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시스코 데 고야  『자식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  (1819~1823년)

 

 

 

사투르누스(Saturnus)는 로마 신화에 나오는 농경의 신이다. 라틴어 이름을 우리말로 풀이하면 ‘씨앗을 뿌리는 자’다. 그는 아들 제우스와의 싸움에 패배하여 이탈리아로 피신하게 되는데 이곳에서 농업기술을 보급했다. 사투르누스는 그리스 신화의 크로노스(Kronos)에 해당한다. 크로노스는 시간의 신이다. 자신의 누이이자 대지의 여신 레아는 크로노스와 결혼하여 헤라, 포세이돈, 데메테르, 하데스, 헤스티아를 낳았다. 그러나 크로노스는 5명의 자식에게 살해될 것이 두려워 그들을 잡아먹는 끔찍한 악행을 저지른다. 스페인의 화가 고야는 자식들을 뜯어 먹는 크로노스의 광기 어린 모습을 그림으로 남겼다. 크로노스는 시간을 지배하는 신답게 인간의 소중한 시간도 집어삼킨다.

 

우리나라 부모들은 현대판 ‘사투르누스/크로노스’다. 자녀들의 학업을 위해서라면 경제적, 심리적으로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그 무엇보다 ‘자식농사’만큼 중요한 농사가 없다.명문대 진학 여부가 '자식농사'의 성패로 인식한다. 부모는 자신들이 직접 뿌린 소중한 씨앗 같은 자식들이 무럭무럭 잘 자라서 좋은 대학에 진학하기를 원한다. 원하는 명문대에 보내기 위한 입시교육 열기에는 대학 졸업장이 더 높은 임금과 지위를 가져올 것이라는 기대와 명문대에 입학하기만 하면 사회적 성공이 보장될 것이라는 부모의 기대심리가 반영되어 있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과외를 뱅뱅 돌리는 부모들 때문에 자녀들의 학원순례행렬은 늦은 밤까지 이어지고, 대학입시만을 위해 유치원 때부터 조련 당한다. 부모들은 미래를 담보로 자녀들에게 엄청난 양의 공부를 강요한다. 교육열에 눈이 먼 부모는 아이들에게 주어진 자유로운 시간을 빼앗아 집어삼킨다.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고 선택할 권리마저 박탈한다.

 

 

 

 

 

 

 

 

 

 

 

 

 

 

 

 

 

초등학생 이순영 양이 쓴 동시집 《솔로 강아지》(어린이가문비, 2015)가 잔혹성 논란으로 인해 전량 폐기되었다. 시집에 수록된 ‘학원 가기 싫은 날’은 지나치게 폭력적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학원에 가고 싶지 않을 땐
이렇게

 

엄마를 씹어 먹어
삶아 먹고 구워 먹어
눈깔을 파먹어
이빨을 다 뽑아 버려
머리채를 쥐어뜯어
살코기로 만들어 떠먹어
눈물을 흘리면 핥아 먹어
심장은 맨 마지막에 먹어

 

가장 고통스럽게

 

 

이 시 옆에 있는 삽화는 자극적이다. 죽은 엄마 보이는 여성 옆에 아이는 심장을 집어 든 채 음흉한 미소를 지으면서 독자를 바라본다. 아이 주변에 피가 낭자하다. 해당 출판사는 이 양의 동시집을 이렇게 소개했다. (개인적으로 논란이 되는 삽화가 잔인하다고 생각하기에 보고 싶은 분을 위해서 따로 '링크'를 걸어두겠다. 북플이 아닌 알라딘 서재로 로그인해서 '링크'라고 적힌 단어를 클릭하면 삽화를 확인할 수 있다)

 

 

때로는 섬뜩할 정도로 자신의 생각을 거칠게 쏟아내기도 하는데 시적 예술성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자신이 체험한 아름다운 세계에 대한 탄복과 함께 현실의 비정함에 대한 탄식들을 시로 쓰고 있다. 이것들은 어린이가 느끼는 정직한 반응으로서 어른에게도 성찰의 여운을 남긴다.

 

 

문제의 시와 삽화를 본 사람들은 표현의 자유 허용 수위를 넘어섰다고 해당 출판사를 향해 비난했다. 자녀가 있는 일부 학부모들은 이 책을 아이들에게 절대로 읽히고 싶지 않다며 분노했다. 반면 학생들은 삽화가 무서워도 시의 내용에 어느 정도는 공감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SNS에서는 출판사의 동시집 폐기 처분 결정에 대해 설왕설래하고 있다. 동시집의 삽화와 이 양의 문장 표현력이 어린이들이 보기에는 적절하지 않으므로 폐기 처분에 찬성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출판사의 폐기 처분 결정을 이 양의 창작 욕구를 억압하고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부당한 검열이라고 보는 이도 있다. 어떤 이는 잔혹한 느낌을 주는 동시를 쓴 이 양의 정신 상태를 걱정하기도 했다. 이 양을 ‘사이코패스’라고 맹렬하게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여기서 동시집 폐기 처분이 표현의 자유 범위와 관련하여 옳은 결정인지 나쁜 결정인지 내 의견을 피력하는 것을 보류하겠다. 정답 없는 문제를 둘러싸고 서로 옳다 그르다고 싸우다 보면 이 문제의 큰 논점을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진짜 논점은 이 양이 잔혹한 시를 쓰게 만든 배경을 파악하는 것이다. 이 양을 ‘사이코패스’라고 무조건 비난하기보다는 이 양이 자신의 내면에 있는 폭력성을 숨김없이 시로 표출하게 만든 원인을 이해해야 한다. 왜 이 양은 동심을 파괴하면서까지 고어 영화의 한 장면 떠올리는 시를 써야만 했을까?

 

성적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경쟁 위주의 입시교육은 이 양 같은 아이들의 마음을 멍들게 했다. 폭력의 기본속성은 경쟁을 유도하는 강제적 교육문화에 있다. 아이들은 협동적인 사회 구성원의 책무를 배우기 전에 경쟁의 치열함을 먼저 배우고 있다. 경쟁과 입시지옥에서 탈출구를 찾지 못한 아이들은 패배감과 좌절감을 떨쳐내지 못해 자신의 마음속에 폭력의 씨앗을 품는다. 입시교육제도의 올가미에 걸린 부모는 아이의 마음을 제대로 보듬어주지 못하고 있다. 학습 일정을 관리하는 담당 선생님이 되어 24시간 아이의 일상을 간섭하고 공부하라고 지시만 내린다. 부모의 강요에 계속 순응한다면 다행이지만, 이를 장기간 내버려두면 부모에게 반기를 들고 일탈에 빠질 수 있다. 자식을 향한 부모의 과도한 관심이 아이의 머릿속에 부모나 교육 현실에 더 반항적이고 적대적인 생각을 키운다. 불행한 역설이 아닐 수 없다.

 

 

 

 

  

 

 

 

 

 

 

 

 

 

 

 

 

※  《식인문화의 수수께끼》 한스 아스케나시 / 청하 (1995년, 절판)

 

 

옛날 티베트인이나 호주의 부족은 부모의 시체를 먹는 식인 풍습이 있었다. 효 문화에 익숙한 우리는 이들의 식인 풍습을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는 부모를 먹는 식인 풍습을 반인륜적이라고 비난해도 그들은 부모를 사랑하기 때문에 먹는다고 말한다. 부모와 자신을 일체화하는 의미에서 식인 풍습을 지키는 부족이 있다면, 반대로 사회적 처벌의 수단으로 식인행위를 하는 부족도 있다. 콩고의 카탕가 족은 죄인의 심장을 먹는다. 이들은 범죄를 저지른 것은 손이 아니라 심장이라고 생각했다. 솔로몬 군도에서는 적의 시체를 먹는 것이 복수에 걸맞은 행위로 여겼다.

 

‘학원 가기 싫은 날’은 입시교육에 지친 아이들의 적대심과 폭력성이 투영된 가장 잔인하면서도 서글픈 목소리다. 자식을 조종하는 부모는 아이들의 욕구에 맞추기보다는 자신들이 정해놓은 길을 강요하기 십상이다. 자식들에게 절대자로 군림한다. 자식이 자신의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너 잘 되라는 마음에서 공부를 시키는 거야”라고 말한다. 부모들은 그것이 ‘좋은 부모’로서의 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늘 억눌려야만 했던 아이들은 자유를 억압하고 경쟁을 강요하는 부모를 무서워한다.

 

 

친구들과 내기를 했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 말하기

 

티라노사우르스
지네
귀신, 천둥, 주사

 

내가 뭐라고 말했냐면
엄마
그러자 모두들 다같이
우리 엄마 우리 엄마
엄마라는 말이 왜 이렇게 되었을까?

 

(이순영,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

 

 

아이는 불만을 표출하는 데 그치는 반항심만으로 무서운 부모를 설득하지 못한다. 부모는 아이의 태도를 사춘기라고 가볍게 생각하고 무심코 넘길 뿐이다. 부모의 무관심과 강요는 주변 환경에 대한 아이들의 적대심을 키운다. 제우스는 자신을 잡아먹을 뻔한 아버지 크로노스를 공격하는 데 성공한다. 자신이 창조한 것마저 파괴하는 아버지의 광기 어린 욕심은 자식이 아버지를 기습하고 쓰러뜨리는 불행한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부모 욕심은 자식 농사뿐만 아니라 자식 인생마저 망쳐버린다. 이 양의 동시집을 자기 자식들에게 보여줘선 안 되는 불온서적이라고 발끈하는 부모들에게 묻고 싶다. 혹시 당신도 자녀의 소중한 자유를 집어삼켜 자녀의 인생을 송두리째 망치면서까지 자식 농사를 하는 '사투르누스/크로노스'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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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5-05-06 21:3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부모의 억압이 애들을 자살로 내모는 폭력임은 인지하지못하면서, 아이의 시가 본인들을 대상으로 잔인한 표현좀 썼다고 길길이 날뛰다니...정말 수준낮네요.
이 동시가 비극이 되는 순간은 잔인한 시구에 있는게 아니라 저런 수준낮은 불관용으로 반응하는 어른들이 입을 여는 순간입니다.

cyrus 2015-05-06 22:41   좋아요 0 | URL
이런 시를 어른들이 보면 양심에 찔려야 할 텐데 아이들의 고통을 모를 정도면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무뎌진 것 같습니다. 비극의 원인이 우리 어른들한테 있는데 말이죠.

2015-05-06 22: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5-07 17: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05-07 0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달 무슨 달 쟁반 위의 둥근 달... 뭐 이렇게 달달하게 써야 어른에게 칭창을 받겠군요.
위 시는 어른의 기대를 져버렸기 때문에 논란이 된 것 같습니다.
어떤 아이가 시를 썼는데 이런 내용이더라고요.

우리는 항상 태극기를 보면 반갑다고 인사를 하는데
태극기는 건방지게 인사를 한 적 없다

뭐. 이런 내용, 다시는 태극기에게 인사 안 할래... 요거거든요.
어른 기대에 맞춰 달달한 동시를쓰려는 아이보다는 차라리 이런 솔직한 시가
저는 더 낫다고 보여집니다. 저 시는 아마 내면의 반영일 겁니다.
제 조카도 보면 알지만 아... 정말 지옥입니다.
기숙사 학교인데 아침 6시에 기상 기숙사 숙소로 가는 시간은 새벽 1시....
여기서 끝이냐. 다시 밀린 숙제 공부... 이게 지옥이죠..

cyrus 2015-05-07 17:54   좋아요 0 | URL
저도 수능 세대를 겪었지만, 요즘 아이들이 저보다 더 고생하고 있어요. 이렇다 보니 아이들이 느껴야 할 정신적 압박감도 상당히 크고요. 이걸 제대로 표출하지 못하고 있어요. 공부 외에는 하지 말라는 게 너무나도 많으니까요.

책탐 2015-05-07 04: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를 위해서라고 말하겠지만 요즘 아이들은 참 힘들어 보입니다. 어른이 받는 만큼의 스트레스를 받을지 더 큰 스트레스를 받을진 모르겠지만 덜하진 않겠죠. 아이의 모든 모습은 잘못됐든 잘컸든 어른의 책임이 아닌가 싶네요.

cyrus 2015-05-07 17:55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이번 동시집 논란을 통해서 어른들이 반성해야 되는데. 이것 또한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잊히고 말 겁니다.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아이들의 폭력성이 또 다시 화두가 되겠죠.

fledgling 2015-05-07 05: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작 아무리 이런 비판적인 글을 보더라도 아랑곳하지않고 계속 고집하는 부모가 있죠. 어른들은 죽지않을 만큼만 고생시키려는 것 같은데 그러다 진짜 죽어 뒤늦게 후회해도 소용없는 것...

cyrus 2015-05-07 17:58   좋아요 0 | URL
이런 유형의 문제가 과거에도 반복했는데 입시제도의 폐해를 고치지 않는 이상 반성하는 부모를 찾아보기 힘들 겁니다. 교육제도의 폐해를 알고 있어도 거대한 제도가 작동되는 현실을 거스를 수 없는 점이 문제입니다.

올리브 2015-05-07 1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것들은 어린이가 느끼는 정직한 반응으로서 어른에게도 성찰의 여운을 남긴다.>????

제발 교육현실의 문제를 지적하기 전에 모두들 먼저 생각을 해보자. 어린이가 쓴 시를 출판사가 부모의 동의없이 마음대로 출판할 수 있었는지를. 이것부터 앞뒤가 맞지않는 상황아닌가.
저 시를 쓴 것이 정말 저 아이의 자기 부모에 대한 정직한 반응이라면, 아이를 저지경이 되도록 몰아붙인 부모가, 자기를 잡아먹겠다는 시를 잘썼다고 출판하자는데 동의했다는게 말이 된단 말인가? 아니면, 본인의 경험이 아니라면 절박하지도 않은데 저런 극악한 표현을 하는 것이 정상인가?

정황상 절대 이건 아이의 머리에서 나온 순수한 작품일 수가 없다. (순수한 작품이라도 문제지만) 자기 자식 이름 팔아서 선정적 이슈 장사로 돈에 눈이 먼 부모와 출판사의 합작품일 뿐이다.

cyrus 2015-05-07 18:07   좋아요 0 | URL
사실 저도 출판사의 서평 내용이나 문제의 삽화 그리고 이 동시집 출간을 허락한 부모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당연히 저도 처음에 올리브님처럼 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선정적인 논란을 불러일으킬 것을 알면서도 ‘예술’로 포장하여 장사하는 출판사와 이를 동의해준 부모가 나빴어요. ‘학원 가기 싫은 날’은 동시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어요. 저는 이 시가 예술적으로 좋다고 생각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이 글에서 동시집이 예술성 있다는 식으로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교육제도에 지쳐서 극도의 불만을 가지도록 만든 부추기는 어른의 방관적 태도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stella.K 2015-05-07 11: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침 방송에서 나와 나도 뭔가 좀 놀랐다.
그 아이 엄마가 책 전량 폐기에 대해 가처분 신청을 냈다고 하더군.
아이의 문제가 된 시 한편 가지고 전량을 폐기한다는 건 용납할 수 없다고.
맞는 얘기긴 하지. 하지만 방송에선 시 한 편만 문제가 아니라 7,8편 정도
문제가 된다고 하더군.
부모에 대한 적대감은 누구나 다 있는 것 같긴해.
문제는 그걸 솔직히 표현한 것과 표현하지 못한 것의 차이일수도 있겠다 싶기도 하지만
솔직히 시가 좀 으시시 한 것도 사실이네.
출판 보호 협횐지 뭔지 하는 기관에선 어린이 출판물은 심의 대상이 아니라
이건 출판사가 알아서 걸러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하는데 참 거시기 하다.
어쩌다 이지경까지 왔는지...

cyrus 2015-05-07 18:14   좋아요 1 | URL
논란의 문제가 복잡하게 흘러가는군요. 저는 아이 엄마의 반응에 대해서 자세히 확인하지 못해서 엄마의 가처분 신청이 옳은 일인지 잘못된 일인지 판단하기 어렵네요. 그래도 엄마의 태도가 이해가 되지 않아요. ‘학원 가기 싫은 날’에서 드러난 아이의 심리 상태를 보고도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해요. 가처분 신청이 아이의 입장을 더욱 곤란하게 만들 거예요.
 

 

 

 

 

 

 

따뜻해야 할 5월의 날씨답지 않게 어제는 보슬비가 온종일 지루하게 내렸다. 메이웨더와 파퀴아오는 폭풍 주먹 제대로 날리지 않은 채 지루하게 경기를 끝냈다. 허무함만 남긴 먹튀 대결에 된 이 경기를 보지 않아서 다행이다. 이사 가는 친구가 이삿짐 옮기는 일을 부탁하지 않았더라면 이 경기를 TV로 끝까지 봤을 것이다. 메이웨더와 파퀴아오가 링 위에서 지루한 주먹 교환만 하고 있을 때 나는 친구의 짐을 새집에 옮기는 것을 도와줬다. 고등학생 때부터 처음으로 만나 지금까지도 연락하고 지내는 10년 지기 친구의 부탁이라서 단번에 거절할 수가 없었다. 이 친구는 며칠 전에 여자 친구와 혼인 신고를 하고, 한집에서 같이 살게 된다. 이제부터 그들은 부부가 된 것이다.

 

 

 

 

 

 

 

 

 

 

 

 

 

 

 

 

 

친구도 나처럼 책 읽는 것을 좋아한다. 다만, 즐겨 읽는 책은 다르다. 친구는 판타지소설을 즐겨 읽는다. 가지고 있는 판타지소설의 양은 많지 않지만, 시리즈 전권을 모은 것도 꽤 있다. 반면, 제수는 만화책을 좋아한다. 특히 일본 만화에 관심이 많다. 책을 읽고 사 모으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100% 공감할 것이다. 이사를 할 때 많은 양의 책을 옮기기가 쉽지 않다. 집의 공간이 좁더라도 자신이 모은 책을 끝까지 보관하고 싶은 것이 애서가의 마음이다. 《장서의 괴로움》(정은문고, 2014)의 저자 오카자키 다케시는 이사야말로 책을 처분할 기회라고 말하지만, 정작 자신은 책을 팔고 남은 돈으로 새 책을 산다. 이처럼 애서가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장서량이 어느 한도를 넘어서게 되면 고민이 될 수밖에 없다. 세상은 넓고, 책은 많지만, 책장은 좁디좁기 때문이다. 특히 각각 다른 공간에서 생활했던 남녀가 하나의 공간으로 합쳐질 때 책은 존폐의 위기에 처하게 된다. 앤 패디먼의《서재 결혼 시키기》(지호, 2002)는 ‘책의 결혼’이 극적으로 성사되기까지 겪게 되는 갈등적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앤과 남편 조지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서 결혼을 하면서 자신이 혼자 살 때 가지고 있었던 책을 모두 공동의 공간으로 가져왔다. 그런데 문제는 장서를 보관하는 방식이 서로 달랐다. 앤은 자신이 정한 분류에 맞춰서 책을 꽂는 ‘세분파’라면, 조지는 분류에 신경 쓰지 않고 아무 곳이나 책을 꽂는 ‘병합파’다. 두 사람은 분류 방식을 통일하기 위해 합의를 봤고, 그 과정에 서로 의견이 충돌하는 일이 잦았다. 앤은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연대기 순으로 정리하는 것을 원하지만, 조지는 셰익스피어의 작품 발표 연도가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는 근거를 내세우면서 앤의 장서 보관 방식을 반대한다. 

 

어제 친구와 제수는 새 보금자리에서 ‘책의 결혼식’을 거행했다. 결혼식 거행에 앞서 나는 주례사를 자처하여 두 사람의 서재를 축복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두 사람이 원하는 장서 보관 방식을 알아봤다. 친구와 제수가 원만하게 책을 정리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로 했다. 친구는 조지처럼 병합파다. 그가 가진 책들은 전부 다 판타지소설이라서 주제를 분류하면서까지 책을 꽂을 필요는 없다. 그렇지만 제수의 생각은 달랐다. 세심파는 아니었지만, 자신이 가장 아끼고 좋아하는 만화책이 눈에 띌 수 있도록 꽂히기를 원했다. 보기 좋게 깔끔히 정리된 서재를 선호했다. 두 사람 다 고집이 센 편이라서 이들을 만족하게 해줄 타협안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오랜 고민 끝에 나는 최대한 형수의 취향을 고려하는 방향으로 책을 정리하기로 했고, 완결된 판타지소설과 만화책은 책장 맨 위 칸에 꽂을 것을 제안했다. 형수는 황미나의 《레드문》구판 시리즈 전권(2000년 서울문화사에서 나온 구판의 권수는 총 18권이며 애장판은 총 12권으로 이루어졌다)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만화에 문외한이지만, 황미나의 명성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다. 2004년에 나온 애장판마저 절판인 데다가 이미 오래전에 판이 끊긴 구판 전권을 모두 가지고 있다는 것은 만화를 정말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모으기 힘든 일이다. 그래서 나는 《레드문》 시리즈를 사람들의 눈에 많이 띌 수 있는 칸에 꽂고 싶었다. 책장 맨 위 칸의 높이는 보통 어른 키만 하므로 책장을 볼 때 시선이 가장 먼저 그곳으로 향하게 된다. 그 옆에는 친구가 아끼는 판타지소설 시리즈를 꽂았다. 신기하게도 친구와 제수의 애장도서가 처음으로 만나서 합방한 맨 위 칸에 남은 공간이 생기지 않았다. 책들이 딱 맞게 꽂혔다.

 

제수는 《레드문》 18권을 첫 번째 칸에 보관하는 나의 제안에 무척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알고 보니 이 책에 두 사람 간의 애정 관계를 증명할 수 있는 추억이 숨어 있었다. 친구와 제수가 한창 뜨겁게 연애를 하고 있던 시절에 제수는 《레드문》을 소장하는 것이 소원이었다. 그녀의 소원을 알고 있었던 친구는 수소문 끝에 구하기 힘든 그 만화책을, 그것도 전권을 사는 데 성공했다. 제수는 자신의 소원을 이루어준 친구의 모습에 무척 감동했고, 지금도 이 《레드문》을 가장 아끼는 만화책으로 여기고 있다.

 

애서가에게 책은 ‘사랑’의 대상이다. 애인 다루듯 소중하게 읽고 간직해야 한다. ‘책을 사랑한다’는 것은 책의 내용이나 독서 행위를 사랑한다는 의미를 넘어 책이라는 사물 그 자체를 사랑한다. 그러나 책에 대한 취향만큼은 모든 애서가가 다 똑같을 순 없다. 책을 다루는 습관이 서로 다르면 갈등이 드러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서로 간의 독서 취향을 존중하고 반영할 수 있도록 합의점을 찾아야 한다. 상대방의 독서 취향이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불경의 표시를 보이면서 무시하는 반응은 애서가가 경계해야 할 자세다. 상대방의 독서 취향을 포용하는 것도 그 나름대로 책을 사랑하는 방법일 수 있다. 당신이 애서가라면 스스로 자문해야 한다. “나는 책을 얼마나 사랑하는가?”가 아니라 “나는 사랑하는 사람의 책을 얼마나 사랑하는가?”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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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5-05-04 2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셰익스피어 대필작가가 4명이란 소리도 있던데, 작품 진위여부까지 따지는 부부가 있다면 서재이혼소송까지 갈지도요ㅎㅎ
그러니까 이삿짐 옮기는 것보다 책정리 전문가로? 이거 괜찮은 직업일수도ㅎ

cyrus 2015-05-05 15:33   좋아요 0 | URL
책을 좋아서 그런지 책정리는 귀찮게 생각하지 않아요. ㅋㅋㅋ

북다이제스터 2015-05-04 2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로 다른 독서 취향의 존중... 깊게 공감합니다. 하지만 독서를 하는 그 날이 먼저 오길 기대해 봅니다.

cyrus 2015-05-05 15:39   좋아요 0 | URL
네, 맞습니다. 요즘 책이 많은 집을 볼 수가 없습니다.

에이바 2015-05-04 2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패디먼 글에서 책을 다룰 때 궁정파 연인이랑 육체파 연인으로 나누는 것도 감명 깊었어요. 전 궁정파인데 싸이러스님은 어떤 연인이신가요 ㅎㅎ

cyrus 2015-05-05 15:41   좋아요 0 | URL
저도 궁정파입니다. 책에 조금이라도 접히는 걸 싫어합니다. ^^;;

게으른독서가 2015-05-04 23: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의 결혼식이라, 책을 다루는 습관이 달라 생길 수 있는 갈등에 대해 생각해 본적이 없었는데... 정말 그러네요. 합의점을 찾는게 쉽지 않을 것 같아요. ˝4주에 뵙도록 하겠습니다˝란 말을 들을지도... ㅎ

cyrus 2015-05-05 15:45   좋아요 0 | URL
<서재 결혼 시키기>의 저자 앤 패디먼도 남편과 장서 보관 방식에 대해서 합의점을 찾지 못해서 부부 생활에 위기가 찾아왔다고 고백했어요.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결혼할 때 앤의 경험을 가볍게 봐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

수이 2015-05-04 2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경기 보지 못했는데 어쩐지 승리한 기분이라니 ㅋㅋ 음 좋은 일 했는데_ 결혼해서 책 처음 뒤섞고 정리할 때 생각나서 잠깐 짜릿했어. 신혼 기분을 만끽해주는 이 페이퍼 아주 굿이오!

cyrus 2015-05-05 15:48   좋아요 0 | URL
누님은 형님이랑 책 보관 때문에 싸운 적 없어요? 형님도 책 엄청 좋아하잖아요. 지민이도 두 분처럼 책 좋아하면 이거 행복한 고민에 빠지겠어요. 앞으로 책 정리하기가 힘들어질 거예요. ㅎㅎㅎ

수이 2015-05-05 23:42   좋아요 0 | URL
지민이도 책 욕심은 많아_ 아직까지는 괜찮은데_ 그리고 생각보다 우리는 책이 그다지 많지 않아, 다만 난 다시 읽을 책이 아니다 싶으면 선물도 하고 중고서점에도 잘 갖다 파는데 비해 남편은 일단 자기 품에 들어온 책은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는 것조차 싫어하는 소장파? 그래서 이번에 이사할 때도 내 책은 많이 처분했지_ 네 매형이 알면 난리법석 피울 거 알아서 조용히 팔았는데 눈치챈듯_ 책이 왜 이렇게 조금이야? 하더라고 ㅋ

transient-guest 2015-05-05 06: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메이웨더-파퀴아오 경기를 재미있게 봤어요. 다만 메이웨더가 너무 도망다니기 바쁘고, 둘 다 뚜렷산 우세가 없었기 때문에 UFC였다면 아마 무승부로 처리되었을 것 같습니다. 6년전, 파퀴아오가 전성기 때 싸웠다면 메이웨더는 KO패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친구분 부부의 이야기는 사람과 서재가 모두 각각의 상대와 결혼하는 듯해서 재미있습니다.ㅎㅎ 그걸 도운 님도 대단한 듯..

붉은돼지 2015-05-05 0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결혼식의 주례(?)를 보시다니 정말 멋지고 보람찬 일입니다 ㅋㅋㅋ
레드문도 빨리 재출간되었으면 좋겠어요^^

cyrus 2015-05-05 15:53   좋아요 0 | URL
게스트님은 복싱 경기를 보는 것을 좋아하시는군요. 사실 저는 세기의 대결이라는 광고에 혹해서 무척 궁금해서 경기를 보려고 했던 복싱 문외한입니다. ^^;;

저는 그 날 이삿짐 정리를 얼른 끝내고 집에서 푹 쉬려고 했는데, 생각지도 못하게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됐어요. 저뿐만 아니라 두 사람도 이 날을 잊지 못할 겁니다. ㅎㅎㅎ

지금행복하자 2015-05-05 0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레드문 저렇게 귀한 책인줄 모르고 20년지기 친구한테 선물로 줘버렸죠~ 오래되서 누렇게 변했는데도 주라고 계속 졸라대서 ㅎㅎ

cyrus 2015-05-05 15:55   좋아요 0 | URL
아.., 정말 후회 많이 했겠어요. 귀한 책이라서 중고가도 높아졌을 겁니다.

2015-05-05 10: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5-05 15: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낭만인생 2015-06-20 16: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게 읽었던 두 권입니다. cyrus님의 글을 통해 보니 더 반갑네요.

cyrus 2015-06-20 22:54   좋아요 0 | URL
두 권의 책은 독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꼭 읽어봤을 것입니다. ^^
 

 

 

이틀 전에 대구 도시철도 3호선이 개통했다. 국내 처음 지상으로 운행되는 무인 모노레일이다. 모노레일을 직접 타봤는데 탁 트인 시야에, 풍경을 즐길 수 있다. 승차감도 좋았다. 도시철도 3호선을 타면 1시간 이상 걸리던 거리를 40분 만에 이동할 수 있다고 한다. 차량을 불연재로 제작했고, 화재가 발생하면 자동으로 물이 분사되는 소화설비도 갖췄다고 하지만 기관사 없이 운영되는 전동차에 안전사고가 일어나면 신속하게 대처할 수 있을지 조금은 걱정이 된다.

 

모노레일 구간은 대략 10m 정도 높이가 되는 지상에 만들어져 있다. 이제는 어딜 가면 도로 한가운데 수직으로 우뚝 솟아있는 모노레일 구간을 볼 수 있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모노레일 구간이 놓인 도로가 낯설다. 길을 지나가다가 모노레일이 지나가는 소리에 나도 모르게 고개가 그쪽으로 향한다. 모노레일이 지나가지 않을 때 바라보는 모노레일 구간은 땅에 박힌 거대한 콘크리트 기둥 같다. 모노레일이 없었던 예전 도로의 모습을 지금의 모습과 비교하면 상당한 차이점을 느낄 수 있다. 도로 한가운데에 일렬로 쭉 세워진 구간 기둥이 건너편 보도의 풍경을 바라볼 수 있는 시야를 방해한다.

 

나는 버스를 타면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기보다는 유리창 밖으로 펼쳐지는 도시 풍경을 본다. 버스를 타고 창밖 풍경을 쳐다보는 일이 즐겁다. 버스를 타다가 괜찮은 가게를 우연히 발견할 때가 있다. 도심을 조금 벗어나 교외로 접어들면 도시에서 볼 수 없는 고요하고 아늑한 전원 풍경을 볼 수 있다. 그런데 모노레일 구간이 생기면서부터 버스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도시 풍경을 감상하기가 힘들어졌다. 내 눈에는 거대한 기둥이 풍경의 절반을 가린다. 탁 트인 풍경을 바라보는 좋아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답답하게 느껴진다. 대구 도시철도 관계자는 모노레일을 타면 경치 좋은 곳에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포토존을 설치하고, 도심 관광지를 한눈에 둘러보는 관광 프로그램을 만들 예정이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버스 이용에 익숙해서인지 모노레일을 타면서 바깥 풍경을 즐기는 것이 낯설다. 버스처럼 좌석에 앉아서 창밖으로 편하게 보는 것을 좋아한다. 3호선 모노레일을 포함한 지하철 좌석은 중앙 통로를 중심으로 양쪽에 서로 마주 보도록 배치되었기 때문에 창밖 풍경을 보기가 불편하다. 지하철 풍경을 제대로 즐기려면 지하철을 서서 타야 한다.  

 

 

 

 

 

 

 

 

 

 

 

 

 

 

 


 
일본 도쿄에 가면 지상 모노레일을 볼 수 있다. 히요리게다를 신고 산책하는 것을 좋아했던 작가 나가이 가후가 도쿄 시가지를 지나가는 모노레일을 봤다면 어떤 심정으로 글로 기록했을까? 하늘을 나는 것 같은 열차가 신기하게 느껴지면서도 한편으로는 예전 도시 외관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낯선 문명으로 변해버린 도쿄의 모습에 엄청난 충격에 빠졌을 것이다. 가후는 도시 아무 곳이나 자라나는 풀과 나무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그것들도 도시 외관을 아름답게 만드는 풍경의 일부로 보았다.

 

 

일본이 이 땅에서 자라는 고유 식물에 대해 최소한의 심오한 애정이라도 갖고 있다면, 아무리 서양문명을 모방한다 할지라도 오늘날처럼 고국의 풍경과 건축을 함부로 훼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전선을 잇는 데 불편하다는 이유로 아무 거리낌 없이 길가의 나무를 베고, 사랑받아온 풍광이든 유서 깊은 나무든 전혀 개의치 않고 붉은 벽돌집을 높다랗게 지어버리는 오늘날 작태는 실로 자국의 특색과 예부터 계승해온 문명을 뿌리부터 파괴하는 난폭한 행위다. (나가이 가후 《게다를 신고 어슬렁어슬렁》 중에서, 48쪽)

 

 

가후가 걸어 다니면서 바라봤던 백 년 전의 도쿄는 서양문명을 모방하려고 과거의 미를 난폭하게 훼손하고 있었다. 가후는 《게다를 신고 어슬렁어슬렁》(원제: 히요리게다 / 정은문고, 2015)을 통해 도시가 발달할수록 자연 풍경의 미를 소중히 보존해야 한다고 누누이 강조했다. 도시 속 자연 풍경도 도시의 품격을 높일 수 있는 랜드마크가 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자연 풍경이 점점 사라지면 도시는 예전 모습을 되찾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한가롭게 걸으면서 풍류를 즐기는 자세마저 잊어버리게 된다. 가후는 산책의 미학을 아는 최후의 도시인이었다. 요즘 길의 주인은 사람이 아니다. 자동차다. 도심을 걸어보면 수많은 신호등이 사람의 보행을 방해한다. 바퀴를 위한 길들은 넓고 단단하다. 목적지에 일찍 도착하기 위해서 땅 밑으로 지나가는 지하철을 이용한다. 발바닥을 위한 길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법정 스님도 개발 도상이 한창이던 시절에 시골의 정취가 사라지고, 보행의 반경마저 좁아지는 세상의 변화를 걱정했다. 《무소유》(범우사, 1999)에 수록된 ‘흙과 평면 공간’이라는 제목의 경수필은 1972년 중앙일보에 발표되었다. 스님에게 걷기는 단순한 몸의 동작이 아니라 활발한 사고 작용이 이루어지는 행위다. 즉 걷기는 온몸으로 표현되는 ‘생각하기’에 가깝다. 스님은 ‘수직 공간’에 속하는 아파트와 엘리베이터가 보편화할수록 우리 삶은 편리하게 되지만, 탁 트인 ‘평면 공간’을 걸으면서 흙의 기운을 느낄 기회가 사라진다고 말한다.

 

문명이 편리해지고 좋아지면, 흙과 평면 공간은 잃어버리게 된다. 바퀴에 의지하지 않고 살던 시절 사람의 발가락은 돌과 자갈, 흙길의 촉감을 느낄 줄 알았고, 눈으로 자연 풍경을 확인해야 마음이 편안했다. 지상 모노레일이 전국에 개통된다면 스님이 불편하게 여겼던 현대 문명의 ‘수직 공간’이 도시를 지배하게 될 것이며 도시를 산책할 기회가 우리 삶에 더 멀어질 것이다. 두 발로 걸을 때 머리와 가슴은 자유로워진다. 걷기는 발바닥을 위한 아니, 가슴과 머리에 이로운 건전한 행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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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5-04-25 1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풍경도, 냄새도, 소리도 점점 미워져서 걷기보다 어서 차를 타고 빨리 들어가자 하는 여러 날이라 참 공감됩니다

cyrus 2015-04-26 23:23   좋아요 0 | URL
세상이 미워질 때 혼자 피할 수 있는 안락한 공간에 있으면 좋은데 이런 곳을 찾기가 쉽지 않네요.

만병통치약 2015-04-25 2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지난 주말에 간만에 유딩 아들하고 지하철이랑 버스탔는데 둘이 같이 사람구경하느라 정신없었습니다. 동대문 보여주려고 일부러 돌아가는 코스로 잡았는데 계속 졸더군요 ㅋㅋ 요즘은 예전에 비해서 돌아다닐 곳이 많아진듯합니다.

cyrus 2015-04-26 23:25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 돌아다닐 곳이 많아지고, 사람들이 이 곳을 알고 찾아가니까 성황을 이루는 것 같습니다. ^^;;

보슬비 2015-04-25 2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핸드폰도 놓고 다니면 참 좋아요. 가끔씩 잊고 돌아다닐때가 있는데, 왠지 모를 해방감이...ㅋㅋ
음식도 풍경도 오로지 제 기억으로만 간직하는것도 나쁘지 않았어요. ^^

cyrus 2015-04-26 23:26   좋아요 0 | URL
네. 저도 되도록 스마트폰을 멀리하려고 노력합니다. 스마트폰 접속 횟수를 줄이니까 책 읽는 시간이 늘어났어요. ^^

붉은돼지 2015-04-26 0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그래도 오늘 혜림씨랑 3호선 타러 갈려다 다른 일정 때문에 못갔어요...

타본 다른 분 말씀은 케이블카 타는 기분이라고 ㅎㅎㅎ

cyrus 2015-04-26 23:28   좋아요 0 | URL
혜림양이랑 같이 타보세요. 아주 좋아할 겁니다. 너무 좋아서 내리기 싫을 정도였어요. ㅎㅎㅎ

transient-guest 2015-04-29 05: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모노레일이라니, 참 멋들어진 것이 생겼네요.ㅎ 놀이공원에서만 타보던 것을요.. 녀석을 타고 대구시내를 한 바퀴 돌면서 이런 저런 생각에 잠기는 것도 즐겨볼만한 풍류가 아닌가 싶네요.

cyrus 2015-04-29 22:34   좋아요 0 | URL
그런데 모노레일을 직접 타보면 평소에 타던 지하철보다 좁다는 느낌이 들어요. 그래서 밖을 내다보면서 느낄 수 있는 풍류가 오랫동안 지속되지 않다는 것이 단점이에요. ㅎㅎㅎ
 

 

 

 

 

 

 

 

 

 

 

 

 

 

 

 

 

신부의 얼굴은 완전히 그늘 속에 잠겨 있으나, 그의 뒤로부터 저물어 가는 햇빛이 그의 움푹 팬 관자놀이와 두개고의 곡선을 감촉했다. (173쪽)

 

⇒ 《젊은 예술가의 초상》에 나오는 문장을 인용한 내용. '두개고'를 '두개골'로 고쳐야 한다.

 

 

스티븐은 또한, 교장의 성의(聖衣)의 스치는 소리를 듣는데, 이는 도란 신부와 그의 회초리에 대한 초기의 장면을 반영한다. (173쪽)

 

⇒ '교장의 성의가 스치는 소리를 듣는데'라고 고쳐야 한다.

 

 

 

 

 

 

졸라 작의 『결작』에서 센 강의 풍경 묘사와 비교하라 (175쪽)

 

⇒ 괄호에 들어있는 문장이라서 읽는 과정에 그냥 지나치기 쉽다. 『L'Œuvre』은 프랑스 자연주의 소설가 에밀 졸라가 쓴 루공마카르 총서 6번째 작품이다. 우리말로 풀이하면 '작품', '걸작'이다.

 

 

 

 

 

 

조이스의 이전 - 작가인 도스토옙스키는 그의 『백지』에서 당나귀의 울음소리를 "가청적 에피파니"로, 조이스의 이후 - 작가인 카뮈는 그의 『이방인』에서 목사의 설교하는 모습을 "가시적 에피파니"로 각각 매개한다. (184쪽)

 

⇒ 도스토예프스키의 유명한 소설 제목을 잘못 적은 것은 심각하다. '백지'가 아니라 '백치'다.

 

 

헤인즈는, 그러한 암시에 의하여 솔직히 좌절되어 있으며, "책임을 저야 할 것은 역사인 것 같아." (220쪽)

 

⇒ '책임을 져야 할 것'으로 고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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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병통치약 2015-04-21 2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타도 오타지만 문장도 매끄럽지 못한데요. 두개골의 곡선? 감촉했다 ?? 원어가 뭔지 모르겠지만 더 자연스러운 우리말이 오면 좋을 것 같네요.

cyrus 2015-04-22 16:07   좋아요 0 | URL
생각의나무 출판사에서 나온 김종건 역 <율리시스>를 읽고 있는데, 직역을 해서 그런지 읽기가 불편했습니다.

fledgling 2015-04-21 2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문학사 안되겠네!~ 교정검열 제대로 안하고 책내나요... 좀 많네요ㅋ

cyrus 2015-04-22 16:10   좋아요 0 | URL
오자가 생각보다 너무 많습니다. 아직 읽지 않은 장수도 있는데, 하루에 <제임스 조이스 문학 읽기>를 읽으면 오자가 최소 다섯 개 이상은 발견합니다. 문장도 이상하고요. ^^;;

transient-guest 2015-04-23 0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번역이 매끄럽지 못한 부분은 경우에 따라서 이유가 있을수도 있지만, 오자는 좀 심하네요.

cyrus 2015-04-23 16:23   좋아요 0 | URL
<율리시스> 한 장씩 읽을 때마다 해설서도 같이 읽는데, 오자를 찾느라 시간을 허비하는 것 같습니다. ^^;;


AgalmA 2015-04-23 05: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품 오자는 정말 기본도 안되어 보입니다.
저는 개정판 [안티 오이디푸스] ˝펠릭스 과타리˝ 표기를 보고 슬펐습니다ㅜ 남미 과일 이름 같고 흑흑.. 그동안 가타리라고 불렀던 건 다 뭐가 되는 건지...

cyrus 2015-04-23 16:25   좋아요 0 | URL
과타리가 국제학술대회에서 사용되는 표기법이라고 한다해도 오히려 예전 표기가 더 자연스럽고 친숙하게 느껴집니다. ^^
 

 

 

 

 

 

 

 

 

 

 

 

 

 

 

 

 

 

 

 

1941년 아일랜드의 소설가 제임스 조이스는 58세의 나이로 스위스 취리히에서 숨을 거두었다. 1904년 운명의 여인 노라 바너클과 함께 더블린을 떠난 이후부터 조이스는 영국, 프랑스, 스위스, 이탈리아 등에서 거주했다. 1909년에 더블린을 두 차례 방문한 적은 있으나, 오래 머물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가 남긴 소설들의 무대는 더블린이다. 더블린의 아일랜드식 이름은 벨리아 클리아(Balie Atha Cliath)다. 우리말로 풀이하면 ‘울타리를 친 여울의 마을’이라는 뜻이다. 세계 시민주의자 조이스에게 더블린은 답답하기 짝이 없는 무미건조한 도시였다. 조이스는 작가가 되고 싶은 열망에 사로잡혀 더블린 사방에 둘러친 울타리를 넘고 싶었다. 자신의 분신이자 《젊은 예술가의 초상》의 주인공 스티븐 디덜러스처럼 말이다. 그래도 조이스는 더블린에 대한 애정을 잊지 않았다. 중년의 조이스는 더블린에 돌아갈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러자 조이스는 더블린을 절대로 떠난 적이 없다고 대답했다. 그는 자신의 고향이 제임스 조이스라는 이름과 함께 불리는 불멸의 장소가 될 것을 예고했다. “내가 죽으면 내 심장에 더블린이라고 새겨져 있는 걸 보게 될 겁니다.”

 

더블린 삼부작 《더블린 사람들》, 《젊은 예술가의 초상》, 《율리시스》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조이스의 삶을 먼저 아는 것이 좋다. 조이스는 기억력이 좋은 편이라서 유년 시절의 사소한 기억까지 복원하여 소설에 삽입했다. 《젊은 예술가의 초상》은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기 디덜러스가 혀 짧은 발음으로 등장하는 장면으로 특이하게 시작한다. 스티븐의 아버지는 아기 디덜러스에게 ‘음매 소’가 턱쿠 아기를 만나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실제로 조이스의 아버지는 어린 조이스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고 한다. 조이스는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들었던 옛이야기를 잊지 않고 《젊은 예술가의 초상》의 첫 장면으로 넣었다. 디덜러스는 《율리시스》에 다시 등장하기도 한다. 더블린 삼부작은 더블린을 위한 이야기인 동시에 조이스의 자전적 소설이라 할 수 있다.

 

 

 

 

 

 

 

 

 

 

 

 

 

 

 

 

리처드 앨먼의 《제임스 조이스》(책세상, 2002)은 조이스의 삶과 문학, 사유의 궤적을 방대한 자료를 통해 충실하게 정리한 조이스 전기다. 그러나 1권만 품절 상태라서 도서관에 대출해서 읽어보려고 했다. 놀랍게도 대구에 있는 모든 공공도서관에 단 한 권도 소장되어 있지 않았다. 어차피 두 권으로 된 조이스 전기를 끝까지 읽지 못할 것으로 생각하기에 일단 가벼운 워밍업 차원으로 ‘하룻밤의 지식여행’ 28번째 책으로 나온 데이비드 노리스의 《조이스》(김영사, 2006)를 참고했다. 조이스의 얼굴과 코를 유난히 길게 묘사하여 남근이 연상되는 칼 플린트의 그림이 인상적이다. 책의 분량은 얇지만, 조이스의 인생과 작품세계를 알기 쉽게 정리했다. 조이스의 더블린 삼부작과 난해하기로 유명한 작품으로 알려진 《피네간의 경야》보다 재미있다. 조이스의 소설이 어려워서 읽고 싶지 않은 독자는 조이스가 어떻게 살았는지도 관심을 가지지 않을 것이다. 조이스는 자신의 삶뿐만 아니라 자신이 살았던 더블린마저 소설로 옮기려고 시도했으니 소설 같은 삶을 살았다고 해야 맞을 것 같다. 조이스의 삶 절반을 알고 있다면, 조이스의 소설 절반을 이해한 것과 같다. 소설보다 재미있는 조이스의 삶을 알게 되면 그의 매력에 푹 빠질 것이다.

 

 

 

 

1. 조이스의 학력사항

 

조이스는 학창 시절을 가톨릭 수도회의 하나인 예수회 계통 학교에서 보냈다. 초등학교에서 대학교까지 모두 예수회와 밀접하게 관련 있는 곳이었다. 여섯 살에 클론고우즈 우드 소학교에 입학했고, 벨비디어 중학교를 거쳐 국립 더블린 대학에서 공부했다. 조이스의 학력사항은 굳이 외울 필요가 없다. 《젊은 예술가의 초상》을 여러 번 읽게 되면, 자연스럽게 외우게 된다. 왜냐하면 《젊은 예술가의 초상》의 주인공 스티븐의 학력사항도 클론고우즈 우드 소학교, 벨비디어 중학교, 더블린 대학이니까.

 

 

 

2. 총선에 떨어진 맥주 사장의 후손 

 

 

 

 

조이스의 아버지 존 스태니슬라스의 전성기는 아일랜드 정계에 뛰어들었던 시절이었다. 더블린의 통일 자유 클럽의 서기로 1880년 4월 총선에 승리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 총선에서 보수당 의원 두 명이 낙선되었는데, 그중 한 명이 아서 기네스였다. 그의 선조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맥주 회사 ‘기네스’를 설립했다. 기네스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하프는 아일랜드의 상징이기도 하다.

 

 

 

3. 노라~ 너를 다시 만날 거야~♬

 

젊은 조이스는 노르웨이의 극작가 입센에 큰 영향을 받아 ‘드라마와 인생’이라는 논문을 집필했다. 이때 당시 입센은 아일랜드 내에서 반체제 작가로 인식되어 있어서 조이스는 입센을 옹호하는 논문으로 동급생들로부터 거센 비난을 받아야 했다. 입센의 대표작 《인형의 집》의 여주인공 이름은 노라다. 조이스의 반려자 이름은 노라 바너클이다.

 

 

 

4. 1904년 6월 16일

 

조이스가 노라가 운명적으로 만난 날은 1904년 6월 10일이다. 노라의 미모에 푹 빠진 조이스는 6월 16일에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청했고, 단둘만의 데이트가 이루어졌다. 몇 년 후, 조이스는 특별했던 만남의 날을 잊지 않기 위해서 단 하루 동안 벌어지는 이야기로 구성된《율리시스》 속 날짜를 1904년 6월 16일로 정했다. 조이스와 노라가 본격적으로 연애하게 된 날짜는 《율리시스》를 기념하는 블룸즈데이가 되었다. 더블린 사람이라면 자신의 생일과 블룸즈데이를 꼭 기억한다. 매년 6월 16일이 되면 더블린에 조이스의 문학을 조명하는 학술대회가 개최되고, 더블린 시민들과 조이스 열렬 독자들은 《율리시스》 의 블룸이 하루 동안 돌아다녔던 더블린 시가지 전역을 둘러보는 행사에 참여한다. 알고 보면 조이스는 노라만 바라볼 줄 아는 로맨틱한 남자였다. 그러나 노라는 《율리시스》의 문학성에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특히 《율리시스》의 몰리 블룸(레오폴드 블룸의 아내)을 자신을 모델로 삼은 사실에 강하게 부정했다. 노라는 몰리 블룸을 ‘꼴사나운 뚱뚱한 추녀’라고 언급했다. 

 

 

 

5. 《율리시스》의 출판 뒷이야기

 

 

 

 

 

《율리시스》는 외설적이라는 이유로 영국, 미국에서 출간 금지 처분을 받았고, 꽤 오랫동안 출판을 미뤄야만 했다. 아무도 《율리시스》의 원고를 받아주는 출판사가 없었다. 그러다가 조이스는 프랑스 파리에서 실비아 비치라는 후원자를 만나게 된다. 그녀는 문학을 사랑하는 서점 운영자였고, 《율리시스》가 프랑스에 출간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와주었다. 실비아 비처는 《율리시스》를 한정판으로 출간하여 이 책을 구입할 예약자 목록을 작성했다. 《율리시스》의 최초 예약 주문자 명단에 유명 작가들도 있었다. 앙드레 지드, 헤밍웨이 그리고 윈스턴 처칠이다. 처칠은 수상이 되기 전에 이미 문필가로 이름을 날렸다. 《제2차 세계대전 회고록》으로 1953년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헤밍웨이는 실비아 비치가 운영하는 서점에 자주 찾는 단골손님이었는데, 그 서점이 바로 10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다. 

 

 

 

6. 조2스의 생일 2월 2일

 

 

 

 

 

조이스는 1882년 2월 2일  태어났다. 《율리시스》는 그의 생일에 맞춰 1922년 2월 2일 프랑스에서 출간되었다. 《피네간의 경야》는 조이스의 57번째 생일인 1939년 2월 2일에 정식 출간되었다. 조2스도 홍진호처럼 숫자 2와 깊은 인연이 있다.

 

 

 

7. 영화관 사업가 조이스

 

20세기 초 유럽에 영화가 성행했음에도 불구하고, 더블린에는 영화관 한 곳도 들어서지 않았다. 더블린에 살다가 오빠 따라 이탈리아의 트리에스테에 살게 된 조이스의 여동생은 영화관이 없는 더블린에 불평을 쏟아낸다. 조이스는 더블린에 영화관을 세우는 사업에 뛰어든다. 그러나 개관은 성공했지만, 조이스의 사업운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던 듯하다. 조이스는 더블린에 세운 영화관 운영에만 집중할 수가 없었다. 트리에스테에 남겨둔 가족들을 먹여 살려야 했다. 비록 조이스의 영화관은 일찍 문을 닫았지만, 영화는 조이스에게 문학적 영감을 제공해주었다. 조이스는 《율리시스》를 영화화하기 위해 러시아의 영화감독 세르게이 에이젠슈테인을 만나 토론했으나 성사되지 못했다. 영화 《율리시스》는 1967년이 되어서야 조셉 스트릭에 의해 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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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15-04-21 0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가란 무엇인가 읽는데 계속 나와_ 이 아저씨_ 읽어봐야겠다 알아봐야겠다 하던 찰나 아주 중요한 글을 써주었는걸.

cyrus 2015-04-21 18:07   좋아요 0 | URL
폴 오스터가 조이스를 좋아한다고 하더군요. ^^

fledgling 2015-04-21 0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뜬금없는 콩진호의 등장ㅋ재밌네요ㅎ

cyrus 2015-04-21 18:07   좋아요 0 | URL
이 글의 웃음 포인트를 잘 찾으셨군요. ㅋㅋㅋ

만병통치약 2015-04-21 2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팔아서 수입이 좋았을지 궁금하네요. 처음에는 얼마나 팔렸을지도요 ㅎㅎ

cyrus 2015-04-24 14:01   좋아요 0 | URL
판매부수를 확인하지 못했지만, 《율리시스》가 금서로 지정된 이후에 해적판이 나왔다고 합니다. 조이스는 국가나 공공기관으로부터 연금을 받은 적이 많아서 판매 수입에 크게 연연하지 않았을거라 생각합니다. ^^

transient-guest 2015-04-23 0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에 대한 책은 재미있게 읽었어요. 주인장이 얼마전에 돌아가셨다고 하더라구요. 저는 조이스의 책도 좋지만, 더블린에 있다는 조이스가 즐겨 찾던 펍에서 기네스를 마시면서 그와 그의 작품을 떠올리고 싶네요.ㅎ

cyrus 2015-04-24 14:02   좋아요 0 | URL
<율리시스>를 조금씩 읽고 있는데 지금은 조이스 박물관이 된 마텔로 탑에 가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