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에게 노란 집은 개인 작업실이 있는, 그런 단순한 거처가 아니다. 빈센트는 노란 집에서 자신과 친한 동료 예술가와 함께 생활하면서 작업하길 원했다. 1888년 빈센트는 아를(Arles)에 있는 노란 집에 네 개의 방을 빌렸고, 폴 고갱(Paul Gauguin)을 초대했다. 하지만 전혀 다른 성향을 가진 두 사람은 시시때때로 부딪혔다. 그해 1223일 빈센트는 정신 발작을 일으켜 고갱과 다툰 끝에 면도칼로 자기 귀를 잘랐다.


빈센트는 본인의 충동적인 성격과 주관이 뚜렷한 작업 방식을 충분히 이해할 줄 아는 넓은 포용력을 가진 화가를 만났어야 했다. 그러면 노란 집은 예술이 일상화된 멋진 장소가 되었을 것이다. 노란 집이 마음에 든 빈센트는 이렇게 썼다. 나는 살 수 있고, 숨 쉬고, 명상하고, 그림을 그릴 수 있다.”

















* 멀리사 와이즈 글, 케이트 루이스 그림 예술가가 사는 집: 지베르니부터 카사아술까지 17인의 예술가와 그들이 사는 공간(아트북스, 2021)




대부분 예술가는 빈센트처럼 자신만의 노란 집을 꿈꾼다. 자신의 예술적 아이디어를 마음껏 실험할 수 있으면서도 다른 예술가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새로운 영감을 얻을 수 있는 곳을 원한다예술가가 사는 집은 예술가의 개성과 창작 열정이 가득한 집의 내부를 글과 그림으로 소개한 책이다이 책의 공동 저자는 직접 예술가의 집을 방문했는데 한 사람이 그곳에 관한 이야기를 썼고, 또 다른 한 사람은 집 안 풍경을 관찰하면서 그렸다시간이 흐르면서 사라지거나 크게 달라진 예술가의 집은 정확히 재현하기 힘들다. 그런 경우에는 남아 있는 사진과 각종 기록을 참고하면서 그렸다고 한다.


이 책에 빈센트의 노란 집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글쓴이와 그린 이는 빈센트의 미적 감각이 반영된 노란 집의 내부 분위기를 묘사하기 위해 빈센트가 동생 테오(Theo van Gogh)에게 보낸 편지를 참고했으며 편지글을 인용하기도 했다.



 “오늘 아침에 해가 뜨기 한참 전부터 창문으로 샛별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시골을 보았다. …… (샤를프랑수아) 도비니와 (앙리) 루소가 한 일이 바로 그것이다.”  


(빈센트가 테오에게 보낸 편지, 예술가가 사는 집151)



빈센트는 바르비종 화파(École de Barbizon)를 존경했으며 그들의 화풍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바르비종은 파리 근교에 있는 작은 시골 마을이다. 이 마을 근처에 퐁텐블로(Fontainebleau) 숲이 있다. 이 숲의 경관과 시골 풍경에 매료된 화가들은 이곳에 정착해 그림을 그렸다. 그들을 가리켜 바르비종 화파라고 부르는데, 가장 대표적인 화가가 장 프랑수아 밀레(Jean-François Millet). 빈센트가 편지에 언급한 샤를 프랑수아 도비니(Charles François Daubigny) 역시 바르비종 화파에 속한 화가다.


빈센트는 편지에 도비니와 함께 루소를 언급했다. 예술가가 사는 집에 인용된 편지글에는 앙리 루소(Henri Rousseau)’라고 표기되어 있다. ‘루소라는 성을 가진 유명한 프랑스인 두 명이 있다. 장 자크 루소(Jean Jacques Rousseau)와 앙리 루소다. 장 자크 루소는 너무나도 유명한 사상가라서 여기서 길게 언급하지 않겠다. 앙리 루소는 세관원 출신의 화가다. 독학으로 미술을 공부해서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열대 지방의 풍경을 상상해서 그림을 그린 것으로 유명하다.


앙리 루소라고 표기한 사람이 책의 저자인지, 아니면 책을 번역한 역자인지 알 수 없다. 확실한 건 빈센트가 언급한 루소는 앙리 루소가 아니다. 성이 ‘루소’인 화가가 또 있다. 그 사람은 바로 테오도르 루소(Théodore Rousseau)테오도르 루소는 바르비종 화파의 지도자로 평가받는 화가다.


















* 빈센트 반 고흐, 정진국 옮김 고흐의 편지(펭귄클래식코리아, 2011)




편지글이 쓰인 정확한 날짜는 나오지 않지만, 빈센트가 생 레미(Saint Rémy)에 있는 정신병원에 있을 때 썼다는 것을 알 수 있다펭귄클래식 시리즈로 나온 고흐의 편지 2에 생 레미 시절에 쓴 고흐의 편지가 실려 있다. 188995일 또는 6일에 동생에게 보낸 고흐의 편지에 테오도르 루소를 포함한 바르비종 화파의 화가들이 언급된 내용이 있다.



 엉뚱한 일도 일어났어. 마네트 살로몽[주]에 현대미술에 관한 토론이 실렸는데, 어떤 화가와 또 한 사람이 무엇이 남게 될지이야기하면서 풍경화가들이 남을 거라고 하더구나. 이런 관점이 어느 정도는 입증된 셈이지. 이미 코로, 도비니, 뒤프레, 루소, 밀레는 풍경화가로 인정받고 있잖아.

 

(고흐의 편지 2179)



카미유 코로(Jean-Baptiste-Camille Corot)는 바르비종 화파로 분류되지만, 그는 바르비종에 정착하면서 그림을 그리지 않았으며 풍경화뿐만 아니라 신화나 역사적인 일화를 소재로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쥘 뒤프레(Jules Dupré)는 테오도르 루소와 친했던 바르비종 화파의 일원이다. 그러나 살롱 전에 여러 번 고배를 마신 테오도르 루소는 뒤프레가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을 정도로 명성을 얻게 되자 그와 절교했다.



















* 재원 편집부 엮음 카미유 코로(재원, 2005)

* [절판] 뱅상 포마레드 코로(창해, 2002)
































* 유니온아트 엮음 세계인이 사랑한 불멸의 화가 20: 장 프랑수아 밀레 자연과 농부(봄이아트북스, 2021)

 

* [절판] 김성진 엮음 인물로 보는 서양 미술사: 바르비종 미술(서림당, 2016)

 

* [절판] 전하현 바르비종과 사실주의: 바르비종 들먹여 뜬 7개의 별과 2개의 해(생각의나무, 2011)

 

* [절판] 노성두 외 자연을 사랑한 화가들: 밀레와 바르비종파 거장들(아트북스, 2005)

 

* [절판] 즈느비에브 라캉브르 외 밀레(창해, 2000)




코로와 밀레를 포함한 바르비종 화파를 깊게 다룬 책이 많지 않다. 몇 권 있긴 한데, 현재 절판된 상태다.





[주] 프랑스의 소설가 공쿠르 형제(Goncourt Frères)가 쓴 소설. 책을 즐겨 읽은 빈센트는 공쿠르 형제의 작품을 좋아했는데, 공쿠르 형제가 쓴 소설책이 있는 정물화를 그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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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ummii 2022-06-04 05: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절판 찾는 묘미^^b

cyrus 2022-06-05 18:54   좋아요 2 | URL
쉽게 구할 수 없는 책을 가지고 있으면 기분이 조크든요.. ㅎㅎㅎㅎ

얄라알라 2022-06-04 10: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 새벽배송으로 받은 알라딘.책상자 속에.앙리루소 티셔츠가 있었는데.cyrus님.글에서.한번.더 만나고 가네요^^

cyrus 2022-06-05 18:56   좋아요 1 | URL
제가 좋아하는 화가 중 한 사람이 앙리 루소예요. ^^

mini74 2022-06-04 2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고보면 바르비종파 그림들 , 밀레그림을 고흐가 많이 모사했네요. 고흐도 속하고 싶었던걸까요 아니면 바르비종과 비슷한 화파를 고갱과 만들고 싶었던 걸까요 절판된 책들 읽고싶어요. 도서관 검색이라도 해봐야겠어요. *^^*

cyrus 2022-06-05 19:00   좋아요 1 | URL
빈센트는 자신의 예술 세계를 이해해 줄 동료 화가들을 만나고 싶었을 거예요. ^^
 




독일의 원예학자 안드레아스 바를라게(Andreas Barlage)선량한 이웃들은 정원 식물뿐만 아니라 정원에 거주하는 곤충도 소개한다. 하지만 어제 쓴 서평에 언급했듯이 곤충의 습성과 관련된 저자의 설명이 상세하지 않다.


저자는 사람을 공격하는 살인 괴물로 오해받은 말벌이 실은 같이 살아도 괜찮은 동료라고 말한다말벌은 자신이나 벌집이 적으로부터 위협받을 상황에 맞닥뜨리면 먼저 공격한다

     

















* 안드레아스 바를라게 선량한 이웃들: 우리 주변 동식물의 비밀스러운 관계(애플북스, 2022)



 살인 괴물이라는 말벌은 실은 천년만년 같이 살아도 괜찮은, 충분히 무해한 우리 동료다. 한마디 덧붙이면 식물에 해를 가하는 벌레들을 몰아내야 할 경우에 말벌은 아주 훌륭한 조력자다.


( 41. 말벌에 쏘이면 죽을 수 있다는데 정말일까?중에서, 139)



저자는 말벌이 식물에 해를 가하는 벌레들을 몰아내는 조력자라고 강조하면서 말벌에 대한 과장된 오해를 불식시키는 글을 마무리한다그렇지만 여전히 나는 저자의 견해에 궁금증이 생긴다. ‘식물에 해를 가하는 벌레란 구체적으로 어떤 종일까?


곤충의 습성을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고, 두루뭉술 넘어가는 저자의 문제점은 나방에 대한 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나방은 항상 빛을 쫓아다닌다. 사람들이 사는 곳에서 밤에 불이라도 켜져 있으면 나방들은 끝날 줄 모르는 자극을 쫓아 때로 밤새도록 불빛을 맴돌며 운명처럼 춤을 추어댄다. 그러니 나방을 위해 선행을 하고 싶다면 집과 정원의 야간 조명을 최소화하고, 사용하지 않는 전등 스위치는 완전히 꺼두어야 한다. 이는 전기를 아끼는 길이기도 하다.


9. 나방은 왜 눈에 잘 띄지 않는 색을 지닐까?」 중에서, 43)



이 인용문 역시 글의 마지막 문장이다. 이런 두루뭉술한 결말을 좋게 보자면 독자에게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능동적 읽기에 익숙한 독자는 말벌이 좋아하는 해충이 어떤 것인지, 나방이 왜 빛만 보면 환장하면서 날아다니는지 알아본다하지만 나름의 장점이 있다고 해서 사전 조사를 충분히 하면 설명할 수 있는 내용을 언급하지 않은 저자의 문제점이 가려지는 건 아니다.


















* 안네 스베르드루프-튀게손 세상에 나쁜 곤충은 없다: 플라스틱 먹는 애벌레부터 별을 사랑한 쇠똥구리 까지 우리가 몰랐던 곤충의 모든 것(웅진지식하우스, 2019)

 

 


선량한 이웃들에 소개된 해충들은 생태계와 인간을 위해 좋은 일을 한다. 해충이라고 알려진 곤충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바를라게의 시선과 유사한 책이 세상에 나쁜 곤충은 없다이다이 책의 저자인 노르웨이의 곤충학자 안네 스베르드루프-튀게손(Anne Sverdrup-Thygeson)도 곤충이 정원 생태계 유지에 도움이 된다고 언급하면서 말벌을 예로 든다. 하지만 말벌의 장점을 처음 밝힌 문헌의 출처가 불분명하다고 밝힌다.

 


 곤충은 정원의 질서 유지에도 도움이 된다. 말벌을 예로 들어보자. 한참 성장하는 말벌들에게는 많은 영양분이 필요하다. 처는 불분명하지만, 말벌 한 마리가 수백 제곱미터의 정원에서 약 1킬로그램의 곤충을 처리한다는 얘기가 있다. (93)



이 책에 나방이 불빛에 달려드는 이유가 나온다. 비록 가설이지만, 독자의 궁금증을 해갈시켜주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나방은 하늘의 달(또는 별빛)을 기준으로 일정한 각도를 유지하면서 비행한다. 그런데 나방은 인공 불빛과 달빛을 구분하지 못한다. 결국 인공 불빛을 달빛으로 착각한 나방은 인공 불빛 주변을 맴돌면서 날아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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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2-06-03 22: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여태 ˝두리뭉실˝이라고만 써왔는데 cyrus님 페이퍼 덕분에 한 번 더 찾아보고 배우고 가네요. ˝두루뭉술˝이 원표준어였군요?^^
해충, 익충의 이분법과 이름이 인간 중심적이다라는 비판을 제임스 스캇의 책에서 본 것 같은데, cyrus님께서 소개해주신 부분을 읽어보면, 아마도 같은 뉘앙스의 주장인 듯 합니다^^

cyrus 2022-06-04 05:29   좋아요 2 | URL
저는 글을 쓸 때 단어 하나에 나름 신중하게 확인하면서 써요. 되도록 표준어를 쓰려고 해요. 국어사전을 찾아가면서 표준어를 쓰다 보면 내가 그동안 비표준어를 쓰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돼요. 그렇게 일일이 국어사전을 확인하면서 글을 쓰면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우리말 공부를 할 수 있어서 좋아요. ^^

알라님이 언급한 스캇의 책이 어떤 건지 궁금해요. 어떤 책인지 알아보고 읽어봐야겠어요. ㅎㅎㅎ

얄라알라 2022-06-04 09: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농경의 배신이랍니다^^저는.그래도.옛.받아쓰기.세대인데.요즘 초등학생들은.그조차도.안하고 못하고.조기학습으로 넘어가서..
 
선량한 이웃들 - 우리 주변 동식물의 비밀스러운 관계
안드레아스 바를라게 지음, 류동수 옮김 / 애플북스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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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점   ★★★   B






우리는 세상을 둘로 나누어보는 방식에 익숙하다. 이분법은 복잡한 세상을 좀 더 단순하게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하지만 이분법의 한계를 인식하지 못하면 우리는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흑백논리의 오류를 범한다. 내가 옳다는 것을 지나치게 믿으면 내 오류를 인정하지 않는 건 물론이고 상대방의 관점도 인정하지 않는다. 흑백논리에 빠진 사람은 난 옳고 넌 틀렸다는 우격다짐, 내 편 감싸기를 능사로 삼는다. 그렇게 우리는 이질적인 존재에 향해 적개심을 드러내면서 우리 자신의 영역과 권위를 지키려고 한다.

 

정원을 가꾸는 일에 인간의 편 가르기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정원사의 손길이 닿은 정원 속에 보이지 않는 구획선이 한두 개 있다. 정원 식물을 시들게 하는 해충과 식물의 성장에 도움 주는 익충으로 나누는 선, 가꾸지 않아도 저절로 자라는 잡풀을 뽑아내기 위해 만들어진 선이 있다. 이 선이 없으면 우리는 근사한 정원이 생기지 못할 거로 생각한다. 선 없는 정원에 잡초가 무성하면 그 정원을 방치한 정원사가 무성의하다고 판단한다.

 

어렸을 때부터 정원사에게 정원을 관리하는 일을 배운 독일의 원예학자 안드레아스 바를라게(Andreas Barlage)는 이분법적 선이 없는 정원을 선호한다. 모든 동식물을 해로운 것과 이로운 것으로 나누는 정원의 구획선은 인간이 만들어낸 이기적인 울타리다. 해충과 익충, 작물과 잡풀은 자연을 통제하려는 인간이 편의상 부르는 명칭이다. 이분법적 선이 설치된 정원이 아름다워 보여도 정원 속 생태계는 무너진다. 흔히 우리는 해충과 잡풀을 제거한다는 이유로 해충 방역에 나서거나 제초제를 뿌리지만, 효과보다는 오히려 해충의 천적까지 죽이는 부작용이 생긴다.

 

선 없는 정원 속에 사는 동식물은 선량한 이웃들이다. 바를라게의 책 선량한 이웃들은 그동안 해충또는 잡풀이라는 부정적인 단어가 붙여진 동식물이 정원에서 살아가는 방식을 알려준다. 해로운 존재로만 알려진 동식물이 어떻게 생활하는지 모를수록 그들의 장점은 보이지 않는다. 인간은 식물이 자연과 인간에게 미치는 좋은 영향을 모르는 식물 맹(plant blindness)뿐만 아니라 곤충 맹까지 겪고 있다. 해롭다는 이유로 외면받은 동식물도 알고 보면 나름대로 쓸모 있다


저자는 말벌이 해롭지 않은 우리 동료라고 말한다. 말벌은 인간을 먼저 공격하지 않으며 식물에 해를 가하는 곤충을 몰아내기 때문이다(그런데 저자는 말벌이 인간에게 유용한 사례를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곤충의 생태에 대한 저자의 설명이 미흡하다). 달콤한 꿀을 만드는 꿀벌은 익충이고, 그 꿀벌을 해치는 말벌을 해충으로 인식하는 국내 양봉 업계와 독자로선 말벌을 호의적으로 보는 원예학자의 견해를 받아들이기 힘들 수 있다. 특히 다음 인용문은 말벌을 엄청나게 싫어하는 독자를 당혹스럽게 한다.

 

 

 말벌은 보호 대상이어서 위해를 가하거나 죽이는 사람은 주머니를 탈탈 털어야 한다. 최대 5만 유로까지 벌금을 내야 하니까.

 


(42. 땅벌 집이나 말벌 집을 다른 데로 옮길 수 있을까?중에서, 140)

 

 

책의 번역자는 이 문장에 대해 부연 설명(역주)을 하지 않았다. 아마도 어떤 독자는 말벌을 보호해야 한다는 저자의 말이 저자 개인의 생각이라고 여길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말벌 보호론자가 아니다. 실제로 독일에서는 말벌이 보호종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연방자연보호법(Bundesnaturschutzgesetz)’이라는 규정에 따르면 야생동물 혹은 곤충을 포획하거나 죽이면 5만 유로의 벌금을 내야 한다. 저자는 말벌이나 말벌 집을 제거하려면 법적인 문제 없이 말벌을 제거할 수 있는 해충 박멸 전문가와 상담하라고 권한다. 저자는 말벌을 해충이 아니라 익충이라고 주장하는데, 그도 사람인지라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이분법의 한계를 답습한다. 나는 말벌을 해충일 수 있고, 익충이 될 수 있는곤충으로 바라보고 싶다. 익충이나 해충으로 구분 짓더라도 상황에 따라서 익충이 해충이 될 수 있고, 해충이 익충이 될 수도 있다.

 

저자는 농약으로 해충과 잡풀을 제거하는 일에 반대한다. 그는 공생을 강조한다. 정원을 망치는 동식물을 적이 아닌 이웃으로 바라본다. 저자의 생명관은 나도 살고 너도 살리고!’. 과연 우리는 모두가 평화롭게 살아가는 생태계로 이루어진 정원을 만들어 가꿀 수 있을까? 인간과 동식물 모두가 만족하면서 살아가는 정원 만들기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지만, 정원을 가로지르는 구획선을 제거할 수 있다. 식물맹과 곤충맹을 유발하는 구획선을 없애기 위해 그 무엇보다도 먼저 해야 할 것이 있다. 인간 중심주의와 이기주의를 벗고, 이분법이나 편견 없이 자연을 알려고 하는 호기심을 가지면 된다. 나와 다른 다양한 존재를 포용하고, 살아있는 모든 종이 상생하는 생명관을 정립하면 그동안 하찮고 해롭다고 여긴 동식물이 이웃으로 보인다.






미주(尾註)알 고주(考註)

 

 

* 103




 

 어쨋든[1] 전등은 밤에 필요할 때만 켜야 하며, 가장 좋은 방법은 커튼으로 가리는 것이다. 그러면 사생활도 지킬 수 있다.

 


[1] 어쨌든의 오자.

 

 



* 36. 벌에 쏘였을 때 정말 도움이 되는 처방은 뭘까?중에서

123


벌침을 핀셋이나 손톱으로 신속히 제거한다.[2]

 


[2] 손톱이나 핀셋으로 피부에 박힌 벌침을 집어서 뽑으면 벌침 끝에 남아있는 독성물질이 몸 안으로 더 침투할 수 있다. 독성물질이 나오지 않게 손톱이나 핀셋으로 천천히 제거할 수 있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신용카드 모서리로 벌침을 살살 긁으면서 제거해야 한다. 그런 다음 병원으로 신속하게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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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다시 건강해지려면 - 정의로운 건강을 위한 의료윤리학의 질문들
김준혁 지음 / 반비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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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점  ★★★★  A-






도덕과 윤리가 없으면 사회와 국가라는 공동체가 흔들린다. 도덕과 윤리는 공동체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이 지켜야 하는 행동규범이다. 여기까지가 우리가 철석같이 믿고 있는 도덕과 윤리의 정의다. 라틴어 ‘mores’는 도덕과 풍습을 뜻한다. 도덕적 또는 윤리적 삶은 오래전에 만들어진 공동체의 규율이나 관례에 순종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도덕과 윤리는 우리 귀에 대고 ‘반드시 해야 한다라고 끊임없이 속삭인다. 독일의 철학자 니체(Nietzsche)는 윤리가 풍습을 지키기 위한 복종과 같다고 봤다. 그는 자신의 책 아침놀에서 가장 윤리적인 사람이야말로 공동체의 풍습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이런 사람은 개인의 자유와 비판 정신을 말살하는 도덕과 윤리에 따지지 못한다.

 

의료윤리학자 김준혁은 무엇이 선이고 악인지 따지는 윤리의 역할을 따진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선택의 갈림길에 여러 번 선다. 이때 어느 쪽을 선택하는 것이 좋은 것인지 고민한다. 김준혁은 우리에게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학문이 윤리라고 말한다. 그런 다음, 삶의 방향을 알려주는 윤리를 가지고 의학이 우리 사회에 올바르게 사용하고 있는지 따진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우리 삶의 변화를 앞당겼을 뿐만 아니라 감염병에 철저히 대비하기 위해 지켜야 할 도덕적 관습을 낳았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만든 가장 대표적인 도덕적 관습은 사회적 거리두기마스크 쓰기. 정부는 코로나19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해 식당 및 카페의 영업시간과 모임 인원을 제한했고, 마스크 착용 의무화를 시행했다. 코로나19 확진자는 주변 사람들의 곱지 않은 시선과 비난을 한 몸에 받는다. 팬데믹에 지친 사람들은 확진자에게 책임을 묻거나 과도하게 비난한다. 확진되지 않은 사람(사실 이 표현에 문제점이 있다)은 확진자들을 비도덕적 인간으로 간주한다. 마스크를 제대로 쓰지 않았거나 사람이 많이 모인 장소에 돌아다녀서 확진자가 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백신을 안 맞았는데도 확진 판정을 받지 않았고, 게다가 감기도 걸리지 않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이런 사람일수록 자신이 건강하다고 확신하며 건강하지 못한 확진자를 부정적으로 바라본다.

 

니체는 아침놀서문에서 도덕에 대한 지나친 신뢰를 철회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밝혔다. 김준혁은 개인과 인간에게만 초점이 맞춰진 건강의 정의와 코로나19 방역 조치에 대한 지나친 신뢰를 따지기 위해 우리 다시 건강해지려면을 썼다. K-방역으로 알려진 신속항원검사는 한때 전 세계가 주목했다. 하지만 저자는 K-방역의 장점으로 주목받은 빠른 진단 검사에 지나치게 신뢰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문제를 제기한다. 모든 의학적 검사 결과는 완벽하지 않다. 양성과 음성으로 판정하는 신속항원검사 결과도 마찬가지다. 코로나19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았는데도 확진자로 진단받을 수 있고(위양성), 감염되었는데도 아무 이상이 없다는 진단이 나올 수 있다(위음성). 위음성으로 의심되는 결과를 받은 확진자는 스스로 건강하다는 확신 속에서 심리적인 안정감을 느낀다. 그들은 자신을 확진되지 않은 사람으로 인식하겠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확진되지 않은이라는 표현에 결점이 있다. 우리는 건강의 정의를 질병의 부재와 동일시한다. 그러므로 확진자가 아니더라도, 몸이 아프지 않으면 자신의 건강 상태가 좋다고 착각한다. 증상이 잘 나타나지 않은 질병이 생각보다 많다.

 

건강 상태가 안 좋으면 그 원인을 개인의 생활 습관에서 찾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개인의 부주의한 건강 관리와 생활 방식을 지적하는 것을 질병의 개인적 책임담론이라 한다. 개인적 책임 담론은 건강의 정의를 개인의 능력과 결부시키는 관점에서 비롯된다. 저자는 개인의 책임과 사회의 책임이라는 이분법적 틀로 의료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을 비판한다. 질병의 원인을 환자 개인의 문제로만 바라보게 되면 사람을 병들게 하는 사회구조의 문제점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 저자는 개인과 사회가 건강 문제에 함께 관심을 가지는 동시에 함께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 다시 건강해지려면은 코로나 팬데믹 이후 의학과 의료 제도가 우리 건강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되돌아보게 만든다. 실외 마스크 의무와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 조치에 기분이 들뜨기 쉬운 지금 시기에 읽어야 할 책이다. 감염병 유행은 돌고 돈다. 그러면 팬데믹 시대의 문제점도 다시 나온다. 확진자를 향한 차별과 배제는 일상적인 일이 된다. 마스크를 잘 쓰고 다니고, 몸에 이상이 없는 사람은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확진자를 비난하면서 선량하고 건강한 차별주의자가 된다. 팬데믹이 길어지면 장애인과 노인의 돌봄 사각지대는 더 커진다. 지구에 오래 살고 싶은 인간은 코로나19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매개체로 밝혀진 야생동물을 무차별적으로 죽인다. 이러한 문제점들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살아가면 좋을지 생각하게 만드는 윤리가 제 역할을 해줘야 한다. 네가 건강해지려면 무조건 이렇게 해야 한다라고 명령하는 윤리와 헤어지자. 건강한 윤리는 자신을 따르라면서 우리에게 강압적으로 명령하지 않는다.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과 자연, 동물이 건강해질 수 있는 삶의 방식이 어떤 것인지 우리에게 재차 묻는다.






※ 미주(尾註)알 고주(考註)



* 30

 




 보통 나이가 들수록 몸 여기저기의 기능이 떨어진다고 생각하고 실제로도 그렇다. 청년과 노인을 비교하면 청년보다 노인의 신체 상태가 일반적으로 나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므로[주] 노인은 무조건 건강이 나쁘다고 말하는 것은 어폐가 있다. 경험적으로도 맞지 않는다. 건강하다고 할 수 있는 나이 든 사람은 많다.

 


[]그러므로라는 표현을 삭제하면 문맥이 자연스러워진다.




우리 다시 건강해지려면 102, 104쪽에 있는 25번과 26번 주의 출처는 ‘Judith Butler, Precarious Life: The Powers of Mourning and Violence(2004)’. 출처에 원서명만 나와 있는데 주디스 버틀러의 책은 불확실한 삶: 애도와 폭력의 권력들(양효실 옮김, 경성대학교출판부, 2008)이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되었다. 10년 뒤에 새로운 역자와 출판사를 만나면서 제목이 바뀐 위태로운 삶: 애도의 힘과 폭력(윤조원 옮김, 필로소픽, 2018)으로 재출간되었다104쪽의 인용문은 위태로운 삶서문의 일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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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자신을 알라 - 뇌과학으로 다시 태어난 소크라테스의 지혜
스티븐 M. 플레밍 지음, 배명복 옮김 / 바다출판사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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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점  ★★★★  A-






고대 그리스인들은 미래를 알고 싶으면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을 방문했다. 이곳에서 그리스인들은 무녀 퓌티아(Pythia)에게 미래에 관해 물어봤다. 신전 안에 틈이 있는데, 지하에 있는 증기가 이 틈으로 새어 나온다. 증기를 마신 퓌티아는 무아경에 빠진 채 신이 내린 답변을 읊조린다. 옆에 있는 보좌관은 무녀의 예언을 받아적어 의뢰인에게 전달한다. 그리스인들은 퓌티아의 예언이 신비스러운 증기와 관련이 있다고 믿었다. 현대 학자들은 증기의 정체가 유황 가스 또는 에틸렌이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신전 밑의 단층에 있는 유황 가스가 발견되었다. 이 기체를 마시면 정신이 몽롱해지는 환각 증상이 나타난다.

 

아폴론 신전의 기둥에 너 자신을 알라라는 한 줄의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고 한다. 이 문구는 철학자 소크라테스(Socrates)가 한 말로 알려져 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라 답답해서 신전을 찾아간 그리스인들은 신전 기둥의 문구를 유심히 살펴봤을까. 인생의 해답을 찾고 싶은 마음이 앞선 그들의 눈에 문구가 눈에 들어올 리가 없었을 것이다

 

무녀가 무아경에 빠져 신탁을 내리는 방식은 과학적 현상과 관련이 있다. 그러나 신탁의 내용은 추측에 가까운 예언일 뿐 정확하지 않다. 무녀의 예언은 정확한 정보를 분석해서 내리는 과학적 예측이라 할 수 없다. 잘 살기 위한 비결이나 인생의 해답은 무녀의 신탁에 없다. 빗나가기 쉬운 예언을 믿는 것보다 차라리 자기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의 말을 곱씹어보는 게 최선이다


인간은 자기 자신을 인식하는 능력을 갖춘 동물이다.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탐색하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고 싶어서 부단히 생각하는 능력을 심리학자들은 자기 인식(self-awareness)’ 또는 메타인지(meta-cognition)’라고 부른다너 자신을 알라는 심오한 철학적 명언이 아니다. 나 자신을 알라(Know Thyself)는 뇌과학이 밝힌 연구 결과와 과학적인 근거를 제시하면서 자기 인식이 왜 중요한 일인지 알려준다. 인간의 뇌는 자기 자신을 알려고 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 그 덕분에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낯선 세상과 타인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성장하는 내내 불확실한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을 터득하면서 삶의 방향을 결정한다. 그뿐만 아니라 자기 행동을 스스로 관찰하면서 나를 바라보는 타인의 마음 또는 나와 다른 생각을 이해하려고 한다. 인간의 뇌에 자기 인식 능력이 없었더라면, 협업과 연대가 불가능한 세상으로 발전되었을 것이다. 협업과 연대가 이루어지려면 이타심이 있어야겠지만, 이것이 발현되기 위해서는 제일 먼저 자기 자신이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자기 인식은 내 생각이 항상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능력이 아니다. 내가 모르는 게 많고, 언제나 오류를 범하기 쉬운 존재임을 알려주는 능력이다. 자기 인식의 진정한 용도는 내 잘못을 스스로 깨닫게 해주는 것이다. 우리는 내 생각과 행동을 바로잡아가면서 좀 더 나은 존재가 되기 위해 분투한다. 내가 틀렸음을 스스로 인정하고,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게 하는 자기 인식 능력은 회의주의(Skeptic)와 비슷하다(나 자신을 알라를 펴낸 바다출판사과학 계간지 스켑틱한국판을 발행하고 있다). 회의주의자는 특정 신념과 지식에 갇혀 있지 않고, 항상 의심한다. 자신이 믿고 있는 지식이 오류로 판명되면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인다.

 

나 자신을 알아가는 여정은 순탄하지 않다. 왜냐하면 자기 인식은 늘 정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매우 합리적으로 생각하면서 살아간다고 믿지만, 대부분 이성보다 감성에 좌우되는 비합리적 의사결정을 한다. 우리 뇌는 많은 시간을 들여서 꼼꼼하게 분석해서 판단하는 것보다 직관에 의존해 손쉽게 판단을 내리는 일을 선호한다. 이것을 휴리스틱(heuristic)이라 한다. 나 자신을 알라는 자기 인식의 중요성을 과대평가하지 않는다. 비록 단점이 있어도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라는 통념이 꽤 오랫동안 남아 있는 이 세상에서 부족한 나를 알아가면서 조금씩 변화를 주는 일이 절실히 필요하다


대충 살자, ○○처럼이라는 인터넷 밈(meme)은 복잡하게 생각하기 싫은 우리 뇌가 무척 좋아할 수 있겠다. 그렇게 우리는 대충하자는 뇌의 은밀한 주문에 이끌리는 대로 살아갈 것이고. 하지만 우리는 어떻게든 잘 살고 싶어 하며 한 번뿐인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지 끊임없이 고민한다. 혼자서 고민을 해결하기 버거운 사람들은 점집에 가거나 인터넷에 출몰하는 익명의 존재들에게 조언을 구한다. 문제는 전문가답지 않은 퓌티아들이 너무 많다알게 모르게 우리는 이미 여러 차례 자기를 인식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살아왔다. 이러한 크고 작은 경험을 통해 생각 없이 대충 산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바보 같은 짓인지 스스로 확인했다. 자신을 알아가는 자기 인식은 어렵지 않고, 힘들지도 않다. 우리 혼자 할 수 있으며 반드시 해야 하는 나만의 공부다.






정오표




* 87





 2세 무렵부터 아이들은 부모나 교사가 정한 규칙이나 표준에 따라 자기 행동을 평가하기 시작한다. 거기에 못 미쳤을 때는 죄책감이나 당혹감을 나타내고, 성공했을 때는 자부심을 표시하는 등 자기 의식적 감정(self-concious[주] emotion)을 드러낸다.



[] ‘conscious(의식하는, 자각하는)’의 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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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2-05-02 06: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 자신을 아는 건 전부는 아니더라도 어느정도는 가능한거 같은데 긍정적으로 변화를 주는건 쉽지 않더라구요 😅 이론과 현실의 간격? ㅋ 대충살자 저런 밈이 유행인가 보네요. 왠지 찔립니다 ㅎㅎ

cyrus 2022-05-08 08:58   좋아요 3 | URL
‘대충 살자’ 밈이 저는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면서 살지 말자’라는 뜻으로 이해했어요. 생각이 너무 많은 것도 좋지 않아요. ^^;;

새파랑 2022-06-10 07: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Cyrus님 당선 축하드려요~!! 리뷰도 절대 대충쓰지 않는 Cyrus님입니다~!!

mini74 2022-06-10 08: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 이 제목보며 막 웃었던 기억납니다. 축하드려요 ~~

얄라알라 2022-06-14 12:50   좋아요 0 | URL
mini74님, 저도 이달 당선작 제목 주르르 중에서 cyrus님 이 글 제목 보니, 바로 기억 소환^^되더라고요

이하라 2022-06-10 11: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cyrus님 당선 축하드립니다.^^
기쁘게 시작하시는 주말되세요~~

서니데이 2022-06-10 2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얄라알라 2022-06-14 1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yrus님 이달의 당선작 선정되심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