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책 나누기 행복 더하기 행사’에 다녀왔습니다. 어제 대구 낮 온도가 27도까지 오를 정도로 더웠습니다. 벌써 여름이 성큼 다가온 것 같았습니다. 행사는 1시 30분부터 시작했습니다. 행사가 시작되는 시간에 맞춰서 10분 일찍 행사장에 도착했는데, 너무 일찍 와버렸습니다. 도서 교환전이 2시 40분부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한 시간 동안 공원 벤치에 앉아서 기다리기는 시간이 아까웠습니다. 알라딘 서점에 가서 책 구경하면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습니다. 정말 책 구경만 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좋은 책이 보이는데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지갑을 엽니다. 

 

 

 

 

 

 


한 달 전 마립간님의 서재 블로그에서 봤던 책을 샀습니다. 폴 나먼의 《허수 이야기》라는 책입니다. 마립간님이 알라딘에 검색하면 나오지 않는 책으로 이 《허수 이야기》를 소개한 적이 있었습니다. 네이버도 마찬가지입니다. 《허수 이야기》가 없는 책으로 나옵니다. 책 상태가 좋았고, 가격이 반값이라서 장바구니에 담았습니다. 그런데 책 내용이 무척 어려워 보였습니다. 고등학생 때 배운 수학 내용을 다 잊은 상태라서 허수의 개념 자체를 몰랐습니다. 책을 펼치면 눈이 어질합니다. 화려하면서도 난해한 수학 공식이 많습니다. 목차를 보면서 《허수 이야기》가 쉬운 책이 아니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목차의 부제가 마치 수학 논문 제목과 비슷한 느낌이 듭니다.

 

 

 

 

 

2시 40분에 맞춰서 다시 행사장으로 향했습니다. 교환전 시작하기 10분 전에 행사장에 도착했는데, 벌써 사람들이 천막이 세워진 곳에 모여 있었습니다. 일반도서, 아동도서, 원서, 과월호 잡지, 사전류 등의 책들이 기다란 탁자 위에 놓여있습니다. 책의 절반은 남산 다락골 작은 도서관에 보관되었던 책입니다. 책에 도서관 직인과 분류번호 스티커가 그대로 있습니다. 나머지 책은 사람들이 집에서 가져온 것들입니다. 집에 있던 책(권수 무제한)을 가져오기만 하면 행사 관계자가 도서 교환권을 줍니다. 이 교환권만 있으면 3권을 무료로 가져갈 수 있습니다. 역시 일반도서가 있는 탁자 주변에 사람들이 많이 서 있었습니다. 저는 정신 바짝 차리고 눈에 힘을 주면서 책 제목을 유심히 살펴봤습니다. 책 내부 상태도 꼼꼼하게 확인했습니다. 교환권을 접수하는 곳에서 이미 불량 상태의 책이 있는지 확인했을 겁니다. 그래도 조금이라도 파손되거나 낙서가 있는 책이 간혹 있습니다. 내년에 있을 도서 교환전에 가고 싶은 분이라면 이 점을 유의하시길 바랍니다.

 

 

 

 

 

무료로 가져갈 수 있는 책이 세 권이라는 점이 너무 아쉬웠습니다. 가져가고 싶은 책이 일곱, 여덟 권 있었어요. 어떤 책을 가져가야 할지 고민을 빨리했습니다. 너무 생각이 많아지면 마음속에 콕 찍어둔 책을 다른 사람이 가져갑니다. ‘뿌리깊은나무’에서 나온 《한국의 발견》 시리즈를 만났습니다. 어제 처음 봤습니다. 11권 모두 탁자 위에 놓여 있었습니다. 헌책방에 가면 낱권만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완질을 보는 기회가 잘 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런 귀한 책을 다 가져갈 수 없습니다. 아쉬운 마음에 잠시 책 고르는 일을 멈추어 사진만 봤습니다. 출간연도가 오래된 도서관 장서치고는 보존 상태가 훌륭했습니다.

 

 

 

 

 

 

천막 아래서 책을 열심히 고르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행사장 중앙에는 독서골든벨 같은 이벤트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행사 진행자의 목소리가 얼마나 크고 우렁찬지 책 고르는 데 방해가 되었습니다. 눈으로 책을 고르고 있을 때 귀가 독서골든벨 문제를 들을 수 있는 정도였습니다. 부모와 자녀들을 위한 레크리에이션 행사도 있었습니다. 땡볕이 뜨거웠을 만한데 아이들의 표정은 밝았습니다.

 

세 권의 책을 고르는 데 한 시간 남짓 소요했습니다. 조용한 헌책방에서 책 찾을 때보다 더 피로감이 몰렸습니다. 책을 다 고르면 행사 자원봉사자들에게 교환권을 주고 천막 밖으로 나가면 됩니다. 그런데 교환권을 받는 일을 맡은 자원봉사자가 사람들이 가져가는 책 권수를 확인하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그러니까 못된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책 세 권 이상은 가져갔습니다. 솔직히 어제 저도 책 욕심이 생겨서 꼼수를 써볼 생각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마음을 고쳐 비양심적인 행동을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교환전에 책을 더 많이 가져올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교환전에 갈 때 가족이나 친구를 동행하세요.

 

 

 

 

 

 

행사 참여를 위해 접수하면, 도서 교환권뿐만 아니라 상품과 기념품으로 교환하는 응모권도 받을 수 있습니다. ‘행운의 다트게임’이라는 소소한 이벤트도 열렸습니다. 다트판에 비누, 치약, 초콜릿, 여행용품 등 상품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갖고 싶은 상품이 적힌 곳에 다트를 던지면 됩니다. 저는 치약을 받았습니다. 상품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시 던질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상품을 받으려고 행사에 온 것이 아니라서 결과를 번복하지 않았습니다.

 

 

 

 

 

김영하 작가 사인회가 4시부터 시작했습니다. 30여 분 정도 기다렸습니다. 레크리에이션 행사를 구경하다가 김영하 씨가 사인회가 진행하는 곳으로 천천히 걸어오는 모습을 봤습니다. 저는 직감적으로 사인회가 곧 시작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저도 얼른 사인회 장소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저는 2등으로 사인을 받았습니다. 행사 진행자가 작가 사인회 시작을 알리니까 아이들이 우르르 사인회 장소로 달려갔습니다. 한 줄로 서서 기다리는 아이들의 모습이 정말 귀여웠습니다. 서서 기다리고 있는데 제 뒤쪽에 인기척이 느껴 져서 살짝 뒤를 돌아봤습니다. 유치원생 혹은 초등생으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서 있더군요. 이 아이들은 김영하 씨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을까요?

 

 

 

 

 

 

어제 제가 가져온 책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소피스트적 논박》, 앙리 마스페로의 《불사의 추구》, 아이작 아시모프의 《바이센테이널맨》입니다. 《소피스트적 논박》은 도서관에 있던 책입니다. 완전 새 책 같았습니다. 돈 한 푼 안 내고 정가 2만 원의 책을 얻었습니다. 앙리 마스페로는 프랑스의 동양사학자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이집트 고고학자입니다. 앙리 마스페로는 고대 중국사, 베트남사, 중국 도교 연구 등에 뛰어난 업적을 남겼습니다. 우리나라에 《고대 중국》, 《도교》라는 제목의 저서도 소개되었으나 《불사의 추구》와 함께 모두 절판되었습니다. 《불사의 추구》는 다양한 중국 도교 수련법을 소개하고 정리한 책입니다. 무협소설에서 볼 법한 수련법이 언급됩니다. 신선술(神仙術), 장생술(長生術), 연단술(鍊丹術), 그리고 방중술(房中術)도 나옵니다. 《바이센테이널맨》은 로빈 윌리엄스 주연의 영화로 더 많이 알려졌습니다. 원제는 ‘이백 살을 산 사람’입니다. 1976년에 발표된 중편소설입니다. 이 소설로 그해 아시모프는 SF 작가의 노벨상 격인 휴고 상을 받았습니다. 1992년에 로버트 실버버그와 함께 중편소설을 개작하여 장편소설로 다시 만들었습니다. 장편소설 제목은 ‘양전자 인간’입니다. 안타깝게도 이 작품은 아시모프의 유작이 되고 말았습니다. 《바이센테이널맨》은 1995년에 《양자인간》이라는 제목으로 첫 선을 보인 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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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6-04-23 15: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보력이 만만치 않으시네요. 이게 다 책에 대한 애정에서 비롯할 테죠 ? 후후..

cyrus 2016-04-25 14:45   좋아요 0 | URL
저보다 책 좋아하는 분들이 남긴 서평이나 블로그 글을 읽는 일이 좋다 보니 관심이 많아진 것 같습니다. ^^

stella.K 2016-04-23 1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울도 오늘 청계광장에서 행사를 한다고 하는데
하필 날씨가 안 도와주는 것 같다.
미세먼지에 황사라니. 왜 오늘 같은 날 그런 최악의...
물론 난 날씨가 좋았어도 안 갔겠지만...

김영하는 계속 한국에 있는가 보다. 몇년 간 독일인가 어디에 있을 거라고 했던 것 같은데.ㅋ

cyrus 2016-04-25 14:50   좋아요 0 | URL
여기 행사장 바로 옆에 공공도서관이 있어요. 사인회가 끝난 뒤에 작가 강연이 도서관 강당에 열렸어요. 강연까지 듣고 싶었는데 오후에 약속이 있어서 사인 받고 집으로 돌아왔어요. ^^

yureka01 2016-04-23 2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기회가 와도 업무시간이니 못가니 아쉬웠어요..^^...

cyrus 2016-04-25 14:51   좋아요 0 | URL
행사장에 아이들이 많이 왔습니다. ^^

yamoo 2016-04-23 2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구에서도 이런 행사를 하는군요! 작년에 서서울공원에서 비슷한 행사를 한 적이 있지요. 서울 쪽은 권수 제한이 없고, 있더라도 5권 정도가 책바꿔가기 장터의 제한 권수지요. 지난 주에는 제가 자주가는 도서관에서 도서관 책을 나눔하는 행사를 했습니다. 권당 5권씩 받아갈 수 있는 행사였죠. 알바생이 휴대폰에 정신줄을 놓고 있어 사람들이 6-7권씩 마구 가저가더이다. 저도 7권 가지고 왔지요..ㅋㅋ

근데, 소피스트 논박은 제대로 건지셨네요!ㅎㅎ

cyrus 2016-04-25 14:56   좋아요 0 | URL
그 날 책 욕심을 부렸어야했군요. 지금도 생각하면 몇 권 더 챙기지 않은 게 후회됩니다. 도서관에 오래된 책들을 따로 보관하는 장소가 있어요. 안 그래도 보관 공간도 마땅치 않을 텐데 시민들을 위해서 책을 나눠주는 행사를 열었으면 좋겠어요. 제가 사는 곳에 거리가 가까운 도서관은 몇 년째 과월호 잡지만 주고 있습니다. ^^

페크pek0501 2016-04-25 14: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세 권을 고르는 데 한 시간이나 걸리셨다니 신중하셨군요. 저도 구입할 책을 고를 때면 무척 신중해지더군요. 다 구입할 순 없는데, 몇 권만 사야 하는데 살 게 많을 때 정말 고민이 됩니다.

중고서점이나 도서 교환 행사를 활성화하는 것에 찬성합니다. 저도 가까이에 그런 행사가 있다면 가 보고 싶군요. 책 구경은 늘 즐거우니까요...

cyrus 2016-04-25 14:59   좋아요 0 | URL
책값이 부담스러워서 중고 서점을 찾는 손님들이 늘어났어요. 도서 교환전이 많아지면 알뜰하게 책을 사려는 사람들이 매우 좋아할거예요. ^^
 

 

 

 

 

 

 

 

 

 

 

 

 

 

 

 

 

 

 

 

이 도서목록은 《보는 눈의 여덟 가지 얼굴》(글항아리, 2015)의 참고 문헌들을 정리한 것입니다.

 

 

 

 

 

 

 ... 책과 관련없는 이야기

 

원래는 ‘마이리스트’ 형식으로 목록을 작성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작성된 마이리스트가 북플에서는 보이지 않습니다. 앞으로는 참고 문헌 목록을 ‘마이페이퍼’ 형식으로 쓰려고 합니다. 마이리스트는 독자가 읽고 싶거나 관심 있는 책을 골라서 목록으로 만들 수 있는 기능입니다. 어떤 특정 주제를 정해서 주제와 관련된 책들을 모아놓을 수 있다는 점이 마이리스트의 매력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마이리스트 서비스의 존재가 예전만큼이나 못한 상태입니다. 북플 서비스가 시작되면서 ‘마이리스트’ 작성을 하지 않아도 언제든지 관심 있는 책을 고를 수 있게 됐어요. ‘읽고 싶어요’ 하나만 누르면 끝이에요. 새롭고 간편한 서비스 기능이 등장할수록 기존의 서비스를 사용하는 빈도가 줄어들기 마련입니다. 지금도 마이리스트를 작성하는 회원이 많습니다. 그러나 북플 이용자들은 마이리스트를 보지 못합니다. 북플로 가입한 초보 회원은 마이리스트 기능이 무엇인지 잘 모를 겁니다. 몇 년 지나고 나면 마이리스트 기능이 사라지는 예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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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6-04-21 16: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토머스 핀천 책을 다룬 논문을 읽다가 발터 벤야민의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을 샀는데 고이 모셔 두고 있습니다.

cyrus 2016-04-21 16:55   좋아요 1 | URL
혹시 래삭매냐님도 핀천의 소설을 읽으려다가 관련 논문을 읽으신 거예요? 이번 달 달궁 독서모임 책이 어떤 건지 봤습니다. 저는 <브이를 찾아서> 1장만 읽은 상태입니다. 채널예스 ‘출판사 탐방’ 민음사 특집 글에서 본 건데 올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출간 예정작으로 <브이를 찾아서>가 언급되었더군요. 올해는 꼭 나오겠지요? ^^;;

http://ch.yes24.com/Article/View/30077

레삭매냐 2016-04-21 17:03   좋아요 1 | URL
하하하 당근입니다. 일단 책을 읽긴 했는데 도통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더라구요. 논문도 읽긴 했는데 아리까리합니다. <브이>가 나온다고 하니 또 사서 소장해야겠네요 :>

syo 2016-04-21 18: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었는데, 읽을 때는 좋다좋다 읽었는데, 두 달도 채 안됐는데, 왜 아무 기억도 안나는 걸까요.......ㅠ

cyrus 2016-04-21 21:16   좋아요 1 | URL
어떤 챕터는 이해하기 쉬웠는데, 라캉이 언급되는 챕터는 조금 어려웠어요. 챕터마다 난이도가 달랐어요. ^^
 
지하철 시의 논란에 부쳐.....

 

 

 

 

 

고등학생 때 국어 문제집을 풀다가 만난 시다. 시의 제목이 예사롭지 않다. 「토란잎에 궁그는 물방울 같이는」. ‘궁그는’은 ‘구르다’의 전라도 방언이다. 시인은 물방울이 토란잎에 동그랗게 구르는 장면을 귀엽게 표현했다. 그런데 내가 본 그 문장은 시가 아니었다. 객관식 문제의 예시 문항이었다. 네모난 울타리 안에 갇혀 있는 신세였다. 문제의 답을 찾느라 시에 감흥이 느껴지지 않았다. 문제집을 덮는 순간, 문장은 영원히 탈출하지 못한다. 나는 문제집에 갇힌 문장을 구출했다. 생기 잃은 문장을 공책 칸에 옮겼다. 그러니까, 그때였다. 시가 날 찾아온 것은.1)

 

 

 

 

 

투명한 지하철 스크린도어 벽 속에 갇혀 있는 시다. 이 시의 제목도 예사롭지 않다. 「목련꽃 브라자」. 그런데 어떤 사람들이 「목련꽃 브라자」는 시가 아니라고 한다. 심지어 이 시를 얼른 빼라고 화를 낸다. 여성 속옷을 지칭한 ‘브라자’와 사춘기 소녀의 가슴을 비유한 ‘목련꽃’이라는 표현이 문제였다. 시를 불편하게 느끼는 사람들은 ‘브라자’와 ‘목련꽃’이 들어간 구절이 민망하다는 반응을 보인다. 이 두 단어 때문에 감흥이 완전히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게 시는 점점 생기를 잃었다. 문자라는 육신만이 쓸쓸하게 남은 송장이 된다.

 

앞의 시는 무기력한 감성을 소생하는 시로 부활했다. 반면 뒤에 소개된 시는 사람들의 날카로운 시선 속에서 쓸쓸히 죽어간다. 서로 정반대의 운명에 처한 두 편의 시를 만든 사람이 누굴까. 사실 두 편 모두 한 사람이 썼다. 시인의 이름은 복효근이다. 복효근 시인은 1991년에 정식으로 등단했다. 그가 쓴 세 편의 시는 중고등학생 국어 교과서에 수록되었다. 사람들은 시인의 이름을 모르지만, 학창 시절을 겪었다면 한 번쯤 그의 시를 만나봤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처음에 「목련꽃 브라자」 선정성 논란 소식을 접했을 때 「목련꽃 브라자」가 아마추어 시인이 쓴 글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오늘 이웃의 글을 보다가 「목련꽃 브라자」 원작자를 확인했다. 시를 많이 읽지 않은 나 자신이 무척 부끄러웠다. 스크린도어에 적힌 「목련꽃 브라자」의 원작자 실명이 공개되지 않았다면, 나는 「목련꽃 브라자」를 수준 미달의 시라고 끝까지 믿었을 것이다.

 

「목련꽃 브라자」가 정말 수준이 떨어진 시인지 직접 판단하지 않겠다. 다만, 이 시 하나만 가지고 시인의 창작 능력을 폄하하는 상황이 씁쓸하다. 시인이 오래 살아서 죽을 때까지 펜을 놓지 않으면 100편이 넘는 수의 시를 남긴다. 만약에 스무 살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해서 여든 살에 죽을 때까지 딱 천 편의 시를 남겼다고 가정하자. 사람들은 다작한 시인의 왕성한 작품 활동을 칭찬한다. 그렇지만 천 편의 시 모두 결점 없이 완벽한 예술성을 갖춘 작품이 될 수 없다. 사람들이 즐겨 읽는 애송시로 등극하면 그건 시인의 대표작이 된다. 그러나 그 이외에 다른 시는 대표작에 2% 부족한 그저 그런 작품으로 남게 된다. 대체로 작가들은 자신의 작품을 보는 눈이 정확하다. 작가들은 오랜 시간 투자해서 열심히 썼던 글에 미흡한 점이 발견되면 혹독하게 평가한다.

 

소설을 쓰든 시를 쓰든 죽을 때까지 글을 쓰는 사람들은 독자들이 실망하는 실패작을 남긴다. 작가도 사람인지라 무조건 좋은 작품만 쓰는 일이 불가능하다. 「목련꽃 브라자」는 모든 독자에게 공감을 주지 못한 실패작 중의 하나일 뿐이다. 그러나 시를 긍정적으로 평가한 소수의 독자를 무조건 비난하는 것은 옳지 않다. 시 한 편에 모두 달려들어서 설왕설래해봤자 결론을 내리지 못한다. 이번 기회에 싸움을 멈추고 다른 시인의 작품을 읽어보는 게 어떨까. 그래야 시인의 진가뿐만 아니라 시 읽기의 매력을 제대로 확인할 수 있다. 시는 시집으로 읽어야 제맛이다.

 

 

 

주 1) 파블로 네루다의 「시」가 시작되는 문장을 변주했음. 원본은 ‘그러니까 그 나이였다. 시가 날 찾아온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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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20 16: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6-04-20 20:42   좋아요 1 | URL
언론은 사소한 일을 괜히 크게 부풀려서 자극적인 뉴스로 만들려고 해요. 사실 작년에도 지하철 스크린도어에 있는 시에 대한 시민들의 부정적인 반응을 소개한 뉴스를 본 적이 있어요. 유명 시인이 쓴 시의 이름을 공개하지 않고 스크린도어에 소개했으면 시민들이 어떤 반응을 할지 궁금해요. 분명 시가 잘 썼는지 못 썼는지 따졌을 겁니다.

syo 2016-04-20 17: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재밌네요.

에, 사람마다 독법도 느낀바도 다를테니 어떤 이의 평만 절대적으로 옳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구조적으로 이런 건 좀 있다고 봐요.

부족한 제 눈에는 저 목련꽃 브라자에 나오는 ˝우리 선혜˝가 화자의 딸로 보이는데요,
풋풋하지만 한 명의 여성으로 잘 자라고 있는 딸을 보는 대견함을, 그러니까 뭐 공부를 잘 하거나 착한 일을 해서가 아니라 그냥 어엿한 여성으로 자라나고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아름답고 대견한 딸을 그리는 시라고 읽었거든요.

근데 많은 사람들 눈에 그냥 사춘기 여성을 보는 어떤 중년 남성의 성적 시선만이 포착되는 것에는 일종의 사회적, 성적 편견이 작동한 부분도 있다고 봐요.

완전히 적절한 예는 아닐지 모르겠지만, 만약 완전히 같은 제재로 화자가 할머니고 대상이 사춘기 남자 아이가 된다면 -우리한테 다소 익숙한 `내 새끼 고추 잘 익었나 보자` 라는 식이랄까요?- 여하튼 그런 구도로 시가 나왔더라도 지금 저 시를 반대하는 사람 전부가 그대로 반대를 했을까요?

cyrus 2016-04-20 20:54   좋아요 0 | URL
syo님이 논란의 원인을 아주 정확하게 설명해주셨군요. syo님 말씀에 동의합니다. syo님이 사례로 든 할머니의 농담은 예전에는 웃고 넘어가면 그만이었지만, 이제는 그렇지 못하죠. 복효근 시인의 시도 가벼운 유머를 염두에 두면서 썼는데, 반대로 사람들은 불편하게 느꼈던 것 같습니다. 만일 시에 ‘내 새끼 고추 잘 익었나 보자’라는 구절이 들어있었으면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있었을 겁니다. 요즘 성 범죄, 성추행, 성희롱 사건 빈도가 높아지니까 성을 주제로 한 대화나 언어적 표현을 쉽게 하지 못해요. 사람들은 여전히 시는 밝고 순화된 언어로 이루어진 글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복효근 시인의 표현이 낯설었을 거예요.
 

 

 

 

 

 

 

 

4월 21일 목요일 오전 11시부터 인터넷 교보문고, 광화문 교보문고 매장에 판매

 

4월 22일 금요일에 전국 교보문고 매장 판매

 

 

 

* 71, 72번째 책 : 《지봉유설》 이수광 저 / 남만성 역

 

《지봉유설》은 조선 중기 실학의 선구자 이수광이 1614년에 완성한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류다. 조선의 일은 물론 중국과 일본, 베트남과 타이, 자바를 비롯해 프랑스, 영국 등 유럽 제국의 문물까지 담아내 문화백과사전으로 평가받는다. 지봉(芝峰)은 이수광의 호. 그는 성리학만 고집하지 않았다. 성리학에서 실용적 요소를 찾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또 성리학 이외의 학문이라도 국력 증진과 민생 안정에 유용한 것이라면 모든 학문을 폭넓게 수용하는 개방성을 보였다. 그는 중국 사행의 경험을 바탕으로 외국 문물을 보다 객관적으로 이해하는 입장을 취했다. 그가 실학의 선구자로 인식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현재까지 나온 《지봉유설》 완전 국역본과 정선본(《지봉유설 정선》 현대실학사)은 절판되었다. 올재 판 《지봉유설》은 을유문화사 판을 재 간행한 것이다.

 

 

 

 

* 73번째 책 : 《종의 기원》 찰스 다윈 저 / 이민재 역

* 74번째 책 : 《비글호 항해기》 찰스 다윈 저 / 권혜련, 김정석, 박완신, 이혜진 역

 

곧 다가오는 4월 21일은 과학의 날이다. 내일은 찰스 다윈이 세상을 떠난 날이다. 1934년 발명학회가 찰스 다윈의 기일을 맞아 ‘과학 데이’로 정한 것이 지금의 ‘과학의 날’의 시초로 본다. 올재 출판사가 이 중요한 날에 맞춰 다윈의 대표작 두 권을 선보인다. 올재 출판사는 오래 전에 나오다가 절판된 고전 번역본을 재출간한다. 이민재 역의 《종의 기원》은 을유문화사 ‘세계의 사상’ 시리즈로 나온 것이다. 올재가 선택한 《종의 기원》 번역본이 너무 오래된 감은 있다. 사실 올재의 《지봉유설》도 그렇다. 알라딘에는 을유문화사 《종의 기원》의 출간 연도를 1995년으로 소개하고 있지만, 이것은 개정판이다. 구판은 1983년에 나왔다. 번역 오류와 오래된 문체를 다듬어서 펴낼 것이라 믿는다.

 

 

 

 

 

 

 

 

 

 

 

 

 

 

 

 

 

 

 

네 명의 역자가 공역한 《비글호 항해기》는 2006년 샘터사에 나온 판본이다. 그래도 내용 구성면에서는 극지 전문가 장순근 박사가 번역한 《비글호 항해기》 결정판이 좋다. 장순근 역 《비글호 항해기》에는 관련 그림이 많이 수록되었고, 해설과 주석이 상세하게 잘 나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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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6-04-18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봉유설은 모르겠고, <종의 기원>하고 <비글호 항해기>는 사야겠네요. 단 소장용으로.

cyrus 2016-04-18 17:54   좋아요 0 | URL
<비글호 항해기>를 제외하면 소장용이죠. ^^;;

붉은돼지 2016-04-18 1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벌써 18차분이 나왔군요^^
cyrus 님 덕분에 올재를 알게되어서 열심히 사 모으고 있습니다.
사 모은지는 벌써 4번째가 되는군요..읽은 건 하나도 없어요 ㅜㅜ

cyrus 2016-04-18 17:55   좋아요 0 | URL
저는 얇은 분량의 책만 골라서 읽습니다. 이번에 나올 책 전부 책장 장식품 각입니다. ㅎㅎㅎ

dimeola 2016-04-19 18: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랫만이네요 ^^
`지봉유설`은 1974년 을유문화사에서 남만성 선생의 최초 국역본이 나왔고 1994년에 다시 개정판이라고 할 수 있는 완전 국역본이, 그리고 2001년도에 가로본이 한번 더 나왔는데 아마 2001년도 판본으로 올재에서 나온 것 같습니다.
`종의 기원`은 교수신문에서 최고의 고전 번역에 선정되기도 하였으나 전체적으로 워낙 어려운(한글로 번역하기 어려운 단어와 문장)터라 최초 완역본임에도 상당히 읽기가 ㅎㅎ 국내에서는 제대로 된 번역본이 아직까지 없다고 하는데 저는 그린비 출판사에서 나온 리라이팅 클래식 `종의 기원, 생명의 다양성과 인간 소멸의 자연학`과 동서문학사 송용철 역본을 가지고 있어서 고민 입니다.
`비글로 여행기`는 리젬에서 개정판 나오기 전 전파과학사에 1991년에 나온 판본을 가지고 있어서.. 이번 올재는 지봉유설만 사고 싶으나 뭐 여튼 다 살 것 같은 슬픈 예감이....
가격이 깡패이니 말입니다 ~~

cyrus 2016-04-19 21:08   좋아요 0 | URL
좋은 정보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안 그래도 제가 찾은 정보가 적어서 쓸 게 없어서 난감했어요. ㅎㅎㅎ

동서문화사 판본은 한길사 판 나오기 전에 조금 읽어봤습니다. 리라이팅 클래식은 끝까지 읽을 자신이 없었어요. 이 책은 꼭 사서 읽어야 되겠더라고요.

올재 판은 판형이 가벼워서 들고 다니기 편하죠. 번역을 다시 손봤다고 했으니 이왕에 다 구입하시는 것이 좋을 거예요. ^^
 

 

 

 

 

 

 

 

4년 전 모 일간지에서 주최한 대학생 칼럼 공모전에 당선된 적이 있었다. 페이스북 페이지에 남긴 글이 논설위원의 칼럼과 함께 신문지에 실리는 영광을 누렸다. 이를 계기로 나는 다른 칼럼 응모자들이 남긴 글을 첨삭하고, 추천하는 일까지 하게 되었다. 이 일에 매진하느라 당해 알라딘 서재 활동이 뜸했다. 하루에 페이스북 페이지에 오른 글의 수가 평균 열 편 정도가 된다. 대학생 칼럼 당선자가 해당 일간지 언론고시에 응시하면 1차 시험이 면제된다. 언론고시를 준비하는 신문방송학과 혹은 국문학과 출신 학생뿐만 아니라 자신의 작문 실력을 알고 싶은 학생들도 칼럼 공모전에 여러 번 도전했다.

 

내 역할은 칼럼에 응모하는 학생들이 글을 잘 쓰도록 돕는 것이다. 글쓴이의 주장이 얼토당토않거나 글의 주제를 뒷받침해주는 근거가 빈약하면 댓글로 알려준다. 내가 지적한 부분만 잘 고친다면 좀 더 나은 글이 될 수 있을 거라는 격려도 빼놓지 않는다. 글 첨삭 및 추천 역할을 하는 학생은 나를 포함한 총 네 명. 이 네 명이 추천한 글은 대학생 칼럼 후보작이 된다. 최종 결정은 대학생 칼럼 공모전을 총괄하는 기자가 한다.

 

남이 쓴 글을 읽는 건 쉬워도 그 글을 쓴 사람에게 내 의견을 똑 부러지게 말하는 일은 무척 어렵다. 특히 작문 실력이 좋다고 할 수 없는 내가 어찌 감히 남이 쓴 글에 이래라저래라 할 수 있겠는가. 글을 첨삭할 때 거만한 자세를 드러내지 않으려고 했다. 그리고 상대방이 쓴 글을 내 글이라고 생각하면서 애지중지 살폈다. 귀찮다고 해서 대충 읽으려고 하지 않았다. 잘못된 맞춤법과 어색한 문장이 있는지도 확인했다. 그 과정을 통해 나 역시 글 쓰는 방법을 하나씩 배워나갔다.

 

누구나 글을 쓸 때 가장 많이 하는 실수 중 하나가 길게 쓰는 문장이다. 내가 2010년에 썼던 글의 문장 하나를 예로 들어보겠다.

 

 

장영희 교수님의 에세이들은 접했을 때 여성 특유의 섬세한 문장이 쉽게 읽혀졌고 자신의 투병 생활에 대해 긍정적인 자세를 잃지 않은 점에서 왜 이 책이 많은 독자들이 읽게 하는지 알게 되었다.

 

 

쓸데없이 긴 문장은 독자의 몰입을 방해한다. 독자는 이 문장을 보자마자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이야?’라고 생각한다. 수식어도 지나치게 많다. 좋은 글이 되려면 문장이 매끄럽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간결해야 한다. 그러면 문장의 의미가 효과적으로 전달된다. 글자 수 제한을 두는 칼럼의 형식상 글의 핵심을 간결하게 표현하는 것이 좋다. 긴 문장은 짧은 문장으로 나누어 쓴다. 불필요하게 느껴지는 수식어를 삭제하면서 문장을 새로 다듬는다.  

 

장영희 교수님의 수필을 읽으면 섬세한 문장의 매력이 느껴진다. 그녀는 투병 생활 중에도 끝까지 펜을 놓지 않았다. 독자의 마음에 긍정적인 힘을 불어넣는 그녀의 글을 안 읽을 수가 없다. 

 

 

문장을 짧게 쓰는 것은 글쓰기의 기본이다. 그렇지만 아주 중요한 글쓰기의 기본을 알려줬는데도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 사람도 있었다. 문장이 형편없는 글을 읽고 나서 문장을 짧게 쓰라고 충고했다. 잘못된 문장을 인용하면서까지 직설적으로 문제점을 알려주는 내 태도에 글쓴이가 자존심이 상했다. 그는 깐깐하게 보는 내 첨삭 방식에 불만을 드러냈다. 자신의 글에 고칠 게 전혀 없는데도 내가 쓸데없이 지적했다면서 화를 냈다. 한번은 글쓴이의 지인에게 내 첨삭 태도에 대한 불만사항을 들어야 했다. 나는 글쓰기의 기본 방식을 숙지해서 친절하게 알려줬을 뿐이다. 유명한 작가가 글의 문제점을 알려주면 감사하는 마음을 감추지 못한다. 반면에 나처럼 평범한 사람이 충고하면 ‘니가 뭔데 내 글을 판단해’라는 표정으로 정색한다.

 

최근 미국 미시간대학의 언어학 연구팀이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다른 사람의 문법이나 틀린 맞춤법에 민감한 사람일수록 성격이 까칠하다고 한다. 내가 이토록 오자에 민감한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렇지만 이 실험 결과를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는다. 나는 반대로 생각하고 싶다. 글의 문제점이나 오자를 잘 찾는 사람은 글에 대한 집중력이 높다. 일간지마다 차이가 있겠으나 기본적으로 칼럼의 글자 수는 1,300자 이내다. A1 용지 한 장을 채우는 분량이다. 이 정도로 글이 길다고 말할 수 없다. 그렇지만 짧아진 글과 사진 위주의 정보가 공유되는 SNS 환경에 길들어지면, A1 용지 한 장 분량의 글이 길게 느껴진다. 우리가 인터넷이나 SNS의 글을 읽는 데 걸리는 시간이 고작 1분도 채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만큼 우리는 긴 글보다는 짧은 글을 선호한다. 글을 천천히 읽는 여유가 없다. 길지 않은 글을 대충 읽을수록 독해 집중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가끔 내가 알라딘 서재의 글을 읽다가 댓글로 오자를 알려주면 글쓴이 입장에서는 불쾌하게 생각할 수 있다. 내 실수가 남에게 들키거나 알려지면 부끄럽기 마련이다. 그러나 부끄러움은 한순간이다. 가볍게 넘겨버릴 수 있는 사소한 일이다. 대학생 칼럼 첨삭 활동했던 과거의 모습과 지금을 비교하면 깐깐스러운 성격이 죽은 편이다. 여전히 내 지적이 불쾌하면, 화를 내기 전에 이렇게 생각하면 된다.

 

아! 사이러스 저 사람은 내 글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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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6-04-14 18:0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제가 그간 cyrus 님의 글에 댓글을 단 적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동안 글을 많이 읽어오긴 했지만 댓글을 단 기억은 거의 없네요. 이 글을 읽으니 그간 님의 글을 읽고 느꼈던 점을 오늘은 댓글로 달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상대방이 cyrus님의 지적에 화를 냈다면 그건 님이 `평범한데 충고를 해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마 님의 태도에 `상대보다 많이 알고 있다`는 그래서 상대보다 `우위에 있다`는 것이 드러나서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간 님의 글이나 또 님이 다른 분의 글에 댓글을 다는 걸 봤을 때, 저는 님에게서 맨스플레인이 기본적으로 장착되어 있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이건 이렇게 하면 되지`, `이건 이런거다` 라고, 친절한 말투였으나 기본적으로 본인이 더 나은 걸 알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려 하시더라구요. 저는 몇차례 그걸 느꼈습니다. 지금 쓰신 이 글만 해도, 다른 사람이 어떻게 느껴야되는지를 가르치려고 하시는 것 같고요.

저는 cyrus 님이 악의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상대방을 기분 나쁘게 하려고 말씀하신 것도 아니라고 물론 생각합니다. 그러나 누군가의 글에 조언을 하거나 지적을 할 때, `네가 나보다 더 많이 알 수도 있다`, `네가 나보다 더 고민했을 수도 있다`, 등을 한 번 더 생각하시고 말씀하셔야 되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cyrus 2016-04-14 19:32   좋아요 3 | URL
안녕하세요. 다락방님.

댓글을 읽자마자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오늘 제가 쓴 글이 오만하게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전에 서평의 정의에 관한 글을 썼을 때 오늘과 같은 실수를 한 적이 있었어요. 부끄럽게도 맨스플레인 기질을 고치지 못했습니다. 제 문제점을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다락방님이 말씀하신 대로 글을 쓰기 전에 읽는 분들의 감정을 먼저 헤아려보도록 유의하겠습니다.

2016-04-14 18: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6-04-14 19:42   좋아요 1 | URL
저는 완성된 글을 올리기 전에 맞춤법 검사 기능을 사용합니다. 그래도 비문은 남아 있어요. 누군가가 글의 잘못된 부분을 알려주면 바로 고칩니다. 글을 고치면서 잘못된 점을 확인하는 거죠. 저도 댓글을 생각나는 대로 쓰는 거라서 띄어쓰기가 잘못 된 게 있을 거예요.

2016-04-14 19: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6-04-14 20:01   좋아요 0 | URL
제가 좀 직설적으로 말하는 편이에요. 안 좋게 보면 상대방 배려 없이 표현합니다. 잘 되는 의미에서 남을 도와준다는 게 오지랖 넓게 느껴질 수도 있어요. 잘 생각하고 행동해야겠어요.

2016-04-14 20: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6-04-14 20:19   좋아요 0 | URL
사소한 실수는 자고 나면 싹 잊힙니다. 그렇지만 큰 실수를 알려주는 다른 분들의 의견을 들으면 잘못된 점을 바로 잡으려고 합니다. 시간이 좀 지나서 잊힐 때가 되면 실수를 반복하게 문제지만, 내 자신을 바로 잡아주는 분들이 있다는 점이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만일 이런 분들을 만나지 못했으면 저는 비뚤어진 태도로 상대방을 대하고 있었을 겁니다.

2016-04-14 20: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6-04-14 20:40   좋아요 0 | URL
님의 말씀에 동의하는 마음에서 ‘좋아요’를 누르고 싶은데, 비밀댓글이라서 안 되네요.

stella.K 2016-04-14 2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맨스플레인의 가능성은 누구에게나 다 있는 것 같아.
특히 블로그질을 하면 할수록. 더구나 많은 추천과 댓글을 받으면 받을수록.
아무리 개인블로그라고 하지만 누군가에게 읽여질 것을 생각하고 글을 쓰는 거거든.
쓰면서도 느끼잖아. 내가 지금 아는 척하고 글을 쓰는 거지 하는.
나만해도 서재질을 많이 하니까 일기같이 아주 나만 보는 글은 못 쓰겠더군.
지난 번 서재 달인이라고 받았던 다이어리도 처음엔 어떻게든 써 보려고 했는데
못 쓰겠더라구.ㅠ
그리고 오탈자 맞춤법은 정말 기가 막가 막혀.
나도 가끔 지적을 받곤 하는데 기분 나쁘기 보다 귀찮다는 생각이 들고.
그냥 대충 알면 됐지 뭘 이걸...
그러다 나중에 다시 보면 이걸 글이라고 썼나 화끈거릴 때가 많지.
사람들한테 미안하고, 어쩌다 아는 이의 서재에서 오탈자 발견하면
마치 내가 틀린 것처럼 마음은 편치 않은데 함부로 지적하기도 뭐하고
대충 그렇게 되더군. 지금 여기까지 댓글 쓰면서도 신경 쓰인다.
그렇다고 안 쓸 수는 없고...ㅠ

cyrus 2016-04-15 12:54   좋아요 0 | URL
제일 한심한 착각이 누구나 아는 정보를 마치 자신이 제일 먼저 발견한 것처럼 소개하는 태도예요. 예전부터 지금까지 제가 그런 마음으로 글을 쓰는 느낌이 들었어요. 친절하게 오류를 알려줬다고 생각하지만, 익명성의 세계에서는 그런 선의의 진심이 전달되지 못해요. 그래서 상대방의 지적으로 인해서 불화가 생기기 쉬워요.

2016-04-14 21: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6-04-15 13:02   좋아요 0 | URL
누구나 갑작스러운 공개 지적을 받으면 순간적으로 당황하거나 화가 나기 마련입니다. 솔직히 저도 처음에 얼굴이 화끈거렸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나면 결국 상대방이 알려준 내 문제점이 무엇인지 보이기 시작해요. 어제 쓴 글을 다시 읽어보니까 오히려 이 글을 보는 사람의 감정이 더 상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님처럼 오류를 지적하는 자세를 호의적으로 보는 사람이 있는데도 저는 알라디너 전체를 지적 받는 상황 자체를 꺼리고 회피하는 존재로 봤습니다. 이건 당연히 심각한 오류고, 상대방이 기분 나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영혼을위한삼계탕 2016-04-15 0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문 맞춤법 은 소통할 때 쓰이는
하나의 약속이죠
이런 걸 다 의식하면
움츠러 들 수 있드라구요~
글 잘 읽고 갑니다^^

cyrus 2016-04-15 13:04   좋아요 0 | URL
맞아요. 맞춤법 가지고 너무 까다롭게 굴 필요도 없고, 집착이 심하면 상대방을 피곤하게 만들어요. 까다로운 성격을 고쳐야겠어요.

마립간 2016-04-15 08: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과 꼭 같지는 않지만, 무관하지 않은 것 같아 글을 남깁니다.
이와 비슷한 댓글대화가 balmas 님의 서재에서도 있었지요.

http://blog.aladin.co.kr/balmas/8398715
http://blog.aladin.co.kr/balmas/8397854

댓글에는 `토론 상대를 미니멈으로 상정하지 마세요`라는 글도 보입니다.

남의 감정을 자극하지 않으면서 남의 오류를 지적한다는 것이 원리적으로 옳지만, 실제적으로 얼마나 가능한지는 의문입니다.

`페미니스트의 주장의 오류를 감정의 자극없이 지적한다.`, `새누리당을 지지하는 할아버지께 감정을 자극하지 않고 오류를 지적한다`, `개신교도들에게 감정을 자극하지 않고 개신교의 오류를 지적한다.` 이와 같은 상황이 잘 상상되지 않습니다.

cyrus 2016-04-15 13:10   좋아요 0 | URL
어제 제가 balmas님과 같은 실수를 저질렀어요. 저 같은 경우에 알라디너 전체를 올바른 비판과 지적을 회피하고 싫어하는 존재로 설정하고, 제 행동을 정당화하는 논리를 펼쳤으니까요. 상대방을 자극하지 않으면서 오류를 지적하는 일이 정말 어려워요. 어떠한 하나의 주장을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관점에 조금이라도 차이가 있으면 서로 다른 의견으로 양분되고, 갈등을 불러일으킬 수 있으니까요.

2016-04-15 14:1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