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주동의 수필집 문주반생기(최측의농간, 2017) 193쪽에 보면 눈에 띄는 표시가 있다. 젊은 독자들의 눈에는 잘못 인쇄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중장년층 독자는 이 표시가 무슨 의미인지 알 것이다. (? 그렇다면 이걸 아는 나도 중장년층 독자란 말인가?)

 

 

 

 

 

 

 

 

 

 

 

 

 

 

 

 

 

 

 

* 양주동 문주반생기(최측의농간, 2017)

* 최남선 백팔번뇌(태학사, 2006)

   

 

주지하듯이 백팔번뇌는 그때 그가 조선이란 에게 바친 뜨거운, 뿌리 깊은 사랑괴로움의 노래로서, 그의 대표적 시조집으로, 조그만 책자이나 시조사상의 한 중흥 기념탑이 될 만한 역작이다. 거기는 춘원, , 위당 등 당시 문단 거벽들의 서(), ()이 즐비 되어 있고, 끝에 석전 박한영 사()의 한시 명작 제사(題詞)가 실려 있다.

 

 

 

백팔번뇌육당 최남선1926년에 발표한 시조집이다. 이 책이 우리나라 최초의 시조집으로 잘못 알려지는 바람에 육당은 국내 시조 역사의 시작점에 놓인 인물로 '과대 평가'를 받았다. 정확하게 바로 잡으면 백팔번뇌우리나라 최초 근대 시조집이라 해야 한다.

 

 

 

 

 

 

 

 

 

 

 

 

 

 

 

 

 

 

* 최남선, 황충기 해제 육당본 청구영언(푸른사상, 2013)

 

 

 

우리나라 최초의 시조집은 1728김천택이 편찬한 청구영언이다. 청구영언은 총 7종의 이본(異本)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중 한 권이 육당의 손을 거친 육당본이다. 백팔번뇌서문에 육당은 1904년에 자신이 시조를 쓴 사실을 언급했다. 이 문장을 근거로 연구가들은 육당이 최초로 현대 시조를 썼다고 주장하지만, 이 작품의 원본은 발견되지 않았다. 1906721일 대한매일신보에 발표된 대구여사(大丘女史, 필명만 알려졌을 뿐 정확히 누구인지 밝혀지지 않았다)’혈죽가(血竹歌)를 우리나라 최초의 현대 시조로 보고 있으며 이 시조가 발표된 721일을 기념해 시조의 날로 제정되었다.[1]

 

각설하고, 책 속 본문에 있는 표시를 주목해보자. 본문에 가 있다. 어떻게 읽어야 할까? 벽원? 벽 동그라미? 내가 추측하건데, ‘벽초 홍명희를 가리키는 것이다. 그는 육당, 춘원 이광수와 더불어 조선 3대 천재(동경삼재, 東京三才)’로 이름을 날렸다.

 

벽초가 쓴 임꺽정은 일제강점기 최대의 대하소설로 손꼽힌다. 이 작품은 1928년부터 조선일보에 연재를 시작했다. 그러나 일제 탄압으로 조선일보가 강제로 폐간된 1939년에 연재가 중단되었다. 임꺽정1940년 월간지 <조광>에 옮겨 다시 연재되었으나 끝내 미완성으로 남았다. 벽초는 월북하여 김일성의 공산당 정권 수립을 돕는 정치인으로 활동했다. 북한에서의 행적 때문에 벽초는 남한에서 불순한 월북 작가로 낙인찍혔고, 임꺽정은 금서로 지정되었다.

 

분단 이후로 반공 정책이 더욱 강하되어 월북 작가 및 예술가들은 완전히 잊혀졌다. 심지어 그들의 이름을 거론하는 것조차 금기시되었다. 그래서 월북 작가의 이름이 인쇄물에 찍히면 이름 가운데 글자가 있는 자리에 ‘O’ 또는 ‘X’ 표시를 했다. 문주반생기가 발표된 해는 1960년이다. 냉전 반공체제를 유지했던 이승만 정권 시절이다. 그런데 6·25전쟁 당시 월북한 춘원의 이름은 멀쩡하게 나와 있다. 사실 춘원은 자발적으로 북한으로 간 것이 아니라 북한 인민군에게 끌려갔다. 이 시기의 춘원은 병으로 심신이 쇠약한 상태였고 전란이 한창이던 1950년에 사망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 권영민 엮음 정지용 전집 1~3(민음사, 2016)

 

 

 

그런데 내가 봐도 월북 인사 이름 언급의 기준이 모호하다. 아니, 너무 불공평하고 억지스럽다. 반공 정부는 월북 인사의 행방을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무조건 북한으로 건너간 인사들을 친북 인사로 규정했다.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시인 정지용이다. 1988년에 월북 작가 및 예술가 해금 조치가 내리기 전까지 정지용은 잊힌 이름이었고, 어정쩡하게 X으로 알려졌다. 정지용의 시가 수능 시험 지문으로 출제되는 지금의 상황을 비교하면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 김진송 이쾌대(열화당, 1996)

* 국립현대미술관 거장 이쾌대, 해방의 대서사(돌베개, 2015)

 

 

 

최근 재조명받고 있는 화가 이쾌대도 분단의 비극에 희생당한 불운한 인물이다. 이쾌대는 뛰어난 서양화가로 인정받았으나 여러 복잡한 사정 때문에 월북을 선택했다. 남한에서 그의 이름은 였다. 1991년에 그의 이름을 내건 전시회가 열렸다. 이쾌대는 경북 칠곡 출신이며 1928년 서울의 휘문고보(휘문고등학교 전신)에 진학할 때까지 대구에 거주했다. 이쾌대의 형 이여성은 대구에서 항일운동을 한 공산주의자이며 동생처럼 그림을 출품한 적이 있는 화가이다. 그도 월북하여 북한에서 학자 생활을 했으나 숙청당했다.

 

 

 

 

 

 

 

 

 

 

 

 

 

 

 

 

 

* 김상숙 10월 항쟁(돌베개, 2016)

 

 

 

현재의 경북, 대구는 반공 우파의 성지로 알려졌지만, 일제 강점기 대구는 좌파의 성지였다. 1946‘10월 항쟁은 미 군정의 식량 정책, 친일 인사 등용 등에 항의한 좌파 독립운동가와 민중들이 일으킨 대규모 무장 시위였다. 경찰의 무자비한 진압으로 항쟁에 가담한 독립운동가와 민간인들이 사망했으며 남로당(남조선노동당) 간부 박상희도 경찰의 총탄에 맞아 사망했다. 박상희는 박정희 대통령의 친형이다. ‘빨갱이를 무서워하는 어르신들은 대구 경북이 자랑하는 뛰어난 월북 화가가 있다는 사실을 아시려나? 이쾌대가 누군지 모를 수 있다. 하지만 단지 북한에 건너갔다는 이유만으로 그를 욕할 수 없다. 씁쓸하지만 아직도 과거의 이념에 갇힌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월북 인사들의 이름조차 입에 담기 싫어할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을 좋아하는 어르신들은 죽은 형의 복수를 위해 남로당에 가입했고, 국군 내 남로당 프락치로 활동한 군인 박정희를 아시려나? ‘빨갱이를 엄청 싫어하는 그분들의 단순한 기준에 따르면 공산주의자들과 함께 활동한 적이 있는 박정희 대통령도 빨갱이. 자신들에게 불리한 역사를 철저히 숨기고, 모른 쇠하는 민족 역시 미래는 없다. 아니, 답이 없다.

 

 

 

 

 

[1] [721일은 시조의 날현대시조 100주년 맞아 선포] 국민일보, 2006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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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맥(漂麥) 2017-12-28 12: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음... 저도 ‘중장년층 독자’가 되고 마는군요...^^

cyrus 2017-12-28 17:39   좋아요 1 | URL
저는 아재 독자입니다... 요즘 젊은 독자들이 선호하는 젊은 작가들이 누구 있는지 잘 몰라요.. ㅎㅎㅎ

[그장소] 2017-12-28 1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이책이 자꾸 보인다 싶었는데 개정판으로 다시 나왔군요! 범우사 ㅡ 책으로 알고 있었는데!!
권여선의 안녕 주정뱅이 ~ 가 힙했다면 과거엔 양주동 님의 문주반생기도 만만찮죠!!

cyrus 2017-12-28 17:41   좋아요 1 | URL
초판본의 옛 글자를 고치지 않고, 그대로 살려서 나왔습니다. 이해 안 되는 단어를 설명하는 각주가 있지만, 조금 읽기 힘들었어요. <안녕 주정뱅이>는 제목만 들어봤습니다. 제가 젊은 저자나 작가의 책을 잘 안 읽는 편이에요. ^^;;

[그장소] 2017-12-28 17:46   좋아요 1 | URL
권여선 작가는 젊은 ( 등단 10년정도를 기준이라고 하면) 작가보단 중견 작가에 가까운 듯 싶지만 , 취향이겠죠 ..아마도~
멋진 작가입니다 . 이 권여선 작품들도 ..
개정판이 표지도 그렇고 큰 변화가 느껴지지 않아요 . 아마 그걸 노린 마케팅 같기도 하네요. ^^

레삭매냐 2017-12-28 13: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해방 공간에서 대구가 한 때 동양의 모스크바
로 불린 적도 있다고 하네요.

지금 한창 읽고 있는 <조선공산당 평전>을 보
니 안동 풍산 소비에트에 대해서도 나오고요.

반공 보수우파의 성지가 된 모습과는 격세지감
을 느낀다고나 할까요.

cyrus 2017-12-28 17:45   좋아요 1 | URL
대구에서 가장 많은 책을 소장하고 있는 합동북이라는 헌책방에 가면 8, 90년대에 나온 마르크스, 레닌 관련 서적들을 많이 볼 수 있어요. 사회주의 관련 출판물이 한창 나왔던 시절에 대구에서도 사회주의에 관심 많은 독자들이 많았을 거예요.

지금행복하자 2017-12-28 14: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모르는저는 청년? 아니죠~ 지식이 짧은거라죠~^^

cyrus 2017-12-28 17:53   좋아요 1 | URL
지식의 범위보다는 세대 차이로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

2017-12-28 14: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12-28 17:49   좋아요 1 | URL
대구는 서울과 비교하면 문화적, 경제적 면으로 뒤쳐져 있어요. 이런 열악한 곳에 대구 출신 문인들의 모임, 일반인들의 독서 모임이 이루어지는 서점 등이 생겨서 위안이 되긴 합니다만 그래도 현실은 시궁창입니다... ^^;;

이하라 2017-12-28 2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중장년층 독자 안하겠습니다--; 초보 독자로 남을래요^^;;

cyrus 2017-12-29 08:04   좋아요 0 | URL
나이가 들어서도 스펀지로 흡수하는 것처럼 신선한 지식을 흡수할 줄 아는 젊은 독자가 되고 싶습니다. ^^
 

 

 

최근 뜬금없이 올더스 헉슬리(Aldous Huxley)의 《연애대위법》을 읽고 싶어졌다. 헉슬리의 초기작으로 분류되는 장편인데, 이 소설을 다 읽고 나면 이어서 《멋진 신세계》를 다시 읽어보려고 한다. 헉슬리의 소설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먼저 《연애대위법》 번역본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

 

 

 

 

 

 

 

 

 

 

 

 

 

 

 

 

 

현재 구할 수 있는 <연애대위법> 번역본은 딱 한 권뿐이다. 동서문화사《멋진 신세계, 연애대위법》이다. 동서문화사! 구설수가 많은 출판사다. 저작권을 위반한 채 뻔뻔하게 《대망》을 판매했으며(이 일로 동서문화사 대표 고정일 씨가 검찰에 기소됐다. 그런데도 《대망》은 절판되지 않았다), 기존에 나온 번역본을 표절한 것으로 의심되는 책들이 있다.[1] <연애대위법>이 수록된 동서문화사 번역본도 그냥 넘어가기 힘든 의문점이 남아 있다.

 

 

 

 

1. 《멋진 신세계, 연애대위법》 1판 1쇄 날짜는 1987년 7월 1일이다. 그런데 1판이 출간된 적이 있었는가?

 

 

 

 

 

 

번역본 발행정보에 따르면 1판 1쇄 발행일이 1987년 7월 1일, 2판 1쇄가 2013년에 나왔다. 발행정보 밑에 보면 깨알 같은 글씨가 적혀 있다.

 

 

이 책은 저작권법(5015호) 부칙 제4조 회복저작물 이용권에 의해

중판 발행합니다.

 

 

출판사는 이 번역본이 중판 발행임을 명시했다. 저작권법이 규정한 회복저작물 이용권’이란 무엇일까?

 

 

“회복저작물 등을 원 저작물로 하는 2차적 저작물로서 1995년 1월 1일 이전에 작성된 것은 이 법 시행 후에도 이를 계속하여 이용할 수 있다. 다만, 그 원 저작물의 권리자는 1999년 12월 31일 이후의 이용에 대하여 상당한 보상을 청구할 수 있다.” [2]

 

 

우리나라는 1995년에 세계 저작권 협약(베른 협약)에 가입했다. 2차적 저작물(번역본)을 출간하려면 앞서 원 저작물(외국인의 저작물)의 권리자와 정식 계약을 해야 한다. 즉 세계 저작권 협약을 맺음으로써 1990년대 초반까지 쏟아져 나오던 해적판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된다. 그러나 예외 조항이 있다. 그것이 바로 회복저작물 이용권이다. 1995년 1월 1일 이전에 나온 2차적 저작물이 정식 계약을 거치지 않은 해적판이라도 출판될 수 있다.

 

1987년에 나온 《멋진 신세계, 연애대위법》은 원 저작물의 권리자와 출판 계약하지 않은 번역본이지만, 이 회복저작물 이용권이 적용되어 중판 형태로 재출간할 수 있다. 그래도 미심쩍은 점이 있다. 정말로 1987년에 동서문화사의 《멋진 신세계, 연애대위법》 1판이 출간된 적이 있었는가?

 

국립중앙도서관동서문화사 판(2013년에 나온 중판)을 포함한 ‘연애대위법’ 번역본 총 12종이 소장되어 있다. 1959년 동아출판사를 시작으로 을유문화사, 삼성출판사 등이 <연애대위법> 번역본을 출간했다. 그런데 1987년에 나온 동서문화사 번역본은 없다! 중판으로 발행된 번역본만 있을 뿐이다.

 

나는 회복저작물 이용권이 정식계약을 하지 않은 책을 오늘날까지 나오게 만드는 ‘악법’이자 비양심적인 출판사들이 좋아하는 ‘편법’이라고 생각한다. 세계 저작권 협약 가입 이전에 나온 해적판의 번역 질은 그리 좋지 않다. 21세기에 요즘 잘 쓰지도 않는 단어, 현행 외래어 표기법에 맞지 않은 외래어를 보는 것이 거북하다. 그런데도 동서문화사는 회복저작물 이용권이라는 ‘편법’을 이용해서 기존의 번역본 일부를 무단 도용하거나 아예 중판으로 출간한다. 편집 교정을 거치지 않은 채 질 떨어지는 해적판 번역본을 내놓는다는 것은 독자를 기만하는 일이다.

 

 

 

 

2. 책을 번역한 ‘이경직’은 누굴까? 설마, 당신도 유령 번역자’인가?

 

 

 

 

 

 

《멋진 신세계, 연애대위법》 번역자인 이경직의 약력이 의심스럽다. 국제대학 영문과 교수’라고 되어 있는데, 혹시 경기도에 있는 ‘국제대학교’를 말하는 것일까? 이 학교는 1997년에 세워진 사립 전문대학이다. 2006년에 ‘국제대학’으로 개명했다. 그런데 이 학교에 ‘영문학과’는 개설되지 않았다. 이거, 경력 위조인가?

 

이경직 씨가 ‘문예지 소설 <추운 밤>으로 등단’했다고 한다. ‘문예지 소설’이라면서 소설이 등재된 문예지 이름은 없는 것일까?

 

 

 

 

 

 

이경직 씨가 지은 책은 <영원과 사랑의 시>, 번역본으로는 윌리엄 사로얀(William Saroyan)의 <인간 희극>이 있다. 이 정보 또한 확실하지 않다. 실제로 <영원과 사랑의 시>라는 제목의 책이 1981년 문학출판사에 나온 적이 있다. 그런데 이 책은 일본 작가의 글을 번역한 것이고, 번역자 이름은 ‘이서종’이다. 또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된 <인간 희극> 번역본 중에 이경직 씨가 번역한 것은 없다.

 

 

 

 

[1] [동서문화사 번역본의 불편한 진실] 2016년 3월 2일

http://blog.aladin.co.kr/haesung/8284417

 

[돈 내놔라! 출판사야!] 2017년 6월 18일

http://blog.aladin.co.kr/haesung/9402985

 

 

[2] 네이버 지식백과, <회복저작물과 출판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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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renown 2017-12-22 1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의 눈이네요..회복저작물 이용권은 처음들어보는데..우리 출판풍토도 이런적폐를 없애야 독자에게 외면받지 않을텐데,한심한 노릇입니다^^.

cyrus 2017-12-22 17:48   좋아요 0 | URL
적폐 출판사들 때문에 정식 계약을 맺고 정당한 절차로 책을 만든 출판사들이 손해를 입습니다. 독자들은 적폐 출판사들의 실체를 모른 채, 허술한 책을 사게 됩니다. 출판 업계 사람들도 동서문화사의 구린 행보를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기호 씨도 자신의 블로그에 동서문화사를 여러 번 깐 적이 있었습니다.

이리스 2017-12-22 15: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서문화사 저격수다운 예리함!안그래도 멋진신세게계 읽는중인데, 좀 열받네요. 아무리 세상은 넓고 읽어야하는 책이 많다지만 이런 책들이 버젓이 스리슬쩍 성업중이라는게...

cyrus 2017-12-22 17:49   좋아요 0 | URL
저격수까지는 아닙니다.. ^^;; 동서문화사 책값이 비교적 저렴한 편인데, 사실 저렴하게 만든 책을 많이 팔려는 저렴한 마케팅입니다.

Falstaff 2019-08-17 13: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국제대학˝은 1980년대까지 서대문 로타리에 있었던 ˝야간대학˝이었습니다. 당시 공부는 잘하지만 집이 가난한 학생들이 주로 덕수상고, 경기상고에 입학했는데 사무실이 서울시내에 있던 (그러니 유명 공업고등학교 졸업생들은 다니기 힘들었고요) 직장인들이 많이 다녔던 학교입니다.
머리 좋은, 그러나 가난한 학생들이 많이 다녀서 그 학교 졸업생들이 보통 도전적이고 투쟁적인 경향이 좀 있었습니다. 직장에서 일 하나는 똑부러지게 하지만. 지금은 은퇴한 고위 공무원 가운데 국제대학 출신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이젠 아니라는 뜻이기도 하지요.) 국제대학 후신이 성북구 정릉동으로 언덕 꼭대기에 있는 예전 대일고등학교 자리로 옮긴 서경대학교입니다.
저도 더 이상 <연애 대위법>의 새로운 번역을 기다리지 못해 이 책을 구입했습니다. 저는 이 책이 일본어 중역판이 아닐까를 의심하고 있습니다만.

cyrus 2019-08-17 12:18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저자의 약력을 속이는 출판사의 행보 때문에 국제대학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곳이 아닐까 의심한 적이 있어요... ^^;;
 

 

 

 

사람이라면 누구나 남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기를 원한다. 실제의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 보다는 남에게 어떻게 보이는가가 더 중요할 때가 많다. 첫 만남에서는 의도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만나는 사이에 첫인상이 형성된다. 사람들이 첫인상을 형성할 때에 사용할 수 있는 정보는 대단히 제한적이다. 쓸 수 있는 정보라고는 기껏해야 상대방의 외모, 목소리, 복장이 전부다. 사람들은 첫인상으로 상대방의 모든 것을 판단하려 든다. 얼굴, 신장, 체격 등의 겉모습과 제스처, 말투라는 극히 제한된 정보로 그 사람의 성격까지 판단해버린다.

 

 

 

 

 

 

 

 

 

 

 

 

 

 

 

 

 

* 말콤 글래드웰 블링크(21세기북스, 2016)

 

 

 

이렇듯 첫인상은 매우 짧은 순간에 결정된다. 첫인상이 좋으면 쉽고 편하게 생각되지만, 반대의 경우는 부정적인 사람이라는 편견을 갖게 된다. 말콤 글래드웰(Malcolm Gladwell)은 첫인상을 블링크(blink)’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블링크는 눈 깜짝할 새에 일어나는 순간적인 판단을 가리킨다. 글래드웰은 상대의 첫인상을 판단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2초면 충분하다고 말한다. 눈으로 헤어스타일, 액세서리, 옷 등 잘게 쪼개진 정보를 모은 뒤 살아온 과정에서 축적된 판단력으로 사람을 단번에 평가한다는 얘기다. 첫인상을 결정하는 시간은 학자마다 다르긴 하나 길어야 7초다.

 

첫인상이 나중에도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것을 초두 효과(primary effect)’라고 한다. 사람은 일단 첫인상이 형성되면 후에 들어오는 정보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이처럼 먼저 제시된 정보가 나중에 들어온 정보보다 전반적인 인상 형성 및 인물 평가에 영향을 준다. 수백만 년 동안 인간의 뇌는 낯선 장소가 안전한지, 상대가 사기꾼은 아닌지 재빨리 판단해 움직이는 생존 기계로 진화해온 결과다.

 

 

 

 

 

 

 

 

 

 

 

 

 

 

 

 

 

* 생텍쥐페리, 황현산 역 어린 왕자(열린책들, 2015)

 

 

 

한 사람의 실속 있는 내면이나 진가를 보지 않고 겉모습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자기만의 색안경에 갇혀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첫인상만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생텍쥐페리(Saint Exupery)어린 왕자에 나오는 천문학자 이야기는 첫인상만으로 사람을 주관적으로 판단하는 어른들의 심리를 잘 보여주고 있다.

 

 

 

 

소행성을 발견한 터키의 천문학자는 국제천문학회가 참석하여 소행성의 존재를 공식 발표했다. 그러나 터키 천문학자의 단출한 복장 때문에 아무도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몇 년 지난 후, 터키에 서양식 문화가 유입되었고 터키의 독재자가 국민들에게 서양식 복장을 하지 않으면 사형에 처한다고 선포했다. 터키 천문학자는 멋있는 서양식 복장을 하고 국제천문학회 연단 위에 다시 섰다. 그러자 이번에는 모든 천문학자가 그의 말을 믿어주었다.

 

 

 

 

 

 

 

 

 

 

 

 

 

 

 

 

 

 

 

* 존 파렐 빅뱅-어제가 없는 오늘(양문, 2009)

* 데이비드 보더니스 아인슈타인 일생 최대의 실수(까치, 2017)

 

 

 

아인슈타인(Einstein)과 조르주 르메트르(Georges Lemaitre)의 첫 만남어린 왕자속 천문학자 이야기와 묘하게 겹친다. 빅뱅(big bang)’을 처음으로 제안한 사람이 조지 가모(George Gamow)로 널리 알려졌지만, ‘빅뱅 이론으로 자라게 될 생각의 씨앗을 먼저 발견한 사람은 조르주 르메트르이다. 가모는 빅뱅 이론을 체계화화한 학자다. 그는 빅뱅 이론을 뒷받침해줄 증거-우주의 마이크로파 배경 복사를 관측했다-를 발견했다. 프레드 호일(Fred Hoyle)빅뱅이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사용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빅뱅 이론을 비웃은 학자였다.

 

 

 

 

 

 

르메트르는 벨기에 출신의 과학자이자 가톨릭 신부였다. 그는 우주를 구성하는 모든 것은 한 점에서 출발했으며 그 점이 바로 태초의 우주의 탄생을 알리는 시작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우주의 모습을 불꽃놀이에 비유했다. 르메트르는 아인슈타인이 고안한 방정식을 토대로 팽창하는 우주를 증명했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은 우주 팽창 가설에 확신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르메트르는 직접 아인슈타인에게 찾아가서 자신의 주장을 설명했지만, 아인슈타인은 그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아마도 르메트르는 위대한 과학자를 만나러 갔을 때 평소에 입던 검은색 신부 복장(사진 속에 르메르트가 입은 옷이다)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르메트르가 교회 신부라는 이유로 의심의 눈길을 보냈을지도 모른다. 벨기에 신부의 주장을 묵살한 천재의 판단은 실수였다.

 

대부분 우주론을 설명한 책에 보면 르메트르를 조연급으로 언급한다. 이렇다 보니 르메트르는 조지 가모, 심지어 빅뱅 이론을 무시한 호일보다 인지도가 밀린다. 우주 팽창을 이해하려면 먼저 르메트르의 생각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는 신의 존재를 믿는 신부였지만, 자신의 종교관을 무너뜨릴 수 있는 생각의 씨앗을 가슴속에 품고 있었다. 빅뱅-어제가 없는 오늘은 르메트르의 일생과 종교라는 이름에 갇힌 그의 과학적 성과를 재조명한 유일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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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20 17: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12-21 12:47   좋아요 0 | URL
과학자, 종교인 양쪽에서 외면받은 외로운 학자였어요. 교황이 빅뱅 이론을 창조론의 근거로 사용한 것에 반발할 정도로 과학 정신이 투철한 인물이었습니다.

겨울호랑이 2017-12-20 2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빅뱅이론은 기독교의 창조론과도 잘 부합되는 이론이라 여겨집니다. ‘태초에 빛이 있어라‘라는 창조론을 과학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다고 여겨졌기에 과학의 다른 이론보다 상대적으로 저항없이 받아들여진 것 같아요^^:

cyrus 2017-12-21 12:50   좋아요 1 | URL
종교적 관점에서 본다면 빅뱅 이론은 ‘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어요. 하지만 르메트르 신부는 빅뱅이론의 종교적 관점을 거부했습니다. 그는 빅뱅 이론이 종교와 과학의 중간 다리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
 

 

 

영국의 작가 몬터규 로즈 제임스(Montague Rhodes James)의 단편소설 포인터 씨의 일기장은 책 수집가에게 일어난 기이한 현상을 섬뜩한 분위기로 담아낸 작품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 제임스 덴턴은 고서를 모으는 책 수집가다. 그는 윌리엄 포인터라는 사람이 쓴 오래된 일기장을 주문한다. 덴턴과 같이 사는 고모는 조카의 고서 수집벽을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고모님의 잔소리를 한 번 들어보자. 덴턴이 처한 난감한 상황이 남 일 같지가 않다.

 

 

 

 

 

 

 

 

 

 

 

 

 

 

 

일요일 오전, 교회에 다녀온 다음 그의 고모가 서재로 들어왔다. 그러고는 서탁에 놓인 네 권의 묵직한 갈색 가죽 장정 서적을 보고는 하려던 말을 잊어버렸다. 이게 대체 뭐니?” 그녀는 의심으로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새로 산 거지? ! 이것 때문에 내 꽃무늬 커튼을 잊은 거니? 그럴 줄 알았어. 끔찍하구나. 여기에 대체 얼마나 쏟아부었는지 궁금하구나. 10파운드가 넘는다고? 제임스, 이건 죄악이야. 그래, 이따위 물건에 낭비할 돈이 있으니 우리 생체 해부 반대 모임에도 꽤나 많은 돈을 기부해 줄 수 있겠구나. 정말이야, 제임스. 네가 그러지 않는다면 나는 정말 기분이 나쁠…‥ 잠깐 누가 썼다고? 애크링턴의 포인터 씨? 그래, 이웃의 고문서를 모아들이는 일 자체야 흥미로울 수도 있지. 하지만 10파운드라니!” 그녀는 조카가 든 것 말고 다른 일기장 한 권을 집어 들고는 아무 쪽이나 펼쳐 보았다. 그리고 다음 순간 책장 사이에서 집게벌레 한 마리가 기어 나오는 것을 보고는 기겁하여 책을 바닥에 떨어트렸다. 덴턴 씨는 속으로 욕설을 내뱉으며 책을 집어 들었다. 불쌍한 일기장! 고모님은 포인터 씨에게 너무 가혹하게 구시는 것 같네요.” “그랬니, 얘야? 미안하지만 나는 저런 끔찍한 벌레들은 견딜 수가 없단다. 어디 책이 망가지기라도 했는지 한번 보자꾸나.” (391~392)

 

 

덴턴처럼 고서를 수집하지는 않지만, 헌책방에 있는 오래된 책을 좋아한다. 헌책방에 오랫동안 잠들어 있는 책들의 상태는 온전치 못하다. 종이 색깔이 누렇게 변색하였고, 퀴퀴한 곰팡내를 풍긴다. 그렇다 보니 이런 책을 사 오면 가족들의 눈치를 보게 된다. 내 동생은 간혹 내 서재를 구경하다가 오래된 책을 발견하면 이런 책을 왜 샀어? 재미있어?”라고 묻는다. 나는 재미있으니까 샀지.”라고 짧게 대답만 한다. 어머니는 내 방 안에 가득한 책들을 볼 때마다 그만 사라고 말씀하신다. 말씀을 잘 안하셔서 그렇지 눈치 빠른 어머니는 아들이 야금야금 생활비로 책을 사는 것을 알고 있다.

 

 

 

 

 

 

 

책 주문할 때마다 가족들 눈치받기 싫어서 편의점 픽업 서비스또는 중고매장 픽업 서비스를 많이 이용한다. 퇴근할 때 편의점이나 중고매장에 도착한 택배를 받으러 간다. 그러면 가족들 모르게 책을 주문할 수 있다. 하지만 중고매장 픽업 서비스를 자주 이용하게 되니까 또 다른 문제점이 생겼다. 중고매장에 진열된 책을 그냥 지나칠 수 있겠는가. 택배 물품 찾으러 매장에 가면 책을 더 사게 된다. 택배 물품만 들고 매장 밖으로 나간 적이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다. 이러한 소비 습관이 안 좋을 줄 알면서도 중고매장에 택배 물품 찾으러 가는 날이면 에코백을 챙긴다…‥. 나란 놈은 스튜핏이다.

 

책을 사 모으는 일, 알라딘 서재에 글 쓰는 일 모두 가족에게 비밀로 하고 있다. 나의 독서 행위가 공개되는 범위는 한정되어 있다. 알라딘/북플, 책 관련 온 · 오프라인 커뮤니티(출판사 공식 카페, 독서모임 등)뿐이다. 지금까지 살면서 책 좋아하는 취향을 밝혀서 남들한테 좋은 소리 들은 적이 많지 않다. 어떤 사람은 내게 놀 줄 모른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런 말을 듣고 난 후부터는 상대방과 대화를 나누면 절대로 내가 먼저 책 얘기를 꺼내지 않는다. 독서는 혼자 즐길 수 있는 유희다. 여러 사람과 함께 하면서 즐길 수 있는 유희에 익숙한 사람들은 혼자 즐기는 유희의 즐거움을 잘 모른다. 책을 많이 사도 스튜핏!, 책을 읽어도 스튜핏! 스튜핏 소리 계속 듣더라도 내 갈 길 가련다. 개썅마이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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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19 12: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12-19 17:34   좋아요 0 | URL
오래된 책들도 도서관에서 만날 수만 있다면 사지 않았을 것입니다. 나온 지 십년이 채 안 된 책들은 도서관 창고로 향합니다. 한 달마다 새 책들이 도서관에 들어오기 때문에 먼저 도서관에 온 책들은 양로원 같은 창고에 머물게 되는 거죠.

syo님이 빠르면 연말에 대구를 떠난다고 합니다. 유레카님이 괜찮으시다면 syo님도 뵙으면 합니다. ^^

2017-12-19 12: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12-19 17:36   좋아요 0 | URL
오랜만입니다. 잘 지내시죠? 저도 책 구입을 자제하고 도서관을 이용하려고 합니다. ^^;;

stella.K 2017-12-19 13: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왜 책 좋아하는 사람을 미워하고 따 시키는지 모르겠어.
그 사람이 뭐 피해주는 것도 없는데 말야.
책 읽는 사람은 접근이 어려울 거라고 생각하나 봐.
놀자고 그러면 얼마든지 놀아줄 수도 있는데 말야.ㅋ

사실 궁금하긴 해. 넌 다달이 사는 책 어떻게 두고 있나?ㅋ

cyrus 2017-12-19 17:39   좋아요 0 | URL
저는 조용하게 노는 것을 좋아해서 남자들이 성인이 되면 꼭 가는 곳(19금 관련)에 한 번도 가지 않았어요. 그런 곳에 가서 돈 낭비하기 싫어요.

서재에 더 이상 써야 할 글이 없으면 제 방 전체 내부를 사진으로 공개하겠습니다. ㅎㅎㅎ

stella.K 2017-12-19 18:18   좋아요 0 | URL
아니 누가 뭐랬니? 묻지도 않는...ㅋㅋㅋㅋㅋㅋ

아하, 보통 남자들은 그렇게 노는구나.
당연하지. 그런데다 돈 쓰느니 책 사 보는 게 훨씬 낫지.
너를 순수 건전남으로 인정! 그뤠잇~!ㅋㅋ


cyrus 2017-12-19 18:26   좋아요 2 | URL
저는 내 친구들은 19금 장소에 가서 놀지 않을 거라고 순순하게 생각했어요. 그런데 남자가 아이가 성인이 되면 변하긴 변해요. 저보다 순둥순둥한 친구들도 성인이 되기 위한 어둠의 경험(?)을 한 적이 있는 거 보면 ‘착한 남자’는 절대로 없다는 회의적인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

2017-12-19 13: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12-19 17:45   좋아요 1 | URL
책과 함께 하는 시간도 좋지만, 사람과 같이 만나고 어울리는 것도 중요해요. 개인적 시간, 공적 시간 둘 다 균형 잡는 일이 어렵지만, 너무 책만 몰입하게 되면 사람과 사람 간에 만나면서 느낄 수 있는 정에 무감각해집니다. 그래서 책 좋아하는 사람들 중에는 잘난 척하고, 자기 자신만 생각하는 좁은 심성을 가진 사람도 있어요. 이런 사람이 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

찔레꽃 2017-12-19 13:4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어제 마누라한테 이렇게 말했어요. 여보 내 취미가 뭐냐구 물어 봐! 취미가 뭐야? 책 사는 것! 마누라가 말했어요. 여보 내 취미가 뭐냐구 물어 봐! 취미가 뭐야? 고양이 키우는 것! 제가 말했어요. 어휴 둘 다 벼랑 아닌 취미일세... Cyrus님은 사는만큼 읽으시니 괜찮지만, 저는 잘 읽지도 않으면서 왜 그리 책을 사는지... 저야말로 스튜 핏! 입니다. 하하하.

cyrus 2017-12-19 17:47   좋아요 0 | URL
저도 사 놓고 안 읽은 책이 엄청 많습니다. 언젠가는 읽을 거라고 생각해서 샀는데, 그 ‘언제‘를 기약할 수 없어서 문제입니다. ^^;;

짜라투스트라 2017-12-19 13: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책읽는 게 취미라고 해도 별문제 없이 잘 살아와서 아주 글이 흥미롭게 여겨지네요^^

cyrus 2017-12-19 17:48   좋아요 0 | URL
주변에 책 좋아하는 친구 한 두 명만 있으면 마음이 편안할 것 같습니다. 진짜 제 주변에 책 읽는 친구가 단 한 명도 없어요. ^^;;

곰곰생각하는발 2017-12-19 14: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이러스 님은 스튜핏이 아니라 열정입니다. 사이러스 님은 독서를 정말 좋아하시는 듯...

cyrus 2017-12-19 17:51   좋아요 0 | URL
좋은 말씀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알라딘 서재뿐만 아니라 책과 관련된 커뮤니티에 저보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만약 제가 외향적인 성격이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놀 줄 알았으면 책과 친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혼자서 시간을 보내는 것에 익숙해져서 자연스럽게 책을 가까이하게 됐습니다.

레삭매냐 2017-12-19 18: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 다이어트는 그래서 꾸준하게 해야 합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늘어나는 장서를 보관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니 정말 꼭 갖고 싶은 책들만 추려 내고
나머지들은 혹독하게 정리를...
맨날 말로만 이러고 있답니다. 오늘도 세 권
샀네요.

cyrus 2017-12-19 18:21   좋아요 1 | URL
반전의 댓글이군요.. ㅎㅎㅎ 북플 알림으로만 봤을 땐 레삭매냐님이 책 다이어트를 제때 하자는 내용의 댓글인 줄 알았어요. 지름신은 언제 나타날지 모르기 때문에 매일 퇴근할 때마다 괴롭습니다. 퇴근하면 대형서점이 있는 번화가를 꼭 지나가야 합니다. 집에 가는 버스를 타다가 단순하게 책을 사고 싶어서 번화가에 내린 적이 많습니다. ^^;;
 

 

 

유령귀신의 차이점이 무엇일까. 우리는 보통 유령과 귀신을 같은 의미로 사용한다. 그렇지만 두 단어의 의미에 약간은 차이가 있다. 국립국어원의 설명[1]에 따르면 귀신은 사람이 죽은 뒤에 남는 넋’, ‘사람에게 화()와 복()을 내려주는 신령이다. 유령은 죽은 사람의 혼령’, ‘죽은 사람의 혼령이 생전의 모습으로 나타난 형상’, ‘이름뿐이고 실제는 없는 것이다. ‘신령으로서의 귀신은 무속신앙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조상숭배의 대상이 되는 조상신을 제외하고 온갖 잡귀와 잡신은 어르거나 달래고 혹은 위협해서 축출해야 하는 존재이다. 기독교가 보는 유령은 일반적인 귀신 개념과는 다르다. 기독교인들은 신과 대립하는 악마, 마귀를 유령으로 인식했다. 그래서 성령의 힘을 받은 기독교인은 몸에 깃들인 악령을 퇴치하는 엑소시스트(exorcist)로 활동하기도 했다.

 

 

 

 

 

 

 

 

 

 

 

 

 

 

 

 

 

 

* 로저 클라크 유령의 자연사(글항아리, 2017)

 

 

 

피터 언더우드(Peter Underwood)라는 영국의 고스트 헌터(ghost hunter)는 유령을 여덟 가지 존재로 분류했다.[2]

 

 

1) 엘리멘탈(elemental)

2) 폴터가이스트(poltergeist)

3) 전통적 유령

4) 역사적 유령

5) 정신적 각인의 구현

6) 위기유령 또는 생사유령

7) 타임 슬립(time slip)

8) 생자의 유령

 

 

엘리멘탈은 묘지를 떠도는 유령이다. 폴터가이스트는 이유 없이 이상한 소리나 비명이 들리거나 물체가 스스로 움직이거나 파괴되는 현상이다. 여기서 잠깐,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 상식 하나를 알려주겠다. 폴터가이스트는 독일어인데 이 단어를 처음 사용한 사람이 독일 종교개혁을 이끈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이다.[3] 전통적 유령은 죽은 자의 혼령이다. 전통적 유령은 살아있는 자의 존재를 인식하기 때문에 인간은 이들과의 영매(channeling, 귀신과의 대화)가 가능하다. 역사적 유령은 역사적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의 혼령이다. 가장 유명한 사례가 백악관에 출몰했다는 링컨(Abraham Lincoln)의 유령이다. 링컨의 영부인은 링컨의 유령을 목격했다고 진술한 적이 있다. 정신적 각인의 구현정신적 에너지가 특정한 장소, 특정한 날짜에 방출되어, 극단적 상태의 정신이 심령 존재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위기유령 또는 생사유령은 가까운 지인이 죽음 또는 생명의 고비를 넘기고 있는 순간에 그들을 목격하거나 경험하는 현상이다. 타임 슬립(시간 여행)은 어떤 이가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가는 현상이다. 타임 슬립을 통해 만난 과거의 사람들은 현재의 시점에서 볼 땐 이미 죽은 자들이며 그들의 정체는 유령이라 할 수 있다.

 

 

 

 

 

 

 

 

 

 

 

 

 

 

 

 

 

 

* 최기숙 처녀귀신(문학동네, 2010)

 

 

 

우리나라 귀신은 딱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남자 귀신과 여자 귀신.[4] 전설 또는 야담에 등장하는 남자 귀신은 조상신에 속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남자 귀신은 특별대우를 받는다. 후손들은 집안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조상신을 기리기 위한 제사를 지낸다. 여자 귀신은 한 맺힌 존재이다. 억울한 누명을 쓰거나, 사랑의 배신을 맛보거나 심지어 남성으로부터 신체적 위협을 당한 여성은 죽어서 원귀(冤鬼)’가 된다. 여자 귀신은 이승에서 풀지 못한 한을 품으면서 구천을 떠돌기만 한다. 그래서 여자 귀신은 자신의 한을 풀어줄 수 있는 구원의 대상 앞에 나타나는데, 대부분 관직이 높은 사대부들이다. 권력을 가진 남성이 여성 귀신의 한을 풀어주는 모습은 남성의 능력을 부각하는, ‘남성을 위한 클리셰이다.

 

 

 

 

 

 

 

 

 

 

 

 

 

 

 

 

 

* 세계 서스펜스 추리여행 1(나래북, 2014)

* 다니엘 디포 빌 부인의 망령(현인, 2014, e-Book)

 

 

 

한국의 여자 귀신은 죽어서야 자신들의 억울함을 전달할 수 있는 을 가진다. 안타깝게도 여성의 목소리를 들어주는 대상은 남성으로 한정되었다. 여자 귀신의 호소를 이해하고, 그녀를 도와주는 남성의 모습은 현실의 남성의 우월함을 강조할 뿐이다. 이런 젠더 구조가 고착되면서 여자 귀신은 원한이 서린 무시무시한 존재’, 즉 오늘날의 처녀 귀신으로 형상화된다.

 

그러므로 여자 귀신이 살아있는 여성앞에 등장하여 대화를 나누는 설정의 공포소설(또는 유령 이야기)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특히 다니엘 디포(Daniel Defoe)빌 부인의 망령페미니즘 관점으로 분석할 가치가 있는 글이다. 이 이야기의 서사 구조는 단순하다. 선량한 버그레이브 부인 앞에 어렸을 때부터 친하게 지낸 빌 부인의 영혼이 등장한다. 버그레이브 부인은 오랜만에 만난 빌 부인을 반갑게 맞이하고, 그녀와 함께 차를 마시면서 대화를 나눈다. 살아있는 자와 유령이 너무나도 차분하게 대화하는 장면이 이채롭다. 혹자는 이 장면이 지루하거나 유령 이야기에 어울리지 않는 설정이라고 평가할 수 있겠다. 그러나 나는 그런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두 여성의 대화는 남성 중심 사회에서 억압받은 여성들이 연대하는 자매애(sisterhood)’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두 여성은 공통으로 남성으로부터 상처를 입은 경험이 있다. 바그레이브 부인은 품행이 바르지 못한 남편으로부터 학대를 당한다. 그래서 빌 부인의 영혼은 남편에게 괴롭힘당하는 바그레이브 부인을 염려하고, 그런 남편을 미치광이라고 부른다.

 

 

버그레이브 부인이 빌 부인에게 차를 마시겠느냐고 묻자 그녀는 마셔도 상관은 없지만 그 미치광이(버그레이브 부인의 남편을 말한다)가 네 그릇을 깨뜨려버리지는 않았니?”라고 말했다. [5]

 

 

빌 부인의 남동생은 버그레이브 부인의 영매 체험을 미치광이의 잠꼬대라고 비난한다. 남성은 유령을 목격하는 여성에서 나타나는 감정 상태, 공포이성이 부족한 여성들의 특성으로 치부했다. 계몽주의의 영향으로 이성적인 남성은 항상 감정이 절제된 상태를 지향했고, 현실과 동떨어진 환상 세계를 거부했다. 그러나 버그레이브 부인은 차분하게 친구의 유령을 맞이했고, 자신이 만났던 친구의 정체를 뒤늦게 확인했을 때도 매우 놀라지 않았다. 이 작품에서 버그레이브 부인은 영혼을 목격한 이성적인 존재이다. 귀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 남성들이 버그레이브 부인을 비난할수록 그녀의 존재는 더욱 빛난다. 버그레이브 부인과 빌 부인의 유령은 남성들이 가로막은 현실적 장벽에 잠시나마 벗어나 환상의 경로속에서 여성으로서의 존재가 감당해야 할 고통을 대화로 풀어냈다.

 

여자 귀신이 발화자로서의 자격을 갖추려면 권력을 가졌고, 지혜로운 남성 앞에 등장했다. 여자 귀신의 한을 풀어준 남성은 명예를 얻었다. 어렸을 때 나는 귀신의 한을 풀어주는 남성이 지혜로운 영웅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이 여자 귀신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선 태도와 행동들은 남성의 영웅 심리가 반영되어 있을 뿐, ‘여성 문제에 집중적으로 파고들지 않았다. 이야기 속 권력자 남성들은 여자 귀신 앞에서도 지배적 위치를 강조하기 위해 남성성을 수행하고 있었다.

 

 

 

 

 

 

 

 

 

 

 

 

 

 

 

 

 

* 유민석 메갈리아의 반란(봄알람, 2016)

 

 

 

나는 유령과 귀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 그러므로 남성으로부터 억압받은 여성이 죽어서 남성을 복수한다거나 페미니스트 귀신이 되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말할 수 없는 것은 죽은 거나 다름없다. 살아있을 때 말해야 한다. 여성을 침묵시켜 온 여성 혐오에 대항하고 여성에 대한 성적 억압, 편견 등을 물리치려면 남성 화자의 권력을 모방하여 저항의 언어를 발산해야 한다. 메갈리아의 미러링(mirroring)여성 혐오에 질식된 여성들이 벼랑 끝에서 내지르는 단말마의 비명[6]이다. 그 비명의 숨은 의도를 이해하는 남성들은 얼마나 될까? 다만 미러링 대상이 사회적 지위가 낮은 성소수자, 반 페미니즘과 무관한 인물일 경우, 또 다른 혐오와 사회 불신을 양산한다. 여성과 남성 사이의 소모적인 갈등만 조장하는 혐오와 사회 불신이야말로 귀신과 유령보다 더 무서운 것들이다.

 

 

 

 

 

[1] [‘귀신유령의 차이] 네이버 국어사전-우리말 바로 쓰기

[2] 유령의 자연사29~32

[3] 같은 책, 118

[4] 처녀귀신22~23

[5] 빌 부인의 망령22

[6] 메갈리아의 반란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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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7-12-18 17: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령의 자연사> 누가 리뷰 안 해주나 기다리고 있는데 말이죠. 도서관에 희망도서 신청했는데 까였어요. 췟.

한국귀신은 다른 나라에 비해 너무 스트레이트해요. 옆나라 일본만 해도 상상초월 많잖아요. 귀신도 국민성, 상상력 반영 같기도 하고. <한국의 숨은 귀신을 찾아서>가 필요해요.

페미니스트 귀신이라니! 심각한 말씀 중에 죄송한데 넘 흥미로운 소잽니다!

cyrus 2017-12-18 17:13   좋아요 1 | URL
조금 지루한 내용이 있긴 한데, 그래도 읽어볼 만합니다. 유령을 바라보는 서구인들의 생각과 반응들이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우리나라 귀신을 주제로 한 <처녀귀신>이 더 재미있었습니다. ‘페미니스트 귀신’은 소설에 나오는 존재입니다. 이제는 살아있는 페미니스트들이 많아져야 합니다. ^^

2017-12-18 17: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12-18 17:30   좋아요 2 | URL
남자 귀신은 후손들이 잘 되기를 바라는 덕담을 해주거나 쓴소리를 해주는 역할이라면 여자 귀신은 자신의 원한을 호소하기 위해 살벌하게 등장합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남자 귀신은 착한 귀신, 여자 귀신은 나쁜 귀신이라는 인식이 남아 있어요. 제주도 전설에 나오는 마고 할멈은 신령한 존재였는데, 어느 지역에서는 악령으로 알려졌어요. 남성 중심의 유교 사상에 밀려서 무속신앙 속 여신들은 잡귀로 인식된 거죠.

곰곰생각하는발 2017-12-18 17: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쳐녀귀신 재미있겠는데요. 전 이런 책이 재미가 있더군요..찜해놯습니다..

cyrus 2017-12-19 09:02   좋아요 0 | URL
공포영화를 좋아하는 곰발님이 흥미를 느낄 수 있는 책입니다. ^^

표맥(漂麥) 2017-12-18 2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달걀귀신은 남자귀신인가요? ^^

cyrus 2017-12-19 09:56   좋아요 1 | URL
어려운 질문이군요. 제 생각에는 여성 달걀귀신이 많을 것 같습니다. 달걀귀신이 나오는 이야기의 패턴은 똑같아요. 남자가 밤길을 혼자 지나가는데, 여인의 뒷모습을 발견합니다. 남자가 말 걸자, 뒤돌아본 여인의 정체는 눈, 코, 입이 없는 달걀귀신이었습니다. ^^

transient-guest 2017-12-19 09:36   좋아요 2 | URL
남자귀신이라면 역시 몽달귀신이죠..-_-: 달걀귀신의 남성형은 들어본 바 없습니다. 한국의 귀신체계에서 나름 남녀성차별이 없는 건 총각귀신/처녀귀신 같네요...둘 다 못 가보고 죽은 귀신...-_-:

cyrus 2017-12-19 09:59   좋아요 0 | URL
To. t-guest님 / 남성형, 여성형 귀신 및 유령이 얼마나 있는지 알아봐야겠어요. ^^;;

감은빛 2017-12-19 14: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루스님 글 읽으니 저 책들 다 읽은 기분이네요. ^^

[유령의 자연사] 보고 저런 책도 다 있네 생각했는데, 벌써 읽으셨군요.

[처녀귀신]이 더 재밌겠네요. ^^

cyrus 2017-12-19 17:52   좋아요 0 | URL
<처녀귀신>에 익숙한 고전 문학 작품들이 나오기 때문에 내용이 쉽고, 재미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