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쓰는가>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나는 왜 쓰는가 - 조지 오웰 에세이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 한겨레출판 / 2010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조지 오웰의 문학을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읽어야 할 책

지금까지 국내에 조지 오웰(George Orwell)의 작품이 번역되어 출간되고 있다.<동물농장Animal Farm><1984><버마 시절 Burmese Days>(열린책들에서 출판됨, 2002년에 서지원이라는 출판사에서 출간된 '제국은 없다' 는 제목만 다른 같은 번역가가 참여한 작품임) 까지, 오웰이 생전에 공식적으로 발표한 소설이 총 6편임을 감안하면 그의 소설이 우리나라에 많이 소개된 편이다. 특히, <동물농장>과 <1984>는 국내에 많은 매니아를 확보하고 있는 유명 출판사 문학전집에서 번역되었다. <동물농장>은 민음사, 열린책들, 문학동네, 펭귄클래식에서 출간되었고, <1984>는 민음사, 열린책들, 펭귄클래식에서 번역 출간되었다. 그리고 고전도서 추천목록에서도 조지 오웰의 작품이 빠지지 않는다. 소설뿐만 아니라 자신의 경험들을 토대로 쓴 르포 3편도 모두 번역되어 있다. (<파리와 런던의 따라지 인생><카탈로니아 찬가><위건 부두로 가는 길>) 그만큼 국내에서의 조지 오웰의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다.  

조지 오웰은 소설, 르포뿐만 아니라 에세이스트로서도 두드러진 활약을 했는데, 그가 쓴 에세이만 해도 수백편이 넘는다. 오웰 사후에도 그가 남긴 에세이들도 문학적인 평가를 받기 시작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그의 에세이집들이 번역되었지만 이전에 출간된 소설 작품보다는 크게 주목을 받지 않았다.  아무래도 국내의 독자들에게는 '에세이스트 오웰' 이라기보다는 '소설가 오웰' 이라는이미지가 강하게 인식된 탓일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 출간된 <나는 왜 쓰는가>는 그동안 많이 알려져 있지 않았던 '에세이스트' 로서의 오웰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다. 비록, 그 수많은 에세이들 중에서 29편을 선별한 선집이지만 생전에 오웰이 유럽의 사회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기록한 글들이 모여 만든 완성된 성찰의 결과물로도 손색이 없다.  

<우리들의 대한민국>을 통해 한국 사회를 날카롭게 후벼 팠던 박노자 교수는 오웰이 노동자 생활을 한 경험을 토대로 쓴 <위건 부두로 가는 길>에 대한 추천사에서 책에 대한 평가를 이렇게 정의하였다. 

  "  조지 오웰의 사상을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읽어야 할 책." 

조지 오웰의 사상을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이라면 나는 이책의 정의를 이렇게 말하고 싶다. 

  " 조지 오웰의 문학을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읽어야 할 책. "    

 

   

  조지 오웰을 읽게 된 동기

이 책의 타이틀이기 하면서도 동명 제목의 에세이인 <나는 왜 쓰는가 Why I Write>에서는 오웰 자신이 왜 글을 쓰고 있는가에 대해서 네 가지 동기를 소개하고 있다.  

오웰은 순전한 이기심, 미학적 열정, 역사적 충동, 정치적 목적 등으로 자신의 글쓰기 동기를 구분하고 있다. 지금까지 써내려온 소설, 르포르타주, 에세이 등이 오웰이 구축한 문학적 동기가 만들어 낸 결과의 산물들이라고 볼 수 있다.  

나는 이 글을 통해 지금까지 내가 오웰의 작품을 왜 읽어왔는지 다시 한 번 생각케 해주었다. 그리고 그가 에세이에서 밝혔던 문학적 동기들을 지금까지 읽었던 작품에 투영해봄으로써 그전에 작품들을 읽으면서 지나쳤던 오웰이라는 인물의 생각, 그리고 그의 글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문학적 매력을 발견할 수 있어서 좋았다.   

  

 

  #1 순전한 이기심  

오웰은 작가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도 정치인과 사업가들처럼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다거나 기억되고 싶어하려는 욕구를 가지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오웰이 왜 이렇게 떳떳하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그의 유년시절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어린 오웰은 학창 시절 내내 인기가 없을 정도로 외로운 시절을 보냈다. 그 고독 덕분에 오웰은 이야기를 지어내기 시작하였고 그 때부터 자신이 말을 다루는 재주, 즉 글쓰기에 대한 재주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리고 어린 시절에 고독으로부터 상처 받은 쓰라린 실패의 기억들을 글쓰기를 통해서 잊고 싶어했을 것이다.

   
 

나는 나에게 낱말을 다루는 재주와 불쾌한 사실을 직시하는 능력이 있다는 걸 알았고,  그것이 나날이 겪는 실패를 앙갚음할 수 있게 해주는 나만의 세상을 만들어준다는 느낌을 받았다. 

  - <나는 왜 쓰는가> p 289~290 -

 
   

글을 쓰기 시작하게 동기의 근원이 고독이라는 점에서 오웰에게 위로 한 마디를 건네기에는 무색하지만 자신의 문학적 동기를 밝히기 위해서 마음 속에 품고 있었던 기억의 상처를 언급하는 오웰의 모습이 인간적이다. 그리고 과거의 아픈 기억들을 보상받기 위해서 글을 쓰고 있으며 이 강력한 동기를 아닌 척하는 것은 허위라고 말할 정도로 오웰은 쿨한 글쓰기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나 역시 조지 오웰의 소설들 그리고 이 에세이들을 읽는 것도 어쩌면 의식적으로 느끼고 있지 못하고 있던 순전한 이기심 때문일 것이다. 조지 오웰의 유명한 소설 <동물농장>과 <1984>를 읽었다고 주위 사람들에게 자랑을 할 수도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 오웰의 소설들을 읽으면서 쓴 리뷰와 지금도 이 에세이집을 읽고 난 뒤 쓰고 있는 리뷰도 순전한 이기심이 만들어 낸 글인 것이다. 이것이 주위 사람들로부터 똑똑해 보이고 싶으며 오랫동안 기억되고 싶은 인간의 허영심을 보여주고 있다. 

  

 

  #2 미학적 열정  

사실, 이 부분을 여러 번 읽어봤음에도 오웰이 말하고 있는 '미학적 열정' 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지 못했다.    

오웰이 미학적 열정을 '외부 세계의 아름다움에 대한, 또는 낱말과 그것의 적절한 배열이 갖는 묘미에 대한 인식' (p 293) 이라고 정의를 하고 있는데 오웰의 작품을 읽은 경험을 토대로 풀이하자면 책을 덮고 나서도 그 특정 문장에 대해서 잊혀지지 않는 강한 인상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동물농장>에서는 농장의 동물들이 만든 일곱 가지 계명이 언급되는데, 이 계명의 내용 일부를 통해서 독자들은 작품 속 동물농장이 위험한 흑백 논리에 빠진 대중사회의 모습과 결부시킬 수 있다.  

   
 

   1. 무엇이건 두 발로 걷는 것은 적이다.  

   2. 무엇이건 네 발로 걷거나 날개를 가진 것은 친구이다.   

   (생략)

   - <동물농장> 도정일 역, 민음사, p 27 -

 
   

 

그리고 <1984>에서는 빅 브러더를 향한 집요한 저항 끝에 결국 처형당하는 윈스턴의 최후를 오웰은 시적인 문장을 곁들여 표현하고 있다.   

 

   
 

 그는 애정부로 돌아가 모든 것을 용서받았다. 피고석에 앉아 모든 죄를 고백했고, 그가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공범자로 만들었따다. 그는 햇빛 속을 걷는 기분으로 하얀 타일이 깔린 복도를 걷고 있었다.  (중략)  그리고 그가 오랫동안 기다렸던 총알이 그의 머리에 박혔다.   

  윈스턴은 빅 브라더의 거대한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그가 그 검은 콧수염 속에 숨겨진 미소의 의미를 알아내기까지 사십 년이란 세월이 걸렸다.  오, 잔인하고 불필요한 오해여!  오, 저 사랑이 가득한 품안을 떠나 스스로 고집을 부리며 택한 유형이여!  그의 코 옆으로 진 냄새가 나는 두 줄기 눈물이 흘려내렸다

  - <1984> 정희성 역, 민음사, p 416~417 -  

 
   

윈스턴은 작품 속에서 빅 브라더 저항 활동을 펼치지만 결국을 수포로 돌아가고 만다. 그리고 총알이 자신의 머리에 박히고 난 후에서야 자신의 활동이 자신의 생에서 불필요한 오해였다고 생각하고 있다.  윈스턴의 회한과 눈물은 개인을 지배하고 있는 전체 사회집단의 무시무시한 위력을 보여주고 있다.  

조지 오웰의 소설은 정치적인 주제를 다루면서도 일반적으로 문학 작품에서 갖추고 있는 낱말에 미학적 열정을 부여함으로써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독자들에게 실감나게 전달하고 있다.  

  

 

  #3, 4 역사적 충동, 정치적 목적  

오웰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고, 진실을 알아내고, 그것을 후세를 위해 보존해두려는 욕구(p 294)를 역사적 충동이라고 말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세 번째 동기와 네 번째 동기인 정치적 목적의 의미와 연결되어 있다. 

우리 눈 앞에 펼쳐져 있는 사회 현실 속에서는 다양한 사상과 생각들이 상충하고 있다. 이런 복잡한 현실 속에서 하나의 사회 현상에 대해서 제대로 볼 줄 아는 식견이 필요하다. 그래서 인간은 어떤 현상의 문제에 대해서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기도 하고, 남들이 갖고 있는 생각을 바꾸려고 하는 욕구를 가지고 있다.  

오웰은 문학과 정치는 땔래야 땔 수 없는 관계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그의 소설과 르포에는 당시의 유럽 사회의 단점과 문제적인 현상들을 기록하고 있으며 이를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기도 한다. 그래서 그의 글쓰기를 '정치적 글쓰기' 라고 정의하기도 하는데 [나는 왜 쓰는가]에서도 오웰은 자신의 작품들이 정치적 목적과 예술적 목적이 결합을 시도하였다고 밝혔다.

<동물농장>은 독재적이고 강압적인 소련 스탈린 체제, <1984>는 자유를 잃은 전체주의의 암울한 사회, <버마 시절>은 영국 제국주의의 허상, <카탈로니아 찬가>는 왜곡된 언론에 가려진 스페인 내전의 참혹한 실상을 고발하고 있다. 이렇듯, 정치적 글쓰기가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은 부조리한 사회의 단면을 그대로 목격하고 체험하려는 역사적 충동, 그리고 잘못된 정치적 편향을 바꾸려고 하는 정치적 목적이 있어서 가능한 것이었다.  

 

  

  조지 오웰의 문학을 읽어야 하는 이유  

올해가 조지 오웰이 세상을 떠난 지 60주년이 되는 일이다. 올해 들어서 조지 오웰의 작품들이 국내에서 출간되는 이유는 단순히 '조지 오웰' 이라는 작가의 사후를 기념하기 위해서, 혹은 그의 네임 밸류가 국내의 독자들에게 통할 수 있어서 나온 것은 아니다.  예전과 같으면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 대문호들의 탄생일이나 사후일에 맞춰 그의 문학적 가치를 재조명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조지 오웰 사후 50주년이 된 지금, 그의 문학을 재조명하는 기념회나 심포지엄을 열렸다는 소식을 한 번도 접해보지 못했다. 국내에 그의 작품들이 꾸준히 번역되어 나오는데도 말이다. 그의 대표작이라고 일컫는 <동물농장>이 출간된 출판사만 해도 수십개 넘는다. 국내 출판계에서 고전문학 작품이 오랫동안 번역 출간되는 현상은 이례적인 일이다.  

출간된 지 수십년이 지난 고전이 번역되어 독자들에게 읽혀지는 좋은 현상이기는 하다. 하지만 박노자 교수가 말한 것처럼 우리는 조지 오웰의 사상, 그리고 문학을 얼마나 이해하고 <동물농장>과 <1984>를 읽고 있을까?   

앞에서 언급한 순전한 이기심으로만 조지 오웰을 읽어서는 안 될것이다. 조지 오웰은 우리의 지적허영심을 채워 지적인 모습을 뽐내기 위해서 언급되야하는 그냥 단순한 작가 이름이 아니다. 그리고 조지 오웰은 단순히 순전한 이기심으로만 자신의 글을 순전히 '예술 작품' 으로 만든 것도 아니다. 오웰은 정치적 글쓰기를 통해서 자신이 겪고 있는 사회 현상에 대해서 성찰하고 반성하려고 하였다. 이제 독자들도 조지 오웰의 작품들을 작가가 말한 글 쓰는 동기와 서로 유추해가면서 읽으면 오웰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그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듣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이 사회 현실에 대해서도 성찰할 수 있는 안목과 사고력이 형성될 것이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반딧불이 2010-11-02 0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천문학사에서 나온 <코끼리를 쏘다>라는 오웰의 산문집이 있어요. '나는 왜 쓰는가'는 거기에도 실려있는 글인데 이번 산문집의 제목이 되었네요.

이 질문에 대한 오웰의 답을 읽노라면 저는 늘 김현이 생각나거든요. 문학은 배고픈 거지를 구할 수 없다. 그러나 배고픈 거지가 있다는 것을 추문으로 만들 수 있다는 내용의 글이요. 오웰의 정치적 목적은 이와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하고 있어요.

cyrus 2010-11-02 12:18   좋아요 0 | URL
제가 소개한 책은 아니었지만 직접 읽어보니..
왜 많은 분들이 이 책을 읽고 싶어하는지 알겠더라고요.
그리고 생각할 수 있는 좋은 글들이 많이 있었고요.
반딧불이님이 언급하신 김현 씨의 산문집도 읽어봐야겠네요.
문학 평론에서 정말 유명한 사람인데 아직 못 읽었네요ㅎㅎ

양철나무꾼 2010-11-02 1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 사놓고 채 반도 못 읽었어요.
마저 읽긴 해야 할텐데 말이죠~ㅠ.ㅠ

cyrus 2010-11-02 13:02   좋아요 0 | URL
천천히 읽으시면 됩니다. 이 책이 짧은 에세이 형식이라서
저 같은 경우에는 소설이나 에세이는 금방 읽는 편이라서
글도 빨리 쓰고 올리게 된 것입니다.
반면 또 다른 평가단 책인 로쟈님의 책은,,,
전작보다는 내용은 쉬운데,, 그래도 내용이
인문학이라 천천히 읽고 있답니다.ㅎㅎ

꽃도둑 2010-11-02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지 오웰을 읽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 같은 생각입니다.
저도 이번 기회에 '조지오웰 깊이 읽기'를 시도해볼까 하는데 키루스님 글에서 동기를 얻고 가네요..^^

cyrus 2010-11-02 13:04   좋아요 0 | URL
제 글이 꽃도둑님에게 유익한 도움이 되셨다니
기분이 뿌듯하네요^^
이번 기회 오웰의 르포들을 읽어보려고 합니다.
오웰이라는 작가를 재발견할 수 있어서 의미 있는거 같습니다.^^

굿바이 2010-11-08 1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꼼꼼히 골라놓으신 책들 잘 봤습니다. <녹색세계사> 개정판이 다시 나왔군요. 시절이 그러하니 지금 읽어도 참 유용할 것 같습니다.

cyrus 2010-11-08 15:45   좋아요 0 | URL
네, 환경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세상이니 책의 저자가 말하고자 한 것도
예전의 주장과는 다르겠죠.^^
 
산도칸 - 몸프라쳄의 호랑이들
에밀리오 살가리 지음, 유향란 옮김 / 열린책들 / 2008년 7월
평점 :
품절


  

 

 

[1001-212] 산도칸 : 몸프라쳄의 호랑이들

 

 

  산도칸과의 첫 만남

산도칸을 처음 만나게 된 것은『죽기 전에 읽어야 할 책 1001권』(피터 박스홀 외, 마로니에북스)이라는 책이었다. 100명의 외국의 문학가, 교수, 언론인들이 죽기 전까지 읽어야 한다는 일종의 ‘북 버킷 리스트’를 만든 것이다. 하지만 말로는 ‘북 버킷 스트’이지 1001권이 모두 문학 작품들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고전에서부터 문학의 변방인 제3세계와 북유럽, 동양 문학 작품들 까지 소개되고 있다. 그러나 서양과 동양 작가의 작품 비율이 80 대 20이다. (또 동양 작가의 작품에서 한중일로 따지고 들어가면 일본 작품들이 조금 소개되어 있다. 참고로 버킷 리스트에 있는 우리나라 작가의 작품은 故 박경리의『토지』와 조정래의 『태백산맥』뿐이다) 사람들에게 세계의 모든 문학 작품들을 알린다는 취지는 좋으나 잠잘 때 베게로 사용하기에는 충분한 두께에 비하면(900페이지 넘는다) 내용과 구성 면은 그리 좋다고는 볼 수 없다. (소설, 희곡, 수필까지 장르를 아울러 작품들을 소개하있지만 무슨 이유인지 유독 ‘시’는 딱 한 편이 있다. 로트레아몽의『말도로르의 노래』가 유일하다. 보들레르와 롱펠로, 프로스트와 같은 유명 시인들의 작품은 보이지 않으며 심지어 노벨상을 수상한 시인 파블로 네루다와 T.S. 엘리엇조차도 버킷 스트 명단에서 찾아 볼 수가 없다)

그러나 이 책 덕분에 세계 문학이라는 넓은 대륙을 한 눈으로 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는 만족한다. 아직 우리나라에 번역이 안 된 생소한 작가들의 작품들이 대부분 많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번역되어가는 작품들이 출간되는 것을 종종 보게 된다. 그 중의 하나가 에밀리오 살가리의『산도칸』이다. 3년 전에『1001권』을 처음 보게 되었는데 그 때는『산도칸』이 출간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이듬해에 열린책들에서 출간된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사람... 무시무시한 해적 . . . 맞아 . . . ? 

 

그런데 『산도칸』을 읽면서, ‘정말 잔인하고 냉철한 해적이 맞냐?’ 하는 의문이 느꼈다. 작품 속 동명이름의 주인공은 말레이시아에서 맹위를 떨치는 해적으로 등장하는데 별명이 몸프라쳄의 호랑이다. 하지만 막상 읽어보니깐 몸프라쳄의 호랑이가 아니라 그냥 '종이'호랑이 같다.

짝사랑을 하지만 원수 국가인 영국의 여인 마리안나 앞에서 쩔쩔매는 모습은 참 가관이다. 만약에 자신의 연인이 되어준다면 왕국은 물론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것은 물론이고, 일년 내내 빛나는 황금과 보석으로 샤워시켜주겠다는 등 사랑하는 여자 앞에서 큰소리를 친다. 지금까지 문학 작품들 중에서 읽기 민망하게 느껴졌던 문장이었다. 필자도 남자이지만 사랑에 빠져 눈에 콩깍씌면 왜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하는지 모르겠다.  

 

산도칸 시리즈의 첫 작품이라서 앞으로 전개될 산도칸과 마리안나의 러브 스토는 어떻게 이어질지 알 수는 없지만 과연 도칸이 그 때의 약속을 마리안나에게 지켜줄지 궁금하기만 하다. 황금과 보석을 그녀에게는 바치는 것은 산도칸에세는 식은 먹는 일이겠지만, 그의 절친이자 동료인 야네스와 헤어지지 않는 한 말레이시아를 지키기 위한 해적 활동은 포기 못할 것이다. 아마도 다음 시리즈에는 산도칸은 또 한번 자신의 본분과 마리안나를 사이에 두고 고민할 것이다. 혹은 몸프라쳄의 호랑이 시절의 향수 때문에 산도칸과 마리안나가 부부싸움을 하는 상황도 상상할 수가 있다.

시리즈의 첫 작품의 줄거리를 통해 앞으로의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하기만 하다. 
  

 

 

  이탈리아의 쥘 베른  


산도칸 시리즈의 첫 작품의 줄거리를 간략하게 말하자면 자신의 조국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잔인한 해적과 자신이 싫어하는 원수 국가에서 태어난 여자의 불꽃같은 사랑을 하게 되는데 결국에는 국가 간의 대립을 뛰어넘어 두 사람은 연인이 된다. 대체로 통속소설의 전형적인 줄거리이다. 그래서 산도칸 시리즈가 대중적인 인기를 끌기에 충분한 줄거리 위주의 내용으로 갖추어져 있다. 그러나 후대의 문학가들이 그의 작품을 애독하는 것과 동시에 찬사를 보낸 점은 무시할 수 없는 평가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작가인 에밀리오 살가리는 산도칸 시리즈의 배경인 말레이시아에 한 번도 가보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는 말레이시아 관련 자료들을 통해서 최대한 야생의 나라를 표현한 것이었다. 사족 하나 달자면 살가리는 ‘이탈리아의 쥘 베른’ 이라는 별명을 가지있다. 많은 독자들이 알다시피 쥘 베른도 대중적인 모험소설을 남긴 유명한 프랑스의 작가이다. 그의 작품 배경은 19세기 당시로서는 시대를 앞서가는 것이었다. 세계 일주, 해저 밑, 지구 속 심지어 우주까지 배경이 참으로 폭넓다. 그런데 놀랍게도 쥘 베른은 우주나 지구 속, 바다 밑에 가본 적도 없으며 그 역시 영국 밖으로 나가서 여행을 한 적이 없었다고 한다. 그는 과학, 지리학에 관한 식견, 탐험가들에게 얻은 생생하고 풍부한 자료들, 그리고 자기만의 특유의 상상력으로 100여 편의 모험소설들을 써왔던 것이다. 

  

 

  

 

  체 게바라가 산도칸을 읽은 이유

 

내용은 산도칸과 마리안나의 사랑이 주를 이루고 있지만 산도칸이 영국의 지배를 받던 말레이시아의 보호를 위해 해적으로 활동하는 점은 무시할 수 없다. 쿠바의 혁명가 체 게바라 역시 산도칸 시리즈의 애독자 중의 한 사람이었지만 반 제국주의적인 관점서 읽었다고 한다. 미국이라는 거대한 자본주의 국가와 싸우는 자신을 제국주의 유럽 열강과 싸우는 무모하면서도 혈기왕성한 청년 산도칸에 투영함으로써 한평생동안 쿠바의 혁명을 꿈꾸었을 것이다.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유럽 전역에서 산도칸 시리즈가 유행했던 것은 단순히 대중들을 자극하는 모험소설이라는 이유도 있지만 동방의 취미에 대한 동경을 나타낸 오리엔탈리즘 문화도 한몫 했다. 19세기 말 유럽의 오리엔탈리즘 문화는 미술 분야에서 먼저 두드러진 발전을 했다. 화가들은 이국적인 동양의 여인과 장식품들을 화폭에 담아내어 동양에 대한 대중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화가들도 역시 동방에 직접 가보지 않았지만 여행가들에게 들은 동방에 대한 내용과 자신의 상상력만 있으면 대중들을 사로잡는 오리엔탈리즘 그림을 완성해냈다. 에밀리오 살가리도 당시 유럽 전역을 떠돌고 있는 문화의 유행에 심취했을 것이다.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높은 관심은 작가의 죽음에도 잘 나타내주고 있다. 살가리는 일본 사무라이식 할복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이런 대중들의 취향을 그는 제대로 포착하여 자신의 작품 구상에 잘 반영하였다.『산도칸』이 시작하는 페이지에도 보게 되면 산도칸이 이끄는 몸프라쳄 해적단의 본거지 내부가 묘사되어 있는데 문장은 오리엔탈리즘 미술의 영향을 받았을만한 서술로 이루어져 있다.     

 

  

사방 벽은 두툼한 붉은 비단과 브로케이드(무늬가 있는 직물)로 덮여 있었는데, (중략) 그래도 아직 황금빛으로 빛나고 있는 페르시아 양탄자가 깔려 있었다. 방 한가운데에는 자개로 상감 처리하고 은제 프리즈(띠 모양의 조각)로 장식한, 흑단으로 만든 테이블이 자리 잡고 있었는데, 그 위에 진짜 크리스털로 만든 술병과 잔이 놓여 있었다. 방의 세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는 어마어마한 선반들은 지난날 선상 습격에서 약탈한 전리품들로 빽빽하였다. 다양한 크기의 항아리들이 제각기 내용물을 과시하고 있었으니, 진주 목걸이, 금 목걸이, 귀고리, 반지, 로켓, 메달 등 신성한 성물들이 넘쳐 나고 있었다. 거기에다 귀중한 보석들 또한 빠지지 않았으니 진주, 에메랄드, 루비, 다이아몬드 등등 이 천장에 매달린 금박을 입힌 등불 아래에서 별처럼 반짝거렸다. 

                - 에밀리오 살가리『산도칸 : 몸프라쳄의 호랑이들』p 10~11

    

 

이국적인 고가(高價)의 장식품들에 대한 열거는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 무려 23줄이나 이루어져 있다. 첫 페이지부터 오리엔탈리즘적 문장의 도입은 이제 막 산도칸 시리즈의 서막을 알리는 작품을 읽는 대중들의 구미를 당기기에 충분하다. 20세기로 오게 되면서 유럽인들의 오리엔탈리즘은 동방 국가에까지 지배권을 확대시키려는 제국주의로 형성하게 된다. 그리고 그전에 꿔왔던 동방에 대한 동경을 문화재 약탈이라는 야욕으로 변질되었다. 지금의 유럽 국가들은 과거에 식민지에서 약탈했던 문화재들을 단지 전리품이라는 이유만으로 반환을 거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강대국이라는 명함을 내세우면서 세계무대에서 떵떵거리는 미국과 유럽 국가의 모습은 세월이 지나도 과거의 제국주의의 허울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적의 총알이 언제 자신의 심장에 박힐지도 모를 위험한 전장 속에서 체 게바라가 유독 산도칸 시리즈를 열심히 읽었던 것은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몸프라쳄의 호랑이는 죽었다 

  

산도칸과 마리안나는 몸프라쳄 해적단과 영국 군과의 치열한 전투 도중에 몰래 빠져나와 사랑의 도피(?)하는 장면으로 결말을 짓게 된다. 산도칸의 마지막 독백 중에서 ‘이제 몸프라쳄의 호랑이는 죽었다’ 라는 말로 스스로 사망선고를 내린다. 결국 기나긴 고민 끝에 조국을 위한 해적 활동을 잠시 접어두고 마리안나와 함께 행복한 생활을 선택하고 말았다. 다음 시리즈에서는 분명히 몸프라쳄의 호랑이는 다시 살아남아 해적질은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역사 속 현실에는 몸프라쳄의 호랑이는 진짜로 사망하였다. 실제로 말레이시아는 1786년부터 영국의 지배를 받았다. 그리고 무려 171년이 지난 1957년에 독립한다. 말레이시아대한 상세 역사를 더 이상 찾을 수가 없어서 알 수는 없지만 분명히 말레이시아의 독립을 위해서 희생을 한 산도칸과 같은 인물들이 치열한 삶을 살다 갔을 것이다. 그러나 조국을 찾기 위해서 싸웠던 시간은 100년을 훌쩍 넘게 되었다. 에밀리오 살가리마무리 지었 몸프라쳄 호랑이의 잠정적 사망선고가 결국은 오랜 영국의 지배를 받게 되는 말레이시아에게는 백년 동안의 죽음은 그들에게는 가혹한 사망선고였던 것이다. 유럽의 독자들이 산도칸과 마리안나의 재회를 원했던 것과 재회를 통한 해피엔딩에 열광한 것이 어쩌면 자신들의 식민지 지배를 당연하게 여겼던 제국주의자들의 염원과 열광이 아니었을까하는 씁쓸한 생각이 들게 된다.   

 


댓글(11)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로그인 2010-10-30 2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겹낫표까지 꼼꼼히 챙겨 주시는 리뷰.
그 책의 리스트에 시가 그렇게 없다니.. 좀 안타깝네요.

^^. 이렇게 열정적으로 책만 보실 것이 아니라 책 너머의 누군가에도 좀 열정적으로 시선을 돌려 보시는 건 어떨까요? 추워지는데.. ㅎ

2010-10-30 23: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양철나무꾼 2010-10-31 1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그래도 베고자기에 딱인 두께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그 '북 버킷 리스트'가 왕 부러운 걸요~^^

전 몇권이나 꼽을 수 있을까요?

cyrus 2010-11-02 1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글에서 언급하고 있는 책,, 도서관에서 대출해서,,
읽다기보다는(양이 너무 많아서 일일이 읽기에는 버거워요^^;;)
.. 훑어봤답니다. 정말 책베게하기에는 좋더라고요ㅎㅎ

나무꾼님 같은 경우에는 학생 시절부터 외국고전 작품들을 읽으셨을거 같은데요.
저는 열 손가락 꼽을 수 없을 정도로 꽤 읽으셨을거라고 생각됩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너무 문학작품들을 안 읽어서,,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읽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나중에 사회생활 하면 언제
이런 작품들을 읽어보겠습니까? ^^;;

2010-11-02 12: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0-11-02 12:59   좋아요 0 | URL
ㅎㅎ 이건 나무꾼님 댓글에 답글로 설정해야했었는데,,
제가 실수로 안 하고 말았네요. 죄송합니다.^^;;
비밀글 설정 해제할께요, 뭐 그닥 비밀스러운(?) 것도
아닌데,, 혹시나 해서 비밀글로 설정했던거랍니다.

2010-11-05 18: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0-11-05 19:17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자이트님. 다시 읽어보고 수정했습니다.
살가리가 산도칸을 주인공으로 한 시리즈를 썼는데
나머지 작품들도 국내에 번역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국내에 산도칸이라는 시리즈가 생소하지만,
국외에서는 영화나 드라마로 각색할 정도로 유명합니다.
체 게바라 이외에도 움베르토 에코와 가브리엘 마르케스도
산도칸 시리즈를 즐겨 읽었다하네요.

노이에자이트 2010-11-06 1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에선 에코의 소설에 언급되어서 유명해졌다고 하죠.작가들의 인생역정에 관심이 많은데 살가리는 그렇게 책이 인기가 있었는데도 가난 속에서 자살했다고 하니 무슨 사연인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cyrus 2010-11-06 16:14   좋아요 0 | URL
산도칸 시리즈가 많은 인기를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그에 대한 인세를 제대로 받지 못했다고 하네요,
거기에다가 빚도 불어나고요. 그런 환경이 작가를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죽음을 선택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사실, 살가리처럼 유명 문학가나 예술가들 중에서는
생전에는 작품성을 인정받았지만, 실생활에서는 가난에
허덕이는 정반대의 삶을 살았던 사람이 많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노이에자이트 2010-11-06 17:20   좋아요 0 | URL
어쩐지 슬프군요.
 
셔동지젼 지만지 고전선집 554
작자 미상 지음, 최진형 옮김 / 지만지고전천줄 / 201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디케의 말 못하는 고충

우연히 인터넷 기사를 보면서 알게 된 사실이었는데 우리나라에 매년 270명이 억울하게 감옥살이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270명이 어떠한 사연이 있길래 억울하게 옥살이를 해야했는지 알 수 없지만, 어떡하다 보니 자신이 범죄자로 몰릴 수 밖에 없는 불행한 상황을 맞았을 것이다.   

TV속 드라마나 문학 작품들에는 억울하게 범죄자로 몰려 옥에 갇힌 인물이 등장하곤 한다. 대부분동료의 거짓된 밀고나 비윤리적인 인물의 뇌물 혹은 증인의 엉터리 증언 때문에 한순간에 범죄자로 지목받게 된다. 그리고 단지 인상이 좋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범죄자가 되는 경우도 있다. 

이렇다 보니, 범죄에 대해서 공정한 판단을 내려야 하는 재판관들에게는 이런 복잡한 상황들 속에서 올바른 판결을 내리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다. 오죽했으면 정의의 여신 디케(Dike)가 눈을 가리고 있겠는가?  눈을 가림으로써 하나의 사건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정의롭게 법을 집행하겠다는 의미를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인간이라는 존재는 모두 완벽할 수가 없다. 정말 불행하게도 범죄자라는 낙인이 찍혀 수십년을 감옥에 살아야하는 사람이 있고,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서 뇌물을 받아서 올바르지 못한 판결을 내린다거나 부당한 집단들과 손을 잡아서 그 집단의 이익을 위해서 사건을 처리하는 비윤리적인 재판관들이 있다.  박정희 독재 정권 시절에 반국가단체 인사로 몰아 넣어 사형 판결을 내린 '인혁당 사건' 이 그 예이다. 8명의 인혁당원들은 사형 판결이 내려진 지 불과 18시간 만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이들이 사형당한지, 무려 32년 만에 사법부는 인혁당 사건의 재판 결과는 잘못된 판결이었으며 8명을 무죄로 선고하였다.  

2년 전에 베스트셀러였던 <디케의 눈>에서 저자이자 변호사인 금태섭 씨는 디케가 눈을 가린 이유가 실제 현장에서 법이 진실을 찾는 것이 힘들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말한다. 그의 말대로라면 아무리 뛰어난 신이라 할지라도 디케는 현실 앞에서 진실다운 판결을 내리는데 말 못하는 고충이 있었을 것이다.

    

 

  동물판 '실화 극장, 죄와 벌'

하지만, 악의 세력에 맞서서 힘 없는 선의 약자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금태섭 씨가 말하고자 한 것처럼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재판관은 진실다운 판결을 내려야 한다.  이런 디케의 진리는 동서고금 모든 재판관들에게 통용되는 보편적인 가치이다.  

그래서 조선 시대에도 지금처럼 부당한 재판 때문에 억울하게 누명을 씌워야했던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서동지전>은 흥미롭게도 이솝 우화처럼 동물들이 등장하는 고전소설이면서도 내용은 오늘날의 재판처럼 억울한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즉, 올바른 교훈을 강조하고 있는 이야기인 것이다.

<서동지전>은 조선 후기 때 쓰여져서 작품 속 인물들도 시대상의 인물들을 반영하고 있다.  

우리나라 고전소설에는 선과 악으로 대비되는 서로 구도적인 캐릭터가 있듯이 <서동지전>에는 성격이 착하나 억울하게 모함을 당하는 쥐 '서대주' 와 그를 모함하는 다람쥐가 등장한다. 다람쥐는 예전에 서대주로부터 양식을 빌려 큰 은혜를 입었으나, 또 한 번 그에게 양식을 구걸하다가 퇴짜를 맞게 되자, 이에 원한을 품고 재판관인 호랑이 '백호산군' 에게 거짓으로 소송을 건다. 그러나 슬기로운 재판관인 백호산군은 서대주와 다람쥐의 말을 들어보고 다람쥐가 허위로 고발하였음을 알게 된다. 결국, 자신이 세운 계략에 의해서 궁지에 몰린 다람쥐는 그 허위 신고라는 죄목으로 귀양을 가게 된다. 그러나 마음이 착한 서대주는 백호산군에게 다람쥐에게 선처해 줄 것을 간청한다. 이에 탄복한 백호산군은 서대주의 간청대로 다람쥐를 용서해주었고, 이에 다람쥐도 자신의 행동에 대해 반성하고 서대주에게 사과를 한다. 그러자 서대주는 쿨하게 다람쥐에게 황금을 주면서(!) 이야기는 끝난다. 

이 작품에서 서대주는 과거에 큰 공을 세워 벼락부자가 된 인물이며, 다람쥐는 살림이 부유했으나 성격이 무능하여 가난에 허덕이는 인물이다.  작품 배경을 비추어 보면 서대주는 조선 후기 때 새롭게 부상한 신흥 상공인 계층이며 다람쥐는 허위 의식에 젖어 있는 몰락한 양반층을 상징하고 있다.  유교적 조선 사회를 오랫동안 지배하는 줄 알았던 양반층들에게는 갑자기 등장한 신흥 상공인 계층들을 무척 못마땅하게 여겼을 것이다. 자신들의 유지 체제가 흔들리고 있음을 눈치 챈 양반층들은 유교 사상의 이념과 자신들의 권위를 앞세워 이들이 자신들의 영역에 넘보지 못하도록 온갖 수단을 펼쳤을지도 모른다.  공정히 사건을 처리해야 할 관리들이 그 부정적인 수단에 눈이 먼 나머지 제멋대로 판결을 내렸을 것이다. 이런 악의 연결 고리 때문에 아무 죄도 없는 선량한 상공인 계층 또는 힘 없고 가난한 서민들은 부당한 양반들이 지배하는 세력 앞에서 억울하게 죄값을 대신 치뤄야 했다.   

    

 

  뇌물이 오고가는 사회

그러나, 여기서 소개된 줄거리만 가지고 서대주를 올바른 인물이라고는 말하기 힘들다. 작품을 읽는 독자에 따라서 한 인물에 대해서 여러 가지 해석을 할 수 있는데 재미있게도 서대주는 자신이 처한 억울한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서 뇌물을 주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서대주라는 인물은 갑자기 찿아온 예상 밖의 상황에 대해 민첩하게 대응할 줄 아는 명민한 성격의 소유자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의 힘으로는 억울한 누명을 벗어나기에는 역부족이다보니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 뇌물을 이용하는 현실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요즘 시대에 <서동지전>을 읽게 되면 서대주의 이런 행동은 당연히 부정적으로 볼 수 밖에 없게 된다. 서대주가 다람쥐가 모함한 거짓된 죄목을 받았다하더라도 공명정대한 사회에서는 뇌물은 부정적인 방법이다.  어차피 백호산군의 명판결로 서대주가 억울한 누명에서 벗어나는 이야기로 전개되지만 서대주가 뇌물을 주는 행동만큼은 옳은 일이라고는 볼 수 없다. 

서대주의 이런 모습은 비단 조선 후기 사회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도 뇌물은 판결의 형세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이런 부정한 거래도 오래 가지 못한 채 발각되기는 하지만, 이런 뉴스를 접한 사람들은 뇌물의 위력을 알게 된다. 그래서 우리 사회에서는 뇌물이 오고 가는 현상이 줄어들지 않는다.  이들에게는 뇌물만이 살 길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동지전>에서도 뇌물의 위력을 맛 본 인물이 등장하는데, 평소에 서대주에 대해 나쁘게 생각하는 오소리는 백호산군의 명령에 따라 서대주를 체포하러 가는데, 자신의 동료인 너구리에게 서대주로 하여금 뇌물을 요구할 것을 결탁을 꾀하기도 한다.  서대주의 죄를 따지기 전에 뇌물부터 챙기려는 속물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서대주와 오소리를 통해서 뇌물이 사회를 지배하여 점점 부패하고 있는 조선 후기의 사회상을 풍자하고 있다.  조선 후기나 100년 뒤의 지금의 모습이나 잘못 돌아가고 있는 세상은 여전하기만 하다.

 

  

  백호산군다운 호질(虎叱)

작품 속에 등장하는 서대주, 다람쥐, 오소리는 부정적인 인물이라고 치더라도, 그나마 긍정적인 인물은 다람쥐의 아내인 계집 다람쥐와 백호산군 뿐이다. 

자신의 남편이 서대주를 위시하여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계집 다람쥐는 남편을 충고하다가 도리어 모욕을 당하는 인물로 등장한다. 그러고는 그 모욕감에 분하여 집을 뛰쳐나가는 모습은 가부장적 권위에 대한 비판 의식을 보여 주고 있다.   

한편으로는 계집 다람쥐의 행동 역시 지금의 현실을 비추어 보면 눈 앞의 부당한 행동을 막으려는 바람직한 인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녀는 남편의 계략을 막지 못한 채 훌쩍 남편 곁을 떠나고 만다. 이를 통해 부당한 행동에 맞서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 존재하더라도 그 힘이 미미하다는 것을 뜻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부정한 사회 현실 속에서도 백호산군 같은 훌륭한 재판관들이 존재하고 있다. 중국 고전 속 일화를 예를 들어 공정한 판결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백호산군의 말은 부정부패와 비리에 물들인 법조계 인사들에게 일침을 가할만하다.   

   
 

 " 대개 만물이 가볍고 무거움을 알고자 할진대 저울을 사용하는 것만 같음이 없고, 송사의 바르고 그릇됨을 아는 데는 양쪽의 말을 듣는 것만 같음이 없나니, 한편의 말만 듣고 좋고 나쁨을 경솔하게 판결치 못하리라. " 

 - <셔동지전> 최진형 역, 지만지고전천줄, p 89 -  

 
   

백호산군은 하나의 사건에 대해 판결할 때에는 일방적으로 한쪽의 이야기만 듣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공정한 판결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법조계 인사들에게는 아주 중요하면서도 당연히 알고 있는 진리이지만 일부는 이 진리를 실제로 지켜지지 않은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디케가 '공정한 판결' 을 상징하는 서양의 인물이라면, 아마도 우리나라에는 <서동지전>의 백호산군이었을 것이다.  우리나라 법조계에 종사하는 사람들 그리고 지금도 공정한 디케의 눈을 가진 미래의 재판관이 되기 위해서 열심히 법을 공부하고 있는 법학도들은 백호산군의 호질(虎叱)은 한 번쯤은 새겨 들어야할 것이다.            

 

  

P.S   

이 소설을 원문 그래도 직역하다보니, 너무나 많은 한문과 중국 고사들이 등장한다. 비록 얇은 분량에다가 독자들을 위해서 수많은 각주들을 달았지만 이 작품을 가볍게 읽기에는 쉽지 않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양철나무꾼 2010-10-29 2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펭귄 클래식이랑은 할말이 없는데,
지만지는 좀 애정해요~

근데,고전을 두루 섭렵하시는군요~

양철나무꾼 2010-10-29 20:54   좋아요 0 | URL
제가 서가여서,저 서동지전 애착이 가요~^^

2010-10-30 16: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양철나무꾼 2010-10-31 11:50   좋아요 0 | URL
네,제가 徐가 라는 얘기였어요~^^
 
무도회가 끝난 뒤 펭귄클래식 82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박은정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10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환경이냐, 인간이냐 

   
 

" 지금 여러분은, 인간은 자기 스스로는 무언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 분별하지 못한다고 말씀하시는군요.  모든 게 환경에 달려 있고 환경이 인간을 해칠 수 있다고 말이지요.  하지만 저는 우연이 모든 걸 좌우한다고 생각합니다. "    

 -  [무도회가 끝난 뒤] 레프 톨스토이, 박은정 역, 펭귄클래식, p 187 -  

 
   

 

톨스토이가 쓴 <무도회가 끝난 뒤>라는 단편소설에서는 환경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서 자신의 생각을 밝히고 있는 이반 바실리예비치의 대화부터 이야기는 시작하고 있다. 

17쪽 밖에 안 되는 짧은 분량의 내용이지만, 이 작품을 통해서 톨스토이는 소설 속 인물인 이반 바실리예비치로 투영하여 환경이 무조건 인간에게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환경결정론에 대한 회의적인 입장을 밝히면서 독자들에게 이 논제에 참여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그리고 이반은 자신의 인생은 절대로 환경에 지배받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한다.

환경결정론을 부인하게 된 계기를 그린 이반의 경험담이 이 작품의 주된 줄거리인데 실제로 톨스토이의 형이 겪었던 경험을 토대로 단 하루 만에 썼다고 한다. 역시 러시아의 대문호답다.  

  

 

  대령의 두 얼굴

간략하게 줄거리를 소개하자면, 이반은 젊은 시절을 회상하면서 자신의 경험담이 시작된다. 젊음의 피가 흐르고 있었던 대학생의 이반은 상류층 귀족들이 모이는 무도회에서 아름다운 여자 바렌카 B를 만나게 된다. 이반은 그 여자를 본 순간, 사랑에 빠지게 되고, 그 곳에서 여자와 같이 무도회에 참석한 그녀의 아버지도 만나게 된다. 바렌카 B의 아버지는 전정에서 수많은 공을 세운 대령이었다.  이반은 첫만남에서부터 두 부녀의 자상한 마음에 호감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다음날, 이반은 우연히 목격한 장면을 보게 되면서 큰 충격을 받게 된다.  

도망가는 타타르 인(톨스토이가 활동하던 19세기 중반 러시아는 영토 확장을 위해서 러시아 변방에 살고 있는 부족들 간의 전쟁이 잦았는데, 그 부족들 중에는 터키계 민족인 타타르 인들도 있었다) 사나이를 무자비하게 매질을 하는 병사들의 장면을 보게 된다. 그 병사들 사이에는 전날 밤, 무도회장에서 호감을 가졌던 바렌카 B의 아버지인 대령도 있었다. 그리고 대령 역시 그 타타르 인에게 린치를 가하는 것이었다. 대령의 폭력은 병사들보다 심했다. 자신의 부하인 병사들에게 새 곤봉을 가져오라고 시키면서 풀리지 않은 분을 폭력으로 해소하고 있었고, 심지어 타타르 인을 세게 때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힘 없는 병사 한 명에게도 손찌검을 가하였다.   

대령의 잔혹한 면을 보게 된 이반은 자신이 그토록 원했던 군 입대도 포기하게 된다. 그리고 바렌카 B에 대한 애정도 식어져갔다. 자신은 세상에서 아무 쓸모없는 인간이 된 이유는 단지, 세상의 우연성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우물 안의 개구리, 이반 바실리예비치  

자신의 경험을 통해서 이반 바실리예비치는 인간이 악하게 된 것이 다 환경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그러나 단순히 우연히 본 장면을 가지고 환경결정론을 부정하기에는 이반의 인식 과정은 잘못 되었으며 이치에 맞지 않다.  

그 당시로서는 이반은 이제 막 세상을 알려고하는 대학생이었다. 우연히 본 장면을 가지고 세상의 순리를 파악하기에는 그는 세상이 일부분만을 봤을 뿐이다.  그는 세상을 잘못 바라보고 있었다. 우물 안에 사는 개구리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사방의 우물 벽을 보고 세상은 어두컴컴한 곳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그는 우물 안의 개구리였다. 

무엇보다도 이반에게 제일 심각한 것은 중년이 되어도 세상의 순리를 파악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 세상에 왜 대령 같은 인물이 있는지 알아보려고 노력했지만, 결국에는 그 해답을 알아내지 못한 채 결론은 자신은 세상에서 쓸모 없는 '잉여인간'이라고 단정짓고 만다. 하지만 그가 세상의 순리를 파악하지 못한 채 포기하기에는 성격이 너무 나약하기만 했다.  아니, 환경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을 무시하기에는 자신 스스로 복잡한 환경에 적응하고 변화해보려는 일말의 적극성이 보이지 않아서 아쉽기만 하다. 대령의 잔인한 면을 목격했다는 이유만으로 사랑하는 여인을 떠나야 하는 것도 어리석은 처사이다.

 

  

  당신이 어리석다오, 이반 바실리예비치 씨

이반이 생각하고 있는 '잉여인간' 은 스스로 선과 악을 구분하지 못하는 능력이 없는 인간이다. 그렇다면 우연성 있는 세상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다 선과 악을 구분하지 못하는 잉여인간이라는 것인가?  작품의 결말에 보면 이반의 말을 듣고 있는 사람들 중 어느 한 사람이 이반의 생각을 반박하고 있다.  

   
 

 " 하지만 한 번 말씀해 보십시오.  만약 당신(이반 바실리예비치) 같은 사람이 아무 쓸모가 없다면 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쓸모가 없다는 건가요? " 

- [무도회가 끝난 뒤] p 202 -

 
   

그러나 이반은 반박자의 말이 어리석다면서 마음이 상한 상태에서 대화를 얼버무리고 있다. 당황한 모습이 역력한 이반의 모습을 통해서 자신이 지금까지 하고 있는 말이 견강부회(牽强附會)라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었던가 보다.  

이 세상에는 이반 바실리예비치처럼 세상 앞에서 그리 쉽게 어리석어지는 사람이 많지 않다.    (이 시끄러운 속세에 아직도 선과 악을 구별하지 못하는 어리숙한 사람들이 있기는 하지만.)
인간은 이성적인 존재인 이상, 기본적으로는 자신이 행한 일이 옳은건지, 나쁜건지 판단할 수 있는 분별력은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분별하는 능력 뒤에는 인간을 지배하는 환경의 영향을 외면할 수 도 없다.  일반적으로 자신이 처한 환경이 나쁘고 부당한 것을 알게 되면, 스스로 자신의 행동을 제어하고 선을 긋는다. 그것은 악한 환경에 물들이게 되면 자신의 본성도 악하게 된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생각과 말이 잘못된 사실이라는 것을 이반이 알고 있다면, 그는 분명히 잉여인간이 아닐 것이다. 어떻게든 그는 세상의 이면을 파악하지 못한 자신의 어리석음을 가리기 위해서 세상의 우연성이라는 이치에 맞지 않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세상이 단순히 우연적으로 돌아가고, 인간이 이반처럼 선과 악을 구분 못하는 '바보' 잉여인간이었다면 이 지구에는 악한 사람들만 판을 치고 있었을 것이다.  

 

 

* P.S  

펭귄클래식에서 나온 톨스토이의 <무도회가 끝난 뒤>에는 동명 단편소설 이외에도 또 다른 단편소설인 [벌목][폴리쿠시카][위조 쿠폰] 등이 수록되어 있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양철나무꾼 2010-10-28 2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스토예프스키나 스탕달보단 톨스토이가 나은 것 같아요~
다시 말하면 요즘 기준으로 좀 더 인간적이라고나 할까?

근데 환경일까요,인간일까요?

cyrus 2010-10-29 14:01   좋아요 0 | URL
제 생각에는 환경이 인간을 지배하기는 하지만,
인간들도 스스로 환경에 따라 삶을 선택하고, 환경을
뛰어넘을 수 있다고, , , 봅니다.
어쨌든, 작품 속 대령처럼 환경의 변화에 따라
성격이 바뀔줄 아는 사람처럼요.
(제가 봐도 뭔 말인지 모르겠네요,
이번 글은 좀 내용이 부실하구요-_-)

maribell 2011-03-20 1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사이러스님이네요~ 말테의 수기를 구매할지 고민하더 보게 됨~ ^^;

cyrus 2011-03-21 08:47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마리벨님. 반가워요. 잘 지내고 계신거죠? ^^
 
백야 외 열린책들 세계문학 126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석영중 외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도스또예프스끼 읽기의 어려움

지금까지 읽은 도스또예프스끼의 작품의 수는 『백야 외』를 포함해서 세 권이다. 도스또예프스끼라는 세계문학의 위대한 거봉(巨峰)을 오르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님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도스또예프스끼의 장편소설(백치, 악령, 죄와 벌,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들이 나를 괴롭히기 위해서 기다리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자주 애용하는 도서관에는 최근에 나온 열린책들 세계문학전집으로 나온 도스또예프스끼 작품의 신판이 없어서 곤혹스러울 때가 있다. 10년 전에 나왔던 구판은 소장되어 있지만 먼지가 풀풀 날리는 보존서고에 있는 터라 대출하는데 한계가 있었다. 도서관 대출횟수가 적은 책들이 보존서고로 향하기 마련인데 며칠 전에 읽었던 1993년에 출간된『마야꼬프스끼 전집』(최근에는 열린책들 세계문학 No. 64『마야꼬프스끼 선집』으로 출간) 세 권이 자료실에 살아남아 있는 것을 생각하니 이 아이러니한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할지 그저 썩소만 날 뿐이었다.

보존서고에 보관되어 있는 책을 대출할 수 있는 절차는 그리 까다롭지 않지만 사서 입장에서는 도서관 지하에 있는 보존서고에 내려가는 것이 여간 귀찮을뿐더러 대출하려는 시민들 입장에서는 사서가 그 한 권의 책을 구하고 있는 동안에 10~15분 정도 대출. 반납 데스크 앞에서 뻘쭘하게 서서 기다려야만 한다. 보존서고에서 책을 대출한다는 것은 양자에게는 부담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보존서고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도스또예프스끼를 간절히 읽고 싶어 하는 열망을 이길 수 없었다. 용기를 내어 『백야 외』의 서지번호를 적은 쪽지를 사서에게 건넸다. 다행히 사서가 인상도 좋은 분이라서 쉽게 대출할 수가 있었다. 어두운 보존서고 속에서 도스또예프스끼를 구원해줬다는 기쁨(?)이 느껴짐과 동시에 한편으로는 보존서고에 있는 다음 시리즈들을 대출해야한다는 두려움이 떠올랐다. 한꺼번에 두, 세 권 대출했어야 하는 뒤늦은 후회감도 밀려왔다. 올해 안에 도스또예프스끼 마라톤을 완주할 수 있을지 걱정된다. 

 

 나의 코끝 찡하게 만든 정직한 도둑   

 

그 전까지 읽었던 작품들이 장편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내가 아직까지도 도스또예프스끼를 제대로 음미하지 않은 채 독서를 하고 있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이번에 읽은 단편 모음집인 『백야 외』는 읽기가 한결 수월했다. 도스또예프스끼를 읽기 시작한 지 고작 3권 읽고 있지만, 지금까지 읽은 책들 중에서 각각의 8편의 줄거리들이 마음 속 깊이 와 닿았다.

「정직한 도둑」의 아스따피 이바노비치와 같은 타인에 대한 연민과 따뜻한 배려를 가진 마음씨 좋은 캐릭터를 보니, 이런 캐릭터를 설정한 도스또예프스끼가 색다르게 보였다. 이전에 발표한『가난한 사람들』(열린책들 세계문학 No.117)에서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가난한 생활을 하는 러시아 시민들이다. 가난 때문에 사랑의 결실을 맺지 못한 제부쉬낀-알렉세예브나 커플의 비극을 묘사하고 있다.「정직한 도둑」에 나오는 두 주인공 이바노비치와 에멜리얀 일리치도 가난한 사람들이며 일리치는 가난 때문에 도둑이 된 인물이다. 그러나「정직한 도둑」의 결말은 비극적이지가 않다. 자신이 입고 있던 외투를 팔라는 일리치의 유언은 자신을 돌봐주고, 바로잡아 줄려고 했던 은인 이바노비치에게 해 줄 수 있는 작은 보답이었다. 도둑질을 일삼았던 과거의 죄를 회개하여 이바노비치의 품 안에 숨을 거두는 장면은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 읽으면서도 코끝이 찡할 정도의 감동의 여운을 잊을 수가 없었다. 

  


 초식남의 슬픔 대처법,「백야」  

 

「백야」는 우연한 기회에 네프스끼 거리에서 아름다운 여인 나스젠까를 알게 된 ‘나’라는 인물이 은근하고 격한 사랑을 품었으나, 나스쩬까를 사랑하는 다른 사람이 나타나자 말없이 사라진다는 이야기다. 뚜르게네프의 시를 인용한「백야」의 제사(題辭)의 문장처럼 나스쩬까는 ‘나’의 가슴에 단 한순간 가까이 있다간 일몽(一夢)의 여인이었다. 소설의 제목의 백야(白夜)는 밤에 어두워지지 않는 현상이다. 서로에 대해 사랑의 감정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결국에는 뜨겁게 무르익지 못한 두 주인공의 사랑을 비유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절망하지 않는다. 나스쩬까와 함께한 나흘 동안 시간은 행복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나스쩬까의 앞날에 축복이 있기를 빈다.  

 

요즘 시선으로 보면 '나'는 초식남이라고 말할 수 있다. 뭐 본인은 나스쩬까와의 만남을 만족한다지만, 가슴 속에 품어 왔었던 나스쩬까를 향한 사랑의 감정을 좀 더 적극적으로 드러내지 못한 그의 소극적인 자세가 아쉽기만 하다. 제 2의 나스쩬까를 찾을 수 있다는 몽상에 빠져 백야의 네프스끼 거리를 방황할지도 모를 일이다.

   

 


 뚜르게네프 데자부 

 

「꼬마 영웅」은 11살 소년인 화자가 연상의 M 부인을 짝사랑하는 이야기다. 나이 차이도 많거니와 화자가 사랑하는 여자도 기혼녀라서 어린 화자의 짝사랑은 유년 시대의 추억으로 끝난다. 그런데... 이 작품을 처음 읽었는데 플롯과 줄거리 전개가 전에 어디서 읽어본 느낌을 받게 되었다. 전에 보지 못했던 것에 대해 낯설게 느껴지는 것을 데자부라고 한다는데... 뚜르게네프의 중편소설『첫사랑』과 흡사했다.  

 

『첫사랑』의 남녀 주인공은 블라지미르와 지나이다인데, 여주인공 지나이다가 블라지미르보다 5살 연상인 21살이다. 두 작품의 주된 내용도 청춘기의 남자 주인공의 첫사랑을 그리고 있다. (11살이 사랑을 알 성숙한 나이라고 보기 어렵지만... 사춘기가 빨라지는 요즘 청소년들의 모습을 생각하면 11살도 충분히 그런 감정을 느낄 법하다) 「꼬마 영웅」의 M 부인에게는 M이라는 남편도 있으나, 사교계에서는 그녀에게 관심 있는 남자들이 많다. 그 중에 그녀를 짝사랑하는 N 청년이 등장한다. 『첫사랑』의 지나이다 역시 아름다운 외모로 그녀 주위에 남자들이 몰려든다. 그리고 블라지미르의 아버지가 그녀를 사랑하기도 한다. 두 여주인공은 주위 남자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면서 정작 마음속에는 폭풍우와 같은 사랑의 감정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다. 두 작품 속 여주인공의 인물 설정과 복잡한 인물 관계가 유사하다. 11살 화자와 블라지미르는 자신들이 좋아하고 있는 여주인공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마초 기질을 발휘한다. 11살 화자는 M 부인이 지켜보는 앞에서 사람들이 아무도 타지 않으려는 사나운 말 딴끄레드를 타고 달림으로써 주위로부터 남성다운 ‘영웅’으로 칭찬받는다. 반면에 블라지미르는 11살 화자보다 극단적인 행동을 취한다. 블라지미르는 지나이다가 보는 앞에서 4m 담장(!) 위에서 뛰어내린다.   

 

예전에 읽었던『분신』(열린책들 세계문학 No. 116)에서 고골의 단편소설『코』와 유사한 점을 느꼈는데, 과도기를 겪고 있었던 젊은 도스또예프스끼로서는 좀 더 나은 창작을 위해서 당시 러시아의 위대한 작가로 칭송받고 있던 고골의 작품을 모사할 수도 있다. 그러나 도스또예프스끼에게 뚜르게네프는 문학관이 서로 다른 앙숙이었으면서 러시아 문단의 라이벌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도스또예프스끼가 표절했다고는 보기 어렵다.  

 

「꼬마 영웅」은 도스또예프스끼가 옥중에 있을 때 창작했으며, M이라는 익명으로 1857년에 발표되었다. 뒤이어, 1860년에 뚜르게네프의『첫사랑』이 발표되었다. 그렇다고 뚜르게네프가 도스또예프스끼의 작품을 표절했다고는 볼 수는 없다. 자신의 본명이 아닌 익명으로 발표했기에, 뚜르게네프가 이 작품을 읽었어도 도스또예프스끼의 작품이라고는 생각 못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 백 년 전, 명작을 가지고 표절했다, 안 했다 논한다는 것은 무의미만 할 뿐이다.

8개의 단편들이 다른 작품들에 비해 문학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지만, 이 작품들을 쓰고 있었던 시기는 젊은 도스또예프스끼가 문학적 성장통을 겪고 있을 무렵이다. 도스또예프스끼가 다음 작품을 위해 구상하고 있었던 모든 문학적 재료들을 볼 수 있는 소품들이라는 점에서 과도기적 단편소설들을 외면할 수는 없을 것이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양철나무꾼 2010-10-27 1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백야 속의 '나'가 초식남이라는 거죠?cyrus님이 아니고...^^

책을 도서관을 통해서도 읽으시는군요.
전 도서관 갈 시간이 없어요.
직장생활하는 사람들을 위해,일주일에 하루 이틀은 늦게까지 했음 좋겠어요~
아웅,도서관 관계자들에게 돌 맞으려나?

전 도스또예프스끼,읽기는 읽었나 모르겠어요~

cyrus 2010-10-27 21:14   좋아요 0 | URL
네, <백야>라는 단편의 남자 주인공이 '나'로 등장합니다.
사실 여기서 말하기에는 그렇지만,, 저도 약간 초식남 기질이..^^;;
예전에 군대 있을 때 어느 잡지에서 초식남 테스트 해봤는데..
그렇게 결과가 나온 적이 있었답니다.

주5일제 도입 이후로 한 달에 두 번 정도 월요일에 휴관하는 것은
이해한다지만, 저도 시간 좀 연장을 해줬으면 좋겠네요.
지금은 7시까지지만,, 이제 겨울이 되면 한 시간 일찍
문 닫는데 말이죠.

반딧불이 2010-10-28 1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스토예프스키를 투르게네프와 비교해 놓으니까 투르게네프는 읽고 도스토예프스키는 안읽은 제게 선명하게 와닿네요.

저희동네 도서관 도서대출은 8시까지로 연장이 되었고, 11시까지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거나 책을 볼 수 있게 되었어요. 도서관에 건의를 해보시는 방법도 있지 않을까요?

cyrus 2010-10-28 17:14   좋아요 0 | URL
반딧불이님이 살고 계시는 동네가 어딘가요??
제가 그 쪽으로 이사를 해야겠네요ㅎㅎ

예전에도 도서관 홈피에 연장 건의에 대해서 게시판에
말이 많았던데,,, 제가 군생활 2년 하고나서도
변한게 없었습니다^^;; 괜찮은 도서관장이 새로 부임하지
않는 이상 아마도 지금 체제로 유지할 것만 같네요.


2010-10-29 00: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10-10-28 16: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스토예프스키가 투르게네프를 되게 싫어했지요.성질이 괴팍한 사람이라서 투르게네프 같이 교양있는 점잖은 사람을 견디지 못했나봐요.<악령>에 나오는 등장인물(갑자기 이름 생각이 안 나네요)중에 투르게네프를 희화화한 게 있죠.

cyrus 2010-10-28 17:16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악령> 이야기는 처음 안 사실입니다.
요즘 초창기 작품부터 천천히 읽고 있답니다.
대망의 <카라마조프 씨네 형제들>까지 완독하는게 저의 목표랍니다.

노이에자이트 2010-10-30 16:53   좋아요 0 | URL
성공하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