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의 과학책 - 인류 역사를 바꾼 과학 고전 35
고야마 게이타 지음, 김현정 옮김 / 반니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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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점   ★★★   B





과학적 사고란 무엇일까. 자주 쓰는 말이지만, 생각해 보면 과학적이 무슨 뜻인지 잘 떠오르지 않는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명시된 과학적의 뜻은 다음과 같다. 과학의 바탕에서 본 정확성이나 타당성이 있는 것. 우리는 과학’을 이해하기 어렵고 쉽게 접근하기 힘든 학문으로 생각한다. 이러한 인식 때문에 우리는 과학적 사고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에 쉽게 답변하지 못한다.


과학을 뜻하는 ‘Science’지식을 뜻하는 라틴어 ‘scientia’에서 출발한다. 어원으로부터 과학의 뜻을 헤아려 보면 과학은 사물을 구분하는 앎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므로 필자는 과학적 사고의 의미를 이렇게 풀어서 설명하고 싶다. 과학자는 어떠한 사물이나 자연 현상을 관찰하고, 그것들을 정확하게 알아보기 위해 실험을 수행한다. 그런 다음에 과학자는 실험 결과를 타당성 있는 지식으로 변환시키는데 이때 과학적 사고가 필요하다과학의 역사, 즉 과학사는 과학적 사고라는 인식의 틀이 어떻게 형성되기 시작했고, 발전되었는지를 보여준다. 불멸의 과학책을 쓴 일본의 과학사학자 고야마 게이타(小山慶太)는 과학사를 몰라도 과학을 공부하는 데 지장은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과학사를 모르고 지나치면 과학적 사고의 생성 배경을 이해하지 못한다.


불멸의 과학책은 과학사에 한 획을 그은 과학 고전 35권을 요약하여 소개한 책이다. 그렇지만 저자는 과학 고전들의 핵심 내용뿐만 아니라 역사적인 가치도 함께 설명해준다. 독자는 이 책을 통해 과학적 사고는 과학의 발전 과정을 통해 형성된 역사적 · 사회적 산물임을 확인할 수 있다영국의 역사학자 허버트 버터필드(Herbert Butterfield)가 쓴 근대과학의 기원(1949)과학혁명이 언급된 책이다. 버터필드는 고대 그리스 철학과 기독교 사상에 기반을 둔 자연관이 무너지고, 본격적으로 근대과학의 원형이 나타나는 시점을 16세기와 17세기라고 주장했다. 16~17세기는 역동적이고 중대한 변화가 일어난 시기이다. 버터필드를 포함한 대부분 과학사학자는 ‘16~17세기를 과학혁명이 일어난 시기로 본다이 책의 1장은 과학혁명에 크게 기여한 과학고전들을 소개한 내용으로 이루어졌다.


1543년은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Nicolaus Copernicus)천체의 회전에 관하여라는 책을 발표한 해이다. 이 책은 견고하게 유지되어 온 천동설을 뒤엎은 과학 고전이다. 저자의 평가에 따르면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는 과학혁명의 막을 올린 책이다. 아이작 뉴턴(Isaac Newton)은 만유인력의 법칙을 포함한 운동 법칙을 증명하여 자연 현상으로 수리적으로 계산하는 방법을 제시했다. 그의 업적은 매우 혁명적인 과학적 사고에서 비롯된 성과였다. 이론과 실험을 통해 자연 현상에 접근하려고 했던 뉴턴의 고전 역학은 근대과학이 탄생하게 된 결정적인 요인이었다.


불멸의 과학책이란 획기적인 변화를 일으킨 과학적 사고, 과학적으로 사유하는 방식의 정수를 담은 과학 고전을 말한다. 그동안 우리는 지식으로 압축된 과학을 공부하는 방식에 익숙해져서 과학적 사고를 이해할 기회를 여러 번 놓쳤다. 과학사를 공부하면 과학이 대체 어떠한 것이며 또한 어떠한 학문인지 지니는지 이해할 수 있다. 과학사에는 인류가 어떠한 체계적인 과학적 사고를 해서 과학을 발전시켜 왔는가, 그 과정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과학사 없는 과학을 공부하는 일은 앙꼬 없는 찐빵을 먹는 것과 같다. 알고 보면 과학은 앙꼬가 가득한 찐빵처럼 맛있는 학문이다






[Mini 미주알고주알]

 

    

1


 

 

 

 


 

2

 

* 97

 

 라 메트리는 인간기계론[] 마무리하면서 쐐기를 박듯이 다시 한 번 대담한 결론이라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인간은 기계이다라고 선언했다. 유물론으로 관철된 라 메트리의 이 대담한 결론은 오늘날 현대과학 기술을 통해 입증되고 있다.

 

[] 의 오자.

 

 

 

 


3

 

* 110

 

 스터클리 박사가 1752년에 쓴 아이작 뉴턴 경의 생애에 관한 회상록(Memoirs of sir Isaac Newton’s life)에는 뉴턴에 대한 귀중한 회고담이 실려 있다.

 역사적으로 재미있는 일화는 허구인 것들도 많은데, 뉴턴의 사과 이야기는 천재가 젊은 날 실제로 겪은 사건이었다.[]

 

[] 뉴턴의 사과 이야기의 진위 여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이상욱 한양대 철학과 교수는 사과 이야기가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출처: <[과학 오디세이] 뉴턴의 사과나무 전설’>, 경향신문, 2014.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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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만 해도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책방이 생기길 바랐다. 작년에 필자의 소원이 이루어졌다. 필자는 대구에서 가장 낙후한 서구에 오래 살았다. 작년에 서재를 탐하다책방이 서구 원대동(신 주소: 고성로)으로 이전하면서 처음으로 서구에 자리 잡은 책방이 되었다.

 

 

 

 

 

 

 

하지만 ‘책방을 탐하다는 대구 서구에서 최초로 문을 연 책방이 아니다. 책방이 처음으로 문을 연 자리는 북구 침산동(신 주소: 옥산로)이다. 책방이 있었던 자리에 큰 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대구 전체를 어둡게 만든 코로나19의 그림자가 좀처럼 걷히지 않았던 시기에 서구에서 아가 책방’이 태어났다. 아가 책방의 이름은 담담책방(약칭: 담담). 책방 이름처럼 아가 책방은 코로나19의 그림자를 서서히 걷어내고, 서구 주민들에게 다가서기 위해 걸음마를 떼기 시작했다.

 

 

 

 

 

 

 

담담은 올해 3월에 서구에서 태어났다. 필자는 여름에 담담의 존재를 처음 알았다. 담담이 있는 동네에 마을도서관이 있다. 필자는 마을도서관에 가다가 우연히 담담을 발견했다. 책방에 가기 전에 담담 책방지기가 만든 인스타그램과 블로그를 구경했다. 인스타그램과 블로그에 책방 내부를 찍은 사진들이 있다. 그냥 사진만 봤을 뿐인데, 책방 내부는 무척 깔끔해 보였고 편안한 느낌이 들었다.

 

우주지감연말 모임 전날인 16(목요일)에 지인과 함께 책방에 갔다. 필자와 동행한 지인은 대구 페미니즘 북클럽 레드스타킹의 남성 멤버다. 이분은 공연을 기획하고 제작하는 일을 하고 있다. 이분의 성함은 송승인데, 이 글에서는 특별히 가명을 사용했다. 이제부터 송승씨를 송승환이라고 부르겠다.

 

필자의 집에서 책방까지 걸어가는 데 걸린 시간은 15~20분이다. ‘서재를 탐하다까지 걸어가는 시간과 거의 비슷하다. ‘서재를 탐하다와 담담책방 사이의 거리도 그리 멀지 않다. 버스 타고 조금만 더 걸어가면 금방 도착할 수 있다.

 

 

 

 

 

 

 

 

 

담담이 살아있는 시간은 오후 1시부터 6시까지다. 일요일, 월요일은 책방이 숙면하는 날이다. 가끔 책방지기의 사정에 따라 책방이 조금 늦게 눈을 뜨거나 아니면 일찍 잠들 수 있다. 책방을 만나기 전에 책방 공식 인스타그램을 미리 확인해야 한다.

 

 

 

 

 

 

 

 

책방은 3층에 있다. 승강기는 없고, 계단만 있다(다리가 불편한 손님은 계단에 오르는 일이 벅찰 수 있다). 계단 주변에 아기자기한 소품과 장식이 배치되어 있고, 싸늘하게 느껴질 하얀 벽에 여러 점의 그림들이 붙여져 있다.

 

 

 

 

 

 

 

 

계단을 올라가다 보면 벽에 붙어 있는 담담책방 이용 팁을 발견할 수 있다. 담담은 커피나 그 밖의 음료를 팔지 않는다. 책방에 있는 차와 커피는 손님이 직접 타서 마셔야 한다.

 

 

 

 

 

 

책방 입구에 두 개의 문이 있다. 회색 철제문이 활짝 열려 있으면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오면 된다. 미닫이문 근처에 손 소독제가 있다. 그런데 담담책방의 미닫이문은 한 번 열면 잘 닫히지 않는다. 문이 완전히 닫힐 때까지 손잡이를 잡고 밀어야 한다. ‘서재를 탐하다읽다 익다책방의 문도 미닫이문인데 역시나 한 번에 닫히지 않는다. 세 책방의 작은 결점(?)이 비슷하다.

 

 

 

 

 

 

 

 

책방지기의 첫인상은 정말 좋았다. 책방지기를 보면 약간 살이 빠진 ‘yureka01’ 님이 생각난다. 책방지기가 책방에 처음 온 필자를 위해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대접했다.

 

 

 

 

 

 

 

 

 

 

 

미닫이문 오른쪽에 작은 책상이 있다. 책상 위에 책방 이름이 적힌 여러 종류의 책갈피가 놓여 있다. 미니어처 서재는 책방지기가 손수 조립해서 만든 것이라고 한다.

 

 

 

 

 

 

 

대형 TV에서 음악이 나온다. 성탄절을 코앞에 둔 시기에 맞게 책방 내부에 캐럴이 잔잔하게 흐르고 있었다.

 

 

 

 

 

 

 

 

 

 

 

 

 

책방지기의 가족은 제주도에서 생활하다가 대구에 정착했다. 책방지기는 제주도에 있는 모든 책방을 가봤을 정도로 제주도 여행에 대해 잘 알고 계신다. 그래서 제주도와 관련된 책과 인쇄물을 따로 놓아둔 책장이 있다. 혼자서 제주도를 여행하고 싶은 분은 담담책방에 있는 책방지기를 만나라. 그러면 책방지기가 친절하게 여행 정보를 알려준다.

 

 

 

 

 

 

 

 

책방지기의 부인은 빨간 머리 앤을 좋아한다. 책방지기는 부인을 만나면서 앤을 좋아하게 되었다고 한다. 같은 취향을 공유하면서 지내는 부부의 모습이 정말 보기 좋다.

 

 

 

 

 

 

 

 

 

 

 

책방지기는 대구에서 가장 낙후한 서구에서 책방을 열었을까? 그가 책방을 열려고 한 목적과 이유는 단순하다. 책방지기는 서구 주민들이 편안하게 방문할 수 있는 문화 공간을 만들고 싶어 했다. 책을 사고 싶은 손님이 오는 책방이 아니라 책을 보러 오는 손님, 잠시 책방에서 쉬고 싶은 손님, 그리고 마음대로 그림을 그리고 싶은 손님들도 올 수 있는 편안한 쉼터 같은 문화 공간. 담담책방은 책방이라고 규정할 수 없는 공간이다. 담담책방의 진짜 주인은 바로 이곳을 찾는 손님들이다. 책방을 찾는 손님의 목적에 따라 책방의 용도와 내부 분위기는 달라진다.

 

필자와 송승환 씨는 책방지기와 대화를 나누다가 우리가 하고 있는 독서 모임 활동을 언급했다. 그러자 책방지기는 우리에게 독서 모임을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지 질문했다. 세 사람은 40분 동안 독서 모임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었다.

 

 

 

 

 

 

 

우주지감연말 모임이 있던 금요일에 다시 담담에 갔다. 두 번째 방문이다. 그날 오후를 담담에서 보내다가 담담이 문 닫을 때 연말 모임 장소인 서재를 탐하다로 갈려고 했다. 연말 모임에 항상 하는 행사가 있는데 책 선물을 모임 참석자에게 주는 일이다. 필자는 담담에서 선물용으로 고른 책 한 권과 빨간 머리 앤북 스탬프를 샀다. 포장지도 함께 샀다. 책방지기가 아주 정성스럽게 책을 포장했다.

 

책방지기는 얼마든지 책방에 오라고 말씀하셨다. 그러고 싶은데, 맨손으로 책방에 와서 맨손으로 나가는 일은 여전히 어색하고 괜히 죄송스럽다. 다음부터는 책방에서 신간을 사야겠다. 그러면 담담을 오랫동안 만날 수 있다. 주민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무럭무럭 자라는 담담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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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0-12-20 1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시부터 6시까지만 하면 그 나머지 시간은 그냥 비어있는 건가?

cyrus 2020-12-20 23:44   좋아요 0 | URL
책방지기님에 대해선 자세히 모르지만, 그 분이 예전에 NGO 활동을 하셨대요. 지금도 그 일을 하시는지 잘 모르겠어요. 요즘에는 혼자 또는 여러 명이 책방을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는 예약 서비스가 있어요. 책방 문 닫는 시간이나 책방 쉬는 날에 예약하면 책방을 이용할 수 있어요. ‘서재를 탐하다’ 책방은 이미 예약 서비스를 하고 있어요. ^^

blanca 2020-12-20 1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음이 따스해지네요. 담담이 잘 되기를....대구는 저에게 고향 같은 곳이에요..

cyrus 2020-12-20 23:45   좋아요 0 | URL
확실히 대구에 동네 책방과 독서 모임 조직이 많이 생겼어요. 요즘 제일 힘든 시기인데 동네 책방과 독서 모임 조직이 잘 버텼으면 좋겠어요.

막시무스 2020-12-20 1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정 책방이라고 불리는게 맞는것 같네요! 뭔가 포근한 느낌이 강하게 느껴집니다! 번창하시길 바래요!

cyrus 2020-12-20 23:48   좋아요 0 | URL
한 달에 한 번이라고 책방에 있는 책 한 권 사야겠어요. 그래야 책방이 오래 번창할 수 있거든요. ^^

파트라슈 2020-12-21 0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업 이윤이 목적이 아닌 진정 자신이 좋아서 즐기는 일을 하시는 분이 연 책방이 대구에 있었군요.. 대구 서구쪽 광범위한 재개발 예약이 되어 있는데 앞으로 한 5년 뒤에 아파트 숲이 들어서도 이런 동네책방이 여전히 존재하면 좋겠습니다. 책방 감성 잊어버린지 오래인데 책방 가서 이런저런 책들 손에 잡히는 대로 보면 시간가는 줄 모르던 시절이 있었죠. 지금도 가끔은 대백 교보문고나 예스24서점에 가는데 이쁜 책들 사고 싶은 충동 누르느라 혼나죠. 마음에 드는 읽고 싶은 책 한 권 사서 집으로 오는 버스안에서 이리저리 훑어보며 기대하던 그 설렘을 이제 택배기사님이 대신 제공 제공해 주고 있다는 것ㅎㅎ

cyrus 2020-12-21 11:22   좋아요 0 | URL
책방에 시간을 보내면 하루가 금방 지나갑니다. 하지만 그 하루를 알차게 보냈다는 기분이 들어요. 책방에 다른 손님이 오면 전혀 싫지도 않고, 어색하지도 않아요. 담담 책방지기님이 편안하게 대화를 시작하는 분이라서 이 분이 입을 열면 서로 모르는 손님들끼리 대화를 하게 됩니다. 아주 잠깐이지만 한 공간에서 새로운 인연이 맺어지고, 친밀한 소통이 이루어지죠. ^^

psyche 2020-12-22 07: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따뜻한 느낌의 책방이네요! 동네 책방들이 오래오래 잘 되었으면 좋겠어요. 미국도 동네책방들이 다 죽고 있어서... 동네 책방만이 아니라 오프라인 책방이 다 죽고 있죠. 너무 안타까워요.

Angela 2020-12-22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과 사진에서 따뜻한 공간이 느껴져서 한번 가보고 싶네요^^
 
파블로 네루다와 우편배달부
안토니오 스카르메타 지음, 권미선 옮김 / 사람과책 / 199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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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번역서 평점


2점   ★★   C





단어가 비슷해서 헷갈리기 쉬운 제목이 있다영화 <일 포스티노>(Il Postino)의 원작 소설 Ardiente Paciencia이 국내에 소개되면서 두 개의 제목이 생겼다그 제목들은 네루다의 우편배달부와 파블로 네루다와 우편배달부네루다의 우편배달부는 민음사에서 출간된 소설 번역본 제목이다최근에 쓴 파블로 네루다(Pablo Neruda)에 대한 네 편의 글을 다시 읽어봤다글 속에 소설 제목을 네루다와 우편배달부라고 쓴 부분을 몇 군데 발견했다어쩌면 지난 10월 말에 있었던 네루다의 우편배달부》 책 모임에 참석한 필자는 제목을 여러 번 잘못 말했을지도 모른다.


네루다의 우편배달부가 나오기 전인 1996년에 파블로 네루다와 우편배달부가 출간되었다. 파블로 네루다와 우편배달부를 번역한 사람은 권미선 경희대학교 외국어대학 스페인어과 교수이다이사벨 아옌데(Isabel Allende)의 소설을 즐겨 읽은 독자라면 역자의 이름을 자주 봤을 것이다. 파블로 네루다와 우편배달부는 정교수가 되기 전인 30대의 권 씨가 작업한 첫 번째 번역본이다부록으로 네루다의 시가 실려 있다


줄거리 언급은 생략하겠다. 필자는 이미 Ardiente Paciencia와 네루다를 주제로 한 글을 썼다. 작품에 대해 궁금한 분은 필자의 졸문을 참조하시길.


사실 이 글을 쓴 목적은 번역문에 대한 견해를 밝히기 위해서다. 글 쓰는 일을 노동의 개념으로 본다면, 오래된 절판본의 번역을 지적하기 위한 글을 쓰는 일은 필자에게 소득책을 구매한 사람이 그 책의 구매에 도움이 된 글 작성자에게 적립금을 주는 ‘Thanks to 적립금제도의 혜택―을 가져다주지 않는. 그래도 책을 읽었으면 그 책에 대한 기록을 남겨야 한다. 대부분 독자는 자고 일어나면 나오는 따끈따끈한 신간에 주목하고 열광한다. 이 사람들은 도서관이나 헌책방에 가야 볼 수 있는 옛날 책에 관심 없다. 절판된 책의 서평도 크게 주목받지 못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우연이든 필연이든 오래된 책의 실체를 알고 싶은 누군가는 이 글을 참고할 것이다알라딘 온라인 중고시장에 파블로 네루다와 우편배달부를 만 원에 파는 판매자가 있다. 현재 구할 수 없는 책, 권 교수의 첫 번째 번역서라는 점에서 파블로 네루다와 우편배달부》는 특별해 보인다. 그러나 정가 6,500원의 책을 만 원 주고 사는 일은 어리석은 짓이다. 왜냐하면 파블로 네루다와 우편배달부는 번역이 좋은 책이라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소설의 주인공 마리오는 주점에서 일하는 베아트리스 곤살레스를 첫눈에 보자마자 반한다. 마을에 운동장이 없어서 젊은 어부들은 주점에 설치된 테이블 축구를 즐긴다(민음사 35쪽 참조). 파블로 네루다와 우편배달부38쪽에 주점의 내부 광경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그런데 권 교수는 주점에 설치된 오락 기구를 핀볼 게임(pinball game)이라고 잘못 번역했다




 



 



테이블 축구와 핀볼 게임은 생김새와 작동 방식이 다른 오락 기구다. 스페인어 원서에 ‘taca-taca’라는 단어가 나온다. 이 단어는 테이블 축구를 뜻한다. 권 교수가 정말로 스페인어 원서를 참고해서 번역했다면 핀볼 게임이라는 단어가 나올 수 없다. 아니면 그녀가 테이블 게임을 핀볼 게임으로 착각했을 수 있다.

 

필자는 스페인어를 쓰거나 말할 줄 모른다. 그래서 문장 번역에 대한 개인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겠다. 스페인어 원문, 민음사 번역본의 문장(우석균 옮김), 그리고 권 씨가 번역한 문장만 인용하겠다. 번역에 대한 판단은 스페인어에 능숙한 독자들의 몫이다.




* 원문


 Estás húmeda como una planta. Tienes una calentura, hija, que sólo se cura con dos medicinas. Las cachas o los viajes.



húmeda: húmedo(축축한, 습한, 눅눅한)의 여성형 명사

planta: 식물, 풀

cachas: 기골이 장대하고 건장한 사람 

viajes: 여행

 

* 민음사(우석균 옮김), 65

 

 “넌 지금 풀잎처럼 촉촉해. 후끈 달아올랐을 때에는 약이 딱 두 가지밖에 없지. 교미나 여행.”

 어머니는 딸의 귓불을 놓고 침대 밑에서 가방을 꺼내 침대 위에 패대기쳤다.

 “가방 싸!”

 

* 권미선 옮김, 72~73

 

 

 “넌 지금 온 몸에서 식은땀이 흘러. 열병이 난 거야, 이년아. 거기엔 딱 두 가지 약밖에 없어. 몰매를 맞든지 아니면 짐을 싸든지 둘 중에 하나야. 빨리 짐이나 싸!”





현재 외래어표기법이 시행되기 한창 전에 나온 책이라서 외국 인명 표기가 어색하다. ‘프랑수아 비용(Francois Villon: 프랑스의 시인, 민음사 83쪽 참조)’을 영어 발음에 가까운 프랑소와 빌롱(93)’으로 표기되었다. 당통(Danton: 프랑스의 정치인, 민음사 119쪽 참조)단톤(130)’으로 표기한 것도 눈에 띈다. 파블로 네루다와 우편배달부네루다의 우편배달부를 함께 읽어 보면 확실히 문체의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 권 교수는 스페인어 원서에 있는 문장 일부를 두루뭉술하게 번역하거나 의역했다. 아마도 권 교수는 작품에 드러난 라틴아메리카의 정서 및 문화를 생소하게 여긴 90년대 독자들을 위해 직역보다는 가독성을 최대한 살리는 쪽으로 번역을 시도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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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20-12-19 23:0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번역 수준에 대해선 차치하더라도 제임스 조이스 책을 꾸준히 개역하는 김종건 교수의 예만 보더라도 번역서일수록 초역판은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재독을 할수록 보이는 게 많은 게 책인데 하물며 번역은 더 말할 게 없죠!

cyrus님과 제가 알라딘 오는 타이밍이 잘 안 겹쳐서 그동안 격조했어요/ 하지만 책 속에서 늘 열심이실 거란 거 멀리서도 종종 생각했답니다^^

cyrus 2020-12-20 16:41   좋아요 0 | URL
초판 번역의 오류를 한 번도 고쳐본 적이 없는 역자가 다른 역자의 번역을 지적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해요. 두 달 전에 유명한 역자가 옮긴 소설을 읽었는데(이번 달에 제가 썼던 글을 보면 역자 이름과 소설 제목을 알 수 있어요), 생각보다 실망했어요. 역주도 엉망이었어요.

AgalmA님도 잘 지내셨죠? 올해는 책만 열심히 읽으면서 지냈어요. 개인적인 사정이 있어서 글을 쓸 여력이 없었어요. 코로나가 유행하면서 도서관이 잠깐 문 닫는 바람에 글을 쓸 의욕이 나지 않았어요. 제게 도서관은 글을 쓰기 위한 재료들이 가득한 곳이거든요. ^^

2020-12-20 00: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20-12-20 16:42   좋아요 0 | URL
오역을 지적하기 전에 왜 이런 실수를 했을까 한 번 더 생각해보게 돼요. 그러면 “비록 표현이 어색해도 오역이 아닐 수 있구나”라고 깨닫게 돼요. ^^
 


이틀 전인 목요일에 책방 서재를 탐하다(약칭: ·)’에서 진행된 우주지감연말 모임이 무사히 마쳤다. 이날 모임에 필자를 포함하여 총 아홉 명이 참석했다. 참석자 두 명이 추가됐다. 방역 수칙을 잘 지킨 모임이었다. 열 명 이상의 참석자가 모여 있지 않았다. 아홉 명의 참석자는 모임이 끝날 때까지 마스크를 착용했다. 마스크를 턱에 걸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식탁 위에 차려진 음식은 없었다. 책방지기님은 빈속으로 책방에 오는 참석자가 있을까 봐 한 사람당 삶은 달걀 한 개와 미니 약과 한 개를 주셨다.


책 모임이 진행된 과정과 모임의 열띤 분위기를 기억하고, 기록하고 싶어서 사진을 많이 찍어뒀다. 그러나 연말 모임을 자제하는 요즘 분위기를 생각해서 사진은 공개하지 않으려고 한다. 모임 후기는 이 정도로만 하고, 내년 우주지감-나를 관통하는 책 읽기모임 선정 도서 열두 권을 공개하겠다.


책 모임 도서 목록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도서 목록에 책 모임 운영자인 서재를 탐하다책방지기님과 읽다 익다책방지기님이 고른 책 2권이 포함되었다. 올해 초에 일어난 코로나 대유행으로 인해 하지 못한 2, 3, 4월의 책 모임은 내년에 진행된다. 이제 남은 책의 권수는 7권이다. 필자를 포함한 모임 회원 총 여섯 명이 총 10권의 책을 추천했다. 연말 모임 참석자 아홉 명은 10권의 후보 도서 중에 읽을 만한 책 5권을 선택했다. 아홉 명의 선택 결과를 합산해서 선택받은 횟수가 적은 후보 도서 3권은 책 모임 도서 목록에서 제외됐다


















[나를 관통하는 책읽기 2021년 1월의 책]

* 루이스 세풀베다 연애 소설 읽는 노인(열린책들, 2009)

 

















[cyrus의 선택]

[나를 관통하는 책읽기 20212월의 책]

* 김지혜 선량한 차별주의자(창비, 2019)

 

















[나를 관통하는 책읽기 2021년 3월의 책]

* 스티븐 레비츠키, 대니얼 지블랫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우리가 놓치는 민주주의 위기 신호》 (어크로스, 2018)



















[나를 관통하는 책읽기 2021년 4월의 책] 

* 프랑수아즈 사강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민음사, 2008)

















[나를 관통하는 책읽기 2021년 5월의 책] 

* 나쓰메 소세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현암사, 2013)


 















[나를 관통하는 책읽기 2021년 6월의 책]

* 프리모 레비 

이것이 인간인가: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 프리모 레비의 기록》 

(돌베개, 2007)

 

















[나를 관통하는 책읽기 2021년 7월의 책]

친기즈 아이트마토프 백년보다 긴 하루》 (열린책들, 2009)

 

















[cyrus의 선택]

[나를 관통하는 책읽기 2021년 8월의 책]

* 김초엽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허블, 2019)

 

















[나를 관통하는 책읽기 2021년 9월의 책]

* 소포클레스, 아이스킬로스, 에우리피데스 

그리스 비극 걸작선: <오이디푸스 왕> 3대 비극작가 대표선집》 

(도서출판 숲, 2010)

 
















[읽다 익다’ 책방지기의 선택]

[나를 관통하는 책읽기 2021년 10월의 책]

* 최진석 

탁월한 사유의 시선: 우리가 꿈꾸는 시대를 위한 철학의 힘》 

(21세기북스, 2018)

 
















[나를 관통하는 책읽기 2021년 11월의 책]

* 다이 시지에 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소녀(현대문학, 2005)

 












[‘서재를 탐하다’ 책방지기의 선택]

[나를 관통하는 책읽기 2021년 12월의 책]

* 허먼 멜빌 필경사 바틀비(문학동네, 2011)





선정 도서 목록 중에 필자가 읽은 책은 총 네 권이다. 연애 소설 읽는 노인, 선량한 차별주의자, 이것이 인간인가, 필경사 바틀비. 십 년 전에 천병희 교수가 옮긴 그리스 비극을 읽은 적이 있지만, 무슨 내용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도서 목록에 포함되지 못한 세 권의 후보 도서는 다음과 같다이 책들도 읽어보려고 한다


















* 프리드리히 니체 비극의 탄생(아카넷, 2007)

















 

* 정재찬 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것들: 자기 삶의 언어를 찾는 열네 번의 시 강의(인플루엔셜, 2020)

 

















* 엔리코 모레티 직업의 지리학: 소득을 결정하는 일자리의 새로운 지형(김영사, 2014)





책 선정 투표를 하기 전에 참석자들끼리 후보 도서들에 대해서 진지하게 얘기를 나눴다. 필자를 포함한 모임 참석자들은 자신이 고른 책의 장점을 열심히 설명했다. 필자는 주제와 내용 등을 고려했을 때 다른 분이 추천한 니체(Nietzsche)의 책은 책 모임 도서에 맞지 않다고 주장했다. 니체의 책을 추천한 분은 연말 모임에 참석하지 않았다. 그분이 연말 모임에 참석했어도 필자는 니체의 책을 읽은 독자로서 해당 책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를 숨김없이 밝힐 생각이었다. 필자가 니체의 책을 봤음에도 투표하지 않은 이유는 따로 있다니체의 책을 추천한 회원은 출판사와 역자를 언급하지 않았다. 정말로 책 모임을 위해 고른 책이라면 출판사와 역자 이름을 언급해줬어야 했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니체의 책은 한 달에 한 번 진행되는 책 모임에 맞는 책이 아니다. 이런 책은 적어도 세 번 모이면서 천천히 읽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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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0-12-19 16: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만 봐도 배부를 것 같은 모임이네요. 유익한 시간이었겠습니다.

cyrus 2020-12-19 21:48   좋아요 1 | URL
내년에 코로나 유행이 다시 일어나지 않길 바랄 뿐이에요. 그러면 정말로 배부를 텐데요. ^^

북프리쿠키 2020-12-19 1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년 농사 준비 잘 해놓으셨네예 시루스님.
대리만족했습니다^^

cyrus 2020-12-19 21:49   좋아요 1 | URL
내년에 코로나가 또 유행하면 올해처럼 흉작을 겪을 수 있어요.. ^^;;

stella.K 2020-12-19 19: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오, <나는 고양이...> 지금 읽고 있는 중인데...
판본은 다르지만.
약간 지루하기도 하지만 유머가 살아 있고 괜찮더군.
몇년 전에 사 놓고 조금 읽다 말았는데 이번엔 완독해 보려고.

북프리쿠키 2020-12-19 19:19   좋아요 1 | URL
쓸데없는 대화를 읽다보면 생쌀 씹어먹으면 단맛나는 것처럼 나름의 매력이 있지예 ^^

cyrus 2020-12-19 21:51   좋아요 0 | URL
누님이 읽고 있는 책은 어느 출판사에서 나온 거예요? 책 모임 하기 전에 미리 번역본 한 권 정해야 될 것 같아요. ^^

stella.K 2020-12-20 18:42   좋아요 0 | URL
신세계북스인데 몇년 전 중고샵에 나갔다 눈에 띄어서 샀어.
책이 예쁘더라고. 거의 새책이었고.
근데 출판사가 없어졌나 봐. 검색해 보면 모든 책이 절판으로
나오더라.
아무래도 소세키는 한길사가 대세 아닐까?

아, 근데 소제목들이 각 판본마다 조금씩 다르네.
한길사는 차례에 소제목을 따로 싣지는 않은 것 같고.
어제 읽다가 소제목이 눈에 띄어서 다른 책도 똑같을까 싶어서.ㅋ

blanca 2020-12-19 1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독서 모임에 가서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공부가 될 듯한 느낌이 드네요.

cyrus 2020-12-19 21:54   좋아요 0 | URL
‘우주지감’ 책 모임은 일상과 연관시켜서 책을 읽는 방식을 중요하게 여기는 모임이라서 독서하면서 공부하고 싶은 사람에게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어요. ^^;;

붕붕툐툐 2020-12-20 18: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다 읽고 싶은 책들이에요~ 뭔가 따라 읽으면 함께 하지 않아도 함께 하는 느낌이 날 듯 하네요~ 도저언~~!!ㅎㅎ

cyrus 2020-12-20 23:52   좋아요 0 | URL
모임에 참석하지 못하더라도 책은 꼭 읽을 거예요. ^^

Angela 2020-12-22 1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소녀를 어떻게 연결시켰는지 궁금하네요. 이 책은 읽어봐야겠어요~
 
그림자의 강 - 이미지의 시대를 연 사진가 머이브리지
리베카 솔닛 지음, 김현우 옮김 / 창비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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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점

 

4점   ★★★★   A-






그 누구보다 빠르게 난 남들과는 다르게 

색다르게 리듬을 타는 비트 위의 나그네

 

(래퍼 아웃사이더의 노래 ‘Motivation’ 중에서)

 

 

그 누구보다 빠르게 난 남들과는 다르게 

색다르게 사진 찍는 시간 위의 나그네

 

(마이브리지에 대한 필자의 단평)





전속력으로 달리는 말의 모든 다리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지금으로 봐서는 저게 왜 궁금해할까?”라고 생각한다재미있게도 이 궁금증은 19세기 중반 미국인들의 입에 오르내린 쟁점이었다이 쟁점이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달리는 말의 동작에 관심이 없었다화가들은 순식간에 지나가는 말의 모습을 실감 나게 그리려고 노력했다하지만 아무리 시력이 좋은 화가도 눈앞에서 순식간에 지나가는 말들의 경주 장면을 포착하기가 쉽지 않다고민 끝에 화가들은 그림 보는 관람객들이 수긍하게끔 속임수를 썼다그들은 창조를 위해 정확한 묘사를 포기하고 상상력을 선택했다그림 속 경마의 앞다리와 뒷다리는 각각 전방과 후방으로 쭉 펼쳐져 있다관람객들은 경마들의 질주 장면을 박진감 있게 묘사한 그림에 의문을 품지 않았다당시 사람들은 경마를 그린 화가들의 그림을 보면서 빨리 달리는 순간 말들은 저런 모습을 하고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사진기가 등장하면서 회화가 만들어낸 오랜 속임수와 편견에 대한 의구심이 점점 싹트기 시작했다미국에서 가장 빠르기로 유명한 마차 경마 옥시덴트(Occidente)의 주인이었던 캘리포니아 주지사 릴런드 스탠퍼드(Leland Stanford, 스탠퍼드 대학의 설립자이기도 하다)는 달리는 말의 모든 다리가 공중에 떠 있는 상태라고 주장했다그는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영국 출신 사진가 에드워드 머이브리지(Eadweard Muybridge)를 고용했다. 1872년 봄에 머이브리지는 여러 개의 사진기를 설치해 달리는 말의 순차적인 움직임을 연속 촬영했다이 작업을 통해 그간 사람들이 생각했던 달리는 말의 동작이 틀렸다는 사실이 밝혀졌다사진기의 등장은 화가들의 붓놀림을 무력화시켜버렸다사진은 현실을 가장 정확하게 표현한다그야말로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사진의 진실성 앞에 화가들은 어떤 방식으로 진실성을 보여줄 수 있는지 고민했다.


그림자의 강은 끊임없이 변하는 세상의 실체를 사진에 담기 위해 바쳤던 머이브리지의 삶을 소개한 책이다이 책을 한 사진가의 일대기를 정리한 평전으로 보일 수 있겠다. 하지만 책의 저자를 확인하면 분명히 생각이 달라진다. 책을 쓴 사람은 탁월한 분석을 곁들인 글을 쓰기로 유명한 리베카 솔닛(Rebecca Solnit)이다. 이미 그녀의 글 솜씨를 아는 독자는 그림자의 강》이 무난한 내용의 평전이라는 단정적인 생각을 접는다.


머이브리지는 찰나의 순간을 사진으로 기록하고픈 욕망으로 가득했다. 그의 개인적 욕망이 반영된 사진 작업은 세상을 바꾼 업적이다. 리베카 솔닛은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사진을 찍어온 머이브리지를 변하는 시대를 빠르게 감지한 예술가인 동시에 근대로 향하는 미국의 변화를 주도한 혁신적인 인물로 평가한다그동안 머이브리지는 달리는 말의 연속 사진을 찍은 사진가로만 알려졌다. 솔닛은 시대를 앞서간 머이브리지의 또 다른 업적을 주목한다. 그녀는 머이브리지를 움직이는 사진(활동사진)’이 엄청 주목받는 시대를 예감한 선구자로 본다. 머이브리지가 관심을 보인 활동사진(motion picture)은 시간이 흘러 영화로 발전된다. 솔닛은 캘리포니아에서 찍은 말 한 마리의 사진에서 영화가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머이브리지는 사진의 영속성과 더불어 연속성도 아울러 추구했다. 시대의 변화를 감지하지 못한 당대 사람들은 그의 사진 작업을 유별난 개인적인 관심사로 이해했다. 머이브리지의 활동사진 연구를 진지하게 주목했던 사람들 중에 우리가 잘 아는 인물이 있는데 그 사람은 바로 영사기를 만든 토머스 에디슨(Thomas Edison)이다. 연구 분야가 비슷한 두 사람은 실제로 만나기도 했다. 머이브리지가 살았던 캘리포니아에 영화 산업의 중심지인 할리우드(Hollywood)가 있다는 사실을 떠올린다면 말 한 마리의 사진에서 영화가 시작되었다는 솔닛의 말은 과장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머이브리지는 움직이는 모습, 그리고 더 나아가 빠르게 움직이는 세상에 호기심을 가진 사진가였다. 그의 지속적인 탐구와 실험이 없었으면 영화의 탄생을 알린 서막이 훨씬 더 늦게 올랐을지도 모른다




 




[Mini 미주알고주알]

 


 

1

 


* 80


 머이브리지는 구름에 대한 열정이 있었다훗날 구름 연구를 위해 15장의 스테레오그래프를 찍었는데이는 사진가 동료의 작품이라기보다는 과학자의 표본 수집이나 화가의 스케치북에 더 가까운 작업이었다영국 화가 존 컨스터블(John Constable)이 1820년대에 했던 구름 연구미술평론가 존 러스킨(John Ruskin)이 1860년대 현대 회화(Modern Painters)[]에 쓴 구름에 대한 장문의 글을 마이브리지가 알고 있었을 수도 있다.

 

 

[] Modern Painters는 1842년부터 1860년까지 러스킨이 집필한 총 5권의 미술평론서다러스킨은 이 책에서 19세기 중반에 활동한 젊은 화가들을 긍정적으로 평가했고옛 거장과 구분되는 그들을 현대의 화가들(Modern Painters)’이라고 했다윌리엄 터너(J. W. William Turner)는 러스킨이 주목한 현대의 화가들’ 중 한 사람이다번역서에 러스킨의 책 제목이 현대 회화라고 되어 있는데정확한 우리말 제목은 현대(화가들이다.

 

 

 


 

 

2

 

 

* 130


 요세미티에서는 물과 바위가 머이브리지의 주된 소재였다물이 변화와 지나가는 순간을 대변한다면바위는 견딞[]과 지질학적인 무한대를 암시했다강은 언제나 눈앞에 있지만그 안의 강물은 영원히 움직이고영원히 변화하고영원히 새로워지는 어떤 것종종 시간에 대한 비유로도 쓰이는 영원한 순간을 상징했다그의 사진에서 강은 특히 어떤 지속성사진 안에서 흘러가는 시간을 알아보는 단위가 된다.

 

 

[견딤으로 써야 한다.

 

 


 

 

3

 

 

* 226~227


 당시 소설에 등장하는 불륜 여성들과 마찬가지로 쾌락에 대한 댓가[1]를 훨씬 가혹하게 치른 것은 플로라였다우드헐은 그런 부당함에 항의했고그 때문에 동료 페미니스트들에게 축출당하고 영국으로 떠나버림으로써 스스로 댓가[2]를 치러야 했다플로라는 무너졌다. 7월 18일 스물네 살의 그녀는 세인트메리 병원에서 사망했는데어떤 설명에 따르면 뇌졸중에 따른 마비 증세라고 했고다른 곳에서는 척추 통증 복합증과 류머티즘 염증으로 의사들도 손을 쓸 수 없었다라고 했다.

 

 

[1, 2] 올바른 표현은 대가.

 

 

 


 

4

 

 

* 300~301


 머이브리지 때문에 사실주의 화가들은 재현의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그들은 언제나 대상을 최대한 정확하게 재현한다고 주장했는데그 정확성은 또 언제나 눈으로 관찰한 모습에 의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같은 대상이나 시간이나 날짜계절이 바뀌면서 달라지는 모습을 그렸던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같은 화가만이 머이브리지의 발견에서 편안함을 느꼈을 것이다에드가르 드가[](Edgar De Gas)도 사진을 바탕으로 한 말 그림 여러 장을 남겼다.

 고속사진이 보여준 모습과 육안으로 본 모습은 일치하지 않았지만카메라가 제시한 증거는 사실주의에 헌신한 사람들로서도 뒤집을 수 없었다.

 

 

[본 책 366쪽에는 에드가 드가라고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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