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사람들 열린책들 세계문학 117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석영중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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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http://cafe.naver.com/openbooks21/742  

 

 네끄라소프처럼 독서하기 
  

새벽 2시, 밤이 깊으면 깊어질수록 편의점에 들어오는 손님의 인적은 드물어지고, 편의점 안에 있는 것은 오직 나와 진열된 물품뿐이다. 조용하다 못해 너무 고요하다. 딱 잠이 몰려올 수 있는 최적의 분위기이다.  

2년간의 군인으로서의 임무를 마친 뒤, 사회로 복귀하여 3개월째 밤 12시부터 아침 8시까지 아르바이트로 편의점 카운터로 일하고 있다. 군인 시절에도 낮과 밤이 바뀐 생활을 했던지라 전역을 하고나면 원 없이 잠을 실컷 잘 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우습게도 사회에 나와서도 야행성 활동은 계속 되었다. 아르바이트 모집 전에 편의점 사장님과 면접을 하면서 군 생활 시절에 많이 밤새봤다면서 나를 고용해달라고 자신 있게 어필했었건만 진짜로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게 될 줄이야.....   

편의점 안에 혼자서 카운터에 앉는 것도 그리 편한 것도 아니다. 그래도 속도는 느리지만 인터넷을 할 수 있는 컴퓨터가 있어서 다행이다. 그래서 그렇게 지루하지는 않다. 심심하면 간혹 열린책들 카페에 올려져 있는 글들을 읽으니깐. 그러나 쏟아져오는 잠을 못 이기지 못해 피곤함이 몰려오는 것은 항상 느끼게 된다.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 많지 않은 잠으로 지쳐있는 정신을 회복시키고 점심시간에 일어나면 그 때 몰려오는 피곤함이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하지만 낙천적으로 생각해보면 이 일도 나름 장점이 있긴 하다. 카운터에 앉아 있으면 멍 때린다거나 컴퓨터 모니터만 보는 게 아니다. 개인적으로 하고 있는 공부와 독서를 한다. 새벽 2~3시 이후부터는 손님이 드문드문 오게 되고, 편의점 내부는 조용해서 공부와 독서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 새벽에 편의점에서 읽었던 책은 도스또예프스키의 처녀작『가난한 사람들』이다. 광대한 도스또예프스키의 문학 지대에 첫 발을 내딛게 되었다.  

그런데 이 책에 관련된 일화가 재미있다. 러시아의 시인 네끄라소프가 밤 새워 가면서 이 작품을 끝까지 완독하자마자, 커다란 감동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당시 러시아의 권위 있는 문예 비평가였던 벨린스키에게 원고를 주면서 “새로운 고골이 나타났다.”라는 말을 남겼단다. 당시 신인 소설가였던 도스또예프스키의 천재성을 한 눈에 알아 봤던 것이다. 이 작품이 얼마나 훌륭했기에 무명이나 다름없었던 신인 소설가에게 ‘새로운 고골’이라는 극찬을 아끼지 않았던 걸까?  도스또예프스키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무지의 상태에서 나도 네끄라소프와 심정을 느끼면서 그의 처녀작을 밤 새워 읽게 되었다.  

네끄라소프도 도스또예프스키에 대해서 모르는 상태에서 이 작품을 접했을 것이다. 책은 새벽 2시부터 읽기 시작했다. 간혹 몇 몇 손님이 들어와 흐름이 끊기기는 했지만 다행히도 독서를 하는 도중에 피곤함이라는 불청객은 찾아오지 않았다. 4시 10분에 책을 다 읽었다. 그리고 책을 덮고 난 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러시아의 우석훈이 나타났다.” 

  

 


 공포 경제학적 소설

작품 속 남녀 간의 러브 스토리에는 당시 러시아 빈곤층의 현실과 애절함이 숨어져 있다. 보통 사람들이 알려고 하지 않는 가난하고 무력한 사람들만 느낄 수 있는 고독과 상대적 박탈감이다.『가난한 사람들』속에 숨겨진 공포의 경제학을 발견하면 서늘한 진실에 전율을 느끼게 된다.『88만원 세대』출간했던 당시, 우리나라 기성세대들 뿐만 아니라 88만원 세대들까지 우석훈 박사의 지적에 대해서 당혹감과 놀라움을 금치 못했던 것처럼...   

 

 

3년 전, 어느 경제학자가 쓴 독특한 제목의 책이 서점가뿐만 아니라 사회에까지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름은『88만원 세대』. 이 한 권의 책은 우리나라 사회 속에 살고 있는 젊은 세대의 현실과 이로 인해서 발생한 세대 간의 경제학적 갈등을 날카롭게 집어내고 있다. 이때부터 우리나라 20대들은 ‘88만원 세대’라는 불명예스러운 직함을 달게 되었다. 이 책은 우석훈 박사의 단독 저작이 아니라 박권일이라는 사회부 기자와 함께 쓴 것이다. 그래서 박 기자 특유의 취재의 눈은 88만원 세대가 겪고 있는 어두운 생활 모습을 적나라하게 포착하고 있다. 우석훈 박사는『88만원 세대』출간 이후에도 ‘한국경제 대안 시리즈’라는 제목의 책을 냈는데 베스트셀러가 된 이 책을 포함해서 4권 정도 나왔다. 그의 책들은 공통적으로 사람들이 알려고 하지 않는 불편한 사회적 진실들을 경제학적 관점으로 비판, 분석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래서 그의 연구 활동을 ‘공포 경제학’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도스또예프스키의 『가난한 사람들』도 일종의 공포 경제학적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전제적인 작품 구성은 가난한 하급관리 마까르 제부쉬낀과 역시 가난한 바르바라 알렉세예브나와의 연애 모드로 설정하고 있다. 서술도 두 사람 간의 서신 교환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얼핏 보면 그냥 가난한 연인들이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서로 사랑을 속삭이고 연애하는 이야기라고 단정지을 수 있지만, 끝까지 읽어보면 가볍게 읽을 단순한 연애 소설이 아님을 느낄 수 있다. 편지 내용에는 두 인물이 처하고 있는 상황을 알 수 있는 구절이 곳곳에 드러나 있다. 제부쉬낀은 넥타이와 셔츠 하나도 일 년에 한 번 살까 말까 하는 정도의 가난한 상태이다. 재미있게도 알렉세예브나는 그런 제부쉬낀을 동정하면서도 제발 가난한 티를 내면서 살지 말라고 사랑의 잔소리(?)를 하기도 한다. 자신도 제부쉬낀을 동정하고 챙겨줄 수 있는 그런 부유한 입장도 아니고 그럴 잔소리할 여유가 있는 것도 아닌데도 말이다. 결국 이 두 사람의 가난한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게 된다. 알렉세예브나가 시골 농장 대지주인 비꼬프와 청혼하기 때문이다. 알렉세예브나의 청혼 사실을 알고 그녀에게 보낸 제부쉬낀의 마지막 편지에는 사랑의 실패에 대한 안타까움을 느낄 수 있다. 가난한 처지와 사랑의 실패가 제부쉬낀을 두 번 죽이게 된 셈이다.  
 

 

  

 

 가난이 죄인가요?

 

제부쉬낀은 자신의 가난한 처지를 겨냥한 알렉세예비치의 잔소리가 불편했던 것일까? 결국에는 참고 있었던 불편한 감정을 편지 통해서 털어 놓는다.  

 

 

 

  하지만 나의 소중한 친구여, 당신에게서 그런 말을 듣는 게 너무 괴롭습니다! 이런 소릴  

  한다고  화를 내지는 말아요. 제 가슴속은 번민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까다로운 법이죠. 선천적으로 그래요. 이미 옛날부터 느끼고 있었던 일입니다. 가난한 사람은  

  보통 사람과 다른 눈으로 세상을 쳐다보고 길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을 곁눈질로 쳐다봅니다.  

  주변을 항상 잔뜩 주눅이 든 눈으로 살피면서 주위 사람들이 한 마디 한 마디에 신경을 씁니다. 

  누가 자기에 대해서 뭐라고  하는 것은 아닐까, 혹은 다른 사람들이 <뭐 저렇게 꼴사나운 놈들이 

  다 있어!>,  <대체 저렇게 가난한 사람은 무슨 느낌을 갖고 살까?>, 아니면 <이쪽에서 보면  

  어떤 꼴을 하고 있고 저쪽에서 보면 또 어떤 꼴일까?> 등등의 말들을 할까 봐 남의 말에  

  일일이 신경을 씁니다. 

   - 도스또예프스키『가난한 사람들』석영중 역, p 129 -

이 구절을 보게 되면 인간의 심리 묘사에 대한 도스또예프스키의 뛰어난 관찰력을 알 수 있다. 이 작품이 쓰고 있을 19세기 중반 러시아의 가난한 사람들이나 수 백 년이 지난 지금의 빈곤층들의 마음은 같을 것이다. 단지 '가난'이라는 이유만으로 죄인 취급하는 따가운 시선은 빈곤층들의 마음을 더욱 고통스럽게 만들고 있다. 


며칠 전에 빈곤층 자녀일수록 정서 불안이 심각하다는 통계의 기사를 접했다. 특히 열 명중 한 명 꼴로 ADHD(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 의심 증상이 있다고 한다. 이런 빈곤층 자녀와 ADHD 발병의 상관 관계의 원인을 자녀를 향한 빈곤층 부모의 소홀한 훈육과 일반 가정보다 스트레스가 심하다는 점을 들고 있으며 낮은 경제력 때문에 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한 것도 또 다른 원인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권위 있는 연구소의 자료라도 그냥 믿어버리지 말고 꼼꼼히 따져가며 읽어야 한다. 단순하게 빈곤층 가정 입장 쪽으로 원인으로 몰아가는 주장을 그대로 믿게 되버리면 오히려 빈곤층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꼴이 된다. 정신학계에서는 ADHD의 원인을 정확하게 규정하여 밝혀진 바가 없으며 다만 여러가지 연구 결과들을 가지고 원인을 추측하고 분석하는 것이다. 그 중에는 정서 박탈 같은 심리 사회적인 요인도 정서 장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고 한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빈곤층 아이들에게 향하는 주위의 시선들이 그들을 불안하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우스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슬픈 봉원 어린이의 추억

 

그런 예를 쉽게 들어보자면, 8월 18일에 방영된 <황금어장 - 무릎팍 도사>에 출연한 개그맨 이봉원 씨가 있다. 그는 자신의 어린 시절에 대해서 언급을 하는데 사실은 지금과 같이 성격이 쾌활하지도 않았으며 의외로 어렸을 때 무척 내성적이고 소심했다고 밝혔다. 허름한 단칸방에 여섯 식구가 살 정도로 집안이 너무 가난했었고 얼마나 가난했었으면 초등학생 때 학교에 가면 옷도 만날 같은 것만 입고 다녔다고 한다. 봉원 어린이(?)의 짝꿍은 당시 유복한 집안에서 자란 예쁜 여자아이였는데 가난한 티를 내고 다니는 봉원 어린이를 무척 싫어했던가 보다. 얼마나 싫어했었으면 책상에 선을 그어 봉원 어린이에게 선 넘어 오지 말라고 경고를 했다.  

 

대부분 남성이라면 옛 초등학생 시절에 한 번쯤은 겪어봤을 상황이다. 그래서 여자 짝꿍의 어이없는 으름장에 대항하여 자신의 책상 권리(?)를 찾기 위한 대립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우리의 소심한 봉원 어린이는 그만 주눅이 들어 하루하루를 긴장감 속에서 살았다고 한다. 손가락 하나라도 짝궁의 책상 범위로 넘어오지 않기 위해서.....  이봉원 씨는 녹슬지 않은 재치있는 개그로 썩 유쾌하지 않은 어린 시절을 재미있게 풀어놓았지만 지금의 빈곤층 아이들의 불안한 마음은 아마도 어린 봉원 씨가 느꼈던 심정이 아닐까 생각된다. 가난한 사람들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는 몇 몇 사람들은 자신들이 만든 보이지 않는 벽을 통해서 이들과의 접촉을 피하려고 한다.  
 

 

 

 ‘가난한 사랑 노래’는 이제 옛 말?

 

지금은 과거보다 경제도 좋아졌고 대부분 잘 사는 사람이 많아진 것은 사실이다. 봉원 씨와 같은 이런 웃지 못할 상황은 당시 못 살았고 소박했던 시대의 재미있는 추억으로 볼 수가 있다.  하지만 오히려 어른이 되어서도 그런 어리석은 생각을 버리지 못한 일부 사람들이 있다. 특히나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자녀를 낳아 기르는 부모가 된다면 곤란하다. 그런 부모는 자식들에게 가난한 집안의 아이와 어울리지 말라고 교육을 할 것이다. 어렸을 때 가난한 짝꿍과 어울리면 괜히 자신도 가난한 아이로 볼게 될까봐 책상 위에 선을 그었던 것처럼 그런 부모들은 자신의 집안이 가난하다는 소리를 들을까봐 마음껏 뛰어 놀고 어울려야 할 아이들의 순수한 동심에도 선을 그어놓는다. 더 무서운 사실은 아이들은 부모가 하는 것을 보고 그대로 똑같이 따라하는 습성이다.

그런 잘못된 교육을 받고 자란 아이들은 커서도 부모의 못된 생각을 되물림받게 된다. 자신의 이상형은 무조건 돈이 많아야 하며, 대기업 임원과 같은 생활이 보장되는 사람을 만날려고 한다. 그러다보니 성격보다는 우선적으로 배우자의 직업, 재산 보유 그리고 집을 가지고 있는가 없는가에 대해서 먼저 따지고 보려고 한다. 결국 가난한 형편인 사람들에게는 결혼은 그림의 떡이다. 이제 가난한 사랑이라는 것도 그들에게는 꿈꿀 수도 없는 사치스러운 연애일 뿐이다.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 신경림 『가난한 사랑 노래』중에서 -

이 시처럼 가난하고 애틋한 추억의 감정이 있는 사랑은 이제 옛 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들은 이 시 구절처럼 사랑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모든 것을 버려야할 정도로 자신의 삶을 자포자기한다거나 현실을 비정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간혹 우리보다 힘든 생활고에 살면서도 항상 웃음을 잃지 않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그분들은 세상에 대한 믿음과 진실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적지만 그런 분들이 있기에 차갑기만한 현실 속에서도 아직도 따뜻한 인간애를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은 정말 축복인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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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20 03:4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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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과 장미 - 권리를 위한 지독한 싸움
오도엽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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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빠는 왜.....” 
 
최근 인터넷에서 한 어린이가 쓴 짤막한 시가 네티즌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모 연예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서 출연한 어느 연예인이 초등학생들이 직접 쓴 동시들을 낭독하게 되면서 그 중에 이 시가 전국적으로 전파를 타게 되었다.   

  "엄마가 있어 좋다. 나를 이뻐해주어서."
  "냉장고가 있어 좋다. 나에게 먹을 것을 주어서."
  "강아지가 있어 좋다. 나랑 놀아주어서."
     "아빠는 왜 있는지 모르겠다."     

이 시가 낭독된 이후, 남성 연예인들은 어린이들의 순수한 동심에 웃었지만 그들의 웃음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웃음이 사라지자 그들의 얼굴에는 씁쓸함의 여운이 감돌고 있었다. 

자신들도 언젠가는 '아빠'가 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어린이가 말한 이 시 속의 '아빠'도 될 수 있기에.....   

이 시가 TV에 공개되자마자 삽시간으로 인터넷으로 전파되었다. 그리고 이 방송과 관련된 인터넷 기사들도 올라오게 되었다. 이와 관련된 각종 인터넷 포털 사이트의 기사들의 제목을 보게 되면 한 편의 어설픈 삼류 멜로 드라마 속 대사를 상기시킨다.  '이 기사 읽어보세요.'라는 식으로 어떻게든 기사 클릭 수를 높이기 위해서 제목에 독자들의 감성을 자극할 수 있는 문구들을 연발하고 있다.     

 

  '초등학생의 시가 대한민국의 아버지를 울리다.'   

  '초등 2년생의 시에 눈물젖은 대한민국의 아버지들.'

  '짧은 시에 담긴 우리네 아버지들의 슬픈 자화상.'   

 

기사의 출처와 작성한 기자가 각기 다른데도 서로 약속이나 하듯이 감성적인 문구를 타이틀로 내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이런 기사문을 접한 네티즌들의 반응도 하나같다.  

'가정을 위해서 밤까지 일하는 아버지들의 모습이다.' ,  

'일 때문에 아이들과 같이 놀아준 적 없는 무책임한 아버지로서의 모습을 반성할 수 있었다.'    

'주말에 쉬는 날이면 평일 직장 생활 때문에 피곤해서 아이들과 제대로 논 적이 없는 거 같다.'

그리고 어느 기사의 마지막 글에는 대한민국의 아버지들의 존재감을 다시 한 번 일깨워주었다고 평가하기도 하였다. 마지막에 희망적인 메시지로 마무리지어서 우울한 기사문의 반전을 꾀하려는 기자의 의도는 좋다.  

하지만, 이번 초등학생이 쓴 시가 모든 아버지들이 자신의 행동에 대해 스스로 반성할 수 있는 감동적인 메시지로 봐서는 안 된다. 그리고 이 시가 모든 아버지들이 씁쓸한 웃음만 나게 해주는 것도 아니다. 직장 없는 아버지들은 이 시를 보자마자 쓴웃음보다는 오히려 자신의 처지에 분노를 느꼈을지도 모른다.  

     

 

  일을 하지 못해서 슬픈 비정규직 근로자 부모님들  

이 시를 쓴 초등학생은 일 나가는 자신의 아버지가 집에서 놀아주지 못한 점에 대해서 집에서 놀아주는 어머니를 비교하여 집에서 존재감이 없는 아버지를 부각시키고 있다. 그래서 초등학생이 쓴 시의 아버지는 일을 하고 있는 '근로자'이며 '노동자'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나라 모든 아버지들이 다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도 어디선가 자신의 직장을 되찾기 위해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투쟁을 벌이는 비정규직 근로자(노동자)들도 있다.    

이 책에서는 오늘도 일 할 권리를 찾기 위해서 투쟁중인 비정규직 근로자의 삶과 애환을 담아내고 있다. 책에 등장하는 이들의 사연은 다양한다. 적은 보수이지만 가정을 이끌어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는 직장을 가진 근로자였다가 한순간에 '비정규직' 근로자가 되어버렸는데, 대부분 회사가 갑작스럽게 파산을 맞게 되면서 직장을 잃어버렸다거나 열악한 작업환경 속에서 고생해서 일하다가 결국에는 보수나 재정적 가치는 한 푼도 받지도 못한 채 퇴직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주인이 받는다.' 라는 속담처럼 비정규직 근로자들은 고생한만큼 그에 대한 대가를 얻는 보람조차도 느끼지 못하였다.   

비정규직 근로자가 아버지들만 있는 것인가?  아이들을 예뻐해 주는 어머니들도 사정이 마찬가지다.  병원에서 간호 업무를 맡았다거나, 대학교 내 청소 용역, 학습지 교사 등 직업은 각기 다르지만 이들에게는 죽어라 일만 하다가 얻은 것이 신체를 망가뜨린 '병' 그리고 이제는 일을 할 수 없는 비정규직 근로자라는 꼬리표를 다면서 생긴 '마음의 상처'였다.  

특히 부부중에 자식들에 대한 관심을 많이 쏟은 사람이 어머니다. 제 자식 좋은 교육 받게 해서 좋은 대학 보내주고 싶은 마음은 자식을 향한 모든 어머니들의 공통된 애정이다. 보이지 않는 희망을 되찾기 위해서 하루하루 24시간 공장 밖에서 병든 몸을 이끌고 피켓을 든 채 울부짖는 비정규직 근로자 어머니들은 자식들을 행복하게 해주지 못한 무능력함에 대한 절망감 때문에 마음도 병이 든 채 살아가고 있다.   

   

 비정규직 아버지를 두 번 죽이게 만든 초등학생의 시 
  

  대기업이 건설하는 아파트 브랜드 이름을 보세요.
  이곳에 살면 삶이 참 안락하고 행복할 것 같잖아요.
  하지만 이 아파트를 짓는 사람들은 늘 공포와 불안 그리고 고통에 시달려요.    

  - 『밥과 장미』 [어느 아파트 건설업체 비정규직 근로자의 말] 오도엽, 삶이 보이는 창, p 142 -  

어느 비정규직 근로자의 말처럼 잘못될 대로 잘못되어가는 대한민국 사회에 살고 있는 아버지들의 삶과 심정을 잘 말해주고 있다.  50%의 아버지들은 늦은 시간동안 일을 하다가 집에 돌아오면 아이들과 제대로 놀아주지 않는다. 아이들과 놀게 되면 단지 피곤하다는 이유만으로..... 그리고 집에서만 여유롭게 일에 대한 피로를 풀고 싶어 한다. 이들에게는 집에 오면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아이들과의 생활이 고통스럽다고 행복한 불만을 토로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머지 50%의 비정규직 근로자 아버지들은 오히려 그런 삶이 행복하다고 말한다. 아니, 자신들도 정규직 근로자 아버지처럼 되고 싶어할 것이다. 아이들 앞에서 무능력한 아버지의 모습으로 비춰질까봐 마음 한 구석에는 공포와 불안, 그리고 고통으로 가득 차 있다. 돈을 벌오기는커녕 하루종일 노조투쟁만 하다가 집으로 돌아온 그런 아버지를 보고 자식들은 뭐라고 생각할까?   

학교에서 아버지의 직업을 써놓은 공간에 당당히 '비정규직'이라고 쓰는 아이들도 있다고 말하는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의 말처럼 그런 아이들이야말로 정말 자신의 아버지가 왜 그러고 사는지, 그리고 왜 있는지 조소하고 있을 것이다.  

사실, 저 초등학생의 시 한 편 가지고 대한민국 아버지들의 존재감을 일깨워주기에는 너무 부족하다. 그리고 일 할 권리조차 얻지 못한 비정규직 근로자 아버지들에게는 자신의 무력한 존재감을 다시 한 번 각인시켜주는, 잔인한 메시지가 되고 말았다.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햇새벽 
 

  어쩔 수 없이 이 절망의 벽을  

  기어코 깨뜨려 솟구칠
  거치른 땀방울, 피눈물 속에
  새근새근 숨쉬며 자라는
  우리들의 사랑
  우리들의 분노
  우리들의 희망과 단절을 위해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거운 소주잔을
  돌리며 돌리며 붓는다.
  노동자의 햇새벽이
  솟아오를 때까지.

  - 박노해 <노동의 새벽> 중 일부 - 
  

지금도 박노해 시인의 시 내용처럼 비정규직 근로자들은 절망적인 삶의 벽인 노동 현실을 분노하면서도 그 운명을 감싸안고 살아가려는 몸부림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결국에는 부질없는 몸부림만 하다가 하루가 저물 즈음에는 소주로 분노를 달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이런 슬픔을 이겨야 하겠다는 깡다구와 오기가 서려 있다. 그런 독한 정신이 있기에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꿋꿋이 일을 하고 있으며, 일을 하지 못하는 비정규직 근로자들도 일 할 권리를 찾기 위해서 고군분투하고 있다. 

 

저 시의 마지막 구절처럼 대한민국의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정규직 근로자답게, 아니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이 시작되는 햇새벽이 찾아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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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뇌, 남자의 발견 - 무엇이 남자의 심리와 행동을 지배하는가
루안 브리젠딘 지음, 황혜숙 옮김 / 리더스북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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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부부 동반 분만  

만삭의 배우자가 이제 막 출산이 임박하려고 한다. 남편은 고통스러워하는 아내가 크게 걱정하기 시작한다. 산부인과에 도착하자마자 아내는 침대에 눕히어 분만실로 향한다. 아내가 무척 걱정이 된 남편 역시, 아내가 향하는 분만실로 들어가고 싶어 하였다. 진통으로 힘들어 하지 않게 아내 옆에 있고 싶었다. 그러나 산부인과 간호사들은 남편의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분만실에 입장할 수 없다면서 막아섰다. 남편은 어쩔 수 없이, 분만실 밖에서 혼자서 대기해야만 했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경험이 있는 부부들은 이런 경우 공감하실 것이다. 배우자가 초산이라면 남편 분들이 크게 걱정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예전에는 배우자가 분만실에 입장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TV 드라마에서의 출산 장면에서도 분만실에는 임산부와 몇 명의 산부인과 의사와 간호사들이 나오고, 그 임산부의 남편은 대기실에서 초초하게 기다리면서 등장한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면 지날수록 부부들도 젊은 층이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임신 교육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서 출산 경험이 있는 부부들을 중심으로 임신 관련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온라인 모임 공간이 늘어났다. 그리고 젊은 부부들 사이에서는 분만실과 부부가 동반하고 싶어 하는 경향도 보이기도 한다. 그런 부부들의 취향을 반영해서 남편도 분만실에 들어가 아내와 함께 출산의 기쁜 순간을 함께 할 수 있게 해주는 산부인과도 있다. 또, 어느 산부인과에서는 남편이 직접 갓 세상에 나온 신생아의 탯줄도 자를 수 있는 기회도 주고 있다. 신생아의 배꼽에 달려 있는 탯줄을 남편이 직접 자름으로써 이제는 ‘남자’가 아닌 ‘아버지’가 되었음을 알리는 아주 의미 있는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새로운 출산 풍경은 극히 일부분이다. 아직도 예전의 방식을 고수하는 산부인과도 있고, 초보 부부들 사이에서는 가족 동반 분만의 중요성을 간파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남자를 움직이는 9가지 호르몬 

뇌 연구가이자 『남자의 뇌, 남자의 발견』의 저자인 루안 브리젠딘은 임신한 아내와 사는 남편의 심리 상태를 뇌의 특정 호르몬 발현 작용을 중심으로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설명하기 전에, 먼저 남자의 뇌에 작용하는 중요 호르몬 9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뇌과학에 대해서 전무하다거나, 나름 뇌에 관해서 좀 안다는 남자와 여자 독자들은 저자가 설명하는 9가지 호르몬에 관한 내용이 신선하게 느껴질 것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남자의 몸 속에서 생기는 호르몬은 여자보다 적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 역시 이 책을 읽기 전에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남자 몸 속에서 생기는 호르몬을 말해보라고 하면 테스토스테론 밖에 생각이 나지 않는다.  사람들이 그런 잘못돤 상식에 사로잡혀 있다보니, 이전에 여자의 뇌에 관한 대중과학 도서를 쓴 적이 있는 저자가 이번에는 남자의 뇌에 대해서 책을 쓴다고 하자, 이에 대한 주위의 반응이 재미있다. "남자의 뇌는 단순해서 이번 책은 쓸 분량이 적겠네요."  

그러나 저자는 잘못된 생각이라고 일축한다. 남자의 뇌 역시 여자의 뇌 구조처럼 복잡하고 여러가지 호르몬이 작용하고 있다고 말한다.  남자의 뇌에서 생기는 호르몬은 테스토스테론만 있는 것은 아니다. 뮬러관억제물질(MIS), 옥시토신, 바소프레신, 에스트로겐, 도파민, 코르티솔, 안드로스테네리온, 프로락틴이라는 것도 있다. 

테스토스테론은 많은 사람이 다 알다시피 목표지향적이며, 권위적인 남성적 특징을 발현하도록 한다. 뮬러관억제물질(MIS)는 여성적 해동과 감정을 발현하기 위한 회로를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옥시토신은 공감과 애정 회로를 형성하게 하는데, 아버지와 아이의 유대 관계 현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호르몬이다. 바소프레신은 '일부일처제 호르몬'이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는데, 가족을 향한 사랑과 헌신을 나타나게 해준다. 에소트로겐. 이 부분에 대해서는 독자들이 많이 생소하게 느껴질 것이다. 에스트로겐은 여성의 특징르 발현하게 하는 여성적인 호르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극히 일부분이고, 역할은 적지만 남성에게도 에스트로겐 호르몬을 분비하고 있으며 그 적은 역할은 남성 성격 형성에 중요한 임무이다. 옥시토신을 자극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호르몬이기 때문이다. 에스트로겐이 있어야 옥시토신을 자극하여 남성들도 공감과 애정의 감정을 느낄 수가 있다. 도파민은 순간적인 쾌락을 추구하게 만들며 다른 호르몬보다 중독성이 강하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은 컴퓨터 게임, 어른들이 도박에 쉽께 빠지는 것도 이유가 있다. 코르티솔은 쉽게 화를 내게 하는 호르몬이다. 그래서 남성이 이성적인 여성보다 순간적으로 화를 쉽게, 잘 내는 편이다. 안드로스테네리온은 성적 매력을 풍기게 한다. 여성을 유혹하여 성관계를 맺게 되고, 결혼을 성립하게 만드는 나름 큰 역할을 담당하는 호르몬이다.   

  

 

 아빠가 되었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프로락틴 

마지막 호르몬 프로락틴은 앞에서 언급한 부부 동반 분만과 관련이 깊다.  

배우자가 출산을 앞두게 되면 남편의 뇌에는 프로락틴이 많이 생성된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배우자의 출산에 대해서 걱정하게 되고, 그 임신에 대해서 공감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이를 '쿠바드(Couvade) 증후군' 이라고 한다. 원래 '쿠바드'는 남편이 아내의 출산 전후에 출산에 부수되는 일을 행하거나 흉내내는 원시 사회의 풍속을 뜻한다. 우리말로 풀이하면 '의만(擬娩)' 이다. 그래서 프로락틴이 한창 생성되는 시기에 남편들이 임신한 아내에 대해서 각별하게 신경을 쓰이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아내의 출산에 대한 걱정이 다른 가족들보다 많은 것도 뇌에 프로락틴이 작용되서 생기는 심리적 현상인 것이다. 남성들은 심리적인 변화만 겪을 뿐만 아니라, 신체적인 변화도 겪게 된다. 출산 경험이 있는 저자는 출산 임박 당시, 남편의 몸무게가 크게 늘어났다고 한다.   

그리고, 프로락틴은 단순히 아내의 임신을 공감하게하는 심리적 역할을 넘어서 성적 욕구를 감소하게 만들어 아빠의 능력을 향상시키는 역할도 해준다. 즉, 남자는 스스로 '아빠'가 되는 것이다. 자신의 핏줄이나 다름없는 아기가 세상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을 때부터 아빠가 되는 것이 아니라,아기가 아내의 자궁 속에서 자라고 있을 때부터 이미 남성은 아빠가 된 것이다. 

  

 세상에 모든 남녀들이 읽어야 할 책 

평소에 뇌 과학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에게는 이 책의 내용의 수준이 초, 중급이라고 말할 것이다. 사실, 이 책에는 누구나 알만한 남성의 뇌에 관한 기본적인 내용들이 수록되어 있다. 일종의 '남성 뇌 탐구생활'이라고 해야되나. 저자의 전작 베스트셀러인『여자의 뇌, 여자의 발견』과 겸하여 읽으면 '남녀 뇌 탐구생활'이 된다.

그러나, 남자 아이를 키우는데 고생하고 있는 엄마들, 남성들은 섹스에만 밝히는 본능적 동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정작 왜 그런지 모르는 여성들은 꼭 이 책을 읽어봐야 한다. 왜 남성들이 이런 행동을 하고 있는지 확인할 수가 있다. 그리고 이 책에 프로락틴의 작용과 쿠바드 증후군에 대한 내용에 염두하여 이제 막 아빠가 되려는 남성들도 읽으면 좋을 것이다. 아내만 아이를 돌보는 것이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여 부부 관계가 법적으로 성립이 되었고, 갓 태어난 아이가 이제부터 가정의 일원이 되었으면 가장으로서, 그리고 아버지로서의 남성을 보여줘야할 때이다.    

몇 년 전에, 인기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남자가 남자다워야, 남자지.' 라는 유행어가 있었다. 겉으로만 남자다움을 강조하여 남자라고 만날 백번 부르짖기는 보다는 왜 남자다워야 하는지, 남자답게 만드는 뇌의 작용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내실이 있는 남자가 진짜 남자답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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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Sharing #4 - 앙드레 지드 <좁은 문> (마감)
좁은 문 - 펭귄 클래식 펭귄클래식 5
앙드레 지드 지음, 이혜원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1001-240] 좁은 문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 누가복음 13장 24절

 ↳ Re: 굳이, 그 힘든 좁은 문에 들어가기 위해서 힘을 써야 할까?

- cyrus  

 

 
   

 도대체 나는 누구랑 결혼한 거야? 
 

‘나는 영국과 결혼했다.’ 영국의 여왕 엘리자베스 1세는 영국의 발전을 위해서 한평생 동안 헌신하는 대신에 사랑과 결혼을 포기해야만 하는 자신의 상황을 재치 있게 표현하였다. 본인 자신도 한번쯤은 사랑을 하고 싶은 여성이었으니 몰래 남자 귀족들과 연분을 나누었고, 그들과의 스캔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과 연애는 했을 뿐, 결혼은 하지 않았다. 만약 결혼을 하게 된다면 제대로 나라를 다스릴 수 없게 되며 마음속으로는 권력 쌓기에 혈안이 되어 여왕에게 달콤한 말로 추파를 던지는 귀족 남정네들의 꿍꿍이를 그녀 스스로 간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엘리자베스 여왕은 평생 독신으로 살게 되었다.

그런데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나는 하느님과 결혼했다’라고 말하면 당사자는 어떤 생각이 들게 될까? 그리고 이미 법적으로 부부가 성립된 관계라면?  이런 일은 상상 속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에도 실제로 일어난 사례이다.

슬하에 2남 1녀의 자식이 있으며 평범한 맞벌이 부부였던 철이와 순이. 철이의 부인 순이는 교회에 자주 찾아가는 보통 사람과 다를 게 없는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다. 그런 순이가 계속 다니던 A 교회를 가지 않고, 이번에는 다른 B 교회를 가게 되었다. 철이는 순이가 다른 교회에 가게 되는 것에 대해서는 특별히 눈 여겨 보지는 않았다. 순이가 새로 다니는 교회도 기독교 교회였으니까. 그러나 그 후로부터 순이의 일상 습관이 예전과 달라지는 모습을 보이게 되었다. 일이 끝나는 대로 무조건 B 교회로 갔으며 밤 10시가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이러니 집안 관리도 점점 엉망이 되어갔다. 오전 내내 일 하다가 일이 끝나면 무조건 B 교회로 갔으니 자식들 양육이 제대로 될 리가 없을 것이다. 철이는 이런 순이의 변한 모습이 걱정이 되어서 B 교회의 이단성에 대한 의심을 품게 되면서 순이에게 그 문제의 교회에 가지 말라고 설득하였다. 그러나 순이는 철이의 말을 한 쪽 귀로 흘러버렸다. 심지어 순이는 좀 더 교회 생활에 충실하기 위해서 자신이 다니던 일도 그만두기에 이르렀다. 이 두 사람의 갈등은 잠자리에까지 커지게 되었다. 순이는 ‘하나님과 결혼했다’라는 말을 하면서 철이와의 잠자리를 거부하기도 한다. 

종교에 집착하는 순이의 태도와 엉망이 된 가정생활에 진저리가 난 철이는 결국 법원에 이혼 소송을 제기하였다. 결국 법정 판결은 종교생활에 심취하여 가정을 돌보지 않은 순이가 이혼에 큰 책임이 있다며 이혼 청구소송에서 철이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순이는 종교 문제를 제기하는 철이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본인 스스로 가정 생활 안정에 대한 노력을 보이지 않은 점과 단지 교리의 덕목을 가지고 성 관계를 거부하는 것은 가정파탄에 큰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지상의 사랑을 추구하는 남자, 신의 사랑을 추구하는 여자  

 

우리나라의 철이와 순이의 사례를 비추어 볼 때, 앙드레 지드『좁은 문』에 등장하는 제롬과 알리사 커플의 경우는 사랑과 종교의 갈등에 얽매여 두 사람 다 헛물켠 사랑으로 비극적으로 끝나고 만다. 알리사는 마음속으로 제롬을 사랑하고 있었지만, 그런 세속적인 사랑이나 행복보다는 하느님을 따르는 삶에 목숨을 바치기로 결심한다. 반면 제롬은 알리사를 지켜 줄 수 있는 사람은 자기밖에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나머지 종교를 향한 알리사의 태도와 행동을 바꾸려고 여러 번 설득한다. 하지만 이 둘의 사랑은 끝내 이루어질 수가 없었다.

알리사와 결혼하는 것. 제롬의 머릿속에는 오직 그것뿐이었다. 자신 인생의 첫 관문이 알리사와의 결혼이다. 그런데 결혼하기 위해서 그 관문을 통과하기에는 너무 비좁다. 하지만 제롬은 성경 속에 있는 ‘좁은 문에 들어가기를 힘쓰라’라는 구절을 듣고 나서, 그 좁은 문을 통과하기 위해 노력하기로 결심한다. 알리사를 사랑해줄 수 있는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그리고 자신의 존재와 구애 때문에 괴로워하는 알리사를 위해서 3년이나 되는 군 생활을 하기로 스스로 결정한다. 그리고 알리사에게 수많은 편지를 보내면서 알리사를 향한 자신의 사랑이 아직 식지 않았음을 표현하였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면 지날수록 이 둘의 마음은 점점 쇠약해져가고 있었다. 제롬의 마음에는 이미 그녀를 만나기 전부터 예전의 알리사를 볼 수 없을 것 같은 불안감이 스치기도 한다. 그리고 알리사와의 잦은 편지 왕래하는 것도 지쳐만 갔다. 아무리 설득해도 알리사는 종교의 교리를 강조하면서 사랑에 대해 강경한 입장만 드러내고 있을 뿐이고 오히려 설득이라기보다는 종교적 논쟁으로 확대되어 서로 다투기 일쑤이니 결국에는 자신이 추구하고자 한 지상의 사랑의 합일점을 찾지 못하고 만다.  

알리사는 이보다 더 심하다. 제롬과의 만남 자체를 두려워하기에 이르며 몸도 점점 약해져만 갔다. 알리사가 죽기 전에 쓴 일기에서 기독교적인 인간의 완성을 위해서 스스로 지상의 사랑을 포기해야만 했던 자신의 신앙에 대해서 의문을 갖기도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처한 투병의 삶 역시 하나님이 결정하는 것이라고 만족하기에 이른다. 

  

 

 

 나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지드의 해석

『좁은 문』이 출간된 지 101년이 지난 지금도 알리사의 태도에 대해서 엇갈린 의견들이 공존하고 있다. 신의 사랑을 위해서 지상의 사랑을 거부하면서 헛되이 죽어가는 알리사를 통해, 비인간적인 자기희생을 추구하는 종교적 교리의 허무함을 강조한다는 평가와, 반대로 알리사를 하느님에 대한 절대적인 사랑을 추구한 ‘성녀’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재미있는 것은 제롬의 경험을 실제로 겪어봤으며 그 경험을 토대로 이야기를 구상한 작가, 앙드레 지드의 중립적인 해석이다. 그는 자기희생적인 교리를 강조하는 개신교 신비주의를 비판하면서 동시에 이상적인 신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한 알리사의 행동에는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하나의 작품을 통해서 독자들은 다양한 관점과 해석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지드의 중립적이면서도 애매모호한 해석에 대해서 독자들은 쉽게 수긍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특히 종교적 교리에 따르기 위해서 자신 스스로 하느님의 사랑이라는 허구적인 테두리 안에 가두려고 한 알리사의 행동을 긍정적으로 본다는 점에 대해서는 지드는 종교의 추구에 대해서 이율배반적인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지상의 양식

유년 시절의 지드는 엄격한 종교적 계율을 강요하는 어머니 밑에서 자라왔다. 그 시절에 급작스러운 아버지의 사망과 자신에게 강요하는 종교적 분위기는 지드를 심신 적으로 병약하게 만들었다. 그리고『좁은 문』의 주인공 제롬처럼 그도 외사촌 누이 마들렌을 사랑하게 된다. 마들렌 역시 알리사처럼 지드의 사랑을 거부하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이 두 사람은 결혼하게 된다.

사랑의 방황을 겪은 질풍노도의 시기에 지드는『지상의 양식』이라는 한 편의 산문을 구상하게 된다. 그리고 마들렌과의 결혼한 지 2년 뒤인 1897년에 정식 출간하게 된다. 발표 당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했지만, 그가 1947년에 노벨 문학상 받은 이후, 그의 처녀작은 뒤늦게 서야 문학적 평가를 받게 된다.  

 

이 작품에서 지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삶의 구속에서 벗어나 지금 이 순간, 육체와 정신에 대한 자유를 찾으려는 능동적인 태도를 추구하자는 것이다. 이 책의 1927년판 서문에서 그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 간략하게 표현되고 있다.  

 

 

  “나의 이 책이 그대로 하여금 이 책 자체보다 그대 자신에게 - 그리고 그대 자신보다  

  그 밖의 다른 모든 것에 흥미를 가지도록 가르쳐주기를.“  이것이 바로 그대가『지상의 

  양식』의 머리말과 마지막 문장들에서 읽을 수 있는 것이다.

  -『지상의 양식』1927년판에 붙이는 서문, 앙드레 지드, 김화영 역, 민음사, p 14 - 

 

그리고 1장에서는 무조건적인 신앙을 추구하는 자를 비판하고 있다. 

 

  우리는 모두 신을 발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신을 찾게  

 될 때까지는 어디를 향하여 기도를 드려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 그러다가 결국 신은  

 도처에, 아무 곳에나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어디 있는지 알 수 없는 그분,  

 그리하여 사람들은 아무 데서나 무턱대고 무릎을 꿇는 것이다.

  -『지상의 양식』앙드레 지드, 김화영 역, 민음사, p 20~21 - 

 

 

만약에 제롬이 알리사에게 이런 문장을 편지로 썼다면 알리사의 태도에 변화가 올 수 있었을까? 이 문장을 읽었다고 해서 알리사의 마음 깊이 박힌 신의 사랑을 한순간에 바뀔리는 없지만, 제롬을 향한 지상의 사랑을 숨기기 위해서 일부러 신의 사랑으로 포장하여 모순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알리사에게는 이에 대해 스스로 재고해봤을 것이다.  

 

『좁은 문』은『지상의 양식』이 발표된 지 3년 후에 출간되었다. 이 때는 마들렌과의 결혼 생활을 하고 있어서일까?  자신의 처녀작에는 지나친 신앙을 경계하는 생각을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그 뒤에 발표한 소설에 등장하는 알리사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입장이라기보다는 중립적 입장을 취하고 있는 점에 대해서는 지드의 아이러니한 종교적 관점을 확인할 수 있다.  

 

 

 

 
 공감이 아니라, 사랑이어야 한다. 
 

제롬과 알리사. ‘사랑’이라는 명목 아래에 다투던 그들의 사랑싸움은 결국에는 종교적 차이에 의한 대립으로 끝나고 말았다. 어머니의 영향으로 남녀 간의 사랑을 부정적으로 보게 된 알리사의 지나친 종교적 금욕주의로 말미암아 비극적 결말을 맺는다. 반면, 제롬은 신에 대한 맹목적인 신앙을 부정하면서도 알리사와의 사랑을 이루기 위해서 통과해야 하는 좁은 문을 목사의 설교만으로 단정적으로 짓는 무모한 결정을 하게 된다. 그러면서도 알리사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을까봐 두려워하기도 한다. 그리고 알리사가 죽은 뒤에도 알리사를 향한 희망 없는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다. 자신이 만든 좁은 문을 파괴하기 보다는 오히려 들어갈 수 없는 그 좁은 문을 억지로 들어가려고 하고 있다.

그들이 끊임없이 주장하고, 찾고자 했던 ‘사랑’은 결국에는 ‘공감’이었다. 사랑과 공감은 서로 다른 것이다. 지드는『지상의 양식』에서 어떤 사람을 만날 때면 오직 그의 남들과 다른 면 때문에 흥미를 느꼈음을 고백하였다. 그리고 그런 감정은 공감일 뿐이며 순간적으로 삶의 다양한 형태들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랑을 하라고 말한다.  

 

서로 다른 사랑을 추구한 제롬과 알리사가 빠른 시일 내 헤어지지 않고, 오랫동안 관계를 유지한 것은 단순히 이들이 서로 사랑하기 보다는 서로 각기 다른 사랑의 지향점에 대란 공감만 있었던 것뿐이다. 알리사의 태도를 변화시키기 위해서 유화적으로 다가온 제롬의 태도에도 문제가 있었다. 자신은 알리사보다 심한 것은 아니지만 그 역시도 알리사처럼 종교적 영향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알리사는 제롬이 아무리 설득을 해도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버리지 못했던 것이다. 오히려 스스로 자신의 신념을 더욱 더 공감하게 만드는 꼴이 되고 말았다. 결국은 이들의 관계는 사랑이 아니었으며 이들의 결혼 성립은 애초부터 이루어질 수 없었던 것이다.  

   

생 텍쥐페리 ‘사랑은 두 사람이 마주 보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이다.’ 라고 말하였다. 제롬과 알리사, 그리고 우리나라의 철이와 순이처럼 종교라는 하나의 관점을 마주 보다가 마지막에는 파멸을 겪게 되는 것처럼 남녀 간의 사랑도 종교 이외에도 경제적 요건, 성격 차이 등으로 마주 보다가 사랑이 오래가지 못하는 경우도 오게 된다. 물론 서로를 이해하고 바라보기 위해서는 마주 보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고정된 채 마주 볼 수는 없다. 가끔 위나 아래, 옆이든 주위의 시선도 봐야하기 때문이다. 생 텍쥐페리의 말처럼 사랑이 오래 가기 위해서 같은 방향을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 (연애 미경험자로서 이렇게 해야한다고 단정하는 것은 섣부른 판단이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과 다른 상대방의 관점을 수용하고 조화시키려고 각자가 노력한다면 마주 보던 관점들이 점점 같은 방향으로 바라보면서 사랑의 갈등이 쉽게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된다.   

 

혹시 자신과 배우자의 관계가 서로 마주 보고 있는 공감이면서도 억지로 함께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 사랑이라고 우기고 있지 않은지,『좁은 문』을 읽은 연인들은 한 번쯤은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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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0-10-17 0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런 멋진 말을 생 텍쥐베리가 했단 말이죠?^^
저도 고전을 좀 읽어야 할텐데 말이죠.
앙드레지드는 중학교 때 필독서로 읽고 독후감 써서 무슨 상까지 받았었던 것 같은데 말이죠.
지금 님의 리뷰를 읽으니,기억이 너무 새로워 안 읽은 책 같아요~

cyrus 2010-10-17 14:01   좋아요 0 | URL
저도 사실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
살면서 처음 읽은거랍니다. 진짜에요ㅎㅎ
이거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읽은 고전이나 문학작품들도
올해 들어 처음 읽은거랍니다.
예전에는 고전에 관심도 없었는데,,,
올해 군 전역 이후에 고전과 문학에 대해서 슬슬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읽게 되는거 같습니다.

2010-10-17 14: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0-18 01: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0-18 14: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야간 비행 / 남방 우편기 펭귄클래식 37
생 텍쥐페리 지음, 앙드레 지드 서문, 허희정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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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사람을 위한 소네트     

내가 태어난 이래로 아홉 번이나 태양이 자전에 의해 거의 같은 지점으로 되돌아가기를 거듭했을 때 지금 내가 마음속으로 흠모하는 영광스러운 여인이 처음 눈앞에 나타났다. 많은 사람들이 이유도 모른 채 ‘베아트리체’라고 부르는 바로 그녀가 말이다. (중략) 바로 그 순간 심장의 은밀한 방 안에 기거하고 있던 생명의 기운이 너무나 심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 때 생명의 기운은 이렇게 말했다. “여기에 나보다 강한 신이 있구나. 그가 나를 지배하게 될 것이다.” (중략) 그리고 정말로 그때부터 줄곧, 내 영혼과 결혼한 사랑의 신이 나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인생』단테 알리기에리, 박우수 역, 민음사, p 19~20 - 
 

이제 막 세상의 이치를 조금씩 이해하고 있었던 9살짜리 소년은 자신보다 한 살 아래인 어여쁜 소녀를 본 순간 느꼈던 감정의 엑스터시(Ecstasy)를 이렇게 표현하였다.  

9년 후, 어엿한 청년이 된 소년은 길을 가다가 사랑의 신과 우연히 재회하게 된다. ‘축복을 내리는 여인’이라는 뜻이 담겨져 있는 베아트리체라는 소녀를. 청년에게는 사랑의 신과의 재회가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축복의 시간이었다. 사랑의 신이 먼저 따뜻한 미소가 머금은 인사를 건네자 청년은 9년 전에 느꼈던 황홀했던 감정을 또렷이 떠올렸다. 그 짧은 만남 이후로 청년의 뜨거운 심장 속에는 베아트리체라는 숭고한 여성이 살아남게 되었다. 이제 다시 만날 수 없는, 마음속에서만 볼 수 있는 이상적인 프리마돈나(Prima donna)로.  

수줍은 성격의 청년은 베아트리체에 향한 사랑의 감정들을 직접 표현하지 못했다. 아름다운 꽃 한 송이에 꿀벌들이 모여들듯이 그녀 주위에는 수많은 구혼자들이 몰려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전하지 못하고 있는 감정들을 마음속에 담아두기에 너무나 벅찼던 것일까?  청년은 마음 속 감정들을 마구 토해내듯이 베아트리체를 위한 소네트로 표현하였다.  

축복의 재회 이후 7년 뒤, 베아트리체는 예고 한 마디 없이 신들이 살고 있는 천상계로 떠나고 말았다. 9살 때의 첫 만남부터 16년 동안 사랑의 신 앞에서 고백 한 마디도 못 해본 체 소네트를 쓰면서 사랑앓이를 해야 했던 청년은 망연자실하였다. 메마른 청년의 영혼에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어준 사랑의 신이 떠나다니. 베아트리체가 죽은 이후에도 청년은 자신의 심장 밖으로 그녀를 쫓아낼 수가 없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라틴 어 고전들을 읽어도, 다른 여성과 결혼하여 가장이 되어서도 청년은 베아트리체를 잊지 않았다. 그리고 심장 속에 살고 있는 환상의 여인을 잊지 않기 위해서 소네트 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결국, 청년은 지금까지 써온 베아트리체를 위한 소네트들을 모아 『새로운 인생』이라는 책을 완성하여 발간하였다. 이 책은 훗날 『신곡』이라는 르네상스 문화를 대표하는 장편 서사시를 완성시킨 단테 알리기에리의 처녀작으로 남게 되었다.      

 

   


 하늘을 나는 단테, 자크 베르니스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의 처녀작인『남방 우편기』에는 사랑하는 여인을 잃은 어느 비행사의 삶과 애상(哀傷)의 감정을 서정적이면서도 섬세하게 표현하고 있다.『남방 우편기』의 주인공인 비행사 자크 베르니스는 9살의 단테처럼 어린 나이에 평생 연정을 품게 될 주느비에브라는 여인을 보자마자 뜨거운 사랑의 감정이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끼게 된다. 주느비에브와의 첫 만남 당시 자크의 나이는 13살이었고, 주느비에브는 이보다 두 살 위인 15살이었다.  사랑하는 여인과의 첫 만남을 13살의 자크도 9살의 단테 못지 않게 순간의 감정을 생명의 약동에 빗대어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그도 역사 단테처럼 사랑하는 여인을 신적 존재로 부여하고 있다.    

당신은 요정이었던 것이다. 기억이 난다. (중략) 여전히 달이 떠오르고 있었다. 그때 조종 소리 
 를 덮으면서 부엉이들이 사랑을 찾아 서로서로를 불렀다. 떠돌이 개들은 동그랗게 모여 달을  
 향해 짖어댔다.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갈대 하나하나가 모두 살아났다. 계속해서 달이 떠오르 
 고 있었다. 그러면 그대는 우리의 손을 잡고 귀를 기울여 보라고 말했다. 우리를 안심시키는  
 좋은 소리는 바로 대지의 소리니까 말이다.》 

 -『야간비행, 남방 우편기』〔남방 우편기〕생텍쥐페리, 허희정, 펭귄클래식코리아, 
    p 160~161 - 

베아트리체와 주느비에브와 얼마나 아름다웠길래 두 남자들은 그녀들을 사랑의 신과 요정이라고 부르는 것일까?  베아트리체가 사랑의 신인 아프로디테라면 주느비에브는 요정이 아니라 모든 자연물의 생명력을 관장하는 대지의 여신 데메테르가 연상된다. 자크는 단테보다 한 술 더 떠서 주느비에브와의 첫 만남의 순간을 사랑의 기운으로 생명이 약동하는 모습을 상징하고 있는 동물들의 울음소리와 식물들을 열거하면서 사랑의 감정을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다. 단테의 표현과 비교하면 자크의 표현에는 사랑의 생동감이 느껴진다.  단테의 멋들어진 표현은 상투적으로 느끼게 된다.

   
  

 

 

 슬픈 베아트리체, 주느비에브  


단테는 베아트리체에게 고백 한 마디 하지 못한 채 16년간의 짝사랑은 슬프게 마무리 지었다. 그러나 자크는 주느비에브와 부부의 인연을 맺게 되지만 결혼 생활은 그리 행복하지 못했으며 오래 가지도 못했다. 전 남편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이 자신의 부주의로 인해서 죽었다는 죄책감은 마음이 연약한 주느비에브에게는 감당할 수 없는 트라우마였다. 주느비에브 자신도 물론 자크를 사랑하고 있었지만 마음속에 깊이 박힌 트라우마는 자크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활짝 피우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사랑하는 자크가 자신을 냉담하게 외면할 수 있다는 두려움의 망상에도 시달리게 된다.

 

주느비에브의 불안정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 그리고 사그라지고 있었던 사랑의 불씨를 다시 한 번 지피기 위해서 자크는 주느비에브와 함께 아름다운 풍경이 있는 곳으로 이리저리 다니게 된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 갈수록 주느비에브의 마음은 조금씩 병들어 가고 있었고, 육체마저도 쇠약하게 된다. 결국, 슬픈 베아트리체는 자크를 남겨둔 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당신을 영원히 잊지 않을께요.....  

 

자크는 자신의 애마인 우편기를 통해 하늘을 날아다니면서 주느비에브를 향한 사랑의 감정들을 공중 위로 날려버리려고 하였다. 그러나 비행기 아래에 보이는 광활한 자연의 대지 앞에서 잊어야 할 감정들을 차마 버리지 못하고 만다. 대지 위의 자연물들을 움직이게 하는 대지의 요정인 주느비에브가 생각나기 때문이다. 앞을 분간할 수 없는 어두컴컴한 밤하늘에도 우편물을 목적지에 전달하기 위해서 홀로 비행해야만 하는 자크는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자연들 사이에서의 비행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비행기 주위에 있는 하늘과 대지에 위치하고 있는 모든 자연물들을 죽은 주느비에브의 분신의 일부처럼 여기기도 한다. 특히 그에게는 달은 사랑하는 사람이 사고가 나지 않기 위해 어두운 밤하늘을 훤히 비쳐주는 주느비에브라고 생각한다.    

 

 《‘비가 오나 보군.’  

   손을 뻗자 세찬 빗방울이 느껴졌다. 
   ‘이십 분 후면 다시 해안으로 돌아갈 거야. 거기는 평지니까 덜 위험하겠지.....’
   그런데 갑자기 왜 이렇게 밝아지는 거지!  구름 걷힌 하늘에 별들이 물로 씻긴 듯 말갛게  

   반짝였다. 달은.....  아, 달은 모든 전등 중에 가장 밝게 빛나는 전등이다!  

   아가디르 착륙장이 전기 광고판처럼 세 번 반짝였다.
    “저런 불빛이 무슨 필요가 있겠어!  내겐 달이 있는 걸.....!”  

 

   -『야간비행, 남방 우편기』〔남방 우편기〕생텍쥐페리, 허희정, 펭귄클래식코리아, p 235 -

주느비에브가 죽고 나서도 위험한 야간 비행을 멈추지 않았던 이유가 주느비에브에 대한 그리운 기억과 오래 이루지 못한 사랑의 아픔을 잠시나마 자연의 광경을 통해서 스스로 달래려는 것이 아니라, 대지의 자연물로 상징되는 주느비에브를 잊지 않기 위해서 홀로 위험한 비행을 자처한 것이 아닐까?  사랑하는 자를 먼저 떠나보내 생기게 된 공허감과 그리움을 잊기 위해서 틈만 나면 소네트를 썼던 청년 단테처럼 말이다.   

  
  

 


 아직 못 다한 이야기

내게 불어오는 바람아 / 너는 내 얘기를 어서 그녀에게 전해주렴
    내 몸을 적시는 빗방울아 / 너는 그녀 향길 어서 내 몸에서 씻어주렴
    내게 내리쬐는 태양아 / 너는 여길 떠나 어서 그녀에게 비춰주렴
    뭐든지 볼 수 있는 하늘아 / 그녈 볼 수 있게 어서 너의 눈을 빌려주렴.

    - 김진표(Feat. BMK) 「아직 못 다한 이야기」중 일부 -   

 

 

생텍쥐페리의『남방 우편기』중 자크의 비행 장면을 읽으면서 갑자기 이 노래의 가사가 떠올랐다. 하늘, 태양, 바람, 빗방울.....  이 모든 것들이 공존하는 구름 위의 세상은 비행사들을 매혹시킬 수 있는 아름다운 별천지다. 하지만 이 미지의 세계가 주고 있는 원시적이고 환상적인 아름다움에 빠지게 되면 사고를 유발할 수 있다. 악천후 속에서도 자크는 위험을 무릅쓰고 비행을 하면서 하늘과 대지의 아름다움만 느낀 것이 아니라 자연의 도움을 통해 주느비에브를 찾으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주위에 있는 하늘의 자연들은 위험 요소가 아닌 자신의 삶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주느비에브를 찾을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인 것이다.  

  

'하늘을 나는 단테' 자크 베르니스는 새벽 찬 이슬 맞아가면서 비행한 끝에 결국에는 그토록 찾고 싶었던 '하늘의 보물'이며 '베아트리체'인 주느비에브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주느비에브를 만난 곳은 인적이 드문 모래만 가득한 사라하 사막 한가운데에서..... 주느비에브가 살고 있을지도 모르는 하늘 위에 빛나고 있는 별을 바라본 채.....  

 

 "여기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도다." 

 

단테는『새로운 인생』의 첫 페이지부터 슬프고도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이렇게 시작하였다. 베아트리체를 향한 단테의 애틋한 사랑은 700여 년이 지난 옛 이야기로 남게 되었지만 지금도 그가 남겼던 소네트 속에는 이제 막 베아트리체와의 사랑이 있는 천국에서의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었다. 그래서 지금도 단테와 베아트리체와의 사랑이 불멸의 사랑으로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자크 베르니스의 죽음으로써 『남방 우편기』가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로 끝난 것이 아니다. 그의 사랑 이야기는 이제 시작이다. 프랑스의 작가 앙드레 지드는 이 책의 서문에서 이렇게 말하였다. 

 

  위험천만한 일에 진심으로 열성을 다해 헌신하며 그 임무를 완수하고 나서야  

  행복한 휴식을 찾는다

 

  - 『야간비행, 남방 우편기』[서문] 앙드레 지드, p 9 -
 

자크는 주느비에브를 찾기 위해서 위험한 비행에 열중하였다. 하지만 자신의 우편 배달 임무에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의 죽음은 비극적이라기 보다는 사랑과 일에 열중한 한 남자를 위해 신이 주신 행복한 휴식인 것이다. 그리고 단테가 죽어서 베아트리체를 만난 것처럼 죽어서 주느비에브가 살고 있는 별로 간 자크에게도 이제 아름다운 사랑이 기다리고 있는 새로운 인생이 시작될 것이다.  

 

  다카르에서 툴루즈에 알림. 우편물이 다카르에 잘 도착함.  

 그리고 프랑스-아메리카 우편기의 조종사는 무사히 천국으로 도착했다고 함.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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쎈연필 2010-10-13 14: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생떽쥐베리...
정성 어린 서평 잘 읽었습니다.-^-^

cyrus 2010-10-13 22:55   좋아요 0 | URL
정리가 안 된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생 텍쥐페리의 이 작품뿐만 아니라 같이 수록된
<야간비행>도 이야기가 좋답니다. 이 작품 역시
조종사가 주인공으로 등장하거든요.

2010-10-13 18: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0-13 23:0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