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 베스트셀러 순위에 독특한 책 한 권이 눈에 띄었다. 표지엔 제목도 저자명도 없어 더 궁금증을 자아낸다. 표지 속 꽃들의 정체는 클림프의 그림 일부다. 책 제목은 《그림의 힘》(에이트포인트, 2015). 이 책의 저자이자 세계미술치료학회장 김선현 교수는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 우리 뇌와 심신에 에너지를 선사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신선한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하는 그림, 집중력을 높여주는 그림, 불안을 잊게 해주는 그림 등 탁월한 효과가 있는 명화들을 엄선했다고 한다. 이 책이 2권까지 나올 정도로 인기가 치솟는 상황이 작년 ‘컬러링북’ 열풍과 유사하다. 작년에는 그림에 직접 색칠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하려는 사람들이 많았다면 올해는 그림만 보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무릎에 힘이 빠지고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충격에 휘말린다는 스탕달 신드롬은 아니더라도 그만큼 어떤 미술 작품들은 우리 뇌에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는 것은 분명하다.
그림치료의 효과는 임상실험으로 증명되긴 했으나 혹시나 단순히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 단기간 내에 ‘기적’을 바라는 독자들이 있을까 봐 염려된다. 실제로 《그림의 힘》을 소개한 어느 언론 서평에서는 그림의 힘을 ‘기적’과 동등한 의미로 설명했다. 기적을 바라는 종교의 시대에 쓸법한 낡은 표현이다. 화가의 그림은 우리에게 기적을 주는 성화(聖畵) 정도까지는 아니다. ‘기적’이라는 단어에는 ‘영적 상태’를 내포한다. 초기 유럽 기독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면 신도들은 거룩한 성물 앞에서 경건한 기도를 드린다. 시간이 흘러 성물은 예수와 성인들의 모습이 그려진 그림으로 대체되는데 이것을 ‘이콘(icon)’이라고 한다. 신도들은 이콘을 보면서 하느님의 영적 힘을 인정하고 기적의 체험을 추구한다. 오늘날 그림이 감상의 대상이라면, 이콘이 유행했던 시대의 그림은 종교적 태도와 신앙을 전파하고, 공유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세계적 명화를 이용한 그림치료를 ‘기적’으로 표현하는 것 자체가 난센스다. 반 고흐가 외로운 친구 관계로부터 멀어진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리면서까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우체부 조제프 룰랭 초상화」를 그리지 않았다. (《그림의 힘》 1권에서 저자는 고흐의 초상화를 부드러운 사람과의 관계를 원하는 사람들을 위한 그림으로 소개했다) 단지 자신과 친분이 있는 우체부 아저씨의 모습을 그렸을 뿐이다. 그림은 종교적 성화는 아니더라도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하고 평화가 깃들도록 도와줄 수는 있다. 하지만 기적을 바라는 것은 미술치료의 본래 목적과 한참이나 벗어나 있다. “종교에는 기적이 있어도 경제에는 기적이 없다”라는 정주영 전 현대 회장의 경영철학을 빗대어 표현하자면, 미술에는 기적이 없다.
《그림의 힘》은 미술작품을 간략하게 소개하면서 독자의 마음에 영향을 주는 심리적 효과가 무엇인지 알려준다. 그림이 담고 있는 깊은 의미. 이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선 상당한 배경지식이 필요한 건 당연하다. 그렇지만 독자가 저자의 친절한 설명을 믿고 따라가는 《그림의 힘》의 구성방식이 독자에게 신선한 자극을 줄 수 있을지 의문이다. 독자가 저자의 해석에 동의하게 되면 그 해석의 틀에 따라 제 생각을 맞추게 된다. 자신도 모르게 타인의 해석이 사고회로 과정에 개입되는 순간이다. 결국, 이 책을 통해 새로운 동기부여를 얻으려면 독자 스스로 현실적인 고민을 헤쳐 나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봐야 한다. 그러니까, 자신 스스로 생각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저자의 해석과 동떨어져도 좋고, 반대로 생각해도 좋다. 《그림의 힘》은 ‘아프니까 그림본다’ 같은 현대인에게 위로를 주는 명약 같은 책이 아니며, 이렇게 책이 만들어져서 버젓이 팔리면 안 된다. 오히려 이런 홍보 방식 때문에 미술치료 본연의 의미가 잊힐까 봐 걱정된다. 미술치료는 개인의 성격과 심리상의 문제점을 파악한 뒤 안정적이고 성숙한 심리 상태로 이끌어가려는 시도이다. 자신이 느끼고 있는 문제점이 무엇인지 파악하지 못한 채 ‘기적을 부르는 책’이라는 얄팍한 홍보 문구만 믿고 책을 사는 사람이 있다면 그럴 바엔 차라리 부적을 사서 벽에 붙이는 것을 권한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오늘날의 미술에는 기적이 없으며 미술작품은 우리에게 영적 에너지를 불어넣어 주는 부적이 아니다.
‘그림의 힘’을 몸소 체험하고 싶어서 《그림의 힘》을 구입하기 보다는 그냥 본인이 특별히 좋아하는 화가의 그림이 있는 책을 고르는 것이 낫다. 아무 설명 없이 그림만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책을 소개해본다. 미술평론가 로버트 휴즈가 직접 서문을 남긴 《명작 400선》(마로니에북스) 시리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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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이 책의 구성이 너무나 단출하다. 책을 펼치면 휴즈의 서문이 있고, 나머진 전부 작품명만 달린 그림이 쭉 이어진다. 뒤쪽에는 작가 연보와 색인이 있다. 이 시리즈는 반 고흐, 마그리트, 마티스, 달리, 피카소 총 다섯 명의 화가의 작품 사진을 각각 400점씩 실었다. 정말로 책 한 권에 그림이 400점 실려 있는지 직접 세어보진 않았지만, 이 정도면 그림 좋아하는 독자들의 눈을 즐겁게 해주고도 남을 양이다. 이 시리즈에는 작품 설명이 없어서 화가의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고 싶은 독자들은 그림만 봐도 성이 차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다섯 권 중 세 권(피카소, 마그리트, 반 고흐)은 품절되었다. 하지만 《명작 400선》 시리즈를 ‘그림의 힘’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책이라고 자신 있게 소개할 수 있다. 기존의 미술 화보는 판형이 상당히 큰 편이다. 그래서 《명작 400선》 같은 언제든지 들고 다니기 편한 미술 화보는 많지 않다. 또한, 그저 그림만 봐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복잡한 미술 공부를 할 필요도 없으니 스트레스가 생기지 않는다. 이 책을 펼치는 순간, ‘나’와 그림과의 일대일 만남이 이루어진다. 그림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벌써 쫄 필요 없다. 그림을 보는 것에 정해진 정답은 없다. 철저히 보는 사람의 몫일 뿐이다. 같은 그림을 보고도 누군가는 감동을, 또 다른 누군가는 슬픔을 느낀다.
마음이 불안정하면 일체 대상에 자신의 내면을 투사하게 된다. 모든 상황에 대해 보는 사람에 따라 전혀 다른 시각이 있는 것을 우리는 늘 경험하면서 살아간다. 그림도 마찬가지다. 하나의 그림으로 향한 《그림의 힘》의 저자가 보는 눈과 독자 개인의 눈은 완전히 일치할 수가 없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명화에 감흥이 느껴지지 않는 것 또한 지극히 정상적인 감정 표현이다. 그림에 자신의 고정관념과 선입견을 투사하지 않는다면, 그림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바라보고 느끼는 행위는 축복이다. 그러다 보면 그림을 통해 혼돈 속에서 발견하지 못했던 자신의 내면도 좀 더 선명하게 볼 수 있고, 풀어헤쳐 놓지 못했던 응어리진 상처들도 쏟아낼 수 있다. 그림을 잘 보는 방법? 특별한 건 없다. 그냥 자신 있게 그림을 보면서 즐겁든, 슬프든 자신만의 감정으로 느끼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