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1/2장으로 쓴 세계 역사 열린책들 세계문학 104
줄리언 반스 지음, 신재실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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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글은 8월 말에 썼던 글입니다.  열린책들에서 주최한 리뷰 대회 때 쓴 글이었는데 이 글로 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오랜만에 카페 올린 글들 읽다가 이 글이 서재 블로그에 올리지 않은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좀 뒤늦게나마 글을 올려봅니다.   

그런데 알고보니 이 책이 만화가 김태권 씨가 추천한 책이기도 하네요, ^^   

http://blog.aladin.co.kr/celebrities/4316651 

이 때가 서울에 열렸던 퓰리처 상 사진전에 가기 전 쓴 글이었는데 , , ,  지금도 그 때 사진전의 감동을 잊을 수가 없네요.   그리고, 몇 달 지나고서야 제가 사는 대구에서도 퓰리처 상 사진전이 열리는 아픈 기억도 있기도 합니다. 

 그 때 왕복으로 KTX 타고 간 비용만 생각하면 , , ,  ㅠ_ㅠ

오랜만에 카페와 블로그에 올린 글들 보니, 감회가 새로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손발이 오글거리네요. 무수히 많은 오타 투성이에다가,  제가 봐도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모순어법들 ^^;; 

그래도 예전에 썼던 글을 읽어보니 몇 몇 책은 다시 한 번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2010년에 올해 썼던 글들을 다시 한 번 보는 것도 좋은거 같네요.  

 

  

 

 

  잊지 못할 퓰리처 상 사진 전시회 
 

수많은 관람객들이 찾아 큰 인기를 끌었던 퓰리처 상 사진전이 이제 4일 밖에 안 남았다.(전시회는 29일까지다) 이번 사진 전시회가 다음에도 열릴 수 있을지 알 수는 없지만 이번 사진 전시회의 흥행기록만 따져보면 언젠가는 다시 우리나라에 찾아올 것이라고 희망의 기대를 해본다. 필자는 한 달 전에 전시회 관람을 했다. 그것도 큰 맘 먹고 혼자서(!) 한 번 타는데 5만 원 정도 드는 KTX를 타고 서울의 전시회에 갔다. 사실 이런 대형 전시회를 관람해보는 것이 평생소원인 이유도 있었지만 결정적으로 홀로 전시회에 간 이유는 주변 지인들이 이런 문화적 생활에 관심을 가지지 않다보니 서울에 같이 동행할 사람이 없었다. 교통비용도 만만치 않은 것도 그렇고 완전 대구 토박이 혼자서 서울에 가는 것이 불편해서 그냥 포기할까 생각했었다. 하지만 안 간다는 게 너무 아쉬워서 미지의 서울에 대한 두려움(?)을 무릅쓰고 전시회에 찾았다. 전시회가 열리는 예술의 전당에 처음 와봤는데 건물 내부도 좋고 TV로만 봤던 건물을 보니 한편으로 신기하기만 하였다.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전시회에 찾은 관람객들이었다. 그 때가 방학 기간이다 보니 관람객 중에서 초, 중학생 자식들과 같이 온 가족들도 많이 있었다. 서울에서의 일정이 당일치기였고 전시회 내부에는 사진 촬영을 금지하고 있어서 무척 아쉬웠지만 평소에 책에서 봤던 유명한 사진들을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사진에서 전하고 있는 현장의 생생함과 어두웠던 역사의 이미지를 통해서 전율을 느낄 수 있었다. 무모했던 서울 당일치기는 외로웠기 보다는 절대로 잊을 수 없는 보람찬 하루였다.


 Truth or Lie

혹시나 이 글을 읽고 있는 분들 중에서 전시회에 가보셨다거나, 혹은 안 가보셨더라도 이 사진은 많은 매스컴과 책을 통해서 많이 보셨을 것이다.  

  


 

1945년 수상작인 조 로젠탈의 <수리바치 산에 게양되는 성조기>라는 사진이다. 역대 퓰리처 상 수상작 중에서 베스트 포토로 꼽히는 유명한 작품이기도 하고, 제임스 브래들리의 소설 『아버지의 깃발』의 책 앞표지와 소설을 원작으로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동명 영화의 포스터에서도 이 사진이 변주되었다. 사진의 배경과 장면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이오지마 섬의 수리바치 산 정상에서 미군들이 성조기를 게양하는 내용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미국을 주축으로 한 연합군의 승리로 끝나게 되면서 이 사진은 연합군의 승리, 곧 미국의 승리로 상징되는 사진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래서 이 사진의 제목과 배경에 대해서 알게 되면 이제 막 미국이 일본에게 승리하여 승리의 상징인 성조기를 세우고 있는 역사적인 장면일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예상했던 것과는 다르게 이 사진은 100% 자연스러운 장면을 찍은 것이 아니다. 사진작가의 연출이 만든 장면인 것이다. 조 로젠탈이 이미 사진을 촬영하러 수리바치 산에 올라왔을 때는 미군 병사들은 이미 성조기를 게양하고 내려오고 있었다. 그러자 그는 병사들에게 다시 한 번 그 장면을 재연해줄 것을 요구하여 이 장면을 토대로 사진 작품이 나온 것이었다. 전쟁 종결 이후 연출된 사진은 본의 아니게 의기양양한 전쟁의 승리자 미국의 얼굴과 맞아떨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숨겨진 사실은 이 사진이 미국이 전쟁에서 완전히 승리하고 난 뒤에 찍은 것도 아니다. 역시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영화인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오지마 섬에서의 전투 기간은 가장 치열했고 미국과 일본을 통틀어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사진 속 미군 병사들 중 3명은 사진 촬영 이후 전투 중에 전사하고 만다. 



 역사는 역사다?

우리는 역사를 증명해주는 사진뿐만 아니라 문헌자료, 그림만 봐도 역사 그 자체를 단순히 믿어버리게 된다. 앞에서 언급했던 조 로젠탈의 사진을 통해서 미국인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들은 세계대전을 승리한 미국의 우월감과 자기도취를 확인하게 된다. 진실 되지 않는 사진 덕분에 조 로젠탈은 퓰리처 상을 받았고, 사진 속 병사들 중에서 생존한 병사는 조국으로 귀환하여 대중들에게 전쟁의 영웅으로 칭송받게 되었다. 그만큼 팍스 아메리카나에 대한 향수를 잊지 않은 미국인들에게는 이 사진이 조작되었다고 말하면 대부분 이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다.   

 

 

   

 

* 테오도르 제리코 <메두사 호의 뗏목>

 

*『10 1/2장으로 쓴 세계역사』174~175페이지 사이에 그림 사진이 있음



줄리언 반스의 소설『10 1/2장으로 쓴 세계역사』에서도 로젠탈의 사진과 같은 유사한 내용이 있다. 제5장「난파」라는 제목의 장인데 테오도르 제리코의 그림 『메두사 호의 뗏목』에 대해서 작가가 약간의 픽션을 가미한 내용이다. 제리코의 그림은 실제로 난파된 메두사 호의 생존자들이 구조되는 사건을 토대로 한 그림이다. 그림 속 장면에는 뗏목 위에 죽은 사람의 시체가 널브러져 있는데 생존자들이 죽어가는 사람의 인육을 먹으면서 목숨을 부지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로젠탈의 사진을 보는 관람객들은 ‘전쟁에서 승리한 미국’과 ‘전쟁에서 패한 일본’이라는 이분법적 이미지가 떠올리게 되는 것처럼 제리코의 그림도 관람객에게 승자를 강조시켜주는 이분법적 관점을 불러일으키도록 의도하고 있다.  

 

‘살아남은 자’와 ‘죽은 자’. 결국 그림을 보는 이들에게는 죽은 자는 살아남은 자에게 먹히고 마는 약해 빠진 인물이다. 그리고 살아남은 자는 그 약한 자들의 시체를 먹으면서까지 목숨을 유지한 강인한 인물이다. 그러나 살아남기 위해서 생존자들은 쓸모가 없는 약한 자들을 뗏목에서 내다버리고. 심지어 인육을 먹기 위해서 살인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들은 비 인륜적인 행동을 했지만 관람객들은 그림 속의 처참했던 현장을 그대로 받아들임으로써 불편한 진실을 간과한 채 그림을 감상한다.

「난파」의 내용 중에는 제리코의 그림에 대한 주해가 나오는데 나폴레옹 파들은 메두사 호가 좌초되는 장면을 그리지 않은 것을 빌미로 이분법적 이미지의 구도를 당시 지배 계급과 피지배 계급으로 빗대어 투영하였다. 그리고 메두사 호의 좌초가 결국에는 무능한 왕당파의 모습이라고 비꼬아서 공격하기도 한다. 당시 기득권자인 왕당파의 이미지를 보호하기 위해서 제리코는 그림 제작에 약간의 설정을 가했던 것이다.  

우리가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역사 다큐멘터리나 박물관에서 보고, 학교에서 배우고 있는 역사가 줄리언 반스의 소설 제목처럼 기득권자들이 조작하고 남은 불과 10과 1/2 정도일지도 모른다. 반스가 세계 역사를 임의대로 10과 1/2장으로 축약한 것처럼 좁은 시야로 보고 있는 10과 1/2의 역사가 진짜 역사라고 생각하고 있다. 과거에 씻을 수 없는 오욕의 역사를 의도적으로 삭제시키고 화려했던 환락의 역사는 항상 보존하려고 한다. 그러다보니 역사의 범위와 관점이 10과 1/2로 줄어들게 된다. 


   

 반스가 만든 역사의 미로 속에서 찾은 것

반스의 소설을 구성하고 있는 10장의 역사는 픽션 또는 역사적 사실에 허구를 가미한 내용이다. 그러나 제목의 1/2로 상징되는「삽입장」은 에세이다. 작품을 이루고 있는 각 장의 내용들이 독립적으로 따로 놀다보니 각 장이 미로로 된 역사를 보는 듯하다. 하나의 장을 읽으면 다음 장들과 이어지지 않는 것처럼 각 장은 헤어날 수 없는 하나의 폐쇄된 줄거리 공간이다. 그래서 그나마 허구가 없는 내용이라는 삽입장마저도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기가 힘들었다. (지금까지 읽었던 열린책들 세계문학 중에서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다음으로 난해한 작품인거 같다) 삽입장의 내용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화자(아마도 작가 본인)가 사랑하는 ‘그녀’에 대해서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주제가 ‘역사’로 전환된다. 그리고 어느새 ‘사랑’에 대해서 설명하다 가 결말에는 잠을 자고 있는 ‘그녀’의 모습으로 끝난다. 작가가 언급했던 ‘사랑하는 그녀’, ‘역사’, ‘사랑’이 결국에는 역사를 비유하여 사랑하고 지켜나가야 한다고 말하려는 건지 아니면 그냥 제목 그대로 아무런 의미도 없는 삽입장을 써서 독자들을 곤란하게 만들려는 작가의 의도된 장난인지는 알 수 없다. 역시 포스트모더니즘 소설답다. 정형적인 소설 형식의 틀을 거부하고 있는 동시에 독자들에게 작품의 각 장에 대한 다양한 생각과 해석을 할 수 있도록 해준다.

그래도 복잡한「삽입장」속 내용에서 그나마 인상 깊었던 것은 역사에 대한 언급이다. 역사 앞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맹점을 작가 는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객관적 진실은 획득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 모두 알고 있다. 어떤 사건이 일어나면 우리는 수많은 주관적 진실을 끌어내고 이것들을 평가하고 우화화해서 역사를 만들고, 어떤 신의 이름으로 <실제의> 사건을 각색한다는 것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이렇게 신의 이름으로 각색한 것은 속임수이다. (중략) 이렇게 객관적 사실이 왜곡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여전히 객관적 진실을 획득할 수 있다고 믿는다.

- 줄리언 반스 『10 1/2장으로 쓴 세계역사』「삽입장」p 337 -



역사가 기록된 문헌이나 이미지 등은 당시 사회의 관점과 기준에 따라서 사건의 불필요한 잔상들을 거둬내고 진정한 하나의 역사로 가공된다. 하지만 왜곡되어 삭제된 불필요한 잔상들 속에서도 우리가 알고 있어야 할 진실의 내용도 있을 수가 있다. 그 사실을 인지하고 단순히 하나의 사건에 대해서 일방적으로 믿고 넘어가기보다는 보이지 않은 역사의 진실을 알려고 하는 관점이 필요하다.     

 


 

 

* 사진  출처

http://www.segye.com/Articles/News/People/Article.asp?aid=20060821000284&ctg1=02&ctg2=00&subctg1=02&subctg2=00&cid=0101120200000&dataid=200608212052000309
 

네이버 백과사전

http://100.naver.com/100.nhn?type=image&media_id=590409&docid=700897&dir_id=0904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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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0-12-30 0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저도 역사가 많이 취약하여 요즘 세계사와 국사를 다시 들춰보고 있는데요.
역사에서 중요한 것은 때로 '관점'인 것 같습니다.

cyrus 2010-12-30 14:07   좋아요 0 | URL
역사를 공부할 때 무조건 글자 그대로 보려고 하는것보다는
균형적으로 볼 수 있는 관점의 안목을 키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되네요. 그래서 김태권 씨가 이 책을 추천하는 이유일거구요^^

다이조부 2010-12-30 0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태권 관심저자인데 그이가 추천했군요 ^^

아참 그리고 퓰리처 사진전을 못 봤는데 어마어마했나 보네 ㅎㅎㅎ

근데 대구에서 몇 달 후에 전시가 있었다고 안타까워할 필요는 없을듯

작품이 똑같이 전시된다는 보장도 없고~ 그리고 몇 달 먼저 볼 기회가 있었잖아요

그리고 막상 동네에서 했으면, 언제든 갈 수 있다는 착각 때문에 못갈 확률이 높아요 ㅋ

cyrus 2010-12-30 14:09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듣고보니 그런거 같네요. 예전에 저도 그런 경우가
많았거든요ㅎㅎ

마녀고양이 2010-12-30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KTX를 타고 퓰리처 사진전을 보러온 사이러스님을 보니
오늘 넘 춥다고 코 끝 하나 베란다 내밀어보고
샤갈 전을 포기하려는 제가 좀 한심하다눈..........

아아, 역시나 나가볼까요?

cyrus 2010-12-30 14:12   좋아요 0 | URL
시간이 되시면 코알라 손 잡고 꼭 보러 가보세요.
춥다고 계속 미루다보면 못 갈 수도 있어요^^
아직 안 가봤지만, 내년에 꼭 가보고 싶은 전시회거든요.
열린책들에서 매월 리뷰 대회가 진행중인데
12월 리뷰 대회 상품이 샤갈 전 초대권이랍니다.
그래서 저는 그 이벤트만큼은 당첨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
 
소금꽃나무 우리시대의 논리 5
김진숙 지음 / 후마니타스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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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깊은 산 오솔길 옆 자그마한 연못엔    
지금은 더러운 물만 고이고 아무것도 살지않지만 
먼 옛날 이 연못엔 예쁜 붕어 두마리
살고 있었다고 전해 지지요.   

 깊은 산 작은 연못
어느 맑은 여름날 연못 속에 붕어 두 마리
서로 싸워 한 마리는 물 위에 떠오르고
여린 살이 썩어 들어가 물도 따라 썩어 들어가
연못속에선 아무것도 살 수 없게 되었죠.
깊은 산 오솔길 옆 자그마한 연못엔
지금은 더러운 물만 고이고 아무것도 살지 않죠. 

- 양희은 노래, <작은 연못> 중에서 -

 
   

 

 

  " 혹시 소금꽃나무라고 들어본 적이 있나요? " 

 

누군가 당신에게 이런 질문을 하게 된다면 무슨 대답을 할 것인가?  

' 소금꽃나무  , , , ?   

처음 들어본 생소한 나무 이름이라고 생각하지만 대답하기가 망설여질 것이다. 왠지 그런 나무가 있을 것이라는 반신반의한 생각도 들 것이다.   

그러나, ' 그런 나무는 없다 ' 고 말한 사람이 정답이다. 지금까지 세상에 나온 식물도감들을 샅샅이 뒤져봐도 나올 수 없는, 아니 이 지구상에 그렇게 부르는 나무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 이 소금꽃나무는 이 지구상에 존재한다.  

그것도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 대한민국에서 , , ,    

  

 

  노동자들이 피워내는 소금꽃

부끄러운 사실이지만, 나 역시 소금꽃나무의 존재를 며칠전에서야 알게 되었다. 그래서 실제로 소금꽃나무를 본 적도 없다.  대한민국 최초의 '처녀 용접공' 으로 한진중공업의 전신인 대한조선공사에 들어가 지금도 민주노조운동을 하고 있는 김진숙 씨가 쓴 <소금꽃나무>라는 책에서 알게 되었다.

한진중공업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아침 조회 시간에 쭉 서 있으면 그들의 등짝에는 하얀 가루가 묻어있다. 그들이 뼈 빠지게 일하면서 뿜어져 나온 땀들이 소금 결정체로 굳어버린 것이다.  김진숙 씨는 한진중공업 노동자 시절 그 모습을 자주 보면서 등짝에 묻어 있는 하얀 것들을 소금꽃이라고 생각했다.  소금꽃을 주렁주렁 달린 채 서 있는 노동자들은 소금꽃을 피워내는 나무인 셈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소금꽃나무의 존재와 실체에 대해서 잘 모른다. 아니, 모른다기보다는 아예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소금꽃나무가 ' 노동자 ' 라는 사실 때문에.  

   

 

  그녀가 지금도 1인시위를 하고 있는 이유  

김진숙 씨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고 싶어서 검색 포털 사이트에 그녀의 이름을 검색하였다. 나는 그녀의 근황까지 알 수 있을줄 알았다.   

그런데, 그녀에 대한 뉴스는 2010년 2월 달로 멈춰져 있었다. 한진중공업의 정리해고에 반대하여 단식투쟁을 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매일 오전 7시면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문 앞에서 1인시위를 하고 있다고 하는데, 지금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다.  

희망적인 새로운 삶을 찾을 수 있도록 만들어진 굳센 심지 같은 성격을 그녀의 글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녀는 지금도 한진중공업 앞에서 1인시위를 하고 있을 것이다.  ' 비정규직 ' 이라는 이름 아래에 아직도 일 할 권리를 얻지 못한 수많은 이들을 위해서.  

그들이 붙잡고 있던 노조라는 가느다란 나무뿌리가 제법 그늘까지 드리운 산별노조라는 고목나무가 되도록 피를 섞어 물을 주어 살을 깎아 비료를 주며 알뜰살뜰 가꾸어 갈 사람들. 투쟁의 시기가 되면 있어야 할 자리에서 집행부의 실천 지침을 묵묵히 기다리는 사람들.  한 번도 앞서거나 빛나지 않은 채 30여 년을 그렇게 살아왔고 수십 년을 그렇게 살아갈 사람들.  

 - <소금꽃나무> 김진숙, 후마니타스, p 77 -  

그녀는 그동안 참고 지내야만 했던 노동자들의 절박한 목소리를 대변해주고 있다. 특히, 그녀에게는 거대한 세상에 부딪혀 쓰러져야만 했던 동지들이 못다 이룬 한을 풀어줘야만 했다. 2003년에 한진중공업에서 장기 노사 갈등을 겪다가 김주익, 곽재규 두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있었다.  김주익 지회장이 35m 크레인 위에서 129일 간 농성을 하다 스스로 목을 맸고, 뒤이어 곽재규 씨가 도크로 뛰어내려 사망했다. 산재사고가 워낙 많은 조선소라지만, 순식간에 두 명의 동료의 죽음은 가족이나 다름없던 한진중공업 노동자들 그리고 김진숙 씨에게는 지울 수 없는 아픔의 기억이기도 하다.  두 사람의 죽음을 헛되이하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그들이 그토록 갈망했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되찾기 위해 흩날리는 눈발과 날카로운 바람이 부는 지금도 김진숙 씨는 현대중공업 건물 앞에서 시위를 하고 있다.

     

 

  우리에게 ' 노동자 ' 란 . . . ?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 노동자 ' 라는 단어에 대해서 거리감을 갖기 마련이다. 쥐꼬리만한 수당으로 왠만한 사람들도 하기 힘든 고역에 쉬지도 않고 일을 해야하는 사람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학창시절에 학생기록부에 장래희망을 적을 때도 '노동자' 라고 적는 사람이 있었던가?   

거기에다가 오늘날에는 노동자들의 활동을 ' 노가다 () ' 라고 경시하면서 부르게 된다. 토목 공사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높여서 부르는  どかた는 원래는 ' 토가다 ' 로 읽지만, 변형되어 사용하면서 ' 노가다 ' 로 읽게 된 것이다.

 ' 할 일 없으면 노가다라도 뛰지. 뭐 , , , '  

젊은 사람들 사이의 대화에서는 ' 노가다 ' 라는 단어가 자주 나오는데 지금은 힘들고 고된 일을 지칭하는 은어로 자리잡게 되었다. 앞에서 제시된 예시문에서도 알 수 있듯이 노가다는 할 일 없을 때 하는 힘든 일이라는 잘못된 인식도 갖게 되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노동자들이 할 일 없어서 아무도 나서지 않는 힘든 일을 하는 불행한 사람들이 아니다.  김진숙 씨가 생각하는 ' 노동자 ' 는 그동안 우리가 왜곡되어 알고 있었던 노동자들에 대한 인식을 뒤집어버리고 있다. 

그 나무들이 500여 년 남해 바다를 주름잡던 거북선을 만들었다.  배를 만들고, 차를 만들고, 집을 만들고, 전기를 만들고, 전화를 만들고 , , , , ,  (중략)  그야말로 세상을 만들어 온 것도 그들이고, 청소를 하는 쓰레기를 치우는 것도 그들이고, 온갖 재화를 생산하는 것도 그들이고, 그 재화를 지켜주는 것 또한 그들이다.  

 - <소금꽃나무> 책을 내며, p 9 -   

이집트의 기자 피라미드가 지금까지도 수천년 세월의 모랫바람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 그리고 왜구의 침략을 막아 조선이 승리할 수 있었던 거북선이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은 이름 없는 수많은 일꾼들, 즉 노동자들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노동자는 단순히 일만 하는 그런 하찮은 사람들이 아니다. 이들 중에서도 故 김주익, 곽재규 씨처럼 스스로 끊임없이 존재에 대해 고민하는 동시에 세상과 현실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우리는 살면서 일상 생활에서 없어서는 안 될 스마트폰, 컴퓨터, TV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누가 만들었는지, 그것을 만들어낸 노동자들의 삶, 그리고 그들이 겪는 말 못하는 고충과 자존심에 대해서 생각해보지 않았다. '노동자' 에 대한 김진숙 씨의 정의는 노동자에 대한 우리들의 각성을 촉구하고 있다.   

    

 

  ' 내가 빨리 일자리 찾아줄게요! '

양희은 씨의 노래 가사 속 이야기처럼 ' 대한민국 ' 이라는 작은 연못에  ' 정규직' 이라는 붕어와 ' 비정규직 ' 이라는 붕어가 함께 살고 있다.   ' 정규직 ' 붕어가 자신의 이익에 눈이 멀어 '비정규직' 붕어를 억압하고 관심을 가져주지 않으면 언젠가는 ' 비정규직 ' 붕어는 죽게 된다. 죽은 ' 비정규직' 붕어의 시체가 썩어가면서 ' 대한민국 ' 연못 역시 썩어가게 된다.  하지만, '정규직' 붕어는 자신의 연못이 썩어가는 것도 모른다. 그리고 자신 때문에 이런 최악의 상황이 생겼는지도 영영 모른채 자신도 오염된 물 때문에 죽게 된다.  

현재 정규직뿐만 아니라 대다수 대중들에게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조운동은 자신과 전혀 관련 없는 남 이야기일뿐이다. 지금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생존이 달린 투쟁을 부르짖어도 정규직들에게는 쇠 귀에 경 읽기일 뿐이다. 비정규직들의 투쟁은 노동운동에서조차 소외되고 있으며 정규직뿐만 아니라 정부 그리고 시민들까지 스스로 회피하고 침묵하고 있다.  비정규직 문제가 낳은 사회적인 갈등의 상처가 깊어가는 것도 모른채 대한민국 사회가 만들어낸 불신의 병은 깊어만가고 있다. 특히 이들의 존재가 있었기에 우리가 편하게 먹고 살 수 있는 것도 모르고 있다.  이러한 인식의 변화를 꾀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갈등의 폭이 커져버린 정규직, 비정규직간 격차의 문제 해결이 최우선이다.  

  아빠, 그런데 내가 일자리 구해줄테니까  

  그 일, 그만하면 안되요? 

  그래야지 운동회, 학예회도 보잖아요!  

  다른 애들은 아빠자랑도 하는데 . . .  

  내가 빨리 일자리 찾아줄게요!  화이팅!  

  참!  어제 무서웠죠?  우리는 오빠가 아빠 노릇 잘 해요.  

  사랑해요!  

  - 크레인 위에 있는 아빠에게, 故 김주익 씨의 딸이 쓴 편지, P 111 -  

오늘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노조라는 가느다란 나무뿌리를 산별노조라는 나무로 자라기 위해서 자신들의 피와 살을 스스로 깎아가면서까지 비료로 만들고 있다.  하지만, 희망적인 노동자들을 위한 나무가 되기 위해서는 노동자 자신들이 희생하면서 비료로 만들기에는 지금 현실로서는 턱없이 부족하기만하다.    

 ' 내가 빨리 일자리 찾아줄게요!  화이팅! '   

아직 세상물정 모르는 이 순진한 아이가 쓴 편지 속에 있는 이 구절처럼 아버지 故 김주익 씨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모든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힘이 될 수 있는 격려와 관심이 필요할 때이다. 이들에 대한 우리의 작은 격려와 관심이 이들이 가꾸는 희망의 나무가 자랄 수 있는 훌륭한 비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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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0-12-29 1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스로 끊임없이 존재에 대해 고민하는 동시에 세상과 현실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

아, 갈길도 멀고 별로 실현될거 같지도 않은 제 목표네요.
한방에..... 라고 생각하지 말고, 천천히....... 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우리 사회를 보면 불안해요. 막판까지 온 듯 한 느낌. 아마도
세계적으로 열풍이 부는 자유 시장이라는 개념의 부작용이 커질대로 커진 느낌입니다.
크게 한번 흔들릴거 같은 생각도 들구요. 그럼 나는 어떤 신념을 가져야 할지
재테크는 어떻게 하여 쥐꼬리만큼 가진 재산이라도 보호할지 그런 걱정도 하구요.
온갖 상상이 머리를 들끓고 있는 요즘입니다. ^^

cyrus 2010-12-29 20:32   좋아요 0 | URL
그렇죠. 사실 비정규직의 애환을 바라보면서 병든 사회에 대해서
지적하고 한탄을 해도 먹고사니즘의 미련을 못 버리는게 사실이죠.

양철나무꾼 2010-12-30 0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분 책 못 읽어요, 가슴이 메어 와서...

참 외롭게 우뚝 서신 분이죠.
이 겨울 춥지 않아야 할텐데...

님 리뷰 덕분에,
저 혼자 넘 호사스러웠던 건 아닌지 되돌아보게 되네요.

cyrus 2010-12-30 14:04   좋아요 0 | URL
저 역시 편의점 카운터에 앉으면서 그동안 알지 못했던
진실을 알게 되어서 불편했고, 저 스스로 반성하기도 했었습니다.
저는 친분이 있는 출판사 카페 매니저님의 소개를 통해
이 책을 읽게 되었는데요.. 그 분 역시 나무꾼님처럼
가슴 아프게 읽었다고 했답니다. 하지만, 비록 불편하고 가슴 아픈
이야기들이지만 분명 많은 사람들이 꼭 알아야 할 진실이라는 것은
분명한거 같습니다.

다이조부 2010-12-30 0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보고 싶은 목록리스트에 있는데 먼저 읽었군요~ 배신자 ㅋㅋㅋ

제가 주인장 또래에 친구랑 서준식선생의 뚱땡이책 옥중서한 을 읽은 기억이 있어요.

지금은 원래 두꺼운 책이었는데, 더 퉁퉁해진 책인데 님이 읽으면 분명 만족할거라 확신합

니다. 김규항 인터뷰집에서 김진숙씨를 비판하는 대목이 있는데, 그 구절에서 걸리더군요


다이조부 2010-12-30 0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구나 비판의 대상이 될 수는 있지만, 근본주의자 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는

김규항의 발언에 저는 유감스럽더군요!~

새해에도 주인장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싶네요. 대구 내려가면 막창 먹어요 ㅋㅋㅋㅋ

cyrus 2010-12-30 14:05   좋아요 0 | URL
미안해요, 꾸랑 형^^;;
꾸랑 형이 소개하신 서준식 씨의 책뿐만 아니라 김진숙씨를 비판하는
김규향 씨의 글도 읽어보고 싶네요.

글샘 2011-01-14 17: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진숙 씨 지금 타워 크레인에 올라가서 고공 농성중입니다.
마음이 쓰리고 시리고 그렇네요. ㅠㅜ
고 김주익 생각도 나고...

cyrus 2011-01-14 20:14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이제 곧 날씨가 추워질텐데 그 분의 건강이 악화될까봐
걱정되네요.
 
<왜 도덕인가>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왜 도덕인가?
마이클 샌델 지음, 안진환.이수경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1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오늘, 오세훈 서울시장은 민주당 인사들과 만난 회동 자리에서 무상급식을 자신의 임기 내에 전면 실시 검토할 것임을 밝혔다.  그동안 여. 야당 간의 설전과 갈등을 빚어왔던 무상급식 도입 찬반 문제가 이제서야 ' 타협 ' 이라는 답을 찾게 되는 것일까?  

민주당 및 진보 진영 측에서는 저소득층 자녀 위주의 선별적인 무상급식은 어린 학생들에게 빈부 격차의 위화감을 줄 수 있으며 전면 무상급식은 대다수 국민들이 찬성하는 보편적인 복지정책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한나라당 및 보수 진영에서는 전면 무상급식은 경제 사정이 넉넉한 가정의 자녀까지 포함되는 `부자급식' 이며 다른 교육정책 예산 책정에 불가피한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하였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민주당이 주장하는 전면 무상급식은 ' 복지의 탈을 쓴 망국적 포퓰리즘 ' 이라고 주장하면서 거부하고 나섰다.    

무상급식을 두고 여. 야당 간의 대립은 갈수록 심화되어만 갔고, 오 시장은 주요 일간지를 통해서 무상급식 반대 내용을 담은 문제의 광고사진를 게제하기에 이른다.  광고사진이 실린 이후, 여당에서는 약 3억 8천만원 정도의 서울시 예산을 무상급식 반대 광고비로 사용한 것에 대해서 거센 비난을 하였다. 차라리, 그 광고비로 20만 명의 아이들을 먹일 수 있는 무상급식 예산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지적하기도 하였다.  이런 뜨거운 여론 속에서 누리꾼들은 오 시장의 무상급식 반대 광고 패러디한 서울시장 반대 광고를 만들기도 하였다.   

무상급식 광고 패러디의 등장은 무상급식 전면 실시 검토에 관한 오 시장의 발언이 있는 오늘부로 불과 사흘 전 일이다.  한 달동안 무상급식 때문에 여,야당간 서로 얼굴을 붉힌채 감정의 골을 깊어가게 했었고, 우리 사회 전체로도 적지않은 혼란과 갈등을 만들었다. 오늘 오 시장의 무상급식 전면 실시 검토안 발언은 그동안의 감정싸움이 낳은 갈등을 청산할 수 있는 희소식이지만, 이렇게 맥풀리게 문제가 해결되어서 약간 황당하기도 하다. (그리고, 오 시장의 약속이 제대로 이행할 수 있을지 지켜봐야할 일이다)    

이번 무상급식 문제와 같은 경우에는 복지정책의 공정성 여부에 대한 논의에 대해서 진지하게 접근하고 고민할 수 있는 사회적인 이슈가 되었다.  거기에다가, 앞으로 다가오게 될 차기 대선의 판도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논제이기도 하다.   

오늘날 사회는 도덕보다 개인의 자유가 중시되는 사회처럼 여길 수도 있지만 여전히 대중은 도덕적인 가치를 최우선으로 여기고 있다.  마이클 샌델<왜 도덕인가?>라는 책을 통해서 도덕적 가치는 개인이 공동체와 뗄 수 없다는 점에서 공동체적 삶을 증진하는 것, 그것이 바로 공동선이라고 정의하였다.   여기서 공동체적 삶을 증진한다는 말 속에는 경제적 번영 속에서도 개인의 권리를 공정하게 존중해야한다는 명제가 숨어 있다. 개인의 특정한 권리는 공공의 선보다 중요하다. 모든 개인의 권리가 그러하지는 않겠지만, 중요한 개인의 권리는 공공의 이익을 목적으로 제한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이렇다보니, 하나의 사회문제가 줄 수 있는 공정성의 영역에 대한 논쟁이 항상 등장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마이클 샌델은 도덕적 딜레마를 무조건 피하기보다는 직면해서 고민하는 것이 곧 '정의' 라고 역설하고 있다.  오늘날의 무상급식 문제는 여.야당 서로에게 감정의 상처를 남겨준 사회적인 논쟁 문제로 남게 되었지만 이번 문제를 통해서 도덕적 딜레마로서의 성찰의 자세가 필요하다.

전면 무상급식 반대측 입장의 이유에도 알 수 있듯이 저소득층 자녀들을 위한 복지제도로서의 의미가 무색하게 된다. 전면 무상급식이 정말로 ' 부자급식 ' 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전면 무상급식은 '부자급식' 이라는 동등의 의미로 과장 해석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마이클 샌델은 부유층들은 공공서비스를 덜 사용하게 되며 그것을 지원하는 데 들어가는 세금을 납부하려는 의지가 낮아지기 때문에 공공서비스로서의 복지제도의 질이 떨어진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래서, 말이 전면 무상급식이지 저소득층 자녀들이 의존하는 이전의 무상급식의 의미와는 별 차이가 없는 것이다.   

' 열심히 일하며 규칙을 따르는 ' 많은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무위도식하는 사람들에게 무료로 보상을 제공하는 것은 자신이 흘리는 땀에 대한 조롱으로 느껴진다. '   (p 78) 

이번 무상급식 광고 패러디는 무상급식에서도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사회복지에 충분히 마련할 수 있는 예산 3억 8천만원이 엉뚱하게 광고비로 사용했다는 점에서 정부에 대한 분노의 의미를 보여주는 해프닝으로 끝나게 되겠지만, 무상급식을 원하는 저소득층 자녀를 둔 부모 입장에서는 자신의 심장에 두 번이나 대못이 박는 심정일지도 모른다.  마이클 샌델의 사례를 빗대어 표현하자면, 돈을 내고 밥 한 끼를 먹을 수 있는 사람도 공짜로 밥을 먹을 수 있게 된다면 밥 한 끼를 먹기 위한 돈을 벌기 위해서 죽도록 일하는 사람이 얻는 혜택에 대한 가치가 떨어지게 된다. 우리뿐만 아니라 앞으로 무상급식 제도에 대해 합의점을 모색해야 할 여. 야당들은 도덕적 공정성의 기준에 대해서 한 번쯤은 생각해봐야할 일이다.  

 

사진 출처: http://www.newsprime.co.kr/news/articleView.html?idxno=178647    

 

  

* 쓰잘데 없는 뱀다리 

올해들어서 읽은 책들 중에서 가장 어렵게 읽었던 책이면서도 리뷰 쓰기가 힘들었던 책인것 같습니다.  이 책에 대한 인기가 워낙 대단하기에 처음에는 신간평가 선정도서가 되었을 때 쾌재를 불렀지만 , , ,  막상 읽어보니 능력의 한계를 깨달았습니다. (일반 대중들을 겨냥한 정치철학 도서라는데 , , ,  중간에 롤즈가 등장하는 부분에서는 읽는데 무척 애먹었습니다)

읽으면서 느꼈던 점을 쓰고보니,  생각대로 적어놓은 페이퍼가 되어버렸네요.  (내용이 많이 빈약할 것입니다) 이 책에 대해서 좀 더 확실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꾸준히 읽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이 드네요.  베스트셀러라면 으레 한 번 읽고 마는 것이 흠인데, 올해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팔린 인문학 도서가 마이클 샌델의 책이라던데 , , ,  이번 ' 마이클 샌델 ' 열풍이 단순히 대한민국 냄비 근성의 한 예가 되지 않았으면 하네요.  앞으로의 이 사람의 활약이 기대가 되네요. ^^

그런데 , , , 이번 12월 신간평가 선정도서인 <촘스키와 푸코, 인간의 본성을 말하다>를 어떻게 읽어야할지 걱정이 드네요.  한 번,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어봤는데 , , ,  쉽게 읽혀지는 책이 아니더군요.  신간도서 리스트 작성하는 것뿐만 아니라, 점점 읽는 것도 힘들어지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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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향부동 2010-12-27 0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래도 추상적인 주제를 담고 있는 책이 서평 쓰기가 영 어렵더군요. 차라리 구체적인 사실이나 사건에 대한 책이 서평 쓰긴 더 쉬운데… 저 역시 이 책에서는 주로 제가 관심 있던 부분에 집중해서 서평을 쓴 것 같습니다.

아 그리고 서재 방명록에 크리스마스 축하 메세지 남겨 주셨는데 하도 정신이 없어서 지금에야 확인했네요. 즐거운 크리스마스 보내셨기를 바라고 2010년 마무리 잘하시길 바랍니다.

cyrus 2010-12-27 17:47   좋아요 0 | URL
어제 이거 쓰면서 <시크릿가든>을 제대로 못 봐서 안타까울 따름이네요^^;;
방금 부동님 서재에 들려서 알게 되었는데 많이 바쁘셨군요.
부동님도 연말 잘 마무리하시고 행복한 새해 보내시길 바랍니다. ^^

saint236 2010-12-27 0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읽고 무상급식을 생각하셨군요. 공동체와 정의, 도덕 그리고 정치. 샌델이 끊임없이 하는 말이 그것이죠. 정의란 무엇인가가 그렇게 히트했는데 왜 책과 다른 이야기들이 넘칠까요. 세훈이 성님은 이 책을 읽지 않으셨나 봅니다.

cyrus 2010-12-27 17:48   좋아요 0 | URL
정치인들도 한 번쯤은 이런 책을 읽어봐야할텐데 말이죠. ^^;;

마녀고양이 2010-12-27 09: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아직 이 책을 못 읽었지만, 요즘
장하준 교수님의 <그들이 말하지 않은 23가지>라는 책을 읽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인간은 합리적이려고 노력하지만, 모든 면에서 합리적이지 않다는
말이 있습니다. 너무나 많은 정보가 주어지고 있는지 조차 모르는 정보도 있고
결과 예측도 어렵다는 말이지요. 말 그대로 사회에서 인간은 그다지 합리적이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말이죠, 최약자에 대한 것들, 아이들에 대한 것들은
토론으로 따지기 보다는 무조건 사회 복지 차원을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규칙을 생각해봅니다. 따지다 보면, 약자의 자존심도 헤치고 따라서 자존감도
낮아지고 그리고 별별 희안한 논리가 다 등장하니까요.

또한, 4대강의 로봇 물고기가 아이들 무상급식보다 중한 존재인지 생각합니다.
(오세훈..... 정말 거론할 값어치도 없는 뭐같은 놈입니다. 아하하.)

cyrus 2010-12-27 17:49   좋아요 1 | URL
저는 장하준 씨의 신간도서를 아직 안 읽었습니다.
꼭 읽어봐야겠습니다. 항상 마고님의 댓글을 봤지만
오늘은 무척 멋있습니다. ^^

꽃도둑 2010-12-27 10: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도덕적 잣대는 자주 딜레마에 빠지나 봅니다. 옳음이 좋음에 우선한다고 한 도덕적 기준으로 볼 때 무상급식을 하는 게 옳은 건지...무상급식을 하면 좋은 건지... 그걸 누가 정해야 하는지?...4대강도 밀고 나갔는데 무상급식 반대 그걸 못 밀고 나가겠어요?,,,, 저는 이 나라의 도덕성을 믿습니다.

cyrus 2010-12-27 18:02   좋아요 1 | URL
네, 맞아요. 향후 무상급식 문제가 어떻게 진전될지 모르겠지만,,,
아직 이 나라에도 도덕성이 살아있다는 것을 정치인들이
조금이라도 보여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네요^^;;

굿바이 2010-12-27 10: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기쁜 성탄 보내셨나요? 인사가 늦었습니다^^
조지 레이코프의 <도덕,정치를 말하다>라는 책이 있는데, 미국 정치현실, 진보와 보수의 도덕적 잣대를 잘 설명하는 책입니다. 이 책과 함께 읽으면 비교하면서 볼 수 있어 더 좋은 독서가 되지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무상급식 문제는, 적어도 우리 아이들이 간장게장으로 몰리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밥도둑은 진짜 간장게장이면 충분하니까요!

cyrus 2010-12-27 18:03   좋아요 1 | URL
저도 그 책 읽어봤는데,,, 저에게는 상당히 어렵더라고요.
하지만 굿바이님께서 소개하신 댓글을 보니 다시 한 번 읽어보고 싶네요.
서로 다른 저자의 글을 비교하면서 읽는게 참 좋은거 같습니다.^^

2010-12-27 22: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27 23: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27 23: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루 2011-01-04 16: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의란 무엇인가,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는 모두 재미있게 읽었는데 이 책은 이래저래 읽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리뷰까지 엉망으로 써놓고 보니 좀 더 책임감있게 도서를 선정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

cyrus 2011-01-04 22:25   좋아요 1 | URL
저두요 ^^;; 이번에 조국 교수의 책을 미리 읽고 리뷰를 써서
다행이지 푸코와 촘스키에 대한 책을 어떻게 읽어야할지 막막하네요.
이 책 역시 도서관에 있는 걸 보고 선 독서를 해봤는데,,,
포기했었답니다. 내용이 어려워도 차근차근 읽어야겠습니다.
 
엥겔스 평전 - 프록코트를 입은 공산주의자
트리스트럼 헌트 지음, 이광일 옮김 / 글항아리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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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엥겔스의 러브스토리  

컴퓨터를 켜면 항상 찾는 곳이 있다. 알라딘 서재와 가입되어 있는 출판사 공식 카페 두 군데.  

이런 온라인 공간 속에서 만나는 수많은(이라기보다는 적지 않은,,, ;;;;) 사람들 덕분에 인생 공부를 하게 되고 이전에 접하지 못한 것들을 새롭게 알게 된다. 무엇보다도 알라딘 서재와 카페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개인의 취향과 서로 비슷한 사람들끼리 만난다는 것은 무척 흥미로운 일이다. 거기에다가, 인생 선배인 동시에 독서 선배인 분들을 통해서 좋은 책을 알게 되는 횡재도 얻게 되는 경우도 있다.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01113929 

 

W 출판사 카페에 가입한지 얼마 안 된 때였다. 카페 매니저분께서 쓰신 목수정의 <야성의 사랑학> 리뷰를 읽게 되었다.  매니저님은 이 책에서 언급되는 엥겔스의 러브 스토리를 소개하면서 엥겔스가 참 멋지다고 적으셨다.   

       ' 엥겔스의 러브 스토리 , , , ? '

엥겔스라면, 마르크스와 함께 세계 흐름의 판도를 뒤바꾼 저서 <공산당 선언>을 쓴 사상가 아닌가.  유명 인사들의 러브 스토리는 그들의 사상보다 더 흥미로운 이야기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사회주의 사상을 부르짖은 혁명가답게 불꽃 같은 열정의 사랑을 했을 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 리뷰를 읽은 것에 대한 댓글을 적으면서 엥겔스의 러브 스토리에 대해 살짝 궁금하다고 적었을 뿐인데, 매니저님은 친절하게, 그것도 너무 상세하게 엥겔스의 러브 스토리를 답글로 무려 4개나 달아주셨다.  (<야성의 사랑학>의 구절을 인용하면서까지, , , 이 글에 소개되는 엥겔스 이야기는 <엥겔스 평전>의 내용을 참고했음을 밝혀둔다)

젊은 엥겔스는 영국의 맨체스터에 위치한 방적공장을 공동 운영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공장에서 일하는 메리 번즈라는 여성을 보고 한 눈에 반해 교제를 하게 되었다.  그러나, 엥겔스와 메리 번즈의 교제는 당시 사회로서는 성립할 수 없는 관계였다. 엥겔스는 방적공장의 사장인 부르주아였으며 메리 번즈는 그 방적공장 안에서 방적 기계나 다름 없었던 노동자, 프롤레타리아였던 것 이었다.  이들의 만남에 대해서 기성 사회가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엥겔스는 부르주아들의 모임에 간혹 메리 번즈를 대동하기도 했었는데, 주위 부르주아들 입장에선는 심기가 불편했다.  돈 많은 자본가가 거지나 다름없는 노동자와 사귀고 있으니 , 당연히 좋게 볼리가 없었다.  설상가상, 사회주의자들의 모임에서도 이들의 교제는 환영받지 못했다. 엥겔스는 사회주의자들이 적대시하는 부르주아의 위치에 서 있기도 하였다. 이렇다보니 이전부터 부르주아 방적 사장이 프롤레타리아 여성 노동자를 꼬셔서 사랑 놀음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심지어, 그의 절친한 동지인 마르크스마저도 엥겔스와 메리 번즈의 교제를 무척 껄끄러워 하였다.  유대인의 피에서 흐르고 있는 도덕적 엄격성을 지닌 마르크스 입장에서는 엥겔스가 여자친구를 대동한다는 것은 격식에 어긋난 일이기 때문이다.

이런 눈치에 엥겔스 입장에서 부담스러웠던가 보다. 결국, 메리 번즈가 살 수 있는 보금자리를 따로 마련하여 밤에만 몰래 그녀를 만났다. 그러나, 엥겔스는 단지 그녀를 성적 욕망을 채우기 위한 존재로 여기지 않았다. 그녀의 교제를 통해 부르주아 자본가들에 의해 비참하게 착취당하고 있는 프롤레타리아 노동자들의 참상을 생생하게 접할 수 있었다. 그리고 메리 역시, 엥겔스의 사상에 동조하는 든든한 지원군이기도 하였다.  

 

 

  엥겔스의 이중생활  

이 분의 엥겔스에 대한 댓글을 읽고나서 그런지, 이번에 나온 트리스트럼 헌트의 <엥겔스 평전> 에 관심을 안 가질 수가 없었다.  때마침, <엥겔스 평전>이 출간하게 되어서 무척 반가웠다.  목수정의 에세이집 <야성의 사랑학>에서는 엥겔스의 러브 스토리만 소개되어 있지만 (이 책을 아직 안 읽어봐서 단정하기에는 이르지만) 이번에 나온 에는 프리드리히 엥겔스라는 사상가에 대한 자질구레한 삶의 기록들이 세밀하게 공개하고 있다.  엥겔스라면 바로 떠오르는 인물이 마르크스이다보니, 이 책에서는 엥겔스뿐만 아니라, 마르크스의 실생활 역시 엿볼 수(?) 있기도 하다.  

사실, 내가 이 600페이지 정도 되는 엥겔스의 일대기를 읽어보고 싶은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엥겔스는 사회주의 사상을 주장하면서도 왜 부르주아 자본가 생활을 해야했던 것일까?' 

앞에서 소개된 엥겔스의 러브스토리를 읽어보신 분들도 한 번 이런 궁금중이 일어났을 것이다. 메리 번즈와의 교제가 부르주아와 사회주의자들의 모임, 둘 다 환영받지 못할 것임을 알면서도 그는 이중적인 생활을 해야만 했을까?   역사적인 인물의 은밀하고도 이중생활은 역사에 관심이 많은 호사가적인 독자들에게는 흥미로운 대상이 아닐 수가 없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야누스적인 얼굴을 가지고 있으니까.  한편으로는 지금까지 존경하고 선호하던 위인이 알고보면 이중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크게 실망하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이렇다보니, 어느 위대한 인물을 그린 ' 평전 ' 이 독자들의 관심을 많이 받는 것은 물론이고, 독자들 사이에서 논란이 많은 장르이기도 하다.  ' 평전 ' 이라는 장르에는 한 인물의 일생에 대한 저자 자신의 평론을 포함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죽은 지 100년이나 지난 역사적인 인물들의 일생을 가지고,  ' 좋다, 나쁘다' 는 식의 평가를 내리는 것은 무의미할 뿐이다.  이들이 어쩔 수 없이 이중적인 생활을 해야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으며 그들처럼 우리 역시 이중적인 인간이기 때문이다. 이런 평전에 대한 평가는 우리 스스로 겨 묻은 개 나무라는 똥 묻은 개가 되어버리는 꼴이다.  

사실, 엥겔스는 부유한 자본가 출신이다. 사람의 삶에 영향을 주는 환경은 무시할 수가 없는 법이다. 화려하고 풍족한 부르주아 생활의 매력을 엥겔스라는 사람 역시 벗어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부르주아들의 모임에 가서 술을 마시며 카드놀이과 당구를 즐겼고, 그가 제일 좋아했던 놀이가 빅토리아 시대 영국에서 가장 큰 인기를 끌었던 체셔 여우사냥 대회였다. 마르크스의 사위인 폴 라파르그의 기록에는 엥겔스가 얼마나 여우사냥을 즐겼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 보인다. 

" 그는 말을 정말 잘 탔고, 여우사냥용 말을 따로 갖고 있었다. 지역 신사와 귀족들은 옛날부터 내려오는 관습에 따라 기수 전원에게 초청장을 보냈는데 그는 한 번 도 빠진 적이 없었다. " 

 - <마르스크 평전> p 347 -

   

 

  마르크스라는 인물을 빛나게 해준 2인자 엥겔스    

그러나, 역사적 사실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엥겔스는 ' 방적공장 사장 엥겔스 ' 로 죽지 않았다. 부르주아적 유흥과 술, 그리고 여자를 좋아하면서도 그의 심장 한가운데에는 프롤레타리아가 주체가 되는 계급혁명의 사회 건설에 대한 염원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가 영국의 방적공장을 운영하게 된 이유는 급진적인 아들의 성격을 고치기 위한 방편이었다. 보수적이면서도 엄격한 프로테스탄트적인 삶을 강조하는 아버지로서는 아들이 자신처럼 살아가기를 원했던 것이다.  엥겔스 역시 한 때, 아버지의 의사에 따라 가업에 대한 수련을 쌓았지만 아버지 몰래 사회 개혁에 대한 사상의 새싹을 틔우고 있었다. 그는 자신을 짓눌리고 있는 억압적이면서도 엄격한 가풍에 대해서 반감을 가지기 시작하였다. 오죽했으면, 아버지에 대한 엥겔스의 기록에는 아버지를 돈만 밝히는 속물로 묘사하고 있다.  실제로 유년시절의 엥겔스의 모습은 단란한 분위기로 기록되어 있지만, 정작 엥겔스 본인의 기록에서는 아버지를 호의적으로 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아버지의 명령에 어쩔 수 없이 영국의 맨체스터로 건너가 방적공장을 운영하게 되었지만, 이 방편은 아이러니하게도 엥겔스의 사회개혁에 대한 꿈을 키워주는 결정적인 분기점이 되었다. 방적공장 사장으로서의 엥겔스는 부르주아 세계의 매력을 헤어나지 못했지만 자신의 수입을 마르크스의 학문 연구뿐만 아니라 마르크스의 가족을 재정 지원해주었다.   엥겔스의 든든한 재정지원 덕분에 마르크스는 <자본론>이라는 명저를 완성할 수 있었다.  그리고, 엥겔스는 자신의 주장을 무조건 옹호하기보다는 마르크스의 사상을 인정해주었고, 그의 사상을 뒷받침할 수 있도록 조력자 역할을 자처하였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와의 관계에 대한 은밀한 사실(?)들은 엥겔스가 마르크스를 학문적인 동지 이상정도로 바라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엥겔스에게는 마르크스는 친척이나 다름 없었으며 마르크스의 딸들 역시 엥겔스를 천사표 '둘째 아버지 ' 라고 표현할 정도로 엥겔스와 마르크스와의 돈독한 우정을 보여주고 있다.  이 사실만으로도 마르크스에 대한 엥겔스의 우정도를 확인하기에는 부족하다.  마르크스에게는 자신의 가정부와의 불륜이라는 좋지 않은 과거와 자신의 사생아를 냉정하게 홀대한 좋지 않은 과거가 있었다.  그러나, 엥겔스는 마르크스의 이미지를 지켜주기 위해서 자신이 사생아의 친부임을 비공식적으로 인정해줘야만 했으며 숨을 거두기 전에 마르크스의 친딸에게 숨겨왔던 사실을 밝힐 수 있었다.    

만약에,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만나지 못했더라면 <공산당 선언>과 <자본론>은 완성되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마르크스라는 이름 역시 세계사 교과서에 찾을 수 없었을 것이다.  비록, 마르크스보다는 인지도가 낮고,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지만 마르크스라는 존재가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엥겔스의 노고 덕분이었다. 

 

  엥겔스의 은밀한 매력

여타 인물들의 평전을 읽고난 뒤에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엥겔스와 같은 훌륭한 인물도 결국 우리의 삶과 별반 다를게 없다는 것이다. 특히, 여자를 밝힌데다가 부르주아 친구들과 만나서 술을 마시며 여우 사냥을 엄청 좋아하는 엥겔스의 모습은 그 역시 남성적인 본능에 충실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엥겔스를 자신의 사상과 이율배반적인 삶을 산 속물이라고 부정적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인생을 즐길줄 아는 멋진 속물이었다.  학창 시절에는 꼭 이런 학생이 있기 마련이다. 친구들과 많이 어울리면서도, 성적만큼은 우수한 학생말이다.  이런 학생은 놀 땐 놀 줄 알고, 공부할 때는 확실히 공부한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이런 ' 멀티플레이어' 학생들을 보면 무척 얄밉게 생각한다.

엥겔스의 인생을 간략하게 표현하자면,  '멀리플레이어' 와 같은 인생이라고 말하고 싶다. 앵겔스는 자신이 해야하는 일이 무엇인지 확실히 인지하고 있었으며 결국, 꾸준한 노력은 마르크스와 함께 공산주의의 틀을 확립한 사상가로 자리잡았다.  마르크스는 평생 도서관에 드나들면서 연구에 몰두하였지만, 엥겔스는 밤새도록 놀면서도 자신이 해야하는 연구에 시간을 투자하였다.  나름 터프한 성격의 마르스크 입장에서는 엥겔스의 이런 모습이 속으로 무척 얄미웠지도 모른다. 우리가 ' 멀티플레이어' 학생을 은근히 질투하는 것처럼.  

이 책을 읽는 독자들 중에서도 엥겔스의 이런 이중적이고 은밀했던 삶을 질투한다거나 혹은 생각했던 것만큼 실망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이런 엥겔스가 참으로 멋진 인간이라고 생각된다.  낮에는 유흥을 즐기줄 아는 플레이보이, 밤에는 사회개혁을 위한 사상 연구에도 전념할 줄 아는 모범생이 될 줄 알았으며 자신의 능력을 겸손히 여기줄 아는 엥겔스는 참으로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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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이 2010-12-25 2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햐..이건 뭐 700여쪽에 달하는 평전을 다 읽은 듯합니다. 재미있군요.

cyrus 2010-12-26 20:21   좋아요 0 | URL
저만큼이나 반딧불이님도 많이 관심이 가는 책이었는데,,
제 글이 반딧불이님에게 스포가 되었는지 모르겠네요,,^^;;
직접 읽어보시면 이 글보다 더 재미난 이야기들을
접할 수 있으실겁니다.

노이에자이트 2010-12-26 1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서평으로 미루어 보건대 헌트는 엥겔스에게 반한 모양입니다.

소련 맑스 레닌주의 연구소의 엥겔스 전기는 국역본으로 두 권 합해서 750쪽이 넘습니다(이건 구하기 힘듭니다.저는 운좋게도 10년 전 헌책방에서 구했습니다만).그래도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마르크스 전기보다는 읽기가 더 낫더군요. 맑스 엥겔스 공동전기로 동독의 하인리히 겜코브가 쓴 <두 사람>은 지금도 구할 수 있을 겁니다.냉전시대의 공산권에서 나온 전기와 냉전 이후 서방국가에서 나온 전기의 차이점은 어떨까 하는 궁금함이 생기는군요.

cyrus 2010-12-26 20:21   좋아요 0 | URL
저자가 대체적으로 엥겔스는 좋게 보고 있어서, 자이트님 말씀대로
반한 것일수도 있겠네요.^^
그리고 마르크스와 엥겔스 전기에 관한 정보를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헌책방에 가보면 심심찮게 8, 90년대에 번역된 마르크스와 엥겔스
저작이 눈에 띄던데 이들의 사상에 대해서 알고 싶은 마음도 들기도 하네요.
사실, 프랜시스 윈과 자크 아탈리의 <마르크스 평전>을 읽어보려고 했는데,
이 책에서 마르크스 평전 내용의 에센스를 소개하고 있어서 맥빠지더라고요.
그래서 이사야 벌린의 책을 읽어보려고 합니다.
 
네또츠까 네즈바노바 열린책들 세계문학 124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박재만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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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스또예프스끼의 대표작이 될뻔한 미완성 소설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면서 문득 이 생각이 들었다. 

 ' 이렇게 끝내기에는 너무 아쉬운데 , , ,  '  

도스또예프스끼가 한 작품을 열심히 집필했더라면 자신의 대표작 <죄와 벌><카마라조프 가의 형제들>과 맞먹을 수 있는 장편소설이 될 수 있었을텐데 말이다.    

 <네또츠까 네즈바노바> 

이 작품이 도스또예프스끼가 쓴 소설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많이 있을 것이다. 거기에다가 생소하기에 짝이 없는 소설 제목은 한 번에 기억하기가 쉽지가 않다. <네또츠까 네즈바노바>는 작가 생활 초창기 때 쓰여진 미완성 소설이다.  

출판사에서는 이 소설을 '장편소설' 이라고 표기하고 있지만, 분량만 봐도 중편소설 쯤으로 보인다. ( 지금도 '장편' 과 '중편' 의 차이점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네또츠까 네즈바노바는 사실, 소설 속 여주인공의 이름이다.  원래 이름은 '안나' 이며, '네또츠까' 는 애칭이다.   

소설의 줄거리를 간략하게 소개하자면, 어느 러시아 소녀의 파란만장한 일생을 그리고 있다. 소녀의 삶을 그린 이 소설은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원래 작가는 이 소설을 장편 '대작' 으로 집필할 계획을 가졌었다고 한다.    

그러나, 장대한 집필 계획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니, 집필 당시의 상황으로 봐서는 <네또츠까 네즈바노바>는 아예 처음부터 완성할 수 없었던 소설이었다.  24세라는 나이로 <가난한 사람들>이라는 소설 한 편으로 도스또예프스끼는 러시아 문단의 총아가 되었지만, 뒤이어 <분신>이 발표된 이후부터는 문단의 반응은 시들어져만 갔다. 이전과 다른 문단의 반응에 젋은 도스또예프스끼는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그는 데뷔 때 누렸던 달콤한 명성의 시절이 그리웠다.  작가로서의 명예회복을 위해서 그는 단기간동안 꽤 많은 단편소설들을 써내왔지만, 이 역시 반응이 신통치 않았다.  이렇다보니, 소설을 통해서 들어오는 수입도 많지 않았다.   하지만, 도스또예프스끼는 작가로서의 명예와 그 뒤에 따라오게 되는 물질적인 부(副)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욕심을 버리지 않았다.  빈곤한 형편 속에서도 꾸준히 소설을 집필하였으며 소설 말고도 여러 잡지를 통해서 잡문을 쓰기도 했다.  이렇다보니, 장편소설을 쓸 환경적 여건이 되지 못했다.

도스또예프스끼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그런 다난한 상황 속에서 장편소설을 구상하기에는 너무 이른 감이 있었다.  이 소설에서도 비평가로부터 꾸준히 지적되어 온 부족한 구성력과 지나치게 많은 독백 설정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이렇다보니, 이 많지 않은 분량의 소설을 읽는데도 힘들었다)  장편소설을 쓰기에는 20대의 도스또예프스끼에게는 아직 문학적 원숙미가 갖춰지지 않았다. 

그리고, 이 작품이 미완성으로 남길 수 밖에 없었던 결정적인 상황을 맞이하게 되는데 작가는 그 러시아 내에서 유행하는 사회주의 사상에 심취하여 ' 뻬뜨라셰프스끼 모임 ' 이라는 비밀 모임에 자주 참석하게 되었다.  그 당시 러시아에서 사회주의 사상은 왕정을 타도하려는 불온한 사상으로 낙인 찍히고 있었다.  결국, 이 모임에 연루되어 도스또예프스끼는 체포되어 기나긴 시베리아 유형 생활을 겪어야 했다. 

 

 

  어느 불행한 음악가의 이야기  

소설의 주인공은 네또츠까이지만, 그녀의 시선으로 바라본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 역시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특히, 소설의 제1부는 자신의 계부인 예피모프에 관한 이야기이다. 예피모프의 직업은 음악가(바이올린 연주가)인데, 1부가 가장 기억남는 줄거리이면서도 무척 재미있게 읽었다.  

예피모프는 훌륭한 음악적 재능을 보유하고 있지만, '음악가' 로서의 명예에 광적으로 집착하는 인물로 그려져 있다.  도스또예프스끼의 초창기 소설이 다 그렇듯이, 이 소설에서도 선배 작가들의 소설들의 플롯을 모방하고 있다.  명예에 눈이 먼 불행한 음악가에 대한 이야기는 오노레 드 발자크의 <강바라>와 니콜라이 고골의 <초상화>에서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도스또예프스끼는 발자크의 소설 <외제니 그랑데>를 번역할 정도로 발자크의 문학에 심취하였다)  

예피모프는 자신의 음악적 능력을 너무 과신한 나머지, 자신보다 바이올린 연주를 잘 하는 음악가를 불 같이 질투하는 동시에 한계에 부닥치는 자신의 능력에 대해 스스로 좌절하고 혐오하고 있다.  하지만, 음악에 대한 열정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으며 그의 지나친 열정은 후에 집착으로 변하게 된다.  1부에서 예피모프 다음으로 불쌍한 인물이 네또츠까의 어머니이며 예피모프의 부인이다.   

네또츠까의 어머니는 자신의 미래가 이미 보장되었다고 승승장구한 예피모프의 모습에 현혹되어 결혼하고 만 것이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되 예피모프의 초라한 현실를 마주하게 된 어머니는 자신이 처한 불행한 삶에 절망해야 했다.   하지만, 예피모프는 자신이 겪고 있는 가난한 생활고의 원인을 아내 때문이라고 생각했으며 자신의 훌륭한 재능을 망쳐 버린 것 또한 아내의 책임으로 돌리고 있다.  

예전과 같은 예술적인 재능을 상실했다는 지나친 과신, 거기에다가 자신이 처한 상황을 외부적인 이유로 전가하는 예피모프의 모습은 자신 스스로 파멸하는 지름길이 되고 말았다. 자신의 과신에 속아 결혼하게 된 아내가 죽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예피모프는 아내의 싸늘한 주검을 놔둔 채 매정하게 떠나버린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는 속담이 있듯이 예피모프는 네츠또까와 함께 도망치면서 아내의 죽음은 자신 탓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고는 자기 혼자 아내의 주검이 있는 집으로 향하는 도중 갑작스런 정신 착란 증세로 숨을 거두고 만다.   

 

  

  자신 스스로 만들어낸 ' 자신을 위한 ' 오마주

갑작스런 예피모프의 죽음은 도스또예프스끼가 어떻게든 1부를 마무리하려는 설정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예피모프의 죽음은 자신의 재능에 대한 광적인 믿음으로 가득한 자에 걸맞은 최후이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런데, 예피모프의 일생을 보게 되면 젊은 도스또예프스끼의 실루엣이 비춰지기도 한다.  이 작품을 집필하고 있는 시기는 작가로서의 슬럼프를 겪고 있을 무렵이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지금도 훌륭한 소설 한 편 쓸 수 있다는, 자신의 재능에 대한 희망적인 불씨가 남아 있었다. <네또츠까 네즈바노바>를 쓰고 있을 무렵에 형 미하일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의 생각을 확인할 수 있다.  

난 열심히 쓰고 있어.  항상 난 우리 문학계와 잡지들, 비평가들을 비난하고 있는 것 같아.  그리고 [조국 수기]에 실릴 내 3부작 소설(네또츠카 네즈바노바)로 나에게 악의만 가득한 사람들의 면전에서 올해 나의 우월함을 확신시킬 거야.  

 - 1846년 12월 17일 편지,  <네또츠까 네즈바노바> 주3, p 26 -  

편지가 쓰여진 1846년은 <분신> 발표 이후 비평가들에게 외면을 받고 있을 시기이다. 그는 <가난한 사람들> 버금가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 홀로 고군분투한 집필 생활을 해야만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전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저 헛된 자만감에 눈이 먼 나머지 앞날이 캄캄한 자신의 미래 앞에서 청년작가는 불안했던 것일까?  다음 편지에서는 자신의 재능에 대해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게 된다. 

내 문학 경력의 세 번째 해야. 나는 안개처럼 살고 있어. 삶이 보이지 않고, 제정신을 차릴 시간도 없어. 그들은 회의적인 평을 하고 있어. 이 지옥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겠어. 가난, 삯일, 그것만이라면 난 쉬었을 텐데!  

 - 형 미하일에게 보낸 편지, 주11, p 72 -  

젊은 작가에게는 명예와 부, 이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기에는 무척 버거운 일이었다. 그러나, 자존심이 무척 셌던 도스또예프스끼로서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인정하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예피모프가 자신의 가난함을 아내 탓으로 돌리는 것처럼, 도스또예프스끼 역시 본인 능력의 한계를 외부적인 이유로 찾아냄으로써 욕구 불만을 해소시켰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욕구를 해소시킬 수 있는 방법을 펜과 종이에서 찾았다. 그리고 소설에서 자기 자신을 묘사하였다. 그 사람이 바로 예피모프이다.  

발자크, 고골처럼 러시아를 뛰어넘는 세계적인 대문호가 될 것이라는 희망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소설이었다. 소설은 작가 자신의 눈을 통해 본 현실세계를 재창조하는 이야기 이다.  도스또예프스끼는 자신의 능력과 불행하기 짝이 없는 상황과 유사하는 가공의 주인공 예피모프를 탄생시켰다.  비록, 결말은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되지만, 소설 속 화자인 네또쯔까가 아버지 예피모프에 대해서 연민과 동정적인 서술을 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도스또예프스끼는 자신이 처한 불행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서 스스로 자위하고 있었던 것이다.  

무엇보다도 재미있는 것은 도스또예프스끼는 존경을 마다하지 않는 선배 작가들의 소설을 모방하는 것 같으면서도 예피모프를 통해서 젊은 나이에 러시아 문단을 뒤흔들어놓은 자신을 투영하고 있다는 점이다.   어쩌면, <네또츠까 네즈바노바>의 예피모프는 발자크나 고골 같은 선배 작가들을 향한 존경어린 오마주라기보다는 반대로 언젠가는 이들의 능력치를 뛰어넘는 훌륭한 작가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이 만들어낸, 도스또예프스끼 자신을 위한 오마주일 수도 있다. 예피모프라는 오마주에는 자신이 겪고 있는 암울한 현실을 일시적으로나마 해소시켜주는 동시에 대작가가 되려는 젊은 도스또예프스끼만의 염원과 야망을 보여주고 있다.    

세계적인 성공학 연구자인 나폴레온 힐은 성공하고 싶어하는 소원이나 갈망을 종이에 적어두고 지갑에 보관하면서 틈만 나면 들춰봤다고 한다. 성공을 바라는 소원이 적힌 종이를 계속 본다는 것은 그만큼 그 성공을 이루고 싶어하는 욕망을 가지고 있다는 반증이며 그런 강렬한 마음의 자세 덕분에 성공이 찾아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단순히 자신의 성공을 적어놓은 종이가 일종의 부적인 셈이다. 

도스또예프스끼는 유형 생활을 끝나고 난 뒤에도 중간에 쓰다 만 이 소설을 집필하는데 열중하였지만, 결국에는 지금의 내용으로 마무리짓는다. 성공에 대한 욕망을 해소시키기 위해 만들어낸 오마주가 등장하는 이 미완성 소설이 먼 훗날, 자신에게 가져올 명예, 그리고 죽어서도 고골과 발자크와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의 명성를 부르는 부적이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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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12-23 1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홍~
cyrus 님의 자세한 소개 덕분에 관심이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습니다 :D
이 소설에서는 도스토예프스키의 다양한 얼굴을 만나 볼 수 있겠군요~

cyrus 2010-12-23 19:13   좋아요 0 | URL
지금 연도순으로 도스또예프스끼를 읽고 있는데,,,
참으로 매력적인 작가인거 같습니다.^^ 음악에 관심이 많으신
바람결님이 읽어보신면 좋은 소설인거 같습니다.
1부의 예피모프 이야기가 어떻게 보면 예술소설 같은 느낌도 나고요.^^

노이에자이트 2010-12-23 2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소설은 도스토예프스키 전집이 아니면 구하기 힘들 겁니다.열린책들 이전에 70년대 초에 정음사에서 도스토예프스키 전집이 나왔는데 헌책방에서 몇 권 구했지요.하지만 이 작품이 든 권은 구하지 못했습니다.페트라셰프스키 사건 이전의 작품이면 젊은 시절 것이로군요.

cyrus 2010-12-23 23:48   좋아요 0 | URL
네, 그 사건 이전에 집필하고 있었답니다.
자이트님의 세계문학에 대한 내용의 댓글을 보면 지금보다 예전 세계문학
출판이 풍성한 느낌이 드네요. 정말 열린책들이 아니었으면
이 소설은 지금까지도 소개되지 못했을겁니다.

노이에자이트 2010-12-24 17:40   좋아요 0 | URL
40여년 전에 번역되고 그 이후엔 절판된 명작들이 꽤 있어요.이런 건 헌책방을 돌아다니면서 구하는 게 상책이죠.저는 소설 외에 역자의 작품소개나 작가소개도 정독하는 편입니다.시대적 배경에 관심이 많으니까요.도스토예프스키를 다룬 전기는 시중에도 꽤 나와 있는 편이죠.저도 다섯권을 가지고 있고 그외에도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을 다룬 책을 몇 권 가지고 있습니다.아무래도 그가 반동적인 종교관이나 반혁명관을 소설을 통해 풀어내는 방식에 관심이 있다 보니 다른 이들이 도스토예프스키를 어떻게 해석하는 가도 알고 싶어 이런저런 책들을 모아 읽지요.

blanca 2010-12-23 2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저 지금 너무 놀랐어요. 도스토예프스키가 이런 소설을 썼다는 것도 그리고 그런 미완의 것이 번역 출판되어 있다는 것도요. 나폴레옹 힐 책은 제가 애장했던 책인데^^ 막 줄 긋고 열심히 봤던 기억이 나네요. 좋은 리뷰 잘 읽고 가요....

cyrus 2010-12-23 23:50   좋아요 0 | URL
이 사실이 블랑카님에게 또 한 번 놀라게 해줄지 모르겠지만,,
이 소설이 낭만주의적 요소를 시도한 작품이라는 것입니다.
역자 해설을 통해서 알게 되었는데, 저는 이 사실에 놀랍더라고요.
도스또예프스끼와 낭만주의라면 매치가 안 되는데 말이죠^^;;

다이조부 2010-12-24 0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편과 장편을 나누는 경계선이라.....

보통 책 1권으로 통째로 나오면 장편소설 이라고 하죠

중편은 애매한게 100페이지 내외로 알고 있어요~ 단편과 중편을 가르는 기준이 종종
애매할때도 있죠~

cyrus 2010-12-24 14:46   좋아요 0 | URL
그렇죠, 단편과 중편을 구분할 때도 헷갈려요^^;;

2010-12-24 10: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24 14:45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