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봄기운이 오지 않았는데도 안방은 벌써 후끈하다. 드라마 <태양의 후예> 신드롬이 대단하다. 드라마가 잘 되니까 국방부가 고민에 빠졌다고 한다. 인터넷이나 SNS상에서 ‘~말입니다’ 말투를 쓰는 글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초 국방부는 병영 언어를 바로잡기 위해 말투 개선 지침을 내놓았다. 그동안 병영 내에서는 어떤 군법이나 규칙에도 ‘다나까’를 쓰라는 내용이 없었음에도 공식적인 높임말로 지정되어 있었다. 억지로 ‘다나까’를 쓰게 되면서 뒤에 ‘~말입니다’라는 어법에 맞지 않는 어미를 남발하는 등 심각한 언어 파괴 현상도 발생했다. 올해부터 군인은 ‘다나까’ 대신에 ‘~요’로 끝내는 해요체를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여자들은 ‘~말입니다’를 쓰는 드라마 속 송중기의 매력에 빠져 그 말투를 따라한다. 그런데 군대 밖에서 구시대적 군대식 말투를 남발하는 현상이 좋게 느껴지지 않는다. <태양의 후예>와 <일밤-진짜 사나이> 같은 군인 소재로 한 방송이 나오기 전까지 군대식 말투가 군대라는 집단 내의 특별한 언어였다. 군대를 가본 남자들만이 ‘다나까’와 ‘~말입니다’를 기억했다. 그들은 군복을 벗어 사회에 나가서도 군대에 보고 들은 것들을 잊지 못한다. 남자들만 있는 술자리에 군대 이야기가 절대로 빠지지 않는다. 대부분 우리나라 남자들은 군 복무의 향수를 대화의 화제로 삼아 자신의 남성성을 과시한다. 군 복무한 남자들은 자신의 군 생활을 영웅담처럼 자랑한다. 이를테면 사격 실력이 좋아서 포상 휴가를 많이 받은 군인 시절을 뿌듯하게 여기면서 말한다. 또 어떤 사람은 실제 축구 실력이 형편없으면서도 자신이 ‘군대스리가 메시’로 이름을 날렸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이 ‘근거 없는 자신감’을 직접 확인할 방법이 없다. 청자들은 허풍이 팔 할인 영웅담을 진짜라고 믿는 척한다. 군대에 자부심이 넘치는 사람들은 입대를 앞둔 미필자 남자들에게 자신의 군대 지식을 전수하기도 한다.

 

대한민국 남자는 군인이 되어야 진정한 남자로 인정받는다. 미필자, 공익근무요원 출신 또는 양심적 병역 거부자에 대한 우리 사회의 시선이 여전히 따갑다. 특히 군필자 가산점제 부활 문제를 둘러싸고 병역과 관련해 남녀가 이토록 싸우는 나라는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다. 군대 자부심이 많고, 여성을 혐오하는 남자의 눈에는 군대에 가지 않은 여성들이 군대식 말투를 쓰는 모습이 괘씸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여성 혐오자들은 여성들의 사소한 행동과 말투에 조롱하고 멸시한다. 여성에 대한 부정적 기류를 형성하여 남성 우월성을 표방한다.

 

요즘 여성 혐오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먹잇감이 바로 <진짜 사나이-여군특집>이다. 여자 연예인들이 군복을 입고 눈물을 흘리며 땀범벅이 되어 땅을 구르는 장면은 그 자체로 시청자들의 눈길을 잡아끌 수밖에 없다. 이 특집이 주는 특별한 재미는 분명히 있다. 하지만 지금의 4기는 구설수만 많아져 시청자들의 반응이 냉담하다. 새로운 인물로 채워져도 방송 속 캐릭터는 새롭지도 흥미롭지도 않다. 제작진은 리얼리티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연예인들이 생활관에서 방귀를 트고, 트림하면서 서로 친해지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공개했다. 이건 제작진의 무리수다. 아무리 가볍게 웃고 넘기는 예능이라고 하지만, 군인으로서의 품위가 손상될 우려가 있다. 또한 먹잇감을 호시탐탐 노리던 여성 혐오자들을 더욱 자극하게 한다. 여성 혐오자들은 이 방송 장면을 보면서 대한민국 여성의 무식함을 마음껏 조롱한다. “여자가 군대 망신 다 시킨다”, “여자들은 뇌가 없어” <진사-여군특집> 관련 기사에 입에 담지 못한 표현으로 여자들에게 분노를 표출하는 악성 댓글들이 많이 있다. 심지어 여자 연예인의 노 메이크업을 가지고 외모를 비하한 댓글도 있다.

 

 

 

 

 

지난 주 일요일 인터넷에서는 김성은의 양심 고백을 놓고 누리꾼들 사이에서 설전이 일어났다. 김성은은 중대장에게 자신의 옆에 앉은 하사가 시험 문제의 답을 알려줬다고 고백한 장면이 문제가 되었다. 이후 답을 알려준 하사의 입장을 배려하지 않은 이기적인 행동이라는 의견이 번졌다. 여기에 또 여성 혐오자들이 익명성의 가면을 쓰고 등장한다. 컴퓨터 키보드를 열심히 두드리기 시작한다. ‘미친년’, ‘방송에 나오지 말고 그냥 애나 키우라’ 등 온갖 악성 댓글 행렬이 이어진다. 여성 혐오자들은 남성 하사에 대한 동정심을 유발한다. 이렇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남성의 도움을 받고도 뒤통수치는 김치년’ 프레임이 생긴다. 여성 혐오자들은 여성 연예인의 행동 문제만 가지고 대한민국 여성 전체의 문제로 확대한다. 그들의 논리는 늘 한결같다. 기승전‘김치년’. 이러면 남성 하사가 문제의 답을 몰래 알려준 잘못된 행동과 편집을 제대로 하지 못한 제작진의 실수가 논란의 중심에서 살짝 벗어나게 된다. 결국 김성은과 가만히 있는 대한민국 여자들이 여성 혐오자들이 던진 돌에 맞고 있다.

 

군대를 소재로 한 예능과 드라마 방송의 등장으로 여성들은 군대 문화를 간접적으로 알아가게 된다. 군대를 바라보는 대중의 관심이 점점 뜨거워지면 여성 혐오자들의 ‘혐오 지수’ 또한 올라갈 것이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여성 혐오를 유발하는 요인이 하나씩 생겨나고 있으며 점점 더 다양해지고 있다. 그런데 우린 여성 혐오의 기운이 언제 어디서 꿈틀대기 시작하는지 잘 모른다. 크게 터지고 나서야 문제의 심각성을 알아차린다.

 

 

 


댓글(34)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솔불곰 2016-03-22 21: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저글도 들려주세요^^

cyrus 2016-03-23 09:37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방금 부풀님의 글을 보고 왔어요. 그런데 어떤 댓글을 달아야할 지 난감하군요.

솔불곰 2016-03-23 10:44   좋아요 0 | URL
부담 없이 달아주시면됩니다

솔불곰 2016-03-23 14:05   좋아요 0 | URL
집에서 할거 없으신가요?
책만 읽으시는듯;;

cyrus 2016-03-23 15:04   좋아요 0 | URL
집에 있으면 TV를 덜 보고, 스마트폰 사용을 안 하는 편입니다. 게임도 안 해요. 그래서 책 읽을 수 있는 시간이 생긴 것 같습니다.

솔불곰 2016-03-23 15:14   좋아요 0 | URL
저랑 싸우시자는거예요?
저는 그냥 그러가싶어서 이아기랬는데 왜 열폭하세요;;

cyrus 2016-03-23 15:16   좋아요 0 | URL
부풀님, 무슨 말입니까? 저는 솔직하게 얘기한 건데요.

솔불곰 2016-03-23 15:24   좋아요 0 | URL
저도 솔직히 이야기한겁니다;;

솔불곰 2016-03-23 15:25   좋아요 0 | URL
저안테 오ㅐ그러신가요?
저는 그냥 제글에 댓만달아달라고했는데말이죠..

cyrus 2016-03-23 15:27   좋아요 0 | URL
제가 부풀님에게 잘못한 것 있습니까?

솔불곰 2016-03-23 15:30   좋아요 0 | URL
솔직히 저는 같이 친해지자는마음으로 제 글 봐달라고허는건데 제글 비하하니 마음이 ㅈㄴ 아프네요
제가 책안읽는다고 무시하는것도아니고;;

cyrus 2016-03-23 15:32   좋아요 0 | URL
부풀님, 저는 부풀님이 쓴 글을 비하하는 의미가 있는 말을 한 적도 없어요. 그리고 책 안 읽는다고 무시하지 않았어요.

솔불곰 2016-03-23 15:34   좋아요 0 | URL
그럼 어떤 닷글을 써야되는지 난감하다는 말은뭐죠?제가 찐따로 보여요?제가 님 따까리로 보여요?
와 화나네
지금 손에들고있던 `총균쇠`집어 던졌습니다 제가 가장 애장하는책이죠

cyrus 2016-03-23 15:41   좋아요 0 | URL
저는 그런 의미로 말한 것이 아니에요. 댓글을 달아야 할 말이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는 의미였어요. 사실 제가 <총균쇠>를 읽지 않았어요. 만일 제가 그 책을 읽었으면 책 내용에 관한 댓글을 달았겠죠. 부풀님을 절대로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솔불곰 2016-03-23 15:42   좋아요 0 | URL
그럼 더 화내기전에 내 글에 댓글달아주세요^^
빨리요

cyrus 2016-03-23 15:44   좋아요 0 | URL
지금 장난하는 겁니까?

솔불곰 2016-03-23 15:47   좋아요 0 | URL
장남이니라 막내입니다;;
제글에 댓글 다는거가지고 장난하냐고 물으시는건 무슨뜻입니까?
너무 하시네요 아재님

솔불곰 2016-03-23 16:06   좋아요 0 | URL
많이 화났셨나요?

cyrus 2016-03-23 16:11   좋아요 0 | URL

솔불곰 2016-03-23 16:12   좋아요 0 | URL
아 죄송합니다
삐치시거보니 나이가 어리시군요^^

2016-03-22 22: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6-03-23 09:40   좋아요 0 | URL
저도 안 봅니다. 처음에는 재미있어서 봤는데 가면 갈수록 식상했어요. 방송에 나오는 군인 및 간부들은 촬영 전에 미리 섭외한 겁니다. 그래서 `진짜 사나이`를 `가짜 사나이`라고도 하죠.

곰곰생각하는발 2016-03-23 0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끔 저런 반응을 보면 남자로서 쪽팔립니다..

cyrus 2016-03-23 09:49   좋아요 0 | URL
`진짜 사나이` 관련 댓글들을 보면 군부심을 드러내요. `내가 군(간부) 생활을 해봐서 아는데...`로 시작해서 `여자들은 군대 가면 망한다`로 끝납니다.

양철나무꾼 2016-03-23 0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이 프로그램은 직접 안봐서 모르고,
이 글만 읽고는 아직도 `옆자리 하사가 답을 알려줬다`고 한 김성은의 양심선언이 왜 문제가 되는지 전혀 파악을 못하고 있습니다. 이건 제가 여느 여자들처럼 군대의 관행을 몰라서 그런 것일수도 있지만,
백번 양보하여 그렇다 하더라도,
군대의 관행을 잘 아는 남자 하사가 몰래 답을 알려준 자체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것 아닌가요?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는 건 자유지만,
저 정도가 되면 의견표현이 아니라, 댓글 테러이고 폭력이지 싶습니다~ㅠ.ㅠ

cyrus 2016-03-23 10:22   좋아요 0 | URL
상세하게 설명하자면 이렇습니다.

김성은에게 문제의 정답을 알려준 남자 하사는 장기적으로 근무해야하는 직업 군인입니다. 그런데 시험 부정 행위가 적발된 군인은 벌점을 받습니다. 적발 횟수가 많으면 강제 퇴소당합니다. 이 부정 행위가 시험 감독관에게 들키지 않았지만, 카메라에는 찍혔어요. 중대장이 시험 결과에 이의 제기를 하라고 말하자 김성은이 자신의 행동에 마음이 편치 않았는지 부정 행위를 한 사실을 밝힙니다.

시청자들은 여기에 분노합니다. 김성은의 행동이 경솔하게 보였는 것이죠. 얘기해도 되지 않은 걸 알리는 바람에 남자 하사도 부정 행위에 대한 처벌을 받게 됩니다. 시청자들은 답을 알려준 군인이 계급 진급 시에 불이익 받을 수 있다고 걱정했습니다. 문제의 장면이 TV에 전파되었을 때 남자 하사 얼굴이 모자이크 없이 공개되었는데요, 시청자들은 며칠 동안 부대에서 촬영하는 여자 연예인 때문에 장기 복무해야 할 군인이 피해 입는 상황을 못마땅하게 여깁니다.

김성은 소속사 측은 남자 하사에게 불이익이 없었다고 해명했지만, 이 문제의 장면 하나 때문에 김성은은 여성 혐오의 희생양이 되고 말았어요. 그런데 남자 하사의 행동이 방송을 위한 각본의 일부일 수 있습니다. <진짜 사나이>에 나오는 병사나 간부는 촬영 전에 미리 섭외한 사람들입니다. 제 생각에는 시험 부정 행위 장면은 제작진이 방송 분량을 위해서 연출한 것 같아요. 실제 일어난 일이라면 절대로 방송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지만 연출된 장면이라도 남자 하사의 행동은 잘못되었습니다. 그리고 논란을 부를 수 있는 장면을 편집하지 않은 제작진도 비난을 받아야 합니다. 김성은 논란 때문에 여군뿐만 아니라 여성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늘어났습니다.

transient-guest 2016-03-23 1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묘한 병영국가시절이 떠오르네요. 간접적인 프로파간다 같아요

cyrus 2016-03-23 15:07   좋아요 0 | URL
태국 총리가 <태양의 후예>를 최고의 드라마로 극찬했습니다. 그 이유가 뭔지 아십니까? 드라마에 국민의 애국심과 희생정신 같은 시민의식이 담겨 있다고 말하더군요. 그래서 태국 국민들이 <태양의 후예>를 시청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stella.K 2016-03-23 14: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짐작은 하고 있었다.
다나까는 솔직히 교도소에서도 쓰는 말 아닌가?
그 드라마 보면서 여기가 군대야, 교도소야 하다가도 군대도 저런 말투 안 쓰는데
아무래도 그 라임이 독특하긴 해서 드라마나 예능에서 소재로
써 먹기 좋은 거 아니겠니? 근데 실제 그럴 거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지.
드라마와 현실을 구분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질 것 같아.
예능에서 또 베껴 먹잖아.ㅋ

cyrus 2016-03-23 15:10   좋아요 0 | URL
저는 지금도 생각하면 ‘~말입니다’ 같은 어색한 말투를 쓰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어요. 드라마가 잘 되니까 기자들이 인터넷 기사 제목을 선정할 때 ‘~말입니다’를 쓰더군요. 손발이 오그라드는 줄 알았어요. ㅎ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6-03-23 18: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댓글 달아달라는 알라딘 댓글 거지가 있다고 하던데 진짜인가 보네...
하여튼 ㅅㅂ.. 댓글 구걸하는 놈은 답이 없다.

transient-guest 2016-03-23 16: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북플이 등장하고 여러 좋은 분들을 만나는 등 순기능이 많이 있지만, 솔직히 bulk-up하고 거품이 낀 느낌도 있어요. 그런데, 이젠 일베초딩도 등장하나 봅니다. 서재활동 초기에 가끔 들려서 이상한 트집을 잡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 이상이네요.

2016-03-23 16: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3-23 16: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도서정가제 시행 이후로 중고서점을 찾는 사람이 많아졌다고 한다. 가장 큰 이유가 할인 폭이 없는 책값에 있다. 사람들은 새 책보다는 비교적 가격이 저렴한 중고 책을 더 선호한다. 여기에 맞춰 인터넷 서점들이 중고서점 진출을 시도하고 있다. 예스24는 다음 달에 중고서점을 개장한다. 출판계는 표정이 어둡다. 중고서점의 확장세가 커질수록 새 책이 잘 팔리지 않는 상황으로 이어진다. 신간 유통이 정체되면 출판사의 수익이 저조해진다. 실적 부진으로 인해 새 책을 만들려는 투자 심리가 위축된다.

 

중고서점의 등장에 출판사 직원들은 깊은 한숨을 내쉬지만, 헌책방 주인들은 울상을 짓는다. 손님들이 찾는 책들은 거의 중고서점에 몰려 있다. 중고서점은 하루에 엄청난 양의 책을 확보해도 재고 문제에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왜냐하면, 중고서점에 책을 구매하는 손님들이 많기 때문이다. 반면에 헌책방은 재고가 많아도 너무 많다. 헌책방 찾는 손님들의 발길이 끊어진 지 오래다. 헌책을 사는 손님은 팍 줄어들고 있고, 손님이 파는 책들만 계속 많아진다. 판매되지 않은 책들이 점점 쌓일수록 책방 공간이 협소해진다. 헌책들을 애지중지하게 여기던 책방 주인들도 너무 많아진 책들을 혼자 관리하지 못한다. 책방에 오래 방치되어 있고, 판매 가치가 떨어진 책들은 폐품으로 처분한다.

 

요즘 젊은 층을 중심으로 ‘술 마시는 책방’ 유행이 불기 시작했다. 손님들이 책방에 맥주를 마시면서 책을 읽는 광경들 볼 수 있다. 책방이 직접 유명 작가를 초빙해서 강연이나 사인회를 열기도 한다. 그러면 책방을 널리 알릴 수 있고, 책을 구매하는 손님들을 많이 확보할 수 있다. 이처럼 중소 책방들은 손님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책만 보는 서점’ 이미지를 탈피하고 있다. 서점도 ‘투 잡(Two job)’을 해야 하는 시대가 왔다. 그러나 ‘투 잡’하는 헌책방의 현실은 초라하다. 책방 운영하면서 얻는 수입만으로 근근이 살아가기가 어렵다. 내가 자주 찾는 헌책방은 담배도 판다. 담배 사러 오는 손님이 책 찾는 손님보다 더 많다. 책과 골동품을 같이 파는 헌책방도 있다. 그런데 말은 골동품이지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낡은 잡동사니다. 가끔 알람시계, 소형 라디오 같은 물건도 있다. 이 중에 하나만 팔아도 감지덕지하다.

 

허름한 헌책방은 세련된 분위기를 유지하는 중고서점을 절대로 따라가지 못한다. 씁쓸하지만 이게 현실이다. 이로 인해 헌책방에 대한 편견이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헌책방에는 아무도 사지 않는 책들만 잔뜩 있고, 퀴퀴한 냄새가 풍기는 곳으로 생각한다. 중고서점은 ‘젊은 헌책방’이라는 이미지를 내세워서 책을 멀리하는 젊은 층들을 끌어모은다. 그렇지만 중고서점이 헌책방보다 더 좋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중고서점과 헌책방 모두 애용하면서 확실하게 느낀 것이 딱 하나 있다. 점점 늘어나기만 하는 중고서점은 ‘레몬 마켓(lemon market)’으로 전락한다. 영어에서 레몬은 속어로 ‘불량품’이라는 뜻이다. 레몬 마켓에 가격은 저렴하지만 시고 맛없는 레몬만 널려 있다. 그래서 레몬 마켓은 구입해서 직접 써보기 전까지는 품질을 제대로 알기 어려운 제품이나 서비스가 거래되는 불량한 시장을 의미한다.

 

중고서점에는 불량 레몬 같은 책들이 너무 많다. 팔지 못해서 출판사 창고에 썩혀 있던 책들이 대량으로 중고서점으로 들어온다. 대부분 출간 연도가 좀 지난 구간 도서다. 책 상태만 좋은 헌책이다. 책 보는 눈이 남다른 독자는 오랫동안 읽고 보관할 수 있는 좋은 책들을 잘 골라낸다. 반면에 좋은 책을 고를 줄 모르는 독자들은 책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다. 그래서 겉은 멀쩡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문제가 많은 책을 고를 가능성이 커진다. 중고서점의 등장은 독자들이 즐거워해야 할 일이 아니다. 중고서점이 많아진다고 해서 값싸고 좋은 책들을 더 많이 살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착각이다. 우리가 원하는 책들은 다른 독자들도 갖고 싶어 한다. 그러면서 좋은 책을 가지게 되면 팔지 않고 소유하려는 심리가 강해진다. 이렇게 되면 중고서점에 품질이 더욱 떨어지는 책만 넘쳐날 수밖에 없다. 중고서점을 ‘헌책방의 진화’, ‘책의 보고’라는 수식어를 붙이면서 과하게 소개하는 뉴스를 발견하면 일단 의심하자. 중고서점을 취재한 기자가 무식하거나 중고서점 확장에 대한 야심이 큰 온라인 서점의 언론 플레이일 수 있다. 중고서점을 애용하는 것도 좋지만, 화려한 내부 분위기에 현혹되지 마시라. 그러다가 호구 된다.

 


댓글(20) 먼댓글(0) 좋아요(3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기소불욕물시어인 2016-03-19 18: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이 비싼게 아니고 우리들의 실질 소득이 줄어들어서 그래요!
한가족 통신비를 반만 줄일 수 있다면 쫌 여유가 생길텐데...

cyrus 2016-03-21 09:50   좋아요 0 | URL
가계소득이 넉넉하지 않다 보니, 물가가 조금만 상승해도 비싸게 느껴집니다.

stella.K 2016-03-19 18: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진짜 책을 사려면 헌책방을 가야지.
중고서점이 등장하면 이런 문제가 파생될 줄 알았지.
출판사가 타격이지. 독자는 그나마 좋긴 하지만...
나도 최근까지 가끔 중고서점에 들러보곤 하는데
내가 원하는 책은 별로 없더군.
그래도 옛날 서점가는 기분이 들기도 해.
암튼 이 출판사와 서점간의 문제는 참 풀기가 어려운 것 같아.

cyrus 2016-03-21 09:56   좋아요 0 | URL
`내가 원하는 책`을 찾겠다는 마음으로 헌책방, 중고서점에 가면 못 찾는 경우가 많아요. 저는 책을 사러 가면 아무 생각하지 않아요. 이러저리 확인해보고, 마음에 드는 책을 발견하면 그게 `내가 원하는 책`이 되더라고요. ^^

2016-03-19 19: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6-03-21 09:58   좋아요 0 | URL
헌책방에는 사진집이 좀 많이 있는 편인데, 대부분 아마추어 사진가들이 낸 것들이 많아요. 유명 사진작가의 사진집은 희귀성 때문에 가격이 높아요.

단발머리 2016-03-19 1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담배도 판다... 에서 정겹기도 하고 쓸쓸하기도 하네요. 저부터도 헌책방보다 중고서점 가게 되더라구요.
편하고 깨끗하고... 에구...

cyrus 2016-03-21 10:02   좋아요 0 | URL
헌책방도 책을 가지런하게 정리하지만, 청결함에 있어서는 중고서점 못 따라갑니다.

레삭매냐 2016-03-19 21:2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헌책방에 저도 예전에 줄곧 찾아 다니곤 했습니다.
문제점 중의 하나가 주인장도 고객이 원하는 책이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는 점입니다. 검색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지
않아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립니다.

시간이 많던 시절에는 한나절도 문제가 없었지만 중고서점
에 들러서 후딱 책 사들고 튀어야 하는 입장에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네요.

그리고 배다리에 있는 중고서점에도 자주 가곤 했었는데
절대 책이 싸지 않고 네고가 불가능합니다. 책 바닥에
적혀 있는 가격 그대로 받습니다. 램프의 요정에서 제공
하는 유혹적인 할인 서비스 받다 보면 도저히 새 책 살
엄두가 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cyrus 2016-03-21 10:25   좋아요 0 | URL
헌책방에 대한 잘못된 생각 중 하나가 헌책방 사장님이 손님이 원하는 책을 다 찾아낼 수 있다는 믿음입니다. 그분들의 오랜 경험만 보면 충분히 가능하지만, 세월 앞에 능력이 무뎌집니다. 책을 못 찾을 때가 있고, 가끔 가게에 파는 책이 뭐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재고를 컴퓨터에 입력해서 기록으로 남기는 분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혼자서 엄청난 양의 책 한 권 한 권 정리하는 일은 쉽지 않아요.  이렇다 보니 헌책방 홈페이지에 검색해도 나오지 않는 책이 헌책방에 가면 찾을 수 있습니다.

방랑 2016-03-19 2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신촌에 헌책방 투어를 좋아해요.

동네에도 헌책방을 발견했는데 시집이 많아서 다시 가봐야될듯싶어요.

며칠전 친구를 기다리다가 약속장소를 헌책방으로 잡았는데 먼저 가서 책을 보는 재미가 있어서 좋았어요.

cyrus 2016-03-21 10:35   좋아요 0 | URL
책 좋아하는 사람들이 약속 장소로 많이 정하는 곳이 바로 서점 아니면 도서관 근처입니다. ^^

:Dora 2016-03-20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프서점중고매장 역시 거대자본주의의 독식의 시작인가요 소비자들은 참 편리하고 좋지만 헌책방을 살리는 게 우선이죠

cyrus 2016-03-21 10:36   좋아요 0 | URL
헌책방을 애용하고, 책 좋아하는 분들 만나면 항상 헌책방의 장점을 많이 알리려고 합니다. 그렇지만 헌책방이 부활할 가능성은 없다고 봅니다. 지금 남아있는 헌책방 사장님들의 평균 연세가 50, 60대 이상입니다. 이분들이 세상을 떠나고, 헌책방 운영을 다른 사람에게 물려주지 않으면 가게는 영원히 문을 닫아요. 비관적인 전망이지만, 십 년 안에 헌책방이 거의 폐점되면서 사라질 겁니다.

파트라슈 2016-03-20 2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도 논의 논리를 벗어나지 못하겠죠. 중고서점이든 동네 헌책방이든 자본과 돈의 논리에 따라
정리되어 갈겁니다. 헌책방이 사라지는 건 시간문제고요. 사실 헌책방 가봤자 살만한 책이 없지 않습니까. 가격은 비싸게 받고 신간서적 유입이 거의 안되니 가봤자 건질만한 책도 없죠. 사람들이 책을 보지 않고 신간도 거의 구입하지 않으니까 헌책방에 나올 물건도 없음. 저도 책을 좋아하지만 헌책방 사라지는 건 별로 아쉽지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공중전화나 카세트 테이프처럼 세상이 변하면서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것 중에 하나라고 생각되요. 과거 한때 헌책방이 어마어마한 호황을 누렸죠. 이제는 돈이 헌책방같은 낡은 시스템으론 흘러가지 않지요. 헌책방 사라진다고 책이 사라지는건 아니지 않겠습니까^^

cyrus 2016-03-21 10:46   좋아요 0 | URL
그렇죠. 헌책방이 예전 명성을 되찾는 건 불가능한 일입니다. 헌책방과 중고서점 간의 격차가 너무 크게 벌어졌어요. 헌책방도 고객을 만족시켜주기 위해서 재고 관리를 전산화하려고 시도해보지만, 소수의 헌책방만 가능한 일입니다. 연세가 많은 분들이 헌책방을 운영하고 있어서 중고서점의 장점을 벤치마킹할 수 없어요.

transient-guest 2016-03-23 1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그저 헌책방을 높여 부른 이름인 줄 알았는데 이런 문제가 있었네요 다시 헌책방으로 부르고 한국가면 사랑하는 아벨서점에서 헌책을 왕창 사들여야겠습니다

cyrus 2016-03-23 15:11   좋아요 0 | URL
인천에 있는 유명한 헌책방이죠. 저는 아직 그곳에 한 번도 가보지 못했습니다. 서울을 포함해서 전국에 있는 헌책방 모두 한 번씩 가보는 게 소원입니다. ^^

심성 2016-03-25 15: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 중고서점을 이용하면서 질 낮은 책들이 너무 많아 놀랐습니다. 자신이 목적독서를 하고 독서력이 상당하다면 좋은책을 옥고르듯 고를 수 있겠지만 제목에 현혹되어 아님 상투적인 내용으로 가득찬 찍어내기식 잡서를 구입하게 되는 독자를 많이 보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이북 시장도 비슷하더군요. 값싼 이북들은 말그대로 종이책으로 찍어낼 가치조차 없는 아무개의 졸작들이 많고 또 그런 아무개들을 작가랍시고 출판시켜 현물이 없는 전자책으로 권당 천원 천오백원씩 받아서 싼맛에 독서물을 흐리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레몬 마켓이란것을 알게 되어 흥미롭네요. 레몬마켓의 향과 겉모습에 속아 시어빠진 못먹는 과일을 사지 않도록 조심해야겠습니다.

cyrus 2016-03-25 18:28   좋아요 0 | URL
알라딘에 전자책을 검색해보면 종이책에 소개된 적이 없고, 널리 알려지지 않은 유명 작가들의 문학작품들이 있습니다. 가격이 1,000원에서 3,000원 사이입니다. 가끔 공공도서관으로 전자책을 대출해서 읽거나 아니면 적립금으로 구입합니다. 이런 시도는 좋긴 한데, 문제는 번역이죠. 전자책의 단점 중 하나가 번역자 소개가 생략된 경우가 많다는 사실입니다. 그게 좀 아쉽습니다. 그 외에는 정말 읽을 만한 가치가 없는 전자책입니다.
 

 

 

오늘 오전에 중고 품질판정 고객위원회 투표에 참여했다. 투표 기간은 4월 30일까지다. 그런데 ‘선착순 1만 명’이 투표를 완료하면 그 이후로 투표를 해도 적립금을 받지 못한다. 알라딘 홈페이지로 접속해서 온라인 중고샵을 클릭하면 해당 이벤트에 참여할 수 있다. 얼른 투표하시라.

 

투표 실시간 결과가 나와 있다. 이걸 확인하면서 헌책에 대한 내 생각과 사람들의 생각이 크게 다르다는 점을 알았다.

 

 

 

 

 

 

헌책방에 가면 대여점 스티커 혹은 도서관 스티커가 있는 책을 많이 발견한다. 경북대학교 북문으로 향하는 도로 근처에 있는 헌책방 합동북에는 경북대학교 도서관 스티커가 붙여진 책들이 널려 있다. 아마도 학부생들이 학교 도서관 책을 반납하지 않고 책방에 팔았을 것이다. 공공도서관에 소장되어 있었던 연도가 많은 책 또한 책방에 온다. 대구 수성도서관의 옛 이름은 효목도서관이었다. 2008년에 현재의 이름으로 변경되었다. 가끔 책방에 효목도서관 스티커나 직인이 있는 책을 만나기도 한다. 출간연도가 오래되지 않았는데도 도서관 스티커가 있는 책이 책방에 있다면, 책을 빌린 사람이 반납하지 않고 책방에 팔았던 것일 수도 있다. 멀쩡한 도서관 책이 손님을 잘못 만나면 나이 많은 책들이 사는 곳에서 살아야 한다. 이곳에서 진심으로 책을 좋아하는 주인을 만날 확률은 희박하다. 스티커와 도장 자국은 책방 손님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낙인이다. 새것을 선호하는 손님들은 스티커와 도장 자국 하나라도 용납하지 않는다. 나는 스티커와 도장이 있는 책을 너그럽게 받아들인다. 그런데 생각보다 이런 책을 ‘판매 불가’로 보는 사람들이 많다. 하긴 도서관에 있어야 할 책이 알라딘 중고매장에 있으면 책을 고르는 손님 입장에서는 께름칙하다. 도서관용 흔적이 남아있는 책을 가지고 있으면 도서관에서 훔쳐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책을 인간의 노화 과정으로 비유하자면, 종이가 누렇게 된 상태는 흑발이 백발로 변하는 과정이다. 책배에 남아있는 얼룩은 주근깨 또는 기미와 같다. 종이는 물과 습기에 엄청나게 약하다. 주근깨와 기미가 햇빛에 많이 노출되면 생기는 반점이라면 책배의 얼룩은 습기를 너무 많이 먹어서 생기는 자연 현상이다. 물에 젖은 종이를 제대로 건조하지 않으면 물기 자국이 그대로 남는다. 물과 습기에 심하게 노출되면 종이에 곰팡이가 생긴다. 이건 책과 책 주인 모두가 원하지 않는 종이의 질병이다. 책 곰팡이는 무좀 같은 녀석이다. 곰팡이로 인해 하얗던 종이 표면이 보기 흉해진다. 책 주인은 곰팡이가 있는 부분에 손을 대기가 꺼려진다. 책 곰팡이를 완벽하게 제거하는 방법은 없다. 인터넷에 떠도는 정보를 믿고 약품을 사용했다간 종이 상태가 더 안 좋아질 수 있다. 얼룩 흔적, 곰팡이가 생기기 시작한 책은 서점에서는 늙고 병든 사람처럼 취급받는다. 젊고 파릇파릇하고 깨끗한 새 책들 사이에 도저히 낄 수가 없다. ‘젊은 헌책방’을 표방하는 알라딘 중고매장 또한 얼룩과 곰팡이가 있는 책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결국, 병든 책들이 향하는 안식처가 바로 어두컴컴한 지하실의 헌책방이다. 이들은 주인을 기다리면서 편안히 잠든다. 운 좋은 녀석은 주인을 잘 만나서 따뜻한 서재 안에서 편안하게 시간을 보낸다. 

 

 

 

 

 

 

나이가 많은 책은 서럽다. 젊었던 시절의 순백 피부는 누렇게 변했고, 온몸에 난 얼룩과 곰팡이가 세월의 변화를 말해준다. 또한, 냄새가 많이 난다. 헌책방 내부로 들어서면서 이상한 냄새가 코를 확 건드린다. 눅눅한 이불에서 나는 것 같은 냄새. 이 냄새는 지하실의 습기에 숙성된 늙은 책들에서 난다. 그러나 오래 맡아도 속이 매슥거리는 일이 없다. 헌책방 방문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헌책 냄새가 낯설게 느껴지지만, 이 냄새를 많이 맡는다고 해서 신체나 코 감각 기관에 이상이 생기지 않는다. 헌책 수백 권이 쌓여 있고, 폐쇄된 공간인 책방에서는 헌책 냄새가 유독 강하게 날 뿐이지, 헌책 한 권이 서재에 있으면 냄새가 나지 않는다. 코를 책에 가까이 가서 맡아보면 희미한 냄새의 흔적이 느껴진다.

 

 

 

 

 

 

책을 샀으면 인간적으로 자신의 서명을 크게 쓰지 말자. 분실하기 쉬운 대학 강의 교재나 교과서에 서명을 남기는 것은 이해한다. 그런데 에고(ego)와 소유욕이 과다 분비하는 사람들은 책에 글씨체를 크게 서명한다. 다. 책이 아주 귀한 상품으로 대우받았던 시절에 책 소유자는 책에 장서인(藏書印)을 찍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이제 책은 누구나 가질 수 있다. 그리고 내 손에 있던 책이 언젠가는 다른 사람의 손으로 갈 수 있다. 쓸데없이 서명이 많은 책은 다른 책 주인에게 이양하는 데 불리하다. 그 책을 원하는 사람들은 뚜렷하게 남아 있는 전 책 주인의 흔적을 부담스러워 한다. 전 책 주인의 잘못된 행동 때문에 책의 운명이 꼬여버린다.

 

당연한 말이지만, 책은 종이로 만들어진 상품이다. 요즘 세상에 책을 귀하게 여기는 사람은 없지만, 책을 만드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종이는 쉽게 구하기 힘든 귀한 자원이다. 사람이 자신의 몸을 함부로 쓰면 질병에 쉽게 노출되고 건강이 나빠진다. 책도 마찬가지다. 책을 험하게 다루면 아무리 튼튼하게 만들었어도 끝내 파손되고 만다. 책의 운명은 책 주인의 손에 달려 있다.

 

 

 

 

 


댓글(18) 먼댓글(0) 좋아요(3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stella.K 2016-03-18 1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래 전, 최윤필 기자가 자기 책에서 절판된 책에 대해,
권력을 찬탈당한 어린 임금의 눈빛 같다는 표현을 썼는데
마음이 아리더군.

알라딘이 그런 기특한 행사를 한단 말야?
나도 참여해 봐야겠군.

cyrus 2016-03-19 12:22   좋아요 0 | URL
작가가 헌책방에서 자신이 쓴 절판본이나 자신의 친필 사인이 있는 책을 발견하면 기분이 안 좋죠.

곰곰생각하는발 2016-03-18 1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 홍길동...
옛날에는 진짜 교과서하고 참고서 애새끼들이 자주 훔쳐서 저렇게 쓰고 다녔었씁니다...
아, 반가운데요... ㅎㅎㅎㅎㅎㅎ

요즘도 그리하나요 ? 요즘은 참고서가 하도 흔해서....

cyrus 2016-03-19 12:29   좋아요 0 | URL
참고서가 흔해도 자기 돈으로 사기 싫어하는 사람들은 이름 적힌 것도 훔칩니다. 대학교 강의 교재를 훔치는 놈들도 있어요. 책배에 있는 서명을 사포 조각으로 긁어서 제거하는 놈을 봤습니다.

북다이제스터 2016-03-18 1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오늘 투표했습니다.
중고책이 시장에 많이 나오길 바라는 욕심에,
형편없는 책을 중고서점에 많이 파는 상황에
마구 최상, 상 눌렀습니다. ㅎㅎ

cyrus 2016-03-19 12:31   좋아요 0 | URL
책값이 부담스러워서 사람들이 싼 가격의 중고책을 많이 찾는다고 하더군요. 저도 새책을 사는 횟수가 적은 편입니다. 그런데 이게 장기화되면 출판 시장이 더 암울해질 겁니다.

레삭매냐 2016-03-18 2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의 경험을 반추해 본다면, 알라딘에서는 공식적으로
책배에 증정으로 보이는 부분을 매직을 죽죽 긋고 그런
책들은 매입하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언젠가 그런
책이 도착해서 당황했던 기억이 나네요.

최근의 예로는 소포클레스 비극집을 샀는데 너무 많은
밑줄이 그어져 있어 적잖이 놀랐습니다. 아마 검수하시는
분들의 업무과다로 책판정이 제대로 되지 않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절판되서 꼭 구하고 싶은 책이라면 서명이고 낙서고 다
필요 없이 무조건 사야겠지요. 어쩌겠습니까 그래. 없는걸.

cyrus 2016-03-19 12:35   좋아요 0 | URL
맞아요. 판매 불가 판정받아야 할 책이 엉뚱하게 중고매장에 있는 경우가 있어요. 책 표지에 낙서가 남아있는데도 팔고 있더군요.

저도 쉽게 구할 수 없는 책은 낙서나 서명이 있어도 무조겁 삽니다. ^^

꿈꾸는섬 2016-03-18 23: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알라딘 중고서적에서 학번과 이름이 적힌걸 받아들고 짜증이 좀 나더라구요. 그리고 도서관책을 파는것도 이해불가요. 그건 도둑질 아닌가요?

cyrus 2016-03-19 12:40   좋아요 0 | URL
그렇죠. 예전에 책을 훔쳐서 헌책방이나 중고매장에 파는 절도범이 잡힌 적이 있었어요. 책 판매자 입장에서는 매입할지 안 해야할지 결정하기가 힘들 겁니다. 도서관 직인이 있는 책이 보존서고에 있던 것일 수 있으니까요. 책 상태가 비교적 깨끗하고 도서관 직인이 선명하면 일단 의심해봐야 합니다.

eL 2016-03-19 1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학시절인가.. 책 옆에 학번이랑 이름적힌 중고책을 가져가면 제본집에서 한번 깎아서 없애줬던 것 같은데.. 요즘엔 그런게 없나요..?

cyrus 2016-03-19 13:46   좋아요 0 | URL
네. 그 방법도 있습니다. 제가 대학 신입생 시절에 선배한테 처음 들었습니다. 선배가 대학 생활 잘 하기 위한 팁이라고 알려줬어요. 그걸 진짜 실행하는 동기들이 있었어요. 그때부터 책에 이름을 써도 훔칠 놈은 훔친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

eL 2016-03-19 1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나저나 나이가 많은 책은 서럽다 라는 구절이 왠지 콕 박히네요.ㅜ 나이가 많은건 사람이든 나무빼고 다 서러운건가.. 흑흑

cyrus 2016-03-19 13:50   좋아요 0 | URL
출간연도가 지난 책은 폐품으로 처리되죠. 헌책방에 있는 책들도 안심할 수 없습니다. 책방 공간이 좁아지면 책을 처분해야 하거든요.

뽈쥐의 독서일기 2016-03-19 17: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에서 알라딘에, 개인에 중고책을 사고 팔아봤는데요, 이거 최상 상 중 하 기준이 넘 주관적이어서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하지요. 개인적으론 시간의 흔적보다도 전주인의 흔적이 더 견디기 힘드네요. 저도 요즘엔 새책 사는 일이 많이 없어요. 싼 가격에 질 좋은 상품을 얻고 싶은게 인간의 심리이니 중고시장도 은근 복잡하지요.
그나저나 예전에 봉사활동하던 도서관에서 어떤 변호사가 취미로 쓴 게 뻔한 저자 사인책이 무더기로 기부되서 버리느라 혼났네요. 제목이 `고삐리~` 머시기였는데 받고 난감한 사람 심정도 이해가 가고 저자도 쫌 불쌍하고..뭣보다 나무한테 미안했어요ㅋㅋ

cyrus 2016-03-19 17:16   좋아요 0 | URL
누구나 다 깨끗한 책을 찾으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책 상태가 조금이라도 마음에 안 들면 무조건 환불해달라고 요구합니다. 재수 없으면 일부러 책을 파손해놓고선 뻔뻔스럽게 환불을 요구하는 악질 손님도 있어요. 이런 갑질 손님 만나면 책 팔기가 싫어져요. 그래서 헌책방을 오랫동안 운영하는 분들이 대단해요.

요즘 신간은 안 사고, 중고서점만 찾는 고객이 많아졌다고 합니다. 저도 그런 고객 중의 한 사람인데, 이 상황이 좋지 않게 보입니다.

transient-guest 2016-03-23 16: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책을 팔지 않습니다. 사실 팔 수 없는 책도 많구요. 밑줄을 긋는 습관이 있어 특히 non-fiction은 파는 건 고사하고 남한테 빌려주는 것도 싫어합니다. 서재를 개방하는 것이 자신의 속살을 보여주는 것 같다는 말을 누군가 했었는데, 밑줄 그은 책을 남에게 보여주는 건 그 이상이란 생각을 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cyrus 2016-03-23 16:44   좋아요 0 | URL
t-guest님 말씀에 공감합니다. 저도 밑줄 그은 책을 남한테 준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모 종합편성 채널의 건강 프로그램이 날이 갈수록 인기를 얻고 있다. 어머니가 드라마 다음으로 많이 보는 방송이 건강 프로그램이다. 한 번은 건강 프로그램에 치매를 예방하는 건강 비법이 소개된 적이 있었다. 방송 스튜디오에 치매 판정을 받은 70대 노인이 출연하여 자신의 건강 비결을 밝혔다. 노인은 치매를 막기 위해 손가락 체조와 필사를 꾸준히 했다고 말했다. 노인이 성서를 필사한 노트도 공개되었다. 그 방송을 본 어머니는 필사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던 것 같다. 나는 그 마음을 확인하고, 어제 《동주 따라 필사하기》를 주문했다. 다행히 어머니는 필사 노트에 흡족해하셨다.

 

나는 필사가 두뇌 발달에 크게 도움이 된다고 믿지 않는다. 손을 열심히 움직이면 두뇌를 자극할 수는 있다. 암기해야 할 내용을 손으로 글씨를 여러 번 쓰면 기억력이 향상된다는 실험 결과도 있다. 하지만 실험 결과만 믿고 큰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확실히 두뇌를 좋게 하려면 필사만 하는 게 아니라 소리 내어 글을 읽고 글자를 암기해야 한다. 두뇌를 확실하게 사용하면서 책의 내용을 이해할 수 있다. 과거의 필사는 공부하는 방법의 하나였다. 오늘날의 필사는 자기 성찰을 위한 힐링 문화로 재조명받고 있다.

 

필사하기 위해 필요한 준비물은 간단하다. 펜, 공책, 필사하고 싶은 책. 이게 전부다. 세 개의 준비물 모두 집에 있는 것들이다. 아차, 책과 담 쌓은 사람이라면 집에 글자만 있는 책이 단 한 권도 없을 수 있겠다. 아, 사람들아 책 좀 사라! 필사하고 싶은 책은 아무나 해도 좋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시집이나 소설이 좋다. 필사는 소박하게 시작하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독자들은 필사를 시작하려고 필사용 책을 구입한다. 2년 전에 컬러링북이 출판업계에서 힐링 아이템으로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 어른들은 복잡한 생각에 벗어나 색칠 놀이에 푹 빠졌다. 그 힐링 문화 트렌드를 이제 필사가 바통을 이었다. 독자들은 좋은 문장을 정독하고 손으로 직접 쓰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컬러링북이 시각의 자극을 통해 생각을 비워나가는 방법을 알려줬다면, 필사용 책은 ‘문학’이라는 감성적인 콘텐츠를 통해 생각의 속도를 차분하게 해준다. 필사는 남녀노소 누구나 할 수 있다. 필사용 책은 가장 일반적인 시집부터 소설, 수필, 성경까지 다양한 장르에서 선보여지고 있다. 필사용 책을 찾는 사람들이 앞으로 더욱 늘어날 것이다. 

 

내가 주문한 《동주 따라 필사하기》의 정가는 13,900원이다. 알라딘 할인 가격은 12,510원이다. 《동주 따라 필사하기》는 읽는 용도의 시집과 필사용 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외에는 특별한 것은 없다. 집에 시집과 공책 두 권 다 있으면 《동주 따라 필사하기》를 사지 않아도 된다. 내가 세상의 유행에 둔감해서 그런지 모르겠으나 필사용 책을 사는 것이 무척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필사용 책을 구입하는 결정은 경제적으로 비효율적인 행위다. 이미 앞에서 언급했듯이 필사는 소박한 준비물만 있어도 충분하다. 서재에 꽂힌 윤동주, 김소월 시집을 필사용 도서로 사용해도 된다. 그 다음에 쓰다 만 공책이나 수첩에 필사할 수 있다.

 

 

 

 

 

 

 

 

 

 

 

 

 

 

 

 

 

 

필사용 책을 선호하는 독자들에게는 불쾌한 말로 들리겠지만, 필사 유행의 유혹을 이겨내지 못해 필사용 책을 사는 행동은 어리석다. 행동경제학 측면에서 본다면 필사용 책을 구입한 독자들은 눈앞의 이익에 눈멀어 이성적인 선택을 하지 못한 것이다. 이들은 눈앞의 즐거움에 더 많은 가치를 두는 ‘현재 편향(Present Bias)’의 덫에 걸렸다. 우리는 현재 자신이 원하는 것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린다. 그래서 먼 훗날의 일보다 당장 눈앞의 일을 중시해 돈을 쓰는 경향이 있다. 필사를 꾸준히 실천한다면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런데 필사가 아무리 좋아도 살다 보면 바빠서 필사하는 일을 점점 미루거나 필사의 재미를 예전보다 덜 느낄 수 있다. 이러면 후회가 확 밀려온다. 아, 내가 13,900원을 내면서까지 필사용 책을 왜 샀을까?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새 책 상태를 유지했으면 알라딘 중고시장에 팔면 된다. 하지만 이미 필사 흔적이 남아있는 책을 과연 누가 사겠는가.

 

필사는 조용히 자신의 세계에 몰두하는 소박한 기록 행위다. 자신이 좋아하는 책과 공책만 있으면 된다. 알고 보면 그리 대단하지 않다. 필사 유행을 감지한 출판사들은 너도나도 할 것 없이 필사용 책을 내놓기 시작한다. 일단 독자들의 지갑을 열리게 하는 책만 만든다. 출판사들은 감성이라는 단어를 남발하면서 필사의 중요성을 끊임없이 강조한다. 책을 더 많이 팔아보려는 그들의 노력이 가상하다. 열려라, 지갑! 평소에 책을 사지 않던 독자들은 필사용 책 앞에서는 지갑을 자연스럽게 연다. 우리나라 작년 가구당 책 사는 데 쓴 돈이 한 달에 16,623원이다. 책 읽는 데 사용한 시간은 하루 평균 6분. 서점 주인들은 시집이나 수필집이 안 팔린다고 울상을 짓는다. 아이러니하게도 ‘필사용 시집’을 선호하는 젊은 고객층이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만약 필사가 유행되지 않았으면 윤동주 시집은 지금처럼 꾸준히 팔려 나가지 않았을 것이다. 독서와 필사 모두 ‘아날로그 행위’에 속한다. 사실 필사는 독서를 기반으로 하는 활동이다. 먼저 글을 읽고, 그 글 속의 문장을 천천히 손을 써보면서 이해하는 것이다. 이상하게도 요즘 사람들은 독서를 멀리하고 필사를 좋아한다. 지금의 출판 시장은 정말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

 

 

 

 


댓글(20) 먼댓글(0) 좋아요(4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6-03-16 19: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3-17 12: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CREBBP 2016-03-16 2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팔아프고 손가락 아픈데 그게 힐링이 된다는 게 참... 어릴 때 받아쓰기 틀리면 종이 가득 줄그어서 써오는 숙제 생각나네요. ㅋ

cyrus 2016-03-17 12:47   좋아요 0 | URL
제 학창 시절에는 시험문제 틀리면 틀린 문제와 풀이 내용을 공책 한 장 안에 빽빽하게 써오라고 숙제를 시키는 선생님들이 많았습니다. 시험에 자신 없는 친구들은 틀린 문제 개수당 매를 맞는 게 낫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

하양물감 2016-03-16 23: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손가락이 아프니 필사할 일은 없겠으나....

독서문화운동을 하면서
대상을 책을 읽는 사람과 책을 읽지않는 사람 중 누구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방법이 달라져야하더라구요.

필사용책도
스스로 필사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필사가 무엇인가 궁금한 사람을 위한 책이 아닐까요

cyrus 2016-03-17 12:52   좋아요 0 | URL
제 주변에 필사 유행을 잘 모르는 친구도 있었어요. 이런 사람들이 필사가 무엇인지 궁금해서 필사용 책을 살 겁니다. 필사용 책을 구입하기 전에 실물을 확인하고 사야겠어요.

꿈꾸는섬 2016-03-17 0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굳이 필사용책을 사야하나하는 생각이 들어요. 책을 사고 공책에 쓰면 되는거 아닌가요? 자본시장이란 모든게 다 상품화되는군요. 근데 왜 슬플까요ㅜㅜ

cyrus 2016-03-17 12:59   좋아요 0 | URL
저는 고등학생 때 문학 교과서나 문제집, 모의고사 언어영역 시험지에 좋은 시를 발견하면 공책에 따로 필기했습니다. 마음에 드는 시를 공책에 옮겨 적는 일이 즐거웠어요. 그때부터 시를 암기하고, 문제 푸는 교육 현실에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ㅎㅎㅎ

영화와 초판본이 큰 인기를 얻게 되니까 출판사들이 윤동주 시집을 내는 상황이 씁쓸했습니다. 이제는 이육사, 김소월, 백석, 한용운까지 다 나오네요. 좋게 포장하면 아날로그 문화의 회귀라고 말하지만, 그 속을 잘 살펴보면 자본주의의 손이 숨어 있어요.

corcovado 2016-03-17 0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필사관련 책은 알라딘온라인에서 처음 보게되었는데 ˝필사노트˝라는 문구를 보고도 (이게 대체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하고 이해를 못했습죠..지금은 웬만한 서점에 모두 진열이 되어있던데,사실 아직도 공급하는것과 수요가 있다는것이 믿기지않습니다.불과 며칠전 서점에서 따로 필사책구역을 만들어 판매하는걸 보고 입을 삐죽-거렸는데 cyrus님이 콕 집어 써주시니 제가 다 후련합니다.

cyrus 2016-03-17 13:05   좋아요 0 | URL
알라딘 검색창에 ‘윤동주 필사’라고 입력하면 제가 주문한 책과 다른 출판사의 윤동주 시집 필사용 도서가 나옵니다. 교보문고 같은 오프라인 서점에 가면 이런 유사한 책이 더 많이 있어요. 처음에 저도 필사 유행이 반가웠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과열된 상태입니다. 출판사들은 필사용 책을 만들어서 수익을 올리려고 할 겁니다.

eL 2016-03-17 0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같은 정통 인문학 영역 마저도 트렌드화 되어가는걸 보면 참 씁쓸하죠. 요즘엔 인권운동마저도 트렌드화된다는 느낌을 받게 되니..

저는 요즘엔 다른 측면도 함께 바라보려고 노력하는 중이에요. 하양물감님 댓글처럼, 유행따라가는 무수한 사람들 중에 단 몇사람이라도 이런 트렌드를 계기로 독서의 참맛을 알게되면 그 또한 의미가 있겠구나 하구요. 물론 cyrus님 말씀처럼 비판적 시각도 함께 가져가면서 말이죠. `-`

cyrus 2016-03-17 13:09   좋아요 0 | URL
맞아요. 저도 처음에 필사가 유행하기 시작했을 때 긍정적으로 봤습니다. 그런데 일부 출판사들은 독자들의 취향을 저격하는 유행이 있으면 거기에 편승해서 책을 만들려고 합니다. 전 이게 장기화되면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컬러링북이 유행했던 과정을 그대로 보는 것 같습니다.

세실 2016-03-17 17: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끼는 노트 한 권에 읽은 책 제목이랑 기억하고 싶은 글 적어 놓아요. 자연스럽게 필사가 되던데 필사 책도 인기군요.

cyrus 2016-03-17 17:45   좋아요 0 | URL
세실님의 필사 습관이 제일 바람직합니다. 평소에 필사 습관이 없던 사람이 필사 책을 사면 꾸준히 하지 못합니다.

나와같다면 2016-03-18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신문 칼럼을 필사해요.. 마음을 움직이는 글을 만나면..

cyrus 2016-03-18 11:37   좋아요 0 | URL
아주 바람직한 필사 습관입니다. 신문 칼럼 속에도 좋은 문장이 많이 있어요. ^^

앤의다락방 2016-03-17 2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필사책 보관함에 담아두긴 했으나 구입으로까지 이어지진 않더라구요. 그냥 노트에 와닿는 내용만 적어둬도 좋을 듯 해서요. 정말 책을 그저 많이 팔려고 하는 것으로밖에는...

cyrus 2016-03-18 11:40   좋아요 1 | URL
필사 책을 구입하려면 직접 눈으로 보면서 확인하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인터넷에 있는 사진만으로는 실물이 어느 정도인지 정확하게 확인하기 어려워요. 책값을 아끼려면 원래 쓰던 공책에 필사를 하는 것이 낫습니다.

에이바 2016-03-18 17: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필사하면 손목터널 증후군 생길 것 같은데요...ㅋㅋㅋ 사은품으로 주는 필사노트는 좋지만 사서 보는 필사노트는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이 현상이 의아하긴 합니다.

cyrus 2016-03-18 17:33   좋아요 0 | URL
색칠도 오래 하면 손목이 금방 피로해질 수 있다고 합니다. 저희 어머니도 컬러링북 색칠을 오래 하니까 손목과 어깨에 통증이 온다고 말했어요. ^^;;
 

 

 

바둑에는 승부를 겨루는 스포츠와 달리 복기(復棋)라는 독특한 절차가 있다. 한 판의 대국을 마치고 나면 두 대국자는 자리를 떠나지 않는다. 바둑의 판국을 비평하면서 두었던 대로 다시 처음부터 놓는다. 그 과정에서 본인과 상대방이 놓은 수들의 잘잘못을 검토한다. 대국에서 패배한 대국자는 자신의 실수를 분석하면서 되씹는다. 복기를 해보면 대국 당시에는 알지 못했던 전혀 새로운 묘수가 발견될 수 있다.

 

출판사 혹은 인터넷 서점이 주관하는 서평대회는 글로써 승부를 겨루는 게임과 같다. 나는 누구보다 서평대회에 응모하는 것을 즐긴다. 평소에 글 쓰는 날보다 집중력이 높아진다. 퇴고를 엄청나게 열심히 한다. 대회 심사 위원에게 잘 보이기 위한 문장을 쓰려고 며칠 동안 고민한다. 그렇지만 노력한다고 해서 좋은 성과가 무조건 오는 것은 아니다. 나보다 열 배나 뛰어난 작문 실력을 갖춘 분들이 많다. 달콤한 축배보다 쓰디쓴 고배를 많이 마셨던 날이 더 많다. 보통 서평대회에 응모했다가 낙선되면 씁쓸한 감정을 애써 지우려고 한다. 그렇지만 나는 나만의 절차가 따로 있다. 서평 대회 결과를 확인하면 내가 응모한 글과 대회 당선작들을 다시 읽어 본다.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하게 읽는 편이다. 왜냐하면 내 글이 낙선된 이유를 확인해야 직성이 풀리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이런 행동은 결과를 승복하지 못한 태도에서 기인한다. 하지만 내가 쓴 글을 다른 글과 비교하면서 읽는 절차를 나쁘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그냥 내 스스로 내 글의 문제점을 진단하기 위한 과정일 뿐이다.

 

바둑이 늘기 위해서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의 바둑을 기록하고 복기하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서평대회에서 당선될 만한 글을 잘 쓰고 싶어서 내 글을 복기(復記)한다. 즉, 완성된 글을 해체하고 마음으로 다시 써보는 것이다. 내 글과 잘 쓴 글을 비교해서 읽어 보면, 표현력과 내용 전개 방법 등에서 확연한 차이가 나는 사실이 눈에 보인다. 이 일이 생각보다 재미있다. 글 속에 글쓴이 생각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글쓴이가 책을 읽으면서 자신만의 관점으로 느낌을 풀어나가는 글의 전개를 눈으로 따라가면 감탄을 하게 된다. ‘저 사람은 이 책을 이런 관점으로 읽었구나, 정말 대단한걸!’ 내가 책을 읽으면서 놓쳤거나 생각하지 못한 사실을 알게 된다. 덤으로 글쓴이의 문장 표현법도 배우게 된다. 그러면 내 글이 왜 당선되지 못했고, 어디가 부족했는지 파악할 수 있다.

 

가끔은 당선작이라는 이름에 어울리지 않는 글을 볼 때가 있다. 내 눈에는 당선작인데도 2% 이상 부족하게 보일 때가 있다. 그런 글들은 대부분 책과 저자를 향한 찬양의 수사로 휘황찬란하게 장식되어 있다. 그러면 나는 절대로 저런 글을 쓰지 않겠다고 생각하면서 끝까지 읽지 않는다. 이런 글에는 일정한 레토릭(rhetoric)이 있다. 글쓴이는 저자의 말에 동의하는 자세를 취한다. 그리고 책 속의 저자 생각이 자신의 삶에 끼친 사례를 열거한다. 글의 결론에서는 독자에게 호소한다. ‘이 책을 꼭 읽어보십시오. 최고로 좋습니다요.’ 이러한 레토릭은 약장수들의 언변에서도 볼 수 있다. “이 약, 건강에 좋아요. 내가 한 번 약을 먹고 나니까 병이 씻은 듯이 다 나았어요. 그러니까 여러분들도 이 약 먹으면 나처럼 건강해질 수 있어요.” 칭찬의 수사에 쓰는 일에 재미 들린 글쓴이는 자신이 독자인지 책을 판매하는 사람인지 구분하지 못한다. 서평대회 심사를 맡은 출판사 직원은 이런 글을 안 좋아할 수가 없다. 독자가 자신들 대신해서 책을 열정적으로 홍보하고 있으니까. “그래, 글이 아주 좋아서 책 홍보용으로 써도 손색이 없군. 이 글을 최우수작으로 선정하자고.”

 

어떤 이는 자신의 경험담을 고백하면서 글을 시작한다. 글쓴이는 자신이 경험했던 일을 책의 내용에 투영하면서 책을 소개한다. 이런 전개 방법은 좋다. 읽기 쉬운 글이다. 하지만 이 글도 단점이 있다. 글쓴이가 경험담 소개에 치중하면 책에 대한 단점이 가려질 수 있다. 즉, 책을 평가하는 태도를 놓치고 만다. 서평이든 독후감이든 글 한 편 속에 자신에 관한 이야기가 책 이야기보다 더 많이 보이는 것도 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이건 잘 쓴 에세이지, 잘 쓴 서평/독후감이 아니다. 평소에 이렇게 글을 써도 좋다. 서평/독후감을 에세이의 일종으로도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서평 대회에 응모하려면 서평/독후감에 부합되는 내용을 써주는 것이 맞다. 그렇다고 해서 책 소개만 이루어진 지루한 글을 쓰라는 말이 아니다. 자신의 경험담을 아예 쓰지 말라고 엄격한 자세를 취하는 것도 아니다. 책의 저자가 하는 말에 조금이라도 의문이 나거나 이건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들면 솔직하게 쓰는 것이 좋다.

 

책을 비판하면서 읽는 방법 또한 독서의 한 과정일 뿐이다. 그런데 이러한 독서법이 독자가 함부로 해서는 안 될 금기처럼 여긴다. 특히 서평 대회에 응모하는 글에 책이나 저자에게 조금이라도 시비를 걸면 심사 위원이 된 출판사 직원에게 밉보여서 당선에 불리하다고 생각한다. 책을 비판적으로 읽은 관점이 다른 독자들이 공감할 수 있을 정도라면 자신 있게 써도 된다. 자신감이 부족한 글쓴이는 책에 대한 찬사 위주의 내용을 쓰려고 고집한다. 이런 글들이 서평대회 당선작이 되면 결국 불리한 건 우리 독자들이다. 당선작을 읽는 독자들도 글을 제대로 보는 눈이 있다. 책의 단점이 뻔히 드러나는 데도 책을 좋다고만 쓴 서평을 보면 눈살을 찌푸린다. 그러면 글쓴이를 오해하게 된다. 혹시 저 글을 쓴 사람은 출판사 직원일까? 그런 의심을 한 번쯤을 할 수 있다. 서평/독후감을 작성한 독자와 그 글을 읽는 독자들 간의 보이지 않는 오해가 생기고, 독자가 독자 서평을 신뢰하지 않는 상황까지 생긴다. 

 

“출판사 직원들에게 잘 보이도록 쓴 글은 서평대회 당선작이 될 확률이 높다” 꽤 많은 사람이 서평대회 당선작을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이 생각을 정말 싫어한다. 그리고 억울하다. 나도 예전에 서평대회 응모하는 글을 썼을 때 책을 칭찬하는 레토릭을 포기하기가 어려웠다. 이렇게 안 쓰면 손해를 볼까 봐 두려웠다. 그러다가 책을 칭찬하는 서평이 당선작이 된 적이 있었다. 기분은 좋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내 서평이 출판사 직원들의 기분만 맞춰주는 글이라고 느껴졌다. 그래서 칭찬의 수사를 자제하고 책을 꼼꼼하게 따지는 서평/독후감을 쓰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출판사가 서평대회를 여는 가장 근본적인 목적은 책 홍보다. 그러나 서평대회는 책과 서평을 좋아하는 독자들을 위한 특별한 행사이기도 하다. 그만큼 서평대회에 참여하는 독자의 역할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책을 보는 생각이 사람마다 제각각 다를 뿐만 아니라 책이 모든 사람을 다 만족하게 해주지 못한다. 책 그리고 저자의 생각에는 장단점이 하나씩은 있기 마련이다. 책에 대한 평이 없는 서평과 독후감은 출판사의 손아귀에 들어간 영혼 없는 글이다. 저자와 책에 대한 비판적인 내용도 사람들의 감흥을 일으킬 수 있다. 그러니까 문제를 아주 예리하게 알려준 서평과 독후감은 독자, 출판사 직원 그리고 저자 모두를 공감하게 한다. 이런 글이 서평대회 당선작이 되어야 한다. 나는 앞으로도 계속 독자들 앞에서 솔직해지는 서평/독후감을 쓰고 싶다. 

 


댓글(18) 먼댓글(0) 좋아요(3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stella.K 2016-03-15 1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출판사에서 하는 서평 대회는 장단점이 있기는 하지.
그런데 그런 출판사 허투로 안하는 것 같아.
나름 공정하게 하는 것 같고, 안 좋은 얘기 했다고 해서 당선에서 제외하는
이런 초등학생 같은 짓은 안하는 것 같아.
문제는 참가하는 독자의 태도가 아무래도 좀 다른 것 같아.
나부터도 흔들리긴 하지.
평소엔 읽지도 않을 책을 읽고 좋은 쪽으로만 쓰고 싶고.
요즘엔 서평 대회하는 출판사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지만
난 꼭 내가 읽고 싶은 책에만 서평을 하기로 했어.
마침 그게 대회로 이어지면 금상첨화겠지만.

cyrus 2016-03-15 18:25   좋아요 0 | URL
누님 말씀을 듣고 보니 제가 출판사를 마치 독자를 무시하는 회사처럼 나쁘게 표현한 것 같군요. 비록 저의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서평 심사를 평가를 공정하게 하는 출판사가 몇 개 있었어요. 그런데 출판사가 글을 제대로 심사하는 건지 아닌지 독자 입장에서는 구분하기 어려워요. 심사하는 사람 마음에 따라 당선작을 선정하는 것이라서 당선 기준도 모호하니까요. 아무튼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싶어요. 언제 또 이런 글을 써보겠어요.

stella.K 2016-03-15 19:17   좋아요 0 | URL
헉, 그런가? 난 많이 못 봐서 말이야.
아마도 내가 소견이 좁은지도 모르겠네.
내가 좀 더 신중히 댓글을 달 걸 그랬구만.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면 용서하길...ㅠ

cyrus 2016-03-15 19:37   좋아요 0 | URL
제가 봐도 누님이 잘못한 점이 없는데요. ^^

고양이라디오 2016-03-15 1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평대회는 오프라인 대회인가요ㅎ?
저도 한 번쯤은 참가해보고 싶네요ㅎ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cyrus 2016-03-15 18:56   좋아요 1 | URL
오프라인은 아니고요, 온라인으로 진행됩니다. 알라딘 이벤트 게시판에 들어가면 서평대회 소식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

JK 2016-03-15 1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의 장점,단점 위주보다는 책을 독자한테 소개한다는 마음으로 써보심이 어떨런지요. 아무튼 저는 서평은 귀찮고 능력도 모자라 잘 안쓰게되더라구요.

cyrus 2016-03-15 18:59   좋아요 0 | URL
옳은 말씀을 하셨는데, 이상하게 저는 책을 소개하는 것을 어렵게 느껴집니다. 그렇게 쓰면 출판사 서평, 언론 서평처럼 보이거든요. 그래서 책 소개는 잘 안 써요.

blanca 2016-03-15 1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복기`가 바둑에서 나온 용어라는 게 흥미롭네요. 안 그래도 <미생>을 잠깐 보면서 바둑을 조금이라도 알면 얼마나 더 잘 이해할 수 있을까, 생각하며 참 아쉬웠거든요. 사는 일도 이렇게 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요새는 통 서평대회 소식을 못 들었네요. cyrus님의 성실한 글쓰기 과정이 참 인상적입니다.

cyrus 2016-03-15 19:21   좋아요 0 | URL
평소에 복기라는 말을 많이 들어봤는데 바둑 용어라는 사실을 최근에 알았습니다. ^^

출판사 시장이 너무 안 좋다보니 서평대회가 예전보다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책을 독자들에게 많이 알릴 수 있는 전략이지만, 거기에 따른 경제적 비용을 감수해야합니다. 아무래도 출판사 입장에서는 서평 대회를 진행하는 일이 부담스러울 겁니다. 심사하는 일도 어렵고, 최악의 경우에는 심사 결과에 논란까지 생길 수 있으니까요.

syo 2016-03-15 19: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cyrus님은 서평과 독후감을 같은 기준으로 평가하시나요?

눈금선의 양쪽 끝에 책과 독자를 놓고 독후감과 서평이 위치하는 지점이 어딘지 생각해보면, 저는 서평은 책 쪽에 조금 더 가까이, 독후감은 독자쪽에 조금 더 가까이 위치하는 게 아닐까 해요. 그러니까 서평이 에세이를 곁들인 비평이라면 독후감은 비평을 곁들인 에세이라고 보는게 제 분류법이거든요. 서평은 어쨌든 그 책이라는 객체에 대해 써야 하지만, 독후감은 책을 읽고 난 후의 자신에 대해 쓴달까요. 그래서 서평은 몰라도, 독후감이라면 설령 그게 자기 블로그에 올리는 글이 아니라 대회에 출품하는 글일지라도 책보다는 내게 더 가까운 지점에서 글을 써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물론, cyrus 님이 이 글을 쓰신 논지와 다른 이야기인것은 알지만, 이렇듯 서평/독후감에 대한 cyrus님과 저의 판단 기준이 다르다는 사실 자체가 시사하는 바가 있다고 봅니다. 책-독자 좌표축에서 서평/독후감의 위치를 어디에 놓느냐 하는 판단이 사람마다 다르듯이, 잘 쓴 서평에 대한 기준도 사람마다 다르겠지요. 전 다만 cyrus님과 심사위원간에 판단기준이 다를 뿐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최소한, 그게 대회라면 그 대회의 목적과 평가 기준은 심사위원의 권한 범위겠지요.

저는 항상 cyrus님의 서평을 잘 보고 있습니다. 제가 읽은 것들 중 가장 좋았던 서평 몇몇은 cyrus님의 손끝에서 나왔다는 것을 자백합니다^^. 그러니까 cyrus님도 다른 독자들을 믿어 보세요. 대회에서의 당락과 관계없이 좋은 서평과 그렇지 않은 서평을 구분할 수 있는 매서운 눈을 가진 독자들이 항상 cyrus님의 다음 서평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cyrus 2016-03-15 19:34   좋아요 0 | URL
댓글 길게 남겨 주셔서 고맙습니다. syo님의 글이 여기 댓글에 있는 것이 너무 아깝습니다. 이 글을 먼댓글 형식으로 syo님이 직접 서재글로 작성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뿐만 아니라 많은 분들이 syo님의 생각에 공감할 겁니다.

예전에 제가 서평과 독후감의 정의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많은 분들의 생각을 확인했고, 역시나 서평과 독후감을 이해하는 인식도 달랐습니다. 오늘도 이 글을 쓰면서 괜한 오해를 불러일으키지 않으려고 신중히 생각하면서 썼습니다. 저는 서평과 독후감을 동등한 의미로 이해했습니다. 그러니까 독후감에도 책에 대한 평을 쓸 수 있다고 봤습니다.

서평과 독후감에 대한 의미도 사람들마다 차이가 있듯이 `잘 쓴 서평 혹은 독후감`에 대한 기준도 다릅니다. 그 점을 syo님이 잘 말씀해주셨습니다. 제가 그 부분을 놓쳤습니다.

그런 의도는 아니었는데 제가 편안하게 글 쓰시는 분들이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말을 쓴 것 같습니다. syo님 덕분에 저의 잘못된 생각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

2016-03-15 19: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6-03-15 20:04   좋아요 1 | URL
제가 쓴 글 때문에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해요.. ^^;;   이벤트 응모 목적으로 쓴 서평/독후감에 대한 저의 주관적인 생각을 솔직하게 밝힌 것뿐입니다. 제가 오래전부터 이벤트용 서평에 대한 잡생각이 많았거든요. 알고 보면 제가 좀 별나요. ㅎㅎㅎ

사실 이런 주제로 공개적으로 대화를 해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비판 받을 각오하고 제 생각을 풀어봤습니다.

L.SHIN 2016-03-15 2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을 복기하다`

저는 이런 표현이 좋아요.
이런 색다른 시선과 사고를 하는 cyrus님이 좋아요.

cyrus 2016-03-16 11:10   좋아요 0 | URL
좋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엘신님의 댓글 진짜 오랜만에 봅니다. ^^

레삭매냐 2016-03-18 2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인적으로 서평대회 당선은 운빨이 아닌가 싶습니다.
심사위원과 어떻게 교신이 돼서 적확하게 원하는 바
를 찌르게 되면 당선되는 게 아닐까 망상해 봅니다.

cyrus 2016-03-19 12:52   좋아요 0 | URL
맞아요. 결과를 예측하기 힘들어요. 서평대회에 참여하면 좋은 결과를 얻는 분을 보면 대단해요. `이 분`이 누구신지 레샥매냐님도 아실 겁니다. 달궁 멤버 중 한 사람이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