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친구 공개 글’입니다. 몇 시간 지난 후에 ‘전체 공개’로 전환할 예정입니다.

 

 

 

 

 

어제 책 선물을 받았습니다. 선물을 주신 분의 닉네임을 공개하고 싶지만, 고심 끝에 밝히지 않기로 했습니다. 여기서는 ‘대인배’님이라고 부르겠습니다.

 

대인배님이 ‘기프티북’으로 책을 보내주셨고요, 저는 처음으로 ‘편의점 배송’으로 책을 받았습니다. 이제 하도 제가 책을 계속 주문하니까 집에 계시는 어머니가 택배 직원들 만나기가 부담스러워하셨어요. 택배 때문에 마음대로 외출을 못했고요. 그래서 시험 삼아 ‘편의점 배송’을 했습니다. ‘편의점 배송’을 신청할 때 물품 받는 장소로 집에서 가장 가까운 편의점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퇴근하자마자 편의점에 들렀는데요, 놀라운 건 배송비 한 푼 받지 않았습니다. 수령자 서명만 하고 나왔어요. 다음부턴 책 주문할 때 ‘편의점 배송’으로 해야겠어요.

 

 

 

 

 

선물로 받은 책의 가격이 비쌉니다. 정가가 4만 원입니다! 책값이 부담스러워서 저 같은 책성애자도 책을 안 사는 시대입니다. 그렇다 보니 상대방을 위해 책 사는 일도 주저하게 됩니다. 제게 이런 큰 선물을 주신 분은 정말 ‘대인배’입니다.

 

작년 12월에 제가 대인배님에게 책 선물을 드렸습니다. 그 분은 항상 제 글을 좋게 봐주셨습니다. 이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대인배님의 북플에 있는 ‘읽고 싶은 책’ 목록을 확인했습니다. 그 중에 가격이 싸면서도 오래 두고 읽을 만한 책 한 권을 골랐습니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사실 저는 누군가에게 책 선물을 보낼 때 책의 가격을 먼저 따집니다. 제가 읽고 싶은 책 한 권 더 사고 싶은 욕심 때문에 도서 구입비를 최대한 아끼려고 하는 거죠. 다행히 대인배님은 제가 고른 책에 만족하셨고, 이 책의 리뷰도 남겨주셨어요.

 

제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알라딘 서재 활동 7년 동안 여러 사람에게 책 선물을 전달해봤지만, 가격 2만 원 이상의 책을 고른 적이 없었거든요. 평균적으로 1만 5천 원에서 2만 원 사이의 가격대의 책을 골랐습니다. 제가 대인배님을 위해 고른 책의 정가는 1만 2천 원입니다. 제가 대인배님의 입장이었다면, 그 가격에 비슷한 책을 골랐을 겁니다. 그런데 대인배님은 통 크게 비싼 책을 보내줬습니다.

 

대인배님의 실제 닉네임을 공개하지 않은 이유가 있습니다. 알라딘 서재에 자주 접속하는 분이라면, 대인배님의 닉네임만 들어봐도 이 분이 누군지 다 알 정도로 유명합니다. 대인배님의 서재를 즐겨 찾는 분도 많고요. 만약 제가 대인배님의 닉네임을 언급했으면, 이 글을 보는 분들은 이런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나도 대인배님이랑 친해지면, 저런 비싼 책을 공짜로 받을 수 있겠구나.’

 

‘저 사람이 받은 책은 내가 저번에 대인배님한테 받은 책보다 비싸고 좋잖아? 대인배는 사람 차별하는군, 정말 실망했어!’

 

선물 인증 사진(또는 글)은 신중하게 생각하면서 공개해야 합니다. 선물을 준 당사자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울 수 있습니다. 선물 받은 분은 기분 좋겠으나 선물 인증 사진을 보는 분들은 위화감이 생깁니다. 제가 친하게 지낸다고 생각하는 분이 열 명 이상 넘습니다. 이분들 모두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선물로 전달하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한 분 한 분 일일이 챙겨드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오랫동안 친하게 지냈는데도 책 선물 하나 주고받지 못하는 경우도 생겨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항상 책 선물을 받으면 인증 사진을 남기지 않습니다. 좀 늦더라도 책 한 권 다 읽은 뒤에 리뷰를 작성하고, 글 마지막에 짤막하게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사실 제 글은 분량이 길어서 정독하는 사람이 많지 않아요. 아마도 제가 남긴 감사의 인사를 못 보는 분들이 있을 거예요. 저는 자랑을 조용하게 하는 걸 좋아해요. 그래서 오늘 특별히 이 선물 인증 글을 ‘친구 공개’ 설정한 겁니다.

 

‘좋아요’ 5번 이상 받으면 ‘화제의 서재글’에 노출됩니다. ‘화제의 서재글’에 리뷰든 일기든 사진이든 뭐든 나오면 좋습니다. 하지만 알라딘 서재 본래 의미를 생각한다면, 가장 기본적으로 리뷰가 많이 공개되어야 합니다. 제가 말한 리뷰는 독후감도 포함됩니다. 제 인증 글에 향한 사람들이 시선이 너무 쏠리게 되면, 좋은 리뷰들이 묻힐 수 있습니다. 책에 대한 리뷰가 아니더라도 주제에 상관없이 성실하게 쓴 글도 많은 분들이 못 볼 수도 있어요.

 

쓸데없이 글이 길어지고 말았습니다. 제 입장이 건방져 보일 수도 있습니다. 너그러이 이해해주시고, 그냥 ‘cyrus처럼 저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구나’하고 봐주셨으면 합니다.

 

다시 한 번, 대인배님께 책 선물을 주신 것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다음에 저도 좀 비싼 책 한 권 보내 드릴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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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17 10: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3-17 11:25   좋아요 1 | URL
자랑은 하면 할수록 좋지만, 이게 너무 지나치면 보는 사람들이 부담스러워 해요. 온라인 커뮤니티 공간에서 항상 문제가 되는 ‘친목질’의 원인이기도 합니다. 특정 회원이 누군가에게 주거나 받은 선물을 공개 자랑한 글을 계속 올리고 있으면, 무조건 좋다고 볼 문제가 아닙니다. ‘화제의 서재글’, ‘알라디너의 선택’은 모든 사람들의 글이 공개되는 공적 게시판입니다. 몇 년 전부터 쭉 지켜봤습니다. ‘알라디너의 선택’, 특히 ‘주간 인기글’은 특정 회원의 공개 일기장이나 다름없습니다. 전 그분이 좀 적당히 했으면 좋겠어요.


곰곰생각하는발 2017-03-17 10: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공감공감... 저도 택배 때문에 약속마저 취소한 적 있습니다..ㅎㅎ

이 글에 공감하는 이유가 저도 책 선물 받으면 쪽지로 감사히 받았다 말할 뿐
굳이 이름 공개하고 페이퍼 작성은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게 주신 분의 부담이 될 수도 있고, 또 이웃들의 상대적 박탈감도 생각해야 되고....

cyrus 2017-03-17 11:11   좋아요 0 | URL
작년에 곰발님이 쓰신 <소설 마태우스> 리뷰가 그 글을 보는 분이나 선물을 주신 분 모두 만족스럽게 해준 인증 글로 생각합니다. ^^

2017-03-17 11: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3-17 11:22   좋아요 1 | URL
댓글 고맙습니다. ***님. ***님의 선물 인증 사진과 글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한 번도 뵙지 못한 사람에게 선물을 준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에요. 저와 ***님이 서로 알게 된지 얼마 안 된 시기라서 처음에 조금 당황한 건 사실입니다. ㅎㅎㅎ 그래도 ***님을 만난 이후부터 저 역시 절 따뜻하게 대해준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달해주고 싶었어요. 남을 위해 베푸는 마음도 전염되는 것 같습니다. 제가 또 경제적 여건이 되면, 선물 드리고 싶습니다. ^^

2017-03-17 11: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3-17 12: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3-17 18:28   좋아요 1 | URL
***님은 제 마음을 잘 아십니다. 책을 다시 보게 되는 일이 분명히 옵니다. 그래서 제가 읽은 책을 선물받으면 도서관에서 가서 책 빌리는 일이 없어요.

제가 연애하고, 결혼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것보다 저는 ***님이 서재에 오랫동안 계셨으면 좋겠습니다. ^^

2017-03-17 18: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3-17 18:38   좋아요 0 | URL
책의 세계에 탈출하기가 힘듭니다.. ㅎㅎㅎ

***님도 주말 잘 보내세요. ^^

북프리쿠키 2017-03-17 13: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흐뭇한 글입니다.
정말 감명받은 책을 선물받으셨군요.
저도 이책 구입하고픈데
한나아렌트 누님땜시 담으로 ^^;

마르케스 찾기 2017-03-17 16:52   좋아요 1 | URL
북프리쿠키님,, 책까지는 아니어도,,
영화 정도는 예매해 드릴 수 있습니다ㅋㅋ
업무상 공짜표가,, 꽤 생기는지라,, 보고픈 영화가 있으시면(이왕이면 평일-공짜표의 특성상 평일이ㅠ 2D뿐아니라 3D까지 됩니다ㅋ)
가까운 CGV에 보고픈 영화가 있으시면 말씀해 주셔요. 제가 예매한 후 예매번호 알려드리면 그 번호로 티켓팅하시면 됩니다.
늘 감사해서,, 드릴 수 있는 게 이런 거 뿐이네요ㅠ

cyrus 2017-03-17 18:30   좋아요 0 | URL
올해 안에 북프리쿠키님께 책 선물 드리는 날이 반드시 옵니다. 제가 먼저 한 약속은 꼭 지킵니다. ^^

2017-03-17 15: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3-17 18:32   좋아요 0 | URL
저는 받는 책 선물의 가격은 따지지 않습니다. 그냥 주는대로 받습니다. ㅎㅎㅎ

다음부터는 한 번 읽은 책도 받겠습니다. ^^

구름물고기 2017-03-17 15: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책을 나눈다는거 참 좋은일이에요~주변에 책선물을 할 때 저는 평소에 말하는거나 글들을 읽고 어울리는걸 해주는데 ㅎ 가격따윈 술 한번 거르는걸로 ㅋ 주변에 책 읽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건 함정 ㅋ

cyrus 2017-03-17 18:35   좋아요 1 | URL
책 선물하기가 주저하는 이유 중 하나가 상대방의 취향에 맞는 책을 고르는 일이 쉽지 않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저는 상대방에게 어떤 책을 받고 싶은지 먼저 여쭤봅니다. 그러면 양자 모두가 만족스럽습니다. 책 안 읽는 사람에게 책 선물 주는 일이 제일 까다롭습니다.. ^^;;

비연 2017-03-17 16:3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제 하도 제가 책을 계속 주문하니까 집에 계시는 어머니가 택배 직원들 만나기가 부담스러워하셨어요. .. 이 대목에서 저희 집과 오버랩이. 저희 어머니.. 택배 직원이 이젠 그냥 스윽 주고 가버린다. 얼마나 왔으면... 해서 저도 조금 부담스러운 상황이거든요. ㅜ

cyrus 2017-03-17 18:37   좋아요 2 | URL
저희 어머니가 책 보관할 공간이 없는 현실을 잘 알고 계셔서 주문할 때마다 잔소리합니다.. ㅎㅎㅎ

그래서 몰래 책을 주문하고 싶은데, 가장 좋은 방법이 편의점 택배인 것 같습니다. ^^

AgalmA 2017-03-20 17: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이런 알흠다운 일이^^
저는 특히 신간일 때 대문짝으로 걸리는 ‘알라디너의 선택‘으로 글이 걸리기 싫을 땐 책을 안 끼워 넣고 시간이 지나 나중에 살짝 추가하기도 합니다ㅎ;

책선물 받을 땐 좋은데 보답결벽증 때문에 저는 항시 동등한 가격대로 돌려드리고자 노력합니다ㅎ; 이게 좀 피곤하게도 느껴져서 사양할 때도 많은데 마음을 담아 보내주시려는 걸 사양하긴 어렵죠^^; 차라리 받고 선물로 돌려 드리는 게 서로 더 좋지 않겠나 싶어서^^
암튼 좋은 책 선물하는 문화 많을수록 좋죠^--^

cyrus 2017-03-21 12:01   좋아요 1 | URL
Agalma님의 생각이 저와 비슷하군요. 동질감 느끼는 분들을 만나면 기분이 좋습니다. ㅎㅎㅎ 저도 동등한 가격의 선물을 줘야한다고 생각합니다. 4만 원짜리 책 한 권으로 주기 힘들 것 같고, 대인배님께 4만 원 가격에 맞는 책 두 권을 줘야 할 것 같습니다.

대인배님! 이 댓글 보고 계시죠? ^^
 

 

 

 

 

 

 

 

 

 

 

 

 

 

 

 

 

 

 

 

 

 

 

 

 

* 오모리 후지노 《던전에서 만남을 추구하면 안 되는 걸까》

(소미미디어, 일본에서는 11권까지 발행, 국내는 10권까지 발행)

 

 

 

 

아이소라 만타의 라이트노벨 《기어와라! 냐루코 양》(약칭 ‘냐루코 양’)은 제1회 GA문고 대상 전기 장려상을 받은 작품이다. GA문고는 라이트 노벨을 전문적으로 출판하는 브랜드이다. 이 회사는 매년 전기와 후기로 나누어 장려상 입상 작품을 선정한다. 그리고 장려상 수상작 중에 우수상과 대상 작품을 선정한다. 수상 선정 절차가 좀 까다로워서 그런지 대상 작품이 잘 나오지 않는다. 최초로 GA문고 ‘대상’을 받은 라이트노벨 작품이 오모리 후지노의 《던전에서 만남을 추구하면 안 되는 걸까》(약칭 ‘던만추’)이다. 이 작품은 제4회 GA문고 대상 후기 장려상을 수상했고, 그 해 GA문고 대상의 영광까지 안았다.

 

 

 

 

 

 

 

《던만추》가 정식 발매된 해는 2013년이다. 라이트노벨이 발매된 후 엄청난 인기를 끌었고,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출판되었다. 《던만추》가 발매되고 있을 때, TV 애니메이션 《기어와라! 냐루코 양 W》이 방영되고 있었다. 두 작품이 ‘GA문고 수상작’이라서 애니메이션 중간에 《던만추》가 깨알같이 나오기도 한다. 그것도 두 번이나.

 

 

 

 

 

《던만추》의 TV 애니메이션도 유명한데, 인기몰이의 주역이 바로 《던만추》의 히로인 ‘헤스티아(Hestia)’다. 그녀의 복장은 남성 덕후들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그녀의 가슴 아래에 파란 리본 끈 장식이 있다. ‘가슴 끈 디자인’은 헤스티아의 특정 신체 부위를 부각해주는 효과가 있다. 인터넷 검색 창에 ‘헤스티아’를 검색하면 대부분 《던만추》의 헤스티아 사진이 나온다. 헤스티아의 복장이 궁금하면 직접 확인해보시길.

 

헤스티아는 고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화로(火爐)의 여신이다. 로마 신화에서는 ‘베스타(Vesta)’로 알려져 있다. 그리스 신화에는 가장 유명한 여성들이 즐비하다. 올림포스(Olympos) 12신 중에는 헤라(Hera), 아프로디테(Aphrodite), 아테나(Athena), 아르테미스(Artemis), 데메테르(Demeter)가 있다. 신들과 연관된 여성들이 더 많다. 프시케(Psychē), 이오(Io), 메데이아(Medea), 아라크네(Arachne), 헬레네(Helene) 등이 있다.

 

그런데 헤스티아가 누군지 모르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필자도 모르고 있었다. 왜냐하면 헤스티아는 그리스 신화에서 가장 존재감이 없는 여신이다. 신들을 위한 무기를 잘 만드는 재능 빼곤 특별히 존재감 없는 대장장이의 신 헤파이스토스(Hephaistus)보다 비중이 없다.

 

 

 

 

 

 

 

 

 

 

 

 

 

 

 

 

 

* 아폴로도로스 《원전으로 읽는 그리스 신화》 (도서출판 숲, 2004)

 

 

 

그리스 신화를 집대성한 아폴로도로스의 《비블리오테케(Bibliotheke)》에 보면 헤스티아는 딱 한 번 언급될 뿐이다. 그녀는 크노로스(Cronus)와 레아(Rhea)가 낳은 3남 3녀 중 가장 먼저 태어난 장녀이다. 그 다음으로 태어난 자식들이 데메테르, 헤라, 플루톤(Pluton), 포세이돈(Poseidon) 순이다.

 

크로노스는 데려온 형제들을 묶어 다시 타르타로스[1]에 가두고 누이인 레아와 결혼을 했다. 그리고 자식들이 태어나는 대로 모두 삼켜버렸다. 자식들에 의해 권좌에서 축출될 것이라고 게[2]와 우라노스[3]가 예언을 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는 맏이인 헤스티아를, 그 다음에는 데메테르와 헤라를, 이어서 플루톤과 포세이돈을 삼켰다. (《원전으로 읽는 그리스 신화》 20쪽)

 

[1] 지하에 있는 세계

[2] 대지의 여신 가이아(Gaia)

[3] 하늘의 신, 게의 남편이자 크로노스의 아버지

 

크로노스는 자식들이 자신의 생명을 위협할까 봐 두려워하여 자식들을 집어 삼킨다. 막내아들 제우스(Zeus)만 살아남게 되는데, 성인이 된 그가 크로노스의 뱃속에 있는 신들을 구해낸다. 크로노스가 자식들을 토해냈을 때 마지막에 나온 신이 헤스티아다. 그래서 그녀는 먼저 태어났음에도, 크로노스의 뱃속에서 마지막으로 부활하는 바람에 막내가 되었다.

 

 

 

 

 

 

 

 

 

 

 

 

 

 

 

 

 

* 낸시 헤더웨이 《세계 신화 사전》 (세종서적, 2004)

 

 

《세계 신화 사전》의 저자 낸시 헤서웨이가 헤스티아를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는데, 헤스티아의 특징을 아주 잘 표현했다.

 

온화하고 수줍은 헤스티아는 별다른 관심을 불러일으키지 않는 올림포스 신이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헤스티아에 관한 이렇다 할 이야기가 없기 때문이다. (《세계 신화 사전》 253~254쪽)

 

헤서웨이의 말이 사실이다! 그리스 신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보게 되면, 헤스티아가 주연급으로 나오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다. 이름은 남아 있을 뿐, 등장 장면이 단 한 개도 없는 '아웃 오브 안중', ‘투명 여신’인 셈이다.

 

 

 

 

무엇보다도 안습한 건, 헤스티아가 원래 올림포스 12신에 속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드물다는 점이다. 헤스티아도 크로노스의 장녀이기 때문에 올림포스 12신으로 대우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제우스는 자기 아들인 풍요의 신 디오니소스(Dionysos)를 올림포스 12신 자격을 부여해주고 싶었다. 마음씨 착하고, 다툼을 싫어하는 헤스티아는 스스로 12신 자격을 포기, 디오니소스에게 양보한다. 이렇게 되면서 헤스티아의 존재감은 확 줄어들게 된다.

 

헤스티아는 신들의 구애를 거부할 정도로 순결을 영원히 지킨다. 그녀를 숭상하는 무녀들도 평생 순결을 지키면서 살아야 한다. 만약 이를 어기면, 가혹한 형벌을 받는다. 그리스 신화의 헤스티아와 《던만추》의 헤스티아의 성격을 비교해보면, 약간 비슷하면서도 뚜렷한 차이점이 드러난다. 신화의 헤스티아는 조용한 성격이라서 올림포스에서 일어나는 신들의 분쟁에 나서지 않는다. ‘중립’이 아닌 무관심에 가까운 태도이다. 《던만추》의 헤스티아도 여신임에도 신계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심 없고, 늘 혼자 집에 틀어박혀 지낸다. 그러다가 우연히 벨 크라넬(Bell Cranell)이라는 인간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헤스티아는 초보 모험가인 벨을 자신의 파밀리아(familiar) 첫 일원으로 받아들인다. 헤스티아는 자신의 체면을 버리면서까지 벨에 도움을 주기 위해 노력한다. 《던만추》의 헤스티아는 사랑하는 인간을 위해 헌신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평생 순결을 지켜야 하는 신화의 헤스티아와 정반대의 모습이다.

 

 

 

 

 

 

 

 

 

 

 

 

 

 

 

 

 

 

 

* 오비디우스 《원전으로 읽는 변신 이야기》 (도서출판 숲, 2005)

* 오비디우스 《변신 이야기 2》 (민음사, 1998)

 

 

 

고대 그리스인들은 헤스티아에 관심 없었지만, 로마인들은 그녀를 ‘베스타’라고 부르면서 국가와 가정의 수호신으로 숭배했다. 로마에 그녀를 위한 축제도 열렸다. 그녀를 모시는 신전의 제단에는 화로가 놓여있고, 그 위에 불이 타올랐다. 화로 위의 불이 꺼지면 로마를 위협하는 무시무시한 재앙이 온다는 신호로 여겼다. 그래서 베스타의 무녀(巫女)들은 화로의 불이 꺼지지 않도록 잘 살펴야 했다. 오비디우스《변신 이야기》율리우스 카이사르(Caesar)를 베스타로부터 보호받는 위대한 인물로 묘사했다. 그 정도로 로마에서의 헤스티아, 아니 베스타의 존재감은 대단했다.

 

그리스 신화는 남성 위주의, 남성의 시각으로 그려진 이야기다. 남성은 ‘사랑과 전쟁’이 있는 이야기를 선호한다. 오만방자한 신들 때문에 인간이나 영웅이 엄청 고생하는 이야기가 신화 중에 제일 기억이 남고, 가장 유명하다. 그래서 싸움을 싫어하는 헤스티아는 비중이 없는 여신으로 그려질 수밖에 없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헤스티아에게 특별한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그녀는 헤라, 아프로디테, 아테나, 아르테미스에 비하면 훌륭한 덕성을 가진 여신이다. 그렇지만 남자들은 착한 여신보다는 ‘남자를 고생시키는 나쁜 여신’들을 좋아했다. 특히 아프로디테는 남자들이 욕하면서도 계속 보게 되는 ‘팜 파탈(femme fatale)’의 매력을 가지고 있다. 남자들은 아프로디테의 바람기를 싫어해도 그녀의 뛰어난 아름다움을 칭송했다. 그녀의 벌거벗은 몸은 남성 예술가들이 선호하는 인기 주제였다. 이렇게 아프로디테에 관련된 신화는 오랫동안 널리 구전되었고, 오늘날까지 그녀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헤스티아보다 제일 불쌍한 존재가 베스타의 무녀들이다. 그녀들은 연애는 물론, 결혼을 할 수 없었다. 처녀성을 잃으면 채찍질 또는 생매장당하는 형벌을 받았다. 뭐든지 잘못 하면 무녀들의 책임으로 전가했다. 순결을 잃어버리면 ‘정결하지 못한 여성’으로 비난받았고, 가해자의 책임보다는 피해자의 책임을 더 따지는 불합리한 상황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시대가 바뀌어 아프로디테가 ‘사랑스럽지만, 음란한 비너스(Venus)’로, 헤스티아가 ‘순결을 지키는 위대한 베스타’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자신의 여자에게는 순결을 요구하면서 다른 여자에 흑심을 품는 남자의 이중성이 투영되었기 때문이다. 육체의 쾌락을 인정하면서도, 여성의 순결을 고귀하게 여기는 남자의 이중성은 교활하다. 겉으론 자기가 개방적인 척하면서 속으론 처녀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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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02 16: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3-02 16:51   좋아요 0 | URL
맞는 말씀입니다. 인간은 생존 번식의 본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식이 자신을 뛰어넘는 걸 두려워합니다. 세상에는 뜨는 존재가 등장하면, 지는 존재가 있는 법입니다. 그런데 권력을 오래 누리고 싶을수록 상승 하락의 원리를 받아들이기 힘들어합니다. 문학 작품이나 역사에 보면 자식을 위협하거나 자식 간에 갈등을 빚는 아버지들이 나옵니다. ^^;;

2017-03-03 15: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3-03 15: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3-03 15: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3-03 16: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3-03 16: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3-03 16: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셀카를 찍는 사람은 내가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보일까’를 많이 의식한다. 자신이 타인이 되어 지금 내 모습에 대해 끊임없이 확인하고 이를 자랑한다. 즉 내가 이런 사람이라고 보여주고 싶은 자기 노출 욕구가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상대방이 남에게 잘 보이려고 의도적으로 셀카를 찍는 것을 싫어한다. 이를 ‘셀카 패러독스(The Selfie Paradox)’라고 한다. 자신의 셀카를 긍정적으로 생각하지만, 상대방의 셀카에는 무관심한 이중적인 심리 현상을 의미한다.[참고]

 

의도성이 분명하게 느껴지는 셀카일수록 상대방의 거부감이 높아진다. 자신을 남들에게 솔직하게 보여주려고 셀카를 찍어도 상대방은 그 셀카를 자기 과시용으로 생각한다. 그렇다면 셀카에 ‘좋아요’를 많이 받도록 유도하는 방법이 있을까. ‘셀카 패러독스’를 입증한 연구진들은 명백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사진을 올리는 것을 피하고, 누구에게나 웃음을 줄 수 있는 재미있는 사진을 올리라고 제안한다.

 

SNS나 블로그에 작성된 글도 ‘셀카 패러독스’의 영향을 피할 수 없다. 글의 주제와 의도에 상관없이 상대방은 자기 과시형 글에 거부감을 느낀다. 어쩌면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이 글 역시 누군가는 부정적으로 보고 있거나 아예 안 볼 수도 있다. 내 글은 ‘자기 노출형’ 셀카와 비슷하다. 책을 읽거나 어떤 사회 현상을 바라보면서 느낀 생각을 솔직하게 드러내어 상대방의 공감을 얻길 원한다. 나는 ‘자기 노출형’ 글을 좋아한다. 며칠 전에 모 알라디너 서재에서도 이런 댓글을 남겼다. “저는 지식을 멋있게 알려주거나 자랑하는 건 나쁘게 보지 않습니다."

 

 

그런데 내가 싫어하는 글은 ‘자기 방어형’이다. 자기방어는 상대방의 의견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태도다. 상대방이 자신에게 진실 된 비판 의견을 전달하면, 이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피드백(feedback)해야 한다. 그런데 자기 방어 성향이 강한 사람은 상대방의 피드백을 부담스러워 한다. 자신의 결점을 인정하지 않는다. 도리어 상대방의 의견이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 박진영 《눈치보는 나, 착각하는 너》 (시공사, 2013년)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싶은 사람들은 상대방이 자신에게 주목한다고 착각한다. 이를 ‘스포트라이트 효과(spotlight effect)’라고 한다. 셀카를 자주 찍는 사람도 ‘스포트라이트 효과’의 착각에 빠진다. “내가 찍은 셀카는 마음에 들어. 그런데 남이 찍은 셀카는 별로야, 보고 싶지 않아.” 자신이 만들어 낸 환상의 스포트라이트에 취하면 남이 뭘 하는지 관심이 없다. 솔직히 말하자면, 여기 알라딘 서재/북플에도 자신만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서 서재 활동을 하는 분들이 있다. 물론, 내 입장이 선입견에 가까울 수 있고, 비판받을 여지가 있다. 그렇지만, SNS 환경상 누구나 상대방을 만나고 관계를 맺는 과정에 크고 작은 선입견이 생기게 마련이다. 이 선입견에 괴로워하지 않으려면 관계에 대한 완벽주의를 버려야 한다.

 

 

 

 

 

 

 

 

 

 

 

 

 

 

 

 

* 박진영 《심리학 일주일》 (시공사, 2014년)

 

 

나도 ‘완벽한 관계’를 지나치게 믿어왔던 사람이었다. 여기 알라딘 서재를 만든 지 얼마 안 됐을 때 관계는 늘 항상 친밀하게 유지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상대방이 잘못해도 눈 감아 주었고, 친하게 지내는 알라디너의 글들을 다 읽으려고 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까 관계에 집착하는 일이 정신적으로 피곤하게 만드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또 상대방에 엄청 기대했다가 실망한 적도 있었다. 좋은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 내가 상대방에게 먼저 다가와서 물꼬를 트는 것도 좋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상대방을 제대로 이해하고 다가서야 한다. 나는 그동안 상대방이 누군지 살피지 않은 채 다가섰고, 상대방이 내 글을 볼 거로 착각했다. 그렇다 보니 진정 내가 무얼 좋아하는지 잊어버렸고, 그저 남이 좋아할 만한 내용의 글을 썼다.

 

 

 

 

 

 

 

 

 

 

 

 

 

 

 

 

 

* 톰 밴더빌트 《취향의 탄생》 (토네이도, 2016년)

 

 

예전에 《취향의 탄생》이라는 책의 리뷰 끝에 나는 자신의 취향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고 밝혔다. 자신의 취향을 모르거나 뚜렷하지 않으면 상대방의 취향에 맞춰 따라가게 된다. 무엇보다도 심각한 건 상대방이 자신의 취향을 선호하는지조차 모른다. 이런 사람은 내가 상대방의 취향을 이해해줬으니 분명 상대방도 내 취향을 이해할 거로 생각하며 ‘혼자만의 관계’를 유지하려고 애쓴다. 상대방의 스포트라이트에 멀찌감치 벗어난 상태에서 그 사람으로부터 인정을 갈망한다.

 

나는 여러 심리학 책 몇 권을 읽어봤지만, 관계를 오랫동안 친밀하게 유지하는 방법을 잘 모르겠다. 차라리 모르는 게 낫다. 더 알려고 하면, 관계에 더 집착한다. 내가 서재 활동을 하면서 얻은 결론은 이렇다. ‘확실히 내 취향과 맞지 않는 사람은 관계를 끊어야 한다. 억지로 관계에 매달리지 않아도 된다.’

 

요즘 들어 ‘친구 신청’하는 분들이 많이 줄어들었다.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나보다 재미있고, 좋은 글을 많이 쓰는 알라디너가 많이 보인다. 새로운 알라디너의 등장은 반갑다. 혹시나 내게 ‘친구 신청’하는 분들께 다시 한번 알린다. 나는 로쟈님과 후애님처럼 신간 도서를 전문적으로 소개하거나 일상적인 이야기를 매일 공개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리고 우왕님처럼 재미있는 사진만 올리는 사람도 아니다. 내가 읽고 싶은 책을 읽고, 그에 대한 감상을 기록할 뿐이다. 이 행위 자체를 즐기고 있다. 내 글이 딱딱하고, ‘자기 과시’가 드러난다고 해도 할 말이 없다. 틀린 말은 아니니까. 나도 내 글이 남들에게 인정받는 걸 좋아하며, 글이 잘못되면 고친다. 글을 짧게 쓰는 법이 없다. 그래서 북플로 보기가 불편하다. 스마트폰으로 내 글을 본다는 건 시력을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내 글을 보는 일이 부담스러우면 안 보면 되고, ‘친구 해제’를 해도 된다. 절대로 잘못된 일이 아니다.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이다. 여러분들의 취향이 존중되길 원하는 필자의 간곡한 부탁이다.

 

 

 

 

[참고] <“내 셀카는 좋지만, 남의 셀카는 싫어”… 이 심리는 뭐지?> 동아일보, 2017년 2월 2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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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24 12: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2-24 14:19   좋아요 3 | URL
제 생각과 비슷합니다. 하루에 이웃님들 글을 다 보면 적어도 10분은 걸립니다. 정독은 못 해도 어떤 내용인지 이해하려고 합니다. 이렇게 한 달동안 보면 이웃님이 무슨 책을 좋아하는지는 알 수 있어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합니다. 자주 보는 분들 의 글을 보는 게 효율적입니다. 그래도 관계가 소원하거나 애매하다 싶으면 포기해야 합니다.

지금행복하자 2017-02-24 13:0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주로 북플로 보는데. . 별로 불편함 없이 보고 있습니다~^^

cyrus 2017-02-24 14:21   좋아요 1 | URL
말씀이라도 정말 고맙습니다. 제가 서재 활동 초창기에 비하면 글의 분량이 줄어든 겁니다. ^^;;

곰곰생각하는발 2017-02-24 13:5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전 셀카가 취향이라서... -_- ;

cyrus 2017-02-24 14:23   좋아요 1 | URL
곰발님의 취향을 존중합니다. 솔직히 발님은 다른 셀카족에 비하면 양호합니다. 셀카 사진을 많이 올리는 편은 아니고, 과시하려는 느낌이 나지 않아요. 어제 올린 셀카는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

북프리쿠키 2017-02-24 14: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곰발님 볼에 풍선넣고 귀엽게 함 찍어주세요.^^;
웃는 표정으로다가 한번~

cyrus 2017-02-24 14:26   좋아요 1 | URL
곰발님의 셀카는 시크한 표정을 지을 때가 멋있습니다. ^^

2017-02-24 14: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2-24 17:04   좋아요 2 | URL
저처럼 글을 길게 쓰는 분들이 많이 없어서 비교적 짧은 글은 훑어 읽거나 그냥 넘깁니다. 특별히 관심 있는 글이라면 정독을 하는 편이고, 제가 생소하게 느끼는 주제의 글은 훑어 읽습니다.

사실 정독해도 글을 제대로 이해 못하는 경우가 있어요. 저도 글의 주제와 상관없는 엉뚱한 내용의 댓글을 달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은 글을 작성한 분 입장에서는 기분 나쁠 수 있습니다. 이웃님의 글을 잘못 이해했으면 솔직하게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야 서로 얼굴 붉히는 일이 안 생겨요.

앤의다락방 2017-02-24 16: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감되는 글이네요^.^ 전 셀카 찍는 것을 즐기지않아요(사진빨이 안받는다 해두죠.ㅋ)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하루라도 젊을 때 모습을 담아두는게 좋겠단 생각을 하게 되네요.ㅋ 그렇지만 용기가 나질 않아요. ㅋㅋ

cyrus 2017-02-24 17:06   좋아요 0 | URL
저도 사진에 찍히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셀카를 찍으려고 해도 너무 어색하게 보여서 찍을 마음이 없습니다. 그래도 앤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젊은 모습을 담은 사진을 찍어두면 좋다고 생각해요. ^^

hellas 2017-02-24 16: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감되는 글이네요. :)

cyrus 2017-02-24 17:06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

2017-02-26 09: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2-28 17:09   좋아요 0 | URL
죄송합니다. ***님의 댓글을 이제야 확인했어요. ***님은 저보다 오래 서재 생활을 하셨고, 오랜 세월동안 서재 생활을 할 수 있는 비결이 새로운 분들과 잘 어울리는 포용력입니다. 이 알라딘 서재에 넓은 포용력을 지니는 분이 많지 않죠. 저도 그런 회원이 되는 게 꿈이었는데, 지금은 그냥 제 글을 보는 분이 적어도 열 분이 있는 것만으로 감사히 생각하면서 지내고 싶습니다. ^^

kim44820 2017-03-05 1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알라딘 메일타고 들어와보았습니다. 글이 찰(?)지네요^^

cyrus 2017-03-06 12:01   좋아요 0 | URL
그렇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

해피클라라 2017-03-15 1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감사해요 >_< 넘넘 공감가더라구요~
좋은 책들 소개도 감사해요 ^^
소개해주신 책들 챙겨봐야겠네요~

cyrus 2017-03-15 17:02   좋아요 0 | URL
제 글이 상대방을 자극하고, 지적하는, 그런 재수 없는 느낌이 들어서 이런 글을 쓰고 나면 마음이 편치 않아요. 비판을 받아들이려고 하지만, 솔직히 겁이 납니다. 그래도 제 글을 좋게 보는 분들이 계셔서 마음이 편합니다. 제 글을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 성민수 《프로레슬링 : 흥행과 명승부의 역사》 (살림, 2005년)

* 아리스토텔레스 《시학》 (문예출판사, 2002년)

 

 

프로레슬링을 좋아한 지 십여 년이나 지났다. 중학생 때 친구의 권유로 케이블 채널에 중계한 WWE 경기를 보면서 레슬링에 ‘입덕’하기 시작했다. WWE 관련 소식을 전하는 국내 프로레슬링 전문 매체가 여러 개 있는데, 하루를 거르지 않고 꼭 챙겨본다. 관심 있는 레슬링 선수들이 무슨 경기를 했는지 확인하고, 경기 장면을 담은 동영상을 시청한다.

 

각설하고, 지난주 네이버 메인에 잠시나마 오른 레슬링 관련 뉴스 하나를 소개해본다. 뉴스의 주인공은 멕시코에서 레슬러로 활동 중인 미국 출신의 샘 폴린스키(Sam Polinsky)다. 나는 인디 단체 레슬링도 좋아하는 레슬링 덕후 수준이 아니라서 처음에 이 선수가 누군지 몰랐다. 샘 폴린스키는 본명이고, 링네임(ring name)은 샘 아도니스(Sam Adonis)다.

 

 

 

 

 

이 선수가 화제가 된 이유는 링에 입장하면서 상당히 ‘위험한 행동’을 하기 때문이다. 샘은 트럼프 대통령의 얼굴이 있는 성조기를 들고 오면서 관중이 보는 앞에서 ‘트럼프 지지자’라고 말한다. 앞서 언급했지만, 샘은 미국인이고, 멕시코 관중들이 보는 앞에서 경기를 뛴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과 트럼프의 국경장벽 공약 때문에 멕시코와 미국 간의 사이가 비틀어지는 중이다. 샘이 트럼프를 찬양할 때 멕시코 관중들은 온갖 야유와 욕설을 퍼붓는다. 이곳에서 샘은 멕시코 관중들이 싫어하는 ‘악당’ 같은 존재다. 그를 혼내주기 위해 멕시코 레슬러가 등장하고, 관중들의 열화 같은 응원에 힘입은 멕시코 레슬러는 미국인 악당을 무찌른다.

 

 

레슬링 경기를 안 보는 사람들도 다 안다는 명언이 있다. ‘레슬링은 쇼(show)다!’ 이 말 한마디로 WWE를 포함한 모든 전 세계 프로레슬링은 순수 스포츠 종목이 아닌 ‘가짜’라고 믿는 사람이 생겼다. 레슬링 경기가 어떻게 진행되고, 어느 선수가 이기는지 다 정해져 있으며 심지어 선수들끼리 대화를 나누는 것 또한 정교하게 짜인 각본의 일부이다. 그러나 선수들이 경기가 끝날 때까지 링 위에 구르고, 뛰고, 땀 흘리는 과정들은 ‘100% 가짜’가 아니다. 선수들이 링 위에 움직이는 모든 동작은 피나는 훈련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한 경기 다 뛰고 나온 선수들은 온몸에 몰려오는 통증에 시달린다.

 

레슬링 선수들이 관중 앞에서 자신의 이름을 알리려면 ‘기믹(gimmick)’을 갖춰야 한다. 기믹이란 선수가 연기하는 캐릭터이다. 쉽게 말해서 드라마의 배역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기믹은 기본적으로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관중들에게 환호받는 선역 기믹, 반대로 반칙을 일삼으며 나쁜 짓만 골라서 하는 악역 기믹이다. 샘 폴린스키는 악역 기믹 선수이다. 그가 트럼프를 찬양하고, 미국을 싫어하는 멕시코 관중들을 비난하는 행동은 실제 본 모습이 아니다. 그는 ‘트럼프를 지지하는 미국인’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을 뿐이다. 악역을 맡은 선수들은 심하면 입에 담지 못할 욕설까지 듣지만, 관중들의 관심을 얻은 것에 만족한다. 악역인데도 관중들의 반응이 썰렁하거나 반대로 환호를 보내면 그 선수의 기믹은 실패한 것이다.

 

여전히 ‘레슬링은 쇼’라고 믿는 일부 사람들은 각본대로 진행되는 레슬링을 무슨 재미로 보냐고 핀잔준다. 당연히 그들이 기믹에 맞게 연기하고, 링 위에 뛰는 모습 하나하나가 재미있어서 보는 거다. 레슬링 경기를 시청하는 것은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것과 닮았다. 드라마 시청자들은 드라마 속 악인이 착한 주인공을 괴롭히면 분노를 드러내고, 반대로 악인이 궁지에 몰리는 ‘사이다 전개’를 보면서 통쾌감을 느낀다. 드라마 줄거리 전개 방향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시청자의 감정 상태를 ‘카타르시스(Katharsis)’를 느낀다고 말한다. 카타르시스, 즉 배설은 쾌락을 가져다주며 눈물도 그중 하나라고 정의한 사람은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다. 그는 《시학》에서 비극은 관객들로 하여금 숭고한 인물이 불행해지는 과정을 보면서 눈물이라는 카타르시스를 통해 정서의 순화작용을 일으키게 한다고 설명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억눌려 있지만, 인간의 감정을 비극의 힘을 빌려 자연스레 분출하도록 함으로써 사회적인 윤리를 유지해 나가는 하나의 방편으로 비극을 생각했다. 오늘날의 영화나 드라마는 비극의 역할을 대신 해주고 있다. 드라마에 볼 법한 요소가 들어간 프로레슬링도 마찬가지다. 미국 최대 레슬링 단체인 WWE의 약자가 ‘World Wrestling Entertainment’이다. WWE는 프로레슬링에 ‘오락’을 부여했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관중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독특한 개성의 선수들이 링 위에 등장했다. 레슬링 관중들은 그 선수들을 응원하거나 야유를 보내면서 가슴 속에 쌓인 응어리를 한 번에 푼다.

 

 

 

 

WWE에서 악당으로 인정받는 선수들 대부분은 관중이 싫어할 만한 언행을 하며 자기중심적인 성격이다. 예를 들면 ‘밀리언 달러맨(The Million Dollar Man)’으로 잘 알려진 테드 디바이시(Ted DiBiase)는 ‘재수 없는 갑부’ 기믹으로 80년대 최고의 악역 선수로 자리 잡았다.

 

 

 

 

 

WWE는 수익을 올리기 위해서라면 ‘애국심’도 마케팅 수단으로 사용한다. 걸프 전쟁이 한창이던 90년대 초에 서전 슬로터(Sgt. Slaughter)는 미국을 배신하고 이라크 편에 선 반미주의자로 등장하여 ‘무적 선역’으로 전성기를 구가하던 헐크 호건(Hulk Hogan)과 메인이벤트 경기를 가졌다. 두 선수들은 8, 90년대에 활동한 최고의 악역으로 자리매김했지만, 선역 선수를 만날 때면 무기력하게 패배당했다. 이 장면에서 관중들에게 주는 카타르시스는 배가 된다. 특정 선수 간의 대립을 통해 최후의 승자가 가려지는 이야기 전개는 매번 똑같아 보이지만, 결국 그런 과정이 관중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제공해주기 때문에 WWE 프로레슬링이 인기를 얻는다.

 

카타르시스가 느끼지 않는 것도 문제지만, 카타르시스를 억지로 만드는 것은 이야기 몰입을 방해하는 독이 된다. 갈수록 답답한 전개로 이어지는 ‘고구마 드라마’처럼 요즘 WWE를 보면 관중들이 공감할 수 없을 정도로 선수 간의 대립이 ‘고구마’ 전개로 이어지기도 한다. 사실 ‘선역’과 ‘악역’이 명확히 구분되어 양 선수가 갈등을 빚는 설정은 식상하다. 오죽하면 관중들은 선역 선수에게도 심한 야유를 보낸다. 월드 챔피언을 지낸 존 시나(John Cena)와 로만 레인즈(Roman Reigns)는 WWE를 대표하는 최고의 선수인데도 관중들의 야유와 욕설이 많이 나온다. 이 상황은 마치 답답한 행보를 펼치는 드라마 속 선역 주인공을 싫어하는 시청자들의 반응(MBC 주말 드라마 ‘내 딸, 금사월’)과 동일한 맥락이다. 분노를 표출하여 정서를 순화시키는 카타르시스의 효과가 모든 사람에게 전부 적용되는 건 아니다. 카타르시스가 긍정적으로 작용하려면 작가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덧붙인 이야기를 만들지 말고, 그 이야기를 보게 될 사람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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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22 20: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2-23 17:29   좋아요 1 | URL
김일, 당연히 알죠. 역도산, 안토니오 이노키도 알아요. ‘프로레슬링은 쇼다’ 발언 이후로 국내 레슬링 산업이 한순간에 폭망한 건 아니었지만, 프로레슬링을 진짜 스포츠 종목으로 여겼던 팬들 입장에서는 충격적인 발언이었죠. 프로레슬링을 스포츠로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이 발언을 근거로 내세웁니다.

겨울호랑이 2017-02-22 22: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개인적으로는 헐크호건과 워리어, 마초맨이 있었던 90년대 WWF때가 기억이 나네요 ㅋㅋ 교실에서 책상 밀고 친구들과 로얄럼블 재연했던 리즈시절이 그리워집니다. ㅋㅋ

cyrus 2017-02-23 17:33   좋아요 1 | URL
겨울호랑이님 학창 시절에도 교실에서 레슬링하는 친구들이 있었군요. 저도 중딩 때 애들이랑 레슬러 흉내 내면서 놀았어요. 그땐 더 락과 스티븐 오스틴, 트리플 H를 선호하고, 따라하는 친구들이 많았어요. ^^

transient-guest 2017-02-23 04: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미국레슬링은 80-90년대 말, 그리고 2000년대 초반까지가 좋았죠. 그래도 91년 레슬메니아 기믹은 욕 많이 먹었습니다, 전쟁을 이용한 돈벌이라고; 사람들의 정신이 좀더 살아있던 시절이죠.. 2000년대 중반 이후로 WWE가 단체를 통합한 다음에는 완전이 entertainment노선으로 가면서 재미가 떨어졌어요. 같은 ‘쇼‘라도 연기하는 사람까지 이를 ‘쇼‘로 취급한다는 느낌이 나면서 combat개념이 너무 떨엉지더라구요. 요즘은 미국레슬링은 거의 안 보고, 가끔 유투브으로 예전 전일본이나 신일본 걸 봅니다. 좀 살벌하게 치고받는, 종합격투기 이전 사실상 종합격투기를 표방하던 시절이 그립네요.ㅎㅎ 미국의 MMA는 BJJ와 tough guy 대회 같은데서 발전했다면 일본의 MMA는 사실 프로레슬링과 레슬러들이 원조니까요.ㅎㅎ 간만에 추억이 쏠쏠 돋네요.

cyrus 2017-02-23 17:44   좋아요 0 | URL
t-guest님이 저보다 ‘레잘알’이시군요. 전일본, 신일본 경기를 보는 분을 여기서 만날 줄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ㅎㅎㅎ

서전 슬로터가 반미주의자 기믹으로 활동했을 때 살해 협박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반미주의자 기믹을 포기했고, WWF에서의 선수 경력이 많지 않아요.

지금도 WWE가 선수들과 관련된 굿즈 상품과 페이퍼 뷰로 수익을 얻고 있다지만, 8, 90년대 WWE를 보는 관중과 지금의 관중의 시선을 비교하면 많이 달라졌어요. 지금 관중들은 이제 여전히 오락 위주의 WWE를 지루하게 느끼고, 존 시나나 로만 레인즈 같은 선역 선수들을 싫어하게 됩니다. WWE는 경기력 있는 선수보다는 상품성 있는 선수들을 밀어주죠.

캐모마일 2017-02-23 07: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재밌게 읽고 갑니다. 예전에 세상의 이런 일이 프로그램에 아주머니 한 분이 주인공으로 나오셨는데, 우연히 본 레슬링에 심취하신 경우였어요. 제작진이 왜 레슬링이 그렇게 재밌으시냐 여쭤보니까, 거기에도 선역과 악역이 있고 드라마가 있다시면서 선수 이름과 줄거리를 막힘 없이 이야기 하셔서 말 그대로 세상의 이런 일이구나 ㅎㅎㅎㅎ 하고 놀랬습니다. 기믹과 카타르시스로 설명해 주시니 이해가 갑니다. 주인공 아주머니는 평소 식당일 열심히 하셨지만 마음 한켠에 무료함과 공허함이 있던 와중에, 레슬링 프로그램을 시청하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끼셨네요.

캐모마일 2017-02-23 07:39   좋아요 0 | URL
오래 전 본 영화라 가물가물하지만 김지운 감독 연출 송강호 씨 주연의 영화 반칙왕이 떠오르네요. 극중에서 주인공 임대호가 상사과 실적이 치이는 소심한 샐러리맨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상사가 심심하면 헤드락을 거는 통에, 무언가 탈출구와 도전이 필요했던 임대호가 레슬링을 혹독하게 배워서 복면을 쓰고 레슬링 무대에 섰었나 했어요...종반부에 악역 기믹을 맡은 임대호가 주인공 기믹에게 지는 설정이었는데, 샐러리맨의 비애와 분노가 순간 밀려오면서 각본 없는 레슬링이 펼쳐지는 줄거리였습니다. 어렸을 적엔 웃음과 재미, 감동으로 봤지만 지금 보면 애환과 카타르시스가 느껴질 거 같아요. 고 장진영 씨도 그립네요.

cyrus 2017-02-23 17:50   좋아요 1 | URL
‘안녕하세요’에서도 WWE 중계를 보는 할머니가 고민거리로 출연한 적이 있어요. 그분도 레슬링을 보면서 공허한 마음을 풀 수 있어서 좋다고 말씀하셨어요. 프로레슬링을 자주 보면 사람 성격이 폭력적으로 변한다고 하던데, 그런 경우는 소수에 불과합니다. 저는 비폭력주의자입니다. ㅎㅎㅎ

<반칙왕>을 제대로 본 적이 없어요. 이 영화가 나왔을 때 제가 초딩이었는데, 그땐 제가 레슬링에 전혀 관심이 없었던 시절이었어요. 이제는 오래된 영화라 케이블 채널에서도 보기 힘들어졌어요. ^^;;

2017-02-23 18: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2-23 18: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요즘 ‘탕진잼’이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무슨 뜻이냐면 ‘소소하게 낭비하는 재미’를 말합니다. ‘탕진잼’은 경기 불황 속에 적은 가격으로 물건을 왕창 사는 소비 형태를 반어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해도 소소한 사치를 누리고 싶은 젊은 층들이 많습니다. 저 역시 그런 연령층에 속합니다. 저 같은 경우는 생활이 팍팍해도 책을 삽니다. 도서정가제 도입 이후부터 신간 도서 구매 횟수가 줄어들고, 중고서점이나 헌책방을 찾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중고서점과 헌책방은 적은 금액으로도 읽을 만한 책들을 최대한 많이 살 수 있는 이점이 있습니다.

 

중고서점의 유혹을 뿌리치기가 정말 쉽지 않습니다. 중고서점에 읽고 싶은데 구하기 힘든 책이 보이면 안 살 수가 없거든요. 이런 책들은 대부분 절판된 상태인데요, 출간연도가 오래된 것은 도서관에서도 볼 수가 없어요. 매달 도서관에 새 책이 들어오면, 오래된 책은 창고 같은 서고에 따로 보관됩니다. 그 책을 보려면 사서에게 얘기해야 합니다. 오래 걸리는 일은 아니지만, 저처럼 오래된 책을 읽고 싶은 독자 입장에서는 사서에게 매번 부탁하는 일이 껄끄럽습니다.

 

중고서점에 책을 살 때 예외가 있습니다. 정말 읽고 싶은 책이 아주 저렴한 가격에 판매되고 있는 경우입니다. 그냥 지나칠 수 없습니다. 저렴한 가격의 절판본과 저렴한 가격의 일반 책 중에 하나를 골라야 하는 상황이 찾아옵니다. 이때 고민이 많아집니다. 일반 책은 갑자기 절판되지 않는 이상, 다음에 사도 됩니다. 그런데 그 날이 언제 올지 몰라요. 절판본을 저렴한 가격으로 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면 두고두고 후회합니다. 그야말로 운이 좋아야 합니다.

 

 

 

 

 

어제 퇴근하자마자 대구 상인점 중고서점을 찾았습니다. 그 이유가 그 매장에서 파는 책 한 권 때문이었습니다. 최근에 동생을 위해서 《작은 아씨들》 1, 2권을 샀습니다. 그 후에 중고서점을 검색했는데, 마침 중원문화 출판사에서 나온 《작은 아씨들》 3부가 서점에 있는 걸 확인했습니다. 책 상태는 ‘최상’이었고, 중고가가 착했습니다.

 

어제까지 제 계정에 있는 총 적립금이 3,500원 정도 있었습니다. 제가 사고 싶은 책과 동생 보고 싶은 책을 사는 데 쓰면서 남은 금액입니다. 이 가격으로 3,700원의 책을 사기에는 200원이 모자랍니다. 매일 알라딘 어플에 접속하면 받을 수 있는 1,000원 적립금이 있습니다. 그 적립금을 받으면 24시간 이내에 사용해야 합니다. 저는 그 적립금 덕분에 《작은 아씨들》 3부를 구매할 수 있었습니다. 4부를 제외한 《작은 아씨들》 시리즈를 모으는 데 성공했습니다. 동생이 3부까지 다 읽을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읽으면 그만이니 적립금을 다 쓰는 것에 아깝지 않았습니다. 네, 이런 게 바로 ‘탕진잼’의 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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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18 15: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2-18 16:52   좋아요 0 | URL
이제 제 나이 서른인데, 서른 이후 십 년은 제가 책을 많이 읽을 수 있는 마지막 시기라고 생각해요. 이제는 정말 샀던 책들을 열심히 읽어야 합니다. ^^;;

우민(愚民)ngs01 2017-02-18 15: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현명하십니다....^^

cyrus 2017-02-18 16:53   좋아요 0 | URL
현명하다기 보다는 그냥 운이 좋았습니다. 적립금이 조금 남아 있어서 다행입니다. ^^;;

겨울호랑이 2017-02-18 16: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그야말로 첩보전을 방불케 하네요 ㅋㅋ 그리고, 저도 중고서점에서는 한없이 너그러워진다고 아내에게 한소리 듣고 있는 편이라 더욱 공감이 갑니다^^:

cyrus 2017-02-18 16:55   좋아요 1 | URL
어머니가 택배 받는 것을 싫어하셔서 온라인 주문이나 서평단 신청을 안 하고 있어요. 안 그래도 책장에 빈자리가 부족해서 보관할 공간이 부족합니다. 그래도 야금야금 사고 싶은 책을 사고 있습니다. ^^;;

붕붕툐툐 2017-02-18 1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 때 책모으는 재미에 푹 빠진 적이 있는데, 아주 어렵게 세트를 다 완성했을 때의 뿌듯함이 떠오르네요~^^

cyrus 2017-02-18 20:00   좋아요 0 | URL
맞아요. 진짜 그 감정이 생길 때가 책 엄청 좋아하는 사람들이 제일 행복해하는 순간입니다. ^^

레삭매냐 2017-02-18 21: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중고서점의 매력은 역시 단가와 희귀성이 아닐까요.
탕진잼의 유희에 빠진 이들은 굳이 당장 사지 않아도
될 책을 갖은 이유를 붙여서 사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저도 그 중 하나겠죠 :>

어제 프랑크 디쾨터의 <해방의 비극>이 인근 램프의
요정에 나와 있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고 바로 달려가
서 사왔습니다. 부근에 저랑 독서취향이 비슷한 분이
계신지 거의 시간차 싸움이거든요. 먼저 사는 사람이
임자다.

최근 중국 당대소설들일 섭렵 중인데, 현대 중국의
모태가 되는 공산혁명 그리고 문화대혁명을 본격적
으로 다룬 책이라 그런지 진도가 짝짝 나가는 중입니다.

cyrus 2017-02-19 08:57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중고서점에서 원하는 책을 사는 일이 타이밍 싸움입니다. 운이 좋으면 득템할 수 있어요. 정말 간발의 차이로 책을 산 일이 있었어요. 제가 원하는 책을 먼저 집어들고, 검색대에 가서 다른 책 제목을 검색했어요. 그때 검색창에 다른 손님이 제가 득템한 책 제목을 검색했더군요. 정말 아찔했습니다. ㅎㅎㅎ

지금행복하자 2017-02-18 2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도 탕진잼을 하게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어요 -.-

cyrus 2017-02-19 08:58   좋아요 0 | URL
신간도서 가격이 부담스러워서 중고서적을 많이 찾게 됩니다. 사실 어려운 출판시장을 생각하면 좋은 현상은 아니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