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러 테라피는 각각의 색채가 지닌 고유한 스펙트럼을 이용해 건강과 성격 변화를 유도하는 대체의학의 한 분야이다.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푯말에 붉은색 글씨를 쓰거나 학습효과를 높이기 위해 녹색 칠판을 쓰는 등 기능적으로 색깔을 활용하는 사례는 예부터 존재했다. 색채치료는 오래전부터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색깔을 이용해 질병을 치료했다고 한다. 최근에는 적극적인 치료 효과까지 염두에 두고 색깔을 활용하는 쪽으로 그 연구영역이 확대되는 추세다. 1980년대 교도소 내 폭력으로 골머리를 앓던 미국에서는 사람의 마음을 안정시키는 색깔이 알기 위해 실험한 끝에 분홍색을 가장 편안한 색으로 꼽았다. 당시 회색이었던 교도소의 벽 색깔을 분홍색으로 바꾸자 놀랍게도 교도소 내 폭력사고가 눈에 띠게 줄었다고 한다. 분홍색은 자궁 내부의 색이어서 편안함과 안정감을 준다는 설명이다.

 

 

 

 

 

바실리 칸딘스키 「동심원들과 정사각형」 (1913년)

 

 

 

바실리 칸딘스키의 그림 「동심원들과 정사각형」을 보라. 빨간색 원이 제일 먼저 눈에 띈다. 주황색, 노란색 등 난색이 많다. 《그림의 힘 1》(김선현 저, 에이트 포인트)에 이 그림의 효과가 소개된다. 책의 저자는 빨간색은 사람의 기분을 상승시키는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알리면서 체력이 떨어지면 이 칸딘스키의 그림을 벽에 붙여놓고 보라고 권한다. 저자의 말이 그럴싸하게 들린다. 이어서 저자는 빨간색의 효과를 증명해주는 실험 결과를 소개한다. 그리고 자신도 이와 유사한 실험을 시도해서 비슷한 결과를 얻었다고 주장한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의대의 실험에 따르면, 똑같은 정신병 치료약을 빨강색으로 코팅했더니 사람들이 흥분을 했고, 파란색이나 녹색으로 코팅했더니 진정 효과를 보였다고 합니다. 제가 한 관찰 실험 중에도 그런 결과가 나온 적이 있습니다. 우선 유치원생 20명을 빨간색 방 어린이들은 육체 놀이에 집중하는 반면, 파란색 방 어린이들은 책을 읽는 등 정적인 활동을 많이 하는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그림의 힘 1》 중에서)

 

 

독자는 처음 이 글을 보는 순간,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인다. 대학이나 권위 있는 연구소가 주관하는 실험에서 나온 결과라면 누구나 다 믿게 된다. 여기에 저자가 자신 또한 그 실험의 결과를 확인했다고 강조하면 설득 있게 보인다. 한편으로 어떤 독자는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병원에 가면 환자들의 심신을 안정시키는 색채 치료실이 있는지 궁금해한다. 환자들이 많이 찾고, 최고급 의료기술이 있는 종합병원이라면 이런 색채 치료실 한두 개쯤은 마련되어 있을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진짜로 있는지 확인하려면 수많은 종합병원에 전화를 걸어서 물어보는 방법이 있지만 시간이 오래 걸린다. 성급한 결론으로 보일 수 있지만, 색채 치료실 효과를 인정하는 의사는 많지 않을 것이다. 색채 치료실을 운영하는 병원이 나올 거라고 낙관적으로 전망하지 않는다. 주류 의학자나 심리학자들은 컬러 테라피 효과를 회의적으로 생각한다. 약이 아니라도 약이라고 알고 먹으면 효과가 있는 위약효과(플라세보 효과) 정도로 보고 있다. 그러므로 병원이 색채 치료실을 만들 이유가 없다. 색깔마다 오랜 시간을 거쳐 상징적 이미지를 갖고 있다는 것은 받아들일 수 있어도 특정 색의 치료 효과는 과학적 접근과 거리가 멀다. 

 

 

 

 

 

 

 

 

 

 

 

 

 

 

 

 

빨간색은 자연에서 접하는 불 또는 피의 이미지와 연관된다. 불은 따스함, 피는 생명 등으로 연결된다. 따스함은 열정으로 이어지고 빨간 스포츠카도 그런 이미지에서 연상된 것이다. 빨간색은 남성적인 색깔이다. 최초로 색채의 시각적 효과를 증명한 독일의 대문호 괴테는 빨간색을 ‘색의 왕’이라고 했다. 실제로 빨간색은 남성 귀족, 남성 추기경이 많이 선호했다. 왕정 시대에 빨간색 염료가 너무나도 귀해서 귀족이나 왕족만이 빨간색 옷을 입을 수 있었다. 오래전부터 빨간색이 강력한 권력을 상징하는 의미로 알려지기도 했다. 왕 이외 사람들은 절대로 빨간 옷을 입을 수가 없었다.

 

 

 

 

 

필립 드 상파뉴 「리슐리외 추기경」 (1637년경)

 

 

지금은 누구나 빨간 옷을 입을 수가 있지만, 권력을 상징하는 빨간색의 의미는 아직도 남아 있다. 추기경의 주케토(Zuchetto, 머리 위에 쓰는 모자)는 빨간색이다. 권위를 상징하는 빨간색은 왕족만 어울리는 것이 아니다. 프랑스 궁정화가 상파뉴는 루이 13세 통치 시절 재상을 지낸 리슐리외 추기경의 초상화를 제작했는데, 막강한 권력을 가진 자의 자태를 보여주고 있다.

 

 

 

 

 

(위) 바이오맨 (아래) 후뢰시맨

 

 

 

80년대에 어린 시절을 보낸 남자라면, ‘슈퍼 전대 시리즈’를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국내에 널리 알려진 대표적인 작품이 우주특공대 바이오맨, 지구방위대 후뢰시맨 그리고 파워레인저가 있다. 역대 전대물 시리즈에서 나오는 대장은 공통으로 ‘레드’라는 호칭으로 부르며 빨간색 헬멧 슈트를 입고 변신한다. (예외가 있다. ‘전자전대 메가레인저’의 대장의 헬멧 슈트는 검은색, ‘미래전대 타임레인저’는 분홍색 헬멧 슈트를 착용하는 여성 대원이 대장이다) 역시 제일 앞장 서는 사람답게 ‘레드’는 늘 항상 다른 대원들보다 앞에 서고, <무한도전>의 유재석처럼 정중앙 자리를 고수한다. 그래서 남자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대원이 ‘레드’다. 레드가 ‘옐로’나 ‘핑크’ 같은 히로인보다 인기가 많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남자는 대장 역할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네다섯 명의 동네 아이들과 함께 전대물 시리즈를 흉내 내는 역할 놀이를 하게 되면, 서로 레드 역할을 하고 싶어 싸우기도 한다.

 

 

 

 

 

 

 

 

 

 

 

 

그렇지만 빨간색에 좋은 의미만 있는 건 아니다. 적극성과 열정처럼 긍정적인 힘을 상징하면서도 불처럼 공격성과 분노 같은 부정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 신호등의 빨간색이나 축구의 레드카드는 각각 금지와 경고의 신호다. 빨간색을 부도덕한 색으로 여겨 금기하던 시대도 있었다. 중세에 ‘빨간 머리+여자’ 조합은 마녀로 여겼다. 너새니얼 호손의 소설 《주홍 글씨》에서 헤스터는 간통을 저질러 붉은색으로 된 ‘간통(Adultery)’의 첫 글자 ‘A’ 글씨를 가슴에 달고 다닌다. 진정한 셜록키언이라면 셜록 홈즈 시리즈에 나온 빨간색을 기억해야 한다. 셜록 홈즈 시리즈의 시작을 알리는 《주홍색 연구》에 희생자가 죽어가면서 자신의 피로 벽에 ‘RACHE(독일어로 ‘복수’)’라는 글자를 새긴다. 《셜록 홈즈의 모험》 두 번째 수록작 <빨간 머리 연맹>에 나오는 악당의 머리 색깔은 붉은색이다. 《셜록 홈즈의 마지막 인사》 세 번째 수록작의 제목은 <붉은 원>이다. 소설에 언급되는 비밀 범죄 조직 이름이다. 쥘 르나르《홍당무》 주인공은 붉은 머리칼에 주근깨투성이인 탓에 ‘홍당무’라는 별명을 가지게 된다. 그의 어머니는 홍당무를 문제아처럼 대하고, 형과 누나는 홍당무를 놀린다. 이로 인해 홍당무는 사춘기 기질을 드러내며 세상에 대한 분노를 느낀다.

 

무슨 색이 어떤 상징을 부여하는 공식은 획일화에 빠질 수 있는 위험이 있다. 특히 인터넷에서 다양하게 소개되는 색채 치료 방법과 효과 중에는 명확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일상생활에서 색깔의 의미를 찾을 때는 상식에 집착하기보다 자신에게 어울리는 색이 무엇인지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치유력에 지나치게 맹신하는 것도 좋지 않다. 심리적 만족을 얻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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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쌩 2015-10-20 21: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빨간색은 누구나 입을 수 있지만
아무나 소화할수는 없다는~~점이 슬프네요.

AgalmA 2015-10-20 21:49   좋아요 1 | URL
대~한민국~~~ 붉은 악마의 위엄이란 것도(쿨럭;)...농담이었습니다;

cyrus 2015-10-22 20:38   좋아요 0 | URL
붉은악마 응원할 때 레드티 입으면 거리낌없는데, 평상시에 입는 붉은색 옷은 소화하기 힘들어요. ^^;;

AgalmA 2015-10-20 22: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한편 블루의 역사에서 보면, 블루가 권위의 상징이던 시절도 있었죠. 파란 염료 탄생으로 성모마리아의 의상도 흰색에서 푸른색으로 바뀌죠. 이건 아직도 많이 남아 있죠. 고가이다 보니 종교계, 왕실이 또 독점. 푸른 염료의 독성으로 개천이 푸른 독 라떼가 됐다는 기록을 보며....인간 사회에선 색조차 참 순수하게 존재하기 어렵구나...했어요;

cyrus 2015-10-22 20:39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 색채의 역사를 살펴보면 귀족들이 자신들 선호하는 색에 무조건 권위의 상징을 붙였어요.
 

 

 

 

 

 

 

 

 

 

 

 

 

 

 

 

 

 

 

* 절대의 탐구 (La Recherche de l'absolu, 1834년, <인간 희극> 제2부 철학 연구)

 

 

 

도스또예프스끼의 소설 《노름꾼》은 도박중독자의 심리를 뛰어나게 묘사한 명작이다. 이 소설은 바로 도스또예프스끼 자신의 얘기이기도 하다. 그는 한동안 도박에 빠져 파산지경에 이르렀고, 급기야는 앞으로 쓰게 될 작품을 담보로 선금을 받아 도박자금으로 썼다. 이 때 나온 소설이 《노름꾼》이다. 작가의 전 재산이랄 수 있는 문학혼을 걸고 도박자금을 융통한 거로 봐서 도스또예프스끼는 도박중독자임에 틀림없다.

 

도박 얘기에 ‘삼성 라이온즈’를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다. 어제 삼성 라이온즈 야구단 주축 선수 3명이 해외 원정 불법 도박을 한 사실이 발각되었다. 나는 이승엽이 아시아 한 시즌 최다 홈런 신기록을 달성하고, 2002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지켜본 삼성 라이온즈 팬이다. 어제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너무 화가 난다. 도박 혐의로 의심받는 이 세 명의 선수가 이번 시즌 우승에 이바지를 했고, 올 시즌에 역대 최고 기록도 남겼다. 야구 경기에 승리하기 위해서는 투수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 긴 이닝 동안 오래 던지면서 실점을 적게 허용하는 실력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야구는 투수 놀음’이라는 말이 있다. 제아무리 홈런을 뻥뻥 쳐주는 거포 타자들이 즐비한 팀이라도 선발이든 중간이든 투수가 공을 제대로 못 던져서 점수를 허용하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세 명의 투수가 도박 혐의 사실이 인정되면, 그들은 ‘투수 노름’으로 인해 내년 선수 생활을 장담하지 못하는 최악의 상황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런 엄청난 결과를 잘 알면서도 부동산, 카지노, 경마, 벤처 등 어떤 아이템이 ‘돈 된다’는 소문만 나면 앞뒤 재지 않고 정신없이 달려드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돈 놓고 돈 먹기’란 심정으로 부나방처럼 덤벼든다. ‘대박’을 쫓다가 그만 ‘쪽박’ 신세가 되어 패가망신한다. 오늘날에는 로또, 도박이 사람들에게 대박의 꿈을 부풀리는 위험한 놀이라면 과거에 황금이 귀했던 시절에는 연금술이 한탕주의식 풍조를 불러일으켰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대부터 중세시대까지 유행한 연금술은 값싼 금속이나 돌 등을 금으로 만들어내기 위해 시작되었다. 사람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고, 자세한 비법은 일반에 공개되지 않았지만, 대개는 비슷한 과정을 거친다. 구리, 주석, 납, 철의 4가지 합금을 만들어 비소나 수은의 증기를 쬐면 백색을 띤 ‘은의 형상’이 만들어지고 이때 금으로 만드는 씨앗의 역할을 하는 소량의 금을 촉매제로 첨가하면 일이 마무리된다. 오랜 세월 수많은 실험을 거쳤지만 역사상 연금술을 통해 금을 만드는데 성공했다는 연금술사는 아무도 없다. 그야말로 허황한 꿈이다. 연금술에 푹 빠져 재산을 탕진하는 사람들이 늘어났지만, 그들의 무수한 시행착오가 오늘날 화학지식과 화학공업의 모태가 되었다. 그래도 허황한 일확천금의 꿈에 시간과 돈을 낭비하게 한 연금술을 좋게 볼 수 없다. 연금술은 수없이 시도해봤자 ‘꽝’만 나오는 복권과 같다.

 

한탕주의식 풍조가 한 사람의 인생을 파멸시키는 것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마저 힘들게 하는 과정을 잘 보여주는 소설이 바로 발자크의 《절대의 탐구》이다. 소설의 주인공 발타자르 클라스는 훌륭한 귀족 가문 출신의 남자다. 그는 화학 실험에 관심이 많다. 소설을 위해 꾸며낸 이야기이지만, 클라스는 프랑스의 유명한 화학자 라부아지에의 제자가 된 적이 있다. 어느 날 화학자이자 장교인 폴란드인 베르초프냐를 만나면서, 화학 실험에 열중하게 된다. 그가 이토록 실험에 집착하는 이유는 단 하나. 세상의 모든 물질을 단일한 ‘절대’ 원소로 만드는 것. ‘절대 원소’로 만드는 과정을 발견하면, 황금을 만드는 일은 식은 죽 먹기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클라스는 허황한 진리를 믿으면서 자신의 방에 온종일 틀어박혀 실험에 몰두한다. 자신의 아내와 자식들을 거들떠보지 않고, 가세는 점점 기울어져 간다. 아내는 실험에 빠진 남편의 모습에 안타까워하며 예전 관계로 되돌리려고 노력한다. 그렇지만 부부의 사랑은 광적인 학문 탐구열을 이겨내지 못한다. 아내는 홀로 남편과 자식들 뒷바라지하다가 병을 앓아 세상을 떠나고 만다. 이제 아내의 역할은 고스란히 클라스의 딸 마르그리트가 맡게 된다. 아내가 죽은 뒤에도 클라스의 실험 정신은 갈수록 심해진다. 가족들 몰래 화학 실험 기구를 사는 바람에 빚이 늘어나게 된다. 클라스는 아내의 유산뿐만 아니라 딸이 물려받은 유산 일부를 빌리면서까지 화학 실험에 필요한 것들을 마구 사들인다. 이런 상황을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었던 마르그리트는 좀 더 강경한 자세로 나서서 아버지의 실험을 어떻게든 막으려고 노력한다. 

 

《절대의 탐구》는 그리 길지 않은 분량의 소설인데도, 계속 읽어나가는 것이 벅차다. 발자크 특유의 장황한 묘사에 금세 집중력을 떨어뜨리지만, 무엇보다도 발타자르 클라스의 행동을 보는 내내 짜증이 일어난다. 사실 가정을 소홀히 하고, 말도 안 되는 실험에 집착한 클라스 같은 남편의 행동은 이혼 사유 감이다. 소설 후반부에 이를수록 클라스의 추태는 차마 눈 뜨고 보기 힘들다. 딸이 돈을 빌려주지 않자, 징징대다가 자살 소동을 일으켜서 동정심을 유도하는 모습이 꼴불견이다. 언젠가는 절대 원소를 발견하면 즉시 돈을 갚겠다고 약속하는 모습도 보기 흉하다. 발타자르 클라스는 최악의 남편상, 최악의 아버지상을 동시에 갖춘 최악의 주인공이 되시겠다.

 

어떤 것에 중독된 사람들은 공통으로 손이 잘리면 발로라도 한다는 식으로 끝까지 집착하는 성향을 보인다. 상대방이 절제하라고 조언을 해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오히려 좋게 조언을 해주는 사람들에게 따진다.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데 왜 자기가 좋아서 하는 일에 참견하느냐고 화를 낸다. 중독 증세가 심한 사람들은 자기가 주변 사람들을 피곤하게 만들고 있는지를 잘 모른다. 또한, 자신의 중독 증세가 심한 상태라는 것도 스스로 인정하지 않는다. 《절대의 탐구》를 읽는 내내, 이번 주 월요일에 방영했던 TV 프로그램 ‘안녕하세요’가 생각났다. 하필이면 그 방송에 낚시에 재미 들인 아버지, 게임 중독 어머니 그리고 폭음하는 아버지의 사연이 소개되었다. 세 사람 다 중독의 원인은 달라도, 증세는 비슷했다. 자신을 측은하게 바라보는 주변 사람들의 심정을 헤아리지 못했다. 중독도 제대로 고치지 못하면 헤어나기 힘든 마음의 병이 된다. 집착할수록 자기 영혼뿐만 아니라 자신이 사랑하는 주변 사람들의 영혼마저 갉아먹는다.

 

 

 

 

 

※ 눈 뜨고 못 봐주는 오자

 

* 1912년 8월 하순 어느 일요일, 저녁기도가 끝난 뒤, 한 여인이 뜰을 향한 창문 앞 안락의자에 앉아 있었다. (297쪽) → 뜻밖의 타임머신

 

* 자신을 못생겼다고 수군대는 세상의 평판에 순종하는 젊은 처녀의 사랑을 잘 묘사하려면, 좋이 책 한 권은 필요하지 않을까? (307쪽) → 종이책? 그거 좋지!

 

* 발랄한 취주악의 팡파르에밖에 비유할 길 없는 효과를 내고 있는 빛의 범람 속에... (347쪽) → 여기에 함정이 있어!

 

* 클라스 부인이 천사를 그린 귀드 레니의 그림 앞에서 노신부를 불러세웠을 때... (380쪽) → 이탈리아의 바로크 화가 ‘Guido Reni’를 ‘귀도 레니’라고 쓰는 것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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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16 19:3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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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19 19:4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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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스스로 만들었거나 만들어진 틀 속에 갇혀 산다. 자신이 다른 이들보다 객관적이라고 착각하지만, 사실은 모두 왜곡된 창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얼마나 많은 편견으로 차 있는지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실험 하나 소개하겠다.

 

시카고대학 소속 심리학자들이 경찰관이 범인을 체포하는 방식의 시뮬레이션 컴퓨터 게임을 고안했다. 게임 규칙은 간단하다. 참가자는 경찰관이 되어 컴퓨터 화면에 나타나는 범인이 보이면 재빨리 총을 쏘면 된다. 범인은 한 손에 권총이 쥐어져 있고, 범인이 아닌 선량한 사람은 휴대폰 같은 위험하지 않은 물건을 손에 들고 있다. 화면에 나타나는 사람들은 백인과 흑인으로 구성되었다. 선량한 사람이 다치지 않고, 정확하게 범인에게만 총을 쏜 참가자는 상금을 받는다. 참가자들은 상금을 얻기 위해 화면에 끝까지 집중했지만, 위험인물에게 총을 쏘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상당히 늦게 결정했다. 그리고 휴대폰을 들고 있는 흑인 남성을 쏘고, 무기를 소지한 백인 남성을 보내주는 실수를 반복했다. 호주 심리학자가 시카고대학의 실험과 아주 비슷한 방식을 시도했다. 이번에 터번을 쓴 남성을 화면에 등장시켰다. 이 실험에서 참가자들은 평범한 복장의 남성보다 머리에 터번을 쓴 남성을 볼 때 더 많이 총을 쏘았다.

 

 

 

 

알 카에다의 수장 오사마 빈 라덴. 그가 은신 생활을 하는 동안 외신은 하얀 터번, 길게 자란 수염의 빈 라덴 사진과 영상을 반복해서 공개했고, 터번과 수염은 테러리스트를 상징하는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다. 상징이 각인된 사람은 터번을 쓴 긴 수염의 중동인만 보면 테러리스트로 의심한다.   

 

 

두 가지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은 자신 눈앞에 있는 사람이 위험인물인지 아닌지 식별하는 데 어려워한다. 게임을 하다가 간혹 생기는 단순한 실수로 가볍게 이해해선 안 된다. 이런 비극적인 상황이 실제로 일어난다. 평범한 시민이 이슬람 테러리스트로 오인되어 경찰관의 총격을 받아 사망하는 일이 발생한 적이 있다. 피부색이 까무잡잡한 중동인 외모를 가졌다는 이유로 테러리스트로 의심받는다. 9.11 테러 이후 미국 사회 내 반이슬람 정서가 높아지면서 아랍계 미국인에 대한 차별성 범죄가 늘어났다. 이슬람계에 대한 보복성 범죄 증가는 전혀 놀라울 게 못 된다. 지금도 여전히 미국 사회에서 이슬람 공포증을 유발하는 수사적 표현을 구사하는 정치인, 언론인들이 있다. 그들의 목소리에 익숙한 미국인들은 무슬림과 아랍계 미국인에 대한 적대감이 해소되지 않은 채 증오감을 더 키운다. 터번을 쓴 남성만 보면 무조건 테러리스트로 의심하는 무시무시한 편견이 형성된다.

 

 

 

 

 

'수염 난 장난꾸러기' 스웨덴지부 단체 사진 (사진출처: 연합뉴스)

 

 

무장세력 IS의 난폭함이 갈수록 심해지면 무슬림에 대한 편견도 사라지지 않는다. 최근 스웨덴에서 남성들로 구성된 친목모임 단체가 IS 일원으로 오인되는 해프닝이 있었다. 덥수룩한 수염을 기른 남성회원 30여 명으로 구성된 ‘수염 난 장난꾸러기들’이 스톡홀름에 있는 고성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들은 단체 깃발을 가지고 왔는데, 검은색 바탕의 깃발에 ‘X’자로 교차한 두 개의 검이 그려져 있다. 멀리서 보면 흡사 해적 깃발과 비슷하게 생겼다. 깃발을 들고 무리 지어 고성을 찾은 단체 회원들을 목격한 사람은 처음에 그들이 IS조직인 줄 알고 경찰로 신고했다. 아마도 신고자는 수염 난 사내들이 오사마 빈 라덴과 비슷하게 생겨서 위험인물로 생각했을 것이다. 뉴스가 공개하는 이슬람 무장단체 일원들은 공통으로 수염이 많이 자라나 있다. ‘수염 난 장난꾸러기들’은 형제애, 자선, 친절을 목표로 생활하는 엘리트 남성들의 친목단체다. 스웨덴 지부뿐만 아니라 전 세계 곳곳에 지부가 있다. 혹시 외국을 여행할 때 정장 차림에 덥수룩한 수염이 있는 남자들이 때로 모여 돌아다닌다면, 일단 무서운 사람으로 오해하지 마시라. ‘수염 난 장난꾸러기’의 단체 깃발도 기억해두시길.

 

인종 편견은 흑인을 바라보는 시선에서도 나타난다. 흑인들이 많이 사는 동네에는 범죄가 잦아서 흑인 범죄 성향이 높다는 편견 때문에 비무장 흑인마저 잠재적 범죄자가 된다. 지난달 말에 휠체어를 탄 흑인 청년이 경찰의 총격에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흑인 차별과 편견이 사라지지 못한 이유 중 하나는 자신과 다른 것을 선천적으로 두려워하는 심리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미국 대통령이 흑인이어도 여전히 흑인을 범죄와 연관 지어서 두려워하는 미국인이 많다. 사실과 맞지 않은 원초적 두려움은 편견의 뿌리가 되어 우리 뇌 속에 자라난다. 오랜 세월이 지나서야 드디어 세상에 공개된 하퍼 리의 소설 《파수꾼》에는 흑인에 대한 두려움으로 사로잡혀 편견에 쉽게 조종당하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진 루이즈 핀처의 고모는 과거에 메이콤 마을에 일어난 흑인 폭동의 공포를 잊지 못한다. 그러면서 그들을 법적으로 보호하는 NACCP(흑인 인권단체)에 반감을 품는다. 루이즈의 친구는 흑인 인권 운동이 공산주의자들과 결탁한 음모로 믿는다.  

 

뚜렷한 믿음은 복잡한 세상을 살아가는 데 훌륭한 지침이 된다. 삶을 지탱해주는 기준이 없으면 자신감을 가질 수 없다. 중심이 없으니 늘 주변에 휘둘린다. 불안한 삶을 살게 된다. 그런데도 우리가 가진 생각이나 행동이 나도 모르게 잘못된 편견에 매몰되지 않았는지 자문할 필요는 있다. 타인을 향한 편견은 증오가 담긴 화살이 되어 선량한 사람의 피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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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15 23: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5-10-16 16:14   좋아요 1 | URL
그래서 편견이라는 게 정말 무서워요. 저 또한 그런 함정에 쉽게 빠질 수 있는데, 이런 위험을 감지하지 못해요.

[그장소] 2015-10-16 0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편견일까요? 조종일까요? 일종의 시그널에 계속 노출되서 무의식 중 세뇌라면..아니..의식중 세뇌일 수도..
계속 암시를 줬어요. 대중적 매체를 통해서..그들은
다르다고요...아닐까요...?! 선택되어지도록 ..이 실험은 이미 세팅 자체가 의미 없었는 건지 몰라요.

cyrus 2015-10-16 16:33   좋아요 1 | URL
그장소님이 말씀하시는 ‘일종의 시그널’이 ‘편견’과 비슷한 의미로 본다면, 제가 소개한 실험이 대중매체가 전파한 편견에 조종당한 사람들의 심리를 보여주는 사례로 볼 수 있겠군요. 이 글의 요지는 편견의 근본적인 원인입니다. 그러니까 편견이 어떻게 해서 생기는 건지 알리고 싶었습니다.

마립간 2015-10-16 08: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파수꾼>에는 흑인에 대한 두려움으로 사로잡혀 편견에 쉽게 조종당하는 사람들. ; 이 문구를 보니, 고양이를 무서워 하는 사람들과 강간을 두려워하는 여성들이 떠오르네요.

cyrus 2015-10-16 16:39   좋아요 1 | URL
어떤 사람들은 고양이 울음소리가 너무 무서워서, 고양이 자체를 싫어하기도 해요. 밤에 고양이 울음소리를 들으면 무섭게 느껴진 건 사실이지만, 고양기가 알고 보면 매력 있는 동물이에요.

AgalmA 2015-10-16 21: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불안-공포와 편견이 참 미묘해지는 지점에서 연결되어 있다고 봅니다. 진화적인 자기 보호본능상 어떤 사건을 트라우마적으로 겪게 되면 편견이나 병증으로 뿌리내리게 되는 상황이 되는 듯 싶으니까요.
˝꼬마 앨버트˝ 실험에서도 볼 수 있듯이 공포 조건반사를 보려고 한 잔인한 실험은, 꼬마 앨버트가 흰쥐를 두려워하게 만들고 더 나아가 다른 조그만 털 난 동물 전체, 흰 수염에도 공포증을 갖게 만들어 산타클로스도 무서워했다고 하죠. 이처럼 ˝확장성˝이 편견에서 가장 우려되는 점이죠.
여하간 이 행동주의 관점의 실험은 뇌과학 쪽에선 이의를 제기했죠. 조건형성 때문이 아니라 원래 인간 뇌가 쥐 같이 병원균을 옮기는 생물을 겁내게끔 만들어졌다는 의견.
이런 실험을 받은 아이들이 단명하거나 사회부적응으로 고통당하는 등의 뒷이야기들은 더 처참하고....

덧붙여 홀로코스트를 경험하지 않았는데도 그 자녀들이 유전적으로 공포 불안 상황에 대한 뉴런이 더 많다는 것도 의미심장...
아무튼 참 복잡한 인간 심리...

[그장소] 2015-10-16 20:48   좋아요 0 | URL
음...더 가면 공포..그렇죠.
알게모르게 노출이 자연스레 이뤄지고 있다는걸.
저는 말한것이고.
cyrus 님은 딱 저 견해를 놓고 만 말씀하신 것이고요.
거기서 파생된 연쇄적 반응에 대해 마립간님 Agalma님이 정리를 해 주신 셈..
제 얘기는 좀 치우친 면이 있답니다 .전문 분야로 논한 게 아니니 너그럽게 양해를 바랍니다.^^

[그장소] 2015-10-16 20:50   좋아요 0 | URL
사람이 참 못할 짓을 과학이란 명분으로 많이해요.
이놈의 호기심...ㅎㅎㅎ
심리..이걸 탓해야하나? 인간 자체가 판도라의 상자.

AgalmA 2015-10-16 21:02   좋아요 1 | URL
그장소님이 말씀하신 대중매체적 선동도 일리 있습니다.
저는 인간 자체의 심리 작동 방식에서 보려고 한 거여서 맥락이 서로 달랐을 뿐 서로 보족적이지 충돌될 부분은 없는 것 같습니다~

과학이란 명분...뭘 모르니 여기도 찔러보고 저기도 찔러보고 아니겠습니까...빛과 어둠처럼 득이 있는 만큼 피해도 불가피하고요. 득보다 실을 더 피해야 할 텐데 그게 참...

cyrus 2015-10-19 20:01   좋아요 1 | URL
그장소님의 의견은 틀리지 않습니다. 아갈마님이 지난주에 제가 달았던 댓글 내용을 좀 더 정확하게 풀어쓰셨어요. 선동으로 인한 확장성이 편견을 조장하는 원인입니다. 제가 ‘선동’이라는 표현을 썼어야하는데, 그 단어가 생각나지 않았어요. ‘대중매체가 전파한 편견에 조종당한’이라고 쓴 표현이 구체적이지 않아서 아마도 제 댓글이 그장소님의 의견을 반박하는 의미로 보인 것 같습니다. 큰 오해 없으면 합니다. ^^

[그장소] 2015-10-16 2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Agalma 님 말씀 대로 같은걸 놓고 서로 각자의 방향에서 보고자 한 ..것으로 사료 되옵니다 .하하핫~

[그장소] 2015-10-19 20: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저는 반박으로 본적은 없는데 .왜 저는 선동 이란 단어를
선호치 않아 서 안썼거든요.^^ 너무 우회를 한 탓에 배려 토스가 서로..주어지다보니..조심성만 가득 해진 면이 있단 생각 이..들어요.그냥 포크로찍듯 그 단어를 적재적소에 써야 한단걸..또 배우네요.^^
cyrus님 오해나 반박이나..그런 느낌이 아니고 저는 즐거웠어요.진심으로.^^

cyrus 2015-10-19 20:39   좋아요 1 | URL
좋게 보셔서 고맙습니다. ^^

[그장소] 2015-10-19 20:43   좋아요 0 | URL
저야 다른 사례를 가져와 대입을 시킨 셈이니 이해를 바랄 쪽은 제 쪽이 분명하거든요.
잘 받아주셔서 전 이야기에 흥미가 한껏이었고요.
^^
다시 읽어봐도 논점에 벗어난 글이 아니고.
제 얘긴 다른 사례의 붙임 정도. .로 참고 해주시면 했었어요.ㅡ그러니 여러모로 감사합니다. ㅎㅎ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즐겨 읽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유일하게 읽은 소설이 바로 《노르웨이의 숲》이다. 민음사의 새 번역본이 나오기 한창 전에 읽었으니 당연히 내가 읽은 번역본은 문학세계사 판이다. 문학세계사 번역본이냐 민음사 번역본이냐, 어떤 책을 읽느냐에 따라서 세대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 나이가 좀 있는 사람은 문학세계사 번역본의 ‘상실의 시대’를 읽은 기억이 있을 것이며, 젊은 사람들은 ‘노르웨이의 숲’을 읽었을 것이다. 솔직히 민음사 번역본이 새로 나왔을 때 ‘노르웨이의 숲’이 원제임에도 무척 낯설었다. ‘상실의 시대’가 더 친숙하게 느껴진 탓이리라. 이웃의 블로그를 접속하면 하루키 소설에 관한 서평을 많이 볼 수 있다. 하루키의 소설을 안 읽어서 댓글로 남기고 싶은 말이 생각나지 않을 때가 많다. 이제는 《노르웨이의 숲》 줄거리에 대한 기억마저 희미해져 간다. 그렇지만 《상실의 시대》와 관련된 이상야릇한 비화만큼은 절대로 잊히지 않는다.

 

군 복무 시절 같이 지냈던 사람들의 얼굴과 목소리가 하나둘씩 잊혀도 그때 읽었던 《상실의 시대》는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내가 입대했을 때부터 군인들이 머무는 방의 명칭인 ‘내무실’이 ‘생활관’으로 변경되어 사용되기 시작했다. 생활관에는 세 칸짜리 책꽂이가 있고, 책장 절반은 국방부가 지정한 ‘진중문고’로 채워져 있었다. 딱히 읽을 만한 책이 눈에 띄지 않아서 고심 끝에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를 읽게 되었다. 책을 읽기 시작할 땐 지루했지만, 책 중반부에 이를수록 이야기에 점점 몰입되었다. 그런데 오랜만에 느낀 독서의 몰입은 오랫동안 가지 못했다. 책 중간에 있는 2~3쪽의 책장이 뜯긴 채 사라졌다. 책의 낙장이 한 곳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적어도 네다섯 군데 낙장의 흔적을 발견했다. 처음에는 낙장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사라지고 없는 책장에 나오게 될 장면도 궁금하지 않았다. 그런데 며칠 뒤에서야 그 장이 사라진 이유를 알게 되었다.

 

어느 날, 선임이 《상실의 시대》를 읽는 내 모습을 보면서 ‘그 책 재미있냐?’고 물어봤다. 내가 크게 재미있진 않지만, 시간 때우기에 적합한 책이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선임은 알 수 없는 말을 했다. “네가 좀 더 일찍 입대했으면 《상실의 시대》를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을 거야.” 나는 선임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선임은 《상실의 시대》 중간에 뜯긴 부분이 있느냐고 물어봤다. 있다고 대답하자 선임은 키득키득 웃었다. 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은 채 선임을 쳐다보면서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이 선임 XX가 미쳤나?’ 좀 더 자세히 선임의 말을 듣고 보니 선임이 했던 말과 웃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아직 자대 배치를 받지 않았던 시절, 선임도 《상실의 시대》를 읽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뜯긴 부분이 없는 좋은 상태였다고 한다. 하루키의 소설을 좋아하는 군인들이 많아서 《상실의 시대》는 생활관에 없어서는 안 되는 책이었다. 그러다가 한 달이 지난 뒤에 《상실의 시대》 중간에 뜯긴 사실을 처음 알려지게 되었다. 군 선임들은 책의 낙장 사실에 당황했다. 왜냐하면, 하필 뜯겨 나간 책장에 야한 장면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선임들은 이 중요한(?) 장면만 뜯은 범인이 누군지 궁금했다. 《상실의 시대》를 읽은 사람들이 범인일 가능성이 컸다. 그런데 누구도 그런 짓을 하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처음 《상실의 시대》를 읽었을 때 낙장 흔적이 있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상실의 시대》를 한 번이라도 읽은 군인이 워낙 많아서 범인을 찾기가 불가능했다. 선임이 과거 이야기를 나에게 들려주면서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상실의 시대》는 야한 소설이라서 군대에 반입돼선 안 되는 책이라고. 그의 말을 듣고 보니 책의 야한 장면만 뜯은 범인의 심정을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 군대 같은 폐쇄적인 장소를 생활하다 보면 군인은 성적 욕구를 풀 수 없는 방법이 없는 현실을 받아들인다. 군인들이 군대 반입 금지 물품에 포함된 ‘맥심’ 같은 남성 잡지를 휴가 나오는 후임에게 사오라고 부탁하는 이유가 있다. 여성이 나오는 사진을 보면서 간접적으로 성적 욕구를 풀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간혹 남성 잡지가 화장실 변기 위에 놓일 때가 있다. 아마도 누군가가 《상실의 시대》를 읽다가 그 얼마 안 되는 성행위 묘사를 보자마자 성적 흥분을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묘사가 있는 부분만 뜯어서 야심한 밤에 혼자 몰래 읽었을 수도 있다. 어떤 선임은 낙장의 범인이 군 간부일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간부 중에 누군가는 《상실의 시대》가 어떤 책인지 알았고, 병사들의 정신 건강을 위해서 의도적으로 야한 장면이 있는 부분을 뜯었다고 본다. 아무튼, 이상한 낙장 사건 이후로 《상실의 시대》를 읽는 사람이 팍 줄어들었다고 한다. 《상실의 시대》보다 재미있는 책이 많아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야한 장면이 없는 소설이 재미없던 것일까.

 

소설가 겸 PD 이재익은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을 자신이 생각하는 ‘가장 야한 소설’로 소개한 적이 있다. 특히 소설 후반부에 나오는 정사 장면은 자신이 읽은 소설 중에서 가장 야한 장면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최재봉 한겨레 기자의 말을 빌리자면 하루키의 소설들은 ‘몽환적 에로티시즘’을 구현하고 있다. 사실, 작년에 하루키는 자신의 문학적 색채에 어울리는 상을 받을뻔 했다. 그 상은 바로 ‘Bad Sex Fiction Award’, 일명 ‘배드 섹스 상’이다.

 

영국의 권위 있는 문학잡지인 리터러리 리뷰(Literary Review)는 문학 작품 속에 불필요하게 묘사된 성 묘사를 자제하기 위해서 1993년부터 배드 섹스 상을 수여하고 있다. 과도하게 성 묘사가 많은 소설을 쓴 작가가 이 상을 받는다. 단, E.L. 제임스의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같은 노골적인 포르노 작품은 심사 대상에서 제외된다. 수상자 발표는 연말에 한다. 작년에 벤 오크리의 <The Age of Magic> (2014년 작)이 선정되었다. 오크리와 함께 최종 후보에 오른 작가 중에 하루키도 포함되었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 발표 전날에 배드 섹스 상 수상자가 발표된다면, 문학상의 ‘골든 라즈베리’(아카데미 시상식 전날에 열리는, ‘최악의 영화’를 선정하는 시상식)로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질 수 있었을 것이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 후보로 거론되는 작가도 예외일 수 없다. (오크리도 노벨 문학상 수상 후보자로 새로 거론되는 작가다) 맨 부커상, 퓰리처상을 받은 작가들도 배드 섹스 상 최종 후보에 오르거나 (재수가 없으면) 수상하기도 한다. 지금까지 배드 섹스 상을 받은 작가와 작품은 다음과 같다.

 

 

 

1993년 : 멜빈 브래그 《A Time to Dance》

 

 

1994년 : 필립 후크 《The Stonebreakers》

 

 

1995년 : 필립 커 《Gridiron》

 

 

1996년 : David Huggins 《The Big Kiss: An Arcade Mystery》

 

 

1997년 : Nicholas Royle 《The Matter of the Heart》

 

 

1998년 : 시배스천 폭스 《Charlotte Gray》

 

 

1999년 : A. A. Gill 《Starcrossed》

 

 

2000년 : 션 토머스 《Kissing England

 

 

2001년 : Christopher Hart Rescue Me

 

 

2002년 : Wendy Perriam Tread Softly

 

 

2003년 : Aniruddha Bahal Bunker 13

 

 

2004년 : 톰 울프 《I Am Charlotte Simmons》

 

 

2005년 : Giles Coren 《Winkler

 

 

2006년 : Iain Hollingshead 《Twenty Something

 

 

2007년 : 노먼 킹슬러 메일러 《숲 속의 성》

 

 

2008년 : Rachel Johnson Shire Hell

 

 

 ※ 공로상 : 존 업다이크

 

 

2009년 : Jonathan Littell The Kindly Ones

 

 

2010년 : Rowan Somerville The Shape of Her

 

 

2011년 : David Guterson Ed King

 

 

2012년 : 낸시 휴스턴 《Infrared

 

 

2013년 : Manil Suri The City of Devi

 

 

2014년 : 벤 오크리 《The Age of Magic

 

 

 

※ 국내에 번역되지 않은 작품은 원서 제목을 그대로 썼다. 배드 섹스 상 수상작을 제외한 작품 번역본이 있는 작가는 한글로, 국내 번역본이 단 한 개도 없는 작가는 원어로 표기했다. 

 

 

 

 

 

 

 

 

 

 

 

 

 

 

 

배드 섹스 수상 작품 중에 유일하게 번역된 것이 노먼 메일러의 《숲 속의 성》(뿔, 2007)이다. 존 업다이크는 세상을 떠나기 일년 전에 공로상을 받았다. 업다이크의 소설은 농도 짙은 에로티시즘 묘사로 유명하다. 특히 1968년 작 ‘Couples’(1994년에 ‘커플’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적이 있다)은 타임지가 선정한 ‘가장 짜릿한 소설 베스트 10’(Top 10 Racy Novels)에 포함되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배드 섹스 상은 업다이크가 생전에 받은 마지막 상이 되었다. (업다이크는 2009년 1월 27일에 세상을 떠났다)

 

독자 입장에서는 이런 상이 있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본다. 물론, 작가들은 입에 부르기도 민망한 이 상을 영원히 받고 싶지 않을 테지만.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배드 섹스 상 때문에 야한 장면이 많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이 책의 정체가 궁금한 사람들이 많아질 수 있다. 그러면 배드 섹스 상의 취지가 어긋나게 된다. 성 묘사가 있는 부분만 골라 읽는다거나 무척 좋아한 나머지 그 부분만 뜯는 별난 성적 취향을 가진 사람이 있을 것이다. 전자는 이해해줄 수 있다. 그렇지만 자신의 감정을 억제하지 못해 책을 의도적으로 훼손하는 사람은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 특정 여성 연예인이 좋다고 해서 그 연예인의 모습이 담긴 사진만 자르고 사라지는 얌체 독자와 같은 몰상식한 행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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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애 2015-10-12 1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에게도 우리 소설에 그런 상을 줄 법한 책들이 좀 있는데 공교롭게도 90년대 소설이 대부분이네요. 가령 <경마장 가는 길>.

cyrus 2015-10-13 15:35   좋아요 0 | URL
저도 하일지의 소설이 배드 섹스 상 수상작에 가장 근접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

stella.K 2015-10-12 1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진짜 이런 상이 있었구나. 자세하게 써 놨네.
그런데 이런 상이 좀 새삼스럽다는 생각도 들어.
섹스를 별거 아닌 것처럼 생각하는 풍토에서 작가들의 성묘사는
에로스, 즉 예술의 표현일뿐일텐데 뭐 이런 상을 제정해서
자기네들의 짖궂음을 드러내나 싶어. 예술은 자유로워야 한다면서 말야.ㅋ

그런데 이달의 당선작 어느 부문에도 니 글이 없네.
이상한 일이야. 이번에도 좋은 글이 많았는데...
좀 아쉽겠어.ㅠ

cyrus 2015-10-13 15:41   좋아요 0 | URL
판매 부수를 올리려고 ‘표현의 자유’라는 명목으로 성적 묘사가 있는 소설을 출간하는 출판사를 경계하기 위해서 이런 상을 만들었다고 해요. 그만큼 영국이 표현의 자유가 우리나라보다 보장된 곳이라는 걸 알 수 있죠. 우리나라는 아예 음란한 문장이 있는 책을 판매 금지시키잖아요. ㅎㅎㅎ

추석 연휴 때 글 쓰는 일에 권태기를 많이 느꼈는데, 이제부터 다시 열심히 쓰려고요. 당선작이 안 뽑혀서 아쉽지만, 더 잘 쓰기 위해 노력하라는 의미의 자극제로 받아들어야겠습니다. ^^

stella.K 2015-10-13 17:41   좋아요 0 | URL
맞아. 그럴 필요가 있겠군. 거 잘하는 거네.^^

2015-10-12 19: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0-13 15: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지금행복하자 2015-10-12 2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상실의 시대로 더 익숙한 독자네요~ 그 때는 재미있게 읽었었는데...
노르웨이의 숲도 있긴 한데 아직 읽어보진 못 했어요~ 어떤 느낌이 들지 궁금해지기는 합니다~
저런 상이 있다는 것 처음 알았는데 호기심이 확~~ 일어나는데요 ㅎㅎ

cyrus 2015-10-13 15:44   좋아요 0 | URL
올해는 누가 받을지 궁금하긴 한데, 왠지 생소한 작가가 받을 것 같습니다. 일단 이름만 알고 있는 작가가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ㅎㅎㅎ

간서치 2015-10-12 2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상실의 시대를 읽고 너무 우울하고 허무해져서 우울증 올뻔 했어요.. 20살때 읽었거든요. 스무살이라는 나이때문이었을지도 모르고 부모님의 이혼이라는 상황때문이었을지도 모르지만 .. 어쨋든 .... 제 가슴에 깊이 남은 책이에요

cyrus 2015-10-13 15:47   좋아요 0 | URL
저도 <상실의 시대>를 처음 읽었을 때, 분위기가 너무 음울해서 계속 읽을까 말까 고민했어요. 결국 다 읽긴 했는데, 이 소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해해야 할지 여러 잡생각이 많았어요. 군 복무만 아니었으면 소설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볼 수 있었는데, 그럴 여유가 없었어요. 오히려 그게 다행한 일인 것 같습니다.

물고기자리 2015-10-13 0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하루키의 묘사는 성적 긴장감이 느껴지질 않아서 야하다는 생각이 들질 않더라고요ㅎ 세수하고 양치질하는 것처럼 일상적인 행위로 묘사하기도 하지만 다른 국면으로 전환하거나 이동하기 위한 일종의 의식 같은 느낌이 들거든요.

전 상실의 시대를 떠올리면 첫 장면이 제일 먼저 생각나요. 비행기에서 비틀스의 노르웨이의 숲을 들으며 잃어버린 기억들에 대해 회상하는 장면요. 사람들보단 오히려 당시엔 눈여겨보지도 않던 배경과 풍경들만 기억나서 서글퍼지는 그런 내용이었던 것 같은데, 그 감정이 뭔지 알 것 같아서 굉장히 몰입되었었죠. 빈 상자만 가지고 있는 것 같은, 상실의 느낌말이죠.

하루키는 마음의 정경을 정말 잘 표현해서 글을 읽다 보면 나의 빈 상자를 다시 채우는 느낌이 들어요. 맞아, 그런 것도 있었지.. 하면서요. 번역자가 다르니 노르웨이의 숲으로도 언젠간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아무튼 작가를 하려면 이런저런 상도 받아야 하니 보통 멘탈은 아니어야 할 것 같습니다ㅎ

cyrus 2015-10-13 15:49   좋아요 0 | URL
소설 속 묘사를 정확하게 기억하고, 그에 대한 느낌까지 언급하시는 물고기자리님은 하루키 소설을 제대로 읽으신 분 같아요. 저는 야한 장면만 빼고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아요... ㅎㅎㅎ

단발머리 2015-10-13 1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상실의 시대> 독자이니 나이가 좀 있는 사람입니다. ^^ 전 하루키는 너무 야해서... 성적인 요소를 조금 배제하고서 읽어야 합니다. 감당하기가...@@

cyrus 2015-10-13 15:53   좋아요 0 | URL
저는 <상실의 시대> 완전판을 군 제대하고 난 뒤에 다시 읽었습니다. 역시 야한 장면만 뜯긴 이유를 알 수 있었어요. ^^;;

표맥(漂麥) 2015-10-13 2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상실의 시대...^^
읽을 맛이 쫄깃쫄깃~한 글,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어쩜 이런 글을 쓰실 수 있는지... 늘 감탄합니다...^^

cyrus 2015-10-15 21:27   좋아요 0 | URL
예전 추억을 오랜만에 회상하다 보니 글이 길어졌어요. 그래도 끝까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

transient-guest 2015-10-14 0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나이를 많이 먹고서 하루키를 읽어서 그런지 특별히 성적묘사에 대한 거부감이나 야하는 느낌은 없구요, 그저 장면의 일부 같기도 하고, 풋풋하기도 합니다. 글자만 놓고 보면 꽤 야한데 말이죠. 그런데 이런 풋풋함이랄까, 이걸 갖고 강신부 박사 같은 분은 하루키를 `포르노`소설이라고 비판합니다. 경험하지 못한 자의 몽상이라는 취지 같아요. 좀 다른 각도로 보는 듯 합니다만, 전 그저 있는 그대로, 너무 행간을 짚지 않고 읽으니 즐겁기만 합니다. 아련한 추억의 느낌도 받구요. 상실의 시대는 5-6번은 읽은 듯 하네요.

cyrus 2015-10-15 21:30   좋아요 0 | URL
강신주의 평가는 너무 심하군요. 이래서 대중을 자극시키는 듯한 발언으로 평가하는 강신주의 모습이 마음에 안 들어요. 포르노 소설만 써대는 하루키가 노벨 문학상을 받게 되면, 강신주의 반응이 궁금하네요. ^^

보물선 2016-06-26 1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릴때 <상실의 시대>읽었는데, 야한게 있었는지도 생각이 안나는거보면 저는 뭘 읽은걸까요? ㅋㅋ 다시 <노르웨이의 숲>을 읽어보고 야한가 아닌가 봐야겠어요^^

cyrus 2016-06-26 16:34   좋아요 0 | URL
보물선님이 아직 마음이 순수하셔서 보지 못했던 겁니다. 저처럼 마음이 오염된 사람은 음란마귀에 늘 달라붙어 다닙니다. ㅎㅎㅎ

alummii 2016-07-09 1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우 역시 정곡을 찌르는 리뷰였네요 ㅎㅎ 이 소설이 발간 후 젊은 층의 사랑 받았던 이유 중에 야한 장면 묘사 부분도 한 몫했다고 생각되었거든요...ㅋㅋㅋ뜯긴 부분...뿜고가네요 ㅎㅎㅎ

cyrus 2016-07-10 16:56   좋아요 0 | URL
리뷰라기보다는 그냥 책과 관련된 경험담입니다. 재미있게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내일이면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작가가 발표된다. 매해 10월 목요일에 수상자를 발표하는 관례가 있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속설 중에 오른쪽 귀가 간지러우면 칭찬을 듣는 것이라고 했다. 운명의 날이 점점 다가올수록 매번 노벨상 수상 유력 작가로 언급되는 몇몇 사람들은 오른쪽 귀가 자주 간지러울 것이다. 국내 주요 언론들은 노벨상 발표 시기가 다가오면 평소에 안 하던 고은 시인의 문학을 줄기차게 칭찬하면서 자택에 조용히 기거하는 그를 찾는다. 이상하게 국내 언론사들만 한국인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을 바라는 것 같다. 그다음으로 많이 언급되는 작가는 무라카미 하루키. 일본 내 반응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작가인 만큼 하루키의 수상 소식을 바라는 국내 독자가 꽤 있다. 책, 특히 문학에 관심 많은 독자는 자신이 좋아한 작가가 노벨상을 받길 원한다. 노벨문학상 수상 후보 작가를 소개하는 글에 달린 댓글들을 보면 특정 작가를 향한 독자들의 팬심을 확인할 수 있다. 작년 네이버캐스트에서 올려진 ‘노벨문학상 후보’라는 글에 남긴 어느 분의 댓글을 보라. 밀란 쿤데라 팬이 아니더라도 이 댓글 한 줄을 보는 순간, 독자의 절실한 심정에 공감할 것이다. 아쉽게도 독자의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문학에 조예가 깊은 사람은 특정 작가가 노벨상을 꼭 받아야 할 이유까지 간략하게 설명하기도 한다. 가끔 이런 댓글들을 보면 은근히 재미있고, 나름 유익한 내용을 건질 때가 많다. 내가 그동안 모르고 있었던 작가들을 알게 된다. 아무리 책을 많이 읽었더라도 생전 처음 보는 작가의 작품을 접하는 일은 쉽지 않다. 특히 (나 같은 사람처럼) 미국, 유럽 문학에 편중된 독서를 하면 아시아, 제3세계 국가, 기타 대륙 문학의 현 수준을 감지하지 못한다.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작가를 알려면 노벨문학상 후보 작가를 소개하는 신문 기사를 참고해도 좋지만, 단점이 하나 있다. 조중동을 포함한 각종 언론에서 보도된 노벨문학상 후보 작가 관련 기사 대부분이 외국 도박사이트가 공개한 배당률을 참고하고 있다. 그래서 후보군에 형성된 작가들의 이름이 너무나도 익숙하다. 고은, 밀란 쿤데라, 하루키, 아도니스(시리아 출신의 시인) 같은 작가의 글을 한 번도 읽어보지 못한 사람들도 그들이 노벨 문학상 유력 후보자로 자주 거론되는 사실을 안다. 언론과 도박사들은 노벨상 발표일이 다가오면 의례적으로 노벨 문학상 수상에 근접한 작가들을 언급하는데, 그들의 예상이 완전히 빗나갈 때가 많다. 작년 노벨 문학상 수상 소식을 떠올려 보시라. 도박사이트 배당률 순위에서조차 나오지 않은 파트릭 모다이노가 상 받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올해도 전 세계 독자, 언론의 예상을 확 뒤엎는 수상 소식이 나올 수 있다.

 

그 나물에 그 밥’이나 다름없는 도박사들의 뻔한 예상에 흥미가 떨어진다면 박경리 문학상 수상자와 후보 작가들을 참고해도 좋다. 박경리 문학상은 《토지》를 집필한 박경리 작가를 기리기 위해 토지문화재단이 제정한 문학상이다. 박경리 문학 정신에 부합되고, 세계문학으로서도 높은 문학성과 보편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 국내외 작가에게 주어진다. (제1회 시상은 국내 작가로 한정되었다가 제2회부터 ‘한국의 세계문학상’을 표방하기 시작하면서 국외 작가들도 후보자로 추천받게 되었다) 노벨위원회는 노벨문학상 후보 작가들을 공개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여기지만, 박경리 문학상 위원회는 두 달 동안 비공개 심사를 진행하여 5명의 수상 후보를 선정하여 공개한다. 시상식은 토지문화관에서 열리며 상금은 1억5천만 원이다. 2011년에 박경리 문학상 시상식이 처음으로 열렸으면 제1회 수상자는 《광장》의 작가 최인훈이다. 최인훈은 1992년에 노벨 문학상 유력 후보자로 거론된 적이 있다. 제1회부터 올해 선정된 제5회까지 수상자와 후보 작가들은 다음과 같다.

 

 

 

 

 

 

※ 작가명 표기는 알라딘 검색 표기를 따랐다. 작가명을 알라딘에 그대로 검색하면, 국내 번역본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국적은 작가가 태어난 곳으로 소개했다. 

 

주1) 이때 당시 최인훈을 포함한 5명의 후보 작가가 공개되었는데 며칠간 열심히 검색해도 이들을 소개한 뉴스를 단 한 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제2회 시상 때부터 언론은 후보 작가들을 릴레이로 연재하기 시작했다.

 

주2) 국내에 알려지지 않은 러시아 출신 작가. 러시아문학을 전공한 사람(‘로자’ 이현우 님은 당연히 잘 아실 테고)이라면 한번쯤은 이 작가 이름을 들어봤으리라 생각한다. 2012년에 박경리 문학상 작가 후보로 소개되었을 때 당시 마카닌의 나이는 75세. 작가에 대한 정확한 출생연도를 찾지 못해서 부득이하게 생략했다. 관련 기사 링크)

 

 

 

재미있게도 토머스 핀천을 제외한 ‘미국 현대 문학 4대 작가’가 제3회 수상 작가 최종 후보에 함께 올랐다. 필립 로스, 밀란 쿤데라는 두 번이나 최종 후보로 올랐음에도 아쉽게 수상을 놓쳤다. 그래도 이들은 권위 있는 문학상을 여러 차례 받은 쟁쟁한 작가들이다. 수상작가 그리고 최종 후보 작가 중에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나와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박경리 문학상 수상자는 노벨문학상 발표일이 다가오는 시점에 발표되기 때문에 ‘미리 보는 노벨문학상’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박경리 문학상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국내 유일한 세계문학상이 있는지 모르면서 한국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나오기를 바라는 것은 김칫국 마시는 격이다. 올해 박경리 문학상 수상자인 아모스 오즈가 노벨문학상까지 거머쥐는 상상도 하게 된다. 내일 노벨 문학상의 영광을 누리게 될 작가가 누구인지 정말 기대된다. 나는 특정 작가의 전작 독서를 하지 않아서 어떤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받으면 되는지 딱히 떠올리지 않는다. 그냥 밀란 쿤데라의 노벨상 수상 소식을 간절히 바라는 독자의 소원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이 글을 읽는 분 중에 여기서 언급된 작가를 제외한 노벨 문학상 수상에 근접한 작가를 염두에 두고 있다면 댓글로 알려주시라. 만약 여러분 중 누군가가 여기에 ‘OOO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받았으면 좋겠다’라고 댓글을 달았는데, 정말 ‘OOO 작가’가 수상자로 결정된다면 당신의 댓글은 ‘성지글’이 될 것이다.

 

 

 

※ 성지글 : 크게 주목을 받았던 소식이 공론화되기 전에 미리 그 사실을 예고하거나 예측했던 온라인상의 게시글을 의미하는 인터넷 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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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병통치약 2015-10-08 1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성지글이 되기를...ㅎ ㅎ

cyrus 2015-10-08 19:24   좋아요 0 | URL
통치약님의 대표작을 소해주십시오. ㅎㅎㅎㅎㅎㅎ

blanca 2015-10-07 2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필립 로스, 아니면 하루키일 것 같아요. 성지글은 안되겠지만요^^;;

cyrus 2015-10-08 19:25   좋아요 0 | URL
블랑카님은 로스와 하루키의 소설을 읽으신 적이 있으시죠? 예전에 블랑카님의 블로그에서 서평을 읽어본 적이 있는 것 같아서요. ^^

비로그인 2015-10-07 2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작가 이창래가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안타깝게도 한국에서 그의 작품이 호평을
받음에도 불구하고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것 같네요. 개인적으로 한글번역이 맘에
썩 들진 않지만 좋은 작가라 생각합니다.
2011년도인가 후보에 올랐다지요. 그때
참 마음이 좋았습니다.^^
후보에 오르지 않았다면 이 댓글은 허사가
되겠네요.ㅎ

cyrus 2015-10-08 19:28   좋아요 0 | URL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책 읽기를 좋아하는 지인도 이창래 작가 팬인데, 그 분도 노벨문학상 후보로 언급한 적이 있었어요. 한동안 잊고 있었는데 이창래 작가의 책을 읽어봐야겠습니다. 이창래 작가가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지고 있는 상황이라서 충분히 받을 만한 분이라고 생각해요. ^^

에이바 2015-10-07 2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살만 루슈디요. 그냥 떠오른 생각이지만요 ㅎㅎ

cyrus 2015-10-08 19:31   좋아요 0 | URL
루슈디가 받게 되면 그의 목숨을 노리는 이슬람 통치자들이 루슈디는 상 받을 자격이 없다는 식으로 항의할 것 같아요. ㅎㅎㅎ


세실 2015-10-07 20: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박경리가 받았으면 좋겠네요~~~~~

cyrus 2015-10-08 19:33   좋아요 0 | URL
박경리 작가가 오래 사셨더라면 노벨문학상 수상 후보자로 자주 거론되었을 겁니다.

고양이라디오 2015-10-07 2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일이 수상자 발표날이군요ㅎ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하루키의 팬이라 하루키씨가 받았으면 하네요ㅎ

cyrus 2015-10-08 19:36   좋아요 0 | URL
오늘 밤 8시에 수상자가 발표됩니다. 발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발표 5분 전에 노벨상 공식 홈페이지에서 하는 수상자 발표 생중계를 볼 예정입니다. 수상자 발표하는 데 고작 3분도 채 안 되는데 그거 하나 보려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ㅎㅎㅎ

수이 2015-10-08 0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필립 로스 :)

cyrus 2015-10-08 19:36   좋아요 0 | URL
생각보다 필립 로스, 하루키가 제일 많이 거론되네요. ^^

AgalmA 2015-10-08 0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밀란 쿤데라가 이젠 받을 때가 됐죠~ 근데 최근작으로 봐선 필립 로스 아닐까 싶네요?
토마스 베른하르트, 장 지오노, 파스칼 키냐르가 받는 날이 어서 오길 바랍니다~ 10년 안에 파스칼 키냐르는 받지 않을까 합니다~후후)) 하지만 페터 한트케가 더 먼저 받을 듯...흑.
참 보르헤스는 왜 아직도! 밀란 쿤데라보다 더!!

cyrus 2015-10-08 19:44   좋아요 0 | URL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은 노벨상 수상 자격이 없다는 게 참 아쉬워요. 토마스 베른하르트와 장 지오노, 보르헤스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서 노벨문학상을 받을 수가 없어요. 그래도 이 세 사람들은 생전에 노벨 문학상 후보에 한번쯤 거론되었을 겁니다. 차라리 공로상 비슷하게 이미 고인이 된 작가에게 수여하는 ‘명예 노벨 문학상’ 같은 것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그럴 일은 절대로 없을 것 같아요. ㅎㅎㅎ 이러다가 정말 쿤데라 옹께서 노벨상 못 받고 세상을 떠나면, 쿤데라 팬 입장에서는 많이 아쉬워할 거예요. 보르헤스도 생전에 노벨 문학상 유력 후보자로 매번 거론되었는데도 못 받고 세상을 떠나고 말았죠. 파스칼 키냐르. 작가 이름을 기억해두겠습니다. ^^

AgalmA 2015-10-08 19:50   좋아요 0 | URL
하긴 베른하르트는 준다 그래도 안 받을 거지만;;
노벨상엔 그닥 흥미가 없어서 몰랐는데 고인에겐 안 주는 거군요! 그렇다면 쿤데라 옹 돌아가시기 전에 꼭 받으시길 응원해야 할 듯!

해피북 2015-10-08 0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신문보면서 작년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런 이유때문이였군요. 요즘은 네이버에서 봤던 기사들이 대부분 아침 신문에 실려있어서 구독해지하기도 했어요. 신문만에 개별화된 정보도 없고해서 말이죠. 무튼 저 역시도 밀란쿤데라를 살짝 응원해봅니다. ㅋㅂㅋ

cyrus 2015-10-08 19:45   좋아요 0 | URL
비슷한 내용의 기사를 자주 보게 되면 작가 이름을 잊어버리지도 않습니다. 이제는 새로운 작가가 거론되었으면 좋겠어요. ^^

stella.K 2015-10-08 1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루키는 좀 그렇지 않나...? 섹스 얘기로 항상 뒤범벅이라 난 별로 감흥이 없던데...
이런 얘기하면 욕먹을지 모르지만. 그리고 공동수상이긴 하지만 이미 일본 사람이
두 개 분야를 석권했어. 노벨상이 설마 일본에게 3관왕을 허락할까?
우리가 받으면 오죽 좋을까만 별로 기대는 안 되고...

cyrus 2015-10-08 19:53   좋아요 0 | URL
일본 노벨상 3관왕이 이루어진다면 일본 언론은 ‘열광’, 한국 언론은 시무룩한 분위기로 보도문을 작성하겠어요. 누님 말씀이 틀린 말은 아니에요. 영국에 성적 묘사를 지나치게 묘사한 작가에 주는 문학상이 있어요. 상 이름이 ‘Bad Sex in Fiction Award’이에요. 하루키가 이 상 후보에 오른 적이 있어요. ^^

stella.K 2015-10-09 10:54   좋아요 0 | URL
와우, 그런 상이 있단 말야? 놀랍다.ㅋㅋㅋ
그런데 노벨 문학상은 왠 알지도 못하는 작가가 받았더군.
로쟈님 서재에 가 보니 번역된 게 있네.
그런데 비교적 최근에 번역이 된 것 같아.
그것도 논픽션 작가에게 줬네. 그러기는 또 처음 아닌가?
뭔가 평화상적 수상이란 느낌도 드네.ㅋ

가만 보면 노벨상도 짓궂은 데가 있는 것 같아.
나름 대중에게 알려진 작가에겐 잘 안 주는 것 같아.
저 알지도 못하는 벽안의 작가를 발굴해 주기를 좋아하나 봐.
작년 파트릭 모디아노만 제외하면...

cyrus 2015-10-08 2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15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는 우크라이나 출신 저널리스트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입니다. 밀란 쿤데라 옹과 필립 로스 옹은 다음 기회에... 하루키도...

2015-10-08 22: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0-12 17: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0-08 22: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0-12 17:5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