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프로타고라스(Protagoras)는 상대방을 설득할 수 있는 화법인 변론술을 가르친 소피스트(Sophist)였다. 그는 인간은 만물의 척도다(Man is the measure of all things)”라는 말을 남겼다.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진리는 없다. 인간 개개인이 세상 모든 진리의 기준을 내릴 수 있다. 그런데 진화생물학자 에드워드 O. 윌슨(Edward Osborne Wilson)은 자신의 책 창의성의 기원(The Origins of Creativity, 2017)에서 프로타고라스의 명언을 넘어선 새로운 선언을 제시한다. 만물이 인간 이해의 척도다(All things must be measured in order to understand man원문의 ‘man’인류를 뜻하는 단어지만 대부분 사람은 ‘남성’을 가장 많이 떠오른다. ‘human’이라고 썼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게 느껴지는 문장이다).”

















* 에드워드 O. 윌슨 창의성의 기원: 인간을 인간이게 한 것(사이언스북스, 2020)





윌슨은 창의성이 인간의 가장 독특한 형질이라고 본다. 창의성은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능력이다. 새로운 것을 좋아하는 인간의 본능이 창의성을 발현시킨다. 하지만 윌슨은 창의성의 범위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고 우려한다. 그는 창의성을 좁게 만든 주범으로 만물이 나타나게끔 유도한 궁극 원인(ultimate cause)에 관심 없는 인문학을 지목한다. 윌슨의 견해에 따르면 인문학자들은 만물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그들의 관심사는 철학자들이 유독 좋아하는(?) 질문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철학이란 무엇인가?” 인문학자는 궁극 원인에 해당하는 질문을 흘깃 보거나 관심을 주지 않았다이와 반대로 과학자는 만물의 정의와 기원을 모두 탐구하는 사람이다.

















* 에드워드 O. 윌슨 인간 본성에 대하여(사이언스북스, 2011)





만물의 기원을 모르는 인문학자가 자신을 만물의 척도라고 주장하면서 진리의 기준을 뻔뻔하게 내세우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좁은 시야에 안주하는 인문학이 사람들로부터 존중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윌슨은 만물이 인간 이해의 척도라는 명제를 비판하고, 인간이 오랫동안 달고 다녔던 만물의 영장이라는 과장된 훈장을 떼어낸다. 만물의 기원을 알아야 인간의 기원도 알 수 있다. 이 목표를 달성하게 만드는 학문이 바로 과학이다. 진화론으로 설명 가능한 인간의 기원을 이해하면 인간이 지구상에서 가장 우월한 존재라는 믿음의 단점이 눈에 보인다인간의 우월한 지위를 인정하지 않는 윌슨의 관점은 이미 그의 대표작 사회생물학(Sociobiology: The New Synthesis, 1975)에서 비롯된 반()인간중심주의다사회생물학》 다음으로 나온 인간 본성에 대하여(On Human Nature, 1979)에서 윌슨은 고상한 체하는 자아도취적 인간중심주의보다 더 지능적인 악은 없다(42)고 말하면서 인간중심주의를 비판하는 입장을 견지했다.

















* 에드워드 O. 윌슨 통섭: 지식의 대통합(사이언스북스, 2005)

 




과학자윌슨은 궁지에 몰린 인문학에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 그는 과학과 인문학이 통합, 즉 하나가 되면 새로운 계몽 운동이 일어나 인문학(철학)의 위상을 회복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과학은 사실적 지식을 중요하게 여기고, 인문학은 그런 지식이 가치가 있는지 판단하는 역할을 한다과학과 인문학의 만남은 인간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인간이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준다과학과 인문학의 통합을 바라는 윌슨의 생각 역시 낯설지 않다윌슨은 통섭(Consilience: The Unity of Knowledge, 1998)에서 인문학과 자연과학을 포함해 인간의 지식은 본질적으로 통일성을 지향한다고 주장했다통섭또한 사회생물학못지않게 인문학 계열에 속한 학자와 사회학자들의 비판을 받은 책이지만, 글의 분량을 조절하기 위해 통섭에 대한 비판적 평가는 생략하겠다.


이 글에서 내가 가장 주목하고 싶은 책은 창의성의 기원이고, 이 글의 주요 내용은 창의성의 기원에 대한 비판적 독해이다윌슨이 주장한 내용 중에 의심해야 할 것이 있다.



* 81, 82~83

 


 우리는 시각과 청각에 의지해 길을 찾는 소수의 곤충을 비롯한 무척추동물 및 조류와 더불어서 지구에서는 드문, 주로 시청각에 의지하는 극소수의 동물에 속한다. 그러나 우리 시각은 오로지 광자에만 반응한다.

 그렇다면 청각은? 청각은 우리 의사소통에 필수적이지만, 동물 세계의 청각 능력에 비하면 우리는 귀가 먼 것에 가깝다.

 냄새는 어떨까? 다른 생물들에 비하면 인간은 후각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자연 환경이든 가꾼 환경이든 간에, 모든 환경에는 같은 종의 구성원들이 의사소통할 때 쓰는 화학 물질은 페로몬(pheromone)과 잠재적인 포식자나 먹이나 공생자를 검출할 때 쓰는 알로몬(allomone)이 난무한다. 모든 생태계는 상상할 수도 없이 복잡하고 정교한 후각 경관(odorscape)’이다. (후각과 미각 환경에는 상상할 수도 없는이라는 말을 쓴다. 인류는 화학 물질 감지에 해당하는 어휘를 거의 갖추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무척추동물과 미생물까지 포함하면, 생태계 하나에는 수천 종에서 수십만 종이 살고 있다. 우리는 냄새를 통해서 하나로 결합된 자연 세계에 산다.




내가 밑줄을 친 문장의 원문은 다음과 같다.

 


 What about smell? Human by comparison with the rest of life are virtually anosmic.  

 


‘anosmic’후각이 없는또는 후각 상실을 뜻하는 단어다. 과연 인간의 후각은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권위 있는 노학자의 말만 믿고, 우리의 후각 감각을 무시하는 독자가 없길 바란다. 냄새는 측정하기 어렵다. 그래서 후각에 관한 과학적 연구 진행이 더딘 편이다


















* A. S. 바위치 《냄새: 코가 뇌에게 전하는 말》 (세로, 2020)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인 1991년에 후각 수용체가 발견되면서 과학자들은 후각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후각 수용체가 발견되기 전까지 후각은 과학자와 철학자들 모두에게 외면받은 감각이었다. 인간의 후각 수용체는 천여 개에 달하지만, 후각 수용체에 관여하는 유전자의 수는 고작 3백여 개에 불과하다. 후각 수용체는 냄새를 감지하게 되면 뇌에 전기 신호를 전달한다. 이 신호는 후각을 자극한다. 뇌는 여러 가지 냄새 패턴을 기억하고 있어서 각각의 냄새를 감별할 수 있다후각의 복잡한 경로와 기원을 밝히기 위한 연구는 현재진행형이다. A. S. 바위치(A. S. Barwich)의 냄새는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냄새와 후각의 실체를 알려준다이 책을 보면 인간의 후각이 없다(인간의 후각이 오감 중에 가장 뒤떨어져 있다)는 오해를 풀 수 있다.


창의성의 기원에서 윌슨은 인문학의 단점을 극단적인 인간중심주의라고 말한다(77~78). 인문학은 제한된 감각 경험이라는 공기 방울 안에(exist within a bubble of sensory experience)’ 갇혀 있어서 인간의 궁극 원인을 이해하는 능력이 떨어진다.

















* 김초엽, 김원영 사이보그가 되다(사계절, 2021)



평점

4.5점  ★★★★☆  A





윌슨을 인문학을 비판하면서 과학이 인문학의 한계를 보완해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책에 과학의 단점을 언급하지 않으며 그것에 대한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 내가 생각하는 과학의 단점은 극단적인 비장애인중심주의


사이보그가 되다의 공동 저자로 만난 소설가 김초엽과 변호사 김원영장애를 치료하고 교정하려는 과학기술 담론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과학을 신뢰하는 인간(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를 포함한다)은 장애를 쉽게 치료할 수 있다고 기대한다. 그들이 바라보는 장애는 비장애인의 온전한 몸’, ‘건강한 몸에 미치지 못한 신체적 약점이다. 그래서 과학기술이 나날이 향상될수록 장애인은 과학기술을 사용하는 주체가 되지 못하고, 과학기술의 도움을 받으면서 살아야 하는 수혜자로 남게 된다. 그리고 장애는 정상성을 가지기 위해(비장애인이 되기 위해)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규정된다극단적 비장애인중심주의를 인지하지 못한 과학은 정상성이라는 좁은 공기 방울 안에 갇혀 있다이런 과학에 대한 믿음이 지나치면 과학만능주의로 빠질 우려가 있다.

















* 닐 디그래스 타이슨 나의 대답은 오직 과학입니다: 천체물리학자의 우주, 종교, 철학, 삶에 대한 101개의 대답들(반니, 2020)



평점

4점  ★★★★  A-

 

 



현재의 과학은 다른 학문의 한계를 보완해주는 구원자 역할이 될만 한 수준이 아니다. 과학자들도 모두 인간이고, 인간으로서의 약점과 편견과 감정을 가지고 있다.”(나의 대답은 오직 과학입니다》 135쪽) 과학도는 천체물리학자 닐 디그래스 타이슨(Neil deGrasse Tyson)이 한 말을 꼭 기억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인간을 제대로 이해할 줄 아는 성숙한 과학도가 되려면 인문학뿐만 아니라 장애학도 공부해야 한다. 그러니 과학(자), 너나 잘하세요.






Mini 미주알고주알

 

 

* 창의성의 기원62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 1909~1902)

 


[] 아일랜드 출신의 화가 프랜시스 베이컨의 사망연도는 1992이다.






* 창의성의 기원184

 

 스페인 화가 프란시스코 데 주바란(Francisco de Zurbarán, 1598~1664)

 

[] 프란시스코 데 수르바란. 스페인어 알파벳 ‘Z’의 발음은 ‘S’ 발음과 비슷하다.





* 사이보그가 되다241쪽 (2쇄)





과학학자 하대청

 


[] 과학자 하대청




댓글(8)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람돌이 2021-03-16 15: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과학 너나 잘하세요라는 제목이 너무 적당해서 웃었습니다. ^^
과학과 인문학의 결합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맞지만 현대 사회의 여러 문제를 어느 한쪽의 책임으로 몰아가는 한 결코 학문간 결합이든 통섭이든 쉽지 않겠죠.

cyrus 2021-03-17 11:07   좋아요 0 | URL
과학과 인문학, 양자의 학문을 대표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평생 배운 학문의 문제점을 잘 알아야 하고, 그것을 서로 보완하는 방향으로 만나야 해요. 인문학에 대한 윌슨의 접근 방식을 인문학자들이 좋아할 리가 없어요. ^^;;

파이버 2021-03-16 1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과학이 장애인을 돕기도 하지만 ‘장애‘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심화시키기도 하는군요.... <사이보그가 되다>가 궁금해졌어요

cyrus 2021-03-17 11:10   좋아요 1 | URL
김초엽 작가가 장애학 관련 문헌을 열심히 읽었고, 어려운 내용을 알기 쉽게 풀어 썼어요. <사이보그가 되다>는 장애학 입문 도서로 제격입니다. ^^

파이버 2021-03-17 11:11   좋아요 1 | URL
말씀들으니까 더 흥미가 가요 추천 감사합니다;-)
맛있는 점심 시간 되세요~~

cyrus 2021-03-17 11:14   좋아요 1 | URL
좋은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어제처럼 햇살이 좋군요. 파이버님, 좋은 하루 보내세요. ^^

2022-05-28 00: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22-06-01 09:25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의견 남겨주셔서 감사해요. 사실 이 글을 쓸 당시에 ‘과학학’이 오자가 아니라 학문 이름이라고 생각했어요. QT님 말씀 듣고 보니 오자가 아닐 수 있겠어요. 과학학 옆에 영문명을 같이 써줬으면 오자로 오해하지 않았을 거예요. ^^
 
창의성의 기원 -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것
에드워드 오스본 윌슨 지음, 이한음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20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장문(長文)으로 된 창의성의 기원의 비판적 서평 티저(Teaser) 또는 축약문



[서평 전문]

https://blog.aladin.co.kr/haesung/12470171


 



평점


2.5점  ★★☆  B-





윌슨은 창의성이 인간의 가장 독특한 형질이라고 본다. 창의성은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능력이다. 새로운 것을 좋아하는 인간의 본능이 창의성을 발현시킨다. 하지만 윌슨은 창의성의 범위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고 우려한다. 그는 창의성을 좁게 만든 주범으로 만물이 나타나게끔 유도한 궁극 원인(ultimate cause)에 관심 없는 인문학을 지목한다.

 

그는 과학과 인문학이 통합’, 즉 하나가 되면 새로운 계몽 운동이 일어나 인문학(철학)의 위상을 회복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과학과 인문학의 만남은 인간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인간이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준다.

 

윌슨은 인문학의 단점을 극단적인 인간중심주의라고 말한다(창의성의 기원77~78). 인문학은 제한된 감각 경험이라는 공기 방울 안에(exist within a bubble of sensory experience)’ 갇혀 있어서 인간의 궁극 원인을 이해하는 능력이 떨어진다. 윌슨을 인문학을 비판하면서 과학이 인문학의 한계를 보완해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책에 과학의 단점을 언급하지 않으며 그것에 대한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 내가 생각하는 과학의 단점은 극단적인 비장애인중심주의.

 

오늘날의 과학은 다른 학문의 한계를 보완해주는 구원자 역할이 될만 한 수준이 아니다. 극단적 비장애인중심주의를 인지하지 못한 과학은 정상성이라는 좁은 공기 방울 안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이런 과학에 대한 믿음이 지나치면 과학만능주의로 빠질 우려가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자화상은 외모만을 그리는 그림이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 즉 자신의 내면을 악착스럽게 확인하기 위한 그림이다. 자화상을 그리려는 화가는 거울로 자신의 외모를 보고, 거울에 드러나지 않은 자기 내면을 살핀다자신의 진짜 얼굴을 보는 행위는 구체적인 삶의 이력과 솔직한 욕망을 발견하는 일이다


화가는 자기 내면에 있는 욕망과 자의식을 캔버스에 표출한다. 동시대인들이 알려고 하지 않은 자신의 진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래서 자화상은 한 인간이 살아온 과정을 집약한 역사책이다. 관람자는 자화상에 남은 화가가 살아온 자취를 읽는다. 그리고 자화상은 자신의 내면을 확인하고 싶은 누군가를 위한 거울이 된다관람자는 자화상을 향해 질문을 던진다. “거울아, 거울아. 너는 누구니? 나도 너처럼 될 수 있을까?”

 



















* 유성애 철학자의 거울: 바로크 미술에 담긴 철학의 초상(미진사, 2021)




17세기 바로크 시대의 화가들은 거울을 든 철학자 그림을 그렸다. 철학자의 거울은 바로크 시대에 유행한 철학자 그림 속에 반영된 화가들의 관심사를 들여다본 책이다. 저자는 바로크 화가들이 철학자를 그린 이유를 살펴보면서 남성 철학자그림이 많은 것에 의문을 제기한다. 천국과 지옥을 상상하면서 그린 남성 화가들은 왜 여성 철학자를 그리지 않았을까? 철학자 그림에 묘사된 여성은 철학을 이해 못 하는 존재, 또는 철학자를 방해하는 치명적인 유혹자다남성 화가들은 여성에 대한 편견이 반영된 전통을 답습했다.
















* [절판] 주디 시카고, 에드워드 루시 스미스 여성과 미술: 열 가지 코드로 보는 미술 속 여성(아트북스, 2006)




페미니즘 미술을 대표하는 예술가 주디 시카고(Judy Chicago)는 르네상스 시대의 완벽한 남성상은 영혼의 거울이 될 수 있는 사람이었다고 말한다. 거울을 든 남자는 항상 생각하고 글을 쓰는 철학자 이미지와 부합한다. 주디 시카고와 함께 여성과 미술》(Women and Art: Contested Territory, 1999)을 집필한 미술평론가 에드워드 루시 스미스(Edward Lucie-Smith)알몸으로 거울 앞에 앉아 화장에 열중하는 여자의 모습을 그린 그림에 남성 중심적 시선이 반영되었다고 지적한다남성 화가가 묘사한 거울을 보는 여성은 자신의 아름다운 외모를 가꾸는 데 열중한다. 특히 거울을 보는 늙은 여성은 젊음과 아름다움에 대한 선망에 집착하는 존재로 해석되기도 한다.

















* 프랜시스 보르젤로 자화상 그리는 여자들: 여성 예술가는 자신을 어떻게 보여주는가》 (아트북스, 2017)




하지만 여성 화가들은 남성 화가들의 낡은 전통을 답습하지 않았다. 여성 화가들은 독창적인 자화상을 그려왔다. 여성과 미술에 언급된 프랜시스 보르젤로(Frances Borzello)<우리 자신을 바라보다: 여성의 자화상>(Seeing Ourselves: Women’s Self-Portraits, 1998)은 주목받지 못한 여성 미술가들의 자화상을 소개한 책이다. 이 책은 자화상 그리는 여자들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다.








* 김정희, 권지현, 이도, W.살롱 커뮤니티 참여자들 W.살롱 에디션 Vol. 4: WANT_욕망하고 있네》 (tampress, 2021)


평점

4.5점   ★★★★☆   A




* 김정희, 권지현, 이도, W.살롱 커뮤니티 참여자들 W.살롱 에디션 Vol. 1: 밥_신화를 걷어내다》 (tampress, 2020)



※ 《W.살롱 에디션 Vol. 1: 밥_신화를 걷어내다서평

https://blog.aladin.co.kr/haesung/12413249





지난달에 대구의 출판 스튜디오 ‘tampress’에서 발간된 W.살롱 에디션 Vol. 4: WANT_욕망하고 있네글로 쓴 자화상이다이 책을 만들고 편집한 김정희 작가는 이 책의 머리말에서 를 향한 야망과 욕망을 꺼냈다고 말한다작가의 야망과 욕망은 물질적인 것이 아니요, 이기적인 것도 아니다. 내가 원하는 것, 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 것이다. W.살롱 에디션 Vol. 4집필에 참여한 글쓴이들은 자신의 욕망이 무엇인지 스스로 질문하면서 탐색한다그러면서 여성이라는 명사에 타인이 부여한 욕망의 의미를 해체하고 거부한다. 특히 권지현 작가는 여성의 욕망이 성적 욕망으로 귀결되는 인식을 비판한다이도 작가는 단편 소설 결국 하지 못한 말에서 ’, ‘아내’, ‘엄마라는 역할에 갇혀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한 중년 주부의 모습을 그린다. 소설 속 주부는 여성의 야망과 욕망을 일탈로 바라보던 구시대가 만든 슬픈 자화상이다. 이야기의 화자인 주부의 딸은 욕망을 숨긴 어머니의 슬픈 자화상자신이 무얼 원하는지 잘 아는 진짜 자화상으로 탈바꿈하기 위해 나선다.


주디 시카고는 여성 미술가들의 그림이 생명줄과 같았다고 말했다. 여성 미술가의 자화상은 주디 시카고에게 여성도 미술가가 될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었다. 그는 여성 미술가의 그림을 거울로 삼아 자기 자신의 욕망을 발견했다. W.살롱 에디션 Vol. 4에 실린 글(이 된 자화상)은 타인의 방해를 받지 않고 욕망을 분출하고 싶은 여성을 위한 거울이자 생명줄이 되어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철학자의 거울 - 바로크 미술에 담긴 철학의 초상
유성애 지음 / 미진사 / 2021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평점


4.5점   ★★★★☆   A






영국의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1912년에 발표한 책 ‘The problems of philosophy’는 국내에 철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다. ‘철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철학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기에 앞서 철학의 정의를 살펴보게 만드는 기본적인 주제이기도 하다지금까지 러셀을 포함한 철학자들은 자신이 생각한 철학의 정의를 밝혔다.


철학자의 거울철학자는 누구인가라는 제목(또는 부제)을 붙여도 되는 책이다철학자를 실제로 만나본 적이 없는 사람은 철학자의 정의를 떠올리지 못한다철학자의 거울을 쓴 저자 유성애는 철학을 전공했으며 15년 전부터 예술과 관련된 공부를 해오고 있다철학자는 누구인가는 인간이 누구인지 알고 싶어하던 철학자들도 하지 않은 질문이다하지만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 질문을 한 사람들이 있었다그들은 바로 17세기에 활동한 화가들이었다.


17세기는 바로크(baroque) 시대. 이 시기에 활동한 화가들은 거지 철학자(beggar philosopher)’ 그림을 즐겨 그렸다거지 철학자로 가장 많이 묘사된 인물은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디오게네스(Diogenes)디오게네스는 키니코스학파(Cynics, 견유학파)에 속한 철학자다. 그는 떠돌이 개처럼 자유로운 생활을 했으며 나무통 속에 살았다. 디오게네스의 동시대인들은 그를 괴팍한 거지라고 비웃었다. 하지만 17세기에 들어서면서 디오게네스는 세습적인 욕망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인간상으로 주목받는다그림 속 철학자는 인간다운 삶을 살아왔던 존재이다바로크 시대 사람들은 철학자를 존경했으며 그들처럼 살고 싶어 했다. 그들은 화가에게 자신의 소망이 반영된 그림을 제작해달라고 부탁했다. 화가는 주문자가 바라는 대로 철학자의 초상화 또는 철학자 옆에 있는 주문자의 초상화를 그렸다.


철학자로 분장한 자신의 모습을 그린 화가들도 있다. 자화상에 자신의 지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화가의 개인적인 소망이 투영되어 있지만, 실제로 몇몇 화가는 인문주의자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을 정도로 철학에 관심이 많았다화가는 철학자가 되지 못해도 철학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었다. 17세기 화가들이 그린 철학자는 누군가에게 진리를 가르치려고 하는 직업인이 아니다. 진정한 자기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기 위해 계속 고민하고, 반성하는 인간이다. 그래서 그림 속 철학자의 모습은 후줄근하다


철학자의 거울은 독자에게 철학적인 모험을 부추긴다. 그 모험은 평생 치러야 할 조용한 전투와 같다. 진짜 나를 찾기 위해 외부 세계와 맞서 싸워야 하고끊임없이 성찰해야 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자신의 책을 모험기라고 했다. 그는 질문이 철학자의 무기라고 말한다. 그는 자신을 위해 무기를 사용한다. 철학자 그림을 거울로 삼아 글을 쓰면서 자신의 진짜 모습을 찾기 위한 질문을 던진다. 이런 게 바로 문행일치(文行一致)’.






Mini 미주알고주알

 

 

* 250

 

 아름다움의 여신 비너스와 세 우아미[]가 함께하고 있다. 아글라이아(Aglaea), 에우프로쉬네(Euphrosyne), 탈리아(Thalia).

 

 

[] 아글라이아, 에우프로쉬네, 탈리아는 비너스(Venus)의 시중을 드는 우미(優美)의 여신들이다. 이 세 사람을 가리켜 카리테스(Charites)’ 또는 삼미신(The Three Graces)’이라고 부른다.





* 260


 신체 차이가 남성과 여성을 구분 짓는 절대적 척도일까? 리베라의 작품 속 인물은 남녀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벗겨진 이마, 검고 긴 수염으로 덮인 얼굴은 영락없는 남자다. 하지만 수염 아래로 여성의 젖가슴이 드러나 있다. 반인반마(伴人半馬), 켄타우로스[]를 보는 듯하다.

 


[] 그리스 신화에서 양성(兩性, 남녀추니)을 상징하는 인물은 헤르마프로디토스(Hermaphroditus). 그리스 신화에 남성의 상반신과 말의 하반신으로 이루어진 켄타우로스(Centaur)가 많이 등장하지만, 여성 반인반마도 있다. 이들을 켄타우리데스(Centaurides)라고 부른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미 2021-03-15 0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일단 버트런트 러셀의 책을 주섬주섬 담아가렵니다ㅋㅋ

cyrus 2021-03-15 14:26   좋아요 0 | URL
러셀의 책을 읽지 않았지만, <철학자의 거울>이 러셀의 책보다 읽기 쉬운 책이에요. <철학자의 거울>의 전체적인 내용도 좋아요. ^^

미미 2021-03-15 14:33   좋아요 1 | URL
아하! 그렇다면 읽기 쉬운 <철학자의 거울>을 우선순위로 찜요! 어려운책은 당분간 피할래요^^;
 
세상을 이해하는 52가지 방정식 - 만유인력의 법칙에서 IQ, 지구의 나이를 구하는 공식까지 수학으로 세상을 정리한 방정식 이야기
존 M. 헨쇼 지음, 이재경 옮김 / 반니 / 2020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평점


3.5점   ★★★☆   B+






수학책인데, 수학책이 아닌 책이 있다. 세상을 이해하는 52가지 방정식(An Equation for Every Occasion)이 그런 책이다. 이 책을 쓴 저자는 자신의 책을 수학책이 아니라 이야기책이라고 단언한다수학 이야기책’, 그러니까 52가지 공식과 이와 관련된 흥미로운 상식에 관한 책이다.


이 책은 뉴턴(Isaac Newton)의 만유인력 법칙을 설명해주는 공식으로 시작해서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의 질량-에너지 등가 이론 공식(E=mc2)으로 마무리된다52가지 공식에 얽힌 이야기는 수학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것들이다. 수학 공식 이야기를 알아두면 쓸모 없는이야기와 ‘알아두면 쓸모 있는이야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다이어트하는 사람들이 모를 수 없는 체질량지수(BMI)는 전자에 속하는 공식이다. 체질량지수는 몸무게(kg)를 신장(m)의 제곱으로 나눈 값이다. 대다수 사람은 체질량지수를 계산해서 자신이 비만인지 아닌지를 확인한다. 하지만 체질량지수에 단점이 있다. 체질량지수는 생활 방식과 연령 등의 변수를 고려하지 않은 공식이다. 그러므로 부정확한 결과가 나올 수 있다. 숫자에 너무 연연하지 말자.


알아두면 쓸모 있는 공식 중에 가장 쉬운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개의 실질나이를 계산하는 방식이다. 반려견이 없는 사람도 외울 수 있을 정도로 아주 간단하다. 개의 나이에 7을 곱하면 된다. 계산한 값을 사람의 나이로 환산한 것이 개의 실질나이다.


세상을 이해하는 52가지 방정식은 2015년에 나온 세상의 모든 공식과 같은 책이다두 책 모두 같은 출판사에서 나왔고역자도 같다그런데 역자는 세상을 이해하는 52가지 방정식》의 서지사항에 이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알라딘에 저자 이름(존 M. 헨쇼)를 검색하면 세상을 이해하는 52가지 방정식과 세상의 모든 공식이 함께 나오는데두 권의 책이 동일한 가격(정가가 1만 4,000원이다. 알라딘에서 주문하면 10% 할인되는 가격도 똑같다)으로 판매되고 있다두 권 모두 사지(읽지) 말고, 한 권만 사자(읽자)

 






Mini 미주알고주알

 

 

1

 

 

* 14

 

 천문학자 윌리엄 허셜(William Herschel)1781년에 천왕성을 발견했다. []

 

 

[] 윌리엄 허셜은 누이동생 캐롤라인 허셜(Caroline Herschel)과 함께 천왕성을 발견했다허셜은 누이동생의 공로를 언급했지만, 여성을 천대하는 사회적 분위기로 인해 천왕성 발견에 대한 모든 공로는 허셜에게 돌아갔다.






2

 

 

* 106

 

 스위스가 낳은 수학자 레온하르트 오일러는 누가 꼽아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수학자 5인방에 꼭 들어간다. (5인방에 항상 끼는 다른 이름들은 뉴턴, 가우스, 아르키메데스다.) []

 

 

[] 오일러, 뉴턴, 가우스, 아르키메데스나머지 한 사람은 누구일까?






3

 

 

* 126





[] 야곱 베르누이가 태어난 연도는 1655인데, 영국의 옛 달력(Old Style, O.S.)을 기준으로 보면 1654년이다






4



* 139


 그동안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는 수학자들의 마음속에 에베레스트 산처럼 버티고 서서 앤드우 와일스의 모습을 한 에드먼드 힐러리 경을 기다리고 있었다. (뉴질랜드의 산악인으로 1953529일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를 처음으로 등정했다. 옮긴이)[]

 

 

[] 힐러리(Edmund Percival Hillary)와 동행한 네팔의 셰르파(히말라야 산맥을 오르는 산악인들에게 도움을 주는 티베트계 네팔인) 텐징 노르가이(Tenzing Norgay)도 에베레스트 등정에 처음으로 성공한 인물이다.






5



* 145






캐놀라 카놀라(canola)






6



* 164쪽


 러시아 물리학자[주] 하인리히 렌츠(Heinrich Lenz, 1804~1865)는 유도기전력은 자속의 변화를 감소시키는 방향으로 일어난다는 렌츠의 법칙을 세웠다.



[] 하인리히 렌츠는 발트 독일계(Baltic German, 발트 해 연안에 거주하는 독일인) 러시아 물리학자. 그를 독일의 물리학자로 소개하는 경우가 많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21-03-10 12: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21-03-14 23:31   좋아요 0 | URL
국내 역자뿐만 아니라 외국 저자들도 에베레스트 최초 등정에 관한 진짜 이야기를 간과하는 경우가 있어요. 실제로 힐러리는 텐징 노르가이도 에베레스트를 최초로 등정했다면서 몇 차례 밝혔는데도 말이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