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트럼프의 곁에는 아군이 없다. 음담패설 녹음 파일 공개 이후로 지지율 추락과 함께 당의 내분이란 악재를 만나 깊은 수렁에 빠져 있다. 이 녹음 파일에는 트럼프가 유부녀를 유혹한 경험담이 담겼고, 특히 여성의 신체 부위를 저속한 표현으로 노골적으로 언급하는 대목도 들어 있다. 녹음 파일 파문으로 궁지에 몰린 트럼프를 보면서 딱 그 사람의 이름이 생각났다. 묘하게 그 사람은 트럼프와 닮은 인생을 살아왔다. 두 사람 다 한때 자신들이 종사한 분야에 최고의 정점에까지 올랐으나 잘못된 행동 때문에 인기가 곤두박질치고 말았다.

 

 

 

 

 

 

테리 진 볼리아는 고교시절 레슬링에 빠진 뒤 본격적으로 레슬링 기술을 연마하기 시작했다. WWWF(WWE의 전신)의 프로모터 빈센트 제임스 맥마흔의 눈에 띄어 본격적인 프로레슬러로서의 인생을 시작했다. 볼레아는 훗날 헐크 호건이란 예명으로 프로레슬링 업계에서 세계적 명성을 얻는다.

 

 

 

 

 

1987년 레슬매니아 3에서 열렸던 앙드레 더 자이언트와 치른 경기는 최고의 명승부로 꼽히며 이날 역대 최다 관중을 기록했다. (현재 레슬매니아 32가 최다 관중 기록을 경신했다) 호건은 강력한 악역 선수들을 연신 격파하면서 승리를 거두었다. 그는 선량한 영웅의 이미지로 대중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그의 존재 덕에 WWE는 소수 마니아 스포츠에서 주류 스포츠의 한가운데로 올라설 수 있었다. 호건은 한때 링을 떠나 할리우드를 기웃거리며 각종 TV쇼에 모습을 드러냈다. 호건은 지천명을 넘긴 2000년대에 들어서도 젊은 선수들 못지않은 운동 실력을 보여주었다. 전성기가 완전히 지났어도 그의 등장음악이 경기장에 울려 퍼지면 관중들은 열렬히 환호했다.

 

 

 

 

 

호건의 전성기인 80년대와 90년대 초반에 트럼프는 아버지의 가업을 물려받아 사업가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무리한 투자로 인해 회사 두 개를 날려 먹기도 했지만, 부동산 사업에 수완을 발휘하여 엄청난 재산을 축적하는 데 성공했다. 트럼프는 NBC TV<어프렌티스>(The Apprentice)라는 리얼리티 쇼를 진행하여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다.

 

 

 

 

 

 

<어프렌티스>로 유명세를 얻은 트럼프는 2007WWE에 깜짝 출연한다. 과거에 할리우드 영화배우(아널드 슈워제네거)와 세계적인 운동선수(마이크 타이슨)WWE에 등장해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트럼프는 억만장자답게 링 위에 돈을 뿌리면서 등장했고, WWE의 운영자 빈스 맨마흔(빈센트 제임스 맥마흔의 아들)과 신경전을 펼쳤다. 두 사람은 레슬매니아 23에서 각자 자신을 대신한 레슬링 선수를 내세워 경기한 뒤 이긴 쪽이 진 쪽의 머리카락을 자르는 내기를 걸었다. 부동산 재벌과 프로레슬링 재벌의 대립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이때 당시에도 트럼프는 머리숱이 많고 머리카락을 뒤로 넘긴 특이한 머리 모양으로 가발이란 의혹을 받았다. 그만큼 실제 머리카락이 잘리는 상황이 벌어질지에 대한 세인의 관심이 많았다. 맥마흔은 엔터테인먼트 대표답게 이 경기를 억만장자들의 전쟁으로 지칭하며 흥미를 유발했다. 하지만 WWE를 오랫동안 지켜본 팬들은 이미 내기의 결과를 예상하였다. WWE는 보통 스포츠와 달리 각본이 정해져 있다. WWE 팬들은 당연히 트럼프의 낙승을 예상했다. 역시나 충격적인 이변이 일어나지 않았고, 트럼프가 승리하여 맥마흔은 삭발 굴욕을 당한다.

 

호건도 맥마흔과 레슬링 경기를 펼친 적이 있다. 2003년 호건은 더 락(The Rock)과의 경기에서 맥마흔의 방해로 패배했다. 두 사람의 대립 양상은 레슬매니아 19에서 이어졌다. 스트리트 파이트 룰(Street Fight Match, 무기 사용이 허용된 무규칙 경기)이 적용된 경기는 호건이 승리했다. 호건과 트럼프는 WWE에서의 활약상을 인정받아 ‘WWE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그러나 현재 WWE 내의 호건의 위상은 바닥에 떨어졌다. 2012년 한 가십 전문 미디어 매체가 호건이 등장한 문제의 동영상을 공개했는데, 이 동영상은 호건의 이미지에 큰 타격을 주었다. 호건은 2006년 친구의 아내와 불륜을 나누면서 이를 동영상으로 촬영했다. 그리고 영상 속에서 호건은 자신의 딸이 흑인과 잠자리를 가졌다는 사실에 분노하며 인종차별 발언을 퍼부었다. 법원에 증거물로 제시됐던 영상이 언론을 통해 노출되며 파장이 일어났다. 어린이들에게 인기가 높은 선한 캐릭터를 주로 맡았던 그의 추잡한 스캔들은 엄청난 파장이 일으켰다. WWE는 호건에게 영구 퇴출 징계를 내렸다. 이에 따라 WWE 명예의 전당에 올라있는 호건은 모든 기록이 삭제됐다. 아울러 그는 자신의 캐릭터 헐크 호건을 이용한 수입 일체를 받을 수 없게 됐다. 한순간의 말실수로 헐크 호건은 인종차별주의자테리 진 볼리아가 되어버렸다.

 

 

 

 

 

 

현재 호건에 향한 동정론이 조금씩 일어나고 있지만, 호건은 자신의 그릇된 행동을 끝까지 반성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어렸을 적에 인종차별이 심한 지역에서 자라다 보니 잘못된 언행이 습관처럼 몸에 배었다고 해명했지만, 그 지역에 오랫동안 거주한 주민들의 분노만 불러일으켰다. 조용히 자숙의 시간을 보내야 할 호건은 트럼프를 지지하는 공개 발언을 해서 또 한 번 팬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줬다. 인종차별주의자들끼리 무언가 통하는 것이 있나 보다. 현재 호건의 곁에는 열성 팬이 없다. 심지어 그를 존경했던 동료 선수들마저 등을 돌렸다.

 

두 사람의 현 상황을 비교하면서 느낀 점이 딱 하나 있다. 무심코 내뱉은 말이 엄청난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는 명백한 진리를 강조하고 싶지 않다. 그것보다는 도의에 어긋한 공인의 행동을 눈감아주지 않고, 직설적으로 비판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부러웠다. 수십 년간 링 위에서 땀을 흘렸던 WWE 선수들과 보수적 태도를 일관되게 유지해온 공화당 소속 정치인들에게도 올바른 비판 의식이 있었다. 물론, 공화당 입장에서는 당 전체 이미지 실추를 막으려고 부랴부랴 트럼프 지지를 철회하고 있지만, 문제의 심각성을 알면서도 미온적으로 입장을 표명하는 우리나라 정당 정치인들의 모습과 많이 비교된다.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미국 정치인들보다 운이 좋다. 국민의 분노를 유발한 실언을 뱉은 정치인은 슬그머니 자숙의 시간을 보낸 뒤에 다시 국회에 등장한다. 그와 같은 정당에 소속된 정치인들은 그의 복귀 소식에 쌍수 들고 환영한다. 악의 근원은 확실하게 잘라내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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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10-12 18: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수신이과 성찰이 부족하면 말 한마디에 훅 가죠그런데 돈이 많으면 돈질로 무마시켜 버리거든요.

cyrus 2016-10-12 21:40   좋아요 1 | URL
변명도 잘 늘어 놓습니다. 자신이 잘못한 일을 순순히 인정만 하면 되는데 남들도 다 하는 잘못인 것처럼 표현해서 비판을 피하려고 합니다.

아무 2016-10-12 1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건-트럼프 평행이론인가요?? ^^ 그나저나 트럼프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것 같은데, 이런 최악의 상황에도 그가 역전 드라마를 쓰게 될까 염려스럽습니다..

cyrus 2016-10-12 21:42   좋아요 0 | URL
뉴스에서는 이미 트럼프는 끝났다고 하던데 아직은 호흡기가 완전히 떼었다고 보기 힘들어요. 트럼프 고집이 보통 아니라서 끝까지 갈 것 같습니다. ^^;;

다락방 2016-10-13 08: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wwf 엄청 보던 시절에 호건은 진짜 인기 엄청 많았죠. 등장 음악만 들려도 관중들이 난리난리..확실히 이미지는 만들어지기 마련인가봐요. 그는 선한 사람이었으니까요.

다른 얘긴데, 저는 숀 마이클스를 좋아했습니다!! ㅎㅎㅎㅎㅎ

cyrus 2016-10-13 16:24   좋아요 0 | URL
레슬링을 아는 알라디너를 만나게 돼서 정말 반갑습니다. ㅎㅎㅎ

실제 프로레슬러의 성격이 링 위에 오를 때 모습과 다른 경우가 많습니다. 악역 연기를 잘 수행하고, 험상궂게 생긴 선수가 실제로 만나면 성격이 순하기도 합니다.

하트 브레이크 키드. 숀도 정말 대단한 선수였어요. 헐크 호건이 남성, 특히 아이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다면, 숀은 여성들의 인기를 가장 많이 얻은 레슬러였죠. ^^

다락방 2016-10-13 17:02   좋아요 1 | URL
제가 잠깐 바티스타를 좋아하기도 했었는데 몇 번 경기를 보고나니까 경기가 너무 단조롭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어느 순간 바티스타에 대한 호감도가 떨어졌어요. 배꼽 주변에 태양 문신한 거 정말 좋았는데!
그리고 존 시나 좋아요 ㅋㅋㅋ 채닝 테이텀 이란 배우 처음 봤을 때, 오, 존 시나인가.. 했어요. 둘이 너무 닮아가지고 ㅋㅋㅋㅋ 존 시나가 아마 저랑 동갑일걸요.
아, 그리고 헐크 호건 인기 있던 시절에 저는 숀 마이클스랑 워리어 좋아했었어요. 워리어 얼굴에 페인트칠 벗긴 거 너무 보고 싶었어요. ㅋㅋㅋㅋㅋ

전 숀 마이클스의 몸과 랜디 오턴의 몸이 좋더라고요. 아주 요란하지 않은 느낌이라서요. 존 시나는 팔이 너무 과한데, 랜디 오턴은 키도 크고 과하지 않게 느껴져서 ㅎㅎ 근데 경기를 보면 딱히 매력은 없고...

숀의 스윗친 뮤직 진짜 너무 좋아요. 그거 볼 때마다 짜릿했어요.

제가 WWE 볼라고 방송하는 월요일엔 약속도 안잡고 집에 일찍 갔었는데, 요즘엔 흥미 떨어져서 거의 안봐요. ㅎㅎ


아, 제가 딱 완전 좋아하는 바디는 레슬링 선수는 아니지만 `바다 하리` 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바다 하리 너무 좋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cyrus 2016-10-13 19:50   좋아요 0 | URL
바티스타 같은 근육형 레슬러는 파워는 좋은데 경기 운영이 루즈하고, 힘을 너무 많이 써서 경기하는 동료 선수들을 부상 입히는 경우가 있어요. 그래서 섬머슬램에서 랜디 오튼을 때려눕힌 브록 레스너를 그닥 좋아하지 않아요. 경기 결과가 정해진 각본이지만, 복귀한 오튼이 무기력하게 패하는 모습이 너무 안쓰러웠습니다.

존 시나는 평소에 웨이트 트레이닝을 많이 하는 편입니다. 데뷔 시절의 몸과 비교하면 근육이 많이 붙었어요.

저는 랜디 오튼의 RKO를 좋아해요. 요즘 랜디 오튼은 경미한 뇌진탕 후유증이 있는데도 선수 활동을 하고 있어요. 그런데 과격한 운동을 하면 뇌에 부담을 줄 수 있고, 선수 생활을 지속할 수 없어요. 오튼도 WWE에서 10년 넘게 활동했으니 예전의 기량을 찾기 힘들어 보입니다.

오늘 다락방님의 새로운 모습을 보게 되네요. ^^

레삭매냐 2016-10-18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헐크 호건이 저렇게 해서 나락으로 떨어졌군요.

잠시 미네소타 주지사를 역임한 제시 벤츄라와
헐크 호건을 착각했었네요 ㅋ

그나저나 아주 링 밖에서는 아주 추잡한 행동을
하는 사람이었네요 호건 아저씨.

cyrus 2016-10-18 11:46   좋아요 0 | URL
제시 벤추라를 알 정도면 레삭매냐님도 레슬매니아입니다. ㅎㅎㅎ
오래전부터 호건은 사생활 때문에 안 좋은 말들이 많았어요. ^^;;
 

 

 

 

 

 

 

대구 남문시장에 있는 헌책방 ‘해바라기 서점’이 이전했습니다. 코스모스북 서점 건물과 KB국민은행 건물 사이에 있는 골목길에 들어가면 해바라기 서점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 사진은 작년 1월 초에 찍은 겁니다. 예전에 있던 곳은 너무나도 좁은 공간이었습니다. 성인 두 사람이 서서 책을 구경하는 게 힘들 정도였습니다. 직접 새로 옮긴 서점을 찾아가 봤습니다. 새터가 예전의 터보다 넓다고 볼 수 없었습니다. 자리가 없어서 풀지 못한 책이 아주 많았거든요. 건물이 개방형이라서 오래된 책 냄새가 나지 않았습니다. 해바라기 서점 바로 옆에 치킨집이 있어서 치킨 냄새가 솔솔 풍겼습니다.

 

제가 일부러 해바라기 서점 내부의 자세한 모습을 사진에 담지 않았습니다. 저의 어설프게 찍은 사진보다 동영상 한 편 보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난 10월 1일 TBC(대구 지상파 민영방송) ‘리얼인터뷰 통(通)’이라는 프로그램에 헌책방이 소개되었어요. 이 프로그램은 매주 토요일 아침 8시 40분에 방영됩니다. 저는 이 프로그램을 챙겨보지 않아요. 그런데 정말 운 좋게 10월 1일 방송을 보게 됐습니다. 그 날 아버지가 TV 채널을 돌리다가 ‘리얼인터뷰 통’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평소와 다름없이 방에서 책을 읽고 있었어요. 거실d 울려 퍼지는 TV 소리가 제 방 안까지 흘려 들어왔습니다. 무심결에 TV 소리를 들었는데,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래서 거실에 가보니 월계서점을 운영하는 주인장님이 TV 화면에 나오더라고요. 월계서점 주인장님이 책방 안에 보관된 책들을 MC에게 소개하는 장면을 보게 된 거죠. 그래서 저도 아버지 옆에 앉아서 TV를 시청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들으라고 제가 말 한마디 꺼냈습니다.

 

"저 헌책방 제가 자주 가는 곳이에요.”

 

아버지는 젊은 시절 변변치 못한 직업을 전전했을 때 책 판매 장사를 한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책을 어떻게 판매했는지 아버지에게 자세히 여쭤보지 못했습니다만, 제가 어렸을 때 어머니께 들은 바로는 길바닥에 책들을 진열해서 판매하는 일이었을 겁니다. 아버지는 책을 만져보면서 일했던 젊은 시절이 생각나서인지 헌책방이 나오는 방송을 유심히 보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창고에 가면 오래된 책 몇 권이 있습니다. 그 책들은 아버지가 책을 팔다 남은 걸 가져온 것입니다. 제가 초등학생 때 집에 보관된 헌책들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어른이 돼서야 그 책들의 실체와 가치를 알게 되었습니다. 몇 년 전부터 이 책들을 알라딘 서재에 공개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헌책들을 꺼내려면 창고 안에 쌓인 물건들도 옮겨야 하기 때문에 어머니의 허락을 구하지 못한 이상 공개하기가 힘들 것 같습니다.

 

TBC 공식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리얼인터뷰 통’의 예전 방영분을 다시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스마트폰으로 다시 봤는데요, 와이파이가 터지지 않은 곳에서 동영상을 보면 화면이 깨친 상태로 나옵니다. 아무튼 헌책방 내부가 궁금하다면 ‘리얼인터뷰 통’ 10월 1일 방영분을 보시길 바랍니다. 해바라기서점과 월계서점 주인장님과 책장 내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www.tbc.co.kr/tbc_tv/real/tv_real1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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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10-11 21: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책 애정가의 기질을 아버님의 책에서 부터 내재되었군요...통 한번 보겠습니다^^..

cyrus 2016-10-11 21:41   좋아요 3 | URL
아버지가 저처럼 책을 특별하게 좋아하게 생각하는 성격이 아닌데다가 책을 읽는 것도 아닙니다. 어렸을 때부터 혼자서 책을 보기 시작하면서 저절로 습관이 몸에 뱄습니다. ^^

transient-guest 2016-10-12 05: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묘하게 책과 서점에 얽힌 여러 가지 기억이 돋는 느낌의 글입니다.ㅎ 저렇게 작은 서점이 곳곳에 있던 시절이 그립습니다.

cyrus 2016-10-12 17:30   좋아요 0 | URL
예전에는 정말 몰랐습니다. 작은 동네서점이 우리 집 가까이에 있었을 때 자주 방문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헌책방이 그저 오래되고 낡은 책만 가득하고, 연세 많은 분들만 찾는 곳이라 생각해서 처음에는 헌책방에 들어가는 것을 주저한 적도 있었습니다. 소중한 것들이 거의 사라지고 나서야 뒤늦은 후회를 하게 됩니다.
 

 

 

 

 

 

 

덕후는 자신이 관심을 갖는 분야에 대해 무서울 정도로 집중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래서 돈질덕질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한다. 덕후인 사람과 아닌 사람의 차이는 자신의 시간과 돈, 열정을 투자할 만한 가치를 발견하느냐의 여부이다. 덕질 대상이 자신에게 돈이나 명예가 되어주지 않지만, 내 땀 흘려서 번 돈으로 무언가를 즐길 수 있을 때 제일 행복하다.

 

 

 

 

 

피규어 수집 덕후인 허지웅의 일상을 공개한 방송을 보면, 그의 덕후다운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제작진이 카메라를 설치하면서 피규어의 광선 칼을 부러뜨린 사실을 알고,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책 덕후인 나로서 허지웅의 심정이 충분히 이해한다. 나는 책을 깨끗한 상태를 유지하면서 읽는 편이다. 필기 및 밑줄 치기, 종이가 접힌 상태를 싫어한다. 타인이 내 책을 읽다가 다 읽은 부분을 표시하려고 종이를 접으려고 하면, 그러지 말라고 정중하게 말한다. 책을 사자마자 버린다는 띠지도 버리지 않는다. 그것마저 없으면 뭔가 허전한 느낌이 든다. 그리고 띠지에 조금이라도 찢어진 부분이나 책갈피로 사용해서 생긴 접힌 표시도 싫어한다. 아주 별난 성격 탓에 동생은 내가 산 책에 손을 대지 않는다.

 

 

 

 

 

 

 

 

 

 

 

 

 

 

 

 

 

 

 

스태프가 피규어에 왜 이렇게 집착하는지?’를 묻자 허지웅은 어릴 때 장난감을 갖고 싶었는데, 엄마가 안 사줬다고 답했다. 덕후는 실리가 아닌 재미를 추구한다. 좋아하는 것을 소유하면서 생기는 원초적인 즐거움을 누리고 싶어 한다. 이 즐거움의 순간을 오랫동안 보존하면서 만끽하기 위해서 지나간 일을 포착하여 서사의 방식으로 재구성한다. 그래서 덕후들은 또 다른 덕후들고 모여 소통하며 덕질을 한다. 단순히 자신의 관심사를 소비하는 것뿐만 아니라 스스로 콘텐츠 생산자가 된다. 일반인이 덕후가 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이나 경험도 하나의 서사. 그 속에는 갈망이 아로새겨져 있다. 갈망에 대하여의 저자 수잔 스튜어트는 기념품이나 수집품을 갈망의 서사가 반영된 결과물로 본다. 갈망의 위력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이다. 일상적으로 친숙한 사례 하나를 들어볼까. 우리는 과거에 추억이 깃든 수집품을 쉽게 버리지 못한다. 행복했던 과거의 시간으로 돌아갈 수 없으므로 추억의 수집품은 과거의 흔적 역할을 해준다.

 

 

 

 

 

 

 

 

 

 

 

 

 

 

 

 

 

 

발터 벤야민은 열정적인 수집가로 알려져 있다. 그는 일상의 사물을 통해 세상의 특정한 모습에 생명을 불어넣는 이야기들을 모은다. 그가 모은 이야기들은 일명 수집가의 책상이라고 부르는 곳에 보관된다. 벤야민의 수집가의 책상은 사물들이 본래 가지고 있던 맥락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진 이미지와 구상으로 재구성되고 재배치되는 세계이다. 그의 독특한 수집 방식은 하나의 서사적 실험이다. 파편적이고 쓸모없는 것들의 고유한 가치를 몽타주식 전개의 서사로 구축했다. 미완의 저서 아케이드 프로젝트는 그의 이러한 배움과 사유가 집약된 결과물이다. 벤야민의 서사 속에는 도시에 파편으로 흩어진 사유의 흔적들을 수집하고 싶은 갈망이 있다.

 

 

 

 

 

 

 

 

 

 

 

 

 

 

 

 

 

 

벤야민은 주인을 잃게 되면 수집의 의미가 상실된다라고 말했다. 덕후의 덕질은 쓸모없는 것 속에 잠재된 가치를 찾아내는 일이다. 에도가와 란포가 창조한 탐정 아케치 코고로는 자신의 하숙집 방에 서적을 가득 채운 이유를 인간을 연구하기 위해서라고 짤막하게 얘기했다. (에도가와 란포 전단편집 1‘D언덕의 살인사건’ 135~136) 나의 책 덕질은 책 자체를 연구하기 위한 일이다. 연구는 사물에 대해서 깊이 조사하고 이해하는 행위를 일컫는다. 나는 연구를 공부와 동등한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연구하는 것을 전문가만 하는 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난주에 허지웅이 나온 방송을 본 이후로 시간 나는 주말에 책 덕질이 하고 싶어졌다. 어젯밤 혼자 집에서 창고에 보관한 책 상자들을 개봉했다. 다행히 부모님이 집에 안 계셔서 가능한 일이었다. 상자에 갇힌 책을 조심스럽게 꺼냈다.

 

 

 

 

 

 

 

 

 

 

 

다행히 한 권 빼고는 상태가 좋았다...

 

사실 <내 서가 속 창비 이벤트>에 응모하려고 몇 개월 만에 책이 담긴 상자들을 열어봤다. 창고에 보관한 지 4개월 만에 상자에 손을 댔다. 그런데 내가 찾으려는 창비 책은 상자 안에 없었다. 집에 있는 책들이 몇 권 있는지 조사를 다시 시작해볼 예정이다. 목표는 올해 안에 정서 목록 완성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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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나는 책덕후가 아니다
    from 마지막 키스 2016-10-11 08:42 
    오늘 아침에 cyrus 님의 글을 읽고(먼댓글로 연결되어 있음) 예전부터 알고 있었던 걸 다시 한 번 깨달았다. 나는 책덕후가 아니다 ㅎㅎㅎㅎㅎ나는 책을 읽다가 밑줄도 긋고, 접기도 한다. 그리고 책을 잘 빌려주는데, 돌려 받지 못한 경우도 많다. 그래서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는 몇 번이나 샀는지 모른다. 아니, 빌려가면 왜 안돌려줘? 특히나 회사 동료들은 빌려 갔다가 퇴사하는 경우가 생기는데, 돌려주고 퇴사해라... 아..또 이렇게 쓰려는 거
 
 
AgalmA 2016-10-10 2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마다 다른 속도로 도시를 걷고 있는 이들의 걸음은 각자 개인적인 이동성을 기록하는 손글씨와도 같다.
p20 수잔 스튜어트 <갈망에 대하여>

덕질에 대해 가볍게 읽을 책인 줄 알고 접근했다가 집중해서 읽어야 되는 책이구나! 생각하고 시간날 때를 생각해 묵혀두고 있는 책^^; 저 문장 포스가 계속 이어짐;;

cyrus님 카운팅 기대되는데요^^

cyrus 2016-10-10 20:04   좋아요 1 | URL
Agalma님. 저 그 책 도서관에 빌려 읽었는데 다 못 읽었습니다. 책의 부제 때문에 낚인 기분이 들었습니다. 생각보다 문장이 어렵게 느껴졌습니다. 오히려 벤야민의 글이 이해하는데 더 쉬워 보였습니다. ^^

AgalmA 2016-10-10 2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공감^^ 대중교양서보다 인문철학에 더 가까운.

cyrus 2016-10-10 20:10   좋아요 2 | URL
덕후들이 다가갈 수 있는 덕후들을 위한 책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다른 덕후들의 세계를 보는 것만으로도 재미있어요. ^^

붉은돼지 2016-10-10 2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은 이제 어느정도 모으고 있지만 프라모델이나 피규어를 보면 아직도 가슴이 벌렁벌렁거립니다. 그동안 꽤 많은 프라모델을 조립했지만 조카들이나 딸아이 손에 다 사지가 찢어져 산화하고 남은 것은 몇 개 없어요..ㅜㅜ

얼마전에 구입한 신의 전사들도 보이는군요 ㅎㅎ

저는 서가에 수용못한 책들 옷장안에 보관하고 있습니다. 머지않아 박스에도 좀 넣어야 할 것 같아요 ㅜㅜ

cyrus 2016-10-11 10:15   좋아요 0 | URL
떨리는 마음, 그 기분 저도 알겠습니다. 제가 붉은돼지님처럼 책을 보관하면 어머니가 반대하실 겁니다. ㅎㅎㅎ

yureka01 2016-10-10 20: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느 집을 방문 했을 때 책장에 책이 빼곡히 있으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더군요....

cyrus 2016-10-11 10:17   좋아요 0 | URL
네. 남의 집에 방문할 때 제일 먼저 보는 것이 책장입니다. 책장을 구경하다가 제가 원하던 책이 있으면 가지고 싶은 생각이 들어요. ^^;;

아무 2016-10-10 2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엔 저도 엄청 깨끗하게 보는 편이었는데 요즘은 밑줄도 긋고 접기도 하면서 읽습니다. 안 그러면 기억을 못 하겠더라구요.. 근데 2-3년 정도 되니까 이젠 밑줄치면서 안 읽으면 집중이 안 돼요. 도서관 책 읽을 때 엄청 난감해져서... 밑줄 그으면서 보고 난 뒤에 지우개로 박박 지우고 있습니다..^^;;

cyrus 2016-10-11 10:20   좋아요 0 | URL
저는 책에 밑줄을 긋지 못해서 중요한 문장이 있는 쪽수를 메모합니다. 그래서 책 한 권 읽으면 옆에 메모장이 있어요. 책을 다 읽으면 메모한 쪽수의 문장들을 워드로 입력해요. 번거로운 과정입니다. 시간이 좀 오래 걸려요. ^^;;

다락방 2016-10-11 08: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포스팅을 보면서 확실히 깨닫습니다. 저는 책덕후가 아닙니다 ㅎㅎ
저는 그냥 책 읽는 걸 재미있어할 뿐이지, 덕후랑은 거리가 머네요.
저는 책 접기도 밑줄긋기도 하고 막 빌려주고 난리가 나요. ㅎㅎㅎㅎㅎ 게다가 오래 되어서 낡은 책은 그냥 다 팔아버림요. 책벌레 생길까봐....

cyrus 2016-10-11 10:23   좋아요 0 | URL
책 읽는 것을 재미있게 생각하신다면 다락방님도 책 덕후입니다. 덕후 본능은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 있는 거랍니다. ㅎㅎㅎ

저도 안 보는 책이 있거나 급전이 필요하면 중고매장에 팔아요. 그런데 책 한 권을 팔 것인지 말 것인지 고민하는 데 오래 걸려요. 이 순간만 되면 결정 장애가 옵니다. ^^;;

transient-guest 2016-10-12 05: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박스에 보관할 때엔 주의가 필요합니다. 잘못하면 책등이 휘고, 뉘여 보관하면 무게에 눌려 책이 얇아지기도 합니다. 책장에 잘 꽂아놓아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네요.ㅎㅎ

cyrus 2016-10-12 17:32   좋아요 0 | URL
책을 박스에 담는 일을 많이 해보지 않아서 어설픈 과정이 있었습니다. 박스에 책을 잘 담는 일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
 

 

 

서양 속담에 냇물에서 돌들을 치워버리면 냇물은 노래를 잃는다라는 말이 있다. 행복했던 우리의 삶에도 정신적이거나 육체적으로 고통이 찾아올 때가 더러 있다. 키르케고르는 나는 고통스럽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고 말했다. 고통은 결코 저주나 심판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는 살아 있으나 또 한편으로는 죽어가는 사람들이다. 불과 백 년 전까지만 해도 평균 수명은 45세였고 사람들은 살면서 자주 죽음을 의식해야 했다. 죽음은 그저 전보다 조금 멀리 떨어져 보일 뿐 어김없이 우리를 찾아오지만, 지금의 우리는 죽음을 잊고 보이지 않는 곳에 치워두고 싶어 한다.

 

 

 

 

 

 

 

 

 

 

 

 

 

 

 

 

 

 

 

노베르트 엘리아스는 현대인이 죽음을 숨기고 회피하는 모습의 원인을 문명의 혜택에서 찾는다. 고대 사람들은 살아있음과 죽음을 하나의 의미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의학기술과 건강 식단이 발달한 오늘날 죽음을 떠올리는 것들은 철저히 배제한다. ‘푸드 포르노먹방 열풍은 일단 먹고 즐기자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대중에게 각인시킨다. 현대인들은 톱니바퀴가 끊임없이 돌아가는 듯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 정서적 안정감을 느낀다. 죽어가는 자는 쓸쓸한 중환자실로 격리된다. 그는 일상으로부터 멀어진 고독한 존재다.

 

 

 

 

 

 

 

 

 

 

 

 

 

 

 

 

 

그들이 마지막까지 편안하게 눈을 감는 날까지 생명을 연장하는 데 주력해야 할까? 죽음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하버드 의대 교수 아툴 가완디는 노화와 죽음에 대해 성찰하는 삶을 지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의사들은 노화 과정을 삶의 일부로 보기보다는 고쳐야 할 질환으로 인식한다. 의사들은 환자의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 그것이 의사들의 의무이다. 하지만 환자의 병을 고쳐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죽음이 임박한 환자의 심정을 읽지 못한다. 아툴 가완디와 폐암 말기 판정을 받은 의사 폴 칼라니티는 환자가 여생을 의미 있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단순한 수명연장보다 자신에게 부여된 수명을 항시 건강하게 유지하고 긍정적인 죽음에 도달하면 성공적인 노화로 본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성공적인 노화를 맞을 수 없다. 죽음은 아무도 경험해보지 못한 절대적 고독이므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가 전혀 쉽지는 않다. 자신의 과거 인생이 후회스럽거나 인생을 성숙하지 못한 모습으로 살아온 사람들은 죽음을 분노와 고통으로 받아들인다.

 

 

 

 

 

 

 

 

 

 

 

 

 

 

 

 

 

 

 

프로이트, 수잔 손탁 같은 유명 인사들도 죽음이 코앞에 둔 상황 속에 죽음을 타협할 것인지 말 것인지 스스로 결정했다. 프로이트는 구강암의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면서도 진통제를 거부했다. 손탁은 유언장 작성을 거부함으로써 끝까지 죽음 앞에 태연한 모습을 보였다. 그들이 최후를 맞이하는 모습이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도 그들처럼 거역할 수 없는 죽음에 항거할 수 있다. 폴 칼라니티처럼 놀라운 참을성을 보이며 차분하게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지만, 자기 인생에 미진한 부분이 남았거나 질병으로 생을 마감할 때 종종 죽음을 부인한다. 살아있는 자들의 눈에는 죽어가는 자의 고군분투하는 저항이 집착으로 보이겠지만, 이러한 행위 역시 인간답게 사는 모습의 일부이다.

 

세상이 더 좋아질수록 우리는 죽음의 강박관념으로 점점 내몰게 될 것이다. 인간은 개별적 주체가 되어 고독에 쉽게 휩싸인다. 불안과 허무주의가 개인을 집단으로부터 단절시킨다. 개인의 죽음이 일상의 배후로 밀려나면서 고독사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타인의 죽음을 가벼운 대화 소재로 삼아서 쉽게 얘기하는 성향이 있다. 살아있는 자들은 죽음에 눈먼 상태다. 죽음에 대한 무심함은 타인의 죽음을 비하하는 태도를 보여준다. 우리는 우리보다 먼저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인간답게 살다 갈 권리를 주는데 너무 인색하다. 게다가 죽은 사람들을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 단지 조금 늦게 죽는다는 이유 하나로 정말 중요한 사실을 잊고 있는 것은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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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10-05 23: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래 산다고 사는 기계처럼 습관적으로 사는 것에는 반대합니다.
부단하게 삶도 비워야죠. 다만 할일이 있고 의무가 남아 있을때 가버리면 무책임한 거니까요.

요즘 자살이 너무 많아서요,,죽음이 도피가 되는 걸 보면 사는 것도 죽는것도 쉽지가 않죠.

cyrus 2016-10-06 13:10   좋아요 1 | URL
네, 맞습니다. 죽음으로 도피하는 선택은 살아있는 사람들을 괴롭게 합니다.

달걀부인 2016-10-06 05: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떤 죽음도 개인적 죽음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국적 상황은 더욱 그렇죠. ..인간답게 살 권리도 주지않는데.. 인간답게 죽을 권리도 주지 않은 현실. 그래서 제목을 바꿔서 읽어봅니다. 시대의 죽음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자세, 로요.

cyrus 2016-10-06 13:16   좋아요 0 | URL
우리 사회가 타인의 죽음을 너무 가볍게 봅니다. 인간답게 죽지 못하면 온전히 죽은 자의 문제로 돌립니다.

안녕반짝 2016-10-14 0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툴가완디는 <나는 고백한다 현대의학을> 읽고 팬이되어서 책은 다 샀는데 요즘 신간중에서 바람이 숨결이 될때가 가장 읽어보고 싶더라고요.

cyrus 2016-10-17 11:22   좋아요 0 | URL
폴 칼라니티의 책에서 가장 인상깊은 장면이 해부학실에서의 경험담이었습니다. 끔찍하다기 보다는 숙연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어제 저는 에드거 앨런 포의 시에 대한 페이퍼를 작성했습니다. 제가 이 글을 쓰게 된 계기가 9월 초에 작성된 에이바님의 두 편의 글 때문이었습니다.

 

 

* [에드거 앨런 포와 사랑의 시] http://blog.aladin.co.kr/769383179/8754783

(에이바님 작성)

 

* [에드거 앨런 포의 울랄룸] http://blog.aladin.co.kr/769383179/8751546

(에이바님 작성)

 

* [아프로디테님이 보고계서]

 http://blog.aladin.co.kr/haesung/8785364

(cyrus 작성, 오늘 오전 9시 30분에 내용 일부를 삭제했음)

 

 

※ 에이바님과의 약속대로 문제의 내용만 삭제했습니다. 삭제한 내용이 궁금하시면 에이바님의 [cyrus님께]를 보면 됩니다.

 

 

저는 [에드거 앨런 포의 울랄룸]과 [에드거 앨런 포와 사랑의 시]라는 글을 읽었습니다. 에이바님은 많이 알려지지 않은 포의 시를 잘 소개해주셨고, 가독성이 좋았습니다. <율랄리>와 <울랄룸>에 ‘아슈타르테’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저는 그 단어를 보는 순간, 문득 잊고 있었던 것이 떠올렸습니다. 포의 소설에 ‘아슈타르테’가 있는 문장을 본 것 같은 느낌이 머릿속에 스친 거죠. 그래서 저는 댓글로 이 사실을 밝혔고, 제 생각이 맞는지 확인해보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도서관에 가서 이미 읽었던 포 소설 전집들을 다시 봤습니다. 또 포의 시집도 읽었습니다. 에이바님이 소개한 아티초크 출판사의 시집도 보고 싶었는데, 제가 다니는 도서관에는 없었습니다. 아무튼 포 소설 전집들을 확인한 끝에, <리지아>라는 작품에 제가 생각했던 것과 조금 비슷한 단어가 있었습니다. 그게 바로 ‘아슈토펫’이었죠. 저는 이 사실을 에이바님에게 알리고 싶어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 글이 어제 작성한 [아프로디테님이 보고계셔]입니다.

 

만약에 [에드거 앨런 포와 사랑의 시]와 [에드거 앨런 포의 울랄룸]을 보지 못했다면, 포와 관련된 글을 쓰지 않았을 겁니다. 에이바님이 쓴 두 편의 글이 저에게 영감을 준 것이죠. 그래서 제 글일 에이바님의 글을 일차적으로 참고했다는 사실을 밝히고 싶어서 에이바님의 서재 글과 ‘먼댓글 연결’을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에이바님의 서재 글이 먼댓글 작성을 비활성화 상태로 설정해서 먼댓글 전송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맨 처음 글에 에이바님의 두 편의 글 링크 주소를 올렸습니다.

 

여기서부터 제 행동이 문제의 화근이 되었습니다. 제가 에이바님의 링크 주소를 연결하고, <리지아>에 대한 내용을 썼으면 아무 문제없었습니다. 그런데 글의 분량이 빈약하게 느껴져서 아슈타르테에 대한 설명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아슈타르테가 누군지 자세하게 알고 싶어서 평소에 읽지도 않을 바빌로니아 신화 관련 서적을 참고했습니다. 도서관에 여러 책을 살펴보면서 부활절의 유래에 관한 내용까지 알게 되었습니다. 책을 찾아보니까 에이바님이 기록한 글의 내용이 전부 맞았습니다. 저는 <율랄리>와 <울랄룸>의 아슈타르테와 프시케를 해석한 내용까지 썼습니다. 이 내용 또한 에이바님의 글에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제 글의 내용과 전개 방식이 에이바님의 글과 유사해졌습니다.

 

저는 에이바님의 글 링크 주소만 올리면 에이바님의 글을 참고했음을 밝힌거로 생각했기 때문에 이게 심각한 문제가 되리라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아침에 에이바님의 글을 보고 나서야 제 글이 잘못되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상대방의 글을 참고한 사실을 알리기 위해 링크 주소만 올리면 내용이 조금 비슷해도 문제가 없다고 본 거죠. 제가 안일하게 생각했습니다. 제 글이 에이바님의 글과 유사한 점이 있는데도 에이바님의 글에 참고한 내용이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아슈타르테에 대한 소개와 <율랄리>와 <울랄룸>의 아슈타르테와 프시케를 해석한 내용 모두 에이바님의 글에서 참고한 사실을 밝혔어야 했습니다.

 

저는 이번 상황이 처음이라서 나름 신중하게 대응하려고 노력했지만, 에이바님에게 더 큰 실망감만 안겨줬습니다. 에이바님의 문제 제기를 인정했으면, 문제가 있는 내용을 삭제하고, 공개 사과문을 올렸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뒤늦게 사과문을 올리고 말았습니다. 다시 한 번 에이바님께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을 전합니다. 이번 일을 통해서 제 행동을 반성했습니다. 앞으로는 친한 이웃이 쓴 글이라도 참고한 사실을 좀 더 상세하게 알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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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24 18: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9-24 18: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9-24 18: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6-09-24 18:54   좋아요 1 | URL
네, 저는 상대방의 글 링크 주소만 올리면 ‘상대방의 글을 참고했음을 밝힙니다’라는 의미로 보일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에이바님은 제 글이 본인 글과 무척 비슷하게 느꼈고, 참고를 밝힌 내용이 명확하게 언급되지 않아서 실망했던 것입니다. 에이바님은 정말 정성을 들여가면서 리뷰를 쓰시는 분입니다. 그런 분의 정성을 알면서도 제가 너무 성의 없게 링크 주소만 올렸습니다. 제가 일차적으로 잘못한 게 맞습니다.

이 문제는 저와 에이바님 둘 만의 문제이기 때문에 제가 잘못을 먼지 인정했더라면 심각한 분위기로 확대되지 않았을 겁니다. 정말 잘 참으셨습니다.

2016-09-24 18: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6-09-24 19:03   좋아요 1 | URL
제가 요즘 매일 글을 쓰려는 생각에 취해서 기본적인 예의를 잊어버렸습니다. 이번 일로 제 행동을 되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이 문제가 시끄럽게 알려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yamoo 2016-09-24 1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에이바 님의 주관적 인상이 너무 강해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생각합니다. 그 기본적 생각을 차용해 글을 써서 그 구조가 비슷해 졌더라도 사이러스님이 참고한 책 내용이 이미 에이바 님이 말한 것 속에 있었다면 그것 에이바 님도 그 책을 보았을 확률이 높습니다. 그런 걸로 일일히 사과하면 유사성에 대한 글들 모두가 문제됩니다.

도대체 뭐가 사과를 해야 하는지 저는 도통 모르겠네요. 답답합니다. 에이바 님이 인용을 요구했다는 건 에이바 님 페이퍼를 보면 아는 사실인데요...인용 여부를 문제 삼고 사과를 요구하는 건 표절에 대한 항의 입니다. 인용 여부가 왜 문제가 되겠습니까? 표절 시비 때문에 그런 거 아닙니까? 인용표시 하고 글을 지우고 사과하라는 생각의 이면에는 내 생각을 표절했다는 전제가 깔려있습니다. 그래서 사과하라는 것이죠.

유사성 만으로 사과를 해야 한다?! 것두 어떤 생각의 단초인데 말이죠. 저로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고....이 유사성에 대한 사과는 상당히 충격적입니다. 유사성 만으로 인용을 해야 하고 사과를 해야하다니!

cyrus 2016-09-24 19:49   좋아요 0 | URL
제가 오늘 처음 에이바님의 글을 보고, 당황한 마음이 앞섰습니다. 에이바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다분히 주관적인 입장을 표명하는 데 급급했습니다. 저는 처음에 에이바님이 언급한 `유사성`이 표절로 동의한 의미로 생각했어요. 그렇지만 에이바님의 두 번째 댓글을 보면서 제가 잘못 생각했다는 걸 알았어요. 에이바님은 제 글이 표절했다는 전제로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저한테도 밝혔고요.

오늘 일을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갈등 상황이 계속 이어지면 서로 간에 마음의 앙금만 생깁니다.

AgalmA 2016-09-25 07:23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포의 저주인가요ㅜㅜ.... 포 때문에 에이바님 힘들게 했던 예전 제 일도 다시 봐야 해서 괴로웠습니다.
두 분 의가 상할까봐 걱정이 되어 생각 남깁니다. 누구 편도 들지 않고 최대한 객관적으로 생각했다는 걸 알아 주세요.
우선 먼댓글 문제인데....에이바님 글을 간단히 언급하고 cyrus님 본론이 곧장 나오지 않은 게 첫 문제였던 거 같아요. cyrus님이 <리지아> 에서`아슈토펫`이 `아슈타르테`라는 걸 발견해 글을 쓰려 한 의도였단 건 알겠습니다. 바빌로니아 신화 관련 서적 보셨고 에이바님 해석이 맞았다는 것도 아셨고요.
참고하셨다는 걸 밝히긴 했지만, 에이바님이 <율랄리>와 <울랄룸>, 아슈타르테-프시케 신화까지 엮어 해석하신 걸 cyrus님이 ˝아프로디테님이 보고계셔˝에 모두 담아버린 게 두 번째 문제죠. cyrus님은 에이바님이 <울랄룸>을 소개할 때까지 이 시의 존재도 모르고 계셨다고 했습니다. 즉 저 연결들은 애초에 에이바님 글의 기초였어요.
<율랄리>-<울랄룸>-아슈타르테-프시케 등을 연계한 에이바님의 글은 작성자의 고유함이 묻어나는 글이죠. 저는 이런 해석을 다른 데에서 본 적이 없습니다. 이 내용이 cyrus님 ˝아프로디테님이 보고계셔˝ 3분의 2 이상 차지하죠. 신화 내용이 조금 추가되고 이 글의 본 주제였던 <리지아> ˝아슈토펫˝은 짤막하게 언급되는 정도라 에이바님 글 내용이 ˝아프로디테님이 보고계셔˝의 주된 내용이 된 상황.
꼼꼼히 따져 읽는 이가 아니라면 cyrus님 글이구나 생각하고 말 겁니다. 참고했다고 하는 걸 꼼꼼히 볼 사람 거의 없죠~_~; 두 분 문체가 달라 다른 글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요.
`아슈토펫`에 대해 말하자면 에이바님과 같은 내용을 다루게 될 수밖에 없긴 할 텐데, 에이바님 접근 방식과 같았고 그걸 바탕으로 새롭게 전개된 게 별로 없어 상황이 이리 되어버린 듯....
참고자료라고 하기엔 ˝아프로디케님이 보고계셔˝가 에이바님 글의 핵심 줄기를 옮겨온 정도라 원글 쓴 분이 속상할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소스가 비슷한 리뷰 글이 아닌 주관적 해석을 중점으로 담는 페이퍼 글이라 더 그럴 거고요. 여기 글 써서 책내는 분들도 많으신데 민감한 부분이죠.
cyrus님이 문제를 심각하게 여겨 주신 건 다행입니다.
모쪼록 두 분 사이가 멀어지지 않았으면 합니다.
제 글이 두 분 모두에게 또 상처가 되지 않았으면 하고요.
알라딘에서 싸움 말리다가 미움만 사고 제게 득될 일은 전혀 없었단 말입니다ㅜㅜ;;;

cyrus 2016-09-24 21:55   좋아요 2 | URL
포의 저주라... 하긴 재미로 포 소설 전집을 읽으려고 했는데 오역이 눈에 밟혀 몇 주동안 괴로웠어요. ㅎㅎㅎ

Agalma님 말씀이 맞습니다. 제가 에이바님의 글 링크 주소를 맨 처음에 남겼어도 이거부터 먼저 보고, 제 글을 보는 사람이 많지 않을 거예요. 게다가 `http` 주소 링크가 아닌 하이퍼링크로 설정했으면 북플에서는 링크된 글을 볼 수가 없어요.

제가 상대방의 글과 비슷한 내용을 안 쓰려고 노력하는 중인데 어제 그 약속을 어기고 말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문제를 외면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제가 잘못한 것이 맞고, 당연히 에이바님께 사과해야 합니다.



2016-09-24 22: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6-09-25 09:26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저는 괜찮습니다. 에이바님이 실의를 딛고 예전처럼 서재 활동을 해주길 바랄 뿐입니다.

transient-guest 2016-09-27 06: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진지한 자세로 글을 쓰고 읽는 분들이 있다는 사실은 상당히 고무적입니다. 제가 유사성/표절논쟁이나 서친끼리의 이슈는 함부로 얘기할 수 없겠지만, 자신의 책읽기와 글을 그만큼 소중히 여기시는 분들이라서 위에 말씀하신 일도 발생했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뭐랄까, 목숨을 건 글쓰기/책읽기의 진한 향기가 느껴지는 건 제가 좀 이상해서일까요??ㅎ 두 분 다 멋진 글 계속 올려주시길...

cyrus 2016-09-27 12:35   좋아요 0 | URL
알라딘에 A4 용지 한 장 반 이상의 분량의 글을 꾸준히 쓰시는 분들을 보면 책에 대한 감상을 허투루 표현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글 쓰는 분들의 고민의 흔적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제가 그 사실을 잊고, 실례를 했습니다.

syo 2016-09-28 2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는 것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습니다.

뒤늦게 두 분 글을 다 읽으면서, 그리고 에이바님의 글에 달린 댓글들을 찬찬히 다 보면서, 참 범접이 안되는 경지를 엿본 기분이었습니다. 거의 논문급 리뷰를 쓰시는 두 분이기에 벌어질 수 있는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저야 이슈 자체를 논할 공력이 못되어 뭐가 맞고 그른지 1도 모르겠지만, 이렇게 적극적으로 수습하고 계신 cyrus님의 모습은 귀감이 됩니다. 마음에 담아두려 합니다.

cyrus 2016-09-29 14:33   좋아요 0 | URL
귀감이 될 정도는 아닙니다. 제가 잘못한 행동이 명백히 드러났기 때문에 정식으로 사과하는 것이 맞습니다. ^^;; 갈등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 갈등에 휘말린 당사자뿐만 아니라 이를 지켜보는 분들 모두 정신적으로 피곤함을 느낍니다. 특히 갈등 당사자들과 친분이 있는 제3자는 더욱 난감합니다. 논란이 더 커지면 편 가르기 싸움으로 확대됩니다. 이러면 서로 간의 미운 정만 쌓이고, 마음의 상처만 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