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흥망성쇠는 장구한 세월 부침을 거듭하다가 어느 시기에 고목이 쓰러지듯 그렇게 결말이 난다. 전쟁과 천재지변으로 한순간에 망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국가가 끝이 보이지 않는 언덕길을 오르락내리락하며 걸어가는 형국이 역사인 것 같다. 당대의 사람들은 워낙 경사가 완만하여 오르막인지 내리막인지 모르면서 산다.

 

 

 

 

 

 

 

 

 

 

 

 

 

 

 

 

세계금융의 패권을 주도해 온 경제 대국도 흥망성쇠의 과정을 피할 수 없다. <광기, 패닉, 붕괴, 금융위기의 역사>를 쓴 찰스 킨들버거는 금융위기를 질긴 다년생 꽃에 비유했다. 아무리 뽑아도 또 나타난다는 뜻이다.

 

흔히 자본의 대이동은 금융위기를 수반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금융위기의 원인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 금융은 경제뿐만 아니라 지리적 환경과 기술, 종교 등을 망라한 집합체라 할 수 있다. 또 금융은 지금 이 시대에만 연계된 것이 아니다. 모든 금융위기의 배후에는 사회, 문화, 역사적 배경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의 본질을 이해하려면 역사를 해부해 분석하는 것이 좋다. 역사는 중복되지 않으며 역사의 배후에는 사건이 있다. 금융 발전은 개인, 민족, 국가의 의지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으며 금융 자체에는 발전 코드가 있다. 이에 따라 금융시장의 붕괴는 우리의 내일을 불행하게 만드는 씨앗이 된다. 금융위기의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금융위기의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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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rologue

 

 

              

 

 

늘 어긋난다 해도 너 울지는 마 / 이별도 세월도 죽음도 가를 수 없는 우리 사랑이니까

(휘성, ‘살아서도 죽어서도’)

 

 

 


 Scene #1  오프페우스♥에우리디케 

 

 

 

 

 

귀스타브 모로  「오프페우스의 목을 들고 있는 트라키아 여인」  1865년

 

평화로운 지상에 아름답고도 섬뜩한 잔혹극이 펼쳐진다. 리라를 즐겨 켰던 음악의 대가 오르페우스. 그는 자신을 숭배하던 무녀들의 구애를 거절했다가 그네들 손에 몸이 갈가리 찢기고 머리통이 잘렸다. 한 여인이 강에 떠내려 온 오르페우스의 머리와 그의 리라를 건져 올린 뒤 애틋한 눈길로 어둠 속에서 내려다본다. 이젠 늦었다. 사랑하는 아내 에우리디케를 지옥에서 구출해오다 뒤를 돌아보는 바람에 끝내 부인과 영영 이별해버린 슬픔을 그는 벗어날 수 없었다.

 

 

 

 

 

 

 

 

 

 

 

 

 

 

 

 

 

오르페우스는 에우리디케를 신부로 맞았다. 그런데 목동의 스토킹을 피해 달아나던 에우리디케가 독사에 물려 숨지고 말았다.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던 오르페우스에게 지옥으로 가는 길이 열렸다. 신이 내린 천재 뮤지션답게 오르페우스는 슬픈 노래로 저승의 뱃사공을 울려 카론의 배에 무임승차했고, 아름다운 연주로 괴물의 꼬리를 내려 저승의 입구를 통과했다. 마침내 명부의 왕 하데스의 콧날까지 시큰하게 한 오르페우스는 에우리디케를 얻어 지상으로 돌아오는 기적을 일으킨다. 다만 지상에 당도할 때까지 뒤따르는 에우리디케를 절대 보지 말라는 조건이 있었다.

 

오르페우스는 어떻게 되었는가? 뱀에 물려 절뚝거리는 아내가 잘 따라오는지, 돌에 걸려 넘어지는 것은 아닌지, 하데스의 선심이 혹 거짓은 아닌지 쏟아지는 걱정과 끊임없는 의심이 그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지상에 발을 딛는 마지막 순간에 오르페우스는 의혹을 억누르지 못하고 에우리디케를 보고야 만다. 그가 뒤돌아보는 순간, 열심히 뒤를 따르던 에우리디케는 다시 지옥으로 빨려 들어간다. 오르페우스의 절규어린 비탄도 애원의 목소리도 에우리디케를 붙드는 데에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 오르페우스는 아내를 잃은 슬픔을 달래려는 듯, 꿈같은 사랑의 달콤함과 난파된 사랑의 사연을 절절히 노래했다.

 

 

 Scene #2  생텍쥐페리♥콩쉬엘로

 

 

 

 

 

 

 

 

 

 

 

 

 

 

 

 

생텍쥐페리의 처녀작 『남방 우편기』의 주인공 자크 베르니스는 사막의 모래 언덕 위에서 죽는다. 주인공은 우편물을 싣고 유럽에서 아프리카를 경유하는 우편기 조종사다. 소설 속에서 그의 사망을 알리는 전보는 간결하고 차갑다.

 

‘세네갈의 생루이에서 툴루즈에 알림. 프랑스-아메리카 우편기를 티메리스 동쪽에서 발견함. 적들은 근방을 떠났음. 조종사는 피살되고, 비행기는 파손됨. 우편물은 무사함. 다카르로 운송 중임.’

 

‘다카르에서 툴루즈에 알림. 우편물이 다카르에 잘 도착함. 이상.’ (275~276쪽)

 

생텍쥐페리는 자신의 소설 주인공처럼 사라졌다. 삶의 낮은 차원을 견디는데 서툴렀던 이 남자를 사랑하는 일은 또한 얼마나 힘든 일이었을까. 생텍쥐페리에게 아내가 있었다는 사실은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에게는 행방불명되기 전부터, 그리고 행방불명 된 이후로도 그가 돌아오기만을 한결같이 기다리던 아름다운 아내가 있었다. 아르헨티나 항공우편회사 지사장이던 생텍쥐페리가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27세의 과부 콩쉬엘로.

 

엘살바르도의 7대 부호 가문 출신인 콩쉬엘로는 17세에 미국 유학을 가서 첫 남편을 만났지만 2년 만에 사별하고 파리 사교계에 진출, 과테말라 출신의 작가이자 외교관인 고메스 카리요와 재혼한다. 그러나 1년 만에 다시 남편과 사별한 그녀는 남편의 현금 유산을 찾기 위해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들렀을 때 생텍쥐페리를 만난다. 사교회장에서 콩쉬엘로를 처음 만난 생텍쥐페리는 비행기를 태워주겠다고 제안했고 두 사람의 사랑이야기는 공중에서 나눈 키스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프랑스 귀족 출신인 생텍쥐페리 집안은 남미 출신의 이혼녀를 며느리로 인정하지 않았다. 게다가 가히 세기적 방랑벽의 소유자라 할 생텍쥐페리는 도망갔다가 돌아오고, 또 도망가기를 반복했다. 생텍쥐페리는 문학적 성공을 거둬도, 비행 기록을 수립해도, 콩쉬엘로가 곁에 있어도 어린 시절부터 마음속에 들어차 있던 근원적인 슬픔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그는 혼자서 비행기의 조종간을 잡고 있을 때 비로소 행복을 느꼈다. 어쩌면 두 사람은 고독 속에서만 사랑이 온전히 유지된다는 것을 알아차렸는지도 모른다. 더욱 놀라운 것은 두 사람이 언제나 최초의 사랑으로 끊임없이 회귀하려고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는 사실이다.

 

이들의 러브스토리는 『남방 우편기』에 묘사되어 있다. 리비에르와 그가 소년 시절부터 사랑했던 주느비에브의 모델이 바로 생텍쥐페리와 콩쉬엘로다. 하지만 이들의 사랑은 소설의 결말처럼 끝나고 만다. 1944년 7월 31일, 고독한 조종사는 자신의 애마 P38라이트닝과 함께 지중해의 상공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실종되기 전, 생텍쥐페리는 콩쉬엘로에게 이렇게 말한다. “고집스런 작은 게처럼 날 꼭 잡고 있어줘서 고마워.” 남편의 실종을 두고 자살 혹은 탈영이라는 소문도 있었지만 콩쉬엘로는 모른 척한다. 그녀는 남편이 이제는 자신 곁으로 돌아오지 못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일기에조차 실종에 대해 한 마디도 쓰지 않은 것은 물론 남편의 귀환 소식에 강박적으로 매달린다. 그녀는 보이지 않는 존재의 힘을 믿었다. 그것은 바로 시대와 장소를 뛰어넘어 연인들이 주고받는 신비한 감정의 힘, 바로 ‘사랑’의 힘이었다.

 

그가 지중해에서 사라진 지 54년이 지난 1998년에 고기를 잡던 어선 그물에 낡은 비행기 잔해와 팔찌 하나가 걸려 올라왔다. 팔찌 안쪽에는 조그만 이름 하나가 새겨져 있었다. 콩쉬엘로

 

 

 Scene #3  앙드레 고르♥도린

 

 

 

 

 

 

 

 

“당신은 곧 여든 두살이 됩니다. 키는 예전보다 6㎝ 줄었고 몸무게는 겨우 45㎏입니다. 그래도 당신은 여전히 탐스럽고 우아하고 아름답습니다. 함께 살아온 지 쉰여덟 해가 되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내 가슴 깊은 곳에 다시금 애타는 빈자리가 생겼습니다. 오직 내 몸을 꼭 안아주는 당신 몸의 온기만이 채울 수 있는 빈자리입니다.” (6쪽)

 

생태정치 운동가이자 사상가인 앙드레 고르와 그의 아내 도린. 두 사람은 평생을 이념의 동지로, 더 나아가 일상의 동반자로 함께 했다. 기쁨과 슬픔, 희열과 절망 속에서, 그리고 불치병을 앓던 도린의 형용할 수 없는 통증과 고통 속에서 함께 나이가 들어갔다. 삶의 곳곳에서 마주치는 죽음의 그림자. 그러나 죽음 자체는 겁나지 않았다. 두려운 것은 오직 아내와의 이별일 뿐. 80여 쪽 넘게 이어지는 고르의 편지는 두 사람이 함께 살아낸 시간이 늘 함께 춘 사랑의 춤이었음을 고백한다.

 

“우리는 둘 다, 한 사람이 죽고 나서 혼자 남아 살아가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이런 말을 했지요. 혹시라도 다음 생이 있다면, 그때도 둘이 함께하자고.” (88쪽)

 

그토록 많은 책을 저술했고, 사상이나 이념에 천착한 지식인은 아내 없이는 모든 게 공허함을 홀몸으로 견디기가 힘들었을까. 2007년 9월 24일. 프랑스 외곽 시골마을에서 부부는 나란히 저세상으로 떠났다. 사인은 동반자살. 결코 혼자 가지 않겠다는 생전의 약속 그대로. 두 사람을 태우고 남은 재는 유언대로 두 사람이 손수 가꾼 정원에 뿌려졌다.

 

러브레터라는 게 꼭 사랑을 시작할 때만 가능한 게 아닌 것이다. 삶이 끝나려 할 때, 그 때까지도 사랑이 계속되고 있음을 스스로 다짐하며 보내는 연서(戀書)도 있음을, 그런 사랑편지가 더 지극한 감동을 준다.

 

 

 Epilogue  사랑의 정의 

 

나는 누군가를 끊임없이 생각한다. 그 혹은 그녀는 지금 내 곁에 없다. 나는 부재의 시간 속에 있다. 부재의 시간은 고통의 시간이다. 누군가의 부재가 나에게 끊임없이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누군가에 대한 생각에 붙잡혀서, 벗어날 수 없이 매여 있음, 이것이 바로 사랑이다. 사랑은 그렇게 붙잡혀서 매여 있음이다.

 

한국어의 ‘사랑’이란 단어가 그 정황을 가장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것은 원래 많이 ‘생각하다’라는 의미의 한자어다. 즉 사량(思量)이었다. 한가지의 생각에 얽매여 있기. 그것이 사랑이 되었다. 이전에 고어에서 사랑은 ‘고임’이었다. 괴다, 고이다. 몽골어에서도 사람과 사랑이 동의어다. 사랑은 사람이다. 사람이 사랑이다. 사람에 대한 생각, 사람을 그리워하는 마음, 그것이 사랑인 것이다.

 

그리스에서 사랑은 에로스(eros)다. 치명적인 화살을 가진 신, 에로스는 누구도 벗어날 수 없는 사랑의 격정에 빠지게 만드는 화살을 쏜다. 인간은 화살에 맞고, 사랑의 격정에 빠져든다. 거기엔 아무런 논리적 이유가 없다. 그리스들은 사랑의 감정을 신의 희롱으로 보았다. 사랑에 빠진 자는 에로스 신의 화살을 맞은 것이다. 화살을 맞고 사랑에 빠진 자, 이젠 죽음조차도 그 사랑을 막을 수 없다.

 

그러나 우리에게 사랑은, 부재의 경험에 토대를 두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은 지금 내 곁에 없다. 나와 생각하는 대상 사이에는 무섭고 지독한 심연이 가로놓여 있는 듯하다. 그것이 사랑이다. 부재를 통해서만 더욱 명징하고 절박하게 확인되는 감정, 그것이 사랑의 감정이다. 사랑은 자꾸만 생각나게 만드는 것이다. 간절한, 감내하기 힘든 그리움이다. 그리하여 오르페우스는 에우리디케를 찾아 죽음을 무릅쓰고 하데스의 왕국으로 내려간다. 우리는 모두 오르페우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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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enn Gould: Bach Goldberg Variations 1981 Studio Video

 

 

음악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다. 음악이란 것이 본래 가장 비언어적인 예술이기에, 음악에서 얻은 느낌을 갖가지 수사를 동원하여 언어로 옮기면 옮길수록 도리어 가장 중요한 무언가는 점점 더 멀리 달아나는 것 같은 기분을 떨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음악 감상을 하면서 느낀 감동을 글로 표현하는 것이 무척 어렵다. 왜 그런지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처음에는 음악을 글로 논하고 표현하는 감수성이 부족해서 그런 건 줄 알았다. 그랬다가 요즘에는 생각이 달라졌다. “시를 다른 언어로 번역했을 때, 결국 번역되지 않고 남는 것이 바로 그 시”라는 어떤 시인의 말처럼, 음악 역시 애초에 그렇게 언어로 옮겨질 수 없는 운명을 타고난 것일지 모른다.

 

 

 

 

 

 

 

 

 

 

 

 

 

 

 

 

허나 그렇다고 음악에 대한 글쓰기가 모두 무용하다고 할 수 있을까. 가끔 아주 가끔 보석같이 빛나는 글을 마주칠 때가 있는데, 미셀 슈나이더의 『글렌 굴드, 피아노 솔로』가 바로 그런 책이다. 그런데 전기라고 하자니 연대기적 구성을 찾아볼 수 없고, 그의 음악에 대한 해설 혹은 평론이라고 하기엔 너무도 몽상적인 시적 언어를 구사한다.

 

다양한 자료와 사실들을 토대로, 그의 내면에서 일어났을 법한 고뇌와 성찰을 그의 음악의 결을 따라 재구성해낸다. 글렌 굴드는 감정의 폭발보다는 극도의 정제를, 연주회장보다는 녹음 스튜디오를 선호한 독특한 피아니스트다. 가장 '비(非)피아노적인' 방법으로 피아노를 연주하고자 했던 모순에 찬 인물이다.

 

1955년 6월의 따뜻한 날에 굴드는 두꺼운 외투에 목도리까지 두른 채 녹음 스튜디오에 나타났다. 장갑을 낀 손에 들려 있는 악보가방, 생수 2병, 타월 한 무더기, 알약병 5개가 그의 소지품이었다. 그리고 그를 구성하는 이미지에서 절대 빠져선 안 되는 키 작은 접이의자. 그는 마치 낚시의자와도 같은 14인치 높이의 의자를 꺼내놓고 피아노 앞에 앉았다. 참으로 얼토당토않은 모습이었을 터. 스튜디오 직원들은 황당했을 것이다. 그날 녹음실에서 연주된 곡은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이 레코딩에는 ‘전설의 탄생’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파격. 당시 그의 음반을 들은 비평가들과 대중들은 충격에 휩싸였다. 도대체 바흐를 이렇게 연주할 수도 있단 말인가.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러시아 대사 카이저링크 백작의 궁정 음악가였던 골드베르크가 불면증에 시달리던 백작을 위해 바흐에게 작곡을 부탁했던 일종의 자장가였다. 2개의 아리아와 30개의 변주로 이루어진 이 곡은 총 연주시간이 40여분 정도의 대곡이다. 각각의 변주는 연주시간이 짧게는 1분, 길게는 4분여 정도까지 늘어진다.

 

하지만 굴드는 악보 위에 쓰여진 바흐의 시간은 안중에도 없었다. 완벽한 기교를 바탕으로 그는 골드베르크 변주곡의 흐름을 완전히 자신 만의 세계 속에 집어넣었다. 페달은 아예 사용하지도 않았고 템포는 자유자재로 변형시켰다. '골드베르크'가 '굴드베르크'로 변하는 역사적인 순간.

 

그가 나타나기 전까지 바흐는 광막한 벌판에 우뚝 솟은 태산이었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이 거대한 봉우리를 오르면서 감탄하고 경외하고 좌절해야 했던가. 그러나 굴드는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음반 한 장으로 그는 전 세계 음악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그를 둘러싼 이런 식의 일화는 한두 개가 아니다. 2년 뒤 뉴욕에서 레너드 번스타인이 지휘하는 뉴욕 필하모닉과 협연하던 날. 그는 따뜻한 물에 거의 한 시간가량 손을 담그고 있다가 연주회 시작 2분 전에야 대기실에 나타났다. 이날의 옷차림도 황당했다. 두터운 외투와 올이 굵은 헐렁한 스웨터. 당황한 번스타인이 “청중 앞에서 이 스웨터를 벗을 건 아니지”라고 묻자, 그는 아무 대답 없이 스웨터를 벗었다. 그 바람에 머리카락이 온통 헝클어졌지만 그는 손으로 그것을 쓸어 올리지도 않은 채 무대로 나갔다. 그날 연주한 곡은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2번’. 그는 애지중지하는 난쟁이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았고, 청중에게서 비스듬히 등을 돌린 자세였다. 그는 느린 악장에 이르자 입을 헤 벌린 채 무대 천장에 시선을 고정시켰고, 마지막 악장에선 거의 뒤로 쓰러질 것 같은 자세로 피아노를 쳤다.

 

굴드는 콘서트홀의 청중을 좋아하지 않았다. 피아니스트로서 한창 때였던 1964년, 당연히 출연료도 고공행진 했을 그 시기에 굴드는 청중에게서 완전히 등을 돌려버린다. 그때부터 그의 음악 활동은 오로지 방송국과 음반사의 스튜디오에서만 이뤄진다.

 

 

 

 

 

 

 

 

 

 

 

 

 

 

 

굴드의 오랜 친구이자 의사였던 피터 F. 오스왈드의 증언에서 청중의 존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리고 그들을 좋아하지 않는 굴드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현악기들이 불협화음을 만들어낼 때를 기다리며, 지휘자가 까다로운 박자에서 실수하기를 기다리고 끔찍합니다. 음악회를 쫓아다니는 철면피한 인간들, 나는 그런 사람들을 싫어하며 신뢰하지도 않고, 친구로 삼고 싶지도 않습니다.”

 

오스왈드의 헤석에 의하면 굴드는 연주회장에 오는 청중이 음악을 들으러 오는 것이라고 믿지 않았다. 다분히 감정이 치우친 감이 있으나 청중이 있는 연주회장을 거부하는 굴드의 독특한 음악 철학으로 이해해야할 듯 싶다.

 

그렇게 스스로 고립을 원했던 피아니스트.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고 우울증을 앓았으며, 상식을 뛰어넘는 멋대로의 행태를 보여줬던 사람. 그러나 굴드를 다만 그렇게 기행을 일삼은 피아니스트로만 바라본다는 것은, 어쩌면 그가 그토록 싫어했던 ‘청중의 태도’와 별로 다르지 않을 법하다.

 

연주하는 동안 피아노는 사라지고 음악만 남길 굴드가 바랬듯, 책을 읽다보면 작가는 사라지고 굴드만 남는다. '골드베르크'가 '굴드베르크'로 전환되는 당시 녹음실 안 굴드의 모습도 떠올힌다. 그 순간 음악과 언어는 기분 좋게 화해한다.

 

그러나 굴드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들을 때면 정말 굴드의 모습만 남는다. ‘골드베르크’가 아니라 ‘굴드베르크’라고 우스갯소리로 불리는 이유가 있다. 생전 굴드가 변주곡을 연주하는 장면이 담긴 동영상으로 음악을 많이 들어서 그런 걸까. 수면을 부르는 불면증 음악치료곡이라고 하던데 MP3로 곡을 들으면 정작 중요한 잠은 오지 않고, 자꾸 수십 명의 양들이 자꾸 내 머릿속으로 들어온다. 그냥 음악이 좋다. 이 좋은 선율은 내 귀 안으로 속삭이는 자장가라기보다는 내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더욱 생기를 돋게 만드는 피로회복제 같다.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나에게는 생기를 돋게 만드는 음악이라면 한니발 렉터에게 이 음악은 은밀하게 숨겨있던 살기(殺氣)를 되살려준다. 영화 <양들의 침묵>에서 한니발 렉터로 분한 앤서니 홉킨스의 명연을 잊을 수 없다. 감옥에 갇혀있던 랙터가 탈출하는 장면, 교도관의 얼굴을 늑대처럼 물어뜯고 곤봉으로 사정없이 두들겨 패는 순간에, 골드베르크 변주곡이 잔잔하게 흘러나온다. 정말 기발하고 독특한 조합이다. 명상적 분위기가 가득 담긴 단순한 선율이 잠자고 있던 악마의 본성을 깨웠던 걸까. 보통 사람으로선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이상성격자 렉터에게, 살인은 어쩌면 ‘경건한 명상’이었던 모양이다.

 

이처럼 골드베르크는 어떤 날에는 ‘굴드베르크’로 들려지고, 또 가끔은 렉터를 위한 살인 명상(?) 음악으로, 무시무시한 영화의 한 장면이 잔상처럼 떠올리기도 한다. 이런 딴 생각 때문에 그동안 골드베르크의 선율을 베개 삼는데도 잠이 오지 않았을 것이다.

 

바흐가 불면증에 시달리는 백작을 위해서 만들었다는 그 유명한 일화 하나 때문에 골드베르크가 수면용으로 적합한 곡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으나 이것이 사실인지 허구인지 불분명하단다. 그래도 과학적인 연구 결과에 의하면 실제로 첫 곡 아리아와 25번째 변주곡은 잠을 청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아리아와 30개의 변주 중 몇 십 개의 곡을 여러 번 들었지만 나한테는 골드베르크의 선율은 최고의 베개가 아닌 것 같다. 혹시 내가 바흐가 만든 독일산 ‘골드베르크’ 베개가 아니라 여태까지 캐나다산 ‘굴드베르크’ 베개를 사용하고 있었던 걸까. 사실 굴드의 피아노 버전은 점점 음이 진행될수록 지나치게 뚱땅거리는 느낌이 강해서 살포시 찾아온 잠마저 달아나게 만드는 느낌이 있다.

 

 

 

 

 

 

 

 

 

 

 

 

 

 

 

에드워드 사이드는 굴드를 “좋은 식당에 들어가 저녁을 기다리듯 가만히 앉아서 작품이 차려지기를 기다리는, 조용하고 수동적인 청중에 맞서 싸움을 거는 돌발적인 천재”라고 말했다. 연주회장이 아닌 집에서도 클래식 음악을 편안하게 이어폰으로 들을 수 있는 요즘, 만약 굴드가 살아있다면 어떻게 생각했을지 무척 궁금하다. 골드베르크가 수면용 음악이라고 해서 자신의 연주를 잠들기 전에 듣는 감상자를 긍정적으로 생각했을까.

 

왠지 굴드의 성격상 ‘굴드베르크’가 아닌 ‘골드베르크’를 듣는 감상자를 싫어했을 것 같다. 특히 연주회장의 청중과 마찬가지로 ‘골드베르크’를 듣고 수면을 취하려는 감상의 목적을 진정한 음악 감상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사이드의 표현대로 굴드는 ‘지식인 비르투오소’, 즉 기교가 뛰어난 연주자에 가깝다. 기존의 화려하고 달콤한 음으로 이루어진 골드베르크’가 아니라 명징하게, 스타카토로 울려나오는 ‘굴드베르크’를 원했다. 그래서 그가 죽어서도 오래 전에  한물 간 클래식 음악 스타인 바흐를 놓지 않았으며 평생에 걸쳐 이 ‘골드베르크’를 ‘굴드베르크’로 두 번씩이나 녹음했다.

 

‘굴드베르크’를 듣지 않을 때 굴드는 좋은 이불 속으로 들어가 꿈을 기다리는, 피로감이 쌓인 감상자에 맞서 싸움을 거는 돌발적인 수면 방해자가 되어 우릴 괴롭힌다. “내 연주를 듣고 잠들지 마시오!” 굴드는 피아노 연주할 때 입으로도 쉴 새 없이 내의미를 알 수 없는 허밍을 내뱉기도 하는데 자신의 연주를 듣고 잠을 청하려는 감상자를 방해하는데 딱 좋다. 굴드도 골드베르크 변주곡의 일화를 모를 리가 없다. 자신의 ‘굴드베르크’만큼은 자신이 그토록 싫어했던 청중의 자장가가 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굴드의 연주는 바흐에 대한 그의 해석 방식이 과연 옳은가, 그른가를 떠나 자신만의 확실한 해석으로 일관하며 파격과 낯설음을 통해 우리의 고정관념을 해체시킨 것은 분명하다.

 

삶이 가파른 고비에 몰려 살아가기가 힘에 부치다고 느낄 때 굴드가 연주한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한번쯤 들어볼 일이다. 삶에 활력을 불어주는 선율이 될 지도 모른다. 다만 한니발 렉터 같은 상상 초월하는 사람은 절대로 들어서는 안 된다.

 

혹시 그의 연주를 듣다가 혹시 뭐라고 웅얼거리는 소리가 들린다고 해서 그 음반이 불량이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우리 곁에 그가 생생하게 숨 쉬고 있음에 위로를 받을 것이며. 마지막 소절 마지막 음이 끝날 즈음엔 새가 눈 덮인 가지를 후르륵 털며 날아간 후의 나뭇가지 같이 우리 삶의 무게도 한결 가벼워지고, 진정 음악은 신이 떠나면서 우리에게 남겨둔 기억이며 위로임을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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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ummii 2016-02-06 0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굴드베르크 변주곡 ㅎㅎ제가 좋아하는 음반 중 하나에요 자장가로 절대 들을 수가 없죠 ㅎㅎ 굴드의 타법은 음정 하나하나가 명료하게 귀에 꽂히는데도 거슬림이 없어요 제가 바흐 음악을 제일 좋아하게 된 것도 굴드의 해석이 한 몫 했죠~오랜만에 다시 꺼내 듣고 싶네요^^
 

 

 

 

 

 

 

 

 

 

 

 

 

 

 

 

 

어른이 되어도 잊혀지지 않는 고통의 기억들, 마음을 여는 진실한 의사소통으로 상처는 치유될 수 있다. 어린 시절에 받은 마음의 상처는 일시적인 것에 그치지 않고 평생에 걸쳐 나타난다. 어린 시절에 겪은 불안과 좌절, 원망과 두려움은 아이의 신체와 정신에 각인되어 인생 전체를 지배하게 된다.

 

아동심리학자 앨리스 밀러는 무조건 부모를 공경해야 한다는 종교적 관념과 부모에 대한 원망을 금기시하는 도덕적 규범이 학대받은 아이들의 정당한 분노를 억압하며, 자아의 혼란과 질병의 고통으로 이어진다고 말한다.

 

“어머니 눈 밖에 나서 발작이 멈추느니, 차라리 발작이 나더라도 어머니 마음에 드는 아들이 되고 싶어요.” (마르셀 프루스트,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평생 천식으로 고통 받았던 소설가 프루스트. 어머니의 지나친 간섭과 통제에 저항할 수 없었던 그의 처지와 천식이 무관하지 않다. 프루스트는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에서 언급했듯이, 이러한 어머니의 사랑조차 잃게 될까 봐 늘 전전긍긍했다. 어머니의 눈 밖에 나느니 차라리 발작을 택하겠다는 그의 태도는 진정한 사랑을 받지 못했던 아이의 애정에 대한 왜곡된 집착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프루스트는 소설가 중에서도 기억력이 뛰어나다. 나이가 들어서도 어린 시절이 기억을 놀랄 만큼 생생하게 구현해낸다. 그 기억력의 산물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완성하기까지 걸린 세월은 무려 14년. 일체의 소리가 스며들지 못하게 막아놓은 코르크로 둘러싼 밀실에 천식과 싸워가면서 소설을 써내려갔다. 흥미로운 사실은 소설을 집필하기 시작한 시기가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이후였다. 프루스트의 지독하면서도 외곬에 가까운 추억을 묘사하는 진지함은 어쩌면 특출한 기억력이 아니라 어머니의 상실에서 비롯된 고통과 허전함 때문이 아니었을까.

 

천식 발작을 참을 수 있게 만들 정도로 허약한 자신을 지탱해주는 커다란 존재의 상실감은 38세의 젊은 프루스트에게는 감당하기에는 벅찼을 것이다. 몸과 마음을 조이는 천식 발작을 멈추기 위해서 죽은 어머니를 되살려야 했다. 그런 유일한 방법이 바로 소설을 쓰는 것. 결국 프루스트는 모든 기억을 토해내듯이 써내려간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원고를 마지막까지 손보다가 세상을 떠났다. 14년 동안 이어진 코르크 밀실 속에서의 고행이 끝나는 순간이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1부 ‘스완네 집 쪽으로’에서 어머니의 존재는 ‘나’(마르셀)에게 어릴 적 기억과 감각을 되살려주게 만드는 추억의 매개물을 제공한다. 여기서 그 매개물이 바로 그 유명한 마들렌과 홍차다.

 

어머니는 사람을 시켜 생자크라는 조가비 모양의, 가느다란 홈이 팬 틀에 넣어 만든 ‘프티트 마들렌’이라는 짧고 통통한 과자를 사 오게 하셨다. 침울했던 하루와 서글픈 내일에 대한 전망으로 마음이 울적해진 나는 마들렌 조각이 녹아든 홍차 한 숟가락으로 기계적으로 입술을 가져갔다. 그런데 과자 조각이 섞인 홍차 한 모금이 내 입천장에 닿는 순간, 나는 깜짝 놀라 내 몸속에서 뭔가 특별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어떤 감미로운 기쁨이 나를 사로잡으면 고립시켰다. (85~86쪽)

 

찰나의 미각이 과거의 부활을 불러일으키는 이 감각적 전환의 장면은 단순히 우연히 맛보는 마들렌과 홍차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마들렌과 홍차를 ‘나’에게 준 어머니에게 주목할 필요가 있다. 프루스트 연구가에 의하면 프루스트 회상의 배경에는 어머니의 존재가 크다고 말한다. 프루스트가 단지 마들렌을 즐겨 먹을 정도로 좋아해서 추억의 매개물로 그것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연히 마들렌을 사오게 한 어머니의 모습을 프루스트는 잊지 않았다. 어머니에 대한 프루스트의 각별한 애정이 없다면 우리는 마들렌과 홍차가 연출한 이 유명하고도 너무나도 섬세한 장면을 만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우연과 감성에서 비롯된 기억을 ‘비의지적 기억’이라 하면, 의지와 지성에서 비롯된 기억은 ‘의지적 기억’이라고 한다. 전자의 기억은 과거에 대한 총제적인 삶의 장면을 그려내지만, 후자의 기억은 단편적인 부분의 장면에 불과하다. 마르셀이 입 안에 홍차에 의해서 녹아드는 마들렌 조각에서 감미로운 회상에 젖어드는 것은 비의지적 기억이다. 어머니가 준 마들렌과 홍차를 통해서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 레오니 아주머니라는 분이 주던 보리수차에 적신 마들렌을 발견한다.

 

반대로 평생 프루스트의 삶에서 떨어지지 않은 어머니는 작가의 의지적 기억을 이끌어낸다. 프루스트는 소설을 쓰는 동안 어두컴컴한 밀실 속에 지내는 느낌에서 방에 홀로 어머니를 기다렸던 유년 시절의 그리움이 떠올렸을 것이다.

 

어린 마르셀은 잠들기 전에 어머니의 키스를 받고 싶어 한다. 어머니의 키스는 마르셀에게는 유일한 삶의 위안이다. 늦은 저녁식사 때문에 어머니가 자신의 방에 찾아오지 않거나 어머니가 자신의 곁을 떠나는 모습에 어린 마르셀은 무척 괴로워한다. 앞에서 언급한 밀러의 주장대로라면 어머니의 키스를 원하는 어린 마르셀의 모습은 어른이 돼서도 어머니의 애정에 집착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장면이다. 프루스트는 어머니의 키스를 그리워하고, 어머니가 자신의 곁을 떠나면서 생기는 유년기 특유의 불안감을 생생하게 묘사했다.

 

잠을 자러 올라갈 때 내 유일한 위안은 내가 침대에 누우면 엄마가 와서 키스해 주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저녁 인사는 너무도 짧았고 엄마는 너무 빨리 내려갔기 때문에, 엄마가 올라오는 소리가 들리고 뒤이어 문짝이 두 개 달린 복도에서 밀짚을 엮어 만든 작운 술이 달린 푸른빛 모슬린 정원용 드레스가 가볍게 끌리는 소리가 들릴 대가 내게는 정말 고통스러운 순간이었다. 다음에 올 순간을, 엄마가 내 곁을 떠나 다시 아래로 내려가는 순간을 예고해 주었기 때문이다. (32쪽)

 

어머니가 자신의 방으로 오는 소리만 들어도 어린 마르셀은 벌써부터 어머니의 부재로 인한 고독을 예감했고, 무척 견디기 어려웠다. 마르셀은 어머니의 키스로만으로 자신에 대한 어머니의 애정을 확인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는 어머니가 자신 곁에만 있어주길 원했다.

 

비의지적 기억은 한 번 떠올리게 되면 그 때 그 미묘한 감정적 변화의 순간을 재현할 수 없다. 마르셀은 또다시 마들렌과 홍차를 먹어보지만, 순간적으로 밀려온 특별한 기억을 떠올리지 못한다. 반면 의지적 기억은 금방 잊혀질 수 있는 단편적인 이미지에 불과하지만,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얼마든지 떠올릴 수 있다. 어머니에 대한 프루스트의 비의지적 기억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완성하게 만드는 중요한 소재이면서도 동시에 평생 작가를 괴롭힌 병적 집착이다. 유년 시절 속 어머니를 묘사하기 위해서 프루스트는 다시는 꺼내고 싶지 않은, 마음의 서랍에 깊숙이 숨겨왔던 기억의 고통을 감내해야만 했다.

 

 

 

 

 

 

 

 

 

 

 

 

 

 

 

 

태양도 끝날 날이 있을까. 작가 이병주는 중편소설 ‘예낭 풍물지’의 맨 마지막 문장을 “태양도 끝날 날이 있다”로 끝맺는다. 감옥에서 나온 폐병환자인 주인공에게 어머니는 세상의 모든 것이다. 어머니가 병석에 눕자 주인공은 “어머니가 숨을 거두는 날, 나는 지구도 그 맥박이 멎을 것을 확신한다”며 비통해 한다. 어머니의 부재(不在)는 곧 태양이 끝나는 것을 의미한다.

 

어머니가 없으면 태양이 시들고, 지구가 시시해진다. 어머니는 아이에게 하늘이자 땅이다. 엄마 없는 유년은 빈방처럼 썰렁하고, 찬밥처럼 시들하다. 엄마를 기다리는 기형도 시인의 유년 풍경이 그렇다.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추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 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기형도, ‘엄마 걱정’)

 

 

그리운 어머니는 항상 늦게 온다. 기형도의 시 ‘엄마 걱정’에서처럼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안 오시는 것이 엄마다. 프루스트는 방으로 찾아오는 어머니의 발걸음 소리에 불안감을 예감했다면, 기형도는 그리워하는 존재의 등장을 암시하는 어떠한 소리도 들리지 않은 상황에 초조해하고 불안에 떤다. 어머니의 부재가 만든 상실감을 잊기 위해서 어린 시인은 혼자 엎드려 훌쩍거릴 수밖에 없었다. 이미 그리운 것은 사라진 자리에서만 그 실체를 드러낸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일까. 기형도의 이 시에 대한 김현의 표현을 빌리자면 유년 시절에 느낀 엄마 걱정은 무섭고 괴로웠지만, 성인이 된 시점에서는 그리움으로 받아들인다.

 

죽은 어머니의 모습과 그녀의 존재를 통해서 느꼈던 불안하고 괴로웠던 부정적 기억을 프루스트도 소설로 그리움으로 환기시키는 동시에 치환시킨다. 그렇다고 부정적 기억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 때 그 기억의 장면이 마음 내부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을 뿐이다. 프루스트와 기형도는 ‘어머니’라는 여백에 남아있는 허전한 추억을 소설과 시로 채우고 있다. 

 

어머니를 생각하는 것은 항상 이렇게 늦다. 사라지고 나서야 어머니를 떠올린다. 사실 떠나기 전에는 알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떠났기 때문에 존재를 깨닫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없음으로 해서 있었던 사실을 각인시키는 부재의 역설이다. 없는 자리, 사라진 자리에서야 그 존재의 지극함을 깨닫는 애통함은 모든 ‘있는 것’이 있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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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사회가 서구열강을 중심으로 세계 지배 구도와 세계시장 진출에 박차를 가하던 19세기까지도 이른바 ‘여류 작가’들은 자신을 숨기고 글을 쓰지 않으면 안 되었다.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여자는 어린아이와 남자의 중간쯤에 있다 하시고, 새뮤얼 존슨 박사는 여자가 글을 쓰는 일은 ‘뒷다리로 걷는 강아지처럼 모양은 좋지 않아도 사람을 놀라게 한다’고 칭찬하시는 지경에 어지간한 용기나 배짱이 아니고서야 감히 ‘여류 작가’로 커밍아웃 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버지니아 울프는 ‘자기만의 방 한 칸’에 그토록 목을 매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여성이 투표권을 갖는 것만큼이나, 아니 그 이상으로 위험하고 도발적인 일로 취급되었다. 왜냐하면 글을 쓴다는 것이야말로 한없이 무애한 영혼의 자유, 어느 누구에게도 종속되지 않는 자기만의 삶을 주장하는 일이기에.

 

울프는 여성이 작가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500파운드와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평균 열 세 명의 아이를 낳고 평생토록 가사 일을 전담해야 했던 당대 여성들은 그녀들의 어머니도, 어머니의 어머니도 언제나 가난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운명에 놓여있었다는 것이 그녀의 설명이다. 만약 그녀들이 가난하지 않았다면, 탐험을 하거나 글을 쓸 수 있는, 사색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과 공간과 모든 조건들이 구비되었더라면 그녀들 개인의 생은 물론이고 인류의 문화나 역사도 훨씬 풍성해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가난함으로써, 자기 소유의 재산을 가지지 못함으로써 그녀들이 잃었던 것은 비단 작가적 재능을 십분 발휘할 수 있는 독창성과 주체성뿐만이 아니다. 자기 스스로 자기만의 생을 꾸려나갈 수 없는 현실에서 기인하는 무력감, 자신감의 상실, 타인(주로 남성)이 그들에게 부과한 수많은 편견, 왜곡된 인식의 불가피한 수용, 사회적 차별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기고 스스로를 열등한 존재로 여기고 살아갔던 세월들이 있다.

 

 

 

“더욱이 앞으로 백년이 지나면 여성은 보호받는 성이기를 그만둘 것입니다. 필연적으로 그들은 한때 자신들에게 허용되지 않았던 모든 행위와 능력 발휘에 참여할 것입니다. (중략) 여성이 보호받는 성이었을 때 관찰된 사실에 근거를 둔 모든 가정들은 사라질 것입니다.” (버지니아 울프  『자기만의 방』 62쪽)

 

 

울프는 백년 뒤 여성이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생활의 자립을 꾀할 수 있는 ‘돈’과 방해를 받지 않고 사색할 수 있는 ‘자기만의 방’을 가지는 여성이 나올 것이라고 가정했다. 소득수준이 웬만한 남자들보다 월등히 높으며 성공한 지위와 명성을 가진 여성들, 소위 골드미스의 등장을 얼추 예언했을지 몰라도 현대의 혼자 사는 여성들은 자기만의 방만으로 만족하지 못한다. 혼자만의 자유를 온전하게 누릴 수 있는 집을 꿈꾼다.

 

 

 

 

 

 

 

 

 

 

 

 

 

 

 

“여자는 누구들처럼 집에 들어와서 이용하고 마음대로 다시 나가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여자는 곧 집이다. 떼려야 뗄 수 없다.” (앨리스 먼로의 단편 ‘작업실’ 중에서, 『행복한 그림자의 춤』  13쪽)

 

 

앨리스 먼로의 단편 ‘작업실’은 어느 날 자기만의 작업실을 갖게 된 작가 지망생 주부가 맞닥뜨린 상황을 그려냈다. 작가를 꿈꾸는 ‘나’는 가부장적 남편에 꼼짝 못하고 아이들 뒤치다꺼리에 하루하루를 보냈던 평범한 주부였다. 그런 일상의 반복은 일견 잔잔해 보이지만 돌멩이 하나가 던져지면서 미세한 균열이 생긴다. 혼자서 자유롭게 글을 쓸 수 있는 공간, 바로 작업실을 구해 달라고 남편에게 요구한 것이다. 편안한 집을 놔두고 상가의 빈 사무실을 하나 얻어 통상적인 근무시간에는 사무실을 사용하지 않고, 주로 주말이나 평일 야간에 가끔 사용하는 작업실. 그것도 딱히 써야 할 무엇도 없는 상태에서 우두커니 앉아 벽만 바라보며 글쓰기를 시도한다.

 

그런 주인공에게 찾아오는 영감이 하나 있다. 월세집 주인인 영감은 전구를 돌려 빼는 법과 라디에이터와 창문 바깥에 설치된 차양 사용법 따위를 알려주겠다고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와 말을 시킨다. 처음에 독자들은 우호적이거나 어떤 미묘한 관계가 설정되는 것으로 짐작할 수도 있다. 그러나 관계는 엇나간다. 시간도 없고 듣고 싶지도 않다고 여자가 아무리 옹골지게 굴어도 영감은 무슨 구실로든지 찾아와 자신이 겪은 돼먹지도 않은 별의별 얘기를 늘어놓는다. 날이 갈수록 영감과 주인공은 적대적인 사이가 되고, 건물 사용 등에 관련된 사소한 시비가 자주 빚어지면서 여성은 건물을 떠난다.

 

자기만의 공간을 찾았지만, 자기만의 공간이 되어주지 못하는 작업실, 혼자만의 공간인 줄 알았는데, 세상과 주변의 눈이 지나칠 정도로 집요하게 간섭을 행하는 작업실은 당시 여성의 현실이자 세상의 얼굴이기도 하다.

 

 

 

 

 

 

 

 

 

 

 

 

 

 

 

어쩌면 여성에게 작가로서의 글쓰기란 삶 전체를 대가로 하는 무모한 모험일 수 있겠다. 앨리스 먼로의 단편처럼 강명숙의 소설 『라이팅 클럽』의 주인공도 작가 지망생 주부(싱글맘)이다. 거기에 그녀의 딸도 작가를 꿈꾼다. 여기까지만 본다면 우리는 여자만 있는 그 집이 소설을 쓰기에 그 누구라도 방해받지 않는 아주 적합할 공간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창작과정도 영 순탄치만 않다. 등단도 하지 못한 데다 내세울 만한 이력도 없는 싱글맘 김 작가는 동네에서 글짓기 교실을 운영하고 있고, 그곳을 찾아온 사람들은 다만 글쓰기를 한다는 것만으로 행복을 느낄 뿐이다. 하지만 딸 영인에게 김 작가의 ‘글짓기 교실’은 유치하고 경박한 장난이며, 동네 아줌마들의 글은 ‘쓰레기’일 뿐이다. 영인이 원하는 것은 ‘진짜 작가’가 되는 것. 영인은 많은 책들을 읽고 일기와 편지, 소설을 쓰지만 여전히 글쓰기의 어려움을 느낀다. 도무지 다가갈 수 없는 영역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소설은 영인이 글쓰기의 진짜 의미를 발견하기까지의 과정을 담는다. 그녀의 성장기는 평범하지 않다. 동성애와 열등감, 짝사랑 등으로 점철됐다. 어른이 됐어도 구질구질한 직장 생활, 친구의 죽음, 결혼과 이혼 등으로 인해 나락을 겪어야만 했다.

 

하지만 영인은 그 가운데서도 틈틈이 책을 읽고 글을 쓴다. 그 열의는 삶이 혹독해질수록 더욱 뜨거워진다. 그렇게 맹렬하게 이어가던 글쓰기가 어느덧 특별하게 다가오지 않게 된다. 글을 쓰는 그 자체가 의미가 돼 버린 것이다.

 

영인에게 진정 모자랐던 것은 바로 타인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열린 귀였다. 그녀는 비로소 엄마의 내공과 글짓기 교실의 진가를 알게 된다. 김 작가의 글짓기 교실을 통해 진정한 글쓰기의 즐거움이 무엇인지 짚는다. 그것은 등단할 수 있다는, 일종의 실용적인 희망이 아니라 모두의 가슴 속에 잠들어 있는 글쓰기 자체의 순수한 기쁨이다.

 

비록 생전 울프가 살았던 시대의 여성들의 두 발은 현실 위에 단단히 고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오히려 울프는 어떤 경우에도 유머와 활력을 잃지 않았다. 그것만이 ‘여성 작가’가 아닌 ‘작가’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이라고 믿었다. 유년 시절에 겪은 성적 학대로 인한 지울 수 없는 마음의 생채기에 병마에 늘 시달리면서도 글을 통해 영혼을 구하려고 발버둥 쳤던 치열한 작가였다. 그것은 ‘삶’을 위한 진정한 글이었다. 울프처럼 먼로의 ‘작업실’의 나 역시 글쓰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자신을 간섭하는 그 남자를 지워 없애는 권리를 누리기 위해서.

 

울프는 남성은 권력과 부와 명성을 가지고, 여성은 아이들 말고 가진 것 없다고 푸념했다. 그러나 시대가 달라진 지금, 이제 여성도 경제적 활동 참여도 높아지고, 남성처럼 능력이 좋으면 부와 명성을 가질 수 있다. 남성이 닫아버린 문을 이제 여성은 자유의 문을 열 수 있는 열쇠를 쥐고 열 수 있다. 여성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기 위한 물적 토대는 충분하다.

 

하지만 일부 남성은 여성에게 ‘자기만의 방’으로 향할 수 있는 열쇠를 건네주면서도 그들의 자유를 탐탁지 않게 여긴다. 작업실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유부녀가 혼자서 글을 쓰는 행위를 아니꼽게 보는 남성의 편견적 시선. 아무리 여성이 교육을 잘 받고, 똑똑해도 한 번 쉽게 사라지지 않는 이 편견이 더욱 견고해질수록 여성의 예술적 활동에 또 다른 벽이 되기도 한다.  

  

지금은 어느 때보다 여성 작가들이 왕성히 활동하는 시대다. 하지만 20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뒷다리로 걷는 강아지’로 취급받던 여류 작가들을 생각하면 키에르케고르의 저주가 역설적으로 되새김질된다. “여자가 되었다는 것은 이 무슨 불행인가? 게다가, 여자이면서 자기가 그중의 하나라는 것을 정말 모르고 있다는 것은 더할 나위 없이 지독한 불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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