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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대구 낮 기온은 36도였다. 책판 장터 벼룩시장이 열리는 2.28 공원에 갈까 말까 고민했다. 좋은 책을 만나지 못할 것 같은 불길한 촉이 왔다. 내 예상이 틀리지 않았다. 행사가 시작된 지 20분 지난 뒤에 공원에 도착했다. ‘나만의 책 만들기’, ‘수채화 만들기’ 등 아이들을 위한 체험 행사는 수월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하지만 중고 책 벼룩시장 진행은 너무 초라해 보였다. 어른 서너 명이 책을 팔고 있었다. 파는 책도 많지 않았다. 하나의 탁자에 책 다섯 권을 진열해서 파는 사람도 있었다. 아마도 이번 벼룩시장에 책을 파는 사람들의 신청접수가 적었던 것 같다. 작년 행사와 비교하면 이번 행사는 민망할 수준이었다. 공원에 가서 받은 것은 부채뿐이었다. 부채에 있는 문구가 내 심정을 표현해주고 있었다.
“덥다. 집에서 책이나 읽어야겠다.”
대부분 헌책방은 일요일에 문을 열지 않는다. 그냥 집으로 발길을 돌리기가 아쉬워서 알라딘 서점에 갔다. 이번 달부터 ‘알라딘 대구점’이 ‘알라딘 대구 동성로점’으로 이름이 변경되었다. 그곳에 파는 책에 붙어있는 바코드 스티커에 보면 매장 이름이 ‘동성로점’이라고 되어 있다. 주말에는 알라딘 서점에 손님이 많아서 북적거린다. 그래서 이날만큼은 책을 잘 안 사는 편이다. 안 그래도 방학 기간이라서 초등학생들이 많이 찾아온다. 가끔 아이들이 복도 기둥 쪽에 걸터앉아서 책을 읽거나 스마트폰을 들여다본다. 기둥 바로 옆에 책장이 있는데 그쪽에 있는 책을 고르고 싶어도 아이들 때문에 가까이 가지 못한다. 아무 데서나 바닥에 앉아 있는 손님이 많으면 그걸 보고 따라 하는 아이들이 생긴다. 심지어 책장과 책장 사이에 앉아있는 아이들도 있다. 넓지 않은 공간에 떡하니 앉아있으면 지나갈 수가 없고, 책을 살펴볼 수가 없다. 아이들의 눈에는 바닥에 앉아서 책을 읽는 것이 편안한 자세라고 생각한다.
산만한 분위기 속에서 책을 고르고 있던 중, 날카로운 목소리가 내 귓가를 찔렸다.
“무슨 책을 살 건데?”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려봤다. 바로 내 옆에 선글라스를 쓴 어머니와 중학생으로 보이는 딸이 있었다. 내가 들은 목소리는 어머니가 딸에게 화를 내면서 뱉은 말이었다. 중학생으로 보이는 딸은 스마트폰 화면에 향한 채 아무 대답을 하지 않았다. 부녀가 어떤 상황인지 잘 모르지만, 어머니는 딸이 책을 고르지 못한 것에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어머니가 선글라스를 쓰고 있어서 화난 표정을 확인할 수 없었지만, 분명 조금 전에 들은 목소리는 화난 상태였다. 어머니는 “무슨 책을 살 건데?”라고 말한 뒤에 이어서 “너 집에 가서 보자!”라고 언성을 높이면서 말했다. 어머니의 목소리가 지나가는 사람들 귀에 다 들릴 정도로 컸다.
어머니가 화를 낸 이유를 추측해봤다. 일단 딸은 어머니와 함께 서점에 왔는데, 자신이 사고 싶은 책을 못 찾았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서점 내부를 두리번거리면서 돌아다녔는데, 그걸 지켜보는 어머니는 딸의 모습이 답답해보였다. 사람이 몰려 있는 곳에 오래 서서 돌아다니면 짜증이 나게 된다. 특히 물건을 구매하지 않고, 계속 머뭇거리는 사람 졸졸 따라다니면 답답해서 화가 난다.
내가 왜 이렇게 상상했느냐면, 아주머니가 딸에게 했던 말이 내가 어렸을 때 어머니와 서점에 갔을 때 들었던 말과 닮았기 때문이다. 어머니와 같이 동네서점에 갔을 때, 내가 사고 싶은 책을 못 찾은 적이 있었다. 그때 어머니가 짜증을 냈다. 우리 어머니가 성격이 급하다. 나랑 정반대의 성격이다. 내가 이리저리 책을 꼼꼼히 확인하면서 보는 모습이 느긋하게 보였을 것이다. 그래서 얼른 책을 고르라는 식으로 재촉하곤 했다. 조급한 마음에 아무 책이나 집어오면 “왜 이런 책을 고르냐? 너 이 책 다 읽을 수 있어?”라고 말했다. 그때 어머니의 상기된 표정과 쩌렁쩌렁한 목소리를 잊을 수 없다. 그 이후로 어머니와 함께 서점에 가지 않는다. 내 몸과 마음은 자연스럽게 혼자서 책을 살펴보는 습관의 중요성을 배웠다.
나처럼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책 살 때 절대로 동행하지 않는다. 책을 고르는 방식이 나와 똑같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서점에 오자마자 바로 책 한 권을 다 읽지 않는다. 그러면 다양한 분야의 책을 두루두루 돌아볼 수 없다. 나는 서점이나 헌책방에 가면 목차만 확인하기 위해서 적어도 열 권 이상의 책을 본다. 읽는 것이 아니라 훑어본다. 서 있거나 혹은 앉아서 책을 읽는 경우가 없다. 정말 발품을 들면서 책을 찾는다. 그렇게 하면 최소 두 시간 걸린다. 오래 있으면 세 시간이다. 책에 집중하고 있으면 다리가 아프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독서하느라 책상에 오래 앉아 있는 자세는 건강에 좋지 않다. 오래 서서 다리를 움직이는 것이 허벅지 근육을 단련하는 간편한 운동이라고 생각한다. 날씨에 상관업이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책을 찾는 일은 정말 즐겁다.