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70년> 대구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 8월 개관]

연합뉴스, 2015년 6월 24일

 

 

 

 

저는 대구에 쭉 살면서 이런 의미 있는 건물이 세우고 있었다는 사실을 최근에 알았습니다. 대구에도 위안부 역사관이 문을 연다고 합니다. 위안부 역사관이 서울, 부산 등에 있어서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시간을 내서 방문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대구 위안부 역사관 설립 소식이 반갑습니다.

 

역사관 설립비용 절반은 ‘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이라는 시민단체의 브랜드인 ‘희움’(‘희망을 꽃피움’의 준말) 판매 수익금에서 나왔습니다. ‘희움’은 클러치 백과 파우치, 엽서뿐만 아니라 위안부 팔찌도 판매하고 있습니다. (굵은 글씨체로 된 '희움'을 클릭하면 희움 공식 홈페이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실 역사관 설립이 결정되기까지 우여곡절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2010년에 세상을 떠난 위안부 피해자 김순악 할머니의 유산 절반이 사업비에 포함되었으나 이 비용만으로 역사관을 세울 수가 없었습니다. 시민단체들은 지방정부가 모자란 역사관 설립 사업비를 지원해 줄 것을 제안했으나 대구시가 본격적으로 사업비를 지원하기까지 3년이라는 세월을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현재 역사관은 거의 완공되었으며 광복 70주년이 되는 8월 15일 대구 중구 서로문에 개관합니다. 건물 이름은 ‘희움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입니다. 건물은 1920년대에 만들어진 일본식 적산가옥을 개조했습니다. 적산가옥이 일제 강점기의 잔재라서 하필이면 이런 건물을 역사관으로 사용되어야 하느냐고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도 있겠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역사관 건물을 개조한 결정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식 적산가옥도 과거 시대상을 알 수 있는 오래된 문화유산입니다. 그것을 보면서 점점 잊혀가는 가슴 아픈 역사를 환기할 수 있습니다. 역사관은 많은 사람이 찾을 수 있게 크고 화려하게 지을수록 좋습니다. 하지만 겉에만 중점을 둔 채 건물을 만들게 되면, 재정난이 더 늘어납니다. 그렇게 되면 희움 위안부 역사관은 올해 문을 열지 못했을 겁니다.

 

지금까지 살아있는 위안부 할머니의 수는 50명입니다. 그런데도 위안부 역사관이 대구를 포함해서 고작 4곳에 불과한 이 땅의 현실은 지방정부가 반성해야 할 부분입니다. 복합문화공간을 만드는 것도 좋지만, 역사의 가치를 지켜내고 오랫동안 보존할 수 있는 역사문화공간이 더 많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혹시 대구에 가게 된다면 위안부 역사관을 꼭 찾아주십시오.

 

 

 

 

※ 어제(2015.6.24) 위안부 피해자 김연희 할머니께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이로써 생존한 위안부 할머니는 49명입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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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ra 2015-06-24 2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희움에코백 예뻐요*

cyrus 2015-06-25 19:33   좋아요 1 | URL
희움 홈페이지 에코벡을 살려고 합니다. ^^

AgalmA 2015-06-24 22: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유재석씨 위안부 할머니분들 위해 꾸준히 기부 많이 하던데 좋은 모범이라고 생각합니다.

cyrus 2015-06-25 19:34   좋아요 0 | URL
맞아요. 위안부 문제에 관심 있는 척만 하는 정치인 여러 명보다 유재석이 훨씬 더 낫습니다.

제이 2015-06-24 2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항상 잘보고 있어요

cyrus 2015-06-25 19:34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

오후즈음 2015-06-24 23: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희움 에코백을 구매을 많이 해야겠네요. 결국 이 모든것은 나라가 아니라 그들을 아끼는 사람들에 의해 세워지는건가봐요.

cyrus 2015-06-25 19:36   좋아요 0 | URL
저도 하나 구입하려고 합니다. ^^

:Dora 2015-06-25 19: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팔찌랑 사려고요 ...인증샷 찍어 올리기로 ㅋㅋ

:Dora 2015-06-25 19: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가지 팁을 드리며...위안부할머니 돕는 화장품도 있음 방앗간

cyrus 2015-06-25 19:44   좋아요 1 | URL
좋은 정보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재스민님. ^^
 

 

 

 

 

 

 

 

 

 

 

 

 

 

 

 

 

 

 

미디어셀러는 영화, 드라마 같은 방송에 노출된 후 베스트셀러가 된 책을 말한다. 책이 출간되었던 당시에는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하다가도 영상물의 흥행이나 기대 몰이에 따라 새롭게 조명을 받으며 베스트셀러로 등극하는 사례가 부쩍 늘어났다. 이러한 현상을 ‘베스트셀러 순위 역주행’이라고 보면 된다.

 

과거의 노래가 음원 순위를 역주행하는 현상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미디어셀러 현상도 마찬가지다. 미디어셀러는 출판 업계의 공인된 주요 공식으로 자리 잡았다. 흥행 드라마나 영화 내용에 관련된 책도 미디어셀러의 범주에 포함된다. 지난해 완간된 웹툰 단행본 《미생》은 드라마가 방영된 이후에 100만 부를 돌파했다. 기존에는 독자층이 주로 30~40대로 한정되어 있었으나, 방송 이후 20대 독자들의 비율이 늘었다. 소비자들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소개된 책을 보면 친숙하게 느끼고, 구매하게 된다. 이처럼 미디어의 덕을 본 책들은 불황에 허덕이는 출판사들에게 단비 같은 존재이다.

 

하지만 미디어셀러의 위상이 커진 만큼 출판업계를 더 암울하게 만드는 문제점이 늘고 있다. 미디어셀러 성공에 눈이 먼 일부 출판사들이 PPL(간접광고)을 위한 억지스러운 노출에 동참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점을 보고 있으면 “미래에는 누구나 15분 만에 유명해질 수 있다”라는 앤디 워홀의 말이 떠올릴 만하다. 자금력이 있는 출판사들은 방송 미디어와 손을 잡으면 미디어셀러를 만들 수 있다. 시청률 20%를 넘는 인기 드라마의 결정적인 장면에 딱 3분만 아무 책이나 노출한다면 그 책은 유명해질 수 있고, 미디어셀러가 될 수 있다. 이렇다 보니 책을 기획하는 단계부터 미디어 노출을 노리고 거액의 마케팅비를 투자하기도 한다. 드라마 단순 노출의 경우, 천만 원 이상 금액을 잡아 투자한다. 회당마다 꾸준하게 책을 노출하려면 마케팅 비용은 비싸지고, 많으면 억 단위까지도 나온다. 결국 미디어셀러는 어느 날 갑자기 독자들로부터 사랑을 받으면서 한순간에 대박 나는 책이라기보다는 출판사와 방송 미디어가 합작한 상품이다. 미디어셀러 열기에 독자의 관심을 먹으면서 사랑을 많이 받아야 할 책이 미디어의 파생 상품으로 전락해버리고 말았다. ‘방송’이라는 남의 손을 빌려 만들어 낸 미디어셀러의 영향력이 높아질수록 영세 출판사의 좋은 책들이 독자의 관심 밖으로 멀어질 수 있다.  

 

미디어셀러 성공 이면에 어두운 그림자가 출판시장에 길게 드리워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림자라도 쫓으려는 일부 출판사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화려한 성공으로 비친 미디어셀러 열광 속에 가려진 그림자를 여실히 보여준 사건이 바로 크눌프 출판사의 《데미안》 논란이다. 1919년에 나온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 KBS 인기 드라마 ‘프로듀사’ 때문에 뜬금없이 베스트셀러 순위에 올라간 현상을 그저 좋게 볼 수 없다. 《데미안》이 베스트셀러 목록에 있다고 해서 ‘고전 도서의 역주행급 인기’ 운운하면서 미디어셀러 열풍을 예찬하는 사람이 없을 거라 믿는다. 드라마에 노출된 《데미안》이 다른 출판사(민음사, 문학동네)의 기존 번역서를 짜깁기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민음사와 문학동네는 문제의 《데미안》을 펴낸 크눌프 출판사를 상대로 강력하게 법적 대응에 나서겠다고 밝혔지만, 여전히  크눌프 출판사의 《데미안》이 알라딘 베스트셀러 순위에 버젓이 있는 것을 보면 크눌프 출판사 측은 표절번역 논란에 무심한 듯하다. 문제 있는 책은 출판사가 자체적으로 회수, 폐기하여 독자들을 농간한 점에 대해 공식 사과를 해야 한다. 크눌프 출판사가 표절번역 논란을 이슈 몰이로 이용하여 출판사 이름을 알리려는 노이즈 마케팅을 하지 않기를 바란다.

 

“유명해져라, 그렇다면 사람들은 당신이 똥을 싸도 박수를 쳐 줄 것이다.” 앤디 워홀의 명언으로 잘못 알려진 이 문구는 비단 사람에게만 적용하지 않는다. 우리는 쓰레기 같은 상품도 유명해지면 최고가의 미술 작품이 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저명성만 갖춰도 내용과 상관없이 대중은 열광한다. 똥 같은 최악의 책마저 대중에게 박수를 받는 미디어셀러가 된다. 출판사는 독자의 눈높이에 맞추면서 책을 만들어야지 판매 부수를 올리기 위해 방송 미디어의 눈치를 보면서 책을 만들면 안 된다. 우리 독자는 TV에 나오는 책이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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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바 2015-06-12 2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문제 말이에요.. 다른 출판사 번역들은 안전한가요? 전 데미안 을유버전으로 가지고 있는데 비교해볼 도리가 없으니~ 저 책을 사다 보긴 싫고. 표지도 얼핏 보면 민음사 모던클래식이고요. 첨엔 모던클래식에 헤세라니 웬 말이냐 했는데 딴 출판사더군요. 어떤 결론이 날지, 음 지적 저작권에 대한 판례가 추가되려나요..

cyrus 2015-06-14 10:33   좋아요 0 | URL
제가 뭐라고 단언할 수 없습니다만 헤르만 헤세의 소설이 수백 종이 넘을 정도로 번역본이 많으니 그 중에 엉터리 번역본이 있을 거라 생각이 들어요. 번역본이 너무 많아서 원문을 대조해서 비교하기가 쉽지 않죠. 이번 기회에 번역 표절을 근절할 수 있도록 지적 저작권이 강화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에이바 2015-06-13 23:34   좋아요 0 | URL
아 제 댓글이 명확하지 않았군요. 을유판 데미안 번역도 무지 좋아서 여기 번역도 참고한게 아닌가 해서요. 앞부분이라도 좀 봐야겠네요..

cyrus 2015-06-14 10:34   좋아요 0 | URL
아닙니다. 제가 에이바님의 댓글을 잘못 이해했어요. ^^;;

만병통치약 2015-06-12 2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침에 뉴스에서 볼때는 그냥 단순한 표절인줄 알았는데 이건 완전히 작정하고 덤벼들었군요. 저작권에 대한 처벌이 약한가 보죠? 징벌적배상이 존재한다면 생각하지도 못할 범죄일텐데요.

cyrus 2015-06-13 22:15   좋아요 0 | URL
2010년에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번역본 표절에 대해서 법원은 지적 재산권 침해로 인정했습니다. 이러한 판례를 감안한다면 크눌프 출판사는 법적 처벌을 받아야 합니다.

은비뫼 2015-06-12 2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눌프 출판사는 헤세에 대한 애착으로 출판사명
을 지었을까요? 만약 그렇다면 실망이네요. 번역짜집기라니.. 무엇이 진실인지 시시비비를 가렸으면 좋겠네요.

cyrus 2015-06-13 22:21   좋아요 0 | URL
문학동네 공식 카페에 가면 번역 표절을 증명해줄 사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글 제목은 ‘<데미안> 번역, 무엇이 어떻게 다른가?’입니다. 이 정도면 크눌프 출판사도, 번역자도 변명하지 못할 겁니다.

transient-guest 2015-06-13 0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눌프라는 출판사 이름 자체가, 그리고 이제까지 나온 책이 딱 `데미안`과 `수레바퀴 아래서`라는 점, 묘하게 맞물리는 출판날짜와 드라마 방영날짜를 보면 기획단계에서 이미 `프로듀사`의 소품으로 제작되었고 이에 맞춰 판매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습니다. 나아가서 저는 KBS의 누군가도 아마 깊이 관여하고 있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의심하고 있습니다.

cyrus 2015-06-13 22:24   좋아요 0 | URL
게스트님 생각에 수긍합니다. 이번 문제는 그냥 법적 대응으로만 넘어가선 안 됩니다. 인지도가 낮은 출판사가 어떻게 단번에 방송사 드라마에 책을 PPL를 하게 되었는지 그 커넥션도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고 봐요. PPL 때문에 불법 거래가 이루어진 것이 사실로 증명되면 미디어셀러 효과에 대해서 재고해야 됩니다.

Jeanne_Hebuterne 2015-06-13 04: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표지 얼핏 보고 민음사 모던 클래식인 줄 알았어요. 그냥 좋은 책을 좋다고 말하고 싶은 독자 입장에서, 정말 너무하다 싶어요. 미디어 셀러, 판권 다 된 책을 무더기로 출판하기. 일례로 몇 년 전 한국의 헤밍웨이 붐, 위대한 개츠비 영화 개봉과 책 판매, 드라마에 나온 책 불티나게 팔기 등등. 알맹이보다 곁가지가 더 화려한 것 같아요.

cyrus 2015-06-13 22:26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이런 긍정적 현상만 언론에 비추니까 불황이었던 출판시장이 조금이라도 회복기에 접어든 것 같은 착각에 빠질 수 있어요.

간서치 2015-06-13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몰랐던 세계의일이었네요 덕분에 알았네요
.. 전 책을 안 읽는 사람들이 그래도.. 책을 읽게 될거라고 좋아하기만 했는데.. 역시 세상일은 겉만 봐선 모르는 건가봐요 배우고 갑니다

cyrus 2015-06-13 22:30   좋아요 0 | URL
독자들이 미디어셀러 효과의 긍정적인 면만 볼수록 TV에 노출된 책만 찾으려는 경향이 많아질 수 있습니다. 정작 미디어에 노출되지 못한 책들은 독자의 관심에서 멀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TV에서 소개되는 책보다는 알라딘 북플 독자서평을 참고해서 읽을 가치가 있는 책을 고릅니다. ^^

곰곰생각하는발 2015-06-14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이런 것을 미디어셀러라고 하는군요.
가끔 유명 배우가 드라마에서 읽었다고
즉시 사서 읽는 사람이 저는 오히려 더 이해가 안 갑니다.
약간 또라이들 가틈...책을 무슨 악세사리로 여기다니 말이죠...

cyrus 2015-06-14 10:29   좋아요 0 | URL
책은 자신이 읽고 싶은 마음에 들어야 사는 것이 맞는 일인데 유명 인사들이 읽는 책이라고 해서 무조건 그것만 찾는 모습은 씁쓸합니다.
 

 

 

페이스북 페이지 ‘자유주의 – Liberalism’는 왜곡된 정보와 편향된 주장이 난무하는 세상을 비춰주는 자유주의의 등불이라도 되는 것처럼 중립적인 사실을 그럴듯하게 전달한다. ‘자유주의’라는 이름으로 보기 좋게 포장한 글을 보면 페이지 관리자 혹은 게시물을 만드는 필자의 지적 수준이 의심된다. 논리력이 결여된 내용을 들먹이면서 자유의 가치를 표방한다. 자유주의의 의미를 페이스북 페이지 게시물로 이해하려는 아이들이 있을까 봐 우려스럽다. ‘자유주의’ 페이지 게시물들은 사진과 짤막한 글로 이루어져 있는데 어려운 내용을 알기 쉽게 정리한 파워포인트 발표용 자료를 보는 듯하다. 그런데 이것만 가지고 어떤 사회적 현상이나 이슈를 깊이 이해할 수 없다. 자유주의는 날로 먹듯이 공부한다고 해서 이해되는, 간단한 이념이 아니다. 이런 간결한 근거 자료를 사람들은 비판 없이 받아들인다. 근거 자료를 비판하는 정제된 사고 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사회문제를 편향적으로 판단하게 된다.

 

 

 

 

 

 

 

 

‘자유주의’ 페이지는 자신의 주장이 유리하도록 억지로 갖다 붙이는 견강부회도 서슴지 않는다. 지난주에 ‘<진격의 거인>의 정체’라는 제목의 게시물을 본 적이 있다. 이 게시물은 한정석 미래한국 편집위원의 글을 토대로 만들었다. 한 위원은 일본 만화 <진격의 거인>을 예로 들면서 감성에 휩쓸리는 무지한 대중을 저격했다. 그러면서 거인을 ‘반이성 집단주의’로 비유하여 자유를 위해 이성을 지키려는 합리적 개인의 역할을 강조한다. 그리고 프란시스코 데 고야의 그림 『자식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거인』 그리고 『잠든 이성은 괴물을 낳는다』(줄여서 ‘잠든 이성’이라고 하겠다)를 소개하면서 고야를 계몽주의자이자 자유주의자라고 칭송했다. 

 

 

 

 

 

 

 
  
하지만 만화 속 거인을 무조건 이성을 거부하는 무지한 대중 또는 이를 몽매하게 만드는 여론으로 비유한 것을 적절하지 않다. 거인에 대항하는 사람들이 ‘합리적 인간’이라면 주인공 엘렌 예거가 거인으로 변신하는 줄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엘렌은 자유에 대한 갈망이 가득한 캐릭터다. 그가 자유를 위협하는 거인을 조종하는 힘을 가진 상황은 역설적이다. 나는 <진격의 거인>을 한 번도 보지 않았다. 게시물의 주장을 반박하는 사람들의 글을 보지 못했다면 만화 줄거리를 그럴듯하게 끼워 넣은 한 위원의 주장에 수긍할 뻔했다.

 

한 위원의 글에 비판받을 대목이 또 하나 있다. 한 위원은 만화에 나오는 거인의 디자인을 고야의 『자식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에서 기원했으며 사투르누스를 ‘무지한 시간’으로 해석했다. 또 고야를 학살과 폭력의 광기에 맞서는 자유주의자라고 치켜세웠다. 고야의 거인 그림만 봐도 우리는 만화 <진격의 거인>이 저절로 연상된다. 그러나 이 유명한 거인 그림이 고야가 그리지 않은 것으로 판명났다. 2009년에 『거인』을 소장하고 있는 스페인 프라도 미술관은 『거인』을 그린 화가를 고야가 아닌 그의 조수 어센시오 훌리아로 잠정 결론을 내렸다. 『거인』은 에스파냐를 호시탐탐 노렸던 나폴레옹의 프랑스 혹은 에스파냐의 자유를 억압하는 구체제 권력으로 해석되기도 했지만, 현재까지 명확하게 통일된 해석은 나오지 않았다. 에스파냐를 지키는 수호신이라는 해석도 있다.

 

 

 

 

 

 

 

 

 

 

 

 

 

 

 

 

 

『잠든 이성』은 흔히 이성의 가치를 깎아내리는 진리의 침묵으로 해석한다. 하지만 이성의 힘이 상실된 무지한 몽매의 경고성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런 해석은 고야의 의도와 상반된다. 『잠든 이성은 괴물을 낳는다』는 판화집 《변덕》의 49번째 작품이다. 책상에 기대어 잠을 청하는 사나이 뒤쪽에 부엉이와 박쥐가 날아든다. 그림 왼편에 보면 책상에 앉아서 펜을 쥔 부엉이 한 마리가 있다. 전통적으로 부엉이는 부정적인 동물로 전해내려 왔다. 어둠, 꿈, 어리석음을 의미했다. 그러나 부엉이가 무조건 흉조로만 여겨졌던 것은 아니다. 로마 신화에서 부엉이는 지혜의 신 미네르바(그리스 신화에서는 아테네)와 함께 다니는 신성한 새로 여겼다. 헤겔은 《법철학》에서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과 함께 나타난다’라고 언급했다. 이를 바꿔 말하면 완전히 밤이 되기 전에 이미 어둠의 도래를 확실히 예측할 수 있다는 뜻이다. 과거의 경험이 많으면 많을수록 미래의 예측은 정확해진다. 밤은 이성이 잠에 취하는 무지한 시간이면서도 예술의 탄생을 알리는 서막의 시간이다. 고야가 활동했던 18세기 유럽 계몽주의자들은 꿈을 이성의 반대라고 생각했지만, 고야는 꿈과 이성의 조화를 통한 예술을 강조했다. 그는 자유주의자를 신봉하는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계몽주의 사상에 심취했지만, 한편으로는 공상에 대한 동경을 강하게 느꼈던 낭만주의자였다. 고야는 『잠든 이성』 밑에 그림을 독자에게 설명하는 의미심장한 문장을 써넣었다. ‘상상이 이성과 만나면 예술의 어머니가 된다.’ 이 문장은 고야가 낭만주의적 태도를 취하고 있음을 알린다. 이성이 잠들면 공상은 인간의 악마적 본능, 삶의 구석구석에 도사리고 있는 욕망의 광기로만 변하는 것이 아니다. 고야의 부엉이는 낭만적인 황혼 위를 날다가 감성이 메마른 척박한 땅으로 내려와 잠든 사나이를 깨우려고 한다. 사나이가 일어나면 예술적 영감을 알려줄 것이다. 

 

고야의 그림 속에는 온통 괴물과 광기, 참혹과 전율로 가득하다. 그의 그림은 감상자를 끊임없이 불편하게 만든다. 하지만 고야는 세상의 추악성을 화폭에 그대로 담아 폭로했다. 그래서 고야를 정치와 사회문제에 관해서 비판정신이 투철한 화가로 평가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고야의 예술을 아울러 본다고 할 수 없다. 청력이 상실한 만년의 고야가 그린 그림에는 살육, 광기, 마법 같은 어두운 주제들이 노골적으로 드러나 있다. 추악하고 끔찍한 세상의 진실을 너무나도 가까이 봤던 탓일까. 고야는 누구보다 먼저 무지한 몽매에서 깨어났지만, 그의 눈은 자신 안에 숨어 있는 원초적 광기가 자세히 들여다볼 정도로 너무나도 예민했다. 올더스 헉슬리는 고야를 ‘슬픔의 끝까지 알았던 인간’이라고 했다. 그런 고야가 자신의 그림이 정치색으로 덧칠되어서 제멋대로 해석되고 있다는 사실에 얼마나 슬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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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5-06-05 2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상식조차 없는 자유주의 게시글에 참담해집니다...하아. 거인=무지한 다수, 집단적 몽매 연결 자체도 오류지만, 제시한 `무표정`,`무뇌아`,`무언가 화난 표정`근거도 너무나 차별적이며 비논리적. 이상하게 보이면 감화원 보내던 시절의 시각이군요.
작가가 `무`자가 들어가는 단어나 관념에 대단한 오해가 있지 않나 싶네요; `만화에 빠지면 멍청이 대중된다`를 참 에둘러 말하신 듯...그리고 이어지는 고야 연결까지... 급피곤해지네요.
이 글 쓴 분은 다분히 의도에 치우쳐 그러셨겠지만, 어떻게 무의식이나 인간광기는 전혀 고려않고 이렇게 철저히 이원론적인 대립만으로 글을 쓸 수 있는지...휴, 한숨이.
cyrus님 이 글 쓰시느라 욕보신 듯...

cyrus 2015-06-08 20:30   좋아요 1 | URL
자유주의 페이지에 가끔 공감하는 글을 읽을 때가 있긴 합니다만 길을 지나가다가 우연히 천 원짜리 지폐를 줍는 확률과 같아요. ‘진격의 거인=고야의 거인=무지한 몽매’ 이런 식으로 연관 지어 쓰면 그럴싸하게 보일 수 있겠지만, 좀 더 자세히 알아보면 허점이 보여요. 이 게시물 덕분에 고야에 대해서 더 알 수 있어서 좋았어요. 이것 또한 몰랐던 것을 더 알기 위한 공부하는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

boooo 2015-06-05 2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종종 다른 사람들이 좋아요,를 눌러 보일 때가 있는데 조심해서 봐야 할 곳이더군요. 그런데도 정말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죠.

cyrus 2015-06-08 20:33   좋아요 0 | URL
네. 자유주의를 깊이 있게 공부하지 않으면서 게시물 내용이 무조건 맞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아요.

페크pek0501 2015-06-06 1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글을 읽고 나니 대중의 착각, 다원적 무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됩니다.

cyrus 2015-06-08 20:35   좋아요 0 | URL
대중을 혼란에 빠뜨려서 몽매한 집단으로 만드는 나쁜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돌궐 2015-06-06 15: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잘 모르는 사람들일수록 확신과 완강함으로 가득 찬 문장을 쓴다고 하더라구요.
알면 알수록 글쓰고 말하기가 더 힘든 법인데...

cyrus 2015-06-08 20:39   좋아요 1 | URL
맞습니다. 그리고 잘 안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은 상대방의 진솔한 비판을 무시하기도 하죠. 돌궐님의 말씀을 저도 깊이 새겨들어야겠습니다. 예전에 쓴 글 중에도 잘 모르면서 아는 척하면서 썼던 게 있을 겁니다. 진부한 말이지만, 학문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죽을 때까지 항상 공부해야 되는 것 같습니다. ^^
 
정말 중동지역이 메르스 발생 지역일까?

 

 

 

 

지난주 토요일에 ‘정말 중동지역이 메르스 발생 지역일까’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글 한 편을 쓰고 나면 그 다음 날에 제가 쓴 글을 다시 읽어본다. 내 글을 읽는 사람에게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제대로 표현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오해의 소지가 있거나 확실한 근거가 없는 내용이 있으면 삭제하거나 수정한다. 최근 메르스 공포가 퍼지면서 메르스가 중동지역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하는 질병으로 알려졌다. 나는 이 부분에 의문을 제기하여 ‘정말 중동지역이 메르스 발생 지역일까’라는 제목의 글을 썼다. 중동지역에 있는 낙타 대부분은 아프리카에서 건너왔으므로 아프리카 지역도 메르스 안전지대가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추측성 짙은 내 주장이 본의 아니게 메르스에 관한 올바른 진실을 곡해하는 유언비어가 될 수 있다고 스스로 판단했다. 오이밭에서는 신발끈도 고쳐 매지 말라고 했다. 오해받을 만한 내용 때문에 유언비어 유포자로 억울한 누명 쓰는 일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보충 설명을 하게 되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아프리카도 메르스 발생 지역이 될 수 있다는 내 생각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에 비롯된 검증되지 않은 가설이다. 메르스 감염의 주범인 중동지역의 낙타가 아프리카에서 왔다는 사실만 가지고 아프리카도 메르스 발생 지역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성급하게 추론했다. 지금까지 밝혀진 메르스 관련 연구 결과들을 종합하면 메르스는 중동지역에서 많이 발생하고 있으며 아직 아프리카에서 메르스 감염자나 사망자가 나온 사례는 아직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므로 제한된 증거만 가지고 아프리카를 메르스 발생지역으로 추측하는 내 주장이 잘못되었음을 밝힌다. 근거 없는 주장 때문에 한국에 거주하는 아프리카 출신 사람들을 메르스 전파자로 오해하고 차별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질병 전염에 대한 공포가 새로운 위험을 낳는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작년 우리나라는 에볼라 감염의 공포가 인종차별로 이어지는 무지의 현상이 빚어진 적이 있었다. 에볼라 바이러스 때문에 아프리카인을 경계하고, 국제 행사를 주관하는 모 여대는 아프리카 학생들의 행사 참여를 취소하는 해프닝까지 일어났다. 질병에 대한 공포는 전염병에 대한 올바른 정보에 근거한 이성적인 믿음마저 마비시킨다. 에볼라 발생 지역을 아프리카와 연관 짓는 단순한 인식 때문에 질병의 위험성이 과도하게 강조되었고, 언론은 공포를 확산시켰다. 감성이 치우친 공포의 확산을 막지 못한다면 전염병 감염과 관련된 특정 지역인 및 국가 거주자에 대한 차별과 배제의 시선도 확산한다.

 

 

‘메르스에 대해 지금까지 밝혀진 사실들’ (강석기) / 동아사이언스 2015년 6월 1일
http://www.dongascience.com/news/view/7116

 

 

동아사이언스에 <강석기의 과학카페>라는 이름으로 과학 관련 칼럼을 연재하고 있는 강석기 기자는 어제 ‘메르스에 대해 지금까지 밝혀진 사실들’이라는 제목의 글을 썼다. 질병의 위험성에 치중하여 중구난방 하는 언론 보도기사를 일일이 찾으면서 읽는 것보다는 보기 쉽게 깔끔하게 정리한 과학 전문기자의 글을 일독할 것을 권한다. 최근에 밝혀진 연구 결과에 의하면 메르스 바이러스는 치사율이 (작년에 유행한 에볼라보다) 낮은 편이고, 강력한 전파력을 지닌 변이를 일으키지 않았다. 코로나바이러스는 변이가 일어나기 쉬운 RNA 바이러스에 속하지만, 변이로 복제되는 오류를 수정하는 안전한 효소 유전자를 지니고 있다고 한다. 과학자들은 메르스가 변이 가능성이 작다는 전제하에 변이를 일으키는 예상 밖의 변수를 대비하여 계속 연구하고 있다.

 

메르스 백신 또는 치료제가 없다는 사실이 언론에서 집중적으로 강조할수록 대중은 전염병의 존재감에 두려움을 떤다. 공포감에 지배당하여 마비된 이성은 상황에 대한 판단력도 같이 떨어진다. 메르스 치사율이 높지 않다는 근거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오히려 감염 전파가 빠르게 확산하고 한 명씩 사망자가 생겨나는 허술한 방역 실태를 부정하고 있다고 반박한다. 물론 메르스는 위험한 질병임은 사실이다. 하지만 사실을 명확하게 다루지 않는 언론에서 떠는 호들갑에 비하면, 메르스에 대한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정보를 전달하는 글은 질병에 대한 공포를 막아내는 방패 역할을 한다. 우리는 전염병에 대한 공포에 대해 이성적으로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공포를 조장하는 언론, 그리고 확인되지 않은 잘못된 유언비어의 침투에 이성의 방어벽은 허물어지지 않으며 참된 진실만 바라보는 눈을 우리 스스로 지켜낼 수 있다. 그 눈이 감겨져 잠드는 순간, 이성은 극단적인 논리로 무고한 사람을 해치는 괴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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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거핀 2015-06-03 2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치열하게 여러가지를 생각하는 자세에서 많은 것을 배우게 됩니다. cyrus님 말씀이 백번 맞는 말씀입니다만, 사실 또 한편으로는 저만해도 이성적인 판단이 자꾸 흐려지는 것 같아요. 약간씩 불안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군요.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 언론과 정부의 책임도 큰 것 같구요.)

cyrus 2015-06-05 21:34   좋아요 0 | URL
저도 하루하루 지날수록 불안감이 생겨요. 오늘 서울시와 정부가 방역 대응책을 둘러싸고 서로 대립하는 양상을 보니 골치가 아픕니다. 없던 병이 생길 것 같습니다. ㅎㅎㅎ

수이 2015-06-04 2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초기 자세가 너무 부실했어_ 암튼 축하할 일 축하하려고 왔어. 2등 축하해_ :)

cyrus 2015-06-05 21:35   좋아요 0 | URL
서울에 사는 사람들은 불안에 떨며서 하루를 보내겠죠? 누님도 2등 축하해요! ^^

수이 2015-06-05 21:38   좋아요 0 | URL
이게 마냥 불안에 떨 일만은 아니라는 사실 알 사람들은 다 아는데_ 정부가 개 같이 아니다 개를 욕하게 만들 필요가 있을까 싶다_ 지난해 세월호에 이어서 이번 메르스 케이스도 그렇고 아주 대한민국 밑바닥을 여실히 들여다보게 만드네.
 

 

 

 

즐거운 주말을 맞아야 할 시기에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소식에 기분이 심란하다. 하루 자고 일어나면 메르스 국내 환자가 늘어나 있다. 메르스의 확산보다 더 무서운 것이 감염에 대한 공포다. 여기에 SNS에서 떠돌아다니는 잘못된 정보가 국민의 혼란을 가중한다. 허술하기 짝이 없는 보건당국의 대응 과정에서 전체 감염자는 두 자릿수에 이르렀다. 심각한 상황이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보건당국은 인터넷과 SNS에서 떠도는 메르스 관련 유언비어 유포자에 대해서는 수사기관에 의뢰해 처벌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리고 감염환자가 역학조사를 거부하면 200만 원의 벌금형을 처하며 의료진이 감염 의심 환자를 제대로 신고하지 않을 경우에도 법적 책임을 묻는다는 방침을 내세웠다.

 

보건당국은 브리핑이나 설명 자료를 통해 메르스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제시하고 있지만, 대중의 혼란과 두려움을 단번에 잠재우는 것이 요원하게 느껴진다. 현재까지 메르스의 명확한 감염경로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모든 환자가 직·간접적으로 중동지역과 연관이 있다. 메르스가 지구상에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이상 낙타는 메르스 전염의 매개체로 지목될 것이다. 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등지에서 사는 낙타에서 메르스 항체가 발견되었다. 메르스 바이러스(변종 코로나 바이러스)는 낙타 젖에서 최소 삼일 이상 버틸 수 있다. 그래서 메르스 환자가 급증했던 중동에서는 살균하지 않은 낙타 젖을 마시는 것이 금지되었다. 

 

하루에 메르스 관련 언론기사가 수십 개 이상 쏟아져 나온다. 새 감염자가 나왔다는 긴급속보가 더 이상 나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스마트폰으로 해당 기사를 확인해보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막상 기사를 보면 특별한 내용은 없다. 우리가 보고 있는 메르스 관련 기사들은 천편일률이다. ‘Ctrl+C, Ctrl+V’ 기능을 쓴 느낌이 들 정도로 말이다. 이름 있는 주류 언론 서 너 개에서 보도된 메르스 관련 기사들을 꼼꼼히 읽어보면 모두 다 약속이라도 했던 것처럼 메르스를 중동지역에서 시작된 호흡기 질환으로 소개했다. 보건당국은 중동지역에 방문한 자는 의료기관을 방문해 검진을 받아볼 것을 권하고 있다. 이런 내용을 접한 대중은 메르스의 근원지를 중동으로 인식하기 쉽다.

 

 

 

 

 

 

 

 

 

 

 

 

 

 

 

 

 

보건당국과 언론은 메르스의 감염 경로에 대해서 한 가지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중동지역에 있는 낙타가 아프리카에서 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작년에 사우디아라비아에서 6백 명이 넘는 메르스 환자가 급증하여 보건부 장관이 교체되기도 했다. 사우디아라비아에 있는 낙타의 수는 26만 마리. 중동지역에서 낙타가 제일 많은 나라가 예멘(40만 7천 마리)이다. 예멘에서 발견한 메르스 환자는 1명에 불과했지만, 사우디아라비아와 예맨 다음으로 낙타가 많이 사는 아랍에미리트에서 70명이 메르스에 감염되었다. 하지만 전 세계에 사는 낙타를 모두 집계해서 나온 2천 700만 마리에 비하면 중동지역 낙타의 수는 비교적 적은 편에 속한다. 아프리카에 낙타가 많이 산다. 소말리아에 700만 마리, 케냐에 300만 마리가 살고 있다. 낙타가 가장 많이 사는 나라의 낙타 수만 합쳐도 천만 마리. 2014년 <떠오르는 전염병>이라는 학술지에는 이집트의 도축장 네 곳에서 채취한 낙타 52마리의 혈액 시료 가운데 48개 시료에서 메르스 항체가 발견되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메르스 항체가 보유한 낙타 대부분은 수단과 에티오피아에서 건너왔다.
 
메르스 바이러스에 변이가 일어난다면 사스(SARS)에 맞먹는 무시무시한 전염병이 될 수 있다. 낙타가 많이 사는 아프리카도 예외가 아니다. 메르스의 발병과 낙타의 상관관계는 이미 몇 차례 실험으로 검증되었다. 전문가들은 국내의 동물이 메르스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례는 없으므로 동물원의 낙타를 특별히 경계해야 할 이유는 없다고 말한다. 그래도 안심하기에 이르다. 이제 우리나라도 전염병 안전 국가가 아니다. 아프리카가 전염병이 많이 창궐하는 지역인 만큼, 보건당국은 아프리카에서 체류한 사람들도 메르스 진단 검사를 받도록 해야 한다. 그들이 단 한 번도 아프리카 낙타와 접촉하지 않았다고 단정할 수 없지 않은가.

 

 

 


※ 이 글을 쓰면서 참고한 도서는 《늑대는 어떻게 개가 되었나》(도서출판 MID, 2014년)이다. 내가 알기로는 메르스에 대한 내용이 유일하게 실린 대중 과학 서적이다. 저자는 강석기 씨로, 12년 동안 ‘동아사이언스’ 과학 전문기자로 활동했다. 《늑대는 어떻게 개가 되었나》는 강석기 씨가 ‘동아사이언스’에 연재했던 칼럼들을 추려 모은 책이다. 칼럼 제목은 ‘낙타와 메르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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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메르스의 습격에 대처해야 할 우리의 자세
    from 冊性愛子 2015-06-03 17:08 
    지난주 토요일에 ‘정말 중동지역이 메르스 발생 지역일까’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글 한 편을 쓰고 나면 그 다음 날에 제가 쓴 글을 다시 읽어본다. 내 글을 읽는 사람에게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제대로 표현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오해의 소지가 있거나 확실한 근거가 없는 내용이 있으면 삭제하거나 수정한다. 최근 메르스 공포가 퍼지면서 메르스가 중동지역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하는 질병으로 알려졌다. 나는 이 부분에 의문을 제기하여 ‘정말 중동지역이 메르스
 
 
AgalmA 2015-05-31 0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낙타를 타본 적이 있는데, 보기와 달리 얌전하지 않더군요. 머리를 흔들어대며 콧물, 침 마구 튀기고 쉬도 수시로 엄청난 양을 방출합니다; 글의 위험성과 좀 상반된 댓글이긴 합니다만; 낙타의 천방지축 성질을 좀 알리고 싶었기에...
이런 경우 예방도 예방이지만 빠른 안전대책이 제일 중요한데...전반적으로 안전불감증 문제가 있어 보이네요. 정부는 위협으로 으름장에다...

cyrus 2015-06-02 20:34   좋아요 0 | URL
정말 중요한 말씀하셨습니다. 맞습니다. 낙타 침 발사 공격이 북한 미사일보다 더 무섭습니다. ‘동물농장’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낙타 침 공격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경악했습니다. 침을 뱉는 것이 아니라 위 안에 있는 소화물까지 뱉어내는 것이더군요. 침과 소화물을 뱉을 때 콧물도 섞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낙타의 콧물이 메르스 바이러스가 전파되는 걸로 알고 있어요. 낙타의 침이 메르스 바이러스가 살기에 좋은 성분인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앞으로도 과학자들이 이 부분에 대해서 연구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