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 오디세이 - 수학이 즐거워지는 수학 이야기
앤 루니 지음, 문수인 옮김 / 돋을새김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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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는 좋아하면서도 ‘수학’은 싫어하는 현대인들    


몇 주 전에 우리나라 국가경쟁력이 지난해보다 3단계나 떨어진 22위라는 소식을 접한 적이 있다. 3년 연속 하락세란다. 세계 국가경쟁력 순위를 평가하고 발표한 곳이 세계경제포럼(WEF)이다. 경쟁력 순위가 오르고 내리는 것을 정하는 것은 외국에서의 국내 정부와 기업에 대한 평가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일부 언론들은 다른 국가경쟁력 평가기관에서는 우리나라의 순위를 후하게 준 점을 언급하여 WEF의 평가 기준에 대한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하였다.

며칠 전에는 한 일간지에서 주최, 조사한 국내 대학평가 순위 명단이 공개되었다. 언론사는 이번 국내 대학평가 자료가 국내 대학들이 더욱 더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참고 자료라고 밝혔다. 대학평가 순위 상위권에는 소위 ‘명문대’라고 불리는 인지도가 높은 대학들의 이름이 올려져 있다. 그러나 대학평가 순위 공개에 대한 일부 네티즌들의 반응은 냉담하기만 하다. 평가 기준에 대한 문제 제기에 대한 덧글이 주를 이루었다. 그 다음에는 이런 순위자료를 가지고 대학들이 경쟁력을 갖추는데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냉소적인 반응도 보이고 있었다. 심지어 어떤 네티즌들은 특정 학교의 순위가 낮음에 대해서 비난하기도 하였으며 순위가 높은 라이벌 학교에 대한 비판도 서슴지 않았다. “OO대는 좋은 학교인데 그보다 못한 XX대보다 순위가 낮나?” 라는 식의 설전의 덧글이 오가고 있다. 학교의 권위를 높이기 위한 학부생들의 전쟁(?)으로 인해 기사 덧글 공간은 총성 없는 전쟁터가 되었다.

이렇듯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독 숫자와 수치에 연연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비단 이런 사례들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개미들은 오늘의 주식 수치가 하락하느냐 상승하느냐에 따라 울고 웃는다. 한국 영화배우들은 영화 관객 동원 수에 따라서 흥행 배우 또는 쪽박 배우로 평가받기도 한다. 아무리 뛰어난 연기를 펼치는 연기파 배우들도 예전에 출연했던 영화들의 좋지 않은 흥행 성적표 때문에 ‘쪽박 배우’라는 꼬리표를 달기도 한다. 비단 우리나라 사람들만 숫자에 집착 것만은 아니다. 중국은 ‘8’ 이라는 숫자를 길수(吉數)로 여기고 있어서 ‘8’이라는 숫자뿐만 아니라 ‘8’의 발음과 비슷한 한자들도 길조로 여기고 있다. 중국인들의 이런 각별한 숫자 사랑은 중국 당국에서는 개인이 직접 차량번호를 고를 수 있는 제도를 도입할 정도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숫자에는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면서도 수학이라는 학문 자체를 싫어한다. 수학은 어렵고 딱딱한 학문이라고 생각한다. 수학에 대한 혐오는 이공계 교육 기피 현상으로 이어진다. 사실 수학은 다른 학문에서도 응용되고 있다. 과학에서 수치가 있고 계산이 필요하다. 경제학도 그렇다. 우리 실생활도 되돌아보면 수학의 손길이 거치지 않은 곳이 없다. 집을 마련하기 위한 저축을 들기 전에 이자 같은 각종 계산들을 따져봐야 한다. 주부들은 가계부를 작성하면서 최대 이익의 소비 결정을 위해 손익을 따진다. 결국, 현대인들은 자신도 모르게 수학이라는 학문의 원리에 따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신과 권력자들의 특수 문자였던 숫자

수학과 인류의 생활의 만남은 인류 문명이 태동하고 있었던 고대부터 시작되었다. 문명의 진보의 역사를 보면 수학은 빠지지 않았으며 수학이 없었으면 문명의 진보도 없었다. 그러나 숫자도 지금처럼 모든 인류가 공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보편적인 문자가 아니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신관문자’라는 일종의 숫자 체계를 고안하였는데 1에서부터 시작되는 모든 수를 상징적으로 표현하였다. 언뜻 암호로 보이기도 한다. 지금의 1,2,3,..... 으로 사용하고 있는 숫자와 비교하면 당시 이집트 사람들은 이런 숫자를 어떻게 썼을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적지 않은 숫자들을 외우고 사용하는데 헷갈렸을 텐데 말이다. 그러나 숫자를 어렵게 만든 특별한 이유가 있다. 숫자는 사회를 지배하는 권력자들만의 특별한 문자였기 때문이다. ‘신관문자’라는 단어 자체에서도 권력이라는 단어의 뉘앙스가 풍기고 있다. 신관(神官)은 신을 받들어 모시는 일을 하는 관리이다. 이집트에서 신이란 통치자 파라오(Pharaoh)를 말한다. 즉, 파라오와 밑의 귀족이라고 말할 수 있는 신관들만이 사용할 수 있는 특별 문자가 숫자인 것이다. 조선의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기 전에 한자가 지배계층이었던 사대부들만의 언어로 사용한 점과 유사하다. 숫자의 권력화는 이집트에서만 있는 것은 아니다. 히브리인, 시리아인, 초기 아라비아인들의 숫자도 암호 수준이다. 권력자 또는 수학을 연구하는 수학자들만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숫자였다. 

 

 

 

 

 

 

 

 

 

 

 

 

 

 

역사가 변하면서 숫자가 상권(商權)에 사용하면서 지금과 같은 보편화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숫자의 권력화는 죽지도 않고 숫자의 신성화로 진화하였다. 권력자들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숫자를 신성화하도록 만들었다. 그러자 유럽의 권력이 왕에서 종교로 이동함으로써 이제는 교황이 직접 특정 숫자에 신성을 부여하였다. 그래서 기독교가 지배를 하고 있었던 중세 유럽에는 숫자에 대한 집착이 뚜렷하다. 특정 숫자를 부정적으로 여기는 경향도 볼 수 있다. 지금까지도 서양에서 13과 666을 불길한 숫자로 여기고 있는 것도 기독교가 만들어낸 문자 인식의 산물이다. 13이 불길한 숫자가 된 유래에 관한 설은 다양하나 예수를 팔아버린 유다가 예수의 13번째 제자라서 13이 불길한 숫자가 되었다는 설이 있다. 그리고 666은 요한계시록에서 적그리스도로 상징되는 악마의 숫자로 규정하고 있다. 중세 유럽인들이 얼마나 666을 싫어했으면 1에서 36까지의 숫자를 모두 더하여 666이 되는 마방진을 소유하는 사람들을 처형하기도 했다.

모든 국가들이 공통 단위로 사용하기 위한 미터법이 1790년 프랑스에 도입되었다. 그러나 미터법 도입이 되기까지 120년이라는 세월이 있었다. 하필 프랑스 혁명과 스페인과의 전쟁이 발발하여 미터법 도입은 여러 번 차질을 빚었다. 미터법 도입을 위해서 측정을 하고 있던 프랑스 학자는 시민들에게 왕당파라는 오해로 봉변을 당하기도 했다. 어쩌면 시민들의 눈에는 숫자와 관련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권력자인 왕당파로 보였을 것이다.   

 

 

   

고맙다, 수학아  

 



 

 

 

 

 

 

 

 

 

 

 

 출처  

 http://100.naver.com/100.nhn?type=image&media_id=33813&docid=85590&dir_id=02040703

  

 

막강했던 교황의 힘은 쇠퇴하고 중세의 그늘에서 벗어난 유럽 문명은 르네상스 시대부터 숫자와 수학은 실용적인 학문으로 독립하였다. 피렌체의 건축가 브루넬레스코는 그 유명한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의 돔을 완성하였는데 기하학에 기초한 원근법으로 완성할 수 있었다. 고대 그리스의 유클리드가 만든 기하학 덕분에 원근법이 탄생하여 르네상스 예술 발전에 큰 영향을 주었다.   


 

 

수학자 블레즈 파스칼은 어린 시절, 세금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는 아버지를 위해서 계산기를 발명하였다. 비록 수동으로 움직이는 단순 계산만 할 수 있는 기본적인 기계였지만 수를 쉽게 세면서 계산을 빨리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찾기 위한 인류의 노력은 파스칼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라이프니츠도 계산기를 고안하였으며 찰스 배비지는 지금의 컴퓨터의 프로그래밍과 같은 작업을 할 수 있는 해석기관을 만들었다. 컴퓨터의 역사에서 파스칼의 업적은 컴퓨터의 시초로 여기고 있다. 파스칼이 없었다면 지금의 컴퓨터가 나오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문명의 역사 속에서 방황해야만 했던 수학 
 

수학이 인류에게 끼친 영향은 실로 엄청나다. 숫자 하나로 인류의 감정을 좌지우지하고 실생활에서 없어서는 안 될 편리한 물건들이 이 세상에 나오게 만들었다. 책 제목처럼 20여년 동안 바다를 방황하다가 페넬로페가 있는 고향에 돌아왔듯이 수학이 있는 문명도 수천 년간 모든 수학자들의 노고 덕분에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처음에 특권층들을 위한 특수문자였다가 지금은 우리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사용하는 실용적인 문자로 확장되었다. 확장되기 위한 길고 긴 역사 속에는 수학이 마주한 고난을 넘어서기 위해 수학자와 그 밖에 수학에 매료되었던 인류들은 끊임없이 탐구하였다. 이들은 단지 수학을 좋아해서 한 것은 아닐 것이다. 인류의 역사에도 숫자가 있었듯이 인간은 천성적으로 숫자와 수학을 좋아하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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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이 살아남는 방법 움베르토 에코 마니아 컬렉션 19
움베르토 에코 지음, 김운찬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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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의 제자들이 찾아낸 기성품 문장

움베르토 에코가 쓴 사회비평서 『신문이 살아남는 방법』(움베르토 에코 마니아 컬렉션 No. 19)에는 이탈리아 신문 기사에 대한 흥미로운 내용이 언급된다. 에코의 제자들이 신문기사에서 찾아낸 상투적이면서도 자극적인 문장들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퀴리날레는 전쟁 준비가 되어 있다> <정부가 길을 열어야 할 것이다>
  <신이여, 친구들에게서 나를 구하소서.> <최악의 파트너 선택>  

이 문장 이외에도 에코의 책에서 열거된 이탈리아 어 문장들은 은유적이라서 우리나라의 신문기사 내용과 좀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겠다. 한편으로는 얼핏 사설에서 볼 수 있는 문장들 같다. 사설은 하나의 사건에 대해서 글을 쓰는 사람이 주관적인 생각과 의견을 적는 것이다. 그러나 사설은 기사문과 다르다. 기사문은 사실을 보고 들은 그래도 기록되는 것이다. 신문 독자들에게 한 쪽 입장에 치우치지 않는 공정성과 객관성이 요구된다. 에코는 이런 문장들을 ‘기성품 문장’이라고 비꼬면서 이런 문장들의 50%는 신문기자들이 만들었고, 나머지 50%는 관련기사 속 인물들의 인터뷰에서 발췌한 것이라고 말하였다.    

 

우리나라 신문 헤드라인에서 찾은 기성품 문장 

우리나라 신문들도 보게 되면 에코가 말한 기성품 문장들을 찾아볼 수 있다. 이탈리아처럼 기사문 내용 안에서는 많이 발견되지 않지만 독자들의 이목을 단시간에 끌 수 있는 헤드라인에서는 많이 볼 수 있다. 그래서 필자도 에코의 제자와 같은 마음으로(?) 우리나라 신문 헤드라인 속의 기성품 문장들을 찾아보았다.

  #1 [짐승이라니… 격조 있게 한번 울어봐라]
  #2 [與 계파초월 ‘밥상 정치’] 
  

#1 헤드라인은 헤드라인 자체만 봐서는 기사 내용을 가늠할 수가 없다. 처음 헤드라인 문장을 접하게 된 신문독자로 하여금 기사 속 내용이 궁금하게 만든다. ‘짐승’ 이라는 단어에서 나오는 단어의 강한 인상, 그리고 ‘격조’ 라는 명사와 ‘울다’ 라는 동사라는 낯선 조화는 독자들의 호기심을 유발하게 한다. #1은 2010년 8월 24일에 천안함 사고 유족 자들에게 ‘짐승’ 비하 발언을 하여 물의를 빚은 조현오 경찰청장 후보자가 천안함 묘역에 찾아가 참배했다는 단순한 기사의 내용이다. 기사가 게재된 당시, 조현오 경찰청장 후보자는 ‘짐승’ 발언 이후로 천안함 유족 자들로부터 비난을 받고 있는 분위기였다. 헤드라인의 문장은 조현오 경찰청장이 참배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던 천안함 유족 자 중의 한 사람이 항의하면서 나온 말이다. 기자가 이런 자극적인 헤드라인을 정하게 된 의중은 알 수는 없다. 그러나 기사 속 인물의 말을 빌려 헤드라인으로 사용하면서 독자들로 하여금 비극적 사고로 자식을 잃은 유족 자의 울분과 슬픔을 감정이입하게 만들고 있다. 반면에 공인으로서 해서는 안 될 발언을 하게 된 조현오 경찰청장 후보자는 ‘나쁜 놈’이라는 인식을 하게 만든다. 조현오 후보자의 발언은 당연히 비난받아야 할 일이지만 #1의 기사는 자극적인 헤드라인을 통해서 조현오 후보자의 비행을 은연중에 강조시키고 있다.  

 

#2 헤드라인의 기사는 28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 친이계 진영의 이재오 특임장관이 오찬을 통해 만나는 내용이다. 18대 총선 공천 파문 때문에 형성된 대립 구도를 탈피하여 화해 모드 전환 및 여당의 화합된 분위기를 도모하기 위해 친박계와 친이계 의원들이 모여 식사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기사 속 내용에는 이들의 만남을 ‘식사 정치’라고 언급하면서도 헤드라인만은 ‘밥상 정치’라고 표현하고 있다. 싸우다가 다시 친해지고, 또 싸우는 친박계와 친이계의 모습이 기자는 비꼬려는 의도일까? 헤드라인에도 격조 있게 ‘식사 정치’라고 해도 될 텐데 말이다. 헤드라인 속 문장 하나 때문에 계파의 갈등을 넘은 화합의 장이 주는 긍정적인 이미지를 격하시키고 있다.  

  

그리고 오늘 열린 김황식 총리 후보자의 국회청문회에 대한 기사에서는 특정 인물의 행동과 말 위주로 보도되는 ‘가차 저널리즘(Gotcha journalism)'을 볼 수 있다. 부동시로 인한 병역면제 때문에 여당으로부터 썩 좋지 않은 이미지를 받고 있는 김 후보자인 만큼 이런 기사들은 보는 신문독자들은 김 후보자에 대한 병역면제 의혹을 더욱 증폭하게 된다.   

 

  #3 [김황식 "안경점에서 '짝눈' 이렇게 심하냐고 놀라더라"] 
 #4 [안경 고쳐 쓰는 김황식 총리 후보자..`부동시라서···`]  

 

#3의 헤드라인은 부동시에 대한 김 후보자의 해명을 오히려 의혹에 대해 변명하는 식으로 만들고 있다. #4는 인터넷 뉴스 속의 포토뉴스 헤드라인이다. 이 기사에는 안경을 고쳐 쓰는 김 후보자가 찍힌 사진과 달랑 두 줄만의 문장만 있을 뿐이다. 김 후보자의 안경을 고쳐 쓰는 행동을 가지고 부동시 때문이라고 보기에는 어렵다. 가차 저널리즘의 형태는 사안의 맥락과 관계없이 흥미 위주로 보도된다. 그래서 #4 기사의 경우, 부동시와 병역면제 때문에 국회에서 곤혹을 치르고 있는 김 후보자를 겨냥한 가차 저널리즘의 기사인 것이다. 
 

 

 

우리나라 신문이 살아남는 방법

이탈리아 신문의 현실에 대한 에코의 따끔한 비판은 기성품 문장의 과도한 사용에서만 끝나지 않는다. 텔레비전의 등장하기 전에는 신문이 1차적 정보 전달의 근원지였지만 지금은 텔레비전의 보급으로 인해서 경쟁에서 밀려났으며 상황이 이렇다보니 텔레비전과 같은 흥미 위주의 정보 전달에 급급하여 신문 정보의 질이 떨어졌다고 주장한다. 이제 이탈리아 신문은 텔레비전의 시녀라고 말하기도 한다.  

 

에코가 지적한 이탈리아 신문의 현실은 우리나라에서 나오는 신문에서도 볼 수 있다. 사실 모 일간지를 구독하고 있는데 매일 일간지 사이에 끼워져 나오는 얇은 부록 특집기사들을 보면 신문에 부록 전달에만 할애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물론 구독자에게 생활에 유용한 다양한 정보를 전달해주는 것은 좋다. 그리고 시대가 변함에 따라 구독자들의 취향도 달라지기 때문에 실용 정보에 관심 있는 요즘 구독자의 취향에 발맞춰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과도한 부록 특집기사는 사건에 대한 사실이나 해설을 널리 신속하게 전달하기 위해서 만든 신문으로서의 목적을 상실하게 된다. 배보다 배꼽이 커버리게 되는 것이다.

요즘 신문사에서는 자체로 시사 관련 방송 채널을 만들어 TV에서도 신문기사들을 전달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많은 부수기록을 자랑하는 모 경제 일간지 회사가 운영하는 경제시사 방송 채널에서는 다음날 신문기사 내용들을 전날 밤에 미리 확인할 수 있는 방송 프로그램을 기획하기도 했다. 따끈따끈한 경제의 동향을 미리 알 수 있어서 기획의 취지는 좋지만, 신문으로서의 정보 전달의 주도권이 이미 TV 쪽으로 넘겨줘버린 꼴이다. TV만 신문을 위협하는 것이 아니다. 스마트폰의 빠른 보급도 신문을 죽이고 있다. 관심 있는 사건을 알고 싶으면 굳이 신문을 구독할 필요도 없이 간단히 스마트폰의 인터넷으로 검색만 하면 된다.   

 

정보 통신의 발달로 종이 책만 위기가 오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종이 신문도 사라질 수도 있다. 저널리즘에 대해서 깊이 있는 지식이 없어서 무조건 이렇게 해야 한다고 단정할 수 없지만, 필자의 생각에는 우리나라 신문이 살아나는 방법으로는 종이 언론의 영향력이 떨어지는 현실을 방관하지 말고, 구독자들과 소통을 할 수 있는 차별화된 기사의 콘텐츠를 구축해야한다고 생각한다. 구독 수의 많고 적음에 연연하지 말고 독자들도 기자가 되어 저널리즘의 영역으로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확대하면 신문 기사의 양도 늘리는 것과 동시에 기사 정보의 질도 향상될 수 있을 것이다. 획일적인 색채의 정보로 치우친 옐로 저널리즘(Yellow journalism)에서 벗어나 다양한 색채의 정보들로 가득 찬 퍼블릭 저널리즘(Public journalism)로 전환하는 길만이 우리나라 신문의 미래가 한층 더 밝아질 수 있는 청사진이다.  

 

 

 

* 헤드라인 관련 기사 출처 링크 

 

  #1「조선일보」2010년 8월 25일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8/24/2010082401185.html

 #2「동아일보」2010년 9월 29일  

http://news.donga.com/Politics_List/3/00/20100929/31466084/1

 #3「조선일보」2010년 9월 29일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9/29/2010092901052.html

 #4「이데일리」2010년 9월 29일
http://www.edaily.co.kr/news/NewsRead.edy?SCD=DA32&newsid=02361606593105040&DCD=A01503&OutLnkCh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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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풍속사 1 - 조선 사람들, 단원의 그림이 되다 푸른역사 조선 풍속사 1
강명관 지음 / 푸른역사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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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장으로 치닫는 교권의 현실   

2개월 전, 어느 학교의 교사가 거짓말을 했다고 의심이 되는 학생을 발로 가격을 하는 장면이 담은 폭행 수준의 체벌 동영상이 공개되어 사회적으로 물의를 빚었다. 학생에게 폭행을 가한 교사는 '손바닥으로 한번 맞으면 쓰러진다'는 의미로 학생들 사이에서는 ‘오장풍’이란 별명으로 불릴 정도로 체벌을 잘 하는 교사로 알려져 있었다. 이 동영상 한 편으로 인해서 학생 체벌의 필요성에 대한 논란이 제기되었다. 논란을 종식시키기 위해서 이번에 새로 선출된 곽노현 교육감은 서울 내 모든 학교에 체벌을 전면 금지하는 방안을 추진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일회성 체벌로 인해서 해임 처분이 없었던 전례를 뒤엎고 교육청 징계위원은 오장풍 교사를 해임 처리하기로 결정했다. 일회성의 체벌을 이유로 교단을 떠나야 한다는 높은 수준의 징계를 내린 점은 가혹할 수도 있다. 그러나 교사가 피해 학생에게 가한 체벌 수준은 교사로서의 도가 지나친 것이었기에 해임 처리는 당연한 것이었다.  

오장풍 교사 문제는 이렇게 일단락되었지만 교사들의 심각한 체벌 문제는 여기저기서 시한폭탄처럼 한 개씩 폭발하고 있다. 어느 학교의 교장이 학생들의 복장 불량을 검사하는 교사의 행동에 책임을 물어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그 교사에게 엉덩이를 체벌한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그 전에도 발생했던 일이지만 부모가 교사를 폭행하는 사건도 간혹 뉴스에서 접하기도 한다. 이렇듯 교사들 입장에서는 곽 교육감의 체벌 전면 금지 정책을 반기지 않는다. 안 그래도 교권이 추락한 마당에 도리어 교권이 더 약해질까 봐 걱정한다. 심지어 몇 몇 일부의 학생들은 교육감의 정책을 빌미 삼아 교사들의 체벌에 대해 눈 까딱하지 않는다. 오히려 학생들을 체벌하려는 교사들을 이상하게 여긴다. 제자들이 잘 되기 바라는 스승의 마음이 담긴 ‘사랑의 매’는 이제 옛 말이 되어버렸다. 

 

 

 

서당 내 분위기 = 오늘날의 교실 분위기 
 


 

 

 

 

 

 

 

 

 

  

 

 

 

 

이 그림은 누구나 다 아는 김홍도의 [서당]이라는 작품이다. 옛날의 교육기관인 서당에서의 한 장면을 재미있게 그리고 있다. 이 그림을 보게 되면 쉽게 지나칠 수 없는 점은 그림 속 중앙에 배치된 울고 있는 아이의 중심으로 하는 인물들에 대한 뛰어난 묘사이다. 훈장님 앞에서 공부한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는지 종아리를 맞고 난 뒤, 눈물을 훔치고 있고 주위의 학생들은 그 모습을 보고 킥킥거리며 웃고 있다. 그리고 훈장님은 울고 있는 제자를 한심하게 쳐다보고 있다. 학창 시절 때에 되돌아보면 만날 선생님께 자주 꾸중과 체벌을 감수하는 말 안 드는 친구가 교실에 한 명은 꼭 있다. 선생님에게 자주 혼나다보니 주위 친구들은 이제 그 친구가 선생님한테 혼나는 장면만 보게 되면 재미있어 하게 된다. 해를 당하지 않는 자만이 느낄 수 있는 여유라고 해야 되나?  어쨌든 그림 속 서당 안의 모습은 지금의 교실 안의 모습과 분위기가 비슷하다. 
 

재미있게도 스승에게 체벌을 맞는 학생들의 생각도 옛날이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 게 없다. 선생님에게 거하게 꾸중을 듣고 난 뒤에 자신을 혼낸 선생님에 대한 미움을 친구들 앞에서 뒷담화를 통해 표출하게 된다. 이런 일은 학창 시절에 다 있어봄직한 일들이지만 어떤 학생은 선생님에 대한 비난의 화살은 부모님에게 까지 고하기에 이른다. 대부분 정상적인 부모님들은 이런 자식을 호되게 꾸짖기 마련이다. 그러나 고슴도치가 제 새끼를 이뻐한다는 말이 있듯이 일명 ‘고슴도치 형 부모’들은 이 일을 가만히 넘어가지 않는다. 자식을 혼냈던 선생님에게 따지기 위해서 학교에까지 찾아와서 한바탕 소란을 일으킨다. 금지옥엽(金枝玉葉) 같은 제 자식이 학교 내에서 불리한 처사를 받았다는 이유로 교사에게 손찌검을 하는 부모들 대부분이 고슴도치 형 부모들이다. 어리석은 고슴도치 부모에 그 고슴도치 새끼이다. 조선 시대에도 그런 학생들이 있었던가 보다. 이덕무는 이런 고슴도치 부모와 아이가 되지 말아야 한다고 경계를 하고 있다.     

 

   스승이 엄하면 모자란 아이놈은 반드시 싫어하고 괴로워하여 자기 부형에게 이렇게  

  말한다.
  “제 선생님은 잘 못 가르칩니다.”  

  그리고는 스승을 배반하고 물렁하고 속된 사람을 선생으로 삼아 따르니, 부형이 된  

  사람은 반드시 그 간사한 거짓말을 속속들이 살펴 호되게 꾸짖는 것이 옳다.

  - 이덕무 <사소절>중에서, 『조선풍속사 1』강명관, p 273~274 -   
 

 

 

입신양명(立身揚名)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출구, 서당  


요즘 학교 수업은 어떻게 진행되는지 모르겠지만 필자가 학생이었을 때에는 대부분 선생님들의 강의는 일명 주입식 교육이었다. 분필가루들이 심하게 흩날릴 정도로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할 내용들을 칠판 한 가득 안에 써놓고 쭉 설명을 한다거나 어떤 선생님은 수업 시간 50분 동안 내내 스탠딩 코미디언 뺨치는 입담으로 학생들에게 설명하기도 한다. 이렇다보니 평소에 학습이 저조한 학생들은 그 날 배운 내용들을 바로 이해하지 못하는 단점이 있다. 그러나 30여 명의 학생들을 위해서 목 쉬어가면서 하루 종일 서서 가르치는 선생님들의 열정과 수고는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서당에서 학습 분위기도 주입식 교육 방식과 유사하다. 훈장님이 <천자문>과 같은 한문 책 속의 구절을 학생들 앞에서 암송하면 학생들은 그 구절을 따라 읽고 외우게 된다. 시험 치는 방식도 비슷하다. 교과서 속 중요한 내용을 잘 암기하여 주관식 문제를 풀듯이 조선 시대의 시험 방식도 훈장님 앞에서 배웠던 구절들을 암송해야 하고, 답안지에 풀이를 작성해야 했다.   

 

조선 시대 서당의 주입식 교육도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 당시에는 지위 상승을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한문 텍스트의 독해 및 작문 능력이 필수적이었다. 유교의 경전들만 제대로 이해하고 있으면 눈 앞에 벼슬길이 훤하였다. 그래서 서당은 과거에 응시하기를 원하는 지방 사람들에게는 입신양명할 수 있는 유일한 교육 공간이었다.  박세채가 쓴 <남계서당학규>라는 문헌에서는 서당 내에서 유교를 기본으로 하는 성리학 이외의 학문을 공부해서는 안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성리학 이외의 학문은 도가 사상이나 불교를 포함하고 있다. 오직 과거에서 벼슬을 하기 위해서는 성리학만 잘 이해하고 있으면 되었다.    

 

수험생들이 보다 유리한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서 수능 시험에서 수리와 외국어 영역의 비중을 늘게 하고 탐구 영역을 축소화시키는 최근의 교육 정책과 비교하면 지금과 같은 특정 과목에 편향하는 그릇된 교육 시스템이 옛날부터 이어져오고 있었던 셈이다. 자신의 제자들이 좋은 대학을 보내고 싶은게 선생님의 마음이다. 그래서 제자들이 공부해야할 내용들을 충실히 가르치기 위해서 노력한다. 선생님들 중에서 그럴 분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되지만 제자들에게 단지 대학을 가기 위해서 편향된 학습을 유도하는 것은 도리어 제자들의 정신적 성장을 막는 것이다. 학생들에게 공부의 즐거움을 깨닫게 해주고 올바른 학습 성취로 대학에 진학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선생님의 역할이다.  

 


호랑이 선생님, 누룽지 선생님 그리고 훈장님

28년 전에 <호랑이 선생님>이라는 드라마가 방영했었다. ‘호랑이 선생님’이라고 불리는 허봉수라는 교사와 초등학교 5학년 5반 학생들 간의 학교생활을 그린 우리나라 최초 학교를 주재로 한 어린이들을 위한 드라마이다. 필자가 세상에 태어나기 전에 방영했던 터라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그 당시로서는 신선한 드라마였고 5년 동안 방영할 정도로 꽤 인기가 있었던 걸로 알고 있다. 허봉수는 ‘호랑이 선생님’이라는 별명답게 제자들 앞에서는 엄격한 모습을 보여주지만 속마음은 자식처럼 제자들을 사랑하는 마음씨 따뜻한 교사로 등장한다.

<호랑이 선생님>이 방영된 지 16년 뒤에는 역시 학교의 교사와 제자 간의 이야기를 포맷으로 한 <누룽지 선생과 감자 일곱 개>라는 드라마가 방영되었다. 이 드라마를 본 지 세월이 꽤 지나서 기억은 가물가물하지만 7명밖에 없는 어느 시골 마을의 분교에 서울에서 온 선생님(유동근 분)이 새로 부임하여 그 곳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푸근한 인상의 노총각 교사로 분한 유동근 씨의 연기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마음씨 착한 선생님과 선생님의 말을 고분고분히 따르면서 성장하는 학생들. 비록 드라마 속 이야기이지만 지금의 막장 교실 분위기와 비교하면 옛날에는 제자가 선생님에게 대든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 때 그 시절의 교실은 선생님과 제자들 간의 정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의 부제는 ‘조선 사람들, 단원의 그림이 되다.’이다. 조선 시대의 생활상들은 이제 단원이 남긴 그림으로만 확인할 수 있다. 단원의 <서당> 속 학습 능력이 부진하고 마음이 여린 제자를 보면서 찡그리고 있는 훈장님의 표정 뒤에는 어떻게 하면 올바른 아이로 만들 것인지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단지 제자가 학습 부진아라고 해서 그를 미워해서 꾸중하는 것이 아니다. 다 잘 되라고 훈계하는 것이다. 단원의 그림을 보면서 그림 속 훈장님, 그리고 엄격한 호랑이에다가 마음씨가 착한 누룽지 같은 선생님이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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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책 1001권 - 1001 Books You Must Read Before You Die (2006) 죽기 전에 꼭 1001가지 시리즈
피터 박스올 지음, 박누리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0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방대한 분량, 그리고 ‘죽기 전에’라는 단어에 끌리다

시중에 무수히 쏟아져 나오는 책들을 보면 사람이 살면서 꼭 읽어야 할 책들이라는 메인타이틀 혹은 부제를 내건 일종의 북 다이제스트들이 많이 출간되었다. 어떤 책은 한술 더 떠서 교양인이라는 고귀한 칭호를 내세워서 목록의 도서들을 꼭 읽어야 한다고 독자들 앞에서 유혹의 손길을 보내고 있다. 책을 좋아하는 애독가가 아닌 이상 요즘 대부분 사람들은 일 년에 책 한 권도 살까말까 한다. 값비싼 명품들이 즐비한 고급 매장에서 강림하시는 지름신은 서점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가 없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독자들을 ‘교양인’이라고 치켜세우면서 자신들을 구입하라고 알랑거리고 있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북 다이제스트를 선호하는 편이다. 북 다이제스트의 도서목록에는 정말 읽어야할 고전들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 북 다이제스트의 목록들을 비교해보면 그 나물에 그 밥이다. 저자와 출판사를 달라도 중복되어 목록에 포함된 책이 꽤 몇 권 있기 때문이다. 간혹 일부 몇 권은 새롭게 고전으로 각광받고 있는 근래의 책들도 있지만 아직 우리나라에 번역되지 못한 것들도 있다. 그래서 도서목록의 구성 및 취지, 내용 소개의 충실성 등을 따져가며 자신에게 맞는 북 다이제스트를 골라야 한다.

어떤 북 다이제스트는 꽤 적지 않은 분량을 내세워 질보다 양으로 승부하는 것도 있다.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책 1001권』이 그 중의 한 권이다. 지금까지 접한 북 다이제스트 도서 중에서 분량이 제일 많다. 페이지만 해도 900페이지 넘는다. 방대한 분량만큼 소개하고 있는 작품의 수는 1001권이다. 읽기에는 만만치가 않지만 1001이라는 어마어마한 수는 무의적으로 큰 수에 연연하는 독자들로 하여금 궁금증을 유발하게 하고 있다. 1001권의 책들이 문학 작품이라서 문학을 좋아하는 애독가들에게는 정말 유용한 책이다. 그리고 제목이 단순해보일지라도 ‘죽기 전에’라는 글자가 독자들을 이끌리게 하는 보이지 않는 힘을 가지고 있다. ‘죽기 전에’로 시작하는 예능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는 남자 연예인들이 남자가 죽기 전에 꼭 해야 하는 것들에 도전한다. 그리고 중년의 배우 잭 니콜슨과 모건 프리먼이 출연하는 영화 [버킷 리스트]의 부제가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것들’ 이다. 이제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는 황혼기 인생의 두 노인이 죽기 전에 하고 싶어 했던 것들을 한다는 내용이다.   

인간은 평생 하고 싶은 것이 많아도 죽기 전에 다 하지 못한다. 우리의 삶이 무한하기에 ‘죽기 전에 해야 한다’라는 조건은 한 번쯤은 해보고 싶다는 강한 삶의 의욕을 불러일으킨다. 반응이 뜨뜻미지근하다거나 삶의 의욕 같은 것이 나지 않는다면 인생을 헛살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정말 [버킷 리스트] 속의 두 노인들처럼 흰 머리가 다 된 마당에 불현듯이 아프리카 세렝게티에 가서 짐승들을 사냥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면 현실적으로 실천하기에는 불가능하다. 그리고 죽음의 신은 짓궂다. 언제 인간의 목숨을 빼앗아갈지도 모른다.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영국의 극작가 버나드 쇼의 묘비명처럼 죽고 나서야 우물쭈물했던 세속의 삶에 후회하게 된다. 독서라는 정신적 활동도 죽으면 못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불의의 사고로 뇌 기능 이상 혹은 실명이 된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살아있으면서도 독서라는 유쾌한 활동을 하지 못하는 신세가 되어버린다


 

우둔한 애독가, 북 버킷 리스트에 도전하다 
 

양이 많다고 해서 북 다이제스트의 내용이 훌륭하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집필에 참여한 저자들은 각 국의 권위 있는 100명의 문학가, 평론가, 학자들이라는 점에서 믿음이 간다. 동, 서양, 라틴 아메리카, 제3대륙 등 대륙별 다양한 나라의 작품들을 소개하고 있다.  단순 고전뿐만 아니라 추리소설, SF, 판타지 등 장르도 다양하다. 그러나 소개된 작품이 많다보니 모든 책이 우리나라에 다 번역된 것도 아니다. 그러나 1001권의 번역은 현재진행형이다. 『죽기 전 1001권』이 2007년에 처음 나온 이후 지금까지 생소하지만 유명한 외국 문학 작품들이 조금씩 우리나라에서도 번역되어 출간되고 있다. 한 작품의 소개에 활자만 구성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작품 속 삽화와 작가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는 사진들이 있다. 그렇다고 1001권의 모든 작품에 그림이 딸려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약간의 그림들이 그 작품에 대한 내용을 각인시켜주는데 시각적인 효과를 주고 있다.  

양도 많고, 가격도 꽤 많은 터라 이 책을 소장하고 있지 않지만 가끔 필요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 도서관에서 이 책을 대출하는 데만 해도 8번 정도 되었다. 전 세계적으로 문학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으면서도 아직까지는 한국 독자들에게 생소한 라틴 아메리카 작가와 지금까지 활동 중인 외국 작가들을 이 책을 참고하면서 알게 되었다. 이 책 덕분에 살면서 읽어보지도 못했던 괴테의 『파우스트』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를 일게 되었다. 만약에 『죽기 전 1001권』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이런 훌륭한 문학고전들도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현대 문학으로 편향되어 있었던 편식적인 독서 습관을 고칠 수 있었다. 고대부터 근대 이전의 문학고전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사실 필자는 이 책을 길잡이 삼아 『죽기 전 1001권』에 소개된 1001권의 책을 읽으려는 개인적인 독서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 이 책이 자칭 애독가의 심장 속에 1001권이라는 방대한 분량의 책을 읽고 싶은 열망을 불러일으켰다. 관련 작품을 읽을 때마다 리뷰로 작성한다. 일종의 북 버킷 리스트라고 해야 되나? 시작한 지 4개월 정도 되었지만 고작 읽고 리뷰로 남긴 작품이 달랑 10여 편이다. 강렬한 독서 의욕과 비교하면 활동 결과물이 부진한 것은 인정하고 있으며 필자가 백발이 성성하고 노안이 찾아오는 그 날까지 독서를 계속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미래에 취직하고, 결혼하고, 애들 부양하다가 살다보면 독서 프로젝트가 잊혀버릴 수 있다. 그러나 죽어서도 후회하지 않는, 정말 제대로 된 독서를 하면서 살다가 죽는 것이 독서를 끔찍이도 좋아하는 필자의 커다란 소망이다. 독서는 인간의 정신을 성숙하게 만드는 정신적 운동이다. 우공이산(愚公移山)이라는 고사처럼 무리하지 않고 조금씩 꾸준히 한다면 나름의 성과를 거둘 것이라고 우둔한 애독가는 믿고 있다. 
            

  

 

배보다 배꼽이 커버린 책 
 

그러나 좋은 책에도 나름 아쉬운 점도 있었다. 이 책의 최대 단점이라면 소설 작품으로 구성된 지나친 편향성이다. 1001권 중 대부분이 소설이다. 희곡도 몇 편 소개하고 있지만 극히 일부분이다. 더구나 시가 많이 소개되어 있지 않다. 유일하게 소개된 시가 로트레아몽의 『말도로르의 노래』뿐이다. 워즈워스, 심지어 노벨상을 받은 T.S. 엘리엇, 파블로 네루다와 같은 시인들은 등장하지도 않는다. 그야말로 죽기 전에 읽어야 할 ‘소설’ 책이라고 불려도 무방할 구성이었다. 문학이라는 배보다 소설이라는 배꼽이 큰 책이었다. 이미 고전으로 널리 알려진 작품들을 제외하고 조금씩 문학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현대 작가의 작품과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는 고전들을 발굴하려는 집필진의 의도는 좋았지만 장르의 다양성을 고려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그리고 동양 문학에 대한 소개 분량도 적었다. 대부분 중국, 일본 작가가 많았으며 한국 작가는 고작 2명(故 박경리의 『토지』, 조정래의 『태백산맥』이다. 중국과 일본에 비해 아직까지도 외국 땅에서 융숭한 대접을 못 받고 있는 한국 문학의 현실이기도 하다.  

 

   

이언 맥이완? 이언 매큐언?

그리고 옥의 티가 있다면 ‘이언 맥이완’에 대판 표기의 문제이다. 영자로는 Ian R. McEwan. 우리나에 번역되어 출간되고 있는 작품에서는 ‘이언 매큐언’으로 표기하고 있다. 영국 출신이며 우리나라에 그의 작품이 꽤 번역되어 있는 작가이다. 이언 매큐언이라는 이름의 작품이 본격적으로 소개된 지 14년이 되었다. 지금도 ‘이언 매큐언’이라는 표기로 통용되고 있다. 『죽기 전 1001권』에서도 이언 매큐언의 작품이 세 편 정도 소개되고 있을 정도로 비중 있게 다뤄지고 있다. 아무리 외래어 한글 표기가 완전한 통일안으로 협의되지 못했더라도 이미 우리나라에 꽤 소개된 작가의 이름을 잘못 표기되어 있으면 독자들에게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    
 

 

  


좀 더 나은 훌륭한 북 다이제스트가 되기 위해서는 
 

『죽기 전 1001권』은 분량 면에서나 내용면은 훌륭한 문학 작품 다이제스트이다. 『죽기 전 1001권』에 버금가는 책이 다시 나오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출간된 지 3년이 지난 만큼 내용에 대한 개정이 필요하다. 앞에서 언급한 이언 매큐언의 외래어 표기는 그렇다 치더라도 3년이라는 세월동안에 변방 국가의 문학 작가와 작품들이 우리나라에 소개되었다. 우리나라의 독서계에 외국문학이 제대로 널리 보급되기 위해서는 현세에 걸맞은 내용으로 보충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서 2007년 첫 출간 당시, 1001권 목록에 포함된 에밀리오 살가리의『산도칸: 몸프라쳄의 호랑이들』은 우리나라에 출간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2년 뒤인 2009년에 열린책들에서 번역 출간되었다. 이 작품 이외에도 뒤늦게 서야 번역 출간된 작품들이 꽤 있다. 또 다른 사례를 들자면 올해 출간된 다니엘 파울 슈레버의『한 신경병자의 회상록』(김남시 역, 자음과모음 출판) 이다. 지금『죽기 전 1001권』에서는 미출간 상태로 소개되고 있다.


애독가들을 위한 훌륭한 북 다이제스트가 되기 위해서는 개정판이라도 재출간되어야 한다. 물론 문학뿐만 아니라 음악, 미술 분야에도 새로운 정보들이 쏟아져나오고 있으며 특히나 여행지 같은 경우 시대가 변할수록 여행 정보도 조금씩 달라지게 된다. '죽기 전에' 시리즈가 일상 생활에서 유용하고 깊이 있는 정보들을 소개하고 있는 만큼 내용 개정을 통해서 죽기 전에 하고 싶었던 것들 다 해보고 싶어하는 열혈 독자들을 위한 시리즈로 각인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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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그린 그림 - 미술사 최초의 30가지 순간
플로리안 하이네 지음, 최기득 옮김 / 예경 / 2010년 5월
평점 :
절판


 

미술사적 사실, 진실 혹은 거짓  

 


 

 

 

 

 

 

 

 

 

 

 

 

 알브레히트 뒤러 <멜랑콜리아 I>  

 출처: 네이버 백과사전 http://100.naver.com/100.nhn?docid=875525   
  

 #1 인간의 꿈을 그림으로 표현한 최초의 화가는 살바도르 달리이다. 
 

 #2 팝 아트라는 장르를 최초로 시도한 화가는 앤디 워홀이다. 
 

 #3 동판화를 처음 그린 화가는 알브레히트 뒤러이다.   

 

 

미술사에 조금이라고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들에게는 다음과 같이 제시된 세 가지 미술사적 사실들이 맞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달리의 그림들은 의식 속의 꿈이나 환상의 세계를 주제를 하고 있다. 팝 아트라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인물이 앤디 워홀이다. <기사와 죽음과 악마><멜랑콜리아Ⅰ><서재의 성 히에로니무스>는 뒤러의 3대 동판화 걸작이라고 불릴 정도로 뒤러는 판화의 대가이다. 지금까지 출판되어 온 각종 미술사 관련 도서에서 세 명의 거장들이 남긴 미술의 발자취를 많이 볼 수 있기에 자연스럽게 이들이 미술사에 새 지평을 열었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세 가지 사실들은 틀린 내용이다. 이들은 그 분야에 관련된 작품들을 많이 남겼을 뿐이지 최초로 시도한 것은 아니다. 

 

뒤러가 목격한 꿈 속 세상   


플로리안 하이네라는 저자의 이력을 살펴보면 딱히 눈에 띌만한 내용이 없다. 대학에서 미술사를 전공했을 뿐이지 저자는 전문적인 미술사가가 아닌 프리랜서 사진작가이다. 저자의 이력 때문에 책의 내용이 깊이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울 것이다. 하지만 부제에도 밝혔듯이 미술사에 관한 책이지만 지금까지 출간된 미술사 관련 도서와 차별화 하고 있다. ‘최초’라는 키워드를 통해 미술사를 소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파트마다 순차적으로 등장하는 각종 미술사적 용어 위주로 미술사를 풀어내지 않아서 읽는 내내 지루함이 없으며 관심 있는 챕터를 골라 읽을 수 있다. 앞에서 언급한 잘못된 세 가지 사실들과 관련된 내용은 각 챕터별로 구성되어 있다. 이 세 가지 내용에 대해 살짝 언급해보자면.....  

 

동판화를 처음 그린 화가는 오락용 카드를 만들었던 ‘오락 카드의 대가’라는 별칭으로 알려져 있는 무명 화가가 그렸다. 팝아트 장르를 최초로 선보인 화가와 작품은 리처드 해밀턴의 <무엇이 오늘날의 가정을 이토록 특이하고 매력적으로 만드는가?>이다.

그리고 최초의 꿈 그림을 그린 화가는..... 놀랍게도 알브레히트 뒤러이다.   

 

이 책의 각 챕터에는 최초의 누드화, 최초의 정물화, 최초의 초상화, 최초의 풍경화 등을 소개하고 있어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내용들로 가득하다. 하지만 그 중에서 제일 기억이 남고 흥미로웠던 챕터는 단언 최초의 꿈 그림에 대한 내용이다. 개인적으로는 수많은 미술사 관련 도서를 뒤적거리지는 않았지만 뒤러가 자신이 꾼 꿈의 내용들을 그림으로 기록한 사실은 어느 미술사 도서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내용이다.  

 

뒤러가 꿈에서 본 세상을 그린 그림은 단순하다. 어마어마한 물기둥이 하늘 위로 솟아올라 여러 개의 거대한 물폭탄이 되어 떨어지는 장면이다. 꿈에서 이루어진 허구의 장면이지만 직접 꿈을 꿈으써 가상 현실을 체험한 것이나 다름없는 뒤러에게는 그 장면이 무섭게 느껴졌는가 보다. 그는 꿈에서 본 장면들을 그림만 그린 것이 아니라 장면에 대한 상세한 기록과 느낌까지 글로 남겼다.       

 

  물기둥은 커다란 소리를 내면서 들판 전체를 휩쓸어버렸다. 땅을 내리쳤던 물기둥은  

  너무나 빨랐고 바람소리와 함께 무섭게 울렸다.

  - 뒤러가 쓴 글의 일부(1525년 기록), 플로리안 하이네 『거꾸로 그린 그림』p 228 -  

  

이전 미술사의 그림들은 눈 앞에 펼쳐진 장면을 그렸다. 현실이 아닌 상상이 가득한 그림을 그렸지만 대부분 성서 속의 신비적인 종교적 내용을 그린 것이 고작이다. 수면 중에서 일어나는 환상적인 심상인 '꿈'을 그림으로 기록한 점은 미술사에서는 이례적인 일이다. 뒤러가 최초의 꿈 그림을 그렸다고 해서 살바도르 달리와 같은 후세의 화가들로 이어진다는 것은 비약적일지도 모르나 꿈을 그림으로 남긴 새로운 미술의 시도가 초현실주의가 등장했던 20세기 초가 아닌 이보다 먼저 수백 년 전인 16세기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은 놀라운 점이다.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한 위대한 미술사의 오리진(Origin)  


책 한 권에는 30가지의 미술사 최초의 순간들을 담아냈지만 일부 내용들은 나름 미술사 지식의 정도가 중, 고급이라고 자부하는 독자들에게는 그리 새롭게 느껴지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읽고 배우는 미술사가 기록된 종이에는 순차적으로 구성된 미술사조에서 두드러진 활약을 한 유명 미술가들의 이름과 명화들로 가득 차 있다. 이상하게도 미술사에서는 ‘최초’라는 내용에 대해서 중점적으로 다루지 않고 있다. 그리고 세세한 미술사적 기록들이 후세에 잘 알려지지 않은 결정적인 이유는 ‘화가’라는 시대상의 인식이 작용했다. 중세부터 르네상스까지 화가는 단지 그림을 그리는 사람일 뿐이었다. 그 때는 미술은 오랜 세월을 연마하면 얻을 수 있는 특별한 능력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멋진 그림 한 점 남겼다 치더라도 그림을 그렸을 화가에 대한 기록과 증거를 일절 남기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동판화가 ‘오락 카드의 대가’라는 이름 없는 화가가 처음 그렸다는 사실을 지금까지도 알지 못하게 된다. 역사속에서 기록되지 않은 화가들은 후세에 와서도 무명으로 알려진 현실에 대해 서러울 판에 자신의 위대한 공로가 다른 이에게 돌아가게 된다면 하늘에서 억울해 할 것이다. 이 책을 읽음으로 해서 미술사에서 가려져 있던 이름 없는 오리진(Origin)들을 알고 있어야 할 것이다.

이 책이 다른 미술사 책들과 비교하면 전문성이 떨어지지만 이전에 미술사 책에서 볼 수 있었던 구성 형식과 다르다는 점, 그리고 새로운 관점으로 미술사를 접근했다는 점에서 이제 막 미술사라는 흥미로운 학문에 발을 내딛는 독자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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