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7080세대라면 브룩 실즈를 절대로 모를 리가 없다. 1980년대 소피 마르소, 피비 케이츠와 함께 코딩 책받침 미녀 모델의 트로이카 중 한 명이었던 그녀에게 항상 ‘세기의 미녀’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하지만 그녀는 ‘세기의 여배우’가 되지 못했다. 대표작이라고 해봐야 <블루 라군> 정도. <블루 라군>에 출연하기 전에 찍었던 영화 <프리티 베이비>는 작품성보다는 작품에 대한 논란 때문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이 영화를 찍었던 당시 브룩의 나이는 열두 살. 브룩은 어린 창녀 바이올렛으로 등장한다. 1917년, 미국 뉴올리언스의 매음굴을 배경으로 전개되는데, 세상 물정 모르는 바이올렛은 그녀의 어머니(수잔 서랜든 분)처럼 창녀가 된다. 여기에 브룩이 올 누드로 등장해서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야기 설정도 파격적이다. 어린 창녀가 400달러에 자신의 순결을 팔고, 아버지뻘 되는 남자와 결혼하여 한집에 산다. 이 남자는 창녀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판매하는 일을 했는데 바이올렛은 이 남자를 마음에 들어 한다. 물론, 남자도 소녀를 좋아한다. 가끔 남자는 바이올렛이 투정을 부리면 손찌검을 하지만, 인형처럼 예쁜 그녀의 모습을 사진에 담아낸다. 그는 바이올렛을 찍은 사진만큼은 절대로 팔지 않는다. 하지만 두 사람의 사랑은 오래가지 못한다. 바이올렛은 다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간다.

 

 

 

 

 

 

영화 개봉 당시 비도덕적이라는 이유로 종교계의 격심한 반발을 샀다. 특히 사진기 앞에서 브룩이 벌거벗은 채 자세를 취하는 장면 하나 때문에 그녀는 관능적인 롤리타 이미지를 가지게 되었다. 이 영화가 오늘날에 개봉되었으면 ‘아청법(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이 적용되어 문제의 장면이 삭제되었을 것이다. 지금으로써는 이러한 장면은 문제가 될 소지가 많지만, 20세기 이전만 해도 소녀의 누드 사진은 누구나 볼 수 있는 흔한 이미지였다. 어린 소녀의 사진을 찍어서 혼자 간직하려는 영화 속 사진가의 모습에서 루이스 캐럴이 떠오른다.

 

 

 

 

 

 

 

 

 

 

 

 

 

 

 

 

 

 

루이스 캐럴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거울 나라의 앨리스》를 쓴 동화작가로 잘 알려졌다. 동화 속 앨리스의 실제 모델은 엘리스 리델. 이 소녀는 캐럴이 수학교수로 재직하던 옥스퍼드 대학 크라이스트 처치 학장인 헨리 리델의 딸이었다. 캐럴은 이 소녀를 즐겁게 하려고 동화 두 편을 집필하게 된다. 그는 말더듬 증세가 있어서 수줍음이 많은 성격인데도 재미있는 농담, 난센스 퀴즈, 짤막한 이야기 등을 준비하여 아이들을 즐겁게 해주는 능력이 있었다. 그리고 사진을 잘 찍었다. 캐럴은 영국에서 사진기를 잘 다루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영국의 시인 알프레드 테니슨, 작가 조지 맥도널드 등 영국을 대표하는 명사들을 찍었을 뿐만 아니라 어린아이들의 모습도 많이 찍었다.

 

 

 

 

 

루이스 캐럴이 찍은 앨리스 리델의 사진

 

 

그러나 그가 어린 소녀의 누드를 찍은 사진 몇 점이 사람들로부터 의심의 눈초리를 받는다. 당시 캐럴은 보수적인 기독교 가치를 강조했던 빅토리아 시대에 살고 있었다. 이 시대에 누드 자체를 사진으로 찍는 행위는 공포와 혼란 그 자체였다. 너무 지나치게 점잖은 태도를 유지했던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은 신체 부위를 함부로 노출하는 것을 부도덕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캐럴은 사회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소녀의 누드를 마음껏 찍었다. 성인 남녀의 누드 사진만 아니면 되었다. 성(性)을 부끄러워하던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은 어린 남녀의 누드 사진은 인정했다. 어린 소녀의 누드 사진이 있는 연하장이나 엽서가 만들어졌다. 옷을 입지 않은 아이들의 모습에서 에로티시즘과 상관없는 순수한 육체의 아름다움으로 봤기 때문이다. 캐럴을 포함한 기독교 신자들은 아이를 성별이 없는 순수한 신의 피조물로 인식했다.

 

 

 

 

 

 

 

 

 

 

 

 

 

 

 

 

 

 

평생 독신으로 살았던 캐럴이 어린아이들을 대상으로 사진을 찍었다는 이유로 ‘소아성애자’로 오해를 받기도 한다. 캐럴의 삶을 잘 모르면 이런 오해를 할 수도 있다. 캐럴은 어린 소녀의 사진을 단지 판매를 위한 목적으로 찍지 않았다. 그리고 사진 때문에 생길 수 있는 오해를 피하려고 누드 사진의 원본 필름을 모두 없애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캐럴의 사진 작업을 이상하게 생각했다. 사진술이 널리 보급되었어도 누드 사진에 대한 반감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성적 욕구를 드러내는 것을 금지했던 빅토리아 시대 특정상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어지는 게 사람의 마음이다. 선정적인 포르노 사진이 암묵적으로 유통되었고, 이 사진을 구매하는 고객 대부분은 여자들 앞에서 점잖은 태도를 보였던 남자들이었다. 사진가와 여성 모델이 서로 사랑하는 관계임을 증명하는 사진까지 나오게 되면서 한동안 사진가는 여성 누드를 마음껏 볼 수 있는 천박한 직업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이때 사진은 미술처럼 하나의 예술 장르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사진을 못 미더운 몇몇 사람들은 캐럴이 어린 소녀, 그것도 누드를 찍는 모습을 수상하게 여겼다. 사소한 오해는 더 큰 오해로 커진다. 캐럴의 일대기를 연구한 학자들은 앨리스 리델을 캐럴이 짝사랑하는 대상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리델과 주고받은 캐럴의 편지만으로 캐럴이 그녀를 좋아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 캐럴은 앨리스 리델뿐만 아니라 서로 알고 지내는 소녀들과 편지를 주고받았다.

 

캐럴은 억울하다. 그는 단지 귀여운 소녀의 모습이 좋아서 사진을 찍었다. 자신 스스로 육체적으로 깨끗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캐럴의 순수한 사진 작업에 딴죽을 걸었다. 펠릭스 나다르가 프랑스를 대표하는 인물 사진의 대가라면, 여기에 맞서 영국은 캐럴을 내세워도 된다. 어린 소녀의 누드 사진을 찍었다는 이유만으로 그의 이름이 사진 역사에서 제외하는 것은 속 좁은 평가다. 방귀 뀐 놈이 성낸다고 정상적으로 찍은 사진을 선정적으로 보는 사람이 더 이상하다. 알고 보면 순진하고 고결하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야한 것에 더 밝히는 경우가 있다.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은 벌거벗은 고대 그리스 여신상을 ‘예술’로 찬양했지만, 실제 인간의 벌거벗은 모습을 극도로 싫어하는 반응을 보였다. 그들은 누드를 ‘예술’이라는 고귀한 이름으로 포장하여 즐김으로써 간접적으로 성적 욕구를 풀 수 있었다. 빅토리아 여왕이 지배했던 19세기 영국은 야한 것이 좋다고 함부로 말하지 못하는 '이상한 나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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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15 12: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9-15 18: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인디언밥 2015-09-15 2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진짜 잼있어요!! 전부 몰랐던 얘기들.. 특히 소녀 누드사진이 연하장이나 엽서로 만들어지는 시대라니.. 띠용..

cyrus 2015-09-16 13:20   좋아요 0 | URL
사진의 역사를 소개한 책을 읽다가 저도 처음 알았어요. 그전에는 루이스 캐럴이 어린이 사진을 찍은 이유를 좋지 않게 여겼는데, 오해를 풀 수 있었습니다. ^^

stella.K 2015-09-16 18: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때 브룩실즈 정말 예뼜지. 그런데 크면서 별로더군.
게다가 무슨 거인병에 걸렸다고도 했는데.
성장이 멈추지 않는 병. 그래서 키가 190이넘는다고 했는데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어. 요즘은 뭐하고 사는지?
저 시대에 정말 세 사람이 미녀 트로이카라고 난리였는데...
동시대 사람으로 우리나라에 누가 있었더라...?
김혜수, 이상아, 이미연쯤이 되려나?ㅋㅋ

cyrus 2015-09-16 18:14   좋아요 0 | URL
브룩이 말단비대증에 걸려서 한동안 투병 생활을 했어요. ‘거인병’과 비슷해요. 그리고 출산 이후에 극심한 우울증에도 시달렸다고 해요. 성인이 되어서도 간간히 영화에 출연했는데, 과거의 리즈 시절로 되돌아가기에는 많이 늦었어요.
 

 

 

 

 

 

 

 

 

 

 

 

 

 

 

 

 

 

오스트리아의 작은 마을에, 난폭한 주정뱅이 아버지 밑에서 자란 소년이 있었다. 소년은 아버지로부터 맞으면서 자랐다. 반면 소년의 어머니는 너무나도 착했다. 그녀는 남편의 학대에 시달리는 소년을 사랑으로 감싸 안아줬다. 그렇지만 어머니의 모성애는 아버지의 폭력성을 이기지 못했다. 아버지의 난폭함은 소년에게 강한 증오심을 심어주고 말았다. 어른으로 성장한 그는 그림을 공부하여 화가가 되기를 원했지만, 훌륭한 화가가 될 실력은 아니었다. 그는 자기기 원하는 삶을 이루지 못하게 되자 세상을 원망했다. 그러다가 전쟁이 일어나게 되면서 독일 군부대로 자원입대한다. 이때부터 소년은 전 유럽을 피로 물드는 전쟁의 힘에 매료되었고, 세상에 대한 증오심은 반유대주의를 형성하게 된다. 이 소년은 훗날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고, 600만 명의 유대인을 학살한 독일 총통 아돌프 히틀러가 된다. 그의 인간적인 성품에 대해서는 어린 시절을 아버지 밑에서 학대받으며 불후하게 자라 냉혹하다는 진단이 일반적이다.

 

한 시대에 ‘절대 권력’으로 군림했던 지도자들은 무고한 사람들을 숱하게 살육하고, 국가를 파멸로 몰아넣었다. 그 권력으로 수많은 사람의 목숨이 짓밟혔고 마침내 악몽의 역사를 후세에 남겼다. 히틀러와 스탈린. 이 두 사람은 모두 국가라는 이름 아래서 무력을 합법적으로 사용했다. 또한, 유럽을 지배하려는 야심도 갖고 있었다. 무엇이 그들을 광기의 지도자로 만들었는가. 프로이트의 분석을 빌리자면, 어린 시절의 좌절과 상처가 있는 권력자들은 더 극단적인 성향을 보이게 된다. 히틀러와 스탈린은 모두 비참하고 불행한 가정에서 자랐다. 헌신적인 어머니가 있었지만 난폭한 아버지도 있었다. 스탈린도 히틀러처럼 어두운 유년 시절을 보냈다.

 

스탈린은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를 캅카스 산맥 상에 있는 조지아(옛 이름은 그루지야)의 작은 도시 고리에서 가난한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스탈린은 자신과 어머니를 무지막지하게 대하는 아버지의 태도에 경멸을 느껴 아버지에게 칼을 던지기도 했다. 그는 아버지로부터의 폭력을 방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폭력으로 맞서는 것으로 생각했다. 스탈린에게 폭력은 자신의 약점을 보완해줄 수 있는 전략이었다. 스탈린은 불행한 사고를 두 번이나 겪는 바람에 왼쪽 팔을 못 쓰게 되었고, 한쪽 다리를 절게 되었다. 그 이후로 그에게는 ‘초푸라(곰보)’, ‘게자(절름발이)’라는 별명이 꼬리표처럼 따라왔다. 하지만 신체적 약점은 스탈린의 성품을 더욱 강하게 만들어줬다. 어린 시절의 스탈린을 회고한 기록들을 종합하면 그는 학교 성적이 우수했던 모범생이면서도 난폭한 기질을 폭력으로 표출하는 이중 인간이었다.

 

정적 트로츠키는 스탈린을 힘만 쓸 줄 아는 무식한 행동대장쯤으로 여겼지만, ‘천의 얼굴’ 스탈린의 가면 중 하나를 봤을 뿐이다. 히틀러가 화가의 꿈을 간직하면서 그림을 그렸다면, 스탈린은 시를 직접 쓸 정도로 문학적 감수성을 지니고 있었다. 학비를 벌려고 합창단원으로 일하기도 했다. 그는 합창단의 핵심인 제1 테너였다고 한다. 스탈린의 어머니는 아들을 교회 신부가 되기를 원했다. 아들은 교회 관계자를 잘 아는 친척 덕분에 신학교에 입학하게 되지만, 엄숙한 분위기의 직업은 스탈린에게 맞지 않았다. 스탈린은 다윈의 《종의 기원》을 읽으면서 무신론자가 되었고, 마르크스의 책에 푹 빠졌다. 신부가 되는 길을 거부하고, 조지아 민족주의를 결합한 새로운 마르크스주의를 꿈꿨다. 저 유럽 반대편에서 자란 히틀러는 화가의 꿈을 포기하고, 독일 민족주의와 반유대주의를 결합한 나치즘의 등장을 준비하고 있었다. 사실 히틀러도 백수 시절에 책을 열심히 읽었다고 전해지지만, 스탈린의 독서와 비교하면 형편없다. 히틀러는 책에서 본 내용만 가지고, 사람들 앞에서 잘난척 했으며 그의 지적 수준은 훌륭하지 않았다.

 

재미있게도 히틀러와 스탈린은 같은 장소에서 거주했다. 1913년 오스트리아 빈. 스탈린은 레닌과 교류하면서 새로운 소비에트 연방을 만들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고, 히틀러는 싸구려 하숙집에서 자신의 그림 실력을 한탄하면서 백수로 지내고 있었다. 두 사람은 오스트리아 황제가 사는 궁전 근처에 있는 공원을 자주 산책했다. 비록 서로의 존재를 알지 못했지만, 공원을 거닐다가 한 번 정도는 옷깃을 스쳤을 것이다. 정확히 30년 뒤에 두 사람은 독일과 소련의 지도자가 되어 스탈린그라드(현재 이름은 볼고그라드)에서 자존심 대결을 펼친다. 제2차 세계대전의 격전으로 알려진 ‘스탈린그라드 전투’다.

 

 

 

 

히틀러 「The Courtyard of the Old Residency in Munich」 (1913년)

 

 

 

히틀러와 스탈린은 한결같이 남성적인 모습을 보이기 위해 노력했다. 또한, 주변 사람들이 항상 자신에게만 맞춰주고, 복종하는 것을 선호했다. 애정 결핍 상태로 불행한 생활을 경험한 이들은 상처받은 자존심에 대한 보상을 얻기라도 하듯 권력을 좇고, 악용했다. 사람 운명이라는 것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시를 쓰는 조지아 시골청년과 그림을 그리는 오스트리아 백수가 비정한 권력자가 되어 역사의 악인으로 기억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우리 앞에는 누구에게나 하얀 도화지가 놓여 있다. 인생은 그 위에 그림을 그리는 것과 같다. 풀잎 위에 앉은 이슬처럼 청초한 삶을 그리는 사람들도 있지만, 비극적인 상처와 절망을 그리는 이들도 있다. 히틀러와 스탈린은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의 도화지를 아주 어둡게 칠했다. 그들은 유년 시절까지 색칠했던 어둠의 기억을 잊고 싶었다. 그래서 그들은 과거를 숨기려고 새로운 색깔로 인생의 도화지에 그림을 그려 넣었다. 그것은 바로 핏빛 색깔로 그려진 ‘권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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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스트> 9월호에 독서모임을 하는 북클럽 ‘달의 궁전’에 관한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달의 궁전’은 제가 유일하게 참석했던 북클럽입니다. 여기에 활동하는 분들이 폴 오스터의 소설을 좋아해서 그의 대표작 이름을 따와서 ‘달의 궁전’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예전부터 <악스트>에 대한 이웃들의 글을 쭉 봤는데요, 아무도 ‘달의 궁전’을 언급 안 해주셔서 전 이 사실을 모르고 지나갈 뻔했습니다. 제가 지방에 살고 있다 보니 독서모임에 자주 참석하지 못했지만, 저에게 소중한 인연들의 목소리를 책으로나마 들을 수 있게 되어 반갑게 느껴집니다. 또 한편으로는 자랑스럽습니다. <악스트> 9월호를 읽어야 할 이유가 생겼어요. 서울에 거주하시는 분 중에 독서모임에 관심이 있다면 ‘달의 궁전’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네이버 공식 카페도 있습니다. 그곳에 접속하여 카페 회원으로 가입하면 한 달에 한 번씩 열리는 독서모임 소식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가끔 서평 이벤트도 합니다. 앞으로도 ‘달의 궁전’ 많은 관심 부탁합니다.

 

 

 

* ‘달의 궁전’ 공식 카페 : http://cafe.naver.com/darlg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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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5-09-09 1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지 않아도 기사 났다고 축하 분위기던데 이거였구나.ㅎㅎ

cyrus 2015-09-09 21:11   좋아요 0 | URL
문단에 있는 작가들이 참여하는 문예지에 독서모임 클럽의 글이 있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에요. ^^

수이 2015-09-09 1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지네_^^ 멀리서나마 뿌듯하다.

cyrus 2015-09-09 21:12   좋아요 0 | URL
야나문도 잘 돼서 잡지에 소개되었으면 좋겠어요. ^^

yureka01 2015-09-09 2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주변에 독서클럽하나 있었으면 좋으련만..그런게 없으니..아쉽네요.

cyrus 2015-09-09 21:14   좋아요 0 | URL
독서모임이 오프라인 활동으로만 이루어지면 독서모임하는 북클럽이 있는지 모르는 사람이 많을 겁니다.

인디언밥 2015-09-10 15: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아아아 저도 읽었는데! 속으로 부럽다 부럽다 이러면서.. -0-

cyrus 2015-09-10 15:24   좋아요 0 | URL
저도 부러워요. 저 모임에 함께 했으면 참 좋았을 텐데 말이죠. ㅎㅎㅎ
 

 

 

 

 

 

 

 

페이스북에는 정말 별 이상한 사람들의 정신 상태를 보여주는 글과 사진들이 떠돈다. 안 보고 싶어도, 어쩔 수 없이 보게 된다. 생판 모르는 사람이 올린 글과 사진에 페이스북 친구가 좋아요를 누르면, 페이스북 친구인 나도 그걸 볼 수 있다. 생각해 보면 끔찍한 일 아닌가. 내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과 사진이 페이스북 친구관계도 아닌 사람 또한 볼 수 있다는 사실이. 나는 일주일에 두 번 정도 페이스북을 접속한다. 하루에 두세 번 이상 페이스북을 접속한 적이 없다. 정말 할 일 없을 때 불필요한 정보만 가득 널려있는 페이스북을 접속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책 이야기 가득한 북플을 접속하는 것이 더 낫다고 본다. 북플도 어느새 페이스북처럼 일상을 찍은 사진이 있는 글이 많아졌지만, 아직까지는 참을 만하다.

 

각설하고, 어제 페이스북에 접속하면서 어떤 사람이 캡처해서 자신의 타임라인에 올린 사진을 보게 되었다. 페이스북 친구가 누른 좋아요덕분에 아주 어이없는 사진을 봤다. 출처가 어딘지 잘 모르지만, 어떤 여자가 답변을 구하려고 인터넷 게시판에 질문을 올렸다. 그 질문이 가관이다. 연봉 3,200만 원을 버는 27세 남자친구를 둔 여자가 결혼하면 맞벌이를 안 해도 되는지 물어봤다. 이 여자는 돈 잘 버는 남자를 만나 결혼해서 안락한 생활을 누리고 싶은 마음을 아주 솔직하게 표현했다. 남자의 경제적 형편을 믿고 결혼을 고민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사실 남자 또한 교제하는 여성의 경제적 조건을 고려하면서 결혼을 고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혼한 여자가 일하는 것을 성폭행이라고 생각하는 그녀의 발언이 심히 걱정된다. 이 문제가 되는 발언은 여성을 김치녀라고 말하면서 극도로 혐오하는 자들에게 좋은 먹잇감이 된다. 남자를 조금이라도 무시하는 듯한 발언만 보면 득달같이 달려드는 여성 혐오 남자들은 이 여자를 전형적인 김치녀의 전형이라고 비하할 것이다. 페이스북에도 여성 혐오 남자들의 글이나 재미로 김치녀라는 단어를 쓰는 사람의 글을 종종 보게 된다.

 

그러나 여자의 발언에 분노하고, 혐오한다고 해도 이것을 정당한 비판으로 볼 수 없다. 일단 이 여자가 생각하는 성폭행의 의미가 왜곡되었음을 알려주어야 한다. 이러한 설명 없이 무조건 김치녀라고 욕하는 태도는 옮지 않는다. 최근 성과 관련된 각종 사건이 빈발하면서 성희롱’, ‘성추행’, ‘성폭행’, ‘성폭력등 다양한 단어가 난무하고 있다. 이들 용어는 개념이 각각 다르고 그 행위에 대한 책임에도 차이가 있다.

 

 

 

 

 

 

 

 

 

 

 

 

 

 

 

 

 

성폭행은 강간과 강간 미수를 말한다. 당연히 여자의 성폭행발언은 논리적으로 성립할 수 없다. 여자는 맞벌이 생활을 좋아하지 않는다. 맞벌이 생활을 제안하는 남편이 못마땅하다. 여자는 성폭행을 남자가 여자에게 일하는 것을 강요하는 일인 것처럼 너무 단순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렇다면 성폭력성폭행의 의미와 무슨 차이가 있을까.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성폭력성을 매개로 해서 상대방의 의사에 반해 이뤄지는 모든 가해행위라고 정의한다. 성희롱이나 성추행, 성폭행 등은 모두 성폭력의 개념에 포함된다. 여기까지는 헌법에서 규정하는 성폭력의 일차적 의미다. 요즘에는 여성에 대한 폭력도 성폭력으로 포함하기도 한다. 여성을 인격체로 대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성욕을 표출하거나 성적 수치심을 불러일으키는 행위를 성폭력으로 본다. ‘성폭행의 의미를 착각해서 오용한 여자를 향해 무심코 김치녀라고 비하하는 행위는 언어폭력이다. ‘김치녀발언은 여성을 인격체로 대하지 않는 혐오를 기저에 깔고 있다. 이 단어의 의미를 모르면서 마치 유행어처럼 농담으로 사용하는 아이들이 많아질까 봐 걱정된다. 장담하건대, 분명히 이 캡처 사진은 여기저기 공유되면서 떠돌다가 일베 사이트로 향하게 될 것이다. 이 글을 보고 열폭하는 일베 회원이 비로그인 상태에서 댓글을 남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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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08 23: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9-09 18: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9-08 23: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9-09 18: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인디언밥 2015-09-10 15: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첫 sns가 북플이어서 다행히 저런 글은 보지 못했지만.. 흔히 자작글이라고, 위와 같은 식으로 만들어서 유머 게시판에 올리는 경우로만 알았는데.. 그런 것만도 아니었군여

cyrus 2015-09-10 15:30   좋아요 1 | URL
저런 글도 자작글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자작글이나 광고를 올려서 ‘좋아요’ 수를 많이 얻으려는 사람들이 많아요. 페이스북을 안 하신다니 정말 잘하신 겁니다. 페이스북에 접속하면 정신건강을 해롭게 만드는 게시물이 하루에 두 개 정도는 보곤 합니다. 안 보려고 해도 어쩔 수 없이 보게 됩니다. 정말 북플은 청정지역이에요.
 

 

 

 

 

 

 

 

 

 

 

 

 

 

 

 

 

 

 

“아름다움은 저주받을 그 무엇이다. 타인과의 만남에서 아름답다는 것은 중요한 부분이다. 사람들은 아름답게 보이려고 많은 에너지를 소모한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아름다운지의 여부는 타인의 눈으로 결정된다는 것이다. 아름답기를 소망하는 일 자체는 즐거움을 줄 수도 있다. 하지만 정해진 기준에 맞아야만 아름다울 수 있다면 기분은 나빠지고 병이 날 수도 있다. 아름다움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시대를 초월해 아름답다는 평가를 들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름다움은 표현과 감상의 테두리 안에 있는 현상이다.” (23쪽)

 

외모가 아름다운 사람들은 양면적인 위치에 있다. 그들은 사람들의 평가적인 시선을 피할 수가 없다. 여성들은 타인의 시선을 잘 감지한다. 여성들은 자신을 남들의 시선으로 바라보곤 한다.
“자신의 아름다움을 확인하길 원하지만 동시에 자신을 객관적 대상으로 체험하고 싶지 않은 마음은 서로 모순이다. 아름다움을 내보이고 성적인 신호를 발산하면서도 남의 눈에 띄고 싶지 않다는 마음, 그것이 여성들의 모순된 심리이다.” (23쪽)

 

좋아서 자발적으로 몸을 연출해보이는 것과 마지못해 꾸미는 것은 분명 다르다. 강박과 괴로움이 시작되는 지점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이때부터는 아름다움이 병이 된다.
“외모를 아름답게 변화시키는 것에 대해선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다. 그런 노력이 즐거움을 주며 개성을 확장시켜 주는 한에서는 말이다. 하지만 그것이 개성을 억압하고 제한한다면 분명 문제가 있다.” (33쪽)

 

초기 페미니스트들은 여성미라는 개념과 여성 육체의 성적 대상화를 비판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외모를 꾸미는 노력이 여성운동에 대한 배반이라고 보았다. 그들은 브래지어를 공개화형시켰고 성적인 느낌이 들지 않는 옷을 입었다. 이런 저항적 행위는 물론 여성운동의 정치적 전략의 일부분이었다. 여성들은 봐란 듯이 외모를 꾸미지 않음으로써 남성들과 동등한 선에 서려고 했다. 존중받기 위해 아름답게 꾸밀 필요가 없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었다. 하지만 어느 사이엔가 이 전략의 효과는 떨어졌다. 왜냐하면 화장과 치장을 거부하는 해방적 행위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은 여전히 자신의 육체를 불만스럽게 여겼기 때문이다. 미국의 심리학 잡지 <사이콜로지 투데이>의 조사에 따르면, 스스로 페미니스트라고 여기는 여성들의 39%가 자신의 육체에 만족하지 못한다고 대답했다. 아름다움에 대한 욕구가 있는 한, 여성미에 관한 규범적 고정관념을 거부하는 일도 해결책이 될 수는 없었다. (35쪽)

 

“여성들에게 외모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래서 외모는 정체성을 위협하는 가장 강력한 요인이기도 하다. 수많은 여성들이 상상 속에서 자신의 몸을 심하게 왜곡시킨다. 자신의 몸에 대해 부정적으로 일그러진 이미지를 갖는 것은 여성들에게는 흔한 일일 뿐, 특이하거나 예외적인 일이 아니다.” (137쪽)

 

자기 외모를 부끄러워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이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 그 불안은 아름다움이나 여성다움을 인정받지 못하면 어떻게 할까 하는 불안과 연관이 있다. 그리고 더 깊은 곳에는 이 모든 것 때문에 사랑받지 못하면 어떻게 할까 하는 두려움이 있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많은 여성들이 자진해서 적응을 하게 되며 스스로의 해방을 어렵게 하게 된다. 즉 아름다움의 신화를 남들이 정의하는 것으로 인식하지 않고 자기 자신의 욕구로 여기게 되기 때문이다. (164쪽)

 

아름다우려면 마땅히 노력을 해야 하고, 일단 아름다워진 다음에는 그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아름답고자 하는 여성들의 열망은 너무도 큰 나머지 자연스럽고 정상적인 몸을 스스로 마구 훼손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179쪽)

 

여성들이 거울을 보는 것은 허영심이나 자아도취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스스로를 비판적으로 평가, 검토하기 위해서이다. 거울 속의 자기 모습을 보고 도취되는 여성은 거의 없고, 오히려 부족한 점을 확인하곤 한다. 거울을 볼 때 여성은 자기의 모습을 자신의 눈으로뿐 아니라, 타인의 눈으로도 본다. 거울은 타인의 시선이기도 한 것이다. (18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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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5-09-08 2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오늘부터 난생처음 페미니즘 책 읽고 있습니다. 나중 다 읽고 의견 교환 기대됩니다. ^^

cyrus 2015-09-08 22:43   좋아요 1 | URL
어떤 책을 읽고 있으신지요? 궁금합니다. ^^

yureka01 2015-09-08 2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본주의와 결합된 섹스와 미용과 성형 산업은 이젠 종교 같아요..

cyrus 2015-09-08 22:47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요즘 남자들도 아름다움을 찬양하는 산업 종교에 빠지고 말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