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스타킹이 읽을 다섯 번째 책은 마리아 미즈(Maria Mies)《가부장제와 자본주의》(갈무리, 2014)입니다. 이틀 전인 월요일(3월 12일)에 첫 번째 모임을 가졌습니다. 이 날에 새로운 두 분이 스몰토크에 찾아오셨어요. 저는 이 날 사정이 있어서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책 1장까지 다 읽고, 토의 내용들을 정리했어요. 그런데 모임 당일에 예상하지 못한 일이 생기는 바람에 모임에 불참하게 됐어요. 그동안 준비했던 것들이 물거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냥 묻히기가 너무 아까워서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1장에 대한 개인적 견해를 단상 형식으로 정리하려고 합니다.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첫 번째 모임 공식 후기는 내일 공개될 예정입니다.

 

 

 

 

 

 

 

 

 

 

 

 

 

 

 

 

 

 

《가부장제와 자본주의》는 1986년에 출간되었고, 1999년에 개정판이 나왔습니다. 한국어판에는 1986년 초판본 서문, 1999년 개정판 서문, 그리고 한국어판 서문이 실려 있습니다. 레드스타킹 멤버가 개정판 서문을 읽어보니 좋은 내용이 많았다고 말했습니다. 정말 그 분이 하신 말이 맞았습니다. 개정판 서문에 마리아 미즈가 《가부장제와 자본주의》를 집필하게 된 이유가 나옵니다. 먼저 한국어판 서문부터 살펴보죠.

 

 

 자본주의적 가부장제는 세계적 차원에서 이전보다 훨씬 더 고약하게 자연을 파괴하고 있다. 이런 폭력의 결과로는 기후 변화를 개선할 수 없고, 지구의 자원 고갈과 원자력으로 인한 오염을 회복시킬 수가 없음을 오늘날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이 모든 것은 자본주의적 가부장제 패러다임의 직접적인 결과이다. 이 패러다임은 끝없는 자본축적을 추구하는데, 이는 진보와 “좋은 삶”의 전제조건이라고 여겨지고 있다. (한국어판 서문, 5쪽)

 

 

 대다수 여성은 남성과의 평등을 우리의 주요 목표로 생각했다. 대부분의 페미니스트는 자본주의를 그렇게 비판하지 않았고, 가부장제만 주로 다루었다. 그들은 이 체제 내에서 남성과 평등해지기를 원했다. 그들은 남성이 우리 사회에서 갖고 있는 정치경제적 기회와 권력과 권위를 똑같이 갖기를 원했다.

그러나 오늘날 현실을 보면, 가난한 국가나 부자 국가나 상관없이 여성은 남성과 평등하지 않다.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으로 전혀 평등하지 않다. 왜 그런가? 몇몇 여성이 꼭대기까지 올라갔고, 국가나 정부의 수장이 되기도 한 것이 사실이기는 하다. 그러나 그들이 이런 목표에 닿을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지배적인 자본주의-가부장제 체제를 문제 삼지 않았기 때문이다. 권력구조에 여성이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우리 사회에서 여성의 지위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여성이 많다. 그러나 현실을 보면, 이 체제에서 더 많은 권력을 갖게 된 여성도 여성에 대한 차별이나 성차별적 · 가부장적 문화를 거의 바꾸지 못했다. (한국어판 서문, 6쪽)

 

 

  맑스는 가사노동을 “재생산” 노동이라고 불렀다. 그에게 이 노동은 임금노동자의 “생산노동”과는 대조적으로 “잉여가치”를 생산하지 않는 노동이었다. 일부는 여성의 가사노동을 남성의 임금노동과 동등한 수준에 놓기 위해 “가사노동에 임금을” 요구하기도 했다. 나와 다른 이들은 이보다 한 걸음 더 나가서, 자본주의의 계속적인 자본축척과정을 위해서는 왜 이런 무급노동이 필수적인지를 연구했다.

 동시에 나는 식민지민과 자연이 같은 방식으로 취급되고 있음을 발견했다. 자본은 그들의 “생산”을 아주 적은 비용으로 전용했다. 예를 들어, 방글라데시나 멕시코 같은 국가에서 젊은 여성은 서구 시장에 공급할 의류 등을 세계에서 가장 싼 임금을 받고 생산했다. 이는 자본주의 초기부터 여성 노동이 남성의 노동보다 가치가 낮은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가능했다. 방글라데시처럼 가난한 국가에서도 여성 노동은 더 저렴하다. 이곳에서 여성은 세계에서 가장 낮은 임금을 받는다. 오늘날 이런 심한 착취는 폭력 및 가장 잔혹한 노동환경과 결합되어 있다. 이런 노동환경은 그들의 생명까지 위협한다. (한국어판 서문, 7쪽)

 

 

남성 중심 사회는 뿌리 깊은 가부장제 사회구조였습니다. 이 때문에 각종 차별이 생기고 여기에서 뿌리 깊은 여성 억압이 생기게 된 겁니다. 자본주의는 가족, 남성 중심의 가부장제와 일치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자본주의 발달 이후 공 · 사 영역 분리의 성별화가 가속화되면서 남성의 삶은 더욱 공적인 것이 되었고 여성의 삶은 더욱 사적인 것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가정’과 ‘일’이 분리되는 성별 노동 분업 현상이 생겼다는 것이 마르크스주의자들의 해석입니다. 가정은 자본주의 사회의 안식처가 됩니다. 여성은 집 안에 머물면서 가사노동을 하게 되고, 남성에게 예속됩니다. 가부장제는 여성의 가사노동에 대한 비용을 줄이는 데서 시작됐습니다. 마르크스주의자 또는 마르크스 페미니스트들은 자본주의에 의해 태동된 가부장제가 남녀 성차별을 심화시킨다고 보고 생산과 노동, 가족 등 각 영역에서의 여성억압을 폭로했습니다. 반면에 남녀평등을 주장한 자유주의 페미니스트들은 가부장제를 비판했지만, 자본주의 비판에 소극적이었습니다.

 

식민지 통치를 경험한 아시아 대륙의 여성들의 삶은 여러 차원에서 고단합니다.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환경에서 집안 살림을 챙기고, 직장생활에도 충실해야 하며 일부 빈곤층 여성은 생계를 위해 타국에서 이주노동자로 지내면서 힘겨운 삶을 살아가기도 합니다.

 

미즈는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가사노동에 임금이 지불되지 않는 현실을 분석하고 비판합니다. 그녀는 자신의 연구가 자유주의 경제학과 마르크시즘 경제학 모두 넘어서는 도전이라고 밝혔습니다. 여성 억압을 ‘부차적 문제’로 보는 마르크시즘 역시 한계가 있었던 거죠.

 

 

 자본주의적 가부장제의 정치경제학에 대해 이론적으로 처음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은 자본주의 아래서 가사노동의 역할을 분석하면서였다. 이 운동은 1980년 무렵에 시작되었다. 가정에서 여성이 무급으로 하는 돌봄 노동과 양육이 남성 임금을 보조할 뿐만 아니라, 자본의 축적에도 기여한다는 점이 명백해졌다. 게다가 여성을 가정주부로 규정함으로서, 내 방식으로 말하면 ‘가정주부화’함으로써 가정에서 여성이 하는 무급 노동은 보이지 않는 것이 되었고, 국민총생산에도 기록하지 않으며, 자연스러운 것, 즉 ‘공짜’로 여겨졌다. 여성의 ‘가정주부화’가 가져온 것은 이것만이 아니다. 여성이 임금노동은 남성, 이른바 부양책임자를 보충하는 것으로 여겨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 (개정판 서문, 20쪽)

 

 

미즈는 무급 가사노동에 임하는 여성들을 가리켜 ‘가정주부화’라고 표현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무급 가사노동 담당자는 ‘주부’가 된 여성입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현실을 분해하여 연관성 없는 사건들, 시간들, 사회적 요소들의 조립으로 이해하려 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우리가 주변에서 인지하게 되는 물질적이고 비물질적인 모든 것들이 인식을 ‘구성’하는 것임을 강조함으로써 현실의식의 기반을 흔들어 놓으려고 했다. 세계의 물질성이 해체되면서 새로운 이상주의가 탄생했다. 이 이상주의는 모든 현실은 결국 가상일 뿐이라고 선언한다. 포스트모던 페미니즘은 자본주의적 가부장제의 체제를 극복한다는 여성운동의 오랜 목표를 포기했다. 이제 유일한 목표는 젠더 평등이었다. 이는 여성이 갈망하는 것은 남성과 동등한 몫을 차지하는 것일 뿐이지, 체제에 도전하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였다. ‘체제’라는 용어도 현실성이 없는 것이라는 이유에서 폐기되었다. ‘주류’ 혹은 ‘주류화’에 참여하는 것이 새로운 목표가 되었다.

  이런 포스트모던 이데올로기는 1980년대와 1990년대의 신자유주의의 정치경제와 딱 어울리는 것이었다. 이를 추종했던 페미니스트는 ‘주변부에서 벗어나’ ‘주류’의 어딘가에 둥지를 틀 수 있기를 기대했다. (개정판 서문, 29~30쪽)

 

 

저는 이 내용에 언급된 ‘포스트모던 페미니즘’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되지 않았어요. ‘포스트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는 들어봤어요. ‘포스트 페미니즘’과 ‘포스트모던 페미니즘’이 같은 의미로 봐야 할까요? 일단은 저는 이 두 가지 용어를 같은 의미로 보려고 합니다.

 

 

 

 

 

 

 

 

 

 

 

 

 

 

 

 

 

* 소피아 포카 《포스트 페미니즘》(김영사, 2001)

 

 

 

《포스트 페미니즘》(김영사, 2001)에 따르면 포스트 페미니즘의 시작점은 1968년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로 보고 있습니다. 이 날 프랑스의 ‘정신분석과 정치’ 그룹 회원들은 주류 페미니즘을 거부하는 행진 시위를 벌였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주류 페미니즘은 남녀평등만 주장하는 자유주의 페미니즘을 의미합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이 주목받기 시작한 1960년대 말부터 기존 페미니즘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형성되었습니다. 포스트 페미니스트들은 남녀 이분법을 강화시키는 자유주의 페미니즘이 여성의 지위를 축소한다고 비판했습니다. 미즈와 같은 학자들은 ‘포스트 페미니즘’이라는 용어가 1980년대부터 사용되기 시작했다고 말합니다. 미즈는 신자유주의 경제학에 종속된 포스트 페미니즘도 비판합니다.

 

 

 

 

 

 

 

 

 

 

 

 

 

 

 

 

 

 

 

*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여권의 옹호》(연암서가, 2014)

* 브누아트 그루 《올랭프 드 구주가 있었다》(마음산책, 2014)

 

 

 

1장(‘페미니즘이란?)은 페미니즘의 전반적인 역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메리 울스턴크래프트(Mary Wollstonecraft)는 여권신장의 당위성을 프랑스 혁명의 민주주의 이념에서 찾으려고 했습니다. 그녀는 《여권의 옹호》(연암서가, 2014)를 발표하여 여성해방 운동의 기치를 내걸었습니다. 프랑스의 올랭프 드 구주(Olympe de Gouges)는 혁명으로 일궈낸 자유와 평등이 남성에게만 해당되자 ‘여성인권선언문’을 발표했습니다.

 

 

 

 

 

 

 

 

 

 

 

 

 

 

 

 

 

* 정진희 엮음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여성해방론》(책갈피, 2015)

 

 

 

계몽주의 · 자유주의적 이념에 기반한 자유주의 페미니즘 외에도 마르크시즘 및 사회주의 페미니즘도 여성주의 운동에 무시하지 못할 파급을 가져왔습니다.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은 여성의 불평등이 지배계급인 남성, 종속계급인 여성을 층위로 하는 계급적 착취구조에 있다고 파악했으며 여성의 경제적 독립을 강조했습니다.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에 언급된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스트는 클라라 체트킨(Clara Zetkin)입니다.

 

1장은 페미니즘의 발전 과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사실 이보다 더 중요한 내용이 있습니다.

 

 

페미니스트는 성폭력상담소, 학대받는 여성을 위한 보호소, 페미니스트의료센터 등의 자조 활동을 통해 도움을 주고자 했다. 여성이 남성의 물리적 심리적 폭력에 대한 두려움 속에 살고 있는 한 여성은 새로운 의식을 발전시킬 수 없을 것이라는 점이 점차 분명해 졌다. 또한 이 차원에서는 법률 개혁이나 국가적 지원도 소용없다는 점도 분명해 졌다. 여성이 남성의 폭력을 피해 국가나 경찰의 보호를 요청하려고 해도, 남성이 가족이라는 사적인 영역에서 여성에게 가혹행위를 하는 것에 대해서는 국가가 간여하지 않음을 곧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1장 86쪽)

 

 

공공영역에 여성이 참여하고, 참정권을 얻고, 임금노동에 참여하는 것으로는 폭력에 기초한 것으로 보이는 가부장적 남녀관계의 기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성차별적 폭력 문제를 둘러싸고 운동이 진행되면서 개별 남성의 명백한 ‘사적’ 침해와 가족, 경제, 교육, 법, 국가, 대중매체, 정치 등 ‘문명사회’의 중심 제도와 ‘기둥들’ 사이의 조직적인 관련에 대한 여성의 인식도 높아졌다. 개인적으로 다양한 양상의 남성 폭력을 경험하면서 여성은 강간, 아내 구타, 희롱, 여성에 대한 성희롱, 성적 언어폭력 등이 일부 남성의 빗나간 언행이라기보다는 남성 체제, 혹은 가부장적인 남성의 여성에 대한 지배의 일부라는 것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런 체제에서 노골적인 물리적 폭력과 간접적 혹은 구조적 폭력 모두 ‘여성이 제자리를 지키게 하는’ 수단으로 여전히 흔하게 사용되었다. (1장 87~88쪽)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페미니스트들이 ‘미투 운동’의 본질을 흐리게 한다고요. 과연 그럴까요? ‘미투 운동’에 동참하는 페미니스트들이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1장 86, 87~88쪽을 읽어보라고 말해주고 싶군요. 그동안 남성 중심 사회는 여성의 (성)폭력 문제를 외면했습니다. 미투 운동은 여성의 삶을 능멸하는 가부장적 남성의 지배 논리에 대한 분노와 저항입니다. 당신이 미투 운동을 ‘남성’을 공격하기 위한 여성의 집단적 감정 표출로 본다면 미투 운동의 본질을 잘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제 대구에 8년 만에 폭설이 내렸습니다. 적설량은 1907년 기상 관측 이래 대구에서 3월에 내린 눈으로는 세 번째로 많았다고 합니다. 어제 대구를 포함한 전국에 계 여성의 날을 맞아 여성대회가 펼쳐졌습니다.

 

 

 

 

 

 

행사 전날에 들려온 비 예보 소식의 영향으로 행사 진행 방식이 축소 · 변경되었지만, ‘3.8 여성 선언문’ 낭독 기념식과 거리 행진은 차질 없이 진행되었습니다.

 

 

 

 

 

 

레드스타킹 멤버들이 대구 여성대회에 참석했습니다. 멤버들은 ‘Me Too’ 문구 스티커를 붙인 보라색 비옷을 입었습니다. 보라색은 여성의 날을 상징하는 색입니다.

 

 

 

 

 

본 행사가 오후 3시 반부터 진행되었기 때문에 저는 늦게 참석했습니다. 너무 늦게 행사 장소에 도착하는 바람에 거리 행진에 동참하지 못했습니다. 여기 공개된 행사 관련 사진들은 행사에 참석한 멤버들이 찍은 것들입니다. 당연히 그분들에게 허락을 구하고 공개한 것입니다.

 

사실, 어제 행사 후기를 쓸까 말까 고민했어요. 여성 운동의 주체가 여성이듯이 여성 운동을 기록하는 주체 역시 여성이어야 합니다. ‘남성’인 제가 여성 운동의 현장을 구경하듯이 글을 쓰는 게 페미니즘의 원칙에 맞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게다가 저는 여성대회의 시작과 끝을 레드스타킹 멤버들과 함께하지 않았기 때문에 여성대회 후기를 쓸 자격이 없다고 볼 수 있어요. 이미 멤버들은 인스타그램, 트위터에 행사 현장을 실시간으로 찍은 사진들을 공개했습니다. 여성대회에 참석한 멤버들이 전해준 이야기를 듣고 ‘생생한 후기’를 쓴다는 건 우스운 일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 글을 쓰고 싶었습니다. 왜냐하면, 대구와 같은 지방에서도 여성 운동이 펼쳐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남성 중심 사회를 바꾸기 위해 광장에 서서 힘껏 목소리를 외치는 여성들이 대구에 많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레드스타킹 멤버들을 만나지 못했으면 저는 어제 집에서 페미니즘 책을 읽고 있었을 것입니다. 레드스타킹 멤버들은 ‘설치고, 말하고, 생각할 줄 아는’[1] 페미니스트입니다. 이분들을 만나기 전까지 저는 페미니즘에 대해 ‘생각할 줄만 아는’ 남자였습니다. 페미니즘 책을 많이 읽는다고 해서 페미니스트가 되는 건 아니었습니다. 사회 변화를 촉구하려면 말과 생각보다는 ‘행동’으로 보여줘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3 · 8 여성선언문’ 전문과 민중가요 ‘딸들아 일어나라’ 노랫말로 후기를 마치겠습니다.

 

   

 

 

 

3 · 8 여성선언

『변화는 시작되었고, 달라진 우리가 승리할 것이다.』

 

 

여성들의 성폭력 피해 경험 말하기가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촛불광장에서 민주주의를 요구했던 여성들의 외침은 지금 ‘말하기’를 통해 성 평등한 민주주의 요구로 이어지고 있다. 우리 여성들에게 촛불 혁명은 부패한 정권을 교체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여성의 삶을 억압하는 가부장적 사회의 성차별적 구조를 바꿔내야 한다. 성 평등이 빠진 민주주의는 여성들에게 의미가 없다. 이 사회 절반의 구성원인 여성들이 시민으로서, 주권자로서 선언하고 있다. 우리 사회를 뿌리에서부터 바꿔내자.

 

혁명은 진행 중이며 이 혁명의 주체는 여성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는 여성들의 성폭력 피해 경험은 우리 모두의 것이다. 범죄를 저지른 가해자뿐만 아니라 그것을 가능케 했던 차별과 동조, 침묵의 구조가 문제이다. ‘남성’이 모든 것의 기준인 성차별적 사회에서 ‘여성’이라서 겪을 수밖에 없는 죽음과 폭력, 차별은 어떤 여성도 예외로 두지 않는다.

 

성차별적 사회는 일터와 학교, 가정에서 일상의 성폭력을 가능케 하며, 국가는 여성의 몸을 인구조절의 도구로 취급해 여성에게만 ‘낙태의 죄’를 묻고 있다. 여성의 노동은 평가절하 되어 여성들은 저임금, 불안정한 일자리, 빈곤에 내몰리고 있다. 여성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정치 · 경제 · 사회 전반에서 여성 대표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우리 여성들은 여성에 대한 폭력을 멈추라고, 여성에 대한 차별을 근절하라고 계속 말해왔다.

 

‘#나는페미니스트입니다’ 선언으로 여성에 대한 차별과 비하에 일침을 가했고, ‘강남역 10번 출구’에서 여성혐오를 고발했다. 문단 내 성폭력 사건을 시작으로 각 영역별 성폭력을 고발하는 ‘○○.내.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을 시작했고, 낙태죄 폐지를 요구하는 ‘검은 시위’로 여성의 몸에 대한 주체성을 선포했다.

 

지금 각계에서 터져 나오는 #MeToo 운동은 극심한 성차별적 사회구조의 결과이자 더 이상의 억압을 거부하는 여성들의 분노의 폭발이다. 우리는 말하는 모든 이들과 하나이며, 침묵을 넘어 변화를 위한 연대의 손을 맞잡을 것이다. 변화에 대한 열망은 거세다. 여성들이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세상은 끝났다. 여성에 대한 차별을 가능케 했던 남성 중심 사회 구조를 더 이상 묵과하지 않을 것이다.

 

여성들은 주권자 여성을 2등 시민 취급하여 여성의 경험을 삭제하고 사소화시키는 모든 것들과 싸워 이길 것이다. 2018년, 지금이 그 때다. 내 삶을 바꾸는 성 평등 민주주의를 향한 진보를 이뤄내자. 국가는 주권자 여성의 명령에 응답해야 한다. 나라의 기본 틀을 다시 짜는 성 평등 개헌을 실현하라! 여성의 일상을 위협하는 젠더 폭력을 근절하라!

 

누구도, 어떤 이유로도 차별받지 않는 포괄적 차별 금지법을 제정하라!

여성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여성 대표성을 확대하라!

낙태죄를 폐지하라! 생리대를 무상제공하라!

우리는 선언한다. 우리 여성들은 연결되어 있으며, 연대할 것이고, 더욱 강해질 것이다. 여성의 경험은 사회의 기준이 될 것이다. 성 평등 민주주의가 우리의 삶을 바꾸고 민주주의를 완성할 것이다.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고, 달라진 우리가 승리할 것이다.

 

 

2018년 3월 8일

3.8 세계여성의 날 기념 제25회 대구여성대회 참가자 일동

 

 

 

 

 

딸들아 일어나라

 

 

어두웠던 밤 지나 새벽이 얼어붙은 땅 녹아

새싹이 케케묵은 낡은 틀 싹둑 잘라 버리고

딸들아 일어나라 깨어라

이 땅에 노동자로 태어나

자랑스런 딸로 태어나

사랑도 행복도 다 빼앗겨 버리고

참아왔던 그 시절 몇 몇 해

나가자 깨부수자 성차별 노동착취

뭉치자 투쟁이다 여성해방 노동해방

 

우리는 이 땅의 노동자

역사의 주인인 노동자

더 이상 벼랑 끝에 흔들릴 수는 없다

딸들아 일어나라 깨어라

이 땅에 노동자로 태어나

자랑스런 딸로 태어나

고귀한 모성본능 다 빼앗겨 버리고

참아왔던 그 시절 몇 몇 해

나가자 깨부수자 성차별 노동착취

뭉치자 투쟁이다 여성해방 노동해방

 

 

 

 

[1] 《소녀, 설치고 말하고 생각하라》(우리학교, 2017)의 제목에서 가져온 표현입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레삭매냐 2018-03-13 14: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구에는 눈이 내렸군요.

여긴 봄이 제대로 와서, 날이 벌써 더워졌습니다.

책읽기에 아주 좋은 계절입니다만, 막상 책만
읽기에는 아쉬운 그런 계절이 되었네요.

미투 빠이팅!@

cyrus 2018-03-13 15:00   좋아요 0 | URL
눈 내린지 사흘이 지난 오늘 대구 날씨는 덥습니다.. ㅎㅎㅎ
 

 

 

 

 

 

 

일요일 밤부터 내리기 시작했던 비는 어제 오후에 그쳤습니다. 퇴근길에 빵집에 들렀습니다. 스몰토크에 일찍 도착해서 <빵과 장미> 영화 상영회를 준비한 분들을 위해 요깃거리를 챙기고 싶었습니다. 스몰토크에 도착해 보니 영상기와 의자들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음료를 마실 수가 없어서 미리 음료를 주문했어요. 제가 사들고 온 빵과 다른 레드스타킹 멤버가 사 온 도넛과 같이 먹기 위해 바닐라라떼를 주문했습니다. 빵 몇 조각과 도넛 두세 개 정도 먹고 나니까 금방 배가 불렀습니다.

 

추운 날씨 속에서도 스몰토크에 많은 분이 찾아왔습니다. 다행히 의자가 모자라지 않았습니다. 영화가 막 시작할 때 친구한테서 전화가 오는 바람에 영화 초반부를 보지 못했어요. 생각보다 통화가 길어져서 영화의 중요 장면을 놓쳤을까 봐 마음속으론 초조했습니다. 영화 중반부터 보기 시작했지만, 영화 줄거리를 이해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영화가 끝난 후에 각자 영화 감상평을 자유롭게 얘기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당연히, 어제의 화제 인물 '안희정'과 미투 운동'에 대한 얘기도 나왔습니다.

 

어제 영화 상영회 후기를 작성하고 싶어서 나름대로 필기를 했는데, 후기를 쓸 필요가 없어졌어요. 오늘 레드스타킹 공식 인스타그램영화 상영회 공식 후기가 공개되었거든요. 공식 후기를 작성한 분이 핵심 내용만 쏙쏙 골라 잘 정리했습니다. 후기에 영화에 대한 주요 줄거리에 대한 언급은 없고요, 이미 <빵과 장미>를 보신 분은 다른 분들의 느낀 점을 확인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3.8 여성의 날을 맞이하여 레드스타킹에서는 <빵과 장미> 영화를 보고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지인 찬스와 트위터, 인스타그램에서 보시고 손님 8명이 와주셨어요.

 

여성의 날의 유래1908년 미국, 여성 노동자들의 파업에서 ‘빵과 장미’를 줄 것을 외치는 것에서 시작하였습니다. 여기에서 빵은 생존권, 그리고 장미는 참정권을 의미했고 이 사건을 통해서 빵과 장미는 여성의 날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이것을 모티브 삼아 제작한 영화입니다.

 

 

 

 

 

이런 모임에서는 재미없는 영화를 본다고 마음의 준비를 하시고 오셨다면, 정말 흥미롭고 재미있게 보셨을 것 같습니다. 참석하신 몇몇 분들은 눈물을 보이기도 하셨는데요. 여성이 노동뿐만 아니라 성상납, 몸까지 착취당하며 생계를 꾸려나가야 했던 주인공 언니의 상황과 그런 여성들의 모습에서 연민을 느끼셨을 것 같습니다.

 

 

 

 

 

 

좀 아쉬웠던 점은 국내 포스터의 내용은 영화 본연의 내용을 나타내기 부적절했고요(빻았다고 하죠?ㅎ) 로맨스도 왜 나왔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찐한 키스신 밖에(?) 없고 스토리 연관성도 떨어져요) 2002년에 개봉한 이 영화는 현재 우리 사회와도 비슷합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는 청소노동자, 노동조합 활동가, 새터민, 여성이주노동자들의 삶이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영화는 이들이 노동조합에 가입해서 투쟁하는 모습, 여성으로써 겪는 문제들을 표현했기 때문에 대구분들이 보기엔 빨갛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우리 주변에 존재할 수 있는 평범한 여성들의 일이 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개인들의 연대와 작은 승리의 경험들이 쌓이면 우리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면서 마무리 하겠습니다. 다음에 또 만나요.

 

 

 

어제 저는 ‘세계 여성의 날’의 유래와 독일의 사회주의 페미니스트 클라라 체트킨(Clara Zetkin)에 대해서 소개했는데요, 지금 생각해보니 불필요한 설명이 많았습니다. 1911년에 체트킨이 3월 8일을 세계 여성의 날로 지정하자는 제안이 나온 이후로 프랑스에서도 페미니스트들이 자신들의 활동을 기념하기 위해 세계 여성의 날을 지정했습니다. 이렇게 간단하게 설명하면 될 것을 ‘프랑스의 계몽사상가 콩도르세(Condorcet)의 사망일에 맞춰서 세계 여성의 날이 정해졌다’는 식으로 설명하는 바람에 저 다음 분이 말할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할 뻔했어요. 제가 표현력이 부족한 탓에 언급해도 되지 않을 부연 설명을 걸러내지 못했습니다. 미리 조사한 내용을 모임에서 말하기 전에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내용이 뭔지 따져가면서 검토해야겠습니다.

 

 

 

 

 

 

 

※ 커피 사진, 영화 포스터를 제외한 나머지 사진들은 ‘레드스타킹 공식 인스타그램’에서 가져왔습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오후즈음 2018-03-06 17: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이런 행사 넘 부럽네요. 많은 분들에게 귀중한 시간이었겠어요

cyrus 2018-03-07 18:51   좋아요 0 | URL
혼자서 페미니즘을 공부했던 시절이 부끄러웠습니다. 소중한 경험 덕분에 페미니즘을 더 열심히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전보다 강하게 느껴졌습니다.
 

 

 

 

 

다시 공지합니다. 3월 5일 월요일 저녁 7시 스몰토크에서 영화 상영회가 있습니다. 이주노동자와 비정규직 문제를 다룬 켄 로치 감독의 <빵과 장미>가 상영됩니다.

 

 

 

 

 

 

* 대구 페미니즘 북클럽, 레드스타킹 공식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feminism_talk/

 

 

 

- 시간: 2018년 3월 5일(월) 저녁 7시

- 장소: 대구 카페 스몰토크

- 참가비: 무료 (음료 개별 주문)

- 신청 : @hippie_yolo DM

 

 

 

영화 러닝타임은 110분입니다. 영화가 끝나고 난 뒤에 영화에 대해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가져보려고 합니다.

 

현재까지 영화 상영회 참석 의사를 밝힌 외부 손님은 총 아홉 명입니다. 여기에 내일 참석하는 레드스타킹 멤버들까지 포함하면 스무 명이 넘은 인원이 스몰토크에 올 것으로 예상합니다. 편안하게 영화를 볼 수 있도록 좌석을 많이 준비하려고 합니다. 내일 오전에도 참석 신청 가능합니다. 인스타그램 계정이 없는 분은 여기 댓글에 참석 의사를 알려주셔도 됩니다. 영화 상영회를 준비하는 레드스타킹 멤버들에게 바로 전달하겠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레삭매냐 2018-03-13 14: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봄을 맞이하야 요즘 활발하시는 모습
이 아주우~ 보기 좋습니다.

cyrus 2018-03-13 15:01   좋아요 0 | URL
집돌이로 살아왔는데, 좋은 분들을 만나게 돼서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네요. ^^
 

 

 

 

38세계 여성의 날입니다. 세계 여성의 날이 올해로 110주년을 맞이했습니다. 이 뜻깊은 날을 기념하기 위해 대구 페미니즘 북클럽 레드스타킹영화 상영회를 마련했습니다.

 

 

 

 

 

 

켄 로치(Ken Loach) 감독의 <빵과 장미>(Bread And Roses, 2000년 작)입니다. 이 영화는 미국 LA에 사는 불법체류자들의 노동 운동을 통해 인종차별과 빈부격차의 실상을 보여줍니다. 영화의 주인공인 마야로사는 미국으로 밀입국한 멕시코인 자매입니다. 마야는 언니 로사의 도움으로 빌딩 청소부로 일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녀의 근로 환경은 너무나도 열악했습니다. 의료보험 적용과 휴가 등은 꿈꿀 수조차 없었습니다. 열악한 업무환경에서 비인간적인 대우를 당하는 상황을 목격한 마야는 미국인 노동운동가 샘을 만나 노동자의 권익을 위한 투쟁에 나섭니다.

 

 

 

 

 

다음 주 월요일인 35, 스몰토크에서 <빵과 장미>가 상영됩니다. 영화를 보고 싶은 분은 저녁 7시까지 스몰토크에 오시면 됩니다. 참가비는 없습니다. 스몰토크에 커피, 차 등 음료를 주문할 수 있습니다(음료값은 개인 부담). 일찍 오셔서 영화 상영 전에 음료를 주문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영화가 시작되면 영화관 내부처럼 실내를 어둡게 합니다. 상당히 어둡기 때문에 이동하기가 불편할 수 있어요. 그리고 영화 상영 도중에 음료를 주문하면 크고 작은 소음이 생깁니다. 그러므로 맛 좋은 커피를 음미하면서 영화를 시청하려면 스몰토크에 일찍 도착하는 것이 좋습니다. 640~45분까지 장소에 도착하면 여유롭게 음료를 주문하면서 좌석에 앉을 수 있습니다.

 

이날 많은 인원이 올 거로 예상하기 때문에 좌석이 부족할 수 있어요. 지난번 영화 상영회에 레드스타킹 정회원과 외부 손님 모두 합한 스무 명 넘은 인원이 참석했습니다. 그래서 최대한 좌석을 많이 배치할 예정입니다. 35일에 스몰토크에 오실 수 있는 분은 늦어도 다음 주 월요일 오전까지 댓글을 남겨주셔도 좋습니다. 영화를 앉아서 볼 수 있도록 좌석을 마련하겠습니다.

 

 

 

 

    

 

 

다음 내용은 영화와 관련된 곁다리 정보, 책 소개 등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 내용에 관심이 없으면 안 보셔도 됩니다.

 

 

 

 

영화 제목인 빵과 장미세계 여성의 날의 기원이 된 1908년 미국 여성운동에서 유래된 단어입니다. 190838일 여성 노동자들이 참정권과 노동조합 보장을 요구하며 뉴욕에서 대규모 파업 시위를 벌였습니다. 대부분 역사학자와 페미니스트들은 1912년에 일어난 미국 매사추세츠 로렌스 직물공장 노동자들의 파업을 여성 노동운동의 시초로 보는 의견도 있습니다. 이 당시 노동자들이 외쳤던 구호가 바로 빵과 장미입니다. 빵은 생존권을, 장미는 인간의 존엄성을 의미합니다.

 

 

 

 

 

 

 

 

 

 

 

 

 

 

 

 

 

 

 

* [품절] 리처드 에번스 페미니스트 : 비교사적 시각에서 본 여성운동 1840~1920(창비, 1997)

* [No Image, 품절] 아우구스트 베벨 여성론(까치, 1990)

 

 

 

 

20세기 초 미국 여성운동의 중심에는 부르주아지 페미니스트들이 있었지만,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들의 투쟁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1890년대에 독일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이민자들이 마르크스주의를 전파했습니다. 그러나 독일 이민자 출신의 남성 노동운동가들은 부르주아지 페미니스트와의 협력을 거부했고, 여성 문제를 외면했습니다. 미국 여성의 사회주의 운동 참여율이 낮았습니다. 그러나 1901년에 미국사회당이 결성되면서 노동계급 여성들이 사회운동에 눈을 뜨기 시작했습니다. 여성 노동운동가들로 구성된 사회단체가 하나둘씩 생겨났고, 독일 사회주의 여성운동과 비슷한 방향으로 당 운동을 펼쳤습니다. 미국 여성 노동운동가들이 필독한 책은 아우구스트 베벨(August Bebel)여성과 사회주의였습니다. 베벨은 사회민주당을 창설한 독일 출신의 사회주의자입니다. 그가 쓴 여성과 사회주의는 독일뿐만 아니라 미국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들이 꼭 읽어야 할 이론서로 알려졌습니다. 이 책은 우리나라에 (아주 뒤늦게) 소개되었는데요, 여성과 사회(보성출판사, 1988) 여성론(까치, 1990)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들은 프롤레타리아 여성 문제를 소극적으로 보는 부르주아지 페미니스트와의 협력을 거부하는 노선을 지향합니다.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들은 부르주아지 페미니스트들이 주도한 참정권 운동에 동참했지만, 그들과 통하는 접점을 찾지 못했습니다. 참정권 운동을 둘러싼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들의 대립은 미국 사회주의 여성운동의 기세를 약화하는 원인으로 작용했습니다.

 

 

 

 

 

 

 

 

 

 

 

 

 

 

 

 

 

 

 

 

* [절판] 사빈 보지오-발리시 저속과 과속의 부조화, 페미니즘(부키, 2007)

* 정진희 엮음 마르스크주의자들의 여성해방론 : 콜론타이 · 체트킨 · 레닌 · 트로츠키 저작선 (책갈피, 2015)

* 마르퀴 드 콩도르세 인간 정신의 진보에 관한 역사적 개요(책세상, 2002)

 

 

 

재미있게도 38일이 세계 여성의 날로 지정되도록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들 모두 사회주의자였습니다. 독일 출신의 여성 운동가인 클라라 체트킨(Clara Zetkin)1910년에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여성 운동가 대회를 열었습니다. 그녀는 1908년 미국 여성 노동자 파업 시위가 벌어진 날을 세계 여성의 날로 지정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체트킨이 주도한 여성운동가 대회에 영향을 받은 프랑스 자유주의 페미니스트들은 여권 신장을 옹호한 계몽사상가 콩드르세(Condorcet)의 사망일인 75일을 여성의 날로 지정했습니다. 1921레닌(Lenin)1917년 상트페테르부르크 노동자 시위를 기념하기 위해 여성의 날을 38일로 정했습니다. 두 차례 세계 대전을 거치면서 사회주의자들이 정한 세계 여성의 날이 전 세계로 알려지게 되었고, 1981년에 프랑스도 38일을 세계 여성의 날로 공식 선포했습니다.

 

 

20세기 초 파업에 참여한 미국 여성 노동자들은 부르주아지 페미니스트들의 주변부에 머물렀지만, 그들의 투쟁은 빵과 장미라는 불후의 구호로 남아 있습니다. ‘빵과 장미를 외칠 수 있는 날이 오면 110년 전 광장에 나섰던 강한 여성들의 목소리’를 기억해주십시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