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아이들에게 과학을 돌려주자’라는 기업 광고의 슬로건이 큰 호응을 받은 적이 있었다. 광고 내용은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옛날에는 과학자가 꿈인 어린이들이 많이 있었는데 언제부터인가 과학자보다는 아이돌 가수가 더 많은 장래 희망이 되는 시대가 되었다.

 

요즘 아이들이 선택한 장래 희망이라는 것이 어른들이 한 번에 들어도 기분 좋을 만한, 소위 돈을 잘 벌고 안정되어 보이는 직업이다. ‘좋은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곧 좋은 진로’라 배우며 자란 2030 세대는 성인이 돼 지독한 꿈의 부재를 겪고 있다. 단군 이래 최악의 세대 방황은 다음 세대들에게도 이어질 듯하다. 초등학생 10명 중 3명은 공무원이 되길 희망한다고 한다. 초등학생들의 대답은 대학 입학과 동시에 각종 고시를 준비하는 새내기 대학생이나 전공 불문하고 공무원 시험에 매진하는 취업 준비생의 대답과 꼭 같다.

 

부모가 “커서 뭐가 되고 싶니?”라고 물었을 때 명쾌하게 대답할 수 있는 아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아이가 꿈이 없다고 미리 조바심 낼 필요는 없다. 아이가 다양한 경험을 통해 직업의 스펙트럼을 넓힐 수 있다. 내가 미혼이라서 아이의 장래희망에 관심을 가지는 부모의 심정을 느끼기에는 이른 감이 있지만, 결국 직업은 연봉을 많이 받거나 사회적으로 인기가 높은 것도 좋지만, 적성에 맞으면서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자신의 적성을 제대로 찾지 못해 시간을 허비하는 것은 낭비에 가깝다. 과거와 같이 ‘높은 연봉’과 ‘안정적인 직장’, ‘사회적 지명도’가 높은 일자리가 아닌 자아실현을 위한 직장을 선택해야 한다. 부모의 기대라는 그늘에서 벗어나 직업을 통해 자신의 행복을 추구할 수 있다.

 

 

 

 

 

 

 

 

 

 

 

 

 

 

 

프리모 레비의 소설 『멍키스패너』에 나오는 주인공 파우소네는 직업의 참된 의미를 잘 알고 있는 인물이다. 파우소네는 떠돌이 조립공이다. 철탑, 다리, 석유시추설비 등등 한 번도 손대지 않은 구조물이 거의 없을 정도로 노동 경험이 많다. 그는 안정적인 집과 아내도 없다. 항상 작업할 때 사용하는 ‘멍키스패너’와 함께 전 세계를 떠돌면서 지낸다. 건장한 사내도 하기 꺼리는 조립공 작업을 파우소네는 즐거운 노동이라고 생각한다. 돈을 벌기 위한 노동이 아니다. 파우소네는 기계 구조물을 다루는 노동에서도 예술가처럼 창조해내는 순수한 즐거움을 찾고자 한다. 도구를 사용할 줄 알고, 거기서 즐거움을 느끼는 진정한 ‘호모 파베르(Homo Faber)다.

 

파우소네는 왜 복잡하기 짝이 없는 기계를 조립하고, 3D에 가까운 육체적으로 고된 노동을 선호하게 될 걸까? ‘꿈’에 대해서 자신의 정의를 내리는 파우소네의 답변은 안정적인 직업의 꿈을 좇는 우리들을 부끄럽게 한다. 전 세계를 여행하듯이 온 세상의 조선소, 공장, 항구를 돌아다니는 것이 자신의 꿈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직업에 관한 꿈은 자신이 실현될 수 있는 것일수록 좋다고 한다.

 

“나로서는 꿈이 진짜로 실현되는 것이 좋아요. 만약 그렇지 않다면 꿈이란 사람이 평생 동안 옆에 가지고 다니는 질병이나, 아니면 습기가 찰 때마다 고통을 주는 수술의 상처로 남아 있게 되지요.” (프리모 레비  『멍키스패너』  중에서, 10쪽)

 

우리는 어른이 되어서 어린 시절의 꿈을 그리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후회하기도 한다. ‘아, 내가 공부만 좀 더 열심히 했더라면, 과학자가 될 수 있었을 텐데...’, ‘그 때 부모님의 설득에 귀담아 듣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꾸준히 준비했더라면 일하는 것이 즐거웠을 텐데...’ 안정적인 생활과 연봉에만 초점을 맞춘 직업을 선택해서 생활할수록 어린 시절 순수했고 꿈은 어느새 아쉬움이 가득한 그리움으로만 남게 된다. 하지만 자신이 처음부터 꿈꾸던 장래희망이 평생 행복하게 해 줄 것이라고 예상하기 힘들다. 소수에 불과하다. 그래서 어린 시절, 자신이 좋아하던 일을 사랑해서 직업으로 삼아 사회적으로 성공하는 인물은 많지 않다.

 

“운명이 우리에게 선물할 수 있는 개별적이고 경이로운 순간들을 제외하면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것은(불행히도 그건 소수의 특권이다) 지상의 행복에 구체적으로 가장 훌륭하게 다가가는 것이 된다. 하지만 그것은 소수만이 알고 있는 진리다. 그 무한한 영역, 직업의 영역, 간단히 말해 일상적인 일의 영역은 남극 대륙보다 덜 알려져 있다.” (121쪽)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것이 사람 운명인데 우리는 너무 무심코 직업을 단정적으로 결정하려고 한다. 그것도 돈 벌기 쉽고, 해고 위험의 부담이 없는 안정적인 직업 말이다. 그러나 파우소네의 표현처럼 직업의 영역은 광활한 남극 대륙보다 덜 알려져 있다. 우리가 전혀 모르는 직업이 많을 것이고, 앞으로도 몇 십 년 후에 새로운 직업이 등장할 것이다. 또한 우리가 선호하고 원하는 직업 중에는 언젠가는 미래에 사라질 수 있다.

 

자신의 일을 사랑한다면 힘든 노동이라도 피곤하지 않을 것이다. 반면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돈을 벌기 위한, 고용주의 노예일 뿐이다. 파우소네는 일과 노동의 즐거움을 통해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진정한 노동(직업)은 인간을 억압하고 구속하는 노동이 아니다.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고 강요받지 않는 즐거운 것이다.

 

레비는 파우소네를 ‘또 다른 자아’라고 불렀다. 여기서 말하는 ‘자아’는 예술가적 자아를 뜻한다. 두 손으로 끊임없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즐거움을 찾는 파우소네에게 예술가의 면모를 발견한다. 레비는 파우소네에 관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 대화를 유도하는데 바로 글쓰기 작업으로 파우소네의 삶을 소설로 새롭게 창조시킨다.

 

 

 

 

 

 

 

 

 

 

 

 

 

 

 

 

 

레비의 삶에 있어서 글쓰기와 화학 연구는 인간적의 의미를 부여받을 수 있는 노동이다. 처녀작 『이것이 인간인가』를 통해서 수용소 안에 갇힌 인간과 그들을 통제하고 억압하는 인간 군상을 묘사함으로써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의 해답을 찾으려고 했다. 고통스럽고도 극적인 수용소에서의 삶을 기억하고 글로 기록하는 것은 ‘인간에 대한 질문’에 대한 눈물겨운 기억 투쟁이다.

 

1986년 레비와 대담한 필립 로스는 그를 ‘화학자-작가’라기 보다는 ‘예술가-화학자’에 가깝다고 했다. 『주기율표』에서 레비는 화학이 ‘파시즘의 해독제’라고 말했다. 화학 실험이 인간적인 노동인 것이다. 그래서 『주기율표』를 읽어보면 화학 실험을 한 편의 그림처럼 감각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증류는 아름답다. 무엇보다 느리고 철학적이며 조용한 작업이기 때문이다. 이 작업은 사람을 분주하게 하지만 다른 것들을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준다. 자전거 타기와 비슷한 일이다. 또 증류가 아름다운 건 변신이 일어나기 때문이기도 하다. 액체에서 (보이지 않는) 증기로, 증기에서 다시 액체로 말이다. 위로 아래로 두 겹의 여행을 하는 사이 마침내 순수한 것이 도달한다. 이것은 모호하면서도 매혹적인 조건이다.” (프리모 레비 『주기율표』 중에서, 89쪽)

 

레비처럼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직업이 우리 삶의 치유제가 되고, 파우소네처럼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찌 보면 현실적이지 않은 생각에 불과할 수 있겠다. 오히려 자식이 파우소네처럼 떠돌이 기계 조립공처럼 산다면, 부모는 당장 자식의 호적을 팠을 것이다.

 

레비는 자신의 삶에 어울리는 직업을 찾는 것의 어려움과 사람들에게 외면 받는 직업의 현실을 인식하고 있다. 결국 어린 시절 꿈을 직업으로 전환시키는 멋진 삶이란 쉽지 않는 일이다. 그렇다고 레비는 운명의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많은 직업이 사랑받지 못한다는 것은 슬프게도 사실이다. 하지만 선입관과 증오를 갖고 현장으로 내려가는 것은 해롭다. 그렇게 하는 사람은 평생 동안 직업을 증오할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과 세상을 증오하게 된다. 직업의 결실이 일하는 사람의 손에 남아 있도록, 직업 자체가 형벌이 아닌 것이 되도록 싸울 수 있고 또 싸워야 한다.” (프리모 레비  『멍키스패너』  중에서, 121~122쪽)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자식을 가진 부모라면 프리모 레비의 『멍키스패너』 을 읽어봤으면 한다. <타임> 지 칼럼니스트 버나드 레빈은 이 책의 서평에서 ‘독자들 가운데 공무원이 있다면 이 책을 읽는 내내 불편함을 느낄 것이다’라고 썼다. 자식이 공무원이 되기를 바라는 부모라면 『멍키스패너』를 읽고나서 불편함을 느껴야 한다. 자식의 꿈과 장래희망을 부모의 마음대로 정하고 간섭한다면 직업에 대한 회의감을 느낄 뿐만 아니라 자신의 능력 또한 증오하게 된다. 부모의 그늘이 이제 막 성장하려는 자식의 미래를 가리지 말고, 아이들의 순수한 꿈을 뺏어서는 안 된다. 아이들에게 꿈을 돌려줘야 한다.

 

자신이 하는 일의 의미를 찾지 못한 채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그것은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삶이라고 할 수 없다. 직업을 선택할 때 앞으로의 삶에 대해 그리고 그 삶을 가꾸어가는 방식에 대해 생각을 더하여 ‘진정한 자아실현’에 다가가도록 해야 한다. 제 삶과 직업을 통해 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는 만족스럽고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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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에 새겨진 음악을 해독해야 한다.” (클로드 드뷔시, 롤랑 마뉘엘  『음악의 기쁨 1』  14쪽)

 

감상자의 상태나 기분에 따라서 같은 음악이라도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누구의 무슨 음악'하면 '아! ~이다'라는 식으로 열정이나 뜨거운 뭔가가 느낄 수 있는 음악이 있다. 나는 자연 풍경하면 먼저 드뷔시의 음악이 떠오른다.

 

사실 드뷔시는 원래 화가를 꿈꿨다. ‘음악가 드뷔시’가 아닌 ‘화가 드뷔시’라는 이름이 어색해보이지만, 만약 그가 화가로 활동했다면 인상주의 화가가 되었을 것이다. 인상주의 회화의 열풍을 음악으로 옮겨온 드뷔시는 자연 풍경과 잘 어울리는 음악들을 많이 작곡했다. 인상주의 화가들은 정해진 선이나 색으로 표현하는 것을 거부하고 햇빛에 따라 달라지는 대상이나 화가가 느낀 분위기를 화폭에 담았다. 드뷔시의 음악도 정해진 화성이나 규칙을 따르지 않고 철저하게 작곡가의 감각과 취향을 담아냈다. 단순히 자연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환기’시키는 것이다.

 

기존 음악계의 화성법과 규칙적인 리듬에서 탈피하여 분위기와 순간적인 인상을 자유롭게 표현하고자 했다. 드뷔시는 우리 삶을 스쳐가는 수많은 영상과 규정할 수 없는 모호한 순간의 감정을 음악으로 담아내고자 한다.

 

 

 

 

 

영화 <트와일라잇>에서 인간 소녀 벨라와 뱀파이어 에드워드가 음악에 맞춰 춤을 출 때 흘러나오는 선율은 드뷔시의 ‘달빛’이다. 피아노곡집 ‘베르가마스크 모음곡’ 중 제3곡이다. 마치 부서져 내리는 듯한 달빛의 풍경을 단아한 악상과 인상주의적인 화음으로 표현하고 있으면서도 선율이 아름답다. ‘달빛’은 피아노곡 버전과 관현악 오케스트라 버전이 있는데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피아노곡이다. 몽환적인 밤의 분위기 속에 잔잔한 호수의 파문처럼 피아노의 선율에 따라 달빛의 요정이 수줍은 듯 춤을 추는 느낌이다.

 

 

               

 

 

드뷔시 '바다' 3악장

 

 

드뷔시의 교향시 '바다'는 인상주의 회화풍의 관현악 음악처럼 느껴진다. '바다'를 듣고 있으면 마치 지금 내 눈앞에 거대하면서도 다양한 모습을 감춘 바다가 끝없이 펼쳐져 있는 듯한 기분이다. 무더운 여름날에 듣기 좋은 곡이다. 그는 오케스트라를 붓 삼아 초마다 바뀌는 바다의 색깔과 변화무쌍한 분위기를 아름다운 음악으로 그렸다. 마치 눈앞에서 거대한 바다가 요동치는 듯하다. 그런데 ‘바다’가 탄생되는 과정은 흥미롭다. 실제로 드뷔시는 바다 풍경을 직접 보고 그 느낌을 선율로 옮긴 것이 아니다. 바다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지는 않았지만, 상상 속의 바다를 환상적인 색채감으로 나타냈다.

 

생전에 드뷔시는 자신의 음악이 인상주의와 연관 짓는 평가에 대해서 냉담했다고 한다. 오히려 그는 단지 새로운 음악을 창조했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본인은 강하게 부정하지만,   인상주의 화가들이 화폭에 순수한 색을 즐겨 사용하듯이 음악에 각 악기가 지닌 음색을 최대한 순수하게 담으려고 노력했다. 이렇듯 지극히 회화적이면서도 현대적인 드뷔시의 음악은 신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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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블로 피카소  「화가와 바느질하는 모델」 (발자크  『미지의 걸작』 삽화)  1927년

 

 

화가가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림의 모델은 바느질을 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아주 멋진 초상화가 나올 것이다. 그런데 캔버스에 그려진 그림이 이상하다. 사람의 형체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기괴하다. 불규칙한 곡선과 직선이 실타래가 엉켜져 있듯이 그려져 있는데 얼핏 낙서처럼 보인다. (아니면 추상회화?) 평범한 자세를 취하는 모델에서 화가가 생각하는 아름다움을 표현하기가 힘든걸까? 캔버스에 그려진 낙서는 창작을 위해 고민하는 화가의 심정을 연상시킨다. 그래도 화가의 눈빛은 사뭇 진지하다.

 

 

 

 

 

 

 

 

 

 

 

 

 

 

 

 

이 그림은 피카소가 그린 오노레 드 발자크의 단편소설 『미지의 걸작』에 수록된 삽화 중 하나이다. 판화 방식으로 제작된 삽화는 그림을 그리는데 열중하는 화가와 모델의 모습만 100여 점 정도 제작되었다. 삽화에 나오는 화가는 위대한 명작을 남기기 위해서 집요한 창작욕을 고집한 늙은 화가 프렌호퍼를 모델로 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을 생동감 있는 그림으로 표현하기 위해서 무려 10년 동안이나 제작에 매달린다. 그는 다른 화가에 비해서 '완벽한 예술'을 지향한다. 그가 생각하는 '완벽한 예술'은 그림 속 모델이 살아 숨 쉬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다른 화가의 그림을 지적하는 프렌호퍼의 모습을 통해 '완벽한 예술'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있다.

 

"나는 이 팔과 그림의 바탕 사이에서 여백을 느낄 수가 없네. 공간과 깊이가 결여되어 있어. 그렇지만 멀리서 보면 모든 것이 좋고, 여백의 감정이 정확히 지켜져 있네. 그러나 그토록 칭찬할 만한 노력들에도 불구하고, 이 아름다운 육체에 따뜻한 생명의 숨결이 불어넣어져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네." (발자크  '미지의 걸작' 중에서, 『사라진느』 84~85쪽)

 

그러나 그 누구도 프렌호퍼의 '완벽한 예술'이 온전하게 표현된 그림을 본 적이 없었다. 오직 그가 완벽한 여인의 아름다움을 그리고 있다는 소문만 무성할 뿐이었다. 프렌호퍼는 소문으로만 알려진 그 미지의 그림을 사람들에게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죽기 전에 단 한 번이라도 완벽한 걸작을 최종적으로 완성되고 난 후에 공개하고 싶은 예술가로서의 자의식이 그림 공개를 꺼리게 만든 이유였지만, 한편으로는 그림 속 여인의 아름다움을 자신만의 소유물로 남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림이 어느 정도 완성되었다면 아직 붓이 채 마르지 않은 상태에서 생기는 아우라를 느끼고 싶었을 것이다.  

 

화가가 되기 위해 독학 중인 젊은 니콜라 푸생(17세기 프랑스 고전주의 회화를 대표하는 화가를 발자크가 덜 알려진 화가 지망생으로 설정했다)은 대가의 걸작이 어떤 것인지 무척 궁금했다. 프렌호퍼가 그렇게도 입이 닳도록 강조하던 완벽한 아름다움을 두 눈으로 직접 느끼고 배우고 싶었다. 그래서 푸생은 프렌호퍼에게 한 가지 조건을 제안한다. 자신의 연인인 질레트를 모델로 한 그림을 제작해달라는 부탁과 함께 모델을 소개해준 보상 차원으로 미지의 걸작을 공개하는 것이다. 푸생의 연인 질레트는 빼어난 외모를 지녔기에 아무리 고집이 센 프렌호퍼도 푸생의 제안을 거부할 수 없었다. 결국 프렌호퍼는 미지의 걸작이 보관된 자신의 아틀리에로 초대한다. 푸생은 프렌호퍼의 손에서 탄생된 수많은 작품들에 감탄했지만, 오히려 프렌호퍼는 그동안 제작된 작품들은 그저 습작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이제 드디어 미지의 걸작이 공개되는 순간. 그것은 특별하게 모포로 가려져 있었다. 프렌호퍼는 처음으로 자신이 집요하게 매달렸던 미지의 걸작을 공개했다.

 

그런데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이 있어야 할 캔버스에는 아무 것도 그려져 있지 않았다. 푸생은 프렌호퍼에게 텅 비어 있는 캔버스라고 말했지만, 프렌호퍼는 완벽하고 생동감과 깊이감이 느껴지는 여자의 그림이라고 우긴다. 푸생은 오랜 창작 과정으로 인해 이성을 상실한 프렌호퍼의 모습을 보면서 그에 대한 존경심이 싹 사라지고 말았다. 미지의 걸작이 공개되고 난 후, 프렌호퍼는 아틀리에에 있는 모든 그림들을 불태워버리고 자살을 하고 만다.

 

특이하게도 피카소는 발자크의 소설에 수록되는 삽화를 '화가와 모델'의 모습만 제작했다. 비록 소설의 내용과 직접적으로 관련은 없지만, 여인의 모습이 아닌 낙서 같은 선만 그려 넣는 화가가 프렌호퍼를 상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실 피카소는 삽화 이외에도 줄곧 '화가와 모델' 소재에 의한 그림을 많이 제작했다. 예술가에게 모델은 절대로 없어서는 안 될 인물이다. 모델은 위대한 작품을 낳게 만드는 어머니와 같다. 화가는 아름다운 모델의 모습을 캔버스에 영원히 담으려는 욕망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화가의 길을 걷는 피카소 또한 '화가와 모델'의 관계에 강한 인상을 받았을 수밖에 없었다. 피카소도 프렌호퍼처럼 수많은 데생과 연작을 통해서 위대한 걸작을 하나 남기고 싶은 열망을 지녔을 것이다.

 

발자크는 프렌호퍼의 예술적 광기와 죽음을 통해 완벽한 예술에 대한 집착의 위험성을 강조했다. 프렌호퍼를 '악마적'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광기로 인해 자멸하는 실패한 화가로 묘사한다. 그러나 피카소의 데생에 나오는 젊게 그려진 프렌호퍼는 인간적인 화가의 모습이다. 비록 그가 그린 그림은 형태를 알 수 없는 낙서에 불과하지만, 젊은 프렌호퍼의 시도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피카소가 자신의 연인들인 프랑수아즈와 자클린 등의 모습을 수많은 그림과 데생, 판화로 남겼듯이 말이다. 그래서 피카소는 완벽한 예술을 추구하기 위해 피할 수 없는 화가의 숙명, 즉 창작의 고통을 고독한 열정으로 부각시켰다. 회화를 보는 소설가와 화가의 시점에 확연한 차이가 느껴진다. 푸생은 프렌호퍼의 예술적 광기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피카소는 충분히 공감했을 것이다. 자신이 생각하는 아름다움을 그림으로 완벽하게 구현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창작의 산고 끝에 나온 작품 하나가 냉담한 평가를 받는다면 화가 입장에서는 맥이 풀리고 자신에 대해서 스스로 실망하게 된다. 그러기에 수많은 습작이 이루어진 다음에야 최종적인 작품이 완성된다. 작은 데생에서 습작을 거쳐 완성하는데 걸리는 세월이 족히 일 년이 넘는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화가 입장에서는 창작은 뼈를 깎는 고통 그 자체이다.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단편소설 『깊이에의 강요』에서도 예술에서 말하는 '깊이'에 사로잡혀 비관적인 최후를 맞는 화가가 등장한다. 화가는 만인이 극찬하는 자신의 그림에 깊이가 없다고 했던 한 평론에 신경이 쓰인다. 그녀는 ‘깊이 있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미친 듯이 작업에 몰두하다가 대체 어떤 것이 깊이가 있는 그림인지 알 수가 없어 비관하다 목숨을 끊는다. 그녀가 죽고 난 후, 그 평론가는 관점을 확 바꿔 그녀의 그림에서 깊이를 읽을 수 있다고 말한다.

 

백남준의 ‘예술은 사기다’라는 말의 의미가 새삼 와 닿는 순간이다. 우리는 때론 자신도 모르는 말을 지껄이기도 하고, 능력 밖의 일을 우연하게 성취하기도 하지만 마치 원래부터 본인의 깜냥인 양, 어깨에 힘을 주고 객기를 부린다. 지적인 허영심과 교만에 취한 우리들에게 쥐스킨트는 일침을 가했던 것이다. 쥐스킨트도 예술가를 바라보는 발자크의 시선과 유사하다. 프렌호퍼도 작품의 '깊이'를 아는 척 행동했으나 결국은 그것을 예술로 실현시키지 못했다. 자신이 만든 덫에 걸리고 만 셈이다. 쥐스킨트는 화가뿐만 아니라 그들의 예술을 평가하고 소개하는 평론가마저도 '깊이'라는 의미를 모르는 무지한 직업으로 봤을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깊이' 있는 그림을 그리지 못한 채 극단적인 죽음을 맞이하는 화가의 삶에서 창작의 고통을 이겨내지 못한 예술가의 고독과 연민이 느껴진다.

 

진정한 예술은 예술가의 죽음 뒤에 비로소 평가받는다고 한다. 그러나 창작의 고통을 처절하게 느끼다가 세상을 떠난 예술가들은 이 말에 씁쓸하게 느낄 것이다. 우리는 그들이 겪었던 창작의 산고보다는 오랜 진통 끝에 나온 작품의 결과물만 기억하고 있다. 억 소리가 날 정도로 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이 된 반 고흐의 작품은 처음에 제작될 당시에는 그 누구도 구입하려는 사람도 없었다. 생전에 고흐는 수천 점이나 남긴 그림들 중에 단 한 점만 팔았을 정도로 실패한 화가에 불과했다. 동생 테오와 몇 몇 지인들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고흐의 그림을 이해하지 못했고, 어설픈 수준의 그림으로만 생각했다. 끊임없이 불타오르게 만드는 창작 욕구는 고흐의 몸과 마음을 피폐하게 만들었지만, 화가로서의 자의식과 고집으로 버티면서 작품을 완성해나갔다. 작품이 하나씩 완성될수록 고흐의 정신은 이미 지칠 대로 지쳐버렸다. 그래서 외로운 고흐는 미친 사람 소리를 들을 수밖에. 생전에 고흐가 그림을 그리는 내내 고통에 겨워 외치는 고흐의 절규를 들어 본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있을까? 그림이 재벌을 위한 값비싼 상품이 된 요즘, 그림이 탄생되기까지 화가가 겪는 심정은 ‘0’이 무수히 많은 가격표에 의해 가려지고 말았다.  예술가는 살아서도 죽어서도 영원히 고통 받는다. 이제는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라는 명언에 ‘고통도 길다’라는 말도 추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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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cene #1  음악가는 어떻게 고독해지는가

 

 

 

 

 

 

 

 

 

 

 

 

 

 

 

 

백아는 거문고의 달인이었다. 그는 유독 친구인 종자기에게 연주를 들려주는 것을 즐겼다. 어느 날 종자기를 곁에 두고 금을 연주하며 속으로는 높은 산을 생각하고 있는데, 음악을 듣고 있던 종자기가 이렇게 중얼거렸다. "태산처럼 높구나!" 이에 백아가 이번에는 넓은 강를 그리며 금을 타니 종자기가 "황하처럼 넓구나!" 라고 맞장구쳤다. 백아의 거문고 연주는 가장 높은 태산과 가장 넓은 황하에 비견될 만큼 훌륭하다고 칭찬한 것이다. 종자기는 백아가 무엇을 노래할는지를 잘 알고 감상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고, 진정으로 백아의 음악을 이해해 주는 유일한 벗이었다.

 

그러나 종자기가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만다. 백아는 너무 슬프고 절망한 나머지 그렇게 애지중지하던 거문고의 줄을 끊어 버리고, 며칠 동안 식음을 전폐하면서 친구의 죽음을 애도했다. 그리고 세상을 떠날 때까지 다시는 거문고를 켜지 않았다. 자신의 음악을 알아주는 이가 세상에 없으니, 더 이상 계속할 의미가 없었던 것이다.

 

백아절현(伯牙絶絃). 백아와 종지기의 아름답고 슬픈 우정을 의미한다. 눈빛만 보아도 마음을 읽어내고 영혼을 읽어내는 사람, 자신을 잘 알고 자신에게 믿음과 존중을 주는 그런 사람과의 만남이 중요하다.

 

인간에게는 누구나,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타인으로부터 애정과 인정을 받으려는 뿌리 깊은 욕구가 있다. 이러한 욕구는 원초적인 욕구라고 할 수 있다. 음악가들은 일반인보다 욕구가 강할 것이다. 그럴듯한 작품을 만들기 위해 수많은 악보를 찢고 버려야 하고, 엄청난 시간과 노력 끝에 만든 음악이 대중으로부터 냉담한 반응을 받으면 스트레스를 받는다. 음악의 길을 걷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오죽했으면 쇤베르크는 이런 에세이를 썼겠는가. ‘어떻게 사람은 고독해지는가’ 제목에서 쇤베르크의 심정이 느껴진다. 쇤베르크는 당시로선 파격적인 형식으로 무조음악, 12조 기법으로 이루어진 음악을 만들었다. 고전적 음악에 익숙해진 대중으로부터 냉담한 외면을 받아야했다. 자신의 음악을 환호해주지 않으니 고독해질 수밖에. 쇤베르크는 자신의 음악에 대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나의 음악은 난해한 것이 아니라 연주가 잘못된 것이다.” 자신의 음악을 이해하지 못한 세상을 디스(diss)하는 동시에 예술가로서의 자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Scene #2  콘트라베이스는 유일한 자존심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콘트라베이스』의 주인공 베이스주자 역시 세상이 알아주지 않는 외로운 음악가이다. 베이스는 외로운 악기다. 뒤에서 묵묵히 저음을 만들어 주는 게 주 역할이다. 현악기 가운데 가장 낮은 소리를 내는 콘트라베이스는 오케스트라의 오른쪽 가장자리에 자리한다. 높은 의자에 앉아야만 연주가 가능한 큰 덩치와 굵직한 저음으로 현악기가 가지는 여성스러운 이미지에 두드러진 남성성을 얹어놓은 콘트라베이스는 그런 특징 때문에 오케스트라의 주변부로 밀려나 있는 듯한 인상을 주기도 한다. 음질은 어둡고 분명치가 않지만 앙상블에서는 묵직한 하모니를 형성하는 불가결한 음원이다. 음악연주 무대에서 스포트라이트는커녕 관객 누구의 시선도 받지 못하는 연주자의 기분은 어떨까.

 

콘트라베이스는 ‘우울’ 그 자체다. 어쩔 수 없이 베이스주자가 된 주인공은 자신의 분신인 베이스를 사랑하면서도 한편으론 경멸한다. 주인공은 자신과 악기에 대해 큰 자부심을 갖고 있으나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시시한 존재임을 스스로 잘 안다. 무대 위에서는 스타의 들러리이며 무대 아래에서도 마찬가지 인생임을 모를 리 없다.

 

음악을 완성하기 위해 손이 부르트도록 연주하지만 관객의 박수갈채에서는 늘 소외된다. 그늘에 가려진 그는 메조소프라노 성악가 사라를 사랑한다. 하지만 그녀가 알아차리기엔 그의 존재감이 너무 약하다.

 

게다가 사라는 유명한 테너가수의 식사초대를 받아 값비싼 생선요리를 먹으러 다니는 도도한 여자. 이제 그는 자신의 존재와 사랑을 그녀에게 알리기 위한 고육지책을 마련한다. 대통령을 비롯한 유명 인사들이 지켜보는 연주무대에서 그녀의 이름을 크게 부르려는 것이다. 모노드라마는 여기서 끝난다. 슈베르트가 제2 바이올린 대신 콘트라베이스를 넣어 저음부를 강화한 피아노5중주 ‘송어’ 1악장이 흐른다. 극의 마지막 장면은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주인공은 쓸쓸하게 퇴장하지만 슈베르트의 ‘송어’을 선곡함으로써 콘트라베이스에 대한 각별한 애정과 자부심이 여전하다는 것을 관객에게 보여주고 있다. 인생은 실패했을지 몰라도, 콘트라베이스와 함께했던 음악은 그의 유일한 자존심이자 삶의 일부이다. 그는 아직 고독과의 싸움에서 패배한 것이 아니다. 이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음악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보여줘야 한다. 분신이나 다름없는 콘트라베이스를 완전히 포기한다면 그는 실패한 음악가 아니 인생의 패배자가 되고 말 것이다.

 

 


 Scene #3  음악으로 삶의 고통을 치유하다  

 

 

 

 

 

 

 

 

 

 

 

 

 

 

 

 

 

쇤베르크와 콘트라베이스 주자보다 더 불운한 음악가 한 명을 소개해본다. 헤르만 헤세의 『게르트루트』의 주인공 쿤이다. 어린 시절, 불행한 사고를 겪어 한쪽 다리가 불편한 불구의 몸이 되고 만다. 게다가 처음으로 짝사랑하는 여자를 만나 고백을 해보지만 씁쓸하게 실패한다. 쿤은 온갖 상처와 배신을 겪지만 악기를 연주하는 것이 좋아했고, 음악으로 고독을 달랜다. 결국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음악가의 길을 걷게 된다. 무명 작곡가였던 쿤은 우연히 당시 최고의 명가수 하인리히 무오트의 눈에 띄게 되어 촉망받는 작곡가로 인정받기 시작한다. 음악 연주를 하는 시간이 많아졌고, 주변에 새로운 사람들이 늘어만 갔다.

 

그러나 쿤은 이러한 삶에 불편함을 느끼기 시작한다. 명예와 부를 얻기 위한 음악은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쿤에게 음악은 불행한 자신을 절망의 늪으로 빠뜨리지 않게 만들고 기쁨과 행복을 선사해준 유일한 친구였다. 더욱이 자신의 음악을 높이 평가해주는 무오트의 성격이 못마땅했다. 무오트는 말 그대로 음악을 직업 삼아 명예를 먹고 사는 사람이었다. 음악은 그저 단지 자신의 이름을 드높여주고, 주변에 수많은 여자들을 오게 만드는 화려한 선율일 뿐이다. 음악이 사람을 행복하게 만든다는 쿤의 예술과 상반되는 예술가이다. 그래도 쿤은 여자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음악으로 인정을 받는 무오트를 부러워한다. 심지어 그의 삶을 동경하기도 한다. 사실 무오트가 자신이 만든 가곡과 오페라를 부르지 않았다면, 여전히 무명 음악가로 활동했을 것이다. 얄궂게도 무오트는 쿤의 음악적 단점과 결함을 극복해줄 수 있고, 그의 음악을 인정해준 유일한 지음(知音)이다. 

 

쿤이 음악을 통해 자신의 결점을 잊고 위안을 얻으려는 예술가형이라면 무오트는 음악으로 사람들로부터 명예를 얻는 예술가였다. 여자들과의 관계가 복잡하고, 어디로 튈지 모를 정도로 불 같이 화내는 성격이 인간으로서의 무오트에게 흠은 있었지만, 가수(음악가)로서의 무오트는 완벽함 그 자체였다. 무오트가 승승장구하고 있는 반면, 불행한 운명은 계속 쿤의 발목을 잡기만 한다.

 

쿤은 소프라노를 담당하는 게르트루트와 사랑에 빠지게 되는데 그녀를 위한 노래를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그 노래는 게르트루트를 향한 세레나데가 될 수 없었다. 쿤이 만든 오페라를 무오트와 게르트루트가 남녀 주인공으로 배역을 맡아 함께 부르기로 한 것이다. 세레나데의 주인공이 엉뚱하게 무오트가 끼어든 셈이다. 결국 게르트루트는 무오트와 결혼을 하고 만다. 그녀는 성공의 정점에 오른 무오트와의 결혼이 더할 나위 없는 행복한 삶을 살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쿤은 또 한 번 인생의 쓴 맛을 경험한다. 그러나 이미 인생의 쓴 맛을 경험하고 산전수전 다 겪어 본 쿤은 음악을 통해 마음의 상처를 잊고, 작곡가로서의 본분을 잊지 않는다.

 

‘강한 자가 오래가는 것이 아니라 오래가는 것이 강한 자’라는 말이 있듯이 고독과 고통을 오랫동안 음악으로 승화시킨 쿤이 인생의 승리자가 된다. 무오트와 게르트루트는 파혼을 맞게 되고, 첫 번째 결혼 생활의 실패에 크게 낙담한 무오트는 자살한다. 게르트루트가 떠나간 빈자리에 한꺼번에 밀려오는 고독과 외로움을 무오트는 견디지 못했다. 무오트는 애초에 외로움을 잘 타는 인물이다. 인기 가수로서의 삶 뒤에는 어두운 고독의 그림자가 늘 따라왔지만, 쿤을 제외한 무오트와 주변 사람들은 그것을 미처 발견하지 못했다. 아니 쿤은 고독의 그림자를 자신의 곁에 다가오는 것을 알면서도 애써 모르는 척했다. 고독한 삶을 위로해주는 음악의 힘을 인정하는 것은 곧 무오트 자신 또한 고독을 느끼고 있음을 스스로 고백하는 것과 같다. 결국 무오트는 음악으로서 고독을 이겨내는 방법을 모를 수밖에 없었다. 

 


 Scene #4  “백아여, 그 거문고 줄을 끊지 말게”

 

외로움에는 동전처럼 양면성이 있다. 인간은 홀로 걸어가야 하는 고독한 존재다. 인생은 홀로 왔다가 이 세상을 떠날 때도 홀로 세상을 떠나간다. 외로움은 운명적으로 감당해야 하는 인간의 조건이다. 고독은 새로운 창조와 작품을 완성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우리는 백아가 종자기에 세상을 떠난 후에 거문고 연주를 하지 않았는지 알 수 없다. 친구를 애도하기 위해, 그리고 자신의 재능을 알아주는 친구의 상실감을 견디지 못해 백아는 거문고 줄을 끊어버렸다. 우리는 그런 백아의 모습을 통해 진정한 우정의 자세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백아의 모습을 이해할 수 없다. 아니 그의 극단적인 행동이 아쉽기만 하다. 자신의 음악을 알아주는 친구의 공백이 클수록 외로움과 마음의 상처 또한 클 것이다. 이해한다. 하지만 하늘에 있는 종자기가 과연 자신 때문에 거문고를 끊어버린 백아의 행동을 좋아할까. “백아여, 그 거문고 줄을 끊지 말게”라고 말하면서 재능 있는 친구의 행동에 안타깝게 여겼을 것이다. 진정한 지음이라면 아름다운 거문고 소리가 멈추지 않기를 바랐을 것이다.

 

우리 주변에는 위대한 음악가, 문학가, 미술가, 학자, 종교인들은 공통적으로 오랜 고독의 시간 속에서 그들의 창조적 업적과 자기 성찰을 이루어 낸 사람들이 많다. 외로움은 고립도 아니고 소외도 아니고 불행도 아니다. 외로움은 새로운 창조와 자기완성을 위한 또 하나의 성찰이다. 외롭다고 슬퍼하지 말고 외로움은 즐겨야 한다. 특히 음악하는 사람들은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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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슬픈 편지가 무엇일까. 사랑하는 사람에게 부치지 못한 채 서랍 한쪽 구석에 보관된 편지도 있을 것이고, 이 세상에 없는 사람에게 부치는 편지도 있다. 편지라고 해서 꼭 편지지에 쓰라는 법은 없다. 가끔 누군가에게 책 선물을 할 때 하얀 속종이가 편지지가 되기도 한다.

 

감성의 분위기가 한창 무르익을 때 사랑하는 이성에게 주는 책에 편지를 쓰는 것은 무척 낭만적이다. 책을 받는 사람에게는 절대로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게 된다. 그런데 낭만적인 분위기를 연출할 때 책에 편지 쓰는 것은 좋지만, 분위기를 파악해야 한다. 책을 깨끗하게 읽고 보관하는 성격의 사람이라면 선물 받은 책에 누군가의 글씨체가 있으면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다. 책 편지를 쓰기 전에 상대방이 책을 다루는 습성은 알고 있어야 한다. 편지를 쓰고 싶다면 차라리 속종이에 쓰는 것보다는 작은 엽서나 편지지에 써서 책 사이에 끼워 넣는 것이 낫다. 

 

중요한 편지가 아닌 이상 오래 보관하기 힘들다. 보관할 곳이 마땅치 않으면 정성껏 쓴 편지도 슬프게 쓰레기통으로 향하는 경우도 있다. 책 편지는 책 속에 적힌 글이기 때문에 쓰레기통으로 직행할 가능성은 없지만, 문제는 책이 오래 보관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책은 헌책방에 팔 수 있다. 헌책방에 가면 속종이에 편지가 적힌 책을 가끔 발견한다. 책을 팔기 전에 편지를 확인했을까? 오랜 세월이 지나서 책 속에 적힌 편지를 기억 못한 채 팔 수 있다. 그리고 책 선물을 준 사람을 잊기 위해서 일부러 헌책방에 파는 것일 수도... 그래서 헌책방에 이런 책 편지를 보게 되면 꼼꼼하게 읽어본다. 편지 속에 숨겨진 사연이 무척 궁금하다. 책을 알고 있을 것이다. 자신의 몸속에 편지를 쓴 사람이, 그리고 그 편지를 읽은 사람이 누군지를.

 

만약에 헌책방에서 우연히 자신이 쓴 편지가 적힌 책을 발견하면 어떤 심정일까? 과거에 썼던 편지가 오랜만에 보게 되면 감회가 새로울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기분이 씁쓸할 것이다. 아무리 책을 보관하기 힘들고, 안 읽는다 하더라도 누군가에게 받은 책 선물을 쉽게 파는 것은 주는 사람 입장에서는 예의에 어긋난 행동이 될 수 있다. 작년에 도올 김용옥 선생이 홍준표 의원에게 선물했던 책이 헌책방이 발견돼 홍 의원이 사과한 적이 있었다. 그 문제의 책이 하필 도올 선생이 쓴 『동경대전』이었다. 속표지에 도올 선생의 친필 사인과 ‘홍준표 의원님께’라는 글씨가 있어서 딱 걸리고 만 것이다.

 

책의 전 주인에 관한 기록이 편지로 선명하게 남아 있어서 아무리 책의 내용이 좋아도 선뜻 구입하기가 망설여진다. 도올 선생의 책처럼 유명 인사의 사인이 있다거나 역사적으로 가치가 있을법한 유명 인사의 편지가 적혀 있다면 몰라도 남이 쓴 편지가 내가 읽어야 할 책에 있다는 것은 영 탐탁치가 않다.

 

나는 편지가 적힌 책이 보존 상태가 만족스러우면 사는 편이다. 원래 책을 사기 전에 편지가 적혀 있는지 확인하는데 가끔 그걸 미처 확인하지 못할 때가 있다. 그래도 책의 전 주인의 흔적이 있다고 해도 괜히 편지가 적힌 부분을 오려내는 일은 하지 않는다. 어차피 책은 한 사람의 주인 곁에 오래 있거나 아니면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서 헌책방에 전전하는 운명, 그 둘 중 하나이다. 헌책방에서 책을 구입하는데 있어서 책 편지에 크게 개의치 않는다.

 

오히려 편지 속 내용을 보면 감탄하게 된다. 오랜 세월이 지나도 감성이 느껴지는 시적 문장은 빛난다. 왜 이런 좋은 내용의 편지가 적힌 책을 파는지 이해가 안 간다. 그리고 괜히 내가 그 편지를 쓴 무명인의 심정처럼 씁쓸하고 약간의 슬픈 감정도 느낀다.  내가 발견한 책 편지들은 사랑하는 이성에게 보내는 연애편지 같다. 

 

올해 초에 서울 청계천 헌책방에서 『실비아 플라스의 일기』를 구입했는데 뜻밖에도 속표지에 짧지 않은 편지가 적힌 것을 발견했다.

 

 

 

 

 

‘승희’라는 이름의 여자에게 보낸 편지다. 문장으로 봐서는 필체가 상당한 걸로 보인다. 글씨도 무척 잘 쓴다. 내용으로 봐서는 승희는 어느 남자에게 음악 CD를 선물로 줬다. 승희는 솔로 가수가 아닌 여성 그룹의 멤버이며 2004년에 정식 데뷔했다. 그에 대한 보답으로 남자는 이 책을 선물했다. 아마도 마음속으로 사랑했던 여자였는데 가수가 되어서 상경했을 것이다. 남자 입장에서는 그녀의 성공이 기쁘고 자랑스럽겠지만 이루지 못한 사랑에 씁쓸함을 지울 수 없다. ‘삶은 어쩔 수 없는 비극인가 보다’라는 문장에서 짝사랑으로 끝나버린 어느 남자의 슬픈 비극이 연상된다. 결국 그녀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사랑해’ 대신에 ‘행복해라’ 밖에 없다.


남성은 승희에게 고독하면 행복할 수 있다고 전한다. 무슨 의미일까? 참으로 역설적인 표현이다. 고독과 행복은 함께 공존한다...?  이 편지 속 사연이 무척 궁금하게 만드는 수수께끼 같은 표현이다. 10년이 지난 책 편지는 지나간 추억이 되어 망각의 감옥에 갇혀버리고 말았다. 그걸 또 내가 영영 오랫동안 잊힐 뻔했던 망각의 감옥에서 구출한 것이다. 과연 승희는 어떤 가수였을까? 아마도 승희는 본명일 수도 있겠다.

 

지난주에 내가 자주 다니는 헌책방에서 책 편지가 있는 책을 구입했다. 이번에는 정현종 시인의 시집 『나는 별 아저씨』다. 이 시집이 출간된 지 꽤 오래됐고, 편지 또한 지금으로부터 21년 전에 기록된 것이다.

 

 

 

 

 

시집에 걸맞은 한 편의 시 같은 편지다. 편지를 쓴 사람은 평소에 시집을 많이 읽고, 좋아했다. 그래도 자신은 시를 잘 알지 못한다고 겸손의 표현을 썼다. 생일선물로 시집을 줬는데 시를 읽으면서 마음의 여유를 느낄 것을 권한다. 참으로 좋은 편지 내용이다. 문장 속에 삶의 여유가 살짝 묻어있다. 1993년에 편지를 쓴 사람은 지금도 어디선가 변함없이 시를 즐겨 읽고, 그 시간을 통해 여유를 느끼면서 잘 지내고 있을까? 누군지 몰라도 이런 편지가 무척 고맙다. ‘객관적 상황이 열악하더라도 가슴 속에도 많은 여유가 찾아들기를 바란다’ 남이 쓴 편지는 전혀 관련 없는 다른 사람에게 삶에 힘을 불어넣는 좋은 메시지가 되기도 한다. 시집에 있는 편지 덕분에 삶의 여유의 가치를 느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21년 전에 쓴 편지가 시간을 초월해서 한 번도 만나지 않은 사람이 읽게 되는 이 운명적인 만남. 이런 편지 한 통이 과거와 현재를 ‘감성적 공감’이라는 무언의 감정으로 연결될 때가 있다. 이래서 사는 게 참 재미있고 신기한 일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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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4-05-28 1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캬~! 어떻게 도올 선생은 자기 책이 헌책방에서 딱걸렸을까?ㅎ
이 페이퍼 승희라는 가수한테 딱 걸리는 거 아닐까?
이맛에 헌책방을 다니기도 하겠지?
그런데 바로 이점 때문에 책에 자기 서명이나 인삿말이 들어가는 게 조심스러워져.
책선물에 밋밋하게 그냥 주기도 뭐하고.
나도 요즘 헌책방에 책을 내다 팔곤하는데
저자 사인본은 차마 못 팔겠더라.
특별히 내가 좋아하는 작가는 아니지만 팔자니 그렇고, 안 팔자니 그렇고...
그래도 가지고 있는 편이 낫지 않을까 싶어 간직하고 있다만.ㅠ
그런데 진짜 저 준호라는 사람 글 잘 쓴다. ㅎ

cyrus 2014-05-28 22:43   좋아요 0 | URL
제가 아는 가수 중에 '승희'라는 이름은 없는 것 같아요. 설마 이런 조용한 블로그를 보겠어요? ㅎㅎㅎ 저는 사인본은 절대로 팔지 않아요. 저자의 사인이 있는 책은 보통 책보다 가치가 높고, 특별하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