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 친화력으로 세상을 바꾸는 인류의 진화에 관하여
브라이언 헤어.버네사 우즈 지음, 이민아 옮김, 박한선 감수 / 디플롯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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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점   ★★★★   A-






오랫동안 알려져온 진화에 관한 세 가지 오해가 있다. 우리는 세 가지 오해를 진지하게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첫째, 진화는 인류를 지구상에서 가장 뛰어난 종으로 만드는 진보를 동반한다. 인류가 지구의 지배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최적의 진화를 거듭해왔기 때문이다. 둘째, 인류의 조상은 원숭이다. 아주 먼 옛날 우리의 조상은 원숭이였고, 진화를 거듭하면서 지금의 인류가 되었다. 셋째, 진화는 적자생존의 원칙 그 자체다. 자연에 적응한 강한 종의 유전자는 다음 세대에 전해지고, 그렇지 못한 종의 유전자는 도태되면서 끝내 절멸된다그래서 자연은 적자생존과 승자독식의 규칙이 지배하는 전쟁터 같은 곳이다.


적자생존의 원리에 따르면 오래 살아남는 종이 강하다. 생육과 번식, 창조를 거듭하며 참으로 많은 것을 발명하고 문명을 세운 인류는 살벌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은 강자다. 이러한 인식의 배경 속에 적자생존과 약육강식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세상의 이치이며 인류는 동물보다 우월한 존재라는 신념이 자리 잡고 있다. 침팬지는 인간과 유전적으로 가장 가까운 생명체다. 하지만 인류의 삼림 수탈과 지구 온난화로 침팬지의 터전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인류에게 포획된 침팬지는 실험용 동물이 되어 희생된다적자생존을 세상 불변의 진리로 보는 세계관은 자연을 마음껏 착취할 수 있다는 인간 중심적 탐욕으로 확장된다. 이로 인해 침팬지는 멸종의 벼랑 끝으로 내몰린다이 모든 문제는 진화에 관한 세 가지 오해에서 비롯된다문제는 진화론을 좀 안다는 사람들도 이런 오해를 한다. 따라서 진화와 관련된 막연한 오해를 바로잡아야 한다오해를 너무 오랫동안 외면하거나 방치하면 쉽게 지워지지 않는 심각한 오류로 남는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는 진화의 의미를 잘 모르는 사람뿐만 아니라 오로지 적자생존밖에 모르는 얼뜨기 진화론자도 하기 쉬운 오해를 바로잡는 책이다이 책을 쓴 두 명의 저자는 제한된 자원을 독점하기 위해 경쟁을 지향하는 진화 전략보다는 타인과 협력하는 진화 전략에 주목한다이 인류의 생존 전략의 중심에 연대와 공존을 강화하는 다정함과 친밀감이라는 정서가 있다인류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경쟁에서 이길 정도로 똑똑하고 강해서가 아니라 타인과 소통하고 협력했기 때문이다강한 자만 살아남았는 게 아니라 다정한 자도 살아남았다.


인류는 어떻게 혈연이 아닌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방식을 터득하면서 진화했을까? 저자들은 다정함과 친밀감이 진화의 근원임을 설명하기 위해 자기 가축화(self-domestication) 가설을 제시한다자기 가축화란 말 그대로 야생의 개체가 스스로 인간과 함께 사는 가축이 되는 현상을 뜻한다가장 대표적인 자기 가축화 동물이 바로 개다. 개의 조상인 야생 늑대는 인간을 경계하고, 공격성이 강하다. 그러나 이들 중 일부는 인간이 버린 음식 쓰레기를 먹으면서 살아갔고, 인간에게 조금씩 다가갔다. 인간의 터전 주변을 맴도는 늑대들은 인간에 대한 경계심보다 친밀감이 강했다늑대가 점점 가축으로 진화하자 공격성이 줄어들었고, 날카로운 이빨의 크기는 작아졌다. 이렇게 성격과 외형까지 완전히 달라진 늑대는 인류의 반려동물인 개가 되었다.


자기 가축화 현상은 인간에게도 나타난다. 우리는 자신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타인을 만나면 친밀감을 느낀다. 또 자신과 비슷한 환경에서 자라거나 가치관을 공유하는 타인을 가족 같은 친구로 여긴다. 이러한 관계에서 싹트기 시작한 다정함과 친밀감은 타인을 향한 적대감을 줄어들게 만들었고, 타인과 협력할 수 있는 능력을 향상했다어쩌면 평화주의자는 인간의 자기 가축화 현상을 내세워 전쟁을 반대하는 목소리를 높이고, 평화의 필요성을 적극적으로 강조할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자기 가축화 현상은 타인에 대한 적대감과 폭력성을 완전히 줄이지 못한다. 역설적이게도 같은 무리끼리 어울리고 싶은 친밀감과 결속력이 더 높아질수록 타인과 외집단과의 협력을 꺼린다. 심지어 타인을 차별하고, 공격해야 할 적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인종주의와 우생학은 인류의 진화에 적용된 자기 가축화 현상의 어두운 이면이 낳은 이데올로기다인종주의에 사로잡힌 서구인들은 자신보다 열등한 민족을 분류하여 이들을 원숭이와 같은 미개한 존재로 바라봤다. 우생학은 적자생존의 원칙을 사회에 적용하려는 진화론자들이 열광한 학문이었다. 우생학자와 사회진화론자들은 뛰어난 유전자와 몸, 정신을 가지고 있는 인류를 선호했다. 그들이 바라본 장애인은 뛰어난 인류에 적합하지 않는 배제의 대상이었다.


특정 민족을 인간이 아닌 원숭이 같은 동물로 취급하던 사람 중 일부는 진화론에 강한 거부감을 느꼈다. 그들은 지구상에서 가장 우수하고 특별한 존재가 인간이라고 확신(착각)했기 때문에 동물을 인간의 조상으로 보는 견해에 분개했다. 하지만 그들은 진화론을 잘못 알았다. 진화론을 제대로 이해하고 싶지 않았던 사람들은 원숭이, 즉 영장류는 인류의 조상이 아니라 친척임을 알지 못했다인간과 영장류는 유인원에 가까운 오래된 조상에서 갈라져 나와 진화했다. 진화는 원숭이가 점점 인간으로 변하는 단선적인 현상이 아니다


네발로 기어가는 원숭이가 두 발로 걷는 인간으로 진화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인류 진화도는 진화의 두 번째 오해를 낳게 만든 주범이다. 저자들은 여전히 생물학 교과서에 실린 인류 진화도의 문제점을 지적한다(188~189쪽)그리고 침팬지와 보노보가 영장류 가운데 인간과 가장 가까운 친척이라는 사실을 언급했다(87).

 

두 저자는 협력하고 의사소통하는 능력을 발현시킨 인류의 진화 전략을 찬양하지 않는다. 만약 그들이 다정함과 친밀감을 지나치게 긍정하는 진화론을 주장했다면, 인류가 영원히 발전할 거라고 믿는 진보사관에 가까운 견해가 되었을 것이다. 다행히 저자들은 진화의 첫 번째 오해가 파놓은 함정을 피했다. 진화와 진보를 동일시하는 사람들은 그 함정에 빠지기 쉽다. 저자들은 인간을 지구상에서 가장 관용적인 동시에 가장 무자비한 종이라고 말한다(32쪽). 저자들이 생각한 인간의 정의는 낙관적인 진보의 달콤한 환상이 섞인 진화론에 부합한 인간상과 거리가 멀다. 세상을 더 나은 쪽으로 발전하게 만드는 인류의 능력을 지나치게 믿으면 진화를 진보로 착각할 수 있다. 결국 진보사관으로 둔갑한 진화론은 인간중심주의의 한계에 벗어나지 못하게 만든다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는 가장 다정하면서도 무자비할 정도로 잔인해질 수 있는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게 한다인간이란 무엇인가는 철학만이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이 아니다진화론을 제대로 안다면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대답할 수 있다.






미주(尾註)알 고주(考註)






* 31쪽, 옮긴이 주

 

 야생종이 사람에게 길드는 과정에서 외모나 행동에 변화가 일어나는 현상으로, 인간에게도 사회화 과정에서 공격성 같은 동물적 본성이 억제되고 친화력이 높아지는 방향으로 진화하는 자기가축화 과정이 나타난다(랭엄 피터슨[주1], 악마 같은 남성, 이명희 옮김, 사이언스북스, 1998 참조).



[1] 악마 같은 남성(Demonic Males)리처드 랭엄(Richard Wrangham)데일 피터슨(Dale Peterson)이 함께 쓴 책이다. 공저자의 이름을 알아보기 쉽게 랭엄, 피터슨이라고 표기해야 한다.







* 135, 옮긴이 주

 

 괴테의 동명 시 <발라드(Der Zauberlehrling)>[2]를 뮤지컬 애니메이션으로 각색한 디즈니 장편 3부작 <판타지아>의 마지막 편으로 1940년에 개봉, 2000년에 개봉했다.

 


[2] 135쪽 두 번째 역주는 <마법사의 제자>(The Sorcerer’s Apprentice)에 관한 것이다. 그런데 시 제목이 잘못 적혀 있다. 괴테의 시 제목은 발라드(ballade)가 아니라 <마법사의 제자>(Der Zauberlehrling). 발라드는 시 형식을 지칭하는 단어다.





* 267~268


러시아 대통령 니키타 흐루쇼프(Nikita Khrushchyov) 소련 공산당 서기장 니키타 흐루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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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붕툐툐 2021-08-03 23:37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미주알 고주알 볼 때마다 어떻게 이렇게 꼼꼼하게 읽으실 수 있는지 입이 쩍 벌어집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알기 위해 철학 진화론이 필요하다는 말씀에 공감합니다!!

새파랑 2021-08-04 11:44   좋아요 5 | URL
저도 사이러스 님 글 보면 깜놀깜놀 합니다 ^^

cyrus 2021-08-04 22:03   좋아요 1 | URL
인간의 정의는 다양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학문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려면 책을 많이 읽어야겠죠? ^^

2021-08-04 12: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8-04 22: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카넷_디플롯 2021-08-04 13:3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섬세한 탐독에 경의를 표하고 싶을 정도 입니다.
‘미주알 고주알‘ 부분은 담당편집자에게 바로 전달했습니다.
저희 책 꼼꼼하게 읽어주셔서 다시 한 번 감사합니다 :)

- 아카넷(디플롯) 드림 -

붕붕툐툐 2021-08-04 20:56   좋아요 3 | URL
엄훠~ 출판사님(?) 등장!ㅎㅎ

cyrus 2021-08-04 22:09   좋아요 2 | URL
구입한 책인데 책값이 아깝지 않았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

stella.K 2021-08-04 20: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일단 진화론에 대한 좀 반가운 책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적자생존에 너무 많이 쩔어 있었는데 이런 새로운 이론도 나오니 말야.

요즘엔 짬이 나는가 보다. 간간히 너의 글을 볼 수도 있으니.
휴가는 썼나 모르겠다. 요즘엔 어딜 통 못 다니겠으니 다녀왔냐는 물음이 어색하지?ㅋ

cyrus 2021-08-04 22:12   좋아요 3 | URL
야근을 안 하니까 저녁에 책 읽고 글 쓸 시간이 생겼어요. 물론 예전에 비하면 많다고 볼 수 없지만, 그래도 독서와 글쓰기에 집중하도록 노력하고 있어요. 휴가는 백신 접종 날짜에 맞춰서 하려고요. ^^
 
러브크래프트 : 세상에 맞서, 삶에 맞서
미셸 우엘벡 지음, 이채영 옮김 / 필로소픽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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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점  ★★★★  A-






프랑스의 시인 보들레르(Baudelaire)의 시집 악의 꽃의 첫머리에 있는 독자에게는 시집의 서문에 해당한다. 이 시에서 시인은 제일 흉하고 악랄하고 추잡한 놈이 있다면서 독자에게 경고한다. 그놈은 소리 없이 돌아다닌다. 하지만 그놈은 무시무시한 힘을 가졌는데 지구를 박살내고, 한 번의 하품으로 지구의 모든 인류를 집어삼킬 수 있다. 시인은 시의 마지막 연에 그놈의 정체를 밝힌다. 그것은 권태라는 괴물이다. 시인은 권태가 다루기 힘든 괴물이라면서 이것이 인류에게 주는 고통을 아는 소수의 독자를 위선자라고 부른다. 하지만 그들은 시인의 동지와 같은 존재. 악의 꽃을 이해하는 유일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보들레르는 악의 꽃을 포함한 자신의 모든 글에서 권태를 자주 언급했는데, 그가 내린 권태의 정의는 다양하다. 그는 현대인의 악과 천박함을 말하기 위해 권태라는 소재를 즐겨 썼다. 보들레르에게 권태란 덧없고 부조리한 세상을 살아야 하는 인간이 품고 있는 불만감이다.


보들레르는 자신의 유일한 시집을 공개하면서 부조리한 세상에 맞섰고, 천박한 대중을 향해 도발했다. 그러나 시인은 위선적인 독자에게 이해받고 싶었다. 이러한 시인의 진심은 미국의 소설가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Howard Phillips Lovecraft)의 삶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염세주의자인 그는 자신의 글쓰기 재능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는 글쓰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러브크래프트는 철저하게 대중과의 거리를 둔 채 글을 썼지만, 역설적으로 그의 소설은 작가의 존재감을 확실히 보여준다. 러브크래프트의 글쓰기는 단순히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세상에 알려서 인정받기 위한 행위가 아니다. 자신이 비관적으로 바라보는 세상에 맞서는 개인적인 분풀이다러브크래프트는 생전에 인정받지 못했으나 사후에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와 함께 미국 공포문학의 대가로 평가받았다.[주1] 


러브크래프트의 삶과 작품 세계를 독자적인 관점으로 분석한 프랑스의 소설가 미셸 우엘벡(Michel Houellebecq)은 러브크래프트를 극단주의자라고 평가한다러브크래프트는 이 세상과 모든 존재는 악하다고 결론을 내렸으며 죽을 때까지 이 관점을 고수했다그는 세상에 불만이 많았고, 인류를 경멸했다. 어쩌면 러브크래프트가 생각한 괴물은 이 세상 자체일 것이다. 그는 자신을 둘러싼 거대한 괴물에 분풀이하기 위해 또 하나의 괴물을 창조한다. 그것이 바로 크툴루(Cthulhu)’를 비롯한 외계의 존재들이다. 러브크래프트의 괴물들은 인간을 절망에 빠뜨리게 하고, 그들을 눈앞에서 본 인간은 속절없이 무너진다. 괴물과의 조우는 연약하기 짝이 없는 인간의 정신을 습격하는 악몽이 된다. 악몽에 점령당한 인간에게 희망은 없다. ‘nevermore(이젠 끝이야).’[주2]


러브크래프트는 자신이 앵글로색슨 혈통이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꼈다. 혈통에 대한 지나친 자부심과 세상을 향한 증오는 결합되어 극단적인 인종차별적인 사고를 잉태한다. 혼혈인과 이민자들에 대한 그의 경멸은 소설 속에 반영되어 있다. 러브크래프트의 소설을 처음 읽는 독자는 이 사실을 놓치기 쉽다. 우엘벡은 러브크래프트의 소설에 나타난 문제점을 언급하고 비판한다.


러브크래프트는 특이한 사람이다인류를 경멸하고, 사람 만나기를 꺼려하던 그가 유독 좋아했던 일이 편지 쓰기다. 젊은 작가들은 편지를 통해 러브크래프트에게 조언을 구하거나 초고 교정을 부탁했다. 편지를 받은 러브크래프트는 초고를 진지하게 봐주었으며 답장을 꼭 써서 보내줬다. 그와 편지를 주고받은 작가들은보들레르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들은 작가의 역량을 주목한 몇 안 되는 러브크래프트의 동지들이다. 러브크래프트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한 작가들을 가리켜 러브크래프트 서클(Lovecraft circle)’이라 한다러브크래프트를 단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친절하고 상냥한 신사로 기억했다.


러브크래프트: 세상에 맞서, 삶에 맞서러브크래프트 평전이라기보다는 작품 분석에 초점을 맞춘 문학 비평서에 가깝다.[주3] 그러므로 이 책은 러브크래프트의 소설을 아직 안 읽은 독자에게 권할 수 없다. 러브크래프트 입문자를 위한 책이 절대로 아니다우엘벡이 러브크래프트의 대표작러브크래프트의 골수팬(Lovecraftian)들은 작가의 뛰어난 작품 일곱 편을 그랑 텍스트(grands textes, 뛰어난 걸작)’라고 부른다의 결말을 간접적으로 언급하기 때문이다. 러브크래프트의 소설을 한 번이라도 읽은 독자라면 이 책을 읽을 수 있다러브크래프트: 세상에 맞서, 삶에 맞서는 러브크래프트라는 불가사의한 작가와 그랑 텍스트에 대한 주석서다러브크래프트의 추종자라 자부하는 독자는 우엘벡의 견해에 반박하는 주석을 쓸 수 있다. 이 책의 서문을 쓴 미국의 소설가 스티븐 킹(Stephen King)은 우엘벡의 핵심적인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도전적인 독서를 지향하는 러브크래프트 추종자라면 이 책을 단순히 작가를 향한 팬심을 유발하는 책정도로 봐서는 안 된다그들에게 제안한다소설과 신화로 남은 러브크래프트에 맞서라.






※ 미주(尾註)알 고주(考註)



[1] 포는 러브크래프트와 보들레르, 이 두 사람과의 인연이 깊은 작가다. 러브크래프트가 좋아하는 작가는 포였고, 그의 영향을 받아 소설을 썼다. 포의 문학적 재능을 눈여겨 본 보들레르는 포의 단편소설을 불어로 번역했다. 



[2] 포의 시 까마귀(The Raven)에 반복되어 나오는 말이다.



[주3] 히가시 마사오(東雅雄)크툴루 신화 대사전(AK커뮤니케이션, 2019)에 수록된 다른 차원의 인간-러브크래프트의 생애와 문학은 러브크래프트의 삶을 좀 더 상세하게 소개된 글이다이 글 속에 러브크래프트가 직접 쓴 개인 프로필이 있다.



* 37

 

 출간 기념 사인회를 열면 젊은 친구들이 책에 사인을 받으러 찾아오는 일이 종종 있었다. 롤플레잉 게임[3]이나 시디롬을 통해 러브크래프트의 존재를 알게 된 사람들이었다.


[주3] 롤플레잉 게임(RPG: Role-Playing Game)이라 하면 일반적으로 비디오, 컴퓨터, 모바일 게임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롤플레잉 게임은 원래 TRPG(Tabletop Role Playing Game, Table-talk Role Playing Game)를 뜻하는 용어다TRPG는 여러 사람이 탁상에 모여 앉아 각자가 맡은 캐릭터 역할을 연기하는 게임이다우엘벡이 언급한 롤플레잉 게임TRPG일 것이다크툴루 신화를 소재로 만든 호러 TRPG1981년에 출시된 <크툴루의 부름>(Call of Cthulhu)이다. 이 게임은 현재까지 7판이 출시되었고, 국내 TRPG 전문 출판사 초여명이 번역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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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 역학을 믿으려면 분자를 믿어야 한다.

 

(윌리엄 크로퍼, 위대한 물리학자 3에서, 105)





내게 천사를 보여 달라. 그러면 천사를 그릴 것이다.” 이 말을 남긴 프랑스의 화가 쿠르베(Courbet)는 대상을 사실 그대로 표현하는 것을 회화의 중요 덕목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신 또는 성서에 묘사된 성인과 천사들의 모습을 그리는 것에 관심이 없었다. 오로지 자신의 눈에 비친 현실을 그렸다.


오스트리아의 물리학자이자 철학자인 에른스트 마흐(Ernst Mach)는 원자의 존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 이유는 간명했다. 원자가 우리 눈에 보이지 않아서다. 마흐는 어떤 현상의 원인을 설명하게 해주는 관찰과 실험을 중요하게 여겼다. 원자론자들은 마흐의 견해에 반박할 수 없었다. 그 당시에 원자의 존재를 입증할만한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세등등한 마흐는 원자론자들을 향해 이렇게 일갈했으리라. “내게 원자를 보여 달라. 그러면 원자론을 믿을 것이다.”





















* 데이비드 린들리, 이덕환 옮김 볼츠만의 원자: 물리학에 혁명을 일으킨 위대한 논쟁(승산, 2003)


* [절판] 윌리엄 크로퍼 위대한 물리학자 3: 패러데이의 전자기학과 볼츠만의 통계 역학》 (사이언스북스, 2007)



 


마흐를 필두로 한 실증주의자들의 공세에 원자론자들은 수세에 몰렸다. 하지만 마흐와 같은 출신의 물리학자 루트비히 볼츠만(Ludwig Boltzmann)은 원자론을 부정하는 학자들을 설득하기 위해 그들과의 토론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는 수학자들의 전유물이었던 통계와 확률을 이용해서 운동하는 원자의 이동 방향과 상태를 알아내려고 했다. 볼츠만의 견해에 따르면 기체는 다수의 분자로 이루어졌다. 그는 통계적인 방식을 이용해 기체 속 분자의 성질을 설명하는 기체운동론을 주장했다스코틀랜드의 물리학자 맥스웰(Maxwell)을 포함한 선대의 과학자들이 기체운동론을 논의한 적이 있었지만, 이를 체계적으로 정립한 사람은 볼츠만이었다기체운동론은 통계역학이라는 새로운 물리학의 등장을 알리는 중요한 이론이 되었다물론 통계의 중요성을 주목한 볼츠만의 획기적인 발상 역시 원자와 분자의 세계를 믿지 못한 동료 과학자들을 납득시키지 못했다. 마흐도 그렇고, 당시 과학자들은 관찰과 실험을 거쳐 원자론이 명백한 이론인지 아닌지 검증하고 싶어 했다.


볼츠만은 실증주의자들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 원자론과 기체운동론과 관련된 연구에 매진했다. 하지만 진전이 없었다. 젊은 시절부터 그를 괴롭히던 우울증이 더 심해졌다. 우울증을 견디지 못한 볼츠만은 1906년에 가족과 함께 휴가를 보내다가 호텔 방에서 목을 매고 자살했다


볼츠만이 자살하기 일 년 전인 1905년에 스위스 특허청 직원이 총 다섯 편의 논문을 연이어 발표했다. 그 논문 중에 물 위에 떠 있는 꽃가루가 불규칙하게 움직이는 현상에서 나나타는 브라운 운동(Brownian Motion)’을 다룬 것이 있었다. 브라운 운동을 현미경으로 관찰한 스위스 특허청 직원은 분자의 움직임을 실험으로 검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의 논문은 볼츠만의 원자론에 힘을 실어주는 중요한 문헌이었다. 안타깝게도 볼츠만은 이 논문을 알지 못했다. 


재미있는 점은 스위스 특허청 직원이 좋아한 철학자가 마흐였다. 그 직원의 이름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이다. 아인슈타인은 191512월에 논리실증주의의 발전을 주도한 독일의 철학자 모리츠 슐릭(Moritz Schlick)에게 보낸 편지에 자신이 공부한 데이비드 흄(David Hume)과 마흐의 인식론이 특수상대성이론의 탄생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밝혔다

















* 김현철 강력의 탄생: 하늘에서 찾은 입자로 원자핵의 비밀을 풀다(계단, 2021)




원자핵 속에 있는 입자들을 결합시키는 힘인 강력이 발견되기까지 나온 과학자들의 업적을 보여준 강력의 탄생에 볼츠만이 잠깐 나온다.



 볼츠만은 시대를 한참이나 앞선 과학자였다. 그는 당시 사람들이 상상도 하지 않던 원자론을 주장했다. 그 이듬해에 눈으로 볼 수 있는 것만이 실재한다고 주장하던 에른스트 마흐가 빈 대학에 왔다. 볼츠만의 원자론을 따르는 사람들과 마흐를 추종하는 실증주의자들 사이에 전쟁이 시작되었다. (23)



나는 강력의 탄생서평에서 볼츠만을 시대를 앞선 과학자로 평가한 저자의 견해를 비판했다. 하지만 지금은 저자의 견해가 옳다고 생각한다. 볼츠만은 시대를 앞선 과학자였다. 물론 볼츠만이 원자론을 주장했다고 해서 시대를 앞선 과학자로 평가하는 건 아니다. 볼츠만이 위대한 과학자인 이유는 통계와 확률을 동원해 미시적인 원자의 세계를 설명하려고 했다는 사실이다. 미시 세계에 접근하기 위해 수학을 이용한 볼츠만의 발상은 당대 물리학자들이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희한한 것이었다(《볼츠만의 원자》 80쪽).


볼츠만의 원자위대한 물리학자 3: 패러데이의 전자기학과 볼츠만의 통계 역학은 볼츠만의 삶과 업적, 그리고 통계 역학을 소개한 책이다. 그런데 볼츠만의 원자에 오자가 있다. 정오표를 남긴다.



* 27쪽: 19세기 영국의 철학자 케인스


[] 케임브리지 대학생 시절에 케인스(Keynes)는 철학 수업을 청강한 적이 있다. 케인스 전기(두 권으로 된 번역본이 있는데, 이 책의 부제는 경제학자 · 철학자 · 정치가)를 집필한 경제사학자 로버트 스키델스키(Robert Skidelsky)철학자로서의 케인스의 면모를 주목했다. 케인스는 마르크스(Marx)가 세상을 떠난 해이기도 한 1883년에 태어났고, 1902년에 케임브리지대학에 입학했기 때문에 그는 20세기에 활동한 인물이다.


* 53쪽: 부루크너 브루크너(Anton Bruckner)


* 100쪽: 호이겐스 하위헌스(Huygens)


* 114헨리 캐빈디쉬 헨리 캐번디쉬(Henry Cavendish)


* 134내장암 대장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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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그만 메모수첩 2021-08-03 0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침 빅뱅 이후 38만 년, 자유전자와 원자핵이 만나 원자들이 형성되는 장면을 읽고 있는데 볼츠만의 이야기를 읽으니 마음이 편치가 않네요. 영면하셨기를. 언제나처럼 리뷰 잘 읽었습니다. 🙏🏼

cyrus 2021-08-03 21:36   좋아요 1 | URL
볼츠만이 우울증으로 고생하지 않았으면 오래 살아서 더 많은 업적을 남겼을 거고, 지금쯤 누구나 기억하는 과학자로 알려졌을 겁니다.

새파랑 2021-09-10 16: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Cyrus님 9월 당선 축하드립니다~!!

mini74 2021-09-10 16: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

그레이스 2021-09-10 1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합니다 👏

서니데이 2021-09-10 18: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조그만 메모수첩 2021-09-10 1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이하라 2021-09-10 1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초딩 2021-09-11 1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페이퍼 당선 축하드립니다~
 
토성의 고리
W. G. 제발트 지음, 이재영 옮김 / 창비 / 2019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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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점


3점  ★★★  B






18세기 프랑스의 풍경화가 위베르 로베르(Hubert Robert)의 별명은 폐허의 로베르. 폐허가 된 고대 건축이 있는 풍경을 자주 그려서 이런 별명이 생겼다여행기 형식으로 된 장편소설 토성의 고리를 쓴 독일의 작가 W. G. 제발트(Winfried Georg Sebald)에게 붙여주고 싶은 별명은 폐허의 제발트


토성의 고리에서 화자는 사람들이 스쳐 지나가기 쉬운 폐허의 현장들을 응시한다. 그가 주목한 폐허의 현장들은 마음을 즐겁게 해주는 최적의 여행 장소와 거리가 멀다. 그곳엔 쓸쓸함이 감돌고 있다. 화자는 자신을 덮쳐오기 시작한 공허감을 벗어내기 위해 영국의 서퍽(Suffolk) 주로 도보 순례를 한다. 소설의 부제는 영국 순례. 하지만 소설 속 화자의 여행은 영국에 한정되어 있지 않다그의 내면은 가지처럼 뻗어서 영국 너머의 세계로 향하고,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과거의 장소를 답사하기도 한다예를 들면 화자는 사우스월드(Southwold)와 월버스윅(Walberswick) 마을 사이를 오가는 철교를 바라보다가 19세기 중반 중국의 시대상을 되돌아본다이것은 눈으로 보는 여행이 아닌 마음이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여행이다화자가 폐허의 현장들을 둘러보면서 사색에 빠질수록 허무와 우울은 더욱 선명해진다. 우울한 순례자는 망각과 무관심의 풍화 작용으로 부식되고 퇴색된 장소들을 보며 장밋빛 미래를 기대하면서 발전해왔던 세상의 허망함을 깨닫는다.


점점 세상은 더 좋아질 거라는 낙관적인 믿음은 인류를 눈멀게 한다. 세상을 좋아지게 만드는 데 기여한 인간은 역사의 승자가 된다. 승자에게만 주목한 역사는 대대손손 보존되는 우상(偶像)을 견고하게 해주는 재료다. 우상이 우뚝 서 있을수록 우상의 그림자는 더욱더 짙어진다. 우상의 그림자는 패자 또는 무명으로 기록된 역사를 가린다토성의 고리에서 보여준 작가의 글쓰기는 폐허의 장소에 드리운 우상의 그림자를 걷어내고, 부식되어 뿔뿔이 흩어져버린 역사의 파편들을 모으는 작업이다토성의 고리는 토성에 접근하다가(토성의 중력에 의해서) 부서진 위성들의 잔해로 이루어져 있다. 소설 제목은 주류 역사가 만든 거대한 우상을 못 이겨 산산조각이 난 또 다른 역사의 파편들을 의미한다. 작가가 글로 기록하면서 복원한 역사는 미래 낙관론과 우상 중심의 역사관에 도취한 인류가 보지 못한 세상의 진실이다.


토성의 고리는 인내심이 필요한 소설이다. 화자의 순례는 옆길로 새거나 때로는 미로 같은 장소에서 헤매기도 한다. 여기에 폐허의 현장들을 둘러보면서 느낀 상념까지 버무려진 글은 작가의 문장을 따라가는 독자를 지치게 한다. 여행은 폐허를 응시하는 화자를 심란(心亂)하게 하고, 그것을 지켜보는 독자의 마음이 심난(甚難)하다.






미주(尾註)알 고주(考註)

 


* [주1] 역자는 바실리스크(Basilisk)보는 것만으로 사람을 죽인다는 전설의 뱀(32)’이라고 설명했다. 맞긴 한데 이는 중세 시대에 만들어진 전설이다. 고대 로마 제국의 박물학자 플리니우스(Plinius)의 저서 박물지(최근에 번역본이 나왔다!)에 따르면 바실리스크가 내뱉은 숨결에 독성이 있어서 그 숨결만 닿아도 죽는다. 이것이 고대 사람들이 상상한 바실리스크의 위력이다. 중세에 접어들면서 바실리스크 전설은 과장스럽게 변형되었는데, 메두사(Medusa)처럼 눈만 마주쳐도 죽는다든가 그 울음소리를 듣는 것만으로 죽을 수 있다는 설정도 나왔다.



* [2] 33에 언급된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환상의 존재들에 대한 책(El libro de los seres imaginarios)보르헤스의 상상 동물 이야기(민음사, 2016)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다.



* 46


 아편을 맞고 몽롱한 상태에 빠진 콜리지(1772~1834, 영국의 시인 · 평론가)라고 해도 그의 몽골 군주 쿠빌라이 칸을 위해 이보다 더 몽환적인 장면을 그려낼 수는 없었을 것이다. [3]

 

[3] 아편에 취한 콜리지가 몽롱한 상태에 쓴 시가 바로 쿠블라 칸(Kubla Khan)이다. 콜리지는 꿈에서 본 쿠빌라이 칸의 여름 별궁 제나두(Xanadu, 제너두)를 소재로 이 시를 썼다.

 

 


* 294~295

 

 오후에 그들은 오랫동안 함께 앉아 따소(16세기 이딸리아의 시인)해방된 예루살렘(Gerussalemme liberata)신생(Vita nuova)을 읽었고, 어린 소녀의 목이 진홍색으로 붉어지거나 자작의 심장이 목깃까지 두근거리는 일이 드물지 않았다.

 

[주4] 신생단테(Dante)의 작품이다번역본은 새로운 인생(민음사, 2005)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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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8-01 21:4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토성의 고리, 제목부터 난해해 보이는데, 리뷰보니 더 난해해 보이네요 ㅜㅜ

cyrus 2021-08-02 17:12   좋아요 1 | URL
제목의 의미는 책 맨 앞장을 보면 알 수 있어요.. ㅎㅎㅎㅎ

Angela 2021-08-01 23:4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의식의 흐름대로 진행되나요?

cyrus 2021-08-02 17:12   좋아요 0 | URL
네, 그렇습니다. ^^

붕붕툐툐 2021-08-02 00: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cyrus님 날 더운데 잘 지내시나요?
인내심이 필요한 소설에서 전 벌써 아웃 당했습니다. cyrus님이 어려우시면 저는 읽어낼 재간이 없네요~ 하핫!

cyrus 2021-08-02 17:15   좋아요 1 | URL
국내 독자들이 생소한 인물(에드워드 피츠제럴드, 앨저넌 스윈번, 홍수전)에 대한 일화와 역사가 이 책의 주요 내용이라서 서양 문화와 서양사에 관심 있는 독자가 아니라면 지루할 수 있어요. ^^;;

바람돌이 2021-08-02 00:5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독자를 심란하게 한다는데서 빵!!! 작가님들 이러시면 안되어요. ^^

cyrus 2021-08-02 17:17   좋아요 1 | URL
지난 주 일요일에 <토성의 고리> 온라인 독서 모임이 진행되었는데, 이 책을 어려워한 분들이 많았어요. 솔직히 말해서 저는 이 소설이 재미없었어요.. ^^;;

blanca 2021-08-02 17: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제나두에 그런 뜻이. 올리비아 뉴튼 존 노래 제목이잖아요!

cyrus 2021-08-02 17:32   좋아요 2 | URL
제나두라는 노래가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어요. 어떤 노래인지 들어봐야겠어요. ^^
 




전망 좋은 []

 

EP. 14

 


202174일 일요일

인문학 헌책방 직립보행’, 더코너북스













오늘 오전에 인문학 헌책방 직립보행에 갔다. 두 번째 방문이다. 이곳은 , 일요일에 문을 열고(토요일과 일요일에 여는 시간이 다르다. 토요일은 오후 2, 일요일은 오전 11시다), 9시에 닫는다. 매달 마지막 주말은 휴무일이다











보통 헌책방에 가면 마음에 드는 책을 마음껏 고를 수 있다. 하지만 직립보행에서는 그렇게 살 수 없다. 지금 바로 읽을 수 있는 책 세 권만 사야 한다. 인문학 분야의 책뿐만 아니라 소설, 사회과학, 과학, 역사 분야의 책들도 있다. 직립보행은 한 마디로 말하면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어린 헌책방이다. 동네책방 같은 헌책방이라 볼 수 있다.













 

3, 40년이나 된 헌책방을 인간의 생애 주기에 비유하면 노년기에 가깝다. 대구에 재개발 구역이 많이 생기면서 늙은 헌책방들이 하나둘씩 사라졌다. 이에 덧붙여서 안타까운 소식을 전하자면, 대구시청 주변에 있는 헌책방 두 곳(동양서점, 평화서적) 모두 문을 닫게 되었다. 동양서점은 이미 6월에 폐점했고, 평화서적은 폐점 준비를 하고 있다.

 

직립보행도 헌책방 고유의 특징이 있고, 이에 따른 장단점도 있다. 장점은 시중에 구하기 힘든 책이 꽤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도서관 서고에 없는 책도 그곳에 있다. 단점은 그런 희귀본들의 가격이다. 직립보행을 동네 책방인줄 알고 방문한 손님 입장에서는 책값이 부담스럽게 느낄 수 있다. 이런 사람은 책을 사지 못하게 할 정도로 비싼 책값을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다. 헌책방에서 고가의 책을 사본 적이 있는 나도 그 심정을 이해한다.

 

직립보행책방지기는 자신이 구매한 책, 특히 희귀본이 팔려가는 것을 볼 때마다 아쉬운 감정을 느낀다고 했다. 책방에 처음 방문했을 때 나는 절판된 조르주 바타유(Georges Bataille)에로티즘의 역사(민음사, 1998)를 구입했는데, 책방지기는 그 책을 다 읽고, 나중에 다시 팔면 안 되겠느냐고 진담 반 농담 반으로 말했다. 그런데 실제로 직립보행에서 구매한 책을 다 읽고, 그 책을 다시 같은 곳에 판 손님이 있었다고 한다. 아마도 그 손님은 무소유의 독서를 지향하는 분인 것 같다. 나는 그 분과 정반대의 성격이다.

 

오늘 직립보행에 가보니 책방지기의 평생 동반자로 추정되는 여성 한 분이 계셨다. 내가 니체(Nietzsche)와 관련된 책들을 향해 눈길을 주고 있으니까 그분이 들뢰즈(Deleuze)와 푸코(Foucault)의 책을 추천했다. 철학과 관련해서 그분과 짧게나마 대화를 나눴는데 내공이 느껴졌다. 그분은 책방지기의 이름을 부르는 모습은 마치 누나가 남동생을 부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책방지기와 철학 책을 추천한 분의 관계가 궁금했다. 부부일까, 남매일까? 아니면 책을 좋아해서 만난 친구? 다음번에 두 분을 만나면 여쭤봐야지.









 

오후에 대구 남구에 있는 선택의 자유라는 책방에 갔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문을 닫은 상태였다. 이곳 휴무일이 월요일이라고 알고 갔는데‥…. 책방지기는 공식 휴무일이 아니더라도 개인 사정이 있다거나 아니면 자기가 내키는 대로 책방 문을 닫을 수 있는 자유가 있다. 이곳은 다음에 가보기로 하고, 남구에 위치한 또 다른 책방 더코너북스에 갔다. ‘더코너북스는 조용한 동네 안에 있다. 이곳에 책을 사면 책방지기가 직접 만든 가죽 책갈피를 받을 수 있다.


매일신문에 <문득 동네책방>라는 기사가 연재되고 있다. 대구와 경북의 책방을 소개한 기사인데 더코너북스(11)’직립보행(20)’이 소개되었다. 인터넷 검색창에 문득 동네책방이라고 검색하면 기사 전문과 책방 내부를 담은 사진을 확인할 수 있다. ‘선택의 자유<문득 동네책방>에 아직 소개되지 않은 책방이다.


지금까지 가본 대구의 동네책방(괄호 안의 숫자는 <문득 동네책방> 연재 순서). 아직 안 가본 책방이 많다.

 


(1) 고스트북스

 

(4) 담담책방

 

(5) 심플레이스

 

(7) 서재를 탐하다

 

(9) 물레책방

 

(11) 더코너북스

 

(20) 직립보행

 

(29) 읽다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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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1-07-20 21:1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직립보행은 그냥 동네 서점 같네요^^

cyrus 2021-08-01 19:32   좋아요 1 | URL
동네책방인 줄 알고 들어간 손님들이 많았을 거예요. ^^

새파랑 2021-07-20 21:3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번에도 느꼈는데 대구에는 멋진 독립/동네 서점이 많은것 같아요. 저는 내공이 부족해서 이런데 방문하면 좀 부끄럽더라구요 ㅎㅎ 그래도 한번씩 갑니다 ㅋ 대구 가면 여기있는 서점 가봐야 겠어요 😊

cyrus 2021-08-01 19:32   좋아요 2 | URL
저는 동네서점이 더 많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특히 제가 사는 서구에 주말에도 여는 책방 하나 더 생겨야 합니다. ^^

페넬로페 2021-07-20 22:1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직립보행은 헌책방이라도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헌책방의 모습이 아닌데요.
자그마하고 깔끔해서 정감이 가고 인문학서적만 있으니 책 고르기도 쉬울듯 해요~~저도 서울에 있는 독립서점을 좀 다녀볼까했는데 혼자서는 엄두가 안나더라고요^^내년엔 몇군데라도 갈수있는 상황이 되면 좋겠어요**

cyrus 2021-08-01 19:37   좋아요 2 | URL
서울의 책방에 가보고 싶은데, 코로나 확산이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네요. ^^;;

미미 2021-07-20 22:1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서점 내부가 아늑하네요! 서점은 사진을 보는것 만으로도 기분 좋아져요.😊 실제로 가면 떠나기가 싫고요ㅋㅋㅋ 저희 동네도 이런 서점이 늘어났으면 좋겠어요.

cyrus 2021-08-01 19:39   좋아요 1 | URL
맞아요.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나오는 책방에 한 번 들어가면 나오기 싫어요.. ㅎㅎㅎ

바람돌이 2021-07-21 18: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서점순례 너무 좋아요. 저기 직립보행이란 서점은 정말 동네 책방같네요. 언젠가 대구에 가게 되면 저도 방문하고 싶습니다. 좋은 책방 이야기들 언제나 너무 좋아요. ^^

cyrus 2021-08-01 19:41   좋아요 1 | URL
직립보행이 있는 동네가 삼덕동이라는 곳인데 그 동네에 카페와 식당도 많아요. 나들이하기 좋은 곳이에요. ^^

Angela 2021-08-01 01: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소개글과 사진을 보면 꼭 가보고싶어요~

cyrus 2021-08-01 19:42   좋아요 1 | URL
사진만 봐도 책방 분위기를 알 수 없어요. 직접 가봐야 책방 특유의 아늑하고 독서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분위기를 느낄 수 있어요. ^^

blanca 2021-08-02 17: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언제 기회되면 대구 서점 순례 저도 하고 싶어요...더위는 좀 어떤가요? 서울은 오늘부터 좀 시원합니다.

cyrus 2021-08-02 17:36   좋아요 1 | URL
대구 날씨는 매일 습하고 무덥습니다. 비가 쏟아 붓다가 어느 새에 햇볕이 뜨겁게 내리쬐다가 다시 비 오고.. 소나기가 자주 오는 편입니다. 그래서 외출하면 반드시 우산을 챙겨야 해요. 계속 무더울 거라는 일기예보를 믿지 않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