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망 좋은 []

 

EP. 4

 

 

2021113일 수요일, 햇살 좋은 날





오후에 글을 쓰고 싶어서 담담(책방)에 갔다. 계단이 있는 입구에 들어서려는데 익숙한 뒷모습이 보였다. 책방지기였다. 입구 주변에 빗자루를 쓸면서 청소하고 있었다. 그분이 뒤돌아볼 때까지 나는 청소하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봤다. 책방지기를 깜짝 놀라게 해주고 싶었지만, 무례한 행동일 것 같아서 꾹 참았다. 책방지기가 뒤돌아서자 나는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책방지기는 먼저 안에 들어가 있으라고 말했다.


책방지기는 책방에 오는 택배 기사들에게 호박 진액(호박 즙)을 준다. 3층에 오는 택배 기사에게 늘 미안한 감정을 느껴서 그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게 호박 진액과 같은 건강보조식품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호박 진액이 상당히 좋은 거라면서 내게 하나 마셔보라고 줬다책방지기의 말은 허언이 아니었다. 많이 달지 않아서 호박 그대로의 맛이 났다.  


책방에 하얀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는 비밀 공간이 있다. 손님은 이곳에 절대로 들어갈 수 없다. 비밀 공간은 책방지기의 아들들이 쓰는 방이다. 책방지기의 아들은 두 명이다. 책방에 있으면 아들들이 비밀 공간을 드나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담담을 이용하려는 분들에게 이 사실을 꼭 알리고 싶다. 앳돼 보이고 대학생처럼 보이는 남자가 책방에 들락날락한다면 당황하지 마시라. 책방지기의 아들이다. 아니면, 그 사람은 나일 수도 있다책방지기의 아들들은 채식을 선호한다. 작년에 책방지기의 아들 한 명이 전역했다. 책방지기와 터놓고 대화를 하게 되니까 아들들에 대한 정보까지 알게 되었다‥….


책방지기를 만나려는 남자 한 분이 책방에 왔다. 남자가 오기 전에 책방지기는 잠깐 어디 나갔다. 아들이 대신 책방지기의 개인 사무실(책방지기가 개인 업무를 볼 때 이용하는 작은 방)을 지키고 있었고, 나는 글을 쓰고 있었다. 나는 손님에게 책방지기가 볼일이 있어서 나갔다고 말했다. 그러자 손님이 날 보자마자 이런 말을 했다. , 네가 전역한 (책방지기의) 아들이구나. 축하한다.” 나는 전역한 책방지기의 아들은 사무실에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손님이 오해할 수밖에 없는 게 나와 전역한 책방지기의 아들은 안경을 쓰고 있다. 여기에 내가 마스크를 쓰고 있으니 손님이 나를 책방지기의 아들로 오해하는 건 당연했다.


밖에 나갔던 책방지기가 돌아왔고, 그분은 간식으로 크루아상을 사 왔다. 책방 근처에 빵집이 있다. 예전에 내가 책방을 가기 전에 빵을 샀던 곳이기도 하다(‘전망 좋은 []두 번째 이야기 참조). 책방지기는 밖에 나갔다가 출출해서 빵을 샀다고 했다. 그러고는 같이 먹자고 했다. 책방에서 간식과 마실 것을 얻어먹게 될 줄이야‥….



















* 그림 형제, 김열규 옮김 그림형제 동화전집(현대지성, 2015)

 

* 그림 형제, 홍성광 옮김 그림 동화집 1, 2(펭귄클래식코리아, 2011)

※ 《그림 동화집 1헨젤과 그레텔이 수록되었음. 





그 순간 책방이 그림(Grimm) 형제의 동화 <헨젤과 그레텔>(Hansel and Gretel)에 나오는 과자로 만든 집처럼 느껴졌다부모에게 버림받은 헨젤과 그레텔은 숲속을 떠돌다가 과자로 만든 집을 발견한다. 남매는 그곳에서 집주인을 만난다. 하지만 그 집주인은 알고 보니 아이들을 잡아먹는 마녀였다. 헨젤은 우리 안에 갇히게 되고, 마녀는 헨젤을 포동포동하게 살찌우기 위해 그레텔을 하녀처럼 부린다.


간식과 음료를 공짜로 먹을 수 있는 책방이 동화에 나온 과자로 만든 집이라면 책방에서 안락함을 누리고 싶은 마음은 이기적인 욕심으로 변질할 수 있다. 자꾸 그곳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이러다가 서재를 탐하다가 아니라 담담을 탐하다가 되겠군그런데도 책방지기는 항상 내게 얼마든지 책방에 와서 편안하게 이용하라고 말한다. 장난스러운 표현이지만, 이런 책방지기의 모습은 마녀와 같다. 책방을 마음껏 이용한 대가로 책방지기가 나에게 계단이 있는 입구나 책방 내부를 청소하는 일을 맡길 수도 있다. 만약에 책방지기가 나에게 무급으로 청소를 부탁한다면 기꺼이 부탁을 들어줄 수 있다. 지금까지 나는 책방을 아늑한 내 방처럼 편안하게 이용했다. 내 방을 스스로 청소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커피를 마셨으면 빈 찻잔을 흐르는 물로 씻어서 찬장에 넣을 수 있다. 이건 어려운 일도, 귀찮은 일도 아니다. 책방을 편안하게 이용했으면 당연히 뒷정리를 해야 한다.


내가 집으로 돌아가려고 하면 책방지기는 나를 배웅한다. 나는 항상 그분에게 오늘 하루도 책방을 잘 이용했고, 즐거웠습니다라고 말한다. 빈말이 아니다. 책방에서 책방지기와 주고받은 대화들, 책방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사건들. 이 모든 게 나한테는 특별해 보인다. 그리고 그냥 흘러 지나가 버리는 시간의 일부로 여기고 싶지 않다. 기억하지 않으면 잊어버린다. 결국 책방에서 보낸 시간을 기억하려면 기록해야 한다기록은 기억을 낳는다항상 이 말을 명심하면서 책방에 관한 기록을 꼭 남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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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1-01-15 12: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다음 기록도 기대합니다!!!

cyrus 2021-01-15 18:13   좋아요 2 | URL
네, 열심히 써보겠습니다. 올해의 목표 중 하나가 대구에 있는 책방에 가보는 거예요. ^^

페넬로페 2021-01-15 12:5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자꾸 담담에 가고 싶어요~~
cyrus님
‘아무튼, 책방‘~~
책 내셔요^^

붕붕툐툐 2021-01-15 15:25   좋아요 2 | URL
와~ 찬성찬성!!

cyrus 2021-01-15 18:15   좋아요 2 | URL
이미 책방에 관한 책을 쓰신 분들이 계시고, 사실 책방 일기는 누구나 쓸 수 있어요. 저는 나태해지지 않고 기록하는 것에 만족합니다. ^^

수이 2021-01-15 13: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멋져 기록도 책방지기님두 크로와상 먹고싶어진다

cyrus 2021-01-15 18:17   좋아요 2 | URL
최근에 비건 빵의 맛을 알게 돼서 그 빵의 맛을 잊지 못하고 있어요.. ^^;;

blanca 2021-01-15 13: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책방 오래오래 흥하기를...

cyrus 2021-01-15 18:18   좋아요 2 | URL
네, 정말 그랬으면 좋겠어요. 대구에 책방이 더 생겼으면 좋겠고요. ^^

미미 2021-01-15 13: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한 번도 직접 뵌적 없는데 담담책방지기님 이젠 익숙하고 친근해요ㅋ. 저에게도 다닐만한 저런 책방이 있었으면 좋겠네요^^*

cyrus 2021-01-15 18:19   좋아요 2 | URL
편안하고 기분이 좋아지는 책방을 알고 있는 저는 행운아 같습니다. 책방에서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났으면 좋겠어요. ^^

붕붕툐툐 2021-01-15 15: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과자로 만든 집에서 글 잘 쓰셨습니까? 어떤 글을 쓰셨는지 궁금하네요~ 전 왠지 이 글이 ‘나는 앳돼 보이고 대학생처럼 보여요~‘하는 자랑의 글처럼 느껴지는 걸까요? (작가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한 건 나뿐인가..훗...)

페넬로페 2021-01-15 16:08   좋아요 2 | URL
와! 저도 비슷한 생각했어요~~
저는 이렇게 생각했어요
cyrus님이 제가 생각한것보다
훨씬 어리신건 아닌지?

cyrus 2021-01-15 18:21   좋아요 1 | URL
어제 블로그에 등록된 글 중에 한 편입니다. 생각보다 금방 글이 써지더라고요. 책방의 좋은 기운을 많이 받았어요... ㅎㅎㅎ

제가 아직도 대학생 같다는 소리를 듣습니다... ^^

cyrus 2021-01-15 18:22   좋아요 2 | URL
To. 페넬로페 님 / 제 나이 숫자 앞자리는 3입니다. ^^

stella.K 2021-01-15 19: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헉, 너도 이제 숫자 앞자리가 바뀌었구나.
그래도 그런 소릴 들을 정도면 아직 한창으로 보이나 보다.ㅎㅎ
훈훈해. 광에서 인심 난다고 역시 책도 좋지만 먹을 게 있어야 해.^^
 
빈센트가 사랑한 책
마리엘라 구쪼니 지음, 김한영 옮김 / 이유출판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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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점  ★★★★  A-





Genuine, Honest, Destiny and Love.

I still believe in these words forever.



압생트는 네덜란드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가 즐겨 마신 술이다이 술은 가격이 싸지만알코올 도수가 높다그래서 압생트의 별명은 녹색의 악마너무 많이 마시면 발작 증세를 일으키며 정신착란을 일으키기도 한다빈센트가 압생트를 많이 마신 탓에 자신의 귀를 잘랐다는 설이 있다.


사람들은 무언가 잊고 싶어서 술을 마신다잊을 수 있을 때까지 벌컥벌컥 마신다. 압생트를 좋아한 보들레르(Baudelaire)는 산문시집 파리의 우울(황현산 옮김)에서 시간의 학대받는 노예가 되지 않으려면취하라끊임없이 취하라고 했다술이든 시든 미덕이든 좋을 대로어떤 사람은 빈센트를 술에 절어 살다가 미쳐버린 화가로 기억한다반은 맞고반은 틀렸다빈센트는 술이 전부가 아니었다그는 책을 너무 좋아해서책에 미쳐버린 책 중독자였다책에 중독성과 치유 효과가 있다한 권의 책을 읽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책을 다 읽으면 현실에 다시 뛰어들 수 있을 만큼 고통과 근심이 사라진다


책은 빈센트의 그림 속에 자주 등장한다37년의 짧은 생애 동안 빈센트는 오직 그림과 책만 생각했다빈센트가 사랑한 책은 빈센트의 예술 세계에 또렷한 흔적으로 남아 있는 책들과 그것에 대한 열정을 보여준다빈센트는 동생 테오(Theo)와 누이동생 빌레미엔(Willemien)에게 보낸 편지에 자신이 읽은 책을 언급했으며 이따금 책에 대한 열정을 드러냈다.

 

 

 ‘내게는 책에 대한 거부할 수 없는 열정이 있다끊임없이 깨우치고배우고 싶은 욕구가 있지마치 하루하루 빵을 먹어야만 하는 것과 같아.’

 

(빈센트가 쓴 편지 중에서빈센트가 사랑한 책》 6)

 


책에 대한 빈센트의 사랑은 설교자에서 화가로 변신하게 만든 욕구였다빈센트를 죽을 때까지 책을 먹었고, 책에 취했다끊임없이 취했다그에게 책은 평범한 그림 소재가 아니었다자기 생각을 끊임없이 들여다보는 종이 거울이었다빈센트는 책을 읽으면서 자신의 내면에 있는 예술가의 역할을 찾아냈다그가 지향한 예술가의 역할은 진실하고 정직하게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빈센트는 자신이 좋아한 낱말인 진실(genuine)’과 정직(honest)’에 부합하는 책들을 찾아 바지런히 읽었다.


보통 사람의 눈에는 빈센트의 책들이 그림 속 소품에 지나지 않는다하지만 빈센트의 그림과 편지를 읽으면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책에 대한 열정이 꿈틀거리는 것을 볼 수 있다책을 향한 사랑이 그림 속에 녹아 있고진실하고 정직한 예술에 대한 열정이 그가 꾹꾹 찍어 눌러서 생긴 붓 자국에 남아 있다.



진실정직운명 그리고 사랑.

이 낱말들을 난 아직 믿습니다영원히[]





[N.EX.T의 노래 <Here, I Stand For You>에 있는 노랫말(노래가 시작되는 부분과 마치는 부분)을 차용해서 빈센트의 독백으로 상상해서 만들어봤다







※ Mini 미주알고주알

 

 


1

 

* 8

 

 어린 시절부터 빈센트는 수백 년에 걸쳐 4개 국어로 간행된 예술 서적과 문학책을 읽고곱씹으며 다시 읽고필사하고생각하기를 거듭했다.[] 문학지와 예술잡지를 빠뜨리지 않고 보았고성경도 여러 판본과 번역본을 두루 읽었다.

 

 

[걸치다는 일정한 횟수나 시간공간을 거쳐 이어지는 상황즉 시간의 길이를 표현할 때 쓰는 동사다. ‘걸쳐를 동안이라는 단어로 바꿔 써보자그러면 인용문은 다음과 같이 두 가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첫 번째빈센트는 어린 시절부터 수백 년 동안 4개 국어로 간행된 예술 서적과 문학책을 읽었다. (‘백 년 동안의 독서인가?)

 

두 번째빈센트는 수백 년 동안 4개 국어로 간행된 예술 서적과 문학책을 어린 시절부터 읽기 시작했다.

 

인용문은 두 번째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빈센트는 30대 후반에 요절했다당연히 그가 백 살까지 살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2

 

 

* 22

 

 빈센트는 약 3년간(1876~1879) 신앙에 심취했는데 그 기간 동안 강렬한 열정이 그를 고양시켰고심지어 광신 상태로까지 몰고 갔다그의 편지에는 종교적 인용문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그는 주로 두 권의 책성경과 토마스 아 켐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를 통해 세상을 보았다이 두 번째 책은 후에 빈센트가 설교자의 길을 갈 때 깊은 영향을 미쳤다네덜란드 수사이자 신비주의자인 토마스 아 켐피스[]가 쓴 책은 헌신적인 신앙의 지침서로신의 뜻에 완전히 복종할 것을 주장했다.

 

 

[켐피스는 그가 태어난 지역 이름 켐펜(Kempen)’에서 유래된 것이다켐펜은 독일에 있는 지역이므로 토마스 아 켐피스는 독일 출신의 인물이다(독일어 이름은 ‘Thomas von Kempen’이다). 이 책의 부록 책과 함께한 삶간추린 연대기에도 토마스 아 켐피스를 네덜란드 수사로 소개되어 있다(194). 


오류라고 보기 어려운 게 역자는 네덜란드 수사라고 했지 네덜란드 출신이라고 하지 않았다실제로 토마스는 1492년부터 네덜란드의 수도원에서 생활했다그를 네덜란드 수사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하지만 네덜란드 수사라고 하면 대부분 사람은 네덜란드 출신 수사로 생각한다그래서 본문에 토마스 아 켐피스가 독일 출신이라는 사실을 언급할 필요가 있다.






3

 

 

* 71~72

 

 위대한 화가에겐 아버지 같은 존재가 있어 평생토록 여러 차례 영감의 원천이 되는 것을 우리는 자주 목격한다빈센트에겐 프랑스 바르비종 화파로 농민의 삶을 그린 화가 장 프랑수아 밀레(Jean François Millet)가 그런 사람이었다밀레는 농민의 힘든 삶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고빈센트가 거룩하다고 느끼는 것을 그림 속에 불어넣을 줄 알았다.

 ‘페레(아버지밀레는 빈센트의 예술의 길에 빛을 비춰주는 등불이었다하지만 그 어떤 그림보다도 그의 마음을 뭉클하게 한 것은 밀레에 관한 책 한 권이었다프랑스 작가 겸 시인[] 알프레드 상시에가 밀레의 생애와 작품에 전념한 끝에 완성한 대작이었다상시에가 묘사한 밀레의 멜랑콜리한 성격은 빈센트에게는 계시나 다름없었다마치 거울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 책의 글쓴이들이 알프레드 상시에(Alfred Sensier)를 소개할 때 가장 많이 언급한 직함은 전기 작가’, ‘미술사가’, ‘미술 평론가나는 상시에를 시인으로 소개한 책을 처음 본다.

 

프랑스판 위키피디아 알프레드 상시에’ 항목에 보면 그가 시를 쓴 사실을 언급한 내용을 찾을 수 없다그가 생전에 펴낸 출판물을 모아놓은 목록에 시집은 없다상시에가 시집을 내지 않고문예지를 통해 시를 발표하면서 등단했다면 그를 시인이라고 소개할 수 있다이를 입증할 수 있는 증거가 없으면상시에를 시인으로 소개한 내용은 사실과 맞지 않은 오류다.






4

 


 

* 184


 1890년 1월에도 신경쇠약 증세가 찾아왔다동생이 빌레미엔에게 쓴 편지를 보면빈센트가 지루함과 싸울 수 있도록 동생들이 헨리크 입센의 유령》 같은 어두운 글을 제외하고 좋은 책을 신중하게 골라서 보내줬다는 걸 알 수 있다. ‘입센의 희곡들을 보내줘서 정말 고맙다. [‥…빈센트 형에게 노라를 보냈단다하지만 지금 형의 상태로 봐서는 당분간 유령》 같은 것은 보내지 말고 갖고 있는 게 좋겠어.’ 아쉽게도 빈센트가 노르웨이의 작가 노라(1828~1906),[] 즉 인형의 집을 읽고 어떻게 반응했는지를 편지에 언급되어 있지 않다.

 

[노라는 희곡 인형의 집》의 주인공이다인형의 집을 쓴 작가는 입센(Henrik Ibsen)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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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21-01-14 2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헐. 노르웨이 작가 노라는 좀... 오타도 아니고.. 이건...ㅜ

cyrus 2021-01-15 12:02   좋아요 0 | URL
최근에 알았는데, 이 책의 역자는 다양한 주제의 책을 많이 번역한 베테랑입니다.

syo 2021-01-15 0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바보처럼, 요즘 세상에도~
역시 우리는 같은 세대인가요.

cyrus 2021-01-15 12:03   좋아요 0 | URL
우리 나이 차가 별로 안 나잖아요. 같은 세대 맞아요.. ㅎㅎㅎ

stella.K 2021-01-15 2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 생일 날 나온 책이네.ㅋ
근데 책이 넘 비싸다.ㅠ
빈센트는 그림은 좋은데 그의 삶은 좀...
영화 버전이 많은데 내 갠적으론 옛날 커크 더글라스의
영화가 좋아.^^

cyrus 2021-01-16 14:33   좋아요 0 | URL
그죠? 빈센트를 좋아해서 그와 관련된 책을 모으고 있어요. 그런데 이 책은 조금 비싸서 구입하지 못했어요. ^^;;
 





임신부는 출산하기 전에 다음 사항들을 지켜주세요.”

 






1. 생필품 점검하기: 화장지, 치약, 비누 등의 남은 양을 확인하여 집에 있는 가족들이 불편하지 않게 합니다.

 

2. 밑반찬 챙기기: 냉장고에 오래된 음식은 버리고 가족들이 좋아하는 밑반찬을 준비해주세요. 그러면 요리에 서투른 남편이 삼시 세끼 잘 챙겨 먹을 수 있습니다.

 

3. 옷 챙기기: 입원 날짜에 맞춰 남편과 아이들이 갈아입을 속옷, 양말, 겉옷 등을 옷장에 보관해둡니다.

 

 

저기요, 선생님. 임신부가 아닌 제가 봐도 지침 내용이 이상한데요? 누가 그러던가요? ? ○○시 임신출산정보센터 웹사이트에 나온 내용이라고요? 어휴, 내가 임신부라면 이걸 전부 지켜야 할 바에 차라리 아이를 안 낳고 말지. 선생님. 밥 챙겨 먹고, 옷 갈아입고, 생필품 점검하는 건 남편도 할 수 있어요.



















* 존 러스킨, 마르셀 프루스트 참깨와 백합 그리고 독서에 관하여(민음사, 2018)




보아하니 선생님은 영국의 사회평론가 존 러스킨 씨군요. 참깨와 백합이라는 책을 쓰신 분 맞죠? 참깨와 백합참깨: 왕들의 보물백합: 여왕들의 화원이라는 두 편의 글을 묶은 책이죠. 첫 번째 글에 올바른 독서법이 나오고, 두 번째 글에 선생님이 생각한 여성의 사적·공적 역할과 여성이 받아야 할 교육이 나오죠. 그런데요, 선생님. 한 손에 참깨와 백합을 들면서 여성 앞에 설교하면 안 됩니다. 지금은 21세기에요. 참깨와 백합이 나온 19세기가 아니란 말이에요.

 

선생님은 백합꽃을 정말 좋아하시네요. 하긴 선생님은 유럽의 중세를 동경했던 만큼 중세의 귀부인을 상징하는 백합에 애착이 강할 수밖에 없죠. 참깨와 백합에서 드러난 선생님의 모습이 마치 백합과 같은 집 안의 여성을 보호하는 중세의 기사 같았어요. 선생님의 눈에 비친 여성은 가정의 안락함을 지키는 천사 같은 존재입니다. 그런데 천사가 집에 없으면 남성은 집안일을 하지 못해서 쩔쩔맵니다. 선생님은 남편이 집안일을 제대로 하지 못할까 봐 임신부에게 가사 노동을 해달라고 당부했어요. 저와 선생님을 포함한 남성이 집에서 누린 안락함은 집안일을 도맡은 여성의 노고와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어요



















*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엄마는 페미니스트: 아이를 페미니스트로 키우는 열다섯 가지 방법(민음사, 2017)




엄마는 페미니스트를 쓴 나이지리아의 작가 치마만다 아디치에가 남편이 아이를 돌보는 것은 아내를 돕는 일이 아니라고 말했어요. 집안일은 아내와 남편이 같이 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선생님, 제발 정신 차리세요! 출산을 앞둔 임신부에게 가족을 위한 배려를 강요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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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1-01-14 10: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 지침 기사 보고 정말 황당했는데 속시원한 글 감사합니다 ㅎㅎ

cyrus 2021-01-14 11:06   좋아요 1 | URL
제가 캡처한 내용보다 더 심각한 것도 있어요. 할 말은 많지만 하지 않을게요. ^^;;

미미 2021-01-14 10:4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가스활명수 찾다가 이 글 읽고 관뒀습니다.ㅋㅋ

cyrus 2021-01-14 11:07   좋아요 2 | URL
센스 있는 칭찬의 말씀, 정말 감사합니다. ^^

페넬로페 2021-01-14 11:0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 문구가 지금 현재 대한민국에서 찍힌 거라구요?

cyrus 2021-01-14 11:08   좋아요 4 | URL
네. 서울시 임신출산정보센터 홈페이지에 있었던 내용입니다. 지금은 삭제돼서 없지만, 검색창에 ‘서울시 임신출산정보센터’를 입력하면 관련 기사와 캡처 사진들이 나옵니다.

mini74 2021-01-14 15: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출산 하러 가기 전날 저희 시어머님이 저 말씀 고대로 하셨죠. 저희 시어머님인줄 ㅎㅎ 저희 시어머님은 그래도 40년생이시니 그러려니 하지만 그래도 분노가 차오르는데 참 갈 길이 먼 것 같아요 ㅠㅠ

cyrus 2021-01-14 19:01   좋아요 0 | URL
변화의 흐름을 받아들이고 나 자신을 바꾼다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아요. 제 자신도 변화에 둔감한 편이라 남들보다 늦게 유행을 받아들이거나 변화의 흐름을 이해하는 편이에요. ^^;;

psyche 2021-01-14 15: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저 글을 페이스 북에서 보고 어찌나 어이가 없던지... 현재 대한민국 서울시에서 나온 거라는 게 믿을 수가 없더라고요.

cyrus 2021-01-14 19:04   좋아요 0 | URL
이번 해프닝을 보면서 점점 변해가는 시대에 맞추지 못하고, 거꾸로 가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걸 느꼈어요.
 




연표로 보는 과학사 400 서평을 쓴 어느 독자가 이 책에 굳이 다루지 않아도 되는 내용이라면서 레이첼 카슨(Rachel Carson)침묵의 봄을 언급했다.


















* 고야마 게타 연표로 보는 과학사 400(AK커뮤니케이션즈, 2020)


* 레이첼 카슨 침묵의 봄(에코리브르, 2011)

 

 

 

나는 독자가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궁금했다. 이유를 묻고 싶어서 댓글을 남기려다가 말았다이유가 어떻든 간에 나는 서평에 있는 독자의 주관적인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 레이첼 카슨은 해양생물학자 겸 작가, 환경보호주의자다. 침묵의 봄은 과학적 검증을 소홀한 채 살충제를 기적의 물질이라고 치켜세웠던 과학계를 비판한 과학책이다이미 나는 과학자로서의 레이첼 카슨을 소개한 몇 편의 글을 썼다. 그러므로 이 글에서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겠다.








 










* 개서린 휘틀록, 로드리 에벤스 과학으로 세계를 뒤흔든 10명의 여성(문학사상사, 2020)


평점

4점  ★★★★  A-





과학으로 세계를 뒤흔든 10명의 여성은 고인이 된 여성 과학자 열 명의 삶과 업적을 소개한 책이다. 여기에 레이첼 카슨이 포함되었다. 원서는 2019년에 출간되었고, 이듬해 여름에 국역본이 나왔다. 책에서는 노벨 과학상(물리학상, 화학상, 생리의학상)을 받은 여성이 총 18명이라고 나온다. 작년에 미국의 안드레아 게즈(Andrea Ghez)가 물리학상을, 유전자 가위기술 연구의 권위자인 미국의 제니퍼 앤 다우드나(Jennifer Anne Doudna)프랑스의 에마뉘엘 샤르팡티에(Emmanuelle Charpentier)가 화학상을 받으면서 현재는 총 21명이다.


















* 강양구, 김상욱 외 과학은 그 책을 고전이라 한다: 우리 시대의 새로운 과학 고전 50(사이언스북스,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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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점  ★★★★  A-

 

 


과학은 그 책을 고전이라 한다는 국내의 과학자들과 작가들이 추천한 50권의 과학 고전 서평 모음집이다. 도서 평론가 이권우 씨가 이 책의 집필진으로 참여했으며 침묵의 봄서평을 썼다.


레이첼 카슨이 과학자였다는 사실을 보여준 책들은 더 있지만, 책 소개는 여기까지만 하겠다. 레이첼 카슨을 과학자가 아닌 환경보호주의자라고만 생각한 그 독자는 이 글을 보지 않을 것이다. 다만 그분이 쓴 서평을 본 다른 독자들이 레이첼 카슨의 업적을 과소평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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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YDADDY 2021-01-12 17: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암으로 돌아가시지 않았다면 현대의 민낯을 더 보여주셨을텐데 생각할수록 아쉬워요.

cyrus 2021-01-13 08:27   좋아요 1 | URL
네, 맞아요. 과거의 의사들은 진료 받는 여성 환자가 기혼자일 경우에 환자에게 병의 증상이라든가 호전 상태 등을 얘기했어요. 당시 레이첼은 미혼(비혼)이라서 담당 의사에게 유방암의 상태에 대해서 자세히 듣지 못했다고 해요. 레이첼은 유방암이 금방 나을 줄 알았대요. 다른 주치의를 만나고 나서야 유방암이 심각한 상태라는 걸 알았어요. 레이첼이 제때 치료받았으면 더 살 수 있었을 거예요.
 
[eBook] 교령회장에서 빅토리안 호러 컬렉션 15
레티스 갤브레이스 / 올푸리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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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매중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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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점  ★★★★  A-





우리는 확실하거나 분명하지 않는 것을 표현할 때 미상이라는 단어를 쓴다. 여기서 잠깐 우스갯소리를 해볼까 한다. 입에서 피식이라는 소리가 나지 않았다면 용서해주시라. 어렸을 때 집에 혼자 있으면 동요 비디오를 봤다. 어린 나는 비디오 영상 속에 나오는 동요의 노랫말 자막을 보면서 불렀다. 동요가 시작하기 전에 노래 제목과 작사가와 작곡가 이름이 자막으로 나온다. 동요 비디오를 계속 보면 작가 미상, 작곡 미상의 동요가 몇 곡 나온다. 나는 작사 미상, 작곡 미상이라고 적힌 자막을 보면서 이 노래는 미상이라는 사람이 만든 거구나라고 생각했다호기심이 많은 나는 어머니에게 미상이 누구냐고 물었다. 어머니는 미상이 누군지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초등학생이 돼서야 나는 미상의 정체, 아니 미상의 뜻을 처음 알았다. 학교에서 국어사전을 이용하는 방법을 배웠다. 나는 국어사전을 이리저리 훑어보다가 어렸을 때부터 알고 싶었던 미상을 우연히 만났다사전 보는 것을 유독 좋아했던 나는 인명사전도 탐독했다. 미생(美生: 신라의 화랑)’이상(시인, 소설가, 본명은 김해경)’은 인명사전을 보면서 만난 사람들이다. 하지만 거기서도 미상이라는 이름의 인물을 만나지 못했다.


단편소설 교령회장에서(In the Séance Room)를 쓴 작가 레티스 갤브레이스(Lettice Galbraith)신원 미상의 영국인이다. 출생연도와 사망 연도는 알려지지 않았으며 이 사람이 여자인지 남자인지 알 수도 없다레티스 갤브레이스가 가명 또는 필명이라면 작가의 정체는 여성일 수 있다. 여성 작가가 선입견과 비난여성이 쓴 글은 남성이 쓴 것만큼 뛰어나지 않다, 여성이 쓴 글이 잘 썼으면 그것은 분명 남성(작가나 남편)의 도움을 받았을 것이다을 피하고자 남자 이름으로 글을 발표하는 일은 빅토리아 시대(Victorian Age)의 흔한 일이었다레티스 갤브레이스는 1892년에 첫 단편소설을 발표했다. 이듬해에 교령회장에서」가 수록된 단편집 새로운 귀신 이야기(New Ghost Stories)를 발표했다. 갤브레이스가 남긴 작품 수는 많지 않다. 1897년에 단편소설 한 편이 나왔으며 1901년에 발표한 또 다른 자신(Alter Idem)을 마지막으로 미지의 작가는 더 이상 글을 쓰지 않았다.


교령회장에서는 단편으로 된 공포소설이지만, 가볍게 볼 수 없는 작품이다. 이 소설은 빅토리아 시대에 나타난 여러 가지 사회적 문제들이 반영된 현실적인 이야기다소설의 주인공 밸런타인 버크(Valentine Burke)는 야심이 많은 내과 의사다. 그는 신분 상승을 위해서 돈이 되는 일에 손을 댄다. 밸런타인이 관심이 있는 분야는 심령 현상 연구와 최면술이다. 빅토리아 시대의 부유한 영국 사람들은 한두 가지의 고상한 취미를 즐겼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심령 현상이었다. 영국의 상류층은 심령술사들에게 아주 중요한 돈줄이었다. 밸런타인은 외모가 출중한 의사였고, 심령술을 잘 알고 있었다. 심령술 또는 신비주의 모임에 참석한 밸런타인은 부잣집 아가씨와 귀부인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은 유명 인사였다. 그는 재산이 많은 아가씨 엘마 랭(Elma Lang)을 신비주의 모임에 끌어들였고, 자신의 약혼녀로 만드는 데 성공한다.


밸런타인은 양다리를 걸친 바람둥이다. 그는 엘마를 만나기 전에 캐서린 그래브스(Katharine Greaves)라는 여자를 만나고 있었다. 밸런타인은 이 여자와의 관계를 어떻게 하면 끊을 수 있을까 고민하던 중에 실종된 캐서린이 익사체로 발견되었다는 기사를 접한다. 그는 걸림돌 하나를 제거했다면서 안심했지만, 그 기사는 오보였다. 캐서린이 밸런타인의 집을 찾아왔다! 밸런타인은 옛 연인을 멸시하는 눈빛으로 바라본다. 캐서린은 자신의 사망 소식을 실은 기사를 확인했다. 무연고자가 된 그녀가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사람은 밸런타인이었다. 그러나 밸런타인은 냉정하게 캐서린을 외면한다. 캐서린은 이제야 잔혹한 현실을 깨닫는다. 그녀에게 남은 최후의 선택은 자살이었다


밸런타인은 비정하게도 캐서린의 귓가에 대고 속삭이듯이 무언가를 말한다. 과연 그는 그녀에게 무슨 말을 했을까? 작가가 의도한 것인지 모르겠으나 밸런타인이 캐서린에게 한 말은 나오지 않는다. 작가는 밸런타인이 속삭인 몇 마디 말을 들은 캐서린의 얼굴에 경악 어린 절망(terror)’이 떠올렸다고 묘사했을 뿐이다. 밸런타인은 이제 살 마음이 없는 그녀에게 가스라이팅(gaslighting)을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 그의 귀엣말은 그녀를 죽음으로 이끌게 한 최악의 최면술이다.


캐서린은 강물에 뛰어들었다. 밸런타인은 또 한 번 고인을 능욕하는 일을 저지른다. 자신이 강물에 뛰어든 자살자를 구하려고 시도한 의인으로 둔갑하여 명성을 얻었다. 밸런타인은 캐서린을 확실하게 죽이려고 강물에 뛰어들었을 것이다. 캐서린은 필사적으로 그의 팔뚝을 움켜쥐었다. 이런 와중에 밸런타인은 자신의 손에 끼고 있던 약혼반지를 잃어버린다. 그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4년 후에 그 반지가 자신을 파멸로 몰아가게 만든 결정적 증거가 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밸런타인은 심령술의 권위자로 승승장구한다. 그는 귀부인의 자택에서 열리는 교령회(Séance)에 참석한다. 이 자리에 심령술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모였다. 밸런타인은 교령회에 나타난 영혼의 존재를 보여주기 위해 귀신에게 질문을 보낸다.



 4년 전 이 시각에 나는 뭘 하고 있었나? 혹시 다른 사람과 같이 있었다면 그 사람의 이니셜을 적으시오.

 

 

영혼은 밸런타인의 질문에 응답하기 위해 종이에 글을 남겼다.



당신과 같이 있던 사람은 나뿐이었다

당신은 나에게 최면을 걸었다. - K. G.

 

 

‘K. G.’는 4년 전에 죽은 캐서린 그래브스의 머리글자.


빅토리아 시대에 남녀 불문하고 자신의 과거 신분을 세탁해서 사기 결혼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사기 결혼으로 이혼하고, 경제적 파산까지 겪은 여성은 자신의 불행한 신세를 한탄하다가 끝내 강물에 뛰어들었다. 실제로 템스강 주변에 물에 빠진 사람을 구조하거나 익사자의 시신을 건져내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익사자 중에 이혼해서 홀몸이 된 여성, 남편 없이 자녀를 키운 여성도 있었다. 이들 모두 빈곤에 시달리다가 끝내 극단의 선택을 했다.


비록 사회적 문제들의 현실적인 해결책이나 대안은 나오지 않지만,교령회장에서는 당시 시대상을 비판적인 시선으로 바라본 미지의 작가가 쓴 소설이다. 이 작품은 공포소설에 대한 선입견공포소설은 현실과 동떨어진 소재를 다룬 허구적인 이야기을 무너뜨렸다. 내가 생각하는 정말 재미있는 공포소설은 당대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만든 특정 존재와 사회적 현상 들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이야기. 그러나 최고의 공포소설은 당대 사람들이 제대로 보지 못했던 현실적인 것, 그리고 알고 있으면서도 외면했던 특정 존재와 사회적 현상 들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이야기. 교령회장에서는 재미있는 공포소설과 최고의 공포소설의 중간 단계에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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