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오래 전부터 자연에서 얻은 물질을 치료에 이용해왔다. 현재까지 많은 의약품들이 식물체로부터 얻어지고 있다. 말라리아 치료제인 퀴닌은 키나나무에서, 진통제인 모르핀은 양귀비 열매에서, 마취제로 쓰이는 코카인은 코카나무에서 추출됐다. 하지만 모르핀, 코카인은 의학용이라기보다는 심각한 중독 증상이 나타나는 마약으로 분류하고 있다.

 

코카인은 스트레스 호르몬인 아드레날린과 노르아드레날린과 비슷한 효과를 나타내며, 심장 박동수와 혈압을 높인다. 또 도파민을 신경전달물질로 사용하는 뇌의 영역에 영향을 미친다. 특히 도파민이 전기신호를 전달한 뒤 다시 시냅스에 받아들여지지 않도록 막아 흥분상태가 이어지도록 한다.

 

코카인은 체내에서 급속히 분해되기 때문에 약효가 신속한 대신 지속시간이 짧다. 적절량을 사용하면 힘이 넘치고 피로감을 느끼지 못하는 등 쾌락적인 흥분과 환각 경험을 갖게 되지만, 과량 흡입하면 불안, 구역질, 구토 등을 일으키고 나아가 심장마비나 호흡정지 등으로 사망할 수도 있다.

 

코카인의 특이한 독성작용 중에는 ‘Coke Bugs’라는 것이 있는데 이는 피부 속에 벌레들이 떼 지어 기어 다니는 듯한 환상이 일어나는 현상을 말한다. 이 현상이 일어나면 벌레를 잡기 위해 피부를 마구 긁어 몸이 상처투성이가 된다.

 

이렇듯 코카인의 해로움은 의학적으로 증명되었으나 코카인을 합법화하는 나라 및 지역이 남아 있다. 그들은 코카인은 몸에 좋은 약물이라고 주장한다. 코카인은 남아메리카의 코카나무 이파리에서 추출하는데, 잉카문명에서 이미 약초로 쓰였다. 잉카인들은 코카 잎을 씹으면 피로와 졸음을 쫓아주고 고된 노동의 고통을 완화해 준다고 믿었다. 1855년에 코카인이 처음으로 코카 잎에서 분리 추출되는 방법이 발견되면서 마취제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지금도 잉카인의 후예들이 사는 볼리비아에 코카 잎을 사용하는 전통이 남아있다. 그들은 코카나무에서 추출하는 물질을 ‘코카인’이라고 부르지 않고 ‘코카’라고 부른다. 코카 잎을 많이 생산하는 나라인 볼리비아는 코카 잎으로 만든 에너지 음료를 만들어 팔기도 한다. 볼리비아는 2006년부터 코카 재배농 출신 대통령인 에보 모랄레스가 코카 재배 양성화 정책을 추진하여 미국과 갈등을 빚은 적이 있었다. 미국 정부는 볼리비아 정부의 코카 재배 양성화 정책이 마약류인 코카인 생산을 늘리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우려한다.

 

 

 

 

 

 

 

 

 

 

 

 

 

 

 

 

코카인의 해로운 영향이 공식적으로 밝혀지게 된 시기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오히려 코카인에 대한 경계가 느슨했다. 19세기 중반 인기 음료엔 코카인이 버젓이 들어 있었고, 미국의 존 팸버튼이 1886년 첫 선을 보인 이후 20여 년간 코카콜라에 이 중독성 물질이 함유됐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프로이트는 5년간 코카인을 규칙적으로 흡입하면서 “중독성 없이 지속적 행복감을 제공한다”는 예찬과 함께 주변에 권하기도 했다.

 

20세기 들어와서 코카 재배 근절이 하나의 국제적 정책으로 대두되기 시작하면서, 코카인은 건강에 해로운 마약으로 인정받는다. 그런데 문제는 오래전부터 코카를 피로회복제로 이용했고, ‘신의 불로초’라 여긴 잉카인의 코카 숭배 문화가 코카인 생산을 부추기는 사회악의 원인으로 지적받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1970년대까지 잉카인들이 사용하는 코카 성분에 대해 과학적 입증이 밝혀지지 않았다. 코카 잎에서 코카 성분을 추출하는 방법은 알았지만, 정작 코카 원료의 정체를 알지 못했다.  

 

 

 

 

 

 

 

 

 

 

 

 

 

 

 

 

웨이드 데이비스는 『웨이파인더』(정은문고, 2014년)에 코카의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안데스 산맥을 탐사하는 여정을 소개하는데 남아메리카 지역에 나오는 코카가 단지 마약으로 사용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데이비스는 코카의 영양학적 연구를 실시한 결과, 유해한 물질임을 밝혀낸다. 코카 잎에서 나오는 효소는 탄수화물을 소화시키는 능력을 높여주는데 안데스 지역의 감자 위주 식단에 아주 적합하다. 그리고 비타민과 칼슘 성분도 포함될 정도로 영양학적 가치가 높다. 잉카인들이 씹는 소량의 코카 잎에 0.5~1%의 알칼로이드 성분이 들어있는데 인체에 무해하다. 그래서 잉카인들이 코카에 중독되지 않은 것이다.

 

코카인이 위험한 마약이라고 해서 코카를 즐겨 사용했던 잉카 전통 문화를 ‘최악의 문화’로 보는 것은 왜곡된 편견에서 비롯된 문화적 차별이다. 그들의 신성한 식물을 함부로 사용한 진짜 주범은 무기를 앞세워 타 민족의 문화를 파괴한 근대의 문명인이었다.

 

 

 

 

 

 

 

 

 

 

 

 

 

 

 

 

 

잘못 알려진 음식, 건강, 환경 관련 분야 상식을 소개하는 제임스 콜만의 『내추럴리 데인저러스』 (다산초당, 2008년)에 코카인에 대한 불편한 진실을 짤막하게 소개하고 있는데 잉카 제국을 침략한 스페인 정복자들은 이미 코카인의 효능을 알고 있었다. 스페인 정복자들은 잉카인들을 금광으로 끌고 가 강제 노동을 시키면서 코카인을 사용하게 했다. 금을 캐려면 엄청난 노동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금광에 투입된 잉카인들은 평소보다 많은 코카인을 강제로 먹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잉카인들은 제대로 쉬지 못한 채 금을 캤을 것이며 코카인을 과다 복용하는 바람에 그 많은 잉카인들을 사망케 한 원인으로 볼 수 있다.

 

마약은 인류가 발견해 낸 물질 중 가장 신비스럽고 귀한 물질임에는 틀림없다. 죽어 가는 사람도 살려 내는 신통력이 있는가 하면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제공하기도 하고 심각한 질병을 앓아 수술할 때에는 없어서는 안 될 물질이다. 

 

이처럼 마약이 의학적으로 적정한 용도로만 사용된다면 신비의 묘약이라 하지 않을 수 없으나 확산을 우려하는 이유는 마약류가 지니는 엄청난 파괴력 때문이다. 마약류의 남용은 개인에게는 신체적, 정신적, 가정적 파괴를 사회적으로는 각종 범죄와 혼란을 일으킨다. 중독은 특정한 자극물을 사용하면 만족감을 얻기 때문에 이러한 자극이 지속적으로 반복되길 원하게 되고 또 사용을 중단하면 불쾌한 기분과 금단 증상을 경험하게 되어 신체적, 정신적으로 자극물에 의존하게 된다.

 

특히 마약이 사용되기 시작하는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면 진보라는 환상에 취하고, 끊임없는 발전에 만족하지 못해 탐욕스러워진 문명인이 이 위험한 약을 만들었다. 결국 마약은 문화제국주의 시대가 낳은 잘못된 근대적 발명품 중 하나다. 지금까지도 문명의 혜택을 받고 자란 현대인은 잘못된 역사적 진실을 믿으면서 아무 죄도 없는 타 민족 문화를 오해하고 무시한다. 그리고 이 근대적 발명품의 위험성을 알면서도 중독의 늪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다. 코카 잎을 씹는 잉카족과 코카인에 중독된 문명인 중에 과연 누가 더 야만스러운가?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자연의 지혜가 깃들어진 문화를 멸시하고, 가차없이 짓밟고 심지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악용하는 문명인이야말로 야만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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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문고 2014-09-01 1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리뷰 고맙습니다.
 

 

 

 Scene #1  수학은 공부할수록 더 어려워질까? 

 

어렸을 때 수학을 좋아했는데 점점 싫어하게 되는 아이들이 많다. 고등학생이 되면 ‘수포자(수학 포기자)’라는 말도 곧잘 듣게 된다. 수학은 대입 수능시험에서 입시의 당락을 좌우하기에 사교육을 가장 많이 받고 있는 과목 중 하나. 혼자 공부하면서 느끼는 막연함과 단순암기식의 잘못된 공부 방법 때문에 어려움을 느낀다.

 

나도 고등학생 3년 동안 '수포자'였다. 1학년 때부터 열심히 공부해봤지만, 성적이 영 신통치 않아서 점점 싫어하고, 포기하게 된 유형이다. 그래도 수학 공부를 위해 투자한 시간은 많았다. 수학 성적만큼은 잘 받고 싶어서 수업이 끝나도 수학 선생님 졸졸 따라다니면서 모르는 문제가 있으면 여쭤보고, 다른 과목에 비해 수학 공부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집중했다. 수학이 내신 성적과 입시 성적에 절대적으로 비중이 큰 과목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년간 이어진 수학과의 싸움은 완전한 패배로 허무하게 종결되었다. 수능시험에서 27점이라는 최악의 점수를 받고 말았다. 고등학생 3년 동안 치러진 모의고사 수학 성적과 통틀어 비고하면 너무 낮은 점수였다. 모의고사 때 평균적으로 수학 성적은 50점 중반 때 받곤 했다. 성적이 좋으면 60점 조금 넘었고. 제일 낮은 점수를 받아도 30점 이하로 받은 적이 없었다. 거의 7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지만 수학에 대한 학창시절을 또렷하게 기억한다. 왜냐하면 수학을 정말 열심히 공부했으니까. 친구들이나 선생님들이 "너는 정말 열심히 공부했으니까 분명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을 거야."라는 희망적인 말을 들을 정도로 수학 성적에 대한 기대감이 컸다. 그래서 지금도 그 때 수학 공부를 한창 하던 시절을 생각하면 그리우면서도 아쉬울 때가 많다.

 

모든 사람들이 수학을 좋아해야 하는 법은 없지만, 잘못된 지도로 인해 수학적 흥미를 잃게 되는 아이들이 많아 안타깝다. 수학은 '문제를 풀어야 하는 과목'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 문제를 풀기 위해서 수많은 수학 공식을 암기해야 한다. 수학 공식을 외우고 문제를 푸는 단순한 교육 방식을 어려워한다. 배우는 양을 많아지고, 내용은 전체적으로 이해하지 못해 수업을 따라가지 못한다. 수학 공부가 싫어서 대학 진학을 인문계열로 선택하는 경우도 많다. 수학을 좋아한다고 선뜻 말하는 학생들이 많이 없다. 

 

그런데 국내 학생들의 수학 성취도는 42개국 가운데 1, 2위를 할 만큼 성적이 좋은데도 자신감과 흥미에 있어서는 최하위에 머물고 있다. 또 수학을 잘한다고 해도, 수학자의 길을 가는 학생도 많지 않다. 우리나라는 2012년 열린 국제수학올림피아드에서 사상 처음으로 우승했는데 대표팀이었던 학생 5명 가운데 3명은 졸업 후 의대로 진학할 정도다.
 
수학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다들 "수학 같은 거 배워서 어디에 써먹느냐?"며 아무 쓸모없다고 투덜댄다. 수학은 우리 삶에 쓸모도 없이 괜히 어렵게 만들어져 시험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일까? 그렇게 오랜 세월을 전 세계의 사람들이 쓸모없는 학문을 위해서 시간을 쓰고 개발을 하고 공을 들여온 것이라면 참으로 슬픈 일이다.

 

 

 

 Scene #2  수학은 예술처럼 아름답다   

 

수학을 왜 배우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수학은 정말 필요하고 고마운 과목이다. 수학 문제를 풀려고 고민하면 논리적인 사고력과 문제 해결력이 늘게 되어 있다. 그런데 학교에서 배우는 수학은 정말 재미없다. 수학을 무조건 다 이해를 할 때까지 시키고 또 시키면 질려버린다. 수학은 처음부터 완전히 독립적으로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학문이 아니다. 고민하고 생각하면서 문제를 해결하는 학문이다. 수학 문제를 풀려고 고민하면 논리적인 사고력과 문제 해결력이 늘게 되는데, 우리나라 수학 교육은 그러한 시간이 너무나도 부족하다. 안 풀리는 문제와 씨름해야 할 상황에 배워야 할 내용은 점점 많아진다. 수학을 좋아할 만한 시간과 기회가 없다.

 

'수포자'라고 생각하는 아이들은 이구동성 말할 것이다. 우리나라 수학은 너무 어렵고, 재미없다고. 어른들은 수학을 포기하는 아이들의 심정이 공부하기 싫은 마음에서 비롯된 게으른 변명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수학자 고드프레이 해럴드 하디라면 우리 수포자들의 절망적인 심정을 충분히 이해했을 것이다. 하디는 수학자로서의 길을 걷기 전까지만 해도 수학을 경쟁적인 학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도 수학자가 되기 전까지 여러 번의 수학 시험을 거쳤다. 그러다가 평소 가르침을 받던 수학교수가 추천한 수학책 한 권 때문에 수학의 진짜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하디는 교수가 추천한 조르당의 『해석학 교정』을 읽으면서 수학에 대한 순수한 열정을 느끼게 된다.

 

하디는 수학은 아름다운 것이어야 하고, 그런 의미에서 수학은 미술이나 음악, 시와 본질적으로는 같다고 말한다. 이것이 바로 하디가 예찬하는 순수 수학이다. 하디는 수학을 순수 수학(참된 수학)과 응용 수학(사소한 수학)으로 구분하는데 실용성에만 중점을 두는 응용 수학을 비판한다. 그의 주장에 수학의 실용성을 예견하지 못한 한계가 있고, 지나치게 순수 수학을 일방적으로 옹호하는 측면이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수학이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을까? 사실 하디가 강조하는 수학적 아름다움은 수학에 두려워하고 질린 사람에게는 다소 추상적으로 들릴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수학을 제대로 공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수학을 진지하게 공부한 사람들은 안다. 수학 문제를 푸는 증명 과정에서 논리적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a²+b²=c² ‘어떤 삼각형의 한 각이 직각이면, 빗변의 제곱과 직각을 낀 두 변의 길이의 제곱의 합은 같다.’ 중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피타고라스 정리다. 중학생도 아는 이 공식에 관해 유클리드나 레오나르도 다빈치, 아인슈타인 같은 당대의 수많은 석학들이 자기만의 증명법을 도출하기 위해 연구했다. 왜 이들은 단순해 보이는 이 정리에 그렇게 열광하고 매달린 걸까. 피타고라스 정리는 ‘문명의 뿌리’이기 때문이다. 이 뿌리를 통해서 도형과 직각의 개념이 줄기를 올렸고 그것을 통해 건축과 과학기술이 꽃을 피워 고대 피라미드에서 컴퓨터까지 출현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복잡다단한 거대한 문명의 발전을 떠받치고 있는 간결하면서도 결코 훼손될 수 없는 진리. 이것에서 수학자들은 고귀한 아름다움을 느꼈을 것이다.

 

 

 

 

 

 

 

 

 

 

 

 

 

 

 

 

올해 한국에서 열린 세계수학자대회에 참가한 수학자 세드릭 빌라니가 볼츠만 방정식에서 특별한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했다면 필즈상 수상에 근접한 최고의 수학자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어느 기자에게도 말한 바 있지만 볼츠만 방정식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방정식이다! 나는 어릴 때, 그러니까 박사논문을 쓸 때부터 이 방정식에 빠져들었고 그 후 이 방정식의 모든 면을 연구했다. 이 방정식에서 비롯된 수학적 세계에 대해서 나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은 없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세드릭 빌라니 『살아 있는 정리』중에서, 11쪽)

 

괴짜 수학자로 유명한 폴 에어디쉬는 이미 타당한 증명을 얻고서도, 타당할 뿐만 아니라 아름답기까지 한 증명을 얻기 위해 다시 도전하는 일이 잦았다고 한다. 수학의 아름다움을 결과적 성공에서 발견할 수 있다.

 

 


 Scene #3  순수와 응용을 아우르는 생활수학  

 

우리나라 수학은 수학을 공부해야 할 의미를 이해하는 과정을 무시한 채 문제를 푸는 방식부터 접근해서 가르친다. 문제를 잘 푸는 것이 수학 교육의 일차적 목표다. 문제를 푸는 과정만 반복되는 수학에서 어떻게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겠는가. 문제를 풀지 못하면 수학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학습 낙오자로 인식하는 것도 문제 있다. 수학 공부에 대한 패배감이 클수록 '수포자'가 되어 시험 전선을 스스로 이탈하고 만다. 

 

하디는 수학의 미적 매력은 선택된 몇몇 사람들에게만 실감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수학은 누구나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다. 수포자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을 감싸 안을 수 있는 수학을 알아야 한다.

 

수학은 세상의 모든 것과 연결되어 있고,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으며, 모든 것의 기초다. 수학의 실용성을 무시한 채 수학의 아름다움을 논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여기서 말하는 실용성은 문제 푸는데 만 초점을 맞추는 엘리트 수학에 가까운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실생활에 자연스럽게 적용되고 사회를 변화시키게 만드는 생활수학으로서의 실용성이 강조되어야 한다. 생활수학은 하디가 구분한 순수 수학과 응용 수학을 아우를 수 있는 최적의 학문이다. 아름다움과 실용성 그리고 논리적 지식이 공존한다. 단순암기와 문제풀이에서 벗어나 수학이 가진 아름다움을 보고, 만지고, 느끼면서 스스로 깨닫는 교육을 통해 수학에 대한 원리에 접근해야 한다. 간단한 공식과 규칙을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일상에서 수학을 즐길 수 있고, 수학적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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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후회되는 일은 무엇인가? 모 방송국에서 남녀 각 연령별로 이 질문으로 설문조사를 했는데 가장 많이 나온 답변이 공부를 하지 못한 것이었다. 남자 10~40대, 여자 10~30대가 가장 후회하는 일로 압도적으로 공부를 꼽았다. 70대에 이르러서도 남녀 모두 무엇 하나라도 배우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학창 시절에 공부가 그렇게도 하기 싫고, 놀고 싶은 마음이 많았다. 그러다가 나이가 점점 먹을수록 그때 하지 못했던 공부가 하고 싶어진다. 마음잡고 공부를 다시 시작하고 싶지만, 업무와 잦은 회식 때문에 공부할 시간이 많지 않다. 예전처럼 머리와 몸도 따라주지 않는다. 공부하면서 본 내용이 며칠 지나면 까맣게 잊어버리고, 노안 때문에 책의 활자를 읽기가 어려워진다.

 

평소에 공부와 담을 쌓은 사람은 다시 손에 펜을 쥐고, 책을 펴서 글자를 뚫어지게 봐도 학습 진도를 나가지 못하는 어려움을 겪는다. 그들은 대개 고등학생 때까지 선생님이 가르쳐준 대로 공부하던 습관에 익숙하다. 대학생부터 공부 환경은 완전히 달라진다. 이제 어느 누구도 공부하라는 잔소리를 하지 않는다. 스스로 알아서 공부해야 한다. 교수님이 가르치는 학교 공부만 해서는 안 된다. 바늘구멍만큼 좁다는 취업의 문에 들어서기 위해 스펙이라는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 강의실에서의 수업이 끝나면 친구들과 함께 술집이 아닌 도서관으로 간다. 그곳에서 토익, 자격증 공부를 한다. 학교생활 절반을 강의실 또는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한다.  

 

 

 

 

 

 

20대까지만 해도 우리는 공부를 질리도록 한다. 10대는 입시 성적을 위해서, 20대 초중반은 취업을 위해서. 그러다가 30대에 직장을 얻게 되면 길고 길었던 공부 터널에서 탈출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직장인이 되어서도 공부는 멈출 수 없다. 고용과 노후에 불안을 느낀 직장인들이 안정된 전문직을 얻으려고 대학원에 진학하거나 취업에 장기간 실패하거나 취업을 했더라도 적응하지 못한 채 인생역전을 위해 다시 공부를 시작하는 ‘셀러던트’가 등장했다. 그들은 하기 싫어도 어쩔 수 없이 공부를 한다.

 

세상은 우리에게 공부에 미치라고 권한다. 우리는 공부 권하는 사회 속에 살고 있다. 그런데 공부 소리만 들어도 피곤하고 질린다. 치열한 경쟁 속에 살아가는 우리는 평생 공부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공부 비법을 전수해 주는 등의 공부 관련 도서는 베스트셀러 코너의 단골손님이다. 또 흥미로운 점은 위에 게시된 사진의 책들은 한 출판사에서 발간된 시리즈물이 아닌 각각 다른 출판사에서 발행된 것이다.

 

책을 살펴보면 '10대 꿈을 위해 공부에 미쳐라'는 10대에 무엇을 했느냐에 따라 그 이후의 삶이 달라진다며 공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비좁은 취업의 문에서 불안해하는 '88만원 세대' 20대들을 위한 자기계발서인 '20대 공부에 미쳐라', 직장인들이 익혀두면 좋은 실용적인 공부 기술을 쉽게 정리해 놓은 '30대 다시 공부에 미쳐라'도 포함됐다. '40대 공부 다시 시작하라'는 지식 사회와 고령화 사회의 추세에 따라 평생 학습의 관점에서 40세 이상 중년의 공부를 다뤘다.

 
불광불급(不狂不及)이라는 말이 있다.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 무슨 일에 미친 사람처럼 끈질기게 집중하고 몰두해야 목표한 바에 도달할 수 있다는 뜻이다. 공부도 재미있어서 미친 사람처럼 집중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으랴. 그런데 우리는 공부가 너무 즐거워서 미쳤다기보다는 너무 많이 해서 미쳐버렸다. 그동안 남이 시키는 대로, 남이 하는 대로 따라하는 ‘가짜’ 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공부도 즐겁게 느껴진다면 ‘진짜’ 공부를 할 수 있다. 늦게라도 공부의 재미를 알게 된다면 그때 시작해도 된다. 지난 주 SBS ‘세상에 이런 일이’에서 소개된 82세 신문배달 할아버지는 우리에게 ‘진짜’ 공부가 무엇인지 보여줬다. 80세가 넘는 고령인데다가 한쪽 손이 불편한 상태 속에서도 지난 35년을 한결같이 10시간동안 신문배달을 해왔다. 더욱 놀라운 점은 이것뿐만이 아니다. 신문배달 일로 버는 월급 90만 원의 3분의 1 가량을 책 구매하는데 쓸 정도로 독서광이다. 할아버지가 구입하고 읽은 책만 해도 2000권 넘는다. 할아버지에게 신문 배달은 생계의 수단보다는 속죄의 과정이다. 술로 인해 멀어진 가족들과 이혼 후 아내에 대한 죄책감으로 지금까지 신문배달을 해왔다고 한다. 그리고 쓸데없이 청춘을 낭비한 과거를 잊고 할아버지는 새롭게 삶을 시작하는데 그를 일으켜 세운 준 것이 책이었고, 할아버지를 움직이게 만든 힘의 근원은 공부였다. 할아버지는 정신이 가난하지 않기 위해 공부를 하고 있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공부를 학교에서 배우는 것만 생각한다. 그래서 학교를 떠난 지금도 혼자 공부하는 것을 힘들어하고, 시작도 하기 전에 벌써부터 싫증이 난다. 내가 궁금했던 호기심을 해결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공부하는 것이 아니다. 10대부터 은퇴하는 40대까지 시험과 승진을 위해서 공부한다. 이러니 공부에 대한 압박감은 나이가 들어서도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우리가 공부하는 태도를 신체 활동으로 비유하자면, 쉬지도 못하고 계속 뜀박질하는 상태다. 호흡이 더욱 가빠지고, 몸은 지쳐간다. 특정 기간 안에 좋은 성적을 얻고, 승진하기 위해서 부랴부랴 공부를 시작한다. 무턱대고 너무나 많은 양을 공부하다가 힘들어서 중도에 포기해버린다. 우리는 무엇인가에 쫓기는 사람처럼 너무나 급하게 공부를 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공부하는 시간이 많을수록 지식을 완전히 습득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진다. 오히려 공부를 쉬엄쉬엄 하는 것을 게으른 방법이며 능력을 발전하는데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진짜 공부는 깊은 호흡을 들어 마실 수 있는 상태처럼 되어야 한다. 교육학자 사이토 다카시는 ‘삶의 호흡이 깊어지는 공부’를 할 것을 주문한다. 사이토는 10년 전 큰 병을 앓은 뒤 ‘공부’를 삶의 방향으로 삼게 됐다고 한다. 당시 인생이라는 마라톤이 중간에 예고도 없이 끝날 수 있음을 실감한 그는 후회 없이 충실하게 보냈다고 느꼈던 시간을 떠올려봤다. 좋은 책을 다 읽은 날, 공부 재미에 완벽히 몰입했을 때 충만한 행복감을 느꼈음을 알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더 즐거운 공부’를 하기로 결심한다.

 

호흡이 길어지는 공부란 철학, 사학과 같은 인문학, 물리학, 수학, 음악, 미술 등 순수 학문을 공부하는 것을 의미한다. 깊이 있게 많은 시간을 들여 공부하지 않아도 된다. 공부의 수준과 목표는 각자 자유롭게 정해도 되고, 단지 교양을 쌓는 공부여도 좋다. 중요한 것은 무언가를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써의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 공부 그 자체가 목적인 공부를 하는 것이다. (『내가 공부하는 이유』 중에서, 62쪽)

 

‘삶의 호흡이 깊어지는 공부’는 인생을 풍요롭고 여유롭게 만든다. 일과 삶, 미래를 통찰하는 법을 일깨워 준다. 매일 꾸준히 많은 시간을 공부하는 것보다 하루에 30분씩이라도 꾸준히 공부하는 것이 좋다. 그렇게 시작해야 지치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오래 공부할 수 있으며 평생 공부를 가까이 하면서 살 수 있다.

 

 

 

 

 

 

 

 

 

 

공자는 ‘논어’ 학이편에서 “배우고 때때로 익히니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學而時習之不亦說乎)라면서 열심히 공부하고 배운 대로 실천하는 것이 즐거움의 한 길임을 일러주고 있다. ‘진짜’ 공부는 일단 즐거워야 한다. 오랫동안 몸에 배인 ‘가짜’ 공부와 관련된 안 좋은 기억과 습관을 깨끗이 잊어버리는 것이 좋다. 그동안 우리의 뇌를 죄어온 잘못된 사슬을 풀지 못하면 영영 공부의 노예가 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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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시경 2014-08-13 2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이 방송 봤는데~ 정신이 가난한 사람이 정말 불쌍한 사람이라는데 공감했어요~ 책을 통해 진짜 공부를 하는 삶이 되고 싶은데..쉽지 않은 일이네요,,

cyrus 2014-08-14 23:08   좋아요 0 | URL
저도 방송 보면서 할아버지 말씀에 제 자신이 부끄러웠어요. 지금 저 또한 공부하는 삶을 지향하기에는 상황이 여의치 않지만, 조금이라도 노력해봐야겠어요.
 

 

 

 

대한출판협회라는 단체에서 ‘모범장서가’를 공모한다. 기간은 오는 29일까지다. 자격 조건으로 2천 권 이상 도서를 소장하고 있어야 한다. 자천 및 타천 모두 가능하다. 신청자 중에 총 5명을 선정한다. 모범장서가로 선정되면 100만원 상당의 도서상품권을 받을 수 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방에 꽂혀 있는 책이 몇 권인지 세어봤다. 대충 눈으로 어림잡아 세어 봐도 천 권 이상은 되지 않았다. 내 방의 크기는 넓지 않다. 일단 천 권이 넘는 책이 소장될만한 공간은 아니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00권 세트를 기준으로 계산하면 족히 300~350권 정도 될 것 같다. 가끔 지금까지 구입한 책들이 몇 권인지 궁금할 때가 있다. 시간이 있으면 일일이 한 권 한 권 세어 보면서 엑셀로 정리하고 싶다. 이렇게 따로 정리하면 책 권 수를 확인도 하고 내가 어떤 분야의 책을 구입했는지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다.

 

나는 책을 엄청 많이 사는 편이다. 여윳돈이 생기면 어떻게든 책 한 권은 꼭 산다. 작년에 알라딘 오프라인 매장이 대구에 생겼을 때부터 책 사는 횟수가 많아졌다. 항상 인터넷 주문은 알라딘에, 오프라인은 교보문고와 알라딘 대구점 그리고 헌책방을 애용한다. 인터넷 주문은 한 달에 많아야 세 번 구입한다. 땡스투 마일리지로 모은 적립금이 많지 않아서 정말 사고 싶은 책이 있을 때 사용한다. 구입 횟수로만 보면 적게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한 번 주문하면 책 2권 이상 된다. 한창 마일리지가 많았을 때는 5만 원 이상, 5권 이상 구입한 적도 있다. 나름 최소 비용으로 책을 많이 사기 위해서 인터넷으로 주문하는 알라딘 중고샵도 많이 이용한다.

 

오프라인 구입 횟수로는 요즘은 알라딘 매장이 제일 많고, 그 다음은 교보문고, 헌책방이다. 알라딘 매장은 일주일에 두 번 정도는 방문한다. 스마트폰으로 매일 알라딘 중고매장 어플을 확인한다. 알라딘 어플을 설치하면 각 지역별 중고매장으로 접속할 수 있다. 알라딘 중고매장 홈페이지도 있지만, 어플을 많이 사용한다. 손님이 판 책과 매장에 비치된 책을 실시간으로 확인한다. 만약에 사고 싶은 책이 있으면 당장 매장으로 향한다. 이때만 되면 괜히 초조해진다. 다른 손님이 그 책을 구입할까봐 걱정한다. 특히 시중에 구할 수 없는 절판본일수록 불안감을 느낀다. 이상하게 알라딘 매장으로 가는 길이 멀게만 느껴진다. 평일인데도 차가 막히는 것 같고, 빨리 발걸음을 재촉해도 매장으로 들어서는 출구가 보이지 않는지. 다른 손님이 내가 찜한 책을 구입한 사실을 알고 나면 기운이 쭉 빠진다. 너무 아쉬워서 그냥 빈손으로 돌아가지 않고, 또 다른 책을 구입한다. 이놈의 습관이 참 무섭다.

 

나는 책 사는 습관이 일종의 ‘벽’(癖)이라고 생각한다. 책을 잔뜩 사놓고 바로 읽지 않고 책장으로 꽂히는 나쁜 습관이 있지만, 읽고 싶은 책은 언젠가는 꼭 읽는다. 요즘 읽고 싶은 책이 많아서 구입하자마자 한 번에 완독하는 경우는 없지만 그래도 생각날 때마다 조금씩 읽으려고 노력한다.

 

사실 나도 장서가가 되고 싶다. 그렇다고 책을 무조건 많이 사야 장서가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나는 책에 대한 집착이 강한 것 같다. 돈이 없어서 당장 못 사는 책은 언젠가는 꼭 산다. 고등학생 시절에 책을 많이 구입하지 못했을 때 도서관을 애용했다. 아니면 서점에 가서 책 한 권은 다 읽어야 책을 구입하지 못한 아쉬움을 풀 수 있었다. 그래서 그 때 감명 깊게 읽었던 책은 꼭 구입한다.

 

 

 

 

 

 

 

 

 

 

 

 

 

 

 

예전에 책 사는 습관이 심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최근 살만 악타르의 『사물과 마음』을 읽고 나서 그 생각이 달라졌다. 사물을 소유하고 싶고, 거기에 자신만의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다 있다. 그래서 우리는 특정 물건에 집착한다. 남들에게는 평범한 물건이지만 특별히 소중하게 여기고, 그것이 상실되면 무척 괴로워한다. 물건에 대한 탐닉은 수집벽으로 이어진다. 이 책에 ‘수집’과 ‘잡동사니’의 차이점을 소개한다. 단순히 물건을 모은다고 해서 수집에 가까운 행위로 보는 것은 아니다. 나에게는 수집으로 보일지 몰라도 상대방에게는 그저 잔뜩 널려 있는 잡동사니일 뿐이다.

 

살만 악타르가 분류한 '수집'과 '잡동사니'의 경우는 다음과 같다. 수집품은 물건의 주인, 즉 수집가로부터 특별한 가치를 부여 받는다. 그래서 진정한 수집가는 양으로 따지지 않는다. 무작정 수집품을 사들이지 않으며, 자신에게 가치 있는 물건인지 신중하게 따져보는 감식안을 가지고 있다. 잡동사니를 모으는 것은 수집 행위와 반대다. 현재까진 필요 없는 물건인데 언젠가 필요해질 때를 대비해서 내다버리지 못한다. 이런 마음 때문에 물건을 모아두기만 한다.

 

수집과 잡동사니를 모으는 행위에 차이점은 있지만, 잡동사니를 모으는 행위도 수집이 될 수도 있다. 처음에 아무렇게나 모은 물건이지만 특별한 계기로 인해 수집가로 변모한다. 반대로 수집에 대한 열망이 너무 지나치거나 모으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면 중독이 된다. 자신의 능력 및 상황을 고려하지 못한 채 특정 물건을 모으는 데 매달린다.  

 

살만 악타르가 말하는 수집가의 유형을 보면서 나는 아직 정상인(?) 수준의 책 수집가라는 걸 느꼈다. 책 한 번 사게 되면 엄청나게 많은 시간을 들인다. 책 내용이 괜찮은지 목차를 포함해서 몇 페이지는 읽어본다. 비용도 고려한다. 손에 쥐고 있는 비용으로 몇 권의 책을 살지 꼼꼼하게 생각한다. 이성을 상실할 정도로 생각 없이 책을 사지 않는다. 또 구입해서 읽은 책은 서평으로 기록을 남긴다. 아무리 완독한 책이라도 서평을 남기지 않으면 다 읽은 느낌이 나지 않는다. 뭔가 기록을 남겨야 직성이 풀린다. 이왕 나름 읽을 만한 책을 골랐으면 이에 대한 감상쯤을 기록으로 남겨두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독서의 흔적은 오랫동안 기억하기 쉽다. 구입한 책에 관한 서평 쓰기가 습관이 되고 의무 활동으로 여긴다면 아무 생각 없이 책을 사는 나쁜 습관에 빠지지 않는다.

 

우리나라가 책을 많이 읽지 않는 사회라서 그런지, 일반인 장서가를 만나기가 드물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장서가는 대개 지식인, 작가들이 많다. 그렇다고 해서 일반인 장서가가 완전히 절멸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세상의 음지 속에 독서를 즐기면서 책을 수집하는 열정적인 애서광들이 숨 쉬면서 살고 있다. 가끔 오프라인 독서 모임에 참석하면 나보다 뛰어난 애서가들을 만나게 된다. 장르문학 위주로 즐겨 읽고 책을 사는 애서가가 있는가 하면, 서울뿐만 아니라 지방에 있는 헌책방의 위치를 꿰뚫고 자주 방문하는 헌책방 애서가도 있다. 나는 독서 모임 덕분에 헌책방 애서가를 만나서 친분을 맺게 되었고, 그 분의 만남 덕분에 헌책방의 세계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모범장서가 정도는 아니지만, 나름 독서 문화 보급에 기여하는 장서가가 되고 싶다. 읽고 난 책에 대한 서평 작성은 책을 널리 알리는데 중요하다. 그렇다고 내 서평이 책 판매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며 내용이 어줍기만 하지만, 일단 책 자체를 상대방에게 알리는 것만으로 해도 서평의 기본적인 역할이다.

 

그리고 흘러가는 세월에 잊혀져가는 절판된 책에 대한 기록도 남기려고 한다. 비록 절판된 책의 서평은 더 이상 구입할 수 없기에 재출간되지 않는 이상 아무리 잘 내용이 좋아도 땡스투 적립금을 받기가 어렵다. 하지만 읽을 가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독자서평 하나라도 없는 절판본도 있다. 절판의 운명에 처한 책들의 사연은 다양하다. 책이 잘 팔리지 않아서, 조용히 서점에서 사라진 것도 있으며 출판사가 망해버리는 바람에 책 발행이 끊기기도 한다. 비록 늦은 감은 있지만, 그런 책을 발견하면 기록 하나쯤은 남겨둬야 하지 않을까. 만약에 그런 책이 나중에 재출간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것이다. 

 

 

 

 

 

 

 

 

 

 

 

 

 

 

 

 

요즘 관심 가는 절판본이라면 법정 스님이 쓰신 책이다. 비록 스님이 입적하기 전에 자신이 남긴 모든 글과 책은 절대로 팔지 말라고 당부하셨지만, 책에 유독 집착이 강한 이 어리석은 중생은 스님의 기록이 이렇게 잊혀져가는 것이 아쉬워서 터무니없이 매긴 값비싼 가격이라도 구입할 것이다. 그리고 오랜 세월 속에서도 여전히 우리의 마음에 큰 울림을 주는 스님의 명문을 알리고 싶다.  

 

 

 

 

 

 

 

 

 

 

 

 

 

 

 

 

한스 보하타라는 독일의 서지학자가 말하길, 애서가는 자기 책의 주인이고 애서광은 자기 책의 노예다. 다만 책에 대한 집착이 너무나 강해 절도 이상의 만행을 저지르지 않는다면 이런 고상한 취미를 가져도 무방하다고 본다. 20여 년 동안 미국 전역 268개 도서관에서 훔친 2만 3600여권의 희귀본으로 자신의 이름을 내건 컬렉션을 세운 스티븐 블룸버그 같은 장서가는 되고 싶지 않다. 엄연히 말하는 그는 장서가라기보다는 도서절도범에 가깝다. 다시 구하기 힘든 책을 소유하고 싶은 마음과 열정을 과하면 책의 노예가 된다. 책의 주인은 소유의 집착을 깨끗이 버릴 줄 안다. 의외로 책 좋아하는 재벌가는 사후에 자신의 장서로 공공도서관을 만들어 개방하기도 한다.

 

 

 

 

 

 

 

 

 

 

 

 

 

 

 

 

 

 

 

책의 노예가 되는 순간, 사람의 감정이라는 게 어떻게 돌변하지 모른다. 어떻게든 책을 가지고 있어야만 마음이 편안해지는 잡동사니 유형은 그나마 정상적이다. 그러나 책을 사랑하는 나머지 미쳐버리면 강박증으로 변질된다. 플로베르의 단편소설 '애서광 이야기'에 나오는 주인공 갸코모는 자신이 소유한 책이 세상에서 유일함을 과시하기 위해 범죄를 저지르고 심지어 죽음을 택하는 불행한 인물이다.

 

갸코모는 경쟁자의 집에 불이 나자 화염 속에 뛰어들어 원하던 책을 손에 넣는다. 그러나 세상에서 단 한 권뿐인 그 책이 자신의 집에서 발견돼 방화범으로 기소된다. 그의 변호사가 세상에서 유일한 책이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똑같은 책을 구해 와 제시한다. 하지만 갸코모는 격분한다. 세상에서 오직 하나뿐인 책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다. 그래서 재판장에게 자신이 불을 지르고 책을 훔쳤다고 주장한다. 그 설득이 통해 갸코모는 사형대에 오른다.

 

사실 갸코모처럼 장서가나 애서가 입장에서는 나름 희귀한 가치가 있는 절판본이 복간되지 않기를 바란다. 나도 한때 그런 생각을 가진 적이 있었다. 그러나 자신이 구입한 절판본이 이 세상에서 유일한 책인지 증명할 수도 없으며 그렇게 생각하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착각이다.

 

갸코모와 스티븐 블룸버그는 책에 미쳐버린 나쁜 사례다. 두 사람의 모습을 통해 올바른 장서가 또는 애서가의 역할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든다. 과연 내가 책의 주인인지 아니면 책의 노예인지 스스로 판단할 수 있다. 그렇기에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두 사람의 이야기를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된다.

 

지금까지 나 자신을 스스로 정상적인 책 수집가, 애서가라고 분류했지만 사람 마음이라는 게 언제 돌변할지 모른다. 나 또한 그렇다. 사물에 향한 인간의 집착은 이성과 도덕의 눈을 멀게 만든다. 그래도 책에 미쳤다는 소리를 들어도 좋다. 그런 고귀한 광기의 중요성을 널리 알려서 우리나라 사람들 책 좀 많이 읽기를 바라는 것은 터무니없는 나만의 욕심일까? 우리나라도 장서가, 애서가가 많아야 한다. 이제 우리도 독서문화와 함께 도서수집문화 혹은 장서문화에 눈을 돌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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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eeze 2014-08-08 0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모범장서가'에 응모해볼려고 집에 있는 책을 세어봤어요.
거실 벽 두 군데를 책장이 차지하고 있고, 빈 방 하나에도 책장이 있거든요.
아이들 책을 다 세어보진 않았지만, 거실에 있는 제 책만 천 권 정도가 되더라고요.
2천권이 채 안되는 것 같아서 좀 아쉽기도 하네요. ^^

cyrus 2014-08-08 23:20   좋아요 0 | URL
천 권도 많은데요! Breeze님 ㅎㅎㅎ 모범장서가 공모는 올해가 처음이 아니에요. 몇 년 전부터 시행된 것 같은데, 내년에 한 번 도전해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

blanca 2014-08-08 1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지고 있는 책을 엑셀로 정리하는 것 너무 좋은 아이디어네요. 저도 언젠가 하고 싶어요. 그러면 분야별로도 작가별로도 다 정렬이 가능할 텐데요. 저도 두 번 읽지 않을 책은 처분한다,는 원칙을 최근에 세워 책을 더이상 늘리지 않으려고요. 공간도 그렇고. 그래도 책을 사랑하는 마음은 님과 닮아 있어 참 반가운 페이퍼네요. cyrus님은 근사한 애서가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cyrus 2014-08-08 23:23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 분류별로 미리 정리하면 나중에 이사 갈 때 책장 배치할 때 편리해요. 블랑카님도 집에 책이 많이 있을 것 같아요. 블랑카님이 읽으신 책을 아이들도 읽는다면 정말 좋을 거예요. ^^
 

 

 

 

  Scene #1 무식한 대한민국, 진지 빨지 말고 책 치워라

 

 

 

이미지 출처: 머니투데이 (2014년 7월 25일)

 

오늘 아침 아주 흥미로운 기사를 발견했다. 책 잘 안 읽는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내용이었다. 매년 한 번씩은 이와 비슷한 내용의 기사를 본 적이 있는지라 특별히 눈 여겨 보지 않았다. 그런데 헤드라인이 상당히 세다. ‘무식한 대한민국, 진지 빨지 말고 책 치워라

 

기사 내용의 요지를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우리나라 1인당 독서 라이프 사이클을 보면 어린 시절에는 평균 50권이 넘는 책을 읽지만, 청소년 시기로 접어들수록 읽는 책 권수가 줄어든다. 중학생은 평균 20여 권, 고등학생은 읽는 책 권수가 줄어든다. 평균 10권 이상도 못 넘는다. 나이가 들수록 독서량은 줄어든다. 책을 안 읽었다기보다 책을 못 읽었다고 봐야 무방하다. 초등학생 때 책을 엄청나게 많이 읽을 수 있었던 것은 단지 입시를 위한 수단적 독서일 뿐이다. 중고등학생 때는 오히려 학교 공부에 도움이 안 된다고 어른들은 책을 읽지 말라고 한다. 교과서 대신에 책을 들춰보는 학생들은 선생님 입장에서는 한심스럽다. 게다가 동급생들도 책 읽는 학생을 선호하지 않는다. 요즘 같은 시대에 한가롭게 책을 읽을 여유가 어디 있냐고 말한다. 친구들에게 책만 읽는 학생은 찌질이가 된다.

 

이상하게 책을 거부하는 태도는 한때 지성의 산실 대학교에서도 이어진다. 독서를 장려하기 위해서 각종 장학금 혜택과 다양한 이벤트를 열어보지만, 그때만을 위해서 잠깐 책 읽을 뿐, 그 이후로는 독서에 대한 열의가 순식간에 사라진다. 장학금을 타기 위해서 평소 안 읽던 책을 억지로 읽는다.

 

이제 좀 책 읽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들어서 오랜만에 서가에 꽂힌 소설책을 집어보지만, 취업에 대한 고민과 준비 때문인지 괜히 책 펼치기가 꺼려진다. 부모님은 소설책 읽는 자식이 불만스럽다. 소설 읽는 시간에 취업용 종합상식 교재나 더 보라고 꾸짖는다. 그리고 얼른 취업이나 하란다. 멀쩡하게 대학 4년제 나온 자식이 좋은 직장에 다닐 것이라 믿었던 부모는 집이나 도서관에서 책만 읽는 자식이 걱정된다. 자식은 취업이 우선인 걸 알고 있지만, 그래도 독서가 좋다. 그러나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 소설가 구보 씨처럼 부모 눈치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책 읽고 돌아다니기가 쉽지 않다. 취업이 언제 될지 모르는 불안감에 주변 사람들의 눈치 때문에 독서하는 것이 죄를 저지르는 것 같다. 취업 준비는 안 하고 책만 읽는 한량죄.

 

이것이 우리나라 국민 독서 라이프 사이클이다. 독서를 좋아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상당히 우울한 내용이다. 반대로 미국, 영국, 독일 같은 독서 라이프 사이클은 연령이 높아질수록 독서량이 많아진다. 우리나라 독서 실태를 지적하는 기사에는 꼭 독서 문화가 정착된 선진국과 늘 비교한다. 우리는 그 현실을 알면서도 책 안 읽는 못된 습관을 버리지 못한 것일까?

 

 

  Scene #2   무조건 책 읽기를 권하는 불편한 강요

      

우린 분명히 책에서 멀어지는 현상은 크게 염려한다. 책을 읽어야 깊이 이해하고 넓게 알게 된다. 책을 읽지 않고는 생각하는 사람이 될 수 없고 바람직한 인격 형성도 어렵다.

 

부모들이 우리 애들이 책을 읽으려고 하지 않는다라는 하소연을 참 많이 한다. 부모로선 걱정스럽겠지만, 냉정하게 보면 아이들이 책을 읽지 않는 것은 당연한 현상일지 모른다. 어린이가 책을 읽지 않는 풍토는 바로 어른들이 만든 것이다. 그런데도 어른들은 어린이만 탓한다.여기서 조금만 솔직하게 반성해 보자. 자기 자녀가 책을 읽지 않는다고 불만의 목소리를 높이는 부모들은 책을 읽는가? 많은 부모들이 그렇지 않다. 지금은 어느 가정이건 텔레비전이나 24시간 스마트폰 화면이 우리의 눈길을 잡는다. 더구나 이제 컴퓨터와 스마트폰은 어린이들에게 그들의 손발과 같은 존재가 됐다.

 

방학계획 중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 독서다. 방학 때 아이가 책을 많이 읽었으면 하고 바라는 부모가 대부분일 것이다. 하지만 강제로라도 책 읽는 습관을 들이기 위해 전집 수십 권을 한꺼번에 사주는 것은 좋지 않다. 오히려 책에 대한 흥미를 잃고 책 읽기를 지겨운 숙제로 여기기 쉽기 때문이다.

 

 

 

 

 

 

 

 

 

공부를 하지 않으면 모르는 게 없어진다. 독서능력을 검증하겠다고 하는 생각은 책을 제대로 읽어 본 경험이 없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 어쩌면 너무나 책을 읽지 않는사람들은 학생이나 일반인들이 아니라 독서능력을 객관식 문제나 단답형 문제로 검증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아이들이 당연히 책을 읽는 습관을 가질 것이라고 믿는다. 물론 시험은 교육의 중요한 과정이자 절차이다. 하지만 시험만능주의는 교육을 망친다. 독서마저도 시험의 억압 속에 놓이게 된다면, 독서의 즐거움은 원초적으로 증발되어 버리고 독서의 지겨움만 남게 된다. 시험이나 평가를 위한 의무 과정으로 청소년들에게 강요되는 독서, 생각만 해도 숨 막힌다.

 

독서만큼은 자유로운 경험 영역으로 남아야 한다. 정말로 독서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 책을 읽든지 말든지, 어떤 책을 읽든지 말든지 상관하지 말고 그냥 내버려 두길 바란다. 책을 제대로 읽어보지 않은 부모가 추천도서 목록을 아이들에게 보여주면서 읽기를 권한다면 교육을 위할 뿐인지 진짜 독서를 위한 것이 아니다. 차라리 부모 당신이 먼저 읽어라. 아이들이 읽으면 좋은 책인지 부모가 먼저 알고 읽는 것이 아이들의 독서 향상을 위한 기본적 첫걸음이 아닐까.

    

 

  Scene #3   독서에 대한 이상한 편견

 

나는 지금도 파릇파릇한 나이인데다가 미혼이다. 자식을 가진 부모 입장을 아직 경험해보지 못했고, 잘 모른다. 그래서 자식이 책 읽기를 원하는 일부 부모를 향해 다소 감정이 억양된 표현을 했다. 사실 아침에 이런 내용의 기사를 보면서 책 좋아하는 사람 입장에서 속상하고 무척 화가 났다. 아이들에게 매번 독서가 좋다고 강조하는 어른들이 정작 아이들이 책 못 읽게 만드는, 전혀 앞뒤가 맞지 않은 이런 상황이 어이없게 느껴진다.

 

책 읽기를 강요하는 어른을 좋지 않게 여기는 것은 어렸을 때부터 독서에 대한 우리나라 특유의 불편한 진실을 몸소 경험했기 때문이다. 유치원 다닐 때 부모님은 40권이 넘는 위인전집에 중학생 수준 정도면 읽을 수 있는 백과사전을 구입해줬다. 내가 읽고 싶어서 사달라고 졸라댄 것도 있지만, 이렇게나 많이 책을 사줄 수 있었던 이유는 자식이 책을 많이 읽어서 똑똑한 어른으로 성장해주길 바라는 부모 마음이 절대적으로 컸다. 비록 부유한 형편은 아니었지만, 부모님은 나를 생각해서 책을 많이 사주셨다. 좋은 부모님 밑에 자라서 어린 시절에 같은 나이 또래들에 비해 책 읽는 습관을 형성할 수 있었다. 가끔 취업 준비가 늦어지는 자식을 걱정하지만 부모님은 내가 책 읽는 것에 대해 일절 태클 걸지 않는다. 그래서 웬만하면 책 구입은 부모님이 주는 용돈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상하게 학교는 책 읽는 나를 좀 특별하게 여긴 것 같다. 선생님도 그렇고, 일부 친구들도. 일단 교과서 내용과 관련 없는 서양 고전을 읽으면 선생님은 그런 제자의 모습에 대견하게 여기면서도, 한편으로는 의아하게 생각한다. 중고등학생이 읽기 어려울 수 있는 내용의 책을 읽는 이유가 궁금해 한다. 그냥 읽고 싶었을 뿐인데 말이다. 친구들도 마찬가지다. 자신들은 해리 포터나 반지의 제왕 혹은 무림고수들이 출동하는 국내 판타지 소설을 즐겨 읽는데 내가 괴테의 파우스트나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같은 듣지도 보지 못한 책을 읽으니 이상하게 여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나의 독서 편력을 이해하지 못한 또 다른 이유는 문과생이 과학 도서를 읽는 것이다. 고등학생 2학년부터 자신이 공부해야 할 과목으로 문과, 이과로 나누어진다. 문과로 들어가게 되면 그렇게 지루해소 어려웠던 과학 과목과 영원히 이별한다. (! 수학은 빼고)

 

몇 몇 친구들은 농담으로 문과생이 무슨 배짱으로 어렵고 수식이 가득할 것 같은 과학 도서를 읽느냐고 말했다. 하긴 나도 과학 수업 시간이 되면 지루하고 무척 어려웠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과학 도서를 읽으면 그동안 이해하지 못했던 과학 수업 내용이 머릿속에 들어왔다. 아무래도 과학 시험에 대한 부담이 없는 상황에서 그런 책을 읽었기에 무척 수월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성적 잘 받으려고 과학 도서를 읽고 싶은 마음은 전혀 들지 않기 때문이다.

 

경험상 우리나라는 독서에 대한 편견이 너무 많고 심한 것 같다. 입시교육 탓에 교과서나 문제집 대신에 책 읽는다고 공부를 소홀히 하는 문제아로 낙인찍힌다. 문과생이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읽으면 누군가는 꼭 이런 말을 한다. 과학자가 될 것도 아닌데 과학 도서는 왜 읽는 거야? 네가 그런 책을 읽는 것은 시간 낭비다.” 이번에 시집을 읽는데도 사람들은 그냥 지나가지 않는다. 시를 왜 읽는 거죠? 재미있어요?” 이런 질문은 대게 시집이 재미있게 느껴져서 진지하게 물어보는 것이 아니다. 재미없어 보이는 시집을 재미있게 읽는 내 모습이 신기해서 물어 본다.

 

일반적으로 책 읽는 사람들이라면 상대방에게 많이 받는 질문이 바로 지금 읽고 있는 책, 재미있어요?”라는 것이다. 재미있어서 책 읽는 것도 있지만, 그렇다고 단지 그 이유만으로 책 읽는 것은 아니다. 나름 유용한 목적이 있어서 책을 읽는 것인데 대부분 사람들은 독서를 재미만을 위한 취미라고 생각한다. 자기소개서에 취미에 독서를 기입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기는데 잘못됐다고 본다. 일단 취미는 사전적 의미로 즐기기 위한 일또는 아름다운 대상을 감상하고 이해하는 일이다. 개인적인 입장이지만 독서는 단지 즐기기 위한 일로 보는 것을 반대한다. 재미있어서, 즐기기 위해서 독서를 한다는 말 자체가 난센스다. 우리 사회가 책을 즐기도록 만든 적이 있던가. 그리고 지금까지 살면서 책을 즐긴 기회가 있었는가. 평소 책을 멀리하는 사람이 나름 고상한 취미를 강조해보려고 독서를 내세우는데, 그것은 꼴불견이다. 그래서 취미=독서라는 자기소개를 위한 겉치레 공식은 무의미하다. 취미로 무조건 독서라고 내세우는 것 또한 일종의 편견이라고 본다.

 

 

  Scene #4   여전히 가만히 앉아서 공부나 하라는 무식한 어른들

 

책은 공기처럼 나를 새롭게 하고 배의 돛처럼 나를 전진시킨다. 책을 읽는 기쁨을 맛보지 못하는 사람은 성장하지 못한다. 어렵고 복잡한 학문이나 깊은 예술이나 종교도 책을 읽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벗 중에 가장 틀림없는 벗은 바로 책이다. 책을 자신의 삶에 도움 주는 벗이라고 여긴다면 독서의 소중함을 알게 된다. 그런 독서의 장점을 일상에 가까이 느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말 모르거나 외면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안타깝다. 특히 내 또래 젊은 친구들(‘88만원 세대삼포 세대라고 불리는 20) 책 멀리하는 악습관을 버리지 못한 것을 보면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그들의 미래 자식들이 걱정된다.

 

책을 잘 안 읽는 환경에 익숙한 부모는 자식들에게 좋은 독서 교육을 시킬 리가 없다. 그저 자식 성공을 위해 억지로 흉내 내는데 급급하다. 그리고 독서 편견도 심해질 수도 있다. 자신들도 젊은 시절에 취업 준비하느라 고생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내 자식들이 독서보다는 취업 준비에 몰두하기를 바란다. 독서를 멀리하는 악습관이 대물림될 수밖에 없으니 우리나라 국민 1인당 독서량이 감소된다.

 

 

 

 

 

 

 

 

 

 

 

 

 

 

심리학자 매슬로의 이롬을 빌리자면, 우리나라는 교양을 통한 자아실현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기회가 많지 않다. 단순한 생존 욕구를 넘어선 한국 사회는 높은 단계의 욕구를 향해 달려가는 중이다. 의식주처럼 기본적인 욕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결핍 상태가 완전히 해소될 때까지 욕구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먹고 사는 것이 우선인 만큼 책을 멀리하게 된다.

 

우리 사회는 점점 생리적 욕망안전에 대한 욕망충족에 지나치게 집착하고 있다. 욕망에 의해 커져나가는 사회는 자아실현의 욕망을 외면한다. 자아실현은 곧 자기 본성에 충실한 것이다. 독서를 통한 자아실현은 스스로 꿈을 실현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갖게 한다. 그러나 욕망의 사회는 그런 능력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억압했다. 자신이 원하는 삶의 방향으로 스스로 움직이려고 하면 어른들은 말한다. “가만히 있어라혹은 가만히 앉아서 공부나 해라.”

 

책은 좋은 삶을 살게 만드는 해답을 모은 문제 해답 모음집이 아니다. 그러나 좋은 삶을 이끌도록 방향을 제시해주는 나침반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어른들은 자본의 힘으로 먹고 사는 생리적 욕망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그런 인생의 나침반을 쓸모없는 물건이라고 망가뜨렸다. 그들은 이라는 인생의 나침반을 사용할 줄 몰랐고, 특별한 사용 방법을 전수하지 못했다. 그러면서 어렸을 때는 책을 보라고 강요하다가 다 크면 책 보지 말라고 꾸짖는다. 어른이 하는 말을 믿고 우리는 어렸을 때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책을 읽었다가 어른이 되면 책을 읽지 않는다. 이런 세상에서 도대체 우리는 언제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겠는가?

 

우리나라 입시제도 여건상 중고등학생 때 책을 즐겨 읽지 못했다면 대학생이 되었을 때 많이 읽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독서량을 늘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한다. 일단 20대는 체력이 좋은데다가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기회가 많기 때문에 책 읽을 시간도 충분하다. 늙으면 책 읽고 싶어도 읽을 수가 없다. 노안이 찾아오면 평소에 잘 보이던 활자는 희매하게만 느껴지고, 기억력도 예전 같지 않다. 늙을수록 공부를 시작하기가 힘든 것처럼 독서도 마찬가지다.

 

사람이 무식해지지 않으려면 최소한 대학생 때 책을 많이 두는 것이 좋다. 한 달에 열 권, 일 년에 백 권 정도 읽기를 기대하지 않는다. 그 대신 독서의 중요성을 몸소 경험해봤으면 한다.

 

 

 

 

 

 

 

 

 

 

 

 

 

 

다치바나 다카시는 일본 대학이 전문적 바보(교수)가 단순한 바보(대학 졸업생)를 양산하고, 이들 바보 집단을 이끄는 바보 보스(관료)들이 교육정책을 주도한다고 지적했다. 유사한 이야기는 우리나라 독서 실태에 연결해서 볼 수 있다. 바보 집단을 이끄는 바보 보스만 양산하는 것이 아니라, 바보 미래 세대를 키우는 바보 부모도 등장한다. 연령이 높아질수록 독서량이 감소하는 라이프 사이클을 고치지 못한다면 진짜 무식한 관료, 부모가 많아질 수 있다.

 

내 주변에 벌써 결혼하고 자식을 둔 친구들이 생겨난다. 친구들 중에 독서와 담 쌓는 녀석들이 많다. 십 년이 지나면 친구 자식들이 초등학교에 다니게 된다. 만약에 친구가 아이들에게 책 읽으라고 잔소리하는 걸 보게 된다면 난 그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진지 빨지 말고, 너나 책 읽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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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4-07-26 15: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오늘 아침에 이 기사를 모두 읽었는데 '증세'가 좀 심각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나이가 들수록 책을 읽을 시간이 훨씬 더 늘어나는 게 자연스런 이치인데, 그 많은 시간들을 '책 읽는 즐거움'도 없이 살아갈 수밖에 없게 만드는 '작금의 현실'은 너무나 서글픈 일이 아닌 듯싶어요.

상태가 더 악화되기 전에 빨리 추스려서 요즘 흔히들 말하는 '비정상의 정상화' 쪽으로 빨리 방향을 틀었으면 좋겠어요.

cyrus 2014-08-04 21:02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 학생들 독서를 권장하기 위해서 독서의 즐거움을 먼저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ajahyhee 2014-08-12 16: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이네요^^ 저도 저 기사 보고 크게 공감한 기억이 있는데.. 독서의 수많은 장점들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너무 모르고 사는거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