린 책은 잘 못 읽겠더라구.
몇 줄 읽다가 번호찾아 주석 읽으면 흐름이 끊기고 시간도 많이 걸려서
결국 읽다 포기하게 돼.
표정훈의 책 오래 전에 읽었는데 없는 걸 보면 누구한테 보내러렸나 보다.ㅠ

cyrus 2020-12-07 19:05   좋아요 1 | URL
책 본문을 주석과 병행해서 읽으면 시간이 오래 걸리긴 해요. 그래서 요즘은 주석을 보지 않은 채 본문을 다 읽고 난 후에 두 번째 독서를 할 때 주석을 읽어요. 이러면 자연스럽게 한 권의 책을 두 번 읽게 되는 거죠. ^^
 

 

 

 

scott님의 도움을 받아 One Hundred Years of Solitude(약칭 백 년’) 번역본 2(문학사상사, 민음사)의 번역 실태에 대한 글을 다시 쓸 수 있게 되었다. scott님이 아니었으면 이미 썼던 두 편의 글은 필자의 부족한 외국어 실력만 드러낸 부끄러운 반쪽짜리 작업의 결과물이 될 뻔했다. scott님은 스페인어로 된 원작에 있는 원문을 직접 찾아 확인해주셨다. 그리고 스페인어 원문과 국역본 2종의 번역문을 비교 분석도 해주셨다. 이 글을 통해 scott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 가르시아 마르케스, 안정효 옮김 백년 동안의 고독(문학사상사, 2005)

    

 

 

 

 

 

 

 

 

 

 

 

 

 

 

 

 

* 가르시아 마르케스, 조구호 옮김 백년의 고독(민음사, 2000)

 

 

 

    

 

이 글은 기존에 썼던 두 편의 글을 보완한 글이다. 새로 추가된 내용은 댓글에 있는 scott님의 의견이다. 그래서 scott님이 단 댓글의 내용을 인용했다글을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scott님의 댓글 내용 중 필자가 쓴 글과 중복된 내용(영문판 원문과 국역본 2종에서 인용한 문장)은 제외했다백 년번역본 2종과 관련된 새로운 내용이 나오는 대로 계속 추가할 것이다.

 

 

 

 

 

 

 

 

 

1

 

 

* 영문판

  Úrsula on the other hand, held a bad memory of that visit, for she had entered the room just as Melquíades had carelessly broken a flask of bichloride of mercury. Its the smell of the devil, she said. Not at all, Melquíades corrected her. It has been proven that the devil has sulphuric properties and this is just a little corrosive sublimate.

 

 

* 문학사상사 10

  우르슬라만큼은, 멜키아데스가 실수로 제2산화수은이 담긴 병을 깨뜨린 순간 방에 들어섰기 때문에, 그의 방문에 대해 별로 좋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 냄새, 정말 악마의 냄새처럼 고약했어요.” 우르슬라가 말했다. “아닙니다.” 멜키아데스가 대꾸했다. 지옥의 악마한테서는 유황 냄새가 나는데, 그날 부인이 맡은 냄새는 거기에 비하면 퍽 고상했죠.”

 

 

* 민음사 119

  멜키아데스가 2염화수은이 담긴 유리병을 실수로 깨뜨리는 순간에 하필 그의 방에 들어갔던 우르술라는 그의 방문에 대해 좋지 않은 기억을 간직하게 되었다.

이건 악마의 냄새예요그녀가 말했다.

그렇지 않습니다멜키아데스가 바로잡아 주었다. 「악마는 유황 성분을 지니고 있다는 게 밝혀졌고요, 또 이건 단지 약간의 염화수은일 뿐이지요

 

 

 

* 필자가 쓴 것

 

bichloride of mercury: 염화수은(II), 염화 제2수은, 2염화수은, 승홍(昇汞, corrosive sublimate)

 

염화수은: 염소와 수은의 화합물, 염화수은(II)화학식 HgCl2

 

산화수은(mercury oxide): 수은의 산화물(한 개 이상의 산소 및 다른 원소와 결합하고 있는 화합물), 화학식 HgO

 

 

 

 

* scott님의 분석 

  

 

스페인어 원문

  Úrsula, en cambio, conservó un mal recuerdo de aquella visita, porque entró al cuarto en el momento en que Melquíades rompió por distracción un frasco de bicloruro de mercurio.

-Es el olor del demonio -dijo ella.

-En absoluto -corrigió Melquíades-.

Está comprobado que el demonio tiene propiedades sulfuricas, y esto no es más que un poco de solimán.

 

이렇게 놓고 비교해보니 확실히 조구호씨 번역은 스페인어판을 직역하셨고(나쁘게 말하면 어순을 뒤죽박죽 구글 번역기 돌리듯) 안정효씨 번역은 영어판으로 번역해서인지 의역을 했지만 스페인어판과 똑같이 우르슬라와 멜키아데스에 주체를 뒤바꾸지 않고 어순도 정확합니다.

 

‘en que‘라는 시간 접속 부사구(that절이 아닌 시간 부사구 just as로 번역해야함) 뒤 주어를 조구호씨는 문장 첫머리 주어로 번역했는데 영어판 번역 우슬라가 주어로 나와야 정확한 번역입니다.

 

‘porque~’ 구절도 이유를 뜻하는 ‘for~’ 구절로 번역한 영어판이 정확하고

 

조구호 씨 번역은 어순이 뒤바꿔버릴 정도로 엉망

solimán은 스페인어로 수은으로 만든 화장품

sulfurico(단수형) / sulfuricas: (스페인어) 황산

sulphuric: (영어) 유황

 

스페인어판 원본에는 ‘황산’이라는 단어를 썼고 영어판에는 유황으로 번역했고 ‘corrosive sublimate’는 영어판에서 염화 제2수은이라는 전문 화학용어가 아닌 원문이 품고 있는 진짜 뜻, 즉 수은 성분이 들어간 화장품 / 황산이 부식할 때 나는 유황 냄새’로 번역했네요.

 

올려주신 번역본만으로 볼 때 안정효 번역본이 스페인어판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영어 번역본이 정확하고 (원문이 품고 있는 의미를 안정효 씨가 의역한 것은 있음) 2산화수은이라고 화학적 용어가 아닌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수은이 들어간 화장품을 의미했고 (원문에서) 조구호 번역은 일대일 사전 찾아 번역기 돌려버린 것 같아요.

 

 

 

 

 

 

 

 

8

 

* 영문판

  They found her dead on the morning of Good Friday. The last time that they had helped her calculate her age, during the time of the banana company, she had estimated it as between one hundred fifteen and one hundred twenty-two.

 

 

* 민음사 판 2203

  우르술라는 죽은 몸으로 성 목요일 아침을 맞이했다. 바나나 회사가 있던 시절 여러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마지막으로 그녀의 나이를 계산해 보았는데, 그 당시 그녀가 백열다섯 살에서 백스물 살 사이라고 결론지었었다.

 

 

* 필자가 쓴 것

 

성 목요일(Maundy Thursday)은 예수가 겟세마네 동산(Gethsemane)에서 체포된 날이며 성 금요일(Good Friday, 수난일: 십자가형을 받은 예수의 죽음을 기념하는 날) 전날이다. 그리고 백스물 살이 아니라 백스물 두 살이다.

 

 

 

* scott님의 분석

 

 

스페인어 원문

  Amaneció muerta el jueves santo. La última vez que la habían ayudado a sacar la cuenta de suedad, por los tiempos de la compañía bananera, la había calculado entre los ciento quince y los ciento veintidós años.

 

영어 번역본은 ‘good Friday’라고 했는데 스페인어 원문(el jueves santo)성 목요일이라고 되어있네요

 

‘ciento veintidós’는 백스물 두 살이 정확한 뜻입니다.

‘ciento quince’는 백 열다섯 살 정도

원문에는 백 열다섯 살에서 백스물 두 살 사이 라고 적혀 있어요.

 

 

 

 

 

 

 

 

10

 

 

* 영문판

  When he rode the bicycle he would wear acrobats tights, gaudy socks, and a Sherlock Holmes cap, but when he was on foot he would dress in a spotless natural linen suit, white shoes, a silk bow tie, a straw boater, and he would carry a willow stick in his hand.

 

 

* 문학사상사 420

  그는 자전거를 탈 때면, 곡예사의 흘태바지알록달록한 양말을 신고 셜록 홈즈의 모자를 쓰고 다녔지만, 걸어 다닐 때에는 티끌 하나 없는 단정한 양복에 흰 구두를 신고 비단으로 만든 나비넥타이에 밀짚모자를 쓰고 손에는 버드나무 단장을 짚고 돌아다녔다.

 

 

* 민음사 판 2254

  그는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닐 때는 곡예사 바지백파이프 연주자들이 신는 양말을 신고, 탐정들이 쓰는 모자를 썼으나, 걸어 다닐 경우에는 말끔하게 손질한 생 아마포 옷에 흰 구두를 신고, 비단 나비넥타이를 매고, 맥고모자를 쓴 차림으로 버드나무 단장을 들고 다녔다.

 

 

* 필자가 쓴 것

 

gaudy: 천박한, 촌스러운, 요란스러운, 번지르르한

 

인쇄가 잘못된 건지 아니면 안정효 씨가 잘못 적은 건지 알 수 없지만, 흘태바지가 아니라 홀태바지(통이 매우 좁은 바지)라고 써야 한다.

 

영문판에는 백파이프 연주자들이 신는이라는 번역문에 해당되는 표현이 없다. 그렇다면 스페인어로 쓰인 책에 백파이프 연주자들이 신는이라는 표현이 있을 수 있다. 필자가 스페인어 판을 확인하지 않았기 때문에 뭐가 맞는 번역인지 판단하지 않았다.

 

그런데 조구호 씨는 ‘Sherlock Holmes cap’탐정들이 쓰는 모자라고 엉터리로 번역했다. ‘Sherlock Holmes cap’은 셜록 홈스가 써서 유명해진 모자(원래는 사냥꾼들이 즐겨 쓴 모자). 탐정들은 홈스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모자를 쓰고 다니지 않는다. (잘못된 내용이라 필자가 취소선을 그었음)

 

 

 

* scott님의 분석

 

 

스페인어 원문

  Cuando andaba en el velocipedo usaba pantalones de acrobata, medias de gaitero y cachucha de detective, pero cuando andaba de a pie vestia de lino crudo, intachable, con zapatos blancos, corbatin de seda, sombrero canotier y una vara de mimbre en la mano.

 

우선 스페인어 원문에서

pantalones de acrobata-곡예사 바지

medias de gaitero- ‘gaitero‘가 백파이프 medias 는 양말 즉, 백파이프 연주자들이 신는 양말이라는 뜻(조구호 번역이 맞음).

 

특히 영어번역판에 셜록 홈즈의 모자라고 해석했는데 스페인어 원문에는 cachucha de detective-‘탐정들이 쓰는 모자라고 쓰여 있어요. (영어판이 의역 원문에 셜록 홈즈라는 단어가 없음)

 

안정효 씨의 번역에 [그는 자전거를 탈 때면]이라고 해석한 부분 스페인어 원문은[pero cuando andaba de a pie vestia de lino crudo]‘andaba de a pie vestia de lino crudo’ 자전거를 타고 구석구석(목적 없이) 돌아다니는 어슬렁거리는 의미입니다. pero cuándo~접속사구 해석을 영어에서 단순히 ‘when’으로 해서 안정효 씨가 그냥 ‘00~라고 번역한 것 같습니다.

 

이 단락 부분은 영어판이 원문과 다른 의미에 단어 없는 단어를 넣고 있는 단어를 빼 버림

 

스페인어 원문에 충실하게 번역한건 조구호

안정효 : 조구호- 50:50인 것 같네요.

 

 

 

 

 

 

* 필자의 소감

 

두 번째 글에서 필자는 조구호 씨의 번역문(‘탐정들이 쓰는 모자’)을 엉터리라고 지적했다. 스페인어 원문을 확인하지 않은 상태에서 주제넘게 조구호 씨의 번역을 엉터리라고 지적한 것은 잘못된 일이다. 잘못을 반성하는 차원에서 문제의 구절은 지우지 않고, 취소선을 그었다. 그러면 시간이 지난 후에 다시 확인할 수 있다. scott님이 두 번째 댓글을 달지 않았다면, 필자의 잘못된 의견이 고쳐지지 않은 채 그대로 공개될 뻔했다.

 

독자의 눈에 보이는 무지로 인한 오류와 실수로 쓴 문장은 삭제하면 되지만, 그런 식으로 너무 쉽게 글에 드러난 결점을 덮어버리고 넘어가선 안 된다. 그렇게 되면 과거의 결점이 뭐였는지 금방 잊게 되고, 이로 인해 글을 쓰다가 또 한 번 비슷한 실수를 저지른다. 이런 일이 생기지 않으려면 글에 남아 있는 결점을 부끄러워하면서 지우기보다는 그냥 그대로 놔두는 게 낫다. 삭제하지 않고, 공개하는 것도 글쓰기의 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글에 얼룩처럼 남아 있는 과거의 오류를 되돌아보면서 다시 그런 실수를 하지 않도록 스스로 경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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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레사 2020-12-06 12: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동생은 이 소설이 원시적이고 무속적이라며 은근 낯설면서도 재미있었던 모양입니다만 저는 파리에서 돌아오는 비행기 속에서 읽다가 집어던져버렸던 기억입니다.그 뒤로 남미 문학에 대한 주저함이 생겼어요.지금도 바뀌진 않은 듯합니다.낯설고 어리둥절한 문화 차이...나의 개성이겠지만..벌써 18년 전의 일입니다.ㅎ

cyrus 2020-12-07 07:41   좋아요 1 | URL
시간이 지난 뒤에 다시 소설을 읽으면 소설에 대한 생각이 달라지는 경우가 있어요. 과거에 좋게 본 책이 나중에 다시 읽을 땐 그때만큼 좋은 느낌이 안 날 수 있어요. ^^

곰곰생각하는발 2020-12-06 13: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이거 사이러스 님과 스코트 님의 합작품이로군요..

cyrus 2020-12-07 07:41   좋아요 1 | URL
그렇습니다. ^^

2020-12-06 15: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람돌이 2020-12-07 01: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읽다가 번역이 이상해보이면 그냥 짜증내고 마는데 이런 훌륭한 글을....

cyrus 2020-12-07 07:55   좋아요 1 | URL
번역 비판은 전문가가 해야 하는 일인데, 번역을 비판한 전문가의 글을 찾기가 쉽지 않아요. 물론, 제가 못 찾은 것일 수 있어요. 독자들이 번역을 지적한 서평이 있긴 합니다만, 구체적으로 어떤 문장이 이상하고 잘못 되었는지 명시하는 내용이 없어요. 그냥 “이 책의 번역은 별로야”라고 언급한 게 전부에요. 번역을 비판한 독자의 글은 번역에 문제 있는 책을 읽으려는 다른 독자들에게 도움이 되지만, 오역 사례를 제시하지 않는 이상 번역을 비판한 독자들의 입장 또한 검토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전문가는 아니지만, 여러 독자들이 왜 번역에 이상함을 느끼고, 지적하는지 알고 싶어서 이런 (비효율적인) 작업을 해왔어요.

2020-12-07 09: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2-07 13:19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